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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적취무 1권 1화

2016.06.08 조회 1,144 추천 3


 불백지원(不白之冤)
 서(序) 일(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절곡(絶谷)에 사람들이 들어섰다.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야! 뒤져!”
 사내의 음성이 절곡을 쩌렁 울렸다.
 명령을 받은 수하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선두에 열 명, 가운데 열 명, 맨 후미에 열 명이 섰다.
 서로 간에 간격은 일 장, 선두와 중간 그리고 후미가 서로 교차하도록 열을 맞췄다.
 착!
 선두에 선 열 명이 일제히 발을 내딛으며 주위를 살폈다.
 착!
 중간에 서 있던 열 명도 걸음을 옮겼다.
 착! 착! 착!
 선두가 먼저 움직이고, 중간이 움직이며 가장 마지막으로 후미가 이동한다.
 움직이는 시간 차이는 약 두 호흡 정도, 움직인 후에는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사방을 구석구석 훑는다.
 착! 착! 착!
 그들은 점점 절곡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뒤지는 절곡이 사방이 온통 흰 바위뿐인지라 백곡(白谷) 혹은 백석곡(白石谷)이라고 불린다. 암석의 재질이 푸석하고 험준하며 산사태가 자주 발생해서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이다.
 그들은 평지에서 점점 가파른 곳으로 이동해 갔다.
 쉬익! 쉬익! 쉬이익!
 선두에 선 열 명이 익숙한 솜씨로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험준한 절곡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쉬익! 쉬이익!
 중간에 선 열 명도 앞 조를 따라서 신형을 날렸다. 헌데 그 순간!
 신형을 날리던 열 명 중 한 명이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쉬이익!
 그가 손을 들기 무섭게 일행을 이끌고 선 사내가 신형을 쏘아왔다.
 “오공(五空)?”
 “오공, 맞습니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사내의 눈길이 벌써 흰 바위에 움푹 파인 다섯 구멍을 훑고 있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오공 앞에 앉았다.
 아주 위험한 물건을 다루듯······ 건드리기만 하면 깨지는 유리그릇을 만지듯······
 사내는 오공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구멍 가까이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허나 그는 냄새를 맡기 무섭게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머리를 발딱 치켜들었다.
 “웃!”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도 동시에 터져 나왔다.
 사내는 찡그린 인상을 풀지 않은 채, 품에서 손가락만한 호로병을 꺼내 마개를 열었다.
 마개만 열었을 뿐인데 청량한 냄새가 백곡을 아우른다.
 사내는 호로병 속에 든 호박색 액체를 오공 속에 부어 넣었다.
 치이익!
 오공에서 거센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맞군······”
 사내가 신음하듯 말했다.
 “또 있을 것이다. 찾아봐!”
 사내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여기도요! 여기는 약 서른 개 가량 있는데요.”
 선두에 선 열 명이 거의 일제히 손을 들었다.
 “투골조(透骨爪)! 투골조를 수련하는 놈이 있다니!”
 사내가 입술을 비틀며 씩 웃었다.
 쥐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눈가에 살광(殺光)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서(序) 이(二)
 
 빌어먹을 새끼!
 투골조? 겨우 투골조? 하고 많은 무공 중에 겨우 투골조라니! 이 빌어먹을 새끼야!
 투골조! 투골조! 투골조!
 우하하하하하!
 
 
 제1장 입각(入殼 - 덫에 걸리다)
 
 
 1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대문 한 복판에 어둡고 긴 겨울이 물러가고 새 봄이 왔음을 알리는 글귀가 붙었다.
 “아휴! 지독히도 춥다!”
 “까마귀도 얼어 죽겠네. 입김이 그대로 얼어붙는다니까.”
 긴 겨울 동안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백 년 이래 가장 추웠다는 겨울도 실바람을 타고 살살 불어오는 춘풍(春風)에는 견디지 못하고 물러갔다.
 산과 들에 푸릇푸릇한 풀들이 자란다.
 겨우내 움츠렸던 산새들이 마음껏 지지배배 울어대고, 가지만 앙상하던 나무에도 푸른 잎이 돋는다.
 세상은 막 깨어나는 중이다.
 
 중장천검(重藏天劍) 류장위(劉長偉)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탕!
 탁자가 마른 진흙 뭉개지듯 부서졌다.
 육십 노안(老顔)에 노기(怒氣)가 충천했다.
 여든 근 천검이 금방이라도 휘둘러질 듯 들썩인다. 바람도 없는데 흰 수염이 파르르 떨린다. 노구(老軀)의 양 어깨는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대청은 일순간에 싸늘해졌다.
 분노는 바싹 다가서던 봄 향기를 멀찌감치 밀어냈다. 계절을 순식간에 엄동설한(嚴冬雪寒)으로 되돌려 버렸다.
 “지금······ 투골조라고 했는가! 정녕 투골조더냐!”
 “맞습니다. 투골조였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사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내는 영준하다. 허나 냉혹하다. 너무 냉혹해서 영준함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를 본 사람은 잘 생겼다는 말 대신에 무섭다는 말부터 한다.
 그는 중장천검 앞에서도 냉혹함을 풀풀 날렸다.
 중장천검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신에서 살기를 무럭무럭 피워내며 일갈을 내질렀다.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아무리 추포조두(追捕組頭)라 할지라도 용서할 일이 아니니!”
 사내, 추포조두라고 불린 사내는 중장천검의 분노를 태연히 받아들였다. 이런 일에는 아주 이골이 난듯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고 정면으로 시선을 응시하며 맞받았다.
 “제가 언제 빈 말을 한 적이 있더이까.”
 “으음!”
 중장천검은 몸을 의자 깊숙이 묻었다.
 침묵이 흘렀다.
 추포조두는 실수하지 않는다. 또한 놓친 적도 없다. 그가 꼬리를 잡았다면 몸통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다.
 “내 직접 확인해보지. 그런 후에 다시 거론함세.”
 “그렇게는 안 됩니다.”
 “뭐야! 네 놈이 감히!”
 “제 행동에 불만이 있으시면 본문(本門)에 연락을 취해 주시지요. 본문에서 명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물러가겠습니다.”
 “네놈이 정녕 날 능멸하는 게냐!”
 “능멸로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전 본문에서 정한 규칙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오냐. 하지만 네 놈의 실수가 드러난다면 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중장천검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추포조두를 막을 수는 없다. 그는 본문에서 정한 시행규칙대로 움직이고 있다. 다만 자신의 체면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곧이곧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괘씸할 뿐이다.
 추포조두가 일어서며 말했다.
 “협조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이 시간부로 제 조사가 끝날 때까지 백곡은 물론 천검가(天劍家)까지 일괄 봉쇄하겠습니다.”
 “오······ 냐.”
 중장천검은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중장천검은 추포조두가 물러간 후에도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깊이 생각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법 없다.
 특히 추포조두는 ‘투골조’라는 사공(邪功)을 정확히 들이댔다.
 ‘함정!’
 코흘리개 철부지 시절에 검을 잡은 후, 오십여 성상을 강호에서 보냈다. 그동안 참으로 힘들게 겪어낸 고전(苦戰)만 거론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그는 본능적으로 일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난데없이 투골조라니!
 ‘빠르면 하루, 늦어도 내일까지는 결딴날 터······’
 그는 추포조두의 일처리 방식을 안다.
 추포조두는 예의상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준 후, 본격적으로 치고 들어올 것이다.
 그는 이미 모든 증거를 확보해 놓았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고 확신을 했다. 온갖 수단방법이 동원되겠지만 자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통보해준 게다.
 이런 통보도 천검가라는 존재가 검련십가(劍聯十家)에 이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이 해준 것이다. 검련십가에 해당되지 않는 다른 삼십일가(三十一家) 같은 경우에는 지금쯤 추포, 처단하고 있으리라.
 투골조는 존재한다. 천검가 무인이 수련했고, 추포조두에게 꼬리까지 잡혔다.
 이런 점을 부인하면 안 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후속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어떤 놈이!’
 중장천검의 생각은 누가 투골조를 수련했느냐 하는 점보다 어떤 놈이 이런 함정을 준비했느냐 하는 데 집중되었다.
 틀림없이 어떤 놈이 천검가를 곤란하게 만들 목적으로 함정을 팠다. 허나 그놈을 찾아내는 일은 급하지 않다. 지금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중장천검은 생각을 끝냈다.
 “치검령(痴劍靈), 게 있으면 들어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자 뒤쪽 서가(書架)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한 사내가 들어섰다.
 훤칠하게 큰 키, 다부진 몸, 가늘게 찢어진 눈······
 추포조두가 냉혹하다면 치검령은 칼날을 손으로 더듬을 때처럼 날카로웠다.
 중장천검은 그를 치검령이라고 불렀다. 허나 어느 모로 보아도 어리석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정반대로 눈빛에 광채가 어려 있어서 상당히 뛰어난 자임을 짐작케 한다.
 중장천검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자식 놈들일 거야. 그렇지?”
 “······”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폐관수련(閉關修練)하는 놈이 몇인고?”
 “다섯 분입니다.”
 “그놈들 중에 있을 텐데······ 투골조의 특징을 아나?”
 치검령은 앞으로 돌아와 추포조두가 앉았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말씀해 주십시오.”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게야,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게야?”
 “모릅니다.”
 “쯧! 그러니까 천치 소리를 듣지.”
 “괜찮습니다.”
 중장천검은 치검령의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봤다. 그리고 다짜고짜 말했다.
 “깨끗하게······ 처리해.”
 치검령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한 사람은 명령을 내렸고, 한 사람은 반문했다. 허나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중원(中原)에서 투골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투골조는 한때, 천하를 피로 물들였던 칠마(七魔) 중 조마(爪魔)의 독문무공이다.
 조마가 맹위를 떨칠 때는 지옥 악귀도 슬슬 눈치를 살폈다는 말이 있는데, 일리가 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아주 지독한 사공이다.
 무리(武理)는 아주 간단하다.
 축고납신(築故納新), 새로운 것을 흡수하며 옛 것은 쌓아놓는다는 이론에 바탕을 둔다.
 동남(童男), 동녀(童女)에게서 순양(純陽), 순음(純音)의 기운을 흡취한다. 그리고 받아들인 만큼 전부터 지니고 있던 음양기(陰陽氣)를 손끝에 몰아넣는다.
 손끝에 모인 진기는 흐름이 정지된다. 흐름만 정지되는 게 아니다. 투골조의 독특한 운공방식에 따라서 물이 고이면 썩듯이 체내에서 독기(毒氣)로 변질된다.
 이렇게 형성된 독기는 인간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독 중에 가장 지독한 오독(五毒)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한다.
 조마는 이 독을 화독(火毒)이라고 불렀다.
 화독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투골조가 살을 녹이고 뼈를 뚫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투골조에 당하면 일보(一步)도 옮기지 못하고 즉사한다. 내공이 심후하여 독기를 조절할 수 있는 무인일지라도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지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투골조의 악명은 죽음에 있지 않다. 주검에 있다.
 투골조에 당하면 심한 악취와 함께 누런 고름을 끝없이 흘린다. 생명이 끊어지고 육신이 차디차게 식어도 악취와 고름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독기가 얼마나 강하면 벌레조차 꼬이지 않을까.
 살과 피와 내장이 모두 고름이 되어 흘러내릴 때까지 그 누구도 손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심한 악취 때문에 근처에도 얼씬거릴 수 없다고 생각하자.
 투골조라면 이가 갈릴 게 당연하다.
 강하고, 잔혹하고······ 인성(人性)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마(邪魔)라면 한번쯤 수련해 보고픈 무공임에는 틀림없다.
 
 “쯧!”
 치검령은 전각 지하의 암로(暗路)를 걸으며 혀를 찼다.
 아무리 무지해도 그렇지 어떻게 투골조 같은 패악 무도한 사공에 손을 댔을까?
 투골조는 동남동녀의 희생을 바탕에 둔다.
 동남동녀 백 명의 정기를 흡취해야만 겨우 일성의 성취를 높일 수 있다.
 오성의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오백 명이 죽어야 한다. 십성을 이뤘다면 천 명의 아이가 죽었다는 뜻이다. 세상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어떤 영문인지도 모른 체 공포에 떨다가 죽는 것이니 천인공노할 노릇이지 않은가.
 그야말로 패악 무도한 사공이다.
 어떻게······ 어떻게 천검가의 후손이 염라대왕조차 내놓은 사공에 손을 댔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생각에서 어린아이들을 납치했으며, 목숨을 빼앗았을까.
 치검령은 일동(一洞)과 이동(二洞)을 지나쳤다.
 그곳에도 폐관수련 중인 천검가의 후손은 있다. 허나 그들은 결코 사공에 손댈 사람들이 아니다.
 추포조두가 와서 ‘투골조’라는 말을 꺼냈을 때, 치검령의 머릿속에는 이미 한 사람의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 같은 사공을 손댈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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