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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론의군주 1권-1

2015.10.21 조회 2,186 추천 19


 1. 타이거 엘스하이머
 
 타이거는 손가락으로 전방 우측의 고목을 가리켰다. 밑동이 갈라지며 심하게 뒤틀린 고목은 검은 이끼로 덮여 있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뿌리는 땅위로 불쑥 드러났다가 땅아래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숲 속은 커다란 잎사귀들이 하늘을 막아 낮인데도 어두웠다.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검붉은 진흙으로 위장한 루크가 석궁을 들고 천천히 고목의 왼쪽으로 접근했다. 브래들리는 오른쪽의 허벅지보다 굵은 뿌리를 소리 없이 타고 넘으며 어둠을 응시했다. 그는 거무스름한 전투용 단검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타이거가 먼저 고목의 정면으로 다가서자 뒤에 있던 부하들은 석궁의 가늠쇠 사이로 고목을 노려보았다. 언제든 수상쩍은 움직임이 느껴지면 손가락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태세였다. 타이거는 믿음직한 부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왼손을 들어 검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때였다.
 고목의 밑동 구멍에서 뭔가가 불쑥 나왔다. 석궁이었다. 타이거는 재빨리 상황을 판단했다.
 “엎드려.”
 옆으로 몸을 날린 타이거는 귀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붉은 촉의 작은 화살을 볼 수 있었다.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 나무에 깊이 박혔다.
 이끼가 두껍게 덮인 바위 뒤에 엎드린 타이거는 고개만 돌려 뒤쪽을 살폈다. 부하들은 재빨리 숨었는지 신음은 들리지 않았다. 피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훗, 자기 목숨 귀한 줄은 안다니까. 타이거는 히죽 웃었다.
 “어이, 이봐, 다 끝났어.”
 타이거는 손으로 부하들의 위치를 일일이 지정하며 크게 외쳤다. 고목의 밑동 커다란 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당연했다. 끝났다는 말에 기어 나온다면 그건 제대로 된 군인이 아니다.
 “영웅 칸마도 부하의 안전을 위해 항복했다. 손들고 밖으로 나온다면 죽이지는 않는다. 선택해라.”
 타이거는 급히 접근하는 루크를 손짓으로 제지하며 한 번 더 크게 외쳤다.
 “…정말이냐?”
 칸마라는 말에 반응이 있었다. 적이지만 영웅 칸마의 카리스마는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칸마는 란포드 영지에서 장군의 예우를 받고 있다. 물론 그 부하들도 전장의 규칙에 따라 포로로서 대접을 받고 있지. 선택은 네 몫이다.”
 “…….”
 짙은 침묵이 흘렀다.
 타이거는 브래들리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언제든 보이기만 하면 단검을 던지라고.
 석궁은 무겁고 발사하기 전 팽팽한 줄 때문에 소리가 난다. 이런 정글의 고요함은 그런 소리를 몇 배나 증폭한다. 지금 이 순간은 석궁보다 단검이 훨씬 효과가 있다.
 브래들리가 슬쩍 미소 지었다. 타이거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지만 아군에게만 적용되는 룰이었다. 그 점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낡은 석궁이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날아와 모난 바위에 부딪히며 박살이 났다. 이어서 거구의 사내가 몸을 떨며 밖으로 기어 나왔다. 브래들리는 단숨에 단검 두 개를 던졌고 하나는 미간, 다른 하나는 왼쪽 가슴에 푹 소리를 내며 박혔다. 왼쪽에서 화살이 날아와 놈의 목에 박혔다. 루크였다.
 “큭, …이런 비겁한.”
 피를 내뿜는 사내.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년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놈과는 협상 따위는 하지 않지.”
 타이거가 바위를 훌쩍 뛰어넘어 몇 걸음 만에 사내에게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그는 사내를 추적하면서 저지른 만행을 떠올렸다. 불타는 마을, 잘린 팔과 다리, 신음 흘리던 여인들…. 임무만 아니라면 놈에게 극한의 고통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피부를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고통을 놈은 알고 있을까? 모른다면 뼛속까지 새겨주었을 것이다.
 “…비겁하다고? 웃기는군. 자기 백성들을 죽이는….”
 “훗, 그런가? 불평은 죽은 다음에나 해라.”
 타이거는 허리춤에서 초승달처럼 굽은 칼을 꺼내 간단히 사내의 목을 잘랐다. 깔끔한 솜씨였다.
 “루크.”
 손가락으로 사내가 기어 나온 어둠을 가리키며 타이거가 말했다. 루크는 짧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어둠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타이거는 부하들에게 주변을 뒤져 다른 흔적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루크가 화려한 문양의 단검과 끈 달린 갈색의 낡은 가죽 가방을 들고 나왔다. 타이거는 깜짝 놀랐다. 단검과 가방의 문양은 바로 상대 군대의 총사령관 칸마의 것이었다.
 순간, 타이거는 갑작스런 명령의 이유를 깨달았다. 이미 전투가 끝이 났는데도 지휘부는 타이거 십인대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 칸마의 경호 무관을 추적해서 반드시 죽이라는 지시였다. 타이거와 그의 부하들은 닷새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뒤쫓아 이곳에 이른 것이다.
 루크가 건넨 가죽 가방을 손에 든 타이거는 잠시 고민했다. 가방을 뒤질 것인가, 아니면 그냥 곱게 가방을 원하는 상관에게 가져갈 것인가. 갈등은 길지 않았다. 타이거는 가방의 단추를 풀었다.
 온통 문서투성이였다. 명령서, 편지, 봉인된 문서까지.
 “레테.”
 타이거의 말에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병사가 뛰어왔다. 타이거 십인대에 배치된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신병이었다. 레테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한때 마법사 지망생이었으나 재능의 한계를 느껴 군대에 입대한 녀석이다.
 “네, 대장님.”
 바짝 군기가 든 모습.
 “빨리 읽고 내용을 요약하도록.”
 “네, 대장님.”
 레테는 석궁과 등에 진 군장을 내려놓고 선 채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타이거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잘 말아서 불을 붙였다. 루크, 브래들리도 타이거 옆으로 다가와 담배를 피웠다.
 “…대…장님.”
 레테의 떨리는 목소리.
 “말해 봐.”
 “…이, 이건….”
 “괜찮아.”
 “…….”
 레테는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떨면서 타이거에게 누런 종이를 건넸다. 필체가 대단히 안정감 있고 유려했다. 타이거는 글을 쓴 사람이 영웅 칸마라고 확신했다.
 천천히 종이를 읽어가던 타이거의 낯빛이 변했다. 루크, 브래들리가 담배를 끄고 다가왔다. 타이거의 입에서 담배가 툭 떨어지며 바닥의 습기 찬 흙에 닿아 하연 연기를 피워 올렸다.
 “…대장님?”
 브래들리가 물었다.
 타이거는 대답 대신 그 종이를 브래들리에게 내밀었다. 루크와 함께 종이를 읽은 브래들리.
 “이게 정말입니까?”
 “사실이라면 큰일 나는 거지.”
 “아닐 겁니다. 그건 아라크 놈들 짓입니다.”
 “그건 이상해. 자기들 짓을 이렇게 문서로 남겨놓을 필요는 없으니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내용대로라면 월렌 마을의 참변은 계획된 거야. 이백 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나간 거지. 그것도 지켜주리라고 생각했던 우리 군대에 의해서.”
 월렌은 아라크와의 접경지대에서 카르나크에 훨씬 가까운 작은 마을이었다. 당연히 월렌 주민들은 카르나크인들이었다.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저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루크가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병사들의 사기였다. 월렌 마을을 도륙한 놈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심. 그게 주효했지. 훗, 저 윗대가리 놈들이 이렇게 잔인할지 몰랐군. 어떤 면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똑똑해. 교활한 거지.”
 “…….”
 루크, 브래들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문서가 사실이라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군대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영지민을 죽인 것이다. 이 비밀이 새나가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루크.”
 “…네, 대장님.”
 “주위를 잘 살펴. 추적하라고 지시를 내린 지휘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우리를 내버려둘 리는 없어.”
 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신음이 들렸다.
 타이거는 그 종이를 품에 집어넣은 후, 루크와 브래들리에게 급히 이 장소를 이탈해 두 번째 집결지에서 모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짧게 덧붙였다.
 “내 허락 없이 죽지 마.”
 “네, 대장님도요.”
 루크, 브래들리가 피식 웃었다.
 루크는 왼쪽으로, 브래들리는 반쯤 정신이 나간 레테를 끌고 오른쪽으로 달렸다. 타이거는 가죽 가방과 단검을 챙겨 고목 너머의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
 
 두 번째 집결지는 칸마의 경호 무관 카데안을 죽인 고목에서 도보로 한 시간 거리의 폭포였다. 사람 키의 열 배나 되는 절벽 위에서 내리꽂히는 폭포의 위용은 대단했다. 물안개와 햇살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연출했다.
 타이거는 머리를 두드리는 폭포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짝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공기를 잔뜩 넣어 부풀어 오른 가죽 부대를 양쪽 겨드랑이에 고정시킨 덕분이었다.
 물가의 자갈밭을 서성이는 애송이가 보였다. 로브에 지팡이를 쥔 젊은 녀석의 옷차림은 대단히 화려했다. 마법사였다. 쳇, 마법사까지 동원하다니. 똥줄이 탄 모양이야. 타이거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법사 뒤로 석궁을 든 건장한 사내 다섯 명이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왼쪽의 수풀, 오른쪽의 급류 바위 뒤, 절벽 위의 바위 틈, 푸른 물에 그림자를 드리운 거목의 가지 뒤에 몸을 숨긴 놈들을 합치면 스무 명쯤은 될 것이다.
 명령이 새나갔다.
 대원이 잡혔거나 대원 중 누군가 누설한 것이다. 타이거는 전자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잠시 후, 놈들은 계획을 짰는지 모조리 숨어버렸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대원 중 누구도 폭포로 접근하지 않았다. 평소 호되게 훈련을 시킨 보람이 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끈기가 빵점이라는 건 확실했다. 수풀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까 그 지팡이가 모습을 보였다. 애송이는 목덜미를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푸념을 해댔다.
 타이거는 물속에서 석궁을 비스듬히 들어올렸다. 아직 발사하지는 않았다.
 “여기로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애송이가 지껄였다.
 “…마비니 님, 그들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쫓아온 군인이 말했다.
 “여기는 모기가 너무 많아요. 거머리도 있고. 으, 징그러워.”
 “곧 끝날 겁니다, 마비니 님.”
 “…휴우, 그 말 한번 믿어보지요.”
 마법사는 병사와 함께 수풀 뒤로 숨었다. 타이거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하지만 곧 웃음은 사라졌다. 빽빽한 나무 사이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루크였다.
 전혀 매복을 눈치채지 못한 듯 루크는 물가로 나와 엎드려 혀로 핥아서 물을 마셨다. 그는 석궁과 가방을 돌 사이에 내려놓고 찬 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물에 담갔다가 흔들어댔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타이거는 속으로 욕하며 루크에게 상황을 전달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수풀 뒤에서 이마에 문신을 한 대머리 사내가 걸어와 루크 뒤에 섰다. 대머리는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다. 타이거의 눈이 세 배로 커졌다.
 빅터였다.
 “여기가 맞나?”
 대머리 빅터가 물었다. 부풀어 오른 빵처럼 뚱뚱한 빅터는 연신 땀을 훔쳤다.
 “그는?”
 “보이지도 않아.”
 “틀림없이 이 근처에 있어.”
 루크는 절벽 위에서 폭포 그리고 급류로 이어지는 코스를 꼼꼼히 훑어내렸다.
 “직접 처리하는 게 나았을 텐데, 아닌가?”
 “그를 직접 죽이라고?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지. 그는 위험해. 당신이 더 잘 알잖아. 직접 맞붙었으니까.”
 루크의 말에 빅터의 왼쪽 눈 안대 언저리에서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다. 빅터는 비릿하게 웃으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그를 찾아내지 못하면 넌 죽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잠자코 있으시지.”
 루크는 날카롭게 쏘아붙이고는 주위를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타이거, 이제 끝났습니다. 항복하십시오. 제가 안전은 보장합니다. 전 당신과 달라서 한번 한 말은 꼭 지킵니다. 그건 당신도 잘 알잖습니까? 여기 빅터는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할 테지만 전 다릅니다. 타이거, 그 문서와 단검을 가지고 빨리 나오십시오. 아, 부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겠지요. 제가 잘 대접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하지만 당신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저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여기 있는 빅터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루크의 부드럽고 정확한 목소리가 폭포 위를 맴돌며 사라졌다. 폭포 주변을 에워싼 사내들이 일제히 긴장하며 석궁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상대는 추적과 매복, 잠입 그리고 기습의 대가였다.
 폭포 소리만 들려왔다.
 “빨리 나와! 나오지 않으면 젠장맞을 네 부하들을 산채로 말뚝에 박아버리겠다.”
 빅터가 고함질렀다. 루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런 위협으로 타이거를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 어리석음에 루크는 박수 쳐 주고 싶었다.
 그때, 핑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몸을 숙인 루크 옆으로 날아간 화살은 빅터의 오른쪽 눈에 박혔다. 빅터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손을 뻗어 석궁을 든 루크는 폭포를 향해 겨누었다. 기다렸다는 듯 새하얀 물안개 너머에서 화살이 빠르게 날아와 루크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큭.”
 루크가 어깨를 감싸쥐고 바위 틈으로 숨자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물속이다!”
 그와 동시에 수십 발의 화살이 물안개 너머로 날아가 박혔다. 빅터의 부관 도르프가 사격 중지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병사들은 수백 발의 화살을 물속에 퍼부었을 것이다.
 도르프는 부러진 나무 뒤에서 손짓으로 지시했다. 사각 방패를 왼손에 들고 석궁을 앞으로 겨누며 네 명이 물가로 접근했다. 아무런 변화가 없자 병사들은 도르프의 지시를 기다렸다. 도르프는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병사들은 큰맘 먹고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 천천히 나아갔다.
 공포에 한기가 더해지자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떨기 시작했다. 부츠 속으로 들어온 찬물이 발가락을 적시며 무릎까지 이르자 온몸이 얼음구덩이에 빠진 것 같았다. 병사들은 방패로 목과 가슴을 막았다.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목덜미를 꿰뚫을 것 같은 공포에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자 병사들은 뒤를 보았다. 도르프는 손짓만으로 더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빌어먹을! 지랄하네. 마차 바퀴에 치어 죽을 새끼.”
 “대장이 죽으니 지 놈이 대장인 줄 알어. 씨팔, 미치겠다. 야, 그냥 나가자.”
 “그냥 나가면 저 미친 새끼가 가만히 둘 것 같아? 잘못하면 전출될지도 몰라.”
 “이런 염병할.”
 병사들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멈추고 말았다. 이제 몇 발자국만 디디면 헤엄을 쳐야했다. 방패와 석궁을 들고 헤엄을 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갑자기 앞쪽의 물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석궁을 들어올렸다. 힘을 준 나머지 방아쇠를 당겼고 화살은 수면을 꿰뚫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바로 옆에서 새까만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사내가 머리만 내밀어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놀란 병사들은 석궁의 방아쇠를 있는 힘껏 당겼다. 석궁의 열 발들이 화살통에서 화살이 모조리 발사되었다. 절벽 위, 나무 위에서도 화살이 날아왔다.
 “아악!”
 제일 왼쪽에 선 병사였다. 핏물이 보였다. 그 옆의 병사도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무, 무슨 일이야?”
 물속에 있던 나머지 병사가 물었다. 이미 당한 병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들 역시 같은 아픔을 겪었다. 뭔가 단단하고 차가운 것이 무릎을 강타했고 거기서 시작된 고통은 온몸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병사들은 방패, 석궁을 버려두고 절뚝거리며 물 밖으로 달아났다.
 
 
 다음에 계속...

댓글(1)

결의    
오래전이라 기억이 희미하네요. 무슨 이유에서인가 읽다가 그만 뒀었는데 이번엔 어떨지… 여하튼 현민님의 글에 첫 답글을 달다니 영광입니다.
2015.10.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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