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려졌다.
어느 추운 날.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아기일 적에 버려져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어가게 됐다.
슬프지는 않았다.
부모의 온기도 제대로 모를 정도로 어렸으니까.
그러나 버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나 자신을 옥죄는 사슬이 되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며 내 아이덴티티가 됐다.
‘나는 부모따위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뭐든지 혼자 해낼 수 있다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독기를 품었다.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않게끔,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끔.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고고하고 고독하게. 계속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야구는 딱 좋은 수단이었다.
타고난 신체를 가지고 있던 나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결국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은퇴식에선 모두의 경외를 받았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동양인이 이뤄낸 업적에 찬사를 보냈다.
끝끝내 목표를 이룬 것이다.
‘증명해냈어.’
나를 버린 부모가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로, 나를 고아라고 무시하던 놈들도 감히 함부로 말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목표했던 것을 이뤄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공허했다.
혼자 내달려온 길의 뒤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없다.
내 인생에 남은 것은 그저 커리어뿐.
그게 내 자존감은 채워줬지만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증명해야 했던 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냐는 것이었다는 걸.
다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도 내 인생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쌓아온 나라는 사람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언제까지나 고고하게, 그리고 고집스럽게.
그러던 내게 한 여성이 찾아왔다.
내 여동생이라고 자칭하는 여성이.
그녀가 말했다.
-당신, 버려진 거 아니야.
내가 버려진 건 불행한 실수였을 뿐이고 어머니는 나를 언제까지고 그리워했다는 걸.
죄책감 속에 괴로워하다 쓸쓸히 돌아가셨다는 걸 말이다.
처음부터 모든 게 잘못돼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닫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헛된 자존심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견디기 힘든 후회와 회한이 밀려들어왔다.
‘내가 부모님을 찾으려 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텐데!’
내가 원하던 행복은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는데.
그저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덮어놓고 그들을 증오하고, 멀리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게 그 사실을 전해준 여동생도 나 같은 놈과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듯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나는 몇날며칠을 방황하다 22년 만에 내 시작점인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그 성당의 고해실에서 울부짖었다.
‘신이시여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나 자신은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내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그저 투정에 불과한 기도.
신은. 그 기도를 들어줬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나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와 있던 것이다.
꿈일지도 모른다는 건 알았다. 내가 과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과거의 내가 미래의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른다.
뭐가됐든 상관없었다.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면 설령 꿈이라고 해도 괜찮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야구에 비유하자면 5이닝 15K의 완벽투였다.
경이롭지만 고독한 야구.
하지만 그런 야구는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남은 4이닝은 달라.’
모두와 함께 만들어 갈 것이다.
진정한 퍼펙트 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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