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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파병부대 [E](종료230901)

파병부대 1권 (1)

2016.04.21 조회 25,506 추천 222


 * 서장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국가조직망이 와해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정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유엔을 비롯한 유력 국가들이 나서서 수없는 중재를 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내전 초기, 작은 조직에 불과했던 반군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거나 유지하기 위해 인근 바다에서 대규모 해적질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이들의 행위는 국제적인 공분을 사서 연합함대까지 구성하여 대응했지만 이들을 완전히 근절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소말리아 유력자들과 은밀히 손을 잡으며 세 불리기에 나선 반군들의 기세는 점점 더해졌고, 무장을 불리면서 이제는 어엿한 거대 군벌들로 성장해 버렸다.
 세를 불리고 중무장을 한 이들의 해적 행위는 점점 도를 넘었다. 초기에 선박을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하던 정도에서 몸값은 물론이고 선박 털기도 자행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피해는 눈덩이같이 불어났다. 거기에 케냐 국경까지 침범해 인종 학살까지 자행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되자 그동안 연합함대를 구성해 선박을 호위하며 방어적으로 대응하던 각국은 유엔 결의를 거쳐 나토의 신속대응군같이 반군을 직접 타격할 평화유지군 결성을 결의하고 작전의 신속 전개를 위해 단일국가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있자 각국의 시선은 국제경찰을 자임하던 미국으로 쏠렸다. 하지만 미국은 의외로 자국 병력의 파병에 난색을 표명하고 나섰다. 겉으로는 지속적인 병력 감축 때문에 장기 주둔시킬 여유 병력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파병으로 거둘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소말리아 옆 지부티에 이미 해군기지가 세워져 있고 반군들이 미국 선박은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있었기에 구태여 여단 이상의 병력을 파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다 파병할 지역인 소코트라 섬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불편한 관계인 예멘Yemen의 영토였다.
 미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파병에 난색을 표시하자 이번엔 영국이 파병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 또한 중동 지역에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어 버렸다.
 이렇듯 각국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영국과 미국이 파병을 못 하게 되자 이번에는 그동안 집단적자위권이란 미명하에 강력하게 군사 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이 나섰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받았지만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고 있던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유엔 상임이사국들의 자국의 이해득실에 의한 물고 물리는 파병 반대가 잇따르자 유엔은 파병 결의는 했지만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야 했다.
 유엔이 이렇듯 각국의 이해득실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해적들은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덴 만 인근뿐이 아니라 인도양까지 진출해서 해적질을 자행하여 이들에 의한 피해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소말리아 해적들의 공략 대상이 되면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던 주요 당사국들인 아시아권 국가들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을 강력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묘한 국제 역학 관계에 의외의 불똥이 튄 나라는 바로 한국이었다.
 2030년 한국 대통령은 홍성관이었다.
 홍성관 대통령은 보수 성향의 정당 출신으로 비록 보수적 인사이기는 하지만 합리적 성품으로 야권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국정 운영을 원만하게 해 나가고 있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는 총리를 비롯한 주요 장관급 인사들 몇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홍성관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엔에서 파병 국가로 우리나라가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요?”
 대통령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 김석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의외입니다. 파병을 자청한 일본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우리나라가 거론되고 있다니요?”
 “유엔 대사의 보고로는 일본의 무모한 파병 요청 때문에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때문에요?”
 “중국의 반대로 비록 일본 파병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소말리아 반군의 해적 행위로 각국들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현 상황에 중국도 대안도 없이 일본의 파병을 계속 반대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 외교부 판단으로는 중국이 미국과 모종의 협상을 한 것 같다는 분석입니다.”
 그러자 배석한 국정원장 나용호가 나섰다.
 “김 장관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워싱턴에 파견 나가 있는 우리 요원들의 첩보에 의하면 중국 대사가 며칠 전 미국 국무 장관을 은밀히 만났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우리나라의 파병으로 급격히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의도가 아주 불편하군요.”
 이번에는 총리가 발언했다.
 “맞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우리 병력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총리의 말에 대통령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한 통일 무드가 조성되면서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더니 이젠 노골적으로 우릴 경계하기 시작하는군요.”
 2030년의 한반도는 통일 직전이었다.
 이렇게 통일 무드가 조성된 것은 전제 왕조와 같았던 북한이 2020년 소장파 장성들이 주축이 되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그 후 쿠데타 주역들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고는 반대하는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내전에 버금가는 피의 숙청을 벌였다. 그 여파로 한동안 한반도의 정국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다행히 쿠데타 세력이 기득권 세력을 일소했다. 이렇듯 정국을 완전히 장악한 북한의 신지도부는 통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북한의 이러한 적극적인 통일 의지는 남한의 열렬한 호응으로 급격히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통일의 가장 전 단계로 조건 없는 이산가족 상봉과 더불어 적극적인 경제 교류가 시작되었다.
 남한은 북한의 낙후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통일을 전제한 적극적인 인적 물적 지원을 아낌없이 펼쳤고 북한도 이에 범국가적으로 호응했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숙련된 노동력의 조합이 환상적으로 맞아떨어지며 남북한 국력은 이후 급속히 신장된다.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남북이 동반 성장을 하자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되어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 격차가 10년 이내로 줄어들 정도로 완전히 상전벽해 되었다. 그동안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 재건과 이산가족 교류, 그리고 관광 등을 제외한 인적 교류를 막아 왔던 남북한은 통일의 기반이 완전 조성되었다는 판단하에 2030년에 들어서면서 인적 교류를 전면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그동안 그렇게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만을 챙겨 왔던 ‘국해의원國害議員’들이 지난 10년간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악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국해의원들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힘이 있다고 자부하던 상당수 국해의원들은 자신들의 힘과 지위를 악용하여 북한의 지도층과 접촉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려 했지만 비리 권력층을 일소한 북한 지도부의 철저한 대응으로 대부분 법정에 서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러한 한반도 통일 무드에 중국은 자신들의 영향력하에 있던 북한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온갖 방해 공작을 펼쳤고 당장 통일을 눈앞에 둔 남북한이 이런 아귀와 같은 중국의 욕심을 모두 막아 내기는 불가능했다.
 북한이 3대 세습을 하는 동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측에 많은 이권을 넘겨주었던 터라 지난 10년간 남북한 지도자들은 어쩔 수 없이 상당 부분의 이권을 그들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지난 시절을 잠깐 회고하던 대통령은 국정원장에게 물었다.
 “나 원장님, 미국이 나섰다면 상황이 심각하겠군요. 국정원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저의 원에서 판단하기는 조만간 미국 측에서 정식으로 우리에게 파병을 요청해 올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이 생각한 대응 방법이 있습니까?”
 “미국이 정식으로 요청해 온다면 들어주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국익에요?”
 “그렇습니다. 남북한 통일 총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때 미국과 불편한 관계라도 조성된다면 통일에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조차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포기한 곳에 귀중한 우리 군대를 파병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렇지만 우리가 파병을 거부하면 일본이 파병을 할 명분을 제공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우리 국익에 더 좋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하! 이거 참, 진퇴양난이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국방부 장관 최영희가 나섰다.
 “저희 국방부에서는 파병을 나쁘게 보지만은 않습니다.”
 의외의 말에 대통령이 눈을 크게 하고 물었다.
 “나쁘지만은 않다니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원에서 어제 우리 국방부에 유엔에 관한 첩보를 넘겨줘서 군 수뇌부가 별도로 회의를 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군에서는 파병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저희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파병을 찬성합니다.”
 “대국적인 관점에서의 찬성요?”
 “그렇습니다. 저희 군은 만일 파병을 하게 된다면 파병을 통일의 전 단계 과정으로 보자는 의견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지난 10년간 통일 분위기 조성으로 남북은 협상에 따라 상당수의 병력을 감축해 오고 있습니다. 곧 남북한 총선거가 실시되어 정식으로 통일이 되겠지만 아직까지 남북한은 양군의 미묘한 문제로 합동훈련을 한 적도 없고 그동안 미묘한 입장 차로 누가 먼저 이 문제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번에 파병을 하게 된다면 이것을 기회로 남북한이 본격적으로 군부 통합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랬다. 지난 10년간 남북은 경제 등 다른 분야는 교류가 진행되었지만 군대 문제만큼은 병력 감축 이외에는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군사 교류는 통일의 마지막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남북한 지도자들도 이 문제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었다.
 대통령도 항상 고심하던 문제라 국방부 장관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군사 교류는 통일의 마지막 해결 과제라는 것은 모두들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저도 그 문제를 늘 고심하던 참이었는데 국방부 장관 말씀을 들으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입니다. 국방부 장관께서는 양측의 군사 교류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은 있으십니까?”
 “이번에 파병을 하게 된다면 남북 양군이 합동 파병을 하는 것을 건의드리고 싶습니다.”
 최영희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들이었다.
 “남북한 합동 파병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국방부 장관의 제안에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잠깐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대통령이 물었다.
 “남북 양측은 군사 문화가 전혀 다른데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비록 양군의 문화가 다르고 직급이 조금 다르다고 해도 상명하복이 분명한 것이 군대입니다. 지난 10년간 개혁의 중심에 서 있었던 북한 군부도 이전의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는 확실하게 벗어났다고 보아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통합에 따라 발생할 소소한 문제점들은 몇 개월 정도 합동훈련을 하면서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더구나 합동훈련 중 발생하는 문제점은 앞으로 양군이 정식 통합을 할 때 반드시 나타날 문제일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해 양군이 충분히 협의하여 좋은 안을 도출한다면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저희 군은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할 것을 건의드립니다.”
 주무장관인 국방부 장관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있자 나머지 참석자들의 안색이 크게 밝아졌다.
 그때 국무총리 박임모가 나섰다.
 “최 장관의 말씀을 듣고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의 귀중한 목숨을 걸고 파병을 하는데 반드시 합당한 대가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실속을 챙기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금년 상반기 중에 주한 미군의 공군을 제외한 육군 병력 전부가 철수를 합니다.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 군이 소말리아에 파병한다면 이번에 그들의 전시 물자를 무상 양도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한 미군은 한반도 분쟁이 종식된 후에도 병력이 조금 줄기는 했으나 그동안 계속 존속되어 왔다.
 하지만 통일을 눈앞에 다가오면서 2030년 상반기 중 공군 병력을 제외한 지상 병력 전부를 철수하기로 한미 양국 간에 협의되어 있었다.
 총리의 제안에 대통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국방부 장관께서는 총리께서 말씀하신 점을 적극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청와대에서 회의가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미국 국무 장관이 한국의 파병을 권하기 위해 내한했다. 한국 정부는 이미 파병을 전제로 검토를 진행하던 터라 파병협상은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전시 물자 양도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경제 사정으로 외국에 주둔하던 병력을 계속적으로 감축하고 있던 터라 잉여 물자로 남겨야 하는 주한 미군 전시 물자를 한국에 넘기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 요구대로 무상 양도는 아니고 본래 가격보다 아주 낮은 유상 양도로 결정되었으나 한국으로서도 낮은 가격 때문에 크게 불만이 없었다.
 한국의 파병이 결정되자 한국 지도부는 이러한 결정을 즉각 북한 지도부에 알리며 합동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북한 지도부도 대환영이었다.
 그들도 마지막 남은 통일의 걸림돌인 군부 통합에 대해 상당히 고심하고 있었기에 한국의 요청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남북한 양국은 즉시 세부 협의에 들어갔고 협의 결과 통합군 계급 체계는 북한군의 계급 체계인 각 직급별 4단 계급제를 채택하면서 군의 인사 적체도 해소하기로 했다.
 장성직급은 차수를 없애고 부사관 계급 중 북한의 특무상사를 원사로 통일했다.
 파병 병력은 남북한이 혼성 편성을 하기로 했고 파병은 의회의 결의를 거쳐 신속히 진행되었다.
 파병 부대는 남측에서는 현지 작전 상황을 고려하여 해병대 병력과 각종 지원부대가 차출되었고 북측에서도 연대 병력이 참여했으며 부대 지휘관으로는 한국군 장성을 선정했다.
 
 
 
 * 파병派兵
 
 
 
 2030년 5월 제주도 강정기지.
 대한민국 유일의 대양 함대사령부가 있는 제주 강정기지 항구에는 내항과 외항을 가득 메울 정도로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은 주변국의 군사력 증강에 맞서 3개 전략 기동함대를 보유하기로 결정하고 2030년까지 독도 급 3척의 추가 건조를 비롯해 세종대왕 급 이지스함 3척과 5,000톤 급 구축함 6척을 추가로 건조하여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북한과의 급격한 통일 분위기에 따라 전략 기동함대 편성 계획을 대폭 수정하여 새롭게 대양 함대를 편성하였고 대양 함대사령부 모항지를 함대 운용 취지에 맞게 제주 강정으로 결정했다.
 강정기지 항구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산중턱,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4층의 대양 함대사령부가 둥지를 틀고 있었고 그 3층에 대양 함대사령관 집무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양 함대사령관 박충식 제독이 망원경으로 항구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제 모든 민간 선박이 들어온 건가?”
 “조금 전 울산에서 도착한 원유 시추선[Drillship]을 끝으로 동행을 신청한 선박들이 모두 입항했습니다.”
 부관의 설명에 대양 함대사령관 박충식은 거대한 크기의 원유 시추선에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며 감탄했다.
 “대단하군. 저렇게 큰 원유 시추선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보니 규모가 대단해.”
 사령관의 감탄에 부관인 이현호 소좌는 가지고 있던 서류를 들춰 보며 설명을 했다.
 “자료에 의하면 방금 들어온 원유 시추선은 극지방에서도 시추가 가능한 쇄빙 능력을 겸비한 선박으로 길이 110미터, 높이 21미터에 너비 70미터 그리고 무게가 4만 5,000톤으로 상주 인원도 100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흠! 시추선이 마치 대형 전함과 다를 바 없군.”
 이렇게 말하던 박충식 사령관은 항구에 정박해 있는 대양 함대 소속 전함들과 민간 선박들을 둘러보다 독백을 했다.
 “저렇게 많은 민간 대형 수송선들까지 정박해 있으니 완전히 대규모 선단이로군.”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박충식에게 부관이 회의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민간 선박 선장들과 파병 부대 지휘관 그리고 대양 함대 지휘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상견례를 겸한 합동 회의가 오후 2시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부관의 말에 박충식은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바라봤다. 시계는 2시 20분 전이었다.
 “2시라면 얼마 안 남았군. 장소는 어딘가?”
 “회의 장소는 2층에 있는 대회의실입니다.”
 “원유 시추선에서 인원이 오려면 시간이 촉박하지 않나?”
 “이미 헬기를 타고 들어와서 대기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 원유 시추선에도 헬기가 탑재되어 있구나.”
 “그렇습니다.”
 “그럼,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바로 내려가세.”
 “제가 모시겠습니다.”
 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박충식 제독이 2층으로 내려가 대회의실로 들어서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부대 지휘관들과 선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충식이 자신의 자리에 서자 부관의 사회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민군 합동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입니다.”
 이어서 국민의례는 약식으로 진행되었고 의례를 마치자 부관인 이현호가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자리에 앉느라 잠시 소란스러웠으나 회의실은 이내 조용해졌고 박충식은 부관의 소개가 있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번에 수송 함대를 지휘하게 된 대양 함대사령관 상장(중장) 박충식입니다.”
 박충식이 먼저 인사를 마치자 부관은 회의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파병 부대 지휘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이번에 파병하는 부대인 미르부대 부대장님이십니다.”
 이현호 소좌의 소개가 있자 박충식의 왼편에 앉아 있던 장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에 미르부대를 이끌게 된 여단장 김종석 중장(소장)입니다.”
 짝짝짝짝.
 참석자들의 박수 소리에 이어서 사회자는 미르부대 부여단장을 비롯해서 지휘관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소개를 받은 부대 지휘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민간 선박 선장들에게 관등성명과 함께 정중히 인사를 했다.
 특이한 것은 미르부대에 별도의 연대가 편제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는 파병 부대 미르의 특성 때문이었다.
 소말리아 반군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는 병력을 소말리아 내륙까지 직접 투입해야 하는데, 작전 임무의 특수성과 전투력을 감안하여 대부분 부사관 이상으로 구성된 특전연대가 편성되었던 것이다.
 이 특전연대 편성 병력은 대부분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이었고 부대 지휘관은 부대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북한군 출신인 강명철 대좌가 임명되었다.
 미르부대 지휘관들 소개가 끝나자 이번에는 대양 함대 함장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이현호의 소개는 계속되었다.
 “이번에 미르부대를 수송하는 함대는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대양 함대가 맡고 있습니다. 기함인 마라도함의 함장인 김성태 대좌입니다.”
 “반갑습니다. 마라도함장 대좌 김성태입니다.”
 2만 7,000톤의 만재 배수량을 자랑하는 마라도함은 대외적으로는 독도함의 자매함으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설계부터가 독도함과 구조가 전혀 달랐다.
 우선 2만 7,000톤의 배수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도함보다는 훨씬 크게 건조되었으며 독도함과는 전혀 다른 특징으로 2층의 격납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처음부터 함재기를 실어 나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함의 탑재 및 장비 수송 능력은 독도함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늘어났고, 그동안 예산과 주변국의 방해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던 함재기도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영국에서 해리어기 2개 편대가 도입되어 실전 배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독도함과는 전혀 다른 구조와 규모의 마라도함은 소형 항모라 불리기 충분할 정도였다.
 그랬기에 함장은 배의 크기에 걸맞게 해군 함장들 중 최고참 영관을 선임하였고 현재 함장을 맡고 있는 김성태 함장은 이번 작전을 마치고 복귀하면 장성 진급이 내정되어 있었다.
 마라도함장 인사에 이어서 각 전함 함장들이 일일이 소개되었다. 그렇게 각 전함 함장들 인사가 끝이 난 후 이번에는 민간 수송선 선장들이 소개되었다.
 “다음으로 민간 수송선 선장님들 소개가 있겠습니다. 소개는 나이가 많으신 순서대로 하겠습니다. 먼저 오션프린스호의 선장님이십니다.”
 이현호의 소개가 있자 민간인 측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민간 수송선 단장을 맡게 된 오션프린스호의 선장 김기태라고 합니다.”
 김기태는 이번 선단에 참여한 대부분의 선장들같이 해군사관 출신으로, 사령관 박충식과는 해사 2년 후배라 사석에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대양 함대와 동행하는 민간 수송선은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대부분 컨테이너선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주둔지를 건설할 공병 부대는 물론 특전연대까지 편재되어 보통의 여단 병력보다 많은 5,000여 명이 재보급 없이 1년간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군수물자의 양은 실로 엄청났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 많은 물자를 일시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미르부대 주둔 비용을 직접적인 혜택을 보게 되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분담해서 부담했기 때문이다. 주둔지를 건설하기 위한 수많은 건설 장비들과 그에 필요한 건설 물자는 수송선을 10척이나 투입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러한 운송 물자 중 가장 특이한 것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잠수함과 시속 100킬로의 속도를 자랑하는 고속 침투 함정의 수송이었다.
 남북이 통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남한 군부가 놀랐던 것은 북한이 보유한 잠수함 전력이었다.
 이전까지 남한이 파악하기로 북한 잠수함 전력은 비록 수십 척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대개 노후 함정들로 신형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공개된 북한 잠수함 전력은 상당했다.
 비록 로미오 급(만재 배수량 1,830톤, 탑승 인원 65명)의 소형이고 외형은 설계상 어쩔 수 없이 구형이었으나 어뢰발사관 숫자를 8개로 개조하고, 기뢰 발사관까지 갖춘 10척의 신형 잠수함을 자체 제작해 비밀리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진 것이다.
 남북한 군 당국은 파병 부대 임무가 아덴 만 일대를 완전 장악해 수송선박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어서 전투함정을 다수 보so야 했으나 해군 전력 여유분이 거의 없는 남북한 해군 전력을 고려해 유엔과 협의를 거쳐 5척의 북한산 로미오 급 잠수함과 북한의 특수전 부대가 사용하던 고속 침투 함정 10척을 투입한 것이다.
 5척의 잠수함이 원양항해가 가능했지만 보급 문제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해 잠수함을 아예 수송선에 실어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주둔지 소코트라 섬의 항만 시설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주둔지 항만 확충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지부티의 미군 기지 항구를 사용하기로 미국과 이미 협의까지 마쳐 놓았다. 북한 잠수함이 미군 전용 항구를 사용하는 일은 이전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었지만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하는 것이고, 통일을 눈앞에 둔 한반도 상황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수송 선단에서 특이한 점은 일반 상선들이 다수 동행한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난 10여 년 동안 소말리아 해적들이 워낙 심하게 설쳐 대는 바람에 그동안 고가의 수출품을 실은 선박들이 해적들의 나포 위험을 피해 수에즈운하 통과를 아예 포기한 채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수하면서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가는 긴 수송로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대양 함대의 이번 항해는 이들에게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하는 것은 물론 안전 항해까지 보증할 더없이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추가로 동행하는 일반 수송선박은 고가의 컴퓨터 등의 가전제품을 선적한 대형 컨테이너선 3척과 현대상선의 자동차 운반선인 RORO(Roll On/Roll Off)선 3척 등 6척이었다.
 이렇게 16척의 민간 수송선이 참여하고 대한민국 대양 함대 전부가 투입되는 이번 작전은 대한민국 해군이 창설된 이래 가장 대규모의 선단 구성이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소개와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박충식이 마이크를 잡았다.
 “앞으로 사흘 후면 출항입니다. 민간선 선장님들께서는 그동안 선원들 보안 관리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민간 수송선 선장들이 동시에 대답을 하자 박충식은 이번에는 군 쪽에도 똑같은 주문을 했고, 그렇게 박충식의 당부가 끝나자 사회자가 다시 나섰다.
 “그럼 지금부터 본 수송 작전에 대한 작전 개요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부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창문 커튼이 자동으로 내려오면서 회의실 전면에는 대형화면이 비쳤다.
 대형화면에는 이번에 항해할 항로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나타났다.
 “이곳 강정기지를 출발한 본 수송 전단은 민간 수송선과의 보조를 맞춰 도착지인 소코트라 섬까지 15일의 일정으로 항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설명은 10여 분간 계속되었고 설명이 끝나자 박충식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들은 이번 작전에 왜 대양 함대가 전부 투입되는지 의아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게 입을 연 박충식은 잠시 참석자들을 둘러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대규모 군사력 증강을 뒤쫓아 가기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통일 이후를 대비해 지상 군 병력을 감축했고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긴 국방 예산을 해군력 증강을 위해 대대적으로 투입하면서 이제는 어느 나라에도 부끄럽지 않을 명실상부한 대양 해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설명은 참석자들 모두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일이라 전부 고개를 끄덕였고 박충식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더구나 통일을 앞두고 걱정거리였던 남북한 양군의 통합군 편성을 이번에 처음으로 실현하게 되어 한국군은 이제 명실상부한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 군의 강력한 군사력을 주변국들에 알리기 위해 대양 함대의 전 함정을 이번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박충식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군은 국토를 보위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유 전력의 기밀 유지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당당히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알려 쓸데없는 도발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 또한 전술 전략의 일환입니다. 각급 지휘관들은 그동안 충분한 정신교육이 있었겠지만 이번 15일간의 항해 기간을 적극 활용하여 휘하 장병들의 보안 교육은 물론 정신교육에도 힘써 주기를 당부합니다. 아울러 민간 수송선 선장님들께서도 선원들 보안 교육에 특별히 신경 써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이 마치 합창을 하듯 대답하자 박충식의 입가에 모처럼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민간 수송선 선장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오션프린스호의 선장 김기태였다.
 “김기태 선장,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비록 후배이기는 하나 공식석상이라 말을 높이는 박충식 제독의 배려에 감사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김기태가 물었다.
 “이번 항해에 투입되는 선원들을 전부 자국민으로 대체하게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이번에 수송하는 군수물자 중에 비밀을 요하는 물자도 다량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타국 국적의 선원들이 승선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김기태의 되물음에 잠깐 생각을 하던 박충식은 대부분이 해군 장교 출신인 선장들의 신분을 생각하고는 구태여 이들에게까지 작전에 대해 숨길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입을 열었다.
 “참석하신 선장님들이 전부 군 출신이라 다행입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군사기밀 사항이니 당분간 비밀을 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 파병하는 미르부대는 단순히 소말리아 해역을 방어하기 위한 부대가 아닙니다.”
 “다른 임무가 있습니까?”
 “이번에 파병하는 미르부대는 소극적으로 해역을 방어하며 선박의 안전 항해를 책임지는 것이 주 임무가 아니라 소말리아 해적을 완전 섬멸하기 위해 해적들의 근거지를 직접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파병하는 부대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박충식의 설명에 김기태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이 수송하는 군수물자에는 전시 작전 물자와 동일한 각종 장비들과 보급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전의 외부 노출을 우려하여 각 민간 수송선의 타국 국적 선원들을 전부 하선시키도록 미리 조치한 것입니다.”
 박충식의 설명이 있자 그제야 무언가 알았다는 듯 김기태 선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랬군요. 그래서 여단 병력이 5,000여 명으로 확대 편성이 되었고 각종 특수 장비도 저렇게 많이 선적된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래 남북한 양군 동수로 병력을 선발하려던 방침을 바꿔 적진 침투 파괴 등의 특수전의 임무를 수행할 북한군 출신 특수 연대를 새롭게 편제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특수전의 작전 수행 능력은 북한군 전력이 우리 군보다 절대평가에서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은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게 설명하며 박충식이 특전연대 연대장 강명철 대좌를 바라보자 강명철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박충식에게 목례를 했다.
 “저희들 전력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네다, 사령관 동지.”
 특유의 강한 사투리로 인사를 하는 강명철의 말에 박충식이 웃으며 물었다.
 “하하! 강 대좌, 이제 동지란 말은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순간 강명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합네다. 동지란 말이 워낙 입에 붙어 나서리. 앞으로 조심하갔습네다.”
 “수십 년 동안 써 온 말투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네. 하지만 지휘관이 솔선해야 휘하 장병들도 본받지 않겠는가?”
 그 말에 강명철이 정색을 했다.
 “사령관님의 말씀 명심하갔습네다.”
 남북한 양군이 통합 훈련을 받게 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호칭 문제와 표준말 사용이었다. 남북 양군은 군 통합의 일환으로 반드시 표준말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었지만 북한 지역 사투리가 워낙 독특하고 강한 터라 쉽게 바뀌지 않자 우선 호칭 뒤에 붙이는 동지와 동무란 말을 일절 금지시켰다.
 하지만 불과 3개월의 통합 훈련으로 그것이 단숨에 고쳐지기는 어려웠던지 북한군 최고 지휘관인 강명철의 입에서도 동지란 호칭이 자신도 모르게 붙어 나왔던 것이다.
 강명철의 대답에 박충식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남북한 군대가 아무 문제 없이 통합 조직으로 구성된 것만으로도 이번 작전의 절반은 벌써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호칭과 사투리 문제로 너무 부담 갖지 말게.”
 “아닙니다. 통일을 눈앞에 둔 지금 양군이 통합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일 통합에 문제를 일으키는 반동 에미나이들이 있다면 누구든 말씀하시라요. 내래 단단히 정신교육을 시키갔습네다.”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조심하던 강명철은 말하는 도중 흥분하자 바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박충식은 웃으며 손사래 쳤다.
 “하하, 되었네, 되었어. 내가 알기로 미르부대 장병들 중 그런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는 장병들은 1명도 없다고 들었네. 그렇지 않소, 김 장군?”
 박충식의 물음에 김종석 중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의 통합 훈련에서 불미한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병들이 기대 이상으로 상호 협조하며 훈련에 임해 훈련 성과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게 나왔습니다.”
 “당연한 일 아닌가. 통일의 초석이 되어야 할 우리 군이 통합 문제로 불편해진다면 이는 나라에 얼마나 큰 누가 되겠나. 난 우리 장병들이 충분히 잘해 내리라 믿고 있었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어려운 회의는 이만 마치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여기 모이신 분들을 모두 모시고 여기 본부 앞 잔디 광장에서 작은 연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분도 빠짐없이 연회에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짝! 짝! 짝! 짝!
 박충식의 초대의 말과 박수 소리를 마지막으로 이날 회의는 끝이 났다.
 수송 작전을 최종 점검하느라 강정기지 전체가 바쁘게 사흘을 보냈고 드디어 출항 당일이 되었다.
 이 사흘 동안 민간 수송선박 몇 척이 안전 항해를 보장받기 위해 이번 항해에 추가되면서 예상외로 많은 민간 수송선이 동참하게 되었다.
 박충식은 이번 파병의 본래 목적이 수송선박들의 안전한 항해에 있었던 탓에 이렇게 뒤늦게 참여를 요청해 오는 선박들도 타국 국적 선원들의 하선을 전제로 모두 동행하는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드디어 출항 당일이 되었다.
 오전 9시에 진행된 출범식은 대통령 대리로 참석한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남북한 군 수뇌부와 미르부대 장병 가족들 그리고 강정 인근에 거주하는 해군 전함 승조원 가족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부두 광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미르부대장 김종석 장군의 파병 보고를 시작으로 시작된 출범식은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예식을 마치고 파병 병력이 승선을 모두 마치자 시각은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대양 함대 참모장 송의식 대좌는 각 함에서 올라오는 승선보고를 모두 취합한 후 박충식 제독에게 보고했다.
 “사령관님, 모든 병력이 승선을 끝마쳤습니다.”
 “흠, 그래?”
 “합참의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송의식이 수화기를 넘겨주자 박충식이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의장님, 박충식입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합참의장의 목소리가 반갑게 흘러나왔다.
 “아! 박 제독인가.”
 “예, 그렇습니다.”
 “대양 함대와 수송 함대를 이끌고 목적지까지 다녀오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모쪼록 무사히 잘 다녀오기 바라네.”
 “걱정 마십시오, 선배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는 남한 합참의장은 해군 출신으로, 박충식의 직계 선배였다.
 “모쪼록 우리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도 전 세계에 뽐내 주고.”
 “걱정 마십시오.”
 “다녀와서 술 한잔하세.”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충성.”
 “알겠네. 무운을 비네, 충성.”
 통일 기운이 무르익으면서 말이 많았던 각 군의 경례 구호도 ‘충성’ 하나로 통일되었다. 박충식은 합참의장에게 출항 인사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곧 송의식 참모장에게 지시했다.
 “참모장은 함대 출항 준비를 점검하게.”
 박충식의 지시가 있자 송의식 대좌는 통신 사관에게 함대 공용 주파수로 주파수를 열라고 지시하고는 직접 각 전함은 물론 민간 수송선까지 일일이 점검을 시작했다. 함대는 이미 출항 준비를 마치고 있었기에 수십 척의 준비 상황 점검은 10여 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민간 수송선은 물론 대양 함대 모든 함정들이 출항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박충식은 송의식의 보고를 받자 마라도함장인 김성태 대좌에게 지시했다.
 “김 제독, 그럼 출항하지.”
 비록 이번 작전을 마치고 진급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아직 대좌인 자신을 제독으로 불러 주는 박충식에게 목례를 한 김성태는 바로 지시를 내렸다.
 “마라도함, 출항하라!”
 뿌앙~.
 김성태의 지시에 마치 대답을 하는 듯 마라도함에서 엄청나게 큰 기적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충식은 자신의 출항 지시를 각 함에 전하는 통신 사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선교 밖으로 나갔다.
 마라도함의 선교는 독도함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독도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기다란 직사각형 구조인데 반해 일반 항모와 같은 형태로 제작된 마라도함의 선교는 상당히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박충식이 밖으로 나가자 항구에서 가장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민간 수송선들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단의 배들이 모두 상당한 규모였던 탓에 수송선들은 일정한 배치와 거리를 유지하며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간 수송선이 모두 항구를 빠져나가자 대양 함대기함인 마라도함이 운항을 시작했고 뒤이어 대양 함대 전함들도 운항 순서에 맞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속 함대 전함들이 기동하자 박충식은 난간을 돌아 항구 광장 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항구 광장에는 아직 합참의장을 비롯한 양군 수뇌부와 환송객들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박충식은 그들을 보고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군 수뇌부의 답례가 이어졌고, 그들이 손을 내리는 것을 확인한 박충식이 경례를 거두며 손을 흔들자 광장에 있던 많은 환송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
 그런 환송객들에게 한참 동안 손을 흔들어 준 박충식은 몸을 돌려 선교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항구가 제법 멀어질 무렵 옆에서 상황을 점검하던 송의식의 보고가 있었다.
 “사령관님, 함대를 비롯한 선단의 모든 함정들이 무사히 항구를 빠져나왔습니다. 운항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그런가? 그럼 모든 함정은 함정 간 거리를 준수하고, 항로는 계획대로, 속도는 15노트로 정속 항진한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박충식은 잠시 사방을 둘러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바다는 전부 선단 소속 배들로 뒤덮여 있었다.
 박충식이 그 모습을 둘러보며 독백했다.
 “온 바다가 우리들의 배로군.”
 박충식의 독백을 김종석 중장이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야, 이거 온 바다가 전부 우리 차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전부 우리 바다 같지?”
 “그렇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같이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심정은 똑 같았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두 사람 중 자신의 심정을 먼저 꺼낸 사람은 김종석이었다.
 “선단 소속 배들이 전부 대양 함대 전함이라면 어마어마하겠습니다.”
 박충식이 과거를 회상했다.
 “초급장교 시절 미 7함대 기함에 승선해 7함대 기동훈련을 견습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바다를 뒤덮은 기동함대의 위용을 보고 정말 부러웠지. 신라 때 장보고는 개인의 신분으로 이 바다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 후손인 우리가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대양 함대를 운용하고 있다니 참으로 조상 보기가 부끄럽군.”
 “그렇지 않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잃어버린 해상 영토를 되찾을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래, 비록 우리는 이루지 못하겠지만 지금같이 국력이 급속히 신장된다면 앞으로 남의 나라를 부러워하지 않을 날이 오겠지.”
 그러자 옆에 가만히 있던 강명철도 거들었다.
 “남북한이 완전 통일이 되고 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되고말고.”
 박충식의 거듭되는 다짐에 처음 항구를 출발할 때와 달리 함교 안의 분위기는 조금 무거워졌지만 마치 마음속 굳은 다짐을 나타내려는 듯 모두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기동하는 선단은 기함인 마라도함을 중심으로 선단 전후에 이지스함인 율곡이이함과 임계윤집(해군은 신형 이지스함의 함명으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다 순국한 삼학사의 이름을 채택했다. 임계윤집함은 이지스함 2차 건조 계획에 따라 건조되어 2025년 실전 배치되어 있었다.)함이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단의 중심에서 항진하고 있는 마라도함 주변으로 민간 수송선들이 모여 있었고 그 외곽을 대양 함대 전함들이 둘러싸며 호위하고 있었다.
 그렇게 선단의 선박을 사다리꼴 모양으로 배치하여 항해를 하던 수송 선단은 날이 어두워져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박충식이 미르부대장 김종석과 송의식 참모장, 그리고 특수연대 연대장 강명철과 마라도함장 김성태 등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항해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은 후 다시 마라도함의 함교로 올라왔을 때는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박충식은 자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각 선박의 이상 유무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하고는 이번에는 대양 함대에 배속된 2척의 잠함을 호출하였다.
 대양 함대에 배속된 2척의 잠함은 대우조선해양에서 기획한 DSX-3000의 설계를 바탕으로 순수 한국 기술로 건조된 3,000톤급 최신예 잠수함이었다.
 한국 해군의 본래 계획은 이 신형 잠수함 엔진에 한국형 원자로인 SMART형 원자로를 장착하려고 했으나 주변국들의 견제, 특히 한국의 군사력 증강을 극력 경계하는 일본의 반발이 워낙 심해 아쉽게도 디젤엔진을 탑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70일간의 작전 능력과 미사일 수직 발사관을 12기나 갖춘 무장 능력, 그리고 수중에서 20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최신예 잠수함이었다.
 “사령관님, 잠수함이 호출되었습니다.”
 “누군가?”
 “강이식함 함장 강병익 중좌입니다.”
 박충식은 통신 사관이 건넨 수화기로 교신을 시도했다.
 “강 함장인가? 사령관이다.”
 “충성, 강이식함장 중좌 강병익입니다.”
 “바닷속 상황은 어떤가?”
 “일본의 오야시오 급 잠함이 조금 전까지 따라오다 돌아간 후로는 바닷속은 아주 잠잠합니다.”
 “일본 잠수함이 따라왔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놈들, 뭐 먹을 게 있다고 쫄쫄거리며 따라다니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두 시간 전 돌아가고 난 후부터는 바닷속은 아주 조용합니다.”
 “내일 오전 중 오키나와에서 7함대 소속 잠함이 마중을 나온다고 했으니 미리 유념해 두게.”
 “알겠습니다. 이상 상황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잠함 운항은 이상이 없는가?”
 “걱정 마십시오. 마누라보다 더 소중하게 정비하고 있습니다.”
 “하하! 알겠네. 수고하게.”
 “예, 충성.”
 강병익은 진주 강씨 시조인 고구려 명장 강이식 장군의 이름을 딴 강이식함의 초대 함장이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강병익과의 교신을 웃으며 끝낸 박충식이 두 번째 잠수함인 고선지함의 함장과도 교신을 마친 후 수화기를 통신 사관에게 건네자 부관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사령관님, 9시가 되어 갑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부관의 말에 벽에 걸린 시계를 본 박충식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그 순간 갑자기 참모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박충식을 불러 세웠다.
 “사령관님, 하늘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뭐라고? 이상한 현상? 어디인가?”
 “저쪽 12시 방향입니다.”
 참모장이 손짓하는 하늘에는, 밤임에도 불구하고 함대 바로 정면에서 이상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뭔지 모를 현상은 박충식이 보고 있는 중에도 순식간에 커지면서 밝은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의 밝기가 얼마나 밝았는지 달빛은 물론 밤하늘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고 차츰 크기가 커지면서 아주 강력해 보이는 번개 모양의 스파크가 사방으로 발산하며 괴기스럽기까지 하였다.
 박충식은 처음 보는 현상에 놀라며 되물었다.
 “어! 저게 대체 뭔가? 저렇게 이상한 것은 처음 보는데? 저런 게 초자연현상인가?”
 “저도 저런 현상은 처음 봅니다.”
 웅성웅성.
 하늘의 이상 현상에 함교가 술렁였다.
 그때 같이 하늘을 바라보던 이현호가 소리쳤다.
 “어? 사령관님, 크기가 갑자기 커지면서 더 밝아집니다.”
 하늘의 이상 현상은 처음에도 아주 밝았지만 그 중심은 크기가 작았으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크기도 점차 커지면서 이제는 온 사방이 대낮같이 밝게 보일 정도가 되었다.
 처음 보는 이상 현상을 바라보던 박충식이 규모가 너무 빠르게 확산되는 것이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어 마라도함장에게 헬기를 출격시키라 하려고 할 때였다.
 레이더를 담당하는 부사관이 다급하게 함장을 불렀다.
 “함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레이더가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 사관이 함장을 부르는 소리에 박충식도 고개를 돌려 레이더를 바라보자 레이더 전체가 이상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가?”
 “저도 이런 현상은 처음 봅니다.”
 “레이더의 오작동인가?”
 “조금 전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빨리 레이더를 다시 점검해 보게.”
 함장의 지시에 무선 담당 간부가 서둘러 기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현호가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사령관님, 하늘의 이상 현상이 엄청난 속도로 우리 함대 쪽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현호의 다급한 외침에 박충식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하늘에 있던 그 빛무리는 조금 전과 달리 엄청나게 커져서 함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어?”
 그러나 박충식이 충돌에 대비하라는 말을 할 틈도 없이 엄청나게 무서운 속도로 쏟아져 내린 그 빛은 그대로 선단과 정면충돌했다.
 쏴악~. 꽝!
 박충식은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진 너무나도 하얀 빛이, 함교는 물론 자신의 몸 전체를 그대로 관통해 버리는 것을 느끼면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박충식은 기분 나쁠 정도로 머리가 아픈 것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음~.”
 “사령관님, 정신이 드십니까?”
 귓가로 부관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충식은 깨질 듯 아픈 머리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힘겹게 눈을 떴다. 하지만 너무도 밝은 빛을 정면으로 받은 탓인지 잠시 동안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흘러 초점이 잡히자 부관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문득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박충식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
 “마라도함 의무실입니다.”
 “하늘에서 쏟아진 빛 때문에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보군.”
 “하루 동안 누워 계셨습니다.”
 “그런가?”
 지끈거리는 두통에 잠시 말을 멈춘 박충식은 잠시 후 두통이 진정되자 이현호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가?”
 “어젯밤의 초자연현상으로 선단의 모든 인원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저희들은 몇 시간 뒤 정신을 차렸지만 사령관님께서는 조금 더 누워 계셨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난생처음 경험한 일이었어. 인명 피해는 없는가?”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함대와 민간 선박들 모두?”
 “그렇습니다. 민간 선박은 물론 수중에 있는 잠함까지도 모두 무사합니다.”
 피해가 없다는 이현호의 보고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박충식이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더 누워 계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걱정하는 말에 박충식은 자신의 몸을 훑어보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몸은 이상이 없는 것 같네.”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게 아니었다.
 휘청~.
 이현호가 황급히 박충식을 부축했다.
 “사령관님.”
 “괜찮아. 잠시 어지러웠을 뿐이야.”
 “조금 더 누워 계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내 몸은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함교에 올라가자.”
 박충식을 부축한 이현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의무장교 남효만 대위에게 물었다.
 “남 대위, 지금 움직이셔도 문제없겠나?”
 “잠시 정신을 잃으셨을 뿐 신체에 별다른 이상은 없으십니다.”
 박충식이 의무장교의 말을 들으며 의무대를 나서려고 할 때 이현호가 보고를 시작했다.
 “그런데 함대에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무슨 문제인가?”
 “어제까지 모든 함정의 전원이 아웃됐었습니다.”
 박충식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라고? 모든 함정의 전원이 나갔었다고?”
 1척의 전함의 전원이 나가도 해군 전체가 발칵 뒤집힐 일인데 모든 함정의 전원이 나갔었다는 말에 박충식이 깜짝 놀란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이상하게 모든 전원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조금 전부터 전원이 들어와 모든 것이 정상화되었습니다만 그것 말고 문제가 또 있습니다.”
 또 문제가 있다는 보고에 박충식이 걸음을 멈추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또 문제가 발생했다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 자세한 것은 올라가서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네.”
 박충식이 서둘러 함교로 들어서자 실내 분위기는 늘 정제된 모습이 아닌 아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박충식이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쳤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어수선한가.”
 박충식의 호통에 어수선한 분위기는 일순 정리되었고 그 사이 참모장 송의식이 급하게 다가왔다.
 “사령관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 이상 없네.”
 “다행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인가?”
 “GPS(위성항법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GPS가 작동하지 않다니. 전원이 나갔었던 것 때문에 그런 건가?”
 “그건 아닙니다. GPS가 마치 재밍Jamming(전파 교란)이라도 당한 것 같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고 않습니다.”
 박충식이 깜짝 놀라 소리치다시피 되물었다.
 “재밍이라니? 남북한이 통일을 앞두게 된 지가 언제인데 재밍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 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전파 교란을 시도했단 말인가?”
 “그것은 아직 전혀 파악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 대양 함대는 물론 민간 선박의 항법 및 통신시스템을 대체 항법 체계인 e로란eLoran 시스템 운용 체계로 긴급 전환해 두었습니다.”
 박충식은 그제야 한숨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선조치 잘했네. 수고했어.”
 GPS가 작동 불능이 된 급박한 상황에서 작전 수칙에 따라 신속하게 선조치한 참모장에게 박충식이 칭찬해 주었다.
 송의식이 박충식에게 보고한 e로란 시스템이란, 위성항법 장치가 적의 도발로 전파 교란을 당해 작동불능에 빠질 경우를 대비하여 개발된 항법 방식이다. e로란은 로란-C(Long Range Navigation-C) 방식의 차세대 방식이다.
 로란-C 방식이란 지상에 설치된 전파 송신국을 주국과 종국 등 임의로 3개로 나누어 각 송신국에서 발사된 각 전파가 각각 도달하는 시간 차를 계산, 위치 정보를 얻는 항법 방식이다. e로란은 이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모든 송신국을 주국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로란-C 방식의 문제점이었던 400미터 이상의 오차 범위를 20미터 이내로 낮춰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방식이다.
 해군은 미국에서 먼저 개발된 e로란 시스템을 세계 최고의 IT 기술을 활용, 더욱 발전시켜 오차 범위를 5미터 이내로 줄여 2020년부터 육군의 단위부대는 물론 모든 함대에도 적용해 놓고 있었다.
 이 시스템의 운용 체계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중심축이 되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하는데 대양 함대의 컨트롤 타워는 마라도함에 장착되어 있었다.
 참모장의 보고는 이어졌다.
 “그런데 더 문제는 e로란 시스템을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단을 제외하고는 해상은 물론 지상의 아무 곳하고도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간 상선에서 보고해 온 바로는 인터넷은 물론 이동통신망도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아마도 어제 있었던 폭발 충격이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지금 현재로는 어느 곳과도 전혀 교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대양 함대와 수송 선단에 포함된 함정을 제외하고는 아무 곳하고도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상의 어떤 전파도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 일부 미약한 전파들이 수신되고 있기는 하나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송수신 방식과는 전혀 다른 아주 초보적인 방식이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박충식이 되물었다.
 “아무것도 말인가?”
 “그렇습니다.”
 “본국과도 말인가?”
 “본국과 모항인 강정은 물론이고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도 교신은 물론 전파조차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이 동중국해는 상선은 물론이고 어선 천지인데 전파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박충식은 이상한 고립감에 순간적으로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렇다면 우리 함대를 제외하고는 통신상으로는 완전히 고립무원이나 다름없단 말이군.”
 “아마도 어젯밤의 초자연현상이 우리에게만 덮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상황이 심각합니다.”
 참모장의 설명을 듣던 박충식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곧바로 다음 지시를 했다.
 “일단 민간 수송선의 항법 제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마라도함의 컨트롤 타워를 전면 개방하여 민간 수송선이 자동항법장치를 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활성화하게.”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참모장이 지시를 받고 움직이자 박충식은 바로 마라도함의 함장에게 지시했다.
 “김 제독, 비행단장을 호출하게.”
 박충식의 명령은 즉각 이행되어 수신기가 곧 그의 손에 건네졌다.
 “비행단장인가?”
 “충성, 대좌 최경석입니다.”
 최경석은 본래 공군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마라도함의 비행단장이 된 것은 순전히 해리어기 때문이었다. 최경석은 어릴 적부터 함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가 처음 공사에 입교할 당시만 해도 해군에는 수리온 헬기조차 변변하게 배치되어 있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최경석은 조종사가 되기 위해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하게 되었고 임관 후 군 복무에 충실했다. 그런 그였기에 몇 년 전 해군에 해리어기가 도입되면서 공군 조종사를 지원받을 때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어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영국까지 가서 필요한 조종훈련을 받고는 해군으로 보직까지 옮겼다.
 그런 최경석이 대령(대좌)으로 승진하면서 마라도함에 탑재되어 있는 8기의 해리어기는 물론 수리온 헬기를 총괄 관할하는 비행단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수송 작전에는 8기의 해리어기는 제외되었다. 그것은 이번 미르부대 파병에 헬기 항공대도 같이 파병되었기 때문이다. 헬기 항공대는 총 20기의 수리온이 배속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해리어기를 이함시켜야 했고 지금 마라도함에는 기존의 탑재기를 포함 총 40기의 수리온 헬기가 상하 갑판에 나뉘어 탑재되어 있었다.
 “최 단장, 지금 상황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니 바로 묻겠다. 항공 장비들 상태는 이상이 있는가?”
 “항공관측 장비들은 아직 상태 점검 중이라 정확한 답변을 드리지 못합니다만 무인정찰기 송골매Ⅱ와 수리온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즉시 출격 가능한가?”
 “모두 출격 가능합니다.”
 박충식은 작전 반경 200킬로의 송골매Ⅱ형인 무인정찰기를 띄우려고 하다 마음을 바꿔 항속거리가 600킬로에 달하는 수리온을 띄우기로 했다.
 “그럼 지금 즉시 수리온을 띄워 전 방위 정찰을 실시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마라도의 상갑판에서는 4대의 수리온 헬기가 연속하여 떠올랐다.
 타! 타! 타! 타! 타!
 회전익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부상한 헬기들은 곧 사방으로 날아갔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보내 왔다. 그러나 동영상에 보이는 바다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찰을 나간 헬기 중 가장 먼저 북쪽 제주 방향으로 정찰을 나간 기장의 무전이 들어왔다.
 “제주 방면으로 정찰 나온 황유식 준위입니다. 지금까지 해상에는 어떠한 선박도 보이지 않습니다.”
 박충식이 바로 참모장에게 지시했다.
 “정찰 헬기를 강정기지까지 올라가 보라고 하게.”
 “황 준위 헬기에 식별 번호 1번을 부여한다. 그리고 지금 그 속도로 강정까지 올라가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1번 아웃.”
 교신이 끝나는 것을 본 박충식이 김성태 함장에게 질문했다.
 “그나저나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가?”
 “e로란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하루 동안의 정전으로 좌표 기준점이 아직 획정되지 않고 있어 우리 함대의 정확한 좌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항로를 역추적하면 제주도 남단 300~350킬로 정도 해상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의 모든 항로와 항로 규칙을 관장하는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선박의 안전한 항해와 항해 능률 향상을 위해 인공위성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지구상의 모든 항만 상황은 물론 해상의 상황과 바다를 운항하는 민간 선박의 이동경로 등 항해와 관련된 위험 요소들의 자료를 위도와 경도를 활용한 정보로 제공하고 있다. 마라도함 컨트롤 타워의 메인 컴퓨터에는 이 정보를 활용할 초정밀 해도가 내장되어 있었기에 GPS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된 민간 선박들은 선박의 위치를 알 수 없었지만 e로란 시스템을 가동한 마라도함은 좌표 기준점 한 곳만 정확히 알게 되면 다른 장비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함대의 위치를 정확히 산출해 내는 것은 물론 항해에도 기존의 전자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의 정전으로 위치를 정확히 획정하지 못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모든 시스템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그것밖에 내려오지 않았나?”
 “어젯밤 21시경 충격으로 모든 선박이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나마 선박에 남아 있던 추진력이 선박을 이 정도 이동시켰을 것으로 추정하여 산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함대의 위치가 동중국해의 거의 중심이겠군.”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 함대 지휘부가 있는 마라도함의 함교의 장교들은 다른 선박들과 계속 교신을 하면서 상황을 관리하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헬기들이 정찰을 나가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때였다. 통신기에 연결된 스피커에서는 황유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둥지, 여기는 1번 기, 둥지 나와라.”
 “말하라. 1번 기, 여기는 둥지다.”
 “전방에 제주도가 보입니다.”
 “그런가! 그럼 동영상 전송기를 켜라.”
 “알겠습니다.”
 교신과 동시에 함교에 설치된 화면에 정찰 1번 기에서 보내오는 동영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1번 기가 보내오는 화면을 보고 미르부대장 김종석이 김성태에게 물었다.
 “김 함장, 1번 기가 전송하는 것이 제주도가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전방에 나타난 육지는 제주도가 분명합니다.”
 “이상하지 않은가? 1번 기가 저렇게 접근하고 있는데도 강정기지 항공관제소에서 어떻게 아무런 관제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자 함대 참모장 송의식이 나섰다.
 “혹, 어제 그 폭발에 강정에까지 전파 교란이 발생하여 교신이 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바다에 떠 있던 우리도 이제 거의 정상을 회복했는데 육지가 우리보다 회복이 늦어진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박충식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서늘함을 느꼈다. 잠시 후 그의 느낌은 현실로 다가왔다.
 황유식의 놀라서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지형지물로 봐서 강정기지 위치가 분명한데 지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황유식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함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황유식의 말보다 먼저 비치는 화면을 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본토와 백령도 등지에서 내려온 미르부대원들은 모를 수 있다고 해도, 강정에 둥지를 틀고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여 년 동안을 주둔하여 지리를 잘 알고 있는 해군 출신들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믿기 힘든 상황에 누구 한 사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분명 지형은 강정 일대가 분명했지만 항만은 물론이고 해군기지 그리고 주둔지가 완전히 사라진 화면이 보이고 있던 것이다.
 그래도 지휘관은 달랐다. 너무도 놀라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중 박충식이 입을 열었다.
 “1번 기에게 남아 있는 연료를 확인한 후 가능하다면 제주도를 전부 둘러보도록 지시하게.”
 박충식의 지시가 있자 김성태는 서둘러 수신기를 들었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항공정찰은 계속되었지만 처음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비를 마친 송골매까지 동원되어 확인한 상황은 처음 그대로였다.
 대양 함대가 이상 현상을 경험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아침이었다. 마라도함의 회의실에는 대양 함대와 미르부대의 모든 지휘관은 물론 민간 선박 선장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고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들이었다.
 참모장 송의식의 간략한 설명과 함께 그동안 정찰한 동영상을 시청하는 내내 참석자들 중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미 현재 상황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는 탓인지 아니면 믿기지 않는 현실 탓인지 정찰한 동영상의 시청이 끝나고 난 후에도 한동안 누구 한 사람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특히 특전연대가 제주도에 침투해 납치해 온, 사극에나 나올 법한 복장을 한 제주 대정관아의 아전과 일반 양민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하는 증언을 직접 들을 때는 기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무거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 무거워진 분위기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자 박충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보신 대로 제주도와 본토는 물론 오키나와와 일본 그리고 중국까지 둘러보았으나 시간대는 모두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그 시간대가 100년을 훨씬 넘긴 과거라는 것입니다. 나도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본 것은 모두 사실이고 지금까지의 정황을 분석한 결과는 오늘이 광무 9년인 서기 1905년 4월 15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민간 선박 선장 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는 질문했다.
 “성기균입니다. 제독님의 말씀은 우리가 정말 과거로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솔직히 동영상을 직접 보고 증언을 들어 봐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박충식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후! 믿기지 않지만 지금 보신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한 현실이고 믿으셔야 합니다.”
 웅성웅성.
 박충식의 단정적인 말을 듣자 그동안 입을 열지 않던 민간 선박 선장들은 순간적으로 웅성거렸다. 그때 대양 함대 참모장 송의식이 일어서자 선장들의 웅성거림이 잦아졌다.
 “사령관님의 말씀을 들은 선장님들의 황당한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전에 보신 장면은 수리온과 송골매는 물론 잠수함까지 동원해 정찰하고 미르부대원들이 직접 침투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1905년 4월 15일의 시간대로 온 것은 분명합니다.”
 성기균이 물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는 있는 것입니까?”
 송의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희는 군인입니다. 군인의 본분을 지키는 것은 누구 못지않게 자신 있지만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는 솔직히 저희들은 모르겠습니다. 아마 며칠 전 초자연현상이 우리들에게 닥친 것이 원인이 된 것으로 추측은 합니다만 이 또한 저희들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그럼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의 여부도 불분명하군요.”
 “선장님께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솔직하게 그렇습니다.”
 참모장 송의식의 대답에 회의장 분위기가 다시 납덩이같이 가라앉자 박충식이 민간 선박 선장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고 물었다.
 “정 선장님, 혹시 직원분들 중 지금의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연구해 보실 분이 있습니까?”
 정하영은 현대중공업 소속으로, 이번 대양 함대에 동참한 까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사 대금의 대물로 받은 원유를 채굴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이 자체 보유하고 있던 원유 시추선을 사우디 해상 광구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정하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를 포함하여 시추선에 함께 온 기술자들은 전부 원유 관련 기술자들입니다. 차라리 원유 채굴이나 처리 시설을 만들라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지만 초자연현상 같은 물리적 현상은 저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후, 그럴 줄 알았습니다만 혹시나 해서 여쭤 본 것입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송구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정하영의 솔직한 대답에 감사를 표시한 박충식은 다른 참석자들 모두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미르부대는 물론 해군도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에서는 지난 사흘 동안 전 장병의 인사 기록부를 샅샅이 뒤지면서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인재를 찾았으나 불가사의한 현상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보시다시피 우리에게는 며칠 전과 같은 초자연현상을 밝혀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현상의 원인을 알아냈다고 해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다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알아낸다고 해도 그것은 먼 후일의 일일 것이고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참모장 송의식이 다시 나섰다.
  “사령관님의 말씀대로 지금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장병들은 물론이고 민간 선박의 선원들도 상황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참모장의 말에 참석했던 군 지휘관은 물론 선장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난관에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자칫 실기를 해서 구성원들이 동요라도 일으킨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성기균 선장이 다시 나섰다.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앞으로의 일을 우리 군이 임의로 결정하는 것보다 이곳에 같이 넘어온 모든 분들과 함께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판단이 들어 오늘 여러분을 모신 것입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부터 참석자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의 논의 끝에 중지를 모은 것은 현재의 상황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아무 조건 없이 서면으로 제출하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
 이렇게 의견을 서면 제출하도록 한 이유는 대대적인 토론을 할 경우에 분위기가 격앙되며 발생할 혼란이나 분파 조장 등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의도와 여러 사람이 토론을 하다 보면 직급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그냥 덮어 두는 경우도 있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출된 내용은 비록 작은 제안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소홀하게 처리되지 않도록 기명 제출자인 경우 결과를 반드시 통보해 주는 것은 물론 공정한 결정을 위해 인원을 선발하여 취합하기로 했다.
 그리고 취합한 결과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전부 공개하고 혹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라고 해도 절대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다음 날 오전 10시 대양 함대를 비롯한 모든 선박에 상황발표를 위해 공용 주파수가 맞춰졌고 승조원은 물론이고 미르부대원과 민간인 등 모든 탑승자들은 모든 선박이 미리 준비한 대형화면 앞에 모였다.
 박충식 사령관이 모두를 대표하여 해군 정복 차림으로 발표장에 섰으며 그 장면은 실시간으로 모든 선박에 전송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양 함대사령관인 박충식 제독입니다. 국군 장병 및 민간 선원 그리고 이번 항해에 동참하고 있는 민간인 여러분에게 이런 발표를 하게 되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면한 현실을 정확히 알려야 하는 것이 지휘관의 임무라 지금의 상황을 가감 없이 알려 드리게 되었음을 미리 알려 두는 바입니다.”
 목이 탄 박충식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부관이 건네준 물을 조금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너무도 큰일을 겪었습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도 못한, 또 상상 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바로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겪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박충식의 담화는 10여 분간 계속되었다.
 이어서 정찰 결과를 편집한 동영상이 20여 분간 방영되었다.
 부대 지휘관을 비롯한 선장들은 혈기 방장한 젊은 장병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누구도 예상 못 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국군 장병은 물론이고 수송선의 민간 승무원 대부분에서 경악할 내용의 담화와 동영상을 시청하고 나서도 놀랍도록 차분한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이미 대부분 상황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인지, 별다른 동요도 없이 대부분은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또 몇몇은 차라리 잘되었다며 누가 지시도 하지 않았는데도 미리부터 의견이 맞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갖고 있던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장병들의 이상 반응을 가장 걱정한 사람 중 하나인 미르부대장 김종석은 장병들이 놀랍도록 침착하게 반응을 나타내자 대견스러웠고 다행스러웠다.
 자칫 원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비관한 몇 몇 장병들이 젊은 혈기에 난동을 부릴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분위기에 휩쓸린 일부 병력이 동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으로서는 자칫 수습하기 어려운 엄청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병들의 예상외로 차분한 모습에 김종석이 한시름 덜었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 의외로 모든 장병들이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김종석 장군의 말에 특전연대 연대장 강명철 대좌가 나섰다.
 “솔직히 저는 지금 시간대로 온 것이 우리 모두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같이 오지 못한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왔다고 해서 국방에 큰 허점이 노출되지는 않을 것이고 가족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크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은 정부에서 보살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강명철의 말에 모두가 마음이 무거웠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힘을 얻었는지 강명철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장병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외로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을 것입니다.”
 모처럼 표준말을 쓰며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강명철의 말에 박충식을 포함한 지휘관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마음은 무거웠지만 자신들이 엄청난 일을 겪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당황하지도 않고 또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명철의 말이 끝나자 모처럼 마라도함에 승선한 차세대 군수 지원함인 백록함의 함장 유성훈 대좌가 나섰다.
 차세대 군수 지원함(AOE-2)인 백록함은 만재 배수량 2만 5,000톤에 전장 220미터, 전폭 25미터, 높이 40미터로 1만 톤의 유류와 2,000톤이 넘는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대형 함정으로 대양 함대 지원함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하며 2020년 실전 배치된 함정이다.
 백록함의 함장인 유성훈은 마라도함장 김성태의 1년 후배로 대양 함대 함장들 중 최고참이다.
 “지금 장병들이 현 상황을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병들의 개별 면담을 통한 충분한 상담과 관심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80% 이상이 부사관 이상 간부들이고 파병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정신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번 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자칫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장병들을 보다 세심하고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충식이 즉각 동의했다.
 “유 함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네. 이번에 장병들 의견을 취합하는 즉시 전 장병들의 심리 상담을 즉각 실시하도록 하는 게 좋겠네. 김 장군의 생각은 어떤가?”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장병들 의견 개진에 주어진 시간이 이틀이므로 사흘째부터 저희 미르부대 전 장병들 심리 상담을 즉각 실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비록 같은 해사 출신이고 후배이기는 하나 김종석이 해병으로 병과를 바꾼 후 책임지고 있는 임무와 부대가 다르기에 박충식은 김종석에게 의견을 물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김종석이 박충식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제독님, 앞으로의 상황을 고려하여 민관을 통합 지휘하는 합동 지휘부를 구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같이 어정쩡한 지휘 체계는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러자 오션프린스 선장 김기태도 바로 동감을 표시했다.
 “맞습니다. 김 장군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장병들과 선원들의 의견이 취합되고 나면 모두를 이끌어 갈 합동 지도부 구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를 이끌어 갈 지도부 구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는 나도 동감이네.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만이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보네.”
 박충식까지 동의하고 나서자 합동 지휘부 구성에 대한 의견은 바로 의견 통일을 보았다.
 
 
 
 차준혁은 병장으로 이번 파병에 자원하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다 군에 입대한 차준혁은 전공 때문에 화학지원대에 배치되어 복무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육군에서 미르부대의 지원부대로 화학대의 파병을 결정하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자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복무 주특기를 살려 화학지원대에서 네이팜유와 네이팜탄을 현지에서 직접 제작, 생산할 수 있는 장치인 M2 혼합 장치의 조작원 보직을 맡게 된 것이다. 화학지원대는 밀림을 소각할 목적의 네이팜유와 네이팜탄의 현지 제조는 물론이고 반군 출신 해적들이기는 하나 불필요한 인명 살상을 피할 목적으로 인체에 무해한 가스탄도 현지에서 직접 제조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제조할 가스탄은 수십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던 최루탄 등이 있었다.
 미르부대가 현지 생산할 유지油脂 소이탄인 네이팜탄은 주재료가 알킬가솔린으로 황린黃燐을 이용하여 발화되는 폭탄이었다. 단 1발로 축구장 3~4개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어서 ‘빈곤한 나라의 원자폭탄’이라고 불릴 정도다.
 이런 엄청난 위력의 네이팜탄은 1980년 유엔에서 무차별 인명 살상과 자연환경 파괴를 우려하여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었다. 하지만 유엔은 이번에 특별히 선박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소말리아 반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열대 밀림을 완전히 소각시킬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부 특별 허가를 내주었다.
 하지만 무차별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3국 출신 감독관이 현지에서 합류할 예정이었다.
 화학지원대는 대대 규모였으나 대부분이 간부들이고 일반사병은 차준혁을 포함하여 부사수인 고준일 일병과 행정병인 조민수 상병 등 몇 명이 전부였다.
 차준혁은 오전에 방송된 함대사령관의 담화를 듣고는 하루 종일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부모님과 동생, 자원입대 전 헤어진 여자 친구, 초, 중, 고, 대학 동안 내내 친구였던 상진이, 준호, 그리고 앞으로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갖은 생각에 하루 종일 마음이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던 차준혁은 자기 옆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부사수 고준일 일병을 불렀다.
 “고 일병.”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차준혁의 목소리에 자세를 바로 한 고준일의 입에서는 바로 관등성명이 튀어나왔다.
 “일병 고준일.”
 “햐, 너 왜 이렇게 군기가 들었어? 무슨 일 있어?”
 차준혁의 물음에 스스로도 평상시와 달리 이상하게 군기 든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고준일 일병은 자세를 풀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하느라고 그렇습니다.”
 “머릿속이 와글와글하지?”
 “후~ 정말 와글와글 부글부글합니다.”
 “그래. 뭐 정리는 되고 있어?”
 “대충 생각이 정리되고는 있지만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 병장님은 정리되셨습니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솔직히 적어 내려고 해. 그런 것이 모여 큰 틀이 맞춰질 것이고 맞춰진 큰 틀은 다시 지휘관들께서 정확히 잡아 가지 않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면 지금 시대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지 않겠습니까?”
 차준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부자가 되어 보려고?”
 웃으며 묻는 말에 고준일도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러면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전역하고 나서 돈이나 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준일의 웃음에 차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들 중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닐 거야. 하지만 혼자서는 그게 절대 쉽지 않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네가 전역해서 네 지식을 이용하여 사업을 한다고 하면 다른 나라에서 너를 가만둘 것이라고 생각해? 절대 그대로 놔두지 않을 거야. 힘도 없는 사람이 지식만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당장 납치해서 머릿속의 지식을 쏙 빼먹고 죽이거나 평생 노예처럼 가둬 놓고 죽어라 일만 시키지 않겠어? 더구나 무슨 돈으로 사업을 할 거야? 너 돈은 있어?”
 고준일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렇겠습니다. 이전에 있는 돈은 지금은 종잇조각이니 완전 무일푼입니다.”
 “그래, 통장에 돈이 있다고 해도 그건 이제 숫자에 불과해. 여기선 우리 모두가 무일푼이야.”
 “그렇군요. 전부가 완전 거지입니다.”
 “그래, 우리 모두 거지야. 땡전 한 푼 없는 완전한 거지.”
 차준혁의 말에 고준일이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차준혁이 시무룩한 고준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야, 고 일병. 우리 같은 군바리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까라면 까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해.”
 “차 병장님은 걱정되지 않습니까? 전역하고 난 후 앞으로 뭘 해 먹고살지 정도는 미리 생각해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넌 걱정도 팔자다. 앞으로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 문제야, 지금 당장이.”
 “당장이 문제라뇨?”
 “생각해 봐라,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당장 한반도로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반도에 가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어떻게 되기는요. 다 같은 민족인데요.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지금이 1905년이라니 일본 놈들이 문제인데 그건 우리가 힘으로 몰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네 생각일 뿐이지. 지금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이방인일 뿐이야. 그저 적당히 말이 통하는 이방인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넌 몇 년 후에 먹고살 것을 걱정한다는 놈이 바로 앞의 문제도 이해를 못 해서 어떻게 하겠어? 잘 생각해 봐, 지금 우리가 뭐가 문제인지.”
 차준혁의 말에 한참을 곰곰이 생각을 하던 고준일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겠습니다. 지금 대한제국 사람들이 우리들 선조라고 해도 그분들에게 우리는 외국인과 다름없는 또 다른 이방인 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알았어? 그분들에게 우리는 외국인이나 다름없어. 아니, 외국인일 거야. 그래서 난 우리 개개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전부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걱정해야 된다고 생각해. 더구나 1905년 4월이라면 러일전쟁의 거의 막바지로 지금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거의 넘어가 꼴깍거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야. 그러니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전력이라면 일본을 힘으로 몰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거 같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지상군 병력이래야 겨우 미르부대가 전부잖아. 내가 기억하기로는 러일전쟁 당시 만주에서 러시아와 전투를 벌인 일본군 병력만 수십만 명이라고 알고 있어. 더구나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상대해야 할,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도 상당한 규모야. 비록 우리 무기가 저들보다 앞서 있다고는 해도 군수물자가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물자가 소진되면 재보급이 바로 문제가 되지 않겠어?”
 차준혁의 차분한 설명에 고준일의 얼굴이 더 한층 심각해졌다.
 “그렇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저들도 화기로 무장한 군대라 병력 면에서도 우리들만으로는 일본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울 거야.”
 “······.”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전력을 다해 일본을 몰아냈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아? 과연 일본을 몰아내는 것만으로 우리가 대한제국에 쉽게 정착할 수 있을 거 같아? 난 지금부터 대한제국을 상대할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한반도에 정착하기가 정말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
 차준혁의 차분한 설명을 듣자 상황이 그냥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고준일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정말 지금 상황이라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무엇도 장담할 수 없겠습니다.”
 “그래, 내 생각에 지금 당장은 우리와 대한제국의 관계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그래야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거야.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남태평양의 주인 없는 섬을 개발해서 정착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
 “섬을 개발해요? 어떻게 말입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부대를 건설할 모든 장비들이 있잖아. 그리고 군수물자도 1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있고 말이야. 석유가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건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지 않겠어?”
 “아! 맞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나올 수 있겠습니다.”
 “우리 같은 군바리야, 그럴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와 같이 온 민간 선박 아저씨들은 오만 생각 다 하고 있을 거야. 그 아저씨들이야 민간인인데 구태여 목숨 걸어야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야.”
 “정말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차준혁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고준일의 등을 두드리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자, 그건 그분들이 고민할 몫이고 너는 지금부터라도 쓸데없는 상상 하지 말고 실현 가능성 있는 계획을 세워 봐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차 병장님은 만주에 일본군이 그렇게 많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차 병장님의 전공은 화학이잖습니까?”
 차준혁은 고준일의 말에 잠시 회상에 젖었다. 군에 들어오기 전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만났던 것이 대학 동아리 모임에서였고 그 동아리가 바로 역사 연구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잠시지만 떠나온 시간에 대한 회상을 하자 얼굴에는 당연히 아련함이 가득해졌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자 고준일이 자신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차준혁은 걱정 말라는 듯 그의 어깨를 한 번 치면서 대답해 주었다.
 “대학에서 활동했던 동아리가 역사 연구 모임이라 남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것뿐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데 아쉬운 게 있습니다.”
 “뭐가 아쉬워?”
 “기왕 과거로 올 바에야 한참 전으로 갔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임진왜란 직전이라면 지금 우리 전력으로도 일본 놈들을 모조리 수장시켜 버렸을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해도 지금 시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아직은 우리 민족이 뭔가 할 수 있는 때잖아.”
 “하긴 그렇습니다.”
 차준혁과 고준일은 이날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 두 사람과 같이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물론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곳곳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토론도 하고 생각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박충식은 이 기간 동안 지휘관들에게 각 함정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들의 재물조사를 지시하고, 민간 선박 선장들에게도 자신들의 배에 선적되어 있는 물자와 인원을 철저하게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틀의 시간이 지나 각자의 의견이 제출되었다.
 제출될 제안들을 분류하고 정리하기 위해 100명의 인원이 추천 또는 선별되었다. 차준혁도 화학지원대장의 추천으로 100명에 포함되었다.
 이 100명의 인원은 모두의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 직급, 연령, 전공, 신분 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공정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지휘관들 중에서도 10명 정도만이 참여할 정도로 신중하게 선정했다.
 박충식은 스스로 대표 선정에서 빠지고는 그 기간 동안 선단이 보유하고 있는 물자 조사를 직접 관리, 감독했다. 볼펜 하나, 종이 한 장까지 철저하게 조사되었다. 개인 사물이 거의 없는 군은 물론이고 민간 선박 선원들의 개인 사물도 일단은 전수조사가 실시되었다.
 비록 선원들이 민간인들이기는 하지만 선상 생활이라는 것이 상명하복이 철저한 탓에 선원들이 조사에 성실히 따르면서 물자 조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3일의 시간이 흐르자 물자 조사는 물론이고 최종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이때가 박충식이 지휘하는 대양 함대와 수송 선단이 지금의 시간대로 온 지 8일째 되는 1905년 4월 20일이었다.
 마라도함의 식당에는 임시로 특별 회의실이 마련되었다. 제안을 정리하기 위해 선발된 인원 100명 중 다시 분야별로 선발된 20명의 대표들과 미르 대대장급 이상의 각급 부대 지휘관 그리고 대양 함대 함장과 사령부 참모진, 민간 선박 선장 등 대표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대책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는 박충식의 부관인 이현호 소좌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입니다. 참석자 여러분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정면에 게양된 태극기를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시대 남북한이 통일로 가는 길에 명분상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국기 선정 문제였다.
 남북한 양측이 거의 100년 가까이 사용하던 국기를 버리는 일은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래서 몇 년의 토의 끝에 결정된 것이 지금 대양 함대가 사용하는 태극기였다. 이 태극기는 남한이 그동안 사용하던 태극기가 아닌 상해임시정부가 사용하던, 중앙의 태극 형태가 상하가 아니라 좌우로 돌려져 원을 그리며 말아 올라가게 표시된 형태로, 공식적으로는 이번 항해에 나섰던 대양 함대와 미르부대가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이현호의 안내로 모두 예의를 표시하자 장엄한 경례 음악이 울려 퍼지며 회의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다음으로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애국가는 4절까지 제창하겠습니다.”
 이현호의 안내가 있자 애국가가 울려 나왔다.
 북한도 정식 국가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식 행사에서‘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국가로 사용했었기에 별다른 이견이 없이 예전부터 불러 왔던 애국가를 국가로 다시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제창하는 동안 민간 참석자들 중에서 이제는 돌아갈 집도 가족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참지 못하고 울먹이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부터 시작된 울먹임은 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삽시간에 전염되어 애국가 4절이 끝날 무렵에 가서는 대부분의 민간인 참석자들은 물론이고 상당수 군 지휘관들도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할 정도로 회의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애국가가 끝나고 사회자의 안내로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았지만 격해진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아 박충식은 분위기를 진정될 때까지 손짓으로 회의 진행을 지연시킬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진정되자 박충식의 지시를 받은 이현호가 다시 회의를 진행하였다.
 “오늘의 회의는 먼저 사령관님의 인사 말씀을 시작으로 100인위원회의 결과 보고가 이어지며 그 뒤로 대양 함대 참모장님의 물자 조사 보고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2부에서는 결과 보고와 물자 조사 보고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논의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박충식 사령관님께서 인사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호명을 받은 박충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섰다.
 “박충식입니다. 먼저 며칠 동안 고생하신 여러분의 노고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박충식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인사했고 그 덕에 회의장 분위기는 빠르게 진정되었다.
 “지난 며칠간 우리는 꿈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 스스로가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오늘 여기 참석한 분들은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으며 부디 이번 회의에서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부디 좋은 의견을 많이 발표하셔서 우리 모두의 앞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충식의 짧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한 인사말을 들은 참석자들은 나름대로 단단히 마음을 다잡는 표정들이었다.
 “사령관님의 인사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이어서 다음으로 100인위원회를 대표하여 이종훈 박사님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박사님, 단상으로 나오십시오.”
 이현호의 소개가 있자 이종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종훈은 울산대학교 화학산업연구소 소장으로 새로운 논문 연구를 위해 이번에 원유 시추선에 동승한 50대 후반의 학자였다. 이종훈 박사는 단상으로 나온 뒤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기분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00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종훈입니다.”
 이종훈의 인사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먼저 지금까지 취합된 제안들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결과에 대한 보고를 드리겠으니 보고가 모두 끝나고 난 후 질문을 받겠습니다. 먼저, 많은 의견들이 개진되었지만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제안한 것은 우리가 대한제국에 직접 관여하자는 방안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종훈의 보고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종훈의 보고가 끝이 나자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박충식이었다.
 “박사님의 종합 보고에 보면 우리가 대한제국에 관여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고 하던데 참여 방식이 논의된 것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관여 방식이 논의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칫 다수의 힘으로 밀고 들어간다면 점령군의 이미지가 강하게 심겨, 설령 지금 시대 사람들과 힘을 합쳐 외세를 몰아낸다 해도 그 후가 더 문제라는 결론입니다. 지금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가 자신들을 지배할 점령군으로 보인다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오히려 동반자가 아닌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지금 대한제국의 역사적 상황으로 보면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종훈 박사의 설명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박충식이 다시 물었다.
 “그럼 위원회에서 합의된 접근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합의된 방식에 대한 설명은 저보다 그 방식을 최초 제안한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제안자를 불러와야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제안자는 바로 100인위원회 의원 중 1명인 차준혁 병장입니다. 저는 제안의 배경과 이유 등에 대해서는 차 병장이 직접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는데 어떻습니까, 사령관님?”
 “제안 당사자가 설명하면 직접 질문도 할 수 있으니 저는 찬성합니다.”
 박충식이 찬성하자 이종훈 박사가 차준혁을 호명했다.
 “차준혁 병장.”
 이종훈의 호명에 차준혁이 바로 일어나 관등성명을 댔다.
 “병장! 차준혁.”
 “이리 나와서 본인이 직접 설명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차준혁은 단상으로 나와 크게 한번 심호흡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PT를 하는 것을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제부터 하게 되는 말이 모든 사람들의 미래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긴장되었다.
 “충성. 저는 화학지원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병장 차준혁입니다. 먼저 이 자리에 서서 말씀을 올리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는 자신의 제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본 제안을 입안하면서 가장 먼저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을 사는 대한제국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우리 스스로는 같은 민족이고 또 후손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한제국 사람들도 거리낌 없이 믿어 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과연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 주고 받아 줄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차준혁의 말에 참석자들 대부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참석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같은 민족인데 설마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기대 심리에 갖고 있던 우려를 의도적으로 덮어 두고 있었다. 그러나 차준혁이 감춰 두고 싶은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자 안색이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가장 큰 문제는 대한제국은 정치가 아주 발달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는 관리가 곧 정치가였기 때문에 정치가 너무 발달한 나머지 당파가 갈리게 되었고 결국 당파 논리에 맞춰 국정이 전횡되면서 나라가 양란(왜란과 호란)을 당해 일본과 청국에 짓밟히기도 했고 또한 당파 싸움의 반동으로 생긴 세도정치는 오히려 국력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어 결국은 지금과 같이 나라를 망국에 이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차준혁이 잠시 숨을 고른 후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근본 원인도 정치인들이 국익보다는 개인의 사리사욕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대한제국 스스로 국력을 신장시켜 외세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정치인 대부분은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것은 고사하고, 개인과 가문의 영달을 위해 친러파니 친일파니 또는 친청파니 하는 파벌을 형성하며 외세에 빌붙어 정치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우국충정의 기개를 가진 분들도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며 아쉽게도 이분들 대부분은 외세를 등에 업은 정치인들 농간에 휘둘려 힘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지금의 대한제국 현실입니다.”
 차준혁의 말에 참석자들 모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물론 그의 시대 해석은 조금 일방적이기는 하였지만 자신들의 생각이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거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준혁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정치와 전혀 무관한 군인이고 또 일부 민간인들마저 군 조직과 같은 상명하복 체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선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만일 뚜렷한 대응책 없이 대한제국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노회한 대한제국 정치인들의 정치 놀음에 휘둘려 어떤 일이든 우리의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개혁은 둘째 치고 오히려 대한제국 정치인들의 농간에 놀아나다 우리들 서로가 반목하고 등을 돌리는 일도 허다하게 생길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우리들끼리 피를 보는 일까지도 생기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말에 스스로 흥분된 차준혁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물을 마시기 위해 잠깐 말을 멈추었다. 박충식을 비롯한 참석자 대부분은 차준혁의 지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를 탄 차준혁의 말은 거침없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고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힘으로 누르거나 가지고 있는 미래의 지식을 과시하며 하찮은 우월감을 보인다면 이는 같은 민족이 우열로 나뉘어 분열되는 엄청난 파장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대한제국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차준혁은 잠깐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러한 여러 문제점 때문에 우리가 대한제국에 들어간다면 그 전에 우리 모두에게 철저한 정신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개개인의 욕심과 야망은 일단 내려놓고 일정 기간, 적어도 대한제국이 다른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기간까지는 우리 모두가 모든 일을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준혁이 동의를 구하는 듯 말을 멈추자 참석자들 중 1명이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지식을 합쳐 하나의 창구로 만들자는 말입니까?”
 “그래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일 우리들 스스로에게 강력한 제재 장치를 하지 않거나 확실한 보상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누가 힘을 합쳐 미래를 같이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일이 잘못되어 우리가 각자 흩어진다면 흩어진 우리를 누가 다시 또 아우를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한 사람이 심각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 재앙이 올 수도 있겠지요.”
 “잘 보셨습니다. 흩어진 우리는 당장 일본은 물론이고 서양 제국에 아주 좋은 표적이 되어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잡아들이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몇몇은 이름을 날리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남의 나라의 발전에 죽어라 이용되거나 그들에게 평생 쫓기면서 제대로 일도 못 하고 이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극단적인 말에 모두는 등골이 서늘해진 표정이었다.
 “뭉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갖고 있는 힘으로 이 시대에서 무언가 할 수 있고 미국은 물론이고 러시아, 영국 등 누구와도 상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반드시 개인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힘을 합친 우리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확실한 보상이 있어야 모든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고 힘을 합치지 않겠습니까?”
 차준혁의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질문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러한 일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이끌어줄 지도부 선출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라를 위해 우리 개개인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 모두에게 정부에서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더 건의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상은 비록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같이 넘어온 사람들 모두에게 예외 없이 공평하게 적용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별도의 부를 얻을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제가 말씀드린 국가적인 보상은 반드시 공평하게 추진되어야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강력한 지도자와 확실한 보상 이 두 가지가 모든 일에 앞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앞으로의 일을 대처하고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힘을 최대한 결집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것입니다.”
 짝! 짝! 짝!
 차준혁의 긴 설명이 끝나자 누가 이끌지도 않았는데 참석자들 모두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특히 개인의 희생을 정부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최고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탓인지 참석자들의 박수 소리는 힘차게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짝! 짝! 짝!
 그렇게 한동안 박수 소리가 계속되었고 차준혁은 생각지도 않게 박수를 받자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얼굴을 붉힌 채 박수를 받아야 했다.
 박수가 수그러들자 자리에 들어갔던 이종훈 박사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준혁 병장의 말을 모두 들으셨을 것입니다. 저희 100인위원회는 모든 일에 앞서 우리를 이끌 지도부를 선출하자는 제안을 먼저 드립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종훈의 제안이 있자 선장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제청이 터져 나왔다.
 “제청합니다.”
 “동의합니다.”
 제청과 동의가 참석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자 사회를 보던 이현호가 박충식에게 의견을 구했다.
 “사령관님, 이 박사님의 제안에 제청이 나오고 동의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여러분들 의견에 따라야겠지.”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을 이끌어 주셨던 사령관님의 말씀도 있고 하니 그럼 여러분의 의견대로 우리 모두를 지휘할 정식 지도부 선출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박충식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먼저 며칠이나마 저의 말을 따라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선출되는 지도부는 민간에서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이종훈 박사가 즉각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들 지도자는 물론이고 앞으로 대한제국에서의 우리의 행보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군을 장악할 분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양 함대사령관님이시고 최고 선임이신 박충식 제독님을 우리의 지도자로 추천합니다.”
 그러자 오션프린스호의 선장 김기태가 제청을 하고 나섰고 원유 시추선의 선장 정하영이 동의하고 나섰다. 그렇게 되자 우습게 된 것은 박충식이었다.
 자리를 사양하려고 나선 것이 오히려 자리를 차지하게 된 꼴이 된 것이다. 정하영의 뒤를 이어 다른 사람들이 또 찬성을 하려 하자 박충식이 손을 들어 제지한 후 원래 가지고 있던 고사 의사를 밝히려고 할 때였다. 그때까지 단상에 그대로 서 있던 차준혁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사령관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잠시 어수선했던 회의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차준혁은 회의장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평상시 같았으면 일개 병장으로는 감히 나설 수 없는 자리였지만 차준혁은 죽었다 생각하고 겁 없이 손을 들었던 것이다.
 박충식도 생각지도 않은 차준혁의 돌발 행동에 일순 당황했지만 내심으로는 그 배짱에 감탄하면서, 문제를 만든 발언당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자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래, 제안자인 차 병장의 생각이 어떤지 들어 보고 싶군. 말해 보게.”
 이왕 내친걸음이었다. 차준혁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말하기 시작했다.
 “전시가 되면 당연히 계엄령이 선포되고 정국 전면에 나서서 국민을 보호하면서 외적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 군의 의무이자 책무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은 전부 다 전쟁과 다름없는 일의 연속이라고 본다면 지금은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앞으로는 군대가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을 것인데 군을 장악하지 못한 민간인 출신으로서는 우리 조직을 통솔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이 시행착오로 엄청난 결과가 초래될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합심 단결하여야 할 때입니다. 사령관님께서 거절하시는 것이 만일 군이 정치에 개입되는 것을 경계하셔서 그렇다고 하신다면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사령관님이 저희를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보고드린, 지금의 시기는 남보다 내가 먼저 희생해야 한다는 말씀을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 같은 일개 병장이 이런 말씀을 올려 정말 죄송합니다.”
 차준혁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이종훈 박사가 나섰다.
 “차 병장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시대는 제국주의 시대입니다. 더구나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주변은 강대국 일색입니다. 그런 적들을 상대하려면 우리는 온 힘을 결집시켜야 하고 최소한 저들과 같이 국민총무장國民總武裝의 각오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원만히 풀어 나갈 사람은 우리들 중 사령관님뿐입니다. 힘드시더라도 사령관께서 지도부를 맡아 수고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옆에서 성심으로 돕겠습니다.”
 이종훈의 간곡한 당부가 있자 이번에는 입이 무겁기로 정평이 나 있던 미르부대장이 김종석 장군이 나섰다.
 “이 박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우리를 이끌어 갈 지도자의 자리는 때로는 수십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어렵고도 힘듭니다. 더구나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고뇌하고 또 고뇌해야만 하는 고독한 자리입니다. 지금과 같이 사령관님께서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미르부대를 대표하여 정식으로 부탁드립니다.”
 입이 무거운 김종석까지 정색을 하며 거들고 나섰다. 김종석이 발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모든 참석자들이 이제는 빨리 결정해 달라는 표정으로 결단을 촉구했고, 이에 박충식은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후,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지도부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와~.”
 짝! 짝! 짝! 짝!
 참석자들의 환호와 함께 정식으로 추대되자 박충식은 단상으로 나가 간단한 인사말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그동안 임시로 지휘권을 맡을 때와 달리 모든 사람의 만장일치로 추대되면서 정식으로 지휘권을 행사하게 되자 당연하게 그의 권위는 한층 강화되었고 말에는 무게가 실렸다.
 박충식이 모두의 지도자로 정식 추대되자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회의는 세세하게 협의할 사안이 많아 이후 이틀 동안 계속 되었으며 회의 내용은 몇 시간마다 사안별로 취합되어 모든 내용이 공개되었다.
 이러한 공개 방침은 박충식의 지시에 의해 처음부터 시행되었고 이러한 회의 내용의 공개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회의 내용을 듣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해준다는 것에 특히 만족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말에 더욱더 기뻐했다.

댓글(18)

힘이여솟아    
2030년인데 이산가족이 있을까요? 직계아니면 이산가족도 아닐텐데 흠..
2016.05.02 15:04
박카스500    
대좌 상장 같은건 일본군 편제아닌가여?
2016.05.19 12:14
hany    
소위 중위 상위 대위 소좌 중좌 상좌 대좌 소장 중장 상장 대장 차수 원수 대원수 북한에서 쓰는 장교 계급구조임다.
2016.05.21 10:13
영산홍    
비추요.
2016.11.03 18:48
Lot    
끝까지 다봤는데, 대체역사물의 특징상 어쩔 수 없는 과거로의 이동에 대한 개연성 부족을 빼고는 재미있게 읽을만 합니다.
2016.11.04 17:35
우울한늑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는 정권 바뀌면 철회되어야 합니다.
2016.12.30 11:32
한국의사람    
미르라 최순실의 냄새가...
2017.02.26 22:18
저높은산    
이 놈들 중국거.그냥.베켰구만. .
2018.01.24 07:06
저높은산    
돈 주고 보기는 뭐 같은데...
2018.01.24 07:07
미케네    
2030년에 해리어라......
2018.01.2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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