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시 30분.
5평 남짓 원룸에 음악이 울려퍼진다.
[기상]
“후....”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
반복된 일상.
“아자. 아자.”
화장실 거울에 비춰진 부스스한 얼굴이 억지로 미소 한 번 짓는다.
촤아아-
아직 덜 깬 뇌를 샤워와 양치로 깨워주고 머리를 말리며 TV를 키면 7시 아침 뉴스가 시작되고.
- 안녕하십니까, 10월 1일 아침 7시 뉴스입니다. 어느덧 무더위가 가시며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아나운서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처음 전해진 소식은 사건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 오늘 새벽 3시 30분, 경기도 연천에서 생성된 C급 게이트가 공략에 실패하며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헌터군이 긴급 투입되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입니다.
- 나한열 중령이 이끄는 헌터군 A포스 2대대가 던전 브레이크 진압을 위해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주민들은 모두 긴급 대피한 상태이며, 헌터군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상황은 조만간 진압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현재까지 민간 피해가 약 482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어 추가적인 복구와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이번 던전 브레이크와 관련해 상황이 이렇게 악화 될 때 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대형 헌터 길드들에 이기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요....
한 두 번도 아니지.
뻔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헌터 길드는 민간 영리 단체였다. 아니, 더 나아가 규모가 있는 길드 몇몇은 기업화 되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경영되고 있었다. 그런 헌터 산업으로 분류된 주식회사들이 현재 대한민국 GDP 18%를 견인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 헌터 산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 과거 민중당 대표 김한구 의원이 발의했다 기각되었던 ‘헌터 길드의 공익 활동 의무화 법안’이 재평가 받으며 시대를 내다 본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조성되며 대선 지지율이 3.3%p 상승....
“에휴 그 놈이 그 놈인데.”
돌고 돌아 결국 정치로 귀결되는 뉴스.
난 혀를 쯧 차고 TV를 끄고 원룸에서 나왔다.
아침 가을 햇살에 뒤섞인 하수구 냄새와 멀리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경찰차나 엠뷸런스 따위의 사이렌 소리.
이곳은 대한민국의 중심지, 서울이었다.
“안녕하세요.”
“302호 학생, 10월달 월세 안 들어 왔던데?”
주차장을 빗자루로 쓸던 주인 영감이 날 보자마자 돈 타령이다.
심술궂은 표정.
보나마나 그냥 떠 보는 것이다. 애초에 확인도 안 했겠지.
스마트폰으로 확인 해 보니 역시나 월세 50만원이 자동이체로 빠져 나갔다.
그것도 어제 저녁에. 잔고는 43만 원....
“다시 확인 해 보세요. 입금 됐으니까.”
“그래? 다음부턴 미리미리 말일에 보내라고.”
미리미리 보냈다.
이체 일자가 9월 30일인데.
순간 욱하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기분 상해봐야 나만 손해다. 빨리 돈 많이 벌어 거지같은 원룸 신세 끝내리라 애써 동기부여 에너지로 전환했다.
“네네, 수고하세요.”
대충 인사하며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자마자 우연인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세요?”
- 두식아,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네, 학원 가는 중이에요.”
- 옛날에 옆집 진수 알지? 진수. 왜 있잖아 너랑 중학교 때 같은 반도 했잖아.
알다마다. 김진수.
생 양아치 새끼.
중학교 때 그 새끼한테 삥 뜯긴 것만 모아도 한 달 월세는 냈을 거다.
“네. 갑자기 걔는 왜요?”
- 오늘 아침에 우연히 진수 엄마를 만났는데, 글쎄 진수가 각성해서 지금 헌터 하고 있다더라. 뭐더라? 대형 길드 들어갔다던데 이름이 바리용인지 바리깡인지? 뭐더라.
“바빌론이요?”
대기업이다.
- 어, 맞다 맞다 바빌론. 거기 들어가서 돈도 많이 번다더라. 연봉이 몇 억이라던데, 그래서 진수 엄마가 글쎄, 좀 전에 야쿠르트 월 30만원 어치 배달 계약 해 준거 있지? 대박이야. 세상 참 좁다 그치?
우리 엄마는 일명 야쿠르트 아줌마.
요즘 말로는 프레시 매니저라는데 아무튼, 우리 엄마는 아버지께서 인테리어 목수하시다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난 이후 6년째 우리 집의 생계를 책임지는 실질적 가장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해맑은 엄마의 목소리가 왠지 듣기 싫다.
- 집에 언제 오니? 엄마가 고기 구워 줄까?
“몰라요. 바빠요 요새.”
- 얘는, 뭐 한다고 그렇게 바빠? 컴퓨터 공부 집에서 하면 되잖아. 집에도 컴퓨터 있고 엄마가 노트북도 사 줬잖아.
“취업 시즌이라 바빠요. 취업 하고 갈게요.”
- 음... 그럴래?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네.”
- 우리 아들 항상 화이팅! 긍정적으로!
“네에.”
[통화 종료]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된다.
괜히 퉁명하게 받은 것 같다.
엄마는 그래도 기분 좋아서 아들한테 전화 한 걸 텐데.
그래도 배알이 꼴리는 걸 어떡하나.
김진수 그 놈은 생 양아치 새끼 공부 지지리 못하고 요즘 같았으면 학폭위에 걸려서 학교 짤렸을 놈인데 운도 좋다. 각성을 했다니....
무엇보다 (주)바빌론.
내가 지금 코딩 공부 빡세게 해서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 바로 저 바빌론이었다.
헌터 길드면서 게이트 공략보다 IT 업계에 더 깊숙이 발을 들인 대기업.
헌터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 ‘헌트레드’를 운영하는 곳이다. 헌터들의 파티 매칭이나 장비 매매, 그냥 사소한 잡담이나 팁 공유. 더 나아가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지원하는 플랫폼 ‘헌트레드’는 각성자만 회원 가입이 가능하게 만들어 차별화를 꾀함으로써 각성자들의 특권의식을 자극해 지속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었다.
김진수 양아치 새끼는 운빨로 각성해서 그런 대기업을 웃으며 들어갔겠지.
“운빨 좆망 세상 씨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려 했던 다짐은 오전 8시, 1시간 반 만에 실패했다.
난 아침 일찍 일어나 만차 버스에 낑겨타는데 김진수 그 새끼는 연봉 수 억 받으며 외제차 몰고 다니겠지?
하, 나도 각성 하고 싶다.
이 부대끼는 버스 승객 중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 할 것이다.
대한민국 각성자 10만 시대.
고작 10만이 정회원인 플랫폼 헌트레드의 인기 게시물엔 조회수가 무려 천 만 단위로 찍힌다. 댓글도 달지 못하는 비각성자들이 그만큼 각성자들의 삶을 동경한다는 증거다.
일반인들이 두루 사용 할 수 있는 커뮤니티엔 이 불공평한 사회를 불평하는 의견도 자주 올라오지만, 각성자들은 코웃음 칠 뿐이다. 그들은 아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각성자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망해도 진작에 망했다. 그런 특권 의식이 그들을 명예롭게 했다.
어찌 보면 중세시대의 귀족과 평민의 계급보다 더한 차별과 특권의식이 이 세상엔 팽배했다.
이런 불평 한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나.
그냥 좆같아도 참고 사는 거지.
각성하길 매일 매일 기도하면서.
될 수 있으면 좋은 등급으로.
한... C급만 되도 좋겠다.
“후....”
아침 출근 시간 버스엔 이따금 한숨소리가 들린다.
가끔 내 차례가 찾아오는 날이 있었고 그것이 오늘이었다.
강북에서 다리 건너 강남 1번 출구에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나도 그 인파와 휩쓸리듯 내렸다.
그들은 주인 모를 고층 빌딩 숲 속으로 흩어졌다.
나 또한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다.
[디엠 빌딩]
[4F 강남 지니어스 코딩 아카데미]
6개월 AI 부트캠프 코스, 1,200만 원짜리 할인 받아 835만 원.
엄마 연봉이 2,500 정도로 아는데.... 참 불효다.
그 생각이 들자 퉁명하게 엄마 전화 끊은 것이 다시금 후회됐다.
“힘 내자.”
힘들고 어려워도 계속 힘 내서 나아가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 거다.
아버지께서 손가락 잘리기 전에 늘 내게 하시던 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하기로 한 거 힘 내서 그냥 계속 하는 것 뿐이다.
코딩 하다가 손가락 잘리진 않을 거 아닌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교실 제일 앞자리에 노트북 켜고 텀블러에 냉수 채우고 복습 조금 하자 수업이 시작됐다.
"자, 여러분. 오늘은 딥러닝과 신경망의 기초에 대해 다룰 겁니다. 이미 여러분은 머신러닝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간단한 모델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죠? 딥러닝은 머신러닝의 하위 분야로,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더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입니다."
.......
교재에 오늘 다룰 단원은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ANN) 기초였다. 코딩을 책 보고 배운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다행히 난 꽤나 재능이 있었고 이해력과 응용력도 좋았다. 무엇보다 코딩할 때 생기는 몰입감이 즐거웠다.
처음이었다. 평생 해도 될만한 일을 찾은 것이.
‘두식아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서 게임 하는 것도 재능이야. 그렇게 집중 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아. 컴퓨터를 한 번 공부 해 보는 게 어떻겠니?’
‘엄마! 공부 하다가 머리 식힌다고 게임 조금 하는데 또 공부 소리야?’
‘머리를 8시간이나 식히니? 엄마 일 다녀 올게! 밥 챙겨 먹고!’
엄마 말이 맞았네.
엄마 말 잘 들었으면 4년은 단축 했겠다.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잡념을 털어냈다.
.......
"이제 이론은 이 정도면 될 것 같고, 실제로 딥러닝 모델을 만들어 볼까요? 우리가 사용할 도구는 TensorFlow와 Keras입니다. Keras는 TensorFlow 위에서 작동하는 고수준의 딥러닝 라이브러리로, 매우 간단하게 신경망을 구현할 수 있어요."
이론은 금방 넘어갔고, 딥러닝 프레임워크 실습.
파이썬으로 주어진 과제를 코딩한다.
다들 선뜻 코딩을 시작하지 못하는 가운데 내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였다.
.......
model = models.Sequential()
model.add(layers.Dense(128, activation='relu', input_shape=(784,)))
model.add(layers.Dense(64, activation='relu'))
model.add(layers.Dense(10, activation='softmax'))
.......
예/복습 철저히 한 보람이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등 뒤에서 은은한 무화과 나무 향이 코 끝을 스쳤고, 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아... 역시 오전 반 에이스. 두식 씨, 코드 설명 해 볼 수 있어요?”
“네?”
난 당황했지만 시키는 이유는 있었다.
“실무에선 코드 리뷰가 중요한 거 아시죠?”
“아, 네. 네. 일단... 여기선 3개 층을 가진 기본적인 신경망 모델을 만들고 있고요, 첫 층은 128개의 노드로 구성했고 ReLU 활성화 함수를 사용합니다. 두 번째는 64개의 노드, 마지막 출력층은 10개의 클래스를 예측하기 위해......”
술술.
내가 짠 코드를 설명 하는 것이 어려울 리 없었다.
강사도 만족한 것 같다.
얼굴만 보면 또래 같은데, 학생과 선생이다.
“진짜로 대단해요. 두식 씨는 진짜 취업 무리 없겠는데요? 저보다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에이, 과장이 심하십니다. 쌤.”
“빈말이 아니라 진짜요. 특히 그 집중 했을때 모습은 보는 사람도 빨려들어갈 것 같아요. 블랙홀처럼.”
“하하, 감사합니다.”
“왜 컴공 전공 안 하신 거에요? 진짜 재능 있는데?”
난 행정학과 나왔다.
왜?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에 공무원 하려했다.
안정적이고, 어영부영 살다보면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신 상태가 글러서일까, 난 공시 3년 준비하다 포기한 역사가 있었다.
“그렇게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시면.”
“앗, 죄송해요. 헤헷.”
“죄송하면 끝나고 커피 한 잔 어때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건넨 말이었다.
근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멘트 좋았는데. 이거 아닌가?
너무 뜬금 없었나?
강사는 ‘아 그게....’ 하고 얼버무리다, 내 눈을 피하며 수업을 마치는 멘트로 답변을 대신했다.
"오늘은 기본적인 신경망 모델을 만들어 봤으니, 다음 시간에는 여러분이 만든 모델을 서로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미지 처리에 뛰어난 CNN을 다루겠습니다. 예습 꼭 꼭 하세요!"
쯧.
어렵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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