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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한 1화

2015.11.12 조회 707 추천 13


 제1장. 드래곤의 전리품 1
 
 드래곤의 수명은 대략 만 년.
 실제로 대륙에는 만 년에 달하는 긴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이 있었으니 바로 알크마르 산의 절대자 블랙 드래곤 데카론이었다.
 현재 드래곤 로드인 골드 드래곤 페시킨보다도 나이가 사천 살이나 많아 현존하는 드래곤 중에서 데카론이 최고령이었다.
 레어가 있는 곳은 알크마르 산으로, 데카론은 헤츨링 시절 이후 이곳에 레어를 만들고 머물러 왔다.
 데카론은 블랙 드래곤 중에서도 성질이 포악한 것으로 아주 유명했기에 자기가 자리 잡은 알크마르 산에는 그 어떤 종족도 터전을 잡지 못했다. 심지어 같은 종족인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알크마르 산 근처에 절대 레어를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무서울 것 없이 살아온 데카론이었으나, 그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흐르는 세월!
 “휴우우.”
 데카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영원히 살 줄로만 알았는데.’
 만 년이면 기껏해야 백 년도 못 사는 짧은 인간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거의 영원에 가까운 세월이었다.
 데카론도 죽음이 가까이 오기 전에는 흐르는 세월을 아까운 줄 모르고 살았었다. 하지만 결국 만 년 세월의 끝은 눈앞에 찾아왔다.
 ‘흠흠.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다니. 죽음은 아주 멀리 있는 것으로만 느껴졌는데. 그래도 내가 오래 살기는 오래 살았지.’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인간과 달리 놀라운 지능과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드래곤이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 삶이 끝나서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었다.
 ‘그래도 막상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될까?’
 곰곰이 자신의 수명을 따져 보았다.
 노화된 육체를 점검하니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불과 수십 년. 길게 본다고 하더라도 백 년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았다.
 ‘흐흐. 백 년도 안 남았군. 만 년의 시간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인간의 수명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길고 긴 삶에서 그나마 위안이라고는 인간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는데.’
 데카론이 만 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인간들은 수많은 왕국과 제국들을 만들며 역사를 이뤄 갔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고 나약한 존재로 여기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종족이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의 번식력은 오크보다 훨씬 못하고, 인간의 수명과 마법의 힘은 엘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교한 공예 능력이나 육체의 탄탄함은 드워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든 종족을 통틀어 따져 보면 인간은 강점보다 약점이 많았다.
 ‘하지만 인간들은 대를 이어 습득한 지식을 전수하며, 가지고 있는 기술을 발전시켜서 종족의 약점을 보완해 나가는 뛰어난 특징이 있지.’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강해졌다.
 아주 극소수였던 인간들은 점점 숫자를 늘리더니 집단을 이루었고, 이내 부족으로 규모를 키워 가더니 나중에는 왕국과 제국까지 만들었다.
 정복력이 강한 인간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침략과 약탈, 전쟁을 통해 다른 종족들까지 밀어내며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다.
 처음에는 돌이나 나무 등이 인간의 무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뛰어난 무기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어느 종족에도 없는 새로운 무기를 창조해 냈다.
 인간들 때문에 견디다 못한 엘프와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큰 배를 만들어 타고 대륙을 떠났다.
 다행히 이들은 긴 항해 끝에 인간들이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은 신대륙을 발견해 그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 신대륙은 아직까지도 인간들이 발견하지 못하여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인간의 형태를 지켜보던 데카론은 인간들을 짓밟아 주기로 작정했다.
 ‘저것들을 가만두면 안 되겠어. 이러다간 인간 외에 다른 종족은 전부 대륙에서 쫓겨날 거 같아.’ 나중엔 드래곤까지 우습게 보겠군.’
 결심이 선 데카론은 수십 년이나 수백 년, 길게는 천 년에 한 번 인간 세상에 나가 한바탕 난리를 치며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을 각인시켜 주었다.
 드래곤 로드도 인간 종족에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여겼기에 데카론이 하는 짓을 수수방관했다.
 그렇게 인간들을 혼내 주는 동안에 데카론은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건 인간들의 지치지 않는 도전이었다.
 ‘다른 종족들은 한 번 밟아 주면 그 이후로는 순종하며 복종한다. 그런데 인간들은 가장 연약하고 짧은 생을 가진 종족임에도 위대한 존재인 드래곤에게 끊임없이 저항하며 맞서려고 한다.’
 다른 종족과 달리 인간은 포기를 몰랐다.
 드래곤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지, 그리고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라는 정보를 인간들은 공유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현실을 거부하며 받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겁 없는 인간 놈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레어 안에 모아 놓은 전리품이 보고 싶군. 죽기 전에 내가 모은 전리품을 감상해 볼까?’
 데카론은 전리품이 있는 곳으로 갔다.
 
 레어 한편에 있는 커다란 공간.
 마법으로 만들어진 수백여 개의 얼음 덩어리들이 동상처럼 벽을 둘러 주르르 늘어서 있었다.
 얼음 덩어리는 마치 관처럼 길쭉하게 생겼는데, 그 속에는 당장이라도 살아서 튀어나올 듯한 인간들이 1명씩 들어 있었다.
 실제로 얼음 덩어리 속에 있는 인간은 죽은 게 아니라 동면 상태였다. 데카론이 마음만 먹으면 얼음을 녹이고 안에 있는 인간을 살아나게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전부 데카론이 잡은 자들로, 일부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꿈꾸며 용기백배하여 레어로 찾아왔다가 잡혔고, 일부는 데카론의 만행을 견디다 못해 덤벼들었다가 잡혀서 전리품이 되었다.
 또 일부는 인간 세상을 유희하다가 만난 독특한 능력을 지닌 자들로, 이들에게 흥미를 느낀 데카론이 수집을 위해 잡아들였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자신의 전리품을 쭈욱 둘러본 데카론은 살아온 나날에 대한 보람이 느껴진 듯 만족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꽤 많이 모았군. 이렇게 모으기를 잘했어.’
 모으지 않고 그냥 죽여 버렸으면 지금쯤 아쉬워할 게 분명했다.
 얼음 덩어리 속에 있는 1명 1명을 볼 때마다 대결에서 이겼을 당시의 성취감과 함께 옛 기억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았다.
 ‘한가지 아쉬운 건 헤츨링 때부터 모으지 못했다는 사실이야.’
 만일 그랬다면 전리품의 숫자가 훨씬 늘어났을게 분명했다.
 ‘흠흠. 나에게 도전했던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했던 자를 뽑아 보라고 한다면 바로 이 2명이지.’
 얼음 덩어리에 냉동된 수백 명의 인간들 중에서도 유달리 눈이 가는 두 인간이 있었다.
 1명은 번쩍거리는 은빛 풀 플레이트 메일로 중무장한 기사, 다른 1명은 수정구가 박힌 기다란 마법 봉을 든 백발의 마법사.
 기사는 소드 마스터였다. 그냥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직전에 있었던 자로, 인간의 한계마저 거부하려고 했다.
 ‘이름이 아이온이었지. 아이온 때문에 나에게 도전하는 인간들을 얼음 덩어리에 가두고 전리품으로 모으는 일을 시작했어.’
 데카론은 오러가 일어나는 검을 들고 자신의 레어로 당당하게 들어오던 아이온의 모습을 떠올렸다.
 
 @
 
 때는 지금으로부터 5천여 년 전. 데카론의 나이 오천 살로, 에이션트급 드래곤이 되었을 때였다.
 당시에 인간 세계는 듀리안 제국이 가장 흥왕하던 시절로 데카론은 제국을 핍박하여 각종 금은보화를 거둬들이고 있었다.
 아이온은 황실 기사단의 기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여 천부적인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열네 살에 오러를 일으켜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고, 서른아홉 살에 대륙 역사상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예순여덟 살에는 인간 중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당시에 아이온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이때 큰 흉년이 찾아와 듀리안 제국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데카론까지 나타나 핍박을 가했다.
 “앞으로 1년에 한 번씩 황성을 찾아오겠다. 내가 흡족해할 정도의 선물을 준비하도록 하라. 내 명령에 거부하면 듀리안 제국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테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렇게 협박한 후에 데카론은 날개짓하며 하늘 높이 솟구쳐 사라졌다.
 듀리안 제국의 황제는 황망함에 그대로 쓰러져 자리에 눕게 되었다.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상황에서 아이온 결연히 일어났다.
 “황제 폐하, 제가 알크마르 산으로 가서 데카론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그대가?”
 “예!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마음은 알겠으나 잘못하면 그대로 인해 데카론에게 분노만 살 뿐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씩 데카론에게 줄 선물을 어떻게 준비합니까?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버텨야지. 그대가 데카론을 없애는 데 실패한다면 제국에 살아서 숨 쉬는 인간은 아무도 없게 될테니 그것보다는 낫다.”
 “황제 폐하, 이미 저희 모두는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데카론에게 대항하지 못하여 천천히 죽느냐, 제가 도전함으로써 데카론에게 한 번에 죽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용기를 내소서!”
 “흐으음.”
 황제는 아이온의 말에 동의하기에 반박을 못 하고 신음만 흘렸다.
 아이온은 다시 황제에게 간청했다.
 “황제 폐하, 용기를 내소서! 데카론과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좋다! 그대에게 맡겨 보겠다.”
 아이온의 말에 용기를 낸 황제는 데카론과 맞서기로 했다. 그 즉시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제국의 모든 힘을 동원해 아이온 경을 도우라. 아이온 경이 입을 갑옷, 아이온 경이 들고 싸울 무기와 방패를 만들어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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