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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검애사(十劍哀史) 1권 1화

2016.06.27 조회 1,370 추천 7


 -심신빈척(心身貧瘠) 몸도 마음도 메마르다
 
 
 서장
 
 
 화화공자(花花公子)라고 불렸다.
 환락공자(歡樂公子), 표도공자(嫖賭公子), 색랑(色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부랑자(浮浪子), 날급인( 圾人), 호색광(好色狂), 바람둥이, 팔난봉꾼, 난봉쟁이, 오입쟁이, 풍객(風客), 파락호(破落戶), 봉짜, 탕아(蕩兒)······.
 아버지다.
 
 절염색녀(絶艶色女)라고 불렸다.
 춘희(春嬉), 야계(野雞), 보아(鴇兒), 음녀(淫女)라고 쑥덕거렸다.
 창녀(娼女), 유녀(遊女), 매춘부(賣春婦), 밀매음녀(密賣淫女), 가창(街娼), 매음부(賣淫婦), 노류장화(路柳墻花)······.
 어머니다.
 
 푹!
 한 번 찔리고,
 푹푹! 푹푹푹!
 혈화(血花)가 피어날 때, 색랑은 생을 마쳤다.
 
 생각해 본다.
 왜 죽었지? 왜 죽였지?
 
 
 제1장 진흙 속으로
 
 
 1
 
 
 오월의 밤은 상쾌하다.
 산에서 풍겨오는 흙냄새, 나무 냄새, 바람 냄새가 심신을 상쾌하게 일깨운다.
 뎅! 뎅! 뎅!
 인시초(寅時初)를 알리는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 전체에 불이 밝혀졌다.
 불이 켜지지 않은 집은 한 집도 없다. 백여 가구는 훨씬 넘어 보이는 대촌락(大村落)이 일제히 새날의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집집마다 불은 밝혀졌는데 오가는 사람은 없다.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컹컹! 컹컹컹!
 개 한 마리가 깊은 침묵을 이겨내지 못하고 짖어댔다.
 컹컹! 컹! 꼬끼오!
 다른 개들이 따라 짖는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한 시진 이상이 남았는데 수탉이 목청 높여 회를 친다.
 하나 그것도 잠시뿐, 불 밝힌 마을은 또다시 깊은 침묵에 휘감겨 들었다.
 뎅! 뎅! 뎅! 뎅!
 한 시진 후, 묘시초(卯時初)가 되자 종소리기 네 번 울렸다.
 덜컹! 덜컹!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섰다.
 “잘 잤냐?”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했지.”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젊은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은 집안 어른에게 인사를 드린 것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대문을 밀치고 나가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안녕!”
 “안녕.”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즐겁게 인사를 나눴다.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정한 순서에 의해서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방문하면서 마을 어른 모두에게 인사를 드렸다.
 반 시진, 인사를 마치는 데 소용된 시간이다.
 그동안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구수하게 번져 나갔다. 그리고 어느 마을과 다름없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낙은 아침을 준비하고, 사내는 농기구를 점검했다.
 
 따각! 따각! 따각!
 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마차가 관도를 따라서 천천히 움직였다.
 날이 밝기 전에 아침 식사를 하고, 동녘에 떠오르는 해를 논과 밭에서 맞이한 사람들이 관도를 쳐다봤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무슨 마차지?”
 “천··· 요루(天妖樓)? 내가 잘못 봤나? 저거 천요루라고 적힌 것 맞지?”
 “어느 풍류 귀신이 지난밤을 뜨겁게 불살랐는지 모르지만, 이곳까지 마차를 타고 버젓이 들어서다니 정신머리 나간 거 아냐? 도대체 어떤 놈이야!”
 마차의 정체를 알게 되자 사람들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그러게. 정신머리 나가도 단단히 나간 놈이지. 허! 마차까지 타고······. 허! 아예 소문을 내고 다니지 그래.”
 농부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마차에는 어자석(馭者席) 좌우로 큼지막한 깃발이 꽂혀 있다. 그리고 천요루라고 쓰인 금빛 글씨가 요사스럽게 번쩍거린다.
 “천요루에 대해서 말해봐라.”
 늙직한 노인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며 말했다.
 노인의 눈빛은 순한 농부의 눈빛이 아니었다. 칼처럼 날카로운 안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육 개월 전 북경(北京)에 터를 잡은 신흥 기루(新興妓樓)입니다.”
 노인 곁에서 논일을 하던 중년 사내가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했다.
 “기루인 줄은 짐작하고 있다.”
 노인의 말투가 싸늘했다.
 “루주(樓主)가 상당히 수완이 좋은 자인 듯합니다. 개업하자마자 단번에 고관대작(高官大爵)을 휘어잡았습니다. 북경 부호 중에 천요루에서 술 한잔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로 대성황을 이룬답니다.”
 “흥!”
 노인이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수완이 좋다고 했느냐?”
 “네.”
 “쯧! 그걸 어찌 수완이 좋다고 말하누. 세상일이라는 건 상식선에서 움직여야 하는 거야. 상식을 넘어서는 건 뭔가 냄새나는 게 있다는 뜻이지. 저 마차··· 아주 더러운 냄새가 나.”
 노인의 말은 곧 명령이었다.
 중년인이 관도 곁에서 논일을 하던 청년에게 손짓을 했다.
 
 쒜엑!
 청년의 움직임이 날랜 비호(飛虎)를 연상시켰다.
 발끝을 살짝 움직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관도 위로 올라서서 마차를 제지했다.
 “서라!”
 마부는 급히 마차를 세웠다.
 팽가(彭家) 집성촌(集成村)!
 옆집에 삼촌이 살고 건넛집에는 조카가 산다. 마을 전체가 혈연(血緣)으로 뭉쳐 있다. 아니다. 팽가 집성촌은 어느 집성촌처럼 친인척이 모여 산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하북(河北) 팽가(彭家)!
 중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절대(絶大) 무가(武家)다.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무가 다섯 곳을 거론하라면 언제나 거론되는 가문이기도 하다.
 일명 오대세가(五大勢家)다.
 팽가는 하북의 자랑거리다. 하북의 맹주(盟主)이며, 영도자(領導者)이며, 선망의 대상이다.
 하북 사람들은 팽가 집성촌인 석경산(石景山) 일대를 성역으로 여기며 신성시한다.
 마부가 어찌 감히 거역하겠나.
 “안에 누구냐?”
 묻는 음성이 칼이라도 담긴 듯 날카로웠다.
 마부는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즉시 대답했다.
 “이, 이공자님이십니다.”
 “이공자? 팽효뢰(彭曉雷) 공자란 말이냐?”
 마차를 세운 청년이 깜짝 놀라며 마차 문을 덜컹 열어젖혔다.
 “욱!”
 마차 문을 열던 사내가 역한 냄새에 코를 잡고 뒤로 물러섰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문을 열자마자 시궁창 오물 냄새가 역하게 쏟아져 나왔다.
 “어휴! 이런!”
 청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차 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한 사내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 한 번씩 숨을 쉴 때마다 썩는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온다. 입고 있던 백의(白衣)는 여인의 지분 자국으로 뒤범벅이다.
 마차를 타고 오면서도 술을 마셨는지 술병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안줏거리는 거지들이 동냥 받아온 것처럼 뒤범벅이 되어 있다. 거기에 토악질까지 해놓아서 어지간한 비위로는 쳐다보고 있기조차 힘들었다.
 “정말 효뢰냐?”
 쉬익!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칼바람 소리가 울렸다
 청년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노인 곁에 있던 중년인은 물론이고, 논일을 하던 사람 중 대부분이 신형을 날려 쏘아왔다.
 팽가(彭家) 사람들은 일찍 일어난다.
 인시에 일어나서 운공(運功)을 하고, 아침 먹고 난 후에 쌀 한 말을 거두며, 점심 먹고 한 말을 거둔다. 이렇게 쌀 두 말을 거둔 후에야 저녁 식사 자리에 앉을 수 있다.
 팽가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그들은 무인이라고 해서 무공만 수련하지 않는다. 무공도 일상생활의 일부분일 뿐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무공이 필요한 것이지 무공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그들은 무인이지만 논과 밭에서 일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마라.
 당나라 때 백장(百丈) 회해(懷海) 선사(禪師)가 한 말이지만 지금은 팽가의 가훈(家訓)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모두들 일하고 있을 시간이다. 모두 마차를 보는 것은 당연하고, 팽효뢰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에 염려 반, 걱정 반으로 달려오는 것도 당연하다.
 쒜엑! 쉬익! 쉬잇!
 사방에서 파공음이 울린다.
 평화롭던 촌락에 느닷없이 풍운(風雲)이 일어난다.
 “효뢰가 맞아?”
 되물을 필요도 없다. 놀란 안색, 경직된 표정, 깊은 탄식······. 얼굴 표정만 보고도 마차 안의 인물이 누구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마부가 말한 대로 이공자 팽효뢰다.
 “아휴! 술 냄새.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아주 인사불성이네.”
 “천요루라면 술만 마신 것도 아니잖아. 기녀하고 밤을 새웠다면··· 끙!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들은 탄식을 넘어서 질책까지 했다. 그때,
 “조용히들 해라!”
 나직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강한 음성이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채웠다.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노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노인은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못마땅한 눈으로 화려한 마차를 흘깃 쳐다본 후 예의 중년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효뢰를 내 집으로 옮겨라. 조용히. 가주님께는 내 따로 말씀드릴 터이니 입조심하고!”
 “당숙, 어쩌시려고······.”
 중년인이 난색을 표했다.
 노인의 눈에서 한광이 피어났다.
 “시키는 대로 해. 모두들 행동 조심, 입조심.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조아렸다.
 
 애당초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팽가촌 사람들은 모두 한식구나 마찬가지다. 아니, 한식구이다. 그들 사이에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팽가촌에는 팽 씨 성을 쓰는 사람이 삼 할밖에 안 된다. 팽가 집성촌이라고는 하지만 칠 할은 타성(他姓)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가족이다.
 이 할은 혼인으로 얽혀 있다. 할머니, 어머니······ 타성이지만 팽가의 귀신이 된 사람들이다.
 나머지 오 할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식솔이다.
 세상은 그들을 하인이나 종이라는 말로 부른다. 하지만 팽가촌에서는 같은 사람일 뿐이다. 본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런 점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팽가 사람들은 종이나 하인이 하는 일도 손수 하는 경향이 많아서 상하(上下) 관계가 의식되지 않는다.
 그들도 팽가촌의 귀신이 된 지 오래다.
 모두들 좋은 점은 기뻐해 주고 나쁜 점은 덮어준다.
 만약 외인(外人)이 비밀을 물어왔다면 절대로 토설하지 않을 게다. 회유, 협박, 고문을 가해도 팽가 사람들의 무식하리만치 투박한 고집은 꺾을 수 없다.
 하지만 팽가촌 안에서만은 비밀이 없다.
 점심이 되기 전, 팽가촌 사람들은 팽효뢰가 술에 취해서 기루 마차에 실려 왔다는 사실을 거의 대부분 알았다.
 한 사람만, 가주만 모르면 된다.
 “효뢰에게 무슨 일이 있었대? 뭔 술을 그렇게 마셨을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잖아.”
 “실연(失戀)이라도 당한 거 아냐?”
 “누굴 사귀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무슨 소리 들은 적 있어?”
 “아니.”
 “그런데 뜬금없이 무슨 실연?”
 “안 하던 행동을 하니까 그렇지.”
 오늘의 이야깃거리는 단연 팽효뢰다. 하지만 이야기는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에서만 맴돌았다.
 사내가 기루에서 술을 마셨다. 대취하여 외박을 했고, 아침에서야 마차에 실려 들어왔다.
 이것이 팽효뢰가 저지른 행동의 모든 것이다.
 ‘허허!’ 하고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가벼운 행동이다.
 사내치고 술 취해서 인사불성 되어보지 않은 사내가 어디 있을까. 기녀와 함께 술을 마시지 않은 사내가 또 어디 있을까? 황상이라고 해도 웃어줄 수 있는 문제다.
 정말로 별것 아닌 일이다. 하북팽가 사람만 아니라면.
 하북팽가에서는 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아주 큰 실수가 된다.
 팽효뢰가 저지른 실수는 혈연을 끊어버릴 정도로 중하다. 가뇌(家牢)에 한 달 이상 갇혀 있어야 할 정도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다.
 팽효뢰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무인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싸우게 될지 모르는, 칼 한 자루에 목숨을 맡긴 무인이다.
 무인이기 때문에 술 취한 것이 중대 실수다.
 무인이라고 술을 마시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무인이라면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목숨을 내놓은 것과 진배없다.
 그런 일은 마을 사람 전체가 호법이나 마찬가지인 팽가촌 안에서도 있을 수 없다.
 팽효뢰는 무인으로서 정신 상태가 틀렸다.
 천요루에서 술을 마신 것도 용서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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