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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46년에 부쳐진 편지

2024.08.25 조회 8,992 추천 224


 
  1. 1946년에 부쳐진 편지
 
  어머님.
 
  동경 제대에서 5년, 아메리카 합중국··· 그러니까 미리견에서 10년.
  손가락을 접어가며 햇수를 헤아리니 정확히 15년입니다.
  불초 소생 영환이가 고향을 떠난 것이 말입니다.
 
  어머님이 이 편지를 받으시면 비로소 알게 되시겠지만, 이 불효자, 이역만리를 헤매다 이제야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마땅히 그리운 어머님을 가장 먼저 찾아뵙는 것이 자식이 된 도리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도저히 사정이 여의찮아 이렇게 글줄로나마 안부를 알리는 것을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실은 이 편지 역시도 정말 믿을 만한 이를 통해 조심히 외부로 보내는 것입니다.
 
  (혹 이 문장의 심상찮음에 걱정하실까 올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이곳에는 군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제가 있는 곳의 일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을 뿐입니다.)
 
  부디 어머니의 두 손에 무사히 전해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와 같은 얼굴을 한 조선의 동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나라를 되찾았다는 기쁨이 봄을 맞은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고향 집 담장 어귀에 피곤했던 개나리꽃처럼 말입니다.)
 
  군인들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이곳에 올 때, 그 차를 따라 뛰던 어린 것들의 천진한 함박웃음이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곳이라.
 
  응당 어머님께서는 이 편지를 받으시면 제가 있는 곳이 어디일지 몹시나 궁금하시겠지요.
 
  저는 지금 경성부 (듣자 하니 이제 곧 서울이라는 지명으로 바뀐다고 합니다)에 미군정이 세운 ‘조선 중공’의 연구소에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 조선 중공은 이 땅, 우리 겨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어머님.
 
  근 몇 년간 역사가 발광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흐름은 도저히 저를 비롯한 인간들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되찾은 것만은 틀림없이 두 손 들고 목놓아 만세를 부를 일이지만, 이곳 조선의 순박한 우리 사람들은 지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까막눈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적습니다.
 
  지금 세계는 그야말로 명재경각의 지경입니다.
  한 나라가 망하고 사느냐가 중한 것이 아닙니다.
 
  서력으로 1941년, 구라파 덕국에는 나치라는 불한당패가 있었습니다.
  나치는 세계를 두 쪽으로 나누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조선도 그 전쟁과 무관하지만은 않습니다. 바로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던 일제가 나치의 편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이 연구하던 것 중에는 입자 가속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머님께 여쭙기는 지면이 모자르나,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는 절대 해서는 안 될 것이었습니다.
  아아···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전쟁의 향방을 바꾸기 위해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려던 그들은 우연에 우연으로 열어서는 안 되는 것을 열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서양의 말로 ‘게이트’라고 명명된 관문.
  거기에선 인간의 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튀어나오고 말았습니다.
 
  게이트에서 나온 ‘그것’은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 속 그 어떤 존재보다 끔찍하고 흉악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목숨이 스러져 갔습니다.
 
  이 세상에 나타난 그것은 나치 지휘부와 병력을 모두 폭사시켰을 뿐 아니라, 미리견과 영길리의 연합군 이십만 젊은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저 이십만이라는 숫자가, 하나하나의 목숨이 합쳐진 것이라는 게 아직도 저는 믿기지 않습니다.
 
  마치 천벌과도 같던 그것은 문명의 시계를 몇 바퀴나 뒤로 돌린 후에야 간신히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서구 문명은 그 끔찍한 것을 ‘오리진’이라 명명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와도 다른 그것을 ‘마수’라고 칭했고요.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그래도 세계는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전쟁이 끝났다면서···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비록 상처뿐인 승리였어도 말입니다.
 
  나치의 연구인력 중에서는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동경제대 시절 저와도 안면이 조금 있는 이입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던 자였지요. 하지만 몹시나 괴팍하고 음울하여 모두가 그와 교분을 나누길 꺼렸었던 기억입니다.)
 
  그 자는 저 저주받을 연구의 핵심 인력이었는데, 참화 속에서도 어찌어찌 본국으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하지만 끔찍한 참상을 두 눈앞에서 지켜본 자가 어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광기에 사로잡힌 것은 한때는 불세출의 천재로 불렸던 그 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패망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일제는 그것과 같은 것들을 다시 한번 이 땅 위에 불러내겠다는, 그리고 그것을 길들여 병기로 사용하겠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 미친 생각을, 그들은 정말로 실현했습니다.
 
  미리견에서는 인력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그 이후에도 얼마든지 또 다른 ‘오리진’이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거의 십만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학자가 동원되었고 저 역시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날붙이는 물론이오, 쏟아지는 총알에도 끄떡없는 그것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아주 위험한 무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른바 원자폭탄이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어머님께서도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일 년 전이지요.
  커다란 폭탄 2개가 일본 본토에 떨어졌다는 것을.
 
  역사상 유례없는 살상 무기의 힘을 빌리고 나서야 두 번째 마수를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일제는 완전히 망해버렸고, 그 여파로 우리 조선은 독립을 할 수 있었지요.
 
  이제 모든 것이 정말 끝난 것일까요?
 
  하지만 저는 한동안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라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정작 제가 연구에 참여했던 그 물건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지.
 
  부끄럽게도, 누군가는 저를 영웅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마수와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학살자는 아니었을까요?
  평생을 헌신하기로 약속한 과학이라는 것에 저는 처음으로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괴로움에 고통스러워하던 중 미리견의 높은 사람들이 저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마수의 시체에서 현대과학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이 나왔고, 일본과 가까운 조선 땅에 그 물질을 연구할 연구소를 차릴 것인데 저보고 그 연구소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지요.
 
  모든 것에 지쳐있던 저는 이제 그만 어머니의 품 같은 고국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세운 연구소가 바로 ‘조선 중공’입니다.
 
  여기까지가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럽게 제가 귀국하게 된 연유입니다.
 
  어머님.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렵습니다.
 
  옛적 니체라는 자가 말하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승리를 자신했던 미리견 본토에 또 게이트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인간이 연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이 세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게 될지, 그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니체가 했던 저 말처럼 기어코 그것들이 우리를 보게 된 것이지요.
 
  대관절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도 없는 그것들.
  우리의 내일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미리견이 조선 땅에 연구소를 차린 것 또한 순전히 그들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표면적으로야 우리 조선에 후원자의 모양새를 자처하고 있지만, 실상 미리견은 이제 막 새롭게 태어난 이 나라의 앞날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이곳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진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의 시체에서 나온 광물(저는 그것에 ‘마정석’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은 굉장히 불안정한 물질입니다.
 
  인간에게 무슨 영향을 어떻게 끼칠지, 아무것도 검증이 되지 않은 것이지요.
  무시무시한 병기를 만들었던 연구에 참여했던 저는 이런 종류의 위험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혹여나 어머님께서 염려하실까 봐 또 한 번 덧붙이자면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하여, 미리견은 이 위험한 물질을 연구할 전초기지로 조선 땅을 선택한 것이지요.
  여차하면 마정석을 조선 중공 아래 매장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어머님.
 
  저는 비록 조선 밖을 떠돌면서도 한순간도 제 뿌리에 대해 잊은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어머님의 가르침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개했습니다.
  이제 조선은 그저 주인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몰던 이들이 이제는 미군정에 어떻게든 줄을 대보려는 것이 이곳의 풍경입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마정석에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불의 발견보다 놀라운 것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
 
  예. 어머니, 저는 분명 세상의 멸망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제 발견이 희망의 횃불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신중해지려고 합니다.
 
  지금 조선에 주둔 중인 미군들은 본토로 급히 철수를 준비 중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땅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느라 이 작은 조선 땅을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이것은 *****************************************
 
  ━ 이하 훼손

댓글(15)

정보사냥꾼    
오, 멋진 프롤로그입니다. 선작하고 쭉 따라가 보겠습니다 ^^
2024.08.25 14:48
jo****    
오랜만에 아주 인상깊은 프롤로그를 보네요
2024.09.02 16:18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4.09.03 12:37
n7***************    
학자층이네
2024.09.04 17:55
불티a    
이번작은 정말 세련되고 미려하네요
2024.09.10 09:19
g2*************    
생자필멸 회자정리 화무십일홍 어떤 집단이 공짜점심을 줍니까?이스라엘은 독립을 얻고 7번 이상의 전면 전쟁을 하며 중동에서 미국의 교두보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아이티는 독립하고도 프랑스에 독립배상금이란 황당한 명목의 돈을 122년동안 갚아야 했습니다.조선말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미화하거나 왜곡 하지말고 바라봐야 미래를 바로 설계할수 있습니다.
2024.09.10 16:59
ijason05    
11페이지 오타 같아요! 미리견은-광물은 부분이요
2024.09.16 12:24
레이바트    
애초에 미리견은 그것의 시체에서 나온 광물(••••••)은 >> 애초에 그것의 시체에서 나온 광물(••••••)은
2024.09.18 08:14
나라연2    
요즘에 보기 힘든 도입부. 좋군요.
2024.09.18 13:13
단군한배검    
건필하세요^0^
2024.09.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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