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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중악 1권 (1)

2017.01.11 조회 659 추천 2


 *프롤로그
 
 
 
 사내는 추락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잃은 채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남자의 찢어진 옷이 타닥타닥 앙상한 팔뚝과 가슴을 때렸다. ‘투둑’ 소리가 나며 옷이 두 쪽으로 나누어지자, 왼쪽 부분이 먼저 몸을 벗어나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이어서 넝마가 된 나머지 옷도 허공으로 솟구쳤다.
 깡마른 상반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풍이 푹 꺼진 배와 갈비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듯 돌출한 옆구리와 가슴을 훑고 올라갔다. 바람에 휘감긴 기다란 머리카락이 나부끼며 얼굴을 할퀴자, 사내의 속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래쪽에는 회백색 구름이 무리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새하얀 빵 반죽들이 뭉쳐서 떠다니는 것 같은 구름의 바다는 빠르게 다가왔다. 사내는 머리를 아래로 한 자세로 구름층을 통과했다.
 녹색의 땅이 펼쳐졌다.
 커다란 유타 호수와 그 동쪽에 자리 잡은 물의 도시 유타루체, 호수로 흘러들었다가 바다로 흘러가는 명륜강, 그 강 좌우의 평야 지대를 가득 채운 논과 밭, 근처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마을들, 울룩불룩 솟구친 산악 지대, 어렴풋이 운면산맥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암녹색의 바다 계림, 그리고 명륜강이 만나는 남해까지 한눈에 들어오지만, 사내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사내가 눈을 뜬 건, 콩알만 한 유타 호수가 손바닥처럼 커졌을 무렵이었다.
 “아!”
 눈앞을 가득 채워 버린 풍경에 압도당한 사내는 숨이 턱 막혔다.
 본능적으로 팔을 버둥거리는 순간, 공기의 저항을 받아 몸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구름 덮인 하늘, 구름 사이로 강렬한 햇살을 비추는 태양, 생명으로 그득한 대지가 시야를 점령하며 빠르게 회전했다.
 사내는 거칠게 숨을 토해 내며 두 팔, 두 다리를 버둥거렸다. 수십 번이나 몸이 제멋대로 회전한 후에야 기적적으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몸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커서 귀가 아팠다.
 이제 사내는 빠르게 다가오는 지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쳐다봤다.
 물줄기가 초록색 대지 위로 가느다란 실처럼 구불구불 흘러가고, 수박만큼 커진 호수 한쪽에는 오밀조밀한 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 멀리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산맥이 어렴풋이 보였다. 온통 물로 채워진 거대한 바다는 지평선과 맞닿아 선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왜 추락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심지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 꿈일까?
 이렇게나 생생한, 피부를 할퀴고 지나가는 발톱 같은 바람을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땅은 다가오고 있었다.
 조그만 실 같은 물줄기는 범선을 띄울 만큼 커다란 강이었다. 호수는 수도 용금탄을 담가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그는 땅에 처박히는 대신 저 호수 어딘가에 풍덩 빠질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 정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게 물이든, 땅이든 결과는 같을 테니까.
 희망은 단 하나뿐이었다.
 ‘꿈이어야 한다.’
 그는 이미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널 살린 거다
 
 
 
 주설현은 찌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 찌가 움직일까?
 벌써 두 시간째 찌는 해시계의 기둥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구름 사이로 내리꽂히는 한여름의 햇살은 밀짚모자로도 막기 어려울 만큼 강렬했다. 땀 한 방울이 눈썹 사이로 또르르 흘러내렸다.
 소매로 땀을 닦아 낸 후에도 한동안 찌를 노려본 주설현은 과연 여기에 물고기가, 그 값비싼 금룡어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자리를 옮겨야 할까?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그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주설현은 망태 옆에 둔 손때 묻은 두툼한 수첩을 집어 들었다. 어딜 가든지 항상 가지고 다니는 그 수첩을 펼치자 꼼꼼하게 그려진 세밀한 금룡어와 습성에 대한 기록으로 빼곡히 들어찬 부분이 바로 나왔다.
 “분명히 맞는데.”
 시립 도서관에서 본 <진모어류도감>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그 수첩을 훑은 그녀는 다시 찌를 바라보았다. 보통의 어류는 새벽이나 어두컴컴한 밤에 잡히지만, 금룡어는 그 습성이 달랐다. 분명 그 책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
 흑백으로 세밀하게 그려진 금룡어는 두꺼비의 눈, 돼지의 몸통, 미꾸라지의 꼬리를 가진 물고기였다. 한 마리에 무려 50중전에 팔리는 그 물고기는 독특하게도 주행성이며, 꼼지락거리는 지렁이를 좋아할 뿐 아니라, 햇살 좋은 날에는 수면까지 올라와 일광욕을 즐기는 기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주설현은 읽은 책의 내용을 분석하여 금룡어가 반드시 나타날 곳을 선택했고, 바로 이 자리가 그 장소였다.
 왜 금룡어는 나타나지 않을까?
 그때, 찌가 살짝 흔들렸다.
 미풍에 갈대가 휘는 것처럼.
 수첩을 조심스레 내려놓은 주설현은 반사적으로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바늘이 물고기의 입천장에 꽂히는 손맛이 있어야 하는데,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며 물 밖으로 나온 낚싯바늘에는 반쯤 뜯긴 미끼만 달려 있었다.
 힘을 주어 당긴 주설현은 뒤로 넘어졌고, 자그마한 배는 크게 흔들렸다. 허공으로 튀어 오른 수첩이 하마터면 호수로 빠질 뻔했다. 손을 뻗어 그 소중한 수첩을 꽉 움켜쥔 주설현은 숨을 몰아쉬며 중심을 잡았다. 배의 요동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출렁거렸던 수면도 서서히 거울 같은 상태를 회복했다. 호수는 하늘을 담고 있었다.
 주설현은 바늘을 살폈다. 교활한 물고기는 미끼만 뜯고 달아나 버렸다. 한숨을 내쉬며 낚시를 드리웠던 곳을 쳐다본 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다시 배가 흔들렸지만 중심을 잡은 덕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물고기가 수면 바로 아래쪽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금룡어였다!
 주설현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저 비싼 물고기가 달아나 버릴 것 같아서였다. 한편으로는 기뻤다. 어류도감의 내용을 토대로 추측한 곳에 정확히 금룡어가 나타났기 때문에. 노련한 어부조차도 하지 못한 일을 그녀가 해냈기 때문에.
 그놈은 투명한 물 아래쪽에서 또 다른 미끼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힘을 강조했던 아버지를 떠올린 주설현은 입술을 꼭 깨물며 조그만 나무통 뚜껑을 열어 축축한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꺼내어 반으로 잘랐다. 잘려서도 몸을 배배 꼬는 지렁이는 징그러웠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잘 배워 둘걸.’
 아버지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주설현은 삐뚤빼뚤한 바늘에 지렁이를 끼우고 금룡어가 초보 낚시꾼을 조롱하며 기다리는 곳으로 찌를 드리웠다. 신중한 금룡어는 근처를 맴돌 뿐 아직 미끼를 건드리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계속 찌 근처를 돌아다닐 터였다.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 난 절대 안 져.’
 주설현은 찌에 집중하느라 호수의 위험을 잊고 있었다. 처음 조각배를 끌고 방책을 넘어 호수 중앙으로 나왔을 때의 공포마저 망각했다.
 길이 10반(1반은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 대략 50센티미터. 10반은 5미터)에 달하는 물뱀, 꼬리를 휘둘러 웬만한 배는 박살내는 거대한 악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이한 소용돌이로 인해 호수 한가운데는 목숨을 걸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한 마리에 50중전을 호가하는 금룡어는 가난한 자들, 특히 당장 빚을 갚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절박한 사람들을 호수로 불러 모으는 원인이었다. 운이 좋다면 금룡어 몇 마리를 잡아서 급한 불을 끌 수도 있지만 그런 행운은 장난꾸러기 여신이어서 아무에게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의 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악어의 접근을 알아차린 건 황금색의 교활한 물고기였다. 장난스럽게 미끼를 건드리던 금룡어는 즉시 깊은 곳으로 잠수했다.
 맥이 풀인 주설현은 미끼를 바꾸려고 몸을 돌렸다가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다가오는 악어를 발견했다. 커다란 구슬 같은 두 눈이 햇살에 반짝거렸고, 투명한 물 아래쪽에 잠긴 거대한 몸은 거품 하나 내지 않고 유유히 다가오고 있었다.
 주설현은 얼어붙었다. 노를 젓는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주설현은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노를 집어 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항은 하고 죽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아버지를 만나도 떳떳할 것이다.
 “더, 덤벼!”
 공포를 없애려는 본능적인 고함이었다.
 악어가 놀라서 달아나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놈은 입을 쩍 벌렸다. 가지런한 이빨이 햇빛을 반사하여 하얗게 반짝거렸다. 악어는 조각배의 끝자락을 물었고, 너무나 간단히 조각배가 부서졌다.
 배는 세 조각으로 나뉘었다. 주설현은 그중 큰 부분에서 균형을 잡은 채 노를 꽉 쥐고 있었다.
 출렁이는 물의 진동이 발을 타고 무릎과 허리로 올라왔다. 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수첩이 미끄러져 수면을 둥둥 떠다녔지만,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수첩을 가져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수첩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물 아래로 내려가 버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악어 때문에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주설현의 귀에는 헐떡거리는 자신의 숨소리가 가득했다. 심장 뛰는 소리도 귀로 파고들었다.
 빚을 갚아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살리려 했건만, 역시 낚시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세상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리며 주위를 훑어보는 주설현은 차라리 악어가 빨리 나와 끝장을 내 주기를 빌었다. 도저히 이 고요를 참을 수가 없어, 무릎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밀짚모자를 벗어 던졌다. 푸른색이 감도는 새까만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펼쳐지며 허리 근처에서 춤을 췄다. 아버지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을 맞고 싶었다. 아버지는 분명히 그러했을 테니까.
 수면 아래에서 두 개의 별이 나타났다. 반짝이는 별은 무척 예뻤다. 그게 다가오는 악어의 눈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수면을 뚫고 올라온 악어의 정수리를 주설현은 노로 내리쳤다. 단단한 참나무 노는 두 개의 눈 사이를 때리며 둘로 박살 났지만, 악어는 개의치 않고 아가리를 쩍 벌렸다. 가지런히 난 예리한 이빨이 천천히, 그러나 너무도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악어 위로 떨어졌다.
 퍽!
 악어는 그 무엇과 함께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충격에 뒤로 밀려 풍덩 물에 빠진 주설현은 죽을힘을 다해 조금 전까지 딛고 섰던 배의 파편을 향해 헤엄쳐서 겨우 붙잡았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똑똑 떨어졌다.
 팔과 얼굴만 물 밖으로 내민 주설현은 주위를 둘러봤으나 위로 올라갈 만한 나무판자는 찾을 수 없었다. 악어 때문에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그녀는 몰려오는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 일부러 심호흡을 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비법이었다.
 또다시 고요가 수면 위로 내려앉았다.
 숨소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악어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주설현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악어 때문에 호수만 쳐다보았다.
 무언가가 저 아래에서 올라왔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래도 마지막까지 저항하리라 마음먹은 주설현은 수면으로 떠오르는 악어의 형태를 발견했지만, 허연 색깔을 보고서야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악어가 주설현 옆으로 떠올랐다.
 배를 드러낸 자세로.
 깜짝 놀란 주설현은 있는 힘껏 헤엄쳐서 악어와 거리를 띄웠다. 팔과 다리를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자세를 유지한 그녀는 악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용기를 내어 요란하게 물장구를 쳤는데도 악어는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물에 떠 있었다.
 그제야 주설현은 악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발목을 건드렸다. 놀란 그녀는 물을 삼키며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발버둥을 쳐서 그 무언가로부터 빠져나온 주설현은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살폈다.
 사람이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수면을 통과하여 몽롱하면서도 환상적인 푸른빛을 자아내는 물속에서 두 팔을 벌린 채 피를 흘리며 서서히 가라앉는 남자를 본 주설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가 물을 마시고 말았다. 그 때문에 가슴이 뻑적지근했다.
 수면 위로 올라가서 한껏 공기를 들이마신 그녀는 다시 자맥질을 쳐서 물 아래로 내려갔다. 손으로 물을 끌어당기며 남자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시 한 번 입을 열고 물을 마실 뻔했다.
 ‘······잘생겼어.’
 감은 눈의 속눈썹 아래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날렵한 턱선이 이목구비를 완성했다. 사내의 얼굴은 분석 불가능한 매력을 담은 오묘한 도자기 같았다.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동시에 냉혹한 암살자 특유의 철두철미함, 그리고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마저 지니고 있었다.
 주설현은 물장구를 치며 아래로 잠수하여 그 남자를 뒤에서 껴안았다.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자 물 위로 끌고 가기가 한결 쉬웠다. 의식이 없는 남자는 통나무처럼 쉽게 수면으로 올라왔다.
 딱딱한 팔, 차가운 피부, 창백한 얼굴.
 “시, 시체잖아.”
 그제야 주설현은 하늘을 쳐다봤다.
 설마?
 시체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정확히 악어의 정수리로.
 낡은 참나무 노에는 끄떡도 않던 악어를 죽인 건 바로 이 시체였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주설현은 배의 조각 위로 시체를 밀어 올렸다.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힘겨웠지만 이 시체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어디엔가 있을 가족을 찾아 주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좋은 곳에 묻어 주고 싶었다. 그게 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그때, 남자의 새끼손가락이 까딱거렸다.
 “아!”
 주설현은 손을 뻗어 맥박을 짚었다. 미세한 맥박이 느껴졌다. 정상은 아니었다. 의술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가 여기 있었더라도 반송장이라고 했을 터였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주설현은 남자의 가슴을 압박하기 위해 작은 배 조각을 잡고 몸을 올렸다. 조각배의 일부였던 그 나무판자는 사내를 떠받칠 힘이 없었다. 남자의 다리가 허벅지까지 물에 잠기자 주설현은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어쩌지?”
 순간 죽은 악어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20반이나 되는 거대한 놈이었다.
 나무 판자를 악어 옆으로 밀어서 붙인 다음, 주설현은 먼저 악어 몸 위로 기어 올라갔다. 철갑처럼 단단한 몸을 잡고 허연 배 위로 올라가려니 당장이라도 악어가 살아나 그 강력한 이빨로 물어 버릴 것만 같았다. 두려움을 물리치고 악어의 배로 올라간 그녀는 있는 힘껏 남자를 악어의 배 위로 끌어올렸다.
 악어는 두 사람을 태우고도 가라앉지 않았다.
 턱을 당겨 남자의 목구멍을 연 주설현은 앙상한 가슴 위에 깍지 낀 두 손을 올려 규칙적으로 압박했다.
 그다음 차례를 두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올해 스무 살인 그녀는 아직 누구와도 입맞춤을 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느라 또래의 사내에게 눈길을 줄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생애 첫 번째 입맞춤에 대한 기대감은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그런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이런 남자라면······.’
 햇살 아래에서 사내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개를 흔든 주설현이 공기를 한가득 들이마시고는 사내의 입술에 대고 불어 넣으려는데, 사내가 뿜어낸 물이 주설현의 코와 미간을 때렸다. 사내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거칠게 기침을 했고, 이어서 더 많은 물을 토해 냈다.
 뒤로 물러앉은 주설현은 하늘에서 떨어져 대형 악어를 죽인 남자가 살아났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허한 사내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사내는 주설현을 올려다봤다. 주설현은 그 강렬한 눈빛에 가슴이 떨렸다.
 “······내가 널 살린 거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손목과 목을 만져 사내의 상태를 알아낸 주설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쳐서 정신을 잃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주설현은 남자 옆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피곤이 몰려왔고, 목이 말라서 죽을 것만 같았다. 물통은 사라졌다. 악어가 물어뜯은 후미 쪽에 있었으니 무사할 리가 없다.
 아직 햇살은 따가웠다.
 물에 둥둥 떠 있던 밀짚모자에 손을 뻗었던 주설현은 악어 옆에서 악어처럼 배를 보인 채 떠 있는 세 마리의 금룡어를 발견했다. 그녀는 밀짚모자를 그물 삼아 금룡어를 건졌다.
 저 남자가 악어는 물론 금룡어까지 세 마리나 잡은 셈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배가 박살 나 버려 물의 도시 유타루체의 서쪽 방책까지 갈 방법이 없는데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한 번도 웃지 않았던, 웃을 수 없었던 주설현의 마음속 단단한 장벽마저도 이 웃음을 막지는 못했다.
 주설현은 마지막으로 둥둥 떠다니던 수첩을 건져 올렸다. 물에 푹 젖어 버려 그동안 쓴 내용이 번졌지만, 햇볕에 잘 말리면 그 기록을 알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수첩을 물에 빠뜨린 건 절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만, 죽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났기에 조금도 안타깝지 않았다.
 
 
 
 “3백 중전.”
 피혁점 주인 충점이 동그란 안경을 끼고 한참이나 악어가죽을 살핀 후에 내린 평가였다.
 “이렇게 크고 문양이 훌륭한 악어가죽은 최소 천 중전에 팔리지 않나요?”
 주설현은 조심스레 물었다.
 이런 식의 흥정엔 익숙하지 않았다. 흥정은 항상 아버지의 몫이었다. 장사꾼 특유의 교활한 화술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무뚝뚝한 태도로 제값을 받아 내는 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첩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꺼내서 훑어볼 텐데.
 “악어가죽은 고급 구두나 지갑, 가방을 만드는 재료야. 여기 좀 봐. 흠집이 나면 상등품으로 팔 수가 없는데, 그건 너도 잘 알잖아.”
 삼십 년 가까이 가죽을 사고팔았던 충점은 슬쩍 보기만 해도 가격을 후려칠 수 있는 손님인지, 신중하게 상대의 비위를 맞춰 가며 흥정을 해야 하는 고객인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아가씨는 그야말로 초짜 중에 초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아가씨가 다른 피혁점에 들어갔다면 자신이 제시한 가격의 절반도 받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은밀한 사기 행위를 기분 좋은 선행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주설현은 망설였지만 조목조목 악어가죽의 결점을 지적하며 값을 깎는 늙은 주인의 상술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가죽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없으니 반박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운 좋은 줄 알아야 돼.”
 슬그머니 미소를 억누른 충점은 생색까지 냈다.
 가죽을 꼼꼼히 살핀 후에야 충점이 건넨 붉은 돈주머니는 묵직했다. 금화로 그득했던 것이다.
 홍전낭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밖으로 나온 주설현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소매치기를 조심했다. 집에 걸려 있는 빚을 일부라도 갚으려면 절대 이 돈을 잃어서는 안 된다. 목숨 같은 돈이었다. 어쩌면 목숨보다 더 소중할지도 몰랐다.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집으로 돌아온 주설현은 어느새 소문을 듣고 몰려온 빚쟁이들 앞에 섰다.
 숨을 고른 후에 주설현이 내민 홍전낭을 한때는 아버지의 동료였던 남자가 낚아챘다. 입구를 벌려 액수를 확인한 그는 채무액에 비례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주설현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음에도 돈 때문에 안면몰수한 사람들을 쳐다봤다. 인정은 눈곱만큼도 없는 자들이었다. 저들 덕분에 세상이 어떤 곳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 봐야 석 달 치 이자밖에 안 된다는 거 알지?”
 “말씀 안 하셔도 알고 있어요.”
 “네가 어떻게 악어를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행운이 또다시 찾아올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라.”
 “돈 다 받았으면 가 주세요!”
 주설현은 빚쟁이 모두가 듣도록 소리쳤다.
 한 사람만 빼고 다들 골목길로 흩어졌다.
 “집만 넘기면 빚은 내가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럴 생각, 없어요, 유완서 아저씨.”
 딱 부러지게 말하는 주설현.
 “잘 생각해라.”
 눈을 부라린 유완서는 뒷짐을 지고 어두워지는 골목길 너머로 사라졌다.
 주설현은 맥이 풀렸다. 목숨을 걸고 번 돈이 한순간 이자로 나가 버렸다.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사내의 변심에 억울해서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용병단의 일원으로 국경 지대의 충돌에 투입되었을 때, 아버지는 유완서 아저씨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형제처럼 지내 왔는데, 왜 유완서는 갑자기 돌변했을까? 도와주기는커녕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을 빼앗는다고 협박을 할까?
 “주설현.”
 귀에 익은 목소리에 몸을 돌린 주설현은 마치 어둠의 벽을 뚫고 걸어 나오는 것만 같은 사람을 발견했다. 건장한 체구에 비해 가볍고 민첩한 몸놀림이 눈에 띄는 그 남자는 손에 검을 쥔 채 주설현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빠.”
 “이야기 들었다. 큰일 날 뻔했었다며?”
 “응.”
 어릴 때부터 자주 봐서 친오빠 같은 천무혁을 올려다본 주설현은 긴장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왜 혼자 호수로 나갔어? 어려운 일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잖아.”
 “오빠 도움만으로 살 수는 없어.”
 “아무리 그래도, 나 섭섭하다.”
 “미안해.”
 “앞으로는 그러지 마.”
 “근무 중 아니야?”
 주설현은 화제를 바꾸었다.
 “안 그래도 가야 돼, 신참이라서 말이야. 그래도 자주 올 테니까 뭐든 이야기해, 알았지?”
 “그럴게.”
 “또 봐.”
 천무혁은 손을 흔든 후, 달리기 시작했다. 금세 어둠이 그를 삼켰다.
 올해 경비대 공채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천무혁은 수습 기간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여 서부 경비대 찰범과 강단조에 배속되었다. 살인, 강도 등 흉악한 범죄를 담당하는 찰범과에서도 거칠기로 소문난 강단조의 일원이 된 후, 주설현도 천무혁의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주설현은 천무혁이 부러웠다. 번듯한 집안 출신에다 훌륭한 부모님이 계시며, 그 자신도 경비대 수사관으로서 멋지게 출발하여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때 천무혁을 깊이, 진지하게 사내로서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탐무로서의 명성이 유타루체를 진동했을 때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 주설현은 천무혁에 대한 마음을 버렸다.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설현은 한숨을 내쉬며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운치 있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잡초가 웃자라 시간이 나면 손을 봐야 할 이 정원을, 아버지는 무척이나 아끼셨다. 틈만 나면 갖가지 꽃과 약초를 심었는데, 저마다 다른 독특한 이름을 알려 주던 아버지의 얼굴에 은근히 떠오르던 그 열정은 너무나 순수했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왔느냐?”
 그 목소리에 주설현은 재빨리 눈물을 거두고 정원을 가로질러 마루로 올라갔다.
 “그 악귀 같은 놈들은 갔느냐?”
 “네.”
 주설현은 웃을 뻔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등소건이 ‘악귀’를 강조하며 진짜 악귀 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웃기려는 의도를 알기에 주설현은 서러움과 슬픔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 세상에는 유완서 같은 사람만 있지 않다.
 “저 남자, 누구냐?”
 “그게 좀 복잡해요.”
 주설현은 하늘에서 떨어져 악어를 죽인 은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차마 진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꼬치꼬치 캐묻기 좋아하는 등소건보다 한발 앞서 질문을 던졌다.
 “어때요?”
 “몸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푹 쉬면 괜찮을 게다. 그래도 내일 저녁은 되어야 깨어날 수 있을 게다. 그보다, 50년이나 몸 고치는 잡다한 기술로 먹고살면서 본 몸 중에서 최악이야. 얼굴만 완벽해.”
 “그렇게 많이 다쳤나요?”
 철렁 가슴이 내려앉은 주설현의 목소리에 염려가 담겨 있었다.
 “다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몸이라는 뜻이야. 체질적으로, 선천적으로 몹쓸 몸을 가진 게지. 뭐, 다 자기 복이니까.”
 “그래요?”
 주설현은 속으로 안도했다.
 “푹 쉬면 몸은 괜찮아질 거다. 문제는 여기야.”
 등소건은 주름진 손으로 관자놀이를 탁탁 두드렸다.
 “머리에 문제가 있어요?”
 주설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음, 맥을 짚어 보니 정신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뭐, 깨어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그래요?”
 악어에게 공격을 당했을 그때, 주설현은 살아남을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그러니 저 방에 누워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남자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다면, 평생 돌봐야 할지도 몰랐다. 주설현은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중요한 물건인지 손에 꼭 쥐고 있더구나.”
 등소건이 내민 주름진 손바닥 위에 정교하지만 그리 귀중품은 아닌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이, 이건?”
 목걸이를 보자마자 주설현은 목을 더듬었다. 역시,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준 그 목걸이가 없었다.
 “설마?”
 “맞아요, 제 거예요.”
 손을 뻗어 늙은 의사의 손바닥에 놓인 목걸이를 집어 올린 주설현은 자기 이름이 새겨진 뒷부분을 보여 주었다.
 “허, 손버릇이 나쁜 놈이었군.”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뭐든 꽉 쥐고 싶었겠죠.”
 “그럴지도 모르지.”
 등소건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주설현은 두 손으로 그 목걸이를 잡고 목 뒤로 돌려 하나로 연결시켰다. 악어가죽과 고기를 파느라 목걸이가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등소건이 갑자기 손을 뻗어 주설현의 손목을 잡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무시 못 할 힘이 깃들어 있었다.
 “가만히 있어라. 공짜로 진맥해 주는 거니까.”
 “어르신.”
 “너도 마음이 문제야. 저놈처럼 심각하진 않지만. 생각이 많으면 몸이 상해.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잘 챙겨 먹어라.”
 “그럴게요.”
 나오지 말라고 손을 흔든 등소건은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을 가로질러 문을 열고 사라졌다.
 혼자 남은 주설현은 그 어떤 날보다 길었던 하루를 떠올리며 마루에 누웠다.
 서까래 옆에 거미줄이 묘한 각도로 설치되어 멍청한 벌레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빗자루를 가져와 거미줄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보다, 왠지 자신이야말로 저런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 같은 신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앞섰다.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석 달은 이자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 다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탐무로서 돈을 벌지 못하면 빚쟁이가 몰려올 테고, 최악의 경우 이 집이 몰수되고 말 터였다. 추억이 깃든 집을 잃을 바에야 차라리 불을 붙이고 집과 함께 타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 수첩!”
 깜박 잊고 있었다.
 망태를 넣어 둔 창고로 달려간 주설현은 부풀어 오른 수첩을 가져왔다. 조심스레 소 힘줄을 꼬아서 만든 줄을 풀어 한 장씩 확인하며 마루에 펼쳤다.
 아버지가 직접 종이, 힘줄 따위를 사 와서 딸에게 만들어 준 그 수첩에는 상등품의 종이가 사용되어 한참이나 물에 젖어 있는데도 찢어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기록이 흐릿해지거나 글자가 번져 알아보기 어려울 뿐이었다.
 아버지가 시체가 되어 유타루체로 돌아오기 전의 기록도 거기 있었다. 일부러 꾹꾹 눌러 왔던 슬픔의 감정이 그 수첩을 펼치는 동안 고조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엉엉 울음을 터트리려는 순간,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이.”
 화들짝 놀란 주설현은 상체를 급히 일으키다 옆구리가 결려 신음을 흘렸다.
 그 남자가 옆에 앉아 있었다.
 두 발로 쭈그려 앉아 있는데도 왠지 모를 기품이 흘렀다. 섣불리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은, 그렇게 만드는 듯한 분위기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어디에 있더라도 결코 흩어지지 않을 여유 같은 게 그에게서 느껴졌다.
 붕대를 감은 상체는 앙상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행히 바지는 입고 있었다.
 “놀랐잖아요.”
 주설현은 남자의 맨몸을, 무엇보다 얼굴을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저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질 것만 같았다.
 “배고프다. 먹을 거 없나?”
 그런 질문을 예상 못 한 주설현은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저쪽이 부엌이지?”
 남자는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어깨를 잡아서 일으킨 것처럼 기이하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으로 일어서더니 코로 냄새를 맡아 부엌으로 향했다.
 주설현이 따라가려 했으나 갈비뼈 근처가 아파서 주저앉고 말았다.
 남자는 반쯤 썩은 사과, 푸른색 곰팡이가 자리 잡은 딱딱한 빵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버리려다가 깜박 잊은 상한 우유를 찾아내어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부엌으로 들어선 주설현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개도 먹지 않을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남자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남자에게서 사과, 빵, 우유를 빼앗았다.
 남자는 사납게 노려봤다.
 살기가 느껴지는 시선에 주설현은 뒤로 물러섰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이런 쓰레기를 먹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 덕분에 슬픔은 쑥 들어가 버려 그 흔적도 남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먹을 걸 만들어 드릴게요.”
 “빨리.”
 주설현은 남자의 시선을 느끼며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호숫가에서 잡히는 조그만 생선으로 담근 생선젓, 담백한 나물 무침, 향신료를 넣은 돼지고기구이를 올리자 제법 괜찮은 저녁상이 완성되었다.
 주설현은 남자를 마루로 데려갔고, 남자는 상이 오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며칠이나 굶어서 허겁지겁 먹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동작에서 세련된 느낌이 흘러나와 주설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귀족일까?
 남자는 금세 다 먹어 치웠다.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주설현은 남자를 꼼꼼히 살폈다.
 짧게 깎은 풀처럼 수염이 턱에 듬성듬성 나 있는데, 대략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러나 면도를 말끔히 한다면 10대 후반으로도 보일 법한 얼굴이었다. 매끄럽고 하얀 피부 때문이었다.
 이목구비는 무게감 있게 정돈되어 우아한 귀족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유분방한 용병의 거친 인상을 머금고 있었다. 검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조그만 동작에도 부드럽게 흔들렸고, 꽉 다문 입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을 고집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얼굴에 비하면 몸은, 등소건의 말처럼 엉망이었다.
 “저는 주설현이라고 해요.”
 주설현은 자기가 먼저 이름을 밝히면 상대도 이름을 밝히리라 예상했다.
 “맛있었다.”
 “고마워요.”
 “다음엔 더 맛있는 걸로.”
 “네? 아, 그럴게요.”
 당황한 주설현을 마루에 남긴 사내는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고, 곧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주설현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일부러 크게 말했지만, 사내는 이미 숙면에 든 후였다.
 
 
 
 정원을 덮은 안개.
 낡은 석등과 무화과나무가 낮고 천천히 흐르는 안개 위로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내는 문득 등대를 떠올렸다.
 외딴섬이나 항구 입구에 세워져 강렬한 빛을 뿌림으로써 오가는 배에게 안전한 항로를 알려 주는 등대가 불쑥 기억난다면 혹시 바닷가에서 살았을까? 왠지 모르게 바다 특유의 짠 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스름이 걷히는 중이었다. 점차 밝아 오는 하늘로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면 저 안개는 금세 사라지고 말리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역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더 웃긴 건, 이런 상황인데도 별로 걱정스럽다거나 고민에 몰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그런가 보다 정도였다. 그래도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질 때마다 그 고민이 문득 떠오르곤 했다.
 휘어진 낫을 닮은 꽃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겸’이라 불리는 꽃으로 늦은 가을에 열릴 조그맣고 단단한 씨앗을 모아다가 짜낸 기름은 특히 만 5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효능을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름다운 낫이라는 의미의 저 꽃은 ‘축명화’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남쪽 지방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전설에 등장하는 반신 축명이 불사의 존재이자 완전한 신인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는 데 사용한 낫과 닮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부자 아버지를 둔 덕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여유롭게 평생을 꽃과 나무에 쏟은 미치광이 학자에 따르면, 축명화의 뿌리, 그러니까 땅 아래쪽은 성인 남자의 성기와 쏙 빼닮았는데, 그게 바로 축명의 아버지 동표의 성기였다. 물론 그 뿌리를 동표근이라 명명한 그 학자의 이색적인 발표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저 꽃의 이름, 특징, 용도, 이름의 유래까지 알고 있을까?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이 상황은 절대 정상적이지 않았다.
 “어?”
 마루에 비스듬히 누워 정원을 쳐다보던 그는 몸을 일으켜 정원 쪽으로 걸어갔다.
 야생화라서 집 정원에 두고 키우기가 까다로울 뿐 그리 큰 특징은 없다고 판단했던 그 가겸 혹은 축명화의 꽃잎에 깨알 같은 점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점에는 가느다란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 멀리서 봐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변형이었다. 사내는 손을 뻗어 나팔꽃처럼 통으로 된 꽃잎을 살짝 튕겼다.
 은은한 소리가 귀로 스며들었다.
 “오호.”
 평범한 가겸이 아니었다. 상당히 정교한 방식으로 꽃의 특징을 바꿔 놓은 것이다. 누가 이토록 탁월하면서도 교묘한 재배 기술을 가졌을까? 반년 전에 죽었다는 이 집의 주인일까?
 쓰임새 있는 평범한 화초를 진귀하고 값진 식물로 바꾸는 방법에 마법이 빠질 수는 없다. 오직 마법만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맺힌 열매에서 난 씨앗을 심어도 여전히 귀중한 화초가 자라게 만든다.
 사내는 날카로운 눈으로 정원을 둘러봤다. 그를 에워싼 크고 작은 잡초 같은 것들에서 하나둘씩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지식에 의하면, 이 정원에 있는 식물은 그 어느 것도 평범하지 않았다.
 봉오리가 살짝 벌어진 가겸 한 송이를 꺾어 코로 가져와 냄새를 맡았다. 시원하면서도 부드럽고, 약간은 달콤한 향이 코로 스며들었다. 추출하는 법을 알아낼 수 있다면 향수의 원료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이 향을 그대로 담는 비법을 알아낸다면 용금탄에 득시글거리는 허영 덩어리들에게 팔아 돈을 긁어모을 수도 있으리라.
 그때, 가겸 줄기 하나가 스스로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사내의 팔을 스쳤다. 그는 뒤로 껑충 물러섰지만 이미 늦었다. 팔뚝에 너댓 개의 가시가 박혀 있었다.
 즉시 팔이 뻣뻣해졌다.
 곧 마비는 어깨를 통해 상반신 전체로 퍼져 나갔다. 두어 걸음 채 내딛기도 전에 그는 쓰러졌다.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축축한 흙 사이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뾰족한 돌멩이가 뒤통수를 뚫고 단단한 두개골에 제대로 흠집을 냈을지도 몰랐다.
 기괴한 방향으로 개량된 가겸의 독은 사내에게서 오감을 앗아 갔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정신의 공간에서 그는 공포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평소엔 신경 쓰지도 않는 낮고 규칙적인 숨소리, 심장의 박동,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음 따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런 소리가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누구든 극심한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댈 터였다. 그 강렬한 감정에 휘둘려 정신을 잃기 직전, 사내는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맞아, 처음이 아니야······.’
 그는 그 생각을 붙잡고 버텼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힘을 다했다.
 결국 감각이 서서히 돌아왔다.
 촉각이 가장 빨랐다. 본능적으로 공기를 마시고 내뱉는 코와 입 주변의 축축한 흙 느낌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이어서 담장 너머로 칼이나 낫 따위를 갈아 준다는 늙은이의 고함이 귀로 파고들었다. 미각과 시각은 거의 동시에 회복되었다.
 천천히 손가락 끝을 움직여 봤다. 처음엔 뻣뻣하고 둔했지만 곧 손가락은 마디마디 부드럽게, 원하는 대로 꺾였다. 물론 새끼손가락 하나 움직일 무렵,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몸을 일으켜 앉을 즈음에는 지쳐서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비틀거리며 일어섰을 때는 현기증으로 시야가 비틀리기까지 했다.
 겨우 마루까지 걸어가서 주저앉았다.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정원을, 특히 그 무서운 화초를 노려보았다. 분명히 가겸은 스스로 움직였다. 곤충 따위를 먹어치우는 특이한 식물 중에는 기이한 방식으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들이 꽤 있지만, 가겸은 그런 식물이 아니었다.
 잘못 봤을까?
 아니다.
 바람이 불었을까? 안개조차 흐르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데, 바람이 불었다? 절대, 아니다.
 사내는 오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너무나 평온해서 지루하기까지 할 것 같았던 정원은 이제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기괴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적어도 그에겐 그랬다.
 평소처럼 자신만만한 그였다면 당장 정원으로 가서 확인을 했겠지만, 가겸의 독에 제대로 당해 쓰러지기까지 했던 몸은 그 고통을 잊지 않았다. 사실 확인을 위해 견딜 만한 아픔의 한계를 뛰어넘은 통증이었다.
 사내는 우물가로 가서 물을 길러 얼굴을 씻었다. 살 것 같았다. 얇은 재질의 상의를 벗어 쥐어짜자 땀이 뚝뚝 떨어졌다. 대충 물에 담갔다가 짜서 우물가 감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다.
 다시 마루로 와서 앉은 그는 조금 전에 벌어진 그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감각을 빼앗겼을 때의 그 익숙한 느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방을 외간 남자에게 내 주고 서재의 긴 의자에서 새우잠으로 잠을 설친 주설현이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왔다.
 “어이.”
 “누구? 아!”
 주설현은 상체를 드러낸 사내를 보고는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곧 어제 벌어진 일을 기억해 냈다.
 “배고프다.”
 말이 없는 주설현.
 어깨를 으쓱인 사내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제야 주설현이 먼저 가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품을 하고 눈곱을 떼면서.
 정원으로 돌아간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며 조그만 꽃, 잡초처럼 보이는 다양한 약초, 덤불 안쪽에 숨겨진 통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버섯 들을 살피고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물론 정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 정원을 가득 채운 풀, 꽃, 교목, 관목 모두 그 이름과 특징, 약재로 사용할 때의 주의 사항 따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다가도 잎을 쓰다듬거나 각도를 달리해서 쳐다보면 갑자기 그 꽃 혹은 풀, 나무와 관련된 지식이 머릿속에서 콸콸 흘러나왔다.
 마루로 걸어간 사내는 기억을 잃기 전에 약재상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약초를 다루는 전문 상인이라면 저런 풀과 나무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사내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생각이 없었다.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식물 관련 지식이 쏟아지는 걸 보면, 오래지 않아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음식이 나왔고 남자는 어제처럼 말도 없이 먹어 치웠다.
 주설현은 맞은편에 앉았다.
 하품을 겨우 참으면서.
 피곤은 곧 물러갔다.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있는데도 마치 어른거리는 아지랑이 너머에 있는 것처럼 신비로운 기운을 퍼트리고 있었다. 조그만 얼굴, 가늘고 긴 팔과 다리 때문일까? 어쩌면 너무 잘생겨서 비현실적인지도 몰랐다.
 “이름이 뭐예요?”
 “어제보다 맛없다.”
 자기도 모르게 눈에 힘을 준 주설현. 눈을 뜨자마자 공들여 음식을 만들었건만.
 생김새와 동작에서 느껴지는 세련미와 달리, 성격은 체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저 몸처럼 엉망진창임에 분명했다. 주설현은 충격으로 사내의 머리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등소건의 말을 떠올렸다. 혹시 성격도 그 충격으로 이리 변했을까?
 사내는 맛없다면서도 그릇을 싹싹 비웠다.
 “어제, 기억나요?”
 주설현은 말 붙이기도 싫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최대한 기분 좋은 어조로 물었다.
 “신선한 과일 없나?”
 주설현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내뱉다니!
 “과일.”
 맡겨 둔 물건 찾는 것처럼 내놓으라는 눈빛과 말투.
 “기다려요.”
 한숨을 내쉰 주설현은 조끼를 걸치고 시장으로 나가 일찍 나온 노파로부터 싱싱한 사과 몇 알을 사서 돌아왔다.
 사내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떠받친 자세로 옆으로 누워서 이제는 안개가 사라져 명암이 선명해진 정원을 감상하고 있었다.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주설현은 생각했다.
 “여기 있어요.”
 주설현이 사과를 내려놓자, 사내는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불쑥 내밀어 사과 하나를 집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듣기만 해도 사과를 먹고 싶어질 만한 상큼한 소리를 내며 크게 사과를 베어 문 사내는 우적우적 씹었다. 허기가 동한 주설현도 사과 한 알을 먹기 시작했다.
 “이름, 기억이 안나.”
 사내는 무화과나무 옆에 우뚝 솟은 감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덜 익은 감을 성질 급한 까치 한 마리가 쪼고 있었다.
 “정말요?”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사내는 주설현을 보며 슬쩍 웃었다.
 그 매력적인 웃음을 보자 주설현은 사내의 무례한 행동을 다 잊어버렸다. 마치 그 사내만 보이고 주변의 모든 것, 마루와 기둥, 벽과 정원 따위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사내가 사과의 씨앗까지 씹어 먹은 후에야 주설현은 정신을 차렸다.
 “그, 그러면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네요?”
 “맞아.”
 사내는 고개를 돌려 이제 막 날아온 또 한 마리의 까치를 살펴봤다. 세상에 같은 까치는 없다. 사람의 눈에 비슷해 보일 뿐.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면서도 그는 두 마리의 까치를 구분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고, 깃털의 색깔과 상처 자국 등을 통하여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
 주설현은 이 잘생긴 사내에게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거짓말은 아닌 듯한데,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곧 그 이유를 알았다.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는 상황인데도 저리 여유롭다는 점 때문이었다. 불안으로 눈빛이 흔들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아닌가?
 “내가 널 살린 거, 알지?”
 사내는 다시 주설현을 쳐다봤다.
 “당연하죠.”
 “그럼, 당분간 여기 있어도 되겠군. 내가 누군지 알아낼 때까지만.”
 “그, 그래요.”
 주설현은 낯선 남자, 자기 이름도 모르는 수상쩍은 남자와 단둘이 한집에서 지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제대로 당황하고 말았다. 혹시 저 남자가 밤에 살금살금 서재로 들어오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 걱정 마. 그쪽은 내 관심 밖이니까. 오히려 내게 달려들지나 마. 그러면 돼.”
 사내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주설현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수치와 분노를 억누르느라 거친 숨을 한참이나 내쉬었다.
 
 
 
 *내가 도와줄까?
 
 
 
 신문은 읽을 만했다.
 수청보에서 하루에 한 번 발행하는 그 얇은 종이에는 사내의 뇌를 자극할 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신문 왼쪽 상단에 자리 잡은 ‘제국력 1606년’이라는 내용을 읽는 순간, 사내의 머릿속으로 용령 제국을 통치했던 역대 황제들의 이름과 즉위 연도, 통치 시기에 벌어진 굵직한 사건 목록, 암살 독살 자연사 등 무덤으로 들어가는 방식까지 포함한 상당량의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떠올랐다.
 소위 ‘망인의 변’, 또는 ‘망인의 난’으로 불리는 대재앙 이후 열다섯 번이나 황위의 주인이 바뀌었으며, 자잘한 전투를 제외하고도 네 번이나 대규모 내전이 벌어졌다는 사실 또한 공기 방울이 수면으로 떠오르듯 자연스럽게 기억이 났다.
 현 황제는 열일곱 살의 소년으로 맹진국 변방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가 정치적 압력에 의해 용금탄에 와서 황위에 올랐고, 무능한 황제를 대신하여 세 명의 공작이 섭정을 맡았다는 사실 또한 사내는 이 순간에야 알아차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적절한 자극이 주어지면 그에 맞는 꾸러미가 머릿속 깊은 곳에서 펼쳐져 거기 담긴 지식이 풀려나서 저절로 알게 되는 느낌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이런 방식으로 사내는 빠르게 외부 세계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아니, 알았던 내용을 기억해 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눈에 띄었고, 그 관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수청보를 발행하는 사람이 어떤 기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어떤 기자를 왜 꺼려하는지도 알아냈고, 종이를 엄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놓고 살살 문지르는 단순한 행동을 통해 종이의 품질이 고르지 않으며, 누군가 신문 용지와 관련해서 돈을 착복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끔찍한 두통이 번개처럼 머리 깊숙한 곳으로 내리박히는 순간, 사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신문을 구겼다.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눈을 감은 채 마루에 앉아 있는 사내 옆으로 주설현이 다가왔다. 인기척이 느껴졌을 텐데도 아무 말이 없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본 그녀는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준 수첩과는 비교할 수 없이 허접스러운 수첩이었지만 그녀에겐 갖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공책이었다.
 사내가 계속 눈을 감고 있자, 주설현은 흑필을 꺼내고 수첩을 펼쳤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저 사내가 집에 온 이후, 수첩을 꺼내고 펼쳐서 거기에 무언가를 적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났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처음으로 이 집에 남자가 머물고 있기 때문에 찾아온 일종의 위로 때문인지도 몰랐다.
 쓸쓸한 감정, 허탈한 기분,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적고 나자 침묵이 더 짙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설현은 입을 열었다. 뭐든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딱히 의도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고자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사내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뭐?”
 사내의 눈이 가늘어져 노골적인 경멸을 드러냈다. 눈빛으로 사람의 마음에 구멍을 낼 수도 있는 강렬한 시선이었다. 얼굴 전체로 그 격렬한 감정을 쏟아 내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요?”
 기가 죽은 주설현.
 “가죽을 벗겨 주는 대가로 악어를 통째로 넘겼다는 거냐?”
 이제 사내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난 것 같은 눈빛이었다.
 “가, 가죽 벗기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이제야 사내가 왜 화를 내는지 깨달은 주설현이 더듬거리며 설명했지만, 이 변명은 주설현의 부탁을 받고 생색을 내며 가죽을 벗겨 준 정육점 주인이 한 말이었다.
 사내는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흔든 그는 주설현을 노려봤다.
 “옷, 가져와.”
 “네?”
 “입을 만한 옷. 이런 꼴로 밖에 나갈 수는 없잖아.”
 “알았어요.”
 방으로 들어간 주설현은 옷장의 문을 열고 아버지의 옷을 꺼내어 사내에게로 가져갔다. 아마포로 만든 여름용 옷 고하, 유하였다. 고하는 황갈색인데 반해 윗도리 유하는 회백색이어서 색깔이 맞지 않지만, 그나마 겨우 고른 옷이었다.
 “내가 선호하는 복식은 아니지만, 뭐 지금은 급하니까.”
 사내는 옷을 입고 마루를 내려와 안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구두에 발을 집어넣었다. 발 크기에 딱 맞는지 사내는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정원을 돌아다녔다. 새 신발을 사서 신이 난 아이처럼.
 주설현은 예상치 못한 그 행동에 아버지의 신발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가는 사내를 따라나섰다.
 일찍부터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도시의 성문을 통과하여 논과 밭으로 일을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제 주설현이 했던 것처럼 호수로 나가 그물을 던지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가죽 상인, 포목점 주인, 이발사 등이 영업을 위해 준비 중이었다.
 “가죽을 벗겨 준 그 망할 백정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뭘 하려구요?”
 “제값을 받아 내야지.”
 “네?”
 “어서.”
 “아, 네.”
 사내의 기세에 눌린 주설현은 수레를 끄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정육점으로 향했다. 사내는 천천히 걷는데도 종종걸음을 치는 주설현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가끔 지나치는 젊은 여자들이 사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 소곤거리자 주설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저토록 잘생긴 사내와 함께 걷고 있음이 주는 기이한 감정이었다.
 정육점은 문을 연 상태였다.
 “저기냐?”
 “네. 근데, 이럴 필요는 없······.”
 “넌 여기 있어라.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사내는 주설현의 정수리에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어지럽힌 후에 몸을 돌려서 죽은 동물이 가죽이 벗겨진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살벌한 분위기의 정육점 안으로 들어섰다.
 인기척을 느낀 정육점 주인 육문척이 들고 있는 손도끼를 옆에 내려놓고 피 묻은 손을 더러운 헝겊으로 닦으며 다가왔다. 벽에는 다양한 크기의 도끼와 칼 수십 개가 매달려 있었다. 피부가 벗겨진 짐승의 붉은 몸과 도끼, 칼로 인해 살벌한 분위기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육문척은 손님을 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분명히 남잔데, 웬만한 여자보다 더 예뻤다.
 잠시 후에야 그는 입을 열 수 있었다.
 “오늘은 악어 고기가 끝내줍니다.”
 “악어?”
 사내는 빙긋 웃었다.
 아무리 잘생겨도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 그 환상에서 벗어나기 마련인데, 사내의 목소리를 들은 육문척은 저 목소리가 오히려 사내를 완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부러웠다. 못생겼다고, 아니 아예 생긴 적이 없다는 놀림을 받으면서 살아왔기에 단 하루라도 저 사내의 얼굴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가늘고 찢어진 눈, 넓고 커다란 턱, 필요 이상으로 큰 입술, 주먹처럼 생긴 코는 너무나 자유분방했다.
 허름한 옷차림이지만 절대 천박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한 육문척은 대량의 고기를 구입할 손님이라고 판단해서 두툼한 손을 비볐다. 나름대로 발전시킨 아부의 자세였다.
 “기가 막힙니다. 이런 악어 고기는 만나기 어려울 겝니다. 손님도 악어가 클수록 고기의 질이 좋다는 사실을 아실 테지요. 저기 걸어 둔 악어의 대가리를 보십시오. 이 짓을 한 지 십년이 넘었는데, 저렇게 큰 악어는 처음 봤습니다. 손님은 오늘 운이 좋으신 겁니다.”
 육문척은 달변이었고, 스스로 말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근에 얼마죠?”
 “상등품이니 못 받아도 3중전은 받아야 합니다.”
 “저 커다란 악어는 몇 근이나 되죠?”
 “하하, 고기가 많이 필요하신 모양이군요. 충분합니다. 가죽, 뼈와 내장, 먹기 어려운 부위를 제외하고도 천 근은 될 겝니다.”
 “천근이라, 그러면 3천 중전, 3백 마전이겠네요?”
 “그렇습지요.”
 육문척은 오랜만에 거액의 돈을 벌 기회라고 생각하며 헤벌쭉 웃었지만, 사내로부터 웃음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어제 멍청한 여자가 가죽을 벗겨 주는 대가로 저 악어를 당신에게 넘겼지?”
 “그런데요.”
 육문척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내가 그 여자 오빠야. 내가 저 악어를 잡은 당사자고. 내 여동생은 바보처럼 공짜로 넘겼지만 난 아니야. 자, 이제 내가 왜 아침 일찍 찾아왔는지 알겠지?”
 육문척은 당황하기는커녕 한숨을 내쉬며 일부러 손도끼를 잡았다. 위협용이었다. 보통은 이런 식의 자세를 취하면 표정이 달라진다. 그러면 협상을 하더라도 이쪽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내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안을 내놓았다.
 “손질한 대가로 일 할, 판매를 맡는 대가로 이 할을 주지.”
 “말 몇 마디로 2천 백 중전을 꿀꺽 삼키시겠다?”
 육문척은 손도끼를 빙글빙글 돌렸고, 윙윙 소리가 위협적으로 정육점 내부를 가득 채웠다.
 혀를 찬 사내는 미끄러지듯 다가와 겁도 없이 회전하는 손도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육문척은 날마다 예리하게 갈아 놓는 도끼에 손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러섰다. 정육업의 동업조합인 참방의 규율은 엄격해서 도끼로 손을 잘랐다면 당장 면허가 취소되고, 법적인 처벌을 받을 뿐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유타루체에서 추방당할지도 몰랐다. 벌써 두 번이나 경고를 받은 입장이어서 육문척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질 대가로 일 할, 판매 대가로 일 할.”
 사내는 조건을 내렸다.
 “너, 뭐야?”
 “싫다면 이 길로 참방의 방주를 찾아가서 진실을 알리는 수밖에. 벌써 한 번, 아니, 두 번이나 규율을 어겼으니 더 이상 도끼를 휘두르고 살 수 없겠네? 이걸 어쩌지? 원무황단에서도 그 성질을 못 죽여서 쫓겨났는데, 참방에서도 쫓겨나면 당신이 갈 곳은 어딜까?”
 깜짝 놀란 육문척은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그 돌처럼 단단한 머리로 생각해 봐. 평생 걸려도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그보다, 결정이나 해. 꿀꺽 삼켰다가 쫓겨날지, 아니면 소화할 수 있을 양에 만족할지.”
 육문척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알겠소.”
 시장 바닥에서 고기를 팔면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재주는 좋은 고기를 알아보는 안목도, 고기를 다루는 능력도 아니었다. 사람을 간파하여 위험한지, 위험하다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게 불가능하면 언제 어디서 비명횡사로 삶을 마감할지 알 수가 없는 곳이 바로 도시의 밑바닥 삶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선금으로 받고 싶지만, 그쪽 입장도 있으니 팔리는 대로 돈을 가져와. 그 멍청한 여자 집은 알고 있겠지?”
 “주설현에게 오빠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육문척은 소용이 없음을 알았지만 괜히 퉁을 놓았다.
 “궁금하면 집으로 찾아와서 확인하든가.”
 사내는 육문척마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환한 미소를 보여 준 후에 정육점을 빠져나갔다.
 주설현의 안내를 받은 사내는 피혁점으로 쳐들어가 천 중전을 더 받아 냈다. 이번에는 수표였다. 피혁점 밖으로 나온 사내가 건넨 수표를 들여다본 주설현은 깜짝 놀랐다. 이 정도 액수라면 원금도 일부는 갚을 수 있을 터였다.
 “어떻게 했어요?”
 “설득.”
 뒷짐을 진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던 사내가 말했다. 여자들은 대부분 사내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설마요.”
 “차분하게 설득하면 세상에서 바꾸지 못할 일은 없어. 그보다, 배고프다. 맛있는 것 좀 먹자.”
 “알았어요.”
 주설현은 시장의 직인이 찍힌 수표가 혹시 가짜가 아닌지 살피며 사내를 그녀 자신도 딱 한 번 가 봤던 고급 음식점 ‘비육고’로 데려갔다.
 구운 양고기에 양파를 곁들인 요리를 사내가 먹는데도 주설현은 한동안 수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식사 중인 여자들이 힐끔힐끔 사내를 쳐다본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고기만 골라서 먹어 치운 사내는 손을 뻗어 주설현이 쥐고 있던 수표를 낚아챘다.
 “뭐예요?”
 “뭐라니?”
 사내는 자연스럽게 그 수표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걸 왜 당신 주머니에 넣어요?”
 “내 거니까.”
 “네?”
 주설현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네가 말을 꺼냈으니 간단히 정리를 하자. 아니지, 그보다, 난 사과부터 받아야겠다.”
 “사과라니요?”
 슬슬 화가 나는 주설현.
 “악어, 누가 잡았지?”
 “그야······.”
 주설현은 말문이 막혔다. 따지고 보면 하늘에서 떨어진 눈앞의 사내가 악어를 죽였다.
 “넌 왜 내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악어를 팔아 치웠지? 그따위 싼 가격에 말이야. 혹시 내가 골골거리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래서 악어는 네 거라고 생각한 건가?”
 “마, 말도 안 돼요.”
 주설현은 펄쩍 뛰었지만 그런 오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에 뺨이 붉게 변했다.
 “시세보다 비싸게 팔았다면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는데, 넌 멍청하게도 거의 공짜에 가까운 돈을 받고 고기와 가죽을 넘겼어. 그런데도 사과를 하지 않겠다? 이거, 참 대단한 아가씨로군.”
 사내는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미안해요. 하지만 사정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사정이 급하면 사람을 때려죽여도 괜찮다는 건가? 옆구리 찔러 절 받기지만, 그 사과, 받아들이지. 그러니 내 몫에 손댈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난 다 먹었으니까 천천히 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니까 걱정 말고.”
 사내는 주위 여자들의 이목을 끌며 요리점 밖으로 나갔다. 계산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주설현은 식은 고기 요리를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의 말은 논리적이었고,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리 화가 가라앉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일까?
 이야기 속 왕자님처럼 잘생긴 완벽한 남자라면 자기 몫을 챙기는 대신, 불쌍한 여자의 편에 서리라고?
 그때,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든 주설현은 몸매를 강조하는 값비싼 옷을 입은 여자를 발견했다. 20대 중반의 도도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는 걷기 불편할 정도의 높은 굽의 구두를 신어서인지 키가 꽤 커 보였다. 사슴 가죽에 붉은 용을 수놓은 그 구두는 3백 중전에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최상품으로 치장한 그 여자가 주설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
 “네?”
 주설현은 여자의 화려한 외모에 주눅이 들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 남자, 그쪽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이런 말, 듣기 거북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들어 두는 게 좋아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란 말이 있죠? 오늘의 경험, 당신처럼 평범한, 아니 평범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겐 두고두고 약이 될 거예요. 앞으로는 그런 남자, 만나지 말아요.”
 주설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쪽 계산은 내가 할게요.”
 지갑을 옆구리에 낀 여자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손톱을 드러내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주설현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무렵, 이 우아한 여자는 계산을 끝내고 음식점 밖으로 나가 대기하던 마차에 올라탔고 마차는 즉시 출발했다. 주설현에겐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린 주설현은 주위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시선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헤어지자는 남자에게 매달리다가 냉정하게 거절당한 여자에게나 던져질 법한 동정심 가득한 눈빛이 사방에서 날아와 자신에게 꽂히고 있었다.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래 봐야 소용이 없음은 그녀도 잘 알았다. 구차하다는 인상만 남길 것이다.
 주설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요리점 밖으로 나왔다. 남자가 냉정하다는 말보다는 여자가 분수를 몰라서 저런 꼴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귀를 자극했지만, 주설현은 애를 쓴 끝에 겨우 참을 수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간 후에야 주설현은 숨을 몰아쉬었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할까? 어찌나 화가 나는지 음식점으로 돌아가서 한바탕 욕을 퍼붓고 싶었다.
 물론 실행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게 그 남자 때문이었다.
 
 
 
 사해경은 대율혁 광장으로 들어섰다.
 중앙으로 기울어져 비가 오면 중심부에 꽤 커다란 웅덩이가 생기는 광장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양산을 든 하인 덕분에 시원한 그늘에서 왕군을 두거나 차가운 감실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귀족가의 젊은이들이 제법 많았다. 이 광장은 유달리 서늘해서 지체 높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었다.
 사뿐사뿐 가볍게 그들 사이를 걸어간 사해경은 광장 중앙에 우뚝 선 동상 앞에 멈췄다. 거대한 검을 두 손으로 움켜쥔 청동 재질의 사내는 짙은 눈썹에 힘을 준 채 남서쪽, 즉 황궁이 들어선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제3차 내전을 극적으로 종식시킨 맹장 대율혁이었다.
 당시 황제는 대율혁의 활약에 힘입어 폐위될 뻔한 위기를 겨우 넘겼는데, 일단 위험이 지나가자 돌변한 황제와 시기에 능한 신하들 때문에 대율혁은 바로 이 광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교수형으로.
 그가 알기로 이 광장에는 공식적인 이름이 따로 있었다.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그 이름 대신, 사람들은 ‘대율혁’이라는 역적의 이름으로 광장을 불렀다. 그뿐 아니라, 십시일반 돈을 거두어 누가 봐도 대율혁을 닮은 동상을 광장 중앙에 세웠다. 이 무례한 짓거리를 보고서도 황제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백성의 마음을 거슬렸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임무를 확인하러 광장 뒤편에 자리 잡은 광삭주로 갈 때면 사해경은 대율혁의 동상 앞에 서서 한동안 비참하게 삶을 마친 사내의 흔적을 올려다보았다. 일종의 의식이었다. 이번 임무도 반드시 성공하여 거액을 벌겠다는 다짐이자 저런 식으로 죽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의 시간이었다.
 동그란 혁구가 굴러와 구두코를 건드렸다.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로 물들인 마직 여름옷에 공작의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각반을 찬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혁구를 달라고 소리쳤다. 부탁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운 건방진 고함이었다.
 빙긋 웃은 사해경은 혁구를 내려다봤다. 보통 아이들이 돼지 오줌보로 만든 혁구를 차고 논다면, 저기 있는 아이들은 수낭, 즉 수룡의 물주머니로 만든 값비싼 혁구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볍게,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구두의 안쪽 부분으로 혁구를 차는 척하며, 사해경은 왼손으로 슬쩍 조끼 안쪽에 밀어넣은 부찰비를 꺼냈다.
 “어이쿠, 나도 다 늙었다.”
 사해경이 혁구를 밟아 앞으로 넘어지자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부찰비로 혁구를 정교하게 잘라 버린 사해경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두 손으로 혁구를 잡아 아이들에게 던졌다.
 아이들은 처음 본 사해경을 바보, 멍청이라고 놀리며 다시 혁구 놀이에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사해경이 광장을 벗어날 무렵 그 비싼, 백 년 동안 아무리 세게 걷어차도 찢어질 염려가 없다다던 혁구는 둘로 갈라졌다.
 깔끔하게.
 “동심을 짓밟다니, 최악이구먼. 뭐, 저런 놈들에게 동심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말이네.”
 머리가 허연 노인이 다가와 있었다.
 “단주님이 어떻게?”
 사해경은 깜짝 놀랐다. 기척도 없이 다가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로 먹고살기 시작한 이후, 그 누구의 은밀한 접근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건만, 단주는 그 위에 있었다.
 “자네를 보려고 왔지.”
 “특별한 일이 있군요?”
 “자넨 너무 여유가 없어. 같이 좀 걷지.”
 단주는 뒷짐을 진 채 어두컴컴하고 축축해서 보통 사람은 잘 다니지 않는 음침한 골목길로 향했다.
 사해경은 잠자코 그를 따랐다. 그쪽은 수도 용금탄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비대도 웬만해서는 들어가지 않는 구역이었다. 물론 유명한 암살 조직 삭폐를 건드릴 대담한 놈은 없겠지만, 가끔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못 보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다.
 단주는 버려진 탑으로 들어섰다. 꼬불꼬불 나선형 계단을 딛고 올라가는 단주의 호흡은 가만히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여인처럼 고르고 평온했다. 사해경도 그런 식으로 숨을 쉬려고 했지만, 어느새 몰아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탑 꼭대기에 오르자 용금탄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금빛의 황궁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고, 그 너머로 용금산의 능선이 멀리까지 파도처럼 굽이치고 있었다. 봉우리에 걸린 먹구름을 본 사해경은 밤늦게 비가 내릴 거라고 생각했다.
 “유타루체에 가 줘야겠네.”
 “물의 도시로 말입니까?”
 “맞아,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돼, 이건 삭폐와는 관계없는 거니까. 개인적인 의뢰랄까?”
 현역에서 은퇴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늙은 암살자가 웃자 세월이 새겨 놓은 주름살이 일제히 당겨져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 냈다. 사해경은 인자하고 따뜻한 할아버지의 표정 너머에 냉혹한 암살자의 본능이 숨 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전 조건만 맞으면 합니다.”
 “맞아, 그래서 내가 자넬 좋아해. 선금으로 1만 중전, 임무를 완수하면 2만 중전이네.”
 “······제법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라네.”
 “그런 돈을 앞에 두고 물러설 수는 없죠. 자, 누굴 죽여야 합니까?”
 사해경은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다. 아무리 심장이 튼튼한 자라도 삭폐의 단주 옆에 있으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늙은이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자네가 직접 찾아야 하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죽여야 할 자는 유타루체에 있네. 최근, 그러니까 최근에 갑자기 유타루체에 나타난 자로 기억을 잃어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놈일세. 아, 범상치 않은 놈이니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걸세.”
 사해경은 가만히 있었다. 이런 의뢰는 처음이었다. 암살은 기본적으로 목표물이 확정되어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누굴 죽여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암살은 도박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 배, 어떤가?”
 단주가 말했다.
 거절하려던 사해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늙은이는 날 잘 알아. 돈만 주면 뭐든 다 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뭐, 까다롭더라도 하는 수밖에.’
 “임무의 성공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걸 가지고 가게.”
 단주는 어느새 손에 올려놓은 수정구를 내밀었다. 주로 고위 마법사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마탑에 비치해 놓고 공적으로 이용하는 수정구를 본 사해경은 이번 임무가 위험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죽여야 할 놈은 마법사인지도 모른다.
 “죽여야 할 놈을 죽였다면, 수정구가 진동할 걸세. 그러면 자넨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당장 떠나게.”
 “급한 일입니까?”
 “일 처리는 빠를수록 좋지. 자네가 아끼는 화룡 해염이 지금쯤 비행할 준비가 끝났을 테니, 자네만 짐을 싸면 될 걸세.”
 “아, 네.”
 사해경은 1만 중전을 들여 암시장에서 화룡의 알을 구입했고, 그 알 속의 생명체가 중간에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며, 운까지 따라 준 결과, 알을 깨고 나온 조그맣고 붉은 용을 사룡으로 삼을 수 있었다. 몸집이 그리 크지 않는 쾌룡이지만 등록까지 마친 그 용에게 해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게 5년 전의 일이었다.
 조직이 그 일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단주의 입을 통해 용의 이름을 듣자 사해경은 기분이 이상했다.
 탑을 빠져나와 단주와 헤어진 사해경은 숙소에 들르지 않고 용금탄 북동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용군장으로 향했다.
 단주 말대로 해염의 비행 준비는 끝나 있었다. 오랜만에 주인을 본 해염의 눈동자는 맑고 또렷했다.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다는 듯 날개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해경은 해염 곁으로 가서 뜨거운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물의 도시로 갈 거야. 불의 도시 방염루체라면 더 좋았겠지만.”
 해염은 입을 벌리고 맹금과 맹수의 울음이 섞인 기괴한 소리를 토해 냈다. 그래도 좋다는 뜻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른바 전문가라는 작자들은 위대한 종족이 사라진 후 용은 소나 돼지처럼 멍청한 가축이라고 단언하지만, 직접 알에서 깬 순간부터 지금까지 해염을 돌본 사해경은 용이 사람처럼 똑똑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소나 돼지, 심지어 개나 고양이보다는 월등히 영리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잘 먹였습니까?”
 “염려 말게. 신선한 소 등심으로다가 푸짐하게 먹였으니까.”
 용군장 소속 사육사 공규가 말했다. 머리카락이 갑자기 빠지는 게 고민인 공규는 사해경이 일 때문에 바쁠 때 해염을 맡아서 보살피면서 사해경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있었다. 사룡으로 등록이 된 용은 용군장에서 머물 수 있기에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사해경은 해염 옆으로 가서 직접 사슬과 가죽의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사육사를 비롯해 용군장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쳤겠지만, 용의 소유주처럼 꼼꼼할 수는 없다는 게 사해경의 생각이었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조종복으로 갈아입은 사해경은 걸쇠를 해염의 몸을 덮은 쇠사슬에 결합시켰다. 갑작스러운 돌풍 따위로 해염의 몸이 흔들려도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준비는 끝이 났다.
 “이번엔 어디로 가나?”
 공규였다.
 “남쪽으로 갑니다.”
 “날이 더운데, 고생하겠군. 잘 다녀오게.”
 “네.”
 높이는 사람 키의 세 배에 이르고, 길이는 여섯 배나 되는 해염의 등으로 올라간 사해경은 비행 허가가 떨어지기를 잠시 기다렸다. 삭폐가 매달 용군장에게 상납하는 뇌물 때문인지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깃발 신호가 보이자, 공규 옆에 서 있던 감독관이 해염의 목을 묶은 족쇄를 닮은 사슬을 풀어 주었다.
 “자, 올라가자!”
 사해경은 이 순간이 좋았다.
 해염은 날개를 활짝 편 채 굵고 탄력 있는 다리로 땅을 박차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로 진통제로 쓰이는 연서환 서너 개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목구멍으로 넘긴 사내는 발로 문을 차서 열었다. 철문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쿵 바위에 부딪치고 다시 돌아와 닫힐 때, 그는 재빠르게 문턱을 넘어와 어슬렁거리며 정원 쪽으로 걸어갔다.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사내는 이쪽을 노려보던 주설현이 마치 그런 적 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잡아떼고 여유롭게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내는 잠시 거기 서서 팔짱을 낀 채 주설현을 살폈다. 저 여자, 신기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몸이 말하고 있었다.
 사내는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를 가져와 주설현 앞에 놓고 앉았다. 주설현은 말없이 빨래를 털어 줄에 걸 뿐이었다.
 “기분이 나빠서 아예 말을 하지 않으시겠다?”
 사내는 웃고 있었다.
 주설현은 일부러 사내 쪽으로 조그만 물방울이 튀도록 옷을 거칠게 털었지만, 예상한 반응을 얻어 내지는 못했다. 사내는 오히려 눈을 지그시 감고 안개 같은 물방울 세례를 즐기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그녀는 빨래통을 들고 옆으로 옮겨 갔다.
 사내는 의자를 엉덩이에 붙인 채 게처럼 옆으로 걸어 주설현 옆에 앉았다.
 “평소 입고 돌아다니는 촌스러운 꼴을 보면 치장하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빚 때문이지? 그쪽 아버지가 죽기 전에 빚을 많이 진 모양이야, 그렇지?”
 주설현은 털다 만 옷을 손에 든 채 사내를 쳐다봤다.
 “기억 잃은 거, 맞아요?”
 “내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여?”
 “내가 기억을 잃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억부터, 자기가 누군지부터 되찾으려고 애를 쓸 거예요. 쓸데없는 짓에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그 젖은 옷을 펴서 줄에 걸고 떨어지지 않도록 대나무로 만든 간단한 집게를 옷 양쪽에 집었다.
 “오호, 한 방 먹었는걸.”
 사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주설현이 돌돌 말린 바지를 꺼내어 허리 쪽을 잡고 세게 털자 팡팡 소리가 나며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햇살에 노출된 물방울들이 만든 선명한 무지개가 예쁘게 나타났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 주설현은 빨래를 널고, 사내는 그런 주설현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빨래통이 비었다.
 오늘 해야 할 집안일을 끝마친 주설현이 외출 준비를 하자 마루로 와서 비스듬히 누워 정원을 감상하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가 봐야 소용없어.”
 “······뭐라구요?”
 “공증소 가는 거잖아.”
 주설현의 입가가 비틀렸고, 입술이 꿈틀거렸지만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사내는 몸을 일으켰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관계도 죽어 버려. 빚쟁이가 죽어 버리면 빚을 갚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래도 가 봐야겠다면 이것 하나만 명심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미안하게 만들어야 해. 그게 최선이야. 아버지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짤막한 이야기를 흘리면 더 좋겠지. 그러고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아예 포기하는 게 좋아.”
 “어떻게 알았어요?”
 “뻔하니까.”
 “충고는 고맙지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괜히 참견하지 말아요.”
 “제대로 알아서 한다면야,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지.”
 잠시 사내를 노려본 주설현은 필요한 서류를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온갖 계약과 서류 문제로 공증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찍 가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돈이 부족해도 지나가던 마차를 세워서 탔다.
 혼자 집에 남은 사내는 연서환 하나를 입에 넣고 침으로 녹였다. 혀로, 입천장으로 약재의 향과 맛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제정신이라면 삼켜 버려야 정상인 그 연서환의 지독한 냄새와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독한 맛을 사내는 이용하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까?”
 사내가 말했다.
 이미 늦은 말이었다.
 왜 주설현 앞에서는 이 말이 나오지 않을까?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내부에서 무언가가 충돌하고 있었다.
 주설현을 돕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이 부딪힐 때마다 골치가 아팠다. 어쩌면 이 해결이 어려운 문제 때문에 계속 진통제인 연서환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지도 몰랐다.
 상이한 두 마음을 하나로 합칠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된다.
 그때, 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주설현이 돌아왔을까? 이 멋진 계획을 알려 줄까? 아니, 그 평범한 여자는 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계획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낯선 여자들이 철문을 열고 안으로, 정원 쪽으로 걸어왔다. 세 사람이었다.
 사내는 실눈을 뜬 채 그 여자들을 뜯어보았다.
 가운데 있는, 겉으로는 수수해 보이면서도 실상은 굉장히 비싼 옷과 구두, 가방 덕분에 기품이 담긴 맵시를 자랑하는 여자가 대장이었다.
 남의 집에 들어오는데도 저런 당당함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아무리 격의 없이 지내는 친구의 집이라고 해도 친구가 있는지도 모르는 집에 들어갈 때면 양옆의 여자들처럼 조금은 쭈뼛거리는 게 정상이니까.
 오른쪽의 여자는 재력이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사람 같았다. 양손 합쳐서 다섯 개나 되는 반지를 끼고, 손목에는 다채로운 색깔의 보석들이 박힌 팔찌를 차고, 목에는 비싼 목걸이를 걸고,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구두를 신은 채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가방을 들고 마루에 드러누워 하품을 하는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왼쪽 여자는 좀 달랐다. 주눅이 든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우월감을 숨긴 듯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옆에 있는 두 여자에 비하면 형편없는, 싸구려라고 해도 될 만한 정장을 입고 있었음에도 하녀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은밀히 두 여자를 경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내는 몸을 일으켜 앉았고, 그때쯤 세 여자는 독특하면서도 값비싼 향수 냄새를 풍기며 다가와 섰다.
 “소문이 사실이네요.”
 가운데 여자가 말했다.
 사내는 멀뚱멀뚱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을 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주설현, 어디 갔어요?”
 인상을 찌푸린 그 여자가 물었다. 짜증이 배어나는 말투였다.
 사내는 빙긋 웃으며 질문을 던진 여자를 무시하고 왼쪽 여자를 올려다봤다.
 “힘들지?”
 연인을 향한 속삭임처럼 달콤한 목소리였다.
 “······뭐라구요?”
 왼쪽 여자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같이 온 여자들을 힐끔거렸다.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무식한 여자들 비위 맞추는 거, 무지무지 힘든 일이잖아.”
 그 말에 왼쪽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두 여자는 얼굴을 살짝 구긴 채 허리에 손을 올리며 설명을 요구했다. 정신을 차린 왼쪽 여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고 변명을 대었지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나중에 얘기하자.”
 낮고 위엄 있게 왼쪽 여자를 향해 속삭인 가운데 여자가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봤다.
 “우린 주설현 친구예요. 주설현과 관련된 안 좋은 소문이 돌기에 확인하러 왔는데, 사실이었네요. 이렇게 외간 남자를 뻔뻔하게 집에 둘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친구? 농담이지?”
 사내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사내의 행동 하나하나가 가운데 여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그 부분을 숨기려 했으나, 사내는 마치 유리창을 들여다보듯 여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고, 더 건드리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었다.
 “농담이라니요?”
 “친구라는 거.”
 “친구, 맞아요.”
 오른쪽에 있던 여자, 돈으로 몸을 뒤덮은 여자가 끼어들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나? 하룻밤 사이에? 그게 아니라면 당신들은 친구가 아니야. 아, 그쪽은 좀 다르군.”
 사내는 왼쪽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여기 오는 거, 내키지 않았지? 아, 맞아. 약속이 있다고 핑계를 댔지만, 저기 저 여자가 막무가내로 끌고 왔지? 그렇지? 오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협박이라도 한 건가? 역시, 그렇군.”
 왼쪽 여자와 가운데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보았다. 벌어진 입, 갑자기 바빠진 호흡. 둘 다 사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름이 뭐지?”
 사내는 비싼 가방을 마루에 내려놓고 가방에 흠집이 나지 않나 힐끔거리는 오른쪽 여자에게 물었다.
 “······상희기예요.”
 갑작스런 질문에 상희기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쪽은?”
 사내는 왼쪽 여자를 바라보았다.
 “문호란이에요.”
 가운데 있던 여자, 진소연은 이제 자기에게 이름을 물어볼 차례라는 사실을 알고 한 번은 튕긴 다음에야 이름을 알려 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무엇이든 지배하고 통제하기 좋아하는 여자의 욕구를 채워 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상희기, 문호란, 잘 들어. 난 주설현의 오빠야. 비록 이번에 처음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난 오빠야. 가족이라는 거지. 반년 전에 죽은 그 꼰대는 날 버리고 주설현을 택했지만, 난 원망 같은 건 안 해. 손해 보는 짓이거든. 그래도 난 가족으로서 혼자 버둥대는 동생을 위해 여기로 온 거야. 그러니까 이상한 소문을 듣지도 말고, 그 소문을 부풀려서 말하지도 마.”
 “알았어요.”
 상희기, 문호란은 거의 동시에, 조금은 넋이 빠진 듯 대답했다.
 “배다른 오빠라고? 그걸 믿으라고?”
 가운데 여자 진소연이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아버지가 군인인가? 계급이 높은?”
 진소연의 눈이 반짝거렸지만 입술이 살짝 비틀리며 조소를 머금었다. 사내는 그 표정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아하, 군인이 아니라 경비대야. 그렇지?”
 진소연의 눈이 커졌다.
 “당신처럼 오만할 수 있으려면 굉장한 아버지가 필요해. 경비대장이나 부대장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아, 그렇군. 부대장이야. 그렇지? 경비대 부대장이 아버지라, 그렇다면 사람을 깔보는 시선도 괜찮고 그렇게 건방져도 돼. 그럴 자격은 충분하니까.”
 “······어떻게 알았죠?”
 진소연뿐 아니라 상희기, 문호란 역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갑자기 가슴 안쪽에서 걷잡을 수 없는 짜증이 솟구쳤던 것이다. 이 격렬한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심호흡이 필요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왜 이런 여자들과 말을 섞어야 하는지, 왜 설명을 해야 하는지 그로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 만에 눈을 뜬 사내는 여전히 궁금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들을 노려보았다.
 “꺼져.”
 여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곧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셋 다 뒷걸음질 쳤다. 눈앞의 사내가 무서웠던 것이다.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 오금이 저려 서 있을 수 없었다. 거기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다.
 상희기는 가추망이 자신 있게 내놓은 가방을 손에 꽉 잡고 물러서다가 공포에 질려 오줌을 찔끔 싸고 말았고, 문호란은 돌에 걸려 넘어졌다가 즉시 일어섰으며, 진소연은 몸이 떨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세 여자는 사내가 고개를 돌린 순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순간, 앞을 다투어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저 여자들, 뭐야?”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마루에 누웠다.
 
 
 
 “방법이 없구나.”
 겉으로만 애석해하는 저 가식적인 얼굴.
 주설현은 순간 진절머리가 나서 버럭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공문서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공증소를 찾아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시청이 인정하는 자격증을 따낸 공증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반응을 그녀는 상상해 봤다. 재수가 없거나 능력이 부족한 그녀를 향한 동정심 그득한, 혹은 비웃음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곁눈질할 사람들을 생각하자 도저히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렇게나 큰돈을 빌리실 분이 아니에요.”
 “나도 안다. 한데, 계약서가 있잖니.”
 아버지의 친구였던, 아니 아버지의 친구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한성배가 손가락으로 서류를 가리켰다. 하도 만져서 이리저리 구겨진 그 서류는 마법이 걸려 있어 위조, 변조가 불가능한 계약서였다.
 “한 번만 더 이 계약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벌써 세 번이나 했단다.”
 “한 번만 더요. 부탁드려요.”
 “알았다.”
 한성배는 인상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심사 신청서를 작성하던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물었다.
 “누구냐?”
 “네?”
 “아무리 구석에 몰렸다고 해도 낯선 남자를 집에 들이다니, 너답지 않구나.”
 “아, 그 사람요?”
 “정말이냐? 실망스럽구나. 요즘 여자 아이들이 문란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만, 네가 이럴 줄은 몰랐다.”
 콧등에 걸쳐 있던 동그란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든 한성배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그런 거, 아니에요.”
 속이 상한 주설현의 목소리가 커지자 근처에 있던 공증인과 그 앞에 앉아 상담을 받던 사람들이 눈에 힘을 주고 주설현을 노려봤다. 그 시선들은 공증소에는 속삭이는 소리 외에는 절대적 침묵이 있어야 한다고 말없이 외치는 것 같았다.
 “아니라니? 그렇다면 그 소문이 맞는 거냐?”
 “무슨 소문요?”
 “형우 그 친구의 아들이라는 소문.”
 “네?”
 “다른 여자에게서 얻은 아들.”
 “말도 안 돼요. 아저씨도 아버지를 잘 아시잖아요.”
 주설현은 웃음을 터트렸고, 다시 한 번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은 후에야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누구냐?”
 서명할 부분을 주설현 쪽으로 향하며 신청서를 건넨 한성배는 낮게 속삭였지만, 그 말투에는 추궁하는 듯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
 주설현은 손에 든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사실대로 말할까?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가끔 아버지와 술을 마시던 저 아저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십중팔구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 것이다.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리라.
 그렇다고 소문을 인정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엄마 말고 다른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았다? 해가 서쪽에서 뜰지언정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절 구하려다 다친 사람이에요. 전 그저 도움을 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머리가 이상하다면서?”
 “네? 아, 네.”
 주설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남자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낸 적은 없었다. 등소건 할아버지도 여기저기 말을 퍼트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소문을 통해 들었을 리는 없다. 직접 등소건을 찾아가서 묻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인데.
 “소문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구나. 널 도와준 그 남자가 백정과 가죽장이에게서 제법 큰돈을 뜯어냈다던데, 맞냐?”
 한성배는 무심한 척 물었지만, 예민해진 주설현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사람이 그 사내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얼굴을 내비쳤을 뿐, 한 번도 개인적으로 찾아온 적이 없었던 지난 반년의 시간과는 다른 태도였다.
 “뜯어낸 게 아니라, 정당한 거래를 한 거예요. 여기 서명하면 되는 거죠?”
 주설현은 심사 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한성배에게 돌려주었다. 볼일이 끝났으니 가져온 서류를 챙겨서 일어나려는데, 평소와 달리 한성배가 말을 걸었다.
 “주가탐무를 다시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저 혼자서는 무리예요.”
 “그 남자가 도와준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 아, 그 남자의 이름이 뭔지 알고 싶구나. 너와 함께 지낸다면 나도 알아 둬야 하지 않겠느냐?”
 주설현은 한성배에게서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그 사내의 이름을 알아내려는 괴이한 열정 같았다.
 “저도 몰라요.”
 “몰라?”
 “네.”
 “장난하는 거냐?”
 “진심이에요.”
 그 말에 한성배를 가면을 벗어 던졌다. 친구의 딸을 상대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아니라, 냉혹하고 실리에 밝은 공증인 특유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 재미있구나. 벌써 며칠째 같이 지내는데, 이름도 모른다? 나를 아주 바보로 생각한 모양이구나. 이번 심사 신청서는 내가 봐 주마. 다음엔 다른 공증인을 찾아보도록 해라. 세상사는 게 만만치 않음을 너도 알아야 하니까.”
 주설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한성배는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당황한 주설현은 한성배를 따라갈 수도 없었다. 한성배 없이 계약서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그녀도 잘 알았다. 그렇다고 그 남자가 기억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한성배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괜찮을 거야. 아저씨는 아버지 친구니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주설현은 햇살이 밝은 공증소 밖으로 나왔다. 더위가 훅 달려들었다. 냉기를 뿜어내는 마법진이 바닥과 벽, 천장 곳곳에 설치된 공증소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름의 열기에 그녀는 더 답답해졌다.
 주설현은 자기도 모르게 동쪽 성문으로 걷고 있었다. 성문 밖으로 나가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악중악 (1)
 
 
 
 “당신이 형우 그 친구의 아들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완서는 갑자기 사무실로 찾아와 주설현의 채무 관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남자가 지껄인 말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면서 두툼한 손으로 턱에 난 수염을 어루만졌다.
 이미 소문을 통해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주형우를 너무도 잘 알기에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손님용 의자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저 남자는 지나치게 잘생겼다. 주형우의 아들일 리가 없다.
 “이거참 재미있군요. 한데, 자네가 형우의 아들이라는 증거, 있나?”
 유완서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증거가 있어야 합니까?”
 사내가 되물었다.
 “누구보다 그 친구를 잘 아는 내가 보기에 자넨 전혀 닮지 않았어. 그리고 형우 그 친구는 어디 가서 딴 집 살림을 차릴 사람이 아니야. 내가 잘 알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총명하셨던 아버님도 자신이 죽은 후 반년도 못 되어 친구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딸을 내쫓고 집을 차지하는 일에 앞장서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요.”
 뺨에서 경련이 일었다. 유완서는 일부러 손을 들어 뺨을 비볐다.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둘도 없는 친구의 배신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래도 유완서 앞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직접 들으니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배신은 배신이니까.
 “원금과 이자를 합친다면 10만 중전쯤 될 걸세.”
 “제법 많군요.”
 “그 친구가 왜 급전이 필요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네. 하지만 거래는 거래니까.”
 그 말을 머릿속에 새겨 넣은 사내는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갔다. 유완서로부터 확인할 부분이 있었다.
 “집에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무슨 소린가?”
 “빚쟁이들을 만나 봤는데, 유독 집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리를 들어서요.”
 “헛소리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평정심이 깨졌고, 사내는 그 순간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유완서라는 남자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집이라는 사실이 간단히 드러났다. 사내는 정원이 독특할 뿐 건물 자체는 매우 평범한 그 집에 왜 유완서가 집착할까 생각해 보았다. 혹시 거기에 보물이라도 묻혀 있을까?
 “약속이 있네.”
 유완서가 일어나며 말했다. 시간이 다 됐다는 뜻이었다.
 사내는 몸을 일으켜 입구로 향하다가 몸을 돌려 창가로 가서 바깥을 내려다보는 유완서를 바라보았다.
 “제가 여기 온 이상, 그 집, 포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유완서가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담하고 결정이 빠르며 무엇보다 투지가 넘치는 모습이 주형우와 비슷했다.
 “그 친구와 닮은 것 같기도 하군.”
 “그런가요?”
 유가탐무 밖으로 나온 사내는 매판대로 걸어가 감실주 한 그릇을 샀다. 커다란 잎을 말아서 만든 일회용 그릇에 그득 담긴 차가운 과일 음료 한 모금을 마시자 한낮의 더위에도 살 것 같았다. 그 매판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오가는 마차를 쳐다보는데, 조금 전 사내에게 감실주를 판 노인이 말했다.
 “주가탐무보단 못하지만 유가탐무도 실력이 있네.”
 “그렇습니까?”
 “돈이 아까울 정도는 아닐 걸세. 주가탐무의 명성에 가려져 있을 뿐, 유완서 그 친구도 꽤 일을 잘하는 탐무니까.”
 “두 그릇 더 주십시오.”
 “두 그릇이나?”
 “곧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사내가 빙긋 웃자 노인은 잠시 멍하니 사내의 얼굴을 쳐다보다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감실주를 챙겼다.
 양손에 하나씩 감실주를 든 사내는 마차가 쌩쌩 달리는 길을 건너 맞은편으로 향했다. 천천히 걷다가 골목으로 잽싸게 접어든 사내는 움푹 팬 곳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탁탁, 구두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챙이 긴 모자를 눌러쓴 진소연이 골목 안으로 급히 달려왔다. 벽에 숨은 사내를 발견한 진소연은 할 말을 잃었다.
 “무지 덥지?”
 사내는 감실주 하나를 내밀었다.
 그 감실주를 받아 든 진소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곧 그 차가운 음료의 맛에 젖어들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난 모르는 게 없어.”
 사내는 반쯤 썩은 사과 상자에 앉아서 감실주를 쭈욱 들이켠 다음, 그릇 역할을 하던 커다란 잎을 길게 잘라서 솜씨 좋은 아낙처럼 이리저리 꼬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예요?”
 “더워서.”
 사내는 간단히 나뭇잎으로 만든 암록색의 부채를 들어올려 빙긋 웃은 다음,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식혔다. 기분이 좋은지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진소연은 넋을 잃고 그 얼굴을 쳐다보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오, 오해하지 말아요. 난 그쪽을 쫓아온 게 아니니까.”
 “경비대 부대장의 딸이 이 더럽고 추잡한 골목에 무슨 볼일이 있었을까?”
 “그건, 비밀이에요.”
 “비밀? 좋지. 어서 가 봐, 붙잡지 않을 테니까.”
 사내는 고갯짓으로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물이 흥건하고 죽은 고양이가 한쪽이 널브러진 음침한 곳을 쳐다본 진소연은 몸을 움찔거렸다. 자존심 때문에 그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진소연을 불러 세운 건,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사내였다.
 “배고픈데, 고기 먹으러 가지 않을래? 바쁘지 않으면 말이야.”
 “내키진 않지만, 그쪽이 원한다면 같이 가 줄 수는 있어요.”
 “거참, 말 한번 예쁘게 하네.”
 사내는 진소연에게로 걸어가서 손목을 잡았다. 놀란 진소연을 향해 빙긋 웃어 준 그는 손목을 잡은 채로 골목길 밖으로 나왔다.
 
 
 
 공동묘지는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도 이겨 낼 수 없는 기이한 냉기를 품고 있었다. 크고 작은 수천 개의 조각상이 땅 위로 솟아나 그 아래에 시체가 묻혀 있음을 알려 주는 공동묘지로 들어선 주설현은 영묘화 한 송이를 천조상 앞에 내려놓았다.
 천조는 아버지의 수호신이었고, 천조상은 아버지가 부적처럼 항상 지니고 다니던 조각상이었다. 물론 묘지에 반쯤 묻힌 천조상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주문하여 제작한 것이었다.
 “아빠, 나 왔어.”
 텅 빈 고요를 뚫고 저 멀리서 새 울음이 들렸다. 주설현은 오늘따라 완전한 침묵이 아니라는 사실이 유달리 고마웠다.
 “미안해, 나 때문에 집이 넘어갈 것 같아. 버티고 또 버티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 같아. 정말 미안해, 그 집을 지키지 못해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어느새 주저앉은 주설현은 사람의 몸에 매의 얼굴을 한 천조상을 안고 엉엉 울었다. 이곳을 떠날 때마다 다음에는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이번에도 그 결심은 무너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세상이 만만했고, 쉬웠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의 영향력이, 아버지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를.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를 이토록 갑자기 잃어버릴 줄은.
 이렇게 영영 이별할 줄 알았다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아빠,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그러니까 제발 돌아와. 나 버리고 가지 마.”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시야까지 흐려졌다.
 그때, 누군가 불쑥 손수건을 주설현의 손에 쥐여 주었다. 놀란 주설현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다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 소매로 눈물, 콧물을 닦은 후에 그녀가 본 사람은 묘지 관리인, 세월이 새겨 놓은 주름살이 아주 멋진 노인이었다.
 “하늘이 복을 쏟아 준 덕분에 아직 마누라가 죽지 않았고, 그 덕분에 아직 깨끗한 손수건을 들고 다닐 수 있어요. 그러니 염려 말고 닦도록 해요.”
 주설현은 노인이 내민 손수건을 받았다. 낡았지만 깨끗한 손수건이었다. 노인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 눈물을 닦았다. 차마 콧물은 닦을 수가 없어서 망설였는데,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을 보고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얼굴을 훔쳤다.
 “감사합니다.”
 “닮았어요.”
 “네?”
 “주 탐무님도 아내를 잃고 여기 자주 와서 목 놓아 울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와 닮았다는 말이에요.”
 “······전 몰랐어요.”
 “어렸을 때니까 모를 수밖에 없지요.”
 노인은 모든 사람에게 심지어 자식에게까지 이렇게 부드럽게 말을 할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닮았다는 말이 주설현에겐 커다란 위안으로 작용했다. 그녀도 그 말에 이토록 쉽게 마음이 가라앉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저 노인의 얼굴에 담긴 부드럽고 아름다운 미소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 한 가지는 달라요.”
 “그게 뭔데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쏟아 낸 주설현은 평소 쾌활하고 호기심 많은 사람으로 돌아가 있었다.
 “수첩이에요.”
 “수첩이라구요?”
 주설현은 의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주 탐무님은 어딜 가든 수첩을 가지고 다니셨어요. 심지어 아내를 잃은 슬픔에 여기 와서 울 때도 수첩을 손에 들고 있었지요. 감정이 가라앉으면 무언가를 거기에 썼는데, 한번은 하도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대체 거기에 무엇을 쓰는지 말이에요. 그랬더니, 일그러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어요. ‘직업병입니다, 어르신.’ 난 잠시 가만히 있었어요. 이유는 모르지만 아직 대답이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가끔 그런 직감이 찾아오면 무시하지 않는 편이에요. 직감은 하늘이 내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알리려 하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곧 주 탐무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직업병인 동시에 내 삶 전체를 딸에게 전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르신.’ 그 말을 하던 주 탐무님의 얼굴은 먹구름이 가신 파란 하늘 같았어요. 난 아직도 그 얼굴을 잊을 수 없어요.”
 주설현은 노인의 말을 통해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슬픔에 짓눌려 아내의 묘지를 찾아왔다가 묘지 관리인의 말을 듣고 무엇인가를 깨달은 아버지가 생생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때, 주설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바로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모습이었다. 수십 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 있을 아버지의 수첩은 대체 어디 있을까? 장례식을 치른 후에 아버지 물건을 정리할 때도 수첩은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집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까?
 아버지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 어딘가에 은밀한 공간이 있을까?
 “고맙습니다, 어르신.”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에요.”
 노인은 주설현의 얼굴이 그때의 주형우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주설현은 공동묘지를 벗어나 성문으로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화삼매? 너와 주설현, 그리고 상희기 세 사람이?”
 잘 익은 고기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사내가 말했다.
 “믿기지 않죠? 하지만 사실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잘나갔는데요. 이 근처에서 화삼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요.”
 진소연은 신이 나서 말했다.
 눈앞의 사내처럼 잘생긴 남자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비육고에 들어와 있던 손님들 중 여자들은 모두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 시선이 몸에 와 닿을 때마다 짜릿한 쾌감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상희기와 문호란을 옆에 거느리고 돌아다닐 때보다 백배는 더 짜릿했다.
 “잘나가는 경비대원의 딸, 유명한 탐무의 딸, 대상인의 딸이 뭉쳤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그때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설현은 무엇을 해야 즐거운지 기가 막히게 찾아냈거든요. 그 일만 없었다면······ 아, 미안해요.”
 진소연은 눈앞의 남자가 주형우의 아들이자 주설현의 이복 오빠라는 사실을 그리 늦지 않게 기억해 냈다.
 “괜찮아, 어릴 때 잠시 봤을 뿐이니까. 그러니 아버지라는 느낌은 거의 없어.”
 “이름이 뭐예요?”
 진소연은 거북한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물론 이 남자의 이름도 알아내고 싶었다.
 “이름을 알려 줄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난 진소연이라고 해요.”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이름 한번 비싸네요.”
 “내가 원래 그래.”
 자유분방하면서도 철벽처럼 단단한 사내의 태도를 본 진소연은 질문을 바꾸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면 다른 것부터 알아내면 된다.
 “유타루체에 오기 전에 뭘 했어요?”
 “뭘 했을 것 같아?”
 사내는 잘 익혀서 육즙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고기를 입에 넣은 후에 천천히 씹으면서 되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기의 풍미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음, 용병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맞아.”
 사내는 씁쓸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용병이라고 볼 수 없는 몸이었다. 건장하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먼 상체, 말라붙어서 제대로 달릴 수도 없는 두 다리, 바람이 강하게 불면 쓰러질 것처럼 얇은 근육까지 모조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상태에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단련을 시작해 보자. 해 보면 길이 보이겠지.
 “마법사도 아니에요.”
 “그럴까?”
 “설마, 마법사예요?”
 얼마든지 모호한 대답으로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사내는 충동적으로 하나의 직업을 택했다.
 “난, 마술사야.”
 사내는 은화를 하나 꺼내어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 보여준 뒤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은화는 사라졌다. 눈이 커진 진소연이 손을 뻗어 사내의 손을 살폈지만 은화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사내는 웃으며 집게로 불판에 올려놓은 고기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설마?”
 사내가 조심스레 씹은 고기 사이에서 은화가 나왔다. 손수건으로 은화를 대충 닦은 그는 다시 손가락 사이에 은화를 놓고 손을 오므렸다 폈다. 이번에도 은화는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모르겠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봤는데도 진소연은 알 수가 없었다.
 “잘 찾아봐. 은밀한 곳에 숨겨 뒀지만 넌 찾을 수 있어. 그리고 오늘, 잘 먹었다. 고마워.”
 벌떡 일어선 사내는 손을 흔들며 가 버렸다.
 급히 뒤쫓아 가려던 진소연은 사내가 혼자서 먹어 치운 최상급 소고기 5인분을 계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갑을 꺼내 돈을 건넨 그녀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잠시 망설였지만 곧 화장실로 향한 그녀는 가슴 가리개 안쪽, 봉긋한 가슴골에서 은화를 찾아낼 수 있었다. 테두리에 고기 기름이 남아 있는 은화였다.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웃음이 흘러나왔다.
 
 
 
 반 바퀴만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광장을 크게 한 바퀴 돌려다 중간에 멈추고 만 사내는 무릎에 손을 올리고 헐떡거렸다. 때려죽여도 더는 달릴 수가 없었다. 종아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허벅지가 묵직해서 다리를 들어 올리기도 어려웠다. 뻐근한 가슴으로 새벽의 찬 공기를 꾹꾹 밀어 넣어도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근육질 몸매의 중년 남자가 사내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비웃었다.
 “풋.”
 달리는 자세, 팔을 흔드는 각도, 몸에 밴 분위기 그리고 머리를 깎은 형태를 훑자마자 사내는 그 남자가 용병이며, 못해도 10년 차 이상이라고 확신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쫓아가서 넘어뜨린 후에 짓밟고 싶지만, 저 속도를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운이 좋아서 뒤쫓는다고 해도 노련한 용병을 힘으로 이길 수는 없으리라.
 고개를 흔든 사내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안개 깔린 새벽의 광장으로 나와 몸을 단련하는 이들은 제법 많았다. 몸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멈춰 선 채로 옆을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사내는 비참한 기분이었다. 저들보다 훨씬 빨리, 훨씬 오랫동안 질주하고 싶은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몸이었다니!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결국 광장 중앙에 우뚝 선 영웅 조각상 옆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한 손으로 섬뜩한 해골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검을 쥔 채 어디엔가 있을 적을 노려보는 그 영웅을 올려다본 그는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조각상이 세워질 만큼 탁월한 경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한 수준,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는 있어야 한다.
 진이 빠져 축 늘어진 채로 무심하게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쳐다본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북원추발공, 현쾌수, 막서권, 동명공······.”
 새벽 일찍 광장으로 나와 달리는 용병 혹은 무인이 익힌 무공의 이름이었다.
 어떻게 간단한 동작만 보고 무공을 알아맞힐 수 있는 그 자신도 몰랐다. 의도적으로 머리를 짜낼 때는 텅 빈 공간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지만, 무언가를 보면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섬광을 터트리듯 그와 관련된 단편적인 지식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늘에서 추락하기 전에 혹시 용병이나 무인이었을까?
 “아니야. 이런 몸으로는.”
 비참함을 넘어서 절망과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그의 가슴을 적셨다. 난로 위에 올려진 끓어오르는 주전자처럼 내면에서 극도의 불만과 불평이 거품처럼 솟구쳐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의 틈을 뚫고 날아온 아침 햇살이 광장 바닥에 자욱히 깔린 안개를 서서히 증발시키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사내는 문득 상식과 거리가 먼 진실을 알아차렸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이 지경이었다면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이 몸에 적응을 했을 텐데, 갑자기 왜 달리지 못해서 안달이 날까?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몸에 새겨진 감각은 그대로일 텐데. 남자로 태어나서 성인이 되었음에도 어느 날 문득 남자의 몸을 질색하여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이 있을까?
 달리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돌을 정교하게 박아 놓은 광장을 크게 돌았지만 곧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옆으로 지나가는 남자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서 비난과 무시, 경멸을 읽어 낸 사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광장을 벗어나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사흘째 새벽 일찍 광장으로 나와 몸을 움직였는데도 달라진 건 전혀 없었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만 확실해졌다. 그냥 이런 몸에 만족하며 살아야 할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부글부글 격분이 끓어올랐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허약한 몸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일단, 필요한 것부터 확보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사내는 집으로 가는 대신 어제 미리 봐 둔 뒷골목으로 향했다.
 
 
 
 허름한 서적상 안으로 들어서기 전, 사내는 불룩 튀어나온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어 확인했다. 다양한 종류의 동전들,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과 조그만 신상들, 무언가를 휘갈겨 쓴 종이 쪼가리 몇 장과 목증 다섯 개가 주머니에서 밖으로 나왔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만난 사람들로부터 빌린 물건들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참 착해. 이렇게나 관대하다니 말이야.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소지품을 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사내는 낄낄 웃었다.
 손버릇은 그 자신도 통제가 안 되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마치 손과 팔이 살아 있어서 저절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머니 속 내용물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물론 사내는 굳이 그 자연스러운 몸짓을 억누를 생각이 없었다.
 사내는 먼지로 뒤덮여 안쪽이 보이지 않는 문을 밀어 젖혔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로 왔수?”
 왼쪽 유리알에 금이 간 동그란 안경을 쓴 노인이 사내를 힐끔 쳐다봤다.
 “껍데기를 바꾸고 싶어서요.”
 “껍데기? 여긴 책을 사고파는 곳이오, 젊은 양반.”
 노인은 정색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애초에 무슨 일로 왔는지 묻지 않았겠죠. 혹시 낚싯바늘이라고 의심한다면, 뭐 원하는 대로 당장 경비대로 가서 이곳에 대해 아는 대로 불어 버리겠어요. 그래도 좋을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네. 이쪽으로 오게나.”
 낡은 안경을 콧등 위로 밀어 올린 서적상 주인은 교묘하게 숨겨진 문으로 사내를 데려갔다.
 닫으면 벽과 다를 바 없는 그 문 안쪽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오래된 책 대신, 정교하기 짝이 없는 도구들이 탁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히 벽에는 수백 개의 목증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솜씨, 좋네요.”
 “하하, 제법 보는 눈은 있구먼. 이름은 뭘로 하겠나?”
 그 질문을 듣는 순간에서야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 사내는 고민에 잠겼다.
 뭐가 좋을까?
 은은한 달이 짙은 구름 밖으로 나오듯 이름 하나가 생각났다. 악중악이었다. 악 중에 악이라는 뜻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사내는 같은 이유로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악중악이라는 이름의 소유자라면 뭐든 거리낌 없이 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좋았다. 마치 그 이름이 일종의 허락처럼 느껴졌다.
 “악중악으로 하죠.”
 “악중악? 특이한데.”
 “뭐, 이름이니까요.”
 “혹시 걸려도······.”
 “여기서 구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껍데기는 가져왔나?”
 “당연하죠.”
 사내는 목증 다섯 개를 주인 앞에 내려놓았다.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증을 위조하려고 진짜 목증을 다섯 개나 가져온 사람은 처음 보았다.
 “얼마나 걸릴까요?”
 “한 시간이면 될 걸세. 그리고 1천 중전이야.”
 “이 목증을 다 넘긴다면요?”
 “5백 중전으로 해 주지.”
 “그러죠.”
 마음만 먹는다면 3백 중전으로 깎을 수도 있지만, 사내는 앞으로의 거래를 위해 먼저 호의를 베풀 생각이었다. 그래야 조금씩 신뢰를 쌓아 갈 수가 있다.
 오래된 책 냄새로 그득한 방으로 나온 사내는 손을 뻗어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꺼내어 훑었다. 방전직의 <법술서>였다. 융 왕국 시절에 활동했던 사상가 방전직이 직접 썼다면 부르는 게 값이겠지만, 종이의 재질과 필체로 볼 때 기껏해야 30여 년 지난 모사본이었다. 그래도 내용만은 진짜 <법술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첫 장을 읽기도 전에 책 전체 내용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떠올랐다. 방전직은 사람의 본성은 금수와 다를 바 없기에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벌을 효과적으로 집행해야만 세상의 질서가 잡힌다고 평생 부르짖었던 그의 사상은 융 왕국을 무너뜨리고 건국한 천파 대제국의 초대 황제에 의해 채택되었다.
 “채찍, 필요할 때도 있지.”
 사내가 꺼낸 두 번째 책은 탄수의 <복갑화서>였다. 방전직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면서 ‘홍애’를 주장한 탄수는 그 책을 통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의 가족이라는 유명한 개념을 만들어 냈다. 가족끼리 다툴 순 있어도 서로 죽이진 않는다고 확신한 그는 전쟁을 없애려고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무식한 병사의 창에 꿰뚫려 죽고 말았다.
 “가족이라고? 웃기는군.”
 그때, 중년 서생이 서적상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재빨리 훑은 사내는 서생이 무엇을 공부하는지, 왜 이 낡은 서적상으로 찾아왔는지 알아내어 <복갑화서>를 무려 5백 중전에 팔아치웠다. 보물이라도 구한 것처럼 환한 얼굴로 <복갑화서>를 가슴에 안고 서적상을 빠져나가는 서쟁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사내는 중얼거렸다.
 “정말 여기엔 착한 사람이 많아.”
 사내는 주인의 책상에 20중전을 내려놓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어떤가?”
 주인으로부터 목증을 건네받은 사내는 세심하게 앞면과 뒷면을 살폈다. 역시 꼼꼼하면서도 대담한 기술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악중악’, 볼수록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수완이 좋더군.”
 주인은 20중전을 챙기며 말했다.
 “그 서생이 멍청한 겁니다.”
 “나와 같이 일해 볼 생각, 없나?”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러죠.”
 악중악은 활짝 웃으며 목증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었다. 비록 즉흥적으로 만든 이름이지만, 누군가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불릴 수 있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강렬한 느낌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악중악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주설현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갑자기 그게 궁금했다.
 왜 궁금할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까다로운 질문에도 답이 저절로 떠올랐던 머리에 문제라도 생긴 것처럼. 마치 진짜 이름,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했던 것처럼.
 찝찝한 기분을 억누르며 서적상 밖으로 나온 악중악은 계획대로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했다. 가진 돈의 일부를 은행에 맡긴 그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악중악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일확천금’, 도박장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으리라.
 일확천금은 유타루체가 물자의 집산지이자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할 무렵에 세워진 합법적인 도박장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척의 배가 드나드는 항구로서 명성을 얻은 유타루체로 몰려오는 뱃사람들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에 마음이 끌려 찾아온 관광객들 덕분에 일확천금은 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유타루체 시민도 마음껏 도박장에 출입할 수 있었다.
 특히 바다와 강을 누비는 범선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선원들은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는 선첩만 보여 주면 일확천금 내에서 술과 고기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 해적 혹은 지독한 폭풍을 만나 죽을지 모르는 뱃사람들이 쌓인 임금을 흥청망청 도박장에서 써 버렸기에 가능한 대접이었다.
 “좋아.”
 악중악은 일확천금 앞으로 다가갔다.
 입구 양옆에 우뚝 선 사내들이 악중악 앞을 가로막았다.
 “못 보던 얼굴인데.”
 악중악은 말없이 금화가 든 붉은 돈주머니 홍전낭을 꺼내 입구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사내들은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역시, 이곳은 광장과는 다른 세계였다. 아무리 빨리, 오랫동안 달릴 수 있어도 도박장에서는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한다. 여기서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지닌 자만이 대접을 받는다.
 주설현에게서 빌린, 주설현 입장에서는 강탈당한 홍전낭을 조끼 안쪽에 밀어 넣은 악중악은 눈앞에 펼쳐진 도박장 실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열기로 그득한 실내에는 수십 개의 탁자가 놓여 있었고,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벌건 사람들이 탁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눈싸움, 때로는 말싸움 그리고 몸싸움 직전의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돈이라는 먹잇감을 놓고 사투를 벌이는 짐승들의 세계에 악중악은 광장에서 느꼈던 그 비참한 패배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악중악은 슬쩍 눈길만 던져도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수염이나 머리를 깎아서 받는 푼돈으로 먹고사는 형편없는 이발외과의, 제법 돈을 번 모양인지 공격적으로 돈을 거는 중년의 광부, 씻지도 않고 이곳으로 달려온 터라 소매에 돌 조각이 남아 있는 늙은 석공, 재단 가위를 사용하여 오른손에 특이한 군살이 박힌 재단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돈을 벌기 위해, 아니 이길 때의 쾌감을 느끼려고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눈이 가늘고 입술이 얇은 20대 중반의 사내가 다가왔다. 몸매가 호리호리한 그에게서 경박함이 느껴졌다. 왼쪽 허리가 불편한지 걷는 자세가 어색했다.
 악중악은 이틀, 혹은 사흘 전쯤 이 사내가 누군가에게 제대로 맞았다고 확신했다. 아마도 여자 문제 때문일 것이다.
 “어서 오십시······ 우와, 정말 잘생기셨네요.”
 악중악은 그의 시선에 순수한 감탄과 더불어 약간의 질투, 음험한 생각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렸다.
 또한 그 음산하고 사악한 생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얼굴을 통째로 벗겨서 다른 사람의 얼굴 위에 덮어씌울 수 있는 기이한 의술 ‘역형술’의 소문에 대한 지식이 불쑥 떠올랐던 것이다.
 “비싸서 힘들 겁니다.”
 “네?”
 “이런 얼굴은 무척 비싸거든요.”
 노골적인 말에 눈빛이 흔들렸지만 도박장에서 원활하게 돈을 따거나 잃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첨위로서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기에 그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 식상한 미소를 지었다.
 “농담도 참 잘하십니다.”
 “농담?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본능적으로 까다로운 손님이라고 확신한 첨위는 곧바로 할 일에 집중했다.
 악중악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를 향해 날아와 꽂혔던 시선의 주인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도박에 열중하는 척했다. 어둡고 안개로 희미했던 광장에서는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었던 이 허여멀건한 얼굴이, 매끈한 외모가 여기 도박장에서는 빛을 발하는 모양이었다.
 특히 돈 좀 있어 보이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는 중년의 여자들이 노골적으로 악중악을 향해 손을 흔들며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악중악은 그 여자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첨위를 쳐다보았다.
 “투박을 하고 싶은데요.”
 악중악은 주사위를 던지는 단순하면서도 냉혹한 도박을 언급했다.
 사실 첨위의 질문을 듣기 전까지 그는 투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억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투박이라는 놈이 튀어나왔다.
 “하하, 도박을 즐길 줄 아시는 분이시군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첨위는 실실 웃으며 악중악을 도박장 안쪽으로 데려갔다.
 첨위를 따라가면서 주위를 살핀 악중악은 도박장의 천장이 상당히 높을 뿐 아니라, 3층 구조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려면 벽에 붙은 철제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도박장 입구를 지키는 철위들보다 몸도 좋고 훨씬 강해 보이는 자들이 그 앞을 막고 있었다. 아마도 특별한 손님들만 2층,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투박은 규칙이 매우 간단한 노름이었다.
 두 개의 주사위를 정해진 공간에 던지는데, 그 전에 탁자 위에 그려진 다양한 곳에 돈을 건다. 주사위 두 개 눈의 합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 나는 방식으로 7이 나오면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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