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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자검 1화 - 서장

2015.11.04 조회 2,099 추천 54


 철자검(鐵子劍) 제1권 - 손가장의 소가주
 
 서장
 
 광마살귀(狂魔殺鬼).
 난, 내 별호처럼 미치지 않았다. 살인? 살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나를 광마살귀라고 온 천하가 떠들고 있다. 난 그 연유를 모른다. 난 단지 내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죽였을 뿐이다.
 그것은 미친 짓도 아니고, 살인도 아니다.
 내 주관이 뚜렷한 것뿐이요, 그저 짐승을 죽였을 뿐이다. 난 떳떳하다. 만약에 말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면 난, 큭큭큭……, 죽일 것이다.
 아주 잔인하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날 완전히 미친놈으로 대하는 그놈!
 왜 그놈만큼은…… 죽이지 못하는 걸까? 정말 알 수가 없다.
 정말!
 혹시 저승에 가면 알 수 있을까? 젠장! 나중에 저승사자 옷자락이라도 끄집어서 알아봐야겠다.
 
 『광마살귀 일기장- 첫 장이면서도 끝장.』
 
 
 제1장 낮 귀신
 
 누런 마삼(麻蔘) 황의(黃衣)를 걸친 10세 정도의 아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제법 반듯하여 장성하면 꽤 많은 여인들에게 추파를 받을 만한 얼굴이다. 특히 아이의 눈망울은 왠지 아이답지 않게 깊어, 노숙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키만 한 싸리비를 들고 있는 아이의 손은 여기저기 불어 터져, 아이의 삶이 고달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깊은 눈동자를 멍하게 흩트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작열하는 태양에 뜨겁게 달아오른 하늘.
 강광(强光)의 뜨거운 일광(日光)에 푸르기보다는 황색에 가까워 보이는 하늘이었다.
 아이는 하늘을 향해 나직이 소리를 내었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저 하늘, 태양 그리고 나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음.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단 말이야.”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는 아이.
 10살짜리 아이의 사색치곤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사색이 버릇이 된 지도 벌써 3년이나 지나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없이 석가장(䄷家莊)의 장원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사색을 방해하는 소리가 순간 울려 퍼졌다.
 “유성아!”
 “…….”
 유성.
 아이의 이름이었다.
 유성은 가래가 섞인 껄껄한 소리로 자신을 부르고 있건만, 그저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야! 이놈아!”
 “아! 노가 할아버지!”
 “아이고, 허리야! 넌 도대체 허구한 날 정신을 어디가 빼고 있는 겨! 어린놈이……. 쯧쯧!”
 “죄, 죄송해요, 할아버지. 그런데 왜 불렀어요?”
 “빗자루 이리 주고 얼릉 나리께 가 봐라. 지금 나리께서 널 찾으신다.”
 “나리가 저를요? 왜요?”
 “나도 몰라! 에효. 허리야.”
 유성은 여기 석가장(䄷家莊) 최고의 상전, 장주가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에 다소 의문이 들었지만, 지엄하신 장주의 명이니 싸리비를 늙은이에게 넘겨주고는 짧은 다리를 재빨리 놀렸다.
 넘어질 듯 뛰어가는 유성.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노가라는 늙은이는 고개를 슬며시 흔들었다.
 “이궁. 저놈은 다 좋은데 뭐가 그렇게 생각이 많은지. 쯧쯧. 아이고, 허리야…….”
 
 석기수(䄷奇秀)는 가쁜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성을 냉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유성의 손으로 향하자, 미간에 짙은 주름을 생겼지만 순간 다시 펴졌다.
 “저……어. 무슨 일이신지, 나리?”
 유성은 장주의 부름에 만사 제쳐 놓고 달려왔지만 냉랭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그러나 유성의 물음에도 마냥 침묵만을 지키는 석기수는 유성을 냉랭하게 내려다보기만 할 뿐 좀처럼 입이 열지 않았다.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자, 유성은 숙였던 머리를 살며시 올렸다. 순간 석기수의 눈과 마주치자 재빨리 머리를 숙였다. 왜 자신을 불렀냐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곧 유성의 행동에 입을 여는 석기수였다.
 “성이는 지금 손가장의 장원에 다녀와야겠다.”
 “네? 손 나리의 장원에요?”
 드디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게 된 유성이었다. 그러나 석기수의 말에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손 장주의 장원(莊園). 그곳은 240리나 되는 거리였다.
 “저……어, 혼자서 말입니까? 나리?”
 “그래! 내 이것을 줄 터이니, 손 장주님께 직접 전해 드려라.”
 유성의 반문에 응한 석기수는 미리 준비한 조그마한 보따리를 내놓았다.
 그것을 건네받은 유성은 왜 자신에게 이런 심부름을 시키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정도의 거리를 왕래하는 것은 장성한 하인들의 몫일진대, 굳이 자신을 시키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내심 불만스러운 감정도 나타났다. 하지만 지엄하신 나리의 명이니 감히 내색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라.”
 또 다른 물건을 내미는 석기수였다.
 유성은 그것을 받자 곧 돈주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 길이니, 노잣돈으로 써라. 그리고 네가 들고 있는 보따리는 행여나 풀어 보아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네, 나리.”
 “지금 당장 길을 나서라.”
 “지, 지금 말입니까, 나리?”
 “그래.”
 석기수의 당부와 함께 당장 길을 나서라는 단호한 명에 유성은 그지없이 난감했다. 먼 길을 떠나는 마당에 아무런 준비 없이 가라니. 오늘따라 석기수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길가에 버리진 자신을 주워, 이날까지 호의호식(好衣好食)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인간답게 살게 해 준 은인, 석기수.
 다소 차가운 어투로 대하는 그였지만, 그의 눈빛과 마음은 늘 따뜻했다.
 유성은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석기수를 상전으로 느끼기도 하고 어떨 땐 아버지처럼 느껴졌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저 차가운 눈빛.
 유성은 순간 슬픔이란 감정이 치솟아 올랐지만,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석기수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리.”
 “…….”
 인사를 올리는 유성을 무시하고 내실 안으로 냉정히 몸을 돌려 버리는 석기수였다.
 유성은 그의 행동에 어깨를 늘어뜨리며 곧 석가장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무언가 모르게 불안한 유성. 심부름이 아닌 내쫓기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확실히 이것은 심부름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유성은 곧 그 느낌을 지우며 두 발을 놀렸다.
 석기수는 내실의 문에 몸을 가리곤, 축 처진 걸음으로 문밖을 향하는 유성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유성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물기가 비치며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잘…… 가라, 유성아!’
 
 @
 
 중복의 강렬한 일광(日光) 속에 비지땀을 흘리며 축축한 마삼을 걸치고 있는 유성은 갖은 인상을 쓰며 험한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마냥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날씨에 이런 비탈길을 오른다는 것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헉! 헉! 주, 죽겠다. 하필이면 내가 이런 심부름을 할 게 뭐야?”
 길을 나선 지 6일째. 유성은 석기수의 눈빛을 이미 잊은 상태이지만, 이놈의 날씨로 인해 완전히 죽을 맛이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폐부를 헤집고 다니는 열과 위아래로 뿜어 대는 열기에 완전히 녹초가 돼 혀까지 길게 내밀고 있었고 더불어 이처럼 만들게 한 석기수에게 내심 불만이 더 커져 갔다.
 수많은 하인들 중에 하필이면 자신을 지목한 장주이니 말이다.
 “헉! 헉! 안…… 되겠다. 저기서 좀 쉬어야지. 이러다…… 헉! 헉! 더위 먹겠다.”
 비탈길을 다 오른 유성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더위에,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마침 운이 좋은 것인지 약 5장 정도의 비탈길 아래, 일광을 피할 수 있는 한 그루 노송(老松)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원한 그늘이 져 있는 노송.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시니 유성은 재빨리 그곳으로 향했다.
 -털썩!
 “휴-! 이제 좀 살겠다!”
 나무 아래 엉덩이를 깔며, 옷깃으로 땀을 훔친 유성이 그 부위를 짜 내자 물줄기가 줄줄 떨어졌다. 지금의 무더위가 가히 어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휴……우. 정말 날씨가 장난이 아니네.”
 손부채질로 잠시 더위를 쫓으며 유성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바라봤다.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순간순간 왜곡돼 보이는 길.
 여기 그늘에서 벗어나 또다시 저 길을 가야 하는 유성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아직도 저런 길이 120리나 남았으니 말이다.
 그런 막막한 유성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도중 약 10장 정도 떨어진 길 위에서 한 인물을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정말 이상하게 생겼네.”
 땡볕 아래, 지렁이만큼이나 느릿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인물. 유성의 말대로 정말 특이하고도 이상한 안형(顔形)을 갖춘 인물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백발, 그 속에 비치는 얼굴은 20대 초반 정도로 남자 같으면서 여자 같은 얼굴이었다. 또한 이 무더운 날씨 속에 두터운 붉은 장삼까지 입고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리고 있으니 정말 특이하고도 이상한 인물이었다.
 유성은 그 인물을 봐라보다 곧 시선을 위쪽으로 향했다. 그 인물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더한 더위가 느껴지니 그렇게 행한 것이었다.
 “휴! 더워라. 안 되겠다. 물이나 마셔야지.”
 갈증을 느낀 유성은 물이 든 죽통을 꺼냈다. 얼마 남지 않아서 아끼고 아낀 물이지만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갈증이 느껴지니, 곧 죽통 뚜껑을 열었다. 그러곤 죽통 입구에 입을 대는 찰나.
 “얘야! 나도 물 좀 다오!”
 “컥!”
 순간 사레가 들려 버린 유성이었다. 방금 전만 해도 10장 밖에 있던 특이한 인물이 죽통을 꺼내 목을 축이는 순간, 귀신같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건네고 있으니 말이다.
 “물! 좀 다오. 응?”
 “귀, 귀신, 귀신이다!”
 -털렁! 벌떡!
 죽통을 떨어뜨리며, 튕겨나듯이 일어선 유성은 순간 혼백이 날아갈 뻔했다. 아니, 지금도 날아가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인물. 유성에게는 사람이 아닌 틀림없는 귀신이었다.
 “이런, 물을 다 쏟았군. 쩝쩝! 아까워라.”
 물을 다 쏟아 낸 죽통만 보던 귀신은 아까운 표정을 지으며 허옇게 질린 유성에게로 눈을 돌렸다.
 “너! 왜 그래? 꼭 귀신을 본 것같이 말이야?”
 “귀, 귀, 귀신.”
 “응? 귀신? 난 안 보이는데? 너 어디 아프냐?”
 의아한 눈동자를 내비치며 반문하고 있는 귀신의 모습.
 유성은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곤 그 인물을 세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귀신은 아닌 것 같았다. 발도 있고……, 더군다나 이렇게 벌건 대낮에 귀신이 돌아다닐 수 없는 일.
 유성은 곧 혼백을 제자리로 돌리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아, 아저씨, 아니, 아씨께는 정말 귀신이 아니지요?”
 “뭐, 뭐? 아저씨? 아씨?”
 “왜, 왜요?”
 유성의 반문에, 인상을 가득 찡그린 이 특이한 인물은 순간 끌끌한 소리를 토해 냈다.
 “이놈이! 무어? 아저씨? 아씨? 장장 100살에 가까운 이 노부에게 그런 말을 해! 너 죽을래?”
 “와-아! 거짓말이 대단하다! 아저씨 아니, 아씨는.”
 “컥! 이눔이 그래도!”
 광마살귀(狂魔殺鬼), 설귀천(楔貴川)은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웠다.
 안 그래도 나이 먹어 꼴딱꼴딱 숨넘어갈 때가 다 돼 가는 마당에 어린 녀석이 놀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약을 올리는 아이였다.
 “어떻게 그런 얼굴이 100살이에요?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나는 아씨 얼굴은 내가 본 여자 중에 제일 곱게 보이는데요. 또 그래, 밤골 내에서 제일 곱다는 모옥 누나보다 더 예쁘고 젊어 보이는데 무슨 100살이에요! 물론……, 목소리는 아니지만.”
 “크으으…….”
 설귀천은 끝내 이성이 뚝 끊어졌다. 이날까지 어린아이를 죽여 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오늘은 그럴 것 같았다. 그에 무시무시한 살기를 띠며 유성에게로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머뭇거려졌다.
 “와-! 손도 곱다!”
 “이, 이놈이! 응?”
 자신의 무시무시한 살기 속에서도 마냥 손이 곱다는 소리를 듣자, 설귀천은 살수를 펼치려는 손을 무의식적으로 보게 됐다.
 그러고는.
 “헉! 이럴 수가! 저, 정말 내 손이.”
 “왜, 왜 그래요?”
 “큭! 맞아! 이런!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난 지금 옛날 모습이 아니지. 아이고, 역시 내가 미쳤나?”
 귀신은 아니지만 어째 덜떨어져 보이는 인물.
 유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나는 광경이었다.
 “히히히.”
 “뭐, 뭐야? 내가 우습냐?”
 “그, 그게 아니고, 예쁜 아씨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야! 이눔아! 난 남자다, 남자!”
 “그,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또 남자네요. 히히히.”
 “이놈이……, 젠장! 아무튼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털썩!
 완전히 살기(殺氣)를 거둔 설귀천은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유성은 곧 길을 나서려고 했지만, 귀신 같은 인물에게 좀 더 있을 양으로 그의 옆에 앉았다. 이상하고도 재미나는 인물이니 많은 호기심이 들던 차였다.
 -사라라랑!
 시원한 바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땀의 물기로 인해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간간이 불어왔다. 휴식을 취하는 유성을 위한 것인지 계속해서 부는 바람이었다.
 유성은 산산한 바람을 받으며 이 재미나는 인물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봤지만, 심각한 고민에 빠진 듯 고운 아미를 찡그리며 무언가를 반복해서 중얼거리기만 하는 설귀천이었다.
 “미풍 담아 춤을 추며 광풍 담아 고요하네. 삼라만상의 근본은 온데간데없고, 그 정만 남아 근본이 될 수 있네…….”
 설귀천은 태천신공(太天神空)의 한 구절을 읊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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