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다.
장장 17년간의 프로생활을 정리했다.
“고생했다.”
에이전트인 동수형과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형도 고생했어. 그동안 능력도 없는 녀석 에이전트 해주느라.”
“에이, 프로생활을 17년이나 해온 녀석이 능력이 없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17년의 프로생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성적은 그저그랬다.
프로 초반에는 선발로 올랐지만, 부상 이후에는 구속이 떨어지면서 주로 불펜으로 뛰었다.
속해 있던 팀만 하더라도 무려 5곳이었다.
한국프로야구는 10개 구단 체재로 운영된다.
즉, 절반의 팀에서 뛰었단 소리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저니맨 정태민이었다.
“앞으로 뭘 할지는 정했냐?”
질문을 받은 태민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카데미를 차릴 생각이야.”
“아카데미?”
“응. 그래도 20년 넘게 야구를 해왔으니까. 그 노하우로 아이들을 가르쳐야지.”
“하긴, 두루두루 경험을 많이 했으니 가르칠 것도 많겠네. 내가 도울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고마워.”
소주잔을 기울이며 은퇴한 밤을 지새웠다.
* * *
5년 뒤.
태민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아...매출이 왜 이렇게 떨어지냐?”
아카데미의 매출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특히 최근 1년 간은 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분명 처음에는 잘 됐는데.”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초반에는 운영이 잘 됐다.
전 프로가 차린 아카데미라는 타이틀은 수강생들이 몰리게 만들어주었다.
거기다 인맥의 힘도 있었다.
임동수의 도움과 먼저 프로에서 은퇴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던 전 동료들이 그의 아카데미를 홍보해주었다.
올튜브를 통해 홍보해주는 선후배들도 있었다.
덕분에 아카데미는 나날이 번창했다.
첫 3년간은 프로때의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4년차부터 수입이 줄어들더니, 5년차인 현재는 적자폭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동안 벌어둔 돈이 있으니, 당장은 크게 걱정할 일은 없지만. 이게 계속 이어지면 문제가 되겠어.”
무언가 변화를 꾀해야 했다.
그래서 멘토와도 같은 임동수와 상의했다.
“그럼 설비를 좀 업그레이드 해보는 게 어때?”
“설비를?”
“너도 알다시피 요즘 아카데미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잖아. 어떤 기사에서 봤는데 5년 전과 비교하면 베이스볼 아카데미가 무려 2배나 많아졌다고 하더라.”
“레드오션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맞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겠지. 문제는 최근에 생긴 곳들은 모션센서, 고속카메라 등. 다양한 장비를 들이잖아.”
“음...하긴. 우리쪽도 설비가 나쁜 건 아니지만, 대부분 과거에 들인 거 그대로니까.”
처음 아카데미를 오픈할 때 나름 돈을 들였다.
프로생활에 모았던 돈은 물론이거니와 대출까지 받아서 설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대야구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스포츠 사이언스가 접목되면서 매년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이런 발전에 맞추어 설비도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네가 정말 아카데미를 부흥시키고 싶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거야.”
“응. 고민해볼게.”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다.
충분히 공부하고 고심한 뒤에 결정할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길은 보였기에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 * *
동수와의 회담 이후.
아카데미의 설비를 조금씩 업그레이드했다.
직접 미국에 건너가서 유명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견학하고 필요한 설비들을 찾았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코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견문이 넓어졌다.
“내가 그동안 너무 갇혀 지냈구나.”
한국에서 배워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쌓아온 지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야구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야구에 비해 한국야구는 10년은 더 뒤쳐져 있었다.
그걸 깨달은 이상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태민은 모아두었던 돈을 투자해서 설비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리고 본인도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피칭을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 * *
[올 시즌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 이하준 선수가 인터뷰에서 “정태민 대표님의 도움이 컸다. 정태민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내 피칭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정태민 베이스볼 아카데미는 무엇이 특별한가?]
[한국 최고의 설비를 갖춘 정태민 베이스볼 아카데미, 미국도 부럽지 않다!]
[미국의 유명한 코치들도 연수를 오는 정태민 아카데미! 그곳을 파헤치다!]
태민의 선택은 정확했다.
업그레이드 된 설비와 태민 본인의 노력으로 정태민 아카데미는 금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구속을 늘려주는 아카데미란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선수들이 찾았다.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그 폭은 매우 넓었다.
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아카데미 출신 중에 메이저리그와 계약을 맺는 사례도 나왔다.
출신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를 언급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러한 사이클 덕분에 태민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가까운 일본의 코치들부터 미국의 코치들까지 한국으로 찾아와 교육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아카데미가 된 셈이다.
“대표님, 퇴근시간인데. 안 들어가세요?”
“어? 벌써 그렇게 됐나? 난 자료 좀 더 보고 갈테니. 다들 먼저 들어가요.”
“대표님, 어제도 사무실에서 주무셨잖아요. 오늘은 일찍 들어가셔야죠.”
“하하, 그래야지. 그런데 이번에 미국 학회에 보고된 새로운 논문이 있어서 이것만 보고 가도록 할게요. 다들 신경쓰지 말고 먼저 들어가요.”
“그럼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직원들이 하나 둘 사무실을 떠났다.
“우리 대표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국내 최고의 베이스볼 아카데미가 됐는데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시잖아요.”
“존경받을 만한 분이지. 저분 덕분에 국내 아카데미 사업이 한단계 발전했다고 볼 수 있어.”
“에이, 그건 너무 비약 아니에요?”
“간단히 생각해봐. 이 대리 같으면 경쟁업체가 미국에서 설비를 들여오고 매년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가는데. 생존하려면 당연히 우리도 발전해야 하지 않겠어?”
“그건...그렇죠.”
“같은 의미야. 대표님이 유의미한 실적을 내자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고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 시작했지.”
“한단계 발전시켰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네요.”
“그렇지.”
“그런데 우리 대표님 결혼 안 하시나요? 벌써 40대 후반이시잖아요.”
“매일 새벽까지 공부하고 연구하시는데. 연애를 어떻게 하겠냐? 결정사를 가서 만나도 좀처럼 대표님의 일과를 이해하지 못해서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고.”
“하긴...매일 새벽에 퇴근하시고 누구보다 일찍 나오시니까요. 솔직히 처음 왔을 때 눈치 보여서 퇴근도 제대로 못했다니까요.”
“하하, 그게 뭔지 나도 알지. 다들 한 번씩 경험하는 거야.”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대표.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 입장에선 곤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활을 5년 동안 지속하고 있었지만, 태민은 멈추지 않았다.
‘날 따르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공부해야 한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트레이닝을 받은 선수들이 잘 되는 모습에서 태민은 뿌듯함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이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오는 보람은 그를 움직이게 해주었다.
“미국에서 또 다른 논문이 발표됐군.”
무엇보다 그는 배운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매일 같이 새로운 가설과 그에 따른 연구, 논문등이 발표됐다.
덕분에 한해가 지날수록 새로운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
보람과 즐거움.
무언가에 몰두하기 위한 원동력으로는 충분한 것들이었다.
“후우...심오한 내용이군. 데드암 증상이 나타난 투수가 그것을 극복하고 강속구 투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크다라...”
하루종일 모니터를 봐서일까?
눈이 피로해진 태민은 의자에 몸을 기대, 두 손가락으로 코 윗부분을 눌렀다.
“부상 이후 복귀라...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에 올라온 하나의 토론.
그 내용은 태민에게도 깊게 다가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역시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당시 내가 약물치료가 아닌 수술을 택했다면 더 빨리 복귀할 수 있었을까?”
선발자원으로 뛰던 태민은 25살에 어깨통증을 느꼈다.
유망주였던 그는 곧바로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고 관절 와순파열이란 진단을 받았다.
치료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수술과 약물치료.
구단과 상의한 끝에 태민은 약물치료를 택했다.
젊은 나이기도 했고 복귀 역시 빠를 것이란 의사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약물치료는 온전히 그의 부상을 낫게 하지 못했다.
그것은 시발점이 되어 구속을 잃었고 내구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불펜으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다.
“뭐, 부상은 하나의 이유밖에 되지 못하지. 당시 나는 잘못된 투구폼으로 공을 던졌어. 덕분에 내 몸의 힘을 온전히 쓰지 못했던 거야.”
태민이 처음 야구를 시작한 것은 2000년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하지도 외국의 트레이닝 방법을 알기도 힘들었다.
프로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과거의 트레이닝법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해설만 보더라도 종속이 더 빠르다느니, 공이 떠오른다느니 하는 낭설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피칭을 배웠기에 온전히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다.
“만약 내가 제대로 된 피칭을 배우고 가진 전부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의 자신은 좋은 선수였다.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고 피칭에 대한 이해도 나쁘지 않았다.
뇌지컬쪽으로 생각해도 괜찮았다.
은퇴 이후 공부에 몰두해서 아카데미를 성공시킨 것만 보더라도 태민의 공부머리가 제법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피식 웃어버렸다.
“뭔 쓸데없는 생각이냐.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아이들을 더 가르치는 일이지. 과거를 후회하는 게 아닌데.”
너무 늦어서일까?
잡념이 많이 생기는 듯 했다.
태민은 이내 모니터를 끄고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들어가자.”
그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어...?”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았다.
현기증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다시 앉았다.
“너무 무리했나? 갑자기 왜 눈앞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점점 멀어져갔다.
“아...”
외마디 신음과 함께 그는 정신을 잃었다.
* * *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거울속에 있는 청년은 당황했다.
척 보더라도 20대 초중반.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태민은 이 청년을 잘 알고 있었다.
“왜 내가 과거로 돌아왔지?”
그건 분명 20대 중반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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