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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말세 종결자

말세 종결자 1권 1화

2016.11.08 조회 209 추천 0


 프롤로그 미쳐 버린 소년과 악마
 
 
 “소원아, 그만하자. 누나가 너무 힘들어. 응? 제발 누나 좀 살려 줘.”
 이소원은 소매를 붙잡고 흐느끼는 누나를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환영이라는 걸 알면서도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미안해. 누나. 절대 몸을 내줄 수 없어. 그건 누나를 정말 죽이는 일이란 말이야.”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멨다.
 “아니야, 아니라고. 일 년만 쓰고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어. 소원아, 제발 누나의 고통을 멈춰 줘!”
 “안 돼, 누나.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들어줄 수 없어. 절대 안 되는 일이라고! 내가 승낙하면 내 몸을 차지한 악마가 누나와 형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견디면 누나와 형은 안전해!”
 어느새 누나는 식칼을 쥐고 있었다.
 이소원은 반복되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누나, 제발······. 이러지 마······.”
 간절한 흐느낌.
 “날 죽게 할 셈이야? 응? 이 고통을 겪느니······. 난 죽어 버릴 거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난 자살할 수밖에 없어!”
 실랑이 끝에 누나는 배에 식칼을 꽂은 채 비참하게 죽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소원,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이제 나까지 죽일 셈이냐!”
 절규하는 형을 보며 이소원은 이를 악물었다.
 한 달째, 조금씩 내용을 달리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
 뻔히 환영임을 알고 있었지만 슬픔은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래, 잘난 내 동생아! 크크크큭! 너 때문에 이제 내가 죽을 차례구나! 네 알량한 욕심 때문에 우리 가족을 모두 죽이고 마는구나!”
 피를 게워 내며 죽어 가는 형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미친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악마 놈아!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내가 몸을 넘겨줄 것 같아? 절대로! 절대로! 넘겨주지 않는다!”
 “아빠, 엄마.”
 절망에 가까운 부르짖음.
 돌아가신 부모님을 볼 수 있다는 반가움이 아니었다.
 “이소원! 우리도 버릴 생각이냐?”
 “우리 아들······ 엄마는, 너무 두렵구나. 엄마는, 우리 아들이 엄마를 버리지 않을 거라 믿는다······.”
 두 분의 처참한 모습과 애원하는 얼굴을 보며 이소원의 얼굴은 괴기스럽게 일그러졌다.
 돌아가신 부모님까지 이용하는 저주스러운 악마!
 “너를 찢어 죽이고 말겠다! 내 손으로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겠다! 반드시 죽여주마! 꼭!”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앞에서 서로의 목을 조르며 흐느껴 우셨다.
 이소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악마에게 농락당하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이 악마 놈아!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살을 하면 했지 네놈에게 몸을 주지는 않는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처음으로 악마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너처럼 나약한 인간이 과연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게 몸을 넘기고 안식에 들어라.
 “자살을 했으면 했지, 먼저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절대! 절대! 절대에에에!”
 시간이 흐를수록 악마에 대한 증오가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 어리석음을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 장담하지.
 악마는 이소원을 굴복시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가족들의 호소와 절규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극악의 고문을 가하며 협박하길 서슴지 않았다.
 그 모든 시도가 좌절되자 인간이 누리기 힘든 최고의 쾌락을 제공하는 유혹을 했고, 마지막으론 한 나라의 왕이 되어 권력을 맛보게도 해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욕칠정을 잃어 갔다.
 조금씩 악마의 유혹을 견디기가 수월했지만 이소원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삭막해져 갔다.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 흐르고 지친 얼굴의 악마가 이소원의 앞에 나타났다.
 -이 세계에 너와 같은 인간이 있을 줄은 몰랐군. 네가 이겼다. 나의 이름은 바레스. 마의 세계에서 넘어온 악마다.
 “······!”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되었군. 바레스, 오늘은 무슨 수작을 벌이고자 하는 거지?”
 이소원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외딴 이곳에서 절규하고 아파하던 이소원은 없었다.
 감정 없는 얼굴과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무장한 또 다른 이소원이 있을 뿐이다.
 “네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바레스가 들려주는 현실의 상황과 인류가 맞이할 마지막 상황은 이소원의 무표정을 깰 만큼 충격적이었다.
 인류 종말.
 소설에서나 다룰 만한 일이 지구에서 벌어진다니.
 -이번 거래는 너에게 주는 유일한 기회이며 나에겐 도박과 같은 일이다. 거절한다면 너와 나의 운명은 공멸뿐이다.
 악마 바레스는 마지막 거래를 제안했다.
 악마의 제안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거래는 무조건 거절만 할 수 없었다.
 악마에게도, 이소원에게도 마지막 기회였기에.
 “······단, 조건이 하나 있다. 그걸 들어준다면 너와 계약하겠다.”
 이소원은 감정을 추스르며 힘겹게 하나의 조건에 대해 말했다.
 -수용할 수밖에 없군. 기뻐하긴 이를 것이다. 네가 승리할 확률은 없을 테니.
 바레스는 이소원의 조건을 수락했다.
 이소원은 마의 세계에서 넘어온 악마 바레스와 영혼을 걸고 계약을 맺었다.
 종말의 서곡, 말세 2016의 시작이었다.
 
 
 1장 깨어난 소년
 
 
 (1)
 
 
 이소원은 눈을 뜨려고 애썼다.
 끈기를 가지고 시도하길 여러 차례, 겨우 눈을 뜨고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어릴 적에 한 번 와 봤던 곳이라 기억에 남아 있었다.
 “증조할아버지 사당인가?”
 몸 상태를 확인했다.
 “꼴이 영 아니군.”
 정신병원의 난폭한 환자들을 위한 특수복이 입혀진 채였다.
 양손은 묶인 채였고, 양발은 개목걸이처럼 튼튼한 가죽 끈에 묶여 있어 한 걸음 이상은 옮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얼마나 안 씻었는지 참기 힘든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더럽혀진 이불에서 역한 악취가 올라왔다.
 바레스에게 현실의 대략적인 상황을 듣긴 했지만 깨어나 보니 입맛이 썼다.
 “기저귀에 개밥그릇이라니······.”
 어이없게도 기저귀를 차고 있고, 밥그릇처럼 보이는 지저분한 양철 냄비를 확인했을 땐 헛웃음만 나왔다.
 “골치 아프군. 어떻게 하지?”
 악마 바레스와 계약한 힘을 사용하면 몸을 구속한 옷을 찢고 가죽 끈을 끊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복귀하려면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가만히 앉은 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해야 할 일과 누나와 형을 만났을 때를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파 왔다.
 끼익!
 그때 사당 문이 열렸다.
 삼십 대 초반의 단정한 여자는 머리를 뒤로 묶은 채 작업복으로 생각되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눈빛만은 맑아 보였다.
 이소원은 이소정의 등장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누나를 만나면 가슴이 뭉클할 줄 알았는데······.’
 진짜 누나를 만나면 눈물이 나거나 그리움 같은 감정이 솟아날 줄 알았는데 현실과 생각은 달랐다.
 이소정은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이소원의 눈빛이 평소와 다름을 깨닫고 걸음을 멈추었다.
 “소원아.”
 “누나, 잘 지냈어?”
 이소원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웃은 지 너무 오래돼서 입가가 뜻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
 그 어색함 때문인지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잃었다.
 “누나? 동생이 오랜만에 인사하는데 받아 주지도 않네.”
 이소정은 눈만 깜빡거린 채 가만히 있다가 이소원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소원아, 너어······.”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그런 표정.
 “깨어났어.”
 이소원은 최선을 다해 연기를 했다.
 “정말?”
 “그래, 괜찮아졌으니까 안심해.”
 “진짜?”
 “어. 완전히 나았어.”
 이소원은 부드럽게 말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여전히 어색함을 느꼈다.
 “흑!”
 이소정은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복잡한 심경이 그 모습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기쁨의 눈물이겠지? 형은 어디 있어?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어? 할 말 있으니까 저녁에라도 내려오라고 해 줘. 아! 그리고 누나, 소원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지?”
 연기에 몰입한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입이 풀렸다.
 “말 많은 건 여전하네. 소원이 뭔데?”
 이소정이 눈물을 닦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소원에겐 기쁨의 해후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목욕 좀 하게 해 줘. 내 몸에서 나는 거지만 냄새 때문에 죽겠어.”
 “풋, 힘들어도 좀 기다려. 오빠한테 연락도 해야 하고 널 옮기려면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 모셔 와야 하니까.”
 “기다릴게.”
 이소원의 넉살 연기에 이소정은 피식 웃고는 서둘러 사당을 나섰다.
 이소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걷혔다.
 한숨을 내쉰 이소원은 허공을 향해 말했다.
 “바레스, 만약 이번 일이 환영이라면 널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바레스의 환영에 놀아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있었다. 오랜 시간 바레스의 환영에 시달렸지만 완벽하게 환영을 꿰뚫어볼 수는 없었기에 아직까진 이곳이 현실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차분하게 주변의 기운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환영을 겪으면 느꼈던 이질감은 없었다.
 “······현실 같군.”
 눈을 뜬 이소원의 목소리에 깊은 안도가 깃들었다.
 바레스와의 계약은 사실이었다.
 현실.
 정말 단순한 이 사실 하나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키겠다. 반드시.”
 이소원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또 맹세하며 기다렸다.
 증조할아버지 사당이 있는 곳은 야트막한 산이었다.
 이소정의 부탁을 받은 화선 마을의 사람들이 이소원을 옮기기 위해 산을 올랐다.
 이소원은 임시로 만든 들것에 실렸다.
 “아따, 똥 냄새가 독하구먼.”
 “거시기, 무신 냄새가 이렇다요?”
 “죄송합니다, 이장님.”
 이소정은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싸게 들어.”
 화선 마을의 이장을 포함한 가장 젊은 세 명의 중년인들은 냄새 때문에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이소원을 마을까지 옮겨 주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뜨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소원은 목욕을 하게 되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환영 세계에서 오랫동안 시달리면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이었다.
 “내가 한다니까.”
 “그 몸으로 잘도 하겠다. 힘들게 하지 말고 손 치워! 형 오기 전에 깨끗하게 씻고 기다려야지!”
 누나의 손길이 이소원의 몸을 헤집고 다녔다.
 부끄러움.
 몸을 배배 꼬며 저항했지만 근육이라곤 찾기 어려울 정도의 몸으로 이소정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누나! 거긴!”
 그녀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이소원은 욕탕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보며 괴이한 기분에 휩싸였다.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었던 인간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이다.
 ‘현실이기 때문에 느끼는 거겠지.’
 환영이라고 생각했다면 여전히 무덤덤하게 씻겨주는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겠지.
 “누나,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꼴에 남자라고 부끄러운가 보지? 축 처진 거 뭐 볼 게 있다고 그래?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이소정은 이소원의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긴 뒤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물이 따뜻하니까 잠시 즐기고 있어. 도와주신 어르신들에게 막걸리 좀 사다 드리고 올 테니까.”
 “알았어.”
 이소원은 누나가 오기 전에 몸을 닦고 속옷이라도 입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쓰지 않은 근육들은 주인의 협조 요청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현실이라는 게 이렇게 곤욕스러울 줄은 몰랐군.”
 저항할 방법이 없었기에 이소원은 마음을 비웠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북극의 빙하와 같이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 가져야 할 너무나 기본적인 감정들을 되찾는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많이 기다렸지? 오빠는 내려오고 있다네.”
 “아, 오늘 날짜가 어떻게 돼?”
 갑자기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2)
 
 
 “날짜? 아! 지금은 2002년 10월 12일 토요일.”
 “2002년이면 3년이네.”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혼잣말을 흘렸다.
 “수정이 알지? 오늘 데이트 약속 있었는데 그거 깨고 온대.”
 “수정이? 그 개······. 아, 아직까지 수정이랑 사귀는구나.”
 ‘그 개년!’이라고 말하려다가 서둘러 말을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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