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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 드 바르 1권 (1)

2017.01.12 조회 1,791 추천 15


 #광주로 향하는 사람들
 
 
 
 
 김포 1공수 특전여단 비행장에 CH47 치누크 2대가 거대한 로터를 기동하며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이잉!
 날갯짓 한 번마다 동체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익이 2개인 치누크는 그 크기만큼 이륙도 요란했다. 선두기 기내에는 상기된 표정으로 15인의 특전사들이 앉아 있었다.
 1공수 9명과 3공수 6인이었다. 국내엔 23기밖에 없는 치누크는 강하 훈련 때도 쉽사리 만나기 어려운 녀석이다.
 “이거야 원, 분에 넘치는 버스를 다 타 보고 촌놈이 출세했네그려.”
 비호 마크를 단 3공수 남상도 중사가 호기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크크, 거여동 친구들이 출세하긴 했지. 우리야 뭐 날마다 이놈 타고 출근하지만 말이야.”
 남상도의 말에 1공수 독수리 김형석 중사가 딴죽을 걸었다.
 “치누크 별명이 버스라더만, 통근 버스였나 보네.”
 “하하하.”
 김형석이 1공수 이빨이라면 남상도는 3공수 마이크였다. 관록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김형석이다.
 “쩝,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나 1공수 김형석이오.”
 “아이구, 이거 영광입니다. 버스 타고 출근하는 분이 저희같이 미천한 놈들에게······ 참고로, 저희는 자가용 타고 출근합니다.”
 “푸하하.”
 남상도가 불량스럽게 허리를 굽히자 3공수 대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김형석이 인상을 쓰고 머쓱하게 내민 손을 거뒀다.
 “허어, 말 한번 잘못했다가 졸지에 극빈층 되는구만.”
 “모르는 소리! 우리가 1공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우리는 뺑이 치고 수당 받지만, 1공수는 비행장 청소하고 월급 받으니 얼마나 부러우이!”
 “으하하하!”
 “크하!”
 3공수 대원들이 배를 잡고 넘어갔다. 김형석은 이마까지 벌게지며 씩씩거렸다. 1공수 대원들은 왜 건드려서 망신을 당하느냐는 얼굴로 김형석을 노려봤다.
 1공수들이 얼굴을 굳히며 불편한 표정을 드러냈다. 기내에 냉기가 돌며 분위기가 서먹해졌다. 남상도마저 입을 닫자 엔진 소리만 기내를 잠식했다.
 드르렁. 푸우.
 “허, 속 편한 친구구만.”
 기내가 조용해지자 구석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이 탑승하기 전부터 구석에서 누군가 자고 있었다.
 부스럭.
 1공수 길영수 중사가 더플백에서 오징어를 꺼내 먹었다. 오징어 특유의 케케묵은 냄새가 퍼져 나갔다. 길영수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듯 다리를 찢어 손가락에 돌돌 말아 한 입에 집어넣었다.
 “이봐! 착륙하고 먹으면 안 되겠어? 냄새가 빠지질 않잖아.”
 3공수 남상도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길영수 중사는 남상도를 힐긋 보더니 다시 다리를 찢어 오물오물 씹었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나? 너 몇 기야?”
 무시하는 듯한 길영수의 행동에 남상도는 슬슬 열이 올랐다.
 “남이야 오징어를 먹든 문어를 먹든 무슨 상관이야! 하여튼 그지 새끼들이 빌붙어 가면, ‘감솨함다’ 하고 아가리 다물고 있을 것이지 주접을 떨어요.”
 조금 전 일로 분을 삭이고 있던 1공수 김형석이 끼어들었다.
 “뭣이라, 주둥이에 오바로크를 쳐 버릴까 보다!”
 “이 새끼들이, 아가리 전출 가고 싶냐?”
 형석의 마지막 도발에 급기야 3공수들이 자리를 박찼다. 1공수도 질세라 하나둘 일어나 상대를 고르기 시작했다. 1공수 9명에 3공수 6명.
 완전무장하고 33명을 태우고 살짝 개조하면 55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치누크의 내부 공간은 푸닥거리하고도 넉넉하다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여단에서 베스트라고 자부하던 자들로, 모두 707대대(707 대테러 특수임무대대)에 선발된 여단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군대 밥 먹은 사람들에게 최고를 뽑으라면 이구동성으로 지목하는 부대가 특임대일 것이다.
 특임대는 크게 고공강하(HALO/HAHO)를 통한 은밀 침투를 주로 하는 고공지역대, 수중 작전 같은 해상 임무를 수행하는 스쿠버지역대 그리고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대테러 지역대 등 작전 요원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지원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임대의 임무는 여느 특전사 부대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임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지금 대치 중인 이들은 최소한 4년 이상 복무한 자들로 엄정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최정예 공수특전사 요원들이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각 여단에서 선발되어 전라도 광주에 있는 707대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걸어 다니는 흉기로 불리는 자들이었기에 분위기가 살벌하다 못해 살인적이었다. 민간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도 오줌을 지리고 말았으리라.
 “등신 새끼들,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아나?”
 더플백을 베개 삼아 엎어져 있던 사내가 몸을 뒤척였다.
 “어떤 씨발 놈이······.”
 순간 김형석의 고개가 돌아가더니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을 찾았다.
 자신들이 탑승하기 전부터 자고 있던 녀석이다. 양팔을 이마에 대고 있었기에 계급은 볼 수 없었으나 자기 집 안방인 양 자연스럽게 누워 있는 모습이 짬밥깨나 먹어 보였다.
 꿈에도 그리던 707대대에 뽑혔다는 희열과 6개월간의 지옥 훈련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는 약간의 흥분 상태였다.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혼란 상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지금의 사태도 그들만이 아는 긴장 해소 방법이었다.
 그런데 외출이라도 나가듯 태평하게 누워 있는 녀석의 출현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게, 저 친구는 뭐여? 어떻게 늘어진 개구락지만도 못한 아그가 이걸 다 탔데?”
 남상도까지 거들고 나서자 모처럼 의견 일치를 보고 공공의 적이라도 발견한 듯 구석의 사내에게 집중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문제의 사내가 모자를 바로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단결!”
 “헉······.”
 “다, 단······결!”
 역시 정예들답게 순간적으로 자세를 바로 한 3공수 대원들과는 달리, 김형석 중사와 1공수 대원들은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얼굴색이 급변했다.
 사내의 견장에는 다이아가 3개나 박혀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다.
 독수리 흉장에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운 얼굴!
 1공수 특전여단 1대대 박민영 대위였다. 일명 투견으로 대대에서는 물론, 여단에서도 전신으로 추앙받는 자였다. 서울대 ROTC 출신으로 입대 전에 특공무술 3단에 태권도 4단, 합기도 3단, 합이 10단의 괴물이었고 특전사 훈련과 실전을 두루 접하면서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칭송을 듣는 자다.
 여단 무술 대회 우승과 특전사 7개 여단 대회를 휩쓴 더 베스트 오브 베스트The best of best였다. 말이 좋아 대회지 거의 격투 수준이었다고 한다. 박민영의 상대는 하나같이 전치 3∼4주 이상의 골절상을 입고 실려 나갔다고 하니, 인정머리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인간이었다.
 ‘좆됐다.’
 ‘이런 씨발, 저 새끼도 뽑힌 거야?’
 ‘니미럴!’
 김형석을 비롯한 1공수 대원들은 얼굴을 굳히며 말문을 닫아 버렸다. 상종해 봐야 이로울 거 없는 인간이 박민영이다. 박민영은 투견보다 ‘개차반’, ‘지옥야차’로 더 유명한 인간이었다.
 ‘저 시키들이 갑자기 왜 저런다냐?’
 3공수 남상도 중사는 돌변한 녀석들의 반응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대위 계급장의 사내는 아무리 봐도 공포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얼굴은 곱상하니 보통 이상은 되는 것 같고 키는 180 정도에, 체격은 우람하지도 왜소하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였다. 무엇보다 아무리 봐도 대위 계급장을 달 만한 나이로 안 보였다. 그저, 아버지 잘 만나 낙하산 타고 진급한 허접데기로 보였던 것이다.
 남상도 중사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원래 중위 2호봉이었던 박민영은 특별한 계기로 대위로 진급하여 707대대로 전출되었다. 하지만 그 계기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만, 꼴통이라고 광고하냐?”
 “······.”
 “그렇게 몸들이 근질근질해? 새끼들이 그렇다는데 가만있으면 상급자가 아니겠지.”
 박민영 대위가 말을 내뱉고는 야상을 뜯다시피 벗어 재꼈다.
 ‘한 터프하자!’라는 생활신조대로 박민영은 모든 행동에서 박력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식사 시간에 반경 5미터 이내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얼마나 터프하게 먹는지 밥알과 부식들이 사방으로 튀었기 때문이다. 사정도 모르고 이들 중 유일하게 홍일점인 3공수 남고은 중사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몽롱해졌다.
 
 
 
 
 
 # 야차 박민영 대위
 
 
 
 
 “계급장 떼고 한판 붙는다!”
 꾸울꺽!
 마른침을 삼키고 긴장하는 1공수 대원들과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3공수 대원들의 애매한 표정이 대조를 이루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거기 가시내, 넌 열외다.”
 “네, 넵.”
 평소에 가시내란 소리만 들어도 꼭지가 돌아 버리는 남고은 중사가 의외로 군소리 없이 조종석 쪽으로 몸을 옮겼다.
 “저······ 박 대위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용서를······.”
 “용서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다. 내가 힘이 있는지 없는지 너희 앞에 증명해야 하지 않겠나?”
 “제발, 박 대위님.”
 3공수 남상도 중사는 도무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중이었다. 바로 전까지 자신들과 투닥거리던 1공수 녀석들은, 한눈에 봐도 최정예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상관이라지만,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특전사 요원들이 저렇게 비굴 모드로 변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더욱이 박민영 대위의 행동은 계급 믿고 설치는 설익은 상급자의 표상 같은 모습이었다.
 ‘저런 밸도 없는 새끼들.’
 깡과 배짱, 자부심 하나로 버텨 온 군 생활이다. 1공수 녀석들의 행동도 맘에 들지 않지만, 계급 믿고 설치는 박민영 대위도 고깝게 보였다. 남상도 중사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계급장 떼고 한판 하시겠습니까?”
 남상도 중사는 스스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자칭, 정의파 용사였다. 상급자의 잘못을 여과 없이 지적하는가 하면, 규율과 원칙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에프엠 군인이었다.
 상급자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터라 동기 중에 유일하게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내였다. 이번에 707대대에 뽑히지 않았다면 나이보다 쪽팔려서라도 제대해야 할 운명이었었다.
 “물론이다. 이후에 발생하는 사태는 절대, 비밀 유지한다. 그리고 절대, 치료비 따위는 서로 청구하지 말자.”
 “그래 주시면 저희야 고맙지요. 흐흐!”
 남상도의 뜻밖의 말에 1공수 대원들의 눈자위가 뒤집혔다.
 “야, 이 개새끼야! 아가리 닥치지 못해!”
 “저······저, 미친놈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1공수 김형석 중사가 거품을 물고 남상도를 성토하자 여기저기서 분노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박민영 대위의 일갈이 없었다면 사단이 나도 났을 것이다.
 “조용히 해! 나도 1공수지만 쪽팔려서 못살겠다. 3공수 친구들한테 좀 배워라. 삼발이 새끼들아.”
 “끄······응.”
 김형석을 비롯한 1공수 대원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나선 미꾸라지 1마리가 모두 망쳐 버린 것이다.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남상도를 비롯한 3공수 녀석들에게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지는 1공수 대원들······.
 하지만 나중은 나중이고 당장 저 미친개의 손아귀를 벗어나야 했다.
 “박 대위님, 잘 아시겠지만 지상도 아니고 지금 비행 중입니다. 여기서 한 따가리 하시다가 기체에 충격이라도 가면 몹시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저희야 상관없지만, 대위님의 존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자중하시고 착륙 후에 하심이 나을 듯합니다.”
 ‘오오!’
 김형석 중사의 낯간지러운 말에 1공수 대원들의 안색이 환해졌다. 평소 ‘용의 눈물’과 ‘무인시대’ 광팬인 박민영의 입맛에 맞는 멘트였다.
 흐뭇해하는 1공수와 달리 남상도와 3공수 대원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매스꺼운 표정을 지었다.
 “흠,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박민영의 말에 1공수 대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어진 박민영의 행동 때문에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박민영이 기내 무전기를 들었다.
 치이익!
 “김 소령님, 치이익!”
 “뭐냐?”
 “여기서 몸 좀 풀어도 되겠습니까?”
 “아 놔, 골통 새끼들! 여기가 무슨 항모 갑판이라도 되는 줄 아나?”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김태훈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살살 할게요. 한 번만 눈감아 주세요.”
 “야, 이 미친 새끼야! 봐줄 게 따로 있지 기체 흔들리다 잘못되면 다 죽어, 인마!”
 “아! 거, 살살 한다니까 그러네.”
 “뭐!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너 상관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아니면 말지, 욕을 하고 그러십니까? 관두죠.”
 “뭐, 뭐? 너, 씨발 놈아! 죽고 싶어?”
 “제발 좀 죽여 주슈, 나도 죽지 못해 가는 길이니까.”
 박민영도 지지 않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박민영은 자의로 707대대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부친과 대통령의 합작으로 죽기보다 싫은 곳을 가는 길이었다. 평소라면 싫다고 내뺐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개별 면담까지 하면서 가라는데 천하의 박민영도 용빼는 재주가 없었다.
 “이런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
 김 소령이 뚜껑이 열렸는지 조종간을 그대로 놔 버렸다.
 김태훈 소령도 만만한 성격은 절대 아니다. 다이나마이트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한 번 터지면 대책이 없는 인간이었다.
 “어······어어, 기장님, 정신 차리세요!”
 기체의 선두가 급격하게 기울더니 급기야 급강하를 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추락한다!”
 기내가 난리가 났다. 소지품이 조종석 쪽으로 떨어지고 대원들이 나 뒹굴었다. 3공수 남상도 중사가 조종실 문짝을 들이박고 나가떨어졌다.
 쿠오오오!
 다행히 부조종사 이상진 중위가 순발력을 발휘해 평행을 잡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 갔다.
 “아주 지랄을 해요.”
 박민영은 급강하 중에 흘린 모자를 주우며 투덜거렸다.
 “진정하세요, 기장님. 박 대위 저 양반, 여단 전체에서 소문난 골통입니다.”
 “지가 골통이면 골통이지 어디서 강짜를 부지고 지랄이야!”
 김태훈 소령은 분을 삭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 소령도 한 성질 하는 타입이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박민영을 만났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일까······.
 박민영은 만나는 사람마다 밑바닥까지 다 드러낼 정도로 열 받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 새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김태훈 소령은 귀대 후에 이 일을 문제 삼겠노라 다짐했다.
 상관 모욕은 물론, 비행 중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을 도모한 행위는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곧 이어진 이상진 중위의 말에 맥이 빠지는 김 소령이었다.
 “후우, 모르셨나 보군요.”
 “뭘?”
 “박 대위 배경 말입니다.”
 “······.”
 “육군 인사참모 하시다가 1군단장으로 가신 박기태 중장님이 박 대위 부친이십니다.”
 “박기태 중장이라면, 차기 참모총장으로 유력하다는 그분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허······ 이거야 원. 저 새끼, 지 아버지 믿고 저렇게 기고만장한 거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그런 놈인데. 그런 배경으로 707은 왜 가는데?”
 “소문엔 ROTC 임기 채우고 제대하기로 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제대나 할 것이지 왜 말뚝 박고 지랄이야, 지랄은! 저런 새끼들은 군대의 암적인 존재야, 개새끼들!”
 어느 조직이나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배경으로 승승장구하는 자들이 있다. 김태훈 소령은 그런 자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김태훈 소령은 공군사관학교를 4등으로 졸업하고 비행시간도 1,000시간이 넘는 베테랑 조종사였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F-15K의 조종사로 뽑힌 경력도 있었다. F-15K는 한국 공군의 차세대 주력 기종으로 KF-16을 대체하기 위해 시험 도입된 기종이다.
 날마다 격납고에 들러 보관 중인 F-15K의 몸체를 어루만지며 비행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김 소령이었다. 특히, 하단에 부착된 타이거 아이(야간 운항 장치)의 멋들어진 모습은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러다 기체 배정 직전에 청천벽력 같은 통지서를 받았다. 심사 중 착오가 생겨 선발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비행시간이 100시간 정도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무척 실망스러웠지만, 비행시간이 부족하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연장 근무까지 신청하는 등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동기 녀석에게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
 김 소령 대신 선발된 녀석이 공군 참모총장 조카였다고 한다. 거기까진 아무 문제없었다.
 문제는 비행시간이었다. 800시간을 간신히 넘긴 녀석이, 어느 날 1,000시간을 훌쩍 넘기고 김 소령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김태훈은 만취가 되어 사령부로 쳐들어가 난동을 부렸다. 당장에 옷 벗을 사건이었지만, 김 소령의 재능을 아끼던 상관들이 손을 써서 예편만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전투기를 탈 수 없었다. 예편 대신 내놓은 절충안이 육군 항공대로 가라는 것이었다.
 송골매 몰던 놈이 잠자리를 어떻게 타느냐고 노발대발하던 김태훈도 결국은 육군으로 군적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비행은 인생이자 전부였기 때문이다.
 결국, 치누크 기종이 주력인 육군 유니크 수송 대대로 전출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어쨌든, 김태훈 소령도 굴곡 있는 인생이라 할 수 있었다.
 “개새끼들,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배경이나 들먹이는 새끼들은 다 죽여야 해!”
 김태훈 소령이 살기를 흘리며 혼잣말을 하였다. 이상진 중위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부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저, 김 소령님.”
 “······.”
 “그래도 저기 박 대위님은······.”
 “님은 무슨 개뿔이 님이야! 넌 저 새끼가 나한테 하는 소리 못 들었어?”
 “아······ 예, 그러니까 박 대위 저 새끼가 보기보단 실력은 있는 새낍니다.”
 “실력은 무슨, 개코라 그래라. 나이도 어린 새끼가 아버지 백으로 벌써 대위나 달고······ 개새끼들!”
 “그게, 그러니까. 박 대위 저 새끼가 진급한 건 순전히 실력이었답니다.”
 “흥, 간첩이라도 잡았다냐?”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한 무술 유단자라고 합니다.”
 김태훈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그게 박민영이라면 믿지 않겠다는 기색이었다.
 “군바리가 유단자 아닌 새끼가 어디 있어? 워커만 신어도 일단이다.”
 “크크, 맞습니다. 근데, 박 대위는 워커 안 신고도 10단이라던데요.”
 “흥, 그 말을 믿냐? 다 말하기 좋아하는 새끼들이 하는 소리지.”
 김태훈이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참, 얼마 전에 있었던 한북 격투 대회 소식 들으셨습니까?”
 “······.”
 “왜, 비밀리에 북한 애들하고 한판 붙지 않았습니까?”
 “북한 특수 8군 애들하고 우리 특전사하고 벌였던 친선 대회 말하는 거냐?”
 “네.”
 김태훈 소령은 지난달에 있었던 무술 대회를 떠올렸다. 일반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군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거 말 그대로 친선 대회였다며?”
 “말이 그렇지 살 떨리는 격전이었다고 하던데요. 중상자도 꽤 나오고요.”
 “흠,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리 친선이라도 양국 수반이 지켜보는 자리였으니.”
 우리나라 특공무술의 유래를 안다면 고개를 끄떡일 대목이다.
 과거 박통 시절에 북한에서 귀순한 귀순 용사 이영선 씨와 특전사 5명이 겨루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측 특전사 5명 모두 무참하게 깨졌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박 대통령은 대안을 마련하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경호실 장수옥 씨를 중심으로 대인 살상 무술인 특공무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랬다니까요. 양쪽에서 각각 5명이 출전했는데, 우리 측 애들이 연달아 4명이나 개박살 났답니다.”
 “병신 새끼들, 주둥이만 살아 가지곤 등신짓 하는 게 꼭 저 새끼 같구만.”
 박민영을 생각하며 김태훈이 고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측 마지막 주자로 나온 선수가 상대를 한 방에 보내 버렸지 뭡니까.”
 “호오, 멋진 녀석이군.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이상진 중위는 기분이 호전된 김 소령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곧 있을 파멸적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맛을 다시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상대를 가볍게 보내 버리곤 귀빈석을 향해 한마디 했답니다.”
 “뭐라고 했는데?”
 “그게, ‘이런 피죽도 못 먹은 새끼들’이라고 했다더군요.”
 “푸하하, 진짜 멋진 녀석이다. 특전사 애들도 귀여운 데가 있어. 한 새끼만 빼고······.”
 “근데, 진짜는 지금부텁니다.”
 “오, 또 있어?”
 이상진 중위가 이렇게 말재주가 좋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태훈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그럼요.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그런 소릴 듣고 꼭지 안 열릴 녀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긴, 그대로 돌아가면 죽었다고 복창해야겠지.”
 “네, 김 주석도 똥 씹은 표정으로 눈에 살기를 띠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김 소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특전사 대원에게 흠뻑 빠져 들고 있었다.
 “이거, 한참 떠들었더니 목이 좀 마른데요?”
 “어, 그래?”
 김태훈이 좌석 밑에서 뭔가를 부스럭거리더니 이내 보온병을 꺼내 이 중위에게 건넸다.
 “이거 마셔라. 마누라가 홍삼에다 대추 넣고 달였다는데, 먹을 만할 거야.”
 “하하, 뭘 이런 걸 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그래, 빨리 먹어.”
 꿀꺽, 꾸울꺽.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경쾌한 소리에, 밤새 주방에서 약을 달이던 아내가 떠올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얘기가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김 소령도 어쩔 수 없는 군인인 모양이다.
 “다 먹었으면 계속해 봐라.”
 “네, 자기네 주석 앞에서 개쪽을 당했으니 그 녀석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겠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앞서 출전했던 4명이 박 대위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얘기가 무르익자 이 중위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박 대위? 그 녀석도 박 대위야? 하고많은 성 중에 하필 박 대위야?”
 “헉!”
 김 소령의 반응에 이 중위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만지며 마른침을 삼켰다.
 “계속해 봐.”
 “아, 네. 4명이 사방에서 달려드는데, 박 대위가 순간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네.”
 “녀석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동안 맞은편 뒤에서 나타나더니만······.”
 “나타나더니만?”
 “정권으로 옆구리를 까고 고개를 숙이는 놈에게 다이렉트로 킥을 날렸답니다.”
 “······.”
 김태훈 소령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사실, 김태훈은 처음부터 공군 지망생은 아니었다. 공군사관학교에 삼수까지 하면서 입학한 것은 육사 시험에서 두 번이나 미역국을 먹어서였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징집 대상이라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에 입학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당시의 선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공사에 입학한 후에야 진정,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습게도, 김태훈이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람보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였다. 우람한 근육이 씰룩일 때마다 적들이 가랑잎 모양으로 쓰러지는 모습은 어린 나이에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상진의 말에 가슴 깊이 묻어 뒀던 열정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 경악했지요. 특수 8군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렇게 넋을 빼고 있는 녀석들에게 박 대위가 다시 한마디 했습니다.”
 “뭐라고 했는데?”
 “이런, 등신 삼발이 같은 새끼들! 니들이 이 모양이니까 쪽발이 새끼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거 아니야! 이랬답니다.”
 “······.”
 조금 전에 광적인 반응과는 다르게 김 소령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 중위 너, 다 구라지? 씨발, 내가 미쳤지!”
 김 소령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이상진 중위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미치겠네, 진짜라니까요! 정 못 믿으시겠으면, 뒤에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정말이냐?”
 “그렇다니까요!”
 “그래? 계속해 봐.”
 “그만두십시오. 이런 특급 정보를 맨입에 푸는 것도 억울한데 구라쟁이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
 이상진 중위는 정말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닫아 버렸다.
 “쩝, 미안하다. 너도 내 입장이었으면 믿을 수 있겠냐? 기분 풀어. 귀대해서 한잔 쏘마.”
 “······.”
 김 소령의 살가운 표현에도 굳어진 이상진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김태훈은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박민영에게 당한 응어리도 풀지 못했는데, 아랫놈 눈치까지 봐야 하는 처지가 한심하게 보였던 것이다.
 “이런 씨발! 쫄다구 무서워서 예편이라도 해야겠구만. 다음 달에 인사고과 있다지, 아마? 애새끼들 어쩌냐. 할 수 없지 뭐, 예편하면서 쫄다구까지 챙길 거 뭐 있겠어? 좆 같은 군대예요.”
 “허억!”
 이상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치누크 대대로 전출 오기 전부터 동기들보다 6개월이나 진급이 밀린 상황이었다.
 “무슨 섭섭한 소릴 하십니까? 김 소령님 안 계시면 저희는 어쩌라고요. 모두 패밀리 아닙니까, 패밀리! 하하.”
 “패밀리는 무슨, 틈만 나면 전출 희망서나 쓰는 놈들이······.”
 “아, 그런 새끼들이 있었습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싸가지 없는 새끼들이네.”
 이 중위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김 소령이 혀를 찼다.
 ‘기도 안 차는구만. 지 이름으로 올라온 걸 두 번이나 봤는데.’
 속으로 감자를 먹이는 김태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진은 신이 나 떠들었다.
 “전, 그런 자식들하곤 차원이 다릅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김 소령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암요.”
 ‘개코라 그래라, 자식아! 빌어먹을, 상관 복 없는 놈이 쫄다구 복은 있겠냐. 후우.’
 “객쩍은 소린 그만 하고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아, 예. 박 대위가 얼이 빠진 8군 애들에게 일갈을 가하고는 귀빈석으로 가서 멋들어지게 대통령께 경례를 올렸답니다.”
 “나머지 애들은 어떡하고?”
 “정신을 추스르고 박 대위에게 달려들기 직전에 김 주석이 중지시켰답니다. 더 해 봐야 망신만 당할 것 같으니까 그랬겠죠. 김정일 주석은 이마까지 벌게져서 급하게 자리를 떴다고 하더군요.”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 친구 진짜 인물이네.”
 “진짜라니까요!”
 이상진 중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알았어. 그나저나 그 친구 소속이 어딘 줄 아냐?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 줘야겠다.”
 “······.”
 “몰라?”
 “저, 그게······.”
 
 그 시각 기내에선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런 삼발이 같은 새끼들, 니들이 민방위냐? 자세 봐라! 자빠지는 새끼들은 착륙 후에 개별 면담이다.”
 끄응.
 산만한 남정네들의 엉덩이가 천장을 향해 기염을 토했다.
 평지에서도 대가리 심기는 만만찮은 기합이다. 아무리 버스라는 별명을 가진 치누크라 해도 보잉747에 비한다면 딸딸이(경운기) 수준일 것이다.
 가끔 가다 난기류나 역풍이라도 만나면 사정없이 좌우로, 상하로 출렁거린다. 그때마다 사나이들의 엉덩이가 바람난 버들가지처럼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3공수 대열 끝 자락에서 유난히 커 보이는 엉덩이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박민영은 입가를 말아 올리고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검은 베레모에 엉덩이 제대로 연출하는 새끼만 열외다. 1발 장전, 발사!”
 “보아라, 장한 모습 검은 베레모.”
 “무쇠 같은 우리와 누가 맞서랴.”
 군가에 맞춰 거대한 엉덩이의 물결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어느 순간 모두의 눈이 번뜩였다. 다음 소절은 내용상, 상당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대원들의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늘로 뛰어 솟아 구름을 찬다.”
 이 대목에서 10여 개의 엉덩이가 천장으로 치솟았다가 잠시 공중에서 체류하는 것 같더니 이내 추락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 난기류를 만나 동체가 수직 하강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아흑!”
 김형석의 외마디 신음과 함께 균형을 잡지 못한 십수 명이 사방으로 굴렀다.
 고소를 짓던 박민영의 눈에 이채가 드리워졌다. 사방으로 대원들이 나뒹구는 상황에서도 군가가 끊이질 않았다. 2명이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검은 베레 가는 곳에 자유가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 길이 지킨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부대 용사들!”
 “아아, 검은 베레 무적의 사나이!”
 두 사람은 마지막 소절까지 멋들어지게 박자를 맞추고 절도 있게 엉덩이 행진을 끝냈다.
 “······.”
 “······.”
 박민영과 나머지 대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경탄의 눈빛을 보냈다.
 “험험, 둘 다 기상.”
 최후까지 살아남아 끈질긴 생존력을 보여 준 두 사람은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절도 있게 일어났다. 그 모습이 박민영에게는 한없이 박력 있어 보였다.
 “자네.”
 “다, 안, 결! 비호(3공수) 하사 정, 성, 제.”
 잘 다듬어진 화강암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균형 잡힌 몸매에, 190 가까이 보이는 웅장한 키, 다부져 보이는 얼굴은 상대에게 무한한 믿음을 주는 타입이었다.
 “멋지다, 정 하사.”
 “가암사합니다!”
 “자네.”
 이번엔 옆줄 끝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대원에게 턱짓하였다.
 정성제 하사의 절도 있는 동작과 박민영의 칭찬에 고무된 대원은 아랫배에 힘을 주며 힘차게 복창했다.
 “다, 아, 안, 결! 비호 중사 남, 고, 은.”
 유일하게 홍일점이었던 남고은 중사였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질렀지만, 여성 특유의 찢어지는 음성은 대원들의 아미를 찡그리게 하였다.
 “훌륭하다, 남 중사. 근데, 앞으로는 작게 복창해라.”
 “킥킥!”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로 1공수 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런 등신 새끼들, 웃었냐? 상황 파악이 지대로 안 되나 본데? 남고은, 정성제 열외! 너희는 앞으로 영원히 열외다. 한마디로 군대 생활 꽃 폈다는 얘기야.”
 “가암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외 빼고, 나머지 삼발이들은 착륙할 때까지 자세 유지한다. 실시!”
 “실시!”
 “실시!”
 “명령에 죽고 사는 검은 베레모.”
 다시 엉덩이가 출렁이면서 검은 베레모가 울려 펴졌다.
 “뭐, 뭐야?”
 김태훈 소령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입니다. 당시 중위에서 일 계급 특진하고 박기태 중장님과 대통령 각하의 강력한 추천으로 707대대로 전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 뒤에서 골통 부리는 자식이 그놈이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후우, 똥 밟았구만.”
 “······.”
 “너도 그래, 새끼야! 그런 얘기는 빨리 했어야지. 하여튼 쫄다구라고 하나 있는 게 도움이 안 돼요.”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네. 눈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게 누군데.’
 이상진이 입을 씰룩였다.
 한동안 조종석에 냉기가 펄펄 날렸다.
 인사고과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이상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김 소령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이상진의 노력은 느닷없이 들려오는 통신 잡음에 묻혀 버렸다.
 “치이직, 여기는 103 종점, 버스 1207 나와라.”
 “103이면 평택 공작사(공군작전사령부)아냐?”
 “맞습니다.”
 김태훈 소령과 이상진 중위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은 지금 위관 급 1명 포함, 전원 사관으로 이뤄진 707대대 신입 대원들을 호송 중이었다. 뒤따르는 2호기에는 15톤이 넘는 보급품이 실려 있었다. 한마디로 평상적인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무엇보다 공작사에서 육군 항공대를 호출할 일이 없었다.
 “버스 1207이다. 무슨 일인가?”
 “1207 현재 위치 어딘가?”
 “현재 위치, 대전 상공이다.”
 “서해 해상에 미확인 에너지장이 발견됐다. 1207에서 확인 바란다.”
 “이런 좆 같은 새끼들, 난다고 다 공군인 줄 아나!”
 김 소령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비행체에 타고 있지만, 자신은 엄연히 육군 소속이었다.
 “치이직, 착오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린 에어버스다. 송골매를 보내면 되지 않는가? 다시 한 번 확인 바란다.”
 “1207, 송골매들이 접근 불가하다. 게다가 잠자리는 운항 거리가 미치질 못한다.”
 “이런 좆 같은······.”
 김태훈은 공작사라는 무전을 받았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공군은 자신의 꿈이었고 그 꿈을 무참히 짓밟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나오는 말이 삐딱할 수밖에 없었다.
 “치지직, 그렇다 해도 명령 없인 항로를 변경할 수 없다.”
 “치이익, 잠시 후 유니콘에서 명령이 하달될 것이다. 시간이 없다.”
 김태훈 소령이 이리저리 빼는 동안 이상진 중위는 다른 라인으로 통신문을 받고 있었다.
 “대대에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공작사에 적극 협조하라는데요.”
 “빌어먹을!”
 뭣 같은 감정이 들었지만, 명령이라니 어쩔 수 없었다.
 “치이익, 103 종점 명령 확인했다. 좌표 전송 바란다.”
 “치이익, 오케이, 목표에 접근한 후에 통신 바란다. 이상.”
 통신이 끝나자 바로 전문이 수신되었다.
 “북위 36 동경 124 지점입니다.”
 “일단 가 보자.”
 김태훈이 뒤따르는 에어버스에 통신을 연결했다.
 “치이익, 2호기 명령받았나?”
 “네, 방금 수신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나도 모르거든. 아무튼 목표 지점까지 최고속으로 접근한다. 연료는 충분한가?”
 “네, 여유 있습니다.”
 “좋아, 오랜만에 바닷바람이나 쐬러 가 볼까?”
 김태훈 소령이 조종간을 기울이자 동체가 우익으로 기울며 천천히 선회를 시작했다.
 
 
 
 
 #미확인 에너지장
 
 
 
 
 30분 전.
 서해 영공에 KF-16 편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장 근처로 접근하고 있었다.
 “편대장이다.”
 “초계비행에서 편대비행으로 전환한다. 발사 체계 점검하라.”
 편대장의 무전에 조종사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면서 조종석 인터페이스 화면은 점멸과 소멸을 반복했다.
 편대가 목표에서 1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는 시점에서 각 기체에 계기 이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편대장님, 전자 방해를 받는 것 같습니다. 레이더뿐 아니라 무기 체계도 엉망입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500미터까지 접근했다가 선회한다. 선두기들은 항공촬영에 들어간다.”
 “카피.”
 “카피.”
 정체불명의 에너지장은 반경 7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구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테두리는 전자기 방전을 일으키며 회전했고 중심 층은 투명한 막이 촘촘히 채워져 있었다.
 금속 기체가 접근하자 거대한 구의 회전이 더욱 빨라지며 번개를 방불케 하는 방전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속도를 줄이고 접근하던 선두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편대장님, 조종이 안 됩니다.”
 선두에서 촬영하던 편대기 1대의 선수가 급격히 기울며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김 대위, 탈출해! 모두 급반전한다. 서둘러!”
 “이젝트Eject! 이젝트Eject!”
 “편대장의 급박한 외침에도 다시 송골매 1기가 통제 불능을 호소하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여긴 송골매! 편대기 2기가 계기 이상으로 추락 중이다. 급히 구조 바란다. 전자 방전이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치이익, 송골매. 여긴 둥지다. 작전을 취소한다. 귀환하라. 서해 함대 고속정이 접근 중이다.”
 “로저.”
 편대장은 구조 신호를 보내고 편대기들이 추락한 지점으로 급히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모두 탈출에 성공한 것 같았다. 비상 탈출 낙하산이 수표면에 떨어져 내릴 즈음, 서해 함대 소속의 고속정들이 사고 현장에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여긴 해군 애들한테 맡기고 우린 귀환한다.”
 “······.”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식 같은 기체를 2대나 잃었다. 선회하는 날갯짓이 오늘 따라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이 사건으로 군 수뇌부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공작사의 작전권이 합참으로 이관되었고 기동함대 포함, 서해 함대 소속의 2개 전대가 현장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광주 비행장에선 국내에 1대밖에 없는 AWACS(공중 조기 경보기)까지 출격하였다. 장보고 급 잠수함도 3척이 신속히 현장으로 이동했다. 군으로선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김 소령님, 조금 전에 송골매가 2기나 추락했답니다.”
 “뭐야? 어쩌다가?”
 “전자기 방해가 있었답니다. 우리보고 가라는 이유가 있었군요.”
 “그럼, 우리도 이대로 가면 좆되는 거 아니야? 목표물과 거리는?”
 “10킬로미터 남았습니다.”
 김태훈은 공군이 자신을 찾을 때부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사령부 연결해!”
 “연결됐습니다.”
 “치이익, 버스 1207이다. 목표 지점 10킬로미터 지점 통과 중. 다음 지시 바란다.”
 “수면 고도로 목표물에 500미터까지 접근하라. 전자 장비는 모두 점멸하고 수동으로 전환한다. 항공촬영 후 이탈하여 종점으로 전송하라.”
 “전자 장비만 오프하면 안전한가?”
 “장담은 할 수 없다.”
 “흠.”
 김 소령의 미간이 좁혀졌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종점, 해군을 보내면 안 되겠는가?”
 “치이익, 서해 함대 고속정들이 접근하다 실패했다. 정보부 분석으로는 괴구체의 자전으로, 해면 위 상공으론 전자장이 발생하고 해수면 지역은 자기장이 퍼져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럼, 우리가 가 봐야 소용없지 않겠는가?”
 “전자장과 자기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서로 밀어내는 작용으로 안전지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해수면에서 어느 정도 높이인가?”
 “5미터로 예상하는데,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그래도 대책 없이 보낸 건 아니었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조금은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로저, 5킬로미터 지점에서 통신 장비도 오프하겠다.”
 “알았다. 무운을 빈다.”
 “공군의 무운 따윈 필요 없다. 이상.”
 김태훈 소령은 씁쓸한 표정으로 전자 장비를 오프하고 수동으로 육안 비행에 들어갔다.
 오후 4시경.
 치누크 2기가 해면 위를 스치듯 빠른 속도로 서해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이 중위, 호이스트에 보트 연결해 놔라.”
 “뒤에 애들 시키면 안 되겠습니까?”
 이상진 중위가 귀찮다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진에 대한 상관들의 공통된 지적은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 중위에게 707대대로 향하는 길은 피하고 싶은 비행 중 하나였다. 보안상 이유로 보조 요원은 탑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리?”
 “끄응.”
 김 소령은 마지못해 일어나는 이 중위에게 경고성 당부도 잊지 않았다.
 “너, 지난번처럼 설렁설렁해라! 아주 아작을 낼 테니까.”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알았어, 나가!”
 “그리고 애들한테 간단하게 상황 설명하고 얌전히들 있으라고 해.”
 “······.”
 이상진이 대답도 않고 나가 버렸다.
 “저런 싸가지 없는 새끼, 후우.”
 “어쩌다 군 생활이 이렇게 꼬였다냐. 애들 등록금만 아니면 바로 예편하는 건데.”
 말은 그렇게 해도 김태훈 소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옷 벗으란 소리다. 비행 없는 자신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원 없이 비행하다, 나이 들어 민항기 모는 것이 목표인 그였다.
 기내 뒤편에서 잠시 소란이 일더니, 박민영 대위가 거칠게 문을 열고 조종실로 들어왔다.
 “여긴 들어오면 안 돼, 인마!”
 “얘긴 들었는데, 우리는 왜 가는 겁니까?”
 “가기 싫으냐?”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KF-16도 2대나 추락했다면서요.”
 “싫으면 문 열어 줄 테니까 뛰어내리든가.”
 “······.”
 김 소령의 말투는 아까보단 상당히 부드러웠다. 조금은 군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원거리에서 사진 몇 방 찍으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위험은 무슨, 근처에 가지도 않을 거다. 그리고 미리 전자 장비는 오프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알겠습니다. 김 소령님만 믿겠습니다.”
 김태훈은 고개를 돌리며 멋쩍게 웃었다. 거칠긴 해도 듬직해 보이는 박민영이 아주 쬐금은 맘에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안전벨트 매고 쉬고들 있어. 금방 끝난다.”
 “그리고 뒤에 보면 굼벵이 1마리 있을 거야. 끝냈으면 빨리 오라고 해.”
 김 소령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상진 중위가 구시렁거리며 들어왔다.
 “이렇게 빠른 굼벵이 보셨습니까?”
 “굼벵인 줄은 아는가 보네.”
 “진짜, 너무하십니다.”
 “실없는 소리 그만 하고 2호기나 호출해.”
 이상진이 입을 씰룩거리면서 통신기를 조작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래, 걱정하지 말고 가 있어.”
 박민영이 경례를 올리고 조종실을 나왔다. 기내에는 대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박민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별일 아니란다. 사진 몇 장 찍고 귀환한다니까 대기하고 있어.”
 “지가 볼 땐 별일이구먼요. 쌕쌕이가 2대나 추락했다 안 하요.”
 3공수 남상도 중사의 질문에 나머지 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뭔가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푸훗!”
 대원들의 진지한 표정에 박민영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훈련소에 막 입소한 신병들의 표정이 저럴까?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박민영의 장난기가 동했다.
 “좋다. 사실을 말해 주마. 오늘 오후 3시부로 작전권이 한미연합사로 이관되었고 방어 준비 태세를 데프콘 4에서 데프콘 2로 격상하였다. 알다시피 데프콘 2 상황이라 전군에 실탄이 지급되었다.”
 “허억!”
 “크으.”
 여기저기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몇몇 대원은 경악한 얼굴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데프콘 5는 적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상태를 말하고, 데프콘 4는 대립하고 있으나 군사 개입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한국에는 1953년 정전 이래 데프콘 4가 상시로 발령되어 있는 상태다.
 데프콘 2는 적의 공격 징후를 발견하고 취하는 경계 태세로, 전군에 실탄이 지급되며 부대 편제를 100프로 가동하게 되는 준전시체제를 말한다.
 “주, 주적이 누굽니까? 북한군입니까?”
 1공수 김형석 중사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지 말을 더듬었다.
 “북한이 아니다.”
 “그럼 중국입니까?”
 “중국도 아니다.”
 “일본입니까?”
 “일본도 아니다. 조금 전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꾸울꺽.
 박민영 대위가 잠시 말을 끊자 사방에서 마른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확인된 정보에 의하면, 서해 상공에서 적군과의 교전으로 아군 F-16K 2대가 추락했고 나머지는 꽁무니가 빠지게 내뺐다고 한다. 아마도 데프콘 1이 발동될 것 같다.”
 “쌕쌕이 2대가 추락했다는 소리가 사실이었군요. 그것도 교전 중에······.”
 대원들의 얼굴은 이제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현대전은 고도화된 초정밀 무기에 의한 대량 살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때와 같이 고지나 점령하는 땅따먹기 수준이 아니었다. 버튼 한 번으로 씨 몰살을 당하는 대량 학살 수준인 것이다.
 대원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가족들을 떠올렸다. 얼마 전 신방을 꾸민 몇몇 대원들의 눈가에 습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박민영은 사뭇 비장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은 웃음을 참느라 미칠 지경이었다.
 ‘흐흐흐, 귀여운 자식들.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는걸, 하하.’
 늘 대원들을 골통이라 놀리는 박민영 대위였다. 그러나 진짜 골통이 누군지 모르겠다.
 농담도 할 게 따로 있지······.
 확실히 대책 없는 놈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근데, 도대체 적이 누구랍니까?”
 다시금 모두의 시선이 박민영에게 향했다.
 별별 상상을 다 하며 소설을 쓰고 있지만, 정작 대상이 누군지는 몰랐던 것이다. 박민영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화술도 한몫 단단히 하였다.
 “흠, 이건 진짜 기밀인데······.”
 “흐읍.”
 꿀꺽.
 대원들의 숨넘어가는 소릴 즐기면서 박민영이 천천히 이야기 꾸러미를 풀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모두 알 테니 말해 주겠다.”
 “한미연합사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지구에서 1억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행성에서 온 지구 정복군과 서해 상공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인 끝에 아군 전투기 2대가 격추되었다고 한다.”
 “······.”
 “격추된 조종사 1명은 무좀 걸린 발가락을 긁다가 적의 레이저 빔을 피하지 못하고 격추당했다고 한다. 나머지 한 놈은 치질이었다고 한다.”
 “······.”
 처음엔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해하던 대원들의 안색이 점차 흙빛으로 변해 갔다. 어떤 녀석은 얼마나 분한지 몸을 부들거리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푸하하! 아고고, 배야.”
 “······.”
 “아푸아푸, 크하하하.”
 “······.”
 석상이라도 된 양 굳어 버린 대원들을 보고 박민영이 배를 잡고 뒹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상황을 파악한 특전사 대원들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남상도 중사를 선두로 하나둘 박민영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도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차단하고 박민영을 포위했다. 뭐, 달아날 공간도 없지만 말이다.
 “왜, 왜들 이래?”
 “지금 몰라서 묻는 겁니까?”
 “농담 한번 한 것 갖고, 니들 무지하게 민감하게 나온다.”
 “농담할 게 따로 있지 그런 농담을 합니까? 그리고 저희를 언제 봤다고 농을 거십니까?”
 3공수 남상도 중사가 조리 있게 따졌다.
 “아! 자식들, 성격 참 까칠하네. 미안하다. 내가 좀 심했다.”
 박민영이 아무리 안하무인에 골통이라지만, 무경우는 아니었다. 골통이라는 말도 그를 포장한 여러 가면 중의 하나라면 믿을 수 있을까?
 서울대 화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그였다. 자신의 틀 안에서 자식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부친에 대한 반발이 지금의 박민영을 만들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관계된 일이라면 늘 삐딱하게 일관해 온 박민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면에 잠재된 지적 능력과 통찰력은 작전 때마다 기막힌 상승효과를 가져왔고 자신의 소대를 대대 최강으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는 뭐 하는 거냐?”
 박민영의 시선이 1공수 대원들을 훑고 지나갔다. 3공수야 그렇다 쳐도 1공수 대원들의 반항은 용납할 수 없다는 눈초리였다. 시선을 받은 1공수 대원들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 새끼들이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딴 건 몰라도 네놈들 면담은 확실히 해 주겠어.”
 박민영이 눈을 부라리고 1공수 대원들을 노려봤다. 1공수들은 도리질을 치며 아니라고 온몸으로 항변했다. 또 말 몇 마디에 비굴 모드로 변했던 것이다.
 남상도와 3공수는 뭐 하는 짓이냐며 눈을 흘겼다.
 ‘저런 비엉신 새끼들, 저것들이 무늬만 특전사여. 틀림없구먼.’
 상황이 혼선을 빚으며 난잡해질 즈음, 기내 통신이 흘러나왔다.
 대한민국 서해 북위 36 동경 124 영해에 정체불명의 괴에너지장이 출현한 것은 하루 전인 2008년 5월 30일 22시경이었다. 처음 시작은 주먹만 하였으나 주변의 에너지를 끌어 모으면서 지금은 반경 70미터 이르는 거대한 빛의 구조물로 성장해 있었다.
 공군 KF-16 편대의 초계비행이 있은 후, 구체의 회전력이 가속되면서 이제는 그 크기가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작아지고 있었다.
 박민영과 특전사 대원들을 실은 치누크 2기는 그들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체, 괴에너지 구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대한민국 서해상에 출현한 괴에너지 구체의 회전 속도가 줄더니 이내 멈춰 버렸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으며 빠르기를 더해 갔다.
 그 시간 북동쪽에서 CH47 치누크 2기가 해면에서 5미터 높이로 구체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목표물로부터 5킬로미터 지점입니다.”
 “통신 오프한다.”
 김태훈 소령은 2호기와 마지막 교신을 하고 기내 마이크를 오프했다.
 “약 5분 뒤에 목표 지점에 접근할 것이다. 모두 안전벨트 착용하고 대기한다. 송골매 2기가 추락한 것을 너희도 알 것이다. 절대, 개인행동은 불허한다. 이상.”
 절묘한 타임에 김 소령의 기내 방송이 있었다.
 “모두 명령 들었지? 신속하게 실시한다.”
 박민영 대위는 말과 동시에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나머지 대원들도 자리를 찾아 착석하자 기내는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후후, 김 소령님. 제법 맘에 듭니다그려.’
 수습이 어려울 것 같던 상황을 김태훈 덕에 간신히 모면한 것이다.
 기내의 분위기가 진정되는 것과는 반대로 조종석은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해면에서 5미터 간격을 유지하고 별 탈 없이 접근하던 에어버스 1207기가 갑작스러운 계기 이상을 일으킨 것이다.
 고도계를 비롯한 아날로그 장비들까지 통제 불능에 빠졌고 연료 게이지 바늘이 미친년 널뛰듯이 날뛰었다. 나침반은 바람개비처럼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서곡에 불과했다. 1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는 시점에 구체에서 강한 자력이 발생하며 치누크 헬기를 끌어당겼다. 구체의 회전 방향이 변하면서 경계 지점이 사라진 것이다.
 자체 운동력까지 합해지며 에어버스 2대는 미친 듯이 구체로 빨려 들었다.
 “동력 최대로 올려. 급상승 후에 선회한다.”
 “무립니다. 지금도 과부하로 임계치를 넘었습니다.”
 “이런, 씨발!”
 “무전 다시 열어, 2호기 호출해라.”
 이상진 중위가 통신 스위치를 작동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레이더 및 전자 장비를 구동시켰지만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죽었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레버가 말을 안 듣습니다. 헉, 1번 주익 출력이 떨어집니다.”
 이상진 대위의 다급한 음성에 김태훈은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조종간을 움켜쥔 양손이 땀으로 미끄덩거렸다.
 대책 없이 끌려가던 중에 어느새 괴구체가 육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대론 안 된다.’
 김태훈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가족들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잔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자신을 지지해 주던 아내와 새침데기 큰딸 혜영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아들 지성이.
 아들 녀석에게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던 광경이 슬로모션으로 지나갔다. 김 소령은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듯하더니 한순간 눈을 번뜩이며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그래 혹시······.’
 “자전거가 기우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거야. 넘어질 걸 두려워해서 반대 방향으로 꺾으면, ‘꽈당’ 알지?”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지는 아들에게 했던 충고가 기억이 났다.
 한 가닥 실마리를 잡자 김태훈의 뇌가 빠르게 회전하며 다른 기억을 찾아냈다.
 후보생 시절에 겪었던 회전 균형 훈련!
 캡슐 안에 훈련생을 태우고 무서운 속도로 회전해서 탑승자에게 중력의 몇 배의 해당하는 압력을 가하는 훈련이다. 일반인은 보통 3∼4G(중력의 3∼4배)면 정신을 잃는다.
 자신은 5G까지 버티질 않았는가?
 공군 조종사에겐 불필요하지만, 우주 조종사는 6G를 버텨야 한다고 한다. 그때 깨달은 것이, 정신은 집중하되 신체적 저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항하면 할수록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이 커졌다.
 김 소령은 확신은 없지만,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여기고 한 번 더 상황을 점검했다. 그러는 중에도 기체는 괴구체로 빨려 들고 있었다.
 “엔진 상태는?”
 “1번 엔진은 죽었고 2번 엔진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상진아, 나 믿냐?”
 “네?”
 “아니다. 수평 유지하고 그대로 돌파하자. 2호기랑 연락할 방법은 없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만······.”
 “뭐 알아서 따라오겠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돌파한다.”
 “예······에? 저기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르는데······.”
 “그럼, 다른 좋은 방법이라도 있냐?”
 “······.”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냐. 하하.”
 “끄······응.”
 “엔진 최대 출력, 전속 돌파한다.”
 “출력 최대!”
 김태훈 소령의 선두기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고 나아가자 뒤따르던 2호기가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2호기 사수인 김득주 대위도 나름대로 베테랑 조종사였다. 김 소령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자신도 출력을 높이며 선두기의 뒤를 바짝 쫓았다.
 엄청난 빠르기로 회전하던 구체는 이미 형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찬연한 빛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중앙의 투명했던 막도 형형색색의 빛을 뿜으며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그 빛 덩어리 중심으로 금속 동체 2기가 빠르게 날아오자 외곽이 출렁이며 사방으로 파장이 퍼져 나갔다.
 얼마 후 구체와 금속 동체가 충돌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빛의 폭발이 일어나며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빛무리가 엄청난 흡인력에 의해 한순간에 구체로 빨려 들었고 주변은 진공상태로 변해 갔다. 구체의 크기가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 점으로 축소되더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진공상태의 대기는 주변의 공기를 끌어들이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들뜬 대기가 진정되고 소리가 잦아들자 주변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無.’
 미상의 빛 덩어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치누크의 잔해도 어떤 부산물도······.
 특전사 16인과 1, 2호기의 조종사 4인, 15톤의 무기와 탄약을 실은 유니크 대대의 에어버스 2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다는 고요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높았다.
 
 
 
 
 #강에 빠뜨린 칼을 배에서 찾는다
 
 
 
 
 “으음.”
 박민영 대위가 신음성을 토하며 눈을 떴다.
 손가락 하나 꿈적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무기력했다. 안전벨트를 해체하고 일어서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아찔한 현기증과 구토가 몰려왔던 것이다.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하고서야 울렁거림이 가라앉았다.
 박민영은 좌석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후우, 추락한 건가?”
 지난 순간을 더듬어 보았다. 기내 방송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빛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는 예기치 않은 강렬한 빛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 우왕좌왕했고 양철통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심하게 요동쳤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랄까?
 공중으로 수직 상승하는 듯하더니 이내 곤두박질쳤고 기체가 360도 회전하면서 곡예를 부리기도 하였다.
 마지막엔 180도로 뒤집혀서 한참을 날았던 것 같았다. 이때 머리로 급속하게 피가 몰리면서 대원들은 하나둘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박민영은 어금니를 깨물고 끝까지 버티다가 ‘쿵’ 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놔 버렸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 도리질을 치고 주변을 돌아봤다.
 기체는 확실히 지상에 착륙한 듯 보였다. 대원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좌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양팔을 좌석 양쪽에 거치하고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
 아랫배에 힘을 주고 괴성을 지르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무릎 관절이 펴지면서 상체가 일으켜 지는 듯하더니 기합성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런 씨발, 쪽팔리게.”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 부속처럼 관절들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래도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군.’
 박민영은 다리를 가볍게 흔들며 굳어진 관절을 풀기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대원들이 하나둘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물론, 깨자마자 박민영이 겪었던 관절 경직 현상과 메스꺼움을 경험한 뒤에 말이다.
 밖으로 나온 대원들은 주변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자신은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헌데,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숲이었다. 그것도 그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원시림이었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수목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고 너비가 사람 몸통보다도 넓은 우람한 나무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소한 꽃과 잡초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공기는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여 폐부 깊숙이 들이쉴 때마다 상쾌함이 전신을 자극했다.
 대원들이 착륙한 곳은 원형으로 이루어진 공터였다. 주변의 울창한 관목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공터는 넓이가 500미터 정도였고 어른 팔뚝만 한 두께에, 높이는 1미터가 넘는, 풀인지 나무인지 모를 것들이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호기심이 인 3공수 정성제 하사가 줄기에 손을 가져가자 고무같이 휘어졌다가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무리가 있긴 하지만, 풀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대원들의 뒤편으로 수십 미터에 이르는 공간에 풀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 끝에는 에어버스 1207기가 손상 없이 착륙해 있었다.
 이 괴상한 풀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구한 것을 알기나 할까?
 이 녀석들이 가진 탄력이 충격을 흡수하며 안전하게 착륙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2호기에 탑승한 김득주 대위와 부조종사는 이런 운이 따르질 않았다.
 15톤에 이르는 화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공터에 다다르기 전에 원시림에 추락했던 것이다.
 조종석 앞 유리를 관통한 가지에 매달려 지상과의 충돌은 면했지만, 뚫고 들어온 가지들로 온몸이 난자되어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싣고 온 화물을 고스란히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엔진이 일찌감치 멈추는 바람에 가능했다. 만약에 폭발이라도 있었다면 탑재한 화약으로 주변이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넋 놓고 있을 셈이야!”
 망연자실해 있는 대원들에게 박민영이 고함을 버럭 지르고 기내에 부착되어 있던 비상용 도끼를 들고 나왔다.
 “곧 해가 진다. 남상도 중사와 3공수팀은 조종사 시신을 수습하고 1공수팀은 야영 준비를 한다. 모두 서둘러!”
 남상도와 3공수 대원들이 사고 헬기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대원들은 주변의 풀을 베어 바닥에 깔아 자리를 만들고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모두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참호는 파지 않았고 전초도 세우지 않았다.
 선입견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주변의 괴이한 풍경을 보고서도 대원들은 이곳이 대한민국 서해상의 어느 무인도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박민영은 치누크 옆에서 팔에 부목을 대고 있는 김태훈 소령에게 다가갔다.
 “좀 어떠십니까?”
 “팔이 부러지신 것 같습니다. 응급조치는 했지만, 빨리 병원으로 호송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왼팔의 부목을 만지작거리는 김태훈을 대신하여 이상진 중위가 빠르게 대답했다.
 “박민영이라고 한다.”
 “알고 있습니다. 이상진 중윕니다.”
 기내에서 몇 번 마주치기는 했으나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령부에 연락은 가능한가?”
 “조금 전에 계기 점검을 하였습니다. 미리 오프하여 고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김 소령님은 쉬고 계십시오.”
 박민영이 김태훈에게 얼굴을 돌리고 쉴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당치 않다는 얼굴로 김태훈이 몸을 일으켰다.
 “퇴물 취급하지 마라. 아직은 끄떡없다.”
 “하하, 어련하시겠습니까? 인사가 늦었습니다. 박민영 대윕니다.”
 “김태훈이다. 위명이 자자한 대한민국 최고의 전사를 못 알아봐서, 아깐 미안했다.”
 농담 같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이상진이 말을 부풀렸다고 여겼는데, 지상에서 보는 박민영의 모습은 박력이 넘치고 믿음직스러웠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는 김태훈 소령이었다.
 “아주 금칠을 하십니다. 제가 좀 유명하긴 하죠. 하하.”
 “어째서, 대한민국 군바리들은 겸손한 새끼가 없냐.”
 “하하, 억울하면 김 소령님도 출세하십시오.”
 “출세는 무슨,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하하하.”
 “호호호.”
 이상진이 괴이하게 웃었다. 다른 대원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박민영의 양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 중위는 무슨 웃음소리가 그래? 사내답지 못하게.”
 박민영이 핀잔을 주자, 이때다 싶어 김태훈 소령이 끼어들었다.
 “이 중위가 누나만 넷이라지 아마? 여군으로 가야 될 새끼가 잘못 온 거야.”
 “김 소령님!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오는 동안 쌓였던 기분을 이때다 하고 푸는 김태훈이었다.
 “억울하면 누구 말대로 출세하든가.”
 “끙.”
 “웃음소리 고치는 데 출세까지 필요하겠습니까? 한 따가리 하면 됩니다.”
 “흐읍.”
 “하하하! 박 대위, 너 진짜 맘에 든다. 귀대하면 내가 한잔 쏜다.”
 이상진을 사이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한민국 장교 하나를 삼돌이로 만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2호기 조종사 분들은 유감입니다.”
 박민영이 안색을 바꾸고 2호기 얘기를 꺼내자 김태훈과 이상진의 얼굴이 구겨지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불쌍한 새끼들!”
 “김 대위 녀석, 이번에 학부모 됐다고 좋아했는데······.”
 “귀대하면 포상이 있을 겁니다.”
 “그딴 게 무슨 소용이냐, 죽으면 다 소용없는 거야.”
 박민영은 자신이 쓸데없는 소릴 했다고 자책했다. 가장을 잃은 가족에게 훈장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진이, 따라와! 기병대 부르러 가자. 이 동네 분위기가 어째 인디언이라도 나올 거 같단 말이야.”
 어깨를 늘어뜨리고 헬기로 향하는 김태훈 소령의 뒷모습에서 진한 허무가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한민국에서 군인이란, 늘 목숨을 저당 잡히고 사는 존재들인 것을······.
 조종석에서 장비를 점검하던 김태훈 소령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통신기를 포함하여 대다수 계기가 무사했던 것이다.
 “통신기 오픈해.”
 “예 썰Yes sir!”
 이상진도 기분이 좋은지 안 하던 어리광을 다 부렸다.
 지이이익!
 한참을 주파수를 맞추던 이 중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왜 그래? 안 잡히냐?”
 “이상합니다. 너무 깨끗합니다.”
 “뭐가?”
 “비상 주파수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AM 라디오도 안 잡힙니다.”
 주파수 변조 방식인 FM과 달리 AM은 진폭변조 방식이다. 진폭의 폭이 좁아서 반송파에 음성을 실어 보낼 경우,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장점을 가졌다. 물론 잡음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FM과 비교하여 일장일단이 있다 하겠다.
 날씨가 좋으면 일본은 물론, 중국 절강성에서도 국내 AM 방송이 수신되는 사정을 고려해 볼 때, 문제가 심각했다.
 “레이더는 어때?”
 “아무것도 없습니다.”
 “GPS(위성항법 장치)는?”
 “전원은 들어오는데 신호는 감지하지 못합니다.”
 “무선 주파수 다 열고 계속해서 시도해 봐. 아마추어 무선통신사라도 호출하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아무나 응답하라.”
 “메이데이! 메이데이! 아무나 응답하라.”
 이상진 중위가 무전기를 들고 목이 터져라 상대를 호출했다.
 김태훈이 지도를 펼쳤다. 현재 위치를 추정하기 위해 골몰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에너지 구체를 통과하면서 김태훈은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실신했다. 그 바람에 정확한 체공 시간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남아 있는 연료량을 가지고 대략의 이동 거리를 추측해 보았다. 풍속이나 풍향 등 몇 가지 변수가 존재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어느 정도 근소한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아무나 대답하란 말이야! 씨발 놈들아!”
 컴퍼스를 들고 작도에 여념이 없는 김 소령의 등 뒤로 이상진 중위의 비명이 들려왔다.
 
 3공수 대원들이 사망자들을 수습하여 돌아왔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소풍이라도 나온 양 들떠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박민영의 지시로 시신을 한쪽에다 안치하고 풀을 베어 덮었다.
 김태훈 소령이 자리에 앉자 1공수 대원들이 저녁 식사를 배식했다.
 헬기에 비치된 비상용 전투식량이었다. 1공수 길영수 중사가 비빔밥이 담긴 봉지에 부지런히 끓는 물을 부었다. 대원들이 각자 취향에 따라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어 비볐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자, 먹자.”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먼 산만 보는 대원들 앞에서 김태훈이 애써 태연한 척하며 수저를 들었다.
 숟가락 놀리는 폼들이 영 시원찮았다. 어떤 녀석은 시신이 안치된 곳을 힐끔거리고 밥알을 헤아렸다.
 늘 위험 속에서 사는 이들이었지만, 시체를 처음 보는 대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죽은 조종사들과 안면이 없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죽이는구만!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겠다.”
 입가에 고추장을 묻히고 쩝쩝거리던 김형석 중사가 일부러 큰소리를 냈다.
 김형석의 과장된 행동이 우스웠는지 대원들이 이를 드러내고 미소했다. 밥통에 음식이 들어가면서 간간이 농담 소리도 들려왔다.
 식사를 끝내고 김태훈을 중심으로 대원들이 모여들었다.
 “사령부와 연락은 됐습니까?”
 “흠.”
 “왜요?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박민영의 독촉에 이번에도 이상진 중위가 먼저 대답했다.
 “그게, 이상합니다.”
 “뭐가?”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습니다.”
 “고장 난 거 아니야?”
 “아닙니다, 김 소령님하고 몇 번이나 확인해 봤습니다.”
 “추락 전에 구조 요청은 했어?”
 “못 했습니다. 에너지장과 충돌할 당시, 통신 불능이었습니다.”
 대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현재 위치가 어디쯤입니까?”
 박민영이 고개를 돌려 김태훈에게 물었다. 김 소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돌아봤다.
 “내 생각에는 중국 동해상의 섬 중 한 곳인 것 같다.”
 “그럼, 우리가 중국 영해로 넘어왔다는 겁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런 거 같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기를 느꼈는지 몸을 움찔하는 대원도 보였다.
 자신들은 무단으로 타국의 영토를 침범한 것이다. 그것도, 근래에 동북공정과 어민들의 충돌로 사이가 급속도로 냉각 중인 중국에 말이다.
 서해에 중국 어선이 출몰한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었다. 특히, 꽃게철이면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우리는 어종 보호를 위해 통발을 사용하는데, 중국 어선은 저인망 그물을 이용하여 싹쓸이를 해 갔다.
 해경이 현장에 출동하면 그물까지 끊고 달아나는 통에 골칫거리였다. 먼저 조업하던 우리 어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곁을 지나며 마구잡이로 쓸어 갔다. 그런 중국 어선을 보며 어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저인망 그물이 바닥에 걸려 기동 불능에 빠진 중국 어선 한 척을 한국 어선이 들이박았던 것이다.
 흥분한 양측 어민들이 욕을 하며 말싸움을 하다가 급기야 폭력으로 발전하였고 배를 맞대고 선상에서 난투극까지 벌였다.
 이 사건으로 중국 어민 2명이 사망하고 양측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양국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연일 매스컴에서 상대국을 힐난하는 보도가 터져 나왔고 배상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후진타오 주석의 강경 발언과 동시에 중국의 동해 함대 소속 2개 전대가 대한민국 영해로 전진 배치되었고 심양과 제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이 서해 상공을 누비며 연일 압박해 왔다.
 수면 아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송급과 한급의 핵잠수함이 우리 잠수함을 쫓으며 긴장감이 높아 갔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맹복 대통령과 한국당은 미국과 일본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급기야 먼저 머리를 조아리고 중국과 굴욕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 희생자 1인당 10억, 부상의 정도에 따라 3∼5억이라는 배상금과 가해자 전원을 중국으로 압송한다는 발표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전해졌다.
 방송이 나간 직후, 대한민국 전역이 들끓었고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는 연일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 시위가 이어졌다.
 사라졌던 최루탄이 다시 등장했고 노동자 연맹의 동맹파업을 시작으로 시위와 진압의 수위가 하루가 다르게 강경 일변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사태가 중국의 양보로 진정되기 시작했다. 가해 어민들의 처벌을 한국 정부에 맡기고 자신들은 배상금만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보수 언론인 조양, 중안, 동해일보는 성공적인 협상이었다며 정부를 찬양했고 보수 단체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 시위 참가자들을 린치하였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과는 다르게 이것은 물밑 협상의 결과였다.
 이맹복 내각이 한중 FTA에서 굴종에 가까운 조건을 제시하고 중국산 농수산물과 공산품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조항에 사인하며 가까스로 얻어 낸 결과였다.
 서해상에서 중국군이 철수하면서 사태는 진정되었다. 그러나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속으로 웃는 중국과는 달리, 겉으로는 성공적인 협상을 한 대한민국은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으니, 박민영과 대원들의 심경이 어지러웠다.
 “놈들이 들이닥치는 건 시간문제겠군요.”
 “그렇겠지, 중국 애들도 주시하고 있었을 테니까.”
 “흔적을 지우고 바로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점화 장치가 고장 났습니다. 어떻게 수리한다고 해도 연료가 부족합니다.”
 “흠······.”
 갈수록 비관적인 얘기만 들려왔다. 대원들의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나야 헬기 조종이나 할 줄 알지, 땅에서야 자네가 더 전문가 아닌가?”
 “······.”
 박민영 대위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놈들에게 연행되는 것도 문제였고 그렇다고 남의 영토에서 무력 충돌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너희 생각은 어떠냐?”
 “······.”
 대답이 없었다.
 정치야 윗놈들이 하는 것이고 대원들은 그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는 바람뿐이었다.
 긁어 부스럼은 금물이라고 순순히 중국군에 연행되는 게 최선이라고 여기는 녀석도 있었다.
 “박 대위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대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말을 아낄 때 의외의 인물이 나섰다. 3공수 남고은 중사였다.
 1공수들이 혀를 내둘렀다. 일행 중에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남고은은 여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대원들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색해했다.
 “저희도 박 대위님을 따르겠습니다.”
 3공수 남상도 중사가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1공수 김형석 중사가 거드름을 피우고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험, 그런 걸 뭘 말로 하고 그러는지. 당연한 거 아니야? ‘대위님을 따르겠사와요.’”
 “하하.”
 김형석이 남고은 흉내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1공수 대원들이 배를 잡고 넘어갔다. 3공수마저 남고은의 눈치를 보면서 키득거렸다.
 김형석을 바라보는 남고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언젠가 김형석은 이 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모두의 뜻이 그렇다면 내가 임시로 지휘권을 갖겠다. 어쩌면 오랜 시간을 자장면이나 먹으면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반드시 약속한다.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짝짝짝!
 남고은 중사가 손뼉을 쳤다. 초등학교 학급 회의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에 대원들이 웃음이 터트렸다.
 “남 중사, 넘들이 보면 대통령 취임사라도 하는 줄 알겠다.”
 “하하하.”
 박민영이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그러나 남고은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같은 대대 출신인 3공수 대원들의 장난기를 자극했다.
 “야, 남 중사! 너 왜 그래?”
 “그러게, 천하의 악바리 남고은이가 요조숙녀가 됐네.”
 “하하하.”
 “이런, 쌍!”
 발끈한 남고은이 주먹을 들어 올리려다 박민영과 눈이 마주쳤다. 정인에게 치부를 들킨 처자같이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떴다.
 “그나저나 2호기에 보급품이 실렸다는데 내용이 뭡니까?”
 박민영의 물음에 웃음을 짓던 김태훈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직 확인 안 한 모양이군.”
 “네, 그럴 여유나 있었습니까?”
 “흠, 문제구만.”
 박민영이 3공수 대원들을 돌아봤다. 아는 거 있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남상도와 3공수 대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조종사 시신을 수습하는 것만도 정신이 없었다.
 “이번에 707대대 기본화기가 새로 지급되었네.”
 “특임대는 MP-5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1공수 길영수 중사가 끼어들었다.
 길영수는 자칭, 개인화기 전문가이자 밀리터리 마니아였다.
 MP-5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경찰특공대와 특임대의 주력 화기로 사용된다. 연사력은 뛰어나지만 9mm 탄을 쓰기에 관통력이 떨어지는 기관총이었다(참고로 9mm 탄은 권총 탄환임).
 “MP-5가 소규모 작전에는 탁월하지만 화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더군.”
 “그렇습니다. 탄환이 9mm라 K1에 비하면 장난감이죠.”
 길영수가 다시금 맞장구를 쳤다.
 일반 보병은 개인화기로 K2를 사용하는데 특전사 요원들은 K1을 개량한 K1A를 주력으로 한다. 거기다 AK-47 돌격소총을 비롯한 각종 개인화기 사용법을 교육받는다.
 우리 군의 주력 화기는 K1과 K2이다.
 K1은 12인치 강선을, K2는 7.3인치 1회전 강선을 가지고 있다. 12인치 강선을 가진 K1은 회전력이 떨어져 정확도가 K2보다 좋지 못하고 소음도 컸다.
 그럼에도 특전사나 특공대가 K1을 고집하는 이유는 K1의 가스 직동식이 가스 피스톨 방식인 K2보다 화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후방 침투가 주 임무인 특전사에게 고립된 상황에서 개인 화력의 증대가 필요했다.
 KM193 탄을 사용하는 K1은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K1은 단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정확도와 소음이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문제를 개량한 것이 K1A다.
 707 특수임무 사령부도 화력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반 보병에게도 방탄복이 지급되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기존의 MP-5로는 작전 수행에 차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임대도 개인화기를 바꾸려는 모양이야. 나도 들은 얘긴데, 처음엔 K1A로 결정했다가 실무자들이 반대해서 P90으로 바뀐 모양이야.”
 “그, 그럼, 2호기에 P90이 실려 있단 말입니까?”
 “그래 500정이나 실려 있지.”
 “허억! P90이라니······.”
 몇몇 대원의 놀람에 나머지 대원들도 궁금증이 더해 갔다. 특전사 요원들이 여러 화기를 다룬다 해도 P90은 생소한 것이었다. 박민영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길영수 중사에게 P90에 대해 물었다.
 “P90이 그렇게 대단한 거냐?”
 “그럼요, P90에 비한다면 MP-5는 비비총(장난감) 수준일 겁니다.”
 “그 정도야?”
 “예, 우선 화력부터가 다릅니다. MP-5가 9mm 권총탄을 쓰는 반면, P90은 5.7mm SS190탄을 사용합니다. 탄두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표적에 큰 내상을 입히지요. 인터셉터 급의 방탄복까지 파고들어 가는 무시무시한 녀석입니다.”
 “방탄복도 뚫는다고?”
 “그렇습니다.”
 “오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시금 707대대에 선발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원들이었다.
 “게다가 연사 속도도 장난이 아닙니다.”
 “얼마나 빠른데?”
 1공수 길영수 중사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총기 지식에 특전사 대원들은 물론, 권총 쓸 일도 없는 김태훈과 이상진 중위마저 빠져 들었다.
 “MP-5를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연사 속도인데 분당 800발 수준입니다. 이 정도도 대단한 속도죠. 근데, P90은 분당 900발을 자랑합니다.”
 “오오!”
 “화력이면 화력, 연사면 연사, 뭐 하나 흠 잡을 곳 없는 녀석이죠.”
 대원들의 눈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빨리 보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네. 이게 복인지 화근 덩어린지 모르겠다.”
 뜬금없는 박민영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김태훈은 의미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 상황에선 확실히 화근 덩어리지.”
 그제야 대원들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신들은 지금 중국 영토를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대량의 무기까지 소지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김태훈 소령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박 대위.”
 “네.”
 “자네에게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말씀하십시오.”
 “과거에 미국의 조기 경보기 1대가 중국에 추락한 적이 있었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 오래전이지. 10년도 넘었구만. 당시에 중국은 자국 영토에 추락한 타국의 비행체를 반환하지 않기로 유명했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비사가 김태훈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언제 왔는지 남고은 중사도 박민영 옆에 앉아 귀를 쫑긋거렸다.
 “자신들이 보유하지 못한 조기 경보기였으니, 더욱 욕심이 났겠지. 미국은 외교적인 방법으로 돌려받길 원했지만, 뙤놈들이 보통 놈들이냐.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반환을 거부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미국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항모까지 보내지 않았겠냐. 그제야 마지못해 반환한 거지. 그런데 기체를 가져간 미국에서 난리가 났어.”
 “왜요?”
 “이놈들이 중요 장비는 다 떼어 놓고 껍데기만 보낸 거야.”
 “다시 달라고 하지 않았나요?”
 “왜 안 그랬겠냐. 놈들은 추락할 당시에 훼손됐다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지. 괜히 뙤놈이라고 하겠어. 그렇게 훔친 장비를 연구해서 2006년엔 자체 개발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허, 징헌 놈들이네요.”
 “하여튼, 짝퉁 하나는 기가 막힌 놈들이라니까.”
 “그래서 말인데······.”
 김태훈이 말을 끊었다. 이상진은 김 소령이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힘들겠지만, 헬기를 지켜 줬으면 한다.”
 “······.”
 대원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국 놈들은 미국 재산도 날로 먹어 치우려고 했던 놈들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자신들은 말해서 무엇 하랴! 가슴으로는 충분히 수긍했지만, 머리는 불가능하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다.
 “걱정 마십시오. 절대로 지나 놈들에게 뺏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도저히 방도가 없을 땐 폭파라도 하겠습니다.”
 헬기를 폭파한다는 말에 김태훈이 몸을 휘청거렸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 수밖에 없었다. 자식 같은 녀석이지만 중국 놈들에게 넘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야겠지······.”
 김태훈이 힘없이 대꾸하며 몸을 일으켰다.
 “난 좀 쉬어야겠네. 뒷정리는 알아서 해 주게.”
 “알겠습니다.”
 김태훈이 일어서자 대원들도 자리를 털고 일사불란하게 주변을 정리했다.
 “자, 모두 들었다시피 상황이 좋지 못하다. 조만간 지나 놈들이 몰려올 거야. 2호 헬기에는 막대한 양의 대한민국 재산이 실려 있다. 그대로 내줄 수 있겠냐?”
 “그럴 수 없습니다. 뙤놈들에게 내주느니 차라고 먹고 죽겠습니다.”
 “하하, 좋다. 모두의 뜻이 그런가?”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특전사 대원들이 하나 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개인 장비만 챙기고 나머진 모두 묻는다.”
 “알겠습니다.”
 박민영을 포함한 특전사 요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짐을 내리기 전에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헬기부터 끌어내려야 했다. 동체를 로프와 주변의 넝쿨로 고정하고 주변의 나무에 칭칭 감았다. 나무를 도르래 삼아 대원들이 로프를 조금씩 풀었다.
 수십 톤이 넘는 금속 몸체가 로프에 이끌려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 치누크가 완전히 지상에 안착하자 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가 초저녁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특전사 대원들의 작업에는 지장이 없었다. 보름달이 주위를 대낮같이 밝혔던 것이다.
 달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 것을 작업에 몰두한 대원들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괴생물체와의 조우
 
 
 
 
 박민영이 헬기에서 내린 나무 상자 하나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P90 기관총 40정이 2층으로 들어 있었다.
 ‘무슨 총이 이 모양이야?’
 잔뜩 기대했던 박민영은 P90의 외관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탄이 나가는 소염기는 엄지손가락보다도 짧았고 개머리판을 포함한 몸통은 들고 다니기 불편한 정도로 두툼했다.
 길영수 중사를 제외하곤 나머지 대원들도 적잖게 실망한 얼굴들이었다.
 “이게 총이여? K1이 훨 낫구먼. 뭐여, 착검도 못 하게 해 났구먼.”
 3공수 남상도 중사의 말에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누가 무식하게 칼 들고 설칩니까?”
 같은 중사지만 기수가 한참 달리는 길영수 중사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한마디 했다.
 “그라믄, 총알 떨어지면 삽 들고 나가리?”
 “진짜, 수준 차이 나서 못 있겠네.”
 남상도의 걸쭉한 입심에 길영수 중사가 본전도 못 찾고 헬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보급품을 반 정도 내렸을 때, 박민영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여러 무술을 섭렵한 박민영은 다른 사람보다 오감이 발달한 편이었다. 자신의 이런 예감은 작전 중에 항상 맞아떨어졌다.
 상자에서 탄창 2개를 꺼낸 박민영 대위는 P90에 하나를 삽입하고 하나는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어디 가십니까?”
 대원들은 느닷없는 박민영의 행동에 하던 일을 멈추었다. 실탄까지 챙기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혹시나 해서 말이야, 걱정 말고 작업하고 있어.”
 말을 마치고 빠르게 숲으로 뛰어갔다. 그러는 중에도 소리는 일절 나지 않았다.
 마른땅을 밟으며 가지와 나뭇잎은 철저히 피해 가고 있었다. 놀라는 대원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 정도는 모두에게 기본이었던 것이다.
 박민영은 이동 중에도 걱정이었다. 정말로 중국군과 마주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씨발, 될 대로 되라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방에 검은 그림자 수십 개가 이동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민첩하게 나무 사이의 수풀로 뛰어들었다. 숨을 참고 기척을 숨겼지만, 가슴 뛰는 소리가 천둥같이 들려왔다.
 ‘날, 발견했을까?’
 부스럭.
 낙엽 밟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런 젠장!’
 수십이었던 그림자가 어느새 수백으로 늘어 있었다.
 ‘씨발, 적어도 대대 급 이상이다. 하여튼, 허접스러운 새끼들이야.’
 가지를 살짝 젖히고 전방을 감시하던 박민영의 눈에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자들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어두워서 얼굴과 복장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군인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자세들이 하나같이 엉성했던 것이다.
 무기를 질질 끌고 오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어깨에다 걸친 놈에, 허리에 찬 놈 등등 가관이었다. 상의에다 무엇을 덧댔는지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점차 거리를 좁혀 오자, 이제는 육안으로 식별할 정도가 되었다.
 ‘저······저게 뭐야?’
 하마터면 소리가 새어 나가 발각될 뻔했다. 놈들은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영화에나 나올 만한 대검에 도끼, 메이스, 모닝스타까지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허억!”
 급기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가까이 접근한 녀석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돼, 돼지?”
 “취이익, 꾸어어억꾸에엑.”
 박민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돼지가 창검을 들고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아니 이젠, 자신을 발견하고 뛰기까지 한다.
 코앞까지 다가온 돼지 하나가 박민영의 머리를 워해머로 내리쳤다. 박민영은 땅을 구르며 본능적으로 피해 냈다.
 탕. 탕. 탕.
 총구에서 5.7mm 탄이 발사되어 워해머를 들고 있던 돼지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몸을 털고 일어난 민영은 주위를 돌아보고 하얗게 질려 버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수백의 돼지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씨발!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돼지 새끼들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무기까지 소지해?’
 “뭐야, 저 새끼는 갑옷까지 입었네, 허······.”
 낡고 잔뜩 녹이 슬었지만 틀림없는 철제 플레이트 메일이었다.
 “짱깨 새끼들이 이젠 돼지도 용병으로 쓰나 보구만.”
 “취이익, 꾸어꾸어꾸어어엑.”
 갑옷을 차려입은 녀석이 뭐라고 말을 걸어왔다.
 “뭐야? 저 돼지 새끼, 말까지 하는 거야? 으아악! 씨발, 내가 미쳤나 봐!”
 민영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추락할 때 머리에 충격이라도 받은 건 아닌가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박민영 대위가 소리를 버럭 지르고 머리를 흔들자 말을 걸던 돼지가 다른 돼지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취이익, 꿰에엑꾸어억.”
 고함과 동시에 박민영을 포위하고 있던 돼지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타타타타타당.
 아까와는 다른 총성이 났다. 분당 900발의 연사 속도를 자랑하는 P90이 자동으로 발사된 것이다. 50발들이 탄창이 순식간에 동났다. 박민영은 주머니에서 여분의 탄창을 꺼내 빠르게 교체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20마리 정도가 피 떡이 되어 있었다.
 머리를 맞은 녀석은 그대로 머리통이 터져 나갔고 배에 맞은 녀석은 등에 큰 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었다. 배를 뚫고 들어간 총알이 내부를 휘젓고 등 뒤로 큰 구멍을 남기고 빠져나간 것이다. 그러고도 힘이 남았는지 뒤에 있던 녀석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 위력만큼은 쓸 만했다.
 박민영은 돼지들이 당황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냅다 달렸다. 달리면서도 간간이 뒤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언제 충원되었는지 돼지들이 사방을 메우며 새까맣게 자신을 쫓고 있었다. 점점 동료들이 있는 곳에 가까워졌다.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이내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당! 타타타타타당!
 그렇게 한참을 더 달린 민영은 야영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원들은 정예답게 이미 방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자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치고 P90 기관총으로 전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헉헉.”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김형석 중사가 물었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절대, 사정 보지 말고 갈겨라.”
 “네? 무슨······.”
 김형석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숲 속에서 괴인영들이 달빛을 받아 번뜩이는 도검을 들고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뭐긴 뭐야, 돼지 새끼지. 갈겨!”
 탕. 탕. 탕.
 신호라도 하듯 박민영이 단발로 3발을 쏘았다. 총소리에 정신을 차린 대원들이 자세를 잡고 사격을 시작했다.
 타타타타당!
 타탕. 타타타당.
 “꿰에엑!”
 총소리가 날 때마다 수십 마리가 사방에서 고꾸라졌다. 쓰러진 돼지들이 100마리를 넘고 있었다. 50발을 모두 소진하고 대원들은 탄창을 바꾸기 시작했다.
 뒤늦게 총소리를 듣고 김태훈과 이상진 중위도 가세하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800발이 넘는 총알이 소진되었다.
 돼지들은 인간들의 엄청난 화력에 잠시 주춤거렸다. 그러나 탄창을 교체하느라 화망에 공백이 생기자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1발에 1마리다! 모두 단발사격!”
 한 번의 격돌로 100마리 이상 잡았다. 하지만 50발들이 탄창이 소비되는 것에 비해 너무 적은 성과였다. 빠른 연사 속도와 중첩 표적으로 1마리가 수십 발을 맞고 분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 사격으로 돼지들의 1파가 괴멸되었다. 2파와의 사이에 여유가 생기자 박민영이 단발사격을 명한 것이다.
 탕. 탕. 탕.
 탕. 탕. 탕탕.
 거리에 여유가 생긴 대원들은 영점사격을 위해 가늠자를 조정하고 1마리씩 조준하여 정확하게 총알을 먹였다.
 총소리는 아까보다 요란하지 않았지만, 돼지들의 피해는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총성 하나에 정확하게 1마리씩 죽어 나갔다.
 “꾸에엑!”
 “꿰에엑!”
 특전사 대원들이 쌓은 상자 주위로 돼지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갔다.
 “취이익, 꾸에에엑꿰에에.”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돼지가 고함을 질렀다. 돼지들이 하나둘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사격이 멈추고 먼지가 가라앉자 주변의 광경이 드러났다.
 “우웨엑!”
 남고은 중사가 구역질하며 엎드렸다. 김태훈과 특전사 대원들은 멍하니 돼지들의 시체를 보았다.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새끼는 뱃살이 먹음직한데.”
 발끝으로 죽은 돼지의 아랫배를 걷어차며 박민영이 한마디 했다.
 “우웩!”
 “꺼억!”
 “자식들 비위하고는, 내일 아침은 삼겹살이다.”
 “우웨엑!”
 “우에웨엑!”
 비위 약한 대원들이 저녁에 먹은 비빔밥을 재구성하였다. 남고은 중사는 똥물까지 쏟아 내고 있었다.
 40분 남짓한 전투에서 사살한 돼지만 500마리에 가까웠다. 대한민국 특전사 대원들은 이국의 첫날밤을 이렇게 맞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박민영 대위는 지난밤 마지막으로 불침번을 섰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하나하나가 모두 믿기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에너지 구체로부터 자신들이 착륙한 장소 그리고 대원들을 패닉으로 몰고 간 돼지들까지······.
 변하지 않은 것은 모든 일을 함께 겪은 대원들뿐이었다.
 아침이 오려는지 산등성이 너머로 희미하게 날이 밝아 왔다.
 박민영은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았다. 다행히 아날로그 방식이라 잘 작동하고 있었다. 전자시계는 에너지장을 지나면서 모두 죽어 버렸던 것이다.
 “4시 반인데 벌써 해가 뜨나?”
 이곳의 시간은 지구보다 1시간 정도 빨랐다. 그 사실을 몰랐던 박민영은 시계 침을 돌려 5시 37분으로 맞췄다.
 지금 대한민국은 한여름인 8월 중순이다.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하여 아침 운동을 하였기에 일출 시각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무 상자에 등을 기대고 새우잠을 잔 대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물론, 늘보 이상진 대위는 김형석이 흔들어 깨워서 일으켰다. 나무늘보란 별명은 저녁 배식 때 김태훈 소령이 말하는 바람에 모두 알게 되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방방 뛰었지만, 다음 날 바로 들통 난 것이다.
 대원들이 하나둘 아침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나무에 물 주는 소리가 요란했다.
 ‘후웃, 자연의 최대 적은 역시 인간이야.’
 하얗게 올라오는 수증기를 지켜보며 고소를 지었다. 누군가를 찾는지 박민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고은 중사를 찾고 있었다.
 자신의 대대에는 여성 특전사 대원이 없었다. 처음 보는 여자 대원이 신기했던 것이다. 특히나 작전 중에, 사내 녀석들 틈에서 어떻게 볼일을 보는지 궁금했다.
 한참을 찾다가 헬기 옆쪽 수풀 사이로 머리 하나가 불쑥 솟구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고은이었다.
 ‘푸웃!’
 박민영은 생각보다 싱겁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고은과 시선이 마주쳐서 괜한 오해를 사기 싫었다.
 전장은 어제 그대로였다. 다시 있을지 모를 기습에 대비하여 주변 정리를 안 했던 것이다.
 “모두 집합!”
 볼일을 마친 대원들이 박민영 앞으로 모여 신속하게 열을 맞추었다. 김태훈과 이상진 중위는 박민영의 뒤편에 섰다.
 “1공수 총원 9명, 현재 인원 9명, 열외 없습니다. 단결!”
 “3공수 총원 6명, 현재 인원 6명, 열외 없습니다. 단결!”
 “쉬어, 모두 잘 잤나?”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제, 무척 긴 하루를 보냈다. 전우도 잃었고 돼지들과도 한판 붙었다.”
 “키킥!”
 잠은 만병통치약이라 했던가? 공황 상태에 빠졌던 지난밤과는 달리 생기가 돌았다.
 “질문은 받지 않겠다. 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 아침 식사 후에 현장을 정리하고 주변 정찰에 들어간다. 김 소령님, 버스 띄울 수 있겠습니까?”
 “잠깐은 가능해.”
 김태훈 소령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다. 정찰이 끝나는 오후쯤에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질문 있나?”
 대원들은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녔다. 하지만 아직은 질문할 때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외곽 경계는 길영수 중사와 정성제 하사가 서고, 김형석 중사와 남상도 중사는 보급품 현황 파악해서 보고해! 남고은 중사는 아침 배식 준비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현장을 정리한다. 이상.”
 흩어지는 대원들을 지켜보다 박민영이 김태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김 소령님은 출발 준비를 해 주십시오.”
 “알았네!”
 김태훈과 이상진 중위마저 헬기로 향하자 박민영은 혼자 남게 되었다.
  “난 뭘 하지? 식사 준비나 도와야겠다. 흐흐!”
 평화로웠던 숲이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북적거렸다.
 한쪽에선 돼지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갔고 처음 들어 보는 기계음이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다.
 대원들은 작업을 하면서도 총기를 놓지 않았다. 길이가 짧은 P90은 거치적거리지 않아서 좋았다.
 남고은 중사와 오붓한 시간을 가지려던 박민영의 의도는 대원들의 외침에 오래지 않아 파행을 맞아야 했다.
 “무슨 일이야?”
 “어, 없어졌습니다.”
 “뭐가?”
 “시신이 없어졌습니다.”
 “얘가 뭔 소릴 하는 거야? 시체라면 저기 산처럼······.”
 박민영 대위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랴부랴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이미 그곳에는 대원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디 간 거야?”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방금 발견했습니다.”
 2호기 조종사들의 시체가 없어진 것이다. 시체가 되살아난 것도 아니고 지난밤 전투 이후론 침입자도 없었다.
 “모두 이것들 봐라.”
 시체가 있었던 자리에서 숲 쪽으로 무언가 끌린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시체를 끌고 갔다고 봐야 했다.
 “돼지들입니다. 어제 전투 중에 일부가 시신을 끌고 간 모양입니다.”
 “왜? 시체가 왜 필요한데?”
 “······.”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자신도 모르는데 대원들이 알 턱이 있을까?
 “개새끼들! 시신에 흠집이라도 낸다면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 식사 후에 놈들을 추적한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대원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공터에 모였다. 확실히 어제와는 외모부터가 달랐다. 서스펜더에는 탄창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어깨를 지나는 멜빵 선에는 대검이, 허리춤엔 K-5 권총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위장 크림으로 떡칠한 얼굴은 지옥의 야차를 보는 듯 무시무시했다.
 대원 중 2명은 저격 소총인 K-2 스나이퍼를 소지하였다. 스나이퍼에는 주먹만 한 고배율 광학 스코프가 장착되어 있었다.
 에어버스 1207기가 공중정찰을 위해 이륙하자 대원들도 놈들의 흔적을 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보급품은 이미 땅에 모두 묻었기에 야영지를 지키는 대원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2호기만이 홀로 남아 외로이 그곳을 지켜야 했다.
 특전사 요원들은 2개 조로 나뉘어 50미터 간격을 두고 전진했다. 척후와 후방 확보가 목적인 포맷이다. 발자국과 휘어서 부러진 나뭇가지, 눌린 풀 등 돼지들이 남긴 흔적을 쫓아 대원들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특전사 훈련 중에 추적회피훈련과 수색섬멸훈련이라는 것이 있다. 전자는 적진에 침투하여 임무 완수 후, 적의 추격을 따돌리고 탈출하기 위한 훈련이었고 수색섬멸훈련은 반대로 후방에 침투한 적을 추적하여 무력화시키는 훈련이다.
 지금 대원들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노련하게 흔적을 찾아 적의 이동로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남겨진 흔적이 한눈에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했다. 상대는 이런 훈련을 전혀 받지 못한 아마추어거나 지능이 모자라는 놈들일 것이다.
 박민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종사들의 시체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어제 자신이 숲 속에서 사살한 20여 마리의 돼지 시체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 보면 알겠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지금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결론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1시간을 더 전진한 후에 놈들의 부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대를 정지시키고 뒤따르던 팀에 신호를 보내 합류시켰다.
 소리를 일절 죽이고 망원경으로 놈들의 마을을 돌아본 대원들은 기가 막혔다.
 엉성하긴 했지만, 집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수백 채가 넘었고 마을 외곽은 2미터가 넘는 나무들이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외성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문과 외벽 중간에는 초소까지 지어 놓고 경계를 하고 있었다.
 돌연변이 돼지 정도로만 생각했던 박민영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돌연변이 돼지 얘기도 누가 믿겠는가? 돌연변이 돼지는 자신이 밤새 추리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이것도 많이 양보한 것이다.
 원시적이지만 문명을 가진 돼지 종족이라니!
 미친놈 소리 듣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다.
 대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야생 멧돼지 몇 마리 사냥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인 것이다. 이건 전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은 되어 보였다.
 박민영이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박민영 포함 16명.
 16 대 수천!
 답이 안 나왔다.
 ‘단지 시체일 뿐이야. 죽은 자를 위해서 산 자를 희생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놈들이 끌고 갔다는 증거도 없고 말이야.’
 박민영 대위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죽은 자들도 중요하지만, 대원들을 무사히 귀국시키는 것에 더 무게가 갔다.
 그러나 잠시 후 벌어진 사태로 박민영의 이성이 무너져 내렸다.
 “박 대위님, 저길 좀 보십시오.”
 김형석 중사가 다급하게 박민영을 불렀다. 박민영이 빠른 손놀림으로 망원경의 초점을 조절했다.
 “저, 저······.”
 언제 모였는지 마을 공터에는 돼지들이 구름같이 몰려 있었다. 그 가운데 나무 기둥 2개가 있었는데 누군가를 그곳에 묶기 시작했다. 김득주 대위와 부조종사의 시체였다.
 “저 새끼들 무슨 수작이야?”
 “쉿, 더 지켜보자.”
 조종사들을 보고 모두 발끈했지만, 이미 시체라는 사실이 조금은 대원들을 진정시켰다. 저들이 살아 있었다면 당장에 뛰어 내려갔을 것이다.
 머리를 괴상한 깃털로 장식한 돼지가 춤을 추며 시체 주위를 돌았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보였다. 춤이 끝나자 무당 비슷하게 보이는 돼지가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에는 노란 가루가 가득했는데,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무당 돼지가 주머니에서 가루를 한 주먹 꺼내더니 조종사들에게 뿌렸다. 곧이어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자 주위를 가득 메운 돼지들이 괴성을 지르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박 대위님, 저희만으론 힘듭니다. 헬기로 강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형석 중사의 말에 박민영이 머릴 끄덕였다. 아무리 원시무기로 무장했다고 해도 저 많은 인원을 감당하기란 무리였다.
 “씨발, 이럴 때 무전기라도 있었으면······.”
 “그러게 말입니다.”
 보급품에 통신 장비는 없었다. 정기 보급이 아니었기에 P90과 노후 교체용 60mm 박격포, 훈련용 K-2 스나이퍼, K-3 경기관총이 다였다. 그 외에 야간 투시경과 기타 잡스러운 장비 몇 개가 이들이 가진 전부였다.
 “조용히 야영지로 철수한다. 지금쯤이면 김 소령님도 도착하셨을 테지.”
 “저들을 두고 그냥 철수하잔 말입니까?”
 1공수 안준용 중사였다. 워낙 말수가 적어 존재감이 없었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반기를 들었다.
 “지상으로는 돼지들을 뚫고 조종사들을 구할 수가 없어. 나중에 헬기로 다시 오자.”
 “놈들의 무기라고 해 봐야 녹슨 칼이나 도끼 정도 아닙니까? 섬멸이 아니라 인질 구출 정도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봅니다.”
 “야, 안 중사! 그것도 은밀 침투일 때나 가능하지, 대낮에 한곳에 모여 있는 놈들을 뚫고 어떻게 저들을 구한단 말이야?”
 김형석 중사가 반박하고 나섰다.
 “아니야, 가능하다고 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1공수 대원들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렸다.
 1공수가 침을 튀겨 가며 갑론을박하는 중에도 3공수들은 말이 없었다.
 현재 가장 높은 상급자가 박민영 대위였고 그 또한 1공수 소속이었다. 3공수 소속인 자신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박민영이 3공수 대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3공수는 어때?”
 특전사는 일반 보병 부대와는 달리 대부분 경험 많은 직업군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방적인 상명 하달 방식보단 현장에서 대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전투를 볼 때, 저놈들은 전술이란 개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화력을 한 지점에 모아서 일거에 들이친다면 혼비백산해서 뿔뿔이 흩어질 겁니다.”
 “흠.”
 3공수 남상도 중사가 제법 그럴싸한 의견을 내놓았다.
 “철수 과정에서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장거리 무기가 없어 보입니다. 크게 걱정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적 두목같이 생긴 남상도 중사가 일목요연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평소에 사투리를 섞어 가며 우스갯소리나 하던 모습과는 천지차이였다. 남상도를 보는 1공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3공수 대원들은 1공수의 시선이 싫지 않은 듯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굴었다.
 박민영이 생각에 빠져 들었다. 결정은 자신의 몫이었던 것이다. 가슴은 저들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머리는 무모하다고 반대하고 있었다. 잘못하면, 머나먼 이국땅에서 개죽음당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결론을 지어야 했다.
 “내 생각은······.”
 박민영이 철수를 생각하고 발표할 즈음, 갑자기 소란스럽던 마을에 정적이 일었다. 무슨 일인가 살피던 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무당 돼지는 오른팔을 들어 무리를 진정시켰다. 주위가 정리되자 곁에 있던 돼지가 무당 돼지에게 단검을 전했다. 단검을 받은 돼지는 김득주 대위에게 다가가 수직으로 배를 갈랐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보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벌어진 틈새로 검붉은 피가 흐르자 대기하고 있던 돼지가 나무 사발을 들고 피를 받았다. 그러는 중에도 무당 돼지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찢어진 뱃가죽을 벌려 틈을 만들고 양손으로 휘젓더니 뭔가를 하나씩 뜯어냈다. 위장과 쓸개였다. 그것을 옆에 있던 돼지에게 건네고 다시 가슴을 절개하여 심장과 허파를 분리해 냈다.
 심장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자에게 주고 자신은 허파와 쓸개를 챙겼다. 위장은 마을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생산한 여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조종사들의 장기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주변의 돼지들이 부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피는 전사들이 돌아가며 한 모금씩 마셨는데, 전사의 피를 마시고 내장을 먹으면 그들의 힘과 능력을 얻는다고 믿었다. 두려움을 없애려는 의식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과의 전투는 오랜 세월 잊고 지내던 공포란 놈을 기억나게 했던 것이다.
 이 일대를 주관하는 라시아스가 오랜 숙면에 들자, 돼지들은 개체 수를 늘리고 주변의 강자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30년 만에 이곳을 평정하고 150년이 넘도록 주인 행세를 해 온 돼지들이었다. 괴상한 복장과 무기를 가진 특전사 대원들의 등장은 이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개새끼들!”
 특전사 대원들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박민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수’라는 단어는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저기 갑옷 입은 새끼하고 깃털 단 새끼, 하마같이 생긴 년 날려 버려!”
 박민영이 K-2 스나이퍼를 소지한 3공수 백승현 중사와 박준영 중사에게 저격을 명령했다. 그가 지목한 자들은 하나같이 내장을 받아먹은 돼지들이었다.
 탕. 탕.
 K-2 스나이퍼에서 발사된 5.56mm NATO탄이 정확하게 지목한 자들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다. 역시 대한민국 최정예 요원들이었다.
 K-2 스나이퍼는 전문 저격 소총이 아니다. 기존의 K-2에 광학 스코프를 장착한 정도랄까? 일반 소총으로 이런 정확도를 내는 것만 봐도 대한민국 특수부대의 능력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한편, 돼지들은 멀리서 콩 볶는 소리와 함께 족장과 샤먼의 머리통이 터져 버리자 괴성을 지르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검은 피가 엉겨 붙은 메일을 걸친 돼지가 박민영 등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500미터도 더 떨어진 거리임에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으로 보아 꽤 수련을 한 돼지로 보였다.
 “누가 돼지 새끼들이 전술을 모른다고 그랬냐?”
 박민영은 기가 막혔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돼지가 소란을 수습하고 돼지들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이다.
 2개의 무리가 만들어졌는데, 한 무리당 500 정도 되어 보였다. 먼저 준비가 끝난 1파가 대원들이 있는 언덕으로 달려왔다.
 “다시 말하지만, 1발에 한 놈이다. 낭비하는 놈들은 저녁 없어.”
 “흥!”
 1공수 대원들이 비웃음 비슷한 실소를 지었다. 사실 이들 중 사격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자가 박민영이었다. 여단에서도 박민영의 솜씨는 악명이 높았다. 이것을 익히 알고 있던 1공수들은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박 대위님도 해당됩니까?”
 1공수 김형석 중사가 실눈을 뜨며 물었다.
 “난, 열외다!”
 “왜요?”
 “억울하면 니가 대위 해.”
 “이런, 시······.”
 “하하.”
 대원들의 웃는 얼굴에 여유가 있었다. 유효사거리에 들어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총의 유효사거리는 200미터이다. 하지만 사람의 시력을 감안할 때 보통 100∼150미터를 실 유효사거리로 잡는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바로 저격수들이다. 소총에 부착된 스코프를 이용하여 개인적 편차가 있긴 하지만, 1킬로미터 밖의 표적도 사살 가능했다.
 다른 대원들이 희희낙락하는 중에도 백승현과 박준영 중사는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며 돼지의 수를 줄여 갔다. 물 반 고기 반이다.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선두가 사거리에 들어오자 박민영은 조금 전 망신을 만회할 뭔가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특전사다. 동료를 믿고 나를 믿어라. 그리고······.”
 탕. 탕. 탕.
 탕탕. 탕.
 개소리 말라는 듯 대원들이 먼저 사격에 들어갔다.
 “좆나게 갈겨라, 씨발!”
 언제 군기 한번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박민영도 방아쇠를 당겼다.
 P90 14정과 K-2 스나이퍼가 본격적으로 불을 토하자 쇄도해 들어오던 돼지들이 썩은 짚단처럼 죽어 나갔다.
 어제 전투로 한결 여유 있는 모습들이었다. 3공수 남고은 중사도 침착하게 1발, 1발 명중탄을 날렸다.
 그러나 돼지들을 지휘하는 골무타르는 피가 마르는 듯하였다. 부족 전사들이 근처에도 못 가 보고 픽픽 쓰러지는 게 아닌가?
 마법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저들이 보여 주는 무위는 웬만한 저급 마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이고 왜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칼 한번 못 휘두르고 쓰러지는 전사들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그들의 죽음이 슬픈 것은 아니다. 전사들이야 5년이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골무타르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패했을 경우였다. 인간들의 잔인함으로 볼 때, 암컷과 새끼까지 몰살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부족이 멸족할 수도 있었다.
 골무타르는 놀라운 돼지였다.
 보통 이들의 지능은 인간 아이 5세 수준인데, 골무타르는 15세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인간 여인을 강간하여 아버지를 나아 골무타르의 몸속에도 인간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탕탕. 탕탕.
 “꾸에엑!”
 “꿰엑!”
 특전사 대원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돼지들은 동료의 시체를 밟으며 꾸역꾸역 언덕을 올랐다. 1파 500은 조금 전에 전멸하였고 뒤따르던 2파의 선두가 우수수 쓰러지는 소모전이 이어졌다.
 빠르게 줄어 가는 전사들을 보며 골무타르는 초조함을 느꼈다. 어제 입은 피해로 지금의 인원이 부족의 전부였던 것이다. 저들을 기습하기 전까지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간을 공격하자고 족장을 조른 자신의 행동이 후회스러웠다.
 탕. 탕. 탕.
 타타타타당······ 타타당.
 단발사격은 정확도가 높아 유효탄이 많다. 그러나 화망 형성이 어려워 적을 접근시키는 단점도 있었다.
 어느새 돼지들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어쩔 수 없이 자동사격으로 전환하여 놈들을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소지한 탄환이 급속도로 소모되기 시작했다. 예상된 결말이었다. 아무도 이 정도 접전이 있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총알이 떨어져 갑니다.”
 “어쩔 수 없다. 있는 대로 갈기고 몸으로 저지해!”
 “시부럴!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남상도 중사는 K-1이 그리웠다. 자체 총 길이만 82센티미터에 달하고 착검하면 대검의 길이를 더해 100센티미터가 넘었다. 50센티미터를 조금 넘는 P90은 육박전에는 맹탕이라 할 수 있었다.
 남상도를 시작으로 총알이 떨어진 대원들이 빈 총을 등 뒤로 메고 권총과 어깨선에 달린 대검을 뽑아 들었다.
 “백 중사하고 박 중사는 후방에서 지원해!”
 비교적 탄환 소비가 적었던 백승현과 박준영 중사가 뒤편 바위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모두 모여!”
 탕탕. 탕탕.
 대원들이 남은 탄환을 모두 소모하고 박민영을 중심으로 횡대로 대열을 만들었다.
 “우리가 누구냐! 악!”
 “무적의 검은 베레! 악!”
 검정과 붉은색 크림을 떡칠한 대원들이 고함을 질렀다. 얼굴 근육이 실룩일 때마다 무섭게 일그러지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충정 대형으로!”
 박민영의 구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이 몸을 비스듬히 틀고 오른발을 일보 후퇴하며 자세를 잡았다. 대검을 쥔 왼손을 직각으로 뻗고 권총을 든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올려 전방을 겨냥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군사정권 시절 시위 진압용으로 개발한 훈련이다. 일명 충정 훈련.
 방패를 들어야 할 왼손에 대검(KM-7)을 들었지만 무성 무기 훈련으로 다져진 이들에겐 대검이나 석궁은 신체 일부만큼 자연스러운 무기였다.
 KM-7은 스테인리스를 소재로 하여 강도가 높고 날은 아랫면 한쪽만 세운다. 윗면은 톱날을 연상케 하는 돌기로 채워 철조망을 자르거나 돌을 깎기도 하는 다목적 대검이었다.
 쿵. 쿵. 쿵.
 대형을 갖춘 대원들이 지축이 울릴 정도로 오른발을 힘차게 굴렸다. 기계처럼 통일된 동작은 과연 저들이 인간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쿵. 쿵. 쿵.
 “악! 악! 악!”
 발 굴림에 맞춰 짧은 구령을 토하며 돼지들을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언덕을 다 오른 돼지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유 사격은 금한다. 사격 통제!”
 “악! 악! 악!”
 돼지들이 20미터까지 접근하자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발사!”
 타앙. 타앙. 타앙.
 베틀 엑스를 들고 달려오던 돼지를 시작으로 10여 마리가 목과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아무리 권총이라도 근거리에서 발사된 위력은 돼지들의 명을 끊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일보 전진!”
 “악! 악! 악!”
 “발사!”
 타앙. 타앙. 타앙.
 “꾸에엑!”
 “꿰엑!”
 특전사 대원들은 19세기 화승총 전술로 대항하고 있었다. 한정된 총알로 다수의 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림잡아도 400마리가 넘어 보였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돼지들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이들의 노력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민영은 대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경솔한 판단으로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미안하다!”
 “······.”
 느닷없는 박민영의 말에 대원들이 의아해했다. 남고은 중사만이 박민영의 말뜻을 이해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제가 대위님 입장이라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그제야 대원들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렇습니다! 저희 모두의 뜻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김형석 중사가 대답하자 나머지 대원들도 동의했다. 박민영은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목을 타고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시작한 군 생활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동료에게 쏟아 내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던 그였다. 전우애란 말을 들을 때마다 콧방귀를 뀌곤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그렇게 비웃던 전우애가 무엇인지를······.
 박민영의 코끝이 찡해지며 눈가에 습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억울했던 것이다. 이런 멋진 동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목이 메어 왔다.
 “후회하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특전사 대원들입니다!”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은 까마귀에게 전해 주고.”
 누군가의 입에서 용사의 시가 흘러나왔다. 대원들도 한목소리로 합창하기 시작했다.
 “내 영혼은 베레모 속에.”
 “그리고 군번줄은 그리운 어머니에게 전해 주고.”
 “그리운 그녀에게 이 한마디 전해 주오.”
 “사나이 태어나서 한 번의 죽음과 단 한 번의 사랑만이!”
 “존재할 뿐 진정 그대를 사랑하노라.”
 자신의 소대원들이 이 시를 흥얼거릴 때마다 주접떤다고 무안을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박민영의 볼을 타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잘못 산 지난날의 회한이 깃든 눈물이었다.
 ‘만약에 당신이 진실로 존재한다면, 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박민영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자신의 소망을 간절히 고백하였다.
 “취이익, 꾸에에에엑.”
 돼지들 진영에서 누군가 고함을 지르자 짧았던 대치 상황이 끝났다. 이미 모든 돼지들이 올라와 있었다. 한꺼번에 특전사 대원들을 향하여 쇄도하기 시작했다.
 “고향에서 만나자! 자유 사격!”
 타앙. 타앙. 타앙.
 KM7 권총의 9mm 탄이 돼지들의 심장과 머리를 파고들었다. 계속된 격전으로 돼지들도 총소리에 적응된 모양이다. 조금 전의 주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좁은 장소에 돼지들의 시체가 늘어 가며 대원들의 운신 폭도 줄어 갔다.
 철컥. 철컥. 철컥.
 놈들의 접근을 최후까지 막아 주던 권총의 탄환이 모두 떨어졌다. 대원들은 땅바닥에 총을 내던지고 대검을 들고 달려 나갔다.
 “돌격!”
 “와아아아!”
 14명이 지르는 함성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함성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돼지들을 향하여 돌진했다.
 3공수 이승찬 중사는 아내가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이들은 이제 갓 8개월을 넘긴 신혼부부였다. 자신이 꿈꿔 온 707대대 합격 통지서를 받고서도 며칠을 고심해야 했다. 6개월에 이르는 특임대 훈련 기간 동안 아내와 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편이었는데, 어려서 그런지 아내는 철이 없었다. 영계 마누라 데리고 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동료의 놀림도 그리웠다. 살아 돌아갈 이유가 너무도 많은 이승찬 중사였다.
 까앙!
 챙챙챙!
 사방에서 도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검으로 돼지들의 무기와 충돌한 몇몇 대원들이 곤경에 빠졌다.
 이곳 성인 남자의 2.5배의 완력을 가진 돼지들이었다.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뒤로 밀린 것이다.
 이승찬 중사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시커먼 도끼 그림자가 얼굴을 뒤덮으며 머리를 양단할 기세로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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