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기도
오딘이시여······.
당신의 사랑을 베풀어야 할 제 손은 피에 젖었고,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아야 할 제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찼으며,
당신의 자비를 말해야 할 제 입은 죽음만을 노래하고 있나이다.
제 손은 피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제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은
주군의 포크조차 피로 젖게 만들었습니다.
복수를 위해 자비를 감추고
증오로 뒤덮인 제 심장에는 피조차 돌지 않으니······.
오딘이시여······.
당신의 종인 저를 선봉으로 세워
신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을 응징하게 하시고,
그들에게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죽음으로 당신을 향해 나아갈 때
참회의 강을 건너게 하지 마시고,
오직 죽음으로 저의 영혼을 불태우소서.
제발 저를 용서하지 마소서.
오딘이시여······.
당신의 자비를 잃어버린 자들과 무고한 자들에게는
당신의 자비를 알게 하시고,
당신을 저버린 자들과 사악한 자들에게는
당신의 분노를 느끼게 해주소서.
저는 자비의 날개를 가슴에 묻고
죽음의 망토로 몸을 가리겠나이다.
아픔을 가슴에 묻어버린 자의 기도 중 한 구절
1. 새로운 만남
[성력 618년(제국력 603년) 8월]
크고 작은 분수대와 아름다운 정원수로 둘러싸인 거대한 신전이 오크나무와 퍼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을 등진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감싸는 것처럼 세워진 오층의 건물과 이십여 채의 크고 작은 건물, 그리고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수련장!
이곳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팔라딘(Paladin)들의 요람지 오세르와 신성국의 데우스 성기사단 본부였다.
그곳의 정문에 6~8세 정도의 소년을 대동한 귀족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다란 크기와 화려한 외장을 자랑하는 사두마차를 타고 왔으나, 가끔은 초라한 모습의 마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고, 아주 보기 드물게 마차가 아닌 말을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부와 작위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정문에 도착한 그들이었으나, 정문에 도착한 후의 그들의 모습은 모두 동일했다.
마차나 말이 정문에 도착하는 순간 그들은 서둘러 자신들이 타고 온 이동수단에서 내렸고, 정문을 지키고 있는 팔라딘의 지휘에 따라 수습기사인 종사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본부 건물의 우측에 있는 수련장,
가벼운 흥분과 약간의 두려움을 드러낸 마흔두 명의 소년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그곳에 밝게 빛나는 몸을 형상화한 데우스 성기사단의 문장이 새겨진 휘장을 두른 호타이르 쟈크베론 단장이 같은 문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네 명의 팔라딘과 백색 로브를 걸친 세 명의 사제와 함께 나타났다.
2m의 키에 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트린 호타이르 쟈크베론 단장은 대륙에 존재하는 스물두 명의 소드마스터(Sword Master)와 비슷한 수준으로 인정받는 두 명의 팔라딘 중 한 명으로,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를 세이버처럼 가볍게 휘두르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호타이르 쟈크베론 단장이 단상에 오르자 수련장을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3년을 주기로 교육생을 받아들이는 데우스 성기사단이 오늘로써 백 번째 교육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저희 기사단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가볍게 고개를 숙인 쟈크베론 단장은 이내 고개를 들어 강렬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 우리는 신들 중의 왕이며 우리를 보호하시는 오딘 님의 아들을 새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들은 오딘 님의 권위를 지키며 의지를 표명하는 자로 키워질 것이고, 교육이 끝나면 한 명의 팔라딘으로 오딘 님과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한 후 잠시 주위를 둘러본 쟈크베론 단장은 다시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 오신 분들께서는 이곳에 있는 오딘 님의 아들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을 끝낸 쟈크베론 단장이 오른손을 가슴에 대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서 일어서 단장의 말을 듣던 귀족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그의 인사에 답례를 하였다.
쟈크베론 단장이 손을 내리며 수련장 안에 서 있는 소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너희들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오딘 님을 모시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신학과 문학을 배워 신을 따르는 방법을 배울 것이고, 승마와 무술을 배워 신의 뜻을 수호하는 자로서의 능력을 갖출 것이다.”
단장을 바라보는 교육생들의 눈에 강한 의지가 감돌기 시작했다.
“또한 각 나라의 언어와 귀족간의 예의, 그리고 춤과 노래를 배워 팔라딘으로서의 품위도 갖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너희들의 노력에 달렸다는 것을 명심하고 한시도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수련장 안에 서 있던 마흔두 명의 미소년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예!”
쟈크베론 단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단상 아래에 서 있는 금발의 팔라딘을 불렀다.
“호미사드 부단장!”
금발의 팔라딘이 몸을 뒤로 돌리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이제부터는 부단장이 맡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난 호미사드 부단장은 곧바로 몸을 돌려 교육생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너희들은 귀족이 아닌 데우스 성기사단의 교육생이다. 종사가 되기 전까지는 이곳을 나갈 수 없으며,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날도 ‘오딘의 날’과 왕국 창립 기념일에 불과하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하는 소년들 사이에서 유난히 특별해 보이는 두 명의 소년이 보였다.
한 명은 파란 창공처럼 빛나는 푸른색 머리카락과 혜지가 번뜩이는 금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으로 여덟 살 정도 먹어보였고, 다른 한 명은 금발에 금빛 눈동자를 가진 여섯 살 소년이었다.
이처럼 미소년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용모를 가진 두 명의 소년이었으나, 그들의 옷차림은 천양지차였다.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은 온갖 보석으로 뒤덮인 아이보리색 정장을 걸치고 있었으나, 금발의 소년은 아무런 장식도 없는 백색 정장을 걸치고 있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명의 소년은 옷차림조차 무시할 수 있는 특별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단상에 서서 교육생들을 바라보던 쟈크베론 단장도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딘 님의 은총을 받은 아이를 내 대에서 두 명이나 볼 수 있다니······. 데우스 성기사단, 아니 성왕 전하의 홍복이구나.’
쟈크베론 단장이 이런 생각을 하며 나머지 교육생들을 살펴보고 있는 사이 호미사드 부단장은 교육생들에게 몇 가지의 주의사항을 전달했고, 그것이 끝나자 교육생들을 이끌고 수련장 근처에 있는 삼 층짜리 건물로 향했다.
여러 장의 지도가 사방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교실에 특별한 느낌을 주는 두 명의 소년이 포함된 마흔두 명의 교육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 순간 자리에 앉아 있는 소년 중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커 보이는 체격을 가진 소년도 있었고,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롭게 느껴지는 소년도 있었으며, 차분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소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느낌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기에 왠지 모르게 어설퍼보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보통 능력의 소유자가 아님은 분명했다.
이런 소년들이 시선을 집중된 곳에 백색의 사제복을 입은 노사제가 서 있었다.
“나는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이름은 요르본이라고 한단다. 초급 과정 동안 너희들의 담임을 맡게 되었으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오너라. 알겠느냐?”
“예.”
소년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요르본 사제가 환하게 웃었다.
“너희들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도 밝아지는 것 같구나. 그럼 이제 너희들이 배우게 될 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소년들의 시선이 일제히 요르본 사제를 향했다.
“너희들은 초급 과정에서 기초적인 검술과 기본적인 신성마법, 그리고 각 나라의 언어와 대륙공용어를 배우게 될 것이고, 중급과정에서는 신학과 문학, 승마술과 각종 무기술, 그리고 활용이 가능한 신성마법과 검술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한 후 교탁에 놓여 있는 물 잔을 들어 한 모금의 물을 마신 요르본 사제는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어 나갔다.
“모든 과목은 따로따로 월반할 수 있으며, 월반된 과목에 한해서는 상위 과정을 배우는 사람들과 동일한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전체 과목을 모두 월반하지 않은 이상 기숙사와 담임은 그대로 유지되니 착오 없기를 바란다.”
요르본 사제가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너희들에게 질문할 시간을 주겠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중에서 이해가 가지 않거나,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허심탄회하게 물어보도록 해라. 질문 있는 사람!”
요르본 사제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학생들이 그제야 조금 여유가 생긴 듯 밝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푸른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앙크레트 모토비안입니다.”
‘모토비안 공작님의 아들이 오딘 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천재라고 하더니······ 오히려 소문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모토비안을 쳐다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요르본 사제는 애정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이곳을 거쳐 간 교육생 중 가장 짧은 기간에 수련기사에 오른 분의 성함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곳에서 지낸 기간도 알고 싶습니다.”
요르본 사제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빙긋이 미소를 짓더니,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교실에 앉아 있는 소년들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조용한 음성으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교육을 이수하는 기간은 평균 12년이다. 물론 7년 만에 모든 과정을 끝낸 사람도 있고, 15년이 걸린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훌륭한 팔라딘이 되는 것은 이수하는 기간이 길고 짧음이 아니라, 교육생으로 있는 동안 얼마나 배움에 충실하였는가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맨 앞자리에 앉은 붉은 머리의 소년이 손을 번쩍 쳐들었다.
“선생님! 쟈크베론 단장님은 몇 년 동안 공부했어요?”
요르본 사제가 다시 빙긋이 웃더니 차분한 시선으로 질문을 한 소년을 쳐다보았다.
“대답을 들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분은 14년 동안 이곳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지금 그분은 오세르와 신성국의 최고의 팔라딘이며, 대륙 내에 존재하는 스물두 명의 소드마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두 명의 팔라딘 중 한 분이시다. 그러니 너희들도 그분처럼 이수하는 기간보다는 배움에 충실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요르본 사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시선을 앙크레트에게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너의 물음에 답을 해주지 못했구나. 그럼 이제 너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마.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교육생 중 가장 빨리 교육을 마친 분은 71회 교육생이셨던 포데라즈 님이고, 그분이 교육을 받은 기간은 7년이다. 그럼 다음 질문.”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롭게 느껴지는 소년이 손을 들었다.
“저는 나바르토 후작가의 르카니온 나바르토입니다. 포데라즈 님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기사 서임을 받지 않은 채 신전 뒤에 있는 숲에서 무술만 연구하고 계시는 분이니, 내가 어떤 분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구나. 나중에 너희들이 고급과정에 오르면 한번 찾아가 뵙도록 해라. 아직까지 그분에게 무술을 전수받았다는 사람은 없지만, 너희들이 운이 좋으면 그분에게 무술을 전수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질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차분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소년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래! 너는 무엇이 알고 싶으냐?”
“포트라폰 공작가의 유카르도 포트라폰입니다. 저는 기사보다는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사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요르본 사제가 빙긋이 웃었다.
“기사 교육생이 사제가 되겠다고 하다니······. 네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이곳에서는 사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방법이라면 오직 하나, 중급과정을 모두 마친 후 사제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사제 입문을 위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니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시험은 학식을 물어보는 것입니까? 아니면 믿음을 검사하는 것입니까?”
“초급과정도 마치지 않은 너에게 그것까지 설명해줄 수는 없을 것 같구나. 그러니 초급을 마친 후에도 지금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때 나를 찾아오너라. 자세히 설명해주마. 알겠느냐?”
“예.”
“좋다. 다음 질문.”
“.............”
소년들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은 채 반짝이는 두 눈으로 요르본 사제를 쳐다보았다.
요르본 사제가 밝은 미소를 입가에 띠며 다시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질문할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기숙사를 배정하겠다. 방 번호하고 이름만 부를 것이니 잘 듣도록 해라.”
그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낸 요르본 사제는 낮은 목소리로 그것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409호 앙크레트, 카세비치, 호세룬, 바사톤, 410호 수비나르······. 411호 유카르도, 르카니온, 아르히센, 하토칸, 412호······.”
소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같은 방에 배정된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고, 잠시 후 네 명씩 모인 소년들은 교실에 군데군데 모여 자신들의 성과 이름을 말하거나 아버지의 작위를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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