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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스타 1화

2016.02.05 조회 3,193 추천 28


 프롤로그 1
 
 
 - 정신 차려라!
 천둥 같은 호통에 현민의 흐릿했던 의식이 돌아왔다.
 ‘이곳은…….’
 현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은 온통 뿌옇기만 했다. 새벽녘의 한강변을 달릴 때 보았던 안개가 떠올랐다. 신비롭게 흐르는 안개들 사이로 영롱한 빛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문득 자신에게 호통을 친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를 돌렸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시야가 무엇인가에 쭉 빨려 들어가는 듯 흐릿해졌다가는 선명하게 돌아왔다.
 ‘누구?’
 창백한 얼굴에 검은 정장을 입은 강인한 인상의 사내가 자신을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무슨 분장을 이렇게 살 떨리게 했냐?’
 수 년 전 촬영했던 호러 사극에서 함께 연기를 했던 정인호의 분장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정인호의 역할은 바로 저승사자였다.
 하지만 단연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사내의 분장이 정인호의 분장보다 두 배, 아니 열 배는 더 리얼하다는 것이다.
 ‘진짜 같잖아.’
 분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현실감이 느껴졌다.
 - 앞을 봐라.
 사내가 말을 한 것이 분명함에도 사내의 입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사내의 음성이 귀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 앞을 보라고 했다!
 사내의 호통에 현민이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또다시 주변의 경물이 흐릿해졌다.
 왜 자꾸 이렇게 보이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는 없었지만 두리번거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뒤에서 쏘아보고 있는 사내의 싸늘한 눈빛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헛!’
 현민이 다시 한 번 놀랬다.
 분명히 조금 전 의식을 차렸을 때는 보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정면에 거대한 단이 보였고 가장 높은 곳에 도저히 사람이 앉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 거대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온통 황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주변의 영롱한 빛이 의자에 부딪쳐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그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이었다. 노인이라 하면 뼈마디에서 칼슘이 빠져나가 허리가 굽어 체구가 왜소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의자에 앉은 노인은 놀랍게도 그 거대한 의자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작하라.”
 노인이 말을 하자 뒤에 있던 사내가 현민의 곁으로 와서 나란히 섰다.
 사내는 노인을 지극히 두려워하는지 현민의 곁에 서기 무섭게 고개를 숙이고 들지를 못했다.
 “주, 죽음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현민은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 변화로 인해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신비롭게 흐르던 안개가 갑자기 미친 듯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가 노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죽음의 순서가 바뀌었다?”
 “그, 그렇습니다. 본래 죽어야 할 자는 이곳에 있는 유현민이 아닌 박소현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응? 소현 씨?’
 박소현이라면 이번 촬영에서 함께 일을 하는 스텝 중 음향팀에 속해 있는 여인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음향팀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자세히 설명해라.”
 “본래는 박소현이 죽어야 했지만 이 멍청한 녀석이 그녀를 구하고 대신 죽었습니다.”
 사내가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돌려 현민을 쏘아보았다. 현민은 사내의 눈빛을 대하자 저도 모르게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노인의 호통이 들려왔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녀석이 어디서 엄한 영혼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대화를 들어 보면 사내는 노인을 지극히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내가 눈빛을 거두자 멍해졌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현민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죽어? 영혼?’
 노인과 사내의 대화는 분명히 자신을 두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심상치가 않았다.
 둘은 자신이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도 사람들 사는 곳 같지는 않고…….’
 현민은 문득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 그랬었지.’
 
 프롤로그 2
 
 
 
 현민은 37살 먹은 예술인이다.
 25살에 시작된 그의 예술인생.
 십여 년 동안 현민은 수십 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중 대박이 난 작품도 있었고, 쪽박이 난 작품도 있었다.
 물론 쪽박이 날 확률이 조금, 아니 많이 높았다.
 수십 편의 영화를 찍고 그중 대박이 난 작품도 몇 개가 있음에도 현민을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 바로 현민이 단역 배우, 즉 엑스트라였기 때문이다.
 가끔은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맡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단역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엑스트라의 세계에서 비단, 즉 비중 있는 단역이라 부르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비중이 있다고 해도 단역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과 함께 촬영을 한 배우들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면 현민은 왜 단역 배우일까? 얼굴이 못생겨서? 연기를 못해서?
 결론은 둘 다 아니었다.
 얼굴은 꽃미남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라도 준수하다는 말은 들을 정도고 연기도 발연기까지는 아니었다. 보통 단역 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기획사에도 속해 있었다.
 현민이 배우의 길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 약간의 가능성을 발견한 기획사가 현민에게 계약을 제의했다.
 물론 지금 기획사의 대표는 그 결정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민의 잘못이 아니었다.
 스타가 될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원석을 발견해 찬란한 보석으로 만드는 것은 기획사의 책임이었다.
 그런 이유로 현민은 기획사를 많이 원망하고 있었다. 만약 기획사가 자신에게 조금 더 투자를 하고 연기 지도라던가 여러 가지 배려를 해 주었다면 자신은 특급 배우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비중이 있는 배역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도 현민은 혼자서 촬영 소품과 장비들을 임시적으로 넣어두는 창고에 틀어박혀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에라이, 썅!”
 입에 물고 있는 담배의 맛이 유난히 썼다.
 “지가 연기를 뭘 안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이제 고작 이십 대 중반인 조감독이 대본을 돌돌 말아 이마를 톡톡 칠 때 느꼈던 수치심이 다시금 엄습했다.
 “아-! 드러워서 내가 예술을 포기하던가 해야지.”
 하지만 현민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절대 이 영화판에서 발을 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해 제대를 한 이후 큰 꿈을 품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배움도 짧고 이렇다 할 기술도 없으니 달리 해 먹고 살 것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뜨기만 해 봐라. 그 조감독 새끼를 확……”
 드르륵-
 그때 창고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은 황급히 입을 닫았다. 만약 들어선 이가 자신의 넋두리를 듣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는 것도 없는 어린 녀석이라고 씹기는 했지만 영화판에서 조감독이 가진 권한은 꽤 컸다. 특히 단연 배우들을 섭외하는 것은 온전히 조감독의 몫이었다.
 한마디로 현민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는 이가 바로 조감독이라는 의미였다.
 창고 가득 쌓여 있는 장비들 사이로 난 작은 틈으로 들어온 이가 누구인지를 살폈다. 하지만 자리를 잡은 곳이 가장 외진 곳이었기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때 창고에 들어선 이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아후-. 지는 처음부터 잘했나? 뭐가 그리 잘났다고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는 건지…….”
 꽤 익숙한 목소리였다.
 ‘누구지?’
 익숙하다는 의미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현민은 오래지 않아 창고에 들어온 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박소현이라고 했던가?’
 오늘 자신만큼이나 욕을 한 트럭 분량이나 들은 음향팀의 막내 박소현이었다.
 “니들 눈에는 내가 여자로 안 보이지? 이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홍일점인 나한테 옮기라고 할 수가 있냐? 니들은 애시당초 인간 되긴 글러 먹은 족속들이다. 지미집이 갑자기 고장 난 게 왜 내 탓이냐고.”
 현민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오늘 있었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중요한 씬을 촬영하던 도중 잘 작동이 되던 지미집이 갑자기 멈춰 버린 것이다.
 감독이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문제다.
 촬영을 하던 배우들 역시 음향팀의 잘못을 성토했다.
 그 씬을 찍던 이들이 이번 영화의 주연들이었고 그들이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는 특급 배우라는 사실 때문에 음향팀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런 이유로 음향팀의 막내인 박소현은 온갖 구박을 다 받아야 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선배들의 타겟이 되었다.
 “더러워서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박소현을 보며 현민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조명기구들 사이로 무거운 장비를 낑낑거리며 옮기는 박소현의 모습이 보였다.
 160이 갓 넘을 것 같은 크지 않은 키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귀여운 인상의 여자였다.
 ‘오랜만에 연애나 해 볼까?’
 나이 차이를 보면 띠동갑 차이는 충분히 날 것 같았지만 현민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잘나진 않았지만 준수한 편에 속하는 외모에 여자 앞에서만 빵빵 포텐이 터지는 수려한 언변에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이 함락되었다.
 그중에는 박소현보다 어린 여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누가 창고에서 담배를 피운 거야? 짜증나게… 여기가 흡연실이야, 화장실이야?”
 박소현이 짜증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현민은 흠칫하며 이제는 꽁초가 되어 버린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발로 지려밟았다.
 “아, 짜증나는데 나도 담배나 피울까? 스트레스 해소에는 담배가 최고라던데.”
 ‘이 아가씨야 담배 피우면 뼈 삭고 피부 상하고… 아무튼 좋을 것 하나 없네.’
 들릴 리야 없겠지만 현민은 나름대로의 충고를 마음속으로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담배 끊어야 하는데… 요즘 이상하게 가슴도 답답하고…….’
 현민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명기구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박소현을 몰래 지켜보았다.
 ‘이런 죽일 놈들. 아무리 화가 나도 여자한테 저런 걸 옮기라고 하다니.’
 박소현이 옮기는 장비는 아무리 봐도 여자가 옮길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도와줄까?’
 안쓰러운 마음에 도와주려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어…….”
 당황이 섞인 박소현의 신음이 들려왔다.
 “조, 조심해.”
 박소현의 옷이 근처에 있는 조명에 걸렸다. 조명이 기우뚱하며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현민이 크게 외치며 달려 나갔다.
 “꺄악!”
 박소현도 그때야 자신을 향해 쓰러지는 조명을 봤는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현민은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 달려갔다.
 그리고 박소현을 어깨로 밀쳤다. 박소현의 왜소한 몸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
 현민의 생각은 이어지지가 않았다.
 퍽!
 조명이 박소현이 아닌 현민을 향해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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