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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성존전 1화

2016.03.30 조회 1,004 추천 12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면서 온 세상을 밝힌다. 지상에서 본다면 태양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눈부실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태양이 ‘온 세상’을 밝힐까?
 그 태양을 직접 보고 있는 남자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는 기이한 공간에 있었다.
 선 것도, 누운 것도 아니고 부유하고 있던 남자는 태양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이었다.
 남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었고, 붉고 환하게 빛나는 태양과 짙은 회색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달, 그리고 수많은 별들과 유성이 남자의 눈에 가득 담겼다.
 남자는 다시 눈을 돌려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 있었다.
 남자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지금껏 천하, 혹은 세상이라 생각했고 말했던 또 다른 별이.
 그 별은 남자가 보고 있던 그 어떤 별보다도, 심지어 달이나 태양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최소한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기한가요?”
 이 공간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빛으로 구성된 ‘그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떠나서 도저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단 눈이나 코 등 감각기관이 없었으니까. 그저 빛으로 된 무언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빛은 놀랍게도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으며, 남자는 그 빛이 인간보다 더 고위의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기하다라······. 아뇨.”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 심정은 신기하다는 걸로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이젠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제껏 그를 지탱하던 상식이란 상식은 모조리 부서졌고, 상상도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포함해서······ 감동했다. 눈앞의 광경은 평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장엄했다. 일단은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에 대해 알았을 뿐입니다.”
 빛은 웃었다. 미소가 보이지 않았고 웃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는 빛이 웃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요. 나나 당신이나 이 우주에 비하면 먼지만도 못하죠. 이 거대한 세상을 본다면 우리의 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사소한 일들인지 실감하게 된답니다.”
 빛과 남자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즈음, 빛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 드넓은 우주에서 생명이 살고 있는 별이 얼마나 될까요? 이 무한의 공간에서도 생명이 갖는 가치는 결코 작은 게 아니에요. 네, 그렇고말고요. 그렇기에······.”
 빛은 남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남자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이 앞으로 할 일들이 무척 중요한 거랍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이뤄진 이 대화는 후에 세계의 운명을 바꿨다.
 
 ***
 
 천년신교의 교주인 마흉 천세기는 천하제일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근접한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천하에 기인이사들은 많았지만 어지간한 이들은 감히 천년신교의 수장인 그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또한 천세기가 천년신교를 영도한 뒤부터 이십 년 정도가 흘렀을 무렵 교의 무력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강했다. 천세기의 밑으로 네 명의 마군이 있었으며, 수많은 마인들이 천년신교의 힘을 드높였다.
 천년신교는 그 강대한 무력으로 주변의 문파와 소수민족들, 그리고 마적들을 복속시켰다. 천년신교가 자리를 잡은 천산산맥은 물론이고 신강과 그 주변 일대를 모두 무릎 꿇렸다.
 그 강대한 힘을 천년신교는 이제 중원으로 돌리고자 했다.
 중원은 기름진 땅과 거대한 두 강, 황하와 장강이 있었다. 막대한 물자가 생산되었고 거래되었다. 천년신교가 비록 비단길에서 중계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하고 있었지만 중원 전체에서 오고 가는 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때마침 명분도 얻었다. 천년신교의 휘하 문파 중 하나가 정파의 무인들에게 궤멸당한 것이다. 생존자들이 천년신교로 도망을 와서 복수를 빌었을 때 천년신교는 기꺼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휘하 문파를 토벌한 자들은 정파 중에서도 각각의 지역에서 패자로 군림하고 있는 구파나 오가는 아니었다. 최근 감숙성 서부 일대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숭검문이라는 문파였다. 구파나 오가와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정파무림에서는 대문파로 인정받고 있는 문파였다.
 하지만 천년신교 입장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치워버릴 수 있는 문파였다.
 천년신교는 즉시 행동에 나섰다. 무력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정파무림의 연맹체인 무림맹에 서신을 보냈다.
 
 「숭검문은 신교의 보호 아래 있는 문파를 세력 확장이라는 명목 하에 멸문시켰다.
 생존자들은 우리에게 몸을 의탁했으며 보복을 부탁했다.
 우리는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형제의 피는 곧 우리의 피. 신교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무림맹은 숭검문과 본교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
 
 무림맹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장에 숭검문을 도와주고 나아가 마교(정파에서는 천년신교를 사특한 무리라 하여 마교로 칭했다)와 일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숭검문을 버릴 수는 없으나 적절한 협상을 통해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대립했다. 그러나 결국 주전파로 여론이 기울었다.
 이때 천년신교의 무력이 사상 최강이었듯이 정파 무림의 무력 역시 나날이 발전 중이었다. 게다가 고만고만한 문파들 입장에서는 전쟁 만큼 위로 올라갈 기회가 드물기도 했다.
 결국 양측의 이해관계로 인해 전쟁이 발생했다.
 정파 무림은 강했다. 하지만 천년신교는 정파 무림이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었고, 몸집만 커진 무림맹과는 다르게 유기적으로 전쟁을 전개해나갔다. 그에 반해 자기 안방에서 싸우는 격이지만 정파 무림은 제대로 싸우지를 못했다.
 결정적으로 천년신교는 변방의 무림세력들을 움직였다.
 천년신교가 크다고 해도 홀로 중원을 감당하기는 무리였다. 설사 중원 무림을 쓸어버린다고 해도 중원 전체의 이권을 천년신교가 다 차지하기는 무리였다. 때문에 천년신교는 변방의 거대세력들에게 중원의 일부 지분을 약속한 뒤 끌어들였다.
 서장의 대뢰음사가 움직였다.
 남만의 독림이 진격했다.
 북해의 빙궁이 내려왔다.
 또한 천년신교는 새외의 세력만 끌어들이지는 않았다. 천년신교는 어쨌든 세간으로부터 마교로 불렸다. 게다가 변방 세력까지 끌어들였으니 황궁이 나설 가능성도 있었다.
 천년신교가 전쟁에 나설 무렵 황궁은 황좌를 놓고 황자들이 권력다툼을 하고 있었다. 천년신교는 그중 입맛에 맞는 황자를 골라 천년신교의 중원지배권을 인정받는 걸 조건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했다. 황자를 도와 수많은 반대파 인사들을 암살했으며, 천년신교의 일부 조직들을 떼어주었다.
 천년신교가 돕는다고 해서 그 황자가 제일 유리했던 것은 아니었다. 권력을 위한 패가 무력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분명히 도움은 되었다. 이로써 황위계승권을 둘러싼 싸움이 격해졌다. 황궁은 무림의 일에 개입할 상황이 아니었다.
 천년신교는 해룡방이라는 해적 세력과 수적들의 집단인 장강수로연맹, 황하십팔채 또한 포섭했다. 산적들이 모여 만든 조직인 녹림칠십이채 또한 천년신교와 동맹을 맺었다.
 이로써 정파 무림은 전쟁 물자 이동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옛날부터 수로와 관도는 물자 이송의 중요 수단 중 하나였다. 수로와 산길 주변의 관도는 천년신교에게는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정파 무림에게는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되었다.
 중원에는 정파 무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파라 칭하는 자들도 있었고 소수지만 마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정파의 힘에 눌려 살았고, 천년신교에 호응해 일어섰다. 살수 조직들 역시 천년신교하고만 계약을 했다.
 내우외환.
 신강 일대의 수많은 세력과의 대립 관계 속에서 천년신교는 상대를 적절하게 제어할 방법을 알고 있었고, 타 세력에 대한 배타심이 크게 없어졌다. 하지만 정파 무림은 자신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기에 천년신교는 이 틈을 파고들어 철저한 고립작전을 펼친 것이다.
 바깥에서는 천년신교와 변방 무림이 장애물을 짓밟으며 진격했다.
 안에서는 산적, 수적, 그리고 해적 같은 도적 집단과 사파, 마인세력이 날뛰었다. 날이며 날마다 중요인사가 암살당한 채 발견됐다.
 정파 무림은 삽시간에 밀렸다. 아예 무림맹에서 이탈하는 문파들이 속출했다. 그들은 자부심을 버리더라도 죽고 없는 내일보다는 살아있는 내일을 택했다. 천년신교는 관대하게도 그런 문파들을 받아들여주었다. 물론 지속적인 감시는 했지만 딴 짓만 하지 않는다면 문파 자체는 내버려두었다.
 무림맹은 순식간에 패망 직전까지 몰렸다.
 그때 다섯 명의 영웅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때 정파의 촉망받는 후기지수였다. 전쟁 초기 때 홀연하게 사라진 그들은 오 년이 지나고 무림맹이 끝자락까지 몰릴 위협에 처하자 절세의 무력을 갖추어 세상에 출도한 것이다.
 그들은 강했다.
 천년신교의 그 어떤 고수도, 변방 무림의 그 어떤 고수도 그들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사파나 도적 집단은 그들을 보면 무조건 후퇴했다.
 살수들이 수없이 그들을 암살하려 했으나 오는 족족 당하기만 했다.
 어느새 다섯 영웅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렸다.
 호정오협.
 그들은 자신들이 선문에서 무공을 배웠다고 밝혔다. 사실 이는 떳떳하게 발표할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 전까지만 해도 각각의 문파에 소속되어 있었고, 함부로 타 문파의 무공을 배우는 것은 그들의 사문을 능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과 선문이라는 이름이 그 어떤 비난도 허용하지 않았다.
 “선문은 자격이 있는 자만 들어갈 수 있는 전설의 문파다. 선계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할 정도로 그들의 무공은 심오하며 정의롭다. 호정오협이 선문의 무공을 배웠다는 것은 칭송하면 했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무림맹주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로 선문이 주는 이름값은 대단했다.
 천년신교는 호정오협의 출현을 경계했다. 정확히는 선문의 천하 출도를 걱정했다. 아무리 전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어가고 있다지만 선문이 주는 미지수의 힘은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계산이 안 되었다.
 다행히도 선문은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호정오협의 선언 뒤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천년신교도 이쯤 되면 선문이 실존하는 문파인가 아닌가 고민했을 정도로 조용했다.
 호정오협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천하가 휘말린 전쟁이었다. 다섯 명의 절대고수가 합류한다고 하더라도 이쪽에도 절대고수들은 있었고, 경계할 필요는 있어도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의 양상이 천년신교의 생각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정파 무림은 천년신교의 예측대로 거의 궤멸까지 갔다. 호정오협의 출현 이전에 이미 그렇게 되었다. 천년신교와 동맹세력들은 착실하게 정파 세력을 줄여갔으며, 중원 곳곳의 은거기인들이 일어섰지만 막강한 조직의 앞에 스러져갔다.
 호정오협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들인지 나타날 때마다 천년신교와 동맹세력들이 패배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검토한 작전과 과할 정도의 인력, 함정을 준비했다. 그들이 파악한 호정오협의 수준이라면 반드시 죽어야 했다. 하지만 호정오협은 죽기는커녕 예상 이상으로 강한 힘을 내서 위기를 모두 타파했다. 평상시에는 죽일 수 있는 정도의 고수였지만 그들이 진짜 위기에 처할 때는 몇 배에 달하는 힘을 발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들은 측정 불가능한 선기를 내뿜었다. 인간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수차례에 달하는 전투의 보고를 받은 천년신교의 참모진은 이렇게 평했다.
 “그들은 어디에서 힘을 공급받는 듯하다.”
 말이 되는 얘기인가 싶었지만 실제 그들이 내뿜는 선기가 그들의 몸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는 보고도 있었다. 목격자가 한둘이 아닌 이상 믿어야 했다.
 또한 호정오협은 선언했다.
 “선문이 있고 선계가 있는 한, 우리는 패하지 않는다. 선계는 우리에게 항상 힘을 주신다.”
 천년신교 입장에서는 개소리였다. 그렇다면 하늘이 의도적으로 정파 무림을 돕고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렇든 아니든 천년신교는 호정오협의 힘을 타파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호정오협과 무림맹, 그리고 들불처럼 다시 일어선 정파 무림의 힘에 동맹세력은 정전협정을 맺었다.
 맹이 다 떨어져나간 천년신교는 홀로 전쟁을 수행했고, 결국엔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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