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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유고 1화

2017.04.10 조회 2,357 추천 17


 序 章.
 
 
 휘이잉!
 살을 에는 듯한 서북풍이 좁은 골짜기를 스쳐 간다.
 겨울의 막바지에서 삭풍에 몸을 떠는 나뭇가지들이 애처로이서 있다. 이파리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는 누렇게 말라 죽어 겨울과는 또 다른 의미로 황량한 정경을 대변했다.
 골짜기 전체가 죽음이란 말을 떠 올리게 만든다.
 나무들은 고사(枯死)했고, 바위들은 누런빛으로 물들었으며, 한쪽에서 졸랑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에서도 심한 악취가 풍긴다.
 "제길! 도저히 믿을수 없군. 한겨울에 독나방이라니..."
 한승(韓承)은 버릇처럼 중얼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승! 입 열지 마라, 죽음과 입맞추기 싫으면!"
 만야(萬夜)는 긴장으로 굳어진 신색을 풀지 못한 채 옆 사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를 던졌다. 그리고 이내 픽 웃고 말았다.
 '실없는 말. 말하지 않고는 살수 없는 친구...'
 과연 말이 끝나자마자 한승의 입에서 반박이 튀어나왔다.
 "이놈아! 오지랄 넓은소리 좀 작작해라, 잊은..."
 "모두 조용히 해!"
 싸늘히 터져 나온 일성에 한승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앙숙처럼 서로 으르렁대던 만야와 한승의 말문을 닫아 버린 흑의청년, 당영지(當英智).
 당문주(當門主) 당기룡(當基龍)에게는 조카가 된다.
 당문(當門) 십절(十絶)중 한 명인 염라독객(閻羅毒客) 당치대(當治擡)의 아들로 성격이 냉휴하며 잔인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을 소유했다.
 전위대(前衛隊) 중에서도 당영지가 이끄는 제십칠력(第十七力)
 이 수 많은 싸움에서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던 이유는 그의 역량에 힘입은 바가 컸다.
 한승과 만야는 당영지의 일갈에 숨소리마저 죽였다. 당영지가 입을 열 때는 반드시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당영지는 뒤따르는 제십칠력 대원 일곱 명을 위엄 어린 눈길로 돌아본 후, 거대한 고목 한 그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첫 번째 희생자 촌로(村老)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다."
 순간 칠 인은 당영지의 말을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틀림없었고, 생사지경에서 목숨을 구해 주는 금과옥조(金科玉條)였다.
 "우리는 혈반사접(血班死蝶)은 물론 유충까지 제거해야 한다.
 나무 줄기나 구멍 나무껍질 밑 바위름 등을 유심히 살펴 나간다. 해독약이 없는 치명적인 독이니만치 특별히 주의해라!"
 당영지는 해독약이 없다는 말에 특별히 강한 억양을 주었다.
 출발할 때부터 부담스런 부분이 그것이었고, 실제로 혈반사접의 독에 중독 된다면 대처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가자!"
 말을 마친 당영지는 조심스럽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헉! 저, 저것..."
 한승은 바위 틈새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성을 토해 냈다.
 집채만한 바위 아래 만들어진 조그만 틈새에는 전신을 붉은 반점으로 뒤덮은 토끼 한 마리가 죽어 있었고, 아름다운 나방이 그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나방이니 그토록 찾던 혈반사접이 틀림없었다.
 독접(毒蝶).
 몸빛은 청색이었다. 날개는 황색이되 투명했으며 특히 앞날개에는 거미줄 갈은 검은 띠가 보였다. 다리에는 긴 강모(剛毛)
 가 발달했고, 보통 나비보다 세 배는 통통했다.
 한승이 놀란 것은 독접의 거대하면서도 아름답고 또 특이하기까지한 모양새 때문이 아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징그러운 더듬이를 휘저으며 토끼의 살을 갉아 먹는 독접. 아니, 갉아먹는 것이 아니었다. 살점이 패였다 싶은 순간 독접은 산란관을 틀어 박고 통통한 배를 움찔거렸다.
 산란중이었다.
 혈반사접이란 이름에 걸맞게 산란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유충들은 죽은 토끼에 기생하며 성장하리라. 그리고 어느 날 누에 껍질을 벗고 황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펴리라.
 죽음의 날개를...
 "움직이지 마라!"
 갑자기 옆에서 얼음장처럼 싸늘한 한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린 한승의 눈에 극히 조심스런 동작으로 품에서 묵빛 대롱과 투명한 옥병을 꺼내 드는 당영지의 모습이 비쳤다.
 "탈혼망(奪魂網)!"
 한승은 다시 한번 놀랐다.
 사천 당문이 구파일방(九派一幇)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물론 가공할 독술과 빠르고 강한 암기술에 기인한다. 하지만 제삼실(第三室)에서 만들어 낸 병기의 효용도 일조를 한 것만은 틀림없다.
 탈혼망(奪魂網).
 흑죽(黑竹)으로 만들었으며, 길이는 일 척(尺) 모양은 죽소(竹簫)와 흡사해 평소에는 품속에 갈무리하고 다닌다.
 탈혼망의 진가는 손잡이에 부착된 단추 두개에서 시작된다. 밑단추를 누르면 죽소는 길이 이 장으로 늘어나며 끝부분에서 방원 오척의 거대한 그물이 펼쳐진다. 그물은 사금(砂金)을 먹인 은사(銀絲)로 만들어져 어떤 고수일지라도 걸려들기만 하면 전신의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
 더욱 무서운 점은...
 윗단추를 누르면 죽대(竹帶)와 그물망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라. 사금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고통을, 전신이 절편처럼 조각나는 고통을...
 원래는 날쌔고 독성이 강한 독물을 채집하기 위하여 만들었지만 당문 칠병(七兵) 중 하나가 되고 만 병기였다.
 당영지는 손가락을 들어 몇 곳을 가리켰다.
 "맙소사!"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던 대원들은 몸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언제 날아왔는가!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름다운 날개를 퍼덕이며 앉아있는 수십 마리의 독접들.
 일류고수도 흉내내지 못할 기습(奇襲). 그랬다. 지금 당문 제십칠력은 독접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였다. 설사 투혼망이 하늘을 가린다 해도 독접 수십 마리를 상대할수는 없을것 같았다.
 "제길! 틀렸군."
 한승은 가볍게 한마디 내밸으며 품속에서 누런 옥병을 꺼내 들었다. 자결용(自決用) 혹은 동귀어진용(同歸於盡用)으로 늘 품 속에서 잠자고 있던 부시독(腐屍毒).
 독접의 무기는 날개 가루, 일제히 수십 마리가 날아오르며 독접분(毒蝶粉)을 흩날린다면 살아날 가망이 전무했다. 더욱이 피독약은 고사하고 해독약조차 없지 않은가, 죽음을 두려워 않는다면 살상 범위가 넓은 독이 검보다 나으리라.
 사방을 에워싸고 빨간 눈알을 희번덕거리는 독접들은 날개를 곧추 세웠다. 일제히 날아오를 채비를 갖춘 것이다. 붉은 눈알로 중인을 노려보며 날개를 퍼득이는 모습이 귀기스럽기까지 했다. 우두머리가 있어 영도를 받듯 일사불란한 모습이었다.
 당영지의 날카로운 눈매는 수십 마리 중 한마리를 찾고 있었다.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는 한 마리, 바로 독접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였다.
 푸드득...!
 이윽고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곧 이어 독접 수십 마리가 뒤따르며 일행을 급습했다. 상황은 급박해졌다. 하늘을 가려 버린 독접 무리, 그리고 실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붉은 운무(雲霧).
 이미 탈혼망으로 상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저놈!"
 일성과 함께 탁, 하는 소리가 울리며 은빛 망이 하늘을 가렸다. 제일 먼저 떠오른 한 마리 그놈을 잡으면 무리들의 질서가 깨질 테고 살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다.
 독접들 중 삼 할은 탈혼망에 갇힌 듯 했다. 순간, 당영지는 이장너머에서 유독 큰 날개를 퍼덕이는 한 마리를 봤다. 그놈의 눈알은 빨갛다 못해 자줏빛으로 죽은 듯 했다.
 '실수...저놈인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인가! 코가 얼큰해지고 목구멍이 따끔 거리면서 속이 메스꺼웠다. 독접분이 체내에 들어온 증상이었다.
 '호흡을 멈줬는데...당했다.! 어떻게...?'
 당영지는 사막 한가운데 내동댕이쳐진 듯 심한 갈증을 느꼈다. 구척 거한이 목덜미를 힘껏 움켜쥐는 느낌이랄까?
 '한마리라도 더...죽여야 해.'
 당문을 떠나올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포(拿捕)해 오라고 말한 문주의 음성이 귀에 윙윙거렸지만, 독접을 제거하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기어이 한승이 목을 쥐어 뜯으며 쓰러지더니 눈을 뒤집고 말았다. 하얗게 돌아간 눈가에 혈기(血氣)가 치밀고 전신은 열꽃으로 뒤덮였다.
 그의 손에서 굴러 떨어진 옥병은 마개조차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순식간에 중독된 것이다.
 "컥!"
 쿵! 쿵...!
 십칠력 대원들이 차례차례 무너졌다.
 '몰살...내 부주의....'
 당영지는 심한 자책감에 눈가를 씰룩였다.
 가장 빠른 검을 지녔던 만가(萬家)의 최고기재 만야가 죽었다.
 세심한 성격으로 예측 못 할 계략을 창출하던 한가(韓家)의 두뇌 한승 역시 죽었다.
 자신의 혈족(血族)인 당명일(唐明日). 가장 현란한 암기술을 자랑하던 풍가(風家)의 소가주(小家主) 풍단(風端)...
 모두 죽어 칙칙한 대지에 몸을 뉘었다.
 '드디어 심장까지...'
 전신 내력을 끌어올려 독기에 대항했지만 이제는 화타(華陀)가 환생 한다 해도 살 수 없는 몸이란 걸 알았다. 사지가 마비되면서 정신이 아득해지고 경물이 꿈속에서 처럼 흔들거린다.
 츠츠측!
 당영지는 마지막 사력(死力)을 다해 천근 무게로 느껴지는 탈혼망 윗단추를 눌렀다.
 푸드덕!푸드덕...!
 탈혼망에 갇힌 혈반사접 십여 마리가 성난 듯 마구 날갯짓을 해댔으나 결국 점점 좁혀드는 은사에 몸이 찢어져 나갔다. 하지만 당영지 역시 가슴을 할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몸을 뉘고 말았다.
 
 
 第一章. 재활(再活), 삶의 의미
 
 
 ( 一 )
 당기룡은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묻고 회의청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침중한 표정으로 지켜 보았다. 간혹가다 가벼운 목례를 보내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천년 화강암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장내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로 들릴 만큼 고요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없이 앉아 있던 당기룡이 한참 만에야 몸을 움짇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형산(衡山) 독접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소. 그리고 십칠력이 몰살당했소."
 극히 낮은 저음 그러나 중인들은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았다.
 제십칠력 그들이 누구인가? 단 여덟 명이지만 웬만한 중소문파 한개쯤은 하루 아침에 말살할 수 있다는 사천 당문의 자랑이 아니던가.
 그들이 몰살당하다니 생사대전(生死大戰)도 아니고 겨우 독접 몇 마리 채집하는 도중에...
 전위대주(前衛隊主) 암안독살(暗眼毒殺) 당천우(唐天宇)는 사전에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두눈을 내리깐 채 깊은 침묵을 지켰다.
 비로소 중인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문주, 그들이 어떻게 몰살 당했는지 경위를 말씀해 주시겠소?"
 경악이 채 가라앉지 않은 음성으로 입을 뗀 사람은 제일실(第一室) 만채실(萬採室)의 실장(室長)인 만초신의(萬草神醫) 당중화(唐仲和)였다.
 만채실은 천하에 산재한 독초,독충,기약영초(奇藥靈草)를 채집하는 일이 주업무였다. 그러기에 형산에 나타난 독접 또한 간과할 수 없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독성을 가진 나방의 출현, 막연히 절정고수가 아니면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전위대원을 파견해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십칠력이 몰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의 눈길은 유명원주(幽冥院主)인 염라독객 당치대에게 돌려졌다. 당영지를 잃은 당치대는 무심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지만 자식 잃은 고통이 은연중 풍겨 나왔다.
 한참 덜 떨어진 자식도 잃으면 애달픈 법인데 하물며 당영지는 당문 차기 문주로 촉망받던 뛰어난 걸물이었으니...
 "형산(衡山) 무애곡(無崖谷)은 혈반사접으로 인해 접근할 수 없는 상태인지라 자세한 내막은 알수 없소. 하지만 십칠력이 투입된 지 열흘이 지났다면..."
 중인들은 낯빛을 굳히고 말을 잊었다.
 독과 더불어 살아 온 사람들, 어디 독물 채집이 한두 번이던가 독지(毒地)에 들어가 열흘 동안 나오지 못했다면 필사(必死)라 단정 짓는 것이 관례였다.
 "당영지..아들놈은 떠나기 전에 탈혼망을 챙겼소. 그런데도 당했다면...예사 독접이 아니오."
 염라독객 당치대가 눈을 내리깐 채 담담한 음성을 흘렸다. 애써 무심하려는 모습이 오히려 가슴을 저몄다. 하지만 중인들은 그런 감상에 젖을 틈이 없었다.
 "탈혼망! 탈혼망까지..."
 제삼실(第三室) 암기실장(暗器室長) 천수나천(千手拿天) 당두감(唐豆鑑)은 너무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당문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전위대 그 중에서도 역주 이상만이 소지하는 병기 탈혼망. 방원 다섯 척을 휘감는 탈혼망이라면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했단 말인가!
 탈혼망이 실전에 사용된 예(例)는 단 두번 있었다.
 고주(高州) 전투(戰鬪).
 십 년 전 당시 신흥문파 오도문(五刀門)은 환(幻) 과 법(法)을 배제한 실전 도법으로 귀주성(貴州省) 북부 지역에서 파죽지세(破竹之勢)의 기세를 떨쳤다.
 문도수가 육백 명에 이르자 사천 남부지역을 건드리게 되었고 마침내 고주에서 당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당문은 오도문을 가볍게 생각하여 전위대 중 제일 오,구,십이력 삼십이 명만 출동시킨 상태였다.
 총력주(總力主)는 제일력주(第一力主)였던 당태광(唐泰光).
 미시(未時)가 지날 무렵부터 쌍방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오도문도 육백 명은 바람을 등지고 화공(火功)을 펼치며 다가왔다.
 입고있는 갑옷은 당문을 상대하기 위해 쇠로 특별 제작한 것이었다.
 독술과 암기술이 큰 위력을 떨치지 못했다.
 오도문이 지척에 이르렀을때 당태광이 한 점 흔들림없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위대! 돌격하라!"
 삼십이 명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뛰쳐 나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돌격은 전율스러웠다. 무엇보다 역주 네 명이 펼친 탈혼망은 맹위를 떨쳤다.
 일격에 서너 명씩 꼬박꼬박 죽어 갔다. 은망에 찢겨 죽는 모습이 너무 잔인해 탈혼망과 부딪치려는 오도문도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보검(寶劍)도 이가 빠지면 폐검(廢劍)이 되는가 반나절이 지날무렵 영원히 찢겨질 것 같지 않던 은사가 찢어지고 묵빛 죽통이 잘렸다. 그리고 한 명씩 죽었다.
 당태광은 목젖을 가른 열여섯 번째의 도흔(刀痕)과 함께 삶을 버렸다. 삼십이 명 중 마지막으로 생을 다감한 사람이었다.
 살아남은 오도문도는 단지 오십육명뿐.
 그 후 오도문은 급속히 쇄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당문 전위대와 싸운 출혈이 너무 컸던 탓이다. 신망(信望)도 문제였다.
 실전 도법의 한계를 깨달은 문도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오도문이 멸문하기 까지는 그 후로도 일 년이 더 걸렸지만 사실상 당태광의 죽음과 동시에 멸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위대의 투혼과 더불어 탈혼망의 위력을 중원 천하에 알린 계기였다.
 홍원(紅原) 전투(戰鬪).
 오 년 전 전위대 제팔력(第八力)은 사천 북부 지역에서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던 혈신삼악(血神三惡)을 제거하고돌아오던 길이었다.
 사천성(四川省) 아미파(峨嵋派)의 장로인 나봉암주(羅峯庵主)
 무극법사(無極法師)를 홍원에서 만난 것은 양쪽 다 불운이었다.
 평소 당문을 이류 문파로 간주하던 나봉암주와 패기로 똘똘뭉친 제팔력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고 결국 육장(肉掌)을 부딪치고 말았다.
 하지만 진신 무공으로 아미파 장로인 나봉암주를 상대할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제팔력주 당도백(唐桃白)은 옆구리에 일검을 맞으며 산화성(酸化性)이 강한 염마산을 뿌렸고 방심한 무극법사는 두 눈이 타 버렸다.
 하지만 홍원에는 무극법사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아미파고수 칠십육명이 곤륜파(崑崙派)를 찾아가던 길.
 제팔력은 조그만 움막을 방어막으로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다.
 불운은 계속됐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덮었다. 거리를 격한 상태에서 바람이 없다면 독술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 더욱이 이류문파에게 치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아미문도들의 공격은 매섭기 이를 데 없었다.
 한명 한명...명(命)을 달리했다.
 제팔력주 당도백만이 남았을 때 아미장로 금청법사(金淸法師)
 는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당도백은 씁쓸히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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