1화 각성
어느 날, 구름 위에 거대한 탑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 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오빠, 우리 헤어져.”
“···뭐?”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스물 다섯 살의 여름.
난 여자친구한테 차였다.
“젠장.”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하면 가장 기분 더럽다는 환승연애를 당했다.
여자친구를 채간 상대는 잘나가는 <등선자>였다.
그래, 등선자.
<하늘탑>을 오르는 이들을 가리켜 등선자라고 일컫는다.
하늘탑이 무엇이냐고?
세상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미지의 탑이었다.
이전의 지구가 생각할 수 없던 신비와 이적이 산재한 장소.
“억울해서 나도 등선자가 되고 만다!”
울분을 담아 허공에 외쳤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왜냐면 등선자는 <하늘탑>의 선택을 받아야 각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등선자로 각성하는 가장 이른 나이는 15살.
나 또한 15살이 되자마자 하늘탑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각성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나왔지.’
마나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몸.
등선자의 자질이 있다면, 당장에 각성하진 못하더라도 마나가 몸에 스며들게 된다.
하지만 나는 한 톨의 마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나 거부증의 체질이었다.
‘0.0000000001%의 존재가 나라니.’
확률적으로.
100억분의 1의 사나이.
그래, 나처럼 마나를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질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방송국에서 나를 취재하러 나왔었을까.
그래도 큰 좌절은 없었다.
당시엔 낙천적인 성격이기도 했고.
등선자가 못 되면 뭐 어때?
세상의 지배 계층으로 올라서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밥 빌어먹고 살지도 못할까?
“으아아아! 못 되면 뭐 어떻긴 개뿔!”
하지만 그건 어린 날의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이었다.
세상은 점점 더 등선자 중심으로 돌아갔고.
비등선자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좁아지고 있었다.
-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단, 1층이라도 등반해야 합니다!
그 끝이 아마 10층이 아닐까 추측되는 하늘탑.
아직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10층은 제쳐두고서라도.
1층이라도 등반하느냐 못하느냐가 사회적 계급을 가를 정도로 큰 기준점이 되었다.
“오늘부터 각성 기도라도 드려야겠어.”
각성 기도.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탑의 로비 층.
그곳에서 매일 등선자가 되길 염원하면서 기도를 드리는 행위였다.
아까는 선택받아야 가능하다고 했으면서, 정말 기도만으로 각성이 되냐고?
된다. 실제로 지금도 기도하다가 각성했다는 소식이 줄곧 들려왔다.
그러니 비등선자들은 바짓가랑이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기도를 드릴 수밖에!
***
탑의 로비 층.
전 세계 인종들이 드나드는 광활한 장소.
마력으로 이루어진 태양이 365일 내내 하늘 위에 떠 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대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위대한 하늘탑이시여! 비천한 저희에게도 등선의 기회를!”
“다 같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로비 층에 들어서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찾고자 하는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대한 나무를 본뜬 조각상 앞에 벌떼처럼 모여서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내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이었다.
“어, 음”
하지만 막상 기도드리는 광경을 목도하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요란한데.
이거 하는 게 맞나?
힐끗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쯧, 간절한 건 알겠는데 민폐잖아.”
“아휴, 매일같이 시끄럽게 참···.”
“소음공해로 신고할 수도 없고 말이야.”
역시!
나만 민폐라고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이다.
주변에서도 다 혀를 차는 분위기.
그래, 아무리 각성이 고파도 저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따로 기도하던지, 다른 방법을 알아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슬쩍 발을 뒤로 뺄 때였다.
“오! 압도 클랜원이다.”
“와. 골드 배지도 있는데? 최소 60레벨 이상인가 보다.”
“역시 잘나가는 등선자라서 여자친구도 예쁘네.”
주변의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선남선녀 한 쌍.
190이 넘는 키에 올백 머리를 한 남자가 사자 얼굴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저 사자 얼굴은 우리나라 대클랜 중 하나인 압도 클랜의 표식.
사내는 거기에 60레벨 이상의 정예만 착용할 수 있다는 골드 배지도 달고 있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소리였다.
‘얼굴도 잘생겼··· 어라?’
심지어 외모까지 잘생긴 걸 보고 속으로 저 녀석 완전 알파메일이네···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녀석의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에게 눈이 갔다.
‘여, 연희?’
내 두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마냥 떨렸다.
나를 뻥 차버리고 간 전여친!
이연희.
그녀였다!
‘저 녀석이었어?’
나에게서 환승 후 갈아탄 녀석.
남자가 봐도 완벽한 남자였다.
아.
짙은 패배감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아?”
그때, 내 시선을 느낀 걸까.
그녀가 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1초.
우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였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응? 자기, 무슨일이야?”
“아냐, 오빠. 신경 쓰지 마.”
꽈악!
그녀가 녀석의 팔뚝에 자기 가슴을 더욱 밀착했다.
마치 내게 보란 듯이 시위하는 모습.
나를 쳐다보며 미미하게 찌푸렸던 미간이 사내의 얼굴을 보며 다시 환하게 펴진다.
‘···큽.’
그 꼴을 보고 있자 마음 한켠에서 여러 감정이 휘몰아친다.
질투, 서운함, 분노··· 그리고 패배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보다 더욱 거센 열화와 같은 감정이 가슴에서 들끓었다.
“젠장.”
내 고개가 반대편으로 휙 돌아갔다.
“비나이다!!”
여전히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비등선자들.
그래, 남들의 시선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
일단 각성하고 봐야지.
“비나이다!!! 제발 각성!!”
대열에 합류한 내 입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 각성만 한다면!! 개똥밭에서도 구를 수 있다!!
***
“자,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한 분이 각성에 성공하셨네요! 각성에 성공하신 안철호 등선자님께 박수!”
“우와아아!!”
짝짝짝-!
이거 진짜 되는 거였어?
나는 오늘 각성에 성공한 빡빡머리의 사내를 보았다.
“으하하핫. 감사합니다! 이게 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사내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안철호 등선자께서는 무려 5성급의 특성을 각성하셨다고 합니다. 다들 안철호 등선자님을 귀감삼아 더 열심히 기도를 올립시다!”
“오오오!”
5성급의 특성!
모든 등선자들은 각성할 때 <특성>을 얻는다.
1성부터 9성까지.
그 특성의 등급과 종류에 따라 최대 성장치와 육성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보면 되었다.
통상적으로 늦은 나이에 각성할수록 낮은 등급의 특성을 얻을 확률이 커진다고 알려졌는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늦은 나이에도 5성이라는 중상위 등급의 특성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희망을 품고 지금처럼 우레와 같은 환호를 쏟아낸 것이다.
‘나도 5성급만. 제발!’
사내를 보며 희망을 품은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5성급의 특성을 얻으면 하기에 따라서 아까 그 골드 배지를 찬 녀석 정도까지는 성장할 수도 있었다.
60레벨.
탑의 6층까진 무난하게 오를 수 있는 레벨.
현재 전 세계의 최정상 등선자들이 9층까지 올라선 걸 고려 한다면.
6층까지 올라섰다는 건 전 세계 등선자들 기준으로도 수위권에 드는 엘리트라는 소리였다.
‘내일부터 더 진심으로 기도를 올린다.’
분위기에 휩쓸린 탓일까.
내일 당장이라도 각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날.
“비나이다!!”
그 다음 날.
“비나이다!! 제발!!”
그 다다음 날.
“비나이다!! 저도 5성!! 아니, 4성만 돼도 좋아!”
처음 기세와는 무색하게.
내게 각성은 요원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은 쉴새 없이 흘러갔다.
“비나···이다!”
오늘도 난 퀭한 눈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기··· 하준 씨? 오늘은 그만 들어가 보시는 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홱 돌려보니, 이 기도를 주관하는 남자가 옆에 서 있었다.
“아뇨, 이제 시작했는데요.”
“아! 하준 씨의 열의는 알겠는데, 그러다 몸 다 상하겠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사내가 그리 말할 정도로.
내 몰골이 보기 흉했나 보다.
하긴.
난 지난 몇 개월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서 기도를 올렸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 들어갔다.
그 사이에 두 명이 더 각성을 이루긴 했지만.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나?
‘마나 거부증.’
빌어먹을 이 체질은.
오랜 기간 로비 층에 머물렀음에도.
단 한 톨의 마나 조차 몸에 받아들이지 못했다.
충분히 좌절할 상황.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않았나!
난 반드시 각성을 이뤄내고 말 것이다.
그렇게 다시금 결의를 되새기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하늘 탑>이 당신의 간절한 염원에 반응하였습니다.]
“······!”
머릿속에 들려오는 산뜻한 음성.
‘아.’
그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왔다!’
각성의 순간이!
[<각성>의 의식이 시작됩니다.]
파아아아아앗!
내 몸에서 은은하게 터져 나오는 하얀 빛.
각성의 전조 증상이었다.
“오오!”
“김하준 등선자 님이 각성을···!”
“우와아아!”
주변에서 놀라는 소리가 힐끗 들려온다.
아아.
그래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먼저 등반하겠습니다!
머릿속에서 도파민이 팡파레처럼 연달아 터졌다.
희열에 찬 감정이 가슴에 들끓는다.
그 순간이었다.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질입니다.]
[<각성>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뭐?’
난 환희의 표정을 짓던 그 순간,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진행할 수 없다니?
도대체 왜!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나를 억까 하는구나.
정말 나는 등선자가 될 수 없는 건가?
평생 이대로 살란 말이냐.
이럴 순 없다.
억울함에 눈물이 맺힐 것 같은 그 순간.
다시금 탑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숨겨진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하늘탑>의 이스터 에그가 발동합니다.]
콰아아아아아!
그 메시지와 함께.
내 몸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이, 이게 뭔?’
난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어린 시절 엄마 품에 안겼던 기억처럼 전신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입에서 절로 나른한 하품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려는 순간.
[축하합니다. 각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메시지.
드디어 나도 등선자가 된 것인가!
허나, 놀라기에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나타나는 메시지 앞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었으니.
[이스터 에그 발동으로 히든 특성을 획득합니다.]
[히든 특성 ‘현자(10성 ★★★★★★★★★★)’를 획득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하늘탑> 최초로 히든 특성을 보유한 등선자가 되었습니다.]
[히든 특성 보유에 따른 특전 스킬과 아티팩트가 주어집니다.]
[<하늘탑>이 이스터 에그를 달성한 등선자를 향해 경의를 표합니다.]
[탑의 정상까지 등반하길 염원합니다.]
어···?
뭐야.
10성 등급?
내 눈이 지금 잘 못 된건가?
나는 헛것을 보는가 싶어서 눈을 비볐다가 다시 떴다.
[히든 특성 ‘현자(10성 ★★★★★★★★★★)’를 획득하였습니다.]
여전히 눈 앞에 떠있는 메시지.
아니, 미친! 진짜 10성 등급이 있었어?
댓글(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