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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정벌기 1화 - 내가 되고 싶은 것은...

2015.11.05 조회 1,310 추천 34


 序章
 
 "난 세상 꼭대기에 우뚝 서서 만인(萬人)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그런 사람이 될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저 허허, 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 채 난 틈만 나면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내가 열네 살이 되고 키가 육 척에 달했을 때 아버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대신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넌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단다."
 난 물었다.
 "왜요?"
 날 쳐다보시며 입을 여는 아버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건……."
 그때 유난히 크게 일렁이던 아버지의 목젖을 지금도 기억한다.
 "네가 백정(白丁)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第 一 章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언제나 한 가지뿐이었다
 
 
 빠직!
 쪽박은 소계(騷鷄)의 머리에 부딪혀 움막 안에 산산이 흩어졌다.
 "아이고!"
 소계는 거적 위를 뒹굴며 유난히 엄살을 떨었다. 세 평 남짓한 움막에서 피해 봐야 거기서 거기이지만, 그래도 두목에게서 조금이나마 떨어지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주위에 있는 여덟 명의 거지들은 그가 가까이 오기만 하면 발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똑바로 앉아!"
 두목은 두꺼운 입술을 한껏 벌려 소리를 버럭 질렀다. 소계는 까치집 같은 머리를 긁적이며 두목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 우리의 신조(信條)가 뭐야!"
 두목의 물음에 소계는 최대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첫째, 두목을 위해 살고 두목을 위해 죽는다! 둘째, 두목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구걸을 한다! 셋째, 우리는 굶어도 두목에게는 진수성찬을 바친다! 이상입니다!"
 "그런데?"
 두목의 말끝이 약간 올라갔다. 소계의 시선이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오늘 산 여기저기를 헤매며 산토끼를 잡느라 남의 집 대문 안으로 바가지조차 못 내밀어 봤다. 그나마 토끼라도 잡았으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속으로 한숨을 쉬는 소계에게 두목의 살벌한 음성이 들렸다.
 "하루 종일 뭐 했기에 쪽박에 밥풀 한 개 못 묻혀 온 거야?"
 "저 그게……."
 몸을 움찔거리던 소계는 상의 앞자락 사이로 뭔가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두목의 시선도 그의 가슴을 향했다.
 "그게 뭐냐?"
 소계는 두목의 물음에 조금 튀어나온 것을 끄집어냈다. 주웠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낡은 책이었다.
 "오늘 주운 것인데요……."
 두목은 계속 하라는 듯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산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얼어 죽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돈 될 거라도 있나 뒤져보았는데 달랑 이 책 하나밖에 없어서……."
 "그래서 가지고 왔다?"
 "예."
 두목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소계는 망설이지 않고 그 손 위에 책을 올려놓았다. 두목은 소계가 건넨 손가락 두 매듭 정도 두께의 책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 불쑥 물었다.
 "이게 무슨 책인 줄 아냐?"
 알 리가 없었다. 소계가 아는 글자라고는 하늘 천(天)자와 사람 인(人)자가 전부였는데, 책표지에 쓰인 네 글자들은 전혀 모르는 것들이었다. 두목은 움막 안에 있는 거지들이 모두 볼 수 있게 책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 책 읽을 수 있는 사람?"
 거지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무식한 놈들!"
 두목이 투덜거리며 책을 내리려는 순간, 한 거지가 손을 들었다. 스스로 지개(智丐)라고 우기지만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왕칠(王七)이었다. 두목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너 정말 이게 무슨 책인 줄 알아?"
 왕칠은 물끄러미 책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신하건대 그 책은……."
 "이 책은?"
 "거꾸로 들려 있습니다."
 모든 시선이 왕칠에게 향했다. 그 중에는 물론 왕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시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연민의 시선을 담고 있었다.
 "그뿐이냐?"
 잠시 시간을 두고 나온 두목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
 "네, 조금 시간을 주시면 그 중 두 자 정도는……."
 휘익, 하는 파공성(破空聲)은 왕칠의 말을 막기에 충분했다.
 쩌걱!
 두목의 손에서 쏘아진 물건이 표적을 빗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책은 왕칠의 이마에 정통으로 박혔다가 소계 앞에 떨어졌다. "어이쿠!" 하는 비명 위로 쩌렁쩌렁한 두목의 육두문자(肉頭文字)가 덮쳐 갔다.
 "좆도 모르는 게 좆 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렇게 잘난 놈이 왜 내 밑에 있어? 자금성(紫禁城)에 가서 재상이나 해먹을 일이지!"
 두목은 엉금엉금 바닥을 기는 왕칠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시선을 소계에게 향했다.
 "너!"
 "예?"
 "당장 나가서 쪽박 가득 음식을 얻어 와! 남의 살을 반 이상 섞어서! 만약 얻어 오지 못하면……."
 두목은 말을 맺는 대신 손가락을 꺾었다. 우두둑! 손마디에서 울려나온 소리가 마치 소계의 뼈 부스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휘이잉!
 매서운 삭풍은 관도(官道)를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을 놔둔 채 오직 소계에게만 불어오는 듯했다. 소계는 얇은 옷깃을 애써 여미며 서산에 걸린 해를 힐끗 바라보았다. 저 황혼이 먹빛으로 변하기 전에 구걸에 성공해야 했다.
 '안 그러면 동태가 되겠지? 땅 파기도 힘든 철에 말이야.'
 그는 몸을 부르르 떤 뒤, 팔짱을 깊숙이 끼었다. 문득 가슴에 딱딱한 느낌이 전해졌다. 엉겁결에 품에 집어넣고 나온 문제의 책이었다.
 그는 구수하게 풍겨오는 만두 냄새를 맡으며 책을 꺼냈다. 오늘의 이 불행을 자초한 주범.
 "에잇!"
 그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땅을 몇 번 구른 책은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며 노란 속살을 드러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와 책을 번갈아가며 힐끔거렸다. 그는 책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의 대화가 귓구멍으로 흘러들었다.
 "정말 그놈 소 잡는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오백 근짜리 황소를 한 방에 보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잡으니 고기 맛도 좋을 수밖에. 자네도 중화반점의 왕서방 알지?"
 "주방에 있는 그 왕서방?"
 "그래. 그 사람이 그러는데 소가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죽여야만 고기 맛이 좋다더군."
 두 사람의 두런거리는 소리는 그 뒤로도 한참 이어졌지만, 소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하긴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이곳 소안현(蘇安縣)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악백웅(岳白雄).
 열네 살의 나이에 키는 육 척이 훨씬 넘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은 장사였다. 소안현 사람이라면 누구나 '쯧쯧! 그놈, 백정만 아니었다면……' 하며 아쉬워하는 인물. 장차 소안현, 아니 중원 제일의 백정 자리는 문제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그가 바로 악백웅이었다.
 악백웅을 떠올리자 소계의 머릿속으로 무엇인가가 반짝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그거야!"
 소계는 손바닥을 치며 쾌재를 터뜨렸다. 언제부턴가 악백웅이 되지도 않을 삼류 무공서(武功書)를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식한 백정 놈에게 사기 치는 거야 퇴기(退妓) 치마끈 푸는 것만큼이나 쉽지."
 소계는 땅바닥에 집어 던진 책을 주워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퍽! 퍽!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계는 도축장(屠畜場) 한쪽에서 소 잡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도축장과는 달리 악씨네 도축장에서는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소계는 목까지 차는 나무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가장 먼저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육중한 몸뚱이의 소가 짚더미 위로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이마에 손가락 하나 정도의 상처만 남긴 채, 약간의 뇌수를 흘리며 생을 마감하는 소의 눈은 커다랗게 뜨여 있었다.
 소계는 그 광경을 만든 사람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열여덟의 악백웅. 무려 팔 척에 달하는 키와 곰 두 마리를 나란히 세워 놓은 듯한 넓은 등판은 절로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상체를 벗어젖힌 악백웅의 등에서는 엄동설한(嚴冬雪寒)임에도 불구하고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길, 춥지도 않나?'
 소계는 악백웅을 볼 때마다 원인 모를 열등감에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그는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듯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란히 세워진 열댓 마리의 소는 두 마리만 남긴 채 모두 죽어 있었다. 시간을 보더라도 곧 문을 닫을 때였다. 평소 조금은 안면이 있었으니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저 무식한 백정 놈을 그럴듯하게 꼬시는 일만 남았는데…….'
 그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도축장 안으로 난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삐꺼억! 낮은 마찰음을 내며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서던 소계는 몸을 우뚝 세웠다.
 '우라질!'
 소계가 속으로 욕설을 뱉은 것은 앞에 서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유난히 창백한 안색에 날카로운 눈매만 아니면 여자 같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사내. 대장간 집 아들 류민(柳民)이었다.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항상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사는 책벌레인 데다, 대인기피증(對人忌避症)이라도 있는지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악백웅과는 형님 아우 하면서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괴상한 녀석들끼리 만나면 재밌기도 하겠지.'
 소계는 이렇게 생각하며 류민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이 있으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일자무식인 악백웅에게 사기를 치려면 저 녀석이 빨리 사라져 줘야 했다.
 류민은 엉거주춤 서 있는 소계를 일별한 뒤 악백웅을 향해 돌아섰다.
 "형님, 저녁에 대장간으로 오실 거죠?"
 도축한 소를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던 악백웅이 천천히 돌아섰다. 시커먼 눈썹에 소의 그것처럼 커다란 눈, 주먹을 얹어 놓은 듯한 코와 두툼한 입술, 그리고 각진 턱…… 보기에 흉할 법한데도 그 가운데 묘한 조화가 있어, 전체적으로 강렬한 남성미를 풍기는 얼굴이었다.
 "뒷정리만 마치면 금방 쫓아가마."
 범인(凡人)이 한껏 소리를 지르는 듯한 우렁찬 목소리가 도축장을 뒤흔들었다. 그 말에 류민은 소계를 지나쳐 문을 나섰다. 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계에게 악백웅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소계, 웬일이냐?"
 '저게 꼭 반말이야!'
 생각과는 달리 소계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헤헤! 네게 줄 선물이 있어서 말이야."
 그는 말과 함께 품에서 책을 꺼냈다. 원래는 변죽을 울리며 악백웅의 정신을 산만하게 해 놓을 생각이었는데, 그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으로 인해 엉겁결에 본론으로 들어가고 만 것이다.
 "뭔데?"
 악백웅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소계는 악백웅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요즘 무공 비급을 모은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래서?"
 기대와는 달리 별 관심 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소계는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은밀한 냄새를 풍기며 입을 열었다.
 "너 이게 무슨 책인 줄 아냐?"
 소계는 팔을 한참 들어야 닿을 수 있는 악백웅의 코앞에 책을 내밀었다. 곧 그가 예상한 답이 튀어나왔다.
 "몰라."
 "이게 바로 무공 비급이야. 그것도 보통 무공 비급이 아니라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무공이 적힌 무공 비급이라고. 이름 하여 천상천하제일무공(天上天下第一武功)이란 비급이지."
 악백웅은 코앞의 책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쓰인 글자는 네 자밖에 안 되잖아?"
 이 또한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소계는 자신 있게, 그러나 더욱 은밀하게 대답했다.
 "원래 귀한 비급은 그렇게 쓰는 거야.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두 자를 한 자처럼 만들어놓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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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 땅!
 악백웅과 류민은 류민의 아버지 류대산(柳岱山)이 담금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대장간을 나왔다. 류대산은 절대로 병기를 만들지 않는 괴이한 대장장이였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소안현 제일의 대장장이 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혹자는 중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장장이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기도 했다.
 거리는 유난히 추운 날씨 때문인지 지나는 사람들이 뜸했다. 악백웅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걷는 류민에게 물었다.
 "너도 아버지처럼 대장장이가 될 생각이냐?"
 악백웅의 물음에, 류민은 망치 소리가 들려오는 대장간을 힐끔 돌아보곤 말했다.
 "글쎄요. 아직은 딱히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쪽에 재주가 있는지도 확실치 않고……."
 악백웅은 류민의 어깨를 툭 쳤다.
 "지금 네 실력이 거의 네 아버지 수준에 와 있는데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잘 하느냐보다는 하고 싶으냐가 문제죠."
 악백웅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내가 엊그제 갖다 준 조양권(朝陽拳)의 권로(拳路)는 다 이해되더냐?"
 "기초적인 무공이었으니까요. 형님께 설명드리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형님, 조양권 같은 것으로는……."
 류민의 말을 악백웅이 끊었다.
 "고수가 될 수 없다 이 말이지?"
 "……."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백정이란 신분으로 무과(武科)에 응시할 수도 없고, 도장(道場)이나 문파(門派)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후우!"
 류민이 악백웅의 심정을 대신해 긴 한숨을 쉬었다.
 "하하하! 내 걱정을 하는 것이라면 그만둬라. 지금은 비록 백정에 불과하지만 훗날 이 세상을 발아래 두는 사람이 될 테니."
 악백웅의 호탕한 말에 류민은 그저 싱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이 일 각(一刻) 정도를 걸어 도착한 곳은 대화주점(大華酒店)이었다. 십여 평 남짓 되는 초라한 술집에는 몇몇 사내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모두 낯이 익었지만, 누구도 악백웅에게 아는 체하지 않았다. 도축장에서라면 모르지만 밖에서까지 백정과 가까이 지내려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자 점소이가 쪼르르 다가왔다.
 "죽엽청 한 근하고 오리 구운 것 세 마리만 가져와."
 점소이는 대꾸 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참, 형님! 아까 소계가 무슨 일로 도축장에 온 거죠?"
 악백웅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엄청난 무공 비급을 가져왔더군."
 "예?"
 "천상천하제일무공이라나 뭐라나."
 악백웅은 소계와 있었던 일을 간략히 얘기해 주고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그냥 속는 것처럼 해주고 고기 두 근 줘서 보냈다. 얼마나 급했으면 내게까지 사기를 치러 왔겠냐?"
 류민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 귀한 비급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제게도 좀 주시죠."
 "여기 어디다 넣어놨을 텐데……."
 악백웅은 몸 여기저기를 뒤지다 이내 책을 찾아 류민에게 건넸다.
 "풍뢰도경(風雷刀經)?"
 낮게 제목을 읽은 류민은 악백웅을 향해 싱긋 웃었다.
 "이거 정말 무공에 관한 책이 맞나 본데요?"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고 책장을 넘기던 류민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악백웅도 류민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점소이가 음식을 놓고 간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두 사람은 술과 고기에 손도 대지 않았다. 건너편 자리와 뒷자리에서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사내들의 목소리만이 주점 안을 맴돌았다.
 탁!
 류민은 소리 나게 책을 덮고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악백웅 또한 류민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정말 무공 비급이군요."
 취한 듯한 목소리였다.
 "어느 정도냐?"
 "제가 무공을 보는 것이 일천(日淺)해서 단언하기 어렵습니다만 이제껏 형님이 익혔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만 익히면 고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류민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대답했다.
 "보기 드문 고수라고 해야겠죠."
 악백웅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희열이 떠올랐다. 평소에 과장된 말이라고는 결코 하지 않는 류민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다. 악백웅은 책을 자신의 앞에 놓고 펼쳤다. 비록 한 자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안의 모든 내용이 머릿속으로 뛰어드는 듯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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