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장
“어머니를 죽여야겠다.”
두 아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1장. 모의謀議
성심원成心院이라고 쓰인 나무로 만든 간판은 잘 닦여 있었다. 역시 나무 재질의 두꺼운 문은 맞물린 틈이 약간 벌어지기는 했지만 견고해 보였고 윤기가 흘렀다. 한 뼘 높이의 문턱을 넘어가면 잔디가 심어진 커다란 뜰이 보였다.
정면의 보심각保心閣이라고 이름 붙여진 건물까지 디딤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보심각은 기둥을 나무로 만들고 벽돌을 쌓아 겉에 황토를 바른 평범한 모양으로 칠십 평 남짓 되었다.
일 장 높이의 담을 따라 대추나무들이 가지런히 심어졌고 설익은 파란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담 밑의, 벽돌을 땅에 박아 만든 길을 따라가면 후원이 나온다. 보심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라한 건물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보심각을 등지고 좌측의 건물은 상선각常善閣. 막 지었을 때는 꽤나 멋있었을 법한 목조건물인데 세월의 손톱에 할퀴어 여기저기 구멍이 나 비바람조차 제대로 못 막을 것 같았다.
상자 모양의 건물에 지붕을 대충 짚으로 얹은 건물은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창고였다. 보심각과 초라한 두 건물 사이는 오 장 남짓 떨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우물과 빨래터, 여섯 개의 말뚝이 박혀 있었다. 말뚝 사이에 널린 작은 옷들과 하얀 침대보가 바람에 하늘하늘 춤을 춘다.
잠자리 두 마리가 경주를 하듯 빨래 사이를 날아다닌다. 빨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초가을의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평화로운 오후였다.
덜컹!
상선각의 엉성한 나무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왔다. 마흔 중반과 서른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중년 미부가 갑자기 달려든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 아미를 찡그렸지만 이내 웃음으로 풀었다.
“날씨가 좋네요.”
목소리는 차분하고 봉황이 수놓인 비단 치마를 들고 걷는 품도 단정하다. 영락없는 대갓집 여인네의 모습이었다.
“마님의 행차가 편하시라고 하늘까지 도와주는 모양입니다.”
대꾸를 하는 여인네의 허리가 깊숙하게 숙여졌다. 틀어 올린 머리칼 중 몇 올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렸다. 여인네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친근한 미소를 건넸다.
“그럼 다음 달에 또 오겠습니다.”
“매번 이렇게 기부금을 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여인네의 시선이 보심각에 머물렀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이라. 마땅히 깨워서 인사를 시켜야 하는데 크는 아이들의 성장에 낮잠은 꼭 필요해서……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원장님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천으로 시집간 수산洙産이는 잘 있는지요?”
“네. 엊그제 편지가 왔습니다.”
“수산이 열여섯 살 때 마지막으로 봤으니 만난 지가 벌써 십오 년이 넘었네요.”
“동생 녀석을 많이 귀여워해 주셨는데 갑자기 시집을 가는 바람에 만나 뵙지도 못하고. 수산이도 항상 그 점을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밖에서 얘기를 끌어 원장님을 피곤하게 했군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미부가 돌아서 걷자 여인네가 바짝 따라붙었다. 성심원 밖에는 말 두 필이 끄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연꽃이 수놓인 파란색 천이 마차의 벽면을 감싸고 있는 고급스러운 마차였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초로의 마부는 미부가 헛기침을 하자 화들짝 놀라서 내려왔다.
“그럼 다음에 또.”
미부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여인네의 허리는 머리칼이 땅에 닿을 정도로 꺾였다. 마차는 성심원의 담을 끼고 좌측으로 돌아 사라졌다. 여인네의 입가에 버릇처럼 걸려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
돌아서던 여인네는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가운데 이 장 넓이의 대로를 두고 맞은편에는 잡화점과 전당포를 같이 운영하는 만물상회가 자리해 있었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이는 만물상회 주인의 여덟 살 난 아들이었다.
여인네가 눈을 부릅뜨자 아이가 화들짝 놀라 상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경질적으로 돌아선 그녀는 성심원의 문턱을 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모두 당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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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죽 여섯 가닥을 꼬아 만든 네 자 길이의 채찍이 좁은 등 위로 떨어졌다. 날카로운 소리와 낮은 신음이 동시에 울리며 작은 몸뚱이가 꿈틀거렸다.
응당 빨래가 널려 있어야 할 기둥 사이에는 네 명의 아이가 양쪽 팔을 쫙 벌린 채 줄줄이 묶여 있었다. 얇지만 튼튼한 끈은 가녀린 팔목을 파고들어 피를 빨아들였다.
한 아이당 공평하게 다섯 대씩의 채찍질을 한 왕화평王華平은 네 아이의 등 뒤 중앙에 섰다. 아이들의 뒤로는 다섯 살에서 열세 살까지의 아이들 서른두 명이 서 있었다. 기운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질 나쁜 옷을 입은 아이들은 오들오들 떨며 시선을 잔뜩 내리깔았다. 눈동자가 콧구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내 돈을 훔치려고 하는 녀석들이 어떻게 되는지 잘 봐라.”
왕화평의 채찍이 다시 핏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등짝으로 떨어졌다. 가끔 억누른 비명이 터져 나올 뿐 용서해 달라는 애원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채찍질을 할수록 힘없는 아이들의 몸이 아래로 처지며 끈이 손목을 파고들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동맥이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왕화평은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두려움을 안겨 줘야만 성심원을 원활히 운영할 수 있었다.
호흡이 가쁠 때까지 채찍질을 한 왕화평은 네 명의 아이들 앞으로 돌아갔다. 어제 이미 많이 맞은 탓에 세 아이의 얼굴은 붓고 멍들어 원래의 용모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한 명, 여자아이만이 얼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커다란 눈과 오똑 솟은 코, 두툼하고 빨간 입술, 갸름한 턱 선은 열두 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요염함까지 풍겼다. 삼사 년만 더 지나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인이 될 바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왕화평은 현지아賢至娥의 얼굴은 절대 때리지 않는다. 예쁜 여아는 그녀의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왕화평은 아직 여물지 않은 현지아의 가슴을 채찍 손잡이로 꾹 찌르며 물었다.
“누가 주동자냐?”
갈라진 작은 입술이 열렸다.
“공태명孔太明.”
눈썹을 찡그린 왕화평은 걸음을 옮겨 비쩍 마른 소년 앞에 섰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체구를 가진 제갈인은 보기와는 달리 원생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열네 살이었다. 워낙 몸이 약한 탓에 그녀의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팔리지도 않고 팔릴 가능성도 크지 않은 제갈인은 그녀에게 애물단지였다.
“쯧쯧쯧…….”
혀를 찬 그녀는 공태명 앞에 섰다. 먹은 것이 부실해 살은 없었지만 골격이 좋아 열두 살임에도 불구하고 오 척이 넘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네가 주동자냐?”
“네.”
순순히 대답을 하는 게 더 기분 나빴다.
“멍청한 놈!”
뺨을 왕복으로 올려붙인 왕화평은 마지막 소년에게로 갔다.
유지묵劉地黙.
왕화평의 눈은 적의로 불탔다. 다른 원생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귀찮음, 혹은 짜증 같은 것이었지만 유지묵만은 그런 감정과 동떨어져 있었다.
미움? 약하다. 증오? 비슷한 것 같다.
“반품返品.”
이 년 전부터 그녀는 유지묵을 그렇게 불렀다. 이미 팔렸던 녀석이 다시 왔기 때문이다. 노예상은 유지묵을 성심원 뜰에 패대기치며 말했었다.
-내 이런 독종은 처음 본다! 아무리 맞아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녀석에게 무슨 재주로 일을 시켜! 다른 애로 바꿔!
왕화평이 성심원을 맡아 운영한 이래 처음으로 반품이 들어온 것이다. 유지묵의 삐뚤어진 코는 그때 왕화평에게 맞아서 생긴 흔적이었다.
유지묵이 고개를 들었다. 거의 감기다시피 한 눈에는 아무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유지묵은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길 줄 아는 재주를 타고난 녀석이었다. 불에 달궈져도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을 독종이었지만 아래로 축 쳐진 눈과 습관처럼 매단 미소 때문에 순한 아이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네가 주동자지?”
“아뇨. 태명이가 돈을 훔쳐…… 도망치자고 했어요.”
왕화평은 유지묵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이 년 전 네가 돌아온 것은 옆에 있는 네 친구들과 같이 있을 목적이었잖아! 그런데 지금 그런 친구를 배신하겠다는 거냐!”
“어머니…… 전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왕화평의 손톱이 볼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분노 때문에 절로 힘이 들어간 탓이었다.
“이런 교활한 놈!”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사업가다. 동전 한 문의 가치라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그녀는 공태명에게로 자리를 옮겼다.
“너희들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맷집 좋은 놈에게 매를 맞게 할 속셈이겠지? 좋아. 태명이 네놈 맷집이 얼마나 좋은지 보자!”
공태명의 가슴팍으로 채찍이 떨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회가 거듭될수록 피의 양은 많아졌고 앙상한 가슴팍은 금방이라도 뼈를 드러낼 것 같았다. 때리는 왕화평의 얼굴에 점점이 피가 튀었다.
“말해! 지묵 저놈이 주동자라고 이실직고해!”
하지만 공태명은 대답은커녕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채찍을 휘두르던 왕화평은 채찍을 집어 던지고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공태명의 피를 뒤집어쓴 그녀는 마치 자신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초가을의 저녁은 살결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와 밥 짓는 구수한 내음을 품고 서서히 깊어갔다. 항주杭州의 저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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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
유지묵의 물음에 공태명은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웃음을 지으려고 한 것 같은데 경련만 일었다.
“누가 모기만 쫓아준다면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
피 냄새를 맡은 모기떼가 윙윙거리며 끊임없이 그들 주위를 배회했다. 배를 채운 녀석들은 몸이 무거워 날아가지 못하고 새로 모여든 놈들은 눈치를 보다가 하나 둘 내려앉았다. 아픔은 참을 만한데 가려움은 좀체 적응이 되지 않았다. 팔이 묶인 탓에 그들은 그저 몸을 비비 꼬아 필사적으로 모기를 쫓을 뿐이었다.
“지묵아. 인이가 이상해.”
현지아의 말에 유지묵은 고개를 쭉 빼서 제갈인을 보았다. 모두 모기를 쫓느라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데 제갈인만은 축 늘어져 있었다. 지금이 자시子時(밤 열한 시부터 한 시 사이)쯤 되었으니 정신을 잃은 지 네 시진 가까이 되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깨어나도 벌써 깨어나야 옳다.
“인아. 인아!”
제갈인은 공태명이 팔을 움직이자 힘없이 앞뒤로 흔들렸다.
“어머니! 인이가! 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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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은자 한 냥에라도 그냥 팔걸.
왕화평이 제갈인의 죽음을 접한 후 처음 뱉은 말이었다.
제갈인이 죽었다고 세 사람의 형벌은 끝나지 않았다. 달라진 건 세 사람을 묶은 줄의 간격이 넓어진 것뿐이다.
시체는 우노인牛老人에 의해 창고 뒤쪽으로 옮겨졌다. 우노인은 십 년 전 처음 성심원에 왔다. 외출한 왕화평이 어디선가 주워 온 사람이다.
원래 그런지 아니면 머리를 다쳤는지 많이 모자란 우노인은, 그럼에도 우람한 덩치에 힘까지 세서 성심원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왕화평이 아무리 때리고 욕설을 뱉어도 우노인은 겁 막은 강아지마냥 눈치만 볼 뿐 대들지 못했다. 왕화평이 우노인의 기를 철저히 꺾어놨기 때문이다.
우노인의 어깨에 거적처럼 걸쳐진 제갈인의 시체가 밤인데도 너무 또렷하게 보였다. 세 사람은 우노인이 창고 뒤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제갈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침묵은 유지묵에 의해 깨졌다.
“어머니를 죽여야겠다.”
두 아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방법은?”
유지묵은 질문을 던진 공태명을 보았다.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죽인 후야.”
“도망가야지.”
“아니. 이대로 도망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지 노릇밖에 없어. 성심원을 진짜 우리 집으로 만들어야 해.”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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