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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아들 1권 1화

2016.08.29 조회 2,272 추천 15


 프롤로그
 
 
 필립은 태양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관리사무소에 도착한 필립은 인사를 하고 카운터앞의 여직원 앞으로 갔다. 2천 호나 되는 아파트라서 직원들이 제법 많았다. 두리번거리다가 집주인 김 목수가 말을 해 준대로 전기주임인 최 기사를 찾았다.
 “아! 최 기사님이 말씀하신분이군요. 아직 출근을 안하셨는데 좀 기다려 주실래요?”
 여 직원은 훤칠한 키에 잘 생긴 필립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필립이 긴장한 얼굴로 의자에 앉자 믹스 커피를 타 왔다.
 “전기 일은 해 봤나?”
 최 기사는 9시 20분 전에 출근을 했다. 필립이 사양을 하는데도 믹스 커피를 타왔다. 필립의 맞은편에 앉아서 거만하게 물었다.
 “전기 일은 해 보지 않았지만 선박 기관 수리는 많이 해 봤습니다.”
 필립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아버지 서영훈은 고향 해포에서 5톤짜리 낡은 어선을 가지고 있다. 워낙 기관이 낡아서 자주 수리를 한다. 그때 마다 아버지를 도와서 기관 수리를 했었다.
 “그럼 그 쪽으로 나가지 그랬나? 여긴 월급도 박하고 큰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거든. 웬만한 것은 모두 외주를 주는 편이라서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거든.”
 최 기사는 필립의 기를 죽이려던 계획이 쑥 들어갔다. 오히려 부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지가 선장이십니다. 자식들이 배타는 것을 굉장히 싫어 하셔서······”
 “하긴 이 직종이 월급은 적지만 배타는 것 보다는 편하고 안전하지. 하여튼 반갑네 앞으로 열심히 해보자구.”
 최 기사가 더 이상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얼굴로 일어섰다. 오랜만에 믿을 만한 직원이 들어왔다.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 오늘 면접은?”
 “면접? 원래 자치회장님이 면접을 보시거든. 오늘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날이라서, 면접 없이 그냥 오늘부터 일 하라고 지시를 내렸네. 자네는 운이 좋아. 자치회장님이 여간 깐깐하신 분이 아니거든. 자 슬슬 현장으로 가 볼까?”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을 하겠습니다.”
 최 기사를 소개해 김 목수는 오늘 주민자치회장의 면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은 성격이 깐깐하다는 자치회장의 얼굴을 궁금해 하며 최 기사 뒤를 따라갔다.
 최 기사가 필립을 관리소장에게 인사를 시켰다. 관리소장은 명태처럼 바짝 마른 사람이다. 별다른 말없이 최 기사처럼만 하면 된다는 말만 했다. 직원 모두들에게 인사를 시킨 다음에 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운전은 할 줄 아나?”
 “군대에서 운전을 많이 해 봤습니다. 운전도 해야 합니까?”
 전기실은 지하에 있다. 필립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물었다.
 “기계가 고장 나면 차에 실고 가서 수리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거든. 이 변압기가 몇 볼트 인 줄 아나?”
 최 기사가 전기실 안에 있는 변압기 앞에서 자랑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큰 변압기는 처음 봅니다. 몇 볼튼데요?”
 “놀라지 마. 이게 이래봬도 이만구천 볼트라구. 이 변압기를 잘못 만지는 순간 그대로 즉사한다고 보면 틀림없어······어! 그런데 왜 자네 안전장갑을 안 끼고 있나?”
 “안전장갑요? 그런 말씀 안하셨잖아요.”
 “어허! 내가 깜박했구먼. 앞으로는 전기실에 들어 올 때는 꼭 안정장갑을 끼게 알았나? 여긴 전부 고압선이 흐르고 있어서 언제 감전사가 날지도 모르는 위험지역이라구. 저 바깥 철망에도 붙어 있잖아.”
 필립은 최 기사 손짓하는 곳을 바라봤다. 전기실로 들어오는 철망에는 빨간색 고딕체 글씨로 “고압 지역 출입금지”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선입니까?”
 필립이 변압기를 자세히 살폈다. 컴퓨터 마우스 선 굵기의 붉은색 전선이 늘어져 있다. 무심코 손으로 잡으며 물었다. 순간 불보다 더 뜨거운 그 무엇이 온 몸을 집어 삼키는 것을 충격에 사로잡히며 축 늘어졌다.
 필립은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둠은 여느 어둠이 아니다. 칠흑보다 캄캄했고 캄캄한 장막보다 더 짙은 어둠이다. 태고,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어둠이 바람이 필립을 마하의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필립은 어느 순간 얼음장처럼 바닥에 닿았다. 눈은 있으되 볼 수가 없고, 입은 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직 귀만 열려 있다.
 느낌으로 봐서 광활한 황무지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모래알이 섞인 강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아주 먼 어둠보다 더 깊은 먼 곳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들리지 않았다.
 하늘도 캄캄했다. 지구가 태양을 가리고 있는 그믐밤이라도 달빛의 여진이 남아 있어서 한참 동안 있으면 사물의 윤곽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달도 별도 없는 캄캄한 황무지에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괴귀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는 강철 철사 끝에 철추를 달아서 빙빙 돌릴 때처럼 위이잉! 하며 괴조(怪鳥)가 우는 것 같은 소라가 귀를 울렸다.
 그 소리는 슬픈가 하면 소름이 돋도록 무서웠다. 무서운가하면 천년을 기다려온 여우가 여인으로 환생을 해서 별도 달도 없는 밤 천년을 참아 온 설음을 짓이겨 킹킹거리며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찌 들어 보면 어미를 사자에게 갈기갈기 찢겨 먹혀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승냥이가 공포에 질려서 울지도 못하고, 이빨 사이로 토해내는 폐부가 찢겨져 나가는 슬픈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빛이 보였다. 담뱃불처럼 작은 점이 서쪽에서 불쑥 나타났다. 점은 빠르게 다가가면서 점점 크기를 더해서 필립에게 달려들었다. 필립은 쏜살같이 달려드는 적색 불기둥을 보고 경악해서 몸을 돌리려 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불기둥은 바닥으로 빠르게 질주를 하면서 발톱이 생기고 머리가 생기는가 했더니 뿔이 달린 홍룡으로 변해 버렸다.
 홍룡이 하늘을 삼켜 버릴 것처럼 입을 벌리고 필립을 덮치려는 순간, 동쪽에서 또 하나의 황색불빛이 불기둥으로 변해 질주를 하다 황룡으로 변했다. 황룡은 홍룡의 허리를 덥석 물어서 하늘 꼭대기로 사라져 버렸다.
 필립은 공포와 전율에 젖어 온 몸이 땀에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남쪽에서 흑룡이 어둠을 불태우며 필립을 향해 거대한 입을 벌리고 쏜살같이 달려 들었다.
 이번에도 황룡이 흑룡의 허리를 덥석 물었다. 황룡과 흑룡은 빛의 속도로 황무지로 낙하를 했다. 불빛을 유성의 꼬리처럼 달고 바닥에 낙하를 하는 순간 황룡이 흑룡을 거대한 바위산에 패대기를 쳤다.
 흑룡은 바위산에 두 동강이 나서 스르르 어둠속으로 녹아 버렸다. 황룡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는데 청룡이 하얀 빛으로 어둠을 태우며 나타났다. 청룡은 필립에게 달려들지 않고 황룡에게 달려들었다.
 청룡과 황룡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덩어리를 뚝뚝 떨어트리며 까마득하게 높은 하늘에서 치열하게 엉켜 붙었다. 청룡이 허리를 틀어서 황룡의 턱을 물려는 순간, 황룡이 가볍게 피하면서 청룡을 뚤뚤 말았다.
 하나가 된 청룡과 황룡은 하늘로 맹렬하게 치솟아 올랐다. 어느 순간 청룡의 잔해가 거대한 용암덩어리처럼 뚝뚝 어둠속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필립은 언젠가부터 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온몸이 얼어붙어 가는 추위와 공포 속에 하늘을 바라봤다.
 황룡은 아직도 어딘가 다른 용이 숨어 있을 것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캄캄한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며 거대하게 맴을 돌기 시작했다. 청룡이 맴을 돌 때 마다 검은 하늘이 흰색 길이 생겼다.
 황룡이 저만큼 날아가면 하얀색 길은 어둠속으로 녹아들었다. 황룡 내뿜은 불기둥이 녹이면 어둠은 핏덩어리처럼 붉은 색으로 툭툭 떨어지면서 어둠을 활활 태웠다.
 어느 순간 남용 한 마리가 황룡이 맴을 돌고 있는 가운데를 직선으로 통과해서 필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쪽으로 맴을 돌고 있던 황룡이 남룡보다 빠르게 낙하를 했다. 몸을 틀어 하늘로 튕겨 올라갔다. 먼 하늘에서 직선으로 내려오던 남룡은 입을 미처 몸을 틀지 못했다. 입을 활짝 벌리고 있는 황룡 입 속으로 폭포처럼 떨어졌다.
 황룡이 다시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천천히 하늘에 태극문양을 만들어가며 돌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천둥이 치는가 했더니 황룡이 빠른 속도로 필립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악!”
 필립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절로 입이 딱 벌어져서 눈알이 빠져 나가는 것 같은 공포에 사로 잡혔다. 순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움직여줘서 벌떡 일어섰다. 황룡을 피할 수가 없을 바에 최후의 대결을 하고 싶었다.
 “오라!
 필립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온 몸의 기를 모아서 최후의 발악을 하듯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황룡을 노려봤다. 필립이 당당한 기세에 황룡이 놀라기라도 한 것일까.
 황룡은 갑자기 안개처럼 형체를 일어 버리는가 했더니 필립의 입안으로 부드럽게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필립은 어느 순간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졌다. 손가락을 몸을 만지면 너무 뜨거워서 불똥이 파바박 튀겼다. 이어 오른 팔이 뚝 떨어져 나갔다. 곧이어 왼팔이 떨어져 나갔다.
 필립은 의식은 살아 있는데 양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서 캄캄한 하늘에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양팔도 각각 다른 곳에서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하늘에서 떠 다녔다. 위장, 대장, 간이며 심장 살조각들도 제각기 살아 있는 것처럼 어둠속에서 떠 다녔다.
 영혼만 살아 있는 필립이 빛덩어리 형태의 입이며 귀, 코, 뇌와 눈까지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처럼 떠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You are(너는)”
 “In the infinitely weaker tears of angels(천사의 눈물을 보면 한없이 약해지고)
 “Infinitely stronger will look at the devil's blood(악마의 피를 보면 한없이 강해질 것이다)
 “Who are you?(당신은 누굽니까?)
 필립은 실체가 없어도 온 몸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터져 나가 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순간 어둠속에서 빛으로 떠다니던 오장육보는 물론이고 오체가 자석에 붙은 쇠붙이처럼 필립에게 달라붙었다.
 “I am the god of the wind(나는 바람의 신이다)”
 “Why did you choose me?(왜 나를 선택하셨습니까?”
 바람이 불었다. 필립의 머리카락이며 옷이 바람부는 방향으로 사정없이 나부꼈다. 바람속에는 먼지며 흙이며 모래알들이 얼음알갱이처럼 차갑게 섞여 있었다. 필립이 하늘을 향해 계속 물었다.
 “You are the son of the wind.(너는 바람의 아들이다)
 “My son.(나의 아들은.)”
 “But no woman can love(여자는 있으나 사랑을 할 수 없다)”
 “You would like to love a woman.(네가 여자를 사랑하고 싶으면)”
 “Empire of the Wind(바람의 제국을)”
 “It will be a day Construction(건설한 그날이 될 것이다.)”
 “I do not have power.(저는 힘이 없습니다.)”
 “Believe me!(나를 믿으라!)”
 “Thank you(감사합니다)
 필립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이미 영서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My words are ended. Now take off(나의 말은 끝이 났다. 이제 그만 가라)
 하늘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뚝 끊어지더니 정적이 감돌았다. 사방을 돌아보는 순간 순식간에 어둠이 주저앉았다. 하얀 햇살이 쏟아져서 너무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오빠······”
 세상이 온통 눈이 부시도록 하얀데 어디선가 영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서 눈을 떴다.
 “오빠, 눈을 떴네?”
 영서가 눈물을 터트리며 필립의 손을 잡았다.
 “왜 우니?”
 “저, 정말 괘, 괜찮은 거야?”
 영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10분 동안이나 죽었다 살아난 사람치고 너무 멀쩡한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좀 어떠십니까?”
 필립이 뭐라고 대답을 하려 할 때였다. 사십 대 중반의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필립의 오른 발 가운데를 붕대로 가볍게 싸맨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퇴원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필립이 뒷머리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오! 아닙니다. 환자분은 이만구천 볼트에 감전되었던 분입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이만구천 볼트에 감전 된 사람치고 이렇게 멀쩡하신 분은 환자분 딱 한분입니다. 저도 제 눈을 믿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더 지켜봅시다.”
 의사는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오른발의 붕대를 풀었다. 영서는 숨을 죽이고 상처를 들여다봤다. 발바닥 움푹 들어간데 콩알 크기의 까맣게 탄 부분이 보였다.
 언뜻 보면 그냥 연기에 그을린 자국처럼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늘을 날아가는 용 문신처럼 보였다.
 “의사 선생님, 그러니까 이만구천볼트의 전기가 이곳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는 겁니까?”
 김 목수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맞습니다. 여기로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지금 이 베드에 앉아 있지 못했을 겁니다. 하여튼 학회에 보고를 해도 다른 의사분들도 못 믿으실 겁니다.”
 “혹시 발바닥에 문신을 하셨어요?”
 간호사가 발바닥을 붕대로 싸매기 전에 필립에게 물었다.
 “저는 원래 문신을 안합니다. 문신을 한다고 해도 발바닥에 하겠습니까?”
 “이상하다. 선생님은 용문신처럼 보이지 않으세요?”
 “나도 용문신처럼 보이긴 해요.”
 발바닥을 한참 들여다보던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정말로 신기하네요.”
 간호사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발을 싸매기 시작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영서는 의사가 괜찮다고 하니까 영서는 온 몸의 기운이 쭉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베드 난간을 잡고 물었다.
 “괜찮아. 머리가 굉장히 깨끗해진 기분이 들어. 기운도 막 넘치는 것 같구.”
 필립이 과장스럽게 팔 운동을 해 보이며 웃었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어?”
 영서는 긴장이 와르르 무너지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환자들이 있는데서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서 소리 없이 폭포 같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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