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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투수 1권 - 상

2015.12.30 조회 8,145 추천 80


 2005년 5월 21일. 동대문야구장.
 수많은 프로야구 스카우터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황금사자기 전국교고대회 결승전이 열렸다.
 결승전답게 이날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양 팀 모두 4회까지는 각각 2안타와 1안타만을 치며 쉽사리 득점 기회를 잡지 못하며 치열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이후에는 선발투수들이 강판 당하자 팽팽했던 투수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누가 1점이라도 더 많이 내는 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 마냥 난타전으로 이어졌다.
 8회까지 13대 12.
 스카우터들은 죄다 고개를 저었다.
 기대감을 품고 지켜봤던 투수들이 대부분 난타를 당했다. 타자들을 선전하긴 했지만 투수들의 컨디션 난조가 못내 아쉬웠다.
 그러던 9회 말.
 스카운터들이 분주해졌다.
 “구속측정기 꺼내, 빨리!”
 “요놈만큼은 무조건 살펴보고 가야지. 내가 이러려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 온 건데!”
 
 너나 할 거 없이 구속측정기를 꺼내며 마운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럴 만도 했다.
 최고구속 153km, 평균구속 140km 중후반대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고교 최대어 이현우, 그가 등판할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현우는 일본 고교야구에서 최고구속 158km와 평균 구속150km 중반대의 강속구를 뿌리는 괴물 투수인 오이치 쇼타니와 비견되며, 라이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국내 및 해외의 스카우터들은 어린 나이를 감안했을 때 성장 가능성이 높으며, 당장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통할 수 있을 거라는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 정도로 이현우의 기량은 뛰어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날 이현우의 컨디션은 평소와 달리 정상이 아니었다.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평균 140km 초반대에서 머물렀고, 평소에는 날카롭기만 했던 슬라이더의 꺾이는 각 또한 밋밋했다.
 “뭐야, 저거. 오늘 왜 저래?”
 “혹시 어디 아픈 건가?”
 “그러고 보면 황금사자니 내내 무리하게 등판하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스카우터들이 봤을 때 이현우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현우는 황금사자기 결승까지 올라오는 동안 등판한 6경기 중 무려 4경기에 선발 등판, 2경기에 구원 등판을 했다.
 선발 등판한 4경기 중 2경기는 완봉승, 나머지 2경기는 완투승을 거두었고, 구원 등판한 2경기에서도 각각 3이닝 무실점과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문제는 황금사자기가 5월 7일부터 5월 21일까지 진행되는 대회이며, 이현우의 최근 선발 등판이 5월 17일, 구원 등판이 각각 5월 19일과 5월 20일이라는 점이었다.
 지독히도 혹독한 스케줄이다. 컨디션이 정상인 게 이상할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무사 만루를 허용했다. 처음에는 안타, 그 이후에는 2연속 포볼로 주자를 내보내고 말았다.
 13 대 12로 리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야 플라이 하나만 나와도 동점이 되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이현우라고 해도 저런 무리지.”
 “쯧. 백날 잘해봐야 뭐해. 큰 무대에서 저렇게 바보짓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법인데.”
 “이현우도 별 거 없네.”
 상당수의 스카우터들이 몸을 일으켰다.
 몸에 이상이 있거나, 그게 아니면 결승전의 중압감이 이기지 못한 거다. 전자건 후자건 신인 드래프트에서 높은 평가를 받긴 어렵다.
 몸에 이상이 있는데 누가 데려가려고 할까?
 프로 무대에 데뷔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새가슴인 투수에게 미래가 있을까?
 스카우터들은 회의적이었다.
 바로 그 때.
 -와아아아!
 동대문야구장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타자가 친 공이 투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가듯이 잡히면서 타자주자 아웃, 1루 주자가 재빨리 뛰어봤지만 2루에서 태그아웃,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뛰기 시작한 3루 주자는 홈에서 태그아웃.
 삼중살, 트리플 플레이가 완성됐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15구를 던지면서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142km를 넘지 못했건만, 마지막 공을 던질 때는 152km를 기록했다.
 정상적인 이현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팀 동료들과 감독과 코치들이 황금사자기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오던 그 순간.
 “아아악!”
 이현우는 오른팔을 부여잡고 마운드 위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날, 고교 최고의 투수가 부상으로 사라졌다.
 
 * * *
 
 2005년 8월 31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200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가 열렸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 부산 알바트로스의 단장인 배지석이 마이크를 잡은 채 입을 열었다.
 “저희 부산 알바트로스에서는 나주현 선수를 뽑겠습니다.”
 짝짝짝.
 가벼운 박수가 이어진 뒤 대전 펠컨스의 노정성 단장이 미간을 매만지며 잠시 머뭇거렸다.
 노정성 단장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참 머뭇거린 뒤에야 노정성 단장은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 대전 펠컨스에서는··· 유현성 선수를 뽑겠습니다.”
 유현성은 2003년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 예선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며 동산고등학교의 준우승에 기여한 뛰어난 선수이다.
 하지만 동산고 2학년 재학 중에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 1년 간 재활에 매진하고 말았다.
 3학년인 2005년에는 제 60회 청룡기 전국고교 야구 선수권대회에 출전, 8강전인 성산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탈삼진 17개를 기록해 완봉승을 거두며 자신이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걸 알렸다.
 유현성이 53과 2/3이닝 동안 6승 1패 방어율 1.54를 기록하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하는 대활약을 한 덕에 동산고는 통산 6번째 청룡기 우승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야구 관계자들이 지역연고 1차 지명에서 인천 드래곤스가 유현성을 지명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인천 드래곤스의 선택은 유현성과 함께 인천 Big 3 중 한 명으로 분류되던 이지완이었다.
 1차 지명이 끝나고 2차 지명이 시작되자 부산 알바트로스가 유현성을 선택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부산 알바트로스는 나주현을 지명했다.
 아무래도 유현성이 1년 전에 토미 존 수술을 한 게 지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유현성은 성공적으로 재활을 마쳤고 자신의 몸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부상을 당하기 전보다 더 발전했다는 걸 청룡기 대회에서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1차 지명은 물론이거니와 2차 1지명에서조차 유현성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기에 노정성 단장이 잠시 당황한 것이었다.
 ‘이래주면 나야 고맙지. 이미 재활은 다 끝나고 잘하면 2006시즌부터 곧장 주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투수를 이렇게 지명하게 될 줄이야!’
 뭐, 그 덕에 어부지리로 대전 펠컨스에서 2006년 신인지명회의 최대어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현성을 지명할 수 있었으니 노정성 단장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었다.
 “저희 서울 스텔스에서는 신정후 선수를 지명합니다.”
 “인천 드래곤스는 김성원 선수를 선택하겠습니다.”
 “저희 광주 야크스는 손정민 선수를 지명합니다.”
 대전 펠컨스 노정성 단장의 뒤를 이어 서울 스텔스, 인천 드래곤스, 광주 야크스, 서울 호네츠, 대구 피닉스, 수원 페가수스, 부산 알바트로스의 단장들이 차례대로 원하는 선수들을 지명했다.
 그렇게 다시 노정성 단장의 순서가 왔다.
 노정성 단장은 유현성을 지명하기 전보다 더 당황한 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현우 선수를 지명하지 않은 거지? 아무리 수술을 했다지만 재활만 제대로 받으면 유현성, 한경수 선수와 함께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하고 남을 레벨인데 말이야. 오히려 구속에 비해 볼 끝이 가볍다고 평가받는 한경수 선수보다 더 프로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이현우.
 한경수와 함께 고교 최고 선수로 분류되며, 최고구속 152km에 달하는 묵직한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우완 투수다.
 게다가 타격에도 재능이 있어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낙점 받았고 머지않아 에이스의 반열에 올랐다.
 올해 5월에 있었던 황금사자기를 제외하면 최근 3년 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던 이현우의 모교가 준우승 단골손님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순전히 그의 활약 덕분이라는 걸 대다수의 스카우터들이 알고 있다.
 아마 3달 전이었다면 광주 야크스가 한경수와 이현우 중 누굴 1차 지명으로 꼽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3달 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이현우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서 팔꿈치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 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그의 인기는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무리한 혹사가 부상의 원인이었다.
 토미 존 부상의 경우 수술 후 재활을 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우며, 재활에 성공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선수들이 토미 존 수술 후 재기에 실패해서 유니폼을 벗기도 한다.
 구단들의 경우 불과 3달 전에 토미 존 수술을 한 이현우에게 부담을 느꼈고, 1차 지명이나 2차 1라운드에서 지명될 거라던 예상과 많이 달라지게 됐다.
 아무리 그래도 2차 10지명까지 이현우가 지명되지 않은 건 노정성 단장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재활만 충실하게 하면 당장 내년 후반기부터라도 즉시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이현우 선수다. 그의 직구와 슬라이더는 프로에서도 충분히 먹혀.’
 노정성 단정은 이현우와 유현성 중 누구를 지명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유현성을 택했다.
 두 선수 모두를 지명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 끝에 재활을 해야 하는 이현우보다는 빠르게 즉시 전력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현성을 택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를 지명할 수 있다면?
 ‘우리 대전 펠컨스는 좋은 타선을 갖춘 강팀이기는 했지만 투수력의 부족으로 우승에 도전할 전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하지만 유현성 선수와 이현우 선수를 모두 지명하고 두 선수를 정상급 선발로 키워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대전 펠컨스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
 우승.
 1999년 이후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대전 펠컨스의 숙원. 자질이 뛰어난 유현성과 이현우가 정상적으로 성장만 해준다면, 우승도 꿈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마친 노정성 단장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저희 대전 펠컨스는 이현우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 * *
 
 대전의 한 고깃집.
 대전 펠컨스의 2006년 신인지명 선수들이 노정성 단장과 대전 펠컨스 2군 감독인 최정훈과 함께 둘러앉아 있었다.
 노정성 단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아직 풋풋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주신 선수 여러분 고맙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고 모르는 분도 계실 테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전 대전 펠컨스의 노정성 단장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다들 아시겠지만 올해부터 대전 펠컨스 2군 감독을 맡고 계신 최정훈 감독님이십니다.”
 “최정훈 감독이다. 다들 만나서 반갑다. 입단하면 다들 잘해보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독님!”
 최정훈.
 그는 80년대 광주 야크스의 선정훈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야구 선수였다.
 철완으로 불리며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전성기를 보냈던 최정훈은 이번에 대전 펠컨스에 입단하게 된 선수들에게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대단한 선수였다.
 특히나 1984년도에 51경기에 등판해 284와 2/3이닝을 던져 27승 13패 6세이브 8피홈런 71사사구 223탈삼진을 기록하였고, 무려 14번이나 완투를 하며 전설적인 시즌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해에 지금까지 최정훈을 제외하면 단 한 명도 기록하지 못한 한국시리즈 4승을 해내며 부산 알바트로스를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그는 통산 248경기에 출전해 105승 70패 평균자책점 2.26 1059탈삼진을 기록하는 업적을 남겼다.
 단순 성적만 놓고 보면 당시에 최정훈보다도 뛰어난 기록을 남긴 선수들 또한 있지만, 최정훈을 재끼고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추양 받는다. 대다수의 선수들과 다르게 최정훈은 프로에 데뷔하기 전 이미 실업야구에서 혹사에 가까운 선수 생활을 한 뒤 프로가 됐기 때문이다.
 선정훈과의 15이닝 연장 무승부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영화로 제작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 전설적인 선수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신예 선수들의 대부분은 감격에 겨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대전 펠컨스에 지명된 선수들은 어릴 때 최정훈 감독의 활약상을 두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상 자료와 기록은 수없이 남아 있다.
 최정훈 감독의 활약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한 선수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야구 선수였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최정훈은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은 채 선수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선수들 모두 아직은 미성년자였기에 술은 건네지 않았다. 노정성 단장과 최정훈 또한 선수들을 배려해 술이 아닌 음료수를 마셨다.
 유한상과 유현성의 뒤를 이어 이현우의 손을 잡은 채 최정훈이 미소를 지었다.
 “현우야,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입니다, 감독님.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내가 꼭 대전 펠컨스에 입단하라고 했었는데 정말로 네가 입단하게 되는구나. 앞으로 잘 해보자!”
 약 4달 전.
 이현우의 모교 야구팀은 황금사자기 대회에 앞서 대전 펠컨스 2군 선수들과 친선 경기를 가질 기회를 얻었다.
 최정훈 감독이 은퇴 후 고교 감독을 맡고 있는 후배의 거듭된 부탁을 받아들이면서 경기가 성사된 것이다.
 최정훈의 감독의 입장에서는 고교 선수들의 실력을 두 눈으로 보고 신인지명회의에 반영할 수 있기에, 술 한 잔 얻어 마시는 조건으로 부탁을 받아들였다.
 당연하지만 최정훈 감독은 대전 펠컨스 2군 선수들이 압도할 거라고 예상했다.
 이현우의 모교가 전국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하는 팀인 건 분명하지만, 프로와의 격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고교에서 날고 긴다는 선수들이 모인 게 프로다.
 비록 1군이 아니라지만 2군 또한 고등학교 팀과의 격차는 상당하다.
 하지만.
 최정훈의 감독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친선 경기에서 이현우는 7이닝 동안 1점도 내주지 않은 채 삼진 11개를 잡으며 대전 펠컨스 2군 선수들을 압도했다.
 빠르고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들어가도 선수들의 방망이가 밀리기 일쑤였고, 직구와 함께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섞어 던진 때마다 선수들의 방망이가 허무하게 헛돌았다.
 그날, 최정훈은 이현우의 가능성을 단숨에 알아봤다.
 불같은 포심 패스트볼과 같은 날카로운 슬러이더의 조합은 환상적이었고, 제구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 구위가 압도적이다 보니 타자들을 찍어 누르는 스타일의 피칭을 했다.
 프로에 입단해 하체를 이용해 투구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손에 맞는 변화구만 하나 더 찾아 성장한다면 한 시대를 풍미할 특급 투수로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이현우의 연고지는 서울이다.
 이현우가 대전 펠컨스에 입단한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현우가 팔꿈치 수술을 하게 됐다.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미 고1 때부터의 무리한 혹사에 더해 황금사자기에서의 무리한 등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 덕에 다른 구단에서 이현우를 지명하지 않으면서 대전 펠컨스가 2차 10지명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현우야.”
 “네. 감독님.”
 “재활은 잘 하고 있냐?”
 “가벼운 운동을 하며 하체 운동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캐치볼은 아직까지 통증이 남아 있어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 너만 원한다면 대전으로 와서 재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마. 내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피트니스 센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체계적으로 재활 운동을 할 수 있을 거다. 재활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내가 부담해 주마.”
 “하지만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을 텐데요.”
 “어차피 넌 그 상태로 더 이상 대회도 나가지 못할 테고, 2군에서 직접적으로 훈련하는 게 아니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다. 네가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학교에 기여한 것도 있고 감독과 교장은 내가 설득하마.”
 이현우는 최정훈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다.
 보통 토미 존 수술을 하고 3달이면 가볍게 캐치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현우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통증이 많이 남아 있어 캐치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최정훈 감독의 말대로 대전에서 재활을 하면 체계적인 재활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미 존 수술을 받은 뒤 구속이 증가하는 성공 사례들이 부각되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수술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토미 존 수술은 투수의 구속을 증가시켜 주지 않는다.
 재활 과정에서 투구에 필요한 근육들을 단련하는데, 이로 인해 몸이 전보다 더 강해져 구속이 늘어나기도 한다.
 그로 인해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면 구속이 올라간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토미 존 수술을 받고 구속이 10㎞가 넘게 떨어진 투수들도 허다하다.
 그나마 투구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상당수의 선수들이 토미 존 수술을 받은 뒤 지독한 고통과 인내가 필요한 재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은퇴를 한다.
 이현우 역시 제대로 된 재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캐치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이대로 선수 생명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 와중에 최정훈이 재활에 도움이 준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설적인 투수인 최정훈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이현우의 마음을 흔드는 계기가 됐다.
 프로에서 투 피치만으론 선발투수로서 대성하기는 힘들다.
 이전과 다르게 전력분석이 고도로 발달했기에 투 피치 피처의 경우 분석을 통해 습관이나 약점을 파악당해 공략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이현우가 던질 수 있는 공은 150㎞의 포심 패스트볼과 141㎞의 날카로운 슬라이더까지 단 두 개뿐이다.
 서드 피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구종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대부분 손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최정훈 감독의 도움을 받다 그의 전성기 시절 커브를 얼추 비슷하게라도 배울 수 있다면?
 더 이상 서드 피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현우가 프로에서 불펜투수로 성공하려 했다면 서드 피치를 배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현우의 목표는 불펜투수가 아닌 선발투수이다.
 선발투수로서 당당하게 프로야구를 평정한 뒤 메이저리그에도 진출해서 박정원처럼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드 피치의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정훈 감독님 밑에서 열심히 재활을 하자. 그리고 투구를 할 수 있게 되면 커브를 배우자.’
 고민 끝에 이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오늘은 애들과 함께 구단에서 잡아준 숙소에서 푹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나와 함께 서울에 갔다오자꾸나.”
 최정훈은 현역 은퇴를 한 뒤 방송 활동도 하고,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국회의원에도 출마해 봤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의 삶에 늘 목말라 있었다.
 자신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해외 진출을 하지 못했고, 가진 실력에 비해 구단에서 박한 대우를 받아 늘 충돌이 잦았다.
 만약 내가 해외 진출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은퇴한 뒤 최정훈의 머릿속에 늘 맴돌았었다.
 제자를 키우게 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가르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는 투수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은퇴한 뒤에도 그를 찾는 구단은 없었다.
 현역 시절, 최고의 선수로 불렸음에도, 다른 선수들이 은퇴 후 코치가 되는 것에 반해 유독 그만은 모 구단이었던 부산 알바트로스는 물론이거니와 타 구단에서도 코치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지 못했었다.
 이는 선수 시절 그의 이미지로 인해 생긴 일이었다.
 성적에 비해 자신에 대한 대우가 박했던 구단과 늘 연봉협상으로 인해 마찰이 있었고, 1988년에는 선수협을 결성하려는 시도로 인해 결국 대구 피닉스로 트레이드가 됐다.
 당시 최정훈은 광주 야크스의 투수 김대현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선수 복지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선수협을 만들려 했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선수협을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구단들의 강한 반발에 밀려 선수협 결성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최정훈이 자신의 연봉을 올리기 위해 선수협을 조직하려 했다, 명예욕에 따른 움직임이라는 둥 온갖 비난이 그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순수하게 동료들을 도우려 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일로 인해 반골 이미지가 박혀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음에도 은퇴 후 코치로 불러주는 구단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후회하는 건 현역 시절 트레이드 후 재기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은퇴를 했던 것, 그리고 자신이 가진 야구 지식을 활용해 제자들을 키워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01년 대전 펠컨스에서 최정훈에게 코치 제의를 했다.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코치를 하게 됐지만, 계약 기간 1년 채운 후 재계약에 실패, 2004년 다시 코치가 되어 2005년에는 2군 감독을 맡고 있다.
 2군 감독일지라도 그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늦게 잠을 청했으며, 선수들이 훈련하는 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기 위해 노력했고, 선수 개개인에게 맞는 훈련법과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마음가짐 등을 전수하며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키워 나갔다.
 자신이 가르친 선수들이 1군으로 올라가 활약하는 걸 보는 게 삶의 낙이었다.
 그런 최정훈의 눈에는 이현우의 재능은 자신과 비슷한,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도 뛰어나다고 느껴졌다.
 토미 존 수술을 받은 건 흠이 될 수도 있지만 최정훈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재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대로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고 이전보다도 빠르고 강하게 공을 던질 수도 있는 게 바로 토미 존 수술이다.
 그래서 그는 이현우를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다.
 최정훈 역시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온갖 부상을 몸에 달고 살았다.
 재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현우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시즌 개막과 함께 현우가 경기를 뛸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몸만 회복된다면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1군을 초토화시킬 수 있어. 이 아이나 유현성은 어쩌면 내 커브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최정훈은 2군 투수들에게 자신이 던졌던 커브 그립과 투구 방법에 대해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투구 폼 자체가 보통 사람들하고는 많이 다른 편이었기에 그립과 투구 방법을 가르쳐 줘도 제대로 소화해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유현성과 이현우라면?
 막연한 생각일 뿐이었지만 두 사람이라면 그립을 각자에 맞게 바꿔 연습한다면 충분히 커브를 배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성이 너는 대회가 모두 끝나면 대전으로 내려오도록 해라. 난 널 내년 스프링캠프 때 김현석 감독님에게 소개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네가 가진 모든 능력을 보이려면 겨울에 부단히 몸을 만들어야 한다. 알겠냐?”
 “알겠습니다, 감독님!”
 “다른 선수들도 잘 들어라. 난 너희들이 원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가르쳐 줄 것이다. 대회가 모두 끝나고 대전으로 내려올 사람은 내려와도 좋다. 구단에 말해 숙소를 구해줄 테니 본격적으로 구단에 합류하기 전까지 몸을 만들고 내게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워 가라!”
 “네!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최정훈은 터미널에서 선수들을 모두 보낸 뒤 이현우와 함께 자신의 차를 타고 이현우의 모교를 방문했다.
 다행히 이야기는 잘 끝났다.
 학교 측에서는 이현우가 대전에서 훈련하는 걸 허락했다.
 그 동안 고교 대회에서 이현우가 팀을 위해 공헌해 준 것도 있거니와,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한 대가로 팔꿈치 부상을 입은 게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나온 최정훈이 향한 곳은 이현우의 집이었다.
 최정훈은 이현우가 대전에서 재활을 해야 한다고 이현우의 부모를 설득했다.
 진심 어린 최정훈의 마음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얼마 이야기를 듣지도 않은 채 이현우의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최정훈의 손을 잡았다.
 “감독님 뜻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현우를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키워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부부는 감독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아 참, 가시기 전에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고향이 부산이라 최 감독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하하하. 몇 번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최정훈은 야구공 다섯 개에 사인을 해준 뒤 이현우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 후 이현우가 다니던 피트니스 센터를 들려 재활에 필요한 운동을 간단하게 가르쳐 준 뒤 여섯 시가 되자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 도착해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본 뒤 한 오피스텔로 들어간 최정훈은 802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 열 시가 되어 있었다.
 “구단에서 널 위해 구해준 집이다. 혼자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거야. 간단하게 먹을거리들을 사왔으니 끼니를 거르면 안 된다. 재활을 할 때는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우선이니까.”
 “알겠습니다, 감독님.”
 “저녁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나와 함께 먹을 테니 아침과 점심만 잘 챙겨먹으렴. 그럼 난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보마. 여기 집 주소를 적어 놨다. 짐은 부모님께 택배로 붙여 달라 하면 될 거다. 그럼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오마.”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이현우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최정훈은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우야, 내 꿈이 뭔지 아니?”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메이저리그를 평정할 투수를 키우는 거란다. 솔직히 말하마. 난 네게서 나를 능가하는 재능을 보고 있다. 아무리 훈련이 고되더라도 날 믿고 따라와라. 그럼 내가 널 최고의 투수로 만들어주마.”
 이현우는 최정훈 감독의 말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정민석 감독 역시 고교 입학 당시 이현우를 최고의 투수로 만들어주겠다 했지만, 그가 해준 거라곤 지독한 혹사로 이현우의 팔꿈치 인대를 끊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최정훈이라면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재활도 선뜻 도와준다고 했으니 이현우는 최정훈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고된 훈련이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다면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훈련을 시키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절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키워주세요, 감독님.”
 “그 마음가짐 잊지 말아야 한다. 내일부터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 테니까. 오늘은 푹 쉬렴.”
 “들어가세요, 감독님.”
 최정훈이 나간 뒤 이현우는 장을 봐온 것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집 안을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청소가 다 되어 있고 기본적인 살림살이들이 모두 준비되어 있는 걸 보니 정말로 구단에서 구해준 집이 맞는 것 같았다.
 정리를 끝낸 이현우는 미소를 지은 채 침대에 누웠다.
 사실 토미 존 수술을 받은 뒤 재활을 하며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팔꿈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졌고, 밤마다 통증이 심해 잠을 거른 적이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이현우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려운 형편에도 자신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과, 가수가 되고 싶어 했지만 자신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여동생,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자신을 뒷바라지하겠다고 나선 형 때문이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느꼈다.
 혹시 재활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재활을 끝내도 구속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부상 때문에 프로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던 중 최정훈이라는 구세주를 만났다.
 최정훈의 말대로만 한다면 재활에 성공해서 예전처럼 다시 마운드 위에 서서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감독님을 따라 열심히 재활하자. 반드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무대 위에 오르고 말겠어.’
 주먹을 꽉 움켜쥔 이현우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날 밤 이현우는 토미 존 수술을 한 이후 처음으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이현우는 최정훈을 따라 한밭야구장으로 이동해 오전 경기를 위해 나와 있는 2군 선수들에게 인사를 한 뒤 근처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로 갔다.
 피트니스 센터 사장은 최정훈이 들어오자마자 다가와 인사를 했다.
 “형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너한테 애 한 명 맡겨놓으려고. 현우야. 인사드려라. 이쪽은 내 후배이자 피트니스 센터 사장인 정성우라고 한다.”
 “안녕하십니까! 이현우라고 합니다!”
 “그래. 반갑다. 가만, 이현우라면 이번에 대전 펠컨스에 지명된 애 맞죠? 그 고교 2대 투수라는 녀석.”
 “맞아. 근데 이 녀석 토미 존 수술한 지 3달 정도 됐다. 내년에 1군에 올려 보낼 거니까 네가 몸 좀 만들어 줘야겠다.”
 “캐치볼은요?”
 “재활을 엉망으로 해서 캐치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야. 뭐, 캐치볼이든 롱 토스든 현우 몸 상태 지켜보면서 네가 알아서 해. 재활은 나보다 네가 전문 아니냐.”
 정성우는 선수로서 그리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다.
 그는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수술을 했고, 12년 동안 현역 생활을 하면서 무려 5번이나 수술을 하며 재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의 프로 통산 성적은 55승 40패 방어율 3.79이다.
 하지만 1996년에는 15승 7패 방어율 2.77, 1997년에는 14승 9패 방어율 3.12를 기록하며 짧은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재활 시스템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정성우의 재활 노하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정성우는 프로 입단 당시 직구 평균 구속이 135㎞ 정도에 불과했지만, 토미 존 수술 후 2년간의 재활을 거쳐 142㎞대까지 평균 구속이 향상됐다.
 그는 선수로서 유명세를 떨치지는 못했지만 토미 존 수술 후 재활의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최정훈이 이현우를 정성우에게 데려온 건 그 때문이었다.
 재활에 남다른 노하우가 있는 정성우라면 이현우의 재활을 도울 수 있다.
 최정훈은 2군 감독이다 보니 원정 경기를 다니는 날이 많아 스프링캠프 기간이나 이현우가 2군에 정식으로 합류하지 않으면 꾸준하게 신경을 써줄 수 없지만,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하는 정성우라면 항시 신경을 써줄 수 있다.
 게다가 이 피트니스 센터는 야구 선수들이 사용하는 운동기구들도 많이 있어 대전 펠컨스의 선수들도 다수 이용하는 대전 최고의 피트니스 센터로 정평이 나 있다.
 “현우야, 이제부터는 성우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재활을 하면 된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피트니스 센터에 와야 한다. 알겠니?”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난 2군 경기 때문에 가봐야겠다. 저녁에 올 테니 그동안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야 한다. 성우야, 이 녀석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최정훈이 떠난 뒤 정성우가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이란 호칭은 너무 딱딱하다. 나이 차이도 있으니까 편하게 삼촌이라고 불러.”
 “으음.”
 머뭇거리던 이현우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삼촌.”
 “재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네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이걸 지키지 못하면 넌 또다시 부상을 입고 어쩌면 빠르게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제가 명심해야 할 게 무엇인가요?”
 “다시 마운드에 서더라도 위급한 상황이 아닌 한 절대로 전력투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현우는 정성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이현우는 투수의 매력이 마운드에서 전력 피칭을 해 강속구로 삼진을 잡는 거라 생각해 왔고, 늘 그렇게 야구를 배워왔기에 정성우의 말이 납득이 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삼촌의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타자들을 상대할 때는 전력투구를 해서 이기는 게 기본 아닌가요?”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다. 공을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그리고 전력투구를 하면 할수록 어깨에는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력투구를 하면 대부분의 투수들이 미묘하게나마 투구 밸런스가 흔들리게 된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계속해서 전력투구를 하면 몸이 버텨낼 수가 없어.”
 “하지만 전력투구를 하지 않으면 투수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는 거 아닌가요?”
 “몸이 착실하게 만들고 안정적으로 투구 밸런스를 유지하면 90%의 힘으로만 던져도 충분히 투수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구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 그편이 제구를 잡기에도 좋고 말이다. 90% 힘으로 던져 제구가 된 공이 타자에게 위협적일까, 아니면 100% 힘으로 던져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를 지나는 공이 타자에게 위협적일까?”
 “음······.”
 정성우의 질문을 들은 이현우는 신음을 흘리며 대답을 고민했다.
 지금껏 이현우는 강속구가 투수의 매력이라 생각해 왔고 중요한 승부처에서 늘 전력투구로 타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왔다. 하지만 구위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제구는 불안했다.
 다만 150㎞의 포심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에 들어오더라도 공략할 수 있는 고교 타자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기에, 이현우는 고교 최대어 중 한 명으로 손꼽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과연 프로에서도 전력투구로 타자들과 승부해서 이길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이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프로에 가면 스윙 타이밍을 빨리 잡아서 제구가 되지 않는 150㎞의 포심 패스트볼을 공략하는 타자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90%의 힘으로 제구를 잡고 공을 던지는 게 오히려 타자와의 승부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
 “90%의 힘으로 던져 제구가 잡힌 공이 타자와의 싸움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구위도 중요하지만 제구가 받쳐 주지 않는다면 완벽한 투수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명심해라. 100구를 전력투구하면서 완벽하게 제구를 할 수 있는 투수는 지구상에 없어.”
 “네. 알겠어요, 삼촌.”
 “요즘 투수들은 100구 내외로 던지며 한 시즌만 보내도 부상을 입는데, 우리 때는 150구를 넘게 던지며 수시로 등판하면서도 잘 투구했었다. 왜 그런지 아니? 대부분 안정적인 투구 밸런스를 유지한 채 90%의 힘으로 던지며 필요할 때는 완급조절을 했기 때문이야. 정훈이 형도 동일이 형도 다 그랬지. 안정적인 투구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면 100구를 던져도, 150구를 던져도 피로가 심하게 누적되지 않는다. 성공하고 싶으면 내가 한 말을 명심해야 한다.”
 “명심할게요. 투수를 하면서 되도록 전력투구를 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이현우는 정성우가 하는 말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아직 프로 데뷔도 하지 않은 이현우가 정성우의 말이 모두 이해하는 건 어려웠지만, 재활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힘겨운 현역 생활을 했던 그의 말이라면 훗날 선수 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야, 팔 한번 뻗어보렴.”
 “아직 팔을 뻗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게 아니라······.”
 “현재 팔꿈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려고 하는 거니까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뻗어보렴.”
 “네.”
 현우는 굽히고 있던 오른팔을 폈다.
 “큭.”
 반절도 펴지 못한 채 통증을 느끼고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 이상은 아파서 못 펴요.”
 “음··· 3개월이면 곧잘 팔을 펴는 선수들도 더러 있는데 아직 절반밖에 안 펴지는구나.”
 “좋지 않은 거예요?”
 “아니다. 나도 5개월 정도는 팔도 제대로 못 필 정도로 통증이 심했으니까 문제될 건 없어. 팔꿈치 회복 속도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정성우는 이현우의 몸 곳곳을 만져 본 뒤 미소를 지었다.
 “수술을 한 뒤 재활을 꾸준히 했나 보구나. 몸이 적당히 잘 단련되어 있어. 하지만 근육양이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니 평소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구나.”
 “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아도 구속이 잘 나오다 보니 기본적인 정도만 했어요.”
 “프로에서 성공하려면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을 꾸준히, 그리고 누구보다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단다. 안정적인 투구 밸런스는 하체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고, 어깨와 팔의 근육은 투구 시의 부상을 최대한 줄여주니까. 물론 너무 많이 하는 건 좋지 않겠지만 말이야.”
 “명심할게요.”
 “지금부터 내가 프로에서 했던 운동 방법을 하나둘 가르쳐 주마. 그리고 통증이 심할 수도 있지만 팔을 모두 펼 수 있게 천천히 자극을 줄 거다. 팔꿈치를 모두 펼 수 있어야지 제대로 어깨와 팔꿈치 주변 근육 단련을 할 있으니까. 일단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나와라.”
 “네!”
 이현우는 탈의실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오늘 그 옷에서 땀을 짜면 바가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힘들게 훈련을 할 거다.”
 이현우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어도 좋았다. 옷이 땀에 흠뻑 젖더라도, 너무 힘들어서 구토를 하더라도 괜찮았다. 재활에 성공해서 다시 마운드에서 강속구를 뿌릴 수만 있다면 그런 것쯤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괜찮으니까 마음껏 훈련시켜 주세요.”
 “오냐. 화장실 가서 토할 각오하고 있어라.”
 정성우는 이현우를 50분 운동하고 10분 쉬기를 반복하며 저녁 8시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운동을 시켰다.
 유일하게 쉬는 시간은 점심을 먹었던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였다.
 그사이 이현우는 다섯 번이나 구토를 했다.
 평소에 운동을 되도록 거르지 않았고 토미 존 수술을 한 뒤에는 꾸준히 재활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10시간이 넘게 운동을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두어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어떻게 운동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근육이 뭉치고 다리가 풀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고 동계 훈련도 매년 갔지만 이처럼 힘든 운동을 한 건 처음이었다.
 “우욱. 우웨웩!”
 운동이 모두 끝나자마자 이현우는 또 다시 화장실로 뛰어가 구토를 했다.
 점심에 먹은 고기는 이미 운동을 하던 중에 다 토했고, 입에서 나오는 건 누런 액체밖에 없음에도 변기에 얼굴을 묻고 한참 동안 고통스러워했다.
 입고 있는 운동복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정말로 옷을 짜면 땀이 바가지를 가득 채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성우는 구토를 하는 이현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괜찮냐, 현우야?”
 “네. 괜, 괜찬··· 우욱!”
 한참 동안 빈속에 구토를 한 뒤에야 이현우는 세면대에서 입을 행구고 세수를 할 수 있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이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했는데 이렇게 힘들게 운동을 한 건 처음이에요.”
 “계속 이렇게 운동을 해서 몸이 단련되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다. 곧 정훈 형님이 오신다고 하니 씻고 옷 갈아입고 나오렴. 밥 먹으러 가자.”
 “네.”
 이현우는 땀에 흠뻑 젖은 운동복을 벗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서 정성우와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식당에 도착할 즈음 최정훈이 합류했다.
 저녁 메뉴는 이현우가 좋아하는 소고기였다.
 고된 운동을 한 뒤로 먹는 밥맛은 꿀맛 같아서 고기가 익자마자 허겁지겁 입으로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정성우의 입가에 미소가 맞였다.
 “누가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먹어도 된다, 현우야.”
 “느엡!”
 “운동을 한 뒤에는 충분히 먹어서 체력 보충을 해주는 게 중요하단다. 그래야 체력이 떨어지지 않아.”
 “느엡! 아게스이다!”
 이현우는 대답을 하는 상황에서도 입에 고기를 쑤셔 넣으며 복스럽게 먹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식사를 끝낸 뒤 소화를 위해 집까지 걸어간 이현우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워 곧장 잠이 들었다.
 워낙 고된 운동을 한 덕에 팔이 아픈 걸 느낄 새도 없이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 * *
 
 그날 이후로 이현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된 운동을 해나갔다. 처음 2주 동안은 매일 구토를 하며 힘겨워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며 어느 정도 운동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0월 19일, 대구 피닉스와 서울 호네츠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리는 날이 됐다.
 그날 이현우는 토미 존 수술 후 처음으로 팔을 완전히 펴며 고된 재활 훈련의 성과를 처음으로 맛봤다.
 얼마나 기뻤는지 운동 중에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
 운동을 끝내고 정성우와 최정훈과 함께 식사를 하러 온 이현우는 고기를 먹으면서도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경기 초반부터 대구 피닉스 타자들은 서울 호네츠의 선발 투스 리아스를 거침없이 공략해 나갔다.
 1회 초 1사 1, 3루에서 심성주의 3루 땅볼 때 3루 주자 조동천이 홈플레이트를 먼저 밟아 득점에 성공했다.
 3회 초에는 선두 타자 김재갈이 볼넷으로 나간 후 리아스의 폭투 때 3루까지 내달려 무사 3루를 만든 상황에서 김종한의 우익수 플라이로 한 점을 추가했다.
 그 직후 박한희의 솔로 홈런이 터지며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4회 초에는 박진안의 내야 안타로 1점을 보태 점수를 4-0까지 벌렸다.
 호네츠는 6회 말 1사 1, 2루에서 3번 타자 최경완의 우전 적시타로 1점을 만회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김동조와 안장헌이 삼진과 범타로 물러나며 그 뒤로 점수를 뽑지 못했다.
 피닉스는 그 후로도 6점을 더 뽑으며 4차전을 10-1로 대승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TV에서 대구 피닉스가 우승을 자축하는 장면을 방송하고 있었다. 이현우는 오수환이 한국시리즈 MVP에 뽑히는 걸 보며 생각에 잠겼다.
 ‘멋있다. 나도 저렇게 대전 펠컨스 팀에서 한국시리즈를 진출해 우승하고 싶다. 그리고 오수환 선배처럼 한국시리즈 MVP가 되고 싶다.’
 대전 펠컨스는 준 플레이오프를 승리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지며 한국 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강팀인 펠컨스이지만 유독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어 99년에 우승을 한 게 전부였다.
 이현우는 그런 펠컨스에 소속되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자신이 마운드에서 선배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점수를 내주지 않고, 팀 동료들이 점수를 내서 한국시리즈 승리투수가 되는 상상,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MVP가 되는 게 현실이 되기를 바랐다.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되어 당당히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고 싶었다.
 그렇게 아직 프로 무대 데뷔조차 하지 않은 이현우의 첫 목표는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 * *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3일 후, 대전 펠컨스는 본격적으로 2차 지명 대상자들과 계약하기 시작했다.
 이미 1차 지명 대상자들은 각 구단들과 계약을 마친 뒤였다.
 한경수가 신인 최고 계약금인 10억에 광주 야크스와 계약하고, 대전 펠컨스의 1차 지명자인 유한상은 대전 펠컨스 구단 사상 신인 최고 계약금인 5억 5천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보통 2차 지명 대상자들과의 계약은 상위 지명자들부터 계약하기에 단장실에는 유현성이 가장 먼저 들어갔다.
 한데 유현성과 함께 이현우도 같이 들어갔다.
 단장의 부름을 듣고 같이 들어온 두 사람이지만, 왜 자신들이 같이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 다 내가 왜 부른지는 알고 있지?”
 “네. 계약 때문이죠. 그런데 왜 저희 둘이 같이 들어온 건가요?”
 “너희 둘을 같이 부른 건 같은 조건으로 계약금을 책정했기 때문이란다.”
 노정성 단장의 말에 이현우는 의아해했다.
 분명 유현성이 2차 2순위 지명자이고 자신은 2차 10순위 지명자인데 조건이 같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희 둘의 조건이 같아요? 현성이가 더 높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현성이의 계약금은 2억 5천만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현우 네 계약금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한경수와 함께 고교 최대어로 분류되던 네가 부상 때문에 지명 순위가 낮아졌다고 해서 계약금을 무조건 깎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현성이와 같은 2억 5천만 원에 계약하려고 한다. 원래는 두 사람 모두 1차 지명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줘야 하지만, 관례상 2차 지명자에게 너무 많은 계약금을 줄 수 없으니 이해해 주렴.”
 “아닙니다, 단장님. 2억 5천만 원은 받을 수 없습니다.”
 “왜? 혹시 돈이 부족해서 그러냐? 마음 같아서는 더 챙겨주고 싶지만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이나 현성이의 입장을 고려하면 2억 5천만 원 이상은 주기가······.”
 “그게 아닙니다. 현성이는 2차 2순위 지명자이고 전 2차 10순위 지명자 아닙니까. 한데 제가 현성이와 같은 금액을 받으면 오히려 현성이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현성이보다 낮은 계약금을 책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계약금을 좀 적게 받더라도 1차 지명자들보다 야구를 잘해서 연봉을 더 많이 받으면 됩니다.”
 이현우의 말을 듣고 노정성 단장은 고민에 빠졌다.
 보통 신인 선수들은 계약금을 많이 받기를 원하며, 협상 테이블에 앉아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을지 궁리한다.
 하지만 이현우의 반응은 일반적인 신인들과 달랐다.
 그 말을 들은 노정성 단장은 진심으로 놀랐다.
 ‘아직 20살도 안 된 신인이라면 계약금에 욕심내는 게 당연한데, 현우는 오히려 현성이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자신의 계약금을 깎으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인데······.’
 사람이 돈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물론 프로의 가치는 돈으로 증명된다고 할 정도로 야구 선수와 돈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적이 잘 나오는 선수들은 자신의 실력과 자존심을 인정받기 위해 높은 수준의 연봉 인상을 원하고, 신인 선수들 역시 한 푼이라도 더 많은 계약금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현우는 유현성의 자존심을 살려준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자신의 계약금을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이현우와 유현성이 같은 계약금을 받으면 언론에서 안 좋은 말들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
 2차 2라운드 지명선수와 2차 10라운드 지명선수가 같은 계약금을 받은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니까.
 그럼 점들을 미루어 볼 때 이현우는 유현성의 자존심도 세워주고 언론에서 말도 나오지 않는 방법을 노정성 단장에게 제시했다.
 자신의 계약금을 낮춰가면서 말이다.
 노정성 단장의 입장에서는 이현우가 스스로 계약금을 낮추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현우 네 뜻이 그렇다면 계약금을 조금 낮추도록 하마. 3천만 원 낮춰서 2억 2천만 원, 어떠냐?”
 “계약하겠습니다.”
 유현성과 이현우는 흔쾌히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2라운드 상위 지명자로서는 꽤 많은 금액인 2억 5천만 원에 계약하게 된 유현성은 당연히 만족했고, 토미 존 수술로 인해 낮은 금액을 제시받을 거라 예상했건만 유현성과 비슷한 조건으로 계약하게 된 이현우 또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 노정성 단장이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해보자. 아니, 잘해봅시다. 유현성 선수! 이현우 선수!”
 “열심히 하겠습니다, 단장님.”
 “장차 대전 펠컨스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계약금은 10일 내로 입금될 거다. 부모님이 대전으로 이사를 오시겠다고 하면 구단에서 집을 알아봐 주마.”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다시 자리에 앉으며 노정성 단장이 물었다.
 “현우야, 듣자 하니 정성우 사장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재활을 순조롭게 하고 있다더구나.”
 “네. 이제는 팔을 완전히 펴도 통증이 없습니다. 내일부터는 가볍게 캐치볼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단계적 투구 프로그램은?”
 “재활 상황을 체크해 봐야 알겠지만 스프링캠프 전에는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몸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최정훈 감독님에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단계적 투구 프로그램, ITP(Interval Throwing Program)는 부상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단계별 투구를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인 토미 존 수술을 만들어 낸 프랭크 조브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고안되었고, 토미 존 수술을 한 선수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적용해 재활에 성공한 것이 ITP의 시작이었다.
 수술 후 실시하는 ITP는 쉐도우 피칭을 거쳐 15m부터 시작해 60m까지 거리와 투구 수를 늘리면서 점진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국내에는 1990년대 초 서울 스텔스의 사령탑이었던 이광완 감독이 동계 훈련 중 투수와 야수 모두에게 걸쳐 실시하면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최근에는 투수들의 토미 존 수술이 유행하면서 ITP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재활이 강조되고 있다.
 노정성 단장은 이현우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구나. 구단에서도 네 재활이 순조롭다고 하니 집을 구해준 것에 만족하고 있단다. 하지만 아쉽게도 2군 캠프에는 참여하지 못할 거다. 부상자는 2군 캠프에서 제대로 된 재활을 할 수가 없어 아마 대전에서 재활군을 따로 꾸릴 거다.”
 “단장님,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다면 따로 재활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재활군에 합류하는 것도 좋지만 정성우 삼촌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는 재활이 워낙 효율적이다 보니······.”
 “그 부분은 재활군 코치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통보해 주도록 하마. 내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거 같다.”
 “알겠습니다.”
 보통 구단 프런트는 선수 영입과 편의성 제공 및 구단 운영에만 초점을 맞추고 현장은 감독과 코치들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게 가장 좋은 구단 운영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대부분의 구단도 프런트의 간섭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구단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프런트가 현장에 간섭하며 감독들에게 선수들의 선발 출장에 대해서까지 명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감독들을 일종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프런트가 현장에 간섭을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낸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프런트 야구를 지향하던 구단들은 연이어 하위권 성적만을 거뒀다.
 권한이 없는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한 시즌 동안 팀을 이끌어야 하는 감독이 무시를 당하는 마당에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는 선수들이 꼭두각시인 감독에게 반기를 들고 경기 출장을 거부하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뒤 대부분의 구단들은 프런트가 현장에 최소한으로 간섭하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여전히 프런트 야구를 하는 구단들도 있긴 하지만 성적이 좋은 팀들은 프런트 야구를 접고 현장에 전권을 위임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전 펠컨스 역시 현 감독인 김현석 감독에게 현장의 전권을 위임한 채 뒤에서 도움만 주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현우가 따로 재활을 하는 건 현장에서 결정할 일이지 노정성 단장이 직접 결정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현성이 너는 2군 캠프에 참가해서 훈련을 하게 될 거다. 이미 피트니스 센터에서 어느 정도 몸을 만들었다고 하니 기대하마. 2군 캠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1군 스프링캠프에 참여할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거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노정성 단장의 방에서 나와 한참 복도를 걸어간 유현성과 이현우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현성아, 축하한다.”
 “너도 축하해. 그리고 고마워. 난 네가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게 좋겠다 싶어서 단장님께 말씀드렸던 건데,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할 경우 구단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어.”
 “나야말로 고마워. 사실 계약금에 대해서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고 있었거든. 2억 2천만 원이나 받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
 “둘 다 열심히 노력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가 되자.”
 “지금 내가 너보다 계약금을 적게 받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계약금을 적게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실력으로 증명해 보일 거야.”
 이현우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유현성보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보다 낮은 순번으로 지명됐고 적은 계약금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토미 존 수술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현우는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을 갱신할 게 거의 확실시되었었다.
 하지만 이현우는 황금사자기 대회 이후 토미 존 수술을 받았으며 주가가 급락했다.
 결국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 갱신이라는 영광은 이현우와 유현성이 계약하기 하루 전, 광주 야크스와 10억 원에 계열을 체결한 한경수가 차지하게 됐다.
 ‘수술 때문에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 갱신 기회를 놓친 건 아쉽지만 괜찮아. 토미 존 수술을 할 때부터 계약금에 대한 건 기대를 접었으니까. 2억 2천만 원에 계약을 한 것도 나에게는 큰 성과다. 하지만······.’
 이현우는 무심결에 주먹을 움켜쥐며 힘을 주었다.
 ‘프로 데뷔 후 성적에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야. 절대로.’
 이현우의 목표는 철완 최정훈처럼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프로야구를 평정한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박정원의 뒤를 이어 선발투수로서 업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계약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설사 계약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계약을 했더라도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계약금이 아니라 프로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몸낼 수 있는 기회이고, 돈은 좋은 성적을 거둬 다른 선수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두고 봐.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뒤 메이저리그에 직행할 테니까.”
 “나도 박정원 선배님처럼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 물론 일단은 프로 무대에 데뷔부터 하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야. 우리 둘 다 열심히 해서 목표한 걸 반드시 이루자.”
 “하하하. 그래. 난 데뷔도 데뷔지만 재활부터 빨리 끝내는 게 가장 시급하기는 하지.”
 “나도 토미 존 수술을 해봐서 하는데 재활 과정이 야구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 정도로 힘들 거야. 구속도 한동안은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을 테고.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결국 네 실력을 찾게 될 거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마.”
 “응. 그러려고 노력 중이야.”
 “힘내. 난 먼저 가볼게. 인천에 좀 다녀와야 할 거 같아.”
 이미 정성우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같이 운동을 하며 친해졌기에 두 사람 사이는 마치 몇 년을 같이 지낸 친구처럼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유현성이 먼저 한밭야구장을 떠난 뒤 이현우 역시 구장을 나와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계약을 했다고 한들 운동을 거를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계약을 한 이상 진짜로 프로야구 선수가 된 것이니 반드시 재활에 성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피트니스 센터로 가는 동안 이현우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에요. 방금 단장님하고 만나서 계약서 쓰고 운동하러 나가면서 전화드리는 거예요.”
 -현우야. 계약금을 많이 받지 못했겠지만 실망하지 마라.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계약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해마다 연봉으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단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인 2억 2천만 원을 받기로 했어요. 10일 내로 제 계좌에 입금해 주신다고 하셨어요.”
 -······그게 정말이냐?
 “네. 2차 2라운드에 지명된 현성이가 2억 5천만 원을 받았으니까, 구단 입장에서는 최대한 대우를 해준 거고 저 역시 만족해요. 사실 전 5천만 원만 받아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네가 토미 존 수술로 인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계약을 하면 혹여나 야구에 대해 흥미를 잃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이현우의 아버지는 2차 10순위 지명자임에도 불구하고 2억 2천만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는 사실에 울컥했는지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고교 최대어로 불리며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던 이현우이기에 언론에서는 신인 최고 계약금을 갱신할 수 있을 거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한순간 상위권 지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혹시나 이현우가 상위권에 지명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프로에 입단해 야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까 봐 밤잠을 설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다행히 2차 10지명으로 대전 펠컨스와 계약을 하게 됐지만, 사실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1억 원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대전 펠컨스에서는 이현우의 가치를 인정해서 2억 2천만 원의 계약금을 책정해 줬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들이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그보다 기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흔들리자 이현우는 괜히 자신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 같아 전화를 끊고 피트니스 센터로 가서 운동에 매진했다.
 며칠 후 노정성 단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김현석 대전 펠컨스 감독과 재활군 코치들이 이현우가 따로 재활을 하는 데에 동의를 했다는 희소식을 이현우에게 전해주었다.
 단, 만약을 대비해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대전 펠컨스에서 지정해 준 병원에서 몸 상태를 꾸준히 점검하고, 몸에 문제가 생기면 그 즉시 재활군에 합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현우는 구단에서 내건 조건에 흔쾌히 동의했다.
 정성우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재활을 하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팔도 제대로 펴지고 캐치볼도 조금씩 시작했기에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에는 몸 상태를 거의 정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이현우의 기대감은 머지않아 무너졌다.
 
 * * *
 
 대전 펠컨스는 11월 12일부터 시작되는 남해 2군 캠프에 부상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걸로 결정했다.
 유한상과 유현성을 포함한 신인 선수들의 이름은 2군 캠프 참여선수 명단에 있었지만, 토미 존 수술 후 재활 중인 이현우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부상자들은 재활군에 포함되어 한밭야구장과 트레이닝 센터를 오가며 재활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현우는 김현석 감독과 재활군 코치들이 특별히 허락을 해 별도로 재활할 수 있게 됐다.
 2군 선수와 신인 선수들이 남해 2군 캠프로 떠난 뒤에도 이현우는 이전과 다름없이 꾸준하게 재활 운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11월 21일,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일어났다.
 정성우의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당분간 피트니스 센터의 관리를 직원들에게 맡기고 고향으로 내려가 병간호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성우가 없으면 이현우도 따로 재활을 할 수가 없다.
 재활 운동이야 이미 배운 게 있어 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만큼 운동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동안 정성우는 이현우에게 엄청난 양의 운동량을 강요했지만, 그 와중에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운동과 휴식을 병행하고 철저하게 몸 상태를 체크해 주었다.
 수많은 재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성우가 없다면 이현우 역시 굳이 피트니스 센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성우 삼촌이 없으면 피트니스 센터에서 재활을 하는 게 무의미한데, 그냥 재활군에서 재활을 하는 게 좋으려나······.’
 이현우가 김현석 감독과 재활군 코치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재활군에 합류해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그때, 남해에 있는 최정훈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현우야. 성우가 고향으로 내려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는 걸 들었다.”
 “일단 피트니스 센터에는 꾸준히 나가고 있는데 성우 삼촌이 일대일로 지도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은 안 나요. 재활군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에요.”
 “재활군에 합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음··· 현우야. 재활군에 합류하기 전에 계룡산에 한번 다녀오는 게 어떻겠니?”
 “계룡산이요?”
 “그래. 네가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이 단련되기는 했지만 아직 하체 근력이 많이 부족해. 하체 단련에는 자고로 등산이 최고인 법이야. 계룡산에 선유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내가 선수 시절에도 종종 신세를 졌던 곳인데 그곳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가 재활군에 합류하는 게 어떨까 싶구나.”
 상체 근육에 비해 하체 근육은 단련하는 게 힘들다.
 특히나 허벅지 근육은 단련하기가 매우 힘든 편인데, 가장 좋은 방법을 꼽으라면 러닝과 등산 정도이다.
 특히나 등산은 하체 단련에 효과적이고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는 한 몸에 큰 무리도 없어서 예로부터 많은 선수들이 비시즌 기간에 등산을 하며 하체를 단련하곤 했다.
 “감독님 말씀대로 계룡산에 가겠습니다.”
 이현우는 고민도 하지 않고 최정훈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재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모두 최정훈의 도움 덕분이기에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계룡산에 신원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서 30분 정도 올라가면 선유암이 있다. 자세한 위치는 문자로 가르쳐 주마. 가서도 기본적인 운동들은 꾸준히 해야 한다. 2군 캠프 합류일은 1월 2일로 잡아놓을 테니 그리 알면 된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훈련 잘해서 1월 2일에 건강한 몸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최정훈과의 통화를 끝내자마자 이현우는 짐을 싸서 터미널로 가 곧장 공주로 가는 버스로 탔다.
 물어물어 몇 시간을 이종한 끝에 오후 3시 경에 신원사에 도착했고, 해가 지기 전에 겨우 최정훈이 말한 선유암을 찾을 수 있었다.
 문이 열려 있는 작은 법당과 창고로 보이는 듯한 작은 건물 한 채, 그리고 나무로 만든 오래된 집 한 채와 마당에 놓인 온갖 장독대와 그 위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닭과 병아리와 강아지 두 마리가 선유암에 있는 전부였다.
 집에 딸린 마루에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스님이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스님은 이현우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곧장 눈을 떴다.
 “저··· 스님, 이곳이 선유암 맞습니까?”
 “맞는데 무슨 일로 이 허름한 곳을 찾은 것이오?”
 “아. 제 이름은 이현우라고 합니다. 이번에 대전 펠컨스에 신인 지명을 받은 선수입니다. 이곳은 최정훈 감독님의 소개를 받아 왔습니다.”
 “최정훈이라··· 야구 선수 최정훈이라면 예전에 간간히 이곳을 찾아 와서 산행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
 “여기에 다들 스님들은 없습니까?”
 “없네. 다들 시원사로 내려가서 살고 있지. 이곳에 찾아온 사람도 꽤나 오랜만인 마당에 사람이 살 리가 있겠는가.”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무신을 신은 채 이현우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래서 자네도 최정훈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머물며 산행을 하고 싶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뭐, 방이야 두 개나 남으니까 자네 마음대로 하게. 저녁 먹었는가?”
 “아직 안 먹었습니다.”
 “따뜻한 백숙 한 그릇 하겠는가? 오랜만에 손님이 왔으니 닭다리를 안주 삼아 매실주 한잔하고 싶군.”
 이현우는 스님의 말을 듣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불교에서는 육식과 음주를 금하는데 스님이 떳떳하게 닭백숙에 매실주를 마시겠다니?
 혹시 자신이 선유암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스님 아니셨습니까?”
 “젊은 날의 방탕한 삶을 바로잡기 위해 스님이 되려고 했지만 술과 고기만은 끊을 수가 없더군. 그래서 본의 아니게 땡중이 됐네. 선유암은 신원사의 스님들이 더 이상 관리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내가 맡아 관리하고 있는 것이고.”
 “아. 그러시군요.”
 “그래서 백숙 먹을 건가, 말 건가?”
 “먹겠습니다.”
 “한 시간만 기다리게. 추우면 방에 들어가 있어도 되네.”
 스님은 날이 어두워지자 마루 양 끝에 각각 등불을 건 뒤 장작을 가지고 와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가마솥에 물을 한가득 부었다.
 그 직후 그는 빠른 몸놀림으로 장독대 위에 있는 닭 한 마리의 목을 잡아 그대로 비틀어 죽였다.
 순식간에 닭을 잡은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손질하는 그를 보며 이현우는 희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 행색인데 스님은 아니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몸이 좋고 배도 나오지 않은 건 물론이거니와 빠른 움직임으로 닭의 목을 비트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웬만한 운동선수들조차 그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저 아저씨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이현우가 스님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 동안 어느새 닭백숙이 만들어졌다.
 어느새 냄새를 맡고 몰려온 강아지 두 마리에게 가슴살 부분을 찢어 던져 준 뒤 그는 백숙이 담긴 커다란 그릇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이현우가 방으로 따라 들어가자 온갖 술을 잔뜩 담가놓은 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술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이런 산에서 낙으로 삼을 게 술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산삼 작은 거 한 뿌리 넣었으니까 그건 자네 먹게. 보아 하니 어디 수술해서 몸도 성치 않은 거 같은데 잘 챙겨 먹어야 빨리 낫지.”
 그 순간.
 이현우의 두 눈이 커졌다.
 ‘내가 수술한 걸 어떻게 알지?’
 이현우는 사내에게 자신이 수술했다는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았고, 수술 부위인 오른쪽 팔은 옷 속에 가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내가 자신의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수술을 한 건 어찌 아셨습니까?”
 “비밀이네.”
 닭을 잡을 때 놀라운 움직임을 보여줬고 이제는 자신이 팔꿈치 수술을 했다는 걸 간파한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내는 그런 이현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매실주를 한 잔 들이킬 뿐이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지켜야 될 게 한 가지 있네. 마당에서 내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절대 방해하지 말게. 만약 방해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니까 말이야. 알겠나?”
 “음··· 알겠습니다.”
 “그것만 지켜주면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내도 되네. 고기도 먹고 싶으면 말하게. 철수와 영희 말고 닭들은 다 먹어도 되니까.”
 “철수와 영희요?”
 “강아지들 이름이지.”
 참 이름 한번 못 짓는다는 생각을 하며 이현우는 닭다리를 한입 물어뜯고서 산삼을 입에 집어넣었다.
 정말로 산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몸에 좋다고 하니 일단 먹고 본 것이다.
 “그보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가 말 안 했었나? 내 정신 좀 봐라. 난 최비달이라고 하네. 이곳에 사는 동안 한 번 잘 지내보세.”
 그렇게 최비달과 이현우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 * *
 
 이상한 사람.
 이현우가 함께 생활하면서 본 최비달은 그렇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새벽부터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이현우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준 뒤 마루에 앉아 명상을 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선유암 근처에 있는 텃밭을 관리하고 산나물들을 캐 왔다.
 그 후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한 뒤 마당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체술을 했다.
 저녁이 되면 저녁 식사를 한 뒤 다시 한 번 예불을 드리고 등불에 의지해 잠을 자기 전까지 마당에서 쉴 틈 없이 체술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하는 걸 보면 그냥 이상한 무술을 익힌 스님으로 보였다.
 육식을 하고, 술을 좋아해 방 안 가득 술을 보관하고 있는 걸 보면 불교에서 금하는 걸 지키지는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어느 날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왔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이현우는 입을 쩍 벌린 채 물었다.
 “웬 멧돼지입니까?”
 “아 이 멧돼지 말인가? 텃밭에서 키우던 채소를 파먹고 있어서 목을 비틀어 죽여 버렸네. 채소가 아깝기는 하지만, 덕분에 포식할 수 있게 돼서 좋아. 조금만 기다리게. 금방 손질해서 맛있는 음식 해줄 테니까..”
 “멧돼지 잡는 거 불법 아닙니까?”
 “알게 뭔가. 알 걸리면 되지. 후딱 먹고 해치워버리면 아무도 모르네. 자자. 그러지 말고 모닥불 피워서 물이나 끓이고 있게.”
 휘파람을 불며 자연스럽게 멧돼지를 손질하는 최비달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현우는 어이가 없었다.
 어떨 때는 스님 같다가도 어떨 때는 정말로 파계승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반복했다.
 최비달의 본 모습이 무엇인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최비달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이현우는 아침 식사를 하고 산에 올라갔다가 점심 무렵에 내려왔고, 점심 식사를 한 뒤에는 다시 산에 올라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내려와 마당에서 가볍게 운동을 했다.
 어느 날은 이현우가 몸이 근질근질해 글러브와 공을 매만지며 있자 최비달은 캐치볼 하는 걸 도와줬다.
 그날 이후로 최비달은 하루에 10분에서 30분 정도 이현우가 캐치볼을 하는 걸 도와주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게 됐다.
 추운 날씨 탓에 잘못 캐치볼을 했다가는 오히려 몸에 탈이 날 수가 있기에 산에서 내려온 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짧은 시간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현우는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만족했다.
 아예 캐치볼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야 최비달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나마 캐치볼을 하는 게 어디인가.
 파계승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걸 제외하면 최비달은 같이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최비달과 같이 산 지 한 달이 꼬박 지났다.
 팔꿈치 수술을 하고 약 일곱 달, 그사이 이현우의 외형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원래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호리호리 했던 몸은 혹독한 재활 훈련을 하며 탄탄한 근육질 몸매로 바뀌었다.
 한 달 동안의 등산 덕분에 하체 역시 탄탄해졌다.
 게다가 186㎝였던 키도 이전보다 더 커졌는데, 최비달이 줄자로 이현우의 키를 재보니 190㎝였다.
 몇 달 사이 4㎝나 키가 큰 것이다.
 야구 선수에게, 특히나 투수는 키가 큰 편이 좋다는 걸 감안하면 190㎝라는 키는 이현우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재활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고 하체도 충실하게 단련했으며, 간간히 캐치볼을 하며 가볍게나마 공을 던지다 보니 이현우는 간혹 전력투구를 해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전력투구는커녕 롱토스마저도 허락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게 이현우의 상황이었다.
 충동이 들 때마다 이현우는 2군 캠프에 합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걸로 자신을 위로했다.
 2군 캠프에 합류하기로 한 1월 2일까지는 13일이 남았다.
 짐을 챙기기 위해 12월 31일에 계룡산을 내려갈 걸 감안하면 선유암에 남아 있을 시간은 이제 열흘 정도였다.
 열흘만 있으면 선유암을 떠난다는 걸 계속 상기시키며 마음껏 공을 던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른 채 등산에 집중하거나 정성우가 했던 말을 떠올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토미 존 수술 후 재활 과정에서 선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공을 던지는 행위이다.
 팔꿈치 인대가 몸에 제대로 자리 잡고 주변 근육이 단련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시간이 다 지나기도 전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공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공을 던지면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나중에는 탈이 나고 만다.
 그런 식으로 계속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다 보면 설사 사이영 상을 수상한 선수라 하더라도 얼마 못 가 그저 그런 투수가 되거나 아예 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정성우는 이현우의 재활을 도우며 매일 같은 말을 했다.
 “재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이다. 공을 던지고 싶어도 참고 꾹 참아라. 네가 인내심을 가지고 참는 만큼 결국 재활이 끝났을 때 더 강한 공을 더 오랜 기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2군 캠프 합류 일까지 8일이 남았던 그날도 이현우는 정성우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산에서 내려왔다.
 이제는 날도 너무 추워 캐치볼을 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기에 마루에 앉아 아침에 목욕을 시켜서 깨끗해진 철수를 끌어안고 최비달이 체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최비달의 체술은 참으로 특이했다.
 어떨 때는 극진공수도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태권도 같고, 또 어떨 때는 택견 같고, 어느 순간은 중국의 태극권 같아 보였다.
 그렇다고 여러 무술을 차례대로 하는 건 아니었다.
 이현우가 한 달 넘게 지켜본 결과 최비달이 하는 체술은 총 15가지 동작이 있는데, 이 동작들을 차례대로 반복하면 여러 가지 무술의 특징이 느껴졌다.
 최비달이 하는 체술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이현우는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며칠 후면 자신은 선유암을 떠날 테고, 최비달이 연습하는 체술에 대해서도 잊은 채 프로야구 선수로서 성공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될 테니까.
 체술의 열다섯 가지 동작을 세 번씩 차례대로 반복한 뒤 최비달이 이현우에게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운동 안 하는가?”
 “날이 너무 추워져서요. 등산을 하는 걸로 충분합니다.”
 “추우면 아궁이에 불 넣고 방에 들어가 있지 뭐하려고 마루에 있는가. 운동선수라면서? 몸 관리 잘해야지.”
 “스님이 체술을 하는 걸 구경하는 게 재밌어서 넋을 놓고 있었지 뭡니까.”
 최비달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내 체술이 흥미로운가?”
 “네. 어떨 때는 택권도 같고, 어떨 때는 택견 같고, 어떨 때는 극진공수도 같다가 태극권 같기도 한 게 신기해요.”
 “흐음······.”
 최비달은 미소를 지은 채 이현우를 바라보다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 언제 떠난다고 했지?”
 “5일 후에 갑니다.”
 “그럼 5일 동안 내가 사용하는 이 체술, 그러니까 선유도를 배워볼 생각 없는가?”
 “그 체술의 이름이 선유도인가요?”
 “아. 이름은 그냥 내 마음대로 지은 거네. 나에게 가르쳐 주신 분도 체술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선유도를 배우면 자네가 야구선수를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거네.”
 ‘선유도라······.’
 이현우는 선유도라는 최비달의 말에 마음이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다.
 체술을 배운다고 해서 야구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운동 대용으로 하게 될 텐데 배울 가치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이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룡산을 내려가기 전까지 등산 말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기도 했고, 선유도를 배운 뒤 별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그때부터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배워볼게요.”
 “일단 그 전에 자네 몸 상태를 좀 살펴봐야겠어.”
 최비달은 이현우의 몸 곳곳을 손으로 만져 본 뒤 입을 열었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이제 슬슬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7개월은 더 걸리겠어.”
 “그렇게나 오래요?”
 “근데 문제는 팔이 아니야. 자네 어깨도 안 좋아. 사람의 신체는 스물세 살까지 성장해. 성장이 미처 끝나기 전에 신체가 다치면 아무리 열심히 치료를 해도 완치가 안 돼. 운동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생긴 부상을 은퇴 전까지 달고 다니는 것도 대부분 그런 거고. 팔꿈치는 인대를 아예 바꿔 끼웠으니까 다행이지만 어깨는 그게 안 될 거네.”
 최비달의 말을 들으며 이현우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토미 존 수술에 대해 정확하게 집어내는 걸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이현우는 어깨 통증으로 등판을 거른 적도 몇 번 있었고, 고교 선수들 중에 어깨 통증이 없는 케이스가 희박하다는 걸 감안하면 최비달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선유도를 배우면 어깨 부상을 입지 않고 원 없이 선수 생활을 한 뒤 은퇴할 수 있을 걸세. 어깨뿐만 아니라 어느 부상도 절대 입지 않을 거라 자신할 수 있어.”
 “스님의 말을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주겠네.”
 최비달은 미소를 지은 채 그 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속옷 한 장만 걸친 최비달의 몸에는 온갖 수술 자국이 한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다리 쪽에 수술 자국이 유독 많이 보였다.
 “몸에 흉터가······.”
 “조금 많지? 젊었을 때 나는 강남 일대를 주름잡았던 조직의 행동 대장이었네. 조직을 위해서라면 지나가는 사람을 칼로 찌를 수도 있을 정도였어. 우리와 충돌하는 조직이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없애 버리려고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상대 조직에서 날 차로 치고 도망갔네. 눈을 떴을 때는 대한병원의 중환자실 안이었네. 몸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입조차 열 수 없는 상태였지. 의사가 말하더군. 온몸에 성한 데가 없어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수술은 잘됐지만 제대로 걷기는 힘들 거라고. 조직폭력배였던 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말이었지.”
 최비달은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이현우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상대 조직은 최비달을 차로 친 걸로도 모자라서 온몸 곳곳을 칼로 찌른 뒤에 도망쳤다.
 정말 기적적으로 수술이 잘돼서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뜬 지 일주일이 지났다.
 병문안을 오는 조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몸이 망가지자 이용가치가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조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때 최비달은 조직에 대한 원망도, 상대 조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품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그저 다시 일어나 걷고 싶다는 생각만을 했다. 몸을 회복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목포였다.
 꼬박 4개월이 지난 뒤에야 최비달은 병상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신경이 다친 탓에 다리는 심하게 절뚝여야 했고,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조직의 관심에서는 멀어졌고 몸은 장애인에 그나마 조직 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돈도 몇 푼 되지 않았다.
 막막한 상황에서 최비달은 절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삶에 대한 회의감에 세상을 등지고, 스님이 되어 죽을 때까지 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고민 끝에 찾은 게 계룡산의 신원사였다.
 신원사의 주지스님은 최비달이 선유암에 사는 걸 허락해 줬다.
 그때부터 최비달은 머리를 밀고 승복을 입었다. 진짜로 승려가 될 수는 없지만 마음만이라도 자신의 지난날을 뉘우친다는 의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유암을 찾아온 한 노인에게서 몸에 좋은 운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체술을 배웠다.
 6개월만 꾸준히 하면 더 이상 절름발이가 아니게 될 거라는 말을 하고서 다음 날 노인은 계룡산을 내려갔다.
 최비달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선유암에서 달리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노인이 가르쳐 준 체술을 꾸준히 익혔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신경을 다쳐 절대 나을 수 없을 거라 말했던 다리를 절지 않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어깨고, 팔이고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는데 6개월이 지나자마자 감쪽같이 아프지 않게 된 것이다.
 보답을 하고 싶어 노인을 수소문해 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체술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최비달은 연구를 시작했다.
 수 년 간의 연구 끝에 열다섯 가지의 체술 동작이 각각 다른 신체 부위에 영향을 끼치고, 모든 동작을 연속으로 사용할 경우 신체 기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는 걸 알게 됐다.
 절었던 다리나 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했던 게 낫게 된 것이 체술의 효과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 최비달은 선유암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두 가지 체술 동작을 가르쳐 왔다.
 어딘가 아프던 사람들이 체술을 배운 뒤 나으면서 보답으로 돈이나 먹을거리를 잔뜩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최비달은 돈을 벌지 않고도 먹고살기에는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열다섯 가지 동작을 한 사람에게 모두 가르쳐 준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는 열다섯 가지 동작을 다 가르쳐 주려는 건가요?”
 “아아. 그게 말이야, 얼마 전에 소화가 좀 안 돼서 병원을 갔는데 위암이라 하더군.”
 “위암이라고요?”
 “그래. 백날 체술로 신체를 단련하면 뭐 하겠는가, 안쪽까지 단련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수술할 생각은 없고 그냥 이러다가 때가 되면 죽겠거니 하고 있는데 그래도 누군가 이 체술을 배웠으면 좋겠더군. 그 와중에 자네가 이 선유암에 머물게 된 거고.”
 “전 체술을 배우더라도 스님이 하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지는 못할 겁니다.”
 “상관없네. 자네 말고도 내가 죽기 전에 선유암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체술을 가르쳐 줄 테니까. 그리고 배워서 신체에 변화가 없으면 배우지 않아도 되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동작을 차례대로 보여주겠네. 잘 봐두게.”
 최비달은 평소 하던 것처럼 조금 느리게 열다섯 가지 체술 동작을 차례대로 보여줬다. 이현우는 그런 최비달의 움직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지켜봤다.
 이 체술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열다섯 가지 체술 동작을 하루에 두 번씩 한다고 해봐야 4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40분씩 몇 달간 투자를 해보고 효과가 없다 싶으면 그때 가서 체술에 대해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5일 동안 체술을 배운 뒤 이현우는 12월 13일 오전에 선유암을 떠나기 위해 짐을 쌌다.
 짐을 모두 싼 뒤 최비달이 마지막 아침 식사로 해준 닭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이라고 특별히 산삼을 세 뿌리나 들어 있어 백숙은 참으로 꿀맛이었다.
 백숙을 모두 먹은 뒤 최비달은 짐을 챙겨 산을 내려가는 이현우를 배웅했다.
 “지금부터 딱 4개월만 내 말대로 야구공을 던지지 말게. 그때까지 선유도를 꾸준히 하면 7개월이 걸릴 회복이 4개월이면 끝날 거야. 인대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는 몸 상태를 체크해 볼 정도로만 가볍게 던져야 하네. 공을 치는 건 상관없을 건데 그것도 통증이 느껴지면 하지 말고.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한 달 넘게 고마웠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찾아뵙겠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이곳에 있다면 내년에 또 보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철수와 영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이현우는 꼬박 한 달을 넘게 머무르며 나름 정이 들었던 선유암을 떠나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온 이현우는 곧장 빨래를 했다.
 1월 2일에 남해의 2군 캠프에 합류해야 하기에 그때 옷을 챙겨 가려면 미리 빨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3일 동안 먹을거리를 간단하게 사 와서 냉장고에 넣어 놨다.
 청소는 이현우가 선유암에 있는 동안 구단 직원들이 자주 들려서 해놓았는지 깨끗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세탁이 끝난 빨래를 널고, 최비달에게 배운 체술을 두 차례 반복한 후 샤워를 하고 나와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잠이 절로 왔다.

댓글(2)

Optatum    
반복해서 나타나는 스토리의 진부함과 기승전결없이 휴식기간동안 끝나버리는 멜로라인 덕분에 어느순간 빠른속도로 넘기며 줄거리만보고 에필로그를 찾게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2016.02.06 04:05
대한혼    
동원이형
2020.07.3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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