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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집행 흑마법사 1-1권

2016.11.17 조회 3,748 추천 40


 # S1 ; 제국을 위하여 : 프롤로그.
 
 “최후의 그날,
 하늘에서 칠성(七星)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누구도 막지 못할 힘으로, 그를 막아서는 모든 것은 한 줌 재가 되리라.
 신이 아닌 것은 그의 수족이 될 것이며
 신들은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인간들은 지배자가 아닌 노예가 될 것이며
 그를 부른 계약자와 함께
 칠성의 대왕이 온 영토를 지배하리라.”
 -대현자 오스마 크라프트
 
 
 # S1 : 1화
 
 그리고 약 600년 뒤. 되시겠다.
 
 ‘아~~~골치 아프네 진짜.’
 칠성은 뻐근한 뒷목을 매만졌다.
 
 대현자. 오스마 크라프트.
 대륙에 태어난 의식 마법사 중 한 명으로 결국 최고의 경지까지 이르러, 대현자의 칭호까지 얻었던 사람.
 이 대현자는 죽어 가기 전, 뜬금없는 사상 최대 스케일, 그러니까 세계 멸망에 대한 예언을 뱉었다.
 하필이면 그의 수명이 다하기 직전에 뱉은 예언.
 딱히 해석을 물어볼 시간도 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그 예언 덕에 매우 아주 크게 피를 본 사람이 있었으니······.
 
 ***
 
 각종 해골바가지와 낫, 섬뜩한 동물 박제, 바닥에 굴러다니는 목이 잘린 어린 양 재물. 어두운 주변을 은은히 비추는 녹아내리는 촛불들.
 “칠성의 대왕이시여어어억!!”
 “···예?”
 그리고 앞에 엎드려 절하는 노망난 늙은이와 그 앞에 마법진 위에 서서 멍 때리고 선남자.
 고등학생 김칠성.
 “무슨······.”
 “계약자 메피스토 마카레나 인사 드리옵니다아악!!”
 “아니, 아니 저 목소리 쉬실 거 같은데 할아··· 아저씨?”
 이 정신없는, 아니 정신 나간, 칠성의 대왕을 소환해 같이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정신 나간 흑마법사가 김칠성의 마법 스승, 마카레나 노인이다.
 영혼의 지도라는 것에서 대왕급의 영혼 중 김칠성을 찾아낸 마카레나.
 대왕급의 영혼에 칠성이란 이름을 단서로 하필 대한민국 고등학생 ‘김칠성’을 소환했다.
 그것도 뭐 옆 동네 이 정도도 아니고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아니 저 아니라니까요!!”
 “그럴···그럴 리가 없습니다. 어둠의 군주님!!!”
 “아~놔!! 빨리 나 원래 있던 데다 데려다 놓으라고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둠의 주인이시여! 이제부터 저와 함께!!”
 “크아아!”
 들을 생각이 없고만!?
 칠성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매달리는 이 할아버지.
 결국엔 칠성이 예언 속의 대왕이 아니란 걸 인정했지만 그 뒤에도 분명 엄청난 그릇을 가지고 있을 거라며 칠성 안의 마왕(?) 을 깨우기 위해 온갖 술법과 흑마법을 동원했다.
 뭐, 처음 몇 년간에는 빨리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내라고 온갖 지랄을 다 하던 칠성 역시 차츰 적응해 갔지만 말이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
 그리고 마치 이름 값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가 끓여준 마카로니 스프는 일품이었다는 평.
 
 헤이~ 마카레나 아잇!
 
 이런 일이 있었던 게 대충 600년 전이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
 
 “야 이 새끼들아. 너네는 공소시효 이런 개념 없냐?!”
 갑갑한 새끼들.
 보랏빛 암석으로 이뤄진 기암절벽 위에서 칠성은 절규하듯 소리 쳤다.
 60여 미터 높이의 산자락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저 멀리 지평선까지 황금색의 갑옷으로 치장한 수천 명의 성기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성기사가 칠성을 향해 외쳤다.
 “사악한 요괴 김칠성! 오늘이야말로 신성한 징벌 앞에 무릎 꿇어라!”
 정의감이 그득그득 들어찬, 칠성 입장에서야 닳고 달 정도로 들은 진부한 대사다.
 “야 이 개새끼가! 사람이라고 사람! 흑마법사도 사람이야!”
 이리저리 떠돌다 연금술 약 몇 개 투약당해서 반쯤 마족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아닌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동네는 흑마법사 인권이 너무 낮다.
 
 “네가 4천왕과 저지른 200년 전의 악행! 이 자리에서 심판하겠다!”
 “미친놈아! 200년이면 그 시절 사람들 다 늙어죽었겠다!”
 심지어 김칠성과 같이 다니던 친구들, 그러니까 성기사가 읊조리는 4천왕 애들도 이미 다 죽은 뒤였다.
 
 ‘타락한 영웅’ 엑스칼리버에게 버림받은 기사 길카터!
 한 팔로 대륙 군을 아작 낸 ‘죽음의 오른손’ 무투가 란돌프!
 요정 왕을 살해한 ‘생명의 적’ 다크엘프 어쌔신 엘시아!
 ‘어둠의 성녀’ 님프족 암흑사제 라테일!
 300년간 대륙을 어둠으로 물들였던 사대천왕!
 
 그러나 세월보다 강한 것이 있을까?
 “골골골··· 내 이가 안 좋아서······.”
 검으로 산을 베어내던 길카터가 백발마저 성성하게 빠져 스테이크조차 씹지 못하는 날도 오지 않던가?
 “이고 보라구··· 내 손주가 오찌나 귀여운지······.”
 ‘생명의 적’이라던 엘시아가 손주 바보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실력이며 마력이며 종족이 다 무엇이던가.
 결국 홧김에 길에서 시비가 붙어 싸웠던 사람이 가지고 있던 현자의 돌을 뺏어 먹은 칠성만 지금까지 젊은 모습 그대로 살아 있었다.
 
 “야, 씨바. 길리엄 라인 손들어.”
 마력으로 증폭 된 칠성의 목소리를 못 들었을 리도 없건만.
 대답은 없고 몇몇 성기사들이 주변 눈치를 보며 웅성거렸다.
 
 “아 이 새끼들이 어른이 말하는데 씹어? 니네 몇 살이니? 등록증 까?”
 칠성이 다그치자 그제야 몇몇 놈이 손을 든다.
 대략 4~60명쯤 되겠구만그래.
 
 길리엄은 4천왕과 함께 활동하던 그 전성기에 칠성을 처음 찍은(?) 성기사다.
 길리엄이 칠성을 세상에 강림한 ‘마왕’으로 선포.
 즉, 공식적인 세상 악의 축으로 선포한 뒤로
 성기사들의 군대 바티칸은 김칠성과 사천왕의 제거를 자신들의 숙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200년이나 돌고 돌아 지금 김칠성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뭐 길리엄 라인 놈들이 실력도 좋을 테니’
 일단 시작하자마자 저놈들부터 싹 죽여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순진하게 손을 든 성기사들을 눈으로 세어보는 칠성.
 혹시나 당신이 마법이 상식인 대륙을 여행하게 될 때 알아두어야 할 상식. 모르는 흑마법사가 손들라고 하면 손드는 거 아니다.
 
 “그대가 진정 악행으로부터 손을 뗐다면 이 마석들은 다 무엇인가! 마신소환의 재물이 아닌가!”
 아까 그 성기사들의 리더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씨바! 쓸데가 있어서 모은 거라니까?”
 칠성이 밟고 선 60미터의 높이의 보라색 암석의 산자락.
 사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조성된 산이 아니라 칠성이 모아둔 마석의 무더기였다.
 잘 모아두고 산 형태로 위장 마법을 걸어놨는데 성기사들이 위장 마법을 제거해서 그 모습이 훤히 들어나 있었다.
 그리고 칠성은 정말이지 마신소환 그런 거에 쓰려고 모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마석을 모은 이유.
 바로, 고향차원에 돌아가려고 모은 거다.
 4천왕과 함께 떠돌 때는 또 한동안 고향생각 잊고 지냈더랬다.
 그런데 4천왕이 다 죽고 나니 소위 현자타임 오더라.
 
 그래서 차원을 뛰어넘는 마법을 연구해 봤는데, 소환해주는 사람 없이 오로지 자력으로 차원을 뛰어넘으려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이제 반 넘게 모았는데······.
 상대는 수천 명의 성기사.
 사람이란 게 우스워서,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죽더라도 고향에 돌아가서 죽고 싶었는데······.
 
 뚜두둑—
 “근데 니들, 자신은 있냐?”
 와작와작.
 칠성이 발치에 있던 커다란 마석을 한손으로 솥단지 크기정도 뜯어내 씹으며 물었다.
 “······.”
 칠성의 먹성에 압도당했는지 멍 때리는 성기사들.
 
 “···니들이 이 세상 마지막 성기사들이다. 알겠냐?”
 사—아.
 칠성의 말끝에 퍼지는 살기.
 성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저 간악한 요괴의 말에 흔들리지 마라! 전원 성문 준비!”
 그 기세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성기사들의 리더가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쥐잉—쥐잉—쥐이잉—
 리더의 말에 전열을 가다듬은 성기사들이 성문(聖文)을 읊기 시작하고,
 이내 공명음들과 함께 성기사들이 황금빛 버프에 물들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살기로 기세등등하게 빛이 나는 칠성의 안광.
 씹어내듯 말마디를 뱉는다.
 “내일부로 바티칸 영업중지다.”
 흡수된 마력이 서서히 눈에 보랏빛 안광으로 올라온다.
 “···이 새끼들아.”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갈퀴를 만들어 들어올리는 칠성.
 “*디코이*!”
 콰지직!
 “크아악!”
 “세상에!!”
 예고했던 대로, 시작과 동시에 칠성과 계약한 그림자군주 디코이가 갈고리 모양으로 굽힌 칠성의 손동작에 맞추어 거대한 그림자 손을 땅으로부터 솟아 올렸고.
 칠성이 주먹을 쥠과 동시에 4~60명 되어보이던 길리엄 라인의 성기사 무리가 디코이의 손아귀에 뭉개졌다.
 
 “정의를 위하여!”
 “히야아아앗!”
 온몸에 버프를 두른 수십 명의 성기사가 등 뒤에서 달려들었다.
 “처리해.”
 칠성이 등 뒤쪽으로 슬쩍 왼손을 가볍게 튕기며 지시하자 등 뒤 땅 밑에서 수백의 구울이 순식간에 솟아났다.
 “그웨엑! 쿠에엑!”
 “크아악!”
 “꺄아악!”
 그리고 땅에서부터 성기사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덤벼들었다.
 
 쉭쉭쉭—
 잠깐 사이에 수백 병의 신성 수류탄이 칠성 쪽을 향해 날아왔다.
 “*다크 미사일*!”
 퍼퍼퍼펑!
 가벼운 시동어에 수천 개의 암흑의 기둥이 공중에서 생성돼 수류탄들을 박살 냈다.
 칠성은 발치에 또 다른 마석을 한 조각 떼어 입안에 우겨넣었다.
 
 ‘이게 맛있어서 다행이다.’
 마석은 정제되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좀 다른 맛이 나는데, 칠성이 정제한 것들은 연보라색에 포도사탕 맛이었다.
 
 “*어둠의 거인*!”
 “으···으아악!”
 “저···저게 뭐야!”
 “당황하지 마라! 전열을 유지해라!”
 마력이 올라옴과 동시에 팔을 늘어뜨리고 허리를 곧게 펴며 시동어를 외우자 약 150M의 반투명한 거인의 형체가 칠성 뒤의 배경에 생겨났다.
 “꺼억~.”
 마석은 의외로 포만감이 있다. 마력을 써버리면 다시 허해지지만.
 칠성은 입고 있던 교복의 안주머니에서 MP3를 꺼냈다.
 아아팟이었다.
 원래 세계에서 가져왔던 물건들 중 하나.
 마력코팅으로 세월을 튕겨내고 있었다.
 배터리도 아끼고.
 
 선곡은 AEA의 심장이 쿵쾅해.
 “빠네 빠네 버려써요~.”
 이걸 600년이나 듣게 될 줄은 몰랐지.
 
 “신명나게 놀아보자!”
 칠성이 리듬에 맞추어 팔을 휘둘러대자 어둠의 거인도 리듬에 맞추어 팔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성모님!!”
 “요괴를 죽여라!”
 “심쿵해~ 널 보면 볼수록~♬”
 쾅! 쾅! 콰쾅!
 거인의 웨이브에 소닉붐이 일어나고 귀여운 발차기에 수소폭탄 같은 폭격이 일어나는 관경이었다.
 칠성이 중간중간 귀여운 포인트 안무를 넣을 때마다 거인 역시 혼연 일체된 안무를 선보였다.
 상황과 맞지 않는 신명나는 분위기.
 “살···살려줘!”
 “끄아아아!”
 한참이나 칠성과 어둠의 거인의 춤사위에 진영이 파도처럼 일렁일렁 흔들리던 찰나!
 
 슈슉!
 “거기까지다! *체크메이트!*”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예의 성기사 리더로 보이던 기사가 칠성의 앞으로 순간이동 함과 동시에 속박주술-체크메이트-을 걸었다.
 
 “크크크크··· 새끼가. 뭐 할 건데?”
 사실은 칠성이 걸려주었다.
 이미 마력과 식(食)이 일체된 몸,
 어지간한 마법이나 주술은 상대가 시전하기 전에 주변의 마력을 먹어치워 버리면 땡이다.
 마력을 빼앗긴 시전자는 대게 기절하거나 쇼크사한다.
 칠성 입장에서,
 체크 메이트는 딱히 고위마법도 아닌지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주술.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상대방의 멘탈을 뒤흔들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걸려 준 것이다.
 그야말로 악취미였다!
 고심 끝에 준비해온 최후 최악의 수단도 보잘 것 없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비웃어 줄 때의 쾌감을 기대하며 칠성의 입꼬리가 벌써부터 달싹인다.
 
 “*추방!*”
 녀석이 그렇게 외쳤고,
 칠성은 너무나도 의외의 주문에 눈을 찢어져라 뜨고 놈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평선 끝까지······.
 남아 있는 성기사들 무리 사이사이로 연결된 황금의 선이 보였다.
 그 선들이 대장 성기사의 시동어에 따라 밝은 청색의 빛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제야 보였다.
 학살에 가까운 전투는 연극이었다.
 바로 이걸 만들고 지켜내기 위한 하나의 연극.
 이건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이다.
 
 “···씨발, 추방마법?”
 추방마법.
 이쪽 세계에선 방범용, 호신용 등으로 좀 사는 동네에선 어린아이도 배우는 마법이었다.
 심지어 반자동으로 마법을 실행해주는 ‘추방 똑똑이’라는 귀여운 곰 인형 모양의 아티팩트까지 있었다.
 ‘이 미친놈들이 ‘칠성의 대마왕’인 나를 잡기 위해 피 흘리며 준비해온 게 고작 추방마법이라니.’
 불에 튀겨져도, 화살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심지어 거의 아예 사라져도 부활하는 칠성을 잡기 위해 그들이 준비해온 것은, 말도 안 되게 큰 스케일의 호신용 마법이었다.
 
 “너를 다른 차원으로 추방하겠다!”
 후우···씨발.
 쨍강!
 칠성이 가볍게 체크메이트를 풀고 주변의 마력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뛰어들어 마법진을 지키는 녀석들에게 암흑의 창을 날리고, 법진의 마력을 씹어 먹어봐도 시전중인 마법은 흩어지긴커녕 점차 완성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깊선승겅 나시타니 깊선승겅 나시타니>
 공격당하면서도 마법을 진척시키는 무서운 집념들이었다.
 새끼들아··· 니들 다 세뇌 당한거야.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라고!”
 칠성이 악을 써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속절없이 진행된 마법은 마침내 지평선 위의 태양처럼 밝게 떠올랐다.
 
 법진 자체가 칠성의 영혼을 목표로 설정되어 어디 도망갈 데도 없었다.
 “아이 씨발······.”
 차원을 뛰어넘는 초거대 규모의 추방마법이라니.
 괴짜 흑마법사에게 ‘칠七성星의 대마왕’ 으로 오인당해서 강제 소환된 고등학생 ‘김칠성’.
 600년간의 고락 끝에 진짜 ‘칠성의 대마왕’ 으로 이름을 떨친 뒤인데.
 또다시 알지도 못하는 세계에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씨바아아알!!”
 이내 완성된 마법의 상상도 못 할 정도의 거대한 마력에 덮쳐진 칠성은 절규했다.
 시야가 점차 멀어져 갔다.
 
 ***
 
 추방마법에 김칠성이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고, 김칠성과 성기사들의 전투가 펼쳐지던 페젤론국 인근의 평원—
 
 “부상자···전사자는?”
 한쪽 다리를 다친, 아까 전 김칠성에게 징벌을 가하겠다던 성기사 무리의 머리로 보이는 남자.
 카이혼이 물었다.
 “그게··· 인해부상을 입은 기사가 약 500 정도 되고······.”
 그의 부하로 보이는 성기사가, 성기사들의 상태를 즉시 확인할 수 있는 비전 성문마법으로 빛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했다.
 
 “전사자는··· 0명인 것 같습니다.”
 
 “···뭐라고?”
 “0명입니다.”
 “······.”
 말이 될 리가 없는 일이었다.
 3000여 명의 기사가 동원된 일.
 카이혼이 아는 모든 선대 성기사들로 부터 최강, 최악이란 평과 함께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은.
 인류의 적, 대마왕이라고 불린 자와의 대결. 그런데 전사자가 없다?
 “기묘하군······.”
 카이혼이 칠성이 사라진 부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건 어떻게 할까요?”
 “본청에 연락해.”
 산과도 같은 거대한 흑마석의 덩어리를 누군가가 가리키며 묻자 카이혼이 명령했다.
 “옙!”
 자신 주변의 기사들이 뒷마무리를 위해 흩어지자 씁쓸한 눈빛으로 흑마석의 산을 바라보던 카이혼이 중얼거렸다.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 S1 : 2화
 
 ***
 
 “씨바아아알!!”
 “뭐야?”
 “헉 저기 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
 뭐지?
 성기사들의 추방마법에 당했다고 생각한 직후, 칠성은 굉장히 이질적인 풍경 속에 낯선 사람들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었다.
 
 ‘뭐지? 벌써 끝난 건가?’
 나름 차원을 뛰어넘는 추방마법이니 중간에 엄청난 과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눈 깜짝할 새.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여기가 다른 차원인 건가······.”
 약 500여 미터 밖에선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서 칠성 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가?
 그런 건 둘째 치고, 칠성은 이 이상하고 낯선 풍경의 공간이 어쩐지 익숙하단 느낌이 들었다.
 “어······?”
 
 쫙쫙 뻗어 올라간 건물들.
 외벽에 형형색색의 광고판들.
 그리고 익숙한 느낌의 사람들.
 
 “우···씨바.”
 이게 대체 무슨 경우지?!
 
 칠성은 서울 한복판에 서 있었다!
 
 “크···크크큭···큭······!”
 꼬시다 꼬셔!
 칠성은 입이 찢어져라 올라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제 어느 천 년에 고향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이건 오히려 성기사 놈들이 지구로 돌아오도록 도와준 꼴이 아닌가!
 
 ‘역시~ 인생 될 놈 될이야!’
 그리고 칠성은 될 놈이고 말이다.
 “캬캬캬캬캬!”
 기분 째진다. 카타르시스가 밀려온다.
 칠성은 그렇게 한참이나 웃어젖혔다.
 
 그리고······.
 
 ‘먼 소용이냐······.’
 한 템포 늦게.
 밀려오는 애상감.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그저 본능적인 회귀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칠성이 지구에서 떠난 지 600년이나 지난 지금시점에,
 고향으로 돌아와 봐야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모님도 돌아가셨겠지.’
 당연하다.
 진하게 현자타임 온다. 그런데······.
 
 “아들?! 거기 왜 있어!”
 “아줌마 안 돼요!”
 “아이고! 우리 애가 저기 있어요!”
 칠성의 앞쪽 500M 밖쯤에 쳐져 있는 폴리스라인 같은 것 사이로 어떤 아줌마가 허우적대며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게 보였다.
 주변의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폴리스라인을 뛰어넘으려는 아주머니를 뜯어 말리고 있었다.
 
 ‘엥? 우리 엄마는 아닌데.’
 너무 젊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제야 칠성의 옆에 웬 서너 살 즈음 되어 보이는 남자애가 보였다.
 
 “규아~ 아디띠~?”
 포클레인 장난감을 들고 웃으며 두발로 아장아장 칠성 쪽으로 걸어온다.
 그리곤 칠성의 정강이에 포클레인을 던진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그보다 위험이라니,
 내가 위험하단건가?
 설마 내 악명이 지구에까지—
 라고 생각한 순간에 등 뒤에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쉬아앙!
 
 그리고
 
 쿠웅!
 “꺄아아아악!!”
 뒤돌아보자 나를 향해 달려온 무언가가 칠성의 머리를 내리쳤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칠성의 머리를 내려친 것.
 그건··· 거대한 민달팽이였다!
 말 그대로 민달팽이, 라고 말하는 게 제일 적합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강철이빨이 달린 거대한 민달팽이가 등 뒤에 있던 쇼핑몰에서부터 달려 나와 거대한 집게발로 칠성을 내려친 것이다.
 
 ‘뭐하냐······.’
 차가운 눈빛.
 칠성이 멀건 눈으로 혀를 차며 타박하는 눈빛을 보내자 민달팽이가 민망한 듯 주춤했다.
 
 사실 녀석이 재수가 없는 것이다.
 칠성 입장에서야 지구에 이런 생물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지만,
 시내버스 정도는 되는 덩치에 경차 모닝 크기의 집게발.
 어지간한 상대라면 일격에 거품을 물고 죽었어야 맞다.
 ‘내가 어지간한 상대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이 녀석을 구워먹을까 삶아먹을까, 여기서 흑마법을 써도 되는 부분인가 칠성이 고민하는 사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저기 괜찮으세요?”
 여자의 목소리에 돌아보는데
 ‘헉··· 조아 누나?’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은빛 경갑옷을 입은 백금빛 단발로 염색한 여자였다.
 그런데 정말로 언 듯 5초간 착각할 정도로 아이돌 걸그룹 AEA의 멤버 조아와 너무나도 닮았다.
 “어브버브버···예?”
 “괜찮으세요?? 머리?”
 “예? 아······.”
 그러고 보니 여자뿐만 아니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이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무언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는 듯한 시선?
 
 “아이고! 아이고 아파라!”
 거대한 몬스터에게 맞고도 멀쩡히 서 있다니.
 생각해보니 버스에 치인 사람이 아파하긴커녕 멀쩡하게 서서 버스에게 타박하는 눈총을 보내고 있는 꼴이 아닌가.
 칠성은 다급하게 머리를 감싸 쥐며 아픈 척 엄살을 떨었다.
 먹히나?
 그런 칠성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던 조아 닮은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칼을 고쳐 쥐었다.
 
 “히야앗!”
 그리곤 이내 기합과 함께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민달팽이에게 달려들었고,
 괴기한 소리를 내며 저항하는 민달팽이의 이마에 자신의 검을 박아 넣었다.
 ‘제법인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거기다 마나를 운용해 높인 각력으로 단번에 점프, 찔러 넣는 검에는 샤프니스 주문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칠성이 기억하는 과거의 지구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관경이다.
 600년간 뭐가 많이도 변한 것 같았다.
 
 “키이유웨에에엑!!”
 민달팽이가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야! 한솜이다!”
 “한솜이 님이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름이 솜이인가 보군······.’
 솜이라고 불린 붉은 망토의 조아 닮은 여기사는 인기가 굉장했다.
 아까 그 포클레인 꼬맹이를 한솜이가 꼬맹이 엄마에게 데려가 주었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플래시를 터뜨렸다.
 꼭 슈퍼히어로라도 되는 거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를 데려다 준 한솜이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곧장 칠성에게로 달려왔다.
 
 “죄송해요. 아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사과와 함께 대략의 상황설명이 이어진다.
 이 솜이라는 여자와 동료들이 쇼핑몰에 나타난 ‘문’을 격파하고 ‘문’을 닫았는데, 신규 종이기에 수집한 몬스터의 사체가 갑자기 부활해 도망을 친 것으로,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했다.
 
 몬스터가 칠성과 어린아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어린아이를 구했다며 미안하다고, 또 그 와중에 하필 칠성이 탱커라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헌터시죠?!”
 “예? 그게 뭐죠······.”
 칠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보다도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아까 민달팽이를 공격할 때도 검 끝에 금빛이 아른거리는 것 같더니,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하다.
 여자의 몸에서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역겨운 성문 마나 냄새··· 성기사다!
 ‘아니 미친, 지구에 성기사가 왜 있어.’
 칠성은 급하게 혹시라도 보일지도 모르는 마기를 갈무리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성기사다.
 엮여서 좋을 게 없다.
 그런 칠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리 빠져나가려는데 한솜이는 자꾸 이거 저거 캐묻는다.
 
 “네? 탱커 아니세요?”
 탱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아 예예, 뭔지 모르겠고 저 가도 되죠?”
 칠성이 대충 대답하고 가려는데 자꾸 붙잡는다.
 
 “아니아니, 들어 보세요 저희가요, 탱커가 없거든요~.”
 그러면서 칠성의 팔을 팔짱끼듯 안아버린다.
 ‘헉.’
 팔꿈치로 느껴지는 감촉.
 정면으로만 향해있는 갑옷의 철판 옆쪽으로 파고든 팔··· 느껴지는 보···보드라운 이 느낌!
 이 환상적인 감촉! 200년 만인가?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 차려라, 김칠성!
 
 짝!
 칠성은 잡히지 않은 왼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리곤 팔을 빼냈다.
 
 “저 그런 거 아니거든요? 관심 없거든요? 안 사거든요?”
 “아이 그러지 말구우~~.”
 끈덕지게 달려드는 여자. 그런데 그때.
 
 “팀장님!”
 쇼핑몰 건물에서 뛰쳐나온 멀대같이 키 큰 갈색 롱헤어의 여자가 한솜이를 부른다.
 한솜이가 잠시 칠성에게서 손을 떼고 동료로 보이는 갈색 롱헤어에게 눈을 돌린 사이.
 칠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솜이가 눈을 떼자마자 전력질주로 내달렸다.
 “앗! 저기!”
 한솜이가 그런 칠성의 뒤에서 손을 뻗으며 불렀다.
 “팀장님! 급해요!”
 “으···음.”
 하지만 재촉하는 동료의 성화에 칠성을 그저 눈으로만 쫓다가, 동료를 따라 되돌아간다.
 어쩐지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저 멀리 다급하게 도망쳐 사라지는 칠성의 뒤를 슬쩍 바라보는 한솜이였다.
 
 
 “휴~!”
 칠성이 그 현장을 벗어나서 한숨 돌리자 정말 일상적인 서울의 길거리였다.
 ‘어디지··· 명동 쪽인가?’
 그러면서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명동 근처가 확실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럴 리가 있나?’
 600년 상간의 시간이 지났다.
 원래 있던 건물도 있을 턱이 없고, 그 이전에 대한민국이 남아있을 확률도 희박하다.
 아니, 나라가 사라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칠성의 눈앞에 펼쳐진 건 명동 근처의 번화가인 것이다.
 그것도 칠성이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변화가 크지 않은.
 
 “이거 혹시······.”
 칠성은 급하게 눈에 보이는 인도 위 슈퍼마켓에서 신문을 집어 들었다.
 날짜를 확인한다.
 
 “2025년······?”
 고등학생 김칠성이 사라진 뒤로,
 고작 10년이 지나있었다.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아득한 600년의 세월을 살아, 돌고 돌아왔는데.
 여기선 고작 10년이라니?
 
 ‘그러면······.’
 말이 되든 안 되든 그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뭐가 달라지는가?
 600년의 부재1가 아닌 10년의 부재면 ······.
 
 칠성은 말없이 마나코팅으로 영구 보존해둔 지갑을 꺼내서 카드와 현금을 꺼내 슈퍼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다른 건 모르겠다.
 하지만 600년이 아니라 10년이라면······?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시기다.’
 
 “티머니 만 원이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칠성이? 진짜 칠성이니?!”
 몇 시간 뒤, 칠성은 과도하다 싶은 환대를 받으며 고등학생 김칠성이 살던 그 집에 서 있었다.
 엄마와 누나가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긴, 10년간이나 집 나갔던 고등학생 아들이 돌아왔으니······.’
 일견 이해는 한다.
 아마 이게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움의 시간도 완전히 지나버리고, 수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600년간이나 살아오며.
 신과 악마를 농락하고 지난 몇백 년을 ‘칠성의 대마왕’ 으로 악명을 떨친 칠성에게 있어서 희로애락의 감정이란 건 완전히 메말라 버렸다.
 그야말로 칠성은 인간을 넘어선 초인간적인 존재.
 가족이라는 이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상당히 쿨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지 인사는 해야지.
 
 “다녀···크···왔···습···니 크으읍······다. 흐흐흑.”
 “으아이고, 우리아들 헝헝.”
 “칠성아아아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다녀왔습니다.’ 쿨한 인사를 날려주려고 했는데 말을 채 이어가지 못하고 칠성은 펑펑 울고 있었다.
 ‘씨···바, 가오 빠지네.’
 600년간의 아득한 기억의 안개 속을 불쑥, 뚫고 엄마와 누나의 체온이 느껴지자 심장은 이성과는 상관없이 울렁였다.
 정말 미친 듯이 울었다.
 이렇게까지 울어본 건 200년 만에 처음이었다.
 얼굴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집을 찾아올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었더랜다.
 현자의 돌이 팔팔하게 유지시켜주는 신체와 뇌 속에서도,
 기억은 마치 스틸 컷과 같은 것이라 600년간 서서히 현실감이 없는 것이 되어갔다.
 기우였다. 멍청한 기우였다.
 폭포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감정, 그리고 눈물에 정신없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던 세 사람.
 
 띠띠띡—
 그때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눌리고 칠성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주말이라 회색 추리닝에 뿔테안경,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의 팔목엔 담배 등 잡동사니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칠성을 보더니 잠시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와 칠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고생했다.”
 슬쩍 안으시며 귓가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뒤도 안 보고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고작 그것뿐이었지만 칠성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셨는지,
 잔뜩 억누르고 계셨지만.
 포옹을 풀고 방으로 향하시는 찰나의 순간,
 울고 계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효도할게요!”
 칠성이 안방 쪽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굳이 청력강화 마법을 쓰지 않아도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집이다. 존나··· 집이다.’
 칠성은 침대에 누워 그런 아련하고 따뜻한 감상에 빠진 채,
 그 어떤 경계 마법도. 구울의 보초도. 없이.
 마력적 감각을 키워두지도 않고.
 기억도 나지 않는, 몇백 년 만에.
 낮잠에 들었다.
 
 
 # S1 : 3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밥 더!”
 저녁, 칠성은 허겁지겁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좀 무리하신 듯한 갈비찜과 조기구이 등을 먹어치워대고 있었다.
 이세계에서 600년 중 칠성이 최약체였던 초반 백년,
 그리고 성기사 길리엄의 공세가 너무나도 심했던 몇십 년.
 이거든 저거든 아무 상관없이 초탈해 돈이고 여자고 관심이 안 가던 후반 150년을 제외하면 정말 온갖 산해진미를 먹고 다녔었다.
 그래서 ‘집 밥이 그리워요’고 뭐고,
 그야말로 온갖 진미를 다 먹고 다니니,
 집 밥 그거 뭐 별거 있었냐?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산해진미 조까.’
 다 필요 없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안데르센 여우의 포도 질이었다.
 엄마 밥이 최고다.
 
 “자자, 여기 더 먹어. 많이 먹어.”
 “근데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칠성이 엄마가 주는 밥공기를 입에 처박는데 누나의 질문 재촉이 이어진다.
 
 “빠지선.”
 칠성은 그렇게 툭 내뱉었다.
 
 생각해 봤다.
 칠성이 여태까지 경험했던 일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쭉 말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아 그거? 내가 학교에서 야자를 마치고 오는데··· 갑자기 이세계에 있던 어떤 멍청한 흑마법사가 날 ‘칠성의 대마왕’으로 착각해서 소환했더라고?
 말도 안 되지? 하여간 초반 2년 정도 이 양반이 이걸 인정 안 하고 내 기억을 깨우겠다며 온갖 술법을 다 동원한 거야.
 덕분에 마나 수용량이 엄청 늘어났지만 뭐.
 나도 처음엔 매일같이 그 양반을 욕했지만 또 2년 정도 같이 있다 보니 정도 들고.
 하여간 기왕 그렇게 된 것 나한테 퍼부은 귀한 술법들이 아까워서라도 날 제자로 삼았는데.
 어느 날 성기사 무리—그러니까 여기로 치면 경찰 같은 애들이 들이닥친 거야.
 알고 보니 흑마법이란 게 불법이드라고?
 무슨 예언자가 대마왕이 소환되어 이세상이 망할 거라고 했다 그러대?
 엿된 거지 뭐.
 그때 스승은 죽고.
 난 그대로 도망치며 살다가 어찌어찌 강해져서 마신도 때려잡고 불로불사가 되어가지고—
 
 어지간한 판타지 소설에서도 안 쓸 무리수 급전개투성이였다.
 아무리 가족이라고야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들려주긴 조금 그렇다.
 그리고.
 ‘그냥 몰랐으면 싶기도 하고.’
 이들에게는 그저 고교생 김칠성.
 집 안에서 대마왕이 될 필요는 없다.
 
 “빠지서언?!”
 “세상에나!”
 “···어.”
 가족들이 경악했다.
 칠성의 아버지도 입으로 가져가던 수저를 멈췄다.
 
 “학교에서 집에 오다가 납치당했어.”
 뭐 일부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하교하다가 납치당했으니 말이다.
 이세계로 납치당한 것이었지만.
 
 “맞고··· 억지로 일하고··· 그러다가 기회 봐서 수영해서 탈출했어.”
 “이놈의 새끼들을!”
 “아니 미친놈들이 남에 집 귀한 아들을!”
 아버지가 격분하며 식탁을 치고 일어났다.
 가족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합심해,
 납치범들을 신고해서 감방에 보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아유 됐어요. 됐어. 무사히 왔으니까 됐지!”
 칠성이 괜히 자신의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인생을 낭비할 가족들을 진정시키느라 애 썼다.
 “그래도 그런 게 아니지!”
 아버지는 여느 때보다도 흥분하며 팔을 걷어 붙였다.
 당장 칠성을 납치했다는 조직폭력배라도 찾아내서 주먹질을 할 기세였다.
 “못 잡아~ 그런 거 못 잡는대. 우리나라 경찰들 뻔하지.”
 그런 말로 가족들을 말렸다.
 그저 나오는 대로 둘러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찰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몇몇 허접스러운 사건들로 인해서 칠성의 이 말은 제법 설득력 있었다.
 실제로 빠지선에 납치당해서 아직도 못 돌아온 고등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솔직히 경찰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냐?
 
 
 띵!
 “1급 현역입영 대상자입니다.”
 몇 주 뒤, 실종 상태일 땐 뒷짐 지고 있던 나라가 실종 해제가 되자마자 보내온 신체검사에 응해서 방문한 검사장 컴퓨터가 신체검사 결과 1급 이라는 결과를 내뱉었다.
 
 ‘개···씨···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다!
 
 ***
 
 <지강탱의 위엄ㅋㅋㅋㅋㅋ>
 현장에서 촬영된 듯한 유투브 동영상.
 ‘지강탱의 위엄’ 이란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다.
 영상 속에는 멍하니 허공을 보며 멍 때리는 김칠성이 보인다.
 이내 민달팽이 형태의 괴수, 괴산토우가 김칠성의 등 뒤로 달려들어 집게발로 내려쳤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절망적인 비명으로 가득한 동영상.
 영상을 찍던 카메라도 크게 흔들린다.
 그런데······.
 멀쩡하게 다시 카메라에 잡힌 김칠성.
 김칠성이 자신을 때린 괴산토우를 돌아보자, 무언가 위협을 느낀 듯한 괴산토우가 움찔한다.
 마치 그게 멍청한 캐릭터를 타박하는 개그콤비처럼 보인다.
 짧은 영상이 끝나고 밑에 달려있는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들.
 [헉ㅋㅋㅋㅋㅋ왘ㅋㅋㅋㅋ위엄보소]
 [ㅁㅊ캬~~ 헌터뽕에 취한다 ㅋㅋㅋㅋ]
 [헌터 아닌 거 아니야??]
 [ㄴ헌터는 맞지. 공무원인지 아닌지가 문제지 ㅋㅋ]
 [ ㄴ위엄 존나 쩌는 거보니 우리나라 공무원은 아닐 듯.ㅋ]
 [몬스터 멍 때리는 거 존나 웃겨 ㅋㅋㅋㅋㅋ]
 
 페이스북, 각종 유머 게시판.
 사람이 들어갈 만한 사이트의 메인엔 모두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화면의 스마트폰을 엄지손가락으로 넘겨보던 남자.
 대한민국 헌터부 장관 안희운.
 
 “한솜이 팀장. 우리한테 필요한 게 뭔지 압니까?”
 “예?”
 장관의 직속 호출에 잔뜩 긴장해있던 한솜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나라 헌터 이미지가 안 좋아요. 알잖아요?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 탓 하는데 뭐 있어······.”
 대외적 이미지가 안 좋다. 이건 나쁘다.
 연이은 몇 번의 던전 사고로 나라가 하는 게 뭐냐, 헌터부서 민영화해라 등의 여론의 지속적 압박이 있는 상황이었다.
 “언론에 휘둘리는 멍청이들······.”
 “······.”
 장관이 혀를 차며 비웃었다.
 
 “영상 봤죠?”
 “네······.”
 그런 상황을 탈출할 길!
 “‘지강탱’ ‘지구 최강의 탱커’라고 인기가 엄청나. 이거야.”
 “예?”
 “바로 이거라고. 이 나라는 사실이 어떤지는 중요하지가 않아! 중요한 건 이미지지. 이놈 잡아다가 ‘지구 최강의 탱커’ 라고 홍보 때리라고. 그림 나오잖아?”
 스타 영입으로 세탁이다. 이미지 세탁.
 “하, 하지만 어떻게··· 찾을 길도 없구요······.”
 눈을 깔고 대답하는 한솜이.
 
 장관은 그런 한솜이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다가, 이내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는 말했다.
 “한솜이 씨가 이 친구랑 일면이 있는 모양이니까 직접 맡아줘. 어떻게는 무슨, 우리나라에. 안되는 게 어딨니?”
 “예···옙······.”
 한솜이가 떨떠름하게, 하지만 밝은 척하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어느 한 술집.
 “군대 가야 된다고~!”
 “미친 크크크큭.”
 챙!
 잔과 잔이 부딪혔다.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정을 두지 않는다. 쓸데없이 지켜야 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이게 지난 200년간의 칠성의 원칙이었다.
 수도 없는 적들에게 쫓기고 있었으니까!
 
 그쪽 세계에서 지켜야 할 것은 곧 약점이었다.
 어쨌건 간에 생각 좀 해봤는데, 에라 뭐 어떠랴.
 여기는 지구인걸.
 페이스 북을 통해서 과거에 알던 친구를 찾아냈다.
 그래봐야 보고 싶은 건 한 명뿐이었다.
 
 
 “마 대한민국 남자면 다 갔다 와야 하는 거여~.”
 칠성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는 이는 지우혁.
 간단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 시절 베프다.
 면도한 깔끔한 얼굴 시원한 인상, 훤칠하게 큰 키에 동그란 안경, 왁스로 머리를 세웠다.
 그리고는 무서운 기세로 안주를 처먹는다.
 
 “야 작작 좀 처먹어~.”
 “어? 아~ 크크크크. 야 걱정 말고 먹어 오늘 형이 쏜다!”
 “엥?”
 고등학생 때는 컵라면 하나에도 빈대를 붙던 놈이다.
 근데 몇 만 원짜리 안주를 척척 처먹고 쏘기까지 한다고?
 “너 돈 버냐?”
 모를 일이다.
 칠성 정도 나이면 군대 갔다 오고 이제 대학 다니거나 졸업할 즘이지만,
 빨리 직장 잡고 일을 할 수도?
 “아~? 너 진짜 모르는구나? 형 헌터야 인마~.”
 그러면서 여유롭게 끌끌끌 웃는다.
 호오라.
 그러고 보니 지우혁 몸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성기사의 금색도, 마법사의 청색도 아닌 흰빛의 꼬장꼬장한 마나가 느껴졌다.
 ‘소드 익스퍼트 같은 느낌인가.’
 이세계에서 기를 운용하는 무인들이 풍기는 느낌의 순수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제법인데.’
 물론 칠성의 레벨에서 놀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약하지만, 나름 상당히 수행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거 같았다.
 
 “그래? 그거 돈 많이 버냐?”
 헌터.
 지구 곳곳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문’.
 이 ‘문’ 속의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 국가에서 운영하는 괴물 퇴치집단. 일종의 공무원이다.
 무려 6급 공무원.
 칠성과 그날 마주쳤던 한솜이란 여자는 상당히 유명한, 한국 헌터계의 슈퍼스타였다.
 
 “크크크크. 장난 없게 벌지.”
 “그래······? 얼마나 버는데?”
 해봐야 공무원이라는데 얼마나······.
 “연봉 1억에 인센티브로 건당 500에서 몇천 정도?”
 “뭐?!”
 뭐야, 10년 간격이라 인건비가 열 배로 오르기라도 했나?
 ‘1억이라······.’
 큰돈이다.
 아쉽게도 이세계에서 비상금으로 안주머니에 챙겨두었던 보석은 지구에선 값어치가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금 금하는 거겠지.’
 모르는 보석인 것 같았다. 없는 보석인건가?
 하여간 취급도 안 해줬다.
 ‘아~ 연금술을 배웠어야 하는데.’
 쓰잘데기 없는 흑마법 같으니라고.
 연금술 배워왔으면 그게 다 돈인 게 아닌가.
 
 하여간 그런 일은 없었고, 덕분에 지금 몇 주째 하릴없이 부모님 쌀독만 비우는 중이었다.
 소주가 쓰다.
 
 “군대도 면제야.”
 “군대도 빼줘?”
 헌터는 6개월 이상 근무하면 군 면제란다.
 
 
 “너도 함 테스트 받아보던가. 혹시 모르잖아?”
 “그래······.”
 ‘아마 흑마술을 쓰면 되겠지만······.’
 흑마법을 쓰면 어지간한 몬스터 퇴치야 간단하겠지만,
 성기사들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상황.
 거기다 기가 막히게도 지구에서도 역시나 흑마법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언젠가 대마왕이 지구를 향해 쳐들어 올 것이란 내용의 예언이 지구의 그리스 출신 예언가에게도 내려진 것이다.
 마왕의 소환술이야 대놓고 흑마법 계통의 악마 소환술과 연관되어 있는 사항.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어느 대단한 미치광이 흑마법사가 대마왕을 기어코 지구로 소환해낼 것이란 소리였다.
 한마디로 흑마법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세상.
 
 조용히 살고 싶다면 흑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숨겨야 한다.
 ‘근데, 숨긴다 쳐도······?’
 흑마법 안 써도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천왕들과 떠돌던 시절.
 칠성은 사천왕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흑마법을 제외하고도 이런 저런 기술들을 사천왕들로부터 전수받았다.
 격투기고 검술이고, 저번에 본 한솜이란 헌터를 보니 마법을 안 쓴다손 쳐도 칠성이 딱히 밀릴 거 같지는 않았다.
 “좋아.”
 딱.
 소주잔을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쳤다.
 결심이 섰다.
 “뭐가 말이야?”
 “헌터.”
 “응?”
 “나도 한다.”
 “엥? 네가~?”
 “그래, 새꺄~.”
 좋다.
 실업자가 죄는 아는 세상이라지만 27먹고 편의점 알바나 하는 삶은 나도 싫다.
 까짓 거 헌터인지 뭔지 되가지고, 부모님 호강도 시켜 드리고. 어? 그. 사회에 플러스적으로다가 애국도 하고.
 ‘군면제도 받고.’
 크크크크.
 해 보자 이거다.
 
 ***
 
 주말, 집 거실 한편의 PC앞에 앉았다.
 [다음의 신청서 양식을······.]
 “흐~~~음.”
 화면에 뜬 온라인 신청서에 양식을 작성한다.
 헌터면허증은 헌터가 될 수 있는 능력자라면 누구나 발급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능력자라면 전신이 살인 무기와도 같은 것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지만.
 ‘걸릴 일이나 있긴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갑자기 길거리를 지나다가 경찰이 마나 측정이라도 해 온단 말인가? 어찌 보면 있으나마나한 제도 같지만 그래도 의무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칠성의 경우엔 뭐, 국가에서 운영하는 헌특부의 헌터가 되려고 하는 것이니 당연히 거쳐 가는 절차였지만.
 “뭐해, 우리 백수 동생?”
 등 뒤로 다가온 누나가 뒤에서 칠성의 목에 팔을 걸며 말했다.
 자기도 백수면서 괜히 한 번 긁는다.
 “허허, 취업 준비하지 우리 백수 누나야.”
 칠성이 목에 두른 팔을 놓으라는 뜻으로 손으로 툭툭 치며 대답했다.
 칠성이 이세계로 소환 당할 때 고등학생이었던 누나는 이제 28살의 취준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도 상당한 모범생이었으니, 이상할 것 없이 명문대에 진학에 성공하고, 학점도 우수하게 땄다는 모양인데, 계속해서 심해진 취업난에는 그마저도 소용없는 모양이었다.
 “아~ 근디 이 쉬키가?”
 “컥! 놔!”
 누나가 어금니를 물며 칠성의 목에 두른 팔을 조였다.
 아 진짜, 이 여자 왜 이러지?
 흰 피부에 찰랑찰랑한 검은 생머리.
 밖에서는 나름 뭐 청순한(가증스러운) 이미지로 인기도 있는 것 같지만 칠성에게는 우악스럽기 그지없었다.
 “헌터 면허증?”
 
 그러던 누나가 컴퓨터 화면에 눈을 주더니 눈이 땡그래진다.
 “너 뭐하는 거야?”
 양손으로 칠성의 얼굴을 꾸깃 구기며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선 눈을 맞추고 묻는다.
 “헌터 할라고~.”
 “엥?! 너 제정신이야?”
 “아 왜 시비야.”
 “헌~터~? 킥킥킥킥.”
 그러고는 저 혼자서 배를 잡고 자지러진다.
 “야, 그것도 뭐 능력이 있고 그래야 하는 거야 마.”
 엄청나게 무시하는 말투다.
 “킥킥킥킥··· 아흑, 아흑 진짜. 요즘 우울했는데 동생이 웃겨주는구나.”
 어찌나 웃었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하~ 누나. 누나 동생 능력자 맞거든?”
 “능~력~자~? 킥킥킥킥. 슈퍼맨이세요? 런닝맨이야?”
 아놔 진짜.
 칠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째려보자 제 결에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누나가 차츰차츰 웃음을 멈춘다.
 그러고는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구기며 입술을 쭉 내밀더니 묻는다.
 “진짜??”
 “진짜지 그럼.”
 “에이~? 네가 막 손에서 장풍 쏘고 그런다고?”
 ···장풍? 뭐 그런 걸 쓰는 능력자도 있나?
 “누나, 옛말에 이런 격언이 있는데 말이야.”
 “뭐? 뭔데?”
 이거 인증 타이밍인가?
 칠성은 엄지와 검지로 만든 브이를 입가에 대고 씨익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궁금하면 500원.”
 
 
 “자.”
 칠성의 손바닥엔 누나가 올려놓은 500원이 살포시 누워 있었다.
 “잘 봐.”
 뭐 별거 할 것도 없었다.
 칠성은 가볍게 500원이 올려져있는 손의 손가락을 움직여 500원을 검지와 중지로 집었다.
 그리고.
 끼드드드득.
 가볍게 검지와 중지를 오므려 500원짜리 동전을 절반으로 접었다.
 “에?”
 누나가 의심스럽다는 듯한쪽 눈썹을 들어 올려 보였다.
 “자.”
 꽈드드득.
 칠성이 절반으로 접힌 동전을 한 번 더 절반으로 접어 누나 손바닥 위에 놓았다.
 “······?!”
 의심스럽다는 듯이 접힌 동전을 펴보려 안간힘을 쓴다.
 “뭐야, 뭐야 이거, 마술 같은 거야?”
 “마술? 마술은 무슨~.”
 “너! 너 누나 놀리면 못 써?”
 “놀리기는~.”
 “이거. 이거 해봐.”
 그러더니 새로운 동전을 하나 쑥 꺼내 자기 이빨로 씹고 손으로 구부려보고 하더니 칠성에게 다시 건네준다.
 칠성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또다시 접고 접어 누나 손에 툭 놓는다.
 “엥? 이게 뭐야! 이거 진짜··· 그럼··· 진짜로?”
 끄덕.
 “어떻게? 왜? 언제??”
 어라.
 어떻게··· 그러니까 이세계에서 600년간 떠도는 바람에?
 “아 음··· 그게 말이지··· 내가 빠지선에서 그물을 당기는데··· 어느 날 갑자기······.”
 대충 빠지선에서 그물을 당기다가 죽을 것만 같은 어느 날, 신비로운 기운이 솟아올랐고 그 뒤로 몸이 엄청나게 튼튼해졌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러니까 그 바다 한가운데서 수영을 해서 탈출을 했지.”
 “아······!”
 어쩐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
 칠성은 사회와 차단되어서 그 현상이 무엇인지 몰랐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다름 아닌 자신이 바로 각성한 헌터가 아니겠는가!
 하는 기승전결까지 완벽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이야··· 이거 빠지선 콘셉트 그냥 우연히 생각나는 대로 잡아 본 건데, 어떻게 말을 이어도 완벽하네? 완전 만능 빠지선이구만?’
 
 “그래도··· 헌터라니 위험하게.”
 멍하니 중얼거리는 누나.
 참 나, 또 걱정이 되긴 되나보다.
 “에이, 어차피 내가 진짜 헌터가 맞다면 등록은 해야 하는 거잖아 누나.”
 칠성이 PC 쪽으로 의자를 홱 돌리며 말했다.
 누나가 뒤에서 턱을 칠성의 정수리에 괴고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래도··· 걱정되니까 그렇지.”
 “에이~ 내가 어? 돈 벌어서 부모님들도 챙기고. 누나 백도 하나 사주고 그럴게~.”
 “칫··· 백은 무슨. 구두도 없는데. 너나 잘해 바보야.”
 참~ 나 크크크. 또 그 와중에 구두타령이야?
 달칵.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마우스 클릭버튼이 경쾌하게 울렸고 화면엔 접수 완료 메시지가 떴다.
 
 
 그리고 며칠 뒤.
 <헌> <터> <면> <허> <시> <험> <장>
 대한민국 헌터특별부 산하 헌터면허 시험장.
 논산은 아니지만 논산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는 디자인.
 삐쭉빼쭉한 마름모꼴 형태의 판에 하나씩 이채롭게 붙어있는 글자들.
 그리고 그 아치형 문패 아래 철문 너머로 펼쳐진 칙칙한 회색빛의 건물.
 ‘뭐 이래?’
 어쩐지 익숙한 듯 안 익숙한 듯. 하지만 재질은 고급져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걸어들어 간다.
 
 
 # S1 : 4화
 
 ***
 
 헌터 시험장.
 이미 칠성과 같은 시간대에 신청한 사람들인지 적지 않은 수의 인파가 입구에서부터 함께 비슷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삘 왔다. 따라간다.
 헌터 시험장의 건물은 뭐랄까,
 과도한 예산이 바탕 된 고급진 건축 자제들, 그리고 가히 유감없는 공무원 센스로 완성된 하나의 걸작이었다.
 미국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나올 법한 대리석 바닥과 세련된 유리벽 위에 ‘면허증 시험대상자 이쪽으로 →’ 라는 포토샵으로 작성된 무지개 색 A4용지 프린트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식이었다.
 
 키야, 무슨 초능력자가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도 우리나라 공무원 센스엔 초능력이 생기지 않는구나.
 “뭐, 알기는 쉬워서 좋구만~?”
 피식, 칠성은 웃음이 나면서도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은 화살표를 따라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헌터 면허증 시험엔 우선은 마나 테스트가 있었다.
 사실 능력자가 아닌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약간의 마나들은 가지고 있었고, 운용하는 마나의 양이 기준치 이상이 되어 그것이 무언가 변화를 일으킬 수준이 되어야 헌터로 분류되는 식.
 
 ‘사실 헌터라는 용어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거 같긴 한데.’
 이세계에선 누구도 마나를 운용하는 사람을 헌터라고 부르지 않았다.
 마나를 운용해 이변을 일으키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야 많았지만 말이다.
 마나를 운용하는 사람들을 거기선 기사나 마법사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여기 지구에선 칠성이 사라졌던 10년 전, 갑자기 등장한 ‘문’들을 통해 나타난 몬스터들.
 어지간한 현대화기는 무시 하다시피 막아내는 기묘한 존재들, 그리고 마치 그에 대항하듯이 나타나 몬스터들을 퇴치한 능력자들이 만들어낸 대립구도.
 즉 이 몬스터들의 사냥꾼이란 의미로 초능력자는 무조건 ‘헌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으니 뭘로 불리던 불만이야 없지만.
 
 
 시험장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 번호표를 뽑았다. 뭐지? 시험을 보는데 무슨 대기 번호 표야.
 “뭐 이렇게 많아?”
 그런 의문은 대기실의 전경을 보고 한방에 해소되었다.
 바글바글한 인파.
 신청을 하고도 번호표 뽑아 줄을 서야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험장 대기실에 시루떡 팥소처럼 줄서서 늘어져 있는 사람들.
 칠성은 그 수를 보곤 기가 질렸다.
 
 “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지.”
 엉?
 등 뒤에서 들리는 굵직한 목소리에 돌아보자 검은 반팔 티에 반바지, 굵직굵직한 근육이 옷 위로도 훤히 보이는 근육 돼지 스타일의 덩치 큰 사내가 칠성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칠성은 그 말에 방을 슥~ 한 번,
 그리고 나서 이 아저씨를 슥~ 쳐다봤는데.
 참나. 어이가 없어서.
 칠성이 보기엔 여기 모인 사람들이나 이 아저씨나 마나 보유량은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아저씬 별 볼 일 있구요?”
 “나? 허허허허! 당연하지!”
 칠성이 넌지시 비꼬자 남자가 목에 울대를 울리며 껄껄거리며 웃었다.
 글쎄다. 내가 보기엔 영 아니신데.
 물론 보기 드물 정도로 몸이 좋은 사람이다.
 이종 격투기 선수라고 말해도 믿음직하다.
 그렇지만 헌터가 되는 자질이 단순히 힘세고 잘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마나의 운용 이라면 ‘글쎄올시다’이다.
 
 “엉? 자네는 내가 딱 보니까 운동 좀 했겠구만.”
 무슨 친한 사이도 아닌데 칠성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한다.
 “벌크업은 안 돼 있어도 힘 좀 쓸 거 같은데?”
 “끌끌··· 뭐 그렇죠.”
 사천왕 란돌프와 길리엄이 번갈아 완성시킨 트레이닝. 그리고 그들과 헤어지고도 틈틈이 맨손 운동 정도는 하고 있었다.
 소위 헬스인(人)이나 갓 운동 배운 고등학생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실전근육’이 전신에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길리엄과 란돌프가 전수한 기사와 무극의 마나 운용술을 익힌 데다, 그 베이스가 되는 칠성의 마나는 두말할 필요 없이 대륙 최상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 아저씨랑 힘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였다.
 
 “저거 봐 저저 한심한 놈들. 저런 놈들 태반이 아령 근처에도 안 가봤을걸?”
 “흐음··· 그건 그렇긴 하네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이야 아니었지만, 고작 칠성이 운동 좀 했을 거 같다는 이유로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운동 지상주의가의 눈엔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
 대기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 중 대부분이 평범 그자체로 묘사 가능했기 때문이다.
 체대생스럽거나, 전투적인 인상으로 보이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 젊은 남자들 아무렇게나 끌어 모아 놓은 무리 같았다. 간간히 여자들도 있었다.
 
 “헌특부 공채만 되면 월급은 월급대로 많이 줘, 이건 철밥통도 아니지, 금밥통이지 금밥통. 거기다 군대 다 빼줘, 얼마나 좋아? 되기만 하면 인생 일발 역전이다 이거지. 그러니까 개나 소나 일단 질러라~~ 하면서 몰려드는 거라고.”
 대기시간이 상당히 길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이 아저씨의 이름은 박정민.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 그리고 35세.
 ‘아저씨가 아니야······?’
 뭐 군대 갔다 오면 아저씨라고 하긴 하지만,
 뭐냐 이 노안은.
 칠성은 척 봐도 최소 40대라고 생각했던 박정민이 고작 35살이란 사실에 놀랐다.
 어쨌든 노안이건 말건 박정민은 편견이다 싶을 정도로 전형적인 근육 바보에, 밝은 성격이었다.
 ‘좀 이따 구겨질 표정이 기대되는고만?’
 거기다 자기 자신이 틀림없이 헌터 중 헌터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갖고 있는 박정민을 보며 칠성은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띵동.
 전광판에 칠성의 번호가 떴다.
 박정민의 번호도 같이 떴는지 박정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쑈 타~임!”
 칠성이 손마디를 꺾으며 중얼거렸다.
 후딱 해치우고 가서 밥이나 먹자.
 
 ***
 
 헌터 면허시험의 첫 번째 관문인 마나테스트는 굉장히 간단한 방식으로 치러졌다.
 감독과 시험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지원자들은 신상명세를 확인한 뒤 줄에 서 있다가 이름이 호명되면 나와서 방 중앙의 아티펙트를 양손으로 잡고 있기만 하면 됐다.
 마치 거대한 펀치기계 비스름하게 생긴 디자인의 아티펙트엔 커다란 크리스탈 구가 달려있었다.
 크리스탈 구를 시험자가 잡고 있으면 마나의 흐름을 읽어 결과를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숫자를 비춰준다.
 ‘간단 하구만~!’
 다행히 마나의 색깔을 알아채는 기술은 아닌 거 같았다. 그저 마나의 양이 이 사람들 기준의 단위의 숫자로 위에 표시 될 뿐이었다.
 이 테스트에서 통과하면 차후 테스트에서 통과하지 못해도 ‘마나 보유자’라는 애매모호한 자격증이 발급된다.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이끄으으으!”
 “355.”
 흰색 민소매 티를 입은 뿔테 안경의 남자가 안간힘을 쓰며 구를 쥐어짜다가, 옆에서 기록 중이던 감독관의 짧은 ‘355’라는 말에 구를 빼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컥···헉···헉······.”
 “통과.”
 헌특부의 관리대상은 마나 수치 200 이상의 사람이었다.
 온몸에 진을 뺀 듯한 남자가 통과란 말에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쥐어 보인다.
 “예아압!!”
 결과증을 받은 남자가 방이 떠나가라 기쁨의 기합을 지른다.
 
 큭큭큭, 저리도 좋나?
 “이거 뭐 아무나 시켜주는구만?”
 칠성의 뒤 차례인 박정민이 우습다는 듯 중얼거린다.
 아마도 자신 같은 근육덩어리가 아닌, 비실비실해 보이는 남자가 통과되는 게 어이가 없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박정민의 마나에 대한 이해도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증거다.
 
 “김칠성 씨.”
 이름이 호명되자 칠성이 아티펙트 앞으로 걸어 나갔다.
 후~우 긴장되는구만?
 이세계에선 상식인 내용이지만,
 마나는 의도적으로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온몸을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마나를 의도적으로 억누르는 것은 마치 숨을 참는 것과 같이 큰 인내력을 담보로 했다.
 왜, 청마법사들이나 무도인들이 호흡만으로 마나를 쌓아 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까 칠성의 경우에는 방금 지원자와 반대로 마나를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마나를 억누르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할 판이었다.
 어디까지나 이목을 덜 끌면서 편하게 헌터로 돈이나 긁어 가는 게 목적이니까.
 방금 칠성의 차례 직전의 형편없는 사내의 마나가 기준점을 통과할 수준이라니,
 칠성의 마나가 그대로 공개되었다간 분명하게 이들의 상식 초과 수준일 것이다.
 ‘평범하게 가자, 평범하게.’
 “흡!”
 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숨을 들이마시고 마나를 잔뜩 억누른 채 아티펙트의 크리스탈 구를 잡았다.
 ‘딱! 200에 맞추자.’
 우—웅.
 칠성이 구를 잡자 크리스탈 구가 진동하며 빛을 내기 시작했고 주변에 각종 마법진을 허공에 그리며 마나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들어온 백색의 마나가 몸속을 도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딱 좋겠지?’
 마나를 잔뜩 억누르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25. 탈락.”
 컥!
 탈락이란 말에 비틀거리는 칠성.
 반사적으로 꽉 쥐어진 칠성의 두 손.
 그리고 다음 순간.
 
 쾅!
 쾅! 콰쾅!
 순간 시험장 일대가 엄청난 폭음에 휩싸였다.
 “으악!”
 “뭐얏!”
 참가자들과 감독관들이 화들짝 놀라 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칠성이 들고 있는 구만을 제외하고,
 커다란 마나 측정용 아티펙트의 본체가 마치 다이너마이트처럼 폭파해 휘날린 것이다.
 
 ‘컥···실수했다!’
 칠성이 기침을 하며 먼지를 한 움큼 뱉어냈다.
 감독관이 무심하게 뱉은 너무나도 의외의 결과에 방심해 마나를 억누르는 걸 깜빡 해 버렸다.
 일순간에 억눌러져 있던 마나가 풀려나자 마치 댐이 무너지듯 쏟아져 나간 마나가 측정기로 넘치도록 흘러들어간 것이다.
 산산이 조각난 아티펙트의 잔해들 사이로 잔뜩 긴장한 채 쪼그려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 사이, 농구공만한 커다란 수정구를 든 칠성만 멍하니 서 있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야 이거?!”
 “이봐 괘, 괜찮아?”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박정민이 다가와 물었다. 건물 내에 대기 중이던 의무관도 칠성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진단을 했다.
 
 “빨리 움직여! 빨리!”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감독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새로운 아티펙트가 설치되었다.
 “제품 불량이었던 것 같으니 다시 측정해 보시겠어요?”
 설치가 완료되었고, 기사들이 새로 설치한 아티펙트를 점검하는 사이,
 당황한 감독이 땀을 닦으며 칠성에게 물었다.
 “아 예.”
 이번엔 적당히 조절해서······.
 음······.
 고민하던 칠성은 그저 수정구를 향해 손가락 한 개를 뻗어 툭 닿게 만들었다.
 
 “아 저, 그렇게 하시면 충분히 측정이 안 되거든요? 양손을······.”
 칠성의 행동에 감독관이 그렇게 말을 덧붙이는데 수정구가 밝은 빛을 뿜었다.
 ‘1000’
 “천······.”
 허공에 뜬 홀로그램을 보고 감독관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빨리 주시죠.”
 “아 예, 예”
 칠성의 재촉에 멍하니 있던 감독관이 얼른 기록지에 기록을 하더니 통과를 뜻하는 초록빛 종이 티켓을 주었다.
 ‘씁~됐구만.’
 잘은 몰라도 아마 1000 정도면 가끔 있는 수준이겠지?
 의아한 시선들의 비를 느끼며 칠성은 차분히 시험장을 걸어 나가 2차 시험장으로 향했다.
 
 ***
 
 “좋~아. 이 몸도!”
 김칠성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신 박정민이 칠성에게 질 수 없다는 듯, 양손을 비비며 포부 좋게 걸어 나와 수정구를 잡았다.
 “흐아아아압!!”
 잔뜩 얼굴을 상기시키며 수정구를 부여잡은 박정민의 팔뚝과 온몸에 굵은 근육과 핏줄이 꿈틀거렸다.
 “으아아아!!!”
 기합을 마구잡이로 넣는 박정민.
 아티펙트가 이내 빛을 내며 박정민의 마나를 훑는다.
 “···175점. 탈락.”
 “켁!”
 당황한 박정민이 비틀거렸다.
 “뭐야, 뭐야 이거 불량 아니요? 새 거 가져와 나도! 어서 어?! 뭐 이래??”
 “다음~.”
 시크하게 박정민의 탈락을 기록하며 얼른 가라는 손동작을 하는 감독관 때문에 박정민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대체 그 쪼그만 자식은 어떻게 한 거야?”
 키로 따지면 고작 자신의 가슴께 정도 오는 김칠성을 향하는 말이다.
 어느 정도 인정이야 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못할 줄 알았던 김칠성이 자신을 훨씬 상회한 성적으로 통과되고, 당연히 최고의 헌터 유망주가 될 줄 알았던 자신의 탈락의 씁쓸함이 너무나도 억울한 박정민이었지만,
 박정민이 억울하건 말건 헌터면허증 2차 시험은 진행되고 있었다!
 “별거 없구만~?”
 
 
 # S1 : 5화
 
 ***
 
 2차 테스트는 간단했다!
 간단한 아티펙트들에 마나를 자유자재로 불어넣을 수 있나 없나를 기준으로 삼았다.
 나를 의도적으로 불어넣는 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헌터로 인정이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차 테스트.
 “히야아압!”
 툭. 콰트트특!
 칠성이 휘두른 망치가 준비된 시험용 정육면체의 암석 오브젝트에 내리쳐졌다.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암석에 금이 간다.
 
 퍼펑!
 칠성이 돌아섬과 동시에 정육면체의 암석이 폭파되어 가루가 되었다.
 지켜보던 감독관들이 땀을 흘리며 안경을 치켜 올렸다.
 
 3차 테스트는 기사계로 지원했기에 오브젝트 파괴에 이은 가압 테스트가 이어졌다.
 약 500킬로의 압력을 버텨내자 끝!
 
 면허증 발급절차 역시 운전 면허증처럼 굉장히 간단해서 빠르게 발급되었다.
 칠성의 손에 반들반들 빛이 나는 초록빛 라벨의 1급 헌터 자격증이 손에 들어왔다.
 
 “후후후후후······.”
 어? 내가 이 정도다 이거다.
 자격증을 보며 실실 웃는 칠성.
 “뭐해?”
 “컥.”
 칠성이 혼자 흡족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뒤에서 박정민이 툭 치며 말을 걸었다.
 “면허증이네. 그것도 1급?!”
 박정민이 호들갑을 부린다.
 “크··· 다음에는 나도 반드시!”
 다음을 기약하면서는 주먹을 쥐고 이까지 간다.
 
 칠성은 3차 테스트를 해보고 나서야 박정민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감에 들어찼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디서 소문이라도 들었겠지.
 큰 압력을 견디고, 돌덩이를 망치로 부수고.
 그런 테스트라니 마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힘이 센 자신이 유리하다고 여길 만도 하다.
 
 ‘아마 1급은 힘들 것 같은데.’
 등급 결정짓는 3차 테스트는 칠성이 보기엔 박정민에겐 무리였다. 잘하면 암석에 금이나 갈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박정민이 들러붙었기에 번호 교환까지 하고 헤어졌다.
 꼭 칠성에게 무슨 비법이라도 캐내려는 것 같았다.
 
 박정민이 우연히 찍은 것 치곤 의외로 제대로 된 스승을 찾아 온 격이었다.
 그래봤자 칠성은 가르쳐 줄 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귀찮은 것도 귀찮은 거지만 나름은 정민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다.
 ‘애매하게 강해지면 인생 피곤해지더라고.’
 
 
 그리고 며칠 뒤.
 “화~ 진짜 땄네?!”
 또 예의 그 술집에서 만난 지우혁이 헌터 면허증을 보고 호들갑을 떤다.
 “새끼! 구르는 재주가 굼벵이에게 어?!”
 “뭐래는 거야, 큭큭큭.”
 마시자 마셔.
 크~ 오늘따라 소주가 달다.
 “예전엔 진짜 술이 달다는 게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말이야. 오늘은 진짜 달다.”
 이제 다 잘 풀릴 거다.
 
 헌터 면허증도 땄고 헌특부 테스트만 붙으면 된다. 시험 유형은 거의 비슷하다고 했으니 떨어질 리가 없다.
 마음도 안정되고 가족들 볼 낯도 드디어 선다.
 물론 식구들이 칠성이 백수라고 압박을 준 것은 전혀 아니지만 말이다.
 마음이 편해지니 쓰디쓴 소주도 단 느낌이다.
 
 “어. 이거 단 거 맞는데?”
 그렇게 감상에 빠져있는데 지우혁이 소주병 라벨을 칠성 쪽으로 돌려서 보여준다.
 ‘허니버터소주’.
 “요즘은 이런 거 많이 만들더라.”
 “···뭐 이딴 걸 만들고 그래!”
 “참 나, 또 달다고 잘 먹어놓고 허허.”
 큼. 그건 뭐 그렇다 치고.
 
 “이거 잘~하면 같은 데서 근무 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사우님?”
 잔에 술을 채운 우혁이가 능청맞게 말한다.
 깐에 자기가 헌특부 직원이다 이거지?
 뭐. 헌특부 이상 가는 직장이 없으니 잘 되자는 덕담이다.
 “아이고~ 잘 부ㄴ탁드립니다. 사우님.”
 짠.
 웃음소리와 함께 잔이 부딪힌다.
 
 
 “후우우우우······.”
 지우혁은 대리기사를 불러 자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뭔진 몰라도 번쩍한 고급 외제차 같았다.
 칠성은 태워주겠다는 걸 만류하고,
 홀로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든 칠성의 시선에 무언가가 보였다.
 칠성의 옆쪽의 플랫폼의 자동차단문 하나가 망가져 있었다.
 그 앞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하나가 망가진 차단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해 보고 있었다.
 “으후~.”
 술에 취한 듯 비틀대는 여자.
 간간히 한숨을 쉬기도 하고 하는 것이었다.
 ‘뭐하는 거지······.’
 
 그런데 다음 순간이었다!
 빠아아앙— 끼이이이이이이————
 “꺄아아악!!”
 “사람이 떨어졌다!”
 “누가 어떻게 좀 해봐요!”
 
 “엿—까튼 데당아—! 나는 간다하~!”
 다음 순간 난리가 났다.
 검은 코트의 여자는 선로 위로 몸을 던졌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열차를 양팔을 펼쳐 환영했다. 술에 많이 취한 듯 웃고 있었다.
 열차는 멈추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아아아앙!
 끼이이이익······.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불꽃의 스파크,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신이 도저히 이기지 못할 존재에 부딪힌 열차가 크게 들썩이며 걸음을 멈췄다.
 “뭐야? 뭐야??”
 “세상에나······.”
 그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관경에 사태파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 진짜.’
 골치 아프게 됐다. 조용히 좀 살려고 했더니.
 
 “지강탱이다!”
 “어 진짜 지강탱 아니야?”
 열차의 앞부분은 칠성과 부딪혀 크게 찌그러져 있었다.
 칠성은 무어라무어라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인파를 무시하고 품속의 아가씨를 살핀다.
 
 “괜찮아요?”
 “아··· 그게······.”
 방금까지 술주정을 하던 아가씨는 술이 확 깬 표정이었다.
 
 아마도, 자살이겠지.
 목숨을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아가씨였다.
 찰랑한 흑발, 새하얀 피부에 귀여운 얼굴.
 보기에는 갓 20살이나 되었을까.
 “뭐 당신 인생에 내가 관여할 자격은 없겠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데 말이야······.”
 칠성이 느릿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외모야 고등학생 정도지만, 600년의 삶의 지혜가 담긴 교훈이다.
 “절대로 안 올 것 같은 날도 오더라고. 그러니까······.”
 정말이다. 살아 있으니 지구에 돌아오는 날도 있지 않던가.
 
 칠성의 품에 안겨 반쯤 누워있던 아가씨를 바로 세워주었다.
 칠성 덕분에 목숨을 건진 아가씨는 마치 성인이라도 접견한 듯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살아봐.”
 칠성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뚜벅 뚜벅, 걸어가는데 뒷모습을 지켜보는 아가씨의 시선이 느껴진다.
 
 캬~~~~!
 이번 건 내가 생각해도 좀 멋있었다! 크~~~.
 역시 남자는 가오제잉~~!
 
 그렇게 플랫폼으로 기어 올라갔는데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저번과는 전혀 다른 버버리 코트 차림에 누가 알아보기라도 할까봐서인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백금발의 머리칼이었다.
 “···지강탱 씨?”
 한솜이였다.
 
 ***
 
 “지강탱 씨?”
 지하철에서 알지도 못하는 술 취한 아가씨를 구한 뒤,
 플랫폼으로 올라오자 있는 것은 한솜이였다.
 
 “아닌데요.”
 대체 지강탱이 뭐기에 사람들이 지강탱 지강탱거리는 거지?
 그 보다도 이 여자랑 얽히면 골치 아파질 거 같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잠깐, 잠깐요!”
 칠성이 붙잡는 한솜이에게 대충 대답한 뒤 빠르게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려는데, 기어코 뒤쫓아 온 한솜이가 달려서 붙잡는다.
 
 “아니 아니, 저 몰라요?”
 잽싸게 주변을 살펴보더니 칠성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마스크를 슬쩍 내려보인다.
 
 “저예요, 저! 한솜이!”
 아니 이 여자는 눈치가 없나? 생글생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때 쇼핑몰 앞에서 만났잖아요! 방어복을 안 입어서 못 알아보나?”
 “아 예······.”
 대충 대답해주고 상황 봐서 빠져나가야겠다.
 모르는 성기사랑 말 섞을 필요는 없지.
 “제가 이름도 모르잖아요. 성함이···?”
 그런 칠성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캐물어 오는 한솜이.
 하아, 진짜 왜 이러는 거지.
 칠성 입장에서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기사가 이러니 부담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혹시 내가 흑마법사인걸 눈치챈 건가?’
 그럴 수도 있다.
 그렇던 아니던 일단 신상은 숨겨야겠다.
 “내가 왜 이름을 알려드려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 아니 아니··· 저 그러니까 들어보세요.”
 “나 바쁜 사람입니다.”
 “헌터. 헌터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자꾸 헌터 헌터 하시는데, 저 이미 헌터 면허증 있거든요? 무슨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헌특부 공채라도 붙여줄 수 있다 이겁니까?”
 칠성이 비꼬듯이 되묻는데, 한솜이가 똑 부러지는 말투로 대답한다.
 “네. 그것도 공채도 아니고 특별채용.”
 “뭐?”
 “저 헌특부 진압 3팀 화랑팀 팀장인데요.”
 그러면서 한솜이가 내민 사원증.
 한솜이 사진부터 헌특부 로고까지 그럴싸하다.
 
 “아니 그보다 나를 몰라요? 간첩이세요?”
 뭐, 뭐야. 모르면 안 되는 거냐?
 하긴 저번에 사람들이 사진 찍는 거 보니 유명한 거 같긴 하던데. 이럴 땐 역시 만능 빠지선이지.
 “그게 아니고 빠지선······.”
 
 “빠지···뭐요?”
 “아니 됐고,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나한테 이러는 겁니까?”
 뭔가가 이상했다.
 한솜이 눈에 들었다고 해도 헌특부 직원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막 꽂아주고 그래도 된단 말인가?
 “지강탱!이잖아요?”
 “지강탱?”
 칠성이 되묻자 한솜이가 생긋 웃더니 핸드폰으로 동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이것 때문에 장관님께서 관심을 가지게 됐거든요. 꼭 잡아오라고 어찌나 성화인지.”
 ‘이건······.’
 칠성이 멍하니 있다가 달려온 민달팽이 괴수에게 맞는 장면이다. 엄청난 공격에 당하고도 멀쩡히 서 있는 게 마치 한편의 콩트 같다.
 ‘이건 생각도 못했네······.’
 동영상의 제목은 지구 최강의 탱커.
 탱커라 하면 헌특부 산하 요원 중 전방에서 몬스터를 진압하는 보직. 헌특부 홈페이지에서 봤다.
 “당황스럽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인터넷에서, 뭐 유명인사 같은 게 되었다?”
 “그럼요! 지구최강의 탱커님!”
 한솜이가 윙크와 함께 엄지를 척 올려 보인다.
 
 
 며칠 뒤 설날.
 “우리 성진이 의사 됐잖아~!
 “어머 그래? 어디 어디?”
 “어디긴~ 서울대출신이니까 서울대 병원이지. 철웅이도 서울대지?”
 “그래~~ 걔 이번에 어디서 스카웃 제의 받았다고. 여기저기서 오라고 난리야 아주~ 골치 아프대!”
 지방의 큰아버지 댁.
 성진이도 철웅이도 오지 않은 큰아버지 댁에서 작은아버지와 숙모의 호들갑이 이어졌다.
 칠성의 아버진 작은아버지와 큰아버지, 숙모와 함께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전을 부치고 있었고.
 
 칠성은 꼬꼬마 사촌동생들과 놀고 있었다.
 “캬캬캬 아직 멀었다 이 자식아!”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어느새 훌쩍 커 버린 놈들도 있었고, 칠성이 없는 사이 태어나 자란 녀석들도.
 또 정말 충격적이게도 사촌 형이 낳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있는 케이스까지.
 하여간 핏줄이란 이런 것인지.
 처음 봐도 어색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옛날 같으면 딱 피곤해서 질색했을 칠성도 간만에 보니 사촌들이 너무 귀엽고 반갑다.
 쿠웅!
 칠성이 개중에 덩치가 큰 육 학년짜리 사촌을 레슬링으로 방바닥에 엎어버렸다.
 “헥토파스칼~킥!”
 디용.
 여덟 살짜리 초딩의 날라 차기가 칠성의 엉덩이에 부딪힌다.
 ‘해 보자 이거지?’
 “우와악! 화났다! 이 자식들~~!”
 “꺄하하핫 그만!”
 “개물이다 도망쳐!”
 “그래 간지럼 괴물이다~!”
 크크크크.
 웃음소리가 퍼진다.
 
 “하~아.”
 한참을 그러다 지쳐서 방바닥에 퍼드러진다.
 칠성이 대자로 눕자 대, 여섯 살 꼬맹이들이 남자애 여자애 할 것 없이 서로 경쟁하듯 칠성의 팔을 베고 눕는다.
 
 “칠성이는 고졸인가 그럼?”
 “아니지 고등학교 중퇴니까 중졸이지.”
 “아유, 어쩔 생각이래 그래서? 학교가? 검정고시?”
 씁쓸.
 눈치 없는 친척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나라사람들은 꼭 이런다.
 사람이 없어졌다가 십 년 만에 돌아왔는데
 걱정해준다고 하는 소리로 사람 부아를 돋워놓는다.
 
 아버지는 한참을 말씀이 없으시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저 알아서 하겠지 뭐······.”
 씁쓸함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목소리.
 
 “형아. 나도 커서 성진이 형아처럼 의사 될 거다.”
 움~.
 뭐 의사나, 판사나 검사가 될 일은 없겠지.
 앞으로도 최소 수백 년은 살아갈 테니까 혹시 모르긴 하지만.
 
 “그래서 칠성이는 뭐한대? 논데?”
 “아니~ 그거 뭐냐······.”
 크크크크······.
 굳이 고개를 들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안경이 쓸어 올라가는 소리.
 은근히 자부심 있는 입꼬리.
 “헌터인가 뭔가 한다던데?”
 
 칠성이 꼬맹이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형아 백수 아니야 인마.”
 크크크······.
 “헌터야.”
 
 
 다음 날.
 
 두둥두 두두둥~.
 칠성답지 않게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었다.
 “잘하고 와라. 우리아들 파이팅!”
 엄마가 주먹을 탁 쥐어 보인다.
 “다녀오겠습니다.”
 칠성이 인사와 함께 집을 나선다.
 첫 출근이다.
 
 
 # S1 : 6화
 
 ***
 
 “캬~ 건물 죽인다.”
 
 어느 날부터 전 세계적으로 등장한 ‘문’ 던전과 몬스터들.
 그리고 마치 새로운 위협의 등장에 맞춰 진화한 인류처럼 등장한 ‘헌터’들.
 대한민국에서 이 모든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것은 대한민국 헌터 특별부였다.
 뭐, 공무원들이 일 제대로 하는 경우를 본 일이 별로 없기야 하지만.
 
 뚜우우—
 
 그리고 칠성은 그 헌터 특별부의 장엄한 15층 사옥 앞 건너편 교차로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오늘에 운세는··· 지나가는 와이번을 조심하고······.>
 “습~! 시꺼.”
 문자 그대로 칠성 발치의 그림자가 보랏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말을 걸어왔다.
 보랏빛의 동그란 외눈, 보이드였다.
 그림자 군주. 그림자 정령들의 왕인 보이드는 언제고 칠성 주변의 그림자를 통해 나타날 수 있었다.
 평소에는 꽤나 과묵한 편이었으나 이렇게 가끔 뜬금없이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것도 소위 아재개그 라고 불리는 아저씨 취향의 개그로도 쳐 주지 않을, 그저 의미 없는 잡설들이었다.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커다랗고 훤칠한 로비가 드러났다.
 드높은 천장. 대리석의 마감재와 깨끗한 유리벽, 로비 한편엔 사람 키보다 큰 분수대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키야, 이거 뭐 그냥 아주 돈 겁나게 쏟아 부었구만?
 야자수와 커다란 명화, 안내 데스크 등은 리조트 로비라고 해도 믿을 만한 관경이었다.
 다만 분위기는 마치 대형 은행의 금고 경비같이 삼엄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곳이라고 이렇게까지 하지?
 
 사옥 안으로 들어가는 지하철 개찰구 같은 출입증 검사기 앞쪽엔 커다란 유리 방화벽이, 그 앞에는 무장 경비대가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한솜이가 걸어 나왔다.
 
 “왔어요?”
 흰색의 여성정장. 그리고 흰색의 하이힐 구두. 언제나 같은 백금발의 단발머리.
 ‘오~.’
 여자긴 하구나?
 처음 봤을 때는 은 갑옷에 붉은 망토를 입은 만화 주인공 같은 모습. 두 번째 봤을 때는 무슨 범죄자가 연상되는 버버리 코트에 마스크 차림이어서 몰랐는데.
 오피스레이디 스타일로 차려입은 한솜이는 여성미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한솜이를 따라서 가선 포지션테스트를 받았다.
 헌특부의 보직 구분은 세 가지다.
 방패를 들고 전방에서 팀원들을 수호하는 탱커.
 칼 등의 냉병기를 사용해 몬스터와 대적하는 기사.
 그리고 후방에서 원거리 공격으로 지원하는 마법사.
 이 세 가지의 포지션에 얼마나 합당한지를 검사하는 테스트가 포지션 테스트이다.
 
 포지션 테스트는 의외로 매우 체계적이었고, 의외로 매우 무식했다.
 체계적이었다는 말은 생각보다 체계적인 검사 기구와 분류표가 있었다는 말이고, 무식하다는 것은 그 분류가······.
 
 “마지막 10톤입니다.”
 쿠구구구구—
 압력에 대한 내구성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에 들어간 칠성의 팔이 10톤의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미친 인간들이······.’
 중력조절 마법을 응용해서 만든 검사 장치가 팔을 짓누르는 방식이었다.
 적당히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100킬로에서 시작된 압력 테스트는 10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진짜로 지강탱이네요.”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마침내 한솜이가 칠성의 손에 사원증을 들려주었다.
 이름 : 김칠성
 포지션 : 탱커
 주특기 : 물리저항 (S+)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한 외관의 사원증.
 유리로 만든 케이스에 담긴 붉은 라벨의 카드가 빛이 난다.
 헌특부 헌터의 사원 증은 라이선스의 역할도 겸한다.
 사원 증엔 검사실에서 찍은 어색한 표정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풉.”
 한솜이가 사원 증을 건네주다 웃음을 터뜨렸다.
 “뭡니까?”
 “아니 그··· 눈 좀 뜨고 찍으시지 그랬어요.”
 
 그게 뭐가 그리 웃긴지 거의 울려고 한다.
 들여다보니 눈을 뜨다가 말고 찍힌 모습이다.
 아니 뭔, 이런 사진을 써놨대.
 좀 아쉽지만, 쩝.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크~.’
 
 어쨌든 대한민국 헌특부 산하의 헌터!
 큰 의미는 없지만 6급 공무원에 준한다.
 ‘6급이라··· 출세했네.’
 
 아주 먼 과거. 칠성은 학교 다니던 시절 9급 공무원에 응시해볼까 진지하게 고민 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교를 건너뛰고 바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이 될 요량으로 말이다.
 인생은 예측불허하게 흘러갔고, 계획대로 된 공무원은 아니지만 6급이라니.
 목에 건 사원증이 든든한 느낌이다.
 
 “아마 원래 계획대로 칠성 씨는 바로 우리 팀 인턴으로 배치될 거예요.”
 “인턴이요?”
 “네 우리 팀 나름 레귤러라···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포지션 테스트에서 A등급 이상 받아야 해요. 뭐 인턴이라도 유급인턴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구요. 인센티브 같은 건 차이가 있겠지만.”
 “흐음······.”
 조금 맥 빠지는데. 그래도 남들보다 훨씬 단축된 코스를 밟는 것 같으니 불평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어디 가는 겁니까?”
 분위기상 한솜이가 상관이 될 느낌이었기에 칠성은 이전과 달리 존댓말을 꼬박꼬박 챙겨서 써 주고 있었다.
 “아, 장관님이 찾으셔서요.”
 ‘장관이?’
 동영상 보고 칠성을 찾았다는 장관 말인가.
 왁자지껄한 1층.
 우글우글한 사람들 사이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그리고 탔는데, 엥?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들과 방향이 엇갈리더니 엘리베이터 안에 한솜이와 칠성만 남았다.
 
 도도동······.
 한솜이가 15층의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조용히 올라간다.
 한솜이는 엘리베이터 패널의 바뀌어가는 층수만 쳐다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햇살이 엘리베이터의 유리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한솜이의 밝은 백금발에 햇빛이 부서져 여신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백옥 같은 피부와 가냘픈 턱선, 포인트로 칠한 핑크빛의 촉촉해 보이는 입술.
 상큼하고 달달한 과일향이 코끝을 스친다.
 
 “뭘 그렇게 봐요?”
 불쑥 물어오는 한솜이에 당황한 칠성.
 “예? 아······.”
 “내 얼굴에 묻었어요?”
 샐쭉하게 웃으면서 자기 얼굴을 매만지며 물어온다.
 “아니 그냥······.”
 
 “긴장했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성큼 칠성 쪽으로 다가와 동그란 눈동자를 맞춰오며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다.
 숨 냄새가 난다.
 “뭔데요~ 말해봐요.”
 ‘아···아니 왜 이렇게 가까이······.’
 
 “아니 그게··· 그냥 햇빛이 솜이 씨 머리에 비추는 게······.”
 “비추는 게요?”
 “그게 참···예쁘구나 하고······.”
 “네에?”
 그러고는 재밌다는 듯 숨을 죽이고 킥킥대는 것이다.
 
 “제가 좀 예쁘죠? 반했구나? 칠성 씨.”
 “예에? 아니거든요?”
 뭐 이런 뻔뻔한 여자가 다 있나!
 자기스스로 예쁘다니.
 
 아니··· 아니 뭐 그렇다고 추녀라는 건 아니지만··· 또 뭐 따지자면 꽤 괜찮은··· 그래 뭐 AEA 조아 누나도 닮았고 어지간히 예쁘긴 하지만······.
 “부끄러워 하기는!”
 그러면서 내 팔을 툭 치며 웃는 것이다.
 “아니거든요? 내가······.”
 띵~.
 그러는 사이에 15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려서 대화는 끊겼다.
 하아··· 여자는 진짜 요물이다.
 어떻게 된 게 600년을 살아와도 적응이 안 되는 거지?
 
 15층은 지극히 심플했다.
 주변에 몇몇 개의 사무실이 있었으나 중앙에 가장 크게 장관실이 있었다.
 장관실 앞에는 장관 비서가 데스크에 앉아 있었고, 장관실은 마치 대통령 벙커가 생각날 듯 두꺼운 방호벽으로 쌓여있었다.
 문은 은행 금고처럼 복잡한 보안식의 무거운 철문이었다.
 
 비서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자 장관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앞으로 안내된 우리에게 무음으로 잠시만 기다려달란 제스처를 보냈다.
 5~60평은 되어 보이는 장관실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많은 장식이 되어있었다.
 다른 방으로 통하는 듯한 문 도 있는 걸로 봐서 준비되어 있는 공간이 이게 끝도 아닌 거 같았다. 층 하나를 통째로 장관이 쓰고 있는 느낌.
 수집품으로 보이는 여러 장식품들이 벽에 걸려 있곤 했는데······.
 ‘저건······.’
 일본도와 목조 모형 배 사이의 벽에, 묘하게 익숙한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족자가 걸려있었다.
 태극 문양을 품은 염소뿔이 달린 역 오망성, 양 옆엔 한손엔 창, 한손엔 나팔을 든 천사들이 아로 새겨져 있는 문양.
 그런데 문양의 테두리 형태가 너무 익숙하다.
 윤곽을 따라서 뜯어보면 틀림없는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악마 소환의 마법진.
 족자 속의 마법진은 원본 마법진을 형상화해 마치 어떤 그림 같은 문양으로 변형해 둔 것이었으나, 흑마술에 익숙한 칠성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악마 소환진으로 만들어낸 문양이라.
 흑마술 집단의 심벌이 분명하다.
 그리고······.
 
 “반갑소. 대한민국 헌특부 장관 안희운이라 합니다.”
 통화를 끝낸 장관이 손을 내밀었고 악수를 했다.
 “헌특부 소속이 된 탱커 김칠성입니다.”
 “하하하, 칠성 씨야 스타죠. 잘 부탁드립니다.”
 장관이 정치인 특유의 미소를 밝게 웃으며 응대했다.
 “저 야말로요.”
 결정적이었다.
 칠성은 인사를 나누면서 장관이 탐지마법, 오러아이를 쓰는 걸 포착했다.
 거기다 오러아이를 쓴 장관의 눈은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흑마술사란 증거다.
 
 아마 본인이야 조심해서 시동어조차 쓰지 않고 썼고,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냄새만으로 마력의 종류까지 알아맞히는 식마 일체의 칠성을 속이기는 무리다.
 이런 칠성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관은 시치미를 떼고 인사를 이어간다.
 “한솜이 씨가 잘 안내해 주시고요··· 우리 한 팀장은 바티칸 출신의 수재로 실력파입니다. 아마 잘 적응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바티칸. 역시, 성기사였구나.
 칠성은 성기사가 왜 대한민국의 공무원자리에 있는 지야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여기서는 당연하다는 듯한 분위기니 말을 아꼈다.
 “과찬이십니다.”
 장관의 칭찬에 한솜이가 고개를 까닥인다.
 
 “···예 그럼, 일들 보세요.”
 “네 가보겠습니다.”
 인사와 덕담이 끝나고 나서려다가.
 “장관님 저···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냥 지나 칠 수가 없다.
 장관이 사용한 오러아이는 상대방 마나의 색깔과 크기를 확인하는 탐지계 마법이다.
 장관은 방금 전 오러아이로 칠성은 흑마술사라는걸 확인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면 탱커로 들어온 신입이 사실은 흑마술사 라는 게 이상할 법도 할법한 상황.
 그런데 단 한마디도 그에 관한 언급이 없다?
 무슨 생각인지를 알아야겠다.
 “예, 말씀하세요.”
 “독대를 하고 싶은데요.”
 그 말에 장관의 눈빛이 바뀐다.
 눈치는 있는 모양이지?
 “···한솜이 씨. 밖에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옛, 옙···그럼······.”
 장관이 칠성을 노려보는 채로 말하자 한솜이가 눈치를 보며 퇴장한다.
 서열로 따지면 까마득히 위인 장관이란 사람과 오늘 첫 출근한 신입의 기 싸움.
 평범한 일상이 아닌, 기묘한 비일상의 긴장감이 흐르는 장관실.
 드르르륵···쿠—웅.
 
 벙커 같은 장관실의 문이 완전히 닫혔고,
 칠성은 서서히 살기를 끌어올렸다.
 
 치치치치칙—
 주변의 공기가 날카로워지며 장관에게 천천히 걸어가는 칠성의 발치에 닿는 바닥재가 검게 그을려 일어난다.
 특별한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운을 최대치까지 돋웠을 뿐.
 그것만으로도 칠성 주변의 아우라가 요동치며 변화들이 일어났다.
 “김칠성 씨?”
 일어선 덩치 좋은 블랙슈트의 장관이 기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응대한다.
 “장관님? 우리 둘이서만 따로 할 얘기가 있죠?”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
 어호라.
 칠성의 살기가 우습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슬쩍 비웃기까지 한다.
 날 완전히 밥으로 봤다 이거지?
 정신교육이 필요하겠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 S1 : 7화
 
 ***
 
 대한민국 헌특부 장관 안희운은 자신 앞의 당돌한 신입사원의 태도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허허허, 뭔가요?”
 그냥 우연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몸 좀 튼튼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까 탐지마법으로 체크해봤더니 흑마법을 익힌 녀석 같았다.
 
 어떤 멍청한 그리스 예언가가 마왕의 강림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란 예언을 한 뒤,
 바티칸을 중심으로 흑마법사들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 대중에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쪽에선 상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희운은 고의적으로 흑마법을 숨긴 듯한 김칠성을 넌지시 봐줄 의향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자신역시 과거 흑마법을 익힌 전력 때문에 꺼림칙한 상황들을 겪었던 만큼, 인간적으로 신입이 흑마술을 숨기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대를 요청한 김칠성이 마치 안희운을 협박이라도 하려는 듯 살기를 끌어올리며 취조하듯 물어오는 게 아닌가.
 “장관님···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드릴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은데요?”
 ‘웃긴 녀석일세,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몸에게······.’
 헌특부 초창기 땐 직접 괴물들을 상대하기도 했던 안희운이다.
 이 정도 살기에는 끄덕도 없다.
 김칠성도 은연중에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서 이 정도로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
 ‘이, 이게 대체?’
 다음 순간, 안희운은 어마어마한 살기 앞에 숨을 멈췄다.
 고작 신입이라고, 혹은 인간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위압감이 덮쳐왔다.
 스—윽.
 그 사이, 김칠성의 지시를 받은 보이드가 김칠성의 뒤통수를 찍고 있던 CCTV를 그림자로 가려버린다.
 
 “이···이게 무슨 짓인······.”
 안희운은 반사적으로 이변을 눈치채고 뒷걸음질 쳤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장관실의 벽에 등을 부딪쳤다.
 “장관님 제가 흑마법사라는 거 보셨지 않습니까?”
 이상하게 확신을 가진 김칠성의 말에 안희운은 당황했다.
 아무런 시동어도, 캐스팅도 없이 발동한 탐지마법이다.
 제 아무리 A급의 마법사라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탐지마법에 노출되었다는 걸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칠성이 넘겨짚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안희운은 말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김칠성은 김칠성대로 열이 받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뻔히 탐지마법인 오라아이를 시전해 자신을 훑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장관이 무슨 속셈인지 알 길이 묘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00년간의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이런 찝찝한 걸 그냥 넘겼다가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왜 거짓말을 하시죠?”
 김칠성은 안희운의 대리석 테이블 끄트머리를 잡았다.
 “전 거짓말하는 사람을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콰드드득—
 김칠성이 조용히 나직하게 말하며 대리석 테이블의 끄트머리를 맨손으로 한 움큼씩 떼어냈다.
 괴물 같은 악력, 안희운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안희운은 몰래 자신의 발치의 긴급 호출 버튼으로 발을 가져갔다.
 “장관님.”
 파지직!
 “흐, 흐익!”
 안희운이 버튼으로 발을 가져가는 순간, 버튼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저절로 폭파돼 버렸다.
 거기다가 기겁하는 안희운의 몸을 누군가가 앞으로 떠밀었다.
 안희운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보이드가 안희운을 김칠성 방향으로 떠미는 것이었다.
 “이···이게 무슨.”
 “장관님아!”
 김칠성에게 디밀어진 안희운의 얼굴 앞에 김칠성의 얼굴이 들이닥쳤다.
 “무슨 속셈이십니까? 지금 제 성격 테스트하십니까?”
 
 콰아아—
 안희운은 정신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몸을 장난감처럼 쥐고 흔드는 것은 둘째 치고, 김칠성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어둠의 기운은 뭐란 말인가.
 마치 지옥의 사신을 앞에 둔 듯 날카로운 낫 같은 김칠성의 시선이 안희운의 심장에 박혀들었다.
 마치 거대한 A랭크의 괴수, 아니 그보다 더 거대하고 강대한 존재와 종잇장 거리에서 눈싸움을 하는 듯 온몸의 진이 빠져나갔다.
 “그···그어··· 그런 것 없습니다··· 그··· 그저 김칠성··· 님을 이용해 헌특부의 이미지 마케팅을 하고자······.”
 안희운은 다급한 몸짓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김칠성에게 동영상을 보여준다.
 “이···이것 보십시오.”
 
 열차에 뛰어든 여성을 구해내는 김칠성의 모습이 담긴 화면, 김칠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취조를 이어갔다.
 “흠··· 그건 그렇고, 제가 단순한 탱커가 아니라 흑마법사인건 아셨죠? 왜 모른 체하십니까. 탐지마법까지 써놓고?”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김칠성이 과민반응한다 싶겠지만, 실제로 마법사들끼리 대놓고 상대를 향해 탐지마법을 사용하는 건 크나큰 결례였다.
 
 탐지 마법이란 한마디로 상대가 어느 정도 강한지 가늠하는 용도가 주 용도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전투력을 알아본다는 것은 싸울 때의 승산을 알아보겠다는 의미이니,
 여차하면 순식간에 목숨을 건 마법대전으로 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김칠성 씨가··· 흑마법사인 걸 알아챘지만. 숨기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저도 흑마법사인지라······.”
 안희운은 더 이상 김칠성이 넘겨짚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김칠성이 무얼 하던 더 이상 이상할 게 없다고 느껴졌다.
 ‘괴물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안희운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던 김칠성이 안희운을 놓아주었고, 다리가 풀린 안희운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커헉···허억···허억······.”
 김칠성이 살기를 물리자 안희운이 그제야 막혀있던 숨을 헐떡였다.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지는 않군요······.”
 김칠성이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담배 있으십니까?”
 김칠성이 한숨을 푹 내쉬고 넌지시 물었다.
 숨을 헐떡이며 식은땀으로 축축한 셔츠를 넥타이를 늘여 식히던 안희운이 다급하게 일어나 안주머니의 담배를 꺼내 김칠성에게 건네주었다.
 “불은요?”
 헌특부 장관이 신입 공무원에게 담뱃불을 갖다 바친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안희운은 그럴 정신도 없었다.
 
 담배가 타들어 간다.
 사실 안희운에겐 지극히 치욕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김칠성은 내심 속으로 안희운에게 감탄하는 중이었다.
 ‘기백’. 흔히 전장의 군인들이 내뿜는 살기는 그런 단어로 불리곤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야 그저 추상적인 표현일 뿐이나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김칠성에겐 기백이란 그저 뜬 구름 잡는 표현이 아닌 또 하나의 능력이요 적의 마음을 베는 칼이었다.
 흔해빠진 병졸이라면 방금과 같이 완전히 개화한 김칠성의 기백에 혼절이라도 했을 것, 워낙에 안희운이 버텨냈기에 김칠성도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진심으로 기백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안희운의 마나의 총 수용량도 평균적인 마법사를 상회한다.
 인맥과 정치질의 산물로 얻어낸 장관이겠지만, 허울뿐인 장관은 아니란 소리다.
 안희운이 준 불로 담배를 빨아 삼키던 김칠성이 길게 연기를 뱉는다.
 
 “장관님··· 탐지마법이 얼마나 실례인 행동인지는 아시죠? ···저 비폭력주의자입니다, 장관님···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눈에 띄는 행동이나 신분에 맞지 않는 행동도 안 할 거구요··· 전 조용히 회사 다닐 테니, 장관님도 그래주시면 됩니다. 오늘 일은 비밀로 하죠.”
 “예, 예··· 물론이죠.”
 방금 전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안희운은 그 누구보다도 눈치게임에 뛰어난 남자다.
 이런 꺼림칙한 녀석을 건드리고 싶진 않다.
 “허허, 긴장하시긴. 요거 감사하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김칠성이 담배를 장관의 대리석 테이블에 비벼 끄며 말했고,
 이내 살기도, 옷깃도 한 번에 털어내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어 나갔다.
 “사, 살펴 가십시오······.”
 
 김칠성의 등 뒤에 90도로 인사를 하고 있던 안희운은 고개를 들었다.
 
 털퍼덕.
 “후우··· 휴우··· 같지도 않은 새끼가.”
 가죽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뉘이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실제로 김칠성의 협박에 안희운은 당황했다.
 물론 자신의 힘을 전력 개방한다면 김칠성은 힘도 제대로 못 써볼 게 뻔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김칠성은 자신이 예상 범주에 계산해 둔 레벨의 헌터가 아니었다.
 계산에는 철저한 안희운, 그가 계산 밖을 벗어나는 변수에 대해선 취할만한 입장은 단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론 취한다.
 만약 포섭이 가능한 상대일 것 같으면 나의 전력으로 바꿔버린다. 최소한의 출혈로 최대한의 이득을 보는 방법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거나, 그저 통제 자체가 힘들 것 같은 상대라면······.
 “어디서 좀 굴러먹다 왔나본데··· 썩을 놈의 새끼가.”
 그렇게 중얼거린 안희운이 품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냈다.
 스마트폰이 유행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굉장히 구형 3G 폰이다.
 그 핸드폰에 번호를 눌러 넣은 안희운이 수화기에 입을 댄다.
 [예, 보스.]
 수화기 너머에서 느리고 쉰 듯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생 좀 해라 명석아.”
 [말씀만 하십쇼.]
 “그 김칠성이라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주 신선한 개새끼가 있거든? 네가 가져다 써라.”
 [헌터를 말입니까?]
 “그래, 마법사니까 뒤탈 없이 준비 잘하고··· 명석아!”
 [예?]
 “어머니 잘 계시지?”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계십니다.]
 “그래 내가 언제 한 번 찾아 뵈어야지. 한 번 보자. 알았지?”
 [옙.]
 범죄모의를 하던 두 사람의 통화가 안부전화로 끝을 맺는다.
 안희운이 씩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에 띤다.
 “노란 싹은 싹일 때 뽑아야지. 밭 다 망치거든.”
 취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부순다. 그것도 즉시.
 그것이 이 자리까지 안희운을 밀어 올려준 원동력이었다.
 
 ***
 
 기기긱— 터—엉.
 칠성이 장관실 밖으로 나오자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칠성을 기다리고 있는 한솜이가 보였다.
 “기다리셨군요?”
 “그럼요. 칠성 씨 길도 모르잖아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몸을 싣는다.
 “무슨 얘기 했어요?”
 한솜이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온다.
 
 칠성은 한숨을 쉬며, 뭐라고 둘러댈까 하다가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냥 뭐, 점수 좀 땄죠.”
 
 뭐 크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잘 봐주십사 하는 인사보다는 반(?)협박이긴 했지만.
 “아 정말요? 칠성 씨 그런 거 못하게 생겼는데, 사회생활 좀 하시나보네?”
 샐쭉하게 웃으면서 넌지시 묻는다.
 명백하게 놀리는 말투다.
 “뭐, 장관님이 저 담뱃불까지 붙여주셨는데요?”
 “이야~ 진짜?”
 “그럼~.”
 ‘은근슬쩍 말 놓네? 그럼 나도 놔야지.’
 뭐 칠성이 아주 없는 소리 한 것도 아니다.
 불을 붙여주는 장관님의 손이 좀 떨리긴 했지만 말이다.
 
 한솜이가 팀장으로 있는 곳은 3층의 레이드 3팀이었다.
 
 “장비들 무게도 있고, 레이드 팀은 저층을 쓰는 편이예요.”
 총 15층으로 이뤄진 헌터 특별부 사옥은 1층 로비, 2~6층이 실제 현장 레이드를 담당하는 레이드 팀.
 7층부터 15층 장관실 사이엔 각종 마법기술 연구팀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마법기술 연구라니, 뭘 하는 거죠?”
 “아, 정말 잘 모르시는구나? ‘문’ 안에서 발견된 각종 아티펙트나 마법 물품 등을 재해석하는 거예요, 기술 추출도하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현대기술이랑 재접목도 하고··· 오히려 그쪽이 핵심부서죠.”
 소위 ‘드랍’으로 표현되는 던전 내에서 획득 가능한 마법물품.
 마법물품의 획득은 굉장히 드문 편이기 때문에, 많은 헌터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가 없단다.
 해서 해석가능한 마법 물품은 현대기술로 재창조해 양산형을 만들어내는 게 주 역할인 부서라고 했다.
 
 띵!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3층에 다다랐다.
 “걱정 마세요. 좋은 분들이니까.”
 드드득—
 레이드 3팀의 사무실은 매우 단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격자형의 파티션에 각각 분리된 널찍한 공간의 사무용 책상들 여러 개가 보였다.
 자리는 일반적인 자리 네 개와 팀장용의 분리된 자리 한 개.
 그래봐야 사람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함께 하게 된 탱커 김칠성 씨예요.”
 한솜이가 사무실에서 무언가 문서를 작성하고 있던 남자에게 칠성을 소개시켜줬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 너 여기냐?”
 “김칠성?”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지우혁이었다.
 헌터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또 한 팀일 줄이야.
 
 “이야~ 그럼 네가 그 지강탱이야?”
 “두 분 아는 사이예요?”
 “뭐, 그렇죠.”
 “그렇긴 뭐가 그래 인마~~ 이 새끼 내가 업어 키웠어요. 팀장님.”
 “아하하, 정말요?”
 “지랄~~.”
 칠성과 우혁이 투닥거리자 한솜이가 배를 잡고 웃는다.
 지우혁과 칠성은 사실 초등학교 후반부부터 친구였다.
 처음엔 칠성보다 훨씬 작은 꼬꼬마였던 지우혁이 중학교 때부터 쑥쑥 크더니 고등학교 땐 키 185에 건장한 체격이 된 것이다.
 
 남자끼리는 좀 그런 게 있다.
 덩치가 작고 그러면 무시당한다.
 초등학교 땐 칠성이 은연중에 지우혁을 보호하는 느낌으로 다녔다면, 고등학교 땐 키 170에 멸치인 칠성 옆의 지우혁이 든든한 친구였다.
 
 “그럼 우혁 씨가 칠성 씨 챙겨주면 되겠네요.”
 ‘뭐 나야 좋지.’
 일종의 사수개념인가? 어색한 사이보다 지우혁이랑 붙어 다니는 게 낫지.
 회사라고 양복을 입고 있는 지우혁의 모습이 뭔가 낯설면서도 대견한 칠성.
 세월이 부쩍 흐른 느낌이다.
 “아요~ 회사에서까지 업어 키우게 생겼네.”
 “씁~ 까불고 있네! 지강탱 님한테 짜식이.”
 한동안 그러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고 웬 남자가 들어온다.
 뭔가요?
 하는 듯한 뚱한 표정으로 입에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기울이는 남자에게 한솜이의 설명이 이어진다.
 
 “오늘부터 함께하게 된 김칠성 씨예요. 여기는 김태홍 씨.”
 “아~ 그분이요? 난 또 누군가 했네.”
 한솜이의 소개를 받은 칠성이 반사적으로 김태홍에게 악수하자는 손을 내미는데 김태홍이 본 건지 못 본 건지 휙 돌아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뭐지······?
 칠성은 괜히 민망해서 들었던 손으로 뒷목을 긁었다.
 
 “아~유, 유명하신 분이랑 같이 근무하게 되서 영광입니다? 이거.”
 칠성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자기 모니터 화면에 집중하며 그렇게 말하는 김태홍.
 ‘저거 비꼬는 거 맞지?’
 황당하네~~.
 칠성은 김태홍의 청색의 마나 아우라를 살펴보며 청마법사가 되면 사람이 싸가지가 없어지는 건지, 아니면 청마법사가 워낙에 자연친화적이라 싸가지도 자연의 싸가지로 태어나는 건지 잠시 고민했다.
 
 “이건 뭐 팀이 아주 슈퍼스타 팀이네 슈퍼스타··· 우혁 씨! 우혁 씨는 뭐 할 거 없어요? 티브이에다가?”
 김태홍의 비꼬는 말에 한솜이가 움찔하는 게 보인다.
 한솜이는 묘하게 이런저런 사건들을 통해 민간인을 구했던 전력이 있다.
 바티칸 출신의 한솜이는 레이드로 출전 할 때마다 바티칸의 기사를 상징하는 붉은 짧은 망토를 두르곤 했었는데, 그게 묘하게, 슈퍼맨 같은 슈퍼히어로 코스튬처럼 보였던지라 언론에 슈퍼걸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물에 빠졌던 어린아이를 구해 안고 있는 사진에, 어떤 기자가 생각해 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슈퍼걸’이란 제목.
 
 그 이후에 헌특부 이미지 마케팅에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활약했던 이력이 있다.
 ‘여러분과 함께하는 헌특부’ 등의 피켓에 모델로 사용되어 전국에 깔린 것이다.
 그리고 김태홍이라는 마법사는 그 부분에 뭔가 유감이 있는 것 같았다.
 “하하하··· 글쎄요 저는 그다지.”
 억지웃음을 짓던 우혁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한솜이는 팀장인데. 저렇게 막 대해도 되나?’
 괜히 어색한 공기에 본인이 안절부절못하는 한솜이가 안쓰러워 보이는 칠성.
 
 ***
 
 얼마 뒤.
 “저 새끼는 뭐가 문제냐?”
 칠성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묻자 지우혁이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그게 꼭 김태홍만의 문제는 아니긴 한데······.”
 
 이어지는 설명은 이러했다.
 헌특부의 헌터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높은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생명의 위협을 담보로 하지만, 그만큼이나 파격적인 혜택과 높은 연봉을 제공하는 직장이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고, 그래서 헌터란 직업이 만들어 진 것 자체도 짧은 기간이지만 헌터가 되기 위한 문턱이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문턱이 높아진 건 올바른 일이었다.
 몬스터가 헌터의 마나를 흡수하면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는 ‘레벨업 현상’.
 몬스터를 일정시간 내에 막아내지 못하면 벌어지는 참사인 ‘몬스터 실체화.’
 어느 경우를 봐도 어설픈 자가 헌터랍시고 덤벼들면 본인 목숨은 물론 팀원들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직업적으로 포장해도 이 일은 매일 야수와 대결해야하는 일인 것이다.
 
 김태홍은 그야말로 헌터교육기관인 헌터스쿨의 엘리트였고, 능력과 여러 경험을 쌓으며 헌터가 된 탓에.
 제대로 된 절차도 밟지 않고 헌터가 된 칠성에게 불만이 있는 거 같다는 소리였다.
 “야, 나는 그렇다 치고. 한솜이는?”
 “한솜이 팀장님···은 바티칸 출신의 기사지.”
 그간 헌특부는 오로지 헌터스쿨 출신의 사람만 채용하는 것으로 방침을 굳혔으나, 인력난의 해결을 위해 바티칸 출신 성기사들을 헌특부에 특별채용 했다.
 “갑자기 ‘문’이 나타나는 숫자가 늘어났거든. 그렇다고 해서 레이드 팀 선발 문턱을 낮출 수도 없고 말이야.”
 굴러온 돌인 셈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그렇게 어린 나이와 짧은 경력에 팀장 자리를 꿰찬 게 실력보다는 ‘슈퍼걸’ 언플의 결과가 아니겠느냐 하는 소문이 붙었다는 거다.
 그리고 김태홍은 그 루머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 듯 보였다.
 “거 새끼, 더럽게 꼬인 놈이네.”
 
 ***
 
 퇴근 길.
 칠성이 집으로 돌아가려면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공원을 지나 집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직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넓은 공원은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을 제외하곤 한밤중이었다.
 트레이닝복을 뒤집어 쓴 채 개를 산책시키던 여자도 총총히 사라지고 어두운 공원엔 그저 인적이 드물··· 어야 할 텐데?
 “적당히 하고 나와라.”
 멈칫.
 언제 붙었는지 아까부터 칠성의 뒤를 따라오던 세 명의 수상한 인기척이 멈칫 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수대 뒤에 하나, 나무 펜스 뒤에 하나, 아름드리나무 뒤에 하나?
 
 분수대 뒤에서 숨어있던 녀석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펜스 뒤에 있던 녀석과 나무 뒤에 있던 놈도 내 뒤에서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놈들은 하나같이 한 손에는 야구배트를, 다른 손에는······.
 ‘저거···뭐야?’
 지이이잉—
 놈들이 한 손에 쳐들고 있는 것은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 되는 검은색 마름모꼴의 크리스탈 같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세 놈이 하나씩 들고 있는 그 물건들에서 서로 뻗어 나와 얽힌 마나의 선이 만든 삼각형이 칠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파칭!
 약속한 듯 놈들의 손에 있던 크리스탈 조각 같은 아티펙트가 깨어지자 순식간에 깨진 마나의 삼각형이 허공으로 승천하며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인다. 아니. 칠성 주변에 있던 마나를 태워버린다.
 
 “마나 번? 씨바롬들이.”
 우욱.
 간만에 정통으로 마법에 노출되자 속이 뒤집혀 헛구역질이 나왔다.
 놈들은 칠성이 고개 숙인 틈을 타 둔기를 들고 셋 방향에서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둔기를 든 장정 셋. 정신 못 차리는 마법사 하나.
 콰드득!
 “커억!”
 털썩.
 하지만 다음 순간 바닥에 진한 키스를 퍼부으며 고꾸라진 건 둔기를 들고 덤벼든 세 놈이었다.
 칠성에게 덤벼드는 놈들을 향해 뻗어진 보이드의 세 손가락이 놈들의 명치를 정확히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씨바 진짜 내가 졸로 보이나.”
 칠성은 헛구역질한 입 주변을 소매로 슥슥 닦으며 품 안에 챙겨두었던 고 정제 마석을 하나 꺼내 아이스크림 빨 듯 쪽쪽 빨았다.
 바X스를 들이키듯 기력이 회복되는 기분.
 
 “개같······!”
 퍼각!
 욕지기를 하며 다시 배트를 들고 일어나서 덤비는 놈의 배트에 맞주먹을 날리자 배트가 수수깡처럼 부러져서 날아갔다.
 칠성이 멍하니 배트 절반을 들고 선 놈의 싸대기를 내리 붙이자 녀석이 다시 바닥에 볼을 부비며 행복한 꿈에 빠진다.
 
 땡그당!
 “흐······흐이이익!”
 칠성의 등 뒤에서 배트로 내 뒤통수를 노리던 놈은 보이드의 활약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로로 갈라져 반쪽이 된 배트를 보고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배트를 떨어뜨린다.
 
 “자, 둘이 사이좋게!”
 칠성이 한쪽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던 세 번째 놈의 머리를 부여잡아 빈손으로 떨고 있는 놈의 명치에 머리를 매다 꼽았다.
 “니네 뭐냐?”
 
 뻥!
 “아그극!”
 칠성이 슬금슬금 일어나려던 놈들 중 하나를 발로 차 버리며 묻는다.
 
 후우.
 한밤중에 야구배트를 들고 덤벼드는 아리랑 치기들이야 별 관심 없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아티펙트를 준비해 왔다. 칠성이 마법사, 아니면 적어도 헌터라는 걸 염두 해두고 습격을 했다는 거다.
 타닷!
 저쪽 멀리서 처음 쓰러뜨렸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아 새끼, 그거 그냥 누워 있지 좀!”
 누가 봐도 덜 개겨야 덜 쳐 맞을 분위기 인데,
 꼭 저렇게 눈치 밥 말아 먹은 놈들이 있더라.
 
 “하~ 새끼. 얌전히 누워있지.”
 칠성이 조용히 놈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고 검지손가락을 놈을 향해 뻗어 총 모양을 만들며 중얼거렸다.
 치즈즈즈즉—
 다크볼트의 마법진이 손끝에서 아른거리나 싶더니 이내 어둠의 기운이 모여들어 응축된다.
 “빵야!”
 그렇게 응축된 어둠의 기운이 칠성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순식간에 검지손가락 끝에서 자그마한 어둠의 총알이 되어 허공을 가르는 파열음과 함께 허둥대며 달아나는 놈에게로 날아간다.
 팟!
 “끄아악!”
 발목을 명중당한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털퍽 쓰러졌다. 고개를 슬며시 들고 구경하던 녀석들이 그 모습에 기겁하며 다시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고 기절한 척을 한다.
 “후~!”
 칠성이 어둠의 총알을 뱉어내고 따끈따끈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검지손가락을 후 불어준다.
 “꼭~ 꼭 일을 성가시게 만들어요, 그냥.”
 
 
 # S1 : 8화
 
 ***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똑바로 안 해 새끼들아?!”
 칠성은 공원의 벤치 위에 턱 하니 걸터앉아 있었고, 칠성을 습격했던 세 놈은 원산폭격 자세로 쪼르륵 순서대로 대가리를 벽돌 바닥에 박고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
 
 “니들 뭐하는 새끼들이야.”
 칠성이 마법사 내지 최소 마나를 운용하는 헌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서 마나 번 아티펙트까지 미리 준비해서 조직적으로 덤빈 점.
 게다가 칠성의 주먹질에 뼈가 또각또각 부러지는 게 아니라 상당히 차지게 때리는 맛이 있는 걸로 봐서 어지간히 수련이 된 외공을 익힌 무도가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치기 어린 아리랑 치기범들이라기엔 뭔가 수상쩍다.
 
 “빨랑 안 불어?”
 허 참 새끼들, 이 정도로 팼으면 순순히 불 만한데도 버티네?
 퍽.
 “커억 그게 아니고 저희가 먹고 살기가 팍팍해서 그게.”
 박고 있는 대가리 중 하나를 슬쩍 짓밟자 그제야 헛소리들이 술술 나온다.
 
 “지랄하지 말고 새꺄.”
 “아···아니 그게 정말 선생님 같은 분인 줄 모르고 저희가 진짜 잘못했거든요.”
 “지랄! 똑바로! 말! 안 해?!”
 칠성이 상냥하게 다그치며 말끝마다 발길질을 해대자 이번엔 발목에 매달리며 애원한다.
 “아, 선생님 한 번만 봐주시면 정말 제가······.”
 “자세 똑바로 안 한다?”
 칠성의 말에 또 후다닥 원산폭격 자세로 복귀.
 흠. 새끼. 동작이 좀 빠릿해졌구만.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능력자만 골라서 덮치는 게 말이 되냐고. 니들은 이해가 가냐 이딴 허접한 시나리오가?”
 “그···그게, 능력자가 아니라 정확히 헌특부 직원을 노리는 것이거든요······.”
 이놈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이 세 놈은 능력자 전문 털이범.
 헌특부 직원들은 돈이 많다.
 게다가 마나—번 아티펙트만 사용하면 일반인에 비해 작업(?)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헌특부 직원들은 입이 무겁다.
 어디 가서 이름도 없는 잡배에게 무력으로 털렸다는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하더라.
 이게 이놈들이 대충 변명한 정황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헌특부 직원 중에 내가 좆밥으로 보였다 이거지?”
 “히···히익!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저희는 정말 꿈에도!”
 
 ‘글쎄다.’
 흠, 아무래도 마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헌터라면 자신이 마나 번에 당한지도 모를 수 있다.
 몬스터들을 품은 문이 등장한 지 십 년이 흘렀다 고야 하지만 지구에서 마법에 대해 잘 아는 인구수는 설사 헌터 중에도 크게 많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그런데 그런 거야 차치하고.
 “그래서 내가 헌특부 직원인건 어떻게 알았냐고, 십새야.”
 “그, 그건······.”
 입을 뗀 놈이 머뭇거린다.
 척 봐도 들으나마나, 이런 게 가능하려면 가장 간단한 루트는 하나다.
 ‘···스파이가 있군.’
 그렇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놈들이 헌특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해 왔다면 그건 그거대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헌특부 직원인지, 또 헌특부 직원의 동선 파악 등은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
 
 삐용—삐용—삐용.
 저 멀리서부터 다가온 사이렌 소리.
 누군가가 비춘 플래시 라이트가 비춘다.
 경찰이다.
 
 ***
 
 “예, 아마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이놈들 아주 장군감이네요 장군. 한 놈은 오성 장군에 한 놈은 칠성. 한 놈은 소년원 출신.”
 전과자들이란 얘기다.
 덕분에 일이 꼬일 일은 없었다.
 아마 패싸움 같은 것으로 지나가던 행인이 신고한 것 같은데, 칠성은 나름 헌특부 소속의 공무원. 상대방은 전과자. 누가 보아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범죄 징벌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일주일 전에도 두 건 비슷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헌특부 직원을 노린 강도가요. 아마 이 녀석들 소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군요··· 별 놈들이 다 있네.”
 
 칠성이 헌특부 내에서 정보가 새고 있을 가능성과 아티펙트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설명해 주었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또 의심할지도 모르니까.
 이놈들에게 헌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물건을 누군가가 공급하고 있을 것이라는 언질을 남겼다.
 경찰은 골머리 앓던 문제를 해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용감한 시민상이나 표창이 내릴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쩝, 뭐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구먼.”
 세상 어디를 가던 돈이 얽히면 일이 더러워지는 거 같다.
 칠성이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장비는 우혁 씨가 챙겨주세요.”
 “예이.”
 다음 날. 회사.
 칠성은 한솜이의 지시에 지우혁을 따라가게 되었다.
 “뭐 갑옷 같은 거 주는 거냐?”
 “큭큭큭··· 보고 놀라지나 마라.”
 
 띵!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했다.
 “오우······.”
 3층이 상당히 일반 회사 사무실에 비슷한 느낌이었다면 7층은 상당히 연구실 느낌이었다.
 백색의 벽면들이 칠성을 기다리고 있었고 바쁘게 오가는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진들도 보였다.
 “뭘 멍 때리고 있냐, 촌놈같이. 따라와!”
 지우혁이 주변을 신기한 듯 둘러보고 있는 칠성의 팔을 툭 치더니 앞서나갔다.
 
 “조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지우혁이 차트를 들고 연구실을 누비고 있던 대머리의 남자한테 칠성을 소개했다.
 “이 친구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김칠성이란 사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칠성입니다.”
 “오~ 김칠성 씨? 안 그래도 우리끼리 말 많았습니다.”
 칠성이 악수를 건네자 조 소장이라는 사람이 흔쾌히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제 얘기를요?”
 
 내 얘기를 왜했지?
 이 사람들도 지강탱인지 뭔지 하는 걸 봤나?
 “네, 포지션 테스트자료가 건너와서요.”
 그러고는 들고 있던 차트를 슥슥 넘기더니 말을 잇는다.
 “보세요, 여기 압력저항 10톤? 이런··· 이런 탱커는 국내에선 없어요! 처음입니다.”
 “아, 그래요?”
 나름 괴수 공격을 맨몸으로 무시하고 지하철을 상대로(?) 여자도 구했는데.
 이 아저씨들은 티브이는 안보나?
 “뭐 10톤?!”
 지우혁이 소장의 말을 듣더니 기겁했다.
 “마~ 형이야.”
 “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지우혁이 싱글벙글 웃으며 칠성의 팔을 툭 친다.
 크크크, 이놈아. 놀라긴.
 형 재주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란다.
 
 “이 정도 클래스면 아마··· 중국의 탱커 능력자 정질에 비견되지 않을까요?”
 “정질, 금강불괴 정질이요?”
 칠성이야 나중에 알게 되는 정보지만,
 정질은 중국 대륙에서도 톱클래스의 탱커,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탱커 중 한 명이다.
 
 “어쨌든, 이 정도면 연구 대상이니까요. 연구원들이 수선을 떠는 것도 당연하죠.”
 이런··· 적당히 할 걸 그랬나?
 이거 괜히 탱킹 쪽으로 너무 뛰어나서 연구대상으로 검사니 뭐니 당하다가 흑마법사인 걸 들키는 거 아니야?
 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는 조 소장을 따라갔다.
 “자 뭐 일단 공통적으로는 방어구부터 맞춰야죠? 뭐 김칠성 씨 같은 경우엔 특이할 정도로 물리저항이 상당히 강하긴 하지만, 마련돼 있는 걸 안 쓸 필요야 없죠. 안 그래요?”
 
 조 소장이 안내한 곳엔 거대한 철제 케이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 파란색 뚜껑의 케이스에 조 소장이 보안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승스승, 쉬쉬쉭!
 그러자 케이스가 마치 SF 영화의 로봇처럼 스스로 재조립되며 방어구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호오~?”
 가볍게 감탄하는 칠성.
 우혁이가 조 소장을 도와 칠성의 몸에 장비들을 채워준다.
 신기한 것은 제법 헐렁해보였던 방어구들을 칠성의 몸에 두르고 무언가 조작을 하자 안쪽의 케이블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몸에 들러붙어 칠성에게 딱 맞는 맞춤 사이즈가 되어갔던 것이다.
 “허······.”
 “어이구 이 촌놈. 신기하냐?”
 우혁이 놀리듯이 말했지만, 사실 정말 신기했다.
 방어구, 그러니까 굳이 다른 말을 쓰자면 갑옷인데, 갑옷하면 흔히 떠올리는 중세의 중갑옷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어디 비밀 군부대의 특수부대가 쓸 거 같은, 철갑을 두른 스포티한 스타일의 활동복이었다.
 “방어구라고 해도 가동성엔 일상복과 큰 차이점도 없을 겁니다. 우리 부서가 놀고 있지는 않다는 증거겠죠?”
 조 소장이 눈썹을 낚싯바늘에 걸린 것처럼 치켜 올려 보이며 씨익 웃어보였다.
 과연 그 말 대로였다.
 
 장갑은 건틀릿과도 같이 철판들이 둘러져 있었는데. 철판 같은 금속부는 굉장히 얇았고, 또 철판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매우 유연하고 탄성 있는 섬유로 이뤄져 있어서 움직임에 전혀 제약이 없었다.
 옷들도 마찬가지였다.
 꼭 월드컵 축구선수들을 위한 인체공학적 설계의 축구복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입었다는 느낌도 거의 없이 관절에 제약이 없었다.
 무게는 엄청나게 나가서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지만.
 도합 100kg은 되는 거 같았다.
 
 “뭐, 모자는 이런 디자인이지만요. 우리 센스가 아닙니다. 나라에서 좋아하는 스타일이지.”
 조 소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면서 건네준 모자는 실망스럽게도 그냥 군모 엇비슷한 디자인이었다.
 이렇게 세련된 방어구에 이런 군모라니.
 “크크크.”
 퉁.
 지우혁이 괜히 내 머리에 쓴 군모를 손으로 쳤다.
 “하지 마라.”
 “흠~ 두 분 친하신가보네요?”
 바쁜 손으로 이것저것 챙기던 조 소장이 넌지시 말했다.
 “예, 어렸을 때 친구거든요.”
 “그렇군요~ 복 받으셨네요. 두 친구가 던전을 누비다! 퓨퓨!”
 조 소장이 양손 검지로 총을 만들어 총 쏘는 시늉을 했다.
 
 드드드드득—
 “자,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 마법 테크놀로지의 정점 중 하나인··· 탱커용 방패입니다!”
 조 소장이 바닥을 끄는 소리와 함께 힘들게 굴려온 것은 커다란 원형의 금속방패였다.
 “오··· 멋진데요?”
 꽤나 신경 쓴 디자인이었다.
 마치 중세 기사의 방패 같은 장식도 되어있었다.
 태양 같은 테두리와 가운데는 무언가 괴수 같은 장식이 양각되어 있었다.
 “가운데 있는 건 그··· 붉은악마 아시죠? 치우천황입니다.”
 그렇구나! 어디서 봤나 했네.
 그거보다 이거 엄청나게 무겁다.
 ‘이건 적어도 200kg은 되겠는데······.’
 조 소장은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굴려왔지만 칠성이라고 해서 이걸 들고 걸어 다닐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어차피 탱킹이 문제도 아니니 좀 더 가벼운 걸로 바꿔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치우천황과 눈을 맞추고 있는 칠성에게 조 소장이 손을 내민다.
 “사원증을 줘 보세요.”
 칠성이 사원증을 넘겨주자 조 소장이 사원증을 본인이 가지고 있던 휴대용 기기에 넣더니 무언가 조작을 한다.
 “사실은 사원증에도 상당한 수준의 던전 테크놀로지가 적용돼 있습니다.”
 칠성이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조 소장이 씩 웃는다.
 “뭐 일종의 사용자 등록이죠. 자, 이제 다시 사원증을 목에 거시~고.”
 
 조 소장이 목에다가 사원증을 채워준다.
 “능력자시니까 마나는 운용하실 줄 아시죠? 사원증에 마나를 불어넣어보세요.”
 음······?
 사원증도 일종의 아티펙트인가?
 그리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사원증에 마나를 불어넣은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둥! 두웅— 둥!
 사원증에 조심스레 조금 불어넣은 마나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마나의 통로를 타고 각종 장비로 퍼져나갔다.
 “오~?”
 방어구, 철모, 건틀릿, 방패 순으로 마나가 퍼져나갔고, 각각 장비에 있던 눈에 보이지 않던 마법진에 마나가 채워져 들어가는 게 보였다.
 물론 일반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거?”
 놀라웠다. 100kg 가까운 무게의 방어구가 순식간에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게 됐다.
 ‘경량화 마법!’
 상당한 고급수준의 마법진을 멋들어지게도 새겨놓은 것이다.
 물론 드워프 명장급의 기술력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의 상당한 수준이었다.
 사원증 내에 마법스크롤이 있고, 아마도 조 소장이 각각의 장비와 사원증 내의 마법스크롤을 연동한 것 같았다.
 방패역시 200kg의 엄청났던 무게가 그저 한 손으로 번쩍 들릴 만큼 가벼웠다.
 “대단해······.”
 인류의 현대기술에 마법기술이 접목되자, 이세계의 인간들은 꿈도 못 꿨던 레벨의 아이템이 이렇게 손쉽게, 그것도 양산이 되어서 탄생한 것이다.
 “후후후후, 보이는 것보다도 훨씬 대단한 겁니다.”
 조 소장이 의미심장하게 웃었지만 사실 칠성의 눈에는 이미 뭐가 대단하단 건지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초급 마법 저항에··· 중급 속성저항까지.’
 “나노 세공으로 수많은 마법진이 장비들에 새겨져 있지요.”
 
 ‘수준도 굉장해.’
 적용되어 있는 마법진들 자체는 의외로 고위 마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의 조합과 현대적 소재의 합으로 칠성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아티펙트들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얼마 가지 않아서··· 아니 정말로 어쩌면.
 ‘이미 추월해 있는 게 아닐까······?’
 헌특부 직원에게 지급되는 장비지만 양산형 장비의 퀄리티가 이 정도다. 지금 당장에 어디선가는 더 대단한 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사실 칠성의 경우엔 마나코팅한 방어구에 무식하게 마나를 밀어 넣어 젖히는 편이 훨씬 높은 방어력을 낼 수 있는 수단이었으나.
 
 이렇게 적은 마나의 투입으로 이 정도 효과를 내는 고효율의 장비를 만들어낸 것은 백번 칭찬해도 아깝지 않은 일이었다.
 대단하다.
 “백미는 바로 방패지요~.”
 
 
 # S1 : 9화
 
 ***
 
 “이놈들이 방패에 심장과도 같은 놈들이죠.”
 조 소장이 손바닥만 한 케이스를 칠성의 방어구 옆구리 부근에 있던 접합부분에 달그닥 소리가 나게 끼워 넣었다.
 “이게 뭐죠?”
 케이스를 젖혀보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반지였다. 그것도 열 개나.
 “반지 하나를 손에 끼워보세요.”
 뜬금없이 반지라니······.
 반지라고 해도 반지치곤 상당히 큰 링이었다.
 건틀릿 덕에 두꺼워진 손가락 위로도 쑥 들어갔다.
 “어라?”
 반지를 손가락 부근으로 밀어 넣자 마치 반지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손가락 크기로 줄었다.
 ‘이제 뭐 이 정도는 크게 신기하지도 않군.’
 
 “오우··· 안 좋은 걸 고르셨는데?”
 조 소장이 칠성이 약지에 끼운 붉은색 보석의 반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걸로 낄까요?”
 “아뇨, 뭐 안 될 거 없죠. 그 반지 낀 손으로 방패를 쥐고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어 보세요.”
 조 소장이 시키는 대로 반지를 낀 손으로 방패의 손잡이를 잡고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방패 테두리 부분에 새겨져 있던 태양 모양의 양각 부분이 서서히 빙글빙글 돌아가고, 테두리 양끝 방향에 있던 둥그런 구슬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력을 넣을수록 빛과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방패 위에 붉은색 빛의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이다.
 지이이이이—
 “옵니다~~.”
 내 옆에 조 소장이 양쪽 귀를 막았다. 뭐지?
 “아, 설마?”
 지우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양 귀를 틀어막았다.
 뭐지, 뭔데 저러는······.
 
 구우우우우—
 끼에에에에에엑!!!
 다음순간 엄청난 음압과 함께 방패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연구실의 전등이 껌뻑이고 멀리 있던 연구진들이 귀를 막고 소리 질렀다.
 “헉!···허억.”
 어우씨, 뭐야 이게!
 칠성은 잽싸게 방패에서 손을 뗐고, 떨어진 방패는 바닥을 구르며 서서히 가동을 멈췄다.
 
 “이게 바로 우리 방패의 핵심 기술이자 탱커의 진정한 소양. 타운트 기술입니다.”
 “아우···아악.”
 아직 멍멍한 귀를 손으로 두드리는 칠성에게 조 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수한 초음파와 마나 파장을 발생시켜 방패를 몬스터의 천적으로 둔갑, 몬스터의 공격성향을 탱커에게 집중시키는 방법이란다.
 “야··· 하긴 이따위 소리면 저라도 패고 싶긴 하네요.”
 지우혁이 자기 귓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시며 거들었다.
 “반지의 종류는 총 열 가지. 한 번에 네 가지까지 조합하는 게 가능합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개에 끼우면 되죠.”
 어우···머리야! 아직도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보통의 경우 초음파는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범위인데, 빨간색이 하필 사람에게도 들리는 대역의 주파수라는 것이다.
 
 “몬스터에 따라 반응하는 초음파가 다르고요, 도감에 반응하는 초음파들이 정리되어 있으니 틈틈이 도감을 보시고 익혀야 합니다.”
 그러면서 준비해놨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준다.
 군용 케이스에 담긴 스마트폰이다.
 “뭐죠, 이게?”
 “헌터폰입니다. 헌특부 직원들은 보안 때문에 이 전용 스마트폰만 사용해야 해요.”
 패드를 켜자 검은 화면에 황금색 치우천황이 뜨더니 이내 각종 몬스터 정보가 담긴 화면이 나온다.
 장수풍뎅이같이 생긴 괴수의 정보 밑쪽에 [타운트 컬러 : 빨강 +초록]이라고 적혀있는 게 보인다.
 ‘이런 식이란 거구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세계에서 독특한 기합으로 몬스터의 주의를 끌던 원시부족이 생각난다.
 아마 그들은 타운트 기술과 비슷한 걸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것일 것이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타운트를 걸어주는 게 진정한 탱커의 능력이죠.”
 이해했다.
 잘못된 타운트로 잘못된 탱킹을 하면 몬스터가 탱커를 무시하고 다른 포지션의 아군을 공격하게 될 수 있다.
 ‘까다롭구만······.’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잠시만요, 이런 식이면··· 총 10개면··· 4개까지 조합이 된다면······.”
 칠성이 손가락을 펴며 계산하자 조 소장이 거든다.
 “총 379가지 조합이 가능하죠. 다만 우리가 확인한건 40가지 조합입니다. 뭐, 나머지는 미지의 몬스터를 위한 거랄까요.”
 조 소장이 눈을 크게 뜨고 양쪽 손가락을 파닥거리며 흥미로운 일이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린다.
 “어차피 문에는 종류가 있고, 어지간해선 해당하는 문에선 해당하는 몬스터만 나오니까요. 문에 진입하기 전에 문 종류를 보고 타운트 컬러를 외워 들어가면 뭐···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예, 뭐 그 정도야.”
 “얌마, 이거 잘못하면 클~~나.”
 지우혁이 미심쩍다는 듯 목 긁는 소리를 냈다.
 “걱정 마셔~.”
 고등학교 때 칠성의 모습만 아는 지우혁 입장에서야 괜히 하는 걱정이 아니겠으나,
 과거 지구에서의 고교생 김칠성과 달리 지금의 칠성에게 있어 암기는 오히려 초특기다.
 이 정도야 뭐.
 
 “아. 조직검사 좀 해도 될까요?”
 자리를 파하려는데 조 소장이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 말했듯 10톤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칠성의 신체는 정말로 연구대상이란 소리다.
 “예, 뭐······.”
 어차피 몸에서 떨어져나간 조직엔 흑마력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흑마법사임을 들킬 걱정은 없다.
 혹시 행여나 마족의 DNA를 분석해내면 어쩌나 싶긴 하지만.
 마족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구이니 그저 특이한 능력자의 체형이라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칠성은 조직검사에 흔쾌히 응했고,
 조 소장을 따라 온 연구원이 기다란 창 같은 주사기로 칠성의 어깨를 찌르더니 살점을 떼 갔다.
 “어우씨!”
 “하하하하. 아프죠?”
 조 소장이 놀렸다.
 
 “가자.”
 거즈로 상처부위를 문지르는 칠성에게 지우혁이 말한다.
 “그려.”
 
 
 퇴근한 칠성은 지우혁과 포장마차에서 개불로 한잔한 뒤 집에 돌아왔다.
 ‘마나를 좀 쌓아놔야겠는데.’
 
 약간의 문제에 부딪혔다.
 흑마법사와 원소마법사, 혹은 청마법사로 불리는 자들과의 결정적 차이는 마법의 방향성이다.
 청마법사는 자연과의 호흡, 명상 등으로 체내에 마나를 축적하는 방향을 지향했고, 그 결과 도핑 기술은 흑마법사만큼 발달하지 못했지만 명상과 호흡을 통한 마나 수급이 장기가 되었다.
 
 반면 흑마법사의 조상들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는 마나가 잠재되어 있는데, 흑마법사의 조상들은 한 세월 호흡으로 대자연으로부터 마나를 흡입하는 대신 훨씬 더 간편한 방법을 추구했다.
 그냥 생명체를 죽여, 그 생명체의 마나를 갈취하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여기가 지구라는 거지.”
 이세계에선 정 궁하면 일반적인 몬스터나, 길가다 근처의 고블린 떼를 몰살하고 그들로부터 마석을 추출해내도 충분히 수지타산이 맞았다.
 오히려 공익적인 활동이 아닌가?
 다만 문제는 여기가 지구란 건데······.
 
 추출하는 마석은, 그러니까 생물체가 내재하고 있는 마나의 양은 생명체의 종류별로 달랐다.
 길 가던 똥개는 집체만한 녀석을 죽여도 손톱만 한 마석이 나오는 반면, 몸집이 거대한 드래곤은 그렇게나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죽이면 몸집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마석을 얻을 수 있었다.
 성기사들에게 추방당하기 직전에 모았던 그 마석의 산도, 그린 드래곤 한 마리를 갈아 넣어서 생긴 산이었다.
 
 그런 마나 친화적 생물체를 어디 구할 수도 없고······.
 일반적인 동물들을 죽여 봐야 마나를 얼마나 추출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고, 더군다나 설사 웬만한 양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아무데나 가서 동물들을 학살하는 것도 좀 그랬다.
 지구에서 그나마 마나 순수도가 높은 생물이라면 직접적으로 마나를 운용하는 인간 능력자들.
 그러니까 헌터들이겠지만 칠성은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될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처먹는 걸로 때워볼까?”
 식食마魔 일체.
 연금술로 인해 절반이 마족화된 칠성은 마력을 먹어도 배가차고, 음식을 먹어도 마력이 찼다.
 ‘마석에 비해서야 미미하긴 하지만.’
 음식이라도 잔뜩 먹으면 숨통이 트일 정도의 마나는 쌓을 수 있다.
 늘 비상으로 가지고 다니는 비상 마석을 쓸 거 까진 없다.
 어차피 마법 대전을 할 일도 없으니 그건 아껴두고 처먹는 걸로 버텨보자.
 
 칠성이 그런 결론을 내고 있는데 칠성의 누나가 들어왔다.
 
 “으왕! 칠성아아아아~!”
 잔뜩 술 취한 누나가.
 
 ***
 
 “칠성아아아~!”
 “아!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칠성이 현관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걸어 들어오는 누나를 얼른 달려가서 받았다.
 “에궁 우리 동생~~ 동새앵~~ 누내가 우리 칠성이 을매나 사랑하는데~~어??”
 “알았어, 알았어~~ 으쌰.”
 술주정에 대강대강 맞장구 쳐주며 누나를 누나 방 침대에 눕혔다.
 ‘웬 술을 이렇게 먹었다냐.’
 이러던 누나가 아니었는데.
 오히려 술 먹는 거 되게 싫어하지 않았던가.
 
 누나는 이제 스물여덟.
 이름만 대면 아는 4년제 대학을 나왔다.
 인문계열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공부와 담을 절반쯤 쌓았던 칠성과는 달리 똑똑한 누나는 늘 수재였는데.
 “끙···흑···칠성아···흑······.”
 새롱새롱 잠에 빠질 거 같던 누나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늘 누나는 면접을 보러 갔었더란다.
 본격적인 구직활동도 벌써 몇 년 차.
 다가온 것은 벌써 3차 면접.
 이력서만으로 떨어진 수많은 곳과 면접에서 떨어진 십여 개 기업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정말, 정말 됐다고 생각했단다.
 하아··· 청년 실업이 몇 만이다 몇 만이다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칠선의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그보다, 3차 면접?
 대체 뭐하는 회사기에 면접이 3차까지 있고 거기다 사람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단 말인가?
 도대체 신입사원을 3차까지 면접을 볼게 뭐가 있다고?
 모아두고 장학퀴즈라도 하는 건가?
 칠성은 본인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괜히 심사가 뒤틀렸다.
 
 “누나······.”
 뭐라고 위로의 말을 던져야 할까?
 나 이런 거 잘 못 하는데.
 “누나··· 누나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나도, 나도 잘될 줄 알았어!”
 누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 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스펙도 더 쌓을게 없는데.”
 충격이다.
 칠성은 누나랑 10년 넘게 살았지만 누나가 우는 모습 자체를······.
 적어도 철 든 뒤에는 처음 본다.
 대체 취직이 뭐기에 누나가 이다지도 비참하게 울게 만든단 말인가.
 
 “못생겨서 그런가? 성형을 할까? 나도 코에 뭐 좀 넣고 턱도 깎고 하면······.”
 “누나!”
 칠성은 꼭 신들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누나를 보기가 너무 안쓰러워서 끌어안았다.
 홧김에 하는 소리겠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다.
 못생기다니.
 “누나 이뻐! 이뻐 바보야. 그런 소리를 왜 해, 대체?”
 가슴이 철렁한다.
 칠선이 비록 티브이에 나오는 배우 같은 미녀는 아니지만, 학창시절에 칠성의 친구들도 어떻게 너랑 같은 핏줄이 저렇게 예쁘냐고도 했었다.
 솔직히 사이가 안 좋았던 시기도 있고 칠성이 욕도 많이 했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욕먹을 얼굴은 절대로 아니다.
 어디 강남에서 본 듯한 성형괴물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대체 얼마나 속상하면 저런 소리까지 할까.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아릿하다.
 
 “미안해··· 흐끅··· 누나가 너무 못났다··· 흐끅······.”
 “아니야, 아니야······.”
 “우리 칠성이만 있으면 되는데, 그지? 누나는······.”
 중얼거리면서 칠성의 뺨에 뽀뽀를 하는 칠선.
 이전의 칠성 같으면 뭐하는 짓이냐고 버럭 성질을 냈겠지만 지금은······.
 
 누나는 진을 다 뺐는지 스르륵 침대 위에 몸을 누이고 시체같이 잠에 빠져들었다.
 “휴······.”
 이렇게도 약한 누나 모습은 처음 본다.
 초등학생 때부터 반장, 회장, 뭐뭐······.
 칠성과는 다르게 늘,
 간단하게 말해서 모든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이자,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친구.
 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건드리면 깨질 것만 같은, 아니 이미 잔뜩 금이 간 것 같은 유리잔 같은 누나······.
 칠성은 차라리 자신에게 공부 좀 하라고 땍땍대며 지랄하던 시절의 누나가 그립다.
 누나의 백을 벽에 박아둔 못에 걸어두고,
 겉옷을 대충 벗긴 뒤 이불을 덮어줬다.
 
 “걱정 마라, 누나야.”
 누나는 집의 기둥 같은 존재다.
 뭐라도 해봐야겠다.
 칠성은 누나 뺨에 뽀뽀를 돌려준 뒤에 누나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공무집행 흑마법사』 1-2권에 계속>

댓글(2)

백산수    
뭐랄까 참 애매하네요 글이... 유료부분 몇권까지 봤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킬링타임이라면 볼만, 빅재미 빅몰입 그런건 없음
2016.11.20 11:37
창천낙화    
희로애락은 메말랐는데 성욕은 남아있나보네 ...
2019.02.0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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