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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 1권 (1)

2016.05.09 조회 7,083 추천 43


 목차
 
 Intro
 1화-10년 전으로···
 2화-일본을 휩쓸다
 3화-신인 기획
 4화-의심을 날리다
 5화-뜻하지 않은 학교정벌
 6화-공백을 극복하는 기획
 
 
 
 Intro
 
 
 “저기요, 우리 돈은 언제 갚으실 건데요, 이강윤 고객님?”
 “······.”
 
 우락부락한 어깨와 등빨의 남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긴 파이프와 방망이를 들고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남자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손을 내밀었다.
 
 “벌써 3달째입니다, 이강윤 고객님아. 이자라도 주겠다고 말한 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네요?”
 “이번만, 이번만 봐주신다면···.”
 “허허허허. 이 고객님 이거 안 되겠네. 사채 처음 써보시나? 여보세요. 지금 밀린 이자만 3천이에요, 3천. 더 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우리 고객님?”
 “아니, 저번 달까지 천만 원이었는데 어떻게 3천이···.”
 “우덜식 계산법을 아직도 모르시네. 오늘은 그냥 갈 순 없고, 얘들아. 챙겨라.”
 
 그들은 인정사정없었다.
 물론, 내 몸에는 털끝 하나 손대지 않았다.
 그러나···.
 
 “아, 안 돼!! 그건 안 돼요!!”
 “허허. 오늘은 그냥 못 간대도? 어딜 만져?”
 
 퍼억!! 덩치 큰 남자는 나를 거세게 밀쳐냈다. 난 우당탕 소리와 함께 책상에 부딪쳤고, 그 사이에 사채업자들은 책상에서 건물계약서며 사무실의 돈 될 만한 문서를 모조리 쓸어갔다.
 
 “안 돼!! 이 개자식들아!! 그건 안 된다고!!”
 “아니, 이 자식이.”
 
 퍼억!! 퍽퍽!!
 책상이고 의자고 저들은 인정사정없이 때려 부쉈다. 난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지만, 몽둥이에는 장사가 없었다. 저들은 사정없이 나를 밀치고 붙잡았다. 그나마 몽둥이찜질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나의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흠. 이 정도면 이자 정도는 어찌어찌 되겠네요. 이강윤 고객님. 그럼 다음 달에 뵙지요. 가자.”
 
 사채업자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가고, 사무실에는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사무실에 홀로 남으니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젠장!!!”
 
 빈 사무실에서, 나는 한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 처절함이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 * *
 
 
 사채업자들이 보증금을 빼버리는 바람에 사무실에서도 쫓겨나 갈 곳이 없었다. 집 얻을 돈까지 모조리 투자해 사무실을 얻었건만···. 자금 부족으로 사채까지 끌어다 쓴 게 화근이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걸까.
 
 “사장님. 저 그만둘게요······.”
 “아니, 윤희야. 너까지 왜 그러니. 너라도 열심히 해서 잘 돼야지.”
 “지금까지 사장님 말만 믿고 2년을 굴렀어요. 그런데 차트 진입은커녕 행사도 제대로 못 다녔어요. 이렇게 세월만 보내느니 대학이라도 가서 제대로 음악을 배우는게 낫겠어요. 계약서에 해약금은 없었으니 문제 될 거 없죠?”
 
 한 명밖에 남지 않은 가수, 윤희마저 사무실이 사라진 그 날, 날 떠나갔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월급조차 주기 힘든 사장 밑에서 누가 일을 하려고 할까.
 사무실도, 집도 없는 내가 갈 곳이란 없었다. 그냥 정처 없이 걸을 뿐이었다. 이대로 다음 달이 되면 사채업자들이 장기라도 팔 기세였지만 이미 자포자기해버렸다.
 그래, 될 대로 되라지······.
 
 “이보시오, 총각.”
 
 그런데 정처 없이 길을 걷던 중.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배가 고파서 말인데, 국밥 한 그릇만 사주겠나?”
 
 서울역에서 볼법한 노숙자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 적선 한 번 하지 않는 나였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주머니에 손이 들어갔다. 죽을 때가 다 된 것이었을까. 마침 주머니에 잡히는 종이가 하나 있었다. 꺼내보니 파란 배춧잎 한 장이었다.
 그래. 이까짓 거 있어서 뭐하냐.
 나는 만 원짜리를 바로 노숙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노숙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맙네, 고마워. 이걸로 국밥 한 그릇은 사 먹을 수 있겠어.”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노숙자는 헐레벌떡 뛰어가 버렸다. 담배 빌릴 때 외에 활기를 보이지 않는 노숙자들이라지만 이 사람은 특이했다. 난 빈 주머니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섰다.
 그런데 날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총각.”
 
 다시 돌아보니 아까 그 노숙자였다.
 
 “혹시 원하는게 있는가? 내 정신없어서 그냥 갈 뻔했군.”
 
 내가 노숙자에게 원하는게 뭐가 있겠나.
 나는 괜찮다며 그냥 웃어버렸다.
 
 “그러지 말고,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봐. 다 들어줄게.”
 “푸풉.”
 
 그 말이 나를 웃겼다. 이 노숙자가 나더러 뭐라 하는 건지. 그래, 돈을 줄 수 있나, 뭘 할 수 있나. 이 지옥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웠다.
 
 “그냥, 다시 시작하고 싶네요. 처음부터 다시.”
 “그게 소원인가?”
 “그렇죠. 이번에 다시 시작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럼 국밥 맛있게 드세요.”
 
 만 원짜리 한 장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 노숙자에게 나도 모르게 푸념을 해보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마이너스, 이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매니저 생활 7년. 그 시간 동안 이 바닥에 있으면서 돈과 인맥을 모았고, 결국 기획자로 전향했다. 가수를 기획하는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즐거운 일이었다. 처음에 큰 성공을 거두어 매니저에서 기획자로의 전향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형 기획사에서 기획자가 된 이후, 대형 가수를 감당하게 되었다. 5인조 남자 가수였는데, 4집을 성공하고, 5집을 내려는 시점에 내가 이 가수의 앨범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대실패. 게다가 멤버와 기획사의 다툼, 그리고 멤버와 팬의 스캔들 등 악재들이 겹쳐 그룹 자체가 해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운도 없었지만 중요한 건 5집이 실패했다는 데 있었다.
 더더욱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신인 가수부터 중견 가수까지 누구를 맡건 악재들이 끊이질 않았다. 앨범을 내면 앨범들은 줄줄이 망했다. 중견 가수들은 이전에 없던 실패에 돌출행동까지 일삼아 이름에 치명타를 날렸다. 이런 일들이 3년간 계속되었다.
 그 이후, 나에게 붙은 별명이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결국, 이 세계에선 매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그동안 모은 돈, 융자에 사채까지 끌어 모아 다시 가수를 기획해 내놓았지만, 결과는 사채 빛만 남고, 가수는 관두고 난 다시 실업자 신세······.
 이번에야말로 난 진짜 퇴출이었다.
 
 “···이대로 끝인가.”
 
 길에서 주운 담배 하나를 물고, 마포대교에 섰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성지라고까지 불리는 그곳이다. 자신도 없고, 무엇을 할 마음도 안 들고···. 남은 건 이 길뿐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내 동생은···?
 
 “희윤아···.”
 
 동생의 이름을 불러봤다. 그러나 메아리도 없는 한강은 정이 없다.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하는 내 동생은 내가 없으면 누가 돌봐야 하나? 마포대교 앞에 서도 난간에 오르지도 못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고 싶어도 살 방법이 없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눈가에서 저절로 눈물이 났다.
 지이이이잉—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요즘 오는 전화라곤 사채업자나 하나밖에 없는 친구, 희윤이 외에는 없다. 그런데 전혀 알 수 없는···. 잠깐. 이건 병원 번호다.
 
 “여보세요?!”
 [이희윤 씨 보호자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희윤 씨가 지금 위독합니다. 투석 기간이 한참 지나 길에서 쓰러져···.]
 
 머리가 하얗게 세 버렸다. 다른 생각 따윈 나지 않았다. 희윤이, 희윤이가 위독하다니!!
 지금 가장 빨리 가는 길은 택시밖에 없다. 방향은 반대차선이다. 그렇다면 저쪽으로 넘어가야 했다. 건널목은 저 멀리 있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나는 무단횡단을 감행했다.
 
 끼이이이이익—!! 퍼어어어어억!!
 차도 중간에서 난 거대한 트럭에 부딪혀 하늘로 붕 날아올랐다.
 눈앞에 파노라마같이 무언가가 지나갔다.
 삶의 순간이 한순간에 비친다는 주마등이라는게 이런 걸까?
 그제야 난 느꼈다.
 
 ‘내가 없으면 우리 희윤이는? 희윤이는···!! 안 돼···. 이대로 끝낼 순 없어···!!’
 
 
 * * *
 
 
 삐요삐요삐요!!
 구급차가 급하게 차도를 가르며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맥박이 줄어들고 있어요!!”
 “강심제!! 강심제!!”
 
 구급차 안은 급하게 돌아갔다. 점점 약해지는 심박 수, 그것을 살리기 위해 구급대원들의 분투는 눈물겨웠다. 그러나 그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윤의 숨은 서서히 지고 있었다.
 
 ‘다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삐이—
 강윤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한 많은 시간은 그렇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1화-10년 전으로···
 
 
 “오빠. 오빠아.”
 “으으음······.”
 “오빠. 오빠.”
 “···아아. 좀만 더 잘게에······.”
 
 강윤은 피곤했다. 침대에서 자신을 흔드는 손길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지만 무거운 눈은 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진짜!! 오빠!!”
 
 결국, 큰 소리가 터지고 나서야 강윤은 힘겹게 눈을 떴다.
 
 “하아암··· 아우··· 시끄러. 좀 더 잔다니까아···.”
 “아, 진짜. 오빠가 오늘 면접 있다고 빨리 깨워 달라며.”
 “그래그래··· 면접··· 면접··· 뭐? 면접?”
 
 중요한 단어가 귓가를 스치고 나서야 강윤은 제정신이 들었다. 두텁게 자신을 감싸던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윤은 그제야 주변에 눈을 돌렸다.
 
 “여긴··· 내 방이네.”
 “그럼 여기가 오빠 방이지 어디냐. 얼른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너··· 희윤··· 희윤이니?”
 
 강윤에게 그제야 앞치마를 하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도 눈에 들어왔다. 큰 키에 또래보다 하얀 얼굴이 인상적인 그의 동생, 희윤이었다.
 
 “희윤아!! 살아있었구나!!”
 “어어어? 오빠, 왜 이래?!”
 
 동생이 무사하다는 생각에, 강윤은 희윤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희윤은 당황해서 강윤을 밀쳐내려 했지만, 눈물까지 보이는 오빠가 이상해 내버려 두었다.
 한참이 지나 수습이 된 강윤은 그제야 눈물을 닦고 희윤을 놔 주었다.
 
 “오빠, 왜 그래? 죽은 사람 본 것 같이?”
 “병원에, 병원에 있던 거 아니었어?”
 “어제 퇴원했지. 어제 오빠랑 같이 퇴원했잖아. 통원치료로 바꾸자고.”
 
 이건 무슨 말인지, 강윤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 동생은 병원에서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그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가기 위해 드넓은 마포대교를 막무가내로 건너다 트럭과 부딪쳤던 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강윤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선 오밀조밀 동생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또래보다 하얀 얼굴은 동생이 분명했지만, 자신이 아는 동생보다 훨씬 앳되었다.
 
 “자자. 우리 오라버니. 내 얼굴은 그만 보고. 모처럼 내가 아침도 차렸으니까 맛나게 먹어야지. 그치?”
 “······.”
 “오빠?”
 “그··· 그래. 씻고 금방 갈게.”
 
 강윤은 희윤을 내보내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을 얼굴에 끼얹어도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건강한, 아니 어려진 동생에 면접이라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세수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벽면에 걸려있는 달력이었다.
 
 ‘2007년 7월?! 지금 2017년이 아닌가?! 달력이 잘못 걸렸나?’
 
 강윤은 눈을 씻고 다시 보았지만 잘못된 게 아니었다. 명색이 연예계에 종사했던 강윤이다. 달력관리는 무척 철저하게 해놓았다. 달력에는 그가 적어놓은 스케줄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MG사 기획팀 면접. 오전 11시? 잠깐. 이거 10년 전에 봤던 면접인데?’
 
 강윤은 그제야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MG 엔터테인먼트에서 본 면접을 통과하고 기획팀에 입사했지만 기획한 가수가 흥행참패를 하고 대마초까지 손을 대는 바람에 책임을 지고 나와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실패했던 기억이 떠오르니 씁쓸해졌다.
 
 “오빠. 밥 먹어!!”
 
 상념에 잠겨있을 때, 희윤이 부엌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강윤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향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희윤은 노래하며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와 함께 도마 위의 양파를 썰며 콧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뭐··· 뭐지? 이 빛은?’
 
 그의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 희윤을 둘러싸고 있는 빛이었다. 은은한 하얀 빛이 희윤에게서 퍼져나가 부엌을 비추는 도깨비놀음에 강윤은 기겁했다.
 
 ‘뭐야!! 이··· 이건?!’
 
 후광이라도 비추는 건지, 강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얼른 눈을 비비고 다시 부엌을 보았다. 그러나 희윤에게서 나오는 하얀 빛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은은하게 부엌을 메우고 있었다.
 
 “오빠, 밥 먹자.”
 
 그런데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빛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어?”
 “오빠? 왜 그래?”
 “아··· 아냐. 내가 뭘 잘못 봤나.”
 “오빠 오늘 이상해.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거야?”
 
 평소라면 다짜고짜 의자에 앉아 수저부터 들었을 위인이 멍하니 자기만 쳐다보고 있으니 이상하다 느낄 만했다.
 
 “아냐. 밥 먹자.”
 
 그러나 강윤은 대답 대신 수저를 들었다. 희윤에게 말해봐야 이상한 놈 취급만 당할 게 뻔했다. 물론, 그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 * *
 
 
 ‘여기는 10년 전이다. 나는 죽었다가 돌아왔고 나한텐 이상한 게 보인다.’
 
 동생이 학교에 가고, 강윤은 방안에서 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사람의 머리로는 지금의 일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10년 전으로 돌아오다니. 쉽사리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TV에서 말하는 10년 전 대통령의 정책들이나 연예계 이야기, 인터넷 기사들을 접하고 나니 지금이 10년 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 눈에 보이는 건 뭐지?’
 
 희윤이 부엌에서 보여주던 빛. 이건 도무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사람이 빛을 뿜어내다니. ‘세상에 저런 일이’에 제보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빛에 대해선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 면접.’
 
 면접에는 10분 전에는 가는게 예의다. 11시 면접을 위해선 지금 나가야 했다. 강윤은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 맵시를 정돈한 후 집을 나섰다.
 MG 엔터테인먼트 사옥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여럿 들어서 있는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었다. 강남의 가장 유명한 거리에 위치한 탓에 거리에는 모델들을 비롯해 연예인들도 여럿 거리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리고 눈에 띄기 위한 거리 공연도 빈번히 이루어지곤 했다.
 
 “Lie— Lie— 나를 돌아봐 줘요—”
 
 강윤은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거리 공연에 한창인 여성을 발견했다. 기타를 매고 노래에 열중하는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호기심이 생겨 그도 이끌려갔다.
 
 ‘어··· 뭐야? 이 빛은?’
 
 그런데 그의 눈에 또다시 빛이 비쳤다. 노래하는 여자에게서 하얀빛이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기타에서도 푸른빛이 퍼져나가 하얀빛에 녹아드니 빛은 더더욱 강렬해졌다.
 
 “노래 좋다.”
 “잘한다.”
 
 사람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수십의 사람들이 모여 그녀의 노래를 칭찬하며 때때로 천원, 만원도 놓고 가곤 했다. 노래가 절정에 이를수록 빛은 더더욱 강렬해졌다. 빛은 어느새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은은히 감싸 안았다.
 
 ‘뭐야, 이건? 설마, 노래?’
 
 아침에 희윤도 노래할 때 빛을 비췄다. 지금 노래하는 여자도 빛을 비추고 있었다. 은은한 하얀 빛이 점차 강해져 사람들에게 스며드는 모습을 보며 강윤은 저도 모르게 넋을 놓았다.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여자에게서 나오던 빛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노래의 빛은 노래를 감상하던 사람들을 비추며 은은히 머무르다 천천히 사그라졌다.
 강윤은 그 빛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건 노래야!! 노래!! 저 빛은 사람들이 받는 영향력 같은 거야.’
 
 강윤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왜 노래가 빛으로 보이는지 강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이 기현상을 두려워진 않게 되었다.
 
 ‘면접 늦겠다. 가자.’
 
 노래를 듣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다.
 강윤은 서둘러 MG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 * *
 
 
 “이강윤 씨. 1978년생이면 30살이군요. 전 소속사에선 가수 줄리아의 기획을 담당하셨군요.”
 “그렇습니다.”
 
 MG 엔터테인먼트 사옥 7층의 회의실. 그곳에서 강윤은 4명의 면접관에게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서로서로 보는데,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줄리아는 GTH 엔터테인먼트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가수였는데, 손익분기만 간신히 넘기고 그 이후에는 소식이 없군요.”
 “······.”
 
 계속 말하는 이는 가운데의 모자를 쓴 남자였다. 그는 까칠하게 계속 말을 해왔다.
 
 “이 바닥은 경력이 곧 실력이기도 합니다. 이런 실패한 경력을 오면 저희가 강윤 씨를 믿고 기획을 맡길 수 있을까요?”
 
 날 선 질문들이 날아왔지만, 강윤은 차분했다.
 
 ‘오지완 프로듀서. 역시나 그때하고 같은 질문이네.’
 
 지금 질문을 하는 이는 MG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인 오지완 프로듀서다. 까칠하다고 정평이 나 있지만 프로듀싱하나는 기가 막히며 가수들 사이에서도 믿을 수 있는 프로듀서라고 신뢰가 두텁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물론 정을 잘 안 주는게 흠.
 “맞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가수 줄리아는 실패한 가수입니다. 그러나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겨 회사가 다시 다른 기획에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가수이기도 합니다. 확 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를 믿고 맡겨주신다면 실패를 한다 해도 적어도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회사는 돈에 민감하다. 기획한 가수가 확 뜨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변수를 뚫어야 하는 법이다. 손익분기점 넘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닌 법. 강윤은 이걸 어필했다.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안정성에선 확실히 괜찮군요. 그럼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죠. 현재 우리 회사 상황을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저희 메인가수 남성그룹 에피스가 해체위기이고 여성그룹 세레니는 해체되었으며 솔로 여가수 연주아는 기획팀의 혼선으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죠. 강윤 씨, 강윤 씨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맨 끝에 있는 정장의 여성에게서 무척 길고 어려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네. 1분이면 괜찮겠나요?”
 “물론입니다.”
 
 잠시, 면접장에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결국, 에피스는 멤버들 간의 생각이 달라 해체되었고 맴버들 모두가 솔로 활동을 펴지만 좋은 반응은 보이지 못했어. 세레니는 모두가 각자 다른 회사와 재계약을 해버렸지. 그중 제일 못 나가던 해리가 뮤지컬에서 대박이 나면서 다른 멤버들 모두를 추월하게 되었고 MG 엔터테인먼트는 발등을 찍었다고 들었다. 연주아, 주아는 10년도 넘게 활동한 가수인데 본인은 일본부터 진출하고 후에 미국 무대를 밟고 싶어 했는데 회사에는 바로 미국본토로 진출시키려는 것에서 큰 혼선을 빚었지. 결국, 일본부터 진출한 주아는 크게 성공했지만, 미국에서는 크게 신통한 반응은 없었다.’
 
 과거의 일들을 정리해보니 현재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답이 나왔다.
 
 “일단, 에피스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해 봐요.”
 
 정장을 입은 여성은 팔짱을 끼었다. 네 답을 한번 들어보겠다는 반응이었다. 높은 사람에게서나 나올 법한 자세였다.
 
 “에피스는 멤버들 간 알력이 심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음악 욕심이 있고 회사는 그들이 합쳐질 때의 시너지효과와 팬덤이 아쉬워서 놓지를 못하고 있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분명히 재계약을 하면 얻는 소득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계약 비용이 너무 높아 멤버들 모두와 재계약을 한다 해도 회사가 얻는 이득이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피스 멤버들은 모두가 개인 활동을 원하고 그룹 활동에 큰마음이 없는데 재계약을 한다는 건 회사에 손해만 주는 일입니다.”
 “흠··· 그래도 계약으로 그룹 활동을 강제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윤은 정장 여자의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이미 한번 성공을 해본 이들입니다. 높은 비용을 제공한다고 해도 마음 없는 그룹 활동을 하라 강제한다면 계약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에피스는 놓아주거나 개인별로 계약하는게 현명한 선택이라 봅니다.”
 “좋아요, 다음을 들어보죠.”
 “다음은 세레니입니다. 세레니의 멤버 쥬리는 이미 연예계보다 결혼에 생각이 더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정된 가정을 오랫동안 꿈꿔왔던 만큼 더 이상 잡기는 힘들 것입니다.
 “······.”
 “하미, 그녀는 연기에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미는 아시다시피 소문난 발연기로 유명합니다. 이 발연기를 추스르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잠깐.”
 
 강윤이 한참 말을 하는데 맨 끝에 있는 평상복 차림의 남자가 말을 끊었다.
 
 “자네의 그런 말에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자 강윤은 당황했다. 이 모든 건 다 미래에 겪은 일들이기에 아는 내용인데 저 사람은 지금 정보의 출처를 묻고 있었다.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차분하게 답을 이어갔다.
 
 “저도 이 바닥에서 오래 있었습니다. 소문에 근거해 유추해 본 것입니다.”
 “···그렇군. 계속해보게.”
 
 당황할 만했지만 침착한 대처를 이어가는 강윤을 보며 남자는 이내 말문을 닫았다.
 
 “주아는 일본부터 차분하게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주아는 일본에서 크게 통할 스타일입니다. 주아의 나이는 18세. 하지만 실력은 이미 최정상이죠. 일본에는 그 나이의 아이돌이면 보통 외모로 승부를 봅니다. 만약 실력과 외모가 겸비된 주아가 일본으로 향한다면? 반드시 통합니다. 제 답은 여기까지입니다.”
 
 강윤의 답이 끝났다. 면접관들은 서로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윤은 차분히 다시 질문이 날아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맨 끝에 있는 평상복의 남자가 말했다.
 
 “지금까지 자네가 이야기한 근거들이 자네가 들은 소문을 유추한 것들이라 했지?”
 “그렇습니다.”
 “···흠. 안목이 있군. 가볍게 생각했는데, 사람을 과소평가했어.”
 
 강윤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이어지는 질문을 대비하며 강윤은 긴장했다.
 
 “이 정도 정보들과 대응능력, 그리고 자네가 말한 대로의 기획력이면 충분히 이곳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좋아.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지.”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팀장이라 가정하고 가수 주아의 기획안을 내보게.”
 “무대는 어디입니까?”
 “일본.”
 
 10년 전에는 전혀 들을 수 없던 질문이 날아들었다. 강윤은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야 했다.
 
 ‘주아는 인연이 없던 가수인데···’
 
 유명스타였지만 강윤의 과거에 얼굴도 제대로 본적 주아였다.
 데뷔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가수를 기획한다?
 강윤은 순간 가슴이 뛰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기다리지.”
 
 강윤은 잠시 고민했다. 기왕 무대를 만든다면, 크게, 넓은 무대에서 놀게 만든다. 생각을 굳힌 강윤은, 차분히 답을 시작했다.
 
 “주아가 가장 자신 있는 춤은 팝핀입니다. 자신 있는 춤에 사내 작곡팀이 모여 일본의 트렌드를 분석해 곡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의할 건 기계음을 적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 첫 데뷔무대는 뮤직 스테이션에서 하면 좋겠군요. 제가 정보가 적어 떠오르는 건 이정도입니다.”
 
 면접관들이 웅성거렸다.
 강윤이 말한 뮤직 스테이션은 일본의 아사이 TV에서 하는 음악방송으로 가장 큰 음악방송 중 하나였다.
 출연 할 수만 있다면 데뷔만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편안하게 갈 수 있으리라.
 문제는 외국 가수들은 지금까지 세워준 적이 없다는게 문제였다.
 그걸 알았는지 남자는 턱에 손을 올렸다.
 
 “···뮤직 스테이션이라. 거기 외국 가수가 선 적이 있던가.”
 
 강윤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허를 찔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수는 이런 무대도 서는 가수다. 진정한 기획자는 없는 기회도 열어 가수에게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쾅!!
 남자는 책상을 거세게 쳤다.
 
 “좋아. 솔직히 말하지. 지금까지 자네같이 시원한 답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마지막 질문이야. 진짜로 자네에게 이번에 주아의 기획을 맡기면 지금같이 시원한 답을 들려줄 수 있겠나?”
 “회장님!!”
 “회장님!!”
 
 면접관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의 급작스러운 돌직구는 여러 사람을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가수 주아의··· 기획안?’
 
 강윤은 눈을 감았다.
 원래대로라면 5집 앨범을 내려는 그 4인조 남자 그룹가수의 기획팀으로 들어가 실패하다 나오게 되는게 운명이었다.
 강윤 스스로 만들어낸 엄청난 기회에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아의 일본 무대? 이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연히 실패의 리스크도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 이런 두려움보다···
 
 ‘반드시 성공한다!!’
 
 간절함이 앞섰다.
 과거의 수많은 실패에 이골이 난 강윤에게 이 기회는 새롭게 도약할 동앗줄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생각한 후, 그는 마음을 정했다.
 
 “네. 가능합니다.”
 
 그의 답이 떨어지자, 면접관들은 회장을 붙잡고 반대를 표했다.
 
 “회장님!! 이건 아닙니다. 어떻게···.”
 “회장님!!”
 
 신출내기에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기니 당연히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그러나 회장은 모든 불만을 일소시켜 버리고 일어나 강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이강윤 팀장.”
 “잘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평상복을 입었던 맨 끝의 남자, 원진문 MG 엔터테인먼트 회장과 강윤은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강윤의 첫 기획이 시작되었다.
 후에 ‘음악의 신’라고 불리는 이강윤의 첫 기획의 시작이었다.
 
 
 * * *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면접이 끝난 후.
 MG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나오며 강윤은 입가에 떠도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원래는 실패한 가수의 ‘팀원’이 되었어야 하는데.
 가수 주아의 일본 프로젝트 ‘기획팀장’이라니!!
 
 ‘하하하!!’
 
 웃음이 계속 나와 슈퍼 주인이 이상한 사람 보듯 했지만, 강윤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담배에 커피까지 추가하는 매너를 보였다.
 으슥한 골목에서 강윤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평소 그리 몸에 맞지 않는 담배였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진하니 맛있었다.
 흩어지는 연기를 보니 오늘 면접에서 쌓인 피로가 절로 풀리는 기분이었다.
 
 “저기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 그에게 다가온 이가 있었다.
 교복을 입은 키가 큰 소녀였다.
 
 “무슨 일이야?”
 “죄송한데, 불 좀 빌려주실래요?”
 
 강윤은 당황했다.
 교복 치마를 나부끼는 여학생이 당당히 불을 빌려 달라니.
 여동생이 있는 처지에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불 없다.”
 “주머니에 있는 거 봤어요.”
 
 소녀는 당당하게 강윤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오히려 맡겨 놓은 것 찾으러 온 마냥 뻔뻔하게 나오니 강윤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은 있는데 학생 빌려줄 불은 없어.”
 “···쳇. 꼰대같이.”
 
 소녀는 구시렁거리며 인상을 구겼다.
 강윤은 때 아닌 거친 말에 놀라 한마디 하려다가 그녀의 낯익은 얼굴에 연신 눈을 크게 떴다.
 
 ‘가만. 정민아 아냐? 에디오스(EDDIOS)의?’
 
 어려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그녀가 맞았다.
 7인조 걸그룹 에디오스(EDDIOS).
 MG 엔터테인먼트의 주력 걸그룹으로 멤버들 개성이 두드러져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는 걸그룹이었다.
 팬덤도 강성하고 노래도 괜찮았지만 멤버들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연일 불화설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결국 해체되고 만다.
 그 중 정민아는 늘씬한 키에 활기찬 이미지로 남자, 여자들에게 고루 인기를 누린 멤버였다.
 가요계를 누볐던 EDDIOS의 멤버를 보니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게다가 앞으로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될 사이이기도 했고 말이다.
 
 “너 MG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아냐?”
 “그쪽이 무슨 상관인데요?”
 “연습생이 담배라니. 성공한 가수한테도 안 좋은 걸.”
 “그러니까 그쪽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정민아는 강윤을 노려보았다.
 강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강윤도 그런 모습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상관없었는데 이제 상관있어졌거든. 이번에 MG 엔터테인먼트 직원이 돼서 말이야. 너 정민아 맞지?”
 “나 알아요?”
 “잘 알지. 춤에 재능이 있어 차기 걸그룹에 내정된 연습생이잖아. 벌써 걸그룹에 내정됐다고 안심하는 거야? 담배나 태우고 있고 말이야.”
 “······.”
 
 정민아는 씩씩댔다.
 강윤의 말이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너무 잘 알고 있어 가슴이 뜨끔거렸다.
 게다가 같은 회사 직원이라니. 연습생을 아는 정도면 사무 쪽 직원이라기보다 현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일 게 분명했다.
 정민아는 더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벌써 샴페인을 터뜨리면 곤란해. 연습생은 가수가 돼서야 진짜 시작···.”
 “정민아는 맞는데, 저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강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답이 날아들었다.
 
 “차기 걸그룹 선발은 무슨. 밀려났거든요? 이제 됐죠? 불 안 줄 거면 그만 가요.”
 
 강윤은 강윤대로 당황했다.
 이런 과거,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정민아가 탈락했다고? 말도 안 돼. 혹시 탈락했다가 다시 선발된 건가?’
 
 강윤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그가 알기로 MG 엔터테인먼트는 차기 가수를 준비하고 있는 시기다.
 연습생들은 가수에 선발되기 위해 더더욱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민아가 탈락?
 
 “떨어졌다고? 네가?”
 “···제일 먼저 떨어졌어요.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트레이너 쌤들이 점수를 이상하게 짜게 주더군요. 에이씨. 하하하!!”
 
 정민아는 그녀대로 강윤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아니, 기분대로 마구 쏘아붙이고 있다는 말이 맞았다.
 
 “뭐, 노래로는 어차피 노래로는 안될게 뻔하고, 결국 춤인데··· 봐주질 않네요. 이제 됐죠? 불 안 줄 거면···.”
 “이대로 끝내려고? 여기가 끝이야?”
 “아 좀!!”
 
 결국 정민아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내 보이는 건 눈물이었다. 서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이었다.
 
 “대체 아저씨가 뭐라고··· 나한테··· 왜 이래요···.”
 “······.”
 
 감정이 복받쳐서일까, 속에 있는게 쌓여서일까.
 정민아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강윤은 그녀의 눈물에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신기한건, 그녀도 그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테스트가 한 번은 아니잖아. 앞으로 차기 걸그룹이나 가수를 선발하려면 여러 번 테스트를 하게 될 거야. 내가 알기로 MG 엔터테인먼트에서 정민아, 너만큼 멋지게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
 “······.”
 “다시 해봐. 그럼 반드시 할 수 있어. 알았지?”
 
 정민아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화도 냈고 위로까지 받았다.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
 
 어색하게 시간만이 흘렀다.
 이윽고, 감정을 수습했는지 정민아가 붉어진 눈을 들었다.
 
 “···고마워요. 지금까지 누구도 이렇게 날 믿어준 적이 없었는데.”
 “허, 그래?”
 “빈말이라도 고마워요. 그냥··· 위로가 필요했나 봐요.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하. 웃기네.”
 
 정민아 자신도 자신이 웃겼는지 민망한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강윤은 확신에 차 말했다.
 
 “빈말이 아니야. 넌 반드시 가수가 될 수 있어. 그것도 대형가수가.”
 “······.”
 “그러니까 담배 같은 거로 몸 버리지 말고 다시 시작해. 알았지? 몸 버리지 말고.”
 “···네.”
 
 그제야 정민아는 제대로 웃음을 보였다. 물론 눈물과 번진 화장에 얼굴이 엉망이 되긴 했지만, 특유의 미모는 어디 가질 않았다.
 
 “에이. 그래도 이건 내 낙이었는데.”
 “끊어. 폐활량 떨어져.”
 “알았어요. 끊어보죠. 그런데 이름도 모르네. 아저씬 누구세요?”
 
 지금까지 친한 사람인 것처럼 대화했지만 정작 이름도 모르는 남자, 정민아는 그가 궁금해졌다.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눈에 묘한 깊이가 있고 몸에는 힘이 있었다.
 
 “난 이강윤. 이제 같은 밥 먹게 되니까 잘 부탁할게.”
 “저도요. 어디 부서에요?”
 “훗. 그건 비밀.”
 “엣? 뭐야, 시시하게.”
 
 강윤과 정민아는 어느새 친해져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민아, 후에 MG 엔터테인먼트 걸그룹의 중추로 세상을 놀라게 할 소녀와 강윤의 첫 만남이었다.
 
 
 * * *
 
 
 집에 돌아온 강윤은 노래에 보이던 빛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TV나 컴퓨터로 영상을 볼 때는 안 보이네.’
 
 직접 눈으로 공연을 볼 때만 빛이 보인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강윤은 고민이었다.
 
 ‘다시 돌아온 것도 엄청난 일인데 노래가 눈에 보인다니, 왜 이런 게 보이게 된 걸까? 혹시 그 노숙자 때문에?’
 
 배가 고프다던 노숙자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던 친절이 그제야 생각났다.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봐. 다 들어줄게.]
 
 다 들어준다는 알 수 없는 말들. 강윤은 다시 시작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능력까지 하나 보태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그것밖에 없었다.
 밤이 되었지만, 강윤은 방의 불을 켜지 않았다. 조용하게 생각을 주욱 정리하고 싶었다.
 
 ‘나는 10년 전으로 돌아왔고 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 난 원래의 미래를 바꿨다.’
 
 원래 담당해야 할 가수가 아닌 주아라는 최고의 가수를 담당하게 되었고, 전혀 인연이 없었던 정민아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 최선을 다한 결과에 강윤은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걱정도 되었다.
 
 ‘주아의 앨범기획이라니. 그것도 일본에 갈··· 처음부터 엄청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어. 그래도 지금의 나라면···’
 
 실패는 지긋지긋했다.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조롱받으며 사채에 쫒기던 이강윤도 없다.
 
 ‘이젠 과거는 생각하지 말자.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고, 행복해지자.’
 
 어두운 방 안.
 강윤은 과거가 어땠는지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이젠 미래만을 생각하자고, 동생과 음악. 두 가지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자며 길을 결정했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오빠, 있어?”
 “아, 어. 희윤이 왔어?”
 “뭐해? 깜깜한 데서? 청승 떨어? 꺅!! 오빠, 왜 그래!!”
 
 강윤은 막 학교에서 귀가한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이번에는 꼭···’
 
 지켜내자.
 강윤은 굳게 다짐했다.
 
 
 * * *
 
 
 기획팀의 복장은 캐주얼이었지만 출근 첫날에 캐주얼을 입고 가는 것도 웃겼다.
 강윤은 핏이 딱 맞는 정장을 꺼내 입고는 거울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이상한가?”
 “아니. 하나도 안 이상해. 우리 오빠가 제일 멋있어.”
 
 뒤에서 강윤의 핏에 취한 희윤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긴 다리와 넓은 어깨는 강윤의 정장을 잘 부각시켰다.
 
 “오늘은 나 먼저 갈게. 학교 조심해서 가고. 오늘 투석 날이지? 빼먹지 말고.”
 “응. 오빠 출근 잘하고 와.”
 
 강북의 한 달동네에 사는 강윤이 강남의 유명거리까지 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버스 타고, 지하철까지 타야 하는 출근길은 험난했다.
 미리 받은 임시출입증을 찍고 회사 안으로 들어간 강윤은 바로 회장실로 향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안녕하십니까.”
 
 원진문 회장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비서가 내온 차를 입가에 가져가며 원진문 회장이 말했다.
 
 “드디어 첫 출근이군. 주아는 오후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회사를 잘 둘러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난 한 번 맡기면 일절 터치하지 않아. 대신 결과가 안 좋으면···.”
 
 원진문 회장은 손으로 목을 휙 그었다.
 
 “크하핫. 물론, 정말로 죽이는 건 아니니 안심하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호탕하게 웃는 원진문 회장을 보며 강윤은 그의 성향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로 한 번 일을 맡기면 무슨 일이 있어도 터치하지 않아. 그러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가 따르고 좋은 결과에는 좋은 보상으로 답한다. 이게 원진문 회장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비결이지.’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확실한 대우를 해주니 그의 곁에서 떠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면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윤은 생각했다.
 티타임이 끝나고 강윤은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사무실로 내려갔다. 사무실은 5층에 있었다.
 
 “여기입니다.”
 
 비서가 문을 열어준 곳에는 ‘총괄기획팀장 이강윤’이라는 명패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혼자만의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깔끔한 책상 하며 책꽂이에 있는 자료, 그리고 TV와 컴퓨터 등 모든 것이 그를 만족하게 했다.
 
 “점심때까지 방을 둘러보고 계십시오. 주아 양이 오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비서는 다시 회장실로 올라갔다.
 점심까지 자유시간을 얻은 강윤은 사무실을 여기저기 살폈다.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부터 각종 음반 자료들, 연습실을 볼 수 있는 영상에 다과까지 사무실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MG 엔터테인먼트의 총괄기획팀장이란 이런 자리라는 것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자료들을 몇 개 열어보다가 강윤은 연습생들이 연습하는 영상을 열었다.
 CCTV로 촬영되는 영상은 댄스연습을 하는 연습생이나 보컬 외 다른 훈련을 받는 연습생의 모습까지 세세히 나오고 있었다. 그런 장면들을 보자니 강윤은 호기심이 일었다.
 
 ‘한번 가 볼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강윤은 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보컬 트레이닝이 한창인 3층의 한 트레이닝 강의실이었다. 강윤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다양한 연령의 연습생들이 한창 강의를 받고 있었다.
 
 “민성아. 그 부분에서 뱃심이 부족한 것 같아. 조금만 더 힘을 줘서 해보자.”
 “네가 나를 떠날 수밖에 없는—”
 
 남자 연습생이 배에 힘을 팍 주며 노래에 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 이번에는 회색이 감도네.’
 
 남자 연습생에게서 칙칙한 회색이 나오고 있었다. 칙칙한 색은 강윤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과히 느낌이 좋지 않은 색이었다.
 
 “한민성. 그게 아니잖아. 힘이 너무 과해. 다시!!”
 “네가 나를 떠날 수밖에 없는—”
 
 다시 연습생에게서 회색빛이 다시 흘러나왔다. 그래도 조금 전보다 조금 밝아졌다.
 
 “민성아. 약간 좋아지네. 다시!!”
 “네가 나를 떠날 수밖에 없는—”
 
 점점 엷어지는 회색빛이 강윤은 신기했다.
 점차 칙칙한 회색은 엷어져서 흰빛이 되었고 그 빛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좋아!! 그렇게 하는 거야. 이제 뒷부분으로 가보자.”
 “이유— 널 사랑하지마안—”
 
 남자 연습생에게서 뿜어지는 흰색 빛은 더 주변을 가득 메웠다.
 흰빛이 되자 듣기 좋은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은은하니 주변에 퍼지는 소리가 괜찮았다.
 
 “좋아. 잠시 휴식하도록 할까.”
 
 쉬는 시간이 되자 강윤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이 빛을 보는 능력, 조금씩 감이 잡혀 왔다.
 
 ‘좋은 노래를 하게 되면 하얀빛이 퍼져. 칙칙한 회색빛은 노래가 엉망일 때 나온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빛이 타인에게 퍼져나갈 때 그 사람은 영향을 받게 되고 반응을 보이지. 결국, 어떤 빛이 나오는지, 그 빛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잘 파악하는게 중요하겠어.’
 
 노래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면 이건 엄청난 능력이었다. 듣기 좋은 노래와 좋은 영향력을 가진 노래는 엄연히 다른 법이다.
 
 ‘아아··· 신이시여..’
 
 강윤은 처음으로 신을 찾고 감사를 드렸다. 절망에 빠져서도 신을 찾지 않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생긴 이 순간, 저절로 신을 찾게 되었다.
 다시 열린 삶에서 신은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선물로 주었다.
 지잉--지잉--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주아가 왔다며 회장실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고 강윤은 회장실로 향했다.
 
 
 * * *
 
 
 주아는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지만 다리가 길고 허리가 가는 좋은 신체비율을 가진 가수였다. 평소 관리를 혹독히 한 대가였다. 아직은 19세, 앳된 티를 짙은 무대화장으로 가리고 있는 그녀는 강윤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분이 내 기획 프로듀서님인가요?”
 “반가워요. 이강윤이라고 해요.”
 “······.”
 
 강윤을 처음 보는 자리였지만 주아는 미심쩍은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강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회장을 돌아보았다.
 
 “회장님. 저 그냥 지완 오빠하고만 하면 안 되나요?”
 “주아야.”
 “저 아시잖아요. 새로운 사람이랑 하려면 시간 많이 걸리는 거. 이번 앨범은 일본에 갈 앨범이라면서요. 특히나 중요한 앨범인데 새로운 분이랑 손을 맞추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요. 결과도 장담 못할 테고요.”
 
 그냥 난 이 사람이랑 못한다는 주아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원진문 회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주아야. 우리도 신중히 결정한 일이야. 이번 앨범에 가장 적합하다 생각한 기획자를 뽑은 거니까···.”
 “회장님. 전 회장님 말 어긴 적 한 번도 없는 거 아시죠? 그런데 이번은 이해하기 힘들어요. 새로운, 게다가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하고 일을 하라니.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주아는 주아대로 고집이 엄청났다. 일본에 낼 앨범은 그녀에게는 앞으로의 미래가 걸린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신출내기랑 일하라니, 이제 5년차, 최고의 자리에 있는 주아는 납득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원진문 회장은 탁 선을 그었다.
 
 “주아야. 내 눈을 믿지?”
 “······.”
 “이번 앨범에 최고의 적격자야. 삼촌을 믿고 해봐.”
 “하지만 삼촌···.”
 “거기까지. 반론은 허용치 않을 거야.”
 
 결국, 주아는 입술만 달싹이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강윤은 주아가 나간 문을 보며 씁쓸히 말했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보네요.”
 “허허허. 어떤가, 이 팀장. 주아는 고집이 아주 세. 아주 대찬 녀석이지. 저 고집 꺾을 수 있겠나?”
 
 강윤은 재미있었다. 모름지기, 최고의 가수라면 저런 모습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답했다.
 
 “재미있군요. 가수라면 저런 고집이 있어야죠. 맡겨 주십시오.”
 “좋아. 믿겠네. 이 시간 이후, 가수 주아의 일본진출에 대해선 자네가 일인자야. 그 누구도 터치하는 것을 허용치 않겠네. 그럼 잘 부탁하네.”
 
 원진문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축객령을 내렸다. 강윤은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사무실로 향하는 강윤의 머릿속에는 앞으로의 계획들이 하나둘씩 세워지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부터 강윤은 본격적으로 팀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원진문 회장이 말 그대로 전권을 주었기에 강윤은 가장 중요한 팀원을 원하는 대로 선발 할 수 있었다.
 
 ‘MG는 인물들이 많네, 많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히트앨범을 녹음하고 연출한 현장의 메인 지휘관 오지완 프로듀서부터 홍보 1팀의 에이스로 인터넷, 매체의 흐름을 읽는데 정평이 난 이지연 대리, 주아에 대해 모르는게 없는 주아의 제1 매니저 강수민, 그리고 노래를 선별할 MG의 메인작곡가 설린까지. 강윤이 과거에 모두가 다 한 번 이상은 들어본 에이스들이었다.
 이전 삶에서는 이들과 일을 해볼 기회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이들을 지휘하는 총괄기획팀장이 되다니, 강윤은 새로운 삶에 감사함과 동시에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강윤은 팀원들을 선별한 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회의를 소집했다. 팀원들 모두가 모이자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번 목표는 일본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 오리콘 차트 5위안에 드는 것입니다.”
 
 강윤이 목표를 이야기하자 모두가 신음을 내뱉었다. 에이스들이지만 일본시장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국 가수에게 일본시장은 아직 폐쇄적이고 돈만 드는 그런 존재였다.
 
 “현재 일본에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가수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이지연 대리가 첫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가 고개를 젓자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시스카 아이라고 솔로 가수가 뜨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메이라는 가수가 득세했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댄스가 아닌,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가수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도 가창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거군요. 주아의 가창력이야 워낙 좋으니까···.”
 
 매니저 강수민이 첨언을 붙였다. 그러자 설린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일본 스타일에 맞춰 한국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과연 만족을 시킬 수 있을까요? 이건 상당한 모험이 될 것 같은데요. 가사야 당연히 일본어로 번역해야 하지만, 음악스타일까지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본에서 데뷔하는 일입니다. 그러자면 그 나라의 정서를 이해해야죠. 현재 어쿠스틱 음악이 뜨고 있다면 대세를 따르는게 안전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주아만의 스타일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물론 주아가 어쿠스틱 음악에 약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원래 보여주던 퍼포먼스는 전혀 보여줄 수 없게 됩니다.”
 
 설린과 오지완 프로듀서의 이야기가 강하게 맞섰다.
 이후 계속되는 회의에서 네 사람은 각자 의견들을 좁히지 못했다. 서로가 생각하는 일본과 주아에 대한 생각들이 너무 달랐다. 현재 일본에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와 주아의 스타일대로 밀어붙이자는 이야기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강윤이 말을 꺼냈다.
 
 “퍼포먼스로 가죠.”
 “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퍼포먼스는 남자 아이돌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세가 그렇게 나가고 있어요. 저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지연 대리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친숙함을 느끼는 법이다. 게다가 이국인에게 폐쇄적인 일본이다. 그것도 한국인. 조금이라도 친숙하게 느껴지게 해하는데 퍼포먼스라니. 위험했다.
 
 “아뇨. 퍼포먼스가 낫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일본 남자 아이돌보다 주아가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들이 훨씬 많습니다. 실력 면에서 주아가 그들을 아득히 능가하니까요. 어차피 우린 이방인입니다. 차라리 아예 새로운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이지연 대리는 침음성을 냈다. 강윤의 말에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실력이 깡패라고, 아득히 뛰어나면 안 볼 수가 없다. 주아는 그런 실력이 있었다.
 
 “그럼 팀장님, 퍼포먼스를 위주로 간다 할 때, 노래 스타일은 댄스가 되는 겁니까?”
 “그렇게 되겠죠. 팝핀 위주의 댄스로, 주아의 주특기를 살릴 수 있는 그루브가 살아있는 노래로 가보는게 어떨까 합니다..”
 
 오지완 프로듀서의 물음에 강윤이 답했다. 그러자 오지완 프로듀서가 세게 박수를 쳤다.
 
 “그루브라!! 허, 생각지도 못한 거군요. 허, 복고라면 복고일 수도 있고···.”
 “일본은 우리보다 현대음악에 대한 역사가 깁니다. 가능성이 있다 생각합니다.”
 
 강윤의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낙하산이라 미덥지 못했는데 회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게 아니었다.
 
 “주아의 특기야 리듬을 타는 거니까, 그루브한 노래를 한다면야 좋아하겠군요.”
 
 강수민 매니저도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해보면 그루브한 댄스곡을 메인으로 한 앨범으로 나가자는 거군요. 강렬한 퍼포먼스를 위주로 한. 앨범의 컨셉은 노래가 나오면 정하면 될 테고요.”
 
 설린 작곡가가 마무리로 정리를 해주었다.
 
 “맞습니다. 오늘 회의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주시는군요. 홍보 1팀은 지금부터 일본 방송사에 컨펌을 넣을 수 있는 루트를 알아보시고 설린 작곡가님은 곡을 골라주십시오. 먼저 고르시고 후에 저랑 같이 고르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예압.”
 
 이지연 대리와 설린 작곡가가 각자 스타일대로 답을 하고 중요한 내용을 받아 적었다.
 
 “오지완 PD님은 곡이 나오면 가이드 곡을 만들어 주시고요, 연습생 연습시킨다 생각하고 멋들어진 가이드 곡을 만들어 주십시오.”
 “다른 사항은 더 없습니까?”
 “아직은 괜찮습니다. 어차피 곡 나오면 가장 바빠질 테니까 지금 쉬어두세요.”
 
 오지완 프로듀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남은 건 강수민 매니저였다.
 
 “주아 몸무게 관리 하고 있죠?”
 “물론입니다.”
 “몸 관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스트레스 체크입니다. 차라리 살이 조금 찔지언정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주세요. 외출도 허용해주시고요.”
 “하지만 그러면 회사 방침에 어긋납니다.”
 “회사 방침 지키다가 주아가 비뚤어집니다. 어차피 혼자서도 주아는 잘하잖습니까. 우리가 그 애를 믿는다는 걸 먼저 보여주면 더 잘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세부사항까지 체크가 끝나고, 그 날 회의는 끝이 났다. 모두가 일할 할당량을 받아들고 강윤의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강윤은 그제야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후아··· 힘들었다. 아직도 믿기질 않아. 내가 주아의 앨범을 기획하고 있다니.’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리던 자신이 지금, 최고의 가수라는 주아의 앨범을 위해 회의를 주관했다. 그 사실이 강윤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이 모든 게 아직도 꿈만 같았다.
 하지만 입가에 느껴지는 달달한 커피향은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반드시, 반드시 성공하겠어!!’
 
 강윤은 창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음미했다. 그리고 단단히 결심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 * *
 
 
 다음날.
 강윤은 가수 주아와 단둘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대면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해요. 나 바빠.”
 
 주아는 직설적이었다. 그리고 강했다. 그러나 강윤은 날 선 최고의 가수를 대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주아는 원래 성격이 모가 나 있지. 낯도 가리는 편이고. 하지만 한 번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품는 스타일이야. 지금은 내가 같은 편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어야 해.’
 
 하지만 그녀 나름대로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능력이었다. 능력 없는 사람은 벌레 보듯 하는 사람이 바로 주아였다. 노래든 무엇이든 능력 없는 이는 옆에 두려고 하지 않았다.
 
 “주아야. 노래 한번 해볼래?”
 “노래요? 왜요?”
 “내가 이래도 기획팀장이잖아. 네가 어떻게 노래하는지 한 번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맞는 말이었다. 이런 말에는 안들을 재간이 없었다. 주아는 결국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번 목을 가다듬은 주아는 이내 노래를 시작했다.
 
 “잊지 말아요— 나의 이름을— 그대는— 나의—”
 
 주아가 노래를 시작하자 그녀에게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의 노래하는 이에게 나오는 빛이었다.
 
 ‘목소리 좋다.’
 
 노래는 분명히 좋았다. 누가 들어도 나무랄 데 없는 좋은 노래였다. 그러나···
 
 ‘회색?’
 
 주아에게서 나오는 빛은 옅지만, 분명히 회색이었다. 아니, 슈퍼스타에게서 나오는 회색이라니. 강윤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아도 뭔가 걸리는게 있는지 이내 노래를 중단했다.
 
 “크흠흠. 죄송해요. 다시 해볼게요.”
 
 잠시 기침을 하곤 주아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강윤은 다시 그녀에게서 회색을 보았다. 아니, 조금 전보다 오히려 더욱 짙었다. 회색의 빛은 방안을 감싸고 이내 강윤까지 감싸 안았다.
 
 ‘뭐야, 이 칙칙함은?’
 
 강윤은 회색빛이 닿자 마치 진흙을 묻힌 양 온몸에서 찐득한 느낌이 났다. 마치 펄에 빠진 것 같은 찐득함이 그를 묻어갔고 온몸을 죄여왔다.
 
 “···여기까지 할게요.”
 
 강윤의 표정에서 불편함을 안 것일까. 노래가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주아는 노래를 중단했다. 그러자 끈적끈적한 회색빛은 거짓말같이 사라져버렸다.
 
 ‘말도 안 돼. 주아에게서 회색빛이라니.’
 
 길거리 가수에게서도 맑은 흰 빛이 났건만, 왜 주아에게서 회색빛이 나는 걸까. 강윤은 의문이 들었다.
 
 “요새 무슨 일 있었어?”
 “그런 거 없었는데요.”
 “그런데 노래가 왜 그래.”
 “제 노래가 어때서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네 노래 최악이잖아. 목소리 하나 믿고 성의 없이 부르는 노래를 지금 노래라고 부르고 있는 거야?”
 
 강윤은 화를 냈다. 주아에게 기대하는 기대치에 따른 실망감이다. 도도함은 좋았지만 지금 이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도도함은 사치였다.
 
 “가볍게 불러보라 했지만, 가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연습할 때도, 무대에 설 때도. 이건 연습생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는 거 아냐?”
 “······.”
 “최고라고 항상 추켜세워주니까 네 위치가 끝인 줄 알고 있어? 그럼 넌 거기까지야. 그런 너한테 기대를 걸고 기획을 덜커덕 맡은 내가 바보다. 여기까지 하자.”
 
 강윤은 진심으로 실망했다. 주아의 목소리는 특이했지만, 그 특이한 목소리를 개발해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는 건 그녀의 실력이었다. 강윤도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고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노력하는 그녀를 동경했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만나다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시 해볼게요.”
 “하지 마. 더 들어볼 것도 없어.”
 “제대로, 다시 해볼게요. 이번에 듣고 제대로 평가해주세요.”
 
 주아는 무언가 단단히 결심했는지 자세를 바로 하고 목을 제대로 풀기 시작했다. 강윤이 팔짱을 끼며 무언의 승낙을 하자 그녀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그대는— 이런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대는—”
 
 청량한, 맑은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였다. 그리고 강윤의 눈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얗다.’
 
 하얀빛이었다. 회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탁하지 않은 하얀 빛이 그녀에게서 나와 방안을 은은히 비추며 강윤을 감쌌다.
 
 ‘깃털 같군.’
 
 하얀 깃털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살짝살짝 간질이는 그런 기분이었다. 귀로 들으니 청량하고 눈으로 보니 밝았다. 그제야 강윤은 웃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던데. 바로 아시네요.”
 
 노래가 끝나고, 주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듣기에 거북했거든.”
 “맞아요. 처음에 부른 노래는 노래도 아니었죠. 메아리만도 못 한 거지. 감정도 뭣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소리죠.”
 “잠깐. 지금 날 시험해본 거야?”
 “명색이 내 대장이 되실 분인데, 나에 대해선 잘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주아의 당찬 모습에 강윤은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참 내. 그래, 그래. 그래서 평가해보니까 어때?”
 “합격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만··· 너, 일루와. 어디서 팀장님을 시험해.”
 “악!! 잘못했어요!!”
 
 강윤은 그대로 주아를 쥐어박았고 주아는 이내 아픈 시늉을 하며 낑낑댔다. 처음의 까칠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 사람은 그렇게 순식간에 친해졌다. 주아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해요, 팀장 오빠.”
 “나도. 우리 잘해보자.”
 “하잇, 하잇.”
 
 강윤의 손을 잡은 주아는 장난스럽게 흔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본격적인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화-일본을 휩쓸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
 
 원진문 회장에게 중간 보고서를 내러 간 강윤에게 질문이 날아들었다.
 
 “네.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곡 선정이 진행 중입니다.”
 “앨범 컨셉은 아직 나온 게 없겠군.”
 “앨범 이름은 정했습니다. ‘Girls on Best.’ 최고의 자리에서 빛나는 고고한 소녀를 상징합니다.”
 “끌어들일 팬이 남자는 아니겠군. 여성팬을 노리는 건가? 지금까지의 주아라면 오히려 남성팬에게 어필하는게 쉬울 텐데. 위험할 수도 있겠어.”
 
 원진문 회장이 보고서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고민했다. 그러나 강윤은 자신감 있게 주장을 펼쳤다.
 
 “오히려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여성에게 음악적 선택권이 넓은 편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남자 아이돌의 브로마이드나 앨범을 사는 정도죠. 주아가 그들에게서 동경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하는게 이번 앨범의 목표입니다.”
 “오히려 시기나 질투를 유발하지 않을까? 이방인인데다 한국 사람인데.”
 “주아라면 오히려 더 높은 곳에서 빛날 수 있습니다. 이미 주아를 지원할 화려한 무대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진문 회장은 중간보고들을 들으며 걱정이 가시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혀 들어본 적 없던 컨셉들과 팬 층에 대한 이야기들에 흥미가 동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전권은 자네에게 있네. 믿겠네. 다음 보고를 기다리지. 다음 보고는 이사회의에서 받도록 하겠어. 지금 보고서도 좋지만 그때는 프레젠테이션을 제대로 준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강윤은 회장실을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미 그의 사무실은 각종 자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서류들부터 여러 모니터, 게다가 집에도 가지 못해 옷가지들까지 엉망진창이었다.
 
 “불안할 만도 하지. 하지만 통할 수밖에 없어.”
 
 도장을 받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강윤은 중얼거렸다.
 강윤의 과거에 주아는 10대층을 노리고 일본에 진출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10대보다 20대, 30대 여성에게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귀엽다, 대견하다는 이유와 멋있다는 이유까지, 주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이러했다. 그리고 결국 일본에서 10위권 내에 드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 강윤은 10위권이 아니라 5위 안에 드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아예 타겟을 그녀가 통할 타겟층에 둔다면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문제는 노래야. 원래 가져갔던 노래를 가져간 다해도 10위권일게 뻔해. 이미 시작한 모험, 제대로 해봐야지.’
 
 마이너스냐, 마이더스가 되느냐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과거에 했던 노래를 골라봐야 기존의 이야기만을 반복할 뿐이다. 물론 한국가수가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강윤은 욕심이 있었다. 기왕 시작한 거,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강윤은 예산안을 펼쳤다.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곡들이 들어왔고, 그 노래들을 의뢰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었다. 게다가 앨범자켓을 제작하는 비용하며 주아의 활동비용에 기타 부대비용까지··· 이번 앨범제작비용은 지금까지의 주아 앨범제작비용에 비교할게 아니었다.
 
 ‘돈을 물 쓰듯 쓰고 있구나. 스케일이 다르긴 다르네. 하하.’
 
 강윤은 잠시 과거를 생각해봤다. 100만원을 쓰는데도 골골대던 과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100만원은 노래 한곡 의뢰하는 비용도 충당하지 못했다. 숫자는 무시무시하게 휙휙 불어났고 이건 고스란히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엄청난 예산만큼이나 책임감도 무겁게 다가왔다.
 
 -팀장님. 주아 양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한창 일에 몰입할 때, 로비에서 주아가 왔다는 연락이 왔다. 원래 바로 쳐들어오는 주아였지만 왠일인지 연락까지 해왔다. 강윤을 위한 배려였다.
 곧 주아와 매니저 강진성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간단한 인사 후 앉은 세 사람은 이내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습은 잘 되가?”
 “메인 노래도 안 나왔는데 연습이 잘 되겠어. 노래 언제 나와?”
 “그렇잖아도 저녁에 가이드 곡 나온다고 했잖아. 왜 벌써 왔어?”
 “빨리 들어보고 싶으니까 왔지. 몇 개나 나온데?”
 “30개.”
 “···오빠도 대단하다. 30개나 가이드를 만들라고 한 거야? 지완 오빠 죽어났겠네.”
 
 주아는 진심으로 놀랐다. 보통 가이드곡은 메인곡을 정해놓고 1~2개만 만드는게 정석이다. 그런데 강윤은 30개 곡 모두의 가이드곡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앨범에 들어갈 곡 선별은 중요한 작업이니까. 지완 프로듀서부터 모든 팀원들이 다 모일거야. 너도 각오 단단히 하고 노래해야해. 알았지?”
 “아아. 걱정 말라고.”
 
 가이드곡은 녹음하기 전, 사전에 다른 사람이 멜로디를 녹음하는 것을 의미한다.
 멜로디를 녹음할 가수는 따라 부르기만 하면 된다.
 보통 연습생들이 연습할 겸 많이 하는데 때론 친한 동료가수가 하기도 한다.
 
 “주아 컨디션은 괜찮습니까?”
 
 강윤은 이번에는 매니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좋습니다. 너무 팍팍하게 식단을 운용하지 말라는 팀장님 말이 주효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본인이 알아서 잘 관리를 하더군요.”
 “오빠가 오히려 날 더 잘 아는 것 같아. 믿어줘서 고마워.”
 “새삼스럽게.”
 
 가만히 내버려두면 오히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주아였다. 덕분에 강진성 매니저도 편했고 주아도 편하게 연습과 휴식에 집중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의 컨디션은 지금 최고였다.
 
 “근데 노래는 언제 오는 거야? 나 목이 근질근질하다고.”
 “그럼 가서 기다릴까? 여기 있는 것보다?”
 “그러자고. 난 회의스타일은 안 맞아.”
 
 주아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에 있는 스튜디오라 앞장서서 내려갔다. 이런 행동력에 강윤과 강진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활기찬 소녀의 매력이란 남자들을 웃게 만드는 법이다.
 세 사람이 지하의 스튜디오로 내려가니 오지완 프로듀서와 그의 팀 직원들 그리고 원진문 회장에 정장을 입은 여자까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면접때 봤죠? 반가워요. 이현지입니다.”
 “사장님이시군요. 이강윤입니다.”
 
 면접 때 원진문 회장 옆에 앉아있던 정장의 여성이 먼저 강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작은 키에 눈가에 약간의 주름살이 있었지만 아직도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이었다. 관리의 승리였다.
 
 “이 사장도 오늘 주아의 곡선정이 궁금해서 왔다고 하네. 나도 궁금해서 내려왔고 말이야. 뒤에서 보기만 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저 말이 가장 무서운 말이다. 강윤은 알겠다고 말하곤 바로 일을 시작했다.
 
 “PD님. 곡은 다 나왔습니까?”
 “네. 바로 시작할까요?”
 “주아야. 시작할까?”
 
 주아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 안에는 두터운 악보들과 헤드셋, 마이크까지 이미 세팅이 끝나있었다. 이미 마이크까지 그녀에게 맞게 세팅이 되어있어 다른 설정들은 필요가 없었다.
 
 “그럼 시작해보죠. 첫 번째 곡부터 틀어주세요.”
 
 스튜디오에서 주아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조용히 그녀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으음—”
 
 아직 가사가 나오지 않은 멜로디만의 노래가 주아의 목소리를 타고 스튜디오를 울려갔다.
 
 ‘보인다. 흠··· 그냥 하얗네.’
 
 하얀 빛이다. 그러나 그냥 하얀색이었다. 은은한 맛이 없는 크레파스로 칠한 하얀색이었다. 강윤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도 큰 반응이 없었다.
 
 “좋아. 다음 곡.”
 
 1절이 끝나고 이어 시작된 다음 곡. 그런데···
 
 ‘회색!!’
 
 혹시 몰라 강윤은 주아를 살폈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회색이라니. 이건 노래와 주아와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
 
 “스톱. 이건 아닌 것 같다.”
 
 강윤은 노래를 중단했다. 그러자 부스 안에서 주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별로에요 이거.”
 “좋아. 다음 걸로 넘어가자.”
 
 이어 세 번째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색.’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강윤은 또다시 커트했다. 그러자 이번에 나선 건 오지완 프로듀서였다.
 
 “조금만 더 들어보는게 어떨까요?”
 “아닙니다. 노래가 주아와 맞질 않아요. 더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1절이 아직 안 끝났는데···.”
 
 그때, 부스 안에서 주아가 말했다.
 
 “저도 이 곡 별로에요. 다른 거 하고 싶어요.”
 
 이쯤 되니 사람들도 슬슬 강윤에게 놀라기 시작했다. 마치 주아의 입장에서 노래를 듣는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말이다.
 
 ‘이번엔 흰색이군.’
 
 1절이 끝났다. 그러나 강윤은 노래를 계속 진행시켰다. 2절 이후에 절정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흠··· 절정부분이 회색이라니. 이건 편곡을 부탁해야겠군.’
 
 노래가 끝나고, 강윤은 마이크를 들었다.
 
 “주아야. 이건 다시 편곡 의뢰 후에 다시 불러보자.”
 “네. 좋은 노래인데 아쉬워요.”
 
 주아와 마음이 연결될 사람처럼 강윤은 노래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곡 선정에 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빠른 노래면 빠른 노래, 발라드면 발라드, 주아의 목소리가 입혀지면 좋은 노래와 나쁜 노래를 정확하게 강윤이 집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주아와도 의견이 통일되고 있고, 납득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생각 외로 노래 선정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노래를 전부 1번씩 불러보니 30곡에서 12곡을 선정하는 작업은 2시간 만에 끝이 났다.
 
 “이 팀장, 노래를 보는 눈이 놀랍군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음에 식사나 같이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이현지 사장은 강윤에게 인사하곤 밖으로 나갔다.
 
 “허허, 현지 저 친구가 저렇게 말을 하다니. 자네가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노처녀 시집이라도 가려나.”
 “아니, 회장님. 그게 무슨···.”
 “하하하. 농담이네, 농담이야. 나도 오늘 곡선정은 놀라움 그 자체였어. 신이라도 내린 줄 알았네. 게다가 한번으로 모두를 납득시키다니.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강윤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긴 원진문 회장은 강윤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곤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그를 따라온 직원들도 줄줄이 스튜디오를 빠져 나갔다. 남은 건 오지완 프로듀서와 주아, 매니저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작사 작업을 한 후에 녹음을 하고 안무가 나와야겠네요.”
 
 강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 오늘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지완 팀장도 한마디 했다.
 
 “오빠. 대박. 우리 오늘 통한거야?”
 “통하기는. 그냥 네 입장에서 생각해 본거지.”
 “이번 앨범, 느낌이 아주 좋아. 진짜 잘 될 것 같다고.”
 “당연한 거 아냐?”
 
 남아있는 사람들과 잠시 대화를 하고, 강윤은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에서 남아있는 일들을 하고 나니 어느덧 밤 10시 반. 퇴근을 해도 한참 늦은 시간이었다.
 강윤은 늦은 시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하니 다음 날이 되어 있었다.
 
 “희윤아. 아직도 안 잤어?”
 “오빠가 아직 안 왔잖아.”
 
 허름한 대문에 들어서니 희윤이 소리를 듣고 맨발로 마중을 나왔다. 그 모습에 강윤은 놀라 바로 손짓했다.
 
 “빨리 들어가. 오늘 투석은 잘 했고?”
 “걱정 마셔. 당연히 했지.”
 
 마당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피곤해서 바로 이불을 깔고 누웠는데 문을 열고 희윤이 들어왔다.
 
 “오빠.”
 “응? 희윤아. 왜?”
 “3일 만에 보는 오빠 얼굴, 더 보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3일 만에 하는 퇴근이다. 시간 날 때마다 전화하긴 했지만 얼굴을 볼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강윤은 아차 싶었다.
 
 “으구구. 그랬쪄요? 우리 동생?”
 “그랬다. 왜?”
 
 하얀 희윤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하얘 보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예쁘고 소중한 강윤의 동생이었다. 강윤은 일어나 동생을 안아주었다.
 
 “오빠 이번에 일 잘되고 있어. 잘 되면 희윤이 병도 고쳐주고, 좋은 집도 사고 그러자.”
 “난 괜찮아. 난 그냥 오빠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
 “나도 희윤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그러니까 우리 더 행복해지자.”
 
 키는 크지만 새하얗게 마른 희윤, 동생을 볼 때 마다 강윤은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나 그 동생을 지금 안아줄 수 있다는게 그는 행복했다. 이 행복을 지키고 싶었고 더더욱 키워가고 싶었다.
 그날 밤, 강윤은 동생을 끌어안으며 마음먹었다. 이 소소한 행복을 더더욱 키워가기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일본. 일본을 휩쓸어야 했다.
 
 
 * * *
 
 
 밤을 샐 각오를 하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간 주아였지만 곡 선정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다. 덕분에 주아는 숙소에 매우 이른 시간에 귀가할 수 있었다.
 
 “수고했어요, 진성 오빠.”
 “주아도 수고 많았어.”
 
 매니저가 차를 타고 가자, 주아도 바로 숙소로 들어갔다.
 혼자 쓰기에는 매우 넓은 숙소 안은 화려하고 깔끔했다. 주아는 바로 쇼파로 조르르 달려가 철푸덕 누웠다. 이른 귀가 덕에 누리는 쇼파 위에서의 휴식은 주아에게는 귀한 사치품과 같았다.
 
 ‘일 진짜 잘하네, 그 오빠. 오늘 엄청 싸울 각오하고 갔는데.’
 
 넓은 쇼파 위를 뒹굴 거리며, 주아는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곡 선정은 말 그대로 전쟁의 과정이다. 프로듀서나 기획자, 가수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곡을 고르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데 단 2시간 만에 곡 선정이 끝나 버렸다. 그것도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로 말이다. 이런 평온한 선정은 4년간의 가수 생활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 30곡 정도의 많은 노래들을 불렀지만 이상하게 목이 쉬지도 않았다. 그 정도 노래를 불렀으면 목이 쉬거나 아픈 게 정상이건만. 이건 곡 선정을 빠르고 정확하게 한 강윤 덕분이었다. 곡의 느낌을 빠르게 캐치하고 주아와 맞는 곡을 찾아낸 덕에 30곡이나 되는 곡들 중 앨범에 수록될 곡들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다.
 
 ‘진짜 굉장한 기획가를 만난 것 같단 말이야.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마음이 아주 편안해.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무슨 일을 해도 모두 커버가 될 것 같은 느낌. 어떤 노래를 한다 해도 지금 이 기획자는 어떻게든 다 알아서 해줄 것 같았다.
 
 ‘좋아.’
 
 주아는 결심했다.
 이번 앨범에서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음악들을 마음껏 해보자고. 그 동안 욕심냈던 모든 것을 펼쳐 보자고.
 
 
 * * *
 
 
 “그럼 안녕히 다녀오세요, 오라버니.”
 “징그럽게. 오늘 학교는 안가?”
 “오늘 일요일이야.”
 
 모두가 쉬는 날이지만 강윤은 출근을 위해 대문을 나섰다. 희윤이 강윤에게 힘내라며 마중 나와 주었다..
 
 “집에서 잘 쉬어. 괜히 학교가면 안 된다?”
 “알았어···.”
 
 강윤의 당부에 희윤이 뒷말이 흐렸다. 평일의 자율학습도 채우지 못하는 희윤이었다. 일요일 자율학습 참석은 어불성설이었다. 이제 고3인 희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강윤은 단호했다.
 
 “오빠 간다.”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강윤은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긴 여정을 거쳐 회사로 출근했다.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로 지하철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이번 일 끝나면 희윤이랑 어디 놀러가야겠다.’
 
 가족들끼리 나란히 앉아 나들이 가는 풍경을 보며 강윤은 그렇게 다짐했다.
 지난 생애 희윤을 지키지 못한 게 당연히 마음에 남아 있었다. 성공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건 뭐니뭐니해도 희윤이었다.
 강윤은 회사에 도착해 바로 지하 스튜디오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안녕하세요, 지완 PD님. 다들 안녕하세요?”
 
 그 곳에는 이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에 불려나온 이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프로젝트 기간이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간단한 티타임을 가진 후 바로 일이 시작되었다.
 곡이 선정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앨범컨셉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미 작사까지 완료되어 나온 곡들도 있었고 안무까지 완료된 완성곡들도 있었다. 강윤은 이런 곡들을 모아 순서를 정하고 홍보팀과 홍보 전략들을 논의했다.
 모두가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일은 계속 되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점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결국 한 직원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그때서야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켰다.
 점심시간은 길지 않았다. 식사 후, 전략을 비롯해 각종 일들이 처리되었다. 강행군이었지만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늘의 일들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업무가 끝나고 강윤이 모두에게 인사를 할 즈음, 이미 사방이 어두워졌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밤이었다. 모두가 그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차에 올라 귀가했다.
 사람들이 모두 가고 나서야 강윤도 사무실을 나섰다. 팀장이란 이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어? 아저씨?”
 
 강윤이 회사 근처 편의점을 지나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늘씬한 다리를 그대로 드러낸 핫팬츠를 입은 정민아였다.
 
 “너 정민아?”
 “너 정민아. 그게 뭐에요. 정민아면 정민아, 민아면 민아지. 너 정민아? 에에이.”
 
 민아는 앉아서 손을 흔들면서도 당돌했다. 그러나 강윤은 그게 그녀 나름대로의 스타일인걸 잘 알았다. 그는 다가가서 의자를 빼고 앉았다.
 
 “연습은 옛날에 끝났을 시간인데?”
 “개인연습 했어요, 개인연습. 또 담배라도 태웠을까봐요?”
 “난 아무 말도 안했다. 제 발 저린 거야?”
 “아닌데요?”
 
 정민아 특유의 투덜거리는 말투는 딱 10대 날선 사춘기 소녀와 같았다. 강윤에겐 그런 정민아가 귀엽게 느껴졌다. 마치 말 안 듣는 동생을 보는 느낌이었다. 항상 얌전하고 약한 희윤만 보다가 활기차고 기센 정민아를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알았다, 알았어. 연습 많이 했어?”
 “많이야··· 뭐··· 그럭저럭?”
 “뭐야. 시시하게. 한창땐데 많이 해야지.”
 “아, 많이 했어요. 제 입으로 많이 했다고 말하긴 그렇잖아요. 아무튼 다시 가수반에 들어가야 하니까··· 아저씨 말대로 이대로 포기할 순 없잖아요? 여자가 가오가 있지.”
 
 가오라는 말에 강윤은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풋. 그래, 가오가 있지. 열심히 연습해. 그럼 꼭 잘될 테니까.”
 
 강윤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런 그의 팔을 그녀가 붙잡았다.
 
 “아저씨.”
 “왜? 더 할 말 있어?”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힘이 있다가 없다. 마치 조울증에 걸린 사람 같은 정민아의 어깨를 양손을 잡은 강윤은 힘 있게 말했다.
 
 “당연히. 여기서 안 되면 다른 곳으로 가버려. 여기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거니까.”
 “······.”
 “내가 보장한다. 넌 반드시 멋진 가수가 될 거야. 반드시.”
 
 강윤은 손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강한 확신을 주고 싶었다. 강윤이 아는 미래에선 그녀는 멋진 가수가 되니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근거 있는 말은 힘이 있는 법이다.
 
 “···.아저씨.”
 “왜?”
 “아파요.”
 “아, 미안.”
 
 그제야 강윤은 어깨를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 민망해 헛기침을 하는 강윤에게 정민아는 말했다.
 
 “고마워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믿어줘서···.”
 “난 내 느낌대로 말한 것 뿐 이야. 사심 없는 평가라고.”
 “하하하. 그러니까 더 좋은데요? 내가 잘되면 아저씨를 팬 1호로 삼아줄게요.”
 “그래그래. 꼭 그렇게 되려무나. 알겠지?”
 
 강윤은 그녀의 등을 한번 두드려주고는 저 멀리 오는 버스를 타기위해 달려갔다. 정민아가 뭐라 말을 하기 위해 일어났지만 강윤은 쌩하니 달려가 버렸다.
 
 ‘쳇. 더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아무튼··· 멋지네. 저 아저씨.’
 
 그의 넓은 등이 사라질 때까지, 정민아는 한참을 강윤이 사라진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주아의 앨범 제작은 순조로웠다.
 곡선정이 끝나자 작사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미 내로라하는 작사가들에게 의뢰도 했고 작곡가들이 작사 작업을 같이 한 경우도 많아 크게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일본에 낼 앨범이기에 문화와 정서, 발음 문제를 살펴야 했기에 강윤은 검토하고 또 검토해야 했다.
 
 ‘이걸 일본인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매니저 시절, 일본도 자주 왔다갔다한 강윤이었다. 그래서 일본어는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일본가사들도 잘 읽을 수 있었다. 강윤이 보기에 주아의 노래 가사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가사보다 지금은 무난한 가사가 최적이었다. 그는 가사를 계속 검토하며 주아와 이야기를 나누곤 이상 없으면 통과시켰다.
 그렇게 검수작업이 끝나고 드디어 녹음일이 되었다. 오지완 프로듀서를 필두로 MG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스튜디오 에이스들이 모여 이번 앨범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주아도 그 동안 갈고 닦은 일본어 실력을 뽐내며 자칫 우습게 들릴 수 있는 일본어 녹음에 심혈을 기울였다.
 
 ‘흠···’
 
 부스 안에서 한창 노래에 힘을 쏟는 주아에게선 은은한 빛이 비쳤다. 은은한 빛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고 스튜디오 사람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주아야. 여기부터 한번 다시 해볼까. 아이— 이 부분 말야.”
 “네.”
 
 후렴부분을 다시 요청한 오지완 프로듀서의 말에 재녹음이 시작되었다. 이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주아는 목이 터져라 후렴을 외쳤다. 그런데 그때였다.
 
 ‘회색!!’
 
 주아에게서 회색빛이 피어올랐다. 회색빛은 흰 빛에 미묘하게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주아가 강조를 위해 힘을 주면 줄수록 회색빛은 더더욱 파도처럼 주변을 넘실거렸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어. 넘어갈까?”
 
 그런데, 오지완 프로듀서는 만족했는지 다음 부분을 요청했다. 다른 이들도 뭐라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그 동안, 회색이 나타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건만 지금은 이상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강윤은 당황스러웠다.
 
 ‘뭐지? 이건?’
 
 강윤은 고민했다. 이젠 눈에 보이는 음악을 의심하지 않았다. 분명, 회색은 강한 악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응이 없었다. 강윤은 고민되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게다가 녹음은 프로듀서의 고유 권한이며 자부심이다. 아무리 그가 기획팀장이지만 그런 권한을 침범하는 건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다.
 
 ‘하아···’
 
 강윤은 고민했다. 과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다른 수단을 써야할까? 잠시 시간이 지났지만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강윤은 망설임은 있었지만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아니, 한번만 다시 해보죠.”
 
 강윤의 말에 권한을 침해당한 오지완 프로듀서를 비롯해 모두가 놀람과 의아의 눈빛을 강윤에게 쏘아 보냈다. 그러나 강윤은 확신에 찬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물론 지금도 좋습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해봅시다. 오 PD님. 제 생각엔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오지완 프로듀서는 떨떠름하게 반응했지만 크게 나쁘다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강윤이 못한다는 말을 하거나 무시한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지완 프로듀서가 수긍을 하자 곧 강윤은 마이크를 들었다.
 
 “주아야. 한 번만 더 해줄 수 있겠어?”
 “OK.”
 
 주아의 허락도 떨어지자 강윤은 바로 사인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강윤이 가볍게 참견을 했다.
 
 “팀장님. 주아의 목소리가 조금 큰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테’를 말하는데 발음이 가볍게 떨리네요. 이 부분을 수정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저 부분이 음이 높으니까, 하이톤을 약간 조절해서 잡아볼까요?”
 “그건 오 PD님이 더 잘 아시는 부분이니까 맡길게요.”
 
 물론 직접적으로 지시를 해도 되지만 강윤은 세세히 나서지는 않았다. 프로듀서들은 본질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다.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들, 그들에게 일일이 지적을 하는 건 좋지 않다. 이미 10년분의 경험치가 쌓여있는 강윤은 이런 부분을 잘 알았다.
 오지완 프로듀서가 톤을 조절하며 녹음이 진행되었다. 주아는 눈을 감고 자신의 노래에 심취했고 사람들도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그녀의 노래를 감상하며 저마다 필요한 것들을 기록해 나갔다. 저마다 컨셉을 잡기도, 홍보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하며 각자의 일을 해나갔다.
 
 ‘휴. 이제 회색이 사라졌네.’
 
 강윤은 일렁이던 회색이 사라진 것을 보며 안심했다. 주아에게서 은은한 하얀 빛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보자 강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렇게 좋아질 걸 왜 그냥 넘어갔지. 팀장님. 아까보다 100배는 나아졌는데요. 이거, 팀장님께 한 수 배웠습니다.”
 
 녹음이 끝나자 오지완 팀장은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나 녹음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과 같이 이런 시원한 만족감이 드는 작업은 드물었다. 그 동안 주아의 앨범을 녹음해온 그였지만 오늘과 같은 일은 처음이라 그는 멋쩍게 웃었다. 주아의 목소리에 대해선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제대로 승복했다.
 
 “아닙니다. 전 수저만 얹었습니다. 오 PD님이 잘해주신 거죠. 이번 곡은 확실히 느낌이 좋네요. 잠시 쉬었다가 시작할까요?”
 “그럴까요? 자자. 모두 쉬자, 쉬어.”
 
 오지완 프로듀서가 휴식을 선언하자 각자의 위치에서 기계를 조작하던 스튜디오 직원들은 쾌재를 불렀고 다른 직원들도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밖으로 나갔다.
 
 
 * * *
 
 
 “커피 한잔 하겠나?”
 
 원진문 회장은 한쪽 구석에서 서류들을 보고 있는 강윤에게 캔 커피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다들 쉬는데 자네는 손에서 일을 안 놓는군.. 실례해도 되겠나?”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원진문 회장이 옆에 앉자 강윤은 보고 있던 서류들을 덮었다.
 
 “자네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나?”
 “소문 말입니까?”
 “워크맨. 휴게실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어디에서나 서류를 끼고 다닌다고 소문이 났지. 그래서 사람들이 워크맨이라고 부른다네.”
 “마이마이보다 낫군요.”
 
 강윤은 피식 웃었다.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니 듣기 나쁘진 않았다.
 
 “이제 자네가 들어 온지 4개월째인가?”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여름에 들어왔으니.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앨범은 언제 나오나?”
 “12월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2번째 주죠.”
 “이번 달까지 쳐도 2달도 남지 않았군. 바쁘겠어. 내년에 발매해도 상관없지 않나? 꼭 올해에 발매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리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일본 대형가수들과 경쟁을 하게 될 거야.”
 
 일본의 대형가수들과 경쟁하게 되면 싸움이 되겠나? 그의 말은 이런 의미였다. 그러나 강윤은 자신 있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때 발매를 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강윤은 잠시 머뭇거렸다.
 
 ‘회장님 말대로 그때 대형가수 둘이 나온다. 남자 아이돌 그룹 에이든과 여자 아이돌 하이드레아. 그런데 이 둘의 리더들의 스캔들이 터지지. 그것도 호텔 앞에서 둘의 사진이 찍히는 초대형 스캔들이지. 그래서 크리스마스 마케팅을 거하게 말아먹고 컴백 스테이지도 미루게 되지. 이때 이 두 그룹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컴백을 피한 가수들이 모두가 벙쪄 있다가 부랴부랴 컴백을 하지만 올 크리스마스 가요계는 제대로 공석이 되고 말아. 이 빈 부분을 치고 나가는 거야.’
 
 강윤의 전략은 이랬다. 물론 스캔들을 직접 제보하거나 하는 노이즈 전략은 사양이었다. 그건 장기적으로 마이너스였다. 적을 만드는 건 미래를 위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니 말이다. 아무튼 남에게 이런 미래를 안다고 말할 순 없고, 미래를 안다고 말해봐야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듣겠나.
 
 “설마 에이든 같은 그룹하고 경쟁하자는 건 아닐 테고. 설마, 20대와 30대 여자들이 팬 층이니 상관없다는 건 아닐테지? 흠. 나야 어차피 자네에게 전권을 위임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최종 보고를 하는 이사회의에서 이유를 들었으면 하는군. 그럴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기대하겠네. 난 지금 기대가 매우 커. 진심이야.”
 
 궁금하지만 지금은 참겠다. 대신 그때 납득할만한 결과를 기대하겠다. 원진문 회장의 숨겨진 진의는 이랬다. 기대감 섞인 압박이었다. 강윤은 원진문 회장의 숨은 뜻을 알고 바로 답했다. 원진문 회장은 자신있는 대답에 만족했는지 강윤의 팔을 툭툭 쳐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은 회장이네. 부담을 이런 식으로 주고.”
 
 강윤은 저 멀리 가버린 원진문 회장의 뒷모습을 보며 툴툴거렸다. 윗사람은 언제나 불편한 법이다. 그는 다시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주아의 앨범녹음은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강윤에게 보이는 빛은 하얀 빛이었지만 간간히 회색빛도 일렁였다. 발음의 문제부터 목소리의 문제, 기타 마이크의 문제 등등 회색이 보이는 이유는 다양했다. 물론 사소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는 오지완 프로듀서가 나서 해결을 했고 강윤도 간간히 조언을 하며 노래가 완성되어갔다.
 1곡의 녹음이 더 끝났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온몸에 땀이 절어 나온 주아는 힘없는 목소리로 부스를 나왔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쳐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강윤이 선언하자 모두가 쾌재를 불렀고 스튜디오 사람들은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썰물같이 퇴근을 했다.
 
 “수고하셨어요··· 에효. 내일 난 녹음 못해···.”
 “고생했어. 목 많이 안 좋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어··· 이런 적은 처음이야···.”
 
 강윤이 물을 건네며 묻자 주아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곤 답했다.
 
 “내일은 쉬고, 모래 다시 녹음하자. 오 PD님도 내일은 쉬시고 모래 다시 작업시작 합시다.”
 “그래도 되나요?”
 “우리 일은 효율이 중요하니까요. 쉴 땐 푹 쉬고 다시 힘차게 시작합시다.”
 
 그러자 오지완 프로듀서는 초췌한 안색으로 만세를 외치곤 옷가지를 챙겨 바로 달려 나갔다. 요즘, 집에도 못한 불쌍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이런 중간휴식은 그야말로 꿀과 같았다.
 
 “오빠. 원래 이럴 때는 더 조여야 하는 거 아냐? 원래 다들 그러던데.”
 “그래봐야 무슨 효율이 나온다고. 피곤하게 일만 해봐야 효율이 안 나와. 그리고 사람은 쉬어주어야 다시 일할 에너지도 얻는거지. 무식하게 일만 한다고 일을 잘하는게 아니라고.”
 “오오. 그런 거야? 여태까지 일했던 사람들하고 많이 다르네?”
 “내가 어떤데?”
 “마음이 편안해. 다른 언니들도 오빠들도 그렇게 말해. 그렇다고 무시하는 건 아냐. 알지?”
 
 지금까지 앨범을 기획한 기획자들은 모두 일에 미친 중독자들이었다. 그러나 강윤은 달랐다. 물론, 그 스스로는 일을 무척 많이 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일을 강요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마음 편히 일을 하니 일에 능률이 좋았다. 주아가 느낀 강윤은 그랬다.
 
 “좋게 말하면 좋은 거지. 주아야. 늦었다. 들어가 이제.”
 “알았어, 알았어. 오빠. 이번 앨범이 어떻게 끝나든 우리 꼭 같이 일해. 이거 농담 아냐. 알았지?”
 “알았다. 빨리 들어가.”
 “진짜야. 약속이다!!”
 
 주아는 강윤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치켜세워준 이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제대로 알아주고 이끌어주는 이는 강윤이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성공이든 실패든 납득할만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윤에게 손을 흔들며 주아는 그녀를 데리러 들어온 매니저에 이끌려 바로 숙소로 향했다.
 
 “나도 퇴근해야겠다.”
 
 매우 늦은 시간, 강윤은 늦은 귀가를 서둘렀다.
 
 
 * * *
 
 
 새아침이 밝았다.
 바로 출근을 해야 했지만 강윤의 출근시간은 늦어지고 있었다.
 
 “오빠, 난 괜찮으니 출근하라니까.”
 
 병원 침대에 누워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 희윤은 제시간에 출근도 하지 못하는 오빠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강윤은 그런 동생의 머리를 매만지며 웃었다.
 
 “오늘은 보호자랑 같이 병원에 오라 했잖아. 오빠가 당연히 와야지.”
 “하지만 오빠 바쁘잖아. 어제도 새벽에 들어오고.”
 “어허.”
 
 강윤은 손가락을 희윤의 입술에 댔다.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무리 일이 중요해도 희윤이 너만큼 중요한 건 없어. 너는 그냥 건강해지면 되는 거야. 알겠니?”
 “알았어. 미안해···.”
 “또또. 너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랬지?”
 “알았어. 안 그럴게.”
 
 혈액투석을 하면 4~5시간은 움직일 수 없다. 얼굴도 더 창백해진다. 가뜩이나 새하얀 동생이 더더욱 아파보이는 모습을 보면 강윤의 마음은 더더욱 미어진다. 그러나 그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희윤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면 눈물을 보이니···.
 
 “오빠, 나 졸리다. 잠깐만 잘게.”
 
 희윤이 잠에 들자 강윤은 의사에게로 향했다.
 
 “수치들이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투석일자도 정확히 지켜주시고 있고 무엇보다도 희윤 양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게 수치 안정에 큰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
 
 의사가 보여주는 그래프들을 강윤은 꼼꼼하게 살폈다.
 동생의 일이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강윤은 뭐가 좋고 나쁜지 확인할 정도는 되었다.
 
 “약 꼬박꼬박 챙겨주시고 투석일자 지켜주시고···.”
 
 의사의 말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자, 약 빼먹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다르게 희망적인 건 희윤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강윤은 그 말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강윤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희윤은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걱정 마. 이번에는 절대로 허무하게 보내지 않을 테니까.’
 
 희윤의 하얀 얼굴을 보며 강윤은 다짐, 또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희윤은 지켜내겠다고.
 
 
 * * *
 
 
 “늦어!!”
 
 막바지 녹음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스튜디오, 강윤이 늦게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 쉬고 있던 주아가 소리를 질렀다.
 
 “미안. 녹음은 잘하고 있었지?”
 “오늘만 봐준다. 내가 누군데 걱정을 해. 그런데 우리 팀장님은 왜 늦으셨을까?”
 
 언제나 누구보다 먼저 와 일을 준비하던 강윤이었다. 그런데 그런 강윤이 지각이라니. 주아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중요한 일이 생겨서. 미안. 녹음한 거 한번 들어보자.”
 
 주아는 궁금한 눈치였지만 강윤을 캐묻지는 않았다.
 강윤의 말에 스튜디오 직원이 바로 녹음된 노래를 재생했다. 발라드 곡이었는데 느린 비트에 주아의 목소리가 딱 어우러져 흘러가는 감성이 듣기 좋았다. 색을 볼 순 없었지만 떨려오는 목소리하며 가사를 전달하는 솜씨하며 멋들어진 곡이었다. 강윤은 만족스러웠다.
 
 “노래 좋지?”
 “괜찮네. 이제 1개만 녹음하면 되나?”
 “응. 아, 맞다. 오빠.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주아가 몹시 궁금한 얼굴로 강윤에게 물었다.
 
 “나 일본 데뷔 첫 무대는 어디야? 쇼케이스 무대 마련해 주는 거야?”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진행하는 한국가수들은 홍보차원에서 크게 우리 이런 가수가 일본에서 활동해요라는 의미로 쇼케이스 무대를 거하게 꾸미곤 했다. MG 엔터테인먼트의 쇼케이스는 화려하기로 유명했다. 이 화려한 무대를 계기로 관계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앨범도 여기저기 뿌린다. 평상시와 같은 컨셉인지 주아는 신인으로 돌아가 이런 걸 해야 하는지 물어오는 것이다.
 
 “아니. 쇼케이스는 안 열거야.”
 “에엑?”
 
 강윤의 그 말에 놀란 건 주아뿐만이 아니었다.
 스튜디오의 대부분 사람들이 강윤의 말에 놀랐다.
 그러나 강윤은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지금은 쇼케이스는 하지 않는다고 알아둬.”
 “그럼 어디서 데뷔하는데?”
 “금방 알게 될 거야. 알면 놀랄지 모르겠네.”
 “뭐야. 궁금해지게. 오빠, 오빠!!”
 
 강윤은 스튜디오에서의 볼일이 끝났는지 문을 열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 그를 주아가 열심히 불렀지만 강윤은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사무실로 올라가 버렸다.
 오전을 희윤의 병원에서 보낸 터라 강윤은 일이 무척 밀려있었다. 사전에 일을 많이 처리하긴 했지만 그의 결제를 바라는 서류들은 여전히 수북이 쌓여있었다. 특히 홍보팀에서 올라온 서류들이 많았다.
 홍보팀이 올린 서류들을 꼼꼼히 결제한 강윤은 이번에는 섭외팀에서 올린 서류들을 열었다.
 
 ‘뭐? 정중히 거절?’
 
 섭외팀이 올린 서류들을 검토하다가, 캡처된 사진이 첨부된 파일은 연 강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문서에는 뮤직 스테이션 ‘가수 주아 데뷔 스페셜 무대 거부’ 라고 적혀 있었다.
 
 ‘귀사에서 요청하신 가수 주아의 뮤직 스테이션 출연 건에 관하여 답변 드립니다. 뮤직 스테이션은 온전히 일본인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외국인 가수를 들이기에는 부담이 무척 큽니다. 자사 방송의 취지를 온전히 보호하기 위함이니 귀사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관심을 가져주시고 연락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사이 TV 프로듀서.’
 
 쇼케이스마저 포기하고 마련하려는 뮤직 스테이션 무대다. 그곳에서 주아의 첫 스타트가 개시된다. 그런데 거절이라니. 그러나 강윤은 멈춰있지 않았다. 그는 바로 섭외팀으로 달려갔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섭외팀 한정석 과장이 일어나 강윤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이게 아사이 TV에서 온 최종 답변입니까?”
 “아··· 네. 죄송합니다. 일본까지 찾아가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가죠.”
 “네?”
 “여권 있으시죠?”
 “네, 물론 있습니다만···.”
 “오늘 밤 비행기로 출국합니다. 긴급출장입니다. 경리부에는 제가 연락해 놓겠습니다.”
 “팀장님!!”
 
 그는 어제 막 귀국했다. 또 일본에 가고 싶지 않았던 한정석 과장이 기겁을 했지만 강윤은 받아주지 않았다.
 
 “과장님. 이게 핵심입니다. 이 건에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여부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결국 강윤의 박력에 밀린 한정석 과장은 자리로 돌아가 갑자기 밀려온 출장준비를 했다. 이렇게 급작스러운 출장은 아무리 변수가 많은 연예계라지만 매우 드물었다. 그는 우울해졌는지 어깨가 추욱 쳐졌다.
 강윤도 바로 사무실로 돌아가 일본으로 갈 채비를 서둘렀다. 강윤의 마음은 조급했다.
 
 
 * * *
 
 
 밤 비행기로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날아오른 강윤은 아사이 방송국이 있는 록본기로 향했다. 하늘을 날고, 차를 타서 록본기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다.
 
 “팀장님.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이제 40대에 근접한 한정석 과장은 체력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잔다고 잤지만 피곤함이 눈가를 덮고 있었다.
 
 “아침부터 가봐야 문전박대만 당하겠지요. 숙소부터 잡고 잠깐 쉴까요?”
 
 한정석 과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이만 먹었지 체력도 없다고 박대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타박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을 알고 미리 배려해주고 있었다. 비록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배려심 깊은 이런 팀장이 고마웠다.
 근처 작은 여관에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한 후 잠시 쉰 강윤과 한정석 팀장은 영업을 위해 제대로 복장을 갖췄다. 정장을 제대로 차려입고 서류도 완벽히 준비했다. 그리고 아사이TV 건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요코제키 타츠시 프로듀서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강윤은 방송사 로비로 들어가 안내데스크로 가서 안내데스크에 이야기를 했다.
 
 [사전약속이 돼있으신지요?]
 [한국 MG 엔터테인먼트에서 왔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안내데스크 직원은 바로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했다. 그러나 답변은 좋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미 필요한 연락은 다 드렸다고 돌아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윤과 한정석 과장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일본까지 날아왔지만 문전박대라니. 그러나 강윤은 침착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인데 요코제키 프로듀서님께 전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강윤은 그대로 방송사를 나왔다. 한정석 과장도 그 뒤를 따랐다.
 
 “팀장님. 이대로 돌아가실 겁니까?”
 “설마요.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순 없죠.”
 “하지만 만나주려고 하지도 않네요. 제가 만났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얼굴도 안 비치다니··· 이 사람들 너무하는군요.”
 
 한정석 과장은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렇게 자료를 보내고, 설득을 했어도 과거에 잡혀 설득당하지 않는 이들이 딱 이들이었다.
 
 “답답하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아쉬운 건 우린데.”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돌아가나요?”
 “칼을 뽑았는데 무라도 썰어야죠. 일단 저기서 기다려볼까요?”
 
 강윤은 방송사 안에 있는 카페를 가리켰다. 편안한 쇼파가 돋보이는 카페였다.
 
 “일 할 거리 가져 오셨죠?”
 “네. 물론입니다. 혹시 몰라서···.”
 “저기서 일이나 하고 있죠. 요코제키 PD는 이따 만나면 되니까요.”
 
 한정석 과장은 문전박대를 당했어도 기다리겠다는 강윤이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끝가지 해보겠다는 끈기와 해내겠다는 패기가 느껴졌기에.
 카페로 들어간 두 사람은 각자 서류를 펴고 때때로 창밖도 내다보며 일을 시작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이유가?’
 
 강윤은 생각했다. 전생에서 아사이 TV에서는 주아를 뮤직 스테이션 무대에 올려주었다. 그것도 데뷔무대에 말이다. 강윤은 혹시 몰라 쇼케이스와 뮤직 스테이션, 두 무대의 영향력을 점검해 보았지만 결과는 뮤직 스테이션의 압승이었다.
 그런데 뮤직 스테이션의 프로듀서가 거부를 하다니. 그렇다면 흐름을 바뀌었기에 역사가 바뀐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이랬던 걸까? 강윤은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카페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지만 뮤직 스테이션 프로듀서 요코제키는 보이지 않았다. 낮이 지나고, 밤이 되어 하나 둘씩 퇴근을 했지만 여전히, 요코제키 프로듀서는 나오지 않았다.
 
 “팀장님. 안 나오는데요.”
 
 카페 주인이 노려보는 가운데, 눈치를 보던 한정석 과장이 조용히 강윤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강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다른 음료들을 더 주문하였고 한 손님이 엄청나게 팔아주니 주인도 할 말이 없었다.
 
 “영상 편집이라도 하나. 아니, 생방 프로듀서가 영상편집을 할 리가 없는데···.”
 
 강윤이 알기로 요코제키 프로듀서는 뮤직 스테이션 하나만 담당한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주로 뛰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뮤직 스테이션에서 편집이 얼마나 필요할까. 사실상 거의 없다. 한 마디로 편집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은 이렇게 늦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방송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는···.”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출입구에서 누군가가 나오고 있었다. 긴 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는 작은 키의 남자, 요코제키 프로듀서였다.
 
 “가죠.”
 
 강윤은 바로 달려갔다. 한정석 과장도 뒤따랐지만 강윤이 워낙 빠르게 달려갔기에 따라가기가 벅찼다.
 
 [실례합니다. 요코제키 타츠시 프로듀서님 되십니까?]
 
 로비를 나서려는 남자를 강윤이 붙잡았다. 그러자 벙거지 모자를 쓴 남자가 멍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렇··· 습니다만?]
 [안녕하십니까. 이전에 연락드렸던 이강윤이라고 합니다. MG 엔터테인먼트의 기획팀장으로 있는.]
 [하···.]
 
 그러나 그는 강윤을 보자마자 바로 한숨부터 지었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딱 봐도 질려하는 표정이었다.
 
 [이미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전 저희 입장을 표명했고 더 이상은 그 쪽과 할 말이 없습니다.]
 [뮤직 스테이션에 아직 외국 가수가 진출한 적이 없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국수적인 아사이 TV 특성상 쉽게 용납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상을 보시면 주아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스타일의 가수입니다.]
 
 강윤은 PMP에 담아온 주아의 영상을 재생해 보여주었다. 기존에 설득을 위해 보냈던 자료들과는 다른 자료들이었다. 공연 위주의 영상들을 보고 요코제키 프로듀서가 말했다.
 
 [후···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걸 뒤집긴 힘듭니다. 그럼.]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강윤은 그걸 눈치 챘다. 그렇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해보았다.
 
 ‘요청한 뮤직 스테이션 무대는 12월 2주차다. 거부되었다면 이유는 다른 가수들에 있겠지. 그때 컴백하는 가수가··· 아, 그들이 있었지.’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남자그룹, 에이븐과 4인조 여성그룹 하이드레아. 일본에서 가장 큰 소속사 2개에서 각기 내보낸 이들이 이때 나란히 뮤직 스테이션에서 컴백무대를 가졌다. 하지만 데뷔 하루 전, 에이븐과 하이드레아 리더와의 스캔들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컴백무대고 뭐고 다 날아가 버렸다. 워낙 대형 스캔들이고 일본 연예계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했던 사건이라 강윤은 시기를 정확히 기억 할 수 있었다.
 
 ‘이제 알겠군. 에이븐, 하이드레아 컴백무대에 한국 가수가 같이 컴백을 한다니, 용납이 될 리가 없지.’
 
 주아가 마음에 안드는게 아니었다.
 대형 소속사들의 압박이 문제였다.
 애초에 주아의 무대 자체는 불가능했던 무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PD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12월 2주에 늦게나마 여건이 허락되어 자리가 마련된다면 그때는 주아의 무대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대답은 바로 날아왔다.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윤은 공손히 인사를 하곤 명함까지 내밀곤 바로 뒤돌아섰다. 그러자 의아해 하는 건 한정석 과장이었다.
 
 “팀장님. 공석이 되었을 때 무대를 달라니요. 뮤직 스테이션에 대기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습니까.”
 “아직은 모르겠네요. 아, 과장님. 오늘 고생 많이 하셨는데 우리 호텔에서 잘까요?”
 “호텔이요? 경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MG잖습니까. 이 정도야 괜찮을 겁니다.”
 
 한정석 과장은 호텔에서 투숙하자는 강윤이 그리도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출장이라 함은 휴식도 취하고 일도 적당히 하고 그래야 하건만, 이번 출장은 길바닥에서 일만 했다. 그래도 호텔에서 쉴 수 있다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렜다.

댓글(6)

까칠서생    
전형적인 회귀트럭 출현 , 병든 여동생을 아끼는 잘나가는 오빠로 변신한 주인공, 회사에서는 자존심 강하고 지멋대로 하는데 귀염받고 주목받는 잘나가는 직원. ㅎㅎ 잘 버무려진 3가지 . 회귀소설
2016.07.28 22:55
고급시계    
질문에답하는내용도 초딩수준
2016.08.08 23:00
콜사인나    
이건뭐... 이 소설 책으로 출간된건가요? 요새 책 아무나 내주나 보네....
2017.01.20 21:01
cutesd    
소재 좋은데
2017.05.15 01:29
cutesd    
면접이 사법시험도 아니고 에구
2017.05.15 01:33
13572468    
음 너무깔건없구요 작가님 도 수고하셨는데요 그런데 전생에 속된말로 형편없는사람이 회귀한다구 본질이바뀔까요 형편없는사람이 회귀이후 능력자? 회귀니깐다른사람보다먼저알구 보석을 차지할순있겠지만 본질은변하지않은것 아닌가요? 본질 형편없는사람 남보다능력없는사람 이런사람이면 보석두 자갈이될거같은데요
2018.06.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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