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사상 최강의 군주

< 고해 >

2016.11.29 조회 104,061 추천 1,747


 2016년 11월 26일.
 첫눈이 왔고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강추위에도 미쳐버린 이 대한민국에 내 한목소리 전해보고자 광화문으로 모여드는 인파. 100만 중에 나 하나 더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만은.. 억울해서, 울컥울컥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왔다. 스쿠터를 몰고 혼자 무작정 달렸다.
 
 나는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를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고, 저녁에 밥 먹고 누워 뉴스나 보다가 취향에 맞는 드라마나 챙기는 게 삶의 낙이었다. 아! 물론 수확의 기쁨은 있었다. 농부이기에 고생해서 키운 내 자식 같은 곡물들이 무럭무럭 자라 출하할 때의 그 감동이 곧 자부심이 되었다.
 
 비록 일확천금을 벌진 못하지만,
 가끔은 재앙처럼 찾아오는 가뭄이나 태풍 때문에 한해 농사를 모두 망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묵묵히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20여 년을 그렇게 한결같이 부지런하게 말이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화가 치미는 것은.
 
 -하야하라! 하야하라!
 -탄핵! 탄핵!
 
 광화문은 벌써 그 열기가 대단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살아생전에 처음 봤다. 묘하게 뭉클 치미는 감동과 함께 복받치는 자신감. 그리고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힘이 솟구친다. 물론 전부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피켓과 구호들도 있었다.
 
 -이석기를 석방하라!
 -혁명전사들아 일어나라!
 
 문득 하늘을 올려본다.
 지독한 먹구름은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들을 쏟아내고 있었고, 체온은 점차 내려갔다. 식어가는 몸을 데우고자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이제 스쿠터는 인파 때문에 더 전진하지 못한다. 우렁차게 고함치며 한처럼 맺힌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어내려고 애썼다.
 
 “하야하라! 하야하라!”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이토록 짜릿하다니!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리고 목소리는 몇십 년 동안 낸 적 없는 가장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헬조선.
 누가 이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나. 적어도 우리 아버지는 농부였지만 꿈이 있었고, 나 또한 농부지만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여길 보라. 이곳은 지옥인가? 아니면 지옥의 한복판에 떨어진 천사들의 마지막 도피처인가?
 펄럭이는 깃발이 하나 보였다.
 
 「민심이 모이면 천심이 된다!」
 
 또르르..
 이유는 모른다.
 왜 눈물이 떨어지는지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더 크게 소리칩시다! 청와대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하야하라! 하야하라!
 
 바람불면 꺼지는 촛불이라고?
 진정 이 광경을 보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꺼지기는커녕 옮겨붙고 있지 않나? 본래 불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던가.
 소매로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스쿠터에서 뛰어내렸다. 비록 저편에 대열을 이룬 멋들어진 트랙터 무리에 섞이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왔다.
 
 이곳에.
 이 현장에.
 
 “우아아아아아아!”
 우리의 외침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늘이 반응했다.
 
 -콰르르르릉.
 
 번쩍이며 쩍쩍 갈라지는 번개와 그걸 뒤따르는 천둥소리. 점점 더 강해지는 빗줄기! 그러나 아무리 시린 비바람이 불어도 오늘 이곳의 불을 끄지 못할 거다. 촛불 하나. 보잘것없다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내게도 이름은 있다.
 나는 경기도 이천에서 사는 농민. 이문호다.
 
 .
 .
 .
 
 “흐어어어어억!”
 반듯하게 누워있던 남자는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저, 전하?”
 “저어어어언하!”
 주변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기겁하며 목청 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방금 막 깨어난 남자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무 혼란스러워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부에 쫙- 쫙- 돋아난 소름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한이 몸을 벌벌 떨리게 하고 있다.
 
 ‘대체?’
 마치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다. 이말 자체가 웃긴 거다. 영화라니. 그런 단어를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웃기게도 마음속으론 ‘영화라기보다는 초 장편 드라마에 가깝지. 꼭 미드를 며칠 동안 몰아본 느낌이야.’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허허..”
 미드라니..
 
 “저어어어언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아직도 광화문 광장의 피켓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민심은 천심!」
 
 남자는 와락 미간을 좁혔다.
 
 -하야하라! 하야하라!
 
 “저어어어언하!”
 “어의! 어서 옥체를 살펴보시오!”
 “조용 하라! 너희들 때문에 머리가 울린다!”
 “흐읍..”
 “······.”
 주변이 정적으로 바뀌자 남자는 다시 이를 악물고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한 남자의 인생을 통째로 봤다.
 그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무얼 배웠는지까지 전부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한데 묘하게 다르다. 그의 생애를 모두 보았다고 해도 그걸 전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이천에 사는 농민 이문호는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그때 배운 것을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다. 농부로 20년을 살았다. 당연히 쓰지 않는 지식은 잊히고 사용하는 것만 발달한다.
 
 지끈!
 그러다가 더 거슬러 올라가자 그제야 떠오른다.
 ‘나는 분명 산책을 하고 있었거늘..’
 
 그의 입이 작게 열렸다.
 “어찌 된 것이냐.”
 “그것이..”
 “저, 전하께선 벼락에 맞으셨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
 ‘로또를 맞을 확률보다 더 희박한 걸 내가..’
 그런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로또란다. 로또..
 
 “허허허허허..”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웃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감히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고 있는 궁녀들. 그리고 그새 흰머리가 한 줌은 더 는 것 같은 어의.
 그때였다.
 
 -아바마마! 아바마마아아아!
 
 벌컥벌컥 문이 먼 곳에서부터 열리는 소리와 함께 뛰어들어오는 한 녀석.
 “······.”
 남자는 자신의 둘째 아들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둘째는 아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자식이 있었으니까.
 
 “괘, 괜찮으신 겁니까?”
 얼마나 뛰었는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옷매무새가 죄다 흐트러졌다. 예까지 오며 신도 신지 않았는지 발치엔 흙이 가루졌다.
 
 “후..”
 앳된 얼굴.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빛 속의 총명함은 숨길 수 없었다. 유독 기대가 컸던 아이. 그런데 이 아이가 커서 후대에는 빛 광光이 아닌 미칠 광狂으로 조롱거리가 된다.
 ‘광해라..’
 그는 입술을 오므려 쓰게 입맛을 다시다가 근엄하게 말했다.
 
 “전부 나가거라. 쉬고 싶구나.”
 “아, 아바마마?”
 “너도 나가보거라.”
 벼락을 맞았다고 했으니 놀란 아들과 신하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어서!”
 호통이 들리자 움찔하며 물러서기 시작하는 사람들.
 
 “너희들도 나가거라.”
 왕은 절대 혼자 있는 법이 없다. 똥을 쌀 때도, 정사를 나눌 때도 근처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오롯이 홀로 있길 원하고 있다. 도승지와 구석에 앉아있던 궁녀들까지 사라지자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본 것이 미래인가?’
 
 대한민국이라 했다.
 헬조선이라고도 했다.
 그 끔찍한 단어보다 더 비참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에 다한 평가.
 
 조선왕조 최악의 왕.
 시기심 많고 무능력하며,
 희대의..
 “병신..”
 그는 비틀거리며 창틀에 기댔다. 벼락에 맞은 후유증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충격 탓이다.
 어째서, 왜? 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게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에도 어렵다. 꿈이라면, 그 모든 게 거짓이라면 머릿속에 있는 이 방대한 지식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쁘드득.
 그의 어금니가 갈렸다. 나름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치라면 이골이 났다고 스스로 자부했는데..
 “부질없구나.. 허허허..”
 정확하게 말하자면 멍청한 거다. 미련하고 아둔해서 딱 우물 안 개구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이기적이다. 애민이나 애국 따윈 갖다 버리고 내 한 몸, 보신에만 필사적이었던.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파 왔다.
 왜놈들에게 짓밟힌 내 백성들.
 빼앗긴 나라와 비열하고 비굴하게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왕. 그러면서도, 나라를 등지면서도 자신의 안위만 생각했다. 그게 ‘나’란 인간의 미래다.
 다시 절로 씹어대는 어금니.
 그러다가 문득 잇몸에서 통증을 느낀다. 치과에 가야겠군. 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 다시 헛웃음만 터졌다.
 
 “허허.. 미친..”
 치과는 무슨! 여긴 조선 아닌가!
 치과는커녕 타이레놀도 없다.
 
 “······.”
 꿀꺽, 침이 넘어갈 때 그는 머리를 스치는 강렬한 어떤 것을 떠올렸다. 혼란스럽지만, 너무도 복잡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1591년. 11월 말.
 「임진왜란」이 고작 반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오싹오싹 소름이 돋아나고 등줄기가 서늘하다.
 
 “여, 여봐라!”
 그가 버럭 외친다.
 “밖에 누구 없느냐!”
 
 -예. 전하!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드르륵 열리는 문.
 “순신은 어디에 있느냐?”
 버럭버럭 외치는 그의 모습에 내관은 흠칫거렸다. 그러면서 눈만 껌뻑인다.
 
 “순신이가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묻고 있지 않으냐!”
 그야, 전하께서 옥에 가두지 않으셨습니까요?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차마 저 얼굴을 보며 말을 못하겠다. 당장에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왕의 표정.
 
 “죄인 이순신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옥에..”
 내관의 말에 퍼뜩 기억이 떠올랐는지 다시 비틀거리는 그.
 
 죄인이란다. 죄인.
 “허허..”
 너무나 뛰어난 신하. 그리고 질투에 눈이 먼 왕. 그의 머릿속에 다시 광화문의 그 100만 인파가 아스라이 스쳤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 중간중간에 세워진 동상.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왕 세종.
 그리고 전쟁의 신 이순신.
 
 ‘내 손으로 잡아 가두었다.’
 아무도 모르는 부끄러움에 화끈거리는 얼굴.
 
 “가, 가자.”
 “예?”
 “당장 순신이 있는 곳으로 가잔 말이다!”
 “저, 전하!”
 
 그렇다.
 황급히 대전을 빠져나가는 남자.
 그는 조선의 14대 왕. 선조였다.
 
 .
 .
 .
 
 선조는 아주 괴팍하고 선이 분명한 임금이었다. 한번 눈 밖에 나면 절대 보듬는 법 없었고 너무 뛰어난 자도 경계하였다. 특히 비위를 맞출 줄 모르고 한없이 진지한 인물들을 답답해했는데, 이순신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열어라!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정좌하고 있던 이순신은 눈을 떴다. 비록 닷새 동안이었지만 옥이 이처럼 소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갸웃하며 저편을 바라보는 그. 하나, 보이는 것은 횃불이 일렁이며 만들어내는 그림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허어억!”
 그는 벌떡 일어났다.
 
 “저, 전..”
 차마 말도 이어지지 않는다. 저쪽 어귀에 모습을 보이자마자 황급히 달려와 더러운 창틀을 움켜쥐는 남자!
 
 “이보게.”
 선조는 울컥하는 마음에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의 붉어진 눈시울은 그가 지금 이 순간에 얼마나 큰 마음속 파도를 견디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이순신이라는 이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치켜드는 것이 바로 존경과 감사함이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강렬한 경외! 한 나라의 임금이. 조선의 왕이 신하에게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
 
 ‘아니야.’
 안될 건 뭐 있단 말인가?
 왕은 신하를 존경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 건가?
 
 “미안했네..”
 참 많은 말을 오며 생각했으나 정작 나오는 것이라곤 짧다.
 
 “저, 전하..”
 이순신은 엉거주춤하게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나라가 태평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며, 군의 기강을 잡고 병력을 늘려야 한다며 직언했다가 헛소리 말라며 감옥에 갇혔는데.. 저 눈빛은, 저 한없이 따스하고 정직한 눈동자는 뭐란 말인가?
 
 “용서해주게.”
 선조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이순신은 바닥에 철퍼덕 엎드렸다.
 
 “저언하!”
 용서라니! 이게 무슨!
 “거두어 주시옵소서!”
 
 선조의 손이 창틀에서 떨어지며 옥 안으로 들어왔다. 가늘게 떨리는 그의 두 손은 더러운 죄수의 머리를 어루만진다.
 
 움찔.
 그게 죄스러워 물러서려는 이순신.
 혹여 오물이 그분께 닿을까 염려되어 뒤로 도망치려던 그의 몸이 우뚝 멈췄다.
 
 “이리 오게.”
 선조는 지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순신에게 손을 뻗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는데 이순신도 그걸 봤다. 임금이.. 더러운 바닥에 옥체를..
 
 “전.. 하.. 이러지 마시옵소서. 전하..”
 이순신은 기어서 선조에게 다가갔다.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이토록 달콤한 꿈이라면 죽어도 좋으니 영영 깨지 말았으면!
 
 “날 용서해주겠나?”
 “가당치도 않습니다! 용서라니요! 전하!”
 선조는 이순신의 등을 손으로 가볍게 토닥였다. 수년 동안 모질게 대했다. 조선의 보물을 진흙탕에 처박고 낄낄댔다. 이순신의 설움이 등을 타고 왕에게 전해지고, 왕은 그럴수록 미안함에 손끝이 떨렸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끌어안은 두 남자.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잊어주게. 그 모두 내가 모자라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하! 전하께선 훌륭하신 임금이십니다! 어느 누가 전하께 모자라다 합니까!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전하!”
 
 태평성대이긴 하다.
 이때의 조선은 실로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선조가 잘해서 그랬다기보다는 200년 누적된 조선의 문물이 꽃피웠을 뿐이다. 전엔 그걸 몰랐기에 만족했지만 이젠 알기에 가슴이 시렸다.
 ‘그래. 그런 임금이 될 거다. 세종대왕을 넘어서는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것이다.’
 훌륭한 임금.
 지금 이순신이 하는 것처럼 빈말이 아닌, 백성 모두가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왕.
 
 빠드드득.
 다시 광화문이 스쳤다.
 ‘빌어먹을.’
 그리고 이제 안다. 그 성난 100만 인파가 하야하라고 외치던 그 무능한 대통령이 누굴 닮았는지를.
 
 “여봐라!”
 선조가 버럭 외쳤다.
 
 “어서 이걸 열어라!”
 옥은 더럽다. 냄새 또한 아주 고약하고 사방에 쥐똥 천지다. 선조는 이런 곳에 이순신이 1분 1초라도 더 머무는 게 싫었다. 그게 전부 자신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걸 상기할수록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지니까.
 
 “어서!”
 선조의 외침이 옥을 쩌렁쩌렁하게 울려댔다.
 
 .
 .
 .
 
 궁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임금께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도 모자라 그 이후부터 괴상한 행동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찬을 다섯 가지만 들이라고 명하셨습니다요..”
 수라간에서 나오는 부실한 상을 보며 내관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을 통하지 않고 직접 수라간에 기별을 전하신 거다. 지금까진 단 한 번도 없던 일. 게다가 저 상의 수저를 보라. 두벌이다.
 
 “가져가라..”
 “예이..”
 궁녀들은 묘한 분위기를 피부로 체감하며 임금의 처소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한없이 가벼운 상이었지만 발걸음은 더 무겁다.
 
 “허허허! 내가 벼락을 맞았다지 뭔가? 그것도 마른하늘에 말일세!”
 “정말 괜찮으신 것입니까?”
 “괜찮으니 자네 앞에 이렇게 앉아있는 거 아니겠나? 허허헛!”
 “허어! 정녕 하늘이 도왔습니다!”
 그러나 궁녀들은 곧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얼굴이 밝아졌다. 왕이 웃으면 주변도 웃기 때문이었다.
 
 “······.”
 선조는 궁녀들이 들고 온 밥상을 앞에 두고 턱짓을 한다. 맞은 편에 앉은 이순신은 황당하다는 듯 입만 벌리고 있다.
 
 “뭐하나? 들게.”
 “하, 하오나..”
 임금과의 겸상이다. 그것도 어제까지 옥살이하던 남자가 말이다.
 
 “내 자네에게 한가지 간곡하게 부탁을 할 것이 있어 미리 잘 봐달라 청하는 자리니 부담 없이 들게.”
 “아닙니다! 전하! 그저 하명하시옵소서!”
 “계속 불편하게 이럴 건가? 자네가 먹지 않겠다면 나도 안 먹겠네.”
 이순신은 기막힌 듯 얼굴을 들어 선조를 바라보다가 그 고집 어린 표정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는 거다. 저런 얼굴을 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었는지를 말이다.
 선조는 이순신을 잠깐 보다가 궁녀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기미 했으면 너희도 나가서 먹거라.”
 단체로 흠칫 놀라는 궁녀들이다. 왕이 남긴 음식을 먹는 것이 그녀들의 식사.
 
 “오늘부터 너희들은 수라간에서 따로 먹거라. 내, 음식을 남기지 않을 터이니.”
 진상하는 상엔 밥도 적당히. 찬도 최소화하라고 일렀다.
 
 “하, 하오나 전하..”
 궁녀들이 당황해서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선조는 칼같이 잘랐다.
 
 “가서 전하거라. 뭣들 하느냐?”
 후다닥 궁녀들이 나가는 것을 본 이순신의 눈이 흔들렸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전이었다면 ‘궁녀들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심기가 불편하신 걸까?’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의 선조는 입으로 호통을 쳐도 눈은 한없이 자애로웠다.
 
 이순신은 몸을 폈다.
 신하는 왕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설령 그게 법도를 어기는 일이라도.
 조용히 손을 뻗어 숟가락을 쥐는 이순신.
 그걸 보며 선조가 씨익 미소 지었다. 전에는 이런 그의 고지식함이 참으로 짜증 났는데 이젠 안다. 저것이 충정에서 비롯된 것을 말이다.
 
 충정.
 충무공 이순신.
 이 못난 왕에겐 너무도 과분한 사람.
 
 “차린 게 별로 없네.”
 “아닙니다! 정말 진미입니다!”
 뭔들. 뭘 먹어도 맛이라도 느낄까? 선조는 꾸역꾸역 밥을 삼키는 이순신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다. 이건 의식한 게 아니다. 그냥 떠오르는 것들. 불현듯 치미는 잡념. 뭐 그런 것의 일종이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했으면 좋겠군.’
 “······.”
 자기가 떠올리고도 어이가 없는지 동작을 딱 멈추는 선조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아. 아니네. 잠시 옛일이 떠올랐네. 허허. 마저 들게.”
 선조는 밥만 퍼먹는 이순신의 공기에 고기를 한 점 올려주었다.
 
 “······.”
 이번엔 이순신의 팔이 움찔 멈췄다. 모른척하며 슬쩍 입을 여는 선조.
 
 “지금이 태평성대이긴 하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적에겐 황금 같은 기회라고 했었지?”
 “그랬습니다.”
 전엔 불같이 화를 냈던 선조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동의하네.”
 벼락에 맞았다더니.. 이순신은 걱정스런 얼굴로 선조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급사한다고 하지 않던가?
 
 “전하..”
 “그런데 말이네. 그게 내가 하고 싶다고 뚝딱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지.”
 선조는 지금 엄청나게 참고 있었다.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한 이 복장을 전부 벗어버리고도 싶고, 갑갑한 궁의 자질구레한 법도 뜯어버리고 싶었다. 당장 이순신에게 10만의 군사를 주고 왜놈이 쳐들어올 터이니 미리 대비하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고, 미래지식을 이용해 조선을 발전시키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미친놈 취급받을 거다. 재수 없으면 임금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도 생길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강력한 권력을 쥐고 뭘 해도 아래가 따르게 되는 그때까지는. 그리고 그건 두 사람을 얻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자네가 내 칼이 되어주게.”
 선조는 이순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가슴속 차곡차곡 쌓인 모든 진심을 담아 사내의 목소리로 묵직하게 말이다.

작가의 말

판타지는 판타지일뿐.

소설은 소설로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재미를 위해 사건을 재배치하였습니다.

즐감해주세요!

댓글(83)

Lunaty    
재밌어요
2016.11.29 16:54
lp*****    
잘 보고 갑니다
2016.11.29 17:34
숲속광대    
'자네가 내 칼이 되어주게' 보다는 '자네가 내 칼이 되어줘야겠네' 가 더 나을듯요. 병신이였지만 임금입니다. 각성한 임금의 의지가 보여야할듯합니다^^
2016.11.29 18:53
roby    
이번 작품은 기대하고 봅니다!
2016.11.30 00:23
힘내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저 당시도 가능할꺼 같은데요?
2016.11.30 00:41
한가위장터    
선조때 태평성대였다고요? 선조실록에 대기근이 닥쳐 백성들은 인육까지 먹고 시체에도 온전한 살점이붙어있는게 없었다고 하고 일본이 침략하기전에 첩자를보내 민심을 살피니 양반이 백성을 쥐어짜는것이 너무 심해 침략한다해도 오히려 환영받을것이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2016.11.30 01:20
미르틱    
윗글이 맞음 경신 대기근 임진왜란 의 충격이 장난 아니였음. 임진왜란때에는 왜군에 붙은 백성들만 만 단위가 넘어간다고 기록에 적혀있음
2016.11.30 03:55
[탈퇴계정]    
드라마 유령에서 악플단애덜 죽이자나요 근데 소설에서 박통을 깟으니 국정원에서 작가님을 넌 빨갱이야 이석기랑 같이 콩밥먹어라도 소환하면?
2016.11.30 04:22
이충호    
음...잘봤습니다…..
2016.11.30 07:49
호오우    
몇시쯤에또나옴
2016.11.30 08:41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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