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세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세계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빛이 바래버린 것 같은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이 턱까지 내려온 노인이 비통에 잠긴 얼굴로 흐느꼈다.
“으흐흐흑. 나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에…. 그때라도 멈췄어야 했는데…. 나의 오만이…. 나의 탐욕이…. 결국 세상을…. 우리 종족을….”
옆에 있던 그림자가 말했다.
“지금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지? 이제 너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후회니 사과니 하는 것은 들어주고 받아주는 상대가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 너 혼자만의 사과와 후회는 상처 입은 너의 양심을 달래기 위한 자기만족과 기만 아닌가? 그보다 어떠냐? 너희 종족의 최후의 생존자로써, 네 세상의 마지막을 보는 기분이? 도대체 그게 무슨 기분일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말이야.”
“이노옴! 날 마지막까지 살려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의 오만이! 너의 세계와 너의 종족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원통할 따름이다!”
그림자가 노인의 목을 향해서 팔을 뻗었다. 그림자가 노인의 가냘픈 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후회? 크크크크! 푸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던 그림자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후회라, 부디 나도 그 후회라는 것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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