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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1권 1화

2016.07.13 조회 1,177 추천 8


 교교월침상(皎皎月侵床: 밝은 달빛이 방 안에 비친다)
 
 
 서장
 
 
 1
 
 
 장구한 역사를 이어온 중원 대륙.
 수많은 사람이 명멸(明滅)했지만 가장 앞서서 거론할 사람은 치우(蚩尤)였다. 처음으로 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戈), 수(殳), 극(戟), 유모(酉矛), 이모(夷矛).
 이로써 인간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맹수를 사냥할 수 있게 되어 만수(萬獸)를 발 아래 두게 되었다.
 ― 치우작오병(蚩尤作五兵), 과(戈), 수(殳), 극(戟), 유모(酉矛), 이모야(夷矛也) <세본(世本)>.
 
 
 2
 
 
 전설적인 성군(聖君) 삼황(三皇).
 그 중 황제(皇帝)가 수산(首山)에서 동(銅:구리)을 발견했다. 석기시대(石器時代)에서 철기시대(鐵器時代)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황제는 동을 갈아 길다랗고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었다.
 석검(石劍)을 가볍게 동강내는 강한 무기, 철검(鐵劍)이었다.
 ― 황제본기(皇帝本紀).
 
 
 3
 
 
 은(殷), 주(周) 시대에 이르러 좀더 효율적인 병기, 창(槍), 부(斧), 궁(弓), 시(矢), 순(盾)이 만들어졌다.
 진보가 없는 맹수에 비하여 사유(思惟)할 줄 아는 인간은 날로 강해졌으니.
 인간은 맹수를 더 이상 적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무기를 든 인간을 해할 수 있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뿐이었다. 그리고······ 인간들끼리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철운장귀(鐵雲藏龜, 1903), 유철운(劉鐵雲)
 
 
 4
 
 
 기원전 천오백 년.
 은나라 문왕(文王)이 격자술(擊刺術)을 고안하였다.
 힘쎄고 날랜 타민족에 비해 중원인들은 허약해 보였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것과 이미 사용하고 있는 무기를 위력적으로 펼칠 수 있는 기법의 연구였다.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중원 무림.
 그들이 익힌 모든 무공의 근원이 시작된 것이다.
 ― 시경(詩經).
 
 
 5
 
 
 기원전 구십 년, 한(漢) 무제(武帝).
 격자술(擊刺術), 각저(角抵), 각력(角力) 등의 무술을 군사에게 조련시켰다.
 ― 사기(史記).
 
 
 6
 
 
 후한(後漢) 시대에 이르러 수박(手搏), 검도(劍道), 축국(蹴鞠) 등의 무술용어가 정립되었다.
 수박이란 용어는 일반적인 무술을 총칭하였으며, 검도는 격자법(擊刺法), 격자술(擊刺術), 검기무(劍器舞) 등 검에 관한 모든 무술을 포괄하는 말이었다.
 ― 한서(漢書).
 
 
 7
 
 
 춘추(春秋) 시대에는 권용(拳勇), 무예(武藝), 전국(戰國) 시대에는 기격(技擊)이라 부르는 무공의 달인들이 모습을 보였다.
 한(漢) 기교(技巧), 수박(手搏).
 위(魏) 공수(空手).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진 무공은 명(明) 시대에 이르러 기용(技勇), 기예(技藝)라 불리며 발전되었다.
 일인부전(一人秘傳)으로 계승되던 무공은 송 시대에 이르러 문파(門派)라는 이름하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8
 
 
 명(明) 시대에는 무림이 극도로 혼란했다.
 신흥문파(新興門派)가 일어서는가 하면, 깊은 뿌리를 내렸다고 자부하던 문파가 하루 아침에 봉문(封門)되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후세에 전해질 소림(少林) 간가권(看家拳), 나한권(羅漢拳), 무당(武當) 태극권(太極拳) 등이 모습을 갖췄으며 형의권(形意拳), 당랑권(螳螂拳:명 말기, 왕랑(王朗)이 창시.), 음양팔반장(陰陽八盤掌:청나라 시대에 동해천(董海川)이 창시한 팔괘장(八卦掌)의 뿌리가 아닌가 추측됨.) 등이 형체를 드러냈다.
 
 
 9
 
 
 각 문파는 자신들의 비기(秘技)를 철저하게 은폐시켜 문외불출(門外不出)을 원칙으로 했다. 제자로 받아들일 때도 본성(本性)이 파악되기 전에는 입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자로 입문하려는 자는 일정 기간 동안 기본공(基本功)을 수련하며 본성을 측정받아야 했다. 이들은 정식제자가 아니어서 문파의 이름을 사용하지도 못했으며, 사형제(師兄弟)라는 명분도 없었다.
 배사지례(拜師之禮)를 올리는 입문식(入門式).
 기본공을 수련하고부터 짧게는 이삼 년, 길게는 십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치르는 관례(冠禮). 정식으로 권보(拳譜)와 투로(鬪路)를 배우기까지는 험난한 역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어느 문파에도 입문하지 못한 사람들, 그러나 무공에 대한 열망이 하늘에 닿은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무공을 익혔다.
 입증되지 않은 무학(武學)이었다.
 자신이 익힌 무학을 입증받는 유일한 길은 산타(散打:실전 대련).
 섬타(閃打), 도수타(徒手打), 대타(對打), 마수(磨手), 조수(組手), 산수(散手), 박투(搏鬪), 박격(博擊), 획초(劃招), 괘기(掛技), 대련(對練)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려진 실전 비무(比武).
 한 곳에 뿌리를 내린 문파를 정통무가(正統武家), 그렇지 않고 중원을 떠도는 무리를 낭인(浪人)이라 불렀다.
 
 
 10
 
 
 많은 문파가 난립하는 명(明).
 귀야도(鬼野刀)는 이 시기에 끓는 젊음을 보내야 했다.
 
 
 제1장 마가촌(馬家村)에서의 공연(共演)
 
 
 1
 
 
 삘리리, 쿵쿵쿵······!
 요란한 피리 소리, 북소리가 한적한 산촌에 울려 퍼졌다.
 마가촌(馬家村) 사람들은 일손을 놓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마희단(馬戱團:광대) 풍악소리였다.
 “악쟁이들이 왔나 보네?”
 “응? 그러게 말이야?”
 사람들은 마음이 금방 뒤흔들렸다.
 비록 천한 잡놈들이라고 멸시는 하지만 그들이 보여 주는 솜씨는 놀랄 만했다.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얼마나 고된 훈련을 받았으면 몸이 뼈 없는 문어처럼 흐느적거릴까?
 정해진 곳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마희단이지만, 비선령(飛仙岭) 산골짜기에 틀어박힌 마가촌까지 들리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들뜨는 사람들. 성(城)에나 나가야, 그것도 운이 좋아야 구경할 수 있는 마희단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설레이기에 충분했다.
 “허허허! 한동안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는데.”
 “혹시, 저놈들 말야. 우리 아이들을 잡아가려고 온 것이 아닐까?”
 “아이들을 잡아가?”
 “왜, 그런다잖아? 아이들을 잡아다가 밥도 먹이지 않고 곡예만 시킨다고······ 마희단 놈들은 거의 그런 식이라던데?”
 “에끼! 이 사람아! 어디서 아이들을 잡아가? 다리몽둥이가 부러지려면 무슨 짓인들 못 할까?”
 그랬다. 궁벽한 마을에서는 마희단 사람들이 결코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울긋불긋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마을을 어슬렁거릴 때면 동네 아낙들은 아이들을 간수하기에 바빴다.
 불길한 소문은 진위 여부를 떠나 괜히 께름칙했다.
 공연을 할 때는 더없이 재미있지만 공연을 하지 않을 때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동떨어진 타인들이었다.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면 공연히 피해를 입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부평초처럼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고 보면 그런 마음이 들 만도 했다.
 하지만 마가촌만은 다르다.
 외진 곳에 있는 촌락들은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마가촌 사람들도 혈연(血緣)으로 맺어졌다. 어느 집이나 가장(家長)들은 마(馬)씨 성을 썼고, 누구 집에 젓가락이 몇 개인지조차 눈감고 헤아릴 정도로 서로간에 친목이 두터웠다. 더욱이 사내들은 수렵(狩獵)이 주업이었다. 당연히 다른 촌민들과는 달리 마가촌 사내들은 무용(武勇)이 뛰어났다. 그런 마가촌을 상대로 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인가.
 들과 산을 뛰어다니며 단련한 건각(健脚), 사나운 맹수라도 단번에 숨통을 끊어 놓는 활 솜씨, 특히 뾰족한 돌멩이를 던지는 투석기(投石技)는 인근 촌락에 널리 알려진 명기(名技)였다.
 “암, 그렇지. 우리 마을에서는 감히 딴생각을 못 하지. 그럼, 왜 이렇게 한적한 마을에서 공연하지? 공연할 곳이라면 다른 곳도 많은데 말야.”
 “휴우! 이런 흉년에는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도읍이라고 별수있을라고······ 아마 장안(長安)으로 가는 중일 게야. 여비(旅費)가 떨어진 게지 뭐.”
 “그럴까?”
 “그럼.”
 
 촌민들의 예측은 옳았다.
 이 년 내리 중원 전토를 휩쓴 가뭄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런 마당에 한가로이 곡예나 구경하며 동전 몇 푼이나마 던져줄 사람은 흔치 않았다.
 마희단 단주(團主)인 구포문(具葡雯)은 넓은 관도(官道)를 버리고 한적한 산길로 일행을 인솔했다.
 요지경 속에서는 어디나 사정이 매일반일 게다. 이럴 때는 가급적 농사와 연관이 없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앉아 있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다.
 엽사들은 가난하지만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한다. 물론 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있고, 겨울 한파를 이겨낼 수 있는 피혁(皮革)이 있다. 가진 것이 없다면 몰라도 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우려낼 자신이 있었다.
 비선령을 넘어서면서 퍼뜩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여비와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래도 동전 푼께나 만질 수 있는 장안은 아직도 까마득히 멀었다. 그래서 물어 물어 찾아왔는데, 이건 허투로 볼 게 아니었다.
 조그만 촌락이라지만 오십여 가구는 실히 될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들은 안색이 불그스레하니 보기 좋았다. 집집마다 말린 고기가 주렁주렁 매달렸고, 각종 짐승 가죽이 수북하니 쌓여 있다. 찾아도 아주 옳게 찾아온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며, 힘이 용솟음쳤다.
 “빨리빨리 서둘러!”
 구포문은 득달같이 소리치며 단원들을 닦달했다.
 밧줄 타기 명수인 화삼랑(禾三琅)은 말뚝을 박고 밧줄을 동여매는 중이었다. 그녀는 외줄 타기로 구경꾼을 절정 속에 몰아넣으리라. 돼지처럼 뚱뚱하지만 않다면 뭇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을 텐데. 아무리 재주를 팔아 먹고 사는 마희단이지만 오십 줄을 넘어선 뚱보 여인은 아무래도 문제였다. 더욱이 얼굴마저 오뉴월에 쉬어 버린 팥죽처럼 엉망이었으니.
 그녀의 남편이라는 작자 이전풍(李田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어느 구석에선가 술독에 코를 처박고 비몽사몽간 헤매고 있을 게다. 한때는 잘 나가는 무인이었다지만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위인이었다. 검은 언제나 지니고 다닌다. 하지만 수전증(手顫症)에 걸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무슨 검술을 전개하겠는가. 술 한 병이면 간이라도 빼줄 듯이 실실거리는 폐인. 화삼랑만 아니라면 당장 쫓아내고 싶은 인간이니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화삼랑 곁에서 밧줄을 부여잡고 있는 놈은 그녀의 아들인 이공(李空)이었다. 평민이면서 외자 이름을 가진 것도 볼썽사납지만, 아무 희기(稀技)도 없는 주제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건방진 태도는 정말 눈꼴 시렸다. 누가 말을 하면 귓전으로 흘려 듣는 건방진 놈. 하지만 구포문에게는 꼭 필요한 놈이었다.
 제 아비에게서 잔재주께나 주워 들었는지 제법 검이 날카로웠다. 오죽하면 이름 대신 귀야도(鬼夜刀)라 부르겠는가.
 ‘사내 자식이 몸 하나는 죽여 준단 말이야.’
 구포문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젊음의 표상인 튼튼한 몸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십여 년 전에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바짝 말랐던 놈이 이제는 구릿빛으로 반들반들 윤이 나고 근육으로만 뒤덮여 아주 아름다웠다. 아름다워? 사내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쓰기는 뭣하지만, 우람한 육체는 뛰어난 미색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증명해 주는 놈이었다.
 아름다운 곳은 또 있었다. 바로 눈이었다. 사내아이들은 거의 아비를 닮기 마련인데 귀야도는 어미 화삼랑을 닮아 눈이 깊고 서늘했다. 다듬지 않아 거친 수염에 깊은 눈동자, 아름답게까지 보이는 몸. 족히 여인네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한 놈이었다.
 “귀야도! 나 좀 도와 줄래?”
 복스런 얼굴에 티없이 맑은 눈동자를 지닌 상유화(桑琉花)가 커다란 옹기(甕器)를 내오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귀야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상유화가 귀야도를 일방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마희단원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정말 이럴 거야!”
 그녀는 샐쭉한 표정으로 허리에 턱 손을 올려 놓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화사했다. 거기에다가 그냥 들기에도 버거울 듯싶은 큰 옹기를 몸의 일부인 양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묘기를 보자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런 묘기를 지닌 여자가 옹기를 들지 못한다는 것은 순전히 엄살이었다. 그녀는 반응없는 외침을 지칠 줄 모르고 질러 댔다.
 구포문은 은근히 몸이 달아올랐다.
 철없는 계집인 줄 알았는데 근래 들어 부쩍 성숙해졌다. 도톰하게 올라온 가슴, 물이 알맞게 오른 엉덩이, 은은하게 풍기는 방향(芳香)······.
 십여 년 전,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인 늙은이에게서 은자 두 냥에 산 계집이었다. 그녀는 다른 동패들과는 달랐다. 다른 연놈들이야 겨울이 되면 뿔뿔이 흩어지지만 은자를 주고 산 계집은 곁에 남아 있어야 한다.
 ‘장안에서 공연을 마치고 동패들과 헤어지면 그때는······.’
 구포문은 스멀거리는 욕념을 진저리치듯이 떨쳐 버렸다. 어차피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이니 급하게 서둘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계제가 아니었다. 분명히 미시초(未時初)부터 공연한다고 그렇게나 떠벌렸는데도 호기심을 참지 못한 촌민들이 벌써부터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예상했던 일이다. 일 년 열두 달 중에 이런 진기를 구경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는가. 아이놈들은 틀림없이 처음 구경하는 것일 게다. 그러니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모두가 신기하게 보일 터였다.
 “빌어먹을! 행동들이 이렇게 굼떠서 어떡하겠다는 거야? 에잉! 야! 너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남들은 바쁘게 일하는데 편안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어?”
 갑자기 치민 노기로 이백여 근은 족히 나갈 것 같은 육 척 거구가 부르르 떨렸다.
 왕국무(王國無)!
 언제나 살살 요령만 피우며 빤질거리는 주제에 불평은 유달리 많은 놈. 이렇게 바쁜 와중에 편하게 쭈그리고 앉아 하늘이나 올려다 보고 있다니.
 가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하지만 마희단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계절이었다. 그 동안 벌어들인 돈이 아직까지 남아 있겠는가. 그래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가진 재주가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공연만 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에는 죽을 힘을 다해 모아야 한다. 그래야 기나긴 겨울밤을 편안하게 두 발 쭈욱 뻗고 지낼 수 있다.
 언제나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마희단원들도 사람인데 이런 고역이 좋을 리 있겠는가. 가을만 되면 지난날 방탕했던 생활을 후회하고, 내년에는 꼭 계획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짐하지만 그런 생각은 긴긴 겨울밤을 때리는 혹독한 추위와 함께 땅 속에 얼어 버린다. 봄이 되고, 동패들을 만나 어려웠던 지난 겨울을 이야기하는 동안 지랄 같은 술병이 다시 도지고 만다.
 왕국무는 그런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배, 배가 너무 아파서······.”
 “뭐? 배가 아파? 정말 배 아프게 만들어 줄까?”
 순간, 왕국무는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구겼다.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풍기는 악취라니.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씻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성격에 이빨이라고 제대로 닦을 리 없었다. 아침이면 녹차(綠茶)로 입가심을 대신해 짙은 녹색으로 물들은 이빨과 썩은 생선보다 더 지독한 구취(口臭)는 이미 정평이 나있는 터였다.
 ‘저런 놈하고 같이 사는 여자는 도대체 어떤 여자야? 곁에만 있어도 이렇게 골이 지끈거리는데 옆에 누워 있으면······ 으휴! 끔찍하다. 끔찍해.’
 왕국무는 저도 모르게 한 여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원숭이를 꺼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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