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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크라잉 1화

2017.03.07 조회 2,120 추천 14


 1. 깨어나다
 
 “정말! 가죽을 이렇게 벗기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하하하. 미안, 미안.”
 “웃지 마요!”
 뾰족한 외침에 무한이 난처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소리를 지른 여인은 그런 무한의 모습에 뭐라 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하하하.”
 “이리 줘 봐요.”
 무한의 손에서 단도를 낚아챈 여인은 가죽을 벗기고 있던 사슴을 자신에게로 끌고 왔다.
 능숙하게 사슴 가죽을 누비는 그녀의 손길에 무한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역시 내 마누라 영인!”
 “칫, 누가 그러면 좋아한데요?”
 “음··· 싫어? 앞으론 칭찬하지 말까?”
 “그··· 그건 아니지만······.”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히는 영인의 모습에 무한은 끝내 한 마리의 짐승이 되었다.
 “어흥!”
 와락!
 “꺄악! 어머! 어머! 누가 봐요.”
 “하하하. 이 외진 곳에 누가 온다고. 그래서 싫어?”
 “뭐··· 그건 아니지··· 칫! 미워요!”
 품에 안겨 눈을 새치름하게 뜨는 영인의 모습에 무한이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로 입술을 가져갔다.
 점점 다가오는 그 얼굴에 영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으음~”
 그녀의 입술을 탐하던 무한은 성이 차지 않는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에 영인이 살짝 놀랐지만, 이내 수줍게 볼을 붉히며 무한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문을 박차며 안으로 들어온 무한은 영인을 조심스레 침상 위에 올렸다.
 그때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사방이 너른 벌판으로 변했고 시체의 산과 피의 강이 흘렀다.
 무한의 목을 꼭 끌어안았던 그 팔은 차가운 핏물에 잠겨 있었고, 맑고 투명하게 빛나던 눈동자는 더 이상 제 색을 찾을 수 없었다.
 “영··· 인··· 일어나. 영인······.”
 불러 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 맑은 옥음은 더 이상 무한을 부르지 않았다. 무한의 어깨가 들썩였다.
 “큭큭큭, 이럴 수는 없어···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무한은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으아아아! 하늘이시여! 왜 나에게 이러십니까! 하늘이시여, 당신이 나에게 이럴 순 없는 것 아닙니까!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으아아아아!”
 
 * * *
 
 퍽! 퍼억! 퍽! 퍽!
 어둠이 어슴푸레하게 스며든 골목에서 한 사내가 소년을 발로 밟고 있었다.
 소년은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리고 맞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소년의 호흡이 가늘어지자 사내가 발을 멈추며 술 냄새 가득한 긴 숨을 뱉어냈다.
 “후우~ 카악! 퉤이! 어디서 거지새끼가 감히··· 다시 한 번 나타나 봐라. 그땐 아주 죽여 버릴 테니까.”
 퍼억!
 마지막으로 소년의 복부를 찬 사내가 비틀거리며 사라지자, 소년은 천천히 식어갔다. 끝내 미약하게 움직이던 가슴도 멈추어버렸다.
 어두운 골목에 침묵이 찾아들자, 사내가 있을 때는 꼬리조차 보이지 않던 시궁쥐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고약한 악취를 내뿜는 시궁쥐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남의 집 담장을 넘는 도둑처럼 살금살금 네 다리를 움직였다.
 잔뜩 긴장한 탓에 귀를 쫑긋 세우곤 수염으로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간 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갑지 않았다. 온기가 다시 느껴지고 있었다.
 머금었던 숨이 다시 튀어나오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으음······.”
 찌지직!
 후다다다닥!
 쥐들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졌고, 소년의 입은 공기를 찾아 크게 벌려졌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빨려 들어간 공기는 소년의 몸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끊어졌던 생의 끈을 다시 이어주고 있었다.
 미약하게 움직이던 눈썹이 끝내 파르르 떨리자, 이윽고 눈이 번쩍 떠졌다.
 “으아아아아!”
 울부짖으며 일어난 소년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살아 있는 건가?”
 등을 파고드는 차가운 한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킨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뭔가 다른데?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 말은 또 뭐지?”
 소년은 계속해서 의문을 토해냈다.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은 인정할 수 없는 하얀 팔이 눈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응?!”
 고개를 갸웃거린 소년이 얼른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땅을 짚고 있는 자신의 팔이었다.
 소년은 자신에게 들이닥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듯 멍하니 자신의 팔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만지작만지작.
 작았다. 얼굴 형태도 달랐다.
 소년의 시선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포대자루 같은 거적이 상체와 하체를 감싸고 있었고, 허리에는 노끈이 허리띠를 대신했다.
 “하아?”
 기가 막힌 듯 어이없어한 소년이 의문이 들어 다시 자신의 몸을 살폈으나 변한 것은 없었다.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듯 말라비틀어진 두 개의 하얀 팔과 다리는 땅바닥의 한기를 머금고 있었고, 거적때기 같은 옷은 여전했다.
 “이게 무슨?”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소년은 순간 머리를 붙잡았다.
 “끄으윽!”
 머릿속으로 급작스러운 기억이 밀려왔다.
 그것은 소년의 삶이었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기억이었다. 겨우 십 몇 년 동안의 정보였지만, 태어나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의 기억이었기에 너무도 방대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꼈던 혼란함부터 죽기 직전의 슬프고, 다행이라는 감정까지.
 폭풍처럼 밀려들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요···한? 뭐지? 이 이름은?”
 소년, 아니 연인의 복수를 위해 정파를 찾아다니며 피의 길을 걷다가 천라지망에 갇혀 죽음을 당한 무한은 낯선 기억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일부를 받아들였다.
 차돌 같은 근육으로 약동하던 팔다리가 이렇게 볼품없이 변해버린 이유를 말이다.
 멍하니 흐려진 눈동자로 주위를 살피다가 몸을 일으키던 무한은 비명을 지르는 온몸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그대로 굳어버렸던 무한은 이내 억지로 가슴을 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뿌드득!
 가슴과 척추에서 억눌렸던 뼈가 펴지며 시원함이 찾아들었고, 무한은 한결 낫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우.”
 숨을 길게 내뱉은 무한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는 모르지만, 등 뒤쪽으로 가면 상당히 안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요한’의 기억이었는데, 기억의 동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전장을 누비면서도 자신의 본능을 믿었던 무한은 앞을 향해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순간 무한은 다시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극심한 고통이 왼쪽 무릎에서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돌린 무한은 안쪽으로 꺾인 무릎을 볼 수 있었다. 꺾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인지 푸른 멍이 감싸여 있었다.
 입꼬리를 비튼 그는 다시 주저앉아 왼쪽 무릎의 아래위를 잡고 비틀어 버렸다.
 우드득!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뼈를 다시 맞춘 무한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까보다 아픔은 덜했다.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골목을 걸어 그 끝에 선 무한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색···목인?”
 적발에 녹발, 금발 등등 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낯선 세상, 낯선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또 익숙했다.
 갑자기 오한이 들었는데, 미지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와 갈 곳 잃은 두려움에 빠진 무한은 구원의 빛을 찾아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덥석!
 
 * * *
 
 “룰루~”
 하루 일당을 받고 즐겁게 귀가하던 롤스는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을 당긴다고 생각하자 눈을 돌렸다.
 그는 거지 몰골인 한 남자의 모습에 좋았던 기분이 와장창 깨지는 걸 느끼며 손을 들었다.
 “에이 씨! 더럽게시리!”
 부웅~
 우악스런 손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순간 무한의 눈이 번뜩이더니 몸이 낮춰지고 손이 뻗어나갔다.
 꼿꼿하게 세워진 무한의 손끝은 어느새 롤스의 목 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한 치만 더 뻗으면 목을 꿰뚫어 버릴 수도 있는 상황.
 “뭐, 뭐야!”
 롤스가 기겁하며 물러섰다.
 ‘저게 조금만 더 뻗어졌으면······.’
 롤스는 다 뻗어지지 않은 무한의 손끝을 보며 오싹해졌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반도 안 되는 꼬마에게 물러섰다는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딴 꼬맹이한테!’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던 롤스는 순간 멈칫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이 웅크린 독사처럼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덜컥.
 “뭐, 뭐야! 주, 죽고 싶어?”
 롤스가 억지로 가슴을 펴며 위협했지만 부질없었다. 이미 꺾인 기세는 살아나지 못했다.
 롤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주춤주춤 물러섰다.
 “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에, 에잇! 빌어먹을 거지새끼! 퉷!”
 롤스는 기분 나쁘다는 듯 거칠게 가래침을 뱉고는 사라졌다. 그러자 무한은 이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큭큭큭, 천하의 악귀대장이 고작 저딴 놈에게 따귀를 맞을 뻔했다니··· 악귀 놈들이 이걸 본다면 나흘 동안 배를 잡고 웃겠군.”
 무한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듯 어깨를 들썩였지만 그 음성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탱!
 “쯧쯧쯧, 어린것이 불쌍하게도······.”
 혀를 차며 걸음을 옮기는 여인을 보며 발끈하려던 무한은 벌떡 일어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쫓아가봤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무한을 향해 다가왔다.
 톡톡.
 무언가가 건드리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던 무한은 옆에 쪼그려 앉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한 소녀의 모습에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꼬마.”
 무한의 싸늘한 말투에 소녀, 엘리아는 움찔했으나 이내 용기를 내어 그의 발치 앞에 떨어진 구리 동전을 가리켰다.
 “너··· 이거 가질 거야?”
 엘리아는 초조한 눈으로 연신 동전을 힐끔거리며 무한을 바라봤다.
 무한은 엘리아가 가리키는, 전혀 보지 못한 양식의 동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동전을 집어 들자 엘리아의 얼굴에 실망이 내려앉았다.
 무한은 참 속마음을 알기 쉽다는 생각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질문에 대답해 주면 이걸 주지. 어때?”
 “저, 정말?”
 엘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에 무한은 엘리아의 눈앞에서 동전을 흔들었다.
 “믿지 못하면 안 해도 되고.”
 “아, 아니! 할게! 무, 물어봐!”
 엘리아는 사력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은 얼른 질문하라고 눈을 빛내는 엘리아의 모습을 보며 눈빛을 진지하게 가라앉혔다.
 “여기가 어디지?”
 “에? 너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거야?”
 엘리아가 무한을 신기한 물건 쳐다보듯 바라보자, 무한이 눈살을 씰룩였다.
 “주지 말까?”
 “칫, 툴룬 성이잖아.”
 “더 자세히.”
 “더 자세히 말하라고 해봤자······.”
 말해주기 싫은 듯 엘리아가 말을 끌자 무한은 동전을 다시 흔들었다.
 엘리아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웃! 크롬슨 제국의 툴룬 성이잖아.”
 “크롬슨 제국의 툴룬 성이라······.”
 답을 찾고자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커녕 머리만 더 혼란스러워졌다. 무한은 일단 몇 가지를 더 질문했고, 엘리아는 무한의 질문에 꽤나 자세히 답했다.
 한참 동안 질문하던 무한은 순간 엘리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크레시아 대륙’이란 말에 이를 악물며 비명을 삼켰다. 또다시 기억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창세신화부터 엘프, 드워프, 드래곤, 수인족 등등 크레시아 대륙의 전반적인 지식들이었다.
 “끄으으으.”
 갑자기 비명을 삼키며 고개를 숙이는 무한의 모습에 엘리아는 덜컥 겁이 났다.
 “왜, 왜 그래? 괜찮아?”
 엘리아가 무한의 어깨를 잡으며 흔들었으나 그의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떠올랐던 기억들이 정리되었고 무한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괜찮다. 자.”
 무한이 어깨를 꽉 잡은 엘리아의 손을 쳐내며 동전을 내밀었다. 엘리아의 눈에 걱정과 갈등이 서렸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엘리아는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고, 고마워.”
 동전을 집어든 엘리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래, 잘 가라.”
 무한은 가려는 엘리아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 뒤 뒤죽박죽인 머리를 잠재우기 위해 눈을 감았다.
 엘리아는 무한을 힐끔거리다 사라졌다.
 엘리아가 사라지고 한참이 흐른 후, 눈을 뜬 무한은 하늘을 바라봤다.
 “중원이 아니고 서역도 아닌··· 크레시아 대륙이라. 큭큭, 웃기는군. 정말 개같이 웃기는 일이야. 하하하.”
 어깨가 들썩이며 한참 동안 웃던 무한은 쓸쓸히 눈을 감았다.
 “다시 태어난 건가.”
 인정할 순 없지만 인정해야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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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작품소개 작가중2병 십오지네 그래서 더맘에든다 먼가 ㅈㄴ미친놈처럼 튀니깐 먼가있어보임 작품소개 로 라임도하시네
2018.04.2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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