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청산지룡

1화

2017.03.10 조회 14,383 추천 194


 프롤로그
 
 
 
 
 “오늘은 뭐 좋은 거 없나?”
 한밤중에 노인으로 보이는 노숙자가 골목에 있는 재활용품을 뒤지고 있었다.
 노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50대 중반인 이강산이라는 남자였다.
 새벽이면 청소차가 모두 실어 가기에 쓰레기와 재활용품 중에서 쓸 만한 것을 챙기려면 한밤중에 뒤져야 한다.
 “오! 심봤다.”
 이강산은 소주가 반이나 들어 있는 병을 하나 발견하고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인생을 포기한 그에게는 밥 한 그릇보다 소주 한 잔이 더 소중했다.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종이 상자들을 모아서 가져가 소주 한 병값은 벌었을 것이다.
 벌컥! 벌컥!
 “크! 좋다.”
 소주를 단숨에 비운 이강산은 비틀거리면서 또 다른 먹이를 찾아서 돌아다녔다.
 이강산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에서 태어나 국립대학인 충남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인재였다.
 82번 학번인 그는 군대를 갔다 와서 졸업하기도 전인 88년도에 아버지의 도움으로 시골에 있는 사과 과수원과 소를 팔아서 대전에 컴퓨터 학원을 차렸다.
 이강산은 모두 120대의 8비트 컴퓨터를 사서 동기 네 명과 함께 학원을 운영하여 6개월간 문전성시를 이루었었다.
 결혼도 하고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았지만 바로 망했다. 다음 해인 89년도에 8비트 컴퓨터가 사라지고 16비트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8비트 컴퓨터와 16비트 컴퓨터의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컴퓨터가 286, 386, 486 등으로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때문에 16비트 컴퓨터가 있는 학원으로 수강생들이 모두 떠나면서 그의 첫 번째 사업은 망했다.
 이강산은 사업이 망하자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컴퓨터 전산실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때는 아버지와 동생들에게 용돈도 주면서 장남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대출과 퇴직금과까지 끌어다가 주식을 했고, 이것도 쫄딱 망해서 빚이 2억이 되었다.
 이강산은 빚을 갚기 위해 게임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하지만 직장 상사가 배신을 하여 그것을 회사의 것으로 만들고 그는 승진을 하였다.
 이강산은 항의를 했지만 파면되어 회사에게 쫓겨났다. 억울해서 고소를 했고 결국 법정 싸움으로 번졌다. 법정 싸움의 결과 패소하고 변호사 선임비로 인해서 빚만 더 늘어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이강산의 아버지가 지역 유지인 친구에게 땅을 담보로 급전을 빌렸는데 그것이 사기였다.
 남아 있던 땅마저 모두 잃은 이강산의 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이강산의 부인은 친정의 돈까지 모두 끌어다가 남편의 빚을 갚았지만 법정 싸움의 패소로 남편의 빚도 다 갚지 못하고 친정까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결국 친정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부모님이 월세로 전전하면서 폐지를 모으면서 살자 이강산의 부인은 우울증에 걸렸다.
 이강산은 파산 신청을 하고는 재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따라다니는 채무자들 때문에 집에 있을 수 없었다. 파산 신청을 했기에 법적으로는 돈을 갚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채무를 대신 받아내는 용역 업체의 독촉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강산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막노동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벌었다.
 그런 이강산에게 들려온 소식은 집에 혼자 있던 아내가 계속해서 찾아오는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다가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했다는 비보였다.
 이때부터 이강산은 인생을 포기하고 노숙자로 살아왔다.
 그래도 한 가지는 마음에 품고 있었다. 바로 자신을 막장으로 몰아넣은, 직장 상사였던 원수 이완구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이건 뭐지?”
 이강산은 재활용품 더미 안쪽에서 포장되어 있는 박스를 발견했다. 택배를 그냥 버린 것 같았다.
 박스를 개봉하자 안에서 가상현실 3D 안경 헤드세트가 나왔다.
 “심봤다!”
 이강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SG로고가 선명한, 초거대 기업이 최근에 개발한 고가의 가상현실 게임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고가의 제품이 왜 버려졌지? 고장 나서 버린 건가? 그럼 작동 안 되는 거 아니야?”
 이강산은 거의 30년 동안 컴퓨터와 게임과 관련된 것을 공부했다. 때문에 게임과 컴퓨터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가상현실 3D 안경인 헤드세트도 잘 알고 있었다. 작동만 된다면 팔아서 소주 수천 병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어! 작동되네.”
 이강산은 안경을 쓰고는 게임에 접속했다.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을 시작······.
 퍽!
 이때 또 다른 노숙자가 다가와서 벽돌을 들더니 이강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자 이강산의 머리에서 피가 터지면서 그의 몸이 재활용품 쓰레기 더미로 쓰러졌다.
 ‘이렇게 죽는 건가? 으으! 복수해야 하는데!’
 이강산은 갑자기 뒤통수에서 화끈한 고통이 느껴지면서 몸이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박스가 쌓여 있는 쓰레기 속에 넘어진 이강산은 손으로 3D 안경을 벗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강산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자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자신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대부분은 후회와 억울함, 분노로 점철되어 있는 인생이었다.
 가장 먼저 이완구의 얼굴이 가장 선명하게 보였다.
 이강산이 노숙자로 하루하루를 견디면 산 것은 그의 업적을 가로채고 승진한 이완구를 때려죽인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첫 패배가 된 컴퓨터 학원이 생각났다. 또한 아버지의 땅을 사기로 빼앗은 사기꾼 배민동의 비열한 웃음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죽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혼자 남은 어머니와 자신의 동생 부부와 조카들 얼굴들도 떠올랐다.
 정말이지 분노와 후회만 남은 인생이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강산은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후회를 하였다. 그리고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그의 귀로 인생의 마지막 친구이자 노숙자인 허만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만수가 왜 나를?’
 노숙자 동료로, 돈이 생기면 항상 같이 술을 사서 나누어 마시는 인생의 마지막 친구가 허만수다. 그런데 그런 인생의 마지막 친구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허허!’
 이강산은 노숙자로 전전하다가 결국 뒷골목에서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에 짙은 후회를 하며 숨을 거두었다.
 “이 자식이 감히 누구 영역을 넘봐. 그런데 이거 팔면 돈이 되려나?”
 허만수는 이강산과 오랫동안 대전역에서 살았던 노숙자다. 이강산이 심봤다고 외치는 소리에 이끌려 왔다가 술기운과 욕심에 눈이 멀어 사고를 친 것이었다.
 입에서 술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노숙자 허만수는 쓰러진 이강산의 얼굴에서 3D 안경을 빼서 상자에 넣고는 비틀거리면서 골목에서 사라졌다.
 
 
 88년? (1)
 
 
 
 
 “으! 머리야.”
 이강산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정확히 말하면 숙취였다. 그러다가 술이 확 깨는 생각이 났다.
 3D 안경을 쓰고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해서 튜토리얼을 하려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다.
 “여, 여기는 어디지?”
 이강산의 눈에 보이는 것은 대전역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이 아니라 허름해 보이는 작은 방이었다.
 작은 냉장고와 옷장, 책상이 있는 방으로, 어디선가 많이 보던 방이었다.
 벌컥!
 작은 냉장고를 열자 김치와 반찬통이 몇 개 보였다. 그리고 물을 담아 놓은 물병도 있었다.
 이강산은 플라스틱 물병의 주둥이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그러자 숙취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정신이 들었다.
 “내 손은 왜 이래?”
 노숙자도 매일 대전역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다. 어느 정도 옷차림도 신경 쓰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아야 대전역에 있는 직원들이나 경찰들에게 쫓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을 포기한 노숙자가 씻어 보았자 얼굴만 씻기에, 가까이 가면 냄새가 나고 손톱은 새까맣다. 그런 그의 손이 목욕을 하고 손톱을 다듬은 것처럼 깨끗했다.
 “······!”
 거울을 본 이강산은 경악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 내가 젊어졌다. 그리고 저건 또 뭐지?”
 50대 후반의 노숙자인 자신이 20대의 팔팔한 청춘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청색의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강산은 눈을 껌뻑이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약 10초 정도가 지나자 다행히 청색의 기운은 사라졌다.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벽에는 커다란 달력이 있었다. 1988년도 달력이었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니 어디서 본 방인지 떠올랐다.
 “내가 충남대학교 다닐 때에 지내던 자취방 같은데?”
 달력을 보자 이강산은 인생에서 가장 자신만만하고 즐거웠던 때가 생각났다.
 그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와서 복학을 하였다. 그리고 그때 만난 2년 후배인 김지은과 사귀기 시작했다. 김지은은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
 많은 친구들의 질시를 받은 이강산은 졸업하고 나서 두 달 있다가 4월 초 봄에 결혼했었다.
 신혼부부인 두 사람은 사업에서 성공한 후에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했었다. 그 결정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마지막까지 아이가 없었다.
 사업이 망했고 조금 좋아지다가 바로 더 안 좋아졌기에 결국 아이를 낳을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되었다.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그녀가 우울증에 안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했던 이강산이다.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온 것인가?”
 한참 후에야 이강산은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꿈이라도 좋았다.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핸드폰은 없나?”
 이강산은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다. 하지만 방에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었다. 이때는 전화를 하려면 공중전화를 사용해야 했다.
 “아! 88년도에는 핸드폰이 없었지!”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찾던 이강산은 그제야 이 시기에는 휴대폰이 없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가 대전 변두리에 있는 주택이었지?”
 이강산은 대학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 그대로 대전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고등학교 때에 자취를 했던 집이 월세가 저하했고 독립된 별채라 대학교도 이곳에서 다녔던 것이었다.
 드르륵!
 미닫이 방문을 열자 주택의 마당이 보였다.
 주인집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별채가 그의 집이다.
 왼쪽으로 가면 마당 구석에 좌변기가 아닌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별채인 이강산의 집에는 작은 재래식 부엌이 붙어 있다. 부엌에는 석유곤로가 있었다.
 “으! 냄새.”
 이강산은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는 인상을 쓰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하!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그래도 노숙자로 살 때에 비하면 천국인가?”
 이강산이 방을 다시 둘러보니 방구석에 전기밥솥과 전기로 국이나 물을 끓일 수 있는 조리 도구가 있었다. 석유곤로에서는 계란 프라이나 볶음 요리를 했고, 밥은 전기밥솥에 했었던 기억이 났다.
 “추운 것을 보니 초겨울인가?”
 88년도의 일은 기억이 났다. 대학교 졸업반으로, 88올림픽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취직을 할 것인지 사업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하던 해였다.

댓글(12)

스테비    
노숙자로 지독한 냄새에 찌들어 살든게 하루전인데 변기냄새에 찡그리는건 아니라고 보오
2017.03.21 15:10
통금시간    
자기 몸에서 악취가 나면 코가 익숙해져서 못느끼겠지만 깨끗해진 몸이면 잘 맡겠죠. 잘봤습니다.
2017.03.24 23:35
알디디    
퇴직금과까지? 퇴직금까지 인듯. '심봤다'는 산에서 외쳐야지, 도시에서 외치니 잡놈들이 몰려오는듯 ㅋ 잘 봤어요.
2017.03.25 01:32
브라이언    
88년도 올림픽을 기점으로 xt가 많이 팔리기 시작했죠. 가격때문에 Apple II하고 msx가 같이 팔려서 그렇지. 89년이면 at 슬슬 팔릴 시점입니다.
2017.03.30 19:06
더마    
강산이가 나랑 동기네 82학번 ㅋㅋ 나는 다시 돌아가기 싫음 공부 다시한다는게 ㅠㅠ
2017.04.04 13:57
박카스500    
이걸 유료로요?
2017.04.04 19:28
홀어스로스    
이런걸 유료로 본다고.......?
2017.04.06 10:13
하힛    
ㅋㅋ 심각하다
2017.04.06 14:05
행운남자    
저당시엔 대학생, 그것도 국립대면 공부 엄청 잘했던 사람인데 인생이 파란만장하군요.
2017.05.08 19:11
난독    
죽음에서 과거로 돌아갔는대 음 과거로 돌아온건가? 로 끝이군요 회귀가 흔한 세상인가바요... 누구나 일어날수 있는 그런일인가?
2017.05.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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