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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천봉종왕기

천봉종왕기 1권 1화

2016.07.06 조회 1,206 추천 6


 강일만미생(江日晩未生: 해가 아직 뜨지 않으니)
 
 
 서(序)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아무도 나설 수 없었다. 또 누구인가? 마을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은 아닐 테고······ 그래, 고색 창연한 검을 허리에 찼던 무인, 그 사람일 게다.
 퍼퍼퍽······!
 무공이 제법 강하군. 오랫동안 버텼어. 하지만······
 아직까지 이토록 시간을 오래 끈 싸움은 없었다. 언제나 단 일합에 끝나고 말았으니까. 누구지? 어느 문파에서 배출한 기재일까?
 괴물을 상대로 이만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도 놀라웠다. 하지만 문을 열고 구경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단지 집밖에서 격렬하게 들리는 격투 소리에 귀 기울일 뿐이었다.
 이내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싸움은 끝났다. 누가 이겼을까? 푸훗! 분명 괴물이겠지. 만약 외지인이 이겼다면 이토록 조용할 리가 없으리라.
 아아아아악······!
 귀청을 찢어발기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승리의 절규.
 그렇다. 절규다. 괴물은 사람을 죽인 후 언제나 처절한 절규를 토해 냈다. 가슴이 섬뜩해지는 절규를.
 결국 또 이겼군.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고 오돌오돌 떨었다. 공포에 질려서 입술이 파랗게 변한 채. 중원에는 고수들이 많다던데. 옥석(玉石)을 두부처럼 잘라 버리는 신검(神劍)을 소유한 자도 있고. 뭐라고 했더라? 일장진천(一掌震天)이라던가? 그 사람은 천하무적 고수라던데.
 모두가 헛된 바램이었다.
 세상 한 귀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조그만 마을에 그런 고수들이 모여들 리가 없고, 설혹 모여든다 해도 괴물을 당적할만한 자는 세상 어디에서 없으리라.
 모른 척 하는 것이 상책이다.
 살려면······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제1장 네가 하늘을 나는 매라면
 
 
 1
 
 
 푸른 하늘에 실구름이 살갑게 흐른다. 흔들리는 마음처럼 가느다랗게 흩어져 있지만, 온갖 푸념을 늘어놓아도 좋을 성싶은 구름 조각. 언덕에는 파릇한 새싹이 가득하고, 그 너머에는 끝없는 들판이 펼쳐졌다.
 여인이 뛰어온다.
 긴 머리가 이마를 살짝 가리고 흘러 한 자락은 가슴에, 또 한 자락은 어깨 위로 늘어졌다. 흰 옷감에 잿빛 무늬가 얼룩진 편복(便服)은 봉긋한 가슴을 열어 헤칠 듯 위태로워 보였다.
 머리칼을 매만지는 섬세하고 가느다란 손가락, 땅을 쳐다보는 눈길, 살짝 벌어진 입술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여인은 돋아나는 봄의 풀처럼 상큼한 냄새를 풍겼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산새들의 지저귐이었고, 배속 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미소는 환한 햇살이었다.
 일어나서 마주 달려가고 싶었다. 달려가서는 손을 꼭 잡고, 아니 있는 힘껏 껴안고 풋풋한 내음을 맡고 싶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못했다. 발이 철추(鐵錘)라도 달아놓은 듯 땅에 붙박여 떨어지지 않았다.
 “이리 와. 이리 와서 안아 줘. 사랑한다면 말을 해. 행동을 보여 줘. 마음은 알아. 하지만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없어. 말로, 행동으로 감동시켜 봐. 그만한 자신도 없어? 호호호······!”
 가까이 다가온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잡힐 듯 말 듯······ 여인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고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계속 빈 바람만 움켜잡았다.
 탕! 탕! 탕······!
 반여량(潘麗湸)은 문 두드리는 거친 소리에 눈을 떴다.
 일어나기 싫었다.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머리는 깨어질 듯 지끈거리고, 말라버린 혓바닥에는 침 한 방울 고이지 않았다.
 탕! 탕! 탕······!
 문을 두드리는 작자는 꽤나 끈질긴 놈인가 보다. 근 일다경(一茶頃)이나 지났는데도 계속 저 짓을 하고 있으니.
 반쯤 떠진 눈으로 지저분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집쥐들······
 숭숭 뚫린 지붕 틈으로 보이는 우중충한 하늘······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듯 한바탕 폭우를 쏟아낼 기세였다.
 벌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드리다 지친 손님이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모양이다.
 반여량은 눈동자만 돌려 불청객을 쳐다보았다.
 키가 컸다. 덩치도 우람했다. 열린 문 너머로 보여야 할 풍경이 그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깨 뒤로 삐죽이 솟아 나온 검은 분명히 보였다. 무인(武人)?
 “반여량인가?”
 “······”
 “가자.”
 “······”
 “일어서라.”
 “······”
 “일어서라니까!”
 반여량은 귀찮다는 듯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상(喪)인 났거든 다른 집으로 가. 단잠 깨우지 말고······”
 가던 정마저 떨어질 만큼 멋대가리 없는 말투였다. 그러나 불청객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보폭(步幅)이 일정한 걸음으로 차분히 다가왔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술병이 발길에 채여 귀를 거슬렸다.
 “정중히 데려오라는 명(命)만 없었어도······ 운이 좋은 줄 알아라. 패주(覇主)님께서 부르신다. 어서 일어나라.”
 순간, 반여량은 눈을 부릅떴다.
 강서성(江西省)에서 패주라고 불리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곽가장주(郭家莊主) 곽모천(郭摸天) 뿐이었다.
 우연찮게도 현 무림을 주도하는 구파일방(九派一幫)은 모두 장강(長江) 너머에 있었다.
 하남성(河南省)에 소림사(少林寺), 개방(丐幫). 사천성(四川省)에는 아미파(峨嵋派) 점창파(點蒼派) 청성파(靑城派)가 자리했고, 섬서성(陝西省)에도 화산파(華山派), 종남파(終南派), 공동파(崆峒派)가 세(勢)를 다퉜다. 하다못해 멀리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에까지 곤륜파(崑崙派)라는 대문파가 존재했다.
 문파가 없는 성(省)은 산서성(山西省) 뿐.
 반면에 장강 이남은 뚜렷한 문파가 없었다. 호광성(湖廣省)에 무당파(武當派)가 있다지만 장강(長江)을 기점으로 나눌 때는 역시 강북이었다.
 강서성(江西省), 절강성(浙江省), 복건성(福建省), 광동성(廣東省), 광서성(廣西省), 귀주성(貴州省).
 비옥한 토지가 무주공산(無主空山)으로 버려진 셈이다.
 곽모천은 많은 신화를 일구어내며 강서무림계를 장악했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가 지닌 권력이나 힘은 무소불위(無所不爲) 바로 그 자체였다.
 “곽가장······”
 반여량은 신음처럼 되뇌었다.
 무림이란 세께는 모르짐나 곽가장주의 명성은 익히 들은 터였다.
 그런데 왜? 왜 찾아왔을까?
 상이 났으니 염(殮)을 해달라고? 아니다. 그것 때문에 육백여 리나 떨어진 남창(南昌)에서 상방(上坊)까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 감여(堪輿:풍수)를 해달라고? 그것도 아니다. 남창에는 이름난 감여가(堪輿家:중국에서는 지관(地官)을 감여가라 부름)들이 수두룩하다. 그럼 왜?
 “누가 죽었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후! 누가 죽었냐고? 그건 가보면 알 일이고······ 건방지구나. 패주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도 누워있다니.”
 무인은 호협한 성격인지 목소리가 걸걸하고 우렁찼다. 본인은 작게 말하는 것이 분명한데 조그만 초옥이 떠나갈 듯 윙윙거렸다.
 “누가 죽었다고 해도 지금은 안 돼. 이따가 신시초(申時初:15시~16시) 쯤에 다시 와.”
 그는 아무 감정도 없는 목석처럼 방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눈을 감을 수조차 없는 뼈아픈 상실감에 공허한 눈길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뭣이라!”
 이번에는 호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큰 목소리에 고함까지 질러대니. 뱃속에서부터 쥐어 짜낸 듯한 일갈에는 곧이라도 목을 베어올 듯 진득한 살기(殺氣)가 묻어 나왔다.
 “······”
 “······”
 잠시 긴장된 순간이 흘렀다.
 “좋다. 이따 신시초에 다시 오지. 그 동안 목욕이나 해라. 땀 냄새, 술 냄새가 몸에 푹 절었어.”
 무인은 당장 데려가지 않으면 안될 듯이 말하더니 이번에는 뜻밖에도 순순히 물러섰다. 반여량에게서 강렬하고도 무거운 절망을 읽은 탓일까?
 무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반여량은 한동안 어둠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곽가장주가 왜 불렀지 하는 의문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그가 보는 것은 오직 한 여인의 영상이었다.
 ‘한한(嫺嫺)······’
 
 ***
 
 “흑흑흑! 어머니!”
 상복을 입고 처량하게 우는 한한을 보는 순간 반여량은 심장이 멎는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웠다. 구슬프게 우는 여인이 이토록 가슴에 와 닿기는 처음이었다.
 나이는 자신과 엇비슷해 보였다. 이제 갓 열 대여섯? 그녀는 또래의 소녀가 지니지 않은 신비함을 풍겨냈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소저, 장지는?”
 “없어요. 뒷산에 모실 거예요.”
 “뒷산은 물이 흘러서······”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던 곳이에요.”
 한한은 서릿발같은 음성으로 단호하게 일축했다.
 반여량은 그 심정을 이해했다. 어느 사람처럼 선산(先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당을 고를 처지도 아닌 바에야 뒷산에밖에 더 묻으랴. 하지만 그런 궁색을 말로 표현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으리라.
 “관은?”
 “최고로 좋은 관이 뭐죠?”
 “자단목(紫檀木)으로 만든 관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관은 없나요?”
 “석관이 있는데 값이 비싸서······”
 “돈은 염려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석관으로 해주세요.”
 정녕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본 한한의 집안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허름한 초옥에 살림살이라고 해봐야 길에 내다버려도 누가 주워가지 않을 초라한 의궤(衣櫃)가 고작이었다.
 일가 식솔은 보이지 않았고, 조문객(弔問客)도 마을 사람들이 고작이었다. 친척이나 하다못해 동네 사람들 중에서 금전적인 도움을 줄만한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소저, 음택(陰宅:무덤)은 고인이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굳이 석관을 쓰지 않아도······”
 정중하게 충고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멸시어린 눈길이었다. 네깟놈이 무엇을 알겠냐는 투였다. 결국 한한의 뜻대로 뼈만 남은 노인네를 석관에 모셨다.
 돼지도 잡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유일하게 돈이 될 수 있는 가축이었다. 그것도 단 한 마리. 하지만 한한은 아무 미련 없이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을 대접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쯧쯧! 고생 고생하더니 기어이 가는구먼.”
 “이제 편안하실 거예요.”
 “그렇겠지. 그런데 앞으로 너희들 고생이 심하겠어.”
 “아뇨. 저희는 고생하지 않을 거예요.”
 한한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행동도 당차고 야무졌다. 악문 이빨 사이로는 어떤 결의도 엿보였다.
 “쯧쯧! 시집이나 보내고 갈 것이지.”
 상가(喪家)는 북적거렸다.
 거지도 발길을 놓지 않는다는 권롱촌(圈籠村).
 닭이나 오리처럼 지저분한 곳에서 헤어나올 줄 모른다는 뜻에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었다. 가축이라도 너덧 마리 있으면 부자 축에 속했고, 한한처럼 돼지라도 있으면 부러움을 받는 마을이었다.
 고기는 일 년 열 두달 구경을 할 수 없었다. 혼인이나 장례와 같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에서도.
 그런 그들에게 돼지 한 마리는 정녕 먹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진득하게 우러나온 고깃국물이라도 마시기 위해서 거동이 극히 불편한 노인네까지 조문이랍시고 들어섰다.
 반여량은 한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슴에 싸하게 다가오는 전율, ‘이 여자다’하는 느낌, 이성(異性)에 눈뜰 한창나이에 꽃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자 무심히 흘려버릴 수 없었다.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뭉클하게 와 닿은 감정이 중요했다.
 반여량은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홍석(紅石)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곳이 명당이지. 그곳에 모시도록 하세.”
 촌장이 하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팔십 줄에 들어선 노인네는 아직도 기력이 왕성했다. 마을의 대소사는 항상 앞장서서 주관했고, 특히 장례식에서 묘터를 점지해 주는 일은 관습처럼 행해왔다.
 먹고 살 것도 없는 처지에 감여가를 부를만한 돈이 어디 있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그나마 풍수를 조금 아는 듯한 촌장의 말을 믿고 따랐다. 그런데,
 “아니에요. 감여가가 곧 올 거예요. 장지는 그때 가서 정해요.”
 “감여가?”
 “언니!”
 놀람과 의아함에 가득찬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장례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비아냥거렸다.
 “이봐, 분향했어?”
 “했지.”
 “그럼 봤겠네?”
 “석관말야?”
 “응.”
 “햐! 말로만 듣던 석관을 보니 과연 좋기는 좋더구먼. 반지르르 하고 묵직해 보이는 것이······”
 “이 사람아, 장례 한 번 치르고 기둥 뽑힐 일 있어? 에긍! 아무리 철딱서니 없는 계집얘들이지만 석관이 뭐야, 석관이.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가려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여.”
 “거참 사람도. 아, 동전 한 닢 보태준 것 없으면서 뭘 그래. 그저 구경이나 하고 고깃국이나 마셔둬. 아이구! 어찌 이거 배가 싸르르 하니 아파 오네.”
 “쯧쯧! 말라비틀어진 창자에 기름기가 급하게 들어가니까 그렇지. 어여 뒷간이나 갔다와.”
 사람들이 둘 이상 모인 곳이면 으레 들리는 수군거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감여가까지 부른단다.
 “언니, 도, 돈이······”
 “교교! 너는 어머니가 저승에서까지 가난하게 사셔야겠니? 그렇게 궁상맞게 구니까 네 모양이 이렇지.”
 “그래도······”
 “닥치지 못해! 너는 가만히 앉아서 눈물이나 흘리고 있어.”
 ‘언니, 우리도 살아야 하잖아.’
 교교는 끝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준 돈 은화 닷 냥. 어머니가 평생에 걸쳐 모은 돈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돈을 건네주셨다. 그런 돈을 화려한 장례와 바꿔버리다니.
 진시(辰時)가 넘을 무렵 감여가가 도착했다.
 육순을 넘긴 듯한 초라한 몰골의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가 감여가라는 흔적은 머리에 쓴 문사건과 손에 든 나경(羅經:나침반, 주공(周公)이 발명, BC 1105년 죽음)밖에 없었다.
 “흠! 산세를 보아하니 물이 많아서······ 쯧쯧! 명당을 잡기가 힘들겠어. 적어도 은자 열 냥은 받아야겠는데 돈이 없을 것 같고······ 보시하는 셈치지. 닷 냥만 내게.”
 힐끔 눈치를 보는 것이 선금을 달라는 투였다. 그럴 것이다. 권롱천에서 은자 닷 냥을 지불할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아니, 마을 전체를 뒤져도 그만한 돈은 나오지 않으리라. 하지만 감여가가 자리를 잡아주는데 은자 닷 냥은 통상적인 금액이었다.
 한한은 방긋 웃으며 전낭에서 은자 닷 냥을 꺼내 건네주었다.
 “은자 닷 냥이래.”
 “와! 그만한 돈이 있었어?”
 또 한 번 웅성거림이 들리고 탐욕과 질시 어린 눈초리가 전낭을 향했다.
 감여가는 은화 표면에 새겨진 자호(字號)를 확인하고는 입을 벌리며 실실 웃었다. 사실 권롱촌에서 장사가 났다는 말을 듣고는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없는 사람이 죽었으면 거적에 둘둘 말아 아무 곳에나 묻을 일이지 감여는 무슨 감여란 말인가. 그저 아무 곳이나 점지해 주고 몇 푼 안 되는 행채(行債)나 받을 요량으로 들린 걸음이었다.
 “걱정 말게. 내 틀림없이 가장 좋은 명당을 구해줌세.”
 감여가는 마을 장정 중 힘깨나 씀직한 서너 명을 골라 산으로 올라갔다.
 
 “석관 값이 얼마죠?”
 “닷 냥이오.”
 “저······ 동전······인지 아니면······”
 “······!”
 반여량은 부끄러움에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인 교교를 바라보았다.
 ‘언니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군.’
 “은자라면······”
 “은자라면? 말씀해 보시오.”
 “드릴······ 돈이 없어요.”
 차마 못할 말을 꺼낸 듯 교교의 고개는 점점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반여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교의 고개가 발딱 들려졌다. 돈이 없다고 말하면 틀림없이 성을 내면서 난장판을 벌이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음성이 부드러웠던 탓이다.
 “감여가에게 지불한 돈은 적은 돈이 아니오. 솔직히······”
 교교는 무슨 말인지 직감했다. 솔직히 이런 빈곤한 집에서 그만한 돈을 어떻게 장만했냐는 물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흑! 죄송해요.”
 교교는 설움이 북받치는지 눈물을 주르륵 쏟아냈다. 듣지 않아도 알만 했다. 평생동안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으면서 모은 돈이란 것을.
 “아무리 그래도 은자 닷 냥은 큰돈인데······ 어떻게 벌었소?”
 “자, 자수를 놓아서······”
 “자수? 한낱 자수로?”
 “내, 내화호(內畵壺)······”
 교교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지 말을 꺼낼 적마다 볼을 붉혔다.
 반여량은 내화호라는 말에 교교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보았고, 교교는 그런 눈길을 의식했는지 황급히 손을 등뒤로 감춰버렸다. 하지만 반여량은 분명히 보았다. 거칠게 갈라진 손을.
 내화호란 옥병 안에 집어넣는 자수를 말한다. 병이 작으니 당연히 자수도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큰 화폭에 그린 그림을 보는 것보다 선명하게 보여야 한다.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 그리고 바늘을 천직인 냥 들고 앉은 여인이 아니면 놓을 수 없는 자수였다.
 “좋은 재주를 가졌군.”
 “저······ 석관 값은······?”
 반여량은 교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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