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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이야기 1화

2016.03.14 조회 2,470 추천 10


 프롤로그
 
 
 나는 죽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혀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 같다. 책에서나 읽었던 차원 이동이라니.
 “넌 죽은 게 아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이 남자는 특이하게도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려 허리까지 오는 길이였다.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람이 멀쩡하게 돌아다닐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옷도 중세 시대에나 입었을 법한 의상이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인 건지.
 “알고 있습니다.”
 의외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죽었다고 하기에는 모든 감각이 너무도 또렷했으니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차원을 넘어온 것 같군.”
 누가 들어도 믿지 못할 말을 그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잠깐만요. TV나 영화에선 많이 봤는데, 제가 당한 건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차원을 넘은 것 같다고 했다.”
 이 사람은 정녕 진심이란 말인가. 차원을 넘다니. 난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오게 된 원인이랄까······ 뭐 그런 게 있을까요?”
 “모른다.”
 아, 예.
 남자는 딱 잘라 말했다. 하긴, 안다면 벌써 말했겠지. 이 사람이나 나나 서로 왜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저기, 차원 이동을 했다 치고. 그럼 돌아가는 방법은요? 왔으니까 갈 수도 있겠죠?”
 내 물음에 남자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마, 올 때처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없는······ 겁니까?”
 조심스럽게 묻자 그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네가 오기 전 나는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 소환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이 시전되는 순간, 정령이 아닌 네가 나타났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원하던 것이 아닌 내가 나타났다 이거지. 그래서 날 다시 보낼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그럼 저를 보내는 마법도 하실 수 있겠네요?”
 “아니.”
 어째서? 소환마법이었다며. 부르는 게 되면 보내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분명 정령 소환마법을 썼는데, 네가 왜 거기에 걸려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차원을 넘는 마법이라니, 불가능하다.”
 남자는 단칼에 불가능하다며 내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
 “어째서입니까! 왔으니까 갈 수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화를 낼 수 있는 대상이 이 사람뿐이라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네가 살던 세계와 이곳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곳이라는 거다. 그런 차원을 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나.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 해도 다른 세계로 가는 차원을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그럼 저는 어떻게 합니까?”
 절박한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이 남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당장은 방법이 없다.”
 맙소사.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기약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제발 돌려보내 주십시오!”
 꿈이기를.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학교 옥상이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바람일 뿐이었다. 아무리 사정해도 시종일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다면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아 심호흡을 하고 어렵게 입을 뗐다.
 “그럼 여긴 대체 어디입니까?”
 제발 조금이라도 친숙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당장 이 사람부터가 되게 부티 나 보이니까 좋은 곳이겠지?
 나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하지만 남자는 무심한 얼굴로 황당한 말을 툭 던졌다.
 “여긴 마계다.”
 남자의 말을 들은 나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외국도 아닌 아예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만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뭐, 마계? 지금 장난하는 건가? 내가 워낙 바보 같아 보여서 농담을 하나 싶어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지만 다른 대답은 없었다.
 마계가 대체 뭐 하는 곳이지? 평소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 여러 책을 읽었지만 설마 책에서나 나오는 공간이 현실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책에서 본 마계는 늘 안 좋은 이미지였는데. 나 정말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
 
 
 요즘 들어 자꾸만 반복되는 꿈에 마음이 뒤숭숭한 상태다. 며칠에 한 번 꼴로 같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꿨었던 꿈인데, 요즘에는 그 꿈을 꾸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
 내용을 보자면 한 여자가 다급하게 도망치는 꿈인데, 어찌나 급히 도망가는지 맨발에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하얀 이불 하나를 대충 두른 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 뒤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그녀를 쫓고, 결국 여자는 얼마 가지 못해 붙잡힌다. 그리고는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도대체 왜 이런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 만큼 기분이 나쁜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을 꾸고 난 아침에는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아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신이 너 오늘도 그 꿈 꿨구나?”
 소꿉친구인 미나가 다가와 말했다. 미나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나에 대해 잘 아는 친구다.
 “어. 아침부터 기분이 좀 안 좋네.”
 “너무 신경 쓰지 마. 항상 그렇게 꿨었지만 별일 없었잖아.”
 “그건 그렇지.”
 그렇게 기분 나쁜 꿈을 꾸고 난 후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 똑같은 일상을 보낼 뿐이었다.
 “오늘 모의고사 보는 거 알지? 그거나 준비하자.”
 “그래.”
 늘 그랬듯 조금 신경은 쓰였지만 미나의 말대로 시험 준비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책상 서랍 안에 있는 문제집과 교과서를 꺼냈다.
 그렇게 방심한 결과일까. 안 좋은 일은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것도 그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약 8년 만에 드디어 꿈의 효력(?)이 나타난 것인지 나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고야 만 것이다.
 모의고사가 끝난 후 가채점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미나가 보이질 않았다.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도 아는 녀석이 하나도 없었고, 갈 만한 곳도 생각나지 않아 무작정 찾으러 다니고 있을 때였다.
 “유신, 이미나 아까 옥상에 올라가는 거 누가 봤다는데?”
 멀리서 같은 반 녀석 하나가 고맙게도 미나의 소식을 알려왔다.
 “어, 고맙다.”
 옥상이라니. 요즘엔 학교 옥상 못 올라가게 잠가 놓지 않나? 거길 왜 간 거지?
 딱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어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가 문을 여니 난간에 올라서 있는 미나가 보였다.
 “야, 이미나.”
 내 부름에 깜짝 놀란 것인지 미나가 흠칫 떨며 뒤를 돌아다봤다.
 “신아.”
 “너 거기서 뭐하냐?”
 절대로, 내 소꿉친구인 이미나가 자살을 결심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나는 웃는 얼굴로 미나에게 향했다.
 “신아, 나······.”
 “위험하니까 일단 내려와라. 난간엔 왜 올라가 있는 거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미나에게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오지 마!”
 생각지 못한 미나의 격한 반응에 너무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이미나?”
 “오지 말라고. 나 죽을 거야.”
 뭐? 뜬금없이 그게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리 내려와서 말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손을 내밀자 미나가 내 손을 쳐냈다.
 “사실 나 지난 학기부터 계속 성적이 떨어졌었어. 진짜 열심히 했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결과가 항상 안 좋았어. 오늘 모의고사도 완전 망쳤어. 너 우리 부모님 알지? 두 분 다 선생님이신데다 엄격하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잖아. 성적 떨어질 때마다 남들에게 말하기 창피하다면서 좀 더 노력하라고 난리셨어.”
 아, 미나네 부모님이 좀 그렇지. 권위적이시고 자존심까지 센데다 자신들의 평판을 굉장히 생각하시는 그런 분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미나는 항상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쓰면서 자라왔다.
 “이건 정규시험도 아니고 그냥 모의고사잖아. 이 성적 떨어졌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나름대로 달래보려 한 말이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미나는 이렇게 사느니 차리라 죽겠다며 여차하면 뛰어내릴 태세였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좋아. 그럼 같이 죽자.”
 설득하기를 포기한 나는 난간 위에 올라 미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러자 깜짝 놀란 미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내가 모르면 몰랐지, 너 죽겠다고 난리치는 걸 알게 됐는데 혼자 보내면 의리 없잖아. 나도 마침 살기 빡빡하다고 생각했는데 잘됐네. 뛰자.”
 아무렇지도 않게 미나의 손을 잡고 뛰어내릴 자세를 취하자 녀석이 식겁하며 나를 말렸다.
 “야, 야야. 미쳤어? 왜 이래!”
 “뭐가? 너 죽겠다며. 그래서 말 나온 김에 같이 죽자는데 뭐가 잘못됐냐.”
 “네가 왜 죽어? 넌 괜찮잖아.”
 “안 괜찮아.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기 너무 힘들다. 야자니 뭐니 아주 스트레스야. 나도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분위기를 잡자 미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거 봐라, 걸려들었어. 이미나는 말만 강하지 속은 두부만큼 여려 터져서 이렇게 한쪽에서 강하게 나오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거 봐라. 벌써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내가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손을 꽉 잡고 있었다. 하여간 겁도 많은 게 무슨 자살을 한다고 여기까지 올라온 건지.
 “지금 안 죽을 거야? 안 할 거면 내려가고.”
 슬쩍 미나를 곁눈질로 살펴보자 녀석은 비로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죽는다고 할 때는 언제고 막상 죽자니까 잔뜩 겁을 먹어서는.
 “내려가자.”
 조심스럽게 미나를 먼저 내려 보냈다. 겁쟁이 주제에 이 높은 난간까지는 어떻게 올라왔는지.
 “다 내려갔어?”
 “응.”
 미나가 안전하게 내려갔음을 확인하고 나도 내려가려고 막 한 발을 내딛을 때였다. 느닷없이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옥상인데다 그 옥상에서도 제일 높은 난간에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 바람이 불다니. 그것도 왜 강풍이 부는 거냐고.
 휘이이익!
 엄청난 바람의 세기에 내 몸이 휘청거렸다.
 “신아! 빨리 내려와!”
 미나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바람이 너무 세서 중심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람이 몰고 온 흙먼지 때문에 시야도 깨끗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눈에 먼지가 들어와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뜨고 있었을 때보다 균형 감각이 나빠져 더욱 크게 몸이 휘청거렸고, 그로 인해 그만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꺄아아아악!”
 미나가 왜 비명을 지르는지 아주 잠깐 동안은 알지 못했다.
 “신아!”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내가 옥상에서 추락하고 있어서라는 것을.
 “으아아아악!”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데 비명을 지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 정말 이렇게 죽는 건가. 곧 지면에 닿아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겠지. 하지만 그런 충격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죽겠지.
 온갖 생각을 하며 그 짧은 순간을 보냈다. 그동안 부모님께 제대로 하지 못한 것까지 생각나다니, 정말 죽으려니 철이 드는 건가.
 그렇게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
 
 “아······ 더럽게 아프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죽은 게 맞나? 죽으면 아픈 것도 몰라야 하는 거 아닌가?
 “일어났나.”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흠칫 놀라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몸이 너무도 아팠다.
 “으아아앗······.”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오는 탓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어중간하게 앉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는데, 도대체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사후 세계가 원래 이렇게 현실처럼 생긴 것인지, 내가 그냥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넌 누구지.”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물었다, 그런데 이 남자야말로 누구야?
 “유신이라고 합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곧장 남자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이어서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저는 그러니까······ 서울에 사는 고등학생인데요.”
 아무리 봐도 외국인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망을 담아 대답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넌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것 같군.”
 남자는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 정말로 죽었단 말이야? 근데 몸은 왜 이렇게 아픈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그쪽이야말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죽은 거면 그냥 죽었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뭐가 이 세계의 사람이니 아니니 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나 죽은 거 맞아?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다.
 “넌 죽은 게 아니다.”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 남자는 특이하게도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려 허리까지 오는 길이였다. 정녕 꿈이 아니란 말인가.
 “아, 아니라고요? 그럼 제가 살아 있단 말입니까?”
 남자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내가 차원을 넘어서 온 것 같다며 더욱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해댔다.
 그러니까 이 남자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정령인지 뭔지 하여간 무언가를 소환하려고 소환마법을 사용했는데 그 마법에 걸려 나타난 것이 나라고 한다. 정신을 잃은 채 이곳으로 날아왔다나 뭐라나.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떨어진 충격으로 내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 남자가 정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데. 도대체 뭐지?
 어쨌든 마법인가 뭔가를 썼다고 하니, 그걸 또 쓰면 보내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저를 보내는 마법도 하실 수 있겠네요?”
 “아니.”
 냉정하게도 남자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차원을 넘는 마법은 대마법사라 해도 불가능하단다. 그럼 나는 평생을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야?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혼자?
 “그럼 여긴 대체 어디입니까?”
 방법이 없다고 하니 더 물어봐야 입만 아플 것 같고. 우선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아직도 이 상황이 믿지 않아 미치겠는데, 남자는 무서울 정도로 태연했다.
 “여긴 마계다.”
 “······.”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마계라고 했나? 내가 판타지소설을 많이 본 건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잖아. 마계라니.
 의심의 눈초리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이 정녕 마계란 말인가!
 그럼 이 남자는 인간이 아닌 거야?
 나는 가만히 눈을 들어 맞은편의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의 말대로라면, 정말로 그런 거라면 이 남자 인간 아닌 거 맞지?
 “왜 그러지.”
 급속도록 하얗게 질리는 내 얼굴을 본 남자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댁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합니다.
 “넌 오늘부터 여기서 산다. 네가 이곳으로 온 게 우연이 아니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아까 처음에 말한 것이 네 이름인가.”
 “네? 아, 네. 유신입니다.”
 “이상한 이름이군.”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일단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고, 잘 모르는 곳이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남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상하다고 말하는 저 무례한 행동에도 화를 누르며 참아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내 이름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에 감히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그 이름부터 바꿔야겠다.”
 남자는 내 이름이 이곳의 이름과는 맞지 않는다며 바꾸기를 권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보통 어떤 이름을 쓰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하긴 모르는 게 그것뿐이겠느냐마는.
 “어떻게 지어야 합니까? 어떤 식의 이름을 사용하는지 몰라서요.”
 무엇보다 당신 이름도 모르고요. 이 남자는 내게 자기 이름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다.
 “데리안 제레미오. 내 이름이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이름을 말해준 남자는 내게 이런 식의 이름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넓디넓은 방 안을 돌아다니며 고민에 빠져 있는데, 책장 한쪽에 꽂혀 있는 낡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라고 읽습니까?”
 남자, 아니 데리안에게 책을 내밀자 그가 <마계 4대 공작에 관하여>라고 읽어 주었다.
 근데 잠깐만. 데리안과 나는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왜 말이 통하는 거야? 글자는 못 읽겠는데. 상식적으로 이상하잖아. 내가 마계의 언어를 알 리가 없는데.
 “질문이 있습니다.”
 그가 해보라는 듯 살짝 턱짓을 했다.
 “저하고 그쪽······ 그러니까 데리안, 이름으로 불러도 되나요?”
 조심스럽게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하는 거겠지?
 “데리안하고 제가 어떻게 말이 통하는 거죠? 우린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면서요. 차원이 다른데 언어가 통할 리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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