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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비검(天涯飛劍) 1권 1화

2016.06.15 조회 1,892 추천 4


 서장
 
 
 마인(魔人)!
 세상은 마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인은 악마에게 영혼을 내맡긴 자들이다. 육신을 지옥에 저당 잡힌 인간들이다. 그런 자들과 어떻게 한 하늘을 이고 같이 살 수 있단 말인가.
 마인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마인(魔人)!
 마인이라는 말 속에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마귀 마(魔)’ 자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지혜로운 인간에게 ‘마귀 마’ 자를 쓴 것은, 인간을 벗어난 듯한 지혜로움을 시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처가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선승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적인 세상을 버렸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진리는 내면에 있다.
 오직 자신의 내면만을 탐구한다.
 
 마인(魔人)!
 마인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들은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당장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앞서 나가고 있다.
 
 마인(魔人)!
 그들을 죽이면 어찌되는가?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시기와 질투를 일으키던 사람이 사라지면 썩은 이가 뽑힌 것처럼 홀가분해진다.
 너무 앞서 나가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자들은······ 마인이라는 이름으로 처형해도 무방할 듯 하다. 아니, 무방하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너무 강해서 독보적인 자도 마인이라는 허울 앞에서는 간단하게 무너진다.
 힘보다도 더 강한 것이 마인이라는 두 글자다.
 
 마인(魔人)!
 죽이고 싶은 자가 있거든 마인이라고 불러라.
 
 
 제1장 무욕(無慾)의 삶
 
 
 1
 
 
 짹! 째잭! 짹!
 참새가 아침을 노래한다.
 싱그러운 아침이다. 손으로 풀잎을 훑으면 새벽이슬이 후드득 떨어진다.
 그러나 오늘, 죽음을 기다리는 한 생명이 있다.
 소습(蘇濕)은 축축한 풀밭에 팔짱을 끼고 앉아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를 바라봤다.
 앞으로 반 각, 늦어도 한 시진 후면 어느 대감 놈이라는 자의 잔칫상에서 이글이글 구워지고 있을 놈이다.
 죽은 고기를 누가 처먹든 그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할 일은 한 생명을 가장 편안하게 끝내주는 것으로 그친다. 그 이상을 살피면 역겨움에 토악질이 치민다.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시고······
 살부(殺斧)들은 가장 질 좋은 고기를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포식할 수 있다. 그래서 힘도 쓰고, 피둥피둥 살도 찐다. 가진 건 없으면서 얼굴에 개기름이 줄줄 흐른다.
 소습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생명(生命)!
 살아있는 생명과 죽은 시신 사이의 경계에 그가 서있다. 한 순간의 경계를 가장 빨리 건너뛰게 해준다.
 “도끼는?”
 “아직······”
 “숫돌과 청정수는?”
 “준비해 드렸습니다.”
 “······”
 소습은 더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일부절명(一斧絶命)이라는 거창한 별호(別號)를 안겨주었다.
 도끼질 한 번이면 생명이 끝난다.
 어느 살부들처럼 두 번, 세 번 내리찍는 경우가 없다. 목숨이 남아있는 경우도 없다. 도끼가 떨어지는 순간, 목숨도 똑 떨어진다. 여기(餘氣) 같은 것도 남지 않는다. 삶은 사라지고 죽음만 남는다.
 그들 눈에는 일부절명처럼 보일 것이다.
 진정 감당하기 어려운 별호다.
 일부절명이라는 별호는 자신이 받을 게 아니다. 방안에서 도끼 한 자루를 앞에 놓고 온갖 유세를 다 떨고 있는 철장(鐵匠)이 받아야 한다.
 그 자는 쇠붙이에 불과한 도끼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다른 자가 만진 도끼를 들고 나서면 소들의 눈에 공포가 어린다. 눈물이 똑똑 떨어진다. 한낱 미물이 죽음을 예감하고 사기(死氣)를 띄우기 시작했다.
 죽기 전부터 공포에 질려서 근육이 긴장한다.
 당연히 고기 맛도 좋을 리 없다.
 모르는 놈들은 그 맛이 그 맛이라며 무턱대고 먹어댄다. 맛이 아니라 양으로 먹어대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긴장한 채 죽음 소와 편안하게 죽은 소를 단번에 구별해 낸다. 죽음을 느낀 소는 고기 맛이 쓰다고 한다.
 사실 그 말에는 허풍이 상당히 섞여 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불에 구워먹으면 맛만 좋은데, 무슨 쓴 맛이 난다고.
 그런데 또 그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철장이 갈아준 도끼로 도살을 하면 쓰니 다니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역시 일부절명이 승천시킨 소 맛은 유달리 맛있다면서 그 큰 소 한 마리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철장이 쓴 도끼를 쓰면 힘이 훨씬 덜 든다.
 그냥 별 힘 들이지 않고 툭 내리치기만 해도 소머리가 두부에 칼날 떨어지듯이 쫙 갈라진다.
 사정이 이러니 철장이 갈은 도끼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저 멀리서 화려한 의복을 걸친 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제길!’
 그는 급히 눈을 반개(半開)하고 가부좌(跏趺坐)를 틀었다.
 “이보게! 아직도 소를 안 잡고 있으면 어쩌는가! 이제 곧 손님이 들이닥칠 텐데······”
 소습은 눈꼬리를 치켜떴다.
 청정을 방해한 무례한 자!
 그의 눈에서 사나운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이, 이보게 난 급해서······”
 “저 소를 보시오.”
 그는 눈빛과는 사뭇 다른, 아주 조용하고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한낱 백정이 손님에게 눈을 부라릴 수 있는가. 다 허풍이다. 하지만 이런 허풍이 종종 먹힌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발골까지 해서 준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은자를 받는다.
 “아주 평화롭지 않소? 풀 뜯어 먹는 모습이······ 더, 더, 더······ 평화로움의 극치가 느껴지지 않소?”
 “이보게, 그건 아네만 국도 끓여야 하고······”
 “소의 평화로움과 나의 평화로움이 하나가 될 때······ 저놈과 나 사이에 아주 짧은 만남이 있을 것이오. 그때가 어느 때인지는 후후후! 저놈이 말해줄 거요.”
 대감댁에서 재촉하러 온 자는 더 말도 못하고 쩔쩔 맸다.
 시간은 묘시(卯時)를 넘어 진시(辰時)로 들어섰다.
 손님이 사시(巳時)부터는 들이닥칠 터이니 남은 시간이라 봐야 이제 겨우 한 시진뿐이다.
 그런데 솥 속에 들어가서 펄펄 끓고 있어야 할 소는 아직도 멀쩡히 살아서 풀을 뜯어먹는다.
 애간장이 타들어갈 일이다.
 소습은 눈을 살며시 내리감아 반개했다.
 사실 애간장은 그도 타들어갔다.
 생각 같아서는 다른 도끼로 도살을 하고 싶지만······ 그러면 당장 티가 난다.
 맛이 없다. 고기가 퍽퍽하다. 질기다.
 우연인지 몰라도 철장이 갈아준 도끼를 쓰면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역시 일부절명이다. 너무 너무 맛있다.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과자를 먹는 것처럼 고소하다.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그러니 철장이 어서 빨리 갈아주기만 기다릴 수밖에.
 ‘제길! 이러다 해 지겠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태연한 척 했지만, 그의 내심은 개미굴처럼 들끓었다.
 도끼는 그로부터도 반각이나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에게 도끼질을 배우겠다고 불원천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놈들 중에 한 놈이다.
 “도끼가 다 됐습니다.”
 “그래.”
 소습은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하면서 도끼를 받았다.
 날은 잘 세워졌다.
 정성 들여서 곱게 간 흔적이 역력하다.
 헌데 그것뿐이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이 도끼날에 무슨 조화가 깃들었나 싶어서 몇 번이고 살펴봤지만 평범한 어느 도끼들과 다를 바 없다.
 “흠! 잘 갈렸군.”
 그는 혼잣말처럼 말하면서 일어섰다.
 
 모두들 지켜본다.
 도끼질을 배우겠다고 매달리는 놈들, 어서 빨리 도축해달라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온 놈······ 그리고 소 잡는다는 소리에 피 구경을 해볼까 하고 늘어선 인간들.
 그는 소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이놈아, 이제 갈 때다.”
 그가 낼 수 있는 소리 중에 가장 온화한 말투를 쓰려고 애썼다.
 물론 소에게 한 말은 아니다. 풀이나 뜯어먹는 축생이 무슨 말을 알아듣겠는가. 쭈욱 늘어서 있는 구경꾼들에게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괜히 해본 말이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것은······ 이쯤 되면 어느 축생이라도 공포감에 질려서 뒷걸음질을 친다거나, 발광을 한다거나, 하다못해 눈물이라도 흘리는 법인데······ 이놈의 소는 자신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기만 하다.
 철장이 갈아준 도끼를 들면 항상 이런 일이 생긴다.
 “금생의 인연은 이만하면 됐다. 잘 가고······ 내생에서는 꼭 인간으로 태어 나거라. 죽어서도 육신을 보시하는 기특함이 있으니 인간으로 태어날 게다.”
 음메!
 소가 화답이라도 하듯이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해냈다.
 슬픈 울음소리가 아니다. 풀을 뜯어먹고 포만감에 만족해서 흘리는 옅은 울음이다.
 슥!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톡 내리쳤다.
 퍽! 쫘악!
 도끼는 정확하게 소머리를 격타했다. 정수리를 째고, 머리뼈를 가르고, 뇌수까지 반으로 갈랐다.
 그 즉시 죽음이 일어났다.
 쿵!
 누런 황소는 마치 예정된 행동이라도 되는 듯이 조그마한 경련도 보이지 않고 풀썩 나뒹굴었다.
 죽은 모습도 조용하다.
 파르르 떨지도 않는다. 네 다리에 경직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이 크게 벌렁거리지도 않는다.
 완전히 끝났다.
 “와! 정말 신기(神技)네.”
 “일부절명이 허언이 아냐. 어찌 저럴 수 있나.”
 “별로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도끼도 아주 평범한 거고.”
 “저렇게 죽으니 고기가 연하고 맛있지. 죽은 줄도 모르고 죽었잖아. 난 말이야. 어쩐지 소는 죽었지만 몸뚱이는 살아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왜 그런 거 있잖아. 피가 아직도 빠르게 돌고 있을 것 같은 거 말이야.”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해. 분명히 죽긴 죽었는데, 살아있는 것 같단 말이시.”
 늘어선 사람들 중에 경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일꾼 중에 한 놈이 재빨리 항아리를 가져와서 목을 따고 선지를 받았다.
 나머지는 그의 일이 아니다.
 살을 추려내고, 분리하고, 부위별로 나누는 일은 자신이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는 불호를 멋지게 외우면서 기도를 올려주었다.
 죽은 소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이다. 또 그런 행동이 늘어선 사람들에게도 뭔가 있어보이게 해준다.
 
 그는 소 잡은 도끼를 선반에 올려놓았다.
 철장이 갈아준 도끼로 도축을 하면 피 한 방울 묻지 않는다. 가죽을 가르고, 뼈를 베어내고, 골수까지 튀었는데도 도끼에는 기름 한 방울 묻지 않는다.
 용마도석(用磨刀石)에 관한한 철장을 따라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석꾼은 많아도 철장처럼 희귀한 재주를 가진 자는 천하를 뒤져도 없을 것이다.
 이걸 희귀한 재주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도 좋은데······ 그가 갈아준 도끼를 들면 운이 무척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더욱 즐거운 것은 그런 재주를 가진 자가 자신의 도끼만 갈아준다는 것이다.
 도축을 하는 사람이 죽산(竹山)에만 삼십여 명이다.
 호광성(湖廣省) 전체로 보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들 중에서 자신처럼 별호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자는 없다. 별호는 무인이나 갖는 것이지 한낱 도축꾼이 가질 게 아니지 않는가.
 이 모든 게 철장 덕분이다.
 그는 도끼 잡은 손을 깨끗이 닦았다.
 혹여 옷에도 피가 튀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다.
 철장은 피냄새를 싫어한다. 살생의 흔적도 싫어한다. 그러면서 병기를 만들고, 날을 세워주니 그것 또한 모순이다.
 “이보게, 들어가겠네.”
 그는 문을 열기 전에 기별을 먼저 보냈다.
 자신의 집에, 자신의 방에 자신이 들어서면서 기별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철장에게는 그만한 예의쯤 갖춰도 괜찮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대은인이지 않은가.
 덜컹!
 방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그가 보였다. 어느 때처럼 방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한 치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있다.
 두 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여인처럼 단아한 모습이다. 아니, 사내이니 단정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이 들어섰는데도 쳐다보지 않는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찻물뿐이다. 오직 한 잔의 차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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