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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 (1화)

2017.05.10 조회 529 추천 1


 대해의 제왕 1권 (1화)
 프롤로그
 
 
 새하얀 구름이 장식하는 청명한 하늘, 그 아래로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 구름을 뚫고 등장한 태양이 빛을 뿌려 해수면에 부딪히자 바다는 마치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듯 아름답게 반짝였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할 대해의 아름다움. 바다는 그 모든 것을 간직한 채 영원한 보석으로 남아 있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변화가 찾아왔다.
 구오오오오오오!!
 순백의 구름을 밀어내고 빠른 속도로 하늘을 장악해 가는 먹구름이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맑았던 하늘은 곧 어둠으로 뒤덮였다.
 콰르르릉, 콰르릉!!
 하늘 전체를 뒤덮은 먹구름 속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생성되어 가는 소리였다.
 먹구름은 스스로 포용할 수 없는 과도한 에너지를 바다를 향해 뱉어 냈다.
 쿠르르르르르릉, 콰르르르릉!!
 그러자 해수면을 향해 수십, 수백의 천둥, 번개가 떨어져 내리며 장관을 연출했다.
 그리고.
 구오오오오오오오!!
 바다를 통째로 빨아들일 것만 같은 거대한 토네이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경이 2킬로미터에 이르는 수십 개의 거대한 토네이도는 마치 하늘을 부셔 버릴 듯한 사나운 기세였다.
 저 깊은 해저에는 해저 화산지진이 발생하며 바다를 뒤흔들었다.
 콰지지지직, 쩌어어엉! 콰드드드드득!!
 해저의 지형 자체를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지각의 움직임으로 바다 위에는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세상을 삼킬 듯 대지를 향해 밀려 나갔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고 있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순식간에 지옥의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쐐애애애애애애액!!
 그 지옥의 바다에 거대한 해일을 타고 유영하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구오오오오오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극고음의 괴성을 지르며 나타난 존재.
 그 정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동해 바다의 제왕, 수룡 매그나탄이었다.
 쿠아아아아앙!!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300미터가 훌쩍 넘는 바다의 대괴수는 산처럼 일어난 해일을 반으로 가르며 대양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매그나탄의 양옆은 그 만큼이나 거대하고 강인해 보이는 두 마리의 수룡이 호위하듯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세 마리의 거대한 수룡들은 현세에 강림한 지옥의 바다 속에서 그 당당한 자태를 잃지 않으며 서쪽으로 헤엄쳐 나가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릉, 번쩍!!
 그때 매그나탄의 주위로 다량의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너무나도 웅장하고 강인한 그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매그나탄, 속도를 높여라.”
 구오오오오오오!!
 동해 바다의 주인인 수룡 매그나탄의 머리 위에 서서 세 마리의 수룡보다 더 당당하게 대해 전부를 눈에 담고 있는 한 명의 인간.
 세상을 모두 불태워 버릴 정도로 거대한 화염을 눈동자 속에 담고 있는 청색 머리의 남자.
 현세에 지옥의 바다를 불러낸 주인공, 바로 그가 세상을 향해 크게 외쳤다.
 “내가 돌아왔다!! 이 바다의 주인인 내가 돌아왔다!! 크하하하하하하하!!”
 그의 외침에 대해의 모든 생명체들이 숨을 죽였다.
 콰르르르릉, 번쩍!!
 구르르르르르르릉.
 뿐만 아니라 그의 주위로 무수히 많은 수의 낙뢰가 떨어져 내렸고 엄청난 수의 토네이도가 새로 생겨났다.
 구오오오오오, 쩌저저저저적!!
 해일은 더욱 높아졌고 수룡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빙하가 생겨나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남자가 웃음을 멈추었다.
 이내 그의 표정이 북해의 빙하보다 더 차갑게 변화하며 주변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변화에 세 마리의 거대한 괴수들도 숨을 죽이고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두 눈동자만큼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나 대해의 제왕이 말이다!!”
 
 
 
 1. 진화의 시작
 
 
 나는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다.
 대한민국 평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외모가 뛰어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형편없이 못생긴 것도 아닌 평범한 편이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 못하지만 산수 능력은 뛰어나다.
 숫자를 좋아해 정해진 숫자를 외우거나 사칙연산 정도의 계산은 빠른 편이지만 응용력이 약해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는 잘 풀지 못한다.
 나는 기억력이 좋아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 사물의 명칭 등은 한 번 들으면 잘 잊어 버리지 않는다.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예측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실천력이나 행동력이 약해 처음해 보는 일을 과감히 시도한 적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전한 국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평균 이하도 평균 이상도 아닌 보통의 남자.
 나 천종환은 그런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잠을 늦게 자는 편이고 잠이 많은 편이라 아침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아 놔, 제기랄!”
 그래서 아침에 자주 지각을 한다.
 그런고로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대에 내 방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가방은 어디 간 거야? 이쯤 어딘가에 놔뒀는데?”
 급할 때 마다 꼭 뭔가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정해진 출근 시간은 9시, 나는 8시 49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올려다보고는 가방 찾기를 포기한다.
 “에라이, 퇴근하고 나서 찾자.”
 항상 들고 다녀서 없으면 허전한 가방이지만 회사에 필요한 무언가가 들어 있지 않았기에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끼익, 쾅!
 나는 반쯤 내려간 양말, 구겨 신은 구두, 어깨에 둘러멘 외투, 그리고 이에 물고 있는 넥타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리할 생각으로 집을 나선다.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15층.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에 나는 차림새를 정리한다.
 ―9층입니다.
 9층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선다.
 꽤나 미인이기에 평소 같았으면 그녀를 의식해서라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얌전히 있을 터였지만 지각이 확실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스스슥, 휘릭.
 보통 5분이 넘게 소요되는 넥타이 매기가 10초 만에 이루어졌다. 물론 모양새가 엉망이지만 넥타이는 버스 안에서 고치기로 한다.
 머리를 감고 물기를 털지 않아 물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있는 머리를 왼손으로 다듬으며 오른손으로 외투를 몸에 걸친다.
 엘리베이터의 오른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며 출근 준비를 하는 나를 옆의 여자가 힐끗 쳐다보며 이내 시선을 돌린다.
 조금 창피하지만 어쩔 수 없다.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빠르게 뛰어나간다.
 내가 출근을 위해 타야 하는 104번 버스는 정확히 십 분 간격으로 분침이 3분을 가리킬 때에 집 근처의 정류장에 도착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8시 53분이 되면 집 건너편의 정류장에 10초 이하의 오차로 104번 버스가 도착한다는 말이다.
 고로 8시 52분 11초인 지금 당장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으면 그 버스를 타지 못할 확률이 높아진다.
 “제발, 바뀌어라!!”
 횡단보도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제발 내가 도착하기 전에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기를 기도했다.
 몇몇 행인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만 그런 시선은 무시한다.
 왜냐하면 내가 횡단보도에 도착하자마자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망설일 새 없이 바로 횡단보도 위를 달린다. 죽어라 달리면 저 멀리서 오고 있을 104번 버스를 탈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버스를 타면 나의 지각 시간은 10분이 되고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 시간은 20분이 된다.
 지각하면 안 돼!
 내 머리는 오로지 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왼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화물 트럭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던 중 들려오는 엄청난 소음에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대형 트럭을.
 ‘안 돼!!’
 나의 입이 그렇게 외치기 전에 일은 일어났다.
 쿵!!
 나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눈앞으로 천둥이 치더니 시야가 곧 흐려졌다.
 “꺄아아아악!!”
 “사고다!!”
 “119, 119!”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그렇게 좋지 못한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음들은 이내 사라졌다.
 이내 나의 의식은 저 어둠 속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다.
 햇빛이 닿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심해 속이었지만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볼 수가 있었다.
 ‘꿈인가?’
 그렇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바다 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였다.
 무리지어 헤엄치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물결 따라 움직이는 해초들, 바닥을 장식하는 불가사리며 조개들, 그리고 눈앞을 떠다니는 수많은 플랑크톤들.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어두운 바다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었다.
 그것은 손톱만큼이나 작은 해파리들이었다.
 그들은 어두운 심해 속에서 마치 우주를 장식하는 별들처럼 밝게 빛나며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천천히 그들을 따라간다.
 해류에 몸을 맡긴 채 바다와 조화되어 흘러가는 별들.
 나는 별을 쫓아 더 깊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꿈이지만 너무나 현실 같은 느낌이다.
 눈앞의 바다는 꿈처럼 몽롱하지 않았다. 의식은 너무나도 또렷했고 주변의 상황들을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꿈이지만 현실처럼 느껴지는 바다 속에서 나는 자유로이 헤엄친다.
 그러다 별들이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나는 불현듯 공포에 몸을 떤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
 깊고 깊은 바다 속에 혼자 버려진 공포심이 내 몸을 옥죄어 온다.
 나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저 높은 곳으로, 수면을 향해, 밝은 곳으로 가게 되면 이 공포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손이 내 몸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내 몸은 어둠 속에 묶여 버렸다.
 그리고.
 번쩍!
 나는 심연의 어둠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거대한 한 쌍의 눈동자를.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핏빛 눈동자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르르르르르.
 울부짖는다.
 세상을 씹어 삼킬 듯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놈이 으르렁거린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다.
 숨이 막혀 온다.
 “쿠오아아아아아아악!!”
 괴물이 그 거대한 입을 벌린다.
 나는 그 살벌하고도 무서운 광경에 의식의 끈을 놓친다.
 
 종환은 무의식의 세계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의식은 심연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완전히 잠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을 흘러가는 무의식의 파도를 아무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종환이 지금 느끼는 것은 평온.
 그렇게 종환은 평온의 바다 속을 고요히 떠다니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영원히 평온의 바다를 떠돌 것 같던 종환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그의 자의가 아니었다.
 우오오오오오!
 멀리서 맹수가 울부짖는 괴성이 들려왔다.
 신경을 자극하는 거슬리는 소리에 종환은 무의식중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더 이상 소음이 들려오지 않자 인상을 펴고 물결에 몸을 맡기며 유영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구오오오오오오오!!
 다시 한 번 들려온 맹수의 울음소리.
 이번에는 좀 전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이었다.
 소름끼치는 괴성에 종환의 몸이 몸서리를 치며 그의 의식이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오아아아아아아아!!
 또 다시 들려온 맹수의 괴성 소리.
 종환의 정신은 그 소리에 완전히 의식 세계로 떠올랐다.
 그리고 눈을 떴다.
 번쩍!
 종환이 눈을 뜨자마자 목격한 것은 한 쌍의 거대한 눈동자!
 크기가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눈동자는 핏빛 가득 머금은 채로 종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헉!’
 종환은 예전에 꿈속에서 보았던 살벌한 눈동자를 다시 마주하게 되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저 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로 인해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저 눈동자에서 등을 돌리고 싶은 것이 종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거대한 눈동자 아래로 엄청난 크기의 동굴이 갑자기 생겨났다.
 구오오오오오와아아아아!!
 그리고 들려오는 괴수의 울음소리.
 ‘으아아아악!!’
 종환은 영혼을 쥐어짜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소리를 질렀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의 눈꺼풀마저 그의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동굴의 아래위에 가득 자리한 집체만 한 창날들.
 괴물의 이빨이 어둠 속에서 새하얗게 빛났다.
 종환은 조금만 스쳐도 몸이 박살이 날 것 같은 괴물의 이빨에 겁을 먹고 몸을 떨었다.
 종환이 더 이상의 공포심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심장이 멈추려는 순간.
 사라락.
 불현듯 눈앞의 괴물이 사라졌다.
 엄청난 공포로 인해 죽어 가던 종환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괴물이 사라지자 눈앞의 배경이 바뀌었다.
 심연의 어둠은 사라지고 청록의 물결이 종환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 속에서 무리지어 헤엄치는 종환의 몇 백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고기들과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플랑크톤들, 그리고 바다 속을 비추는 눈부신 햇살.
 종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아직 꿈을 꾸는 것인가?’
 분명히 꿈과는 틀렸다.
 종환은 바다 속을 바라보는 이 현재의 시간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현실이다. 꿈이 아니야! 나는 실제로 바다 속에 있는 거야!’
 피부에 닿는 물결, 물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헤엄치는 물고기들, 이것은 모두 종환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실제의 모습인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죽은 게 아니란 말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종환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주변을 살피다 보니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럴 수가!! 360도 방위를 전부 다 볼 수가 있다니!’
 인간은 시야각은 좌, 우 약 170도.
 그런데 지금 종환의 시야각은 360도!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앞과 양옆, 뒤쪽의 모든 전경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종환은 이 신기한 사실에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이게 뭐야!!’
 그가 확인한 자신의 모습.
 그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옷뿐만 아니라 살색 몸은 온데간데없고 하늘색 투명한 젤 같은 몸뚱이가 물결에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게 뭐란 말이야?!’
 종환의 모습은 마치 아메바나 박테리아처럼 단세포 생물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자세히 보면 몸 안에서 흐르는 세포의 움직임도 확인할 정도로 투명한 모습.
 ‘단세포 생물··· 내가 아메바가 된 것인가?!’
 종환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잠시 황당한 심정이 되어 바다 속을 떠다니다 불현듯 끓어오르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런 빌어먹을! 죽었단 말인가? 내가 죽었어?’
 종환은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던 죽음에 대해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은 대형 트럭과 정면으로 추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대형 트럭, 부딪히는 순간 번개에 맞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눈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더니 이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바뀌었다.
 몸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허공에 날리다 이내 감각이 사라졌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종환이 내린 결론은.
 ‘즉사··· 나는 제대로 치료도 해 보지 못하고 죽은 거야.’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보다도 죽음의 순간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새로운 삶이 시작될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이런 모습으로!’
 종환은 전후좌우가 한눈에 들어오는 넓어진 시야로 주변을 부유하는 다른 플랑크톤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이 단세포 생물이 되었다고 인지하자 왠지 모르게 머리가 둔해지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어떠한 판단도 들지 않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의구심을 가진 채 한참을 어두운 바다를 부유하던 종환은 이내 감각을 일깨우는 전율적인 격정에 휩싸였다.
 ‘또, 나에게 무슨 일이?’
 단세포 생물로 바다를 부유하던 짧은 시간 동안 종환은 인간으로의 지성과 감성을 대부분 잃어 갔다.
 그러나 지금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생소한 느낌은 무너져 버린 종환의 지성으로도 감지할 수가 있는 엄청난 격동의 순간인 것이다.
 부르르르르.
 종환은 몸을 떨었다.
 그는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지려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이성과 지성이 극대화된 인간으로서는 느낄 수가 없는, 오히려 본능과 생존에 더욱 민감한 영향을 받게 되는 단세포 생물이기에 감지해 낸 것이리라.
 부르르르르.
 종환은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해수가 미세하게나마 진동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종환만이 느낀 것이 아닌지 주변을 부유하던 다른 플랑크톤들이 거리를 두고 멀어져 갔다.
 ‘지금 나에게 변화가,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지을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려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종환은 둔해져 버린 머리를 굴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스팟.
 그사이 변화는 더욱 영향력을 확대했다.
 종환이 주위 기압이 높아지고 그의 몸이 조금씩 찢기기 시작했다.
 종환은 위기를 직감했다.
 ‘이대로는 또다시 죽게 된다! 나는 선택해야만 해!’
 스팟, 찌지직!
 종환은 몸 전체로 확산되어 가는 균열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무엇을?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종환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스팟, 쩌저적!
 종환의 몸이 완전히 파괴되고 있었다.
 종환의 희미해져 가는 시야 속에 저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해수면을 뚫고 전달된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바다 속을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는 한 마리의 물고기였다.
 ‘그런 것인가! 나는 선택하겠다!’
 종환의 시야에서 빛나던 물고기의 모습이 사라지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암흑뿐.
 종환의 몸이 완전히 흩어지기 직전, 그의 의식이 크게 소리쳤다.
 ‘내가 결정한 것은 바로······!’
 종환의 의식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응? 어떻게 된 일이지?’
 종환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햇빛을 반사해 녹색이나 붉은 빛을 띠는 여러 종류의 플랑크톤들이었다.
 여전히 그의 시야각은 360도.
 종환은 시야를 메운 플랑크톤과 각종 어류들을 한참 동안 멍하니 보고 있었다.
 ‘무언가 내 몸속에서 빠져나간 느낌이다. 너무 허전해, 이건 마치.’
 멍청해진 느낌.
 종환은 지금 멍청해진 느낌을 받고 있었다. 너무나도 멍청해져 바보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일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한 판단도 들지 않았고 도대체 뭘 해야 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흐르는 해류에 몸을 맡기고 주변을 가득 채운 다른 플랑크톤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멍······.
 한참을 해류 속에서 멍을 때리던 종환은 갑자기 무의식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기억의 편린에 깜짝 놀랐다.
 ‘선택, 나는 무엇인가를 선택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분명 자신은 엄청 급박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급박한 상황이란 무엇이었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의 기억력은 마치 단세포 생물처럼 보잘 것 없이 바뀌어 버렸다.
 종환은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의 편린을 떨쳐 버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황토색과 붉은색으로 섞여 있는 자신의 몸뚱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배가 고프다. 먹어야 한다.’
 종환은 변화한 자신의 몸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먹잇감을 찾아 이동할 뿐이었다.
 스르르륵.
 그의 몸이 주변에 부유하고 있는 다른 플랑크톤들을 향해 서서히 이동해 나갔다.
 단세포 생물에서 동물성 플랑크톤으로 진화를 이룩한 종환.
 그가 진화의 순간에 선택한 것은 동물의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끄르르륵!
 종환은 몸을 크게 부풀리고 얼마 전까지는 동족이었던 플랑크톤을 집어삼켰다.
 새로 태어난 종환, 그 최초의 육식행위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구오오오.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르는 존재가 있었다.
 촤아아악.
 그가 지나가는 경로에 머물던 작은 생명체들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그의 존재감에 화들짝 놀라 몸을 피했다.
 그 존재의 이름은 포이사르돈.
 단세포 생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종환에게 붙여진 새 이름이었다.
 종환은 다섯 번째 진화를 이룩한 순간 이전의 진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다!’
 그가 인간이었을 때의 지능, 기억, 감정, 모든 것들이 돌아온 것이다.
 ‘됐다! 진화가 제대로 이루어졌다.’
 종환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목이 길이서 그런지 거대한 몸뚱이가 저 아래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섯 번째 진화로 얻은 종의 이름은 수장룡 에라스모사우르스.
 드디어 척추동물인 파충류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종환은 5차 진화를 눈앞에 두고 척추동물로 진화되기로 결정했다. 그가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척추동물로의 진화가 선행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제 몇 번의 진화만 더 이룩하면 영장류인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5미터가 넘는 전장에 1미터가 넘는 몸을 가진 그는 진화를 이룩한 순간, 스스로를 포이사르돈이란 이름으로 명명했다.
 ‘포이사르돈, 이제부터 그것이 나의 이름이다.’
 뚜렷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라 여겨졌다.
 변화는 커지고 강화된 몸뚱이와 이름만이 아니었다.
 4차 진화로 얻은 어류의 몸일 때보다 세 배 이상 빨라진 속도는 기본이었고 그가 마음을 먹으면 주변의 해류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몸에서 어떻게 2미터도 안 되는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으려나?’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포이사르돈은 그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몸을 파악하고 6차 진화를 위해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쿠르르릉.
 그가 몸을 움직이자 주변으로 흐르던 해류의 흐름이 바뀌었다.
 ‘해류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겼구나, 그리고 외피도 더 강해졌다. 헤엄 속도는?’
 부오오오오.
 그가 마음을 먹자 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갈랐다.
 그 거대한 몸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포이사르돈은 깜짝 놀랐다.
 ‘엄청 빠르다! 시속으로 계산한다면 200킬로미터는 넘는 속도야.’
 종환은 수장룡이라면 고대에 존재했던 바다에 사는 공룡의 한 종류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덩치 큰 수장룡이 날렵한 어류들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낼 수가 있다니!
 포이사르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이름을 가진 녀석들, 놈들을 사냥한다!’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닌데 직감적으로 이름을 알게 되는 존재들이 있었다.
 우리가 사과를 보면 ‘사과구나.’라고 생각하듯이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 그들의 이름이 단 번에 파악되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여타의 생명체들과는 틀렸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같은 종에 비해 거대하고 강력한 신체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독특한 능력을 몇 가지씩 가지고 있었다.
 바를레가라는 플랑크톤은 빠른 속도를 자랑했고 나키라는 가오리는 온몸으로 전기를 뿜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특별한 힘을 지녔기에 다른 종들보다 월등히 강력했던 그들, 하지만 모두 종환의 뱃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때까지의 진화의 과정을 돌이켜 보면 평범한 먹잇감들을 사냥함으로서 얻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성장뿐이었다.
 이름을 가진 존재들.
 그들을 사냥했을 때, 비로소 종환은 진화의 순간을 맞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 큰 지역에서 힘을 행사하는 포식자들을 사냥한다!’
 부오오오오.
 그의 몸이 빠른 속도로 물결을 갈랐다.
 미지의 존재들이 존재하는 곳.
 포이사르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종환은 심해를 향해 헤엄쳐 나갔다.
 
 
 
 2. 대 괴수 레비아탄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종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포이사르돈으로 진화한 종환은 기존의 영역을 뛰어넘어 더 깊은 바다 속을 탐험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무수히 많은 해양생물들.
 10미터가 넘는 거대 오징어와 2미터가 넘는 다랑어과 물고기 떼들, 그리고 각종 고래와 바다의 포식자인 상어들이 그를 반겼다.
 ‘더 이상은 들어가면 안 되겠어.’
 종환은 기존의 영역에서 10킬로미터 정도 외각을 탐색하다 더 이상의 탐색은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던 전기가오리 나키 정도는 한 끼 식사 후 간식 대용으로 여길 만한 엄청난 포식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상아리[레비어스]
 크기가 20미터가 넘는 백상아리 레비어스는 평소에는 느릿느릿한 속도로 유유히 바다 속을 헤엄치지만 사냥을 할 때에는 마치 대잠 어뢰와 같은 모습으로 먹잇감을 향해 돌격하는 습성이 있었다.
 포이사르돈보다 배는 빠른 스피드와 강철도 뚫을 것 같은 그의 이빨, 그리고 뛰어난 후각은 종환에게 그의 영역으로 다가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레비아스는 서쪽의 지배자였다.
 
 ―대왕 오징어[필라크스]
 필라크스는 대왕 오징어였다.
 대왕 오징어는 18미터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필라크스는 그 길이가 30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스물 스물 헤엄치다 20미터가 넘는 촉수를 이용해 재빠르게 먹잇감을 낚아채는 녀석은 반경 30미터의 범위에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먹물을 뿌려 천적의 접근을 막고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필라크스로 인해 포이사르돈이 더 이상 심해로 들어가는 것이 차단되었다.
 필라크스는 남쪽의 지배자였다.
 
 ―거대 불가사리[파르몬]
 파르몬은 불가사리인 주제에 헤엄을 쳐서 작은 상어나 다랑어들을 사냥하는 포식자였다.
 크기가 25미터에 이르는 녀석은 다섯 개의 팔이 모두 끊어져도, 몸이 절반으로 분리되어도 재생이 가능한 무서운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파르몬은 이빨에 몸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독을 가지고 있어 붙들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파르몬은 동쪽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세 마리의 포식자들이 더 이상 먼 해역으로 갈 수 없도록 길목을 막고 버티고 있었다.
 이에 포이사르돈은 북쪽으로 탐험을 시작했지만 깊은 바다 속까지 느껴지는 살을 저미는 추위로 인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포이사르돈은 그들의 존재를 알아낸 후에 몸집을 좀 더 키워서 필라크스, 파르몬과 부딪혀 보았다.
 상대적으로 레비어스보다 약해 보이는 그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 보았지만 결과는 포이사르돈의 처참한 패배.
 포이사르돈은 목숨만 간신히 건진 채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이를 갈며 주변의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렸다.
 그 세 마리의 강자들을 제외하고도 포이사르돈이 서식하는 인근 해역에는 많은 포식자들이 있었지만 그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포식자들은 종환의 먹잇감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 제길. 다 잡아 놓았는데 이놈의 호흡이.’
 한창 길이가 2미터에 이르는 다랑어를 사냥하고 있던 종환은 뇌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것을 느끼고 급하게 해수면을 향해 상승했다.
 기본적으로 바다 생황을 하는 수장룡이었지만 파충류인 포이사르돈은 아가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30분에 한 번씩은 물 위로 올라가 공기를 들여 마셔 줘야 하는 것이다.
 “푸핫!”
 해수면으로 얼굴을 내민 포이사르돈은 대기에 존재하는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셨다.
 30여 초간 호흡을 통해 필요한 산소를 모두 몸에 담은 종환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재개하려고 할 때에 그의 시야에 바다 위를 거니는 무언가가 포착이 되었다.
 ‘아니 저것은!’
 그것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고래 모양 나무였다.
 둥그런 몸체를 반으로 가른 모습의 나무는 등에 기다란 나무가 박혀 있었고 그 나무에는 커다란 천들이 바람을 받아 속도를 내는 모습이었다.
 ‘배!’
 그랬다.
 그것은 포이사르돈도 익히 알고 있는, 인간들이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배였다.
 포이사르돈은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단세포 생물의 모습으로 새 삶을 얻은 이후, 처음 접하는 인간의 흔적이었기에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아악, 수아악.
 포이사르돈이 마음을 먹자 해수면이 갈라지며 커다란 범선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응? 괴물이다!! 바다 괴물이다! 비상!!”
 “비상!! 괴물이다!!”
 그런 그를 발견한 범선 위의 인간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
 그리고 들려오는 나팔소리.
 아마도 전투태세를 알리는 나팔소리이리라.
 포이사르돈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저 정도 범선이라면 40∼70여 명의 인간들이 타고 있을 것이다. 저들이 대포나 작살로 나를 공격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
 포이사르돈은 자신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인 저들은 범선으로 다가오는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다.
 그들과 싸움을 벌인다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포이사르돈은 오랜만에 만난 인간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에도 인간이 있다. 그 사실은 안 것만으로도 충분해.’
 꼬르르륵.
 포이사르돈은 범선 위의 사람들을 한 번 응시하고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포이사르돈은 범선을 발견한 동쪽 바다를 주시하게 되었다.
 거대 불가사리 파르몬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정도로 동쪽 바다로 접근해 인간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나선 것이다.
 몇 주간 지켜본 결과 포이사르돈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동쪽에 육지가 있다. 인간들이 사는 육지가!’
 종환은 동쪽 바다를 세로로 횡단하는 인간의 범선들로 인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좋다, 인간들이 근처에 거주하는 것을 알았으니 됐다. 어서 성장해서 포유류도 진화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 후로 포이사르돈은 미친 듯이 사냥에 매달렸다.
 대체 자신이 왜 이런 바다 생물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그의 원동력이 되었다.
 5차 진화가 있은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포이사르돈의 몸길이는 15미터가 넘어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성장하면 파르몬을 사냥하고 나머지 두 놈도 먹어치운다!’
 포이사르돈이 가장 먼저 타겟으로 정한 것은 셋 중에서 가장 약체인 불가사리 파르몬.
 파르몬을 먼저 사냥해 성장한 다음 나머지 두 마리의 포식자를 모두 먹어치운다면 포유류로 진화해 육지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해 지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바쁘게 움직이던 어느 날.
 종환의 영역에 원치 않던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레비어스!’
 그 존재는 바로 거대 백상아리 레비어스였다.
 이전에 보았을 때도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모집을 가진 그는 이제 종환의 2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성장해 있었다.
 ―수장룡, 포이사르돈. 네 이름이 맞겠지?
 레비어스를 확인한 순간 도망을 치려 했지만 머릿속을 울리는 레비어스의 음성에 그의 몸이 멈춰 섰다.
 ‘어떻게?’
 포이사르돈의 의문이 그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포이사르돈의 당황한 얼굴을 노려보던 레비어스, 아니 이제 진화를 거쳐 대양의 포식자로 변신한 레비아탄이 이빨을 드러냈다.
 ―아직, 의사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인가? 상관없겠지. 내 말을 잘 들어라 포이사르돈이여.
 레비아탄이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왔다.
 이제는 전속력으로 도망간다고 해도 레비아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리였다.
 포이사르돈은 도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레비아탄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시작으로 레비아탄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이 지역을 지키며 살아왔다. 나는 백 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만 년 전에도 똑같은 모습을 하며 이 바다를 지키고 있었지.
 ‘만 년이라고?’
 어떻게 백상아리 따위의 어종이 만 년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레비아탄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포이사르돈이 믿든 안 믿든 그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전부터 나의 성장이 시작되었다. 만 년을 넘게 유지되어 오던 몸의 크기가 두 배로 커지고 이빨은 모두 새로 자라났다. 그리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변화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이렇게 고도의 지능이 생겨나 다른 이에게 의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때의 일이지.
 ‘······.’
 포이사르돈은 뒷말을 기다렸다.
 ―이게 다 너, 포이사르돈의 등장으로 인해 생기게 된 변화다. 나는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잊어버리고 있던 나의 사명을 너의 등장과 함께 깨달은 것이다. 알겠느냐? 나의 변화는 너로 인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
 포이사르돈은 레비아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등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니?
 그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레비아탄의 설명은 이어졌다.
 ―나는 알 수가 있다. 너는 포유류로 진화해 육지로 나가려 하겠지. 그리고 너의 진화의 최종 목표는 인간이 되는 것일 테고 말이야.
 씨익.
 그렇게 말하며 레비아탄이 그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섬뜩.
 포이사르돈은 그 살벌한 모습에 몸을 떨었다.
 ―너의 생각대로 될 것이라 여긴다면 오산이다. 너는 인간으로 진화할 수가 없다.
 쿵!
 종환은 자신의 심장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런 환청이 들릴 정도로 레비아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다시 인간이 될 수가 없다니.’
 ―물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네가 심연의 바다를 뚫고 먼 훗날 나에게로 다시 찾아온다면 내가 네가 궁금해 하는 모든 의문들과······.
 꿀꺽.
 포이사르돈은 레비아탄의 뒷말을 기다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포이사르돈의 몸이 복잡한 감정의 파도로 인해 조금씩 떨려 왔다.
 ―나는 레비아탄! 포이사르돈이여! 더 성장하고 더 진화해서 나에게로 찾아와라. 이것이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크하하하하하!!
 레비아탄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포이사르돈을 향해 한참 동안 웃어 보이다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레비아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포이사르돈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레비아탄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청난 무력감과 실망감, 당황, 분노 같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자신에게 심어 주고 갔다는 것이다.
 ‘좋다, 레비아탄!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은 잠시 보류다. 네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중요하지 않다!’
 쿠르르릉.
 포이사르돈의 주위에 해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먹어치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종환, 또는 포이사르돈.
 그가 누가 되었던 간에 그의 마음에 잔인한 심성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대해에 재앙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무려 3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 시간 동안 포이사르돈은 레비아탄을 찾아가지도 불가사리 파르몬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가 3년 동안 한 일은 그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사냥을 하며 스스로를 단련시킨 것이 다였다.
 눈에 띄는 진화도 성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형적인 변화는 3년 전에 비해서 몸길이가 5미터 더 길어졌다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전과는 확연히 강해져 있었다.
 우오오오오.
 수장룡인 그의 주위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포이사르돈은 3년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의 3년간의 연구는 헛되지 않아 이제는 필라크스나 파르몬 따위는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포이사르돈은 그들을 사냥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내 먹이가 된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들을 꺾어도 더 크고 강한 포식자들이 나의 길을 가로 막고 있을 거야. 이 바다는 그런 바다다.’
 3년 동안 포이사르돈이 주목한 것은 덩치를 키우는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실력을 키우는 질적인 성장이었다.
 
 포이사르돈은 3년 간 인근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사냥과 탐색을 이어 나갔다.
 ‘분명히 강해질 방법이 있어. 진화를 통해서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노력을 통해서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이름을 가진 괴수인 필라크스나 파르몬을 사냥해 버리면 진화가 이루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종환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를 미룬 채로 연구를 거듭해 나갔다.
 그런 결과 변화가 생겨났다.
 그의 얇은 외피가 더욱 두꺼워져 적의 공격을 받아도 쉽게 타격을 입지 않게 되었고 헤엄 속도가 시속 300킬로에 이를 정도로 빨라졌으며 그가 조절할 수 있는 해류의 범위가 더욱더 확대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과 관련된 행위를 함으로서 능력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좀 더 빨리 헤엄치기 위해 쉴 새 없이 헤엄쳤고 외피를 강화하기 위해 포식자들과 마구잡이로 싸웠으며 해류를 조절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실험을 해 보니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으로 해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포이사르돈은 알아낸 방법으로 훈련을 거듭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빨라졌고 그의 외피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리고 해류의 소용돌이를 발생시켜 쉽게 먹잇감을 기절시킬 수가 있었다.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주위로는 항상 해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했고 이동을 할 때에는 최고 속도로 이동했으며 포식자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이런 걸 진즉에 알았으면 플랑크톤 시절의 주요 능력인 소화나 헤엄 같은 것들을 향상시켜서 지금은 더 빠른 속도와 강한 위장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어.’
 이전에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아마 그에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긴 지능이 없었는데 어떻게 훈련을 했겠어? 정신이 돌아온 지금부터라도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끌어 올리고 나서 진화를 시도한다!’
 그런 생각으로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원하는 수준까지 힘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까지 생각하면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그것은 바로.
 ‘에너지!’
 그렇다.
 포이사르돈은 자신의 몸 안에 차츰 쌓여 가는 무형의 에너지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처음 수장룡으로 진화했을 때는 미미했던 에너지가 3년간의 활동으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전에는 손톱만 한 크기였다면 지금은 얼굴 크기만 해졌으니 크나큰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종환이 살던 동양권 나라에서는 기나 챠크라라고 불렸었고 서양권의 문헌에서는 마나라고 이름 지어졌었던 에너지!
 마나가 포이사르돈의 거대한 몸에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진화로 인해 생겨난 마나가 아니다. 3년 간 바다에서 흡수한 물의 기운이 몸속에 쌓인 것이다.’
 이를테면 물의 마나, 대해의 마나가 포이사르돈의 몸체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 마나를 받아들일 공간은 많이 남아 있어. 더 이상 마나가 쌓일 수 없을 때까지 마나를 쌓은 후에야 진화를 해야 하겠지.’
 더 이상 포이사르돈이 되어 버린 종환의 목표가 진화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이제.
 ‘강해지는 것! 저 시건방진 레비아탄 자식을 한 입에 씹어 버릴 정도로 강해지는 것! 그것이 내 목표다. 그 전까지는 방법을 알더라도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겠어.’
 콰르르르.
 포이사르돈의 주위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바다는 한동안 소용돌이를 피하려는 어류들로 인해 소란이 일었다.
 
 ‘됐다!’
 쿠르르릉, 쿠르릉.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채로 몸속으로 대해의 마나를 흡수하던 종환의 감은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아홉 개의 해류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드디어, 몸속에 마나를 가득 채웠다!’
 그가 가진 세 가지 능력은 벌써 3개월 전에 더 이상 끌어 올릴 곳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려 놓았다.
 그의 헤엄 속도는 두 배 이상 빨라져 있었고 그의 강화된 외피는 백상아리의 이빨로도 흠집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게다가 오늘로써 마나가 몸 전체를 가득 채워 더 이상 수장룡인 에라스모사우르스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먼저 가까이 있는 필라크스를 사냥하고 파르몬을 집어삼킨다!’
 그의 눈빛에 강한 살기가 일었다.
 5차 진화가 있은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왕 오징어 필라크스.
 그는 반경 100킬로의 범위 안에서 적수가 없는 인근 해의 절대 강자였다.
 몸의 길이가 35미터가 넘었고 가장 긴 촉수의 길이가 25미터나 되었다. 촉수에 달린 거대한 빨판으로 한 번 먹잇감을 잡아채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반경 30미터를 완전한 어둠으로 만들어 버리는 먹물에는 사실 행동이 느려지게 만드는 신경 독이 포함되어 있어 바다 속에서 그를 사냥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필라크스는 여느 때와 마찬 가지로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며 거대 가오리나 상어, 다랑어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샤라락, 탁!
 “구오오오!”
 몸길이가 6미터에 이르는 청상아리가 필라크스의 촉수에 붙잡혔다.
 청상아리는 촉수를 떨쳐 내기 위해 발악을 해 댔지만 이내 필라크스가 뿌린 검은 먹물에 몸이 마비되어 얌전히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드득, 콰드득!
 거대한 청상아리가 필라크스의 입속에서 박살이 나고 있었다.
 주변으로 피 보라가 일었지만 주변을 가득 메운 먹물로 인해 티가 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잔인한 광경이었다.
 콰드득, 꿀꺽!
 먹물 속에서 안전하게 식사를 마친 필라크스가 만족해하며 이동을 하려는 찰나의 순간.
 쿠르르릉, 쿠르릉!!
 갑자기 발생한 해류의 소용돌이가 먹물을 흩어 버리며 필라크스를 뒤흔들었다.
 “구오오오오오!!’
 필라크스는 그의 주위에 발생한 9개의 소용돌이에 몸이 찢기는 고통을 느끼며 울부짖었다.
 최대한 소용돌이에서 몸을 빼내기 위해 몸부림치던 필라크스는 보게 되었다.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붉은색 수장룡 한 마리를.
 “크아아악!”
 필라크스는 소용돌이에 저항하며 25미터에 이르는 촉수를 벼락같은 속도로 포이사르돈을 향해 뿌렸다.
 이에 포이사르돈의 눈빛이 번뜩였다.
 우오오오.
 포이사르돈의 엄청난 속도에 물결이 후퇴하며 길을 비켰다.
 콰르르릉.
 그의 주위로 굉음이 발생했다.
 휘릭.
 포이사르돈을 향해 날아든 필라크스의 촉수.
 콰르르릉.
 필라크스의 촉수는 포이사르돈이 몸 주변에 발생시킨 난류를 뚫지 못하고 힘없이 방향을 잃었다.
 구오오오!
 이에 당황한 필라크스는 최후의 방어 수단인 먹물을 분사했다.
 그러자 반경 30미터의 지역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콰르릉.
 그러나 포이사르돈은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도를 높여 필라크스의 먹물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변을 가린 검은 먹물.
 필라크스의 모습도 포이사르돈의 모습도 먹물에 가려 보이지가 않았다.
 먹물 안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소리뿐.
 콰드득, 콰득!!
 날카로운 이빨로 무언가를 씹어 대는 괴기스러운 소리가 먹물 속에서 들려왔다.
 크아아아악!
 그리고 들려온 고통에 찬 비명 소리!
 콰드득, 콰득. 콰드득!
 “크아악!”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비명 소리는 10분이 지나자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이빨이 살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만이 1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콰드득, 콰드득!
 
 거대 불가사리 파르몬은 요즘 들어서 헤엄을 쳐서 덩치가 큰 물고기들을 사냥하는 방법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몸이 커져 나갈수록 에너지 소모가 심한 사냥 방법에 부담을 가진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파르몬은 새로운 사냥 방법으로 먹잇감을 사냥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사냥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드드드드드득!!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동쪽의 바다 속, 직경의 길이가 35미터에 이르는 거대 불가사리 파르몬이 바다 속에 지진을 일으키며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바닥을 훑으며 지나가는 파르몬은 너무나도 확실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가 지나간 곳에는 조개며 해초며 그사이에 서식하던 물고기든 돌이든 간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황색 모레만이 주변의 시야를 흐리며 피어오를 뿐.
 파르몬의 몸 중앙에 있는 입이 마치 진공청소기 같이 바닥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드드드드득!
 파르몬의 강력한 흡입력에 또다시 바닥의 지면이 솟구치며 지진이 발생했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지능이 조금이라도 있는 수중동물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몸을 이동시킬 수 없거나 파르몬의 접근 속도보다 느린 편인 조개와 플랑크톤, 해초들만이 파르몬의 진로 앞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파르몬은 자신의 사냥 방법에 매우 만족했다.
 힘이 들지도 않았고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가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몸을 키워 그가 그렇게나 바라던 심해를 향해 이동할 생각이었다.
 조금만 더 몸을 키운다면 심해로 향하는 남쪽을 막고 있는 대왕 오징어, 필라크스를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구오오오!
 파르몬은 자신의 라이벌인 필라크스를 생각하며 괴성을 질렀다.
 이제 곧 죽이러 가겠다는 선전 포고와도 같은 울부짖음!
 파르몬은 필라크스를 죽인 후에 애송이 같은 포이사르돈을 죽여 레비아탄이 사라진 주변의 바다를 장악하고 심해로 영역을 확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너무나도 기분 좋은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창 장미 빛 미래를 꿈꾸며 식사를 하고 있던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존재가 있었다.
 그 강력한 기세에 파르몬이 식사를 멈추고 전방을 주시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존재.
 자신이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인 적이 있었던 애송이 포이사르돈이 바다를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다르다! 예전의 애송이 놈과 확실히 틀려!’
 오랜만에 마주하는 포이사르돈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40미터가 넘는 몸길이에 레비아탄을 보는 것 같은 지독한 살기를 흘리는 저 모습은 파르몬이 알던 포이사르돈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위협적인 모습에 파르몬은 앞, 뒤 가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결정했다.
 왠지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이 공격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쿠우우웅!
 별 모양으로 펼쳐져 있던 파르몬의 몸이 바짝 모여들며 포이사르돈을 향해 솟구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사람이 주먹을 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콰아아앙! 쌔애애애앵!
 파르몬이 도약했다.
 그가 서 있던 바닥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지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파르몬의 모습이 발견된 것은 포이사르돈의 코앞!
 눈 깜짝할 사이에 목표물에 도달한 파르몬의 다섯 개의 팔들이 활짝 펼쳐졌다. 그리고 그의 두꺼운 팔들이 순식간에 포이사르돈을 감싸 버렸다.
 콰직!
 파르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이사르돈의 몸에 이빨을 박아 마비 독을 흘러 넣었다.
 이 모든 과정이 1초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동작이었다.
 항상 속전속결로 적들을 쓰러뜨려온 파르몬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빠른 판단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역시 애송이에 불과했어.’
 파르몬은 괜히 긴장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먹이를 통째로 삼키기 위해 거대한 입을 최대한 벌렸다.
 그오오오오.
 그때까지 포이사르돈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파르몬은 당연히 마비 독으로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파르몬의 마비 독은 포이사르돈에게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파르몬의 날카로운 이빨은 포이사르돈의 두꺼운 외피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빨이 약 10센티 정도 외피에 박히기는 했지만 포이사르돈의 외피는 그보다도 훨씬 두꺼웠다.
 이빨이 몸속을 파고들지 못했으니 마비 독이 작용할 리가 없었다.
 포이사르돈은 파르몬의 이빨이 자신의 외피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에게 붙잡혔다.
 이렇게 파르몬이 입을 벌릴 때를 노린 것이다.
 쿠르릉, 쿠르릉!!
 구오아아아오!
 포이사르돈이 발생시킨 강력한 해류의 소용돌이가 파르몬의 입을 통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내장이며 팔이며 모든 것을 분리시켜 버렸다.
 파르몬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와 바닷물에 섞여 들어갔지만 혈액의 색깔이 투명했기에 얼마나 많은 피가 그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크오오오!!
 단지 그의 끔찍한 비명 소리로 그 양을 추측할 뿐이었다.
 포이사르돈은 몇 번의 공격으로 십삼 등분으로 나뉘어진 파르몬의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박살이 나도 재생이 가능하겠지. 재생할 시간 없이 단숨에 씹어 삼켜 주마!’
 포이사르돈은 파르몬이 조각난 부위에서 재생하지 못하도록 빠른 속도로 그의 분리된 몸뚱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구오오오오오.
 주변의 바다가 격동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필라크스와 파르몬을 모두 먹어치우자 여섯 번째 진화가 시작되었다.
 레비아탄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포이사르돈은 망설이지 않고 포유류로 진화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이사르돈은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을 레비아탄을 죽인 후로 미루었기에 굳이 힘이 약화를 가져올 포유류로 진화할 이유가 없었다.
 츠츠츠츳.
 그의 얼굴을 시작으로 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왜 이런 진화를 겪어야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오오오오옹.
 주변으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진화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로만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퍽, 퍽, 퍽!
 주변에 존재하던 작은 생명체들이 포이사르돈 주위에 발생하는 강력한 힘을 견뎌 내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더욱 강하고 더욱 거대하게. 내가 알고 있던 종류의 생명체가 아닌, 더욱 강력한 생명체로 진화하겠다!’
 쩌저저적.
 그의 몸이 갈라지고 있었다.
 ‘전설, 전설에서나 등장하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쯔각, 퍼석.
 기다란 목이 부서져 나가며 목 아래의 몸뚱이가 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양 속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태어나겠다.’
 이제는 머리만 남은 포이사르돈.
 ‘나는 결정했다!’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며 얼굴 전체에 자리 잡은 균열이 커져 갈 때쯤.
 ‘내가 진화하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을 가진 생명체.’
 퍼석!
 그의 얼굴마저 부서져 버렸다.
 ‘나는 수룡의 모습으로 진화하겠어!!’
 포이사르돈의 거대한 몸을 지배하던 종환의 자아가 심연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 바다의 제왕들
 
 
 종환은 꿈을 꾸고 있었다.
 드넓은 대양을 여유롭게 유영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움에 미소 지었다.
 꿈인 것을 알았기에 깨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이 꿈을 붙잡아 더 오랜 시간 편안함을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는 되지 않았다.
 우오오오오오오!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맹수의 울음소리가 종환의 평화를 깨 버린 것이다.
 하지만 종환은 예전과 같이 겁내지는 않았다.
 종환은 기다렸다.
 그오오오오오오오오오!!
 또 다시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폐부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소름끼치는 울부짖음이었지만 종환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번쩍!
 드디어 종환의 눈앞에 두 개의 핏빛 눈동자가 생겨났다.
 여전히 강인하고 살기 넘치는 무서운 눈동자였지만 종환은 이번에는 떨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는 나이기 때문이지.
 그랬다.
 종환의 무의식 세계로 찾아와 그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괴물의 정체는 바로 종환 그 자신이었다.
 아니 종환의 모습이 아니라 진화한 포이사르돈의 모습, 즉 수룡 포스에돈의 모습인 것이다.
 거대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종환의 모습은 핏빛 눈동자 가득 살기를 담고 있는 괴수의 거울 이면의 모습이었다.
 ―가자, 수룡이여!
 종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핏빛 눈동자를 향해 그렇게 말한 후에 심연의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의식 세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거대 괴수, 수룡 포스에돈은 창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한차례 웃어 보인 후 종환을 따라 의식 세계로 올라갔다.
 
 번쩍.
 포이사르돈, 아니 수룡으로 진화한 포스에돈의 눈이 뜨여졌다.
 그가 눈을 뜨자 자유롭게 헤엄치던 주변의 어류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뿐만 아니라 해류의 움직임마저 멎어 버렸다.
 포스에돈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하늘을 향해 길게 펴 보았다.
 100미터 넘는 수심인데도 불구하고 꼬리가 해저에 닿은 상태로 머리가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
 몸길이는 120미터에 이르고 몸 두께가 25미터 이르는 정말이지 거대한 바다의 괴수, 포스에돈.
 포이사르돈은 포스에돈으로 진화하는 순간 자신이 동해 바다의 제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권능이 동해 바다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고 동해의 모든 바다 생명체들이 그를 향해 길을 비켰다.
 기존의 생물 분류에는 속하지 않은 수룡이라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종환, 아니 포스에돈은 가장 먼저 자신의 능력들을 점검해 보았다.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를 이룩함으로 어떠한 능력들이 생겨났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먼저 외적으로는 단단한 이빨과 철처럼 경도 높은 외피가 생겼다.
 바닷물을 마셔 그 속에 들어 있는 산소와 질소를 분리해 호흡하는 해수 호흡이라는 기능으로 인해 이제는 해수면 밖으로 나가서 공기를 들이마실 필요가 없어졌다.
 해류 조절 기능은 해류 조정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1,000미터가 넘는 심해를 잠수할 때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심해 잠수라는 기능도 생겨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해저지진과 해일 생성.
 해저의 땅을 충돌시켜 지진을 일으키고 이를 이용하여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 내는 능력,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가히 바다의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다!’
 그가 마음을 먹으면 바다 속뿐만 아니라 육지의 생물들에게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포스에돈은 새로 생긴 능력들에 매우 만족했다.
 ‘이 능력들을 모두 최대치까지 수련한다. 그리고······.’
 포스에돈은 몸속을 돌고 있는 물의 마나를 점검해 보았다.
 포이사르돈의 몸이었을 때는 몸을 가득 채웠던 마나가 포스에돈이 되면서 신체의 10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포스에돈으로서 신체에 쌓을 수 있는 마나량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었다.
 ‘마나를 온몸 가득히 채우고 놈에게 도전한다.’
 그의 붉은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레비아탄에게!’
 
 인간은 가진 지능과 능력에 비해 너무나도 짧은 수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의 수명은 100년가량.
 한때는 종환이라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수룡의 삶을 영위하는 포스에돈은 자신에게는 주어진 수명이 없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수룡으로 진화하는 순간, 나는 엄청난 능력과 더불어 무한한 수명을 부여받았어. 이제는 시간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니까 말이야.’
 포스에돈으로 진화한 지가 벌써 10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인간의 삶을 살았다면 벌써 죽음을 맞이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이지만 포스에돈에게는 인간으로 치면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포스에돈으로 진화하는 순간 조금만 힘을 쌓으면 레비아탄을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의 오판이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거대한 바다에는 아직 그가 모르는 강자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포스에돈이 동해 바다의 제왕이라면 서해, 남해, 북해, 중앙해, 그리고 심해의 제왕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100년의 시간 동안 알아낸 각 해역의 제왕들의 정보는.
 
 ―북해의 제왕/어룡[하티카탄]
 
 ―남해의 제왕/알바트로스[비달가라]
 
 이 두 존재가 전부였다.
 100년 간 알아낸 것이라고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정보였지만 서해, 중앙해, 심해의 제왕을 알아내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포스에돈의 영역인 동해에서 이 세 해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심해의 영역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심해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인해 포스에돈의 걸음이 멈춰진 것이다.
 수문장의 정체는 바로.
 
 ―심해의 수문장/백경[모비딕]
 
 포스에돈은 처음 모비딕을 보았을 때는 마치 세상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길이가 800미터가 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하얀 고래가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는 모습이라니.
 정말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모비딕은 포스에돈에게 단 한 문장의 말을 하고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너는 심해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그의 말에 포스에돈은 분노했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쿠르릉, 쿠르르르릉!!
 모비딕의 주위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일고 해저지진으로 인해 해일이 발생했으며 포스에돈의 창날과도 같은 이빨이 그의 등을 깨물었다.
 쩌저저적!
 그러나 그런 포스에돈의 공격은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모비딕이 그 어떤 공격에도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이다.
 번쩍!!
 그걸로 끝이었다.
 모비딕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싶더니 포스에돈이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자신의 해역인 동해로 돌아와 있었다.
 포스에돈은 분하고, 또 분했다.
 그래서 힘을 모았다.
 서해나 중앙해로 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심해를 거치지 않고 북해나 남해의 제왕을 제압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포스에돈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이 바다의 주인이 될 존재다! 그 따위 고래 한 마리 이기지 못해서 돌아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절대 평범한 고래가 아니었지만 포스에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은 내가 이긴다. 네놈의 거대한 몸뚱이를 티끌 한 점 남김없이 모두 먹어 치워 줄 테니 기다려라.’
 그런 일념으로 이를 갈며 힘을 모았다.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충분한 힘을 모았다.
 심해 잠수, 해저지진, 해일 생성을 제외한 다른 능력들은 모두 최대치까지 올려두었고 물의 마나도 200미터로 성장한 몸의 절반 이상을 채울 정도로 모았다.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되었다!’
 포스에돈은 중앙 해나 서해의 제왕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심해의 제왕과 레비아탄을 꺾어 일곱 번째 진화를 이룩해 내면 나머지 해역의 제왕들은 한 끼 식사 같은 신세일 뿐이다.
 ‘수문장인 모비딕을 꺾고 심해로 들어간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랜 시간 동쪽 바다에서 웅크리고 있던 거대한 수룡, 포스에돈이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룡이라는 생물의 분류는 고대에 존재했던 공룡의 한 갈래로서 외형은 거대한 돌고래의 모습이었지만 포유류가 아닌 바다 파충류에 속했다.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살펴보면 바다에서 살던 파충류들이 육상으로 올라가 거대한 공룡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고래와 돌고래의 조상쯤으로 생각되어지는 어룡이 육상의 파충류들이 바다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모습이라는 사실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어룡, 육지의 포식자였던 공룡들이 바다에 적응하기 진화되어 생겨난 또 다른 바다의 강자.
 북해의 제왕인 하티카탄도 그런 어룡에 포함되어지는 거대 생물이었다.
 하티카탄, 길이는 30미터 정도에 돌고래를 닮은 모습의 그는 다른 바다의 제왕들과는 다르게 상식 밖으로 거대한 몸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력한 이빨을 가지고 있거나 두꺼운 외피가 몸을 감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외관상으로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 그가 북해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츠츠츠츠즉, 쩌저저적!
 북쪽의 깊은 바다 속.
 날렵하게 생긴 하티카탄이 헤엄쳐 지나간 자리에 작은 얼음 결정이 생겨나더니 급속도로 바닷물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나트륨을 다량 포함한 염수가 아닌 미량의 나트륨만 포함한 담수로 구성된 얼음이 하티카탄이 지나간 자리에 생겨나며 곧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수면 위로 떠오른 얼음덩어리는 곧 주변의 바닷물마저 담수로 바꾸며 거대한 얼음 지형을 형성했다.
 츠츠츠쯔즈즉!
 순식간에 생겨난 반경 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바다 위에 자리 잡았다.
 그 얼음덩어리 위에 눈이 쌓이고 쌓여 결정이 뭉치면 북해를 장식하는 수많은 빙하 중에 하나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바다를 얼려 빙하를 만들어 내는 능력, 그것이 하티카탄을 북해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만든 강력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빙하를 만들고 북해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은 어룡, 하티카탄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였다.
 새로이 거대 빙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바다를 얼리던 하티카탄은 빠른 속도로 강한 살기를 드러내며 접근하고 있는 존재로 인해 행동을 멈추었다.
 그오오오오오!!
 바다를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길이가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수룡, 포스에돈이었다.
 하티카탄은 포스에돈이 완전히 근접할 때까지 먼저 공격하지 않고 기다렸다.
 버젓이 살기를 드러내는 포스에돈을 가만히 바라보는 하티카탄에게는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구우우웅.
 하티카탄과 많이 떨어진 장소에서 몸을 멈춘 포스에돈은 먼저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그의 그런 행동은 한 바다를 책임지는 제왕에 대한 예의를 차린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티카탄, 오랜만이다.
 ―동해의 지배자가 이런 오지에는 무슨 일로 방문한 것이지?
 하티카탄의 어조에는 포스에돈을 향한 존중이 담겨 있었지만 그와는 별도로 강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나는······.
 포스에돈이 방문의 목적을 밝혔다.
 ―너의 힘을 가지러 왔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의 발언이었다.
 하티카탄을 꺾고 그의 제왕으로서의 힘과 북해를 제어하는 능력을 뺏으려는 것이 포스에돈의 의도!
 포스에돈은 모비딕과 싸우기 전에 북해와 남해의 제왕들을 잡아먹고 그들의 힘을 흡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포스에돈의 도발에도 하티카탄은 침착했다.
 ―바다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싸움이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하티카탄의 말에 포스에돈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너를 죽여 북해 바다의 균형이 깨어지더라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포스에돈은 바다의 균형을 지키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26년을 인간으로 지낼 때의 그의 성격은 조심성 많고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편이었지만 바다의 괴수로 100년 이상을 살다 보니 과격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바다 전체가 쑥대밭이 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저 잘난 척하는 레비아탄을 꺾을 수 있다면······.’
 포스에돈은 자신의 생각을 하티카탄에게 전달했다.
 ―북해의 빙하 전체가 녹아 내린다 하더라도 너를 죽이고 힘을 뺏어야겠다!
 콰르르르르릉!!
 그 말을 끝으로 북해 바다 전역에 엄청난 크기의 해류 소용돌이가 생성이 되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거대한 크기를 지닌 괴수들도 뼈를 추리지 못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하티카탄은 자신에게로 빠르게 다가오는 해류의 소용돌이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보다 월등히 거대한 몸을 지닌 포스에돈을 노려보았다.
 ―나는 하티카탄, 북해의 제왕이다! 이런 시시한 공격 따위가 통할 것 같으냐?!
 츳츠츠츠츠츠.
 직경이 3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류의 소용돌이에서 귀를 자극하는 굉음이 발생하더니 순식간에 회전하는 모습 그래도 얼어 버렸다.
 ―너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받겠다!
 하티카탄이 그렇게 외치자 완전히 얼어 버린 소용돌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발했다.
 쩌저적, 콰아아아아아앙!
 이에 포스에돈은 해수면을 향해 몸을 솟구쳤다.
 폭발로 인한 얼음 잔해에 몸을 얻어맞으면 긁히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오오오옹!
 빠른 속도로 해수면을 박차고 올라 허공으로 몸을 띄운 포스에돈의 몸에 그와 같이 해수면을 뚫고 나온 직경이 10미터가 넘는 얼음덩어리들이 박혀 들었다.
 퍽, 퍽, 퍽, 퍽!
 츳츠츠츠츠.
 얼음덩어리에 노출된 외피가 빠른 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철갑피를 뚫을 정도로 강한 냉기다! 역시나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어.’
 공중으로 떠오른 덕분에 바다 속에서 폭발한 얼음 공격을 대부분 피해 낼 수 있었던 포스에돈의 몸이 해수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의 거대한 몸이 떨어지자 굉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튀어 올랐다.
 다시 바다 속에 몸을 드러낸 포스에돈의 몸은 1/4 이상이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받아라!
 포스에돈의 물의 마나가 주변의 바다를 격동시켰다.
 구르르르르르릉!!
 바다 전체가 떨리고 해저의 지면이 솟구쳐 올랐다.
 해저의 지형을 충돌시켜 지진을 일으키는 그의 강력한 힘이 구현된 것이다.
 인근의 바다가 순식간에 흙빛으로 물들어지며 파도 없이 잠잠하던 북해의 바다에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어딜!
 바다를 격동시키는 포스에돈의 강력한 힘에도 하티카탄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푸른 몸에서 은은한 하늘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마구잡이로 솟구쳐 오르는 해저의 지면이 얼어붙은 것은 물론이며 해수면에 50미터 이상의 높이로 생성된 해일이 그 모습 그대로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포스에돈의 공격이 순식간에 무위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포스에돈이 노린 것은 따로 있었다.
 쿠오오오오오.
 하티카탄이 벌집처럼 일어난 북해 바다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신을 집중한 사이, 포스에돈의 거대한 몸이 벼락같은 속도로 바다를 가르며 하티카탄을 향해 짓쳐 들었다.
 단숨에 하티카탄을 집어삼켜버리려는 포스에돈의 의도!
 쐐애애애애액!
 ―크아아악!!
 하티카탄의 목전까지 다가선 포스에돈의 거대한 입이 크게 벌어졌다.
 터업!
 하티카탄을 통째로 삼켜 버린 포스에돈!
 하지만 포스에돈의 인상이 잔뜩 찡그려졌다.
 ‘없다!’
 분명히 하티카탄을 한 입에 집어넣었는데 이빨과 혀에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어디냐?
 콰르르르릉!
 혹시라도 있을 하티카탄의 공격에 대비하여 주변에 여섯 개의 해류 소용돌이를 일으킨 포스에돈이 사방으로 물의 마나를 퍼뜨려 하티카탄을 찾기 시작했다.
 찌릿!
 포스에돈의 감각에 극한의 냉기가 포착되었다.
 하티카탄이 몸을 숨긴 곳은.
 ―빙하 속으로 도망친 것이냐?!
 해수면 아래에 잠긴 거대한 빙하 속이었다.
 자신이 만든 빙하 속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하티카탄이 위기의 순간에 근처의 빙하 속으로 순간이동을 구현한 것이었다.
 구오오옹!
 콰아아앙! 콰지직!
 직경이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류의 소용돌이가 하티카탄이 몸을 숨긴 빙하를 때렸다.
 쩌저적, 쩌적!!
 빙하가 외각 쪽부터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산산 조각이 나며 부서져 나갔다.
 쩌정, 콰아아아앙!!
 빙하가 부서지는 순간 하티카탄이 다시 몸을 감추었다.
 ―도망을 칠 셈이냐?
 포스에돈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북해의 바다에는 수 만 개의 크고 작은 빙하가 존재한다.
 빙하 속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하티카탄이기에 마음먹고 숨는다면 찾을 방도가 없었다.
 포스에돈은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 나와라!!
 쿠오오오옹!! 콰지직!!
 포스에돈이 일으킨 소용돌이가 주변의 빙하를 부셔 버렸다. 그리고 해저지진이 일어나 북해의 바다를 뒤흔들었다.
 콰르르릉, 콰릉!!
 사방으로 얼음덩어리들이 소용돌이치고 빙하 위에 서식하는 백곰이나 바다표범 등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오오!
 콰지직.
 ―나오지 않는 다면 북해 바다를 모조리 부숴 버리겠다!!
 포스에돈의 분노한 음성이 바다 속에 울려 퍼졌다.
 엄청난 포효 소리를 뿌리며 얼음 잔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포스에돈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바다 속에 빠진 백곰과 바다표범이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며 살기 위해 바다 밖으로 헤엄을 쳤다.
 그들의 눈에 비친 포스에돈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콰직, 쿠르르릉!!
 또 하나의 빙하가 박살이 나며 그들을 향해 거대한 얼음덩이들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꾸에엑!”
 퍽, 콰득!
 수많은 북해의 생명체들이 어육으로 변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잔인한 광경에도 포스에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바다 속, 지옥의 참상 속에서 더욱더 크게 소리치며 바다를 어지럽혔다.
 ―북해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겠어! 당장 나와!!
 콰르르르르릉!!
 종환이 바다의 괴수로 변하고 100년 이상이 흐른 지금, 이때까지 인간의 이성으로 억제하던 포스에돈의 잔인한 심성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반드시 죽인다!!
 
 포스에돈과 하티카탄의 싸움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하티카탄과 죽이기 위해 그를 찾는 포스에돈.
 두 괴수의 싸움이 무려 1년 동안 지속되며 북해의 바다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극악한 기후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몇 안 되는 북해의 생명체들의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북해 위를 장식하던 거대한 빙하들도 대부분이 파괴되어 남쪽으로 떠내려 가 버렸다.
 북해의 바다가 이 지경이 되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포스에돈을 피해 다니던 하티카탄도 더 이상 승부를 미룰 수가 없었다.
 1년 간 빙하 속으로 도망을 다니며 새로운 빙하를 만들어 내었지만 자신이 빙하를 만들어 내는 속도보다 포스에돈이 빙하를 파괴하는 속도가 더 빨라 몇 개월 안에 북해의 모든 빙하가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벌써 많은 빙하가 파괴되어 남쪽으로 떠내려 가 버린 터라 바다의 해수면이 전체적으로 상승해 육지의 생명체들이 재난을 겪고 있었다.
 빙하가 더 이상 파괴되면 세상에 남는 것은 바다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한 해역의 제왕이자 수호자인 하티카탄으로서는 그런 엄청난 짓을 자신이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쓰라렸다.
 ‘더 이상은 안 돼! 포스에돈과 승부를 낸다!’
 1년 동안 빙하를 옮겨 다니면서 얼음의 마나를 끌어 모은 터라 빙하를 부순다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한 포스에돈을 이길 확률은 충분했다.
 ‘포스에돈, 내가 왜 북해의 제왕인지를 보여 주겠다!’
 북해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빙하 아이스란드.
 그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하티카탄의 모습이 사라졌다.
 
 쿠르르르릉.
 콰지직, 콰아아앙!
 북해 바다는 근 1년 동안 조용할 날이 없었다.
 콰지직, 콰득.
 또 하나의 빙하가 무너져 내렸다.
 포스에돈은 하티카탄을 잡아 죽이기 전에는 동해 바다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특정 해역을 수호하는 제왕들이 자신의 해역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해역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타 지역 포식자들의 침범이나 해수의 양과 해류, 날씨, 기후, 생명체들의 분포가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은 물론이며 심할 경우 해저화산 폭발이나 해저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사실 포스에돈이 동해 바다의 제왕이 되기 전에는 동해에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기후와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해류, 해가 떠 있는데도 눈이 내리는가 하면 수많은 돌연변이들이 출연해 바다를 어지럽혔다.
 포스에돈으로 진화하기 전에 사냥했던 전기가오리 나키나 대왕 오징어 필라크스, 거대 불가사리 파르몬 등이 그에 해당되었다.
 그로 인해 동해 바다와 인접한 가이아 대륙에서는 서쪽을 향한 항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서쪽을 향해 배를 보냈지만 단 하나의 배도 가이아 대륙의 서쪽에 존재한다는 미지의 대륙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로인해 바다의 생물들과 인간들 모두에게 동해 바다는 죽음의 바다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환이 포이사르돈에서 포스에돈으로 진화하면서 그 모든 혼란들이 사라졌다.
 해류와 기후가 안정되었고 기존의 돌연변이들은 모두다 포스에돈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바다로 떠나갔던 바다 생물들이 돌아오고 바다는 번창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인간들은 감히 서쪽으로 배를 보내지 못하고 그저 가이아 대륙의 남북을 항해하는 해로만 개척할 뿐이었다.
 여하튼 동해 바다는 포스에돈의 존재로 인해 평화를 되찾았다.
 그런데 동해 바다가 안정된 지 백 년 만에 다시 위기가 온 것이다.
 동해의 제왕인 포스에돈이 1년 간 자리를 비운 사이 다시 해류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고 해저지진이 일어나 수시로 해일이 일어났다.
 모두가 장기간 자리를 비운 포스에돈의 탓.
 하지만 자신의 해역이 엉망이 되는 지금 이 순간 포스에돈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티카탄을 잡아 산 채로 씹어 먹는 그림만 가득 차 있었다.
 구오오오오오!
 포스에돈의 울부짖음이 북해를 흔들었다.
 콰르르르릉!!
 다시 하나의 빙하가 사라져 간다.
 ―네놈이 나타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언제까지 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콰르르르르릉!!
 포스에돈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그 소용돌이들은 잠시 포스에돈의 곁에 머물다가 주변의 빙하들을 향해 흩어졌다.
 콰과과광!! 콰르르릉! 콰직!!
 주변이 온통 얼음조각으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포스에돈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북해의 빙하가 전부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의 공격이 멈추지 않으리라!
 콰르르릉!
 포스에돈은 또 다시 해류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빠르게 이동하며 다른 빙하를 박살내려던 포스에돈, 그의 감각에 강한 냉기를 뿌리며 접근하는 존재가 포착되었다.
 씨익.
 포스에돈은 창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그렇게 씹어 죽이고 싶었던 상대가 이렇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니 반갑고도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그에 대한 보답은 죽음으로 돌려 주마!’
 포스에돈의 눈동자에 화염이 일었다.
 ―오너라!
 쩌저저저적!
 포스에돈의 시야에 전면의 바다가 빠르게 얼어붙는 모습이 들어왔다.
 츠츳츠츠츠츠!!
 먼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급속도로 다가오는 극한의 냉기!
 포스에돈은 이를 악물었다.
 ‘이전보다 더 강한 기운이다. 저 냉기에 노출되는 순간 순식간에 심장까지 얼어붙어 버릴 거야!’
 휘우우웅.
 포스에돈은 급히 아래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쩌저저적!
 그가 몸을 움직인 직후에 그가 위치하고 있던 바다가 완전히 얼음이 되어 버렸다.
 쿠르르릉.
 포스에돈은 깊은 곳으로 향해 움직이면서 주변에 해류의 소용돌이를 소환했다.
 ‘놈의 냉기는 해수면을 향하는 패턴을 지닌다. 바다 전체를 얼리는 것이 아니라 나트륨을 제외한 담수를 얼려 빙하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깊은 바다에는 놈의 냉기가 저 정도의 빠른 속도로는 확장하지 못할 거야.’
 전투에 있어서 포스에돈의 판단력은 빠르고 정확했다.
 확실히 500미터 이상의 바다 밑으로 들어가자 하티카탄의 냉기가 확장하는 속도가 느려졌다.
 ‘놈을 단숨에 제압해야 한다. 힘은 내가 우세하다. 하지만 놈은 자신이 만든 빙하 속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가 있어. 전투 내내 내가 우세를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놈을 단번에 제압하지 못하면 이번에도 결국 무승부로 끝난다! 무승부는 패배보다 못한 것!’
 포스에돈은 점점 영역을 확장하며 다가오는 얼음의 기운을 마주하며 고민에 빠졌다.
 ‘단번에 끝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놈은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아무리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어도 놈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놈이 내 입속으로 순간이동을 해주지 않는 이상에야 놈을 꺾을 방법이 없다.’
 포스에돈은 짜증이 났다.
 상대에게 지지는 않지만 이길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
 하지만 포스에돈은 포기를 몰랐다.
 ―방법이 없다면 만들어 낸다!
 츳츠츠츠츠!
 자신을 향해 조금씩 접근하고 있는 하티카탄의 강한 냉기에 포스에돈이 그를 향해 빠르게 헤엄쳤다.
 우오오오오!
 그가 헤엄치자 바다가 길을 열었다.
 엄청난 속도로 하티카탄에게 접근한 종환은 극한의 냉기가 몸에 닿기 직전, 하티카탄을 한 번 노려보고는 방향을 바꿔 급히 하강했다.
 쐐애애액.
 냉기에 노출된 등이 얼어붙기 시작했지만 포스에돈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해저를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충돌!
 포스에돈의 거대한 몸이 바닥과 충돌하면서 해저의 지면이 뒤틀렸다.
 콰지직, 콰직!! 드드드드드드드드드!!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나며 해저로부터 강력한 해저지진이 발생했다.
 평소에 포스에돈이 일으키는 해저지진보다 월등히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며 북해의 바다를 초토화시켰다.
 우르르르르르릉!!
 콰과과과과앙!!
 북해의 바다에 100미터가 넘는 해일이 발생했고 반경 10킬로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빙하가 산산 조각이 나며 비산했다.
 근처의 빙하가 모두 터져 나가자 피할 곳을 찾지 못한 하티카탄이 그대로 지진의 충격파에 노출되었다.
 ―크합!!
 하티카탄은 급하게 얼음의 마나를 끌어 모아 자신의 몸을 얼음의 장막으로 둘러쌓다.
 그의 몸이 얼음으로 뒤덮인 직후, 포스에돈의 지진파와 그의 얼음 장막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콰과과과광!!
 ―크악!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들려온 하티카탄의 비명 소리!
 해저의 땅 속으로 300미터 넘게 파고들어 갔던 포스에돈이 그와 동시에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쐐애애애애앵.
 그가 향한 곳은 강한 타격을 입고 혼란에 빠져 있을 하티카탄에게로가 아니었다.
 포스에돈은 온몸의 마나를 끌어 모아 그 모든 힘을 꼬리와 지느러미에 집중시켰다.
 ‘승부다!’
 그는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달처럼 하티카탄을 중심에 두고 크게 회전했다.
 쿠오오오오!!
 포스에돈의 몸이 음속을 돌파하며 거센 물보라가 발생했다.
 바다 속을 음속으로 헤엄치는 엄청난 스피드!
 포스에돈의 회전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가 하티카탄의 주위를 음속으로 회전함에 따라 하티카탄을 축으로 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주변의 바닷물이 그 거대한 소용돌이에 끌려오며 규모를 더해 갔다.
 콰르르르르릉!!
 ‘사라져라, 바다여!’
 포스에돈은 직경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발생시키는 동시에 소용돌이 외부의 해류를 조정해 바닷물을 밖으로 밀어냈다.
 촤아아아아악!
 종환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는 하티카탄을 중앙에 가둔 채 주변의 바다와 격리되었다.
 마치 썰물처럼 소용돌이 외각의 바다가 사라지며 해저의 지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심이 깊어 해초조차 자라지 않아 썰물 빠진 뻘과도 같은 해저의 모습.
 소용돌이에 갇힌 하티카탄을 중심으로 반경 10킬로미터 이상의 바닷물이 밖으로 밀려나 버린 엄청난 광경!
 ―어떠냐? 주변의 바닷물이 전부 사라져 버린 지금 한 번 재주껏 도망쳐 봐라!
 하티카탄이 타격을 입고 혼란에 빠져 있던 몇 초 동안 그를 완전히 고립시켜 버린 것이다.
 주변에 바닷물이 없으면 빙하 속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 없는지 하티카탄이 크게 당황하며 소용돌이 속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돌이 속은 포스에돈의 제어하는 영역!
 핏! 파드득!
 괜한 움직임으로 칼날 같은 소용돌이에 피부가 찢긴 하티카탄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소용돌이의 파도 속에 하티카탄의 피가 튀어올라 소용돌이 속을 진한 피 냄새로 오염시켰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회전하던 포스에돈.
 ―쿠오아아아아아악!!
 심장을 멈추게 만드는 무서운 괴성과 함께 포스에돈의 눈동자가 진한 핏빛으로 번뜩였다.
 
 
 
 4. 남해의 제왕, 괴조 비달가라(1)
 
 
 포스에돈의 몸이 소용돌이의 궤도에서 벗어나 하티카탄을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자신이 만들어 낸 해류의 소용돌이이지만 그 엄청난 여파에 염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지 포스에돈의 헤엄 속도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하티카탄은 그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나를 죽이면!! 내가 죽으면 북해의 바다가 엉망이 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티카탄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포스에돈은 대답 없이 그와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가장 거대한 빙하! 대륙만큼이나 거대한 빙하! 아이슬란드가 녹게 될 것이다! 아이슬란드가 녹으면 모든 육지들이 바다로 뒤덮인다! 세상에 육지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하티카탄은 웅변하듯 소리쳤다.
 그의 말은 모두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티카탄도 이런 말로 포스에돈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움.
 죽음에 대하 두려움이 하티카탄으로 하여금 최후의 발악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가둬 버린 거대한 소용돌이를 통째로 얼려 버리기 위해 얼음의 마나를 확장시켜 보았지만 포스에돈의 물의 마나가 더 강대했다.
 주변의 지역만 미세하게 얼어붙을 뿐, 더 이상 얼음의 마나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다.
 ‘죽기 싫다! 죽기 싫어!’
 여섯 바다를 책임지는 제왕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이성적이라 일컬어지는 북해의 제왕, 어룡 하티카탄.
 그도 죽기를 두려워하는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하티카탄이 죽음의 공포 앞에 떨고 있는 사이 포스에돈의 거대한 몸이 그의 목전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쩌어어억.
 그의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하티카탄의 작은 몸은 한 번에 삼킬 정도의 거대한 입, 그 속에서 창날같이 날카로운 수백 개의 이빨 들이 드러났다.
 하티카탄은 마치 동굴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포스에돈의 입속을 바라보며 무한의 공포를 느꼈다.
 저 무서운 이빨들이 자신을 분쇄해 버릴 것을 상상하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살려 줘!!
 성난 해일처럼 밀려오는 공포감에 하티카탄의 입에서 한 해역의 제왕에게서는 나왔다고 보기 힘든, 삶을 구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콰드득!!
 하티카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스스로의 냉기로 인해 얼음처럼 변해 버린 하티카탄의 몸뚱이가 포스에돈의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콰드득, 콰득!!
 포스에돈은 마치 한 여름날 탄산음료 속에 들어 있는 사각 얼음을 깨물어 먹듯이 하티카탄을 씹어 삼켰다.
 ―북해 제왕의 유언치고는 형편없어, 살려 달라니.
 포스에돈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1년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자신이 승리하고 그를 먹어 버리지 않았는가?
 ―크하하하하하하하!!
 포스에돈이 크게 웃었다.
 그의 자아 아래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종환도 그를 따라 웃음 지었다.
 북해의 바다.
 일전에는 감히 목격하지 못했던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바다의 대괴수 포스에돈의 흉포한 웃음소리가 북해의 바다 전체에 스산하게 메아리쳤다.
 쩌저적.
 그의 웃음소리에 반응한 것인가?
 격전이 일어난 곳과 한참이 떨어진 곳.
 북해의 바다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얼음 대륙, 아이스란드.
 그 거대한 얼음 대륙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하!!
 그런 사실에는 관심이 없는 포스에돈의 웃음소리는 그 후로 한참이나 북해의 바다에 울려 퍼졌다.
 
 ―얼음의 마나라.
 몇 시간 뒤.
 하티카탄을 완전히 소화시키자 포스에돈의 몸에 변화가 일었다.
 우선은 동해의 바다와 성질이 같은 그의 마나가 가장 먼저 바뀌기 시작했다.
 무언가 묵직했던 마나의 움직임이 가벼워지고 신체의 온도가 조금씩 낮아지더니 몸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던 혈액의 흐름이 이전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느려졌다.
 하티카탄이 가지고 있던 얼음의 마나가 포스에돈의 바다의 마나와 중화되어 새로운 타입의 마나가 탄생한 것이다.
 하티카탄처럼 극한의 마나도 아니었고, 포스에돈이 가진 무거운 바다의 마나도 아닌, 무더운 여름에 계곡물에 물을 담근 것 같은 청량한 마나가 포스에돈의 몸 전체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좋구나!
 마나의 성향과 피가 도는 속도, 심지어 심장이 뛰는 간격마저 변해 버리자 포스에돈의 잔혹한 성격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세상의 마이너스 적인 감정들만 모아 놓은 것 같은 그의 성격에 하티카탄의 이성이 침투해 조금 더 냉정해지고 이성적인 면이 생겨났다.
 물론 아직도 충분히 잔인하고 악한 포스에돈이었지만 그전과 비교해 봐서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성품의 변화였다.
 ―이제 냉기를 다룰 수가 있다니.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냉기를 다뤄 빙하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빙하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하티카탄의 고유한 능력이 포스에돈에게 생겨난 것이다.
 ―크크크크크, 가장 먼저 얼음 돌고래를 사냥하기를 잘했어. 이제 이 능력들로 그놈처럼 바다를 얼려 버릴 수가 있게 되었어!
 강해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나 포스에돈에게 강함이란 숨 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그에게 강력한 능력이 생겨나자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크하하하하! 이제 곧 레비아탄 녀석을 얼음 과자로 만들어 버린 뒤에 씹어 삼킬 수가 있겠구나!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
 포스에돈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 젖혔다.
 한참을 웃어 대던 포스에돈의 표정이 갑자기 북해의 빙하처럼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정도 능력이 생겨났다 하더라도 흰 고래 자식을 죽일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그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눈동자에는 용광로보다 뜨거운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다시 움직일 때가 되었어!
 포스에돈은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저 멀리 존재하는 남쪽의 바다.
 다음 목표는 남해의 제왕인 거대한 바다 새, 알바트로스!
 바다 속에 사는 생명체가 아니라 남쪽의 바다 위의 창공에서 남쪽 바다를 수호하는 거대 괴조!
 ―비달가라!
 포스에돈의 눈에 수천 킬로 떨어진 남해의 바다 위에서 유유히 바다를 굽어보고 있을 거대 알바트로스, 비달가라의 환영이 보이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비달가라의 울부짖는 소리가 포스에돈의 느려진 심장을 자극했다.
 두근!
 피가 도는 속도가 빨라졌다.
 두근, 두근!
 그의 심장 속도도 더불어서 빨라졌다.
 이때까지 자신이 상대했던 바다 괴수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포식자!
 비달가라와의 전투를 생각하는 포스에돈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감돌았다.
 ―다음 목표는 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포스에돈의 거대한 몸이 북해의 바다를 가르며 사라졌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물길이 갈라진 그대로 하얗게 얼어붙어 그가 이동한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분명했다.
 비달가라가 기다리고 있을 남쪽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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