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중퇴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힌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던전이니, 각성자니, 시스템이니, 몬스터니.
인간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그것들이 현실에 등장했다.
시간 감각이 무뎌질 정도로 두문불출했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3년쯤 된 것 같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좁게는 부동산의 가치부터 넓게는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27인치 모니터너머로나 접한 세상이지만, 여러모로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이게 맞나?”
떠름하게 화면을 살폈다.
[반려돌 키우기]
응큼한 생각이 스친 것은 찰나였다.
상품 페이지를 가득 채운 사진은 불쾌한 골짜기를 일으키는 살색의 인형이 아니라 말그대로 ‘돌’ 이었다.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먹만 한 돌멩이.
반려석 등록증이라는 근본없는 증서에는 다양한 돌멩이의 산지가 적혀 있었다.
필리핀, 아프리카, 이집트, 철원 F급 고블린 광산 등.
‘이제 하다하다 돌을 돈을 주고 사고파는구나.’
뿐인가.
돌멩이에 아기자기한 표정을 그려 넣고 모자며, 선글라스에 옷까지 입혀 한껏 꾸며 놓았다.
무슨 둥지도 있고, 내가 사는 옥탑방보다 기깔나는 집도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리뷰 1621]
‘이걸 사는 사람이 진짜 있다고?’
심지어 한두명이 재미로 산 것도 아니고, 꽤나 많았다.
아이나 지인 등 누군가의 선물로 산 이들이 대부분이긴 했으나, 중간중간 진심으로 보이는 글들도 눈에 띄었다.
[만족합니다. 회사 생활에 작은 위로가 됩니다.]
[귀여워요. 신경을 잘 못 써줘서 미안해요.]
[옷 벗겨놓고 만지면 맨들맨들 기분 좋습니다. 추천합니다.]
그들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은 한심함보다는 동병상련의 감정이었다.
‘외로운 사람이 생각보다 많구나.’
무인도 조난 영화의 주인공이 배구공에 이름을 붙여 친구 삼은 것과 비슷한 심리겠지.
당장 나도 반려동물이나 들여볼까,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던 게 아니던가.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냉기가 감도는 방을 살폈다.
굴러다니는 컵라면 용기와 생수병,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잡동사니들.
‘이런 곳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학대나 다름없지. 무엇보다 돈도 없고.’
당장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현실이 아니던가.
[말 못 할 고민이 있으신가요?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필요한가요? 영원히 든든하게 당신의 곁을 지켜줄 반려 돌이 여기 있습니다.]
확실히 생명이 없는 돌이라면 할 필요 없는 고민이긴 하지만···.
[한정 판매! 인제군 A급 던전 ‘망자의 무덤’ 산지, 마정석 주요 성분 토트라늄 0.000001% 함유!]
아무리 그래도 역시 돌멩이를 돈 주고 사는 머저리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
“좋은 아침, 돌슨.”
(^-^)
오늘도 돌슨의 표정이 밝다.
청록빛 표면도 반들반들한 것이 간밤에 잠자리도 편했던 모양.
일과처럼 돌슨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일어서려는데 돌슨의 앞에 세워둔 작은 증서가 눈에 들어왔다.
[반려석 등록증]
이름: 돌슨
반려인: 한기훈
입양일: 20XX.01.09
고향: 인제군 A급 던전 망자의 무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입양한 지 1년째 되는 날이구나.
“시간 진짜 빠르네.”
반려 돌의 존재를 알게 된 그날부터 꼬박 일주일을 밤낮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들였다. 충동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바깥으로 나가면 말 그대로 발에 치일 정도로 널린 흔한 것이 돌이지만.
‘그놈의 밖을 나가질 못하니.’
그렇다고 돌슨을 들인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다시 생각해도 그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엇이든 속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적잖이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나름대로 처음 맞는 생일인데.”
이거 퇴적은 못 시켜줘도 흙이라도 퍼다 묻혀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아래층 여자가 계단에 화분 둬도 되냐고 물어봤던 거 같은데.
“······.”
흘끗 현관문을 바라보자,
─평생 숨죽이고 살아. 눈에 띄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익숙한 환청이 들려왔다. 그를 기점으로 심장이 터질 듯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음, 무리.’
깔끔히 단념하고 호흡을 진정시키고 컴퓨터를 켰다.
[돌을 사랑하는 사람들]
[오늘은 귀한 녀석을 데려왔습니다.] - 마수석
‘부회장님···! 오랜만에 오셨네.’
커뮤니티 운영자 마수석. 반려돌 열풍이 불기 이전부터 취미로 희귀한 수석을 수집하셨던 분이다.
내가 무척 존경하는 분이었다.
게시물을 클릭하자, 불그스름한 돌 사진이 떠올랐다. 스스로 은은한 붉은 빛을 내는 돌은 신비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화정석이구나.’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마정석과 마찬가지로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속성석이다.
저 정도 색이면 최소 중상급은 되지 않으려나.
지난 일 년간 커뮤니티를 떠돌며 얻은 지식으로 슬며시 예상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오 마정석 아닌가요? 저 정도 크기면 꽤 값어치가 나갈 거 같은데.
누군가 남긴 댓글 아래, 부회장님의 답글이 달렸다.
└ 하하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토트라늄 비율이 60퍼센트가 넘어가면 마정석, 플레늄 비율이 10퍼센트를 넘어가면 화정석으로 구분합니다. 제가 구한 놈은 플레늄 비율이 60퍼센트를 넘는 중상급 화정석입니다. 이래 봬도 쉽게 보기 힘든 녀석이지요^^
‘맞췄다.’
그때였다.
─대상자의 [광물] 대한 이해도가 한층 상승했습니다.
─클래스를 각성합니다.
평소 듣던 악의로 점철된 환청과는 전혀 다른 산뜻한 음성이 울려 퍼진 것은.
‘각성이라고? 진짜로?’
분명 언젠가는 기대를 품었던 적도 있다.
트라우마로 인해 집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나지만 계기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미쳐버린 세상이 그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집에 박혀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기대는 퇴색 되어갔고, 이내 완전히 닳아 없어졌다.
아니 없어진 줄 알았다.
반쯤 홀린 듯이 상태창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이름 - 한기훈
클래스 - 결정의 연금술사 《Lv. 1》
클래스 특성 - 핵 부여(고유)
클래스 스킬 - 광물 분석 Lv1. 형질 변형 Lv.1 원소 추출 Lv.1
‘···진짜잖아.’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문자를 보고서야 확신한다.
‘연금술사? 골렘 같은 거 만들고 그러나?’
속으로 되뇌자, 메시지가 뒤바뀐다.
─결정의 연금술사, 돌은 당신의 동반자이며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모든 광물은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광물 분석이니, 형질 변형이니 이과스러운 스킬명에 반해 다소 문과스러운 설명이다.
‘핵 부여는 뭐지?’
─클래스 특성, 핵 부여(고유)
결정의 연금술사 고유 특성입니다. 마성이 깃든 광물에 무작위 등급의 영혼을 부여합니다. 일정 레벨에 도달할 때마다 부여 가능 횟수가 증가합니다.
현재 부여 가능 횟수 1/1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영혼, 이라고···.’
이건 마치 진짜로 내가 돌슨과 대화라도 나눌 수 있다는 것 같지 않은가.
홀린 듯이 돌슨이 있는 창가를 바라보자,
(^-^)
돌슨의 머리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광물 구성 성분을 분석합니다.]
[분석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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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부여(고유)가 가능한 광물입니다. 발동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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