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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룡쟁천 1화

2015.11.02 조회 6,419 추천 150


 제1장 팔룡전설
 
 
 동정호(洞庭湖)의 최북단에 위치한 대표적인 섬 군산(君山)과 꼭 닮았다 하여 소(小)군산이라 불리는 작은 섬.
 지대가 워낙 낮아 물결이 조금만 거세도 섬 전체가 물에 잠기기 일쑤라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 섬에 오늘따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했다.
 그래 봤자 다섯뿐이지만 한 달 내내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매화꽃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무복을 입은 이들이 두 명,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 무복의 세 사람. 서로 떨어져 경계를 하는 것이 같은 일행은 아닌 것 같았다.
 “너무 긴장하지 말거라. 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겁기는 하나 실패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자색 무복 차림의 노인이 손자뻘로 보이는 청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연신 심호흡을 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는 청년의 얼굴엔 긴장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검은색 무복의 노인이 자신의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청년에게 말했다.
 “오늘을 위해 지금껏 어떤 고생을 해왔는지를 생각해라. 약해 빠진 정신 자세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네 어깨에 본 문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예, 대사부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한 노인이 버럭 화를 냈다.
 “최선? 최선 따위를 다해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죽을힘을 다해라. 이 자리에서 칼을 물고 죽을 각오로 덤비란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예, 이사부님. 목숨을 걸고 해내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 자세다.”
 이사부라 불린 노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색 무복을 입은 노인을 바라봤다.
 “흥, 벌써부터 그런 패배감에 사로잡힌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화산파(華山派)는 이번에도 힘들 것 같군.”
 “그리 말씀하는 것을 보니 흑월문(黑月門)은 무척이나 자신이 있는 것 같소?”
 자색노인이 약간은 비꼬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
 “물론이다. 지난 십오 년간 오늘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대사부라 불린 자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화산일검(華山一劍)께서 사제의 무례한 말투를 이해해 주시오. 오늘 일 때문에 신경이 많이 곤두서 있어 그렇소.”
 화산일검이라 불린 노인이 괘념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은 다르나 처한 입장은 같은 터. 어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게다가 흑월문의 문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찌 마음에 담아두겠소이까.”
 바로 그때, 저 멀리 동정호에 짙게 깔린 안개를 뚫고 나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사조님!”
 자색 무복의 청년이 호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고, 그들은 안개를 헤치며 점점 다가오는 나룻배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노를 젓는 사공이 없는데도 미끄러지듯 수면을 헤치며 다가오는 배 위엔 깡마른 노인이 오연한 자세로 서 있었다.
 가느다란 눈매는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툭 튀어나온 광대뼈, 하늘 높이 치솟은 콧날, 얄팍한 입술을 지녔다.
 전체적으로 꽤나 깡마른 체구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노인은 무척이나 키가 커 보였다.
 나룻배가 소군산의 모래사장에 이르러 움직임을 멈추자 노인이 커다란 자루 하나를 들쳐 메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을 쓰윽 쳐다보더니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놀라운 것은 그가 지나가는 곳에 발자국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 주변 바닥이 모두 고운 모래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화산일검이 노인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오냐.”
 간단히 대꾸한 노인이 들고 온 주머니를 땅에 휙 던졌다. 화산일검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기겁할 일이었다.
 화산일검 이진한(李眞翰).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정파무림의 최고수를 일컫는 십정(十正)의 일인.
 한데 노인은 그런 이진한을 지나가는 개 보듯 쳐다보며 무시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노인의 무례한 태도에 이진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니, 반응을 보이긴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놈들은 뭐냐?”
 노인의 시선이 흑색 무복의 노인들에게 향했다.
 깜짝 놀란 두 노인이 황급히 허리를 꺾으며 예를 차렸다.
 “흐, 흑월문의 흑월쌍성(黑月雙星)이 노야를 뵙습니다.”
 “흥! 성(星:별)은 무슨, 성성(猩猩:오랑우탄)이 같은 놈들.”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던진 노인의 말에 자칭 흑월쌍성이라 부른 흑월쌍괴(黑月雙怪)의 안색이 똥 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무림칠괴(武林七怪)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광동(廣東)의 패자(覇者)임을 자청하고 있는 흑월문의 공동 문주 엽립(葉笠)과 잠격(岑擊)은 감히 반발을 하지 못했다.
 그저 치미는 화를 죽어라 참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오시(午時:정오)가 다 되었는데 네 녀석들뿐이냐?”
 노인이 중천에 뜬 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진한이 공손히 대답했다.
 “쯧쯧, 한심한 놈들. 구파일방은 뭐고 사도천(邪道天)은 뭐란 말이더냐? 쥐꼬리만 한 자존심도 지니지 못한 놈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구파일방과 그들에 맞서 연합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사도천을 싸잡아 비난한 노인이 신경질적으로 자루를 열었다.
 “어쨌든 시작해 보자꾸나. 화산파면… 작대기던가?”
 “그렇습니다.”
 이진한이 조심스레 대답하는 사이 자루를 뒤지던 노인이 목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매벽… 검(梅霹劍).”
 검을 보는 이진한의 얼굴이 회한에 잠겼다.
 그 옛날, 현재 화산파의 무공을 완성한 화산검선(華山劍仙)이 연화봉(蓮花峰)에 내리친 벼락에 불타 죽은 매화나무를 백 일 동안 정성스레 깎아서 하나의 목검을 만들었는데, 그는 목검 안에 자신이 깨우친 최후의 심득을 남겼다.
 이후, 그 목검은 화산파 최후의 무공을 간직한 채 화산파 장문인을 상징하는 보물로 이어져 내려왔다.
 한데 그 화산파의 보물 매벽검이 바로 노인의 자루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무런 무늬도 특징도 없이 그저 거무튀튀한 색을 지닌 목검에 불과했지만 이진한과 화산파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물건이었다.
 “성성이들이 원하는 물건이면…….”
 노인이 흑월쌍괴를 힐끗거리며 자루를 뒤졌다. 그리고 초승달 모양을 한 월륜(月侖)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루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예사 물건이 아닌 듯싶었다.
 “흑… 월륜.”
 월륜을 바라보는 흑월쌍괴의 표정 또한 매벽검을 바라보는 이진한과 다르지 않았다.
 “자, 그럼 누구부터 할 테냐?”
 매벽검과 흑월륜을 아무렇게나 휙 던진 노인이 손뼉을 치며 물었다.
 “본 문에서 양보를 하겠소.”
 엽립이 선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조금이라도 힘이 빠지기를 원하는 모양이군. 그러나…….’
 애당초 그런 시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진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화산파에서 먼저 시작하겠소. 도선아.”
 “예, 사조님.”
 양도선(陽導善)이 앞으로 나섰다.
 “아까 말했듯이 긴장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거라. 그것이면 된 것이야.”
 “예, 사조님.”
 물론 최선만 다할 생각은 없었다. 반드시 승리를 거둬 화산파의 보물 매벽검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양도선이라 합니다.”
 노인에게 다가간 양도선이 검을 가슴께로 끌어당기며 예를 차렸다.
 약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진중함과 절도있는 자세에 노인도 조금은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호~ 제법 기개가 있구나. 자, 와보거라.”
 노인이 뒷짐을 지며 말했다. 순간, 양도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의 안색이 확 변하는 것을 본 이진한이 황급히 전음을 날렸다.
 [그에겐 그만한 자격이 있다. 절대 흥분해선 안 된다.]
 사조의 너무도 다급한 음성에서 양도선은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소군산에 도착했을 즈음, 십정의 일원이자 전 무림을 따져서도 그다지 많은 상대를 찾아볼 수 없는 사조가 그 옛날 눈앞의 노인에게 단 일 초식도 버티지 못하고 패한 이야기를 해주며 당부한 말을 상기한 것이었다.
 양도선은 그 즉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드럽게 검을 움직였다.
 우우웅!
 검풍이 일었다.
 검은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노인의 옷과 수염이 검풍으로 인해 일렁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검은 팔방의 방위를 완벽하게 차단하면서 노인을 압박해 들어갔다.
 눈으로 따라잡기가 힘들 정도로 빠르면서도 무시무시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였다.
 노인이 양도선의 공격을 보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산화무영검(散花無影劍)? 어린 나이에 제법이로구나. 꽤나 그럴듯해.”
 그러나 흘러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노인의 얼굴엔 여유가 넘쳐흘렀다.
 스윽.
 노인의 왼발이 한 걸음 뒤로 빠지며 오른발을 축으로 회전을 했다.
 목덜미에서 살짝 빗나간 검영이 곧바로 방향을 틀며 따라붙자 노인의 무릎이 급격히 꺾어지며 몸이 땅에 닿을 정도로 뉘어졌다.
 검영이 코와 한 치의 차이를 두고 지나가자 튕기듯 몸을 세운 노인이 입술을 꽉 깨물고 재차 공격을 준비하는 양도선에게 웃음을 흘렸다.
 “빠르고 변화가 심한 것이 좋기는 하다만 정확도가 부족해.”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는 노인은 한 점 흐트러짐도 없었다.
 “이번엔 다를 것입니다. 타핫!”
 양도선의 몸이 힘찬 기합성과 함께 앞으로 질주했다.
 단 두 걸음으로 오 장이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힌 그가 검을 찔렀다. 순간, 검끝이 기묘하게 흔들리며 다섯 개의 검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화사한 매화와 닮았다 하여 매화만개(梅花滿開)라 불리는, 화산이 자랑하는 매화십이검(梅花十二劍)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이후, 양도선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허공엔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매화가 눈부시게 피어났다.
 화려한 꽃에 가시가 숨어 있듯 천지사방을 뒤덮는 매화 속에는 노인을 향한 무시무시한 기운이 숨어 있었고,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노인은 추임새와 같은 기합을 넣으며 이리저리 몸을 틀고 옷소매를 슬쩍 휘두르면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매화를 밀어냈다.
 “하아! 하아!”
 양도선이 어깨를 들썩이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경악에 찬 눈으로 노인을 응시했다.
 매화만개로 시작하여 매화빙설(梅花氷雪)로 끝나는 매화십이검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다시 역으로 펼쳐 보았지만 노인의 옷자락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옷자락은커녕 두 발 모두를 떼게 하지도 못했다.
 노인은 단지 오른쪽 발을 축으로 이리저리 몸을 틀고 흔들며 매화십이검을 모조리 피해냈다.
 “쯧쯧,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잠격이 혀를 차며 비웃었다.
 이진한은 이미 그와 같은 결과를 예상했기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힘을 내거라.’
 이진한은 마음속으로나마 간절히 빌었다.
 
 많이도 바라지 않는다. 일 초, 단 일 초식만 버텨보거라.
 
 그 옛날, 매벽검을 돌려주는 것으로 노인이 내건 조건이 뇌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오십 년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십 년마다 열린 대결에서 그의 말을 충족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화산파만이 아니라 그와 정말 말도 안 되는 내기를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모든 문파가 그랬지만.
 “자, 이제 네 실력은 대충 본 것 같으니 이번엔 어디 내 공격을 한번 받아보거라.”
 노인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갈댓잎 하나를 꺾었다. 그리곤 양도선의 단전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갈댓잎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게다가 동작도 빠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공격이라고 할 것도 없는 너무도 단순한 동작이었다.

댓글(3)

학교    
81+++
2015.11.15 17:58
FC서울사랑    
이거 성운을 먹는자 리메이크인가요?
2015.11.17 19:24
한강물    
옛날에 봤지만 설정이 좋아서 초반에는 재밌었지만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안타까운 소설...
2017.06.0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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