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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오브 킹 1권-1 - 그 세계의 왕이 되거라

2015.10.16 조회 1,142 추천 13


 1. 그 세계의 왕이 되거라
 
 어두운 겨울밤, 의정부 북서쪽 비탈을 타고 내려가는 아스팔트 도로 위 허공에 불그스름한 빛이 나타났다. 누군가 봤다면 UFO라고 착각할 만한 그 빛의 덩어리는 점점 커졌다. 직경 3미터에 달하는 붉은빛의 중앙이 시꺼멓게 변했고, 곧 강력한 에너지의 파동을 사방으로 퍼트리면서 구멍이 생겼다. 문이었다. 언덕 기슭 쪽 나무들이 그 기운에 이끌려 가지들을 흔들어 댔다.
 차갑고 건조한 나뭇가지들의 춤 소리에 맞추어, 그 문을 통해 허연 몸뚱이가 툭 도로 위로 떨어졌다. 붉은빛의 문은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십 초도 되기 전에 사라져 버렸다.
 적막이 흘렀다.
 부엉이 한 마리가 시꺼먼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오 분쯤 후에야 널브러져 있던 몸이 꿈틀거렸다.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우구스투스는 겨우 고개만 들어 주위를 살폈다. 보이는 건 아직 어둠뿐이었다.
 갑자기 기침이 터져 나왔다. 발작적인 기침이었다. 영하의 추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이 차가운 아스팔트에 누워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어떻게든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오랜 여행으로 풀려 버린 근육은 주인의 의지를 배반했다.
 포기하고 누워 버린 아우구스투스는 탄식하며 시꺼먼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빛 하나 없는, 무거운 하늘이었다. 낯선 느낌을 주는 냉혹한 겨울 하늘이기도 했다. 익숙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졌다. 그저 등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 아버지를 생각하자 분노에 휩싸인 아우구스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생일 선물이라면 모름지기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마땅한데, 왜 아버지는 이런 선물로 아들을 괴롭힐까? 무려 45년 동안 준비한 차원이동 마법진을 통해 아들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리다니. 그것도 19번째 생일날 밤에.
 또다시 기침이 터져 나오자, 옆구리가 결렸다. 그리고 온몸으로 경련이 퍼져 나갔다.
 가만히 있다가는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 아우구스투스는 손바닥으로 매끈한 땅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팔이 후들거렸지만 꾹 참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는 팔 안쪽의 근육이 차원을 이동하면서 녹아 버린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때, 2개의 밝은 빛이 빠르게 다가왔다. 눈이 부실 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비겁한 마법사의 기습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오른팔로 몸을 지탱하며, 마법반지가 있는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르마.”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
 그러나 곧 아우구스투스는 당황했다. 방어 마법이 실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지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마력이 없으니 마법이 펼쳐질 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가 보다고 생각한 그는 본능적으로 누워 버렸다.
 빠아아아앙.
 대기를 꿰뚫는 굉음.
 곧 무언가 무겁고 커다란 물체가 아우구스투스 위를 지나갔다. 그는 땅의 진동을 느꼈다. 하늘에 뜬 별들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길에서 옷 홀딱 벗고 뭐하는 거야? 모가지를 잡아 빼 버린다! 식겁했잖아. 퉤퉤, 한번만 더 걸리면 뒈진다!”
 걸걸한 목소리는 아우구스투스 위를 스치듯 지나간 커다란 물체와 함께 저쪽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한국어였다.
 억양이 독특한 데다 요란한 말투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대강의 뜻은 이해했다. 따뜻한 환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누운 채로 빙긋 웃었다. 이 추위에 벌거벗은 채로 얼어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래도 차원이동 마법진은 성공했다. 아버지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무사히 도착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27세에 대한민국을 떠나 타스마니아 대륙으로 넘어갔다. 그 아들 아우구스투스는 19살에 타스마니아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곧 자취를 감추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왼손 중지의 마법반지를 꼼꼼히 살폈고, 마력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 마법반지 ‘오베르’는 엄마가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10가지 마법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데다 자동으로 마나를 흡수해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걸작품이었다. 차원이동 과정에서 반지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저절로 마나를 흡수해 마력을 채우는 반지였기에, 마력의 부재는 곧 이 세계에 마나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마나 없는 세계에서 마법반지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아우구스투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반지에 새겨진 마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역시 반응은 없었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까? 알고도 보냈다면 아버지도 아니야. 근데, 왠지 아버지라면 다 알고도 날 이곳으로 보내 버린 것 같다. 이런 젠장.’
 행복한 시절은 끝이 났다.
 아우구스투스는 생일을 맞아 불러 모은 친구들과의 즐거운 파티를 떠올렸다. 드워프, 엘프, 뱀파이어 그리고 인간이 뒤섞여 신 나는 노래를 부르고, 풍성한 술과 음식을 즐기고, 멋진 선율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들과 함께 몸을 뒤흔드는 완벽한 파티였다. 그 파티가 끝나 갈 무렵, 아버지가 다가와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아우구스투스를 불러냈다.
 “무슨 선물요?”
 “따라오려무나.”
 아버지는 생일 선물을 준답시고 아우구스투스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깊은 곳에 거대한 홀이 있었고, 그 홀을 가득 채운 건 초대형 마법진이었다. 아버지는 그 마법진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걸 설계하는 데 25년이 걸렸다. 그리고 설계대로 만드는 데 20년이 걸렸지. 그러니까 이날을 위해 45년을 공들인 셈이란다.”
 “이게 뭔데?”
 아우구스투스는 살짝 긴장했다. 타스마니아 최강의 인간이자, 드래곤을 아내로 둔 아버지가 45년이나 투자한 마법진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통 마법진은 아닌 듯했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이걸 왜 형, 누나가 아니고 나에게 주는 거지?’
 형은 남자답고 호탕하며, 강인한 전사인 동시에 모두가 인정하는,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이었다. 누나도 꿀릴 게 없었다. 아름답고, 빈틈없는 데다 타고난 마법 재능에 노력을 더해 최고의 마법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아우구스투스는 실력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센 막내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맨몸으로 타스마니아로 넘어왔다. 꽤나 고생했지만 검 한 자루로 대륙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네 엄마를 만났지. 참 운이 좋았다. 하마터면 네 엄마에게 먹힐 뻔했거든. 그랬다면 넌 태어날 수도 없었을 거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넌 아직 짐작할 수 없겠지. 잘 들어라. 대륙을 지배하는 군주, 국왕은 여럿이지만 나는 검 한 자루로 대륙을 제패한 실질적인 왕이다.”
 자신만만한 선언에 보통 사람이라면 기가 죽었겠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오히려 툴툴거렸다.
 “아버지가 잘난 분이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 새삼스럽게 왜 이래?”
 그 말에 아버지가 입을 다물었고, 어금니가 맞물려 우두둑 소리가 났다. 평소 인자하고 부드러운 남자지만, 한번 성질을 부리면 드래곤조차 막지 못하는 아버지 성격을 떠올린 아우구스투스는 재빨리 태도를 바꾸었다.
 “자, 경청할 테니 말씀하세요, 아버지.”
 “내가 왕이라면 넌 왕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너도 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요?”
 “왕이라면 모름지기 그가 속한 세계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넌 뭘 하느냐? 날마다 놀러 다니고 술이나 퍼마시고 사고나 치고. 그래서는 안 된다. 아버지로서, 그런 아들을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는 없어.”
 아우구스투스는 기분이 확 상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야.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옛말이 옳았다. 아버지는 검 한 자루로 세상을 지배하는 능력자라서, 타고난 체질 때문에 무공도, 마법도 익히지 못하는 막내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우구스투스는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형, 누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백조 무리에 끼어든 오리 새끼 신세 같았다.
 “이걸 받아라.”
 아버지는 아들에게 종이를 건넸다.
 아우구스투스는 종이를 펼쳤다.
 
 서울시 OO구 OO동 OO번지 김인철.
 20년 만이구나.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너를 찾아간 녀석은 내 아들이다. 내게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은 아들을 돌보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네게 맡긴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니까. 부탁한다.
 피를 나눠 마신 의형제 고혁수가 쓴다.
 
 “이게 뭐야?”
 종이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철저히 그 언어를 배웠다. 인자하고 성격 좋은 아버지였지만 그 언어에 관한 것만은 냉정한 엄마를 능가할 정도로 엄격했다. 그래서 완벽하진 않아도 그 언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들을 수는 있었다. 한국어는 형, 누나보다도 아우구스투스가 훨씬 잘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경찰이 뭐지?”
 평소와 달리 흥분한 기색이어서 아우구스투스는 잔뜩 긴장했다.
 “……경찰은 경비대원과 비슷한 사람으로 아버지가 한때 살았던 그 세계의 용어잖아.”
 “잘 아는구나. 경찰을 만나면 이 쪽지를 보여 줘라.”
 “왜?”
 아버지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아우구스투스를 초대형 마법진 중앙에 세웠다. 그러고는 아들 몸의 급소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꼼짝도 못 했다.
 아버지는 평생 차고 있던 붉은색 팔찌를 풀더니 아들의 손목에 채웠다. 팔찌의 감촉을 느낀 아우구스투스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팔찌는 아버지가 태어난 세계에서 여기로 넘어올 때 지녔던 유일한 물건인데, 왜 내게 줄까? 혹시 이게 생일 선물일까? 아무래도 이게 다가 아닐 것 같은데…….’
 아직 실체는 알 수 없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슬금슬금 불안의 안개가 흘러나왔다.
 팔찌는 즉시 손목 굵기에 맞게 줄어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 이런 행동은 거의 하지 않던 아버지여서 아우구스투스는 솔직히 기분이 묘했다.
 “넌 나를 대신해서 돌아가는 거란다. 왕의 귀환인 셈이지. 아들아, 그곳에서 네 삶을 꽃피워라.”
 아버지가 아들을 보며 웃었다. 의미심장한, 아우구스투스에게는 불길한 미소였다. 생각 하나가 아우구스투스의 뇌리를 스쳤다.
 “서, 설마? 아니겠지?”
 이제야 상황을 눈치챘다.
 “바로 그 설마다. 아들아, 그 세계의 왕이 되거라.”
 “그 세계? 왕?”
 “일단, 살아남아야겠지?”
 아버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고, 그 즉시 아우구스투스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초대형 마법진은 이미 발동되었고, 아우구스투스는 그 중앙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 엄마는?”
 “아들아, 날 찾니?”
 아버지 뒤쪽 어둠에서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다. 자식이 셋인 엄마라고는 믿기 어려운 미모의 소유자였다.
 “아버지가 날 다른 세계로 보내려 해. 빨리 말려 줘.”
 “아들아, 이 거대한 마법진을 네 아버지 혼자 만들 수 있었을까?”
 “…….”
 아우구스투스는 할 말을 잃었다.
 “고개 들고, 가슴 펴. 자신감을 가져. 넌 드래곤의 아들이야. 어딜 가더라도 말이야.”
 엄마의 말은 아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을 뿐이다.
 “너의 한국식 이름은 고진욱이다. 잊지 마라. 그리고 딱히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기 곤란할 때는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둘러대거라.”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초대형 마법진이 빛을 내뿜자, 아우구스투스는 거력에 휘둘려 차원 사이의 공간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시간? 세 시간?
 하루? 이틀? 열흘?
 어쩌면 한 달?
 에취!
 아우구스투스는 연거푸 기침을 했고, 이대로 누워 있겠다가는 진짜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욕했다. 아버지는 대체 45년 동안 뭘 연구했을까? 제대로 연구했다면 아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술이나 퍼마시고 사고나 친다고? 그런 비난은 아버지가 들어야 마땅했다.
 한참 만에 아우구스투스는 겨우 일어섰다. 온몸이 떨렸지만 그래도 설 수 있다는 게 어딘가. 땅은 평평했는데, 재질이 기묘했다. 분명 길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잘 다져진 길은 처음 보았다. 대체 어떤 마차가 다닐까? 어떤 종류의 마차든 상관없이 굉장히 빨리 달릴 수 있는 길이었다.
 “아!”
 아까 그 물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자동차.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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