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리드 에이 투 비 [E]

리드 에이 투 비 1권 (1)

2016.08.11 조회 662 추천 8


 * 프롤로그
 
 
 
 사람에게는 무릇 ‘그릇’이라는 게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최대한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끝자락, 즉 한계라고 표현할 수 있다.
 범재는 천재와 같아질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나더라도, 전 세계를 주름잡는 대부호가 될 수는 없다.
 가난한 자에게 돈을 쥐여 줘도 쓰는 법을 모르거나 문명과 동떨어진 아프리카 부족에 기관총을 선물해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그릇’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2평짜리 방에서 잠을 취하고,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학생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릇을, 나는 대학 시절쯤부터 깨닫고 있었다. 분명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겠구나, 혹은 공무원이 되어서 노후만 생각하며 일하겠구나. 나라를 구할 위인이나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칠 과학자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내가 한계 속에 있더라도, 나는 절대 위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고작해야 공장의 사장 정도 되겠지. 혹은 대기업의 팀장이나 과장 정도는 될지도 모른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이사 정도는 될까. 어쩌면 인터넷 쇼핑몰의 CEO가 되어서 적당한 규모의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고작 내가 내게 기대하는 최대치의 ‘그릇’은 그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이 나에게 부여한 그릇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전 세계에서 오직 다섯 명뿐인 마법사.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그릇은 붕괴되었다.
 
 
 
 * 나는 꿈을 꾼다 (1)
 
 
 
 현우는 스캐너로 바코드를 찍었다.
 모니터에 뜨는 가격을 기계적으로 읽고 돈을 받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2년. 힘든 대학 생활을 이어 가려면 앞으로 2년을 더 해야 한다.
 ‘하루 매출만 내 주머니로 들어온다면······.’
 대학교와 병원 사이에 있는 편의점은 하루 매출이 엄청나다. 한번 일어나면 퇴근 시간이 되어야 앉을 수 있을 정도다. 이 정도로 장사가 잘되니, 편의점의 하루 매출로 현우의 대학 등록금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후우······ 몸이 남아나질 않네.’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께 지원받고 싶지만, 부모님이 희망한 대학교를 제치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입학했다. 이러니 등록금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순리였다. 물론,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이 20이 넘은 만큼 더 이상 부모님에게 신세 지는 것을 사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용병이 되었다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는데······.’
 용병이란 이상 진화를 일으킨 동식물, 즉 괴수를 사냥하는 사람을 뜻한다. 괴수들의 사체는 온갖 산업에서 쓰이는 중요한 자원이라 괴수를 사냥하는 용병은 대체로 큰돈을 만질 수 있다.
 물론 괴수를 사냥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용병이 되는 것부터 운이 따라야 한다.
 대략적으로 만 분의 일.
 이것이 사람이 이상 진화를 할 수 있는 확률이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진화했다고 믿은 건지······.’
 사실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을 거부한 것은 말도 안 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무슨 약이라도 했던 것인지, 현우는 자신이 이상 진화자이니 당연히 용병이 되어 큰돈을 벌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관심이 있었던 유명 대학의 괴수생물학과에 지원했다.
 그러나 처참하게도, 검사 결과는 비진화자 판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힘겨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미 등록금은 내 버렸고, 입학은 결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사이는 틀어졌고, 주변 사람들도 잘해 보라는 식으로 이미 이야기가 끝나 있었다.
 결국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미 2년이나 이 대학교를 다녔다.
 강의는 이 힘겨운 생활을 버텨 낼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학문의 재미를 선사했다. 성적은 등록금의 절반을 지원받을 정도로 훌륭했다. 힘들다고 그만두기에는 이미 너무 먼 곳까지 와 버렸다.
 뇌는 이미 생물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식당을 하기에는 사고방식이나 관점 같은 게 너무나도 달라져 버렸다.
 ‘뭐, 머릿속에 든 건 생물학뿐만이 아니지만.’
 양현우라는 인간은 신체검사를 받은 이후로 상당히 달라졌다. 고교 졸업의 이전과 지금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다.
 흔히 말하는 ‘철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성에는 변화가 없다. 어린 시절의 습관은 여전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뀌었다고 확신하는 건 역시 ‘잠자리’ 때문이다.
 여성과 매일 밤 관계를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로 ‘꿈’이 문제였다.
 오늘 밤도 꿈속에서 낯선 생활을 할 것이다. 아니, 2년이나 되었으니 슬슬 적응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응은 무슨······. 퇴근 준비나 하자.’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때마침 다음 근무자가 종소리를 울리며 들어와 인사했다. 가볍게 맞대응해 주고 시재 점검을 한 뒤, 교대했다.
 현우가 생활하는 곳은 대학교의 기숙사다.
 입구에 있는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얼굴을 마주치기가 두려운 선후배들을 피해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2~3평의 좁은 방. 냉장고와 책상, 침대, 작은 화장실. 거기에 사람 한 명을 더 보태면 꽉 차는 방이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현우는 꽉 차서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몸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침대로 직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냉장고에 넣어 둔 우유를 마시고 샤워했다.
 뜨거운 물로 온몸을 씻었다.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잔다면 어디에서도 느껴 본 적이 없는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우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요 2년간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 간의 불화나 여유가 없는 통장 잔고 탓이 아니었다.
 ‘자긴 자야겠지.’
 자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잠은 자야 한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강의가 있고, 그 뒤에는 아르바이트도 있다. 일정을 위해서라도 일찍 자야 체력을 보충할 수 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천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끼며 오늘도 수면제를 찾았다.
 차가운 냉수와 함께 씁쓸한 가루약이 목에 넘어간다. 이제 조금 있으면 수면에 빠질 것이다.
 푹신하지 못한 스프링 침대에 누워 곧 찾아올 수마에 대비했다. 물론 대비하는 행동이란 내일 아침에 배탈이 나지 않도록 이불을 덮는 것뿐이다. 혹은 목이 아프지 않도록 바른 자세로 눕고 베개를 베든가.
 어느 잡지에서 본 올바른 수면 방법을 떠올리고 즉시 시행했다. 심호흡을 하고, 손을 배꼽 위에 올려 둔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사야는 고물이 된 컴퓨터에 짜증을 냈다. 얼마 전부터 오류 메시지가 뜨더니 기어코 맛이 간 모양이다. 산 지 5년 정도 되었으니 슬슬 바꿀 시기이기는 하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기로 했다. 화면이 작고 전용 모바일 웹이 깔린 시대이다 보니 어지간한 컴퓨터보다는 빠르다.
 ‘진작에 스마트폰으로 할걸.’
 요즘 스마트폰은 어지간한 PC보다 빠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컴퓨터를 고집했던 것은 컴퓨터가 주는 재미 때문이다. 아니, 컴퓨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극’이라고 해야 할까.
 모니터 속의 작은 램프들이 쏘아 내는 빛,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는 손의 감각, 그와 동시에 마우스를 조작하는 뇌의 처리 능력. 스마트폰은 이러한 것들을 거의 즐길 수 없게 만들었다. 이 탓에 사야는 스마트폰을 쓰는 것을 기피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고장 나 버렸으니, 한동안은 스마트폰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이쪽이 더 편하긴 하네.’
 상체를 반쯤 벽에 기댄 채로 침대에 누워서 음성 검색을 시작했다. 주어진 키워드로 검색을 끝낸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익숙한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
 ‘오리진.’
 용병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다. 이곳에서 괴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거나 국가 기관의 의뢰를 받고, 함께 팀을 짤 동료들을 모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사용법은 무궁무진하다.
 ‘적당한 사냥감 없나.’
 용병인 만큼 경제적 여유는 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어서 자꾸만 일을 찾게 되었다. 정확히는 일할 필요가 없을 만큼 돈이 있지만, 일은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용병의 숙명 같은 것이다, 이제 괴수 사냥 말고는 다른 일은 쳐다볼 수도 없게 되었으니.
 괴수 사냥만이 주는 쾌감이 문제였다. 생명을 담보로 괴수의 몸을 노리는 줄다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감이 바로 그것이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경험을 확장시킨다고 하는데, 사야는 괴수 사냥을 통해 자신의 경험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계속 느끼기 위해 괴수 사냥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마약만이 주는 감각에 중독성을 느껴 마약을 찾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용병이라는 사람은 괴수를 사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이야기다. 그 운명에 화답하기 위해, 사야는 괴수 출현 정보를 찾았다.
 ‘남산 타워 수색 팀을 꾸린다고? 관공서에서 대대적으로 사냥 의뢰를 뿌리겠군.’
 보통 용병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은 국가 기관이다.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사야는 국가 기관에서 의뢰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이나 특례 등을 생각하면 그쪽의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 옳겠지만, 이상하게도 국가의 끄나풀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냥에는 후회가 없어야 한다. 남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니만큼, 국가의 대의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
 물론, 국가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S레이트 괴수를 사냥할 때는 어쩔 수 없다. 끄나풀이라도 되어야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
 ‘어디······ 괜찮은 놈 없나?’
 사야가 원하는 괴수란 신종이다.
 이는 아직 등급이 측정되지 않은 괴수를 뜻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느낀 쾌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갓 진화한 괴수의 정보를 서둘러 알고 싶었다.
 물론 신종을 사냥하는 것까지가 사야의 소망이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종 사냥은 주목적이 아니다.
 괴수가 나타난 뒤로 전 세계의 산이 밀림으로 변했다. 따라서 신종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산속에 들어가 ‘탐험’해야만 한다. 사야는 바로 이 과정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신종을 찾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통해 많은 정보를 읽어 내리던 사야는 어느 한 게시물을 발견했다. 사야처럼 탐험가를 자처하는 것으로 보이는 무리가 신종으로 추측되는 흔적을 발견했다며 함께 신종을 추적할 팀원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팀은 별로인데······.’
 사야는 보통 신종 사냥을 단독으로 수행했다. 단체로 행동하면 그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을 이룰 시, 다수가 탐색하는 만큼 진척이 빨랐다. 애초에 신종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도 몇 개월에 한 번이다.
 사야는 고민을 거듭하다 하는 수 없이 게시물에 첨부된 신청서를 작성했다.
 메일로 신청서를 보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커뮤니티의 대화 신청 메시지가 왔다. 상대방의 아이디를 확인하니 방금 신청서를 보낸 인물이었다. 가볍게 예스 버튼을 눌렀다.
 
 
 
 
 흔히 하는 오해였다. 사야는 어떤 대답을 해 주어야 상대방이 확신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상대방과의 대화가 끊겼다. 사야는 원만하게 팀에 들어간 것을 자축하며 답신을 기다렸다.
 수 초 뒤,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한 듯한 메일이 도착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탐험’ 같은 행위를 처음 하는 용병들이 주의해야 하는 사항,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조언과 일정이 적혀 있었다. 적어도 팀 멜론의 리더는 어쭙잖은 용병이 아닌 듯했다.
 ‘동류인가? 아니지. 팀을 직접 짜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인간 이사야를 평하자면,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 사람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팀 멜론의 리더는 리더십이 있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팀을 직접 짤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대개 팀은 리더의 역량을 보여 준다. 리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냥을 해 왔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여 얼마나 많은 인간관계를 쌓아 왔는지가 철저하게 드러난다.
 용병 세계에서 ‘탐험’ 같은 행위를 목표로 하는 팀은 적다. 그럼에도 팀 멜론의 구성원은 많은 편이다.
 어쩌면 이번 사냥은 상당히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사야는 사냥 준비를 시작했다.
 
 
 
 충분한 수면을 취했으나 여전히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나 항상 그렇지만, 잠은 자도 자도 부족한 것이리라.
 하지만 현우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낯설고 생생한 장면이 잠을 자는 동안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잠을 잤지만 잔 것 같지가 않다.
 혈압도 정상이고 어깨가 결리지도 않는데 자고 나면 불편함을 느꼈다. 정신적 소모라는 말은 이것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편하게 잘 수 있을까.’
 병원에 가서 상담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조금만 있으면 증상이 사라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렇게 생활한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적응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어디 가서 상담할 수도,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여유도 없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조금 흥미가 있긴 해.’
 남의 인생을 훔쳐본다는 것은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기분이다. 더군다나 지켜보는 대상이 ‘용병’이라면 그 꿈은 그야말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 할 만하다.
 사야의 삶은 용병이 되고 싶었던 양현우에게 더할 나위 없는 대리 만족을 주었다. 그래서 ‘꿈’이 사라지지 않도록 놔두는 건지도 모른다.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할 텐데, 대리 만족이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느냐······.’
 스스로를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대학 생활로 고민하거나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 똑 부러지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우유부단한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고민하며 현우는 아침을 시작했다.
 좁은 샤워 부스에서 머리를 감고 나갈 준비를 했다. 우유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아침 식사는 끝. 나름의 꽃단장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신입생이 들어온다고 했던가?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데······.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긴 하네.’
 나갈 채비를 끝내고 현우는 기숙사 밖으로 향했다.
 앞서 나가는 선후배들에게 간단하게 인사했다.
 현우는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쌓아 왔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공부와 등록금을 한 번에 잡느라 인간관계를 소홀히 했다. 그 탓에 신학기가 되어서도 그에게 깊은 친분을 드러내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대학생이 없었다. 쓸쓸하다면 조금 쓸쓸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은 이성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고, 선후배의 돈독한 우애를 나눌 예정도 없다.
 언제나처럼 귀를 막듯 이어폰을 꽂아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차단했다.
 ‘사야랑 언뜻 비슷한 점도 있는 것 같네.’
 어딘가에서 본 말이 떠올랐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는 심연에 먹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야의 삶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사야가 되는 듯한 느낌이 가끔씩 들었다, 그의 습관이나 말투, 심리적 변화까지.
 앞으로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현우는 대학교로 이동했다.
 대학교에 들어서자 벌써부터 친분을 나누고 있는 낯선 얼굴들이 보였다. 이성 후배와 담소를 나누는 동기나 팔짱을 끼고 강의실로 걷는 캠퍼스 커플들을 보며 현우는 혀를 찼다.
 부러웠다. 자신도 시간적, 금전적 여유만 있었다면 저런 헤픈 생활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용병만 되었더라면······.’
 이제 와서 아깝게 생각해 보았자 의미는 없었다. 만 분의 일의 확률로 나타난다는 이상 진화는 결국 그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괜히 스스로에게 짜증을 느끼며 현우는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건물로 들어서자 낯익은 조교들과 교수들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아, 현우로군. 방학 동안 한 번도 못 봐서 잊을 뻔했네. 얼굴 좀 자주 비치지 그러나?”
 “아시다시피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백 교수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린 듯 놀란 눈이 되었다. 금방 표정을 수습하더니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렇군. 그래······ 자네라면 잘해 줄 것 같기도 하고······.”
 옆에 있던 조교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백 교수님, 슬슬 준비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으음, 알겠네.”
 백 교수는 현우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첫 강의가 끝나고 잠깐 연구실로 와 줄 수 있나?”
 교수의 제안을 학생으로서 거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다음 강의까지 쉬는 시간이 있으니 연구실을 다녀오기에는 충분했다.
 “마침 첫 강의도 백 교수님의 수업입니다. 끝나고 기다리겠습니다.”
 “오, 그렇군. 그럼 끝나고 함께 연구실로 가도록 하지. 난 준비할 것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네.”
 조교와 백 교수가 멀어졌다. 현우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숙였다. 딱히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눈에 띄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이란 힘들다. 우수한 탓에 조별 과제를 홀로 떠맡거나 과제를 도용당하거나 이용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관심을 받게 되면 그러한 흐름에 휘말리고 만다. 선배, 동기는 물론이고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까지.
 하지만 이미 늦은 모양이다. 앳되어 보이는 여학생과 남학생 무리가 현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번 학기에 입학한 정은미입니다.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양현우. 미안하지만 바빠서 이만······.”
 자신을 둘러싼 후배들을 물리치고 강의실로 향했다. 뒤에서 무어라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백 교수의 성격을 보아, 신학기 첫날부터 열정이 담긴 강의를 할 것이 분명하다. 현우는 책을 꺼내 예습을 시작했다.
 방학 기간 동안 간간이 책을 들여다보았지만, 예상대로 까먹은 부분들이 간혹 보였다. 다시 한 번 개념을 익히며 현우는 집중했다.
 그러나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신학기라 그런지 강의실 밖이 너무나도 시끄러웠던 것이다. 문을 닫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랬다간 눈총을 살 가능성이 높다. 하는 수 없이 이어폰이라도 꽂기로 했다.
 둥둥둥둥, 우당탕탕.
 ‘아, 정말 신학기, 처음 맞이하나.’
 음악이 묻힐 정도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건물에서 뛰는 것처럼 진동마저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크게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우는 그런 대범한 성격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참고 견뎌 내는 수밖에 없다.
 모든 걸 무시하고 잠자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름 있는 대학교를 온 만큼 집중력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벌써 강의가 시작할 무렵이 되었다.
 어느새 빼곡히 가득 찬 강의실.
 백 교수는 언론에도 얼굴을 비칠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의를 듣는 학생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강의실이 꽉 차는 것이 얼마 만인지······.’
 분명 신학기 버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강의에 임했다.
 “아, 그럼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앞서, 우리 학교에 특례 입학을 하게 된 임나래 양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네.”
 ‘임나래?’
 낯익은 이름이었다. 강의실이 급격하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자, 현우는 왠지 모를 흥분을 느꼈다.
 ‘임나래라면······.’
 고개를 돌려 소란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웨이브 진 긴 검은 머리, 앵두 같은 입술. 눈은 적당히 컸고, 코는 오똑했다. 피부는 하얀 것이 피부과라도 다니는 모양이다.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상. 현우는 혀를 차며 오늘의 소란이 저 여자 때문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계약 용병······.’
 국가는 괴수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국가는 용병이라는 이상 진화자들을 이용했다. 그리고 다른 국민들이 그들에게 괴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 용병들을 매니지먼트했다.
 일종의 연예 사업처럼 국가 계약을 한 용병들이 사냥하는 영상 및 일상생활을 ‘연예인’인 양 대중매체에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이상 진화자와 비진화자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임나래는 용병이면서 연예인인 셈이다.
 대중에게 신뢰받는 용병이 어째서 대학교 따위에 왔는지 현우는 궁금해졌다.
 어쩌면 이것도 이미지를 위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임나래의 입학이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연예인을 쫓고 희망을 갖는 것은 아직 현실을 보지 못한 녀석들이나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립하여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임나래가 입학하든 옆에서 수업을 듣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자신에게 피해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임나래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괴수생물학과에서 동고동락할 임나래입니다. 아시다시피 용병 일을 하고 있고요. 평소 괴수 사냥에 생물학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배우러 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흥미를 끊으려 해도 귀담아 듣게 되어 버리는 청아한 목소리다. 아무나 연예인 짓을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임나래의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인지, 백 교수가 말을 덧붙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래 양은 특례 입학을 했네. 이에 대해 왈가불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말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이야기하겠네. 나래 양은 입학을 위한 시험을 직접 치렀고, 실전에서 괴수를 사냥하면서 체득한 지식과 경험이 우리 학과에 도움이 된다 하여 허가가 떨어졌네. 증거를 원하는 학생은 조심스럽게 나를 찾아오도록.”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백 교수의 평판은 신용할 만한 것이기에 특례 입학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다문 것이다.
 “자, 그럼 소개가 끝났으니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네.”
 프레젠테이션을 띄우며 교수는 농담이라도 하듯 한마디 툭 내뱉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강의실이 만석이지만, 과연 마지막까지 몇 명이나 남을지 궁금하군.”
 작은 웃음소리가 번졌다. 현우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오늘 강의는 유난히도 어려웠다.
 자리만 차지하는 학생들 때문이었다. 임나래를 가까이에서 보고자 수강 신청을 한 학생들. 그들을 내쫓기 위해 백 교수는 강의를 어렵게 풀어 나갔다.
 현우는 평상시와 다르게 말을 돌려 하는 백 교수의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보충 설명해 주시겠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강의 내내 정신없던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정리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의를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강의가 끝날 즈음에는 처음의 10%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선택 수강이란 정말 좋은 제도라고 생각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점심시간까지 오버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현우는 정신적으로 지쳐 한숨을 내쉬었다.
 백 교수가 강의 종료를 알리자, 현우는 책상에 잠깐 누웠다. 끝나고 백 교수와 대화하기로 했으니 정리가 다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임나래 때문에 지금 당장 강의실 밖으로 나가면 곤욕을 치를 것이 분명하다.
 백 교수가 나갈 준비를 끝내자, 서로 눈이 마주쳤다. 무언의 대화를 나눈 뒤, 현우는 강의실 밖으로 향했다.
 사생 팬처럼 주둔하고 있는 학생들을 밀어냈다. 임나래는 아직 강의실에서 나올 기색이 없었다. 낯선 수업과 어려운 내용에 지쳐 버린 모양이다.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백 교수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저렇게 모여 있으면······ 쯧쯧.”
 백 교수는 임나래 때문에 모인 학생들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유명 인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니까요. 저도 저런 행태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다면,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는 건가?”
 백 교수는 현우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얼굴에는 기분 나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현우는 그 말을 내뱉은 뒤,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을 깨달았다.
 여유가 없었을 뿐이지, 만약 여유 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면 분명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양현우는 심사가 뒤틀린 인간이 아니다. 단지 평범하게 생활할 여유가 없는 것뿐이다.
 “그보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백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연구실로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여기에서 할 말은 아니야.”
 “네.”
 현우와 백 교수는 연구실로 이동했다.
 “차? 커피? 뭐 먹고 싶은 게 있나? 꿀도 있고 외국에서 주문한 고급 홍차도 있네.”
 “그냥 물로 충분합니다.”
 백 교수는 어깨를 으쓱한 뒤, 냉수에 꿀을 섞어 건넸다.
 “얼굴이 피곤해 보여. 그럴 때는 단게 최고지.”
 잠자리가 편하지 않은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빠듯한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현우의 얼굴색은 좋지 않았다. 피부는 푸석푸석했고 머릿결은 상해 있었다.
 자신을 배려한 교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현우는 달달한 꿀물을 들이켰다. 설탕이 섞이지 않은 좋은 꿀인 모양이었다. 목 넘기는 감각이 기분 좋아 괜한 행복감을 느꼈다.
 “한 잔 더 필요한가?”
 “아닙니다. 강의가 길어진 탓에 시간이 빠듯해서······.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백 교수는 책상으로 가더니, 서랍에서 흰 종이봉투를 꺼냈다.
 “임나래 양에게 부탁 하나를 받았거든. 근데 나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 때문에 여유가 없어. 자네가 나 대신에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하네.”
 종이봉투 속에는 아니나 다를까, 돈이 있었다.
 무슨 부탁인지 몰라도 임나래는 연예인과 용병을 병행해서 그런지 금전적 여유가 넘치는 모양이었다. 현우로서는 군침이 당기는 액수였다. 이 정도의 액수라면 목숨에 위해가 가지 않는 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우는 백 교수가 말하는 임나래의 부탁에 대해서 들어 보기로 했다.
 “정확히 어떤 일입니까? 남들에게 함구해야 할 정도인 겁니까?”
 “아니, 그 정도는 아니네. 뭐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자문을 구하는 정도라고 해야겠지. 임나래 양이 오늘 내 강의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나?”
 현우는 오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임나래의 자기소개, 입학 동기 등.
 기억에 의하면 평상시 생물학이 괴수 사냥에 도움이 된다고 느껴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네, 분명 용병 일과 관련되어 배우기로 했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맞네. 임나래 양의 부탁이란 이쪽 일을 배우면서 자문을 구하는 것이네. 교수인 나에게 제안했던 것이지만, 우리 학과의 우등생인 자네라면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현우는 백 교수의 배려를 느꼈다. 등록금을 내기도 빠듯한 현우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잘만 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건가······.’
 백 교수 정도의 경험과 지식은 없었지만, 현우는 어렵다고 정평이 난 백 교수의 강의를 2년 동안 들었다. 동기나 선후배보다는 지식의 양이 많다고 자부한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교수님.”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던 모양인지 백 교수는 웃음을 띠었다.
 “이렇게 된 것, 한번 임나래 양을 보고 가겠나?”
 임나래와 만난다는 것은 남자로서 설렘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와 엮이게 될 경우 어떤 고행을 겪을지 상상이 되었다.
 “사양하겠습니다.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은 역시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알겠네. 나래 양에게는 내가 이야기해 두도록 하지.”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 교수가 건넨 돈 봉투는 챙기지 않았다.
 “이거 안 가져가나?”
 “자신감이 없어서요. 교수님의 대신이 될 정도로 노력은 해 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돈을 돌려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맡겨 두겠습니다.”
 “돈이 어떻게 되든 나야 상관은 없지만······. 자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맡아 두겠네. 다음 강의에서 보지.”
 현우는 인사하고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오후 강의를 들은 다음, 곧장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큰돈이 들어올 기회가 생겼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우는 일주일 내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쉬는 날은 없다. 따라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요 2년 동안은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쉰 적이 없었다.
 물론 현우도 사람인 만큼 쉬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쉬게 된다면 그동안 다잡은 정신이 풀어지게 된다.
 ‘2년 연속으로 일하고 있다고······. 쉬면 그날로 끝장이야.’
 학교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호황이었다. 오늘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욱 손님이 많았다.
 죽을 것 같은 얼굴인 근무자와 교대한 후, 현우는 업무를 시작했다. 담배를 사는 사람, 음료를 사는 사람, 간식거리를 사는 사람 등 많은 손님들이 있었지만,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계산했다.
 매번 하는 일이다. 지겹다 못해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스캐너에는 자신의 지문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는 수밖에······.’
 한참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렸다.
 그에게 전화를 걸 만한 인물은 몇 없다. 백 교수와 부모님, 그리고 학교행사로 인해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과 대표 정도다.
 바쁜 와중에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액정에는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벨 소리를 줄이고 진동 모드로 바꾸었다.
 ‘광고겠지, 뭐.’
 잠시 지체된 사이에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졌다. 현우는 핸드폰을 계산대 구석에 박아 두었다.
 “5,700원입니다.”
 다시 일에 집중했다. 정신이 다른 곳으로 새어 버리면, 그 순간 쓸데없는 것을 의식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일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 금세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2년은 더 일해야 하는 입장상,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순식간에 무념무상인 상태로 계산하는 기계가 된 현우는 불필요한 것을 의식에서 멀리 미뤄 둔 채 묵묵히 업무를 처리해 나갔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갑작스럽게 현우의 앞에서 큰 목소리가 울렸다. 현우는 손님의 혼잣말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바코드를 찍었다.
 “1.500······.”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느냐고!”
 화들짝 놀란 현우는 그제야 손님의 얼굴을 보았다. 깊게 눌러쓴 모자, 갈색 계열의 렌즈가 인상적인 선글라스. 그 외 얼굴은 스카프나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예?”
 “귀 먹었어?”
 뒤늦게 손님이 자신에게 한 말임을 깨달았다. 현우는 편의점을 둘러보고 있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하, 정말이지······.”
 호통을 친 손님은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얼굴을 내비쳤다. 드러나는 인상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그리고 목소리도······. 곧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챈 현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임나래······.’
 임나래가 눈앞에 있고 자신에게 말을 건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현우에게 중요한 것은 편의점 일이다. 그녀가 위장을 벗어 던지면 이곳은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나보고 기다리라고? 정말 여기서 무슨 일을 하나 했더니만······ 후. 언제쯤 끝나는데?”
 “12시쯤에······.”
 “미쳤구나!”
 현우는 고개를 숙였다. 어쩔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당장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나래는 시계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이 있어. 끝날 때 다시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하이힐을 신은 임나래가 뚜벅뚜벅 걸어 편의점을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골치 아프군······.’
 임나래가 편의점까지 왔다는 사실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분명 생물학에 대한 자문을 구한다고 했는데, 그게 굳이 늦은 시간에 만나서 해야 할 대화인지 의문이 들었다. 상대에게는 급한 것이리라.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임나래가 지나간 여파 때문인지 현우는 계산하면서 잦은 실수를 했다. 급기야 시재 점검 도중 돈이 맞지 않다는 걸 알고 두통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갑에서 빈 돈을 채웠다.
 “현우 형답지 않게 실수를 하셨네요.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교대자의 말에 현우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미안, 조금 정신없었어. 수고해.”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기숙사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날 엿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낮에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스타답지 않게 괄괄한 성격이었다.
 아니, 본래 용병이라는 걸 생각하면 성격을 왈가불가할 필요는 없었다. 연예인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이다. 아양을 떨며 예쁜 척을 할 필요는 없다. 인기를 얻고 예능 프로에 나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편견이 있었던 걸까.’
 임나래에게 자신이 상상하는 완벽한 여성의 이미지를 부여한 모양이다. 현우는 그런 자신에게 괜한 실망감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알아채서 다행이었다.
 10여 분 정도 기다렸을까, 슬슬 싸늘함을 느낄 즈음, 검은 승용차 하나가 현우의 앞에 멈춰 섰다.
 선탠을 한 유리창 너머로 임나래의 모습이 보였다. 연예인을 겸업하고 있었지만, 행사나 방송에 나가진 않는 관계로 매니저 따위는 없는 듯했다.
 “타.”
 알고 있던 대로 성격이 괄괄했다. 현우는 휘둘릴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잡지에서나 볼 법한 고급 승용차에 조심스럽게 탔다.
 ‘밀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현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나래가 입을 열었다.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기껏 부탁한다고 말까지 했는데 백 교수님은 나 몰라라 하고, 널 소개시켜 주시다니······. 너도 너 나름대로 심했어.”
 “죄송합니다. 일개 학생인지라 여러모로 바쁩니다.”
 씩씩거리던 임나래는 숨을 가다듬더니 손을 내밀었다. 다급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차분하게 생각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인사할게. 알다시피 임나래야. 나이는 너보다 많으니까 반말 써도 되지?”
 백 교수를 통해 현우의 신원 정보를 파악한 모양이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처음부터 반말을 썼으면서······.’
 “백 교수님만큼은 아니지만, 교수님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양현우입니다.”
 그녀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희고 가는 손에서 부드럽고 기분 좋은 체취가 묻어났다. 선천적으로 아름답기보단 신경 써서 관리한 듯했다.
 “우선······ 늦은 시간에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 급하게 물어볼 게 있었거든.”
 “아닙니다. 제 탓도 있는걸요. 한데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역시 생물학?”
 “응. 백 교수님한테 물어보니까 너, 일반 생물학보다 괴수학 쪽에 해박하다며.”
 “그렇긴 합니다만.”
 현우가 생물학도이긴 하지만 흥미를 가지는 건 일반적인 생물이 아닌 진화한 괴수였다. 매일 밤 용병의 생활을 보고 있으니 사야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째서 동식물들이 진화했고 어떤 방향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해 주로 공부했다.
 “쓸 만한지 한번 시험해 보겠어.”
 임나래는 자신의 태블릿을 건넸다. 액정에 PDF 파일 하나가 출력되었다. 괴수의 흔적으로 보이는 사진들이었다. 최초 발견자의 사설이 곁들여 있었다.
 “제가 이쪽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사진만 보여 준다고 해서 신종 괴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낼 순 없습니다.”
 현우의 말에 임나래는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건 완전히 사진만 보여 주고 컴퓨터 어디가 고장 났냐고 물어보는 꼴인데······.’
 불만스러웠지만, 주어진 자료를 통해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기로 했다.
 “하지만······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애초에 저 같은 프로파일러의 일이란 때려 맞히는 것이니까요.”
 “헤에, 뭔데?”
 현우는 사진의 어느 부분을 확대했다.
 “기본적인 괴수 프로파일링에 대해서는 나래 씨도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 이곳을 보면 나무가 뜯긴 자국이 있습니다.”
 임나래는 현우에게 달라붙어 태블릿을 주시했다. 한순간 가슴이 두근거린 현우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거 그냥 긁힌 자국 아니야? 외피가 거칠게 진화했을 수도 있잖아.”
 “이건 긁혔다기보다 뜯긴 것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면 톱 같은 걸로······. 외피에 긁혔다고 하기에는 진화의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외피는 방어구에 가까우니까요. 물론 원류가 고슴도치 같은 거라면 이해가 갑니다만, 부천시 쪽은 공격적으로 외피 진화를 할 필요가 없는 환경입니다.”
 술술 나오는 현우의 말에 임나래는 웃음소리를 냈다. 대답이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대단한걸. 사실 이거 백 교수님에게도 물어본 건데······. 설마 답을 전해 들은 건 아니겠지?”
 “분명 백 교수님의 제자가 맞긴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자존심이 상하는데요.”
 “미안, 미안. 앞으로 그런 말 안 할게.”
 현우도 진심을 담아서 한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태블릿을 다시 조작했다. 이번에는 사진에 있는 바닥을 확대했다.
 “발자국을 보면 추적하는 괴수의 무게나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알고 계시죠?”
 “그거야 기본이니까. 근데 발자국은 없잖아?”
 현우는 사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림이 뭉개질 정도였다.
 “나래 씨는 관찰력을 높이셔야겠습니다. 이쯤이면 보이십니까?”
 “에······ 응, 보인다.”
 발자국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뭇잎이나 흙이 뭉개진 자국이 얼핏 보였다. 모두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뭉개진 자국이 일자로 되어 있네, 그것도 두 군데나. 뱀이 두 마리인가? 아니면 이족 보행형 동물?”
 “이족 보행이면 신종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조건들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현우는 턱을 괴고 생각해 보았다. 무게가 가볍다. 뜯어낸 흔적, 발이 기다란 것처럼 보이는 자국.
 “사마귀가 아닐까 합니다. 추측이긴 하지만······.”
 “어라, 거기까지 말하고도 자신감이 없는 거야? 남자답지 못하네.”
 “예상이 틀렸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니까······.”
 우물쭈물하며 말했지만, 충분한 대답이 되었나 보다. 임나래가 싱글벙글 웃는 것이 보였다.
 ‘그나저나 임나래가 원래 신종 사냥을 했던가?’
 현우가 알기로 임나래의 모든 괴수 사냥은 중요한 부분만 편집되어 온라인에 공개된다. 그 탓에 알 수 없는 위험을 내포한 신종 사냥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나래가 보여 준 것은 신종의 정보가 분명했다. 아마 신종을 사냥하는 것이리라.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쓸데없는 것만 아니라면.”
 “임나래 씨는 신종 사냥을 하지 않으시는 걸로 아는데요. 이건 혹시······.”
 임나래는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맞아. 근데 요즘 좀 지겨워져서······. 맨날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꼴이라······. 누가 신종 사냥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해 볼 생각이야. 벌써 팀도 모집했어.”
 “모집했다면 조만간 사냥하러 가시겠군요.”
 모집하고 사냥하러 간다면, 당연히 학교에는 나올 수 없게 된다. 임나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럴걸. 내일모레에 출발해. 그러니까······ 학교는 입학하자마자 못 가겠네. 어차피 졸업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뭐.”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수나 출석을 관리할 필요가 없는 입장인 만큼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뼈 빠지게 관리하는 현우로서는 허탈하고 부러운 입장이었다.
 “팀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팀 멜론. 이번에 만든 팀이고 영상 공개도 안 하니까 기대는 하지 마.”
 “아뇨, 그냥 궁금해서······ 잠깐, 멜론이라고요?”
 어디선가 들어 본 팀명이었다.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팀이다.
 ‘분명 사야가······.’
 “응, 멜론.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 아닙니다. 그냥 잊고 있던 게 떠올라서요.”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훔쳐보고 있는 사야의 삶과 접점이 생겨 버렸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슬슬 1시가 넘어가기도 하고······.”
 “뭐, 어디 안 좋아? 얼굴색이 나쁜데.”
 “잘 시간이라서 그렇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현우는 서둘러 기숙사로 향했다.
 이사야, 팀 멜론, 임나래.
 우연이 겹쳐 생긴 접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숨겨진 비밀이 밝혀진 것 같았다.
 심란한 상태로 기숙사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내일을 위해서는 오늘 밤도 결국 잠을 자야 할 것이다.
 ‘팀 멜론······.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마음을 다잡고 생각했다.
 사야는 임나래가 운영하는 팀 멜론에 소속되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갈등이 생겨나지 않는 한 팀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현우는 사야를 통해 임나래를 보게 된다.
 ‘보는 것······뿐이야. 내가 그 둘 사이의 대화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임나래 씨는 내가 사야를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없어. 상식적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두근대는 심장이 진정되었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수마에 허우적거리며 눈을 감았다.
 2년 만에 약 없이 잠든 밤이었다.
 
 
 
 부천시.
 팀 멜론이 탐색하게 된 산은 원미구 역곡동에 있는 곳이다.
 부천시청 인근에 있는 산으로, 원래 멀미산, 춘덕산, 세럴산으로 각기 다른 위치의 산이었으나 현재는 세계적으로 유행한 WT바이러스 덕에 하나로 뭉쳐 있다.
 당연하지만, 인근에 있던 건물들 또한 산의 일부가 되었다. 예전의 부천시청은 산속의 전초기지가 된 지 오래였다.
 사야는 네비게이션을 통해 부천시청의 위치를 가늠했다. 지형지물이 변한 탓에 길을 따라갈 순 없지만, 본래 있던 장소 정도는 알고 있으니 찾아가는 것은 쉬웠다.
 허리까지 오는 잡초들, 가끔씩 나타나는 사람들, 머리만 한 곤충들을 무시하며 사야는 옛 부천시청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많은 용병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튼튼한 가이드라인이나 동식물들이 싫어하는 자기장을 내뿜는 도구들이 즐비했다.
 용병 자격증을 이용해 세이프티 일부를 해제하고, 사야는 안으로 들어갔다.
 강화 방벽 너머로 환하게 타오르는 불빛이 보였다. 먼저 도착한 팀원들이 모닥불이라도 피운 모양이다.
 이상 진화를 하긴 했지만, 싸늘함을 느끼는 건 사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모닥불에 다가가 몸을 녹이기로 했다.
 “사야 님이신가요?”
 아무 말 없이 모닥불 인근에 앉자 용병들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사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명입니다.”
 용병 커뮤니티 사이트 오리진의 아이디는 사야의 본명이기도 했다. 사야의 말에 용병은 손을 내밀었다.
 “함께 행동하게 된 이석우입니다. 얼마나 함께할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한 명 한 명 사야에게 다가와 자기소개를 했다. 그들의 분위기나 말투를 보아하니 사야 말고는 모두 지인들인 모양이다.
 ‘새로 만든 팀인데 구성원은 모두 아는 사람들인가 보군.’
 그렇다면 다른 팀원들에게 있어 자신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사야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팀원들은 모두 이런 일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용병으로서 초짜는 없어 보였다. 팀원들 한 명 한 명을 지켜보다 사야는 입구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입을 떡 벌렸다. 용병계의 꽃, 임나래였다.
 국가의 끄나풀이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일을 하긴 하지만, 예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실제로 성격 또한 나쁘지 않아서 인망이 괜찮았다.
 ‘임나래의 팀이었던 건가. 신종 사냥은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팀 멜론의 계약서에는 사냥 장면이 공개된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설마 일부러 빼먹고 사기를 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일은 사야처럼 취미 삼아 하는 ‘탐험’임이 분명했다.
 ‘임나래와 같이 일하게 되다니 영광인걸.’
 기분이 좋긴 하지만, 환심을 사기 위해 이것저것 행동하는 것도 우스웠다. 애초의 계획대로 리더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이사야 씨? 반갑습니다, 임나래예요. 나이도 제가 더 많고 리더이기도 하니 말을 놓아도 되겠죠?”
 영상으로만 들었던 청아한 목소리에 긴장하는 한편, 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다가 보니까 다들 자기소개를 한 듯한데, 팀원에 대한 기본 자료는 모두 제공했으니까 따로 할 말은 필요 없겠지?”
 열 명 정도 되는 팀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야 또한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사냥 도중에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두 개의 분대로 나눌게. 당연하지만 리더인 내가 한쪽 분대의 리더이고, 나머지 하나는······.”
 임나래는 사야를 바라보았다.
 “모두 초면이겠지만 여기 사야에게 맡길게. 불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분 경력이 꽤나 눈부시다고.”
 예상치 못한 말에 사야는 당황했다. 여태까지 팀에 들어가 활동한 이래로 팀을 지휘하는 입장이 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먼저 와 있던 팀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나래 누나, 원래 분대장은 저였잖아요. 팀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신입보다 여기 있는 모두를 잘 알고 있는 제가 분대장이 되는 게 옳지 않을까요?”
 백번 맞는 소리다. 사야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학아, 네가 분대장이었던 것은 수많은 사냥 경력과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신종 사냥은 달라. 신종 사냥에 있어서는 여기 있는 사야가 전문가야.”
 그때 앉아 있던 여성 팀원들 중 한 명이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앗! 생각났어. 사야 씨 경력서, 다들 안 봤어? 엄청 대단하시던데.”
 “그러고 보니······ 홀몸으로 다수의 신종을 조사하고 사냥하셨던 것 같은데······.”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던 팀원들의 반응이 변했다.
 자신을 인정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누군가를 이끄는 건 달갑지 않았다. 사야는 이쯤에서 한마디 하기로 했다.
 “여러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 같은 사람이 분대장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다른 분에게 맡기는 편이······.”
 사야의 말을 임나래가 끊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팀에서 신종 사냥 전문가는 너뿐이야. 다들 한두 번 해 본 것뿐이고, 그것마저도 아주 먼 옛날 일이야. 그러니 네가 분대장을 해 줘야겠어.”
 사야를 보며 임나래는 윙크했다. 마음 같아서는 리더 자리라도 주고 싶다는 의사가 보였다.
 철저한 능력주의.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지만 사야는 좀 더 주변을 살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사야 씨가 분대장이 되는 게 좋겠어요.”
 “저도 찬성.”
 하나둘 찬성의 의사를 보였다. 일어나 있던 재학이라 불린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임나래는 사야에게 분대장의 완장을 건네며 말했다.
 “우리는 오픈 마인드라고. 낯선 사람이라고 배척하진 않아.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편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해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완장을 맸다.
 임나래는 이후로 이것저것 중요한 사항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참고해야 할 것은 모두 전달했으니 슬슬 출발해도 될까?”
 비록 신종 사냥은 처음이었지만, 다들 일반적인 괴수 사냥의 전문가들이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출발했다.
 시청 밖으로 나왔다. 밀림이 된 도시를 헤치며 신종의 흔적이 발견된 장소로 이동했다.
 부천시청에서 주로 출몰하는 괴수는 대부분 곤충이었다. 괴수가 출현하기 전까지 누군가가 키우던 애완동물도 일부 있었다.
 대부분의 괴수는 이미 사냥 방법이 정석처럼 알려져 있다, 어떤 약품을 이용하여 함정으로 유인하거나 약점이 되는 부분을 집중 공격하는 등. 용병의 사냥은 주의하기만 한다면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종은 알려진 것이 없었다. 어떤 동식물이 원류인지, 어떤 동식물과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는지, 무엇에 취약한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을 알아내고 사냥까지 하는 것이 이번 일이었다.
 “도착했어. 여기가 사진 속의 장소야.”
 신종의 흔적이 남아 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사진과 달리 이미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여기서 얻을 것은 없어 보였다.
 사야는 임나래가 제시한 프로파일링 자료를 재차 확인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꽤나 실력 있는 전문가를 고용한 모양이다. 방송인이기도 한 만큼 그녀의 발이 넓은 건 당연했다.
 ‘초보자들로 구성된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착실히 준비할 정도면 나쁘지 않은걸.’
 이런 전문가의 도움을 매번 받을 수 있다면, 이 팀에 속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임나래가 사야에게 조언을 구했다.
 “신종의 발자국 방향이 이쪽인데, 어떻게 할까.”
 “가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동하다 보면 또 어떤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애초에 부천시의 괴수 서식지 안에 있는 건 분명하니까.”
 사야의 말에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 원래 무언가를 찾는 것이란 잔디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이번 일은 한정된 장소가 제시되어 있으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언젠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에 남아 있던 신종의 흔적을 따라갔다. 무게가 가벼운 탓에 흔적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사야는 임나래에게 탐색에 대한 제안을 했다.
 “한 번에 열 명이 움직이는 건 낭비입니다. 분대를 나눠서 이동하죠.”
 “에? 그거 위험하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분대를 나누는 건 문제가 있을 때만······.”
 사야는 완장의 매듭을 풀려 했다. 무슨 의미인지 눈치챈 임나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괜히 위험을 무릅쓰는 거잖아.”
 “흩어져서 찾다가 신종이 아닌 괴수를 만나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정보가 됩니다. 신종이 그렇게 강력하지 않고, 호전성도 없다는 거죠.”
 “그, 그건 그렇긴 하네.”
 사야의 말을 이해한 임나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자코 뒤따르던 팀원들은 수군댔다.
 그 순간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팀을 너무 자기 입맛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조심하기로 했다.
 “알았어. 사야의 말대로 나눠서 찾자. 하지만 도중에 괴수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야. 위험한 녀석이라는 거니까.”
 사전에 계획한 대로, 임나래와 사야가 분대장이 되고 팀원이 네 명씩 나뉘었다.
 분대로 나뉘긴 했지만, 서로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다. 한쪽에 전투가 일어난다면 금방 지원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한참을 수평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통신기에서 임나래의 말이 들려왔다.
 “궁금한 게 있는데.”
 임나래의 말에 사야는 귀를 기울였다. 말투로 보아선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임나래는 신종 사냥이 처음인 만큼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좋은 용병이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사야가 대답했다.
 “비록 지금은 갑갑하지만, 탐색하다가 신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퍼즐을 조금씩 모아서 맞춰 나가는 재미라고 해야겠죠. 퍼즐도 신종을 사냥할 때처럼 머리 아프지만 완성되었을 때는 쾌감을 느끼니까요.”
 임나래와의 대화가 끊겼다. 통신기에서 팀원들의 숨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러던 중, 주위를 살피던 사야는 뜯긴 괴수의 사체를 발견했다.
 “정지, 괴수의 사체를 발견했다.”
 사야는 조심스럽게 괴수의 사체로 다가갔다. 톱날 같은 것에 무참히 뜯긴 자국이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신종의 흔적과 비슷했다.
 “조심하세요. 아직 살아 있어요.”
 사야는 경계하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 한순간 푸른빛이 내뿜어지더니 금세 사라졌다. 이상 진화자들만의 능력인 인챈트의 발현이었다.
 기본적으로 이상 진화자, 즉 용병은 신체 능력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평범한 각목도 괴수를 후려 팰 수 있는 강철봉이 되거나 부엌칼이 합금을 벨 수 있는 등 분자구조의 밀집력이 강화된다.
 하지만 이 인챈트에는 단점이 있는데, 바로 손에 쥔 것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손에서 떠난 물건은 인챈트 효과가 사라진다. 그 탓에 원거리 무기의 사용은 불가능하다.
 사야는 묵직한 브로드소드를 쥐고 주변을 살폈다. 신종이 먹잇감을 유인하기 위해 이곳에 괴수의 사체를 둔 것일지도 모른다. 곧 팀원들도 각자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한동안 추이를 지켜보던 사야는 솔선해서 괴수의 사체를 조사하기로 했다.
 머리가 뜯긴 괴수의 형체가 검고 둥근 것이, 본래 개미였던 모양이다.
 사야는 손으로 상처 안을 헤집어 보며 혹시 알을 넣어 두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기생충이나 알은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임나래의 말에 사야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상처의 형태가 신종의 흔적과 비슷하군요.”
 사야는 이쯤에서 분대를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절이 봄인 만큼 신종의 종류에 따라서 번식기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지금 식사 중인 것 같아. 뭉치는 편이······.’
 우지끈!
 임나래가 이끄는 분대 쪽에서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하나 그들이 일부러 이런 소리를 냈을 리가 없다.
 이변을 느낀 사야는 곧장 임나래 쪽으로 달려갔다. 사야가 이끄는 분대원들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갔다.
 둘의 거리는 먼 편이 아니다. 달린다면 1분 내로 닿을 수 있는 수준이다.
 ‘아무 일도 없길!’
 분대와 대치하고 있는 녹색 물체의 모습이 들어왔다.
 초록색 외피, 낫 같은 양손, 가는 몸.
 사마귀였다.
 ‘확실히 신종이군.’
 사야는 앞서서 괴수와 싸우고 있는 임나래를 바라보았다.
 명불허전이었다. 임나래 또한 범용성이 높은 검을 들고 있었는데, 괴수와 정면 대결을 하고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분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다친 사람은 빠져! 금방 다른 애들이 올 거야! 협공해!”
 말이 나옴과 동시에 사야는 다리에 힘을 주어 괴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푸우우욱!
 사야는 괴수의 몸에 정확히 검을 꽂아 넣고 그대로 비틀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던 괴수는 비명을 지르며 사야에게 낫과 같은 앞다리를 휘둘렀다.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사야는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하지만 연이어서 날아오는 두 번째 공격에 당황하고 말았다.
 ‘공격 수단이 두 개인 걸 깜빡했군.’
 아찔해지려는 찰나, 임나래가 사야의 앞으로 끼어들어 와 사마귀의 손을 막아 냈다. 괴수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이쪽으로 날아오는 임나래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그사이 팀원들이 사마귀를 둘러쌌다. 갈고리 사슬이나 그물망을 이용하여 움직임을 억제하고, 각자의 무기를 쑤셔 넣었다.
 쓰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임나래가 추이를 지켜보다 사마귀의 목을 베어 냈다.
 “찾는 게 문제였지, 사냥하는 건 정석대로 하니까 문제가 없네. 뭐야, 신종 사냥도 그렇게 어렵지 않잖아.”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는 기쁨 때문인지 임나래와 팀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사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신종 사냥은 끝나지 않았······!”
 사마귀의 사체가 꿈틀거린다. 설마 아직 죽지 않았나 하고 의심하는 순간이었다.
 가까이 있던 재학에게 흰 무언가가 쏘아졌다.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무기를 날려 재학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맞혔다. 재학의 목 바로 옆으로 날아간 무기가 나무에 박혔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재학은 사야에게 큰소리쳤다.
 “무, 무슨 짓이야!”
 “모두 사체에서 떨어져!”
 다급한 얼굴로 외쳤다. 그제야 팀원들은 나무에 박힌 물체를 보고 소스라치며 사체에서 물러섰다. 사야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재학은 목을 쓰다듬으며 사야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응대하고, 사야는 자신의 무기를 회수했다.
 무기에 박힌 물건은 기생생물 연가시였다. 지렁이 같으면서도 생물의 몸에서 생활하는 걸로 유명했다.
 사마귀의 몸에 연가시가 있는 건 대체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사야는 사체에서 연가시가 더 나올 것이라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리자 사람의 팔뚝만 한 연가시가 흐물거리며 튀어나왔다.
 “으엑, 설마 저것도 사냥해야 하는 거야?”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서로 눈치를 보며 하나둘 연가시를 베어 냈다.
 꿈틀거리는 연가시와 부딪친 임나래가 비명을 질렀다. 꽤나 볼만한 광경이라고 생각하며 사야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용병 커뮤니티 오리진을 통해 신종의 정보를 알리기 위한 정보 수집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오리진은 신종 정보에 대해 탐욕적이라고 할 정도로 집착이 크다. 본래 국가 기관이 개설한 커뮤니티인 만큼, 정보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하나 그런 곳을 통해 정보를 알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신종에 대해 철저하게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가시도 나왔고······ 이제 그럼 사냥, 끝이지?”
 임나래의 말에 사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인터넷을 통해 사마귀에 대해 알아보았다. 암컷과 수컷이 있고 알을 낳는다. 한 번에 여러 마리를 낳고, 번식 도중에 수컷은 죽는다. 암컷 또한 알을 낳은 후, 죽는다.
 사마귀에 대한 자료를 통해 사야는 사마귀가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분해 보기로 했다.
 ‘잘 모르겠는걸······.’
 사야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자 임나래가 다가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암컷인지 수컷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분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조사해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거라면 맡겨 두라고. 전문가를 알고 있으니까.”
 임나래는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통화 연결을 기다리다 말고, “그러고 보니 정말 사마귀였잖아. 쓸 만한데.”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신종의 정체가 사마귀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정보 공개를 하지 않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임나래가 말한 전문가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아, 난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상대방은 무척 시끄러운 곳에 있었다.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 스피커에서 익숙한 편의점 CM이 들려왔다. 편의점에 있는 모양이다.
 “돈은 필요한 만큼 줄 테니까 아르바이트 정도는 그만두라고, 정말 간단한 거야. 네가 말한 대로 신종은 사마귀였어.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암수만 구분하면 여러 가지로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구별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사진 보내 줄 테니까······ 뭐? 어디를 찍으라고? 알았어.”
 통화를 끊고 임나래는 사마귀의 몸 이곳저곳을 카메라로 찍어 전송했다. 수 초 뒤, 곧장 답장이 왔다.
 “암컷이라고 하네. 암컷이 수컷보다 덩치가 큰 편이고 힘도 더 센 편이라고 하는데······. 주변에 수컷이 있다면 상대하기 쉽겠어.”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아, 한 가지 더 있네. 수컷은 암컷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짝짓기를 한다고 해. 이유는 짝짓기를 하다 먹힐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데······. 수컷의 은밀성을 감안하면 조심해야겠어.”
 괜찮은 정보다. 사야는 과연 전문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개인적으로 연락 가능한 생물학자와 인연을 맺고 싶어질 정도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신종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았어. 정보를 풀었으니 오리진에서 청탁이 오는 걸 기다릴까?”
 임나래의 말에 다른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사야와 달리 돈이 되는 것을 쫓고, 임나래의 환심을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돈도 안 되고 일이 얼추 끝난 듯한 신종 사냥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 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하는 수 없이 청탁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은 이만 해산하는 모양이었다.
 시청으로 이동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올 때는 신종을 찾느라 조심스럽게 왔지만, 갈 때는 마음 놓고 갔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도착한 일행은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슬슬 헤어질 차례가 되자 임나래가 말했다.
 “운송 헬기를 요청했어. 모두 헬기를 타고 돌아가면 돼.”
 다시 밀림을 헤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다들 괴로웠던 것일까. 팀원들은 모두 기뻐했다.
 “정말? 역시 나래 씨야.”
 “공권력을 이용하다니······. 나도 연예 사업이나 신청해 볼까······.”
 사야는 조심스럽게 뒤로 빠지며 말했다.
 “저는 부천시 쪽에 볼일이 있어서 먼저 빠지겠습니다.”
 “아, 사야 씨. 오늘 고마웠어요. 덕분에 쉽게 사냥했네요. 다음에 또 뵐 수 있을까요?”
 엉겨 오는 팀원들을 보며 사야는 당황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시간이 모자라네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연락처를 공유하려던 팀원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사야를 보냈다.
 시청에서 나온 사야는 스마트폰으로 오리진을 살폈다.
 용병들이 정식 의뢰를 받고 사마귀 토벌전을 벌이기까지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끝내야지.’
 다른 팀원들은 모르겠지만, 사야는 신종 사냥에 대해 열정적이다. 어떠한 의무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둥지는 어디며 약점은 무엇인지, 주로 어디에 출몰하며 주식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아낸다.
 그리고 사냥한다, 의뢰를 받은 용병들이 나타나기 전에.
 자신을 제한하는 일종의 타임 리미트였다.
 ‘그냥 사냥하는 것은 재미없으니까······.’
 이동하다 수풀이 흔들리는 기척을 느꼈다.
 사마귀를 잡고 시청으로 돌아오는 길에 엮인 괴수인 모양이다. 이상 진화한 골든 리트리버였다.
 “혼자 떨어지자마자 골치 아프군.”
 으르렁거리다 이내 사야를 항해 달려왔다. 사야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바닥에서 자란 나무줄기들이 엉켜 자라, 안 그래도 좁은 골목이 더 좁아져 있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괴수는 골목 안으로 들어오려 애를 썼다. 사야는 정면으로 들어오는 괴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한순간 푸른 불꽃이 화려하게 불타올랐다.
 크르르르!
 괴수가 사야를 덮치듯 뛴다. 동시에 뛰어 콧잔등을 베어 냈다. 붉은 피가 흩뿌려지며 좁은 골목을 채웠다.
 ‘피 냄새 때문에 일이 복잡해지겠어. 어서 처리하고 떠나야겠군.’
 보통 용병이었다면 사체를 회수하겠지만 사야는 돈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 빠르게 이동할 생각만 했다.
 골든 리트리버 태생의 괴수는 콧잔등을 금세 재생시키더니 다시 으르렁거리며 사야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먹잇감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기어코 접근한 뒤, 벌레를 짓이겨 버리듯 발톱을 세워 앞발을 내리찍었다.
 사야는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개의 팔을 절단하고 단번에 목젖을 찌를 셈이었다. 그러나 위기감을 느꼈던 모양인지, 골든 리트리버의 남아 있는 앞발이 움직였다.
 ‘방어할 수 없어!’
 무의식적으로 괴수의 팔을 향해 손을 뻗쳤다. 하지만 그런 행위로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
 그 순간, 한 인영이 나타나 남아 있던 괴수의 앞발을 잘라 냈다. 그와 동시에 뒷다리까지 베어, 사지 불구로 만들었다.
 “이런 놈한테 위험해질 정도면······ 사마귀는커녕 가다가 죽는 거 아니야?”
 귀환했으리라 생각했던 임나래였다. 사야는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지 의아해하며 몸을 추슬렀다.
 “어쩌다 한 번 나오는 실수입니다. 한데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임나래는 반할 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종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결국 자신을 쫓아온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자 다른 팀원은 보이지 않았다.
 “절 쫓아와서 좋을 건 없을 텐데요.”
 “알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거,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 같아. 다른 녀석들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서 핑계를 대고 혼자 왔어.”
 사야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신종을 찾는 건 이제부터 자신 혼자면 된다.
 “애초에 제가 왜 신종을 찾을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저 아까 말했다시피 약속 장소에 가는 겁니다.”
 “약속 장소를 꼭 괴수 서식지를 가로질러야 해? 그리고······ 아까 연가시를 죽인 이후로도 넌 계속해서 다른 걸 찾고 있었잖아. 약속은 핑계고 혼자 사마귀를 사냥하려는 거지?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그냥 신종 사냥을 하고 싶은 거야. 아, 정말 이렇게 예쁜 미녀가 따라가려고 하는데 불만스러운 표정은 그만두라고.”
 사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임나래를 떨어뜨릴 수는 모양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울릴 수밖에 없다.
 “당신도 참 괴짜군요. 이런 일 해 봤자 얻는 것도 없는데.”
 그러자 임나래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혼자 몬스터를 사냥해 온 괴짜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사야와 임나래는 사마귀를 사냥했던 장소로 돌아갔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사체는 사라졌다. 근처를 배회하던 괴수가 먹어 치운 것이 분명했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신입을 위해서 찾는 법 좀 알려 달라고.”
 임나래는 신종 사냥을 즐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야의 사냥 노하우를 배울 생각인 모양이다. 문득 지식을 빼앗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탐욕스러운 여자구만.’
 하지만 입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부터 어떻게 행동할지,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은지, 사야는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신종의 정체를 알아냈으면, 그 원류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믿을 수 있는 생물학자가 있고, 정보 검색이 가능한 스마트폰이 있죠. 사실상 신종의 원류를 알아내면 이후의 사냥은 쉽습니다. 무엇이 특징이고 어디에 둥지를 트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헤에, 그럼 사마귀가 어디다 알을 낳았는지도 금방 알 수 있겠네.”
 사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마귀는 몸이 가벼워, 보통 잎이나 나무줄기에 알을 낳는다. 그런데 도시를 집어삼킬 정도로 산이 진화했으니, 사마귀의 알이 머리 위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뭇잎으로 하늘을 가릴 정도니······.’
 나무 또한 진화해 건물만 한 크기로 자란 것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거대화한 괴수가 올라가 번식해도 이상하지 않다.
 ‘위를 조심해야겠는데. 수컷은 은밀성이 높다고 하니······.’
 사마귀는 가을에 알을 낳고 봄쯤에 부화한다. 오늘 발견된 사마귀의 상태를 토대로 미루어 보면 슬슬 하나둘 부화할 타이밍이다.
 ‘부화하기 전에 찾아내야겠지.’
 하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용병답게 밤눈이 밝긴 하지만, 어두운 밀림 속에서 알을 찾을 정도는 아니다.
 ‘일행도 있으니 오늘은 이만 쉴까.’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화톳불을 만들기로 했다. 밤은 쌀쌀하다. 아무리 진화한 인간의 몸을 가졌다고 해도 무병장수하는 것은 아니다. 추위 정도는 피하기로 했다.
 “에? 벌써 쉬는 거야?”
 “이 밤에 사마귀의 알을 찾을 수는 없으니까요.”
 “담력 훈련하는 것 같아서 즐거웠는데······. 아쉽네.”
 성인 남성의 허리를 맨손으로 분질러 버릴 수 있는 용병이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령 귀신이라 해도 맨손으로 땅을 쪼개고 100미터를 5초 내로 달려야 그녀를 놀랠 수 있을 것이다.
 사야는 돌을 모아 화톳불이 번지지 않게 하고, 주변에 약과 자석을 뿌렸다. 괴수는 아무리 진화해도 본능까지 변하진 않았다. 불을 무서워하고 전류를 기피했다. 적당한 약과 자석을 근처에 두면 괴수는 화톳불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것도 있구나. 나는 산속에서 이렇게 자는 건 처음이라서······.”
 “남자랑 자는 것도 처음 아닙니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실례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이제 식사를······.”
 “응, 맛있게 먹어.”
 남에게 식사 인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묘한 기분이 들어 사야는 얼굴을 숙였다.
 군용 식량을 입에 집어넣으며 사야는 반대편에 앉은 임나래를 바라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화톳불 때문인지 평소보다 붉었다. 역시 연예인답게 예뻤다.
 “사야는······ 용병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되었어?”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이었다. 사야는 넋을 놓고 있다 대답했다.
 “기록상으로는 성인이 된 2년 전부터입니다.”
 “기록상? 그 이전부터 했다는 거야?”
 “네, 보통 진화는 성인이 될 무렵에 일어나지만······ 저는 상당히 이르게 16세에 진화를 했습니다.”
 “하하하, 그거 조숙증 아니야?”
 사야는 대답을 회피했다. 자신의 진화가 빠른 이유는 자세히 판단할 수 없었지만, 역시 조숙증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임나래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16살부터 괴수 사냥을 했다는 거네?”
 “네, 고아였던지라 돈이 필요했죠.”
 “그래서 이렇게 사냥이 능숙하구나? 어쩐지······.”
 임나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지 스마트폰과 연결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액정을 흘낏 보니 뉴스를 보고 있었다. 사야는 흥미를 잃고 자신의 검을 꺼내 닦기 시작했다.
 한참을 서로 말없이 있다가 임나래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없나.”
 잠자코 있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져, 사야는 입을 열었다.
 “뭐가 없습니까?”
 “마법사 말이야. 6년 전의 사고로 사라진 이후로 나타나질 않잖아.”
 사야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마법사 말씀이십니까?”
 “응, 마법사의 역할은 항상 누가 이어받잖아? 그런데 6년 동안 마법사가 등장하지 않았어. 덕분에 우리가 고생하고 있지. 정신머리가 제대로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마법사임을 드러낼 텐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역시 마법사의 대는 끊긴 게 분명해.”
 마법사는 인챈트 효과가 남과 다른 사람을 뜻한다.
 어떻게 다르냐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인챈트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즉, 괴수를 상대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자들이다.
 하지만 그 수는 전 세계에 다섯 명뿐이다. 지구를 대상으로 어떠한 법칙이라도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마법사의 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항상 다섯 명으로 유지되었다.
 한 명이 죽고 나면, 전 세계의 인구 중 누군가 한 명이 마법사가 된다.
 다섯 명이 모두 죽어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다섯 명으로 유지되었다.
 괴수를 대상으로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마법사의 가치는 전략 병기 수준이었다.
 그런 마법사가 6년 전의 사고로 한 명이 죽었다. 보통이라면 바로 새로운 마법사가 나타나 하던 일을 이어 가겠지만, 현재까지 소식이 없었다. 임나래의 말은 그에 대한 것이었다.
 사야는 자신을 바라보는 임나래의 눈길을 피하며 대답했다.
 “누군가가 힘을 이어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겠죠.”
 “정말 그렇다면 무슨 이유가 있더라도 정체를 밝히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마법사와 연계해서 괴수를 처치하기 시작하면 일반 시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잖아? 하다못해 같이 팀을 이뤄서 남산타워에 주둔하고 있는 S레이트 괴수를 사냥한다면······.”
 사야는 임나래의 말을 끊었다. 들을 필요가 없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정도는 마법사 본인도 알고 있을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고 있겠죠. 하지만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건······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사야의 말에 임나래는 수 초 뒤 입을 열었다.
 “마치 그 마법사를 잘 아는 것 같은 말투네.”
 “그냥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뿐입니다. 정말로 마법사의 맥이 끊긴 것이라면 큰 문제니까요.”
 “그건 그렇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사야는 침낭을 펼쳤다. 시간은 이르지만 할 건 없으니 슬슬 잘 생각이었다. 임나래 또한 침낭 안에 들어갔다.
 “잘 자.”
 대답하기 귀찮았다. 드러눕자, 순식간에 잠들었다.
 
 
 
 현우는 대학교 강의가 끝난 뒤, 도서실로 향했다.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었다. 임나래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냈으니, 백 교수에게 맡겨 둔 돈은 받아도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그녀가 신종 사냥을 끝내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나저나 진짜 사마귀였다니.’
 그동안 배운 지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졸업하고 난 뒤의 진로를 이쪽으로 잡아도 될 것 같다.
 ‘사마귀에 대해서 알았으니, 좀 더 본격적으로 조사해 볼까. 임나래 씨와는 협력 관계니까.’
 임나래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야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자신이 임나래에게 사마귀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면, 임나래는 그것을 동행인 사야에게 알려 준다. 그의 인생을 지켜보고 있는 이상,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옳다라······. 과연 나는 이대로 사야 씨의 삶을 훔쳐봐도 되는 걸까.’
 어째서, 어떤 이유로 자신이 타인의 인생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것도 생물학에서 말하는 이상 진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반적인 진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 능력이 상승하고 인챈트라는 기묘한 힘을 부여받는 것이 요즘 말하는 진화다. 하나 양현우라는 인간은 신체 능력이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데다 인챈트라는 능력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남의 생활을 훔쳐보는 것뿐. 과연 이것이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설령 진화라 한다 해도 이상한 진화이니, 진정한 의미의 이상 진화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사야 씨의 꿈을 강제로 보고 있긴 하지만 그걸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 답례를 하는 게 좋겠지.’
 개인적으로 현우는 사야가 대성하길 빌었다.
 그는 고아이고 지인도 없어서 홀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런 인간은 장수할 수 없다. 생활을 이어 갈 수가 없다.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위해서, 혹은 그의 인생을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현우는 사야가 잘되었으면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무심코 사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잘되길 원하는 건 내 경험이 확장되었으면 해서인가······. 나도 좀 이기적이구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있는 건 사야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언젠가 남의 일생을 엿보는 것은 없어져야 하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자신의 대리 만족을 위해, 사야에게 답례를 하기 위해 현우는 도서관의 책을 뽑아 들었다.
 신종.
 사마귀가 진화했다면 일단은 그 원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게다가 정확한 종이 무엇이며, 그 특징은 무엇이고 어느 지역에서 서식하는지까지 알게 되면 이후의 공략법은 손쉽다.
 번식 기간이나 짝짓기 시기를 이용한 함정 공략, 서로 다른 이성의 페로몬을 이용해 유인하는 법도 있다. 혹은 취약한 약 성분을 이용해서 공략하는 법도 있다.
 ‘아직 정확한 종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
 부천시에서 서식하는 사마귀의 종은 많다. 딱 하나를 꼬집을 수도 없고, 대체적으로 공통점이 많아 구별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괴수화로 인해 능력적인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모른다. 방울뱀은 괴수화되어 방울 소리를 더욱 크게 낼 수도 있고, 거미는 종에 따라서 더욱 굵은 거미줄을 내뿜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임나래와 이사야는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현우는 수컷 사마귀에 대해 생각했다.
 수컷 사마귀의 특징은 다양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은밀성이다.
 수컷 사마귀는 짝짓기를 한 뒤에 암컷 사마귀에게 먹힌다. 그 일을 피하고자 대다수의 수컷 사마귀는 은밀하게 암컷의 뒤로 가 씨를 뿌린다. 물론 그 와중에 대다수의 수컷이 발각되어 먹힌다. 하지만 걸리지 않는 부류도 있는 모양이다.
 ‘만약 괴수화되었다면······.’
 수컷 사마귀가 괴수화되었다면 그 은밀성이 강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마귀의 특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았다. 주변 환경과 동화하여 진화한 외피. 사마귀의 외피는 녹색이다. 식물들에 섞여 날카로운 가시 발톱으로 먹잇감을 순식간에 잡아채기 위함이다.
 현우는 사전의 그림을 직시했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 세상은 괴수화가 되어 있었다. 사는 곳에 동식물이나 애완견 하나 볼 수 없었다. 당연히 사마귀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 탓에 녹색 잎사귀 속에 숨어 있는 사마귀를 본 첫 감상은 이러했다. 밟으면 죽어 버리는 하찮은 곤충이라기보다는 은신하여 때를 기다리는 사냥꾼. 주위에 동화하여 자신을 감추는 위장 방식은 진화의 등급에 있어서 최상위라고.
 ‘······위장?’
 카무플라주.
 현우는 혀를 찼다.
 괴수도 당연히 교미를 한다. 암컷 사마귀에게 씨를 뿌리기 위해 괴수인 수컷 사마귀의 은밀성은 강화할 수밖에 없다. 하나 괴수화된 대가로 진화된 오감은 본래의 은밀성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위장은 사마귀의 가장 큰 무기.
 진화한다면 그것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가정이지만 수컷 사마귀의 위장이 극도로 진화했다면······.’
 괴수의 감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제로 투명화에 가까워야 할 것이다. 있는 듯하면서 없는 존재감을 가져야 할 것이고, 커다란 동체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무게여야 할 것이다.
 현우는 수컷 사마귀의 또 하나의 특징을 떠올렸다. 암컷과 다르게 수컷은 잠깐이지만 날 수 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위장, 비행 가능한 신체······.’
 현우는 서둘러 지도를 펼쳤다. 도서관에서 요란하게 움직이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들의 관심을 무시하며 현우는 볼펜으로 지도에 점을 찍기 시작했다.
 ‘이사야와 임나래는 부천시를 돌아다녔어. 멀미산과 춘덕산, 세럴산. 그중에서 날갯짓 소리를 들은 곳이 있다.’
 당연하지만,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으나 괴수의 습격이나 흔적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임나래와 이사야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생각했다. 신종 사마귀가 주변 괴수들을 모조리 사냥하여 잡아먹었으나, 오직 하늘을 날 수 있는 조류만이 살아남았다고.
 ‘그게 아니었어. 만약 신종 사마귀에게 투명에 가까운 위장과 비행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모조리 먹혔고, 날갯짓 소리는 수컷 사마귀의 소리였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은 총 두 군데. 하지만 올해 발견된 신종의 둥지가 이렇게 여러 군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무조건 하나다.
 ‘이미 둥지를 지나간 거야. 그리고 둥지를 배회하던 수컷한테 걸리고 뒤를 잡힌 거지.’
 수컷이 지금까지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것이 놀라웠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그 이유에는 원인이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낯익은 선후배들이 인사하려 했지만, 진중한 현우의 분위기에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하고 멀찍이서 그 모습만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집에 사고라도 났나?”
 “요즘 아르바이트도 안 하던데······. 주식이나 사업 하는 거 아니에요?”
 “듣기론 임나래 양이랑 무슨 일 하고 있다고 하던데······.”
 한쪽에서 들리는 호들갑을 무시한 채, 현우는 임나래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지국 설비가 불안정하기 때문인지 통화 음질이 좋지 않았다.
 “사마귀에 대해 알아보다가 새롭게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통화 너머로 꺄르르 웃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책임감은 있으니까요.”
 현우는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그대로 말했다. 임나래는 설명을 듣더니 잠깐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사야에게 의중을 물어보려는 건가.’
 현우는 이사야의 삶을 훔쳐본다. 그 덕분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내뱉을지 알고 있어, 곧 이어질 말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 둔 상태였다.
 졸지에 이사야와 임나래는 현우의 말에 따르게 되었다.
 ‘나 또한 신종 사냥에 참여하고 있는 건가.’
 팀 멜론에 대한 소속감을 작게나마 느끼며, 현우는 재차 물었다.
 “일단 한 가지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 날갯짓 소리를 들은 곳이 세럴산과 춘덕산 부근이 맞습니까?”
 이사야와 대화를 나눈 뒤, 임나래가 말했다.
 자신이 이사야의 삶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현우는 둘러댔다.
 “······저번에 통화할 때 들렸습니다.”
 상황이 무마되었음을 알고 현우는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갔다. 일단은 두 사람이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 세럴산과 춘덕산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현우가 지시하자 임나래는 작게 투정을 부렸다.
 ‘당신이 없었다면 우리가 모일 이유도 없었겠죠.’
 속마음을 숨기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임나래와 이사야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놓친 것이 없는지 좀 더 조사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긴장을 풀고 입구 부근으로 가자, 알고 지내는 조교나 얼굴만 아는 선후배들이 다가왔다.
 “현우 씨, 임나래 씨와 통화하셨어요?”
 남에게 이야기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현우는 부정했다.
 “아니, 그럴 리가. 내가 임나래 씨와 통화할 리가 없잖아.”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통화 내용을 엿들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군.’
 스스로를 책망하며 도서관의 좌석에 앉았다.
 그때였다. 운이 나쁘게도 현우가 앉은 의자의 다리가 부러졌다.
 뒤로 넘어지면서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현우는 아찔한 고통을 느꼈다. 그냥 엉덩이를 찧어도 되건만, 무슨 일만 있으면 손을 뻗으려는 습관이 최근 들어서 생겨난 탓이다.
 ‘이사야 때문이지.’
 이사야야말로 무슨 일만 있으면 손을 뻗으려는 습관이 있다. 그를 지켜보다 보니 그의 이런저런 습관들이나 행동들을 닮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의해야지 하면서 조심하려 하지만, 이미 물들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이사야의 습관을 먼저 고칠 필요가 있었다.
 임나래와 이사야의 소식을 기다리며 사마귀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노을이 학교를 뒤덮고 밤이 다가올 즈음이 되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자료를 정리하고 현우는 하교길로 빠졌다.
 교문을 통과하고 시내에 접어들었을 무렵,
 기다리고 있던 전화가 왔다. 임나래의 번호를 확인한 뒤, 열띤 목소리로 통화를 받았다.
 “그럼 남은 건 춘덕산뿐이군요.”
 “알겠습니다. 어쩌면 내일 결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오늘은 자기 점검이나 하시면서 스스로를 조율하세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며 현우는 웃음소리를 냈다.
 
 
 
 괴수화가 된 지역에는 당연히 폐건물이 많다. 사람들이 버리고 갔기 때문이다.
 온갖 생필품들과 괴수들의 눈에서 피할 수 있는 안전 지역을 확보한 뒤, 임나래와 이사야는 막사를 펼쳤다.
 운이 좋게도 발견한 가스버너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불을 지필 수 있는 도구를 확보하자 둘의 주변이 금세 따뜻해졌다.
 비록 통조림이긴 하지만 냄비에 넣고 끓이자 먹음직스러운 외관이 되었다. 서로 말없이 냄비만 바라보다 국자로 퍼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먹는 소리만 내던 도중, 문득 이사야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정말 대단하군요.”
 이 상황에서 누굴 말하는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거론될 만한 사람은 양현우밖에 없었다.
 “응,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런 사람을 보고 천재라고 하는 게 아닐까? 가난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전긍긍했다고 하는데, 쌓은 지식을 보면 마치 태어나자마자 공부한 것 같단 말이야. 괴수에 관해서는 한번 보고 외워 버린 걸까?”
 “그 재주도 그렇지만, 사람을 이끄는 능력도 나쁘지 않습니다. 분석력도 있고 신종 사냥에서 중요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낯익은 느낌에 사로잡히며 대답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엿들어 보니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었던 것이다.
 “프로파일러로서는 아까워. 오히려 이쪽에서 일해 주었으면 하는데, 부탁하면 들어주려나?”
 이사야는 양현우에 대해 상상했다. 사마귀에 대해 모조리 조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즉, 완벽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완벽주의자입니다. 스스로가 완벽하다 느끼지 않는다면 제안에 수긍하지 않겠죠.”
 이사야는 양현우에 대해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찌 되었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에 놓인 현실이다. 신종 사냥은 끝에 다다르고 있다. 양현우의 말대로 내일이면 결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사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임나래는 이사야를 직시했다. 그가 기름 먹인 가죽으로 무기를 손질하는 것이 보였다. 꼼지락거리는 손은 섬세했고 거기에 자리 잡은 흉터는 제법 멋들어졌다. 손가락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있지.”
 갑작스러운 부름에 이사야는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차였다.
 “가끔가다 위험할 때면 손을 뻗잖아. 저번에 나랑 둘이 남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그거, 왜 그런 거야?”
 이사야는 순간 벙한 표정이 되었다가 고개를 숙였다. 수 초 뒤,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것처럼 그는 말했다.
 “예전에 방패를 썼습니다. 지금은 보다시피 한 손 검만 쓰고 있지요. 그때의 버릇입니다. 걱정을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그랬어? 나는 또 손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니까. 너, 한 손 검을 쓰고 있으면서 절대 나머지 한 손은 사용하지 않으니까.”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이사야의 다짐을 받아 내고 임나래는 무기로 시선을 돌렸다. 관리해야 하는 건 자신의 무기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이만 잘까.’
 몸으로 뛰는 용병이 오늘 밤 동안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다.
 
 
 
 아침이 되었다. 강의 시간은 일렀지만 잠자리 탓인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어젯밤 보았던 것을 떠올린다.
 어젯밤 보았던 것은 고로 오늘 일어날 일.
 예지몽에 가까웠지만 사실상 꿈에서 본 기억은 잠자리에 들 즈음이나 거의 똑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떠올랐다.
 이렇게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어 봤자 무의미하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찬물로 샤워했다.
 말끔한 정신이 되어 아침 식사를 했다. 냉장고에서 우유와 어제 사 둔 빵을 꺼내고, 컴퓨터를 켰다.
 본능적으로 오리진 사이트를 켰다. 이사야의 영향인지 아니면 생물학자를 지망하기 때문인지 현우는 오리진에 자주 접속했다. 실제로 괴수를 접한 용병들의 경험담 같은 것을 좋아했다.
 메인 화면을 살핀다. 오늘의 이슈에는 이쪽 일과 관련된 뉴스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느 회사가 투자를 시작했다든가, 어느 구청에서 사냥 공고를 내렸다든가, 어느 유명 팀이······.
 “쿨럭!”
 우유를 뿜어내며 현우는 모니터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팀 그랜드. 유명 인사라면 유명 인사다. 외모가 준수하고 실력 있는 용병들을 포섭하여 창설한 팀이다.
 ‘전원 국가 계약 용병들! 팀 그랜드가 어째서!’
 팀 홍보를 위해 사냥에 나서는 듯했다. 문제는 그 사냥 대상이 임나래와 이사야가 쫓고 있는 신종이라는 것이다.
 ‘잡는 게 이제 코앞인데!’
 임나래는 국가 계약 용병으로, 소속은 수방사 202 강화 특수부대다. 그리고 그것은 팀 그랜드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한 조직에 속한 이상, 위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
 신종의 정보를 내놓으라 하면 그녀는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함께 일하게 된 이사야와 양현우만 헛고생한 꼴이 된다.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임나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한숨 소리. 현우는 그것으로 이미 이야기가 끝났음을 알았다.
 현우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보았다.
 이사야의 눈을 통해 실제로 정리한 데이터는 자신에게 있다. 그에 비해 임나래가 팀 그랜드에 제공한 정보는 고작해야 자신의 입으로 전해 받은 일부 이야기일 뿐이다.
 계속해서 사과하는 임나래의 얼굴이 어떨지 상상이 되었다. 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사야라면 이런 말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이십니까? 정보를 제공한 것뿐이지, 우리의 사냥은 끝난 게 아닙니다.”
 전화 너머로 숨이 멎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서야 현우는 어젯밤 보았던 꿈을 떠올렸다. 이사야는 방금 전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수 초 뒤, 임나래는 입을 열었다.
 “경쟁하면 안 됩니까?”
 팀 그랜드는 근래에 만들어진 단체이긴 하지만,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유명한 일류 용병들이다. 더욱이 다수이니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당연히 임나래는 정보 제공을 하고 사냥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두 명이 경쟁의식을 불태우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고 싶어진 모양이다.
 “어서 움직이도록 하세요. 저쪽은 이미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임나래는 현우와의 전화를 끊었다.
 사야와 임나래는 곧장 추측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부천시에 있는 춘덕산의 근처다. 원래 있던 곳에서 먼 장소는 아니기 때문에, 전속력으로 달렸다.
 “좋아, 이 근처야.”
 이사야는 현우에게 들은 이야기와 신종 사냥꾼의 경험을 이용하여 임나래에게 조언했다.
 “일단 나뭇잎 위를 살피면서 동시에 수컷 사마귀의 기습을 조심해야 합니다. 정말로 위장 방식이 진화했다면 가까이 갈 때까지 눈치챌 수 없을 테니까요.”
 “응, 알았어.”
 둘은 나무를 올라타고 무너진 건물 안을 둘러보며 수로 안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사마귀의 흔적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분명 여기에 있을 것 같았는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엔진 음, 공기를 가르는 로터. 팀 그랜드가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이사야는 혀를 차며 말했다.
 “벌서 도착했군요. 정보 하나 물었다고 더럽게 빨리 오는군, 칫.”
 사야와 임나래는 헬기가 자기들을 보지 못하도록 몸을 숨겼다.
 파다다다닥!
 ‘응?’
 헬기가 내뿜는 소음 속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날개가 파닥이는 듯했다. 결코 운송 헬기가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심코 임나래와 눈이 마주친 사야는 자신의 청각에 이상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건······.”
 “헬기 때문에 수컷 사마귀도 놀란 모양인데? 저렇게 요란 법석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헬기 안에 있는 팀 그랜드는 아직 저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사야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탐색용 앱을 실행시켰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앱이었다.
 “이쪽이에요!”
 서둘렀다. 무너진 빌딩을 뚫고, 물이 범람하고 있는 하수도를 헤엄쳤다. 곧 잡초들이 길게 짓눌린 자국을 발견했다. 사마귀가 헬기의 소리에 놀라 둥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잠시 뒤, 사마귀가 남긴 발자국을 쫓아간 둘은 둥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잡초나 화려한 꽃들이 입구를 가리고 있었다.
 “이러니 찾을 수가 없었지. 설마 나무 안에 구멍을 뚫고 둥지를 만들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사마귀는 나무 안에 둥지를 트는 놈이 아닐 텐데······. 아무래도 다른 괴수의 둥지를 빼앗은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소나무 안에는 또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나려고 하는 사마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꺄악! 드디어 찾았다!”
 기뻐서 방방 뛰는 임나래를 두고 사야는 바로 주변을 살폈다. 은신이 사마귀의 장기라면 분명 이 근방에 숨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습격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사야는 땅에 귀를 댔다. 쿵쿵 두들기는 듯한 헬기의 엔진 소리, 팀 그랜드의 용병으로 추측되는 발소리,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괴수의 숨소리, 안에서 꿈틀대는 사마귀들로 추측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헬기 때문에 놀란 듯했다.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직 이쪽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숨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이 바로 사냥해야 할 때다. 결론을 내린 사야는 검을 뽑아 들었다. 괴수의 이빨과 금강석을 섞어 만든 튼튼한 검이다. 살짝 흰빛이 감돌았다.
 “사냥을 시작합시다, 임나래 씨.”
 “올,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임나래 또한 커다란 할버드를 뽑아 들었다. 묵색으로 보이는 것이, 베어 내기보다 뭉개 버리는 것이 적합해 보였다.
 두 사람의 무기에서 푸른 불꽃이 화려하게 타오른 뒤 사라졌다.
 “조심하죠.”
 “너도.”
 사마귀가 은신할 여유도 없이, 둘은 둥지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꿈틀거리는 사마귀 새끼들이 둘을 먹이로 판단하고 둘러싸기 시작했다. 엉겨 오는 사마귀들을 둘은 잔인하게 찢어 냈다. 사야와 임나래는 애당초 쫓았던 수컷 사마귀의 모습을 확인했다.
 “어, 잠깐. 수컷은 암컷보다 작은 거 아니었어?”
 “부,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
 8미터는 될 법한 크기. 가시 발톱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돋쳐 있다. 쭉 찢어진 입은 사야와 임나래를 동시에 먹어 치울 정도로 컸다. 초록색 외피는 벌써 형형색색으로 변하며 주변과 동화하려 하고 있었다.
 “무, 무슨 사마귀가······.”
 둘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사마귀의 카무플라주가 끝났다. 마치 투명화가 된 것처럼 눈앞에 있음에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컷 사마귀가 가늘고 긴 다리를 이용해 임나래와 사야에게 뛰어들었던 것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성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일반적인 괴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피, 피해!”
 임나래의 말에 사야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도로 회수했다. 그리고 뒷걸음쳤다.
 바로 코앞에 내려찍힌 사마귀의 가시 발톱을 보며 사야는 식은땀을 흘렸다. 가시 발톱을 가진 사마귀는 손을 휘둘러 먹잇감을 찢어 낸다.
 ‘가시가······.’
 금방이라도 눈을 찔러 버릴 것 같은 가시를 보며 사야는 무기를 꽉 쥐었다. 사마귀의 공격 수단은 하나가 아니다.
 이어서 날아오는 가시 발톱을 향해 사야는 검을 휘둘렀다.
 캉! 그그그그긋!
 가시 발톱과 부딪친 검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칠판에 손톱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다행히 인챈트로 강화된 검이라 부러지거나 이가 빠지는 일은 없었다. 반면에 사마귀의 가시 발톱은 이미 몇 개가 부러졌다.
 ‘나래 씨가 어째서 저런 무기를 쓰는지 알겠군!’
 사야가 사마귀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는 사이, 임나래는 육중한 무기를 들고 빠르게 움직였다. 안으로 파고들어 팔을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부욱!
 녹색 체액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사마귀의 얇은 팔은 부러질 기색이 없었다.
 ‘저런 얇은 팔뚝으로 임나래의 공격을 막아 내다니!’
 눈을 부릅뜬 사야는 주변에 달려드는 작은 사마귀들을 베어 낸 뒤 소리쳤다.
 “도망쳐!”
 사마귀와 가까이에 있던 임나래였다. 도망치기란 힘들었다. 사야는 주머니에서 WT 그레네이드를 꺼내 기폭 장치를 설정하고 던졌다. 사람에게는 해가 없고 괴수들을 도망가게끔 하는 값비싼 물건이다.
 위기를 느낀 사마귀가 몸을 움츠렸다. 그 순간 임나래는 전속력으로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레네이드가 터졌다. 하얀 연기가 내뿜어지며 둥지 전체를 잠식해 갔다. 사야는 출구 앞에서 임나래를 기다리며 주위를 살폈다.
 ‘사마귀가 보이지 않아?’
 또다시 발동된 카무플라주. 이전에는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었지만, 그레네이드가 터지고 시야가 가려진 터라 인식할 수가 없었다.
 파다다다닥!
 어디선가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다. 임나래를 쫓아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마귀가 노린 것은 임나래가 아니었다.
 주변 환경이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한순간 사마귀가 자신의 앞까지 이동했다는 걸 깨달았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자 무언가가 걸렸다.
 키이이익!
 그제야 사마귀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입구를 무너뜨리려는 속셈이었다.
 이대로라면 임나래가 도망칠 수 없게 된다. 희고 분홍빛으로 꿈틀거리는 사마귀 성충들 사이에서 파먹히고, 찢긴다.
 ‘안 돼!’
 그 순간, 사야는 다른 한 손을 뻗었다.
 땅속에서 나무뿌리가 뻗어 나왔다. 금세 사마귀의 몸을 휘감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 틈을 타 사야는 검을 휘둘렀다.
 임나래와 다르게 날카로움이 장점인 검이다. 사마귀의 양팔을 절반 정도 베어 낼 수 있었다.
 ‘이래 봤자 금방 치유되겠지만······.’
 사마귀의 뒤까지 왔던 임나래가 슬라이딩하며 사마귀의 아래를 지나갔다. 다행히 사야가 있는 곳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무뿌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사마귀의 가시 발톱이 벽을 때렸다. 소나무의 일부가 뜯겨 출구를 막았다. 사야와 임나래는 털썩 주저앉을 새도 없이, 바로 뒤로 돌아 도망쳤다.
 풀숲을 넘어, 인근의 폐가로 들어가서야 둘은 멈춰 섰다. 사마귀가 쫓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듯 둘은 폐가에 있는 가구 뒤로 숨었다.
 “안 쫓아오겠지?”
 “애초에 둥지에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임나래는 웃음을 터트렸다. 괴수 사냥꾼이 괴수가 무서워서 정신없이 도망가고 말았다니, 어디 가서 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하하, 이렇게 정신없이 도망쳐 본 건 정말 오랜만이야.”
 사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종 사냥을 여럿 해 보았지만, 이렇게 무서워서 도망친 것은 처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은밀성, 빠른 기동력, 일격 필살의 가시 발톱, 커다란 덩치. 거기다 단단한 외피까지.
 사야는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A레이트. 아니, 어쩌면 S급.”
 “동감이야. 그런 녀석······ 여태 본 적이 없다구.”
 한동안 사야와 임나래는 폐가에서 숨을 돌리며 휴식을 취했다.
 “일단 오리진에 신고하는 편이······.”
 그 말을 했을 때,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현재 사마귀를 쫓는 것은 자신들뿐만이 아니었다.
 “팀 그랜드······!”
 “어, 어라, 위험한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임나래는 즉각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했다. 그러더니 곧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 큰일이야. 우리가 도망치는 것을 팀 그랜드가 보았나 봐. 그래서······ 사마귀의 둥지를 알아내고 들어갔대.”
 사야는 할 말이 없어졌다. 팀 그랜드의 수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S레이트에 준하는 괴수를 사냥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애초에 S레이트 괴수는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사냥 공고를 내고 모든 용병들에게 협조 공문을 보낼 정도의 괴수다. 게다가 일류 용병들로 이루어진 수백, 수천의 용병들이 교대로 전선을 바꾸며 괴수를 사냥한다. 그런 괴수를 소규모 정예 팀인 그랜드가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임나래는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봐야겠어.”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임나래를 사야가 붙잡았다.
 “팀 그랜드 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나래 씨가 가 보았자 개죽음이에요. 우리가 실제로 그 녀석을 봤잖습니까? 인챈트된 무기가 박히지 않고, 재생 능력도 발군이에요. 위장이나 도약력은 또 어떻고요.”
 “물론 그 녀석을 사냥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 둥지에서 도망치게 하는 걸 도울 수는 있어.”
 “그러다 당신이 죽으면?”
 임나래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손을 떼어 내며 말했다.
 “내 팔자겠지.”
 그녀는 이어 말했다.
 “도와 달라고 하진 않을게, 너는 너 나름대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테니까.”
 “웃기는 정의감, 사명감 따위로 움직이시는 겁니까? 그만두시죠. 당신을 도와준 그 프로파일러가 실망할 겁니다.”
 임나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여태 본 적이 없었던 얼굴이다.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했다.
 그녀의 기백에 뒷걸음친 사야는 고개를 떨구었다.
 “한시가 바빠. 이만 가 볼게. 될 수 있으면 다음에 또 보자.”
 임나래는 폐가를 뒤로한 채 사야에게서 떠나갔다.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없는 사람에게 따지며 사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사상과 신념이 어떠한지는 일주일간의 생활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책임감이 있다.
 용병이기에 주어진 힘, 용병이기에 주어진 특권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음에도 괴수를 사냥하는 이유. 그게 사야와는 명백히 달랐다.
 사야는 일을 즐기고 있다. 부담감도 없고 하고 싶을 때 원하는 방향으로 한다.
 그에 반해 임나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죄책감 같은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마치 그것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사야는 혀를 찼다. 타인의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여야 하지?
 어째서 용병이라는 이유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가.
 그 질문은 6년 전부터 자신에게 해 온 질문이기도 했다.
 ‘신경 끄자. 임나래 씨의 말대로 죽게 되면 그것도 본인의 팔자인 거지.’
 그리도 책임감을 좋아하니,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사야는 기어코 부천시에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빠바밤.
 ‘음?’
 익숙한 음악 소리가 울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들었던 임나래의 벨소리였다. 급하게 떠나며 주머니에서 떨어뜨린 모양이다. 사야는 주워 받았다.
 “임나래 씨의 핸드폰입니다.”
 핸드폰 너머로 누군가의 숨죽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번호를 확인하자, ‘양현우’라고 되어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숱하게 들었던 이름이다.
 사야가 다시 말했다.
 “임나래 씨의 핸드폰입니다. 놓고 가신 걸 주웠는데······. 용무가 있으시다면 나중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심호흡하는 듯한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사야는 잠자코 대답을 기다렸다.
 “예.”
 이사야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는 거울에 맞대고 혼자 대화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양현우가 전화한 것은 조사 결과를 알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사야는 서로 사정을 알고 있는 이상 숨길 것도 없겠다 싶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