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빙의 -
군 전역 4일차.
며칠 여동생의 집에 눌러 앉았다.
오크를 닮은 여동생은 오늘도 여느 때처럼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내게는 키보드를 두들기는 게 아니라 줘패는 것처럼 보이는 뒤태.
타다닥-
요란하게 울리는 키보드 폭행 소리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냐?”
“왜, 너도 해볼래?”
“어허. 오빠한테 너라니.”
“여동생한테 치킨 타먹는 백수는 오빠 취급 안 하지.”
깔깔 웃는 여동생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화면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중세풍의 분위기의 게임이 딱히 재미있어 보이진 않았다.
“게임 같은 것보다는 좀 건설적인 걸 해봐. 밖에 나가서 햇빛도 좀 보고. 어? 님 얼굴이 지금 누렇게 떴어요.”
“에라이, 그게 백수가 할 말이야? 내가 이걸로 돈을 얼마나 버는데. 오빠 치킨 값이 어디서 나오는 줄 알면서 그래?”
크흠.
할 말은 없었다. 실제로 저 기지배는 게임으로 방송을 하기 시작하더니 제법 짭짤하게 돈을 벌고 있었거든.
“아무튼 이제 방송 시작할 거니까, 오라버니는 조용히 하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만 닫고 있으면 이 백수의 주둥아리로 치느님이 강림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안녕하세요, 오빠들! 오늘도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우웩.
혀 짧은 소리에 토가 쏠린다.
대체 저 오크 기지배의 어디가 좋다고 시청자들은 저걸 빨아주는지 도통 모르겠다. 머리카락만 길면 할머니도 좋다고 달려드는 물소들인가.
화면에 내가 잡혔는지 여동생이 나를 슬쩍 보더니 유려하게 방송을 이끌었다.
“네? 뒤에 있는 엄마 아들은 오늘도 역시 개백수죠! 전역하고 허구헌 날 놀고 자빠졌네요. 그래도 불쌍하죠? 우리 백수씨의 치킨 값을 위해 풍 좀 쏴주실 멋쟁이 오빠들 있나요?”
[세상에서제일예쁜지혜남편님이 달풍선 1000개를 쏘셨습니다.]
- 충성! 형님, 이거 하십쇼.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몸이 장난 아니십니다!
쏟아지는 형님들의 달풍선에 침대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매제! 오늘도 일용할 양식 고맙다! 그런데 매제는 사업은 절대 하면 안 되겠다.”
“응, 왜?”
“뻔한 이 기집애 캠빨에 당했는데 위험하지. 사업하면 사기로 쫄딱 망하겠어.”
“야! 안 닥쳐!?”
자본주의 앞에 내 허리는 이토록 가볍다. 채팅창에 ㅋㅋㅋ이 도배되면서 내 역할은 끝났다.
좋아. 짭짤한 용돈도 벌었겠다 다시 버로우나 타보실까.
이후 지혜는 오늘 할 콘텐츠를 시청자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동생의 콘텐츠는 별게 없었다.
게임 콘텐츠.
여캠 호소인.
어릴 때부터 여자애 답지 않게 게임에 빠져 살더니, 성인이 된 이후 그걸로 돈을 벌고 있었다. 나름 실력도 있는지 대부분의 게임에서 랭커라던데.
뭐가 됐든 열심히 업어 키워놨더니 제 앞가림 해가며 사는 모습이 나름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머리 좀 컸다고 지 오빠의 치킨값도 벌어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그러면 오늘은 오랜만에 ‘데몬 게이트’나 해 볼까요? 멸망한 세상에서 악마들과 싸우면서 성장하고 완전한 멸망을 막는 게임이죠. 자, 주인공 컨셉은 뭘로 할까요?”
확실히 지혜의 와꾸가 빻았는지 안 빻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배제하고 봤을 때, 진행 능력은 제법 준수했다.
날 닮아 뽜이팅이 있달까.
“흡수 능력이요? 그건 사기 특성이라 저한테는 너무 쉬운데. 그러면 이렇게 할까요? 무조건 흡수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와 레벨이 같거나 높은 적에게만 ‘스탯’을 흡수하는 거에요. 또 직접 막타를 친 대상의 능력만 흡수할 수 있고. 어때요?”
···망할.
“그리고 초반 육체 능력은 최하치로, 모든 스탯을 1로 맞추고··· 음! 난이도를 헬 모드로 설정해서 가면 재밌을 것 같은데?”
나는 이때 지혜를 말렸어야 했다.
“초반 스토리는 징벌 부대의 죄수병으로 할게요! 초반에 알짜 스킬을 얻기에는 또 여기 만한 곳이 없잖아요. 디테일한 서사도 부여해 주고··· 오케이. 그러면 가보시죠! 고고-!”
지혜는 적당히 자신의 이상형에 맞게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한 이후,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때였다.
화아아악-
갑자기 화면에서 섬광탄이 터진 것만 같은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동시에 터지는 지혜의 고함.
“악- 씨발! 내 눈!”
날 닮아 반사신경이 좋은 지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모니터의 빛은 지혜의 뒤, 침대에 누워서 틈틈히 달풍이나 빨아먹을 생각이나 하던 내게 쏟아졌으니···.
[당신은 빙의되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
세상참.
꿈이라면 참으로 고약한 꿈이었다.
[당신은 빙의되었습니다.]
성의라고는 1도 없는 문구 끝에 나는 드넓은 평원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사람이 갑자기 너무 큰 사건에 처하면 얼이 빠진다고들 하던가.
딱 내 상태가 딱 그랬다.
‘허참. 세상이 나를 상대로 개꿀잼 몰래 카메라를 하는 걸까.’
일단 세상이 참 요란했다.
눈으로 뒤덮인 평원 위는 알록달록 붉은색 물감들이 흩뿌려져 있었는데. 물감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는 익숙한 냄새였다.
그건 피비린내였으니까.
외부 자극은 후각 뿐만 아니라 청각과 시각에도 미쳤다.
쾅, 콰앙-
저 멀리 포효를 터트리는 괴물들은 길게 늘어진 내장을 껌처럼 질겅질겅 씹으며 인간들의 방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커다란 체급에서 나오는 박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막아! 막으라고 이 병신 새끼들아!”
“왼쪽 뚫린다! 끝까지 막아! 그거 뚫리면 다 뒤지는 거야!”
악을 지르는 사람들은 깡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건 중세의 갑옷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손에는 칼과 방패가 쥐어져 있고, 칼은 무시무시한 괴물을 향해···.
“델! 이 미친놈아 머리 안 숙여?!”
누군가 내 머리를 붙잡고 강제로 바닥으로 끄집어 내렸다. 그 순간 머리 위로 집채만 한 크기의 돌덩이가 날아갔다. 돌덩이는 볼링공처럼 사람 몇 명을 육편으로 만들더니 저 멀리서 멈췄다.
돌덩이가 지나간 자리로 시뻘건 줄이 죽죽 그어지니, 그 모습이 참으로 비현실적이었다. 특수부대원으로서 전장을 뒹굴었을 때도 저런 식으로 죽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는데.
쫘악-
그때 두터운 손바닥이 내 뺨아리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이 병신 새끼야! 지금부터 정신 안 차리면 내 손에 뒈질 줄 알아. 알겠어? 대답해!”
뺨을 친 상대는 옛 동료들처럼 털과 근육으로 가득한 사내였다. 강함의 상징인 대머리는 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게도 그 순간 사내의 말대로 어방하기만 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좋아. 지금부터 우리 징벌 부대는 적들의 주술사 부대를 교란한다. 뒤로 따라 붙어.”
[튜토리얼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다시 메세지가 하나 더 떴다. 그 비현실적인 문구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외쳤다.
“예!”
사내는 초점이 잡힌 내 눈동자를 보더니, 마찬가지로 다른 병사들의 따귀를 때리며 상황을 주도했다. 일단 숙련된 군인으로 보이는 사내 뒤로 바짝 붙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염병, 이게 뭔 일이야.’
분명 방금 전까지 여동생의 방 침대에 누워 떨어질 콩고물이나 빨아먹으며 백수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얀 빛이 터지더니-
[당신은 빙의되었습니다.]
아.
‘씨발. 진짜 빙의했나 본데.’
나참 세상에.
웹소설에서나 흔히 쓰일 싸구려 소재가 깜빡이도 없이 내 인생에 끼어들 줄이야. 군대를 갓 전역하고 군바리 물이나 뺄 생각으로 휴식하던 일상에 난데없이 판타지가 끼어들었다.
예상 직업으로는 죄수병. 보통 중세 설정상 고기 방패나 쓰다 버리는 버림패로 쓰이는 게 징벌 부대의 존재 의의였다.
‘전역한지 고작 4일차였는데.’
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조졌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몸과 머리는 해야할 것들을 추렸다.
‘일단 살아남고 생각하자.’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질문은 미뤄뒀다. 아마 높은 확률로 원인은 동생 지혜에게 있을 터지만, 그조차도 엄마 딸이 의도한 일은 아닐 터.
‘···그 기지배가 여기 왔다면 그건 그것대로 끔찍했겠네.’
여튼-
군에서 교육을 받을 때 상황이 터지면 이유는 미뤄두라고 배웠다. 일단은 당장의 현 상황에 집중하며 임무와 생존만을 생각하는 게 우선.
그때의 가르침은 전생의 전쟁터와 현생의 전쟁터를 관통하는 가르침이었다. 일단 심호흡을 하며 차분하게 주변을 훑었다.
- 쿠워어어어!
- 좌측에 붉은 오크 부대 출현!
- 붉은매 용병단은 우회해서 타격하라!
정보1.
상식 밖의 세상. 이곳은 괴물과 인간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장이다.
등 뒤로는 피로 흠뻑 젖은 성이 우뚝 솟아있고 정면에는 하나의 종으로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생김새의 괴물들이 인간들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무기가 필요해.’
어디에 갔다 팔았는지 칼이나 방패 같은 게 손에 없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사방에 널린 게 시체와 무기였다는 게 다행이다만. 가까이에 떨어진 방패 하나와 적당한 크기의 칼을 주워 들었다.
시체는 죽는 순간까지 얼마나 꽉 무기를 쥐었는지 시체의 손아귀에서 칼을 빼앗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손에 쥐어진 묵직한 무구의 존재감만으로 안정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야, 씹!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칼과 방패를 쥐고 몇 발자국 옮기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주술사 부대를 타격하겠다는 군인은 이미 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서야 내 몸으로 눈이 돌아갔다.
정보2.
‘···해골 병사?’
내가 인간의 편이 아니라 설마 괴물의 편이었나? 그런것 치고는 상대 진영에 언데드는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이딴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은 굉장히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아프리카의 전쟁 지역으로 파병을 나갔을 때 보았던 기아의 몸이 딱 이랬었다.
그제서야 동생과 시청자들의 대화가 생각났다. 최약체의 몸. 모든 스탯 1. 그건 아마도 캐릭터의 설정을 정하는 거였을 테지.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하나, 나는 현재 동생이 즐겨하던 ‘데몬 게이트’라는 게임에 빙의되었다.
둘, 데몬 게이트는 멸망한 세상에서 악마를 사냥하면서 성장하여 완전한 엔딩을 막는 게임이다.
셋, 나는 데몬 게이트를 1도 모른다.
넷, 아마도 나는 제약을 가진 흡수 능력자다.
마지막으로, 육체 능력은 최하. 모든 스탯 1. 세계관의 난이도는 헬이다.
일단 열이 올랐다.
‘변태도 아니고 설정을 해도 꼭···!’
근육 빵빵 최강 피지컬로 만들어도 될 것을 왜 굳이 힘들게 최약체로 만드냔 말이다.
아무래도 동생의 성향이 마조히스트는 아닐지, 현대로 돌아간다면 빠따를 쳐서라도 사상 개조는 반드시 하고 말리라.
그렇게 눈동자를 굴리는 그때,
— 끼에에엑!
그건 본능이었다.
방패를 들어 올렸다. 방패 위로 괴물이 떨어진다. 빈약한 몸뚱이는 괴물과 함께 바닥을 나뒹 굴었다.
‘망할···!’
나와 괴물은 서로 허둥대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 괴물 새끼와 체급이 얼추 맞다는 것.
툭튀어나온 주둥이에 쫑긋 솟은 귀. 그리고 가느다란 팔다리와 작은 키.
‘고블린? 고블린처럼 생겼는데.’
주변을 잘 살펴보면, 게임이나 영화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에겐 제법 익숙한 괴물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확신할 수는 없어도 나와 맞다이를 뜨게 될 저 괴물의 이름이 고블린은 아닐까.
— 끼에에엑!
놈은 보기와 달리 포악했다. 간을 보던 나와 달리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제 무기로 삼으며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쿵. 쿵.
쿵쾅 거리는 심장.
현대의 전쟁에서 백병전을 치를 일은 거진 없다. 대부분 손가락으로 딸깍하면 적은 침묵하기 마련이고, 그도 아니면 수류탄이나 고폭탄을 펑펑 터트리는 게 전부였으니까.
이처럼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기란 요원한 일. 하물며 괴물이 내뿜는 눅진한 살기와 짐승 노린내는 전쟁터를 굴렀던 내게도 사뭇 매섭게 다가왔다.
쾅-
방패 위로 놈의 손톱이 칼날처럼 떨어졌다. 얼마나 비루한 몸인지 그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참으로 지랄 같은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방패는 차라리 방해물이었다. 방패는 고블린의 머리에 던지고 양손으로 칼을 쥐었다.
“이 개새야!”
악을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고작 한 번의 칼질로도 몸이 휘청인다. 고블린의 어깨에 칼이 박혔으나 고블린은 되려 성질을 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아오, 씨발아!”
세상에 이런 좆밥 싸움도 없을 터. 누가 본다면 저게 뭐냐고 비웃을 터지만 나와 이 고블린 새끼는 세상 누구보다 진지했다.
— 키에에엑!
고블린의 손톱이 쇳소리를 내며 복부로 향했다. 나의 대응은 간단했다. 한 발자국 물러선 뒤, 앞으로 발을 크게 내딛였다.
체급이 같으면 그때부터는 기술이 승패를 결정한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취미가 또 격투기였다. 전역하고 진지하게 격투기를 업으로 삼아볼까 했을 정도는 됐기에-
“뒈져!”
푸욱—
작은 힘이라도 온전히 한 점에 실을 줄 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날카로운 칼날이 고블린의 가슴뼈를 뚫고 심장에 박혔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만약 빌어먹을 특수 능력조차 없다면 나의 미래는···.
그때였다.
[대상의 능력 일부를 흡수하시겠습니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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