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형적인 2군 본즈였다.
패기 넘치는 신인도, 프로 밥 오래 먹은 베테랑도 2군에서는 날 이길 수 없었다.
강타자 상징인 3 / 4 / 5의 슬래시라인은 당연했고 OPS 1도 밥 먹듯이 찍었다. 2군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1군만 가면 무너졌다.
잘 맞았다 싶은 타구도 플라이였고 안타 대신 삼진만 적립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심리 상담에 유명한 절은 다 갔고 이름도 바꿨다. 훈련? 정말 미친 듯이 했다.
손바닥은 굳은살로 엉망이었고 일부는 검게 변색 될 정도로 휘둘렀다. 기술이 부족한가 싶어 틈만 나면 공부하고 물었다.
하지만.
“···진우야 미안하다.”
“······아닙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결과는 방출이었다.
고교야구 최초 20-20 달성.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퓨처스 리그 최초 30-30 달성.
장래 40-40이 가능한 5툴 플레이어.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1군에서 자리 못 잡고 12년 만에 방출.
12년이나 버틴 걸까 아니면 12년이나 기다려준 걸까.
궁금했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니까.
“······앞으로 어쩐다.”
육성 선수? 독립 리그? 코치?
그 전에 부모님께 뭐라 말씀드려야 할까.
썩은 고목처럼 우뚝 서 있는데 어떤 노인이 말을 걸었다.
“자네, 나랑 거래 하나 할까?”
거래? 무슨 거래?
요샌 사이비 포교도 이런 식으로 하나.
평소라면 대충 무시했었으나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할 일은 없었으니까.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간단하네. 내 제안을 승낙하면 과거로 돌려주겠네. 기회를 준단 뜻이지.”
그냥 미친놈이었군.
상대 안 하는 게 상책이라 다시 걷는데 노인이 말을 걸었다.
“방금 방출됐지?”
“···어떻게.”
“사람들이 자넬 참 아꼈나 봐. 감독도 그렇고 운영팀장도 그렇고. 사비로 이것저것 챙겨주다니.”
“······.”
내가 미친 걸까 세상이 미친 걸까.
나는 결국 못 참고 되물었다.
“거래 조건이 뭔데요? 팀 우승?”
“흠흠. 그것도 좋지. 하지만 그보단 조금 더 개인적인 기록일세.”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한미일 모든 리그에서 한 시즌 70-70 달성. 어떤가? 내 제안에 승낙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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