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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사냥꾼과 사냥감 (1)

2016.02.22 조회 17,579 추천 312


 제 1 화. 사냥꾼과 사냥감
 
 1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냥꾼은 올가미를 만들고, 올가미는 사냥감을 죽인다.
 무엇을 위해서? 사냥꾼 자신이 살기 위해서다. 명수 역시 그랬다. 자신이 살기 위해 사냥감을 노린다.
 “오셨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몇몇 사람의 시선이 홀 입구로 향하고, 그 사람을 보자 하나둘 다가가서 아부할 준비를 했다.
 명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몇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렇지만 명수는 떠난 사람들을 책망하진 않았다.
 ‘김 의원님보다 저 친구가 더 확실한 끈이라고 생각한다면야 붙잡을 순 없으니까.’
 명수가 모시는 사람은 김개석 의원이다.
 그를 수행한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 그의 보좌관이 되었을 때도 김개석 의원은 여당의 중진 국회의원이었지만, 명수의 보필로 지금은 여당 총수가 되었다.
 한편 지금 홀에 들어온 사람, 명수의 대학 동기이기도 한 박현민은 한창 뜨는 신인이었다.
 나이는 40대에 불과하지만, 김대중 전(前)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前) 대통령도 20대부터 돌풍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물론 그때는 시국이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시기다. 아니, 이쪽 세계는 언제나 질풍노도다.
 오히려 치열하기는 지금이 더 치열하다.
 비정하고 비열하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을 끌어내리려 하나, 다만 그 방법으로써 혼자만 생각하고 말 것을 여기선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설마 저렇게까지 할까?’ 의심하고 방비를 소홀히 하는 순간 사냥감이 되는 거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사냥감이 돼서는 안 된다. 언제나 사냥꾼이어야 한다.
 명수는 이 차가운 진리를 김개석 의원에게 배웠다.
 그리고 자신이 모시는 사람이 사냥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이 살기 위해 여기 올가미를 놓고 있었다.
 “김 보좌관님은 벌써 와 계셨군요.”
 박현민이 명수를 발견하곤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사냥감이 올가미로 접근해 온다.
 명수는 주머니에 꽂은 손으로 미리 준비해 둔 볼펜을 만지작거렸다. 녹음기능이 달린 볼펜이다.
 “박 의원님도 오셨군요. 바쁘셔서 못 오실 줄 알았는데요.”
 “하하, 아무리 바빠도 동창회에는 와야지요. 옛 친구들도 만나고 선생님들도 뵈면 좋으니까요.”
 서로 다가가자 거리는 금방 좁혀졌다.
 두어 걸음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을 때 볼펜에 달린 단추를 눌렀다. 녹음이 시작되었다.
 “김 의원님은 잘 지내시죠? 정기회 이후로 못 봬서 말입니다. 한 번 인사드려야 하는데…….”
 “내년이 총선이니까요. 박 의원님도 그러시겠지만 김 의원님도 바쁘십니다. 올해 유난히 사건이 많았지 않습니까.”
 “하긴 그랬습니다. 그런데…….”
 박현민의 말을 들으며 명수는 기회를 노렸다.
 저번 정기회가 열린 후에 술자리에서 박현민이 지나치게 과감한 발언을 한 일이 있었다. 대중에 노출되면 다음 총선 때 낙선할 수도 있는 수위였다.
 명수는 정보통을 통해 그 소식을 입수했다.
 녹음하진 못했지만 괜찮았다. 목소리만 있으면 문장으로 조합할 수 있는 기술자를 알고 있으니까.
 그때 박현민이 한 발언을 다시 조합하기 위해 필요한 단어는 ‘안주’와 ‘전선’이었다. 나머지 단어는 기자회견 등의 자료를 통해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명수는 대화 도중에 박현민이 ‘안주’와 ‘전선’이란 단어를 하도록 유도하려 애썼다.
 박현민이 발성한 두 단어가 녹음된 파일을 얻으면 홀 입구에서 기다리는 연결책에게 전해 주면 되고, 그는 녹음 기술자에게 이 파일을 전해 줄 것이다.
 ‘그리고 조합된 목소리는 언론으로 전달되겠지.’
 물론 이 짓은 어떻게 보면 조작이다. 하지만 박현민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녹음파일이 언론에 노출돼 박현민이 나중에 듣더라도 누군가 몰래 녹음했다고 생각하지 조작됐다곤 추측치 못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박현민을 궁지에 빠뜨리려는 이유?
 간단했다.
 김개석 의원이 그걸 원하니까.
 그리고 김개석 의원이 그걸 원하는 이유는 박현민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김개석 의원은 명실상부한 여당의 실세 중의 실세지만 열흘 이상 붉은 꽃은 없다지 않았던가?
 꽃은 가을이 오면 진다.
 젊은 층의 지지를 업고 한창 떠오르는 박현민은, 김개석이 봤을 때 가을을 불러 오는 남자였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시대를 끝낼까 봐.
 “……물론 안주하면 안 되지요.”
 명수의 말에 답하며 박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주’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혹시 명수가 뭔가 함정이라도 파는 건 아닐까 염려해서 단어를 신중하게 고른 모양이지만 박현민 의원은 함정의 방향을 잘못 짚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여당이니 이렇게까지 비열한 수를 쓰진 않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서 박현민은 안 된다.
 원래 직업이 세무사였던 박현민은 이쪽 세계가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 모르고 있다. 남들이 들이대는 칼날만큼 자신 또한 벼려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현민은 아직 그렇게까지 날카롭지가 못하다.
 “아무래도 바쁘신 분을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박 의원님과 인사라도 하려고 온 사람이 태반일 텐데 벌써부터 절 원망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허허, 무슨 그런 소리를. 아무튼 다음에 기회가 되면 김 의원님이랑 자리 좀 만들어 주시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현민이 인상 좋은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이곤 다른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미안하다, 현민아.’
 이미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버린 양심에 미안한 마음을 우겨넣으며 명수는 걸음을 옮겼다.
 홀의 입구 근처에 얼쩡거리는 웨이터가 보인다. 오래전부터 명수와 함께 활동한 연락책이었다. 웨이터에게 술잔을 받는 척하며 은근슬쩍 볼펜을 넘겼다.
 이제 이번 일에서 자신의 할 일은 끝났다.
 명수는 터벅터벅 걸어가서 발코니에 섰다.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위스키를 마셨다.
 매번 이런 일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입맛이 썼다.
 위스키가 아니라 소주를 마시고 싶었다. 아니면 하다못해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그만 갈까.’
 돌아서려 했다.
 “김 보좌관님이 여기 계셨었네.”
 그런데 누군가 발코니로 들어오며 아는 척을 했다.
 “어, 박 기자.”
 “사석인데 박 기자는 무슨.”
 “사석이라도 박 기자님한테 잘못 보였다간 내일 조간에 무슨 기사가 날지 모르는데 조심해야지.”
 명수는 웃으며 박 기자, 동창인 박상훈을 맞았다.
 물론 진실한 미소는 아니다. 꾸며낸 것이다. 박상훈의 얼굴에 드리운 웃음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런데 박 의원님 오셨던데 만났어?”
 “어, 방금 보고 오는 길이야. 그건 그렇고 요새 잘 지내? 최근 통 얼굴 못 봤잖아.”
 “뭐 그렇지.”
 명수는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정치인도 그렇지만 기자들 역시 그 못지않게 집요하고 독종 같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에겐 휴식이 없다. 매 순간 기삿거리를 포착하기 위해 귀를 열고 눈을 굴린다. 그렇기에 명수는 상훈의 앞에서 특히 말을 아꼈다.
 다시 말문을 뗀 건 상훈이었다.
 “요새 너무 조용하지 않아? 슬슬 내년 총선도 다가오는데 뭐 내가 도와줄 거라도 없어?”
 도와준다는 표현은 완곡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삿거리 하나 달라는 뜻이었다.
 “아직은…….”
 “에이, 섭섭하게 왜 이래. 듣자 하니 이 보좌관이 고려일보 최 기자랑 요새 자주 만난다던데.”
 “그래?”
 능청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명수는 속으로 조금 당황했다. 박 기자가 이 정보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 정보를 몰라서였다.
 이 보좌관은 명수의 후임이자, 함께 김개석 의원을 모시는 사이이다. 선임 보좌관으로서 명수는 당연히 이 보좌관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이 보좌관도 자신의 행동을 명수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방금 상훈의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설마…….’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사건의 서막은 대체로 사소한 문제로부터 암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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