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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2016.05.18 조회 15,938 추천 201


 떨리는 손으로 약을 집어든 그는 허겁지겁 입으로 털어 넣고는 책상에 놓인 물통을 들어 입에 대고 들이마셨다.
 
  ‘젠장할. 이젠 약 없으면 반나절도 힘드네.’
 
  그의 이름은 이상혁, 나이 마흔에 처자식을 가진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다. 직업은 일성생명보험 FC로 연봉 일억이 넘는 잘나가는 영업사원인 그는 10년 전에 처자식을 호주로 조기유학을 보낸 기러기 아빠였다.
 
  첫째는 똑똑하고 야무진 딸이었다. 그러나 8달 만에 나온 미숙아였던 둘째인 아들이 커가면서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니 자폐증.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나라인 한국에서 키울 수 없었던 부부는 결국 유학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해방된 느낌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낚시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썰렁한 빈집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티비를 보던 순간에 본인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
 
  1년, 또 1년이 지날수록 그의 외로움을 깊어갔고, 우울증 역시 깊어졌다. 새침한 첫째 딸과 무거운 짐 같았던 둘째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결국 첫째인 딸아이가 12살이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아내에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적응중이고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비교해서 여기는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에 다 듣지도 않고 알았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게 조금씩 돌아오라는 그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갔고 급기야 작년에는 당장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든 지원을 끊겠다고 경고를 날리기에 이르렀다.
 
  겨울 내내 전화와 톡으로 싸운 뒤, 결국 봄에 처자식이 국내로 들어왔다. 그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원망스런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아내도, 서먹해서 아빠에게 안기지도 않는 첫째 딸과 다가가기만 해도 비명을 질러대는 둘째 아들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으로 극복하리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아내는 이미 호주에 같이 유학중이던 어느 학부모와 바람이 난 상태였고,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며 이혼서류를 집에 두고 떠나갔다. 재산 분할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한 가닥 남은 양심인 것일까?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같이 나갔다. 아이들만은 놓칠 수 없었던 그는 딸이 다니는 학원에 찾아가서 처절하게 붙잡고 설득했으나 이미 중학생인 딸은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둘이 사는 것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는 죽지 못해 살아갈 따름이다. 이렇게 약을 먹으며 버티는 것조차도 이젠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이상혁씨. 내일 설악산 등반 있는 거 알지? 센터장님이 한 명도 빠짐없이 나오라고 하니까 상혁씨도 꼭 나와야 해.”
 
  담당 매니저인 이수민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녀는 그보다 세 살 많은 아줌마인데 실적 좋은 이상혁 덕택에 센터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매니져였다. 그러다보니 항상 모든 일에 앞서 이상혁을 챙겨줬는데, 그가 끔찍이도 등산을 싫어하는 걸 알고 있었으나 센터장의 엄명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대신 저 대충 오르는 시늉만 했다가 중간에 쏙 빠질 테니까 혹시 이후에 센터장님이 저 찾으면 알아서 말 좀 해주세요.”
 
  “호호호. 그럼. 그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지. 자기는 아침에 와서 얼굴도장만 한번 꽝 찍어주면 돼.”
 
  한숨을 푹 쉬며 말하자 그녀는 싱글거리며 내일 참석할 대상자에 적혀진 이상혁 옆에 브이자로 시원하게 체크를 했다.
 
  “아! 이 앞에 새로 생긴 초밥집 있는데 오늘 거기서 점심 어때?”
 
  한 시름 덜은 그녀가 한턱 쏜다는 듯이 손으로 총 모양을 하고는 물어본다.
 
  “전 고객하고 약속 있어서요. 다음에 해요.”
 
  “응? 누구? 오늘 약속 잡혀 있었어?”
 
  “어제 저녁에 급 약속 잡았어요. 박종훈씨가 와이프 건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네요.”
 
  “아 그래? 그럼 오늘도 수고.”
 
  서류를 챙겨 센터장실로 들어가는 그녀를 본 그는 각종 서류가 든 가방을 들고 회사를 나왔다. 거짓말이었다. 아무 약속도 없었지만 회사에 앉아있기 싫었던 그는 핑계를 대고 회사를 나왔다. 거무죽죽한 날씨가 어째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한 달 만에 무려 10명이나 살해한 연쇄살인범에 대해 경찰은 계속 수사중이라고만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지속되는 경찰의 무능력에 공포감만 더해가고 있다는 반응입니다. 이상 KBC 김정목 기자입니다.”
 
  시장 한복판을 지나가던 길에 과일 가게 좌판에 조그마하게 올려져있는 TV에서 시끄럽게 뉴스가 흘러나왔다.
 
  ‘저런 놈은 얼른 잡아 죽여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것도 못 잡고 뭐하나 참...’
 
  뉴스를 보러 잠시 멈춰선 그는 좋아하는 귤 이천 원 어치를 사가지곤 집으로 향했다.
 
  ‘인애가 귤을 참 좋아했었는데.’
 
  와이프는 미워해도 아이들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게 천륜인 건지 머릿속으론 섭섭했지만 이렇게 가끔씩 아이들이 생각났다.
 
  다음날 새벽 5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소리에 깨어난 그는 짜증스럽게 이불을 밀쳐내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부스스한 모습에 광대뼈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은 자신이 보기에도 추했다.
 
  ‘나가지 말까?’
 
  또 다시 자신이 싫어지고 모든 일이 의미가 없어지자 그는 찬장을 열어 약을 꺼내 먹었다. 혹시 몰라 집안 어디에도 약을 먹을 수 있게끔 곳곳에 약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세면대를 붙잡고 한참을 서있었다.
 
  ‘살아야지. 누구 좋으라고. 이참에 애인이라도 만들어야겠어. 조금 있으면 법적으로 솔로가 되니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지.’
 
  오늘은 정장대신 활동하기 좋은 체육복에 야구 모자를 눌러쓰곤 집을 나섰다. 아직까지 날이 컴컴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어쩔 수 있나.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그만 둘까 생각도 여러 번 했었지만 이 짓도 관두면 진짜 생을 놓아 버릴까봐 관두질 못했다.
 
  느긋하게 삼성역에 도착하니 저 멀리 관광버스와 한 무리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상혁씨! 여기!”
 
  목소리가 우렁차니 분명 이수민 매니저다. 빨간 패딩잠바를 입고 팔을 이리저리 크게 휘젓고 있었다.
 
  “네!”
 
  다가가니 이미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안 늦은 게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누구 때문에 늦게 올라갔느니 하는 말을 들을 뻔 했다.
 
  새벽에 관광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향했다. 3시간쯤 지나자 설악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구호 한번 외치고 올라갈까요?”
 
  멀대 같이 키가 큰 센터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구호는 무슨... 초딩들도 아니고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지만 저거 안 맞춰주면 한참을 궁시렁거릴 거라 이수민 매니저가 얼른 말을 받았다.
 
  “그래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곧 그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멋지게 구호 한번 하고 갈까요?”
 
  그러더니 손을 치켜들고 외쳤다.
 
  “일성!”
 
  다들 어쩔 수 없어 따라 외쳤다.
 
  “대박!”
 
  “강남 PB센터!”
 
  “대박!”
 
  “아자아자아자!”
 
  정말 못 봐주겠다. 이 새벽에 드문드문 등산하는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우울증에 걸려도 쪽 팔린 건 쪽 팔린 거다.
 
  “갑시다!”
 
  센터장이 위풍당당하게 선두에 나서서 올라가자 다들 졸래졸래 따라 올라갔다. 그는 눈치를 보며 슬슬 뒤로 빠져 가장 마지막으로 따랐다.
 
  ‘한 30분만 올라가자.’
 
  10분쯤 올라가자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사람들은 일성생명 직원 뿐, 다들 하산하기 시작했다.
 
  “매니저님! 우리도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상혁의 항변에 이수민 매니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센터장에게 달려갔다. 둘이 한참을 얘기하더니 이내 결론을 내렸는지 센터장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제가 아까 분명히 일기예보 보고 왔습니다. 곧 그친다고 하니까 이왕 이렇게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일성PB센터 정신이 뭐인지 아시죠? ‘포기하는 순간이 끝이다!’입니다. 저 앞에 천만 원 권 수표가 있는데도 여기서 내려갈 겁니까? 아니잖아요. 다들 힘냅시다. 이정도 역경에 굴한다면 영업을 하다가도 똑같이 몇 걸음을 더 내딛지 못해 천만 원을 날려버릴 겁니다. 자, 화이팅! 하하하.”
 
  ‘이런 시팔...’
 
  센터장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인지는 몰랐다.
 
  “상혁씨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봅시다. 비는 곧 그칠 거니까 걱정하지 말구요. 하하하.”
 
  “아... 네.”
 
  그냥 저 인간 얼굴에 죽빵 한 대 날리고 여기서 때려 칠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까지 고객에게 쌓아온 신뢰를 생각해서 참기로 했다.
 
  다시 시작된 등반. 빗방울은 곧 그칠 거라던 센터장의 예상과 달리 더욱 굵어져만 갔고 급기야 빗물에 흙바닥이 진창이 되어 더 이상 등반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센터장은 이정도 역경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못내 분했던지 특유의 궁시렁거림이 시작되었고 결국 나이가 많고 여자인 순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맨 뒤에 서게 된 그는 이제라도 하산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 느끼며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갑자기 늘어난 계곡물이 등산로를 조금씩 침범하기 시작했다.
 
  “다들 빨리빨리 서둘러요!”
 
  진창길에다 나이 많은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라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가 건널 때쯤, 불어난 계곡물이 등산로를 덮쳤다.
 
  “어머어머! 상혁씨 어떡해!”
 
  이수민 매니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고 상혁은 불어난 물을 피해 옆의 나무를 붙잡고 올라섰다.
 
  “상혁씨 조금만 참아! 산악구조대 불렀어!”
 
  울음보가 터진 매니저는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그를 응원했다. 그런 그녀를 보던 상혁은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직장 상사밖에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사무치도록 미워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물살은 점점 빨라지고 수위는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그렇게 멍하니 휘몰아치는 급류를 쳐다보니 불현듯 그에게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동시에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죽으면 편안해질까?’
 
  나무를 붙잡고 있는 팔에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흐릿해지고 귓가의 소리는 멀어져갔으며 가슴은 고요해져갔다. 그리고 팔에 남아있던 마지막 힘이 빠졌다.
 
  “상혁씨!!!”
 
  결국 그는 급류에 휩쓸렸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조금 더 일찍 올리려고 했는데 제목 때문에 조금 늦어졌습니다.

 이제 웬만하면 제목 변경없이 연재 하려고 합니다.

 내용은 초중반까지는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설명을 추가하고 비문과

오타를 고치고 문장을 가다듬었습니다.

 중반이 넘어가면 내용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결말이 바뀐건 아니지만 중반까지 끌어가는 내용은 전혀 다르게 될 것입니다.

 즐겁게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

댓글(15)

[탈퇴계정]    
오옷 리메이크 건필하세요
2016.05.26 19:08
영완(映完)    
감사합니다. (__)
2016.06.14 21:36
코크스    
리메이크 쪽지 보고왔습니다. 건필하세요 ㅎㅎ
2016.06.10 15:15
영완(映完)    
감사합니다. (__)
2016.06.14 21:36
한자루의창    
리메이크 되어 연재 되고 있는걸 지금에야 알게됬습니다. 오늘부터 정주행 하겠습니다. 건필 하세요.
2016.06.14 20:24
영완(映完)    
감사합니다. (__)
2016.06.14 21:36
훗훗    
잘 보고 갑니다...홧팅요
2016.06.22 02:51
뷔페    
작가님 무공으로캐리한다 이걸로보구왔는데 몇화부터 내용바뀌나요? 쪽지좀.
2016.06.29 20:42
추세추종    
꼭 나쁜 부인에게 시원한 복수하길 바랍니다.
2018.03.19 22:49
난말이지    
아내랑 딸이 금수만도 못한 쓰레기들이군요.
2019.05.0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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