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범죄의 신

서장

2015.10.27 조회 28,349 추천 659


 신이 된 범죄자
 
 
 
 
 
 
 
  “어이구, 서태혁 폐하. 이런 누추한 곳으로 모셔서 송구스럽습니다.”
 
  태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개자식.
  항상 저런 식으로 부른다.
 
  그것은 교도소 안에서 수감자들을 부르는 은어였다.
 
  형기가 3년 미만인 이들은 ‘평민’ 10년 이상이면 ‘귀족’ 그리고 종신형을 받은 사람은 ‘왕’이다.
 
  물론 존경의 의미는 모기 눈곱만큼도 없다.
  경멸과 조소를 담아 부르는, 아주 모욕적인 별명.
 
  “그렇군요.”
 
  서태혁은 방 중앙에 있는 의자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교도관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몇 안 되는 수감자였다.
 
  “폐하에게 진상할 것은 없고. 제가 먹다 남긴 커피라도 드시겠습니까?”
 
  태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것을 단숨에 마셨다.
 
  “잘 마셨습니다.”
  “큿. 폐하. 여전히 여유로우시군요. 벌써 10년이지요?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
  “네네. 그 날이 왔네요. 일주일 앞입니다.”
 
  태혁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굳게 다문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지난 10년. 감정은 다 풍화된 줄 알았는데.
 
  “무죄주장은 날아가고. 변호사는 도망가고. 결국…….”
  “이렇게 되었지요.”
 
  교도관은 몇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뭡니까.”
  “마지막 날 밤에 드시고 싶은 메뉴를 적어 주십시오. 그리고 참관을 희망하는 분이 있으면 그것도 같이 적어주시면 됩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과 마지막 면회라는 뜻이다.
  태혁은 1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평생 했던 것보다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서류를 채워 나갔다.
 
  “호오. 김치찌개라. 조금 더 고급스러운 음식이라도 괜찮은데 말입니다.”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게다가 돼지고기를 넣지 말라니. 특이한 주문이군요. 설마 가난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오, 설마 정답입니까?”
  “…….”
  “하하.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바쁘실 겁니다. 30년 만에 사형제도가 부활하는 거다 보니 다들 미숙하지만 너그럽게 봐주십쇼.”
 
  태혁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억울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온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니.
 
  교도관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농을 걸어왔다.
 
  “아참. 제가 생각해 보았는데 말입니다. 종신형을 받은 범죄자는 범죄의 왕이지 않습니까? 그럼 사형당한 범죄자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마도. 신이겠지요. 하하! 일주일 후면 서태혁 폐하는 범죄의 신이 되시는 겁니다!”
 
  교도관이 나간 방 안에서 태혁은 한동안 포효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연예인들보다도 TV에 이름이 많이 나온 것 같았다.
 
  30년 만에 부활한 사형제도인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이 몰린 탓이었다.
  교도소 밖에서 인권단체들이 연일 시위를 벌였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태혁은 면회실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죽음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해졌다. 면회를 와달라고 요청한 것은 누나와 남동생 이었다. 벌써 일 년 가까지 만나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자신이 무죄라는 것을 끝까지 믿어준 남동생에게는 고맙다는 말부터 해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엄마 역할을 해 주었던 누님은 과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태혁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이미 테이블 위에 차려진 김치찌개가 식어 있었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태혁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얼굴 표정을 바꿨다.
 
  “…….”
 
  들어온 사람을 본 태혁은 할 말을 잃었다.
 
  “아이고, 폐하. 기다리던 분이 아니라. 참 죄송하군요.”
 
  익숙한 얼굴의 교도관이었다.
  그는 면회실 중앙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가 온 게 퍽이나 불편한 모양입니다.”
 
  태혁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가족 분들. 그러니까, 서태민 씨와 서하란 양이던가요? 두 분 모두 못 오게 되었답니다.”
  “그렇습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일까?
 
  마지막 순간 가족을 못 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명을 벗을 능력조차 없었던 못난 자신을 가족으로 여겨주어 고맙다고. 그 말 한마디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
  이것으로 된 거다.
  서태혁이란 남자는 애초에 없었다고 여겨 줘.
 
  그럼 나는 남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빌어주자.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교도관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지난 달에 폐하의 누님 되시는 서하란 씨가 자살했답니다.”
  “예?”
  “참 너무한 일이지요? 아니 그렇잖습니까. 가족 중에 살인자가 있는 겁니다. 매스컴에서는 매일같이 떠들어 대지. 가족이랍시고 기자들은 찾아오지.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모자이크 위치가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직장에 정체가 들킨 것이죠. 이런, 이런. 결국 잘렸다던데요. 게다가 빚도 꽤 있다고 하더군요. 결국 다단계에 빠져서 남아 있는 얼마 되지 않은 것까지 전부 잃었다지 뭡니까. 그러다가 결국.”
 
  켁켁!
 
  교도관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어째서 누님이!”
  “그럼 남은 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서태민 씨였죠? 참 똑똑한 분이었지요. 누구랑은 다르게 말입니다. 형을 구하겠다고 S대학 법대까지 나왔다지요? 그리고 무슨 증거를 찾는답시고 대기업이다 정치가다 뒤꽁무니를 열심히 쫒아 다니더니. 얼마 전부터 행방불명이랍니다. 무슨 자기가 탐정이라도 된 줄 알았나 봅니다. 주제를 알아야지요.”
  “…….”
  “뭐 드럼통 속에 콘크리트랑 같이 담겨서 서해 앞바다 바닥에라도 굴러다니고 있겠지요. 새로운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야 할 텐데요. 뭐 정확한 위치는 용왕님이나 알까요?”
 
  쾅!
 
  태혁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준비해 놓았던 김치찌개가 튀어 방안 전체가 엉망이 되었다.
 
  “거짓말 마라, 이 자식아! 완전 미친 거 아냐? 뭐? 누님이 다단계를 하다가 자살을 했어? 바보같이 착한 분이긴 하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태민이가 날 구하려다가 실종되었어? 장난하지 마! 죽여 버린다!”
 
  교도관은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서태혁 폐하. 뭐 죽인다고요? 평생 개미 한 마리 죽여 본 적 없는 분께서?”
 
  정답이었다.
  순간 태혁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그저 10년 동안 본 교도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저런 교도관은 이곳에 없다. 애초에 교도관이 저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왜 교도관이라고 생각한 거지?
 
  “……당신. 교도관이 아니군.”
  “그럼. 과연 저는 무엇일까요?”
 
  교도관은 빙긋 웃었다.
  남자의 얼굴을 본 태혁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눈알이 있어야 할 공간이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입은 귀까지 찢어져서 웃을 때마다 시뻘건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무언가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주 군침돌만한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만. 우선 들어보시겠습니까?”

작가의 말

새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34)

장수거북    
오오 읽어보겠습니다
2015.10.31 22:09
강성곤    
교도관이 저래?? 라고 껄끄럽다 싶더니 역시 뭔가 있었군요...
2015.11.04 19:49
세우깡    
비밀글입니다.
2015.11.06 07:11
럽쮸    
악마냐!!!!! 다크다크
2015.11.08 23:07
백락白樂    
악마와 거래라..
2015.11.10 11:06
마녀의솥    
잘 읽었습니다.
2015.11.11 23:42
무가지보    
잘 보고 갑니다
2015.11.12 09:58
진리의근원    
3년 이상 10년 미만은요?
2015.11.13 11:53
orpin    
왕에게 폐하라고 하는게 약간 어색한 감이 없지않아 있는 것 같아요
2015.11.14 20:52
남도풍운아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2015.11.17 15:47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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