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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스 1화

2016.02.03 조회 927 추천 14


 프롤로그
 
 
 화성 옛 서울 시티의 허름한 지하 술집.
 이곳은 2차 화성 전쟁의 퇴역병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었다. 옛 화성의 붉은 기병(Red cavalry Corps), 연방 육전군의 강하엽병, 우주 함대의 오퍼레이터 등등. 다들 왕년의 활약은 시궁창이 되어 이곳에서 술로 달랬다. 더 이상 그들은 영웅이나 군인이 아니었다. 그저 골치 아픈 쓰레기들일 뿐이었다.
 온갖 쓰레기들의 집합소인 그 술집 가운데엔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고 거기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향하고 있었다. 휘리리릭. 리볼버가 그 탁자 위에서 돌았다.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고 리볼버의 총구 끝이 향하는 방향을 쳐다봤다. 탁자의 옆에는 시체가 몇 구나 쓰러져 있었다.
 탁. 긴 머리의 사내가 리볼버를 잡았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털보 녀석은 술에 취해 낄낄낄 웃고 있었다. 러시안 룰렛. 맨 정신으로는 이 엄청난 긴장감을 버틸 수 없었다.
 “이번에도 살 수 있을까? 흐흐흐흐, 네놈의 운도 여기서 끝일 거다.”
 “…….”
 찰칵. 한 발이 장전돼 있는 리볼버의 실린더가 키릭 움직였다. 세이프였다. 긴 머리 사내 앞에 있는 털보 놈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방아쇠를 잡아당긴 건 벌써 네 번째. 통합 45구경 콜트 파이슨에는 총 6발이 들어간다. 이제 50 대 50의 싸움이었다.
 털보 녀석은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만약 재수 없게 자신이 걸리면 반반 확률의 리볼버를 잡아당겨야 했다. 긴 머리 사내는 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저 콜트 파이슨을 탁 놓고 한 바퀴 돌렸다. 빙글빙글. 마치 영겁의 시간처럼 리볼버가 돌고 있었다. 털보나 긴 머리 사내에게 돈을 건 사람들은 다시 침을 꿀꺽 삼키면서 리볼버의 총구가 어디 설지 지켜보고 있었다.
 달그락. 마침내 총구는 털보를 가리키면서 서 버렸다. 반반의 승부. 옆에는 자동 소총을 든 게임 매니저가 턱을 끄덕거렸다.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이다. 털보는 돈을 있는 대로 탁자에 올리면서 두 손을 들었다.
 “포, 포기. 나, 나는 먹은 돈을 토해 내겠어.”
 “아니, 포기해선 안 돼.”
 “이, 이봐 긴 머리. 도, 돈이 문제야? 돈이라면 내가 꽁지돈을 써서라도 줄게. 배상금이 얼마든 내겠어. 난 못 해, 못 한다구! 봐봐. 오줌까지 지리고 있어.”
 테이블 아래로 털보 놈이 꼴사납게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긴 머리 사내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반반. 그에게도 마찬가지 확률이었다. 만약 털보가 살아남는다면 마지막에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겨야 할 건 자신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털보의 배상금을 받고 게임을 끝내게 된다. 하지만 긴 머리 사내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털보는 덜덜 떨면서 옆에 서 있는 게임매니저를 쳐다봤다. 게임매니저 역시 다시 턱을 으쓱거렸다. 게임은 계속된다.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털보는 질질 짰다. 이미 테이블 밑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자신도 그 꼴이 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쓰레기다. 사람의 목숨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다. 마치 전쟁터로 되돌아온 듯 화성군 마크를 어깨에 문신으로 새긴 털보 녀석이 울었다. 어쩔 수 없었다. 게임 매니저에게 죽나 방아쇠를 당기다 죽나 결말은 매한가지였다.
 틱. 하지만 놀랍게도 놈은 살았다.
 “으하하…… 으하하하하! 으아아아아아! 봤느냐! 난 살아남았다! 봤냐구! 크하하하하하!”
 여기저기서 긴 머리에게 건 놈들이 아우성치고 싸움질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게임매니저가 천장을 향해 총을 타다다다 쐈다. 일순간 분위기가 사그라지고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을 관리하는 놈들은 악명 높은 이탈리아 마피아 알만조 패밀리였다.
 “어이, 긴 머리. 배상금을 토해 내시지. 아니면 죽든가.”
 “…….”
 긴 머리는 테이블 옆에 쓰러져 있는 열 구 정도의 시체를 바라봤다. 전부 이 기이한 사내에게 도전하다 죽은 놈들이었다. 이 긴 머리 사내의 운도 오늘은 이것으로 끝인 것처럼 보였다. 이제 막대한 배상금을 내면 방아쇠를 안 당기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오히려 칩들을 ‘거는 쪽’에 더 걸었다.
 “어? 이봐, 내 말이 안 들리는 거야? 게임 끝났다고.”
 “아직 한 발이 이 리볼버에 들었다.”
 “이 미친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아니. 난 죽지 않아.”
 “뭐?”
 뭐라고 말릴 사이도 없었다. 놈은 다시 리볼버를 돌리고 탁 손으로 그걸 잡았다. 총구는 긴 머리 사내 쪽을 향해 있었다. 자살 행위였다. 긴 머리 사내는 ‘돈을 더 내고’ 레이즈를 걸었고 그 권리로 총을 한 바퀴 더 돌렸는데 자신을 쏘려고 하는 것이다.
 술집의 모든 쓰레기들은 이 긴 머리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그 운이 이 사내에게 다시 한 번 통할 것인가? 리볼버는 자동 권총과는 다르다. 하나하나가 약실이고 고장도 나지 않는다. 다섯 번을 당겼으니 이제 한 번 더 당기면 반드시 발사될 수밖에 없었다.
 긴 머리 사내는 천천히 리볼버를 들어서 머리에 겨눴다. 바텐더는 오늘 치워야 할 시체가 하나 늘었구나 하고 연필로 장부에 빗금을 그었다.
 틱.
 하지만 리볼버는 격발하지 않았다. 마주 앉아 있는 털보도 게임을 주관하는 마피아 떨거지도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도 입을 떡 벌렸다. 긴 머리 사내는 리볼버를 테이블 위에 던지고 걸린 칩들을 쓸어 담았다.
 “자…… 잠깐. 잠깐만. 속임수 아니야? 이거 속임수 같은데? 어이, 패밀리! 확인해 봐! 확인해 보라구!”
 털보가 길길이 날뛰었다. 방금 전 죽음의 문턱을 갔다가 온 사람이니만큼 더더욱 날뛸 만했다. 하지만 얼떨떨하긴 마피아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총은 그들이 준비한 것이다. 격발 불능이 날 리가 없었다. 다른 놈이 잽싸게 리볼버를 까서 안에 든 총알을 확인했다. 총알은 정확히 총구에 물려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공이치기가 탄알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봐! 잠깐만! 거기 서!”
 “…….”
 긴 머리 사내는 듣지 않았다. 그저 칩 움큼을 휙 하고 위로 던졌다. 다시 술주정뱅이와 퇴역병 쓰레기들이 난리를 피웠다. 자동 소총을 천장에 난사해도 소용없었다. 자그마치 100달러 칩도 여기저기 흩뿌려진 상태였다.
 “이 새끼가아아아아아아!”
 긴 머리 사내는 미친 듯이 칩을 줍는 사람들을 보면서 멀뚱히 서 있었다. 마피아 놈들은 참을 수 없었다. 이건 자신들 패밀리에 대한 도전이며 이걸 내버려 뒀다간 화성에서 도박 장사는 다 한 거였다. 긴 머리 사내는 마치 자신을 쏴 달라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자동 소총이 긴 머리 사내에게 향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방아쇠를 누르자마자 털보의 머리통에 자동 소총탄이 정신없이 처박혔다. 분명 긴 머리 사내를 겨눴다. 또다시 긴 머리 사내의 뒤에 있던 놈이 긴 머리 사내를 노렸다. 탕탕탕. 세 발의 총탄은 한 발도 사내를 맞히지 못했다.
 대신 자동 소총을 쥔 그놈이 눈알에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기이한 일이었다. 거리는 10여 미터. 못 맞히는 게 이상한 거리였다. 그런데도 긴 머리 사내는 기적처럼 단 한 발도 맞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비로소 알만조 마피아 패거리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칩을 주우려는 놈을 걷어차고 밖으로 내쫒았다. 탕탕탕! 각양각색의 총기가 좁은 술집을 가득 메우는데도 사내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이어 동료들을 쏘는 마피아 조직원들. 피떡이 되어 바텐더에게 나가떨어지고 총에 맞아 신음하면서도 자신의 동료들을 조준했다.
 분명 전부 저 기이한 긴 머리 사내를 쏘려고 했다. 하지만 저 사내는 단 한 발의 총탄도 맞지 않았다.
 “…….”
 앗 하는 순간에 술집의 조직원들은 모두 바닥에 나뒹굴었다. 칩을 줍던 쓰레기들도 마치 성자를 보는 듯한 얼굴로 긴 머리 사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테이블 위의 리볼버를 주워들었다. 여전히 아까의 한 발이 실린더 안에 남아 있었다.
 “소대. 돌입.”
 그 순간 옛 화성군의 특무 부대 복장을 한 녀석들이 일제히 술집 안으로 쳐들어왔다. 그들은 마피아 놈들의 목을 따고 칩을 주우려던 쓰레기들의 목도 땄다. 같은 화성군이라고 외쳐도 소용없었다. 얼굴을 덮는 헤드 모듈을 쓴 놈들은 총검으로 이 술집에 있는 모든 놈의 숨통을 끊어 버렸다.
 아니, 딱 한 명은 살아 있었다. 바텐더는 부들부들 떨면서 카운터 뒤에서 알만조의 직통 번호를 눌렀다. 그에게 리볼버를 든 사내가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리고 총을 겨눴다.
 “뭐…… 뭘 바라는 거요?”
 “알려라.”
 “예? 그게 무슨…….”
 탕. 의뭉스럽게 번호를 누르려던 바텐더의 손이 꺾였다. 아까는 격발되지 않았던 리볼버가 멋들어지게 총알을 내뱉은 것이다. 바텐더는 어찌 된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긴 머리 사내는 옛 화성군의 군복 허리띠에 리볼버를 꽂아 넣고 말했다.
 “알만조에게 전해라. 우리가 돌아왔다고.”
 “크으으윽…… 우, 우리라뇨?”
 “화성군 특무 부대 이-오공일 킨더가튼.”
 “예?”
 킨더가튼 소대.
 그건 전장의 도시전설에 가까운 명칭이었다. 불침번의 목을 따는 화성군의 특무 부대라든지 연방군의 본부를 폭파한 전설의 화성군이라든지. 그런 게 있다더라 하는 도시전설이 되어 알음알음 서울 시티에 떠돌 뿐이었다.
 그 전설의 킨더가튼이 마침내 현실이 되어 화성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바이파이. 알만조. 지구의 개새끼들. 이제 최강이 누군지 각인시켜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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