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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라즈가의 형제들 1권-1

2015.11.09 조회 3,663 추천 34


 # 프롤로그
 
 크로노스 산맥.
 좌우 대륙을 가르며 제국 쿤과 여러 왕국의 요충지인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은 베른 산이다.
 그리고 유독 베른 산 정상은 카일 왕국이 신성시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왕세자들은 왕으로 등극할 시 이곳을 찾아 하늘에 제를 지내곤 했다.
 그런 장소에 두 필의 말을 타고 사내들이 들어선 것은 안개가 자욱하게 물안개를 만들어 내는 새벽녘이었다.
 그 뒤를 일단의 기사들이 멀찍이 따르며 둘의 호위를 위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사내 중 하나는 손가락 가운데 M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는 중년인이었다.
 그는 전체적으로 인상 좋은 아저씨였지만 그를 아는 이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속칭 M이라 불리며 웃는 인상임에도 눈동자만큼은 절대 웃는 일이 없어 그를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반대편 사내는 검은색 뿔테 안경 속에 작은 눈을 숨긴 다소 얄팍한 입술의 소유자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M과 마찬가지로 호인처럼 느껴졌다.
 둘 사이에 먼저 입을 연 것은 M이었다.
 "누가 돌아온다고?"
 "아벨라즈 가문의 형제들이 돌아온답니다."
 "그놈들이 누군데?"
 "전하가 가장 싫어했던 레이론 백작의 자제들입니다."
 "레이론 백작……."
 M의 안색이 불편해 보였다. 미간이 좁혀지며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의 가장 큰 정적은 레이론 백작이었다.
 자신의 앞길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것도 그였으며 모든 귀족들이 자신의 편을 들 때 반대하던 자도 그였다. 목에 박힌 가시와도 같은 자였다.
 "내가 상관할 필요가 있는 자들인가?"
 뿔테 안경의 사내가 대답했다.
 "호랑이는 고양이를 낳지 않는 법이지요."
 "호랑이라."
 M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표정이 드러났다.
 가장 걸림돌이던 레이론 백작도 사라졌다. 과연 누가 자신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폐하? 공왕? 공작? 과연 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중년의 사내가 M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은 용맹합니다. 마치 전하를 뵙는 것과 같지요.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커지기 전에 미리 방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비슷하다고?"
 M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산맥 전체를 울리는 웃음소리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의 웃음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만큼 M이 뿜어 대는 패도적인 기세는 거칠고 강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M은 비틀린 웃음을 만들며 고삐를 잡아챘다.
 "그들이 무너져 버린 아벨라즈 가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있다면 기적이지. 그들이 하룻강아지인지, 호랑이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겠지. 큭큭큭, 과연 그들이 내 앞에 당도할 수 있을까?"
 M은 자신의 강함을 믿었다.
 단지 세력의 강함이 아니라 M 자신에게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힘이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뒷받침할 능력 역시 가졌다.
 M에게 더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오직 신뿐.
 "일단 기억은 해 두지."
 M은 그것을 끝으로 이내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년의 사내는 멀어져 가는 M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큰 사내.
 거인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는 자신의 주군이 가는 길을 그렇게 조용히 인사로 배웅했다.
 
 
 # 아이즈
 
 후야바 왕국은 5년이 넘도록 바탈리안족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여러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후야바 왕국은 정규군을 빼내 그들과의 전쟁을 치르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두자니 북부 지방의 피해가 너무 극심했다. 고심을 하던 후야바 왕국의 귀족들은 노예들과 징집병을 이용해 팔 개 군단 약 9만 명의 병사들을 급조한다.
 그 정도라면 무기가 우수한 자신들이 어렵지 않게 바탈리안족을 몰아내리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생각과는 다르게 전쟁이 흘러갔다. 팔 개 군단은 막대한 타격을 입은 채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게 된 것이다.
 북부 지방이 바탈리안족에게 대부분 넘어가자 다급해진 후야바 왕국은 완전 사면을 조건으로 수많은 죄수들을 전장에 투입했다.
 하지만 죄수들이라고 해도 노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 역시 큰 타격을 입고 전선은 걷잡을 수 없이 뒤로 밀려났다. 밀릴 대로 밀린 왕국은 막대한 금액을 들여 용병들을 고용했다.
 지휘관급에도 군사적인 지식이 있는 귀족들을 대거 채용했지만 용맹한 바탈리안족에게는 그다지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정규군을 투입하자니 눈을 시퍼렇게 뜬 다른 왕국들이 꺼림칙하고, 바탈리안족을 그대로 두자니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몰랐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가는 살인적인 재정적 부담은 후야바 왕국의 왕실을 압박했다.
 고심하던 왕국은 순수한 무력 집단으로 최근 이름을 얻고 있는 신흥 귀족 아이즈를 투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비록 출신은 마땅치 않지만 오로지 실력으로 작위를 받은 실력가였다.
 내치자니 아깝고 품에 안자니 그 무력이 부담스러웠던 차에 자연스레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만큼 아이즈의 최근 행보는 후야바 왕국의 실세들 입장에서 눈에 거슬리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왕국의 실세들과 달리 왕실 입장에서도 크게 손해 볼 것 없는 전쟁이었다.
 어차피 초반 전쟁을 하게 된 것 역시 보수 귀족들이 그 주축이었으니 왕실 입장에서는 지든 이기든 둘 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긴다면 그 기회를 이용해 북방의 골칫거리를 소탕하고 국경의 안정을 가져오는 한편 왕권 강화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고, 지더라도 모든 책임을 보수 귀족들에게 떠넘겨 그들의 세를 꺾어 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정 안 되면 15만에 이르는 정규군으로 싹 쓸어버리면 될 일이니 뭐가 걱정이겠는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왕실은 귀족들의 의견을 존중했고, 아이즈는 졸지에 왕국 죄수들과 용병들의 혼합 부대인 제3여단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후야바 왕국 북부 지역 서부 전선 레실리온 요새.
 북에서 넘어오는 바탈리안족과 후야바 왕국이 만나는 접경지인 동시에 군사적인 요충지이다. 하지만 오랜 전투로 인해 요새에 머물던 영지민들은 남부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남은 것은 대량의 군량미와 오아시스, 병사들뿐이었다.
 초원과 사막과 협곡이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들도 초목 하나 남아 있지 않을 만큼 건조했다. 그곳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은 3군단 소속 3여단의 잔여 병력이었다.
 남은 숫자는 겨우 300명 남짓, 한때 1만 명 가까이 상주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황폐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죽어!"
 "젠장! 제발 좀 죽어 버려!"
 벌써 일주일이 넘는 전투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혹한 대지 위에 미래도 희망도 없이 오직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적의 목을 향해 창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적들을 맞이하는 것도 이제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600명이 넘던 병사들의 숫자는 어느새 절반으로 떨어졌고, 다들 지독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3,000명을 넘어선 바탈리안족의 끝없는 공세는 숨 고를 틈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도끼날의 섬뜩함 때문이라도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 놓을 수조차 없었다.
 사실 이 정도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애당초 죽음을 도외시한 바탈리안족의 공세에 맞서 겨우 600명이서 지킬 수 있는 성이 아니었다.
 "서쪽 성벽으로 500명가량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아군의 숫자는 50명을 넘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적들이 성벽을 넘습니다!"
 한 병사가 급히 다가와 아스카에게 보고했다.
 그는 3여단의 백인장이었다. 하지만 모든 장교들이 죽어버려 선임병인 그가 대신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카가 다급히 소리쳤다.
 "예비병들은?"
 "전무, 모두 전투에 투입 중입니다."
 "경상자들은?"
 "전무, 그들 역시 전투에 임하고 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중상자들은?"
 "전무,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병사들을 빼고는 모두 돌을 나르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사방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바탈리안족을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그들 역시 이번에는 끝장을 보겠다는 듯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열 배가 넘는 병력의 차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문을 지키는 병사들 중 30명을 차출하여 데리고 가라!"
 "하오나……."
 성벽 중에서 가장 많은 바탈리안족이 밀려오는 곳이 정문이었다. 그곳이 뚫리면 내성까지 바로 다다른다. 한마디로 정문이 뚫리면 요새는 바로 함락이라는 소리였다.
 "내가 막겠다. 급한 불이라도 먼저 꺼야 한다."
 "충!"
 선임 병사는 병사들을 데리고 성벽 밑으로 사라졌다.
 그사이에도 수백 발의 화살이 오가며 수십 명의 병사들이 성벽 밖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살아남은 자들도 있었지만 달려온 바탈리안족의 도끼에 산산조각이 나며 처참하게 죽어 갔다.
 아스카는 하늘을 보았다.
 흐리고 뿌옇다.
 아마도 하늘은 오늘 자신의 죽음을 점지해 준 모양이었다.
 고개를 내려 정면을 바라봤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턱수염이 송곳처럼 삐죽하게 나 있는 자가 보였다. 그가 바로 요새를 공격하는 바탈리안족의 지휘관 카카로였다.
 후야바 왕국의 용병 여단을 다섯 개나 깨부순 맹장 중의 맹장이다. 그는 양날 도끼를 자신의 수족처럼 쓰며 포로를 남기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의 잔인함은 이미 용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아스카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상관도 저자에게 단 일합 만에 죽임을 당했다.
 지휘관을 잃어버린 3여단은 패전에 패전을 계속했다.
 만약 공성전을 택한 자신이 아니었으면 이미 모조리 황천길로 갔을 터였다.
 "서문이 뚫립니다."
 "남문 병사의 숫자가 모자랍니다. 사망자 25명 이상, 생존자 45명입니다. 병력 보충을 요합니다."
 "적들의 잔여 병력이 북문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전령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빗발치듯 계속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가 손쓸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아스카는 피로 얼룩진 성벽에 등을 기댔다.
 이대로,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다음에 계속...

댓글(2)

인체의신비    
이거 소설책 재밌다고 만화책방 형한테 강추햇건만 사람들이 안보더라ㅜ 난재밌었는데
2017.04.17 13:35
청광류    
수성전 아닌가? 공수 개념도 모르나?
2017.11.25 16:10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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