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나의 장래희망은 복권방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지지리도 못사는 우리 동네도 복권만큼은 주구장창 잘만 팔린다.
단순히 헛된 꿈을 팔고 싶은 것이 아니다.
복권방에는 아주 현실적인 메리트가 있다.
사실 복권방은 아무나 개업하지 못하는 것이다.
복권방을 열고 싶으면 장애인이거나, 국가유공자거나, 기초생활수급자여야 한다.
거기서 살인적인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면 복권방을 열 수 있다.
나는 장애인도 국가유공자도 아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다.
복권 판매점을 개업하는데에 있어 엄청나게 유리하다.
보통은 신청 자체를 못 받으니까.
문제는 내가 그러한 꿈을 갖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걸 발표해버렸다는 것이다.
덕분에 중학교 때까지 내 별명은 쭉 '복권 기생수'였다.
고등학교는 안 가봐서 잘 모르겠다.
가려고 하면 못 갈 것은 없었는데,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똥통고등학교에 가봐서 뭘 하겠는가.
'둘이 들어가서 셋이 나오는 고등학교'
어느 지역에나 하나쯤 있는 최악의 고등학교가 바로 우리 동네에 있다.
만 16세.
원래라면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
나는 오늘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금도 나의 장래희망은 복권 판매점이다.
이대로라면 성인이 되자마자 수급자에서 탈락할 확률이 높긴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아르바이트를 해도 되는 거냐고?
미성년자는 해도 된다.
나같은 미성년자 기생수는 거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해주니까.
애초에 아르바이트를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제대로 돈을 벌기도 힘들다.
청소년 아르바이트는 여러가지 제한사항이 많다.
때마침 출근한 점장님이 질리지도 않고 물었다.
"대성아, 너 진짜 부모님 동의서 못 가져와?"
청소년을 고용하려면 이것저것 신경쓰이는 것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질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저희 아빠 집나가신지 몇 년 됐다니까요."
"아니, 부모님 말고 친척이라든가, 후견인 없어?"
"없어요 없어."
이게 진짜 골때리는 거다.
아예 죽어버렸다면 신경 끄고 편하게 살텐데, 집 나간 주제에 아주 가끔 한 번씩 돌아오니까.
마지막으로 돌아온지 2년은 됐던가?
그래도 복지센터 직원이 말이 좀 통해서 다행이지.
잘못하면 생계급여도 못 받았을 것이다.
나는 얼른 폐기상품을 챙겨서 퇴근했다.
이래서 편의점 알바가 최고다.
폐기상품은 먹으면 안 된다는 소리도 있지만, 그 폐기를 내가 처리하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성인이 되어버리면 이짓도 끝난다.
재산이 높게 잡히면 가차없이 기초수급 대상에서 탈락하겠지.
그러니까 그 전에 최대한 모아서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이 내 목표다.
겸사겸사 복권방도 열고.
고향을 떠나려는 이유는 한둘이 아닌데...
그 중 가장 큰 이유 하나가 저 멀리서 언덕길을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양아치 패거리.
똥통고에서도 알아주는 일진들이라는데, 진짜 위험한 놈들이다.
원체 똥통이다보니 자칭 일진이란 놈들은 쎄고 쎘지만...
저놈들은 다르다.
깡패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를 따라하고, 어른들 몰래 술마시는 수준이 아니다.
경찰서는 물론이고 법원에도 수시로 들락날락할 정도.
요즘은 특히나 더 꺼림칙한데...
곧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서 형량 할인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마지막 한 탕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놈들 중 하나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야, 기생수! 잠깐 와봐."
"... 뭐예요?"
그냥 무시하고 싶지만, 진짜 막 나가는 놈들이라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듣기로는 휴가나온 군인들까지 패고 다녔단다.
일진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놈이 나를 붙잡곤 말했다.
"너희 집에 뭐 보험 같은 거 들어놓은 거 없냐?"
"보험이요? 그런 거 없는데요."
집 나간 아버지가 보험 따위를 들어놓았을 리가 있나.
만약 그 정도 돈이 있었다면 복지센터에서 진작 알아보지 않았을까?
옆에 있던 일진이 코웃음을 쳤다.
"기생수한테 그런 게 있겠냐?"
"됐고, 너 보험으로 돈 좀 벌어볼 생각 없냐?"
"돈이요?"
이놈들이 내게 멀쩡한 돈벌이를 제안할 리가 없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진짜로 안전하고 좋은 돈벌이라면 자기들끼리 하겠지.
놈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선심쓰듯 말했다.
"우리집에 보험들어놓은 게 좀 많거든? 네가 좀 도와주면, 보험금 타서 너한테도 좀 줄게."
"보험이요?"
똥통 고등학교의 마지막 전설을 장식할 범죄는 보험사기였나보다.
놈은 아주 기발한 생각이라도 떠올린 것처럼 신이 나서 설명했다.
"네가 몰래 우리집에 불만 좀 질러주면 돼. 보험금이 7억은 나올테니까, 너도 한 2억 받을 수 있어."
진짜로 기발하긴 했다.
보통은 이딴 생각 안 할테니까.
"보, 보험금이 7억이나 나온다고요?"
"생명보험이랑 화재보험이랑 이것저것 들어놓은 게 많거든."
"너 그거 진짜로 하게?"
"애비새끼 죽여버리고 돈 벌어서 이 동네 뜰거야."
다른 일진들이 낄낄거리는 것과 별개로 본인은 진지해보였다.
나는 진짜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의 멍청함은 진짜다.
저런 황당한 계획만 가지고도 충분히 불을 지를 수 있다.
"그, 그런 걸 왜 저한테 시켜요?"
"병신아, 평소에 친하던 놈들한테 시키면 금방 들킬 거 아니야. 너 그냥 불지르고 돈받아서 다른 동네로 튀어버려."
"이 새끼 오늘 존나 진지한데?"
"닥치고. 하는 거다. 알겠지?"
"시... 싫어요."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방화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는 아니다.
그러자 놈의 눈썹이 무섭게 휘어졌다.
"너 이 새끼, 이 동네에서 내가 시키는대로 안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됐고, 며칠 뒤에 부를테니까 튀어나와. 늦거나 도망치면 뒤진다."
그놈들은 진짜로 그렇게 말하곤 가버렸다.
나도 아직 형량 할인 기간이지만 범죄에 어울리라니, 말도 안 된다.
순간, 경찰을 찾아가볼까 싶었지만...
어차피 증거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내 경험상, 경찰들은 내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됐다.
나는 주로 쫓기는 쪽이었으니까.
어릴 적에 과자나 라면같은 걸 자주 훔쳤던 탓이다.
'어이없게 찍혀버렸네... 좆된 것 같은데.'
불만을 잔뜩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고 낡아빠진 단독주택.
이래봬도 보육원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준 곳이다.
그래도 나는 몸 누일 집이란 게 있으니까.
골치아픈 일이 있었지만, 얼른 씻은 다음 배를 채우곤 잤다.
사실 편의점 알바만 하는 게 아니라서 빨리 쉬어야 한다.
피로에 힘입어서 어렵지 않게 잠든지 얼마나 됐을까.
나는 독한 냄새를 맡으며 눈을 부릅 떴다.
분명 푹 자고있었는데, 생존본능이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뭐, 뭐야?!"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방을 나가자 매캐한 연기가 보였다.
집에 불이 났다.
설마 아까 그놈들이 불을 지른 건가?
미친 듯 치솟는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현관으로 급히 달려갔다.
"콜록, 콜록!"
쿵, 쿠웅!
그러나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이 잠긴 것이 아니라, 뭔가 크고 무거운 것이 문 밖을 막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평소엔 완전히 잊고 지냈던 뒷문의 존재를 떠올렸다.
창문은 쓸모도 없는 방범창 때문에 안 된다.
"쿨럭! 크흡..."
눈물이 줄줄 나오는 가운데, 숨을 참으며 겨우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방차 같은 건 아직 보이지도 않았다.
애초에 이런 곳까지 와주긴 할까?
나는 현관이 오래된 신발장과 선반으로 막혀있는 것을 보곤 확신했다.
이건 그놈들 짓이다.
내가 내빼지 말라고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소문보다 훨씬 미친놈들이었다.
겨우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나는 미친놈처럼 달렸다.
그놈들이 어디에 있을지는 잘 알고 있다.
보나마나 평소의 아지트겠지.
이미 망해버린 상가 지하의 술집을 마음대로 쓰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기침을 해대며 겨우 아지트 근처에 도착하자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놈들이 또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기가 차서 굳어있자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그 새끼 뒤져버린 거 아니야?"
"뒤졌으면 잘 됐지. 느림보 새끼면 불 지르고 제대로 튀지도 못할텐데."
"무슨 면접이야?"
순간, 누군가 쓰고 버린 라이터가 내 눈에 들어왔다.
계시가 있다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눈이 돌아가버린 나는 그것을 주워들곤 열린 문 틈 사이로 불을 붙였다.
놈들은 웃고 떠드느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화르륵!
불길이 너무 빠르게 커져갔다.
먼지와 잡동사니 투성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르다.
설마 이놈들, 불 지르는데에 썼던 기름 따위를 그대로 가져온 건가?
이제보니 묘하게 기름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미친...'
"쿨럭, 씨발 이거 뭐야?"
"부... 불이야?"
놈들이 놀라는 소리를 듣곤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놈들이 나오면 나를 아주 죽여버릴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근처의 가구를 옮겨서 문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쓰레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콜록! 야, 나가!"
놈들이 뒤늦게 아우성을 쳐보지만...
닫힌 문 너머에서도 연기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다.
나는 몸을 낮춘 채 계속해서 문을 막았다.
겨우 계단을 올라온 놈들이 문을 박찬다.
쾅, 쾅!
"미친, 왜 안 열려?"
"쿨럭! 쿠엑..."
문 너머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걸 듣고도 필사적으로 문을 막았다.
저놈들이 무사히 나오면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이다.
안에서 새어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씨발, 비켜!"
콰앙!
덩치 좋은 한 놈이 기어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까 내게 그 황당한 제안을 했던 놈이다.
문을 부수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놈이 나를 보곤 악을 질렀다.
"기생수 씹새끼!"
다행히 놈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나는 부러진 의자다리로 놈의 머리를 때린 다음, 다시 지하로 밀어넣었다.
그리곤 문을 닫았다.
안에서는 더 이상 신음이나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20년형을 선고 받았다.
내 억울함을 열심히 주장해봤는데 그 날 따라 판사님 기분이 별로 안 좋았던 것 같다.
변호사도 영 의욕이 없어보였고.
당연하지만 소년원이 아니라 소년교도소로 갔다.
소년교도소.
재활용 불능 판정을 받은 인간 쓰레기 미성년 범죄자들과 나처럼 억울한 극소수의 사람들이 가게 되는 곳이다.
다행히 소년교도소에서의 생활은 아주 나쁘진 않았다.
수용자들이야 죄다 인간 쓰레기들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안에서 서로 싸우면 형기가 늘어나는데...
나는 이미 20년형을 받아버려서 더 이상 물 불 가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뒤가 없는 놈들을 건드려봤자 본인만 손해다.
그렇게 교도소 안에서 1년 반 정도 지났을까.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소년교도소는 명색이 교화시설이기 때문에, 학교와 비슷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교도관이 수용자를 따로 불러내서 몇 마디 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유대성. 지난번 검사에서 헌터 각성자로 확인됐다. 지금부터 다른 곳으로 이송할 거다."
"... 네? 각성자요?"
"그래. 한국의 16번째 각성자라던데. 준비해서 나와라."
확실히 성인이 되기 직전에 무슨 검사를 하긴 했는데...
내가 각성자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한국 각성자는 원래 5명 아니었어요? 왜 제가 16번째죠?"
"글쎄... 아무튼 몸 조심해라."
나는 말을 흐리는 교도관을 보곤 대충 눈치를 잡았다.
다른 10명은 다 죽었구나.
어쩌면 20년 채우기도 전에 죽는 거 아닌가?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순순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강간범과 살인범, 마약상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질린 참이다.
어차피 여기서 더 나빠질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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