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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패군(覇君) [E]

패군(覇君) 1

2017.05.12 조회 1,048 추천 5


 서(序) 일(一)
 
 
 휘이잉······!
 매서운 칼바람이 시신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비, 비켯! 저리 비켯”
 겁에 질린 사내가 바들바들 떨면서 앳된 청년의 목에 칼을 겨눴다.
 푸르릉······!
 청년의 몸뚱이만큼 큰 대감도(大刀)가 시퍼런 도광(刀光)을 뿜어내며 요악한 소리를 흘렸다.
 “칼 버려. 네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삭막하다 못해 무미건조(無味乾燥)한 음성.
 흑색 갑옷을 입은 사내는 이미 열 명을 베어 넘겼다.
 그의 검에서는 아직도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옷은 피가 튀어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그는 악마다.
 열 명을 죽이면서 눈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무덤덤한 얼굴로 닭이나 오리를 잡듯이 손쉽게 죽여 버렸다. 사람을 죽이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처럼 능숙한 솜씨였다.
 싸우는 도중에 이마를 찢겨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닦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비, 비켯! 비켯! 농담 아냐! 한 발짝이라도 다가서는 날에는 이 새끼 대가리를 잘라버리겠어!”
 말을 하는 사내는 청년을 인질로 잡고 있음에도 불안한 표정을 떨치지 못했다. 대감도를 들고 있는 손도 덜덜 떨렸다. 그는 사내가 한 걸음 다가오면 한 걸음 물러서면서 살 길이 청년에게 있다는 듯 청년의 몸뚱이만 바싹 움켜잡았다.
 “타협할까? 그 철부지를 놔줘. 허면 나도 널 놔주지.”
 “흐흐흐! 누굴 어린아이로 아나······ 장난하지 마!”
 “난 장난 같은 것 안 한다. 식언(食言), 허언(虛言)도 안 한다. 내 말은 믿는 게 좋아.”
 “흐흐흐! 이 새끼가 누군지 알아. 장군(將軍) 새끼 아들이잖아! 맞지? 흐흐흐! 내가 이런 놈을 놔줄 것 같아. 물러서! 안 물러서면 이 새끼 귀때기부터 잘라낼 거야!”
 대감도를 든 자는 청년을 질질 끌며 뒷걸음질을 했다.
 청년이 다급히 말했다.
 “저, 정말이에요. 저분 말을 믿으세요. 저분은 결코 식언 같은 건······”
 “시끄러워! 콱 배때기를 쑤셔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 너 같으면 손에 쥔 떡을 버리고 남이 먹다 남긴 누룽지나 달라고 하겠냐?”
 사내가 대감도에 힘을 주자 청년의 목이 살짝 그어지며 피 몇 방울이 흘러내렸다.
 “흐윽!”
 청년의 눈길이 다급해졌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천천히 다가오는 사내에게 간청했다.
 “제, 제발 이자 말대로······ 가, 가까이 오지 말고······ 이자를 보내줘. 제발.”
 “안 됩니다.”
 갑옷을 입은 사내는 싸늘하게 말하며 검을 들어올렸다.
 “내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말했다.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말해라.”
 “흐흐흐! 네놈 눈에는 이 새끼가 보이지 않냐? 이 새끼가 내 손에 있는 한······”
 그때였다.
 두두두두두!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뿌연 흙먼지가 피어나는 것으로 보아 백 장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가 웃었다.
 “흐흐흐! 됐어! 됐어! 이 새끼 살리고 있으면 꼼짝 마. 한 발짝만 떼어놔도 죽여버리겠어. 흐흐흐!”
 득의양양한 사내와는 달리 청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나, 나 좀 구해······”
 갑옷을 입은 사내가 청년의 말을 잘랐다.
 “타협은 글렀군.”
 “흐흐흐! 미친놈. 이 상황에서 타협할 놈이 어디 있냐?”
 쒜에엑!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핏빛 검광이 흘렀다.
 “컥!”
 “커억!”
 두 마디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갑옷을 입은 사내는 대감도를 든 사내의 머리를 정확히 반으로 갈라놨다.
 즉사다.
 또 하나의 죽음이 있었다.
 청년의 목이 깨끗하게 잘라져 둥실 떠올랐다.
 갑옷 사내는 섬광처럼 빨랐다. 허나 상대는 목에 칼을 바짝 밀착시켜놓고 언제든 벨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베어 넘기지는 못한다.
 휘이잉!
 다시 한 번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방금 생긴 주검을 쓰다듬었다.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는 오십 장으로 가까워졌다.
 사내는 재빨리 자신이 죽인 사내의 품을 뒤졌다.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건 지도(地圖) 한 장이다.
 요즘 들어 부쩍 토노번인(土魯番人)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인지 자주 국경을 넘어와서 군사 동향을 염탐해간다. 그가 펼쳐든 지도에도 서저(西宁) 일대의 군사 배치가 세밀히 그려져 있었다.
 그는 지도를 챙긴 후, 청년의 시신과 머리를 주워들고 걷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어쩔······ 수······ 없었는가?”
 “용서하십시오.”
 “후후후!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랏!”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허나 갑옷 사내는 무표정했다. 어떠한 분노도 그를 동요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자네는 늘 임무가 먼저군. 내 아들 목숨보다 그까짓 지도 한 장이 더 중요했어. 아들놈은 겉멋 부리기 좋아하는 철부지고 그 지도는 국가 기밀이니까.”
 “죄송합니다.”
 “참 충성심이 깊어. 자네처럼 충성심 깊은 사람은 처음이야. 인정해. 내가 감당하지 못할 그릇이라는 것. 그래. 화끈하게 싸울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지. 그게 좋을 거야.”
 웬만하면 기가 죽을 말, 허나 갑옷 사내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는 예도 취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의 오래된 습관 중에 하나다.
 누군가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최소한 상관에게는 예를 취하는 게 옳지 않냐고.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군인은 싸움만 잘하면 돼.
 
 
 서(序) 이(二)
 
 
 “싸움이란 게 뭔지 아는 놈이면 좋겠지. 어느 정도 독기(毒氣)도 있어야겠고. 그렇다고 얍삽한 놈은 곤란해. 약간 미련한 쪽이 좋겠어.”
 “범위를 더 줄여주십시오. 여기 있는 놈들 중 아무나 골라잡아도 그 정도는 됩니다.”
 “그런가? 후후후! 자네가 싸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네. 내가 말하는 싸움이란 이런 변방에서 세월만 죽이다가 한두 명 깔짝거리는 소꿉장난을 말하는 게 아닐세.”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사흘을 버틸 만한 자. 있나?”
 “사, 사흘······ 씩이나!”
 “있나?”
 “······”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흘은 버텨줘야 하는데······ 없다면 할 수 없지. 이 일은 다른 곳에서 알아봄세.”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무엇인가 생각난 듯 급히 말했다.
 “한 놈 있습니다.”
 “그래?”
 그가 다시 앉았다.
 “여긴 없습니다. 전출을 보내버린 놈이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런 놈이 있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서 찾아내야지. 그래, 어떤 자인가?”
 “싸움밖에 모르는 놈입니다. 소신이 보기에도 정말 싸움 하나는 기막히게 합니다. 단지······”
 “단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위인입니다.”
 “우직하다는 뜻이군.”
 “그게 우직 정도가 아니라서······”
 “후후후! 우직이란 건 말이네, 대부분 좋게 말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네. 아주 커다란 성격 결함이지. 잔머리를 굴리는 놈들보다 오히려 고지식한 자들이 다루기 쉽지. 허허허! 자네를 질색케 한 놈이라······ 점점 궁금해지는군. 그래, 어디로 보냈나?”
 “그게······ 복여위(福餘衛)로······”
 “복여위? 보낸 지는 얼마나 됐고?”
 “이 년이 얼추 지나갑니다.”
 “이 년? 이 년이면 상당히 오래됐군. 그런 데는 보통 삼 개월 단위로 배치 순환되지 않나?”
 “그자는······”
 “후후후! 말 안 해도 알 만하이.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자로군. 복여위에서 이 년이라······ 아직 살아 있겠나?”
 “워낙 지독한 놈이라······”
 “여기서 복여위까지는 수천 리 길. 자네도 소식 들어본 지 오래겠지. 헌데도 자네는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죽음의 땅인 복여위에서 이 년을 보냈는데.”
 “살아 있을 겁니다.”
 “상당히 흥미로워. 무엇 때문에 자네에게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지는 묻지 않겠네. 허니 자네도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놈에 대한 건 모두 잊어버리게.”
 “그놈을 쓰실 겁니까?”
 “아직은 호기심뿐이야. 자네에게 미움을 받은 자라······ 알아보고 괜찮으면 그 자로 할 생각이네. 허허허!”
 늦은 밤, 군막(軍幕)에서 조용한 결정이 내려졌다.
 
 
 제1장 출문(出門)
 
 
 1
 
 
 찌륵! 찌륵······!
 풀벌레 소리가 깊은 어둠을 잔잔하게 건드렸다.
 이글이글 작열한 태양은 대지를 뜨겁게 달궈놓았다.
 공기도 찜통처럼 후덥지근한데다가 바람도 불지 않는다. 지독하게 더운 날이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가시지 않았다. 아니, 더욱 더워지는 것 같다.
 바짝 마른 풀냄새도 고역스럽다. 흙냄새와 뒤섞인 풀냄새는 갈증을 불러오고, 토악질을 일으킨다.
 컹컹컹······!
 개가 무척 사납게 짖어댄다.
 목표로 삼은 표적은 놓친 적이 없다고 들었다. 호랑이도 겁을 집어먹고 물러선다는 맹견 중의 맹견이다. 사람 하나 찢어발기는 것은 순식간이다.
 팔부군(八部軍)이 자랑하는 혈사견(血死犬)에 대한 소문은 너무 많아서 모두 다 열거할 수가 없다.
 컹컹! 컹컹컹! 우르릉······!
 소리만 들었는데도 소름이 쫙 끼친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다.
 “으아아악! 아아! 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명견의 으르렁거림과 사람의 발버둥이 한데 뒤섞여 밤하늘에 핏빛 구름을 그린다.
 비명은 금방 그쳤다.
 팔부군은 혈사견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사냥을 해서 잡은 것을 먹게 한다.
 으르릉······ 컹컹! 으릉······!
 맹견들이 사납게 짖어대며 살을 뜯어먹었다.
 가끔은 뼈를 씹는지 오도독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침묵은 참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영원히 이 시간이 지속될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을 불러온다.
 “으으으······!”
 공포에 질린 자는 입보다 몸이 먼저 말을 한다.
 이빨이 다닥! 다닥! 부딪치고, 경련이 일어나고, 사지가 비비 뒤틀린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신음이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삶과 죽음을 가리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저기도 있다!”
 누군가 신음소리를 들었다.
 컹컹! 컹컹······!
 맹견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들었다.
 “침착해라! 침착해!”
 발각될 위험까지 무릎 쓰고 정신을 일깨워줬지만 그는 이미 겁에 질려버린 후였다.
 자기 스스로 신음소리를 자각했고, 때맞추어 맹견이 달려들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휘익! 후다닥······!
 그는 숨었던 곳에서 뛰쳐나와 있는 힘껏 치달렸다.
 ‘미련한······’
 그렇다. 미련한 짓이다. 사방 십 리가 움직임을 거부하는 수렁 밭이다. 이런 곳에서는 제 아무리 빠른 자라도 한낱 굼벵이에 불과하다. 수렁 밭에서 태어나 수렁 속에서 사냥을 하며 자란 팔부군 맹견들을 당할 재간이 없다.
 꺼엉! 우르르릉!
 “허억! 사, 살려줘! 아아악! 살려줘!”
 그는 대여섯 걸음도 떼어놓지 못하고 뒷덜미를 물리고 말았다.
 으릉! 꺼엉!
 코앞에서 맹견들이 사람을 물어뜯는다.
 살이 찢긴다. 파육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의 피가 수렁을 타고 육신을 적셔온다.
 으릉! 으르르릉······!
 사냥은 밤새도록 지속되었다.
 그는 숨었던 수렁에서 기어 나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깊은 개흙에 푹 파묻혔다가 나온 관계로 온몸이 재색 빛이다.
 유독 한 군데 하얀 곳이 있으니 두 눈, 두 눈이 하얗게 빛났다.
 그는 무심히 사방을 훑었다.
 지난 밤 동안 세 명이 죽었다.
 그들의 살과 뼈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풀썩!
 수렁이 들썩이며 자신처럼 온몸이 잿빛인 건장한 사내가 몸을 들어올렸다.
 “병신들.”
 그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그토록 겁먹지 말라고 말해줬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두 눈 꼭 감고 두 귀 단단히 틀어막고, 날이 밝을 때까지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게 안 돼?”
 “가지.”
 그가 말했다.
 “지독한 놈들, 또 살아 왔어.”
 “좌우지간 저 두 인간은······ 전생에 분명히 지옥에서 어떤 짓을 했을 거야. 그러니 염라대왕도 거부하지.”
 “좌우지간 억세게 운 좋은 놈들이야.”
 두 사람은 온몸에 개흙을 묻힌 채 걸어왔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말라버린 개흙이 부서져 떨어졌다.
 두 사람은 제일 먼저 목판부터 찾았다.
 수명판(受命板).
 목판의 이름으로, 목숨을 다시 받는다는 뜻이다.
 기습, 매복, 정탐······
 어느 군이나 기본적으로 취하는 작전들이다.
 하지만 복여위 시각랑(屎殼郎: 말똥구리) 군(軍)에게는 한 번, 한 번의 작전이 모두 생사를 넘나드는 죽음의 작전이다.
 들이 상대해야 하는 팔부군은 몽고인(蒙古人)들 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최정예다. 뿐만 아니라 패망하여 자기 땅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중원인들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안 좋다.
 반면에 시각랑 군은 이 부대 저 부대에서 말썽을 일으키다가 쫓겨 온 자들이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부대 이름이 똥이나 굴리는 말똥구리라 불릴까.
 그들의 상관은 부대원들을 아끼지 않는다. 아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패망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군세(軍勢)가 강력한 원(元)의 동향을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부하들을 팔부군 속에 던져 넣은 일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팔부군 또한 자신들에게 던져지는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켠다.
 날이 갈수록 작전은 어려워지고, 사망자는 늘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수명판을 만들었다.
 수명판을 보면서 목숨을 놓고 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으며, 돌아올 수 있으면 수명판에 놓고 간 자신의 목숨을 다시 거둔다.
 두 사람은 수명판 앞에 섰다.
 “제길! 이런 식이면 언제 따라잡나,”
 키가 크고 미남이어서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늘 훤칠하다는 말을 듣는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숯을 들어 자기 이름 옆에 일(一) 자(字)를 그었다.
 부사영(傅思瑛), 일백육십팔(一百六十八).
 그는 이제 백육십구 회가 되었다.
 “다음을 기대해.”
 무표정한 사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도 자기 이름 옆에 일 자를 그었다.
 계야부(桂惹夫), 이백사십육(二百四十六).
 계야부에게는 이번이 이백사십칠 회째 첨각(尖角) 정탐이었다.
 팔부군을 뚫고 들어가서 적군 수장들의 동향을 살핀 다음에 다시 빠져나와야 한다.
 적진을 내집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정탐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정탐이다.
 그들의 이름은 목판에서도 제일 윗자리를 차지했다.
 세 번째로 기재된 사람이 사십칠(四十七)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가히 신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사영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이라도 별 수 있을까. 일부러 고함이나 지를까? 여기 계야부가 있다! 하고. 크크크!”
 계야부는 씩 웃으며 부대 안으로 들어섰다.
 곱지 않은 시선들이 따갑게 틀어박힌다.
 그도 그럴 것이 출발할 때는 늘 다섯 명이나 돌아올 때는 항시 두 명뿐이다.
 그들을 따라간다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말과 똑같다.
 원래 첨각 정탐이라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그런 만큼 사망자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헌데 그들은 왜 살아오는가. 어찌하여 몸에 티끌만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멀쩡히 걸어올 수 있는가.
 이유를 알고 싶으면 그들을 따라나서면 된다.
 허나 그럴 사람이 없다. 혹여 재수 없게 지목이라도 받을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질시의 눈초리도 몰래 보낸다.
 “겁쟁이들이······ 야! 눈깔 제대로 안 깔아!”
 부사영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쉬어라. 보고는 내가 할게.”
 계야부가 그에게 말하자, 그는 아무렇게나 하라는 듯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럼 네가 대장이니 네가 보고해야지 내가 하랴? 실컷 주둥이 놀리고 와라. 난 좀 씻고 자야겠다. 내일 아침까지 나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뒈진다.”
 부사영이 입술을 살짝 비틀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와병설(臥病說)은 헛소리입니다. 멀쩡했습니다. 제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유인책일 줄 알았어. 수고했네.”
 계야부는 고개만 까딱인 후 몸을 돌렸다.
 상대는 종칠품(從七品) 도사(都事)다.
 계야부처럼 관직조차 없는 졸병이 막 대할 사람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도 계야부도 그런 점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편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을 경험상으로 알고 있었다.
 계야부가 시각랑에 전출 오기 전, 그의 관품(官品)은 정칠품(正七品) 경력(經歷)이었다.
 한때는 일흔여덟 석의 녹봉을 받던 사람이 모든 관직을 삭탈당하고 쫓겨 온 것이다.
 도사가 말했다.
 “계야부, 잠시······”
 계야부가 무표정한 얼굴로 뒤돌아섰다.
 “계야부, 나도 이러고 싶지 않네만······ 이걸 좀 해명해야겠네.”
 그가 둘둘 말린 서신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뭐요?”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느낌이 좋지 않다. 자신이 모르는 물건을 내놓고 이게 뭐냐고 묻는 것은 십중팔구 누명이다. 도사가 꾸민 일인지 다른 놈이 꾸민 일에 도사까지 휘말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불길한 예감이 진하게 드는 건 사실이다.
 “자네 침상에서 나왔네. 보려고 본 것이 아니라 날씨가 좋아서 침구를 말려준다고 건드리다가······ 알고 말았네.”
 “내 침상에서 나왔다?”
 “우리 군에 대한 동향이 적혀 있더군.”
 ‘누명!’
 계야부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지나갔다. 허나 그들 중에 이런 일을 할 만한 자는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을 잡아먹지 못해 이를 가는 자들이 많다.
 계야부라는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설 자가 열 손가락으로 열을 세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적이다. 국경 저쪽에 있다.
 “다시 묻겠네. 이게 뭔가?”
 도사의 손이 검에 닿았다. 여차하면 뽑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도사 역시 시각랑 부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니 이런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를 리 없다.
 “나한테······ 검을 쓰겠다는 건가?”
 “그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허니 심문할 수 있도록 자진해서 협조해주게.”
 “날 몰라서 심문한다고?”
 “알아도 이런 게 나온 이상 어쩔 수 없지.”
 도사의 눈가에 아픔과 고뇌가 흘렀다.
 그도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으리라. 안다. 서로 농담까지 주고받는 사이인데 살육전을 벌인다는데 말이 되나.
 “······!”
 계야부의 뇌리에 퍼뜩 한 사람이 스쳐갔다.
 군에 있으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정 장군뿐이다.
 그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검을 끌려 탁자에 놓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도사, 지금부터는 친구로 대하지. 괜찮나?”
 “휴우!”
 도사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칼부림까지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뭐하자는 거야?”
 계야부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솔직히 말하지. 군에서······ 나가줘야겠어.”
 도사가 말했다.
 “죽이지 않는 게 다행이군. 겨우 군에서 쫓아내려고 이런 짓을 꾸민 거야? 누구 지시? 혹시 정(鄭) 장군?”
 도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동안의 의리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 정 장군만 자네에게 원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자네······ 예상외로 적이 많더군. 많은 사람이 자네를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이야.”
 “어느 정도 선인데?”
 “나 같은 놈은 입도 벙긋거리지 못할 정도로 높은 선.”
 “그 정도야?”
 “군을 나가서도 몸조심해야 할 거야.”
 “제길!”
 계야부는 툴툴 웃었다.
 그도 정칠품 경력까지 해본 경험이 있다.
 윗선에서 내린 명이라며 말도 안 되는 명령이 떨어지는 걸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이럴 땐 꼼짝하지 못한다. 비열한 걸 알면서도 수행할 수밖에 없다. 명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이기 때문이다.
 “헌데 그거 말이야. 지도······ 너무 어설펐어.”
 “그런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도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일은 모략가에게 맡기지 그랬어. 자넨 모략가가 아냐. 천생 군인이라고. 오직 싸움밖에 모르는 사람이······ 쯧!”
 “자네를 다른 자의 손에 맡겼다면 칼부림이 나도 진작 났을걸! 솔직히 내 얼굴 보고 참아준 것 아닌가. 고맙게 생각하네. 하하하! 이 정도면 나도 모략가지?”
 “나가는 날짜는? 언제 나가야 되는데?”
 “미안하지만······”
 “오늘? 나 오늘 돌아왔어.”
 계야부가 두 팔을 들어 보였다. 말라비틀어진 개흙이 잘게 부서져 뚝뚝 떨어졌다.
 “정말 미안하네.”
 “알았어. 오늘 내로만 나가면 되는 거지? 나갈 때는 나가더라도 씻기는 해야 할 것 아냐.”
 그가 툴툴 웃었다.
 “뭐야! 나간다는 게 정말이야?”
 부사영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제 막 목욕을 했는지 머리의 물기도 마르지 않았다.
 “목욕중이야. 나중에 이야기하지.”
 “빌어먹을! 사내끼리 무슨 내외야! 말해봐! 뭣 때문에 나가는데!”
 “아까 그랬지? 다음을 기대하라고. 이제 네가 대장이 되어서 애들을 끌고 가. 이백사십칠 회. 그 정도면 난 됐어.”
 “똑바로 말해. 네가 말하지 않으면 도사 저 새끼를 족칠 거라는 것, 몰라?”
 부사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군막 안을 왔다갔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거렸다.
 “그것 참······ 목욕도 제대로 못하게 하네.”
 계야부가 탕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쏴아아······!
 그의 몸에서 물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군살이라고는 티끌 한 점도 박혀 있지 않은 단단한 몸이 드러났다.
 근육이 쇠처럼 단단했다. 여기저기 흉터가 있지만 쇠를 긁어놓은 듯해서 몸을 더욱 단단하게 보이게 할 뿐, 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키는 건강한 성인 정도로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부사영보다 주먹 하나 정도는 작았지만 워낙 몸이 단단해서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실제로 부사영이 커서 그렇지 그가 작은 것도 아니다.
 “뭣 때문에 나가는데!”
 부사영이 고함을 빽 질렀다.
 “쉴까 하고.”
 “네가 쉴 놈이다! 거짓말도 되는 거짓말을 해! 어떤 놈이 쫓아낸 거지? 이놈의 나라는 어떻게 군말 없이 일하는 놈들만 조져대냐! 우리도 한 번 조져볼까!”
 “부사영.”
 “왜!”
 계야부와 부사영의 눈길이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군이라면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잘 안다.
 갓 철들 무렵부터 군복을 입고 창을 잡았다. 온갖 싸움판을 전전하며 공을 세웠고, 승승장구(乘勝長驅) 무관(武官)의 길도 열어봤다. 그리고 이곳 시각랑에 쫓겨 와 몽고인들을 상대로 혈전을 벌였다.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러기에 지금처럼 누군가가 억지로 쫓아내려고 작심했을 때는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계야부가 말했다.
 “스무 냥.”
 “비싸. 열 냥.”
 “도둑놈. 나간다고 아예 후려치는구나.”
 “그 정도냐?”
 “······”
 “난 너를 알아. 군밖에 모르는 놈이지. 네가 밖에 나가서 뭘 하겠어. 여기서 쫓겨난다고 해도 다른 데 가서 졸병 노릇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 정도도 안 되냐?”
 “열닷 냥.”
 “열 냥이라니까! 죄명이나 알자?”
 “기밀누설.”
 “뭐야!”
 “공과 죄를 퉁 쳤다. 이제 속 시원하냐?”
 “정말 퉁 친 거야?”
 “그래.”
 “남은 죄는 없는 거지?”
 “그렇다니까.”
 “그럼 됐다. 이건 이제 내가 가져간다.”
 부사영이 품에서 전낭을 꺼내 침상에 던졌다. 그리고 계야부의 흑색 갑옷과 군도(軍刀)를 집어 들었다.
 그는 미련 없이 군막을 밀치고 나가며 말했다.
 “잘 가라. 배웅은 안 한다. 괜히 눈물 나잖아.”
 계야부는 군문(軍門)을 나섰다.
 갑옷도 군도도 없다.
 개인적으로 애용하던 삼척장검 한 자루와 부사영에게서 받은 전낭 하나가 그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이것이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십 년 동안 생사를 넘나든 결과였다.
 그는 자신이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생 몸담을 줄 알았던 군문을 이런 식으로 나선다는 게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는 군문을 쓰다듬었다.
 시각랑 군인들이 수명판에 목숨을 맡긴 후, 전장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르는 의식이다.
 부디 다시 돌아와 너를 볼 수 있기를.
 그런 마음, 그런 염원으로 만지는 군문.
 그는 군문에 마지막 인사를 한 후 터벅터벅 걸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개흙 속에 몸을 담고 있었다. 동료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석양이 질 무렵, 군복을 벗고 세상으로 나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간다.
 어디로 갈 거나.
 그는 걸음을 멈췄다. 한 사내가 그의 길을 막아섰다.
 “이거 아냐? 네 갑옷과 군도는 천운(天運)이 붙었다고 해서 가격이 오십 냥까지 매겨져 있다는 것. 다섯 배 장사다. 사실 난 싸움보다 장사가 더 소질 있나봐. 그런 쪽에 꽤 눈이 밝거든.”
 부사영이다.
 그는 큰 키에다가 유달리 긴 검을 사용한다. 검이 너무 길어 허리에 매는 것이 불편해서 어깨에 얹고 다닌다.
 그는 군을 벗어나 밖으로 외출할 때 종종 이런 모습이곤 했다.
 “후후후! 마중하지 않는다며.”
 “누가 마중한데? 네가 없으면 경쟁이 안 되잖아. 나 혼자 이백 번, 삼백 번 뛰면 무슨 재미냐? 같이 가자. 나도 관뒀다. 사실 개떼에게 물어뜯기는 꼴도 이제 그만 보고 싶고.”
 “갈 곳이 없는데.”
 “가면서 상의하고······ 우선 잠자리부터 구하자. 하하! 이 넓은 천지에 우리 할 일이 없겠냐?”
 부사영은 늘 쾌활하다. 낙천적이며, 어지간해서는 좌절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싸움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잘한다. 삼척장검보다 배는 더 긴 오척장검을 휘두르는데 그야말로 일격필살이다.
 그는 무서운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늘 자신만만하다. 그만한 실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으니 언제 어떤 상황이 닥치건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녁도 안 먹었네. 저녁이나 먹고 나올걸. 아냐, 그까짓 주먹밥 한 덩이 더 먹는다고 배 터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오늘은 밤을 새워서 복여위부터 뜨자. 징글징글하잖아?”
 “후후!”
 계야부는 쓰게 웃었다.
 평생 군에서 살다가 군에서 죽으려고 했건만······
 이제 군을 나서니 갈 곳조차 없다.
 반기는 사람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있다면 오직 사람을 죽이는 것뿐이다.
 살수, 강도, 산적······
 사람 죽이는 직업치고 좋은 게 있던가.
 이리 저리 떠돌다가 결국은 그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뭘 해야 하나!’
 오늘 따라 밤하늘이 유달리 검었다.
 
 
 2
 
 
 두 사람은 밤새 걸어서 하룻밤 만에 복여위를 벗어났다.
 그들이 밤새도록 걸은 것은 군대가 지겨워서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뛰어간다.
 십여 년이란 세월 동안 밤에 이동하고 낮에 쉬는 습관을 길러왔다.
 하루아침에 바뀔 습관이 아니다.
 단지 그 이유뿐이다.
 “아함!”
 길게 기지개를 켜며 문밖으로 나오던 점소이가 두 사람을 봤다.
 저녁 같으면 당장 달려와 옷소매를 잡아끌었을 것이다.
 그는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길손쯤으로 생각했다.
 ‘거 싸움질깨나 하고 다니게 생겼네. 저런 사람은 안 건드리는 게 좋지. 가만······ 혹 말똥구리?’
 간혹 싸움질을 못해서 안달 난 사내들이 지나가곤 한다.
 말똥구리 부대원으로 십중팔구 죽어서 나온다는 지옥의 부대에서 살아남은 운 좋은 군인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도 세상과 만나는 순간 끝난다.
 그들은 사납다. 인정한다. 하지만 명령을 받은 후에야 싸움을 하는 길들여진 성격으로는 험한 세파를 이겨내지 못한다. 이것은 그들이 인정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인정할수록 험한 세파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복여위에서 벗어나는 길목마다 퇴역군인만 노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이곳에도 있다. 지금 봤을 수도 있고, 이따가 정오나 저녁쯤 되어서 발견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 눈에 띄는 순간, 이들은 알거지가 된다.
 “방 있나?”
 키 큰 사내, 부사영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점소이는 급히 땅에 닿을 만큼 허리를 구부렸다.
 “어서 옵쇼! 방 있습죠. 어느 정도?”
 “최상.”
 “하(下).”
 부사영과 계야부가 각기 다른 말을 했다.
 점소이는 잠시 두 사람을 살펴보다가 계야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손님 웬만하면 이분 말씀에······”
 점소이는 말끝을 흐렸다.
 말을 하면서 계야부의 얼굴을 봤다. 도저히 설득당할 얼굴이 아니다. 똥고집으로 똘똘 뭉쳐서 오기로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킬 인물이다.
 역시 사납기로 정평난 말똥구리 군인들이다.
 “아닙니다. 그럼 두 분의 뜻을 절충해서 중(中)으로 모십죠.”
 “아니. 난 최상으로 주고, 이 친구는 하로 주게. 그게 서로 편해.”
 부사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하룻밤을 자더라도 최상의 침상에서 안락하게 잠을 청해야 한다는 주의다. 그래서 군에 있을 때도 침상만은 깨끗하고 안락함을 고집했다.
 반면에 계야부는 침상은 물론이고 방이라는 개념조차 서 있지 않았다. 보관해야 할 소유물이 별로 없으니 자신의 방이 필요 없고, 침상 역시 잠만 자면 되니 아무 곳이나 괜찮다는 주의였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두 사람의 생각이 전혀 달랐다.
 아니, 두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극과 극을 선택했다. 옷 입는 것, 먹는 것······ 그러고 보니 의식주(衣食住)에 관한 것은 모든 면에서 의견이 달랐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같이 붙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살아 돌아오는 데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사실이 그랬다. 두 사람은 서로 돕고 도우며 사지를 건너왔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택하라면 서로를 꼽는 데 인색지 않을 것이다.
 “손님은 여기······”
 점소이가 계야부에게 계단 밑에 있는 골방을 내주었다.
 “후후! 웬만하면 나랑 같이 가지. 돈은 두둑이 있다고.”
 “괜찮아. 푹 쉬고 저녁 때 보자고. 이틀 동안이나 잠 한숨 못 잤잖아. 오늘은 좀 쉬어야지.”
 계야부가 어두침침한 골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돈은 두둑이 있다는 말과 이틀 동안 잠 한숨 못 잤다는 말이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모든 말을 일호(一呼)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모두 주워들었다.
 그들은 방을 안내해주고 돌아오는 점소이를 가로막았다.
 “또 한 놈은 어디로 갔어?”
 “별(別) 삼(三) 각(閣).”
 “일개 군인이 별각에 들었단 말이야? 돈이 두둑하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네. 방값은 뭘로 셈했어?”
 “은자요. 전낭을 열어 보이는데 은자가 두둑해요. 한 오륙십 냥쯤 되려나?”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횡재다! 은 오십 냥이면 쌀이 이백오십 석이다.
 점소이의 한 달 신(薪: 봉급)이 은자 반냥이니 무려 백 달,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십 년 녹봉이다.
 “너! 지금 당장 말똥구리에 다녀와. 최고 빠른 말을 타고 한 시진 내에 갔다 와야 해! 알았어? 가서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와. 인상이 독특하니 누구나 알 놈들 같은데.”
 “걱정 말라고. 이런 일, 한두 번 하나.”
 그는 잽싸게 객잔을 빠져나갔다.
 “너는 취몽향(醉夢香)을 긁어와. 있는 거는 아끼지 말고 싸그리 긁어와. 저놈들 싸움 하나는 기차게 할 거야. 괜히 칼부림 일어나면 곤란하니까, 독한 것으로. 알았지?”
 “흐흐흐!”
 또 한 명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뛰쳐나갔다.
 “마! 너는 뒷간에나 처박혀 있어!”
 그들이 점소이의 뒷머리를 툭 쳤다.
 그들은 한 시진이 조금 넘어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다시 모였다.
 “저놈들 상당한 놈들이야. 첨각 정탐만 이백오십 회, 백칠십 회라더라. 한 마디로 염라대왕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놈들이래. 싸움도 무척 좋아하고. 건드려서는 안 될 놈들 같아.”
 “이게 뭐라는 소리야? 은자 오십 냥을 버리자는 말이야? 야! 솔직히 말똥구리 놈들 중에 약한 놈 있냐? 하도 지랄 같은 놈들이니까 말똥구리가 된 것 아냐. 관두고 싶은 놈들은 지금 관둬. 안 말린다. 난 혼자라도 할 테니까.”
 “좋아. 까짓것, 하자. 은자가 오십 냥인데.”
 “미안. 난 이번 판은 빠질래.”
 “햐! 정말 단단히 쫄았구나?”
 “너도 가서 직접 네 귀로 들어봐라. 저놈들, 건드리면 터지는 화약고라니까.”
 “그래, 알았다. 넌 가서 애기 기저귀가 갈아 채우고 있어라. 이 형님들은 오늘 저녁 걸판지게 술상 차려놓고 퍼지르란다.”
 “잘 해.”
 그렇게 몇 명은 빠졌지만 아직도 십여 명이나 되는 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취몽향은?”
 “박박 긁어왔어.”
 한 사내가 검은색 두부 두 모를 꺼냈다.
 진흙처럼 말랑말랑하며, 약간 억새 냄새가 풍긴다.
 “이 정도면 사나흘 정도는 뻗어 있겠는데.”
 “싹 긁어 오래서······”
 “아냐. 잘 했다는 소리야.”
 그들은 만족스런 웃음을 주고받았다.
 슈우욱! 슈우욱! 슈우우우욱!
 누런 연기가 피어나는 즉시 골방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별각 삼호라고 지칭된 별채는 대갓집 후원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그곳에서도 누런 연기가 피어나 방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갔다.
 몇 사람은 연신 취몽향을 피었고, 다른 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풍무를 돌렸다.
 연기는 종이로 만든 관을 통해 빨려 들어갔다.
 그들은 무려 반각 동안이나 그 일을 했다.
 “그만해! 너구리 잡냐!”
 오죽하면 객잔 주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함을 질렀다.
 연기가 골방이나 별 삼 각에만 들어찬 것이 아니라 객잔 전체를 뒤엎고 있었다.
 “쿨룩! 그러잖아도 지금 그만두려고 했소!”
 그들은 재빨리 객잔을 벗어나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이구! 나 약간 마신 것 같은데? 머리가 어지러워.”
 “나도. 숨을 참는다고 참았는데 몇 모금 마셨나봐. 세상이 핑핑 도네. 히히히!”
 이런 일은 취몽향을 쓰다보면 다반사로 일어난다.
 멀쩡한 자들이 그들을 나무 그늘에 뉘였다.
 “너희들이 이 정도면 그 새끼들은 뻗었을 거야. 어이! 얼마나 기다릴 거야?”
 다른 자가 말했다.
 “한식경만 기다리자.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한식경이라는 시간은 뿌옇던 객잔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억새 냄새는 가시지 않았지만 연기는 금방 빠져나갔다.
 그들은 두 패로 나눴다.
 “너희는 저기 저놈을 처리해. 인정사정 보지 말고 죽여 버려. 저런 놈들 괜히 살려뒀다가는 두고두고 골치 아파. 괜히 뒤라도 밟히는 날에는 정면 승부를 벌여야 돼. 그럴래? 지금 할 수 있을 때 깨끗이 처리해.”
 그들은 별 삼 각에 많은 사람이 따라붙었다.
 동전 한 푼 건질 것 같지 않은 계단 밑 골방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건지는 것 없이 사람만 죽이는 일이라서 흔쾌할 리 없었다.
 그래도 일은 처리해야겠기에 세 명을 강제로 배당했다.
 “너흰 왜 많이 가?”
 “저쪽 놈은 검이 길잖아. 싸움도 더 잘할 것 같고.”
 “알았다. 알았어. 좌우지간 뺏은 건 같이 나눠 갖기다!”
 “알았다니까.”
 그들은 흩어졌다.
 세 명은 성큼성큼 객잔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거침없이 계단 밑으로 걸어가 골방 문을 활짝 열었다.
 취몽향은 실패란 것을 모른다.
 덩치가 황소만 한 자도 취몽향 몇 모금이면 꿈나라로 직행한다.
 놈들이 워낙 사나워 보여서 한 무더기를 몽땅 썼지만, 사실 그 반에 반만 썼어도 충분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시커먼 방 안이 드러났다.
 세 사람은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골방은 대낮인데도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계단 밑에 있어서 햇볕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곰팡이 냄새도 심하게 났다. 먼지도 풀풀 날리고······
 그들은 잠시 기다렸다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헛!”
 그들은 들어갈 때보다 더욱 빠르게 뛰쳐나왔다.
 안에 늑대가 있다. 살광(殺光)이 번들거린다. 하연 눈 두 개가 허공에 떠서 사람들을 쏘아본다.
 “뭐, 뭐야?”
 “사, 사, 사람 맞아?”
 “그, 그 새끼······ 아직 뻐······ 뻗지 않았어!”
 “튀엇!”
 그들은 황급히 등을 돌렸다.
 쒜에엑!
 무엇인가 날아온다. 등을 향해 쏘아져 온다.
 그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묵직한 통증이 불처럼 일어났다.
 “끄으윽!”
 그들은 산 채로 기름 솥에 넣어진 개구리처럼 펄쩍 뛰었다.
 세 명을 쓰러트리는 데 일수유(一須臾)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겁에 질려 있는 객잔주인이나 점소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런 일에 적극 가담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그럴 만한 배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밖으로 나와 털썩 주저앉았다.
 “술.”
 누구에게 한 말이 아니다.
 헌데 술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다. 점소이가 그의 말을 듣기 무섭게 고량주(高粱酒) 한 병을 들고 나왔다.
 계야부는 술을 마셨다.
 취몽향 같은 것은 혈관을 따라 돈다. 따라서 피를 빨리 돌게 해서 신속히 배출시키는 것이 낫다.
 물론 의원이 들으면 무슨 무식한 소리냐고 할 게다. 의원 입장에서는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할 것이다.
 말똥구리들은 안정을 취할 여가가 없다. 그런 호사스런 생각은 가져보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그럴 때는 술보다 좋은 게 없었다.
 “아아악!”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것이 시작이다. 고량주를 세 모금 정도 마셨을까? 처절하게 울리던 비명들이 뚝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쿨룩! 쿨룩!”
 그의 등 뒤에서 거센 기침 소리가 났다.
 계야부는 술병을 등 뒤로 내밀었다.
 그가 술병을 낚아채 꿀꺽꿀꺽 들이켰다.
 “왜 이리 오래 걸렸어?”
 “실수로 취몽향을 몇 모금 마셨다.”
 “부사영도 다됐군.”
 “그런 소리 마라. 보아하니 너도 몇 모금 마신 것 같은데? 거짓말할 생각 마. 눈이 새빨개.”
 “난 공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는 골방이었고, 넌 사방이 모두 창문이었잖아.”
 “그래, 그래. 이번에도 네가 이겼다.”
 부사영이 그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오면서 봤다. 칼등으로 쳤더군. 왜 안 죽였어? 넌 밖에만 나오면 이상해지더라.”
 “죽일 만한 자들이 아냐.”
 계야부는 중천에 걸린 태양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밝은 태양을 정면에서 본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늘 해가 뜨면 침상으로 기어들어갔고, 푹 쉬고 일어나면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석양은 실컷 봤다.
 “다 죽일 필요가 있었나? 철들면 달라질 사람들인데. 잡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게고.”
 이번에는 계야부가 말했다.
 “기다리긴 누가 기다려. 저런 인간들은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 살아 있어 봤자 해악만 끼치는 자들이야.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더 좋아.”
 부사영이 계야부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
 “놈들이 군문에서 쫓겨났습니다.”
 “예상보다 조금 빨랐군. 다음은······ 먹여주고 입혀주는 곳에서 나오면 제일 먼저 부딪치는 것이 생활고야. 돈줄부터 바짝 말려야겠어. 돈은 꽤 가지고 있지?”
 “은자로 오륙십 냥 정도 됩니다.”
 “꽤 많군.”
 “인근 파락호들이 먼저 손을 썼습니다만······”
 “파락호가? 후후후! 실패했겠군. 당연히 실패하지. 놈들은 뭘 썼어?”
 “취몽향입니다. 통째로 피웠는데도 실패하더군요.”
 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거로는 안 되지. 취몽향? 후후! 어림없어. 그들은 군인이네. 알겠나? 무인이 아니고 군인이란 말이야. 무인과 군인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
 “살상에 목적을 둘 때, 무인은 무공을 사용하지만 군인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 그들은 무공의 고하를 가리는 건 겉멋이라고 생각하지. 가장 빨리 가장 효율적으로 내가 다치지 않고 적을 죽이는 것. 이걸 가장 잘하는 사람을 전사(戰士)라고 불러.”
 “참조하겠습니다.”
 “취몽향 같은 것은 파락호보다 그놈들이 더 잘 알걸? 그놈들······ 저급한 수단에는 달통했을 거야. 수단을 부리려면 고급으로 해야지. 배수(扒手: 소매치기)를 붙여야겠어.”
 “배수. 찾아보면 쓸 만한 자가 있을 겁니다.”
 “돈줄이 마르면 적아(敵我)를 구분하기가 힘들어져. 후후후!”
 그가 웃었다.
 그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종이에 세필(細筆)로 깨알 같은 글씨를 써내려갔다.
 ―전장에서 익힌 사검(死劍)을 쓰는데 살기가 너무 지나친 것이 흠. 그 외에는 나무랄 데 없습니다. 사검을 쓰느니만치 반사 신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며, 무엇보다 생존본능이 무서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장담하건대 충분히 사흘을 버틸 수 있는 인물로 사료되는 바,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갖다 드려라. 뒤 조심하고.”
 “걱정 마십시오. 항상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보고하던 무인은 검병(劍柄)을 돌려 공간을 만든 다음, 작은 종이를 집어넣었다.
 다른 곳에 있는 자들은 일반 서신을 이용하지만 그는 꼭 이런 방식만 고수했다.
 보안에 만전을 기해서 나쁜 건 없다.
 “급하게 서둘며 안 돼. 시간은 넉넉하니까······ 천천히. 천천히.”
 그는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3
 
 
 “저자들이요?”
 “저자들이다.”
 “정말 저자들이 은자를 오십 냥이나 가지고 있단 말이오? 겉보기에는 땡전 한 닢 없을 것 같은데.”
 괜히 해본 말이다.
 저자들에게서는 돈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온다.
 온몸에 투지(鬪志)가 펄펄 살아 있으니 싸움에 찌든 몸이다. 옷은 번지르르하게 입고 있으나 묶은 때가 달라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독신 생활을 오래 한 자들이다.
 한 마디로 제대한 군인이며, 그동안의 녹봉이 은자로 바뀌어 품속에 잠들어 있다. 무인은 물경 오십 냥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무인이 말했다.
 “저자들을 알거지로 만들면 여기 열 냥을 더 준다.”
 무인이 전낭을 꺼내 짤랑거렸다.
 “하지만 실패하면 손목이 잘릴 줄 알아.”
 무인은 배수의 목숨쯤은 손에 쥐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말했다.
 이것도 맞을 것이다.
 자신을 콕 찍어서 왔다. 배수를 찾은 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찾아왔다.
 이자들은 자신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다.
 배신하거나 일을 그르치면 다친다.
 배수는 쥐 눈을 요리조리 굴렸다.
 비밀이 많은 무인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배수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경험이다. 처음 봤을 때 불편하다고 생각되는 자와 연결되면 꼭 탈이 난다.
 무인이 그랬다.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다. 말투부터 싸가지 없다. 제가 언제 봤다고 반말지거리인가.
 하지만 오래된 배수 생활은 그에게 또 다른 경험도 알려주었다.
 칼 찬 자가 눈에 살기를 담고 말을 할 때는 무슨 말이든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만 물읍시다. 저자들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소?”
 “넌 알 것 없다. 시키는 대로 도둑질이나 해.”
 “도둑질이 아니오. 전류(剪绺: 칼로 찢고 훔치기)요.”
 “후후후!”
 무인은 비웃었다.
 그 순간, 배수의 손에 들린 면도(緬刀)가 그의 옷섶을 찢고 있었다.
 “내 고향으로 가지. 동정호(洞庭湖)에 연꽃이 피면, 그걸 동정연(洞庭蓮)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중원 제일의 장관이야. 내 고향이지만 정말 좋아. 우선 한 일, 이 년 정도 푹 쉬면서 뭘 할지 생각하자고.”
 “난 개평위(開平衛)로 간다.”
 “무슨 소리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싸움밖에 없어.”
 “그래서?”
 “······”
 “개평위에도 생존가능성이 희박한 군대가 있다더군. 이연호특(二連浩特)에 진을 친 몽고 놈들이 팔부군 뺨친다며? 후후! 그래서 또 군에 들어가겠다고? 그럼 뭐 하러 나왔어?”
 “내보내니까.”
 “후후! 그래, 너다운 말이다.”
 부사영은 기가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군에 다시 들어갈 거면 갑옷을 괜히 팔았잖아.”
 “너무 알려져서 쓰지 못해. 개평위에 가면 이름도 바꾸고, 고향도 바꿔서 시작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못할걸?”
 “그런다고 싸움 솜씨가 어디 가냐? 몇 달이면 알아낼 거다.”
 “그때는 그때고.”
 “개평위와 이연호특 사이에 큰 사막이 있다던데, 그럼 이번 싸움은 사막전인가? 후후후! 색다른 싸움이 되겠군.”
 “굳이 따라올 필요는 없어.”
 “아니. 간다. 네놈보다 늦게 말똥구리가 된 탓에 최고 기록을 뺏기고 말았잖아. 이번에는 동등한 조건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고.”
 “둘 중에 하나가 죽기 전에는 안 끝나겠군.”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다시 들어가면 네놈과 같은 조(組)에 들지 않을란다. 다른 조에서 다른 놈들과 있을 거야. 누가 오래 버티나 해보자고.”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때, 술 취한 취객(醉客)이 부사영의 몸에 툭 부딪쳤다.
 부사영은 반사적으로 힘을 주었고, 취객은 길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아이구! 아이구우! 이놈들이 대낮에 사람을 패네. 아이구우!”
 취객은 허리를 붙잡고 쩔쩔맸다.
 부사영은 기가 막혀서 피식 웃기만 했다.
 계야부는 달랐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취객을 부축해 일으켰다.
 “괜찮습니까?”
 “아이구! 허리야! 내 생각 같아서는······”
 취객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 계야부와 눈길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움찔했다.
 “아닙니다. 길을 가다 보면 부딪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다 그런 거죠. 헤헤헤.”
 취객은 어설프게 웃으며 꽁지가 빠져라 내뺐다.
 “나 원 별······ 응?”
 “왜?”
 “허! 당하고 말았네.”
 “뭘 당해?”
 “눈 뜬 사람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더니만 전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 알거지야.”
 부사영이 찢어진 옷섶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내게 열 냥이······”
 계야부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의 옷섶도 찢어져 있었다.
 “배수인 것 같은데······ 허! 내 눈을 속이다니. 솜씨 하나는 인정해줘야겠군.”
 부사영은 은자를 오십 냥이나 잃어버렸지만 아까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전낭 두 개를 품에 찔러 넣는 즉시 무인이 기다리는 곳과는 정반대로 신형을 띄웠다.
 그놈 전낭까지 모두 털어버렸으니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전낭 세 개의 무게를 짐작해보니 은자가 일흔 냥이 넘는다.
 이제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야 한다. 돈 때문에? 천만에!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그놈······ 무인 놈 때문이다. 그놈은 살인멸구(殺人滅口)도 서슴지 않을 위인이다.
 그는 골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담장을 뛰어넘었다. 누구 집 담장인지는 모른다. 눈에 보이기에 넘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다시 담장을 넘고, 골목을 걷다가 다시 다른 집 담장을 넘었다.
 “휴우! 이만하면 따돌렸겠지.”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귀를 기울여 봤지만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호의로 찾아온, 그러나 결코 호의만으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은 무인과 연결되어서 이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다. 아니, 은자가 두둑하게 생겼으니 아주 최선이다.
 “당분간은 이곳을 떠났다······”
 그는 혼잣말을 마저 끝맺지 못했다.
 그가 서 있는 양쪽 담장 위에 두 사람이 서 있다.
 “어, 어떻게?”
 “우선 전낭부터 땅에 놓지.”
 부사영이 냉담하게 말했다.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살기를 머금으면 누구보다도 싸늘해지는 성격이다.
 배수는 얼떨결에 전낭을 놓아버렸다.
 부사영이 담장에서 내려와 전낭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는 그 중에 하나는 자신의 품안에 찔러 넣고, 다른 하나는 계야부를 향해 던졌다.
 “이건 누구 거지?”
 전낭 하나가 남았다.
 “모, 모르겠습니다. 훔친 거라······”
 “오늘 아주 횡재할 뻔했군. 이것도 은자가 꽤 두둑한데······”
 부사영은 씩 웃으며 전낭을 계야부에게 던졌다.
 계야부가 전낭을 받아서 천도 살펴보고, 냄새도 맡아봤다.
 “다음부터는 사람 봐가면서 털어라. 목숨은 하나뿐이야. 간수 잘 해야지. 안 그래?”
 “네, 네. 앞으로는 조심······”
 배수는 ‘용서’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들은 살기충천한 겉모습과는 달리 하찮은 일은 웃으면서 넘길 줄 안다. 반면에 그 무인은 조용하고 침착하면서 살기까지 높다. 이들보다 훨씬 위험하다.
 헌데 그는 스스로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계야부가 배수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네 옆에 있던 자, 누구냐?”
 “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물론 그런 것을 얼굴에 드러낼 만큼 미숙하지는 않다.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크게 놀랐다.
 “그자에게 조정 받아서 배수 짓 한 것 알아. 그자가 누구야?”
 계야부의 음성은 속삭이듯 조용조용했다.
 “도대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하나만 알려주면······ 넌 그자가 누군지 반드시 말하게 되어 있어. 난 다른 재주는 없어도 사람 입을 열게 하는 재주만큼은 탁월해. 지금까지 내게 걸린 자는 모두 입을 열었어.”
 계야부가 썩은 나뭇가지를 주워들어 배수의 목에 댔다.
 “딱 셋만 세겠다. 하나.”
 순간, 배수는 나뭇가지가 목을 뚫고 들어오는 착각에 휘감겼다.
 이자는 진실밖에 모르는 자다.
 감정 없는 눈빛에는 단 한 가지만 담겨 있다. 사람의 목숨까지도 간단히 끊어버리는 단순함이다. 착 가라앉은 그의 음성도 오직 한 가지만을 말한다. 목을 뚫겠다면 뚫는다. 코를 베어내겠다면 베어낸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은 꼭 하고 만다.
 그가 한 말이 진실이며 반드시 그리 될 것이다.
 ‘무섭도록 단순한 자······’
 그는 단순한 자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다. 그깟 무인은 이자에 비하면 어린아이다. 둘이 싸운다면 이자에게 판돈을 걸겠다.
 “둘!”
 계야부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이자······ 사람을 무수히 죽여 봤다! 정말 죽일 거야!’
 “셋!”
 계야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수가 다급히 말했다.
 “모, 모릅니다! 그자가 절 찾아왔어요!”
 “찾아와서?”
 “알, 알거지를 만들라고······ 그렇지 않으면 제 손목을 잘라버린다고. 정말입니다. 그 말밖에 안 했어요.”
 부사영이 계야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군에서 쫓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몇 푼 안 되는 은자까지 뻬앗으려고 해? 너 정말 지독하게 찍혔구나? 어떤 짓을 한 거야? 딸네미라도 건드린 거야?”
 계야부는 배수를 놓아주었다.
 이 모든 게 정 장군이 지시한 일이라면 감내해야 한다.
 비록 어쩔 수 없었지만 철부지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가 평생 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인 것이다.
 계야부는 무인의 전낭을 배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사람은 나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 손목을 자르겠다는 말도 협박일 뿐이야. 정 불안하면 당분간 피해 있는 것도 좋고.”
 “감사합니다.”
 일단 인사는 했다.
 이자들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무인은 다르다. 자신이 느낀 대로라면 틀림없이 목숨을 빼앗기 위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들 곁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그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저울질했다.
 자신을 협박한 무인과 이자가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그자는 기도가 상당히 심후했다.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는 뜻이다. 반면에 이자는 거칠기만 하지 무공다운 무공은 지닌 것 같지 않다. 그래도······ 판돈을 걸라면 이자에게 건다.
 “저······ 형님.”
 “······?”
 “저도 같이 데려가 주시면 안 됩니까?”
 “우리가 어디 가는데?”
 “어디든요. 형님들하고라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산전수전 다 겪은 애늙은이 아닙니까. 저하고 같이 가시면 절에서도 고기를 얻어먹는다니까요.”
 “얘 뭐라는 거야?”
 부사영이 입을 쩍 벌린 채 물었다.
 “데려가 달라는군.”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
 “데려가지.”
 계야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배수는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형님들, 전 오목(吾木)이라고 하는데, 그냥 환수(幻手)라고 불러주십쇼. 제가 손 하나는 빠르거든요.”
 계야부는 빙긋 웃었다.
 그는 배수를 보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계야부가 쳐다본다. 눈과 눈이 마주쳤는데,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태연하게 몸을 숨긴 후, 배수의 행동을 살폈다.
 전낭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이토록 간단한 일을······’
 그 다음에 할 일은 배수를 처단하는 것이다.
 알거지가 된 두 사람을 요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다. 자신은 배수를 처단한 후, 물러서면 된다.
 헌데 나서지 못했다.
 자신보다 두 사람이 한 발 빨랐다.
 덕분에 그들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었다.
 땅에 귀를 대어보고, 벽에도 귀를 대고······ 백주대낮에 별의별 미친 짓을 다하고 있다. 오고 가는 사람이 수십 명이다. 땅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를 듣겠다는 것인가.
 헌데 그게 효과가 있다.
 그들은 배수가 도망가는 길을 정확히 알았고, 앞길까지 예측했다.
 그제야 그는 퇴역군인 두 사람이 첨각 정탐의 달인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이룩한 신화는 결코 책상에 앉아서 문서 따위나 끄적이면서 얻은 게 아니다. 적진을 넘나들며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을 자신이 지켜온 전사들이다.
 그들이 추적해서 잡지 못할 자가 얼마나 될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추적해오는 자들을 따돌리는 능력이다. 이 두 사람은 그런 능력을 몽고군에서도 최정예라는 팔부군을 상대로 키워왔다.
 계야부가 자신을 주목한 것? 그것은 단순한 육감이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칠 사람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순간, 그는 피가 들끓었다.
 저런 자와 한바탕 드잡이질을 하고 싶다.
 무인들의 검은 많이 겪어봤지만 군인의 사검은 말만 많이 들었지 견식해본 적이 없다.
 군인도 초식을 수련한다.
 창술, 도술, 검술······
 군인들은 부대 단위별로 무기가 공급된다.
 창술 부대는 창만 지급받고, 박투(搏鬪) 부대는 검이나 낫을 지급받는다.
 군인은 소속된 곳에 맞춰서 병기를 수련한다.
 하지만 전투를 벌이다 보면 한 가지 병기만 고집할 수는 없다. 닥치는 대로 주워서 베고, 찔러야 한다. 그것이 검이 될 때도 있고, 낫이 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빈손으로 도검을 든 자와 맞서서 육박전을 벌이기도 한다.
 돌멩이로 짓이기는 것은 기본이며, 이빨로 물어뜯을 수도 있고 머리채를 뽑아놓을 수도 있다.
 아귀들의 싸움이다.
 그는 아귀 중에 아귀로 정평난 두 사람만 상대해 보고픈 충동을 느꼈다.
 삶과 죽음 속에서 스스로 터득했다는 죽음의 검과 수백 년 동안 갈고 다듬은 정통 무가의 무공 중 어떤 것이 강할까?
 어떤 사람은 야생화와 온실의 화초에 비유해서 말한다.
 어떤 사람은 투박한 쇠몽둥이와 수십, 수백 번 제련한 후에 날을 바짝 세운 보검과 비유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일장일단이 있으며 승부는 오로지 무공을 닦은 사람의 기량에 달렸다고도 한다.
 모든 말이 다 맞다.
 그는 그 중에 날 선 보검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손과 발에서 짜릿 짜릿 전율이 흐른다. 금방이라도 달려 나가 검을 휘두르고 싶다. 하지만 참았다. 이자들을 베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인(大人)이 하시는 일에 큰 죄를 범하는 격이 된다.
 계야부와 부사영이 결국 배수를 잡았다.
 배수는 아는 것을 줄줄 늘어놨지만 사실 그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체모를 자가 나타나서 돈을 훔치라고 했다는 사실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는 두 사람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일단 벌였으면 찌꺼기를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배수 한 명쯤 죽어나가는 걸 신경 쓸 사람은 없다.
 헌데 놈이 저들과 어울린다. 같이 일어나 같이 길을 동행한다. 어떻게? 어떻게 저런 일이!
 알거지를 만들기는커녕 배수 한 명만 더 붙여줬으니 앞으로는 배수를 쓰기도 힘들게 됐다.
 그는 중얼거렸다.
 “일이······ 꼬이는군.”
 
 
 제2장 증명(證明)
 
 
 1
 
 
 부사영은 은자를 흥청망청 썼다.
 객실은 항상 최고급이었으며, 기녀는 은자 한 냥 이상을 주어야만 옷을 벗는 홍기(紅妓)만 선택했다.
 그가 지닌 쉰 냥은 보름도 안 돼서 떨어졌다.
 “이것도 쓰지.”
 계야부가 자신의 전낭을 내놨다.
 그는 그동안 은자 한 냥도 쓰지 않았다.
 그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부사영이 찾는 곳은 객잔과 주루가 겸업하기 일쑤였다. 당연히 시끄럽다. 그는 그럴 때마다 홀로 떨어져서 칠성각(七星閣)이나 관제묘(關帝廟) 같은 곳에서 자고 왔다.
 “괜찮겠어?”
 계야부는 묵묵히 전낭을 건네주고 홀로 걸어갔다.
 “어디 가는데?”
 “잠 잘 곳.”
 “봐둔 데라도 있는 거야?”
 “있어. 내일 아침에 보자고.”
 그가 밤길을 걸어갔다.
 부사영은 계야부가 준 열 냥을 단 이틀 만에 소진했다.
 돈은 이렇게 써야 빨리 쓴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흥청망청 써댔다.
 길 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고는 고맙다며 돈을 네밀었다. 점소이가 싹싹하다며 용채를 주었고, 저녁이 아주 맛있다며 특별 용채까지 얹어주었다.
 “기가 막히네. 벼락부자도 이렇게 돈을 쓰지는 않을 거야.”
 오목이 보다 못해 말했다.
 “내가 왜 이렇게 쓰는지 궁금하냐?”
 “당연하죠! 이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마구 퍼다 버리는 거잖아요!”
 “네가 있잖아.”
 “네?”
 “마르지 않는 우물. 우리의 환수! 돈 떨어지면 네가 슬쩍 해오면 되니 뭐가 걱정이야. 자자, 그런 의미에서 네 것 좀 내놔.”
 “뭐, 뭐를요?”
 “햐! 이놈 시치미 떼는 것 봐라? 뭐긴 뭐야, 이놈아! 네 돈이지.”
 “아! 쓰려면 댁 것이나 쓰지 왜 내 것까지······”
 환수 오목은 말꼬리를 흐렸다.
 계야부가 주라고 눈짓한다. 부사영도 진지한 눈빛이다.
 ‘뭐하자는 수작이야!’
 오목은 툴툴거리면서 전낭을 내놨다.
 “이거 쓸 때······ 나도 좀 껴줘요.”
 “좋지. 하하하!”
 부사영이 전낭을 날름 가로챘다.
 “이십 일 만에 은자 일흔 냥을 다 썼다? 확실해?”
 “네. 저도 기가 막혀서······”
 그는 서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것에는 계야부 일행이 은자 일흔 냥을 어떻게 소진했는지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날짜가 있고, 돈을 쓴 용도가 있고, 액수가 문(文) 단위까지 적혔다.
 “돈을 길에다 뿌리고 다닌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그런 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후후후!”
 서신을 들여다보던 그가 웃었다.
 “이건 우리보고 오라는 소리야.”
 “네?”
 “자,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전낭을 말끔히 비웠다. 그러니 용건이 있으면 와라, 이 소리지. 이놈······ 다시 조사해봐야겠는데. 의외로 똑똑해.”
 “일 년이나 지켜봤는데 또 뭘 조사하신다고······”
 “너는 이 길로 말똥구리로 가게. 가서 이놈이 가담했던 모든 침투, 정탐을 조사해 와. 어떤 임무를 띠고 어떻게 팔부군을 뚫고 들어갔으며,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소상히 알아와. 기록에 적힌 것만 보지 말고, 일일이 탐문해서라도 상세히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가 포권지례(抱拳之禮)를 취했다.
 “오라 이거지? 후후후!”
 그는 서신을 반듯하게 접어 한쪽으로 밀쳐놓으며 웃었다.
 환수 오목은 자신이 장춘(長春) 일대에서는 제일 빠른 손이라고 자부했다.
 ‘환수’라는 별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환수는 무인들의 별호처럼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정 명칭이 아니다. 배수들의 세계에서는 한 지역에서 제일 빠른 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명예다.
 징춘에서 오목이 사라지고 나면 그 순간 부로 새로운 환수가 탄생한다. 또한 오목보다 더 빠른 손이 나타나면 환수라는 별호는 그에게 넘겨진다.
 한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현재 가장 빠른 손이 환수다.
 그들은 환수를 써서 전낭을 털려고 했다.
 은자 열 냥이라는 대가까지 지불했다. 물론 말뿐이었다. 사실은 일이 끝나고 난 후, 환수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를 나뭇가지로 협박하여 자초지종을 알아낼 때, 등 뒤가 상당히 따가웠다.
 누가 지켜보고 있었다.
 환수 오목이 따라나서겠다고 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떨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감지했기에 따라나선 것이다. 또 그런 사실을 짐작하고 동행을 허락했다.
 “있는 돈을 다 써.”
 이 말은 계야부가 먼저 했다.
 “환수를 써서 전낭을 갈취하는 건 원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대가가 은자 열 냥이면 너무 세. 헌데 그것도 아냐. 그는 이놈 목숨을 앗으려고 했어. 살인멸구. 재미있지 않아?”
 “네가 군에서 밀려난 게 확실히 더러운 수작이었단 소리지.”
 “나는 정 장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아닌 것 같아. 전혀 모르는 놈들이 날 건드리고 있어.”
 “널 건드리다니······ 누군지 불쌍한 놈이군.”
 부사영이 혀를 끌끌 찼다.
 그읨 말은 진심이다.
 이백오십여 회의 첨각 정탐이라는 신화는 단지 싸움만 잘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움직이기 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한 것은 즉각 행동에 옮길 줄 알아야 한다. 실천력도 탁월해야 한다.
 살기 위한 조건을 들라면 하루해를 꼬박 넘겨도 모자란다.
 계야부는 군신(軍神)이다.
 다른 자들은 부사영도 계야부와 동일시한다.
 부사영의 전과도 가히 신화적이니 그럴 만도 하다.
 허나 그들은 잘못 안 것이 있다. 아니,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부사영이 계야부의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즉, 계야부가 세운 계획을 쫓아서 충실히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가 수명판에 신화적인 기록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계야부와 같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계야부를 건드린 자, 뼈저리게 후회하리라.
 계야부가 말했다.
 “돈을 다 써.”
 “모두 합치면······ 일흔 냥이 넘어. 정말 다 써도 될까?”
 “오목을 썼다면 다른 자도 쓴다는 말이 되겠지. 다음에는 더 절묘한 수가 동원될 것이고. 어찌어찌 막는다고 해도 결국은 털리게 되어 있어. 그럴 바에는 저들의 원하는 대로 해주자고.”
 “좋아. 그런 건 나에게 맡겨. 후후후! 이번 기회에 원없이 돈이나 써보자. 하하하!”
 부사영은 자신이 말한 대로 낭비의 진수가 뭔지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원래 돈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말똥구리 소속 군인들은 다른 군인들보다 서너 배 정도 녹봉을 많이 받는다. 침투 명령을 받고 들어갔다가 살아올 때마다 홍리(紅利: 수당)가 더해진다.
 부대에 있는 날보다 적진에 있는 날이 더 많았던 두 사람은 녹봉을 장군들보다 더 많이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녹봉을 임무에 나섰다가 죽은 동료를 위해 아낌없이 내놨다. 말똥구리 군인들조차 전혀 모르는 그들만의 비밀이었다.
 전역을 하면서 갑옷을 판 돈 외에는 한 푼도 가지고 나오지 못한 연유다.
 “다 썼어. 이제 정말 한 푼도 없어. 어쩔래?”
 “기다려야지.”
 “쯧! 지금부터는 쫄쫄 굶게 생겼군. 그거 모양새 별로 안 좋은데.”
 계야부가 고갯짓으로 오목을 가리켰다.
 “저 친구, 써먹어도 괜찮아?”
 “모아놓지만 않으면 되겠지. 소원대로 알거지가 되었으니 조만간 소식이 올 거야.”
 계야부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서신을 받았다.
 서신 전체에 대필(大筆)로 쓴 글자가 딱 한 자만 기재되어 있었다.
 ―행(行).
 움직이라는 뜻이다. 실행하라는 뜻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변화의 대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명은 받았지만 그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수하가 수집해 온 계야부의 모든 면면을 낱낱이 훑었다. 그리고 침묵에 잠겼다.
 놈은 확실히 뛰어나다.
 싸움을 잘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최악의 환경 속으로 밀어 넣어도 살아올 수 있는 유일한 놈이다. 말똥구리 부대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의 기록을 샅샅이 훑어본 지금 그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놈은 사흘을 버텨줄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변수는 없나? 놈이 위협이 될 가능성은 없나? 칼자루를 거꾸로 잡고 자신들을 찔러올 경우에는?
 그는 모든 것을 살폈다.
 계야부에 관한 건은 모두 그의 손에서 끝내야 한다.
 자신의 윗선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죽음으로써 사건이 끝나야 한다.
 그럴 수 있나?
 계야부 같은 자에게 당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다 사검을 쓸 뿐이다.
 무인들은 사검(死劍)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하나는 ‘죽음을 부르는 검’이라는 뜻이다.
 수없이 몰아친 죽음의 위기가 한 인간을 인간병기로 탈바꿈시켜 놓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그는 진짜 무서운 자가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겁이 없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죽이겠다고 달려드니 무섭다.
 또 다른 의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검’이라는 뜻이다.
 사검이 정말 무섭다면 전장을 다녀온 군인은 모두 뛰어난 무인으로 탈바꿈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 수많은 전장을 전전했어도 전갑을 벗으면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간다. 병기는 다를 줄 알지만 무인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들은 군에 있을 때도 그런 상태였다.
 한 마디로 자신의 능력을 망각한 채 목숨을 걸고 병기를 휘둘렀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가 눈을 뜨며 수하에게 말했다.
 “놈을 보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고?”
 “네. 사검이 어떤 것인지 검을 섞어보고 싶었습니다.”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후후후! 그깟 놈에게 진다면 이 검이 웃습니다.”
 수하가 검을 철컥거렸다.
 그가 지닌 검은 칠채검(七彩劍)이라 불리는 명검이다.
 검을 뽑으면 검신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가 화사하게 피어나 눈을 아린다. 무지개가 허공을 가를 때의 아름다움을 보면 절로 경탄이 쏟아진다.
 그가 웃었다.
 좋다. 놈을 쓴다.
 ‘타고난 천재!’
 그가 계야부를 본 첫 소감이다.
 세상에는 많은 싸움꾼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련과 비무를 통해 다듬어진 싸움꾼도 있지만 계야부처럼 태어날 때부터 싸움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온 자도 있다.
 그런 자들은 정말 무섭다.
 한 번은 져도 두 번은 지지 않는다.
 한 번 쓰라린 아픔을 겪으면 두 번째는 이겨낼 방도를 찾아낸다.
 그가 붉은 종이를 내밀었다.
 계야부는 뚫어지게 그를 응시하면서 배첩(拜帖)이라 적힌 붉은 종이를 받아 펼쳤다.
 배첩을 당사자에게 직접 전하는 경우도 없지만 그걸 또 받아보는 경우도 없다.
 ―안선(眼線) 십일주(十一紬) 위지패문(尉遲佩雯).
 짤막한 자기소개다.
 ‘안선?’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하기는 군이라면 모를까 세간의 일은 거의 대부분 알지 못한다.
 “이 친구를 통해서 실례를 했네.”
 그가 오목을 가리켰다.
 “왜 이러실까. 서로 다 알면서. 실례는 그것만 한 게 아니지. 군에서 수작을 부린 것도 당신 아냐?”
 부사영이 비꼬았다.
 자신을 위지패문이라고 밝힌 그는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안선이라고 들어봤나?”
 “초문(初聞)이오.”
 “한 마디로 원(元)의 잔당을 색출하지.”
 “원의······ 잔당?”
 “원은 아직도 복국(復國)을 꿈꾸고 있지. 많은 간세를 파견하여 분열을 획책하고······”
 계야부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대충 알아듣겠소. 다음 말을 해보쇼.”
 “우리는 원의 잔당을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네.”
 “알아들었다고 하지 않았소.”
 “후후후! 말을 해줘도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말해준 것이네. 헌데 그리 말하는 보니 아직도 알아듣지 못한 것 같군? 우리는 총력을 기울이네.”
 계야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말장난 같은 것은 성격에 안 맞는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딱 부러지는 것이 좋다.
 “총력이란 말에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소만······”
 “할 수 있는 일은 다한다는 것만 알아두게.”
 살인, 납치, 방화······ 남녀노소 불문하고 눈에 띄는 사람은 모두 죽인다는 말과 똑같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나설 수는 없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과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곤 하지.”
 “안선에 들어오라는 소리요?”
 “말똥구리 중에서는 자네가 제일 눈에 띄더군. 굉장히 인상적이었네. 우선 전역시키는 게 순서였지.”
 계야부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한 대 치고 싶은 자다. 있고 싶은 곳에서 쫓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턱을 쥐어박고 싶다.
 “그 다음에 이런 친구들을 이용해서 알거지로 만든 다음에 일거리를 주자는 생각이었네만······ 이미 눈치 챈 듯해서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섰네.”
 위지패문이 오목을 또 한 번 쳐다봤다.
 반대로 계야부는 위지패문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위지패문은 살쾡이처럼 번들거리는 계야부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내며 말했다.
 “안선에 들어오길 권유하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군.”
 계야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많은 자들이 숨어 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지독한 살기를 쏘아내는 것으로 보아서 전문적으로 살인 수업을 받은 살수들이다.
 권유를 해보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뜻이다.
 “맞네. 거절하면 죽네.”
 위지패문은 담담히 말했다.
 “뭐 이런 개 같은······”
 부사영이 발끈해 나섰지만 계야부가 손짓을 해서 뒤로 물렸다.
 “녹봉 이야기부터 합시다. 얼마나 줄 생각이오?”
 “그러잖아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네. 달콤한 먹이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안선은 녹봉이 모두 똑같네. 위라고 많고, 아래라고 적지 않지. 일 년에 오백 석이네. 이 년이면 천 석이지. 한 십 년 있으면 웬만한 갑부 소리는 들을 걸세. 적지는 않지?”
 “오, 오백 석!”
 오목이 입을 쩍 벌렸다.
 은자로 환산하면 백칠십 냥이나 된다. 정삼품(正三品) 관료(官僚)가 사백이십 석을 받고, 종이품(從二品)이 오백칠십육 석을 받으니 그 중간이다.
 세상에! 안찰사(按察使)나 좌우시랑(左右侍郞)보다 더 높은 녹봉을 받다니!
 “좋소. 할 일은 뭐요?”
 “그 전에 자신을 증명해 주게.”
 “······?”
 “자네를 주목하고 군에서 빼낸 것은 나이지만 자네들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내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닐세.”
 “확신도 없이 일부터 벌였다는 말이군.”
 “우리 일이 원래 이러네. 죽음이 두려운가?”
 “······”
 “두려워도 두렵지 않아도 어쩔 수 없네. 이제 자네는 자신을 증명하거나 죽을 수밖에 없네.”
 “구체적으로 말하시오. 그 증명이라는 것.”
 “우린 사흘 동안 자네들을 공격할 거네. 인정사정없고, 수단방법도 안 가릴 걸세. 오로지 죽이기 위해 달려들 거네. 허니······ 자네들도 죽이게.”
 “정말······ 죽여도 괜찮단 말이오?”
 부사영이 말했다.
 군에서도 사람을 함부로 안 죽인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적진에 들어갔을 때뿐이다. 아군 진형으로 넘어와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바로 사형을 당한다.
 헌데 죽이란다. 공격해 오는 사람은 모두 죽이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가 말했다.
 “안 그러면 자네들이 죽을 테니까. 일명 죽음의 유희(遊戱)라고 하는데 생존가능성이 일 푼밖에 안 되지. 자, 그럼 남은 이야기는 증명이 끝난 다음에 하기로 하지.”
 위지패문이 일어섰다.
 “잠깐. 저 친구에게 할 말이 있소.”
 계야부가 따라 일어서며 위지패문을 호위하고 있는 무인에게 다가섰다.
 “검을 뽑고 싶나?”
 계야부의 눈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사검을 쓴다고 들었소. 전장에서 익힌 사검, 견식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야······”
 “견식 따위는 없다. 검이란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물건이야. 심신수양 같은 말은 하지 마라. 나 같은 놈에게는 통하지 않아. 죽고 죽이는 게 아니면 흥미 없다. 검을 뽑고 싶나?”
 “후후후! 언젠가는······”
 “언젠가 따위의 말도 하지 마라. 지금 아니면 없는 거야. 할 일이 남아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도 입에 담지 마라. 죽은 놈이 무슨 걱정이야. 뽑고 싶으면 뽑아라. 상대해 주마.”
 “······”
 “후후후! 내 사검을 보고 싶거든 언제든지 죽이려고 달려들어라. 죽여주마.”
 “너 이······”
 쉬익! 찰싹!
 무인이 입을 열려는 순간 계야부의 손이 호선(弧線)을 그리더니 그의 뺨을 갈겼다.
 “사내자식은 입으로 말하는 게 아냐. 검을 뽑든가, 꺼져.”
 “······”
 무인은 대답 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검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싶은데, 기회가 없다. 검을 뽑는 즉시 살검이 휘몰아칠 것 같다.
 “허허허! 한 수 잘 봤네. 뺨을 친 그 수법······ 상당히 고명하군.”
 위지패문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고명한 것은 없다. 단순히 손을 들어 가격했을 뿐이다. 허나 무인은 고개를 돌려 피하거나 손을 들어 막지 못했다.
 계야부의 손에 검이 들렸다면 무인은 죽었다.
 “참고로······ 넌 내 앞에서 검을 뽑지 마라. 뽑는 즉시 죽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살기를 드러내지 마라. 저번에 한 번, 이번에 한 번. 더 이상은 용서하지 않는다.”
 계야부가 등을 보이며 걸어갔다.
 
 
 2
 
 
 “정말 오백 석을 준다면 당연히 해야죠. 뭘 망설여요!”
 오목은 신이 났는지 펄쩍펄쩍 뛰었다.
 “내 형님들 따라다니면 운이 붙을 줄 알았다니까. 그때 형님들을 척 보는 순간 아! 보통이 아니구나!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분들이구나! 하고 직감이 빵! 오더라니까요.”
 “수다 떨지 말고 앉아.”
 계야부가 침중하게 말했다.
 “어떻게 봤어?”
 부사영에게 물었다.
 “개소리지 뭐. 원의 잔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게 언제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써먹고 있는 거야? 저놈은 세상 사람이 모두 무지몽매한 줄 아나보지?”
 부사영이 투덜거렸다.
 ‘원의 잔당’이니 뭐니 해서 세상이 시끌벅적한 때가 있었다. 원이 세력을 키워 복국하니 어쩌니 하는 말도 많이 나돌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에 현혹될 사람은 시골 노인들밖에 없다.
 특히 계야부와 부사영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원의 최정예인 팔부군과 맞붙어 싸워왔다. 그네들의 속사정이 어떤지는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원은 패망하여 몽고로 쫓겨 갔다고 하나 아직도 강하다.
 그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시 중원을 침공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다. 또한 그들은 내부 체제 정비가 시급해서 초원 밖으로 눈길을 돌릴 형편이 못된다.
 몽고는 끝났다.
 그들이라고 중원에 간세를 두지 말란 법은 없지만, 만약 있다면 동향을 탐문하는 선에서 그칠 뿐이지 복국이니 어쩌니 하는 건 터무니없는 말이다.
 “안선은 또 뭐야?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무엇보다 놈이 마음에 안 들어. 눈빛이 착 가라앉아 있었거든. 그런 자는 항상 뒤통수를 때려.”
 “형님도 참 별 걱정 다하쇼. 녹봉을 선금으로 달라면 될 것 아니오. 돈을 받았는데, 어쩔 것이오.”
 “넌 좀 입 다물고 있어라. 귀 따갑다.”
 “나도 개소리라는 데 동감해. 뭔가 속이는 게 있어.”
 “이런 데 휘말릴 것 없어. 그냥 군에나 들어가자.”
 계야부는 고개를 내둘렀다.
 “이자는 날 지켜보고 있어. 말똥구리에서 쫓아냈다면 어디서건 마찬가지야. 난 이 일을 한다.”
 “뭐? 이용하는 줄 알면서 한다고?”
 “첫째, 도사가 날 쫓아내면서 한 말이 있어. 자기 정도는 입도 벌리지 못할 정도로 높은 윗선에서 내린 명이라고. 저들 조직이 상당히 크다는 걸 의미하지. 둘째, 그만한 조직이면 우리들 정도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워. 거절하면 죽어. 어떤 일이든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제길! 우리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준비하자. 저들이 증명을 하라고 했으니 실망시켜주면 안 되잖아? 철저히 무너트려 주는 것도 괜찮을 거야.”
 계야부는 숫돌을 꺼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작은 도(刀)를 꺼내 갈기 시작했다.
 계야부는 자신들이 싸우기 좋은 지형을 선택했다.
 야전(野戰)이다.
 전각이 있고, 화원이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마을보다는 바람소리, 물소리가 가득한 산 속이 훨씬 낫다.
 그는 산에 들어가 전호(戰壕)를 팠다.
 “너 전장에 나가본 적 없지?”
 “내가 그런 데를 왜 나가요!”
 “땅 파는 걸 보니까 한눈에 알겠다. 그냥 이쯤에서 접는 게 어때? 우리 따라다니면 제 명에 죽지 못할 것 같은데.”
 “녹봉이 오백 석이오. 오백 석.”
 “이놈아, 재물에 눈이 뒤집히면 죽는 거야.”
 “그래도 좋소. 오백 석에 깔려죽을 수 있다면 깔려죽지 뭐.”
 “넌 그만한 돈은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잖아?”
 “어림없는 소리 마쇼. 여기 아무리 돌아다녀봐야 그만한 돈 가진 사람이 흔한 줄 아쇼? 사실 형님들 정도 돈 가진 사람도 귀하디귀한 판이오.”
 “큰물에서 놀면 되지?”
 “히히! 나 같은 놈이 어딜······ 큰 도읍에는 이미 터 잡고 있는 터줏대감들이 있어서 잘못 손 놀렸다가는 뎅겅 잘리기 십상이오.”
 “너도 참 어렵게 산다. 땅이나 깊게 파.”
 “히히!”
 오목은 무엇 때문에 땅을 파라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파라니 팠다.
 “저놈은 빼놔야지.”
 계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일부러 무인에게 도발한 것은 그의 눈초리가 오목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끈질긴 자들이다.
 이미 오목이 계야부 곁에 있어서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되는데, 죽이려고 한다.
 일의 진행 같은 것은 상관없다. 무인에게는 매듭짓지 못한 일 중에 하나일 뿐이다.
 계야부는 거기서 비밀을 또 하나 알아냈다.
 이들은 철저히 점 조직 형태로 운용된다. 개인에게 떠맡긴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예전에는 죽이라고 했지만 일의 전후를 살펴서 죽이지 않아도 될 경우가 있다. 헌데 죽이려고 한다. 일의 전후를 살피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꼭 필요한 일만 알려준다.
 무인의 경우에는 위지패문이 있으니 전후를 살필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오목을 향해 살기를 쏘아내는 것은 몸에 붙어버린 습관 탓이다.
 오목을 돌려보내면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목은 신이 나서 땅을 팠다. 오백 석을 당장 손에 쥔 사람처럼 기분이 들떴다.
 “내가 묻어놓지.”
 이번에도 계야부는 고개만 끄덕였다.
 퍼억! 털썩!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묵직한 쇠붙이가 오목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오목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꼬꾸라졌다.
 부사영은 그가 관에 넣은 다음 공기구멍을 만들고 대나무를 꽂았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말똥구리들이 적진에 잠입하여 흔히 쓰는 수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숨으면 몇 날 며칠이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 편히 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
 피로에 지쳐서 도저히 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을 때 아주 좋다.
 그 사이, 계야부는 대나무를 깎아서 짧은 죽도(竹刀)를 만들었다.
 그 수가 무려 백여 개.
 그는 죽도들을 쭉 연결한 후, 몸에 걸쳤다.
 훌륭한 갑옷이 만들어졌다. 대나무로 만든 갑옷이라 효용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몸을 가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공했다.
 그는 계속 움직였다.
 주위를 돌아다니며 돌과 나무를 이용해서 함정을 만들었다. 넝쿨을 끊어와 돌에 묶기도 했다.
 모든 게 능숙했다.
 반면에 부사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놈들, 증명인가 뭔가 하라면서 왜 공격하지 않는 거야? 죽이러 와야 죽일 것 아냐.”
 “올 거야. 그것도 아주 거세게.”
 부사영은 진저리를 쳤다.
 계야부의 말은 언제나 적중했다. 정확한 사실을 토대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한 후에 나온 결과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릴 리가 없었다.
 “쉴 틈은 있겠어?”
 “사흘 동안 오줌 눌 시간도 없을 거야.”
 “그렇게까지!”
 계야부가 부사영 옆에 와 앉았다. 아니, 드러누웠다.
 “안선인가 뭔가 하는 것 말이야. 정말 있다면 어쩔 거야?”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우렁찬 코골음이 들려왔다.
 드르릉! 드릉······!
 부사영은 살며시 잡아 흔드는 손길을 의식하며 눈을 떴다.
 “쉬잇! 왔다.”
 계야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부사영은 황급히 눈을 비비며 전면을 주시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해질녘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자정(子正)에 가까워졌다. 야밤을 환하게 밝혀주는 달이 떠 있는 위치로 어느 정도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부사영은 금방 낯선 자들을 발견해냈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이다.
 검도 검은색이다. 검신까지 검게 칠했으며, 달빛이나 별빛에 반사되지 않도록 무광(無光) 처리를 했다. 또한 옷소매와 허벅지, 발목 부근은 검은 줄로 칭칭 동여매어서 옷 쓸리는 소리조차 죽였다.
 한눈에 봐도 전문적인 살수들이다.
 스으읏! 스읏!
 몇 명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계야부가 설치해놓은 함정을 제거하는 중이다. 넝쿨을 자르고, 돌무더기가 쏟아지지 않도록 갱목(坑木)을 받치고, 땅에 설치한 노방(路傍)은 뒷사람이 신경 쓰지 않도록 덮개를 활짝 열어 놨다.
 “거봐. 내가 발각될 거랬지?”
 부사영이 속삭였다.
 “어떤 놈들인지는 알 수 있잖아.”
 계야부도 속삭였다.
 “정공(正攻)?”
 “승산 없어.”
 “그럼?”
 “기습전으로 하자.”
 계야부가 공격 형태를 결정했다.
 옛날부터 늘 이런 식이었다. 그는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했다. 다른 사람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의 말을 십분 믿고 따른 자는 살았고, 조금이라도 어긴 자는 죽었다.
 숨어 있으라 하면 숨어 있으면 산다. 뛰라고 하면 죽을힘을 다해서 뛰어야 하고, 공격하자고 하면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 도저히 승산 없어 보이는 상황이라도 공격한다.
 “이놈들이 그렇게 강해?”
 “둘은 비(比), 셋이면 패(敗).”
 “흠! 포위당하면 죽는다는 말이군.”
 “가자!”
 계야부가 뱀처럼 땅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파라라라락!
 그가 입고 있던 대나무 갑옷이 폭죽처럼 터지며 죽도가 비산했다.
 “기습······ 커억!”
 “끄윽!”
 여기저기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파라라락!
 몸통에 둘려져 있던 갑옷도 끌러졌다.
 좌측에 가장 많은 흑의인들이 모여 있다. 족히 십여 명쯤 되는 자들이 한 곳에 뭉쳐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노방을 피하며 움직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모인 것뿐이다.
 죽도가 그곳으로 향했다.
 “막앗! 커억!”
 제일 앞에 있던 자가 벌렁 쓰러졌다.
 죽도는 흑의인들 사이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두 번의 공격을 끝낸 계야부는 몸을 굴려 벼락 맞아 쓰러진 고목 뒤로 숨었다.
 쏴아아아아······!
 바람소리가 숲을 쓸고 지나간다.
 진한 피비린내가 숲의 청아함을 깬다.
 죽도는 느리며 파괴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뛰어난 암기임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아 왔다.
 계야부는 가볍고 탄성이 강한 죽도의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
 죽도는 표창과 달라서 파공음이 거의 없다. 때문에 야밤에 사용하면 효과가 지극히 뛰어나다. 이류무인이 일류무인을 상대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는 고개만 살짝 들어 흑의인들을 살폈다.
 십여 년 동안 야밤을 대낮처럼 살아왔다. 그에게 숲속의 어둠은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흑의인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계야부가 숨어 있는 위치를 짐작해냈다. 첫 번째 죽도와 두 번째 죽도가 터진 위치를 근거로 그의 이동 방향을 탐지해냈다.
 “커억!”
 계사부가 있는 곳으로부터 오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부사영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
 계야부는 다시 몸을 굴려 일 장 뒤로 물러섰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서 흑의인들의 생각을 교란시켜야 한다.
 파라라락! 쒜에에액!
 아랫배에 둘려져 있던 갑옷이 활짝 펼쳐졌다.
 던져진 곳은 네, 다섯 명쯤 모여 있는 곳이다. 더 많은 자들이 모여 있으면 좋으련만 뭉치면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려서 좀처럼 모이지 않는다.
 지금으로써는 다섯 명도 많이 모인 것이다.
 “악!”
 한 명이 나가자빠졌다.
 갑옷 한 줄에 들어 있는 죽도는 삼십여 개에 이른다.
 계야부는 삼십여 개를 일시에 던져낼 수 있다. 살상 반경도 삼 장에 이른다.
 헌데 당한 무인은 한 명뿐이다.
 ‘이러면 정말 피곤해지는데.’
 한 번에 칠, 팔 명 정도는 나가떨어져야 정상인데 겨우 한 명뿐이라니.
 그는 양손에 병기를 쥐었다.
 왼손에는 단검(短劍)을 잡았다. 길이가 한 자가량 되어서 일반적인 단검보다는 조금 길었다. 오른손에는 도를 쥐었다. 형태는 자모도(子母刀)와 비슷했다. 도병(刀柄)에 손을 보호하는 호수(護手)가 있고, 넓은 칼날이 부드럽게 흘렀다. 길이는 역시 한 자가량 되어 단검이나 도나 비슷했다.
 ‘한 사람은 시선을 끌어주어야······’
 “타앗!”
 계야부는 성난 멧돼지처럼 뛰어나갔다.
 쒜엑! 쒝! 쉐에에엑!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았다.
 계야부가 일검일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병기 하나로 상대의 병기를 막고 다른 병기로 찌르거나 베기 위해서였다. 헌데 흑의인들은 계야부의 싸움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철저히 병기의 충돌을 피하며 공격해왔다.
 계야부도 싸움방식을 바꿨다.
 흑의인들이 원하는 대로 병기의 충돌을 피했다. 그리고 곧바로 육신을 베어갔다. 이런 방식은 자신보다 약한 자들과 싸울 때 쓰곤 했는데······ 정통으로 무공을 수련한 자에게 써보기는 처음이다.
 파앗! 파아앗!
 피와 피가 튀었다.
 계야부는 왼팔에 깊은 검흔이 그어졌고, 흑의인은 오른쪽 배를 갈렸다.
 두 사람 모두 아직은 싸울 수 있다.
 도를 빗겨 맞은 흑의인이 배를 움켜쥐며 물러섰고, 그 자리를 다른 흑의인이 채웠다.
 쒜엑! 쒜에엑!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아무리 용을 써도 한꺼번에 둘, 셋을 상대해야 한다. 어떤 때는 다섯 명까지 한꺼번에 공격해 온 적도 있다.
 흑의인도 자신들이 얼마나 유리한지 잘 안다. 유리한 점을 더욱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도 안다.
 쒜엑!
 앞에 있는 자가 검을 뻗어왔다.
 계야부는 허리를 숙여 검을 등 뒤로 흘려보내고 용수철처럼 퉁겨올라 단검을 내리찍었다. 노리는 부위는 상대의 가슴이다. 활짝 열린 가슴이 한눈에 보인다. 헌데,
 쒜에엑! 쒜엑!
 등 뒤에서 파공음이 두 개가 터져나왔다.
 그는 급히 신형을 돌리며 일검일도를 쳐올렸다.
 공격해 오던 두 사람이 병기를 부딪치고 않으려고 검초를 회수했다. 그 순간,
 쒜엑!
 먼저 공격했던 자가 검초를 바꾸어 밑에서 위로 쓸어 올렸다.
 ‘늦었어!’
 계야부는 피하는 대신 검을 향해 쏘아갔다.
 피윳!
 검이 배에서부터 가슴까지 길게 쳐 올랐다. 그 순간, 계야부의 단검이 상대의 목을 꿰뚫었다.
 연수합공(聯手合攻)에 걸려들면 항시 위험하다. 이런 식이면 어린아이라도 어른을 때려눕힌다. 더군다나 전후좌우 사방을 내주고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
 “후욱!”
 계야부는 큰 숨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아주 잘못 맞았다. 배에서부터 가슴까지 심한 상처가 생겼다.
 핏물이 뭉클뭉클 새어나온다. 손바닥으로 꾹 눌러봤지만 어림없다. 차분히 앉아서 지혈을 시켜도 모자랄 판에 몇 번 꾹꾹 눌러준다고 멈출 피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힘들어. 그곳으로.’
 타타탁······!
 그는 치달렸다.
 전후좌우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막아줄 수 있는 지형지물을 찾아야 한다.
 타타탁······!
 쒜에엑······!
 계야부와 흑의인들이 쫓고 쫓겼다.
 도주한 것은 계야부가 먼저였다. 그가 먼저 뛰고 흑의인이 뒤쫓았다. 헌데 흑의인들이 훨씬 빠르다. 계야부는 근력을 사용하여 뛰었고, 그들은 경공(輕功)을 썼다.
 흑의인들이 어느새 머리채를 잡아챌 만큼 가까이 다가왔을 뿐만 아니라 검까지 쳐낸다.
 ‘여기!’
 함정을 설치하면서 미리 봐둔 곳에 도착했다.
 타악! 쿠쿠쿠쿵!
 계야부는 허리를 숙이면서 칼로 넝쿨을 잘랐다. 거대한 고목이 웅장한 소리를 내면서 무너졌다.
 낮에 설치한 함정은 단지 찰나라는 시간을 벌어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찰나라는 시간은 계야부의 목숨을 지옥 끝에서 극락으로 돌려놓았다.
 몸을 돌리며 도와 검을 바로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흑의인들을 노려보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터억!
 드디어 그의 등이 바위에 닿았다.
 바위가 후면을 방어해준다. 또한 이곳은 우측에도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열린 공간임에도 공격으로부터 보호된다.
 그가 상대해야 할 방향은 전면과 왼쪽뿐이다.
 “후욱!”
 그는 끝없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흑의인들을 보면서 다시금 숨을 깊이 들이켰다.
 
 
 3
 
 
 “저렇게 해서야 삼 일을 버티겠나?”
 위지패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간혹 사람을 잘못 볼 때가 있다.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틀린 적이 없다. 충직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금전을 빼돌리는 자가 있다. 지인이라 생각했는데 적으로 돌아선 자가 있다.
 그런 면에서 틀려본 적은 있어도 강한 놈이라고 판단했는데 형편없이 약했던 적은 없다.
 계야부가 최초의 사례다.
 “저런 놈에게······”
 수하가 옆에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순간, 그는 무엇인가를 퍼뜩 깨달았다.
 계야부가 수하의 뺨을 때릴 때······ 그때의 손속은 눈부셨다.
 자신이 나서서 둘 사이의 싸움을 말린 것도 그대로 놔뒀다가는 애꿎은 수하만 목숨을 잃을 것 같아서였다.
 계야부는 그때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빠르지도 않고 눈부시지도 않다. 사냥당하는 멧돼지처럼 이리 들이받고 저리 들이받을 뿐이다.
 ‘부사영! 부사영이란 놈······’
 그는 또 다른 자를 찾았다.
 쒜에엑!
 저 멀리서 한 줄기 유성이 흐른다.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떨어져 버린다.
 “후후! 후후후!”
 위지패문은 웃었다.
 흑마단(黑魔團)은 오늘로써 전멸된다. 오늘까지 가지도 않는다. 새벽이 오기 전에, 인시(寅時)가 되기 전에 흑마단 살수들은 최초의 패배를 안고 쓰러진다.
 계야부는 제 스스로 미끼가 되었다.
 미끼란 절대로 크거나 작으면 안 된다. 물고자 하는 것이 입맛을 다실 수 있을 만큼 적절해야 한다. 너무 크거나 작으면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계야부는 흑마단 살수들의 무공을 정확히 헤아렸다. 그리고 그들의 수준에 맞춰서 싸운다.
 때로는 검을 맞아주기도 한다.
 일부로 검을 맞다니,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를 할지 몰라도 그게 남는 장사다.
 흑마단 입장에서는 곧 쓰러질 것처럼 보이니까 악착같이 달려든다. 다른 곳을 향하던 자들까지 모조리 덮쳐든다.
 그 사이, 부사영을 뒤를 친다. 소리 소문 없이 한 명, 한 명 죽여 나간다. 그 속도는 가히 전광석화 같다. 계야부가 한 번 접전을 벌일 때, 그는 두 명이나 세 명 정도를 베어낸다.
 현재 흑마단은 부사영을 잊고 있다.
 그가 나타나지 않으니 어딘가 숨어 있으려니 생각할 게다.
 뒤에서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다. 잠시 후, 뒤돌아보면 감쪽같이 죽어간 많은 동료를 보게 될 것이다.
 계야부와 부사영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부딪쳤으면 싸움은 혼돈 양상으로 진행되었을 게다. 싸움 면에서는 두 사람이 훨씬 낫지만 흑마단은 협공을 할 줄 안다.
 “확실히 머리가 있는 자야.”
 “네?”
 옆에 있던 수하가 자신에게 한 말인 줄 알고 되물어왔다.
 “아니. 내 충고 하나 하지. 앞으로 저자 앞에서는 절대 살기를 드러내지 마. 하하하! 네 목숨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 저런 놈에게 뺨을 맞았다는 게 억울해서······”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니까. 다음은 어디지?”
 “백묘파(白描派)입니다.”
 “준비시켜.”
 “네?”
 “허! 귀가 먹었나 왜 이리 반문이 많아! 준비는 가급적 빨리 마치라고 하고······ 인시 전에 투입시켜.”
 “저놈들한테요? 백묘파를 투입시키지 않아도 끝장날 것 같은데요. 저놈들, 지금 죽기 직전 아닙니까.”
 “그런 안목이니 대들지 말라는 거야. 어허! 뭐해! 빨리 준비시키지 않고!”
 “알겠습니다. 그럼 정확히 인시에 투입시키겠습니다.”
 위지패문은 눈길을 다시 계야부에게로 돌렸다.
 여전히 그는 힘들게 일 검, 일 검을 받아내고 있었다.
 쒜에엑!
 낯익은 바람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멀리 떨어져 있어봤자 오륙 장 이쪽저쪽이다.
 계야부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검도 도를 다잡았다.
 순간, 그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까지 전전긍긍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번들거렸다.
 찰칵! 찰칵!
 흑의인들도 최후의 결전을 예감했는지 여기저기서 틀어진 검신을 바로 채웠다.
 바로 그때, 그들의 등 뒤에서 낭랑한 음성이 울렸다.
 “계야부, 수고했다. 이제 몇 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놈들은 내게 맡기고 좀 쉬어.”
 흑의인들이 퍼뜩 놀라 뒤를 돌아보자 부사영은 씩 웃어 주었다.
 그의 검이 달빛 아래 요악하게 빛났다.
 시퍼런 검신은 살을 베면서 묻은 기름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타앗!
 계야부는 쾌속하게 신형을 띄웠다.
 퍽!
 가장 앞에 있던 자의 가슴을 찍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속도를 이용하여 신형을 빙글 돌렸다.
 파앗! 푹!
 옆에 있던 자의 발목 인대를 그었다. 그와 동시에 왼손에 들린 검이 쓰러지는 자의 정수리를 파고들었다.
 “엇! 이봐, 내 차지도 좀 놔두라고!”
 부사영도 즉시 움직였다.
 쒜엑! 쒜에엑! 카앙! 퍼억!
 보통 검보다 두 자는 더 긴 검이 내리꽂히자 흑의인은 얼떨결에 검을 들어 올렸다.
 검과 검이 부딪쳤다.
 잠시 시퍼런 불똥이 튀기는 듯했다. 하지만 부사영의 장검은 흑의인의 검을 두 동강 내며 내처 그의 머리까지 반으로 갈라버렸다.
 쒜엑!
 그의 검이 다시 빠져나와 수평으로 그어졌다.
 흑의인들 중 두 명은 저항도 못해보고 허리가 잘렸다.
 그 사이, 계야부는 살쾡이처럼 덤벼들며 연신 도와 검을 쳐냈다.
 찍고. 베고, 찍고······ 일검과 일도가 번갈아 사용되었다. 왼손과 오른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잠시 후, 그들은 수많은 주검 앞에 서 있었다.
 “얼마나 되지?”
 “대략 백여 명.”
 “시간은?”
 “인시가 다 됐어.”
 “호법 좀 서. 상처를 치료해야겠어.”
 “쯧! 적당히 하지. 배는 크게 베인 것 같은데?”
 “이 정도는 괜찮아.”
 계야부는 웃통을 벗고 금창약(金瘡藥)을 꺼내 조금씩 아껴 발랐다.
 군인들에게 금창약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무인들이 효과가 늦다며 내던지는 금창약도 군인들에게는 다시없는 보물이다. 금창약을 아끼는 자, 전장에서 한 번은 구함을 받으리라.
 상처도 자신이 스스로 치료한다. 특히 말똥구리들은 상처를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팔다리가 잘리거나 운신하지 못하는 중상을 입었어도 치료만큼은 스스로 한다.
 누가 치료해주기를 기다리면 늦는다.
 의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혼이 저승에 도착해서 염라대왕과 농을 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말똥구리들은 적진에 버려지는 것도 예사였다.
 죽을 정도의 상처가 아니더라도 신속하게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된다면 가차없이 버려진다. 허면 살기 위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적진을 헤쳐 나와야 한다.
 힘들다고? 그럼 죽어라.
 동료가 대신 해주면 좋지 않냐고? 제 살기도 바쁘다.
 말똥구리들은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챙기는 습관을 길들여왔다.
 계야부는 혼자서 금창약을 바른 후, 붕대까지 감았다.
 “이런 놈들 검에 맞는 건 정말 억울해. 안 그래?”
 “약 올리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야.”
 “그래도 어쩌냐.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봤을 때 약 올려야지.”
 “속도 편하군.”
 “그럼 내 속이야······ 빌어먹을! 벌써 온 거야? 너흰 양심도 없냐? 쉴 틈은 줘야 할 것 아냐!”
 부사영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짤랑거리는 교소가 들려왔다.
 “호호호! 섭섭해요. 쉬게 해드리려고 왔는데.”
 어둠 속에서 나비처럼 화사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나타났다.
 그녀들은 병기를 들지 않았다.
 속이 환히 비치는 나삼(羅衫)을 입어서 흉조(胸罩)며 고차(袴衩)가 환히 비쳤다.
 부사영은 병기도 없는 여인들 앞에서 시퍼런 검을 들고 있자니 겸연쩍어 졌다.
 그는 검을 휘둘러 피와 기름을 털어낸 후, 검집에 넣었다.
 “여인들이 올 곳은 아닌 듯하오만.”
 “저희가 무인으로 보이진 않나요? 저희도 무인이에요. 무인이 못 갈 곳이 있나요?”
 말을 하는 여인은 너무 청순해서 사내와 손조차 잡아보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를 죽이려고 왔다는 건 알고 있소.”
 “휴우! 우리도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돈을 이미 받아서······ 이해하시죠?”
 부사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분은?”
 부사영은 계야부가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그는 없다. 새로운 자들이 나타났으니 임무도 바뀌었다. 이제는 부사용이 미끼 노릇을 해야 한다.
 힘든 일은 교대로 번갈아 가면서.
 말똥구리들의 수칙이다.
 “죽었소.”
 “어멋! 거짓말도 능숙하셔. 오면서 보니까 뒤에서 검을 맞은 시신이 태반이던데······ 음도술(蔭盜術)을 펼치셨나 봐요?”
 “음도술이 뭔지 모르오.”
 “정말 거짓말 잘 하신다. 어쩜 얼굴색도 안 변하시고.”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왔다.
 다가오게 해서는 안 된다. 그의 검은 검신이 긴 만큼 거리가 생명이다. 일족일도(一足一刀)의 거리를 내주면 한 팔을 묶고 싸우는 것과 진배없다.
 ‘까짓것 여자인데······’
 부사영은 웃기까지 했다.
 “하하! 소저, 웬만하면 물러나시오. 정말이지 내 검에 여인의 피를 묻히는 건 원치 않소.”
 여인은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다가섰다.
 “군인이었다고요?”
 여인이 손을 들어올렸다.
 부사영은 내버려 두었다. 진기를 끌어올리지도 않은 평범한 행동이다. 아니, 무엇보다 여인의 눈빛이 맑다.
 여인의 손이 부사영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몇 년이나 계셨어요?”
 “근 십 년?”
 “고생하셨겠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죠?”
 “몇 차례. 소저, 이제 그만하고······”
 “저희는 백묘파예요. 제 이름은 소청(小靑)이라 하고요. 기억해 주실래요?”
 “그, 그러리다.”
 순간, 여인이 웃었다.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뜨거운 단내가 풍겼다. 달콤한 과자를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아기가 모유(母乳)를 먹었을 때 풍기는 젖비린내 같기도 하다.
 부사영은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했다.
 처음 보는 여인인데, 안고 싶다.
 ‘빌어먹을!’
 그는 참으려고 했지만, 일단 참자고 생각하자 욕구가 더 거세게 치밀었다.
 “허어!”
 그는 탄식인지 자포자기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고는 여인을 와락 껴안았다. 순간,
 “컥!”
 품에 안긴 여인이 느닷없이 비명을 토해냈다.
 “뭐······?”
 그가 여인을 쳐다봤을 때, 여인의 눈동자는 이미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뭐는 뭐야! 정신 차렷!”
 매서운 일갈이 터지며 무엇인가가 눈앞을 휙 하니 스쳐갔다.
 계야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여인들을 처리해야 하나, 뜻밖에도 부사영이 미혼술(迷魂術)에 말려들자 앞뒤 가릴 사이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훗!”
 부사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소청이라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던 여인의 손에는 손가락만 한 비침이 들려 있었다.
 그만한 비침을 손에 들고 있는데도 보지 못했다. 천하의 요부가 꼬리를 치며 달려들었으면 냉담하게 마음의 문을 걸어 닫았을 텐데, 구중궁궐 깊은 곳에 있다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듯한 여인을 보자 한눈에 현혹되고 말았다.
 스릉!
 그는 검을 빼들었다.
 “넌 정말 사람도 아니다. 어떻게 저런 여자를 벨 수 있냐!”
 부사영이 여인들을 향해 달려나가며 터트린 일갈이었다.
 백묘파는 미혼술에만 능한 게 아니었다. 전술도 탁월했다.
 휘익! 휘이익!
 그녀들은 현란하게 움직였다. 나삼이 너울너울 춤을 췄다. 그럴 때마다 진한 육향(肉香)이 물씬 풍겼다.
 그녀들은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계야부가 일 장을 나아가면 그녀들은 일 장을 물러섰다. 부사영이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가면 마음껏 나가라고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녀들은 싸움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
 헌데 가만히 보면 둘 중에 한 명은 꼭 갇혀 있다.
 “이게 무림에서 말하는 진(陣)인가 뭔가 하는 거군.”
 부사영이 볼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는 검을 다섯 번이나 쳐냈다. 그리고 다섯 번 모두 허공만 때렸다. 부사영의 견빙검(堅氷劍))이 피를 보지 못하고 빈 허공만 갈긴 적도 드물다.
 그 점은 계야부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러 오는 자는 맞붙을 수 있지만 피하기만 하는 자는 잡아채기가 무척 곤란하다. 최소한 그녀들보다 빨라야 가능한데, 신법에서는 단연 그녀들이 앞선다.
 “미치겠군.”
 계야부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팔부군은 용감하게 달려든다. 목숨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칼질 한 번을 더 하려고 발버둥친다.
 어떤 경우든 싸움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는 없었다.
 “싸우지 않으려면 비켜주시오.”
 “싸우고 있잖아. 뭘 비켜달라고 하는 거야?”
 “말장난은 하고 싶······”
 “뭐가 말장난인데?”
 여인들은 생글생글 웃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여인들의 속셈을 눈치챘다. 그녀들이 왜 화려한 춤을 추며 겉도는지 알아냈다.
 독(毒)!
 “한 명만 죽으면 되겠군.”
 계야부가 말했다.
 “대장이 죽어야겠지?”
 부사영이 즉시 받았다.
 “아직도 대장이야?”
 “한 번 대장은 영원한 대장이지.”
 “좋아. 가라!”
 계야부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왼쪽을 향해 질주했다. 부사영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오른쪽을 향해 맹렬히 달려나갔다.
 여인들이 부사영을 놓아주었다.
 그녀들은 오른쪽을 활짝 열고, 왼쪽만 걸어 닫았다. 그러자,
 쓰윽!
 계야부가 단검으로 자신의 팔을 쭉 그었다.
 독에 중독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몽고인들도 독을 사용한다. 그럴 때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주어서 자각(自覺)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물론 임시방편이다. 빨리 벗어나서 독을 치유해야 한다.
 “타앗!”
 계야부가 여인들을 향해 쏘아갔다.
 여인들은 항상 그랬듯이 물러섰다. 헌데 이번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오른쪽으로 빠졌던 부사영이 계야부를 향해 마주 달려왔다. 마치 계야부와 부사영이 싸우는 틈바귀에 여인들이 낀 형국이었다.
 여인들이라고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녀들은 황급히 물러서며 두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면서도 넓은 포위망은 계속 유지했다.
 “급진(急進)!”
 부사영이 급히 몸을 뒤틀었다.
 두 사람은 산을 질주해 내려갔다.
 여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포위망을 풀지 않았다. 전후좌우의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옷소매를 펄럭거렸다.
 쏴아아아아!
 독분(毒粉)이 분분이 휘날렸다.
 몰랐을 때는 현란한 춤만 보였지만, 알고 보니 분홍빛 가루가 눈보라처럼 뿌려진다.
 쒜에엑!
 두 사람은 산길을 질주했다.
 여인들은 착각한 것이 있다. 이곳이 산속이라는 점이다. 평야(平野)였다면 당연히 그녀들의 승리다. 두 사람은 이런 식의 싸움을 치러본 적이 없다. 당연히 대응책도 없다. 오직 임기응변으로 발버둥치는 것이 고작이다.
 허나 이곳은 산속이다.
 산길은 좁다. 옆에 바위도 있고, 나무도 있다. 계곡도 있다. 계속 치달려 내려가면 포위망을 유지시킬 수 없다.
 “구조(鉤爪)!”
 여인들 사이에서 낭랑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쒜엑! 쒜에엑!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사방에서 울렸다.
 화살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질 때, 꼭 이런 소리였다.
 계야부와 부사영은 서로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들은 급히 몸을 멈춘 후, 방향을 틀어 구조를 맞이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인들의 진형은 흐트러졌으며, 그녀들의 미혼술 역시 발휘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검과 도, 그리고 구조뿐이다.
 “아악!”
 견빙검에 가슴이 갈린 여인이 처절하게 비명을 토해냈다.
 
 
 제3장 모의(謀議)
 
 
 1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이 자식들······ 우릴 쓰려는 게 아니라 죽이려는 거 아냐?”
 부사영이 금창약을 바르며 투덜거렸다.
 첫날은 상당히 많이 죽였다.
 흑의인들이 백여 명에 이르는데다가 백묘파 여인들도 서른 명은 족히 넘었다.
 그 이후에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정말 뒷간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다.
 피곤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공격해 오는 적의 형태가 시간이 갈수록 달라진다. 양에서 질로 바뀌고 있다. 한 무더기씩 덤비는 것이 아니라 많아야 열 명, 적게는 세 명까지 달라붙었다.
 헌데 날이 갈수록 싸우기가 힘들어진다.
 기력이 빠진 탓도 있지만 상대하기 벅찰 만큼 강한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야부와 부사영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상처는 깊어지고······
 “사흘 동안 공격한다고 했지?”
 “응. 그렇게 들었어.”
 “그럼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마지막이고 자시고 난 한식경도 버틸 힘이 없다. 식경 말을 해서 그런가? 배가 고프네.”
 “너 싸울 힘 있어?”
 “없다니까!”
 “그럼 숨자.”
 “뭐?”
 “사흘만 버티라고 했지 싸우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
 “그러다 괜히 트집거리 잡히는 거 아냐?”
 “어차피 이러다간 죽어.”
 계야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두 사람은 검을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좋아. 나도 좀 쉬어야겠어. 뭘로 할까?”
 “교혈(窖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바삐 움직였다.
 계야부는 땅을 팠다. 부사영을 땅을 덮을 나뭇가지와 돌을 주워왔다. 나무는 시간이 지나도 마르지 않도록 뿌리까지 캐왔고, 돌은 캐어낸 자국이 남지 않도록 다른 바위 위에 얹힌 바위만 들고 왔다.
 이것이 그들이 쥐어짜낼 수 있는 마지막 기력이었다.
 이제부터 그들은 땅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에 상당히 깊은 부상을 입은 상태이니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사라졌다······ 후후후!”
 위지패문은 웃음이 터져 나와 참을 수 없었다.
 역시 그들은 무인이 아니다. 투사도 아니다.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인 군인이다.
 투사 같으면 도주한다는 생각을 죽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인도 마찬가지다. 명예가 걸려 있는 문제이니 물러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그동안 얼마나 썼나?”
 “은자로 십이만 냥입니다.”
 “후후후! 십이만 냥······”
 그는 다시 웃었다.
 길에 은자 십이만 냥을 뿌려놓으면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살수들이 써보지도 못할 은자를 받고 목숨을 잃었다. 계야부와 싸운 자들은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재기불능에 빠졌다.
 은자 십이만 냥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는가.
 쌀이 삼십육만 석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을 일해도 벌지 못할 막대한 은자가 단 이틀 만에 소진되었다.
 헌데 아깝지 않다.
 원래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보면 한 푼도 아까운 법이다.
 계야부와 부사영은 마음에 든다.
 싸울 때와 도주할 때를 안다는 점이 더욱 좋다.
 그들은 잠적했다. 싸움은 하루 더 남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실종되었다.
 “개를 풀어. 지리를 잘 아는 자도 찾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멀고 찾아서 죽여!”
 “죽입니까?”
 “하루다. 하루 안에 찾아서 죽여라.”
 “알겠습니다.”
 수하가 멀어져갔다.
 ‘하루만 더 버텨라.’
 처음부터 싸울 필요가 없었다. 도주하면 그만이었다.
 계야부가 강한 것은 안다. 하지만 그 정도 강한 자는 무림에 많다. 지금 당장이라도 계야부 정도를 눕힐 자는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만 해도 다섯 손가락은 쉽게 접는다.
 무인이 아닌 자 중에서 그것도 무공이 강한 게 아니라 생존력이 강한 자를 구하려니 힘들었던 것이다.
 위지패문도 거기까지밖에는 모른다.
 그를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자들도 그가 선별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돈과 명단이 주어졌다. 그리고 살수들이 왔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살수들에게 돈을 주고, 투입시기를 알려준 것뿐이다.
 이들을 통해서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는 모른다. 의문조차 갖지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맡은 일만 확실히 처리하면 된다.
 삼 일을 버티거나, 삼 일 동안 발각되지 않고 꽁꽁 숨어 있거나 어떤 쪽을 택하든 상관없다.
 계야부는 무공이 강한 걸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려주면 되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동안 이 잡듯 뒤지는 수색망에 걸려들지 않는다면 그의 증명은 성공한 것이 된다.
 계야부와 부사영은 멀쩡한 몸으로 나타났다.
 멀쩡하지는 않다. 깨끗한 의복 속에 감춰진 육신은 난장판이다. 찢기고 베인 상처가 그득하다. 아무 곳이나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할 게다.
 제일 멀쩡한 사람은 오목이다.
 그는 지난 삼 일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몰랐다.
 “좋군.”
 위지패문의 첫마디였다.
 “실력은 증명한 것이오?”
 “절반만 성공했지. 하루는 숨었지 않나?”
 “숨는 것도 전술이오. 찾지 못했지 않소.”
 위지패문은 빙긋 웃으며 묵직한 전낭 두 개를 내밀었다.
 “은자 백 냥씩이네. 녹봉은 아니고······ 안선에 들어온 기념이라고 해두세. 아! 저 친구는 필요 없네.”
 그가 오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선은 존재 자체가 초일급비밀로 다뤄져야 하네. 헌데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안선을 알고 있네. 그뿐만이 아니지. 자네들 얼굴도 알고 내 얼굴도 알아. 어찌하면 좋겠나?”
 그가 물어왔다.
 말이 묻는 것이지 해치우라는 명령이나 다름없다.
 “애꿎은 놈이라 살려두려 했건만 너도 참 운 없다.”
 부사영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 사이, 계야부는 단검을 꺼내들었다.
 “저, 정말 절 죽일 거유? 형님! 아니, 어르신! 정말 절 죽일 거유? 죽일 겁니까? 사, 살려주세요. 제발······”
 푸욱!
 계야부의 검이 오목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안 좋아. 적당한 선에서 빠져나갔어야지 끝까지 따라붙으면······ 이런 꼴이 되는 거야.”
 “끄으윽! 컥!”
 오목이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더니 축 늘어졌다.
 그의 가슴에서 쏟아진 피가 상의를 붉게 물들였다.
 “치우지.”
 위지패문이 수하에게 명했다.
 ***
 오목은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 앉았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아팠다. 지금도 아프다. 기력이란 기력은 모두 빠져나가버린 것 같다.
 냄새도 지독하다. 무슨 놈의 냄새가······
 ‘분뇨(糞尿)! 이런······ 개새끼!’
 욕이 절로 나왔다.
 위지패문의 수하가 자신을 들고 나온 것까지 기억난다. 그 후로는 기억에 없다.
 그놈의 개새끼가 자신을 분뇨통에 버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품을 뒤져 거름종이에 쌓인 단환을 꺼냈다.
 무슨 약인지는 모르지만 약효가 뛰어나서 하루 이틀 정도만 푹 쉬면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계야부 그놈······ 정말 살려주려고 애썼다.
 그는 자신이 말없이 사라지면 위지패문의 수하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와 죽일 거라고 했다.
 그 말에 동감한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그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사실 계야부 곁에 있는 것도 모두 그놈 때문 아닌가.
 계야부는 자신 곁에 있어도 죽을 거라고 했다.
 위지패문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용도(用途)’다.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로 곁에 두거나 밀쳐낸다. 자신의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죽인다.
 그의 수하가 자신에게 떨어진 명령이라고 해서 끝까지 오목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나 위지패문이 용도를 따져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나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일만 충실히 한다.
 머리[首] 쪽에는 속하지 못하고, 목이나 가슴쯤에 해당되는 자들이다.
 위지패문의 수하를 피해 달아날 것이냐, 한 번 모험을 할 것이냐.
 선택권은 그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는 계야부를 믿기로 했다.
 정확히 그의 말대로 되었다.
 위지패문이 전낭을 두 개 내놓을 때,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단환을 꺼내 입안에 넣었다.
 분뇨 묻은 손이 입에 닿았다. 단환에도 분뇨가 스며들어서 알싸한 단환 특유의 맛과 찝찌름한 맛이 뒤섞였다.
 그래도 그는 질겅질겅 씹었다.
 목숨을 구해줄 약이다. 분뇨가 묻었다 한들 뱉을 것인가.
 그는 분뇨통에서 이틀 동안 있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손발은 분뇨의 독기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기다시피 움직였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이렇게,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그는 무려 한 시진 정도나 꿈지럭거렸다. 허나 그가 이동한 거리는 겨우 백 장에 불과했다.
 계야부는 위지패문이 믿을 수 있도록 검을 깊게 찔러넣었다.
 요행히 심장은 비켜갔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상처를 깨끗이 닦아내고 치료해도 모자랄 판에 분뇨 안에서 이틀이나 있었던 것이 상처를 악화시켰다.
 계야부도 이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야 돼.’
 그는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혼절했다.
 육신이 허공에 띄어졌다.
 명이 다해 혼이 빠져나간 것일까?
 그런대로 기분은 괜찮다. 허공이 물속처럼 여겨진다. 몸이 둥둥 떠다니니 그럴 만하다.
 그는 희미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았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아니 일단의 무리가 자신을 들것에 실어 나른다.
 ‘누구······?’
 물음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누구요?”
 그는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사흘이 지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수차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목에 딱 걸려서 말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제야 그것이 치워졌다.
 징그러울 정도로 큰 거머리다.
 “우선 원기부터 회복하구려.”
 의원인 듯싶은 노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소생을 구해주셔서······”
 “계야부를 아시오?”
 “······!”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의 입을 통해 그의 이름을 들었다.
 “그 사람이 대충 위치를 알려줬소. 근처를 뒤지면 검상 입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분뇨에 찌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노인이 장난기 섞어 말하면서 눈을 찡긋거렸다.
 “치료비는 이미 받았소. 넉넉하게. 당신 물건은 당신 관 속에 있다고 합디다. 도체 무슨 말인지······”
 노인이 말끝을 흐렸다.
 당신 물건······ 그런 건 없다. 그가 계야부와 만날 때, 그는 빈털터리였다.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무인에게서 훔친 은자 열 냥이 가진 것 전부였다.
 ‘내 물건! 은자!’
 그는 비로소 계야부가 돈을 남겼다는 걸 알았다.
 어디에 있느냐? 관 속에 있다. 무슨 관이냐? 자신이 묻혔던 관이다. 두 사람이 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때, 편히 쉬던 곳이다.
 ‘계야부······’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죽음 직전에 구함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감동이 열 배, 스무 배로 불어나 밀려온다. 그가 언제 이토록 철저하게 보살핌을 받은 적이 있던가.
 계야부는 자신을 죽였어도 된다.
 솔직히 말해서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면, 자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죽였다.
 ‘날 구해준 것······ 잘 구해주었다고 말할 때가 올 것.’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마차를 구해주시겠습니까? 먼 길을 가야합니다.”
 “그 몸으로는 무리일세. 한두 달 요양하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노인이 잠시 쳐다보더니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자네 뜻이 정히 그렇다면······ 하지만 가다가 죽어도 내 탓은 아니네. 계야부란 사람에게 그 말만은 꼭 전해야 하네.”
 “걱정 마십시오.”
 오목은 피식 웃었다.
 계야부과 의원을 협박하는 광경이 떠올라서다. 한편으로는 거절하지 못할 돈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협박한다.
 어떻게 했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
 ‘협박은 부사영이 했겠지.’
 그는 관에서 꺼낸 은자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울컥했다.
 관에서 전낭이 두 개를 발견했다.
 전낭 한 개에는 백 냥이 온전히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절반이 빠진 쉰 냥이 들어 있었다.
 쉰 냥의 용도는 익히 짐작된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얼굴도 모르던 배수일 뿐인데.
 돈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이왕 살려주는 것, 두 번 다시 배수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확실히 도와주자는 심산이었으리라.
 그래도 그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하남(河南). 하남으로 갑시다.”
 마부에게 말했다.
 
 
 2
 
 
 계야부와 부사영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한 사람에게 시녀(侍女) 넷에 시동(侍童) 둘이 배치되었다.
 침상은 세 명이 누워 자도 될 만큼 넓었고, 이불은 푹신푹신한 양털이었다.
 방도 넓었다. 웬만한 무공쯤은 방 안에서 수련해도 될 만큼 컸다.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후원이 나온다. 인공연못이 있고, 수백 년 묶은 나무들이 세월의 연륜을 토해낸다.
 이곳에 올 때는 늦여름이었다.
 그동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계절도 가을로 접어들었다.
 위지패문은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다녀갔다.
 처음에는 안부 외에는 묻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고, 얼굴이 살이 붙기 시작할 무렵, 그가 한 장의 지도를 내놓았다.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도록 머릿속에 각인시켜 놓게.”
 “일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일을 하기 위한 준비일세.”
 “안선이란 곳에 들어온 거요?”
 “후후후! 맞네. 이곳이 안선 비밀 분타(分舵)지.”
 “안선에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당신 외에는 본 사람이 없는데, 언제 소개시켜 줄 거요?”
 “그런 일은 없네.”
 “······?”
 “안선에서 자네와 접촉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 걸세. 더 이상은 알 필요가 없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시키는 일만 하라는 겁니까?”
 “철저한 비밀을 위해서일세. 반대로 역습 당할 때를 대비해서네. 후후! 믿지 않는군. 그럼 한 가지만 말해주지. 팔부군은 상대해 봤겠지? 어떻던가?”
 “강한 군대요.”
 “우리가 상대하는 자들은 팔부군 정도는 어린아이 취급하네.”
 “뭐······ 요?”
 “자네들은 작은 일부터 시작할 걸세. 점점 경험이 쌓이면 더 나은 일이 주어지겠지. 우리 안선 대원으로 적합하다 싶을 때, 나처럼 주(紬)라는 칭호를 받을 걸세. 주 칭호를 받지 못한 사람은 정식 대원이 라니라 임시 대원으로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하게.”
 “우리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죽일 거요?”
 위지패문은 피식 웃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만 알아두게. 이건 어떤가? 탈영병(脫營兵)은? 자네들이 전역한 것이 아니라 탈영한 것이라면?”
 “관둡시다.”
 계야부가 손을 휘휘 저었다.
 이들은 그러고도 남을 자들이다. 또 그만한 돈이 있고, 권력이 있다. 한마디로 무소불위(無所不爲)다. 그들이 하고자 해서 하지 못할 것은 없다.
 “이건 언제까지 외워야 하오?”
 “시간은 넉넉하네. 충분히 보고, 다 외웠으면 태우게.”
 계야부와 부사영은 말은 하지 않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자신들이 죽인 자들은 목각으로 만든 인형이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진짜 사람이다.
 그런 자들이 무더기로 죽었다.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단지 실력을 증명하라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인가? 어떻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여길 수 있으며, 또 한낱 명을 쫓아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바친 그들은 뭐하는 인간들인가.
 궁금증은 또 있다. 이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에 싸웠던 네 명. 그들 별호가 뭐였지?”
 계야부가 물었다.
 “심악사살(沈岳四殺).”
 “괘 강했지?”
 “강했지.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잖아. 네가 제 때 쳐주지 않았으면 우린 죽었을 거야.”
 “만약 나 혼자서 상대한다면 어땠을까?”
 부사영이 계야부를 쳐다봤다.
 “그런 건 왜 생각해?”
 계야부는 도사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만 쫓아내고자 했다. 부사영은 음모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자기 스스로 걸어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는 자신 혼자 있을 것이다.
 지독할 만큼 끔찍했던 싸움도 혼자 치러야 했을 것이고.
 심악사살······ 혼자 싸웠다면 졌다.
 그들의 협공은 완벽했다. 나무때기를 놓고 수련한 무공이 아니다. 사람을 베어가면서 터득한 살인지공이다.
 그들은 죽인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다.
 계야부가 숨자고 제안한 것도 다음에 나타날 자는 그들보다 더 강할 것이니, 상대해 보나마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둘이 상대했어도 그런데 혼자서 상대했다면 어땠을까?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허면 이들은 심악사살조차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왜 끌어들인 것일까? 군문에 압박을 넣고, 사람들을 수십 명씩이나 죽음으로 몰아넣고······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가.
 계야부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도 된 듯한 착각을 느꼈다.
 “외우자.”
 그가 지도를 들여다봤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할 거야?”
 “할 수 없잖아. 죽지 않으려면 해야지. 이 일에서 손 떼면 죽인다잖아. 쭉 따라가다 보면 옆으로 샐 길도 보이겠지.”
 계야부가 지도를 들여다봤다.
 이틀 후, 위지패문이 다시 찾아왔다.
 “군인이라서인지 지도는 빨리 보는군.”
 그는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재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뭐요?”
 “다른 방도 구경해 볼 텐가?”
 그는 두 사람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던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무엇인가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위지패문이 천을 들어 올리자, 너무 세밀해서 실제를 옮겨놓은 것 같은 지형도가 나타났다.
 “알아보겠나?”
 “지도.”
 “맞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게. 자네들은 여기서 출발할 거네. 단 둘이서만. 목적지는 여기.”
 위지패문이 기다란 지시봉으로 지형도를 가리켰다.
 “여기가 어딘지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네. 그건 다른 사람이 알려줄 걸세. 여기서 준비할 것은 이곳 전체가 적진이라는 가정 하에 잠입, 탈출하는 경로네. 목숨이 걸린 일이니 잘 살피게.”
 그가 나갔다.
 계야부와 부사영은 뚫어지게 지형도를 살폈다.
 위지패문이 말한 출발점부터 목적지까지, 그리고 목적지에서 빠져나올 곳을······
 “목적지에 들린 순간 경계가 발동했다고 봐야겠지?”
 부사영이 말했다.
 “······”
 계야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지형도만 쳐다봤다.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이곳저곳 세밀히 살폈다.
 지형도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다.
 사실 그에게는 지형도가 따로 필요 없다. 지도만 보면 산세가 어떤지, 어떤 특성을 지닌 곳인지 한눈에 파악된다.
 그런데도 살피고 또 살폈다.
 “경계가 발동되었다 치면······ 우린 이쪽 급경사로 빠져나오는 게 어때? 이 밑은 강이니 배를 대뒀다가······”
 “이곳은 사지(死地)야.”
 계야부가 결론을 내렸다.
 “······”
 부사영은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어서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계야부가 사지라고 하면 사지다.
 잠입할 수는 있다. 허나 빠져나오지는 못한다. 경계가 발동되면 꼼짝없이 잡힌다.
 계야부는 지형도를 빙 돌면서 손가락으로 몇 군데를 쿡쿡 찍었다.
 “하나, 둘, 셋······”
 총 일곱 군데다.
 어처구니없게도 산이 무려 다섯 개나 포함된 큰 지형이 일곱 군데만 틀어막으면 빠져나갈 길이 없어진다.
 계야부는 다시 지형도를 빙 돌았다.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것이 아니라 긴 선을 그었다.
 수색조가 출발하는 지점, 수색방향, 중점 수색로······
 수색은 모두 목에서 시작된다. 일곱 군데를 틀어막은 후, 곧바로 수색조를 내보낸다.
 그들은 각각 열 개의 수색조로 나뉘어 움직인다. 일곱 곳에서 모두 칠십 개의 수색조가 나서는 것이다.
 일직선으로 오르는 조도 있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조도 있다. 갈지(之) 자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기묘한 것은 그들의 움직임이 그물처럼 치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수색조의 움직임에 맞춰서 지형을 짜놓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정말······ 정말 이런 식으로 움직일까? 다르게 움직일 수도 있잖아. 여기만 봐도 그래. 빙글빙글 돌다니? 지형이 이렇게 넓은데, 왜 여기만 돌겠어?”
 부사영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얼마나 멍청한 말을 했는지 곧 깨닫고 민망해했다.
 수색은 길이 있다고 가는 게 아니다. 길이 없어도 적이 있을 만한 곳을 뒤지는 것이 수색이다. 지형은 필수 고려사항이다. 꼼꼼히 뒤진다고 밧줄을 타고 절벽까지 기어 올라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꼼꼼히 뒤질 곳이 있고, 한눈에 훑어보고 지나칠 곳이 있다. 이런 판단기준이 지형에서 나온다.
 목 일곱 곳을 틀어막을 정도의 눈이 있는 자라면 틀림없이 계야부가 말한 수색로로 수색조를 보낼 것이다.
 “교혈은 어때? 이번에도 무사히 위기를 넘겼잖아. 수색조가 수색을 끝낼 동안 땅 속에 틀어박혀 있는 거야.”
 이번에도 계야부는 머리를 저었다.
 그는 지형도를 다시 돌았다.
 이번에는 첫 번째처럼 손가락으로 지형도를 꾹꾹 눌렀다.
 “여기. 여기. 여기······”
 ‘아홉 군데! 빌어먹을!’
 부사영은 침울해졌다.
 계야부가 말한 곳은 망루(望樓)의 위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아홉 군데만 장악해 놓으면 산 다섯 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골짜기부터 산등성이까지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이군.”
 “누군지······ 이런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전력가야.”
 “그건 네 이야기잖아.”
 “농담할 정신 없어.”
 부사영은 픽 웃었다.
 계야부에게는 귀신같은 재주가 있다.
 임무를 하달 받고 잠시 동안만 연구하면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 작전인지 단번에 알아챈다는 것이다.
 그가 첨각정찰을 떠나기 전에 일러주는 것도 늘 그런 부분이었다.
 어디서는 어떻게 조심해라. 무엇을 조심하고, 어디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는······ 죽는다. 그리고 그때는 자신도 도와줄 수 없다.
 그 말만 충실히 지키면 산다.
 머리가 쭈뼛 서고, 소름이 돋고, 금방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계야부의 말만 쫓으면 산다.
 많은 사람이 그 간단한 일을 하지 못했다.
 “혼자 있고 싶은데.”
 계야부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야, 이놈아들아. 간지러워서 살겠나. 좀 더 콱콱 주물러라.”
 부사영은 시동과 시녀들에게 팔다리를 맡겼다.
 세상에 난공불락은 없다. 적어도 계야부에게 들이밀면 항시 구멍을 찾아낸다.
 그것 때문에 안달복달할 필요가 없다.
 그가 머리에 쥐가 나고 있을 때, 안된 이야기지만 자신은 마음 놓고 즐기면 된다.
 “팔 아픈데······”
 한 아이가 쫑알거렸다.
 “시끄러. 이제 한식경도 안 주물렀어.”
 “반각은 훨씬 넘었어요!”
 “내 느낌으로는 한식경이야. 그러니까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주물렀으면 되잖아.”
 “피이! 나빠!”
 쪼그만 계집아이가 입을 뿌루퉁하게 내밀며 종알거렸다.
 맑고 착한 아이들이다.
 헌데 이 아이들이 밤만 되면 행동이 달라진다. 어떤 이유로든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주의를 끈다. 그동안 다른 아이는 살며시 눈치를 보아가며 전서를 뿌린다.
 아직은 행동이 미숙하지만 두어 번만 반복하면 상당히 능숙해질 것이다.
 아무리 순진하고 맑아도 안선에 거둬진 아이들이니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이들이 커서 맹목적으로 안선에 충성하는 위지패문 같은 사람이 된다.
 부사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끼익!
 계야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어서 와. 이놈들 조몰락거리는 손맛이 제법 괜찮아. 하하!”
 부사영은 활짝 웃어주었다.
 계야부의 얼굴은 초췌했다. 하지만 입가에는 한 가닥 웃음이 걸려 있다.
 침입로와 탈출로를 찾아냈다는 뜻이다.
 “얼마나 위험해?”
 “일어서. 지금부터 몸을 다듬어야 해.”
 “몸? 웬만하면 관두자. 새삼스럽게 무슨 몸을 다듬어.”
 “시간 싸움이야. 들어갔다 나오는 데까지 한 시진. 한 시진을 넘기면 빠져나올 방도가 없어.”
 “뭐야? 이봐. 산이 다섯 개야! 이쪽저쪽으로 최소한 두 개는 타야 돼! 그걸 무슨 수로 한 시진 만에 끝내!”
 “그러니까 몸을 만들어야지.”
 “하!”
 부사영은 기가 막혀 한숨을 토해냈다.
 말똥구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산을 잘 탄다.
 산을 뛰어올라가고, 뛰어내려오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 건 기본이고,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킬 수 있느냐로 내기를 걸기도 한다. 개인 대 개인이, 조 대 조가 내기 대상이다.
 계야부와 부사영은 한 조다.
 조 대 조의 내기나 다름없다.
 “이 정도의 산이라면 일각(一刻) 안에 올라갔다 내려와야 해.”
 “불가능하다는 것, 알지?”
 “일단 해보고. 뛰엇!”
 두 사람은 힘껏 뛰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죽어라고 뛰었는데도 일각이란 시간 동안 겨우 산 정상을 밟는 데 그치고 말았다.
 내려가는데 속도가 조금 빨라진다고 해도 거의 일각이라는 시간 차가 벌어진다.
 “뛰어 내려가?”
 “아니.”
 “왜? 몸을 만들자며?”
 “불가능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돼.”
 “그렇지. 그러니까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
 “그럼 어쩌자고!”
 부사영이 소리를 빽 질렀다.
 뛰어 올라오는 동안 숨이 턱에까지 찼지만 그래도 고함은 잘만 터져 나왔다.
 “시간이 넉넉하다고 했는데, 정확이 언제인지 알려주시오.”
 “그건 나도 모르지. 위에서 움직인다 할 때 움직이는 거니까.”
 “그럼 가장 빨리 익힐 수 있는 경공술을 구해주시오.”
 계야부가 집 앞에 있는 큰 산을 가리켰다.
 “저기까지 올라가는 데 반각이 걸렸어.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데, 방법이 없소. 최상의 경공술을 구해주시오.”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다.
 계야부나 부사영도 웬만한 경공술은 구사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웬만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뛰어난 절기다. 어느 누가 절기를 내줄 것인가.
 하지만 위지패문은 너무도 간단히 승낙했다.
 “그러잖아도 그것 때문에 왔네. 산을 뛰어 올라갔다는 소리를 듣고 이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그가 비급 한 권을 내밀었다.
 “사전투광신보(射箭透光身步)?”
 “한마디로 빛처럼 빠르다는 뜻이지.”
 “상당한 절학 같은데······ 들어본 기억이 없군요.”
 “들어보지 않았으면 어떠나. 빠르기만 하면 됐지.”
 계야부는 비급을 들췄다.
 부사영도 호기심이 치밀어 견딜 수 없는지 바싹 다가와 어깨 너머로 비급을 살폈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는 건가?”
 너무 놀라면 탄성조차 새어나오지 않는다. 반신반의(半信半疑),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그들이 그렇다.
 비급 내용이 너무 뛰어나다. 이만한 절학이면 당장 무림에 나서도 무시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위지패문이 빙긋이 웃었다.
 계야부가 비급을 덮으며 말했다
 “솔직히 의문이오. 십일주, 당신의 무공은 이 비급만 못해 보이는데 그렇지 않소?”
 위지패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봤네. 그 비급은 세간에 흘러나가서는 안 되는 절정비기네. 하하하! 내 말했지 않나. 윗선에서 자네들을 잘 봤다고. 일이 년 정도만 고생하면 내 상관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네.”
 “이걸 수련할 생각은 없소?”
 “그건 나에게 주어진 무공이 아니네. 욕심은 종종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부르지. 분수에 넘치는 선물은 할시 경계하는 게 좋아.”
 위지패문이 미련 없이 일어섰다.
 “필사(筆寫)라도 해놓았을 거야. 안 그래?”
 부사영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니. 그럴 만한 위인이 아냐.”
 계야부의 눈빛이 더욱 침울해졌다.
 이들은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이다.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무인이라면 누구나 오매불망(寤寐不忘)하는 무공 비급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다.
 비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사람을 이 정도로 압박할 정도라면 상당한 인물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무덤 속으로 끌려온 건 아닌지 모르겠어.”
 계야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3
 
 
 휘이잉!
 매서운 바람이 분다.
 살을 에인다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다. 손에 물을 묻히고 잠시만 서 있으면 당장 동상에 걸리고 만다. 사람조차도 동태로 만들어버릴 추위다.
 “춥다, 춥다 이렇게 추운 날씨는 처음이다. 어떻게 해가 갈수록 추워지냐.”
 “겨울이니까.”
 “내 말을 말아야지. 누가 겨울인 거 몰라! 야! 밤 있지. 그거 가져와. 화톳불에 구워먹자.”
 “알았어요!”
 꼬마들이 우르르 뛰어나갔다.
 이런 날에 정탐을 나가면 반쯤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뼛골까지 저려 울리는 한기와 맞서는 게 팔부군과 검을 맞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추위는 이쪽만 몰아치는 게 아니다. 저쪽도 사정없이 휘감는다. 경계를 서는 보초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고개조차 들지 않고, 군사들은 군막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추워서 미칠 것 같지만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말똥구리들 중 몇몇은 국경을 넘어 팔부군 군막들을 헤집고 다닐 게다.
 “언제까지 이렇게 묵혀 놀까?”
 “······”
 “근데 말이야. 네 말대로 한 시진 만에 들어갔다가 나온다고 쳐도, 난 어떻게 경계망을 피할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아. 경종이 울리고 아래에 있는 자들이 목을 점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 앗! 하면 벌써 쫙 깔렸을 텐데.”
 시동들이 밤을 가져왔다.
 계야부는 꼬마들을 보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이들이 단순한 시동이 아니라 감시자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 보고 된다. 허기에 아이들 앞에서는 극히 입조심을 해야 한다.
 그날, 산에 가는 날만 해도 그렇다.
 단순히 몸을 만들자며 일어섰다. 헌데 신법 비급을 가져다준다. 빨리 산을 타야 한다는 언급은 있었다. 들어갔다 나오는 걸 한 시진 안에 끝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 말들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경이로울 만큼 빠른 신법, 사전투광신보.
 절정 신법이 틀림없다. 수련을 하는 동안에도 너무 빨라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왜 그들은 그만한 신법을 그냥 내줬을까?
 세상에 ‘그냥’이라는 말은 없다. 모든 일,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들도 나름대로 그곳 지형을 분석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음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필요하다 싶을 때 재빨리 내줄 수 있었다.
 ‘이건 결코 허드렛일이 아냐. 무언가 중대한······ 몇 번에 걸쳐서 모의연습을 해봤을 테고······ 사전투광신보 같은 절정비기가 필요한 일······ 이토록 중대한 일을 왜 나 같은 군인에게 시키는 걸까? 강제로 전역까지 시켜가면서.’
 타탁! 타타탁!
 화톳불에서 밤이 익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위지패문이 찾아왔다.
 “그만 떠나야 할 시간이 됐군. 짐 꾸리게.”
 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병기는 항시 휴대하고 있으니 몸만 일어서면 된다.
 “애들이 어디 갔어? 그동안 정들었는데.”
 부사영이 시동과 시녀들을 찾았다.
 “그 아이들은 벌써 기별을 받고 철수했네.”
 ‘철······ 수?’
 귀에 익은 말인데 왠지 낯설다.
 이들은 시동을 붙여주는 일까지도 조직적이다.
 “좋은 날 다 놔두고 하필 이 엄동설한에······”
 부사영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잉!
 모진 바람이 땅을 휩쓸고 지나갔다.
 밖에는 창문조차 없는 마차가 건장한 말 네 필에 묶여 있었다.
 위지패문이 말했다.
 “타게.”
 두두두두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말발굽 소리에 묻혔다.
 간혹 세찬 바람이 마차를 할퀴고 갔다.
 “어디로 가는 거요?”
 “최종 목적지는 나도 모르네. 난 자네들을 인도하라는 명을 받았네. 그것뿐이야.”
 “이런 생활에 만족합니까?”
 “하하하!”
 “꼭두각시. 꼭 줄에 메여 있는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라고 말해도 괜찮네. 난 오직 한 분만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네. 그리고 아주 만족하네.”
 위지패문이 웃었다.
 계야부는 그의 얼굴에서 가식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는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마차는 내리 사흘을 달렸다.
 한 시진마다 역참에 들러 말과 마부를 바꾸는 것 외에는 일절 한눈을 팔지 않았다. 잠도 마차에서 잤고, 식사도 마차에서 했다. 용변은 역참에서 말을 바꾸는 동안 끝내야 했다.
 ‘이 정도 비밀이면······’
 위지패문이 수하가 왜 그토록 오목을 죽이려 했는지 이해된다.
 이들은 흔적이 남는 걸 지극히 싫어한다. 사소한 일을 했어도 반드시 뒷정리를 하는 게 습관처럼 붙어 있다.
 ‘우리가 일회용이라면······ 이 일이 끝나는 즉시 제거하려고 들겠군. 만일을 대비해둬야겠어.’
 그는 고민거리가 많아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마차가 멈췄다.
 히히힝! 히잉······!
 한 시진을 쉬임 없이 달려온 말들이 거친 숨을 토해낸다.
 위지패문이 문틈으로 밖을 살핀 후, 말했다.
 “다 왔네. 내리지.”
 처음 보는 낯선 사람, 그리고 마차 한 대와 말 네 필, 어자석에 앉아 있는 마부.
 계야부와 부사영은 마차에서 내려 다른 마차를 향해 걸었다.
 마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것쯤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또 얼마나 가야 하나. 몇 날이나 마차 안에서 좀이 쑤셔 몸을 비틀어대야 하나.
 위지패문은 두 사람이 다른 마차에 올라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잘 갔다 오라는 인사 한 마디 던지지 않았다.
 “수고하시오.”
 “수고하셨소.”
 위지패문과 낯선 사람은 서로에게 짤막한 인사 한 마디만 나눴다.
 그것으로 끝이다. 낯선 사람이 마차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출발하자.”
 마차는 그리 오래 달리지 않았다.
 고작해야 반각 정도 달렸을까? 마차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나아갔고, 또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했다.
 끼이익! 탁! 끼이익! 탁!
 마차 밖에서 들리는 소리다.
 커다란 장원 안으로 들어섰으며, 마차를 탄 채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되었다.
 덜컹!
 마차가 멈췄다.
 “내리지.”
 낯선 사내가 토해낸 두 번째 음성이었다.
 “여긴!”
 계야부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왜? 아는 데야?”
 부사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계야부는 손을 들어 먼 산을 가리켰다.
 “저게 왜? 아는 곳이야?”
 “눈 좀 크게 뜨고 쳐다봐. 쯧! 그렇게 둔해서야.”
 계야부가 한 마디 톡 쏜 후, 낯선 사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여긴!”
 부사영이 뒤늦게야 경탄을 뿜어냈다. 비로소 여기가 어딘지 깨달은 것이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오?”
 “모르겠소.”
 “춘절(春節: 설날)이요.”
 “벌써 그렇게 됐나? 허! 벌써 정월이라네. 세월 참 빠르다.”
 부사영이 농 삼아 말했다.
 짝짝!
 낯선 사내가 박수를 치자 하녀들이 음식을 들고 왔다.
 “교자(餃子: 물만두)요. 춘절은 내일이지만 내일은 먹을 시간이 없을 것이라, 미리 준비했소.”
 계야부와 부사영 앞에 물만두가 놓여졌다.
 “면피는 밀가루고, 속은 양고기와 고추, 그리고 약재를 넣었소이다. 몸에 좋을 것이니 많이 드시오.”
 계야부와 부사영은 저금을 들어 물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내일 춘절에 밖에서 봤던 산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쯤은 짐작한다.
 지도로 한 번 봤고, 지형도로 두 번 봤고, 온갖 계획을 수립하고 허문 끝에 현장에 왔다.
 “이거 말똥구리에서 많이 먹었는데.”
 부사영이 감회가 새로운지 교자를 씹으며 말했다.
 “동상에 좋지.”
 계야부도 한 마디 했다.
 교자 속에 넣은 속재료들은 뱃속에 화기(火氣)를 일으켜 몸을 덥게 해준다. 양고기가 그렇고, 고추가 그러며, 약재들이 그렇다.
 “출발시간은 오늘 저녁 해시정(亥時正)이오.”
 그가 짧게 말하며 일어섰다.
 “잠깐! 여기가 어디요?”
 “하하하! 그만큼 안선에 있었으면 이제 알 만도 한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외에는 알려고 하지 마라. 모르겠소?”
 “그건 좋은데, 여기가 어딘지도 비밀이오?”
 “비밀이오. 자세한 사항은 이따 해시초(亥時初)에 다른 사람이 와서 설명해 줄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텅 빈 방에 두 사람만 휑뎅그렁하게 버려졌다.
 “뭐하지?”
 “자둬.”
 “잠이 와?”
 “앞으로는 상당히 시달릴 거야. 잠 잘 틈도 없을걸? 지금 자두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야.”
 “겁주지 마라. 괜히 겁난다.”
 두 사람은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몸을 눕혔다.
 계야부는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그 위에 누웠으며, 부사영은 아예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들은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말똥구리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체력을 최대한 비축하는 버릇이 있다. 언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하는 후회는 바로 생명과 직결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한다.
 정확히 해시초,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계야부와 부사영은 일어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정말 잘 자더군.”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앉게.”
 나타난 사람은 일흔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이다.
 그는 손에 둘둘 말은 두루마리를 두 개 들고 있었다.
 “십삼주(十三紬)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자네들은 곧바로 출발해야 하네. 목적지는 알고 있겠지? 해시 정에 가서 자시 초에 돌아온다. 이리 알아도 되는가?”
 “맞소이다.”
 계야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신들을 이곳까지 데려온 사람이 십삼주였다. 위지패문이 십일주이니 둘이 비슷한 칭호로 불린다.
 한 가지 더 확인한 사랑이 있다.
 십일주와 십삼주는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정원을 관리한다.
 어쩌면 무림에서 말하는 분타의 개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십일주와 십삼주는 분타주다.
 이걸 달리 해석하면 지난 사흘 동안 성(省)을 벗어나 다른 성으로 들어섰다는 말도 된다.
 자신들은 산서(山西)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섬서(陝西)이거나 하남(河南)이다.
 노인이 두루마리 하나를 끌러 펼쳤다.
 “잘 보게. 도면이네.”
 노인이 말하지 않아도 도면을 그렸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자네들 목적지네.”
 노인이 도면 중 한 곳을 짚었다.
 “이걸 미리 보여줄 수는 없었소이까? 그랬다면 들어가고 나오는 길을 연구라도······”
 “그럴 수 없었네. 물건이 여기 있다는 건 방금 전에야 알았으니까.”
 “물건요?”
 “자, 자네들이 가져올 물건이네.”
 노인이 또 하나의 두루마리를 펼쳤다.
 “오!”
 “음!”
 부사영은 감탄을 터트렸고, 계야부는 신음을 토해냈다.
 두루마리에는 여인이 그려져 있었다.
 화용월태(花容月態), 폐월수화(閉月羞花), 명모호치(明眸皓齒)······
 미인을 가리키는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많다. 그러나 그림에 있는 여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많은 고사성어들 중에 그녀를 지칭하는 말은 없다.
 “이 여자를······ 이 여자가 누굽니까?”
 “안선의 규칙을 잊었나? 허허!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여자가 우리 수중에 넘어오면 원의 잔당들 중 절반은 색출할 수 있다는 거네. 자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겠나?”
 ‘거짓말!’
 계야부는 노인의 말이 진심으로 와닿지 않았다.
 여인은 고관대작(高官大爵)의 딸쯤으로 여겨진다. 나라와 관련되었다면 삼공(三公)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다. 첩(妾)도 배제하지 못한다. 진정으로 총해하는 첩이라면 아방궁인들 못 지어줄까.
 상계(商界) 쪽을 살피면 말할 것도 없이 거상(巨商)과 연결된다.
 좌우지간 느낌이 상당히 안 좋다.
 “다 봤는가?”
 “다 봤소.”
 노인은 서슴없이 두루마리에 불을 당겼다.
 “이번 일만 마치면 자네들에게 주(紬)를 줄 걸세. 세간에 있겠다면 재물도 넉넉히 줄 것이네. 군으로 돌아가겠다면 무략장군(武略將軍)이나 무절장군(武節將軍)은 보장함세.”
 노인은 오품(五品) 벼슬을 주머니 속에 든 과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우리에게 그만한 힘이 있다는 건 알지 않나?”
 “열매가 너무 달콤하군요.”
 “안선은 그런 곳이네. 그럼 잘 다녀오게. 배웅은 하지 않겠네. 늙으면 초저녁 잠이 많아서.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지. 내일 아침, 조반이나 같이 함세.”
 노인이 일어나 나갔다.
 “어때?”
 부사영이 물었다.
 임무가 확실히 결정되었다. 자신들이 뚫고 들어가야 할 지형도 선정되었다.
 “안 좋아.”
 계야부의 표정이 짙은 그늘에 깔려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이제 곧 출발해야 하는데······”
 “목표가 사람이었으면 알려줬어야지! 사람 하나를 들춰 메고 나오는 것과 빈손으로 움직이는 게 어디 똑같나.”
 “으흠! 그래도 우리가 수련한 신법은 워낙 뛰어나니······”
 “바보! 뛰어나면 뭐해! 우린 고작 한 달밖에 수련하지 않았어! 저기까지 간신히 다녀올 정도밖에 안된단 말이야. 사람 하나를 업고? 후후! 이런 변수는 적이 줘도 곤란한데, 이쪽에서 안겨주는군.”
 계야부는 고심을 거듭했다.
 “떠나실 시간이 됐습니다.”
 시동이 와서 말했다.
 그래도 계야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에서 뛰어다니느라 정신없었다. 지도와 지형도를 비교하고, 여기서 본 도면을 짜맞추고, 자신들의 능력을 고려하고, 적의 수비, 배치, 경계 상황, 유사시 목 점거······
 “저, 떠나실 시간이 지났는데요.”
 “조용히 해! 생각하는 게 안 보여!”
 부사영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시동은 일단 물러갔다. 허나 곧 다시 왔다.
 “시간을 맞춰야 한답니다. 목표가 거기 있는 건 자시초까지뿐이래요. 그 시간이 넘어가면 어디로 갈지 모른답니다.”
 결국 부사영이 계야부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가야 할 것 같은데.”
 계야부도 시동의 말을 들었다.
 상황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부사영, 우린 크게 곤란할 거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가라면 가야겠지. 후후후!”
 
 
 제4장 납치는 했는데
 
 
 1
 
 
 일은 처음부터 틀어졌다.
 지도도 맞고 지형도도 맞는데, 수비하는 자들의 위치가 많이 달랐다. 계야부가 점찍은 곳은 어김없이 경계를 서는 자가 있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보다 다섯 배는 많은 무인들이 산 곳곳에 숨어서 노려본다.
 계야부는 손을 들어 천천히 밑으로 내렸다.
 땅에 배가 닿을 만큼 바짝 엎드리라는 수신호다.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네가 결정해.”
 “선파행(蟮爬行)을 쓰면 잠입은 할 수 있지만 자시초까지는 도저히 안 돼.”
 “그럼?”
 “하나가 죽어야지.”
 “빌어먹을!”
 “걱정 마라. 내가 죽을 테니까.”
 “그럴래? 그럼 나야 좋지.”
 계야부가 손을 들어 어둠 속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기억나?”
 “망루.”
 “그래. 일단 목표를 확보하면 저곳부터 쳐. 위치로 보아서 두 명 내지 많아야 세 명 정도밖에 배치하지 못하는 곳이야. 단칼에 무너트려야 돼.”
 “그런 다음?”
 “그 뒤로 넘어가. 산을 내려가기 전에 수색조 두 개를 만날 거야. 하지만 수색 흐름상, 네가 만날 때쯤에는 각 조의 간격이 상당히 벌어져 있을 거야. 무조건 치고 달려.”
 “너 정말 죽을 작정이냐?”
 “후후후! 잘 봐라. 죽게 생겼나.”
 “단명할 관상은 아닌데.”
 “그럼 행운을 빈다.”
 “그 소리 오랜만에 듣네. 그래, 네게도 행운이.”
 계야부는 부사영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에엑!
 어둠 속에서 솟구친 그의 신형은 한 마리 비조였다.
 쒜에엑! 쉐에엑!
 유유히 날아가는 참새를 노리고 수십 마리의 매 떼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까각! 까가각!
 검과 검이 얽혔다. 검과 도가 서로를 밀쳐냈다.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사전투광신보는 양손에 든 검과 도마저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려 주었다. 그가 전개한 일수는 어떤 초식보다도 위협적이었다.
 매 떼가 잠시 주춤거린다 싶더니 재차 공격을 가해왔다.
 쒜엑! 쒜에에에엑!
 계야부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검이 얼굴을 스쳐갔다. 어깨, 허리, 다리······ 건드리지 않는 곳이 없다.
 ‘이자들!’
 계야부는 문득 이런 공격을 어디선가 받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생각은 금방 났다.
 그의 싸움은 거의 대부분 전장에서 치러졌다. 전장 이외의 곳에서 벌인 싸움이라고는 위지패문이 자신을 증명하라며 산으로 내몬 것이 전부다.
 검은 옷에, 무광검을 들고, 어둠 속에서 쓸어온 공격.
 그자들과 공격과 이들의 공격이 흡사하다.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판박이처럼 똑같다.
 그는 재빨리 검을 쳐다봤다.
 맞다. 날은 날카롭게 갈려 있지만 빛에 반사되지 않도록 광택을 죽였다.
 정말 무서운 자는 누군가. 안선인가, 이들인가.
 그의 머릿속은 번개처럼 돌아갔다.
 이들은 곧 사면에서 공격해 올 것이다. 전후좌우를 꽉 틀어막고 번갈아 가며 차륜전(車輪戰)을 펼친다. 흑의인들이 그랬으니 이들도 그럴 것이다.
 지도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곳이라면!’
 문득 한 장소가 떠올랐다. 싸우기 적당한 곳은 아니지만 최소한 등은 막아 줄 수 있는 곳이다.
 파앗!
 그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몸을 빼냈다.
 부사영은 선파행을 써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원래 선파행이라는 말뜻 자체가 지렁이가 기어간다는 뜻이다.
 팔을 쭉 뻗은 후, 몸을 끌어당긴다. 돌부리나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도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느리게 움직인다.
 전진하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 허나 안전은 최대한 보장된다.
 오십 장을 빠져나오는 데 이틀이 걸린 적도 있다.
 혼자서는 지겨워서라도 못해냈을 것이다. 다행이 옆에 계야부가 있었다. 너무 지겨워서 포기할 요량이면 그가 눈짓으로 강하게 말려왔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말했었다.
 선파행이 속도만 빠르면 단연 으뜸인데.
 “칠조(七組)에 침입자. 칠조에 침입자.”
 “칠조에 침입자. 칠조에 침입자.”
 조그만 소리들이 끊임없이 전달되었다.
 그 순간, 부사영은 매복자들의 위치를 전부 파악해냈다.
 계야부가 매복자들 중 절반 이상을 끌어갔다.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지만 처음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다시 또 침입자가 생기면 이들 중 절반은 매복해 있고, 나머지 절반만 움직일 수 있다.
 계야부가 상대하는 적들보다 세네 배 정도는 작은 인원이다.
 그는 펄떡 일어나 쏜살같이 치달렸다.
 “십일조 침입자!”
 누군가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도검은 음성보다 빨랐다. 말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검광부터 들이쳤다.
 그 순간, 부사영은 절정비기 사전투광신보를 펼쳤다.
 처음부터 사전투광신보를 펼치면 강적이 침입한 줄 알고 전부 다 나선다.
 그렇게 되면 계야부가 적을 유인한 보람은 없어진다. 오히려 적을 반으로 갈라서 각기 상대하고 있으니 지금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은 단칼에 벨 수 있는 놈 정도가 좋다.
 ‘저론 놈이 침입을 해?’하고 비웃으면 더욱 좋다.
 이들은 그랬다.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검을 쳐온 자는 겨우 다섯 명뿐이다. 나머지는 아직도 은신한 곳에서 뛰쳐나오지 않는다. 한 명, 두 명 침입자가 늘어나니 또 있나 싶어서 다른 곳을 살핀다. 지금이 기회다!
 파아앙!
 그는 잔뜩 압축되었다가 터졌을 때처럼 섬광처럼 뛰어나갔다.
 계야부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무릎 밑까지 찬다. 싸움하는 데는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도 물속으로 들어갔다.
 꾸르르릉!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렀다.
 그는 폭포를 등에 지고 뒤돌아섰다.
 “와라!”
 매복자들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들이 보기에 계야부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자기 발로 걸어서 함정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기어들어갔으니 이보다 한심한 놈이 어디 있겠는가.
 뒤는 폭포다. 도주할 길이 막혔다. 많은 사람들이 사방을 에워쌌다. 검을 부딪치기 전에는 뚫고 나갈 방도가 없다.
 가장 한심한 것은 자신의 장점을 철저히 죽였다는 것이다.
 그는 빠름이 장기였다. 검이나 도보다 두 발의 빠름이 상당히 신경쓰였다. 헌데 보라! 지금 그의 두 발은 어디 있는가. 물속에 잠겨 있지 않은가.
 파파팟!
 그들이 일제히 검을 날렸다.
 이는 계야부가 바란 것이다.
 매복자들은 땅과 물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땅에서 물속으로 두 걸음만 내딛으면 그와 검을 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까짓 두 걸음쯤이야.
 천만에!
 첫 발을 물속에 들여놓는 순간,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균형 감각이다. 무인의 경우에는 균형 감각이 탁월해서 웬만한 흔들림쯤은 의식조차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육신은 그렇지 않다.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쒜엑! 푹! 쒜에엑! 파앗!
 검과 도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이들은 진흙탕 싸움을 해본 적이 거의 없겠지만 말똥구리들은 싸웠다하면 진흙탕 싸움이다.
 두 명이 순식간에 피를 쏟아내며 꼬꾸라졌다.
 쓰러지는 자들 중 한 명을 낚아챘다. 그리고 재빨리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푸푸푸푹!
 대여섯 개의 검이 그의 몸에 꽂혔다.
 이미 절명해버린 시신은 비명을 토하지 않았지만, 그를 찌른 자들은 산 사람을 찌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파팟!
 방패막이를 앞으로 획 밀어버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도약하여 방패막이의 등을 밟은 후, 다시 한 번 뛰었다.
 쒜에엑!
 검이 흐른다.
 예전처럼 날카롭지는 않다. 반사적으로 펼쳐낸 검이기 때문이다.
 계야부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나 검을 피한 후, 다시 원래 위치호 돌아왔다.
 탁!
 공격하던 자와 몸이 부딪쳤다.
 그 순간, 계야부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오른손에 들린 도는 목에 일자를 그려 놨다.
 “후웁!”
 그는 크게 심호흡 한 후,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이번에는 그를 고수로 탈바꿈시켜 준 사전투광신보를 밟고 있었다.
 쒜엑! 쒜에엑!
 다섯 척 길이의 장검이 장대처럼 휘둘러졌다.
 길이 대 길이에서 단연 앞선다. 이들보다 훨씬 빠른 사전투광신보를 지녔다.
 그의 앞길을 막을 자는 없어보였다.
 “이럴 줄!”
 쒜에엑!
 “알았으면!”
 쒜에에엑!
 그가 일 검을 뻗을 때마다 매복자는 한 명씩 쓰러져갔다.
 “놈과 같이 움직이는 건데!”
 쒜에엑! 까깡!
 병기를 들어 막아도 소용없다.
 그의 검은 단단하기로 유명한 견빙철(堅氷鐵)로 만들어졌다. 얼음 속에 묻혀서 차디찬 한기를 받아들인 철에 순간적으로 용암의 화기(火氣)를 씌우면 투명하리만치 맑은 철이 생산된다.
 옛부터 견빙철로 만든 병기는 천하무적이었다.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방패를 만들면 그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다.
 견빙철로 만든 창과 방패가 부딪치면 어떻게 될까? 모순(矛盾)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으며,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뚫리던가, 뚫지 못하던가.
 그 외의 철은 모조리 잘려나간다. 병기만 잘리는 것이 아니다. 차디찬 얼음 검이 살이며, 뼈며 닥치는 대로 잘라낸다.
 “너무 약해!”
 그는 거센 고함을 터트리며 견빙검을 쳐냈다. 그때!
 슈우웃!
 무엇인가가 옆에서 날아왔다.
 무엇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다. 검이 되었든, 돌이 되었든, 암기를 사용했든 일단은 피해야 한다.
 그는 쳐냈던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뇌려타곤(懶驢惰坤)을 써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퍼억!
 날아오던 것이 허공에서 터졌다. 그리고 하얀 분가루가 분분히 휘날렸다.
 ‘빌어먹을!’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팔부군 잡종들이 중원에서 나쁜 것만 가져갔는지 종종 이런 것을 사용한다.
 용력(勇力)이 너무 강해서 상대하기 곤란한 자, 발이 빨라서 좀처럼 잡을 수 없는 자, 반드시 생포해야 할 자······ 그 외에도 인간의 신경을 무력화시켜 꼼짝 못하게 하는 좌곤산(坐困散)을 쓸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는 재빨리 팔목을 힘껏 물어뜯었다.
 살이 떨어져 나오며 피가 콸콸 솟구쳤다.
 다소 무식한 방법이지만 말똥구리들은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긴다.
 육체에 강한 자극의 가해서 잠시라도 약효를 늦추는 것이다. 그래봤자 최대 일각 정도밖에 늦추지 못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백 번 낫다.
 ‘나는 틀렸어.’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다. 냉철하게 제 삼자의 눈으로 보았다.
 개죽음을 당할 것이냐, 사로잡힐 것이냐, 탈출할 것이냐.
 모든 건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그 중에 임무완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좌곤산의 약효가 너무 강하다. 지금 당장 가장 빠른 길로 탈출하지 않으면 죽거나 사로잡힐 것이다.
 ‘계야부! 미안!’
 쒜에에엑!
 그는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견빙검마저 거뒀다. 집중시킬 수 있는 모든 힘은 오로지 사전투광신보에만 실었다.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 알싸한 냄새가 섞여 나온다.
 ‘좌곤산?’
 계야부는 돌아가는 사태를 재빨리 파악해냈다.
 자신은 무인들이 쳐놓은 포위망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다. 부사영은 좌곤산에 당했다. 아니, 그따위에 당할 사람이 아니다. 필히 탈출했을 것이다.
 임무는 틀렸다.
 다른 사람 같으면 여기에서 모든 걸 포기했으리라.
 뛰어난 신법을 펼쳐서 탈출을 시도하거나, 죽기를 각오하고 맞싸웠을 것이다.
 그는 후자를 선택하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부사영이 임무를 완수할 만한 시간은 벌어줘야 한다. 죽을힘을 다해 최대한 버티는 것, 그것이 그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이제는 방향이 바뀌었다.
 부사영이 물러났다면 자신이 임무를 끝내야 한다.
 그는 신형을 틀었다.
 원래는 절벽으로 갈 생각이었다. 절벽을 등지고 앞에서 오는 적만 맞아 싸우면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적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한다. 앗차! 하는 순간이면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힘껏 공격했는데 몸이라도 살짝 틀게 되면 꼼짝없이 떨어진다.
 공격하는 자는 늘 안전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는 그들의 힘을 절반 정도 빼앗는 효과가 있다.
 물론 자신 역시 살 생각을 버려야 한다. 결국에는 접근전을 피하고 원거리 공격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긴 창을 쓰거나 화살을 날리거나······
 이제는 죽을 수 없다.
 타악! 타타탁! 타악!
 일순, 공격이 작은 단검에 집중적으로 퍼부어졌다.
 계야부는 단검을 놓아버렸다. 손아귀는 진작 찢어졌고, 단검 역시 이가 많이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들고 있었는데, 이번 공격으로 인해 한가운데가 뚝 부러져 버렸다.
 쒸이익!
 계야부는 사전투광신보를 펼쳐서 회수되고 있는 검을 바짝 따라붙었다.
 그들은 일차 공격을 끝낸 후, 물러서다 말고 움찔했다.
 푹! 푸욱!
 자모도가 가슴을 찔렀다.
 그의 어깨를 왼손으로 짚고 힘껏 자모도를 빼내면서 빙글 몸을 돌려 옆에 있는 자의 목을 찔렀다. 이런 일련의 동작이 찰나에 이루어졌다.
 “크윽!”
 답답한 비명이 어둠을 울릴 때, 계야부는 쏜살같이 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쒜에엑! 쒜에엑!
 사방에서 메뚜기가 날아오른다.
 부사영이 탈출하자 모든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목표에 접근하기도 전에 발각이 되었고, 집중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망루!’
 계야부는 원망스런 시선으로 산꼭대기를 쳐다봤다.
 자신이 날뛰는 곳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망루에 환한 횃불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횃불이 방향지시를 내린다.
 순간, 계야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했다.
 지금은 대낮이 아니다. 어둠이 사위를 짓누르고 있다. 달빛, 별빛이 있지만 산속을 비칠 만큼 밝지 않다. 눈도 쌓여 있지 않다.
 저들은 어떻게 자신의 움직임을 읽는 것일까? 지척도 아니고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계야부는 지체하지 않고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속옷까지도 남김없이 벗었다.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신발까지 벗어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모도도 버렸다.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 세상에서 받은 것은 모두 버렸다.
 그런 후, 풀숲에 몸을 숨겼다.
 도박이다. 이번에도 발각되면 꼼짝없이 죽는다. 저항조차 변변히 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는 망루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횃불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격도 이어지지 않았다.
 
 
 2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각되었단 말인가. 그토록 철저히 준비했건만······ 무엇이 잘못되었던고?”
 “무인의 수입니다.”
 “수가? 수가 왜?”
 “평소보다 다섯 배는 많았습니다.”
 “허허! 치명적인 실수였군.”
 노인은 머리를 흔들며 차를 마셨다.
 착잡함, 심란함, 괴로움, 어려움······ 모든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부사영은?”
 “도주 중입니다.”
 십삼주,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목도한 사실들을 보고했다.
 “계야부는?”
 “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입니다만 생포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후후! 이곳을 폐쇄해야겠군.”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존야(尊爺)께서는 밤길을 살펴서 빠져나가시지요.”
 “귀찮은 일을 떠맡겼군. 돈은 많이 쓰지 않았지?”
 “저야 거의 쓴 게 없습니다만, 십일주 쪽에서는 휘청거릴 만큼 퍼부은 것 같습니다.”
 “쯧! 나라도 그랬을 거야. 놈을 보는 순간, ‘됐다!’는 느낌이 들더군. 어디서 이런 놈을 용케도 구했다 싶었지. 쯧!”
 그때였다. 하인이 황급히 들어서며 고했다.
 “복면을 쓴 무인들이 장원을 포위했습니다.”
 “응? 뒤를 밟힌 게야?”
 노인이 십삼주를 쳐다봤다.
 “그럴 리 없습니다.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노인은 들고 있던 차를 마저 마셨다. 천천히······ 차 맛을 음미하며 달콤하게 들이켰다.
 “차 잘 먹고, 잘 쉬었다 가네.”
 “존체, 귀히 하시기를.”
 십삼주는 깊이 부복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혹시 미행이 붙었을까봐 인적이 끊긴 소로로 빙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바위 뒤에 숨어서 쫓아오는 자가 있는지 확인까지 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미행을 당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어쨌든 뒤를 밟혔다. 그러니 그들이 역으로 공격해 온 것이다.
 우당탕!
 회랑(回廊)에서 누군가가 엎어졌다.
 바삐 달려오느라고 넘어졌을 것이다. 웃기지 않은가. 급히 달려오다가 꽈당하고 넘어지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배꼽이 빠진다. 헌데 지금은 짜증이 난다.
 “뭬하는 게야!”
 “죄, 죄송합니다. 다 모였습니다.”
 하인이 이제 것 열 살이나 됨직한 여아를 안고 들어섰다.
 그는 대청에 모인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거의 이백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있다. 자신을 위해 일해 왔으며, 자신의 명령을 목숨처럼 떠받들던 사람들이다.
 “어둡구나. 불을 높여라.”
 유등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심지를 끌어올렸다.
 대청이 환해졌다. 모두의 얼굴을 똑똑히 볼 정도가 되었다.
 “모두 수고 많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발을 굴렀다.
 쿵!
 바닥이 흔들렸다. 지붕도 들썩거렸다. 천장에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
 꽈앙!
 대청 문짝이 거센 발길질에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검을 든 복면 무인들이 우르르 밀어닥쳤다.
 “마침 모두 모였군. 잘 들어라.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는 놈은 가차 없이 벤다. 목숨이 아깝거든······”
 복면인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크윽! 아아악!”
 쪼그만 어린아이가 두 눈으로 피를 펑펑 쏟아냈다. 곧이어 입으로도 피를 토했고, 귀에서도 붉은 핏줄기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런 현상은 급속도로 전달되었다.
 “크윽! 자, 장주! 왜!”
 “이, 이 미친 놈! 왜······?”
 사람들이 하나, 둘 피를 토하면서 꼬꾸라졌다.
 “도, 독! 물러섯!”
 거세게 들이닥쳤던 복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담담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안선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죽은 시신조차도 남이 거둬서는 안 된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파아아······!
 역한 냄새가 훅! 코를 찌른다. 혀가 타는 듯이 뜨겁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불길이 삼켜진다.
 “크,으윽!”
 그는 두 손으로 목을 잡고 신음을 토하다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독이 만연해 있습니다. 종(種)을 알 수 없는 독이라 진입불가(進入不可)입니다.”
 “지독한 놈들!”
 “어떻게 할까요?”
 “장원을 불살라라. 우리가 불태웠다는 걸 모르게 은밀히 방화해라. 남김없이 태워야 할 거야.”
 “걱정 마십시오.”
 다른 복면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장원이 활활 불타올랐다.
 하늘에서 불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장원 곳곳에서 거의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다.
 부사영은 간신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을 봤다.
 모든 게 끝났다.
 적의 압도적인 승리다.
 그들은 침입자를 막았다. 침입을 계획했던 자도 제거했다. 지옥에 떨어져서도 오늘만 생각하면 기분 좋으리라.
 ‘제길! 벌써 이곳까지······’
 설마 했는데 역시 생각대로 안 좋게 진행된다.
 이제 도움을 받기는 틀렸다. 말똥구리들처럼 자기 목숨은 자기가 돌보아야 할 때가 왔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냄새가 독한 곳이 좋다.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곳이거나 분뇨가 가득 찬 곳······ 지금 당장은 그런 곳에 숨어야 한다.
 그는 시궁창을 발견하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졌다.
 “여기서 사라졌습니다!”
 “그럴 리가! 놈은 죄곤산에 중독되었어. 혼자 몸으로는 멀리 가지 못해! 근처를 샅샅이 수색해!”
 부사영은 시궁창에 더욱 깊이 몸을 묻었다. 몸 전체는 물론이고 얼굴까지 푹 담겼다. 간신히 코만 내밀어 숨만 쉬었다.
 온몸이 자르르 저려온다.
 좌곤산이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약효는 빠르게 번졌다. 온몸이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아주 잠깐 동안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없습니다!”
 “그럴 리 없어! 샅샅이 뒤져!”
 부사영은 흐릿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어떻게 찾았지? 사전투광신보로 놈들을 따돌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함만 가득했다.
 그는 곧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로 깊이 빨려 들어갔다.
 계야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거였다. 옷, 신발, 무기······ 모두가 적의 첩자였다. 자신이 지녔던 모든 것이 적으로 돌변해서 자신의 위치를 보고했다.
 놈들은 골짜기 입구에 야광분(夜光粉)을 뿌려놓았다.
 들어서면서 반짝이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둘 이상의 물질이 합쳐졌을 때만 빛을 발산하는 물질일 것이다.
 계곡을 들어서면서 한 번, 그 다음 어디선가 또 한 번.
 그때부터 자신들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은 낱낱이 보고되었다.
 안선도 무섭지만 이놈들도 무섭다.
 계야부는 가늘고 긴 호흡을 했다.
 “후우우웁!”
 그런 후, 네 발 짐승처럼 두 발과 두 손을 단단히 땅에 붙였다.
 토노번인(土魯番人)들은 중원과 우호적인 관계다.
 토노번은 사주지로(絲綢之路: 실크로드)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문물도 발달한 편이다. 허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소나 양떼를 몰며 초원을 누빈다.
 그들 중 몇몇이 나라를 일으키고자 한 적이 있다.
 사람은 왕왕 강력한 무력을 지니면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늠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일부터 저지르곤 한다.
 토노번인들이 그랬다.
 그때 그는 파총(把總) 정칠품(正七品) 무관(武官)으로 종사품(從四品)인 선무장군(宣武將軍)인 정 장군 휘하에 있었다.
 중원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싸움을 많이 치렀다.
 정 장군의 아들을 죽이기 전까지 자신이 지옥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
 토노번인들이 사용하는 무공에 익숙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들은 늑대를 연구했다.
 강력한 힘, 깊고 깊게 이어지는 숨, 힘찬 도약력, 단숨에 양의 목을 분질러버리는 이빨.
 거기에서 신법이 창출되었다.
 후에 늑대의 신법은 고양이의 몸놀림까지 가미되어 절기라고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모양새를 갖췄다.
 모양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지만 실용성만은 지극히 뛰어나서 그도 배워둔 적이 있다. 실제로 팔부군과 부딪치면서 참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곤 했다.
 휘익!
 두 발이 힘껏 땅을 박찼다. 두 손은 하늘을 향해 쭉 뻗으며 공기를 끌어당겼다.
 그는 목표로 한 나뭇가지에 사뿐히 앉았다.
 늑대나 고양이나 걸음을 걸을 때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발밑이 솜처럼 푹신하기 때문이다.
 토노번인들을 손바닥, 발바닥을 이용하여 솜과 같은 효과를 냈다.
 그는 주위를 살펴본 후, 다시 몸을 날렸다.
 사뿐!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었는데 소리가 전혀 없다.
 나뭇잎도 흔들리지 않았다. 파공음도 없다. 공기의 흐름조차 감지되지 않는다.
 이런 신법은 사막을 달릴 때도 좋다.
 짐승처럼 네 발로 달리는 게 남세스럽지만 바람보다도 빨라서 쓰지 않을 수 없다.
 휘익! 사뿐! 휘이익! 사뿐······!
 그는 나무와 나무를 건너뛰며 산 정상을 향해 치달렸다.
 매복자들은 규율이 엄격하다. 훈련도 잘 되어 있다.
 지형도를 봤을 때, 산 정상은 겨우 두어 명이 서 있을 정도로 뾰족하다.
 이들은 그곳을 다듬어 망루를 세웠다.
 ‘다섯!’
 이것도 예상 밖이다.
 부사영에게 두어 명만 있을 거라고 했는데, 다섯이나 있다니.
 그가 여인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곳으로 달려왔다면 큰 곤욕을 치를 뻔했다.
 휘익!
 계야부는 힘껏 도약하여 망루 지붕 위로 올라섰다.
 휘이이이잉!
 그러잖아도 차가운 북풍이 더욱 거세게 몰아친다. 너무 바람이 거세다. 더군다나 산 정상이고, 알몸인 상태다. 그동안 얼어죽지 않은 것만도 천우신조다.
 그는 시간이 없었다. 인내도 바닥났다. 너무 추워서 참을 수 없다.
 두 손으로 망루 끝을 잡고 몸을 뒤집어 망루 안으로 밀어넣었다.
 “엇! 뭐야!”
 경계를 서던 무인은 갑자기 무엇이 눈앞에 불쑥 나타나자 깜짝 놀라 고함부터 질렀다.
 우둑!
 그의 머리가 힘 잃은 팽이처럼 빙글 돌아갔다.
 계야부는 즉시 그의 검을 낚아채며 전장에서 익힌 대로 싸움을 걸어갔다.
 옆에 있는 자, 검을 거꾸로 잡고 찌른다. 푸욱!
 검을 뽑을 시간이 없다. 자신에게는 시간이 있지만 적에게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검을 버리고 달려들어 앞에 있는 자의 두 다리를 힘껏 잡아챘다. 꽈당!
 쓰러진 자의 머리를 냅다 발길로 걷어찼다. 빠악!
 다른 자가 검을 찔러온다. 살짝 몸을 틀어 피하며 두 손으로 그자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앞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물론 한쪽 발은 그의 낭심을 가격했다. 퍼억!
 쓰러지는 그를 등으로 밀쳐냈다. 몸을 뒤로 꺾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쉬익!
 검이 코 끝을 스쳐간다.
 왼손으로 검 쥔 손을 잡고, 오른손은 불끈 주먹을 쥐어 상대의 턱에 꽂았다. 빠악!
 다섯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계야부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은 후, 쓰러진 자의 목을 일일이 베었다.
 죽지 않고 혼절만 한 자는 죽었다. 죽은 자는 또 한 번 죽었다.
 “으으······!”
 너무 추워 이빨이 달달 떨린다.
 그는 죽은 자의 옷을 벗겨 입었다. 한 벌로는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 다른 자의 옷까지 벗겨 입었다. 그리고 불 같지도 않은 불, 횃불을 몸 가까이 끌어다 놓고 불기를 쐤다.
 ‘인시정(寅時正)······’
 시간이 너무 흘렀다.
 여인은 자시초까지만 목표지점에 머문다고 했다. 지금쯤은 벌써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게다.
 자신 같아도 이동했다.
 침입자가 생겼다며 산 전체가 발칵 뒤집혔는데, 몸을 피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움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괜히 밤에 움직였다가 매복에라도 걸려들면 곤란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수비가 완벽한 이곳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선택은 여인의 자유다.
 ‘일단 가보고······’
 몸을 녹인 계야부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도면은 머릿속에 들어 있다.
 그는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지붕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물 위를 걷는 사람처럼 슬슬 미끄러져 나갔다.
 그는 여인이 있다던 곳을 향해 다가갔다.
 ‘여기.’
 주위를 살펴봤다.
 석상(石像)의 위치며, 기둥이며, 회랑이며······ 도면에서 보았던 전각의 모양을 그려냈다.
 그의 발밑에 여인이 있었다. 해시정부터 자시초에 이르는 시간까지는 있었다.
 지금은 모른다. 있는지 없는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만 한다.
 기와를 살며시 걷어냈다.
 넉 장을 걷어내자 몸을 들이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음······!’
 그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되삼켰다.
 여인이 침상에 누워 곤히 자고 있다. 밖은 엄동설한인데 얇은 잠옷만 걸친 채 깊이 잠들었다.
 그림으로 봤을 때도 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물로 보이 더욱 아름답다.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 아니라 솜씨 좋은 장인이 보옥으로 정밀하게 깎아놓은 것 같다.
 아니다. 인간은 이런 아름다움을 창조하지 못한다. 오직 신만이 지극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
 그는 여인에게 빨려 들어갔지만 이내 정신을 수습했다.
 ‘이게 무슨 꼴. 미색에 빠져 임무를 망각하다니!’
 그는 자신을 강하게 질책했다.
 두 번 다시 여인의 미색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다. 아니, 지금도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서다.
 여인을 보니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만나고 싶다? 이런 여자와 살고 싶다? 안고 싶다?
 모두 아니다. 머릿속이 텅 빈 백지가 된다.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는 눈길을 돌려 방 안을 살폈다.
 그녀 외에 없다.
 이 사람들······ 너무 자신만만하지 않은가.
 혹시나 싶어서 두 번, 세 번 꼼꼼히 살폈다. 귀도 기울여봤고, 후각까지 동원했다.
 문밖 상황은 어떨지 모르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휘익!
 시구각보(豺狗脚步)를 펼쳐 소리나지 않게 방 안으로 내려섰다. 토노번인들이 ‘승냥이의 발걸음’이라고 부르는 예의 그 신법이다.
 여인의 옷은 침상 옆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그는 옷을 집어 들고 여인에게 다가갔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인가? 여인이 눈을 떴다.
 “악!”
 여인은 낯선 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는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계야부의 억센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 소리 지르면 죽인다!”
 망루 무인에게서 뺏은 피 묻은 장검이 그녀의 목에 겨눠졌다.
 “손을 뗄 텐데······ 소리 지르지 마라. 경고는 이번뿐이다.”
 여인의 커다란 눈망울이 공포가 어른거렸다. 겁에 질린 눈동자는 눈물까지 주르륵 쏟아냈다.
 ‘무공을······?’
 이 여자는 무공을 모른다. 평범한 여인이다.
 도대체 이 여인의 정체가 뭔가? 엄동설한에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어가며 에워싼 까닭은 뭔가. 또 안선은 무엇 때문에 납치하지 못해서 안달인가.
 계야부는 천천히 손을 뗐다. 그러자,
 “사람······”
 여인이 빽! 고함을 질렀다.
 여러 소리는 막았지만 처음 두 마디는 방문 밖으로 새어나가고 말았다.
 계야부는 한 손으로는 여인의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여인의 목을 힘껏 졸랐다.
 “끄으윽······ 끄윽······”
 여인이 괴로워했다.
 “금방 끝나. 반항하지 마. 저항하지 마. 저항하면 더 힘들어.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죽이지는 않았다. 혼절시켰을 뿐이다.
 그때, 방문 밖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소저,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덜컹!
 방문이 열렸다.
 그곳에 여인은 없었다.
 “소저? 소저! 소저가 납치됐다!”
 무인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나갔다.
 
 
 3
 
 
 무인이 방 안을 둘러볼 때, 그와 여인은 침상 밑에 숨어 있었다.
 사람이 없어지면 누구를 막론하고 시야가 좁아진다. 그녀가 있어야 할 곳만 크게 부각되고, 그 외의 것은 아주 작아진다.
 여인이 한밤중에 술래잡기를 할 리도 없지 않은가.
 무인이 고함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가자마자 그는 재빨리 일어나 여인의 옷을 갈아입혔다.
 무인은 다시 돌아온다.
 상관과 추적에 능한 사람을 대동하고 다시 와서 납치 상황을 살필 것이다.
 그 전에 준비하고 도주해야 한다.
 백옥 같은 나신이 드러났다.
 계야부는 여인의 몸에 한 눈을 팔지 못했다. 부랴부랴 옷을 입히기에 급급했다.
 여인의 옷은 왜 이리 거치적거리는 것이 많은지.
 꼼꼼하게 입힐 겨를이 없었다. 대충 몸이 들어갔다 싶자 겉옷을 입혔다.
 ‘어쩐다······’
 도주에도 변수가 생겼다.
 생각지도 못했던 혹이 얹혀졌다.
 생각한 대로라면 부사영과 단 둘이 탈출해야 하는데, 그는 없고 혹만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여인을 등에 없었다. 심하게 움직여도 떨어지지 않도록 채대(彩帶)로 꽁꽁 동여맸다.
 밖은 춥다. 칼바람이다.
 상유자(床帷子: 침대 커튼)를 뜯어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살이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도록 둘둘 감싸 맸다.
 “뭐야! 소저가 왜 없어져!”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다.
 그는 신형을 뽑아 천장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들어왔던 구멍으로 살며시 빠져나갔다.
 쒜에에엑!
 그는 질주하는 광마(狂馬)가 되었다. 너무나 거칠게 달려서 감히 앞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검이 날아오기는 했다.
 계야부는 그럴 때마다 등에 업고 있던 여인을 검에 내밀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수법이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무인들은 검을 쳐내지 못하고 길을 막기에 급급했다.
 계곡은 벌써 무인들로 쫙 깔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호랑이 아가리로 기어들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그렇다고 계속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그는 이런 경우를 예상했다. 그래서 도주로로 망루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처리해 놓았던 망루로 치달렸다.
 휘이이잉!
 칼바람이 산을 휩쓸고 지나간다.
 동녘에서 떠오른 해가 붉은 광휘를 뿌려댄다. 온 세상이 빨갛다. 저녁노을과는 또 다른 감흥이 치민다.
 망루 아래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무인들이 개미떼처럼 기어오르고 있다.
 그들은 결코 서둘지 않는다. 포위망을 단단히 구축한 채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네가 도주하면 어디로 도주하겠냐고 비웃는 듯하다. 또 사실이 그렇다. 그는 갈 곳을 잃었다.
 그가 생각한 도주는 수색조가 정상적으로 움직였을 때에 국한된다.
 자신이 맡은 영역을 질서 있게 수색할 때, 기회가 생긴다. 지금처럼 수색이 아니라 포위가 되었을 때는 어느 쪽으로 뛰어도 수십 명과 싸워야 한다.
 그는 전장의 체험을 떠올렸다.
 이런 경우가 없었나? 없었다. 이렇게 빤히 보이는 곳에 놓여본 적이 없다.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었으나 미리 미리 차단했다. 결코 이런 상태까지 오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몸을 움직였다.
 망루는 너무 춥다. 바람막이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래도 춥다.
 불을 피웠다.
 지붕도 뜯어내고, 기둥도 잘라서 땔감으로 썼다.
 불길은 곧 활활 타올랐다.
 비로소 몸이 녹는다.
 적에게 발각되지 않았을 때는 이런 행동을 할 생각도 못했을 게다. 광장 한가운데 놓인 것처럼 환히 드러나고 말았으니 행동에도 거침이 없다.
 “네 놈은 누구냐!”
 망루 아래까지 다가온 무인이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밥.”
 “뭐라고?”
 “밥 좀 줘. 아침은 먹어야지.”
 “네 놈이 죽으려고······”
 “이 여자, 누구야?”
 계야부는 피로 얼룩진 검을 들어 등 뒤에 묶여 있는 여인을 툭툭 건드렸다.
 “네, 네 놈이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죽으려고 환장한 게 아니라 배고파서 환장하겠어. 밥 가져와. 밥 먹고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지.”
 계야부는 좌절하지 않았다.
 여인이 자신의 손에 있는 한,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 있다.
 산 전체에 쫙 깔린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납치된 여인 한 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서둘 필요가 없다.
 ‘어떻게 빠져나간다······’
 밥을 먹고 따뜻한 국물까지 들이켰다.
 한결 낫다.
 “이제 내려와라. 목숨은 보장하마.”
 “죽인 사람이 꽤 많아.”
 “모두 무인들이다. 한쪽 발은 늘 지옥에 담가놓고 사는 사람들.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지랄!’
 계야부는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삼켰다.
 세상에 여한 없이 죽는 사람은 없다. 특히 군인이나 무인들은 더욱 그렇다. 그들은 남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지 남에 죽으려고 있는 게 아니다.
 창칼을 든 사람들 중에서는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할 사람이 없다.
 덕이 높은 고승이나 도사들 중에서나 그런 사람이 나올까?
 “내려와라.”
 계야부는 사방을 빙 둘러 보았다.
 망루 부근에는 무인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도와줄 사람도 없다. 함정을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니다.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들의 힘은 강력하다. 뚫고 나갈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게 낫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위지패문이 왜 증명이라는 단계를 거쳤는지 이해했다.
 이들은 흑의인이다. 이들 뒤에는 백묘파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는······ 또 그 뒤에는······
 억지로 빠져나가려고 했다가는 죽음뿐이다.
 위지패문은 말했다. 싸워도 좋고, 피해도 좋은데 삼 일만 버티라고.
 그 말뜻은 최소한 삼 일 동안은 도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죽이고 죽여도 삼 일 동안 끊임없이 공격해올 무인들이 있다는 뜻이다.
 정면승부는 불가능하다.
 삼 일 동안 싸울 기력도 없다.
 이럴 때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계야부는 여인의 머리에 검을 들이대고 망루를 내려갔다.
 “간다. 비켜.”
 “어림없······ 너, 너 이 자식!”
 검이 여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그녀를 감싼 상유자가 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비켜. 장난 아냐.”
 “넌······ 내가 죽인다!”
 “나중에. 지금은 비켜. 춥다.”
 삼척장검이 다시 꿈틀거렸다.
 검이 깊게 파 들어갔는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비켜줘라! 모두! 모두 물러서라고 해! 천악망(天握網)을 물린다! 한 명도! 그 누구도 저자를 공격하지 마라! 보내줘!”
 무인이 버럭 노성을 내질렀다.
 계야부는 무인의 숲을 뚫고 나왔다.
 이 순간이 제일 위험하다. 이제 됐구나 하고 신법을 전개했다가는 꼼짝없이 당한다.
 팔부군 적진을 내 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면서 장수를 납치해 온 적도 많다. 하찮은 자일 때도 있지만 천 명 이상을 통솔하는 장군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계야부는 이런 상황을 만든 적이 없다.
 다른 말똥구리들은 적에게 발각되어 이런 지경에까지 빠졌던 모양이다. 당연히 인질로 협박을 했고, 팔부군을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쫓아오지도 않았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상황과 똑같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무인은 없다. 고개를 돌려보면 아직까지 망루 근처에서 분노의 눈길로 쏘아보고만 있다.
 그러자 말똥구리들은 빨리 몸을 빼내자는 생각이 들었단다. 쫓아오는 적도 없어서 인질에게서 칼도 거뒀단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와 머리를 관통시켰다.
 팔부군은 따라오지 않았지만 명궁의 활은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인질의 목에서 칼이 반 푼이라도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인질을 잡고 있는 자가 찰나라도 방심하기를 기다리며.
 계야부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산 밑에 내려올 때까지 단숨에 머리를 갈라버릴 수 있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그 아이, 내 질녀(姪女)일세. 놓아줄 수 없겠나?”
 승복을 입은 승려가 앞을 가로막았다.
 뿜어져 나오는 기도가 범상치 않다.
 머리는 삭발하지 않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길렀다. 회색승복을 입었고, 염주를 걸었으며, 목탁까지 들었다. 등에는 괴나리봇짐까지 매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먼 길을 온 듯싶다.
 계야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이 여자를 놓아주는 순간 내 목숨을 끊을 자가 수십은 될 거요.”
 “내가 막아주지.”
 “미안하지만 난 내 판단만 믿소.”
 “내가 누군지 모르나?”
 “강호 초행이오.”
 승려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빈승의 법명(法名)이 성오(醒悟)인데 들어봤나?”
 계야부는 고개를 저었다.
 성오라고 법명을 밝힌 승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못 들어봤다니 어쩔 수 없지. 그 아이를 납치해서 어쩌려는가?”
 “나도 모르오. 알 필요도 없고. 내가 하는 일은 여기까지요.”
 그는 안선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탈출한 부사영이 찾아갈 곳은 그 장원밖에 없다. 안선의 수중에 있는 것이다.
 우선은 그를 빼낸다. 여인은 주지 않는다. 안선 역시 믿을 곳은 못 된다. 안전하다 싶은 곳에 이를 때까지 이 여인은 양쪽으로부터 목숨을 보장해 줄 방패다
 안선으로부터 몸을 피할 곳이 어딜까?
 군대다. 이름을 바꾸어 입대한다. 말똥구리에서처럼 눈에 띄는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낸다.
 당분간은 그렇게 지내면서 앞날을 생각해 보련다.
 “그럼 청부군. 돈은 얼마나 받았나?”
 “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돈이 정말 우습게 여겨지는군. 당신들······ 돈이 어디서 나서 흥청망청 써대는 지는 모르겠는데, 난 당신들을 만나기 전만 해도 이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있는 줄 몰랐소. 비위 틀리니 돈 이야기는 그만둡시다.”
 “그 아이는 폐가 안 좋아서 추운 곳에 오래 있으면 건강을 크게 상하네. 알고 있나?”
 “길을 비키시오. 그러면 추운 곳에 오래 있을 이유가 없소.”
 “내가 자네를 제압할 줄 몰라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할 수 있다면 해봅시다.”
 계야부는 검을 자신의 목에 댔다. 검끝은 여인의 정수리에 닿았다. 누가 무슨 수를 쓰면 자신의 목을 베어냄과 동시에 여인의 정수리도 찔러버리겠다는 뜻이다.
 “정말 죽을 결심이군.”
 “······”
 “자네는 무인이 아니야. 싸우는 방식이 달라. 어디서 왔나?”
 “춥소.”
 “가게. 하지만 이 순간부터 자네는 참 괴로울 걸세. 내 눈에는 화염지옥(火焰地獄)에 떨어져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이는구먼. 자네의 하루하루가 그렇게 될 걸세.”
 계야부는 승려를 지나치며 물었다.
 “이 여자가 누구요?”
 승려의 눈빛이 또 한 번 반짝거렸다.
 “누군지도 모르고 납치했나?”
 “돈 많은 여자라는 건 알고 있소?”
 “허허허! 누군가 아주 좋은 자를 얻었군. 그럼 저 산에 펼쳐진 진법이 천악망이라는 건 아나?”
 “······”
 “모르고 있었군. 이것만 알아두게. 자네는 천악망을 돌파한 최초의 인물일세. 허허허! 그 아이가 누군지는 모르는 게 좋겠군. 마지막 제안일세. 놓아주게. 허면 그 아이가 누군지 말해주겠네.”
 계야부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누가 쫓아오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제5장 무총(武總)
 
 
 1
 
 
 부사영은 시궁창에서 몸을 빼냈다.
 날이 밝자 복면인들은 사라졌다. 커다란 장원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다.
 복면인들이 시궁창을 뒤지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팔부군이라면 어림없는 요행이었다. 그놈들은 시궁창이 아니라 똥통까지 샅샅이 뒤지는 독종들이다.
 ‘이틀.’
 상처 견적이 나왔다.
 예전처럼 팔팔하게 움직이려면 이틀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계야부는 어떻게 됐을까? 생환 횟수가 이백오십에서 딱 세 번 빠지는 그이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안선은 너무 빈틈이 많았다.
 그들이 건네준 것은 일부분만 맞았다. 차라리 전부 틀렸다면 미련이라도 버리겠는데, 일부만 틀리니 자꾸 정정하게 된다. 탈출로를 찾으려고 해도 그들이 준 지도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되었다.
 ‘우선 어디 가서 씻자.’
 그는 아직도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장원으로 향했다.
 전각을 소실되었을망정 우물은 남아 있지 않겠나.
 “어!”
 “살아 있었군.”
 “그건 내가 할 소리지! 어떻게 빠져나왔어! 야! 정말 생환 이백오십 회가 거짓은 아니구나! 응? 이 여자까지 납치한 거야? 야! 너 정말 대단하다!”
 장원 우물가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계야부는 여인을 내려놓고 우물을 길어 상처를 씻었다.
 얼굴에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 뒷머리 쪽을 베었는데, 다행이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흉터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우선 손으로 상처를 꾹꾹 압박하여 지혈시키는 선에서 치료를 끝냈다.
 금창약도 붕대도 없다. 가지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 오면 도움을 받을 줄 알았는데, 모두 불타 버렸다.
 “안선 이놈들, 치고 빠지는 데는 도사야. 우릴 보내놓고 장원을 태워버려! 죽일 놈들!”
 “아니, 안쪽에서 시신을 봤어. 이백 구 정도 되던데······ 모두 죽은 것 같아.”
 “뭐? 누구에게?”
 계야부는 고갯짓으로 여자를 가리켰다.
 “시작부터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이었어. 멀쩡한 사람을 전역시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너 같으면 은자 몇 냥이면 목숨을 걸겠냐?”
 “그걸 말이라고 해. 백 냥을 준대도 싫다.”
 “그런데 그들은 했잖아. 죽었잖아. 그럼 얼마를 썼겠어. 상상도 못할 거액이야.”
 “산을 빠져나오는데 중이 길을 막더라. 법명이 성오라고 하던데, 들어봤어?”
 부사영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인데······ 정말 만났어?”
 “이 여자가 자기 질녀라더라. 놓아달라고. 안 놓아줬더니 내 인생이 가시밭길이래. 후후후! 아무래도 된통 걸려든 것 같다.”
 “이젠 어쩌지?”
 “군에나 가자. 가서 다른 사람이 되어 당분간 조용히 지내자.”
 “갈 수나 있을까?”
 “가야지. 이 여자가 있으니까 함부로 쳐오지는 못할 거야. 오늘 하루는 여기서 쉬자. 너무 피곤해서 꼼짝도 못하겠어.”
 부사영은 계야부가 움직이는 대로 졸래졸래 따라갔다.
 “조심해.”
 부사영은 발밑을 조심했다.
 계야부의 함정 파는 솜씨는 일류급이다.
 그의 함정은 사람을 살상하는 것보다 경계 목적이 강하다. 누가 어느 쪽으로 들어서든 함정을 건드리게 만들어 놨다.
 그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방에 머물렀다.
 말이 방이지 모두 불타버려 땅과 하늘만 남았다. 그래도 화로가 있으니 불을 피울 수 있지 않은가.
 긴장이 풀린 두 사람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기가 막힌 놈들이군. 멀리 도주하지도 않고 지척에서, 그것도 벌건 대낮에 불을 피워놓고 잠을 자?”
 무인이 검을 뽑은 채 달려갈 태세를 보였다.
 “서둘지 마라. 노방이다.”
 산정에서 계야부를 죽이겠다고 벼른 무인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노방을 풀어.”
 명이 떨어졌다.
 무인이 어딘가 달려갔다가 대붓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무인들은 대붓을 나눠 갖고 땅을 슬슬 쓸어나갔다. 대붓이라지만 땅에 비하면 작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타악! 딱딱딱딱! 따아악!
 넝쿨 한 줄기가 툭 튀어 오르더니 비수를 수십 개나 발사시켰다.
 무인들은 황망히 피했다.
 노방을 푸는 일에는 항상 느닷없는 봉변이 대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검에 찔릴 수도 있고, 암기에 맞을 수도 있으며, 커다란 바위에 납작 깔려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노방을 풀 때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무인들은 처음 넝쿨이 탁! 소리를 내며 퉁겨 올라갈 때, 이미 몸을 피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비수는 쇠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나무를 대충 깎아 흉내만 낸 것이다.
 살상력도 없고, 속도도 느렸다.
 “죄송합니다.”
 노방을 건드린 무인이 머리를 숙였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 천악망을 통솔하는 자, 엽위상(葉煒翔)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의 눈은 두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대나무 비수 소리에 잠들었던 자들이 깨어났다.
 그들은 무인들이 빙 둘러서 포위하고 있는데도 태연하기만 했다. 크게 기지개를 켜는가 하면,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도 했다.
 계야부는 여인의 상처를 살폈다.
 여인은 깨어나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안색이 허옇게 변해 있었다.
 “마, 만지지 맛!”
 “상처를 봐야 해.”
 “만지지 말랬잖아!”
 “검에 베인 상처라 덧나기 싶소. 화농이 머릿속까지 파고들면 살릴 방도가 없소.”
 “만지지 맛! 만지지 맛.”
 그녀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검에 베일 때 정신적인 충격을 심하게 받은 것 같았다.
 쫙!
 계아부는 세게 뺨을 후려쳤다.
 “정신 똑바로 차렷! 자기 목숨은 자기가 구하는 거얏!”
 그는 활활 타는 눈으로 노려보면서 깨끗한 헝겊을 내밀었다.
 “꾹 누르고 있어.”
 여인이 성난 눈길로 쏘아봤다.
 “실제로 보니까 더 예쁘다. 넌 사람이 어떻게 된 게 저런 여자에게 검을 쓸 수 있냐! 뺨은 또 왜 때리니? 정말 어떨 때 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니까.”
 부사영은 여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엽위상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고, 행동을 봤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불과 오 장밖에 되지 않았다. 노방이 없었다면 당장 뛰어들고도 남았다.
 “후후후! 웃기는 놈들이군. 우리를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아. 어쩔 거냐 이거겠지.”
 그의 말은 계야부나 부사영의 귀에도 들렸다.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후후후! 후후후!”
 엽위상은 마른 웃음을 토해냈다.
 마음이나 입으로는 웃지 않는데, 소리만 웃는다. 웃는 소리를 낸다.
 순간, 계야부는 재빨리 여인에게 달려가 검을 들이댔다. 부사영은 견빙검을 뽑아들고 언제든 쳐낼 준비를 했다.
 “후후후! 이것이 너희 운명이다. 앞으로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겠지. 감정 없는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것처럼.”
 그가 품에서 검지손가락만 한 죽통(竹筒)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아나?”
 “이봐, 계야부. 난 이놈의 중원에 인연이 없나봐. 어떻게 된 놈들이 툭하면 독을 쓰고 지랄들이야. 무공을 익힌 놈이나 안 익힌 놈이나 그놈이 그놈인 것 같아.”
 죽통을 보자 독이라고 생각한 부사영이 잔뜩 긴장하며 말했다.
 “후후후!”
 엽위상은 마른 웃음을 뱉어내며 죽통을 연 후, 세 사람을 향해 획 뿌렸다.
 세 사람은 하얀 분말을 꼼짝없이 뒤집어썼다.
 분말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면 바로 공격이 시작된다. 꼼짝할 수 없다. 설마 이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여인에게까지 독을 쓸 줄이야.
 “후후! 천리향(千里香)이라고 들어봤나? 이게 천리향이다. 앞으로 너흰 천리향의 향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리가 눈에 안 띈다고 방심하지 마라. 우린 너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간다. 가자!”
 엽위상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천리향을 묻혀놓은 이상 이들이 발 뻗고 잘 곳은 없다.
 “이 천리향······ 씻어내는 방법이 있나?”
 “몰라. 나도 천리향은 말만 들었지 본 건 처음이야. 헌데······ 이거 아무 냄새도 안 나잖아? 시궁창에 밤새도록 처박혀 있었더니 코가 막혔나?”
 “나도 냄새는 안 나는데?”
 “거짓말한 거 아냐?”
 “겪어보면 알겠지.”
 계야부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아직도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는 했지만 무척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갔다.
 “천리향 냄새는 못 씻어요. 어디를 가든 쫓아온다는 말도 사실이에요. 그러니 지금 풀어줘요. 두 분 안위는 제가 보장할게요.”
 겁에 질린 음성이지만 또렷또렷하고 맑았다.
 부사영이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소저,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그게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거라서······ 일단 만나볼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부터 만난 후에 결정합시다. 소저의 목숨은 내 꼭 보장하리다.”
 그녀는 체념했는지 부사영이 내미는 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계야부는 그녀를 벴다. 머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남겼다. 그녀에게는 계야부가 인간 같아 보이지 않으리라. 비열한 놈, 살인마, 여자나 납치하는 놈······ 온갖 나쁜 인상을 다 갖다 붙이고 있을 게다.
 “언제 놔줄 건데요?”
 “글쎄······ 지리에 밝지 못해서. 올 때 사흘 걸렸으니까, 지금은 마차도 없고······ 일단 가봐야 하니까 한 열흘 후쯤?”
 “마차는 내가 구해줄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크게 소리만 지르면 마차를 가져올 거예요. 할까요?”
 “하하! 소저는 참 좋은 재주가 있는 것 같소.”
 “왜 날 납치하는지는 말해줄 수 있나요?”
 그녀는 부사영과 이야기를 시작한 후, 평소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 같았다. 많이 안정되었고, 평온해졌다.
 “하하하! 그거야 소생도 모르지요. 워낙 높으신 분들이 시키신 일이라서.”
 “높으신 분? 누구요?”
 부사영은 자신이 말을 꺼내놓고 앗차! 싶었다. 그는 급히 손을 휘저었다.
 “뭐 꼭 벼슬이 높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소생에게 일을 시켰으니 소생 입장에서는 높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소.”
 “사람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는군요. 아니면 모르고 있거나.”
 “그 이야긴 우리 금기(禁忌)로 합시다. 왜 사람마다 말하기 곤란한 게 있지 않소. 하하하”
 부사영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여인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는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산에 있던 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헌데 그들 앞에서 안선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하게 ‘안선’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비슷하게는 말했다. 그만한 세력들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들은 하고 있지 않을까?
 여인이 너무 앙증맞아서 기분 좀 풀라고 대꾸해준다는 것이 그렇게 됐다.
 ‘입조심, 행동조심. 아이구! 이 멍청아!’
 ***
 “성······ 공 했다고!”
 “네. 저희가 빠져나온 후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지? 천악망을······ 단신으로 돌파했단 말인가? 들어가기도 전에 침입이 발각되었는데? 천악망의 삼일 공격을 받아낸 자가 없는데······”
 “천악망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자가 사약란(謝若蘭)의 머리를 검으로 그었다고 합니다.”
 “······?”
 “머리에 검을 대고 썰어댔다고······”
 “뭐라고? 머리를 검으로 썰어? 여자의 머리를? 허허허! 허허허허!”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몹시 좋은지 연신 수염을 쓰다듬었다.
 “상책(上策)을 버리고 중책(中策)으로 가야 하나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군. 허허허! 뭐하는가! 성공했으면 빨리 가서 데려와야지.”
 “지금은 나설 수가 없습니다.”
 “뒤가 있군. 누군가?”
 “냉조검사(冷調劍士) 염위상과······”
 “말을 쉽게 못하는 걸 보니 대단한 자가 붙은 모양이군. 누군가?”
 “성오(醒悟) 존자(尊者)입니다.”
 “성······ 오 존자가? 성오존자가 어떻게 끼게 된 거지?”
 노인도 성오존자라는 말에는 깜짝 놀랐다.
 ‘존자’라는 칭호는 원래 부처님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스님에 대한 극존칭이 되어 버렸다.
 당금 중원에서 성오존자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때 마침 성오존자가 인근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약란이 이궁(二宮)에 들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고······ 그래서 자시를 넘기고도 떠나지 않고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허허! 어찌 이런 일이!”
 이궁에 무인이 평소보다 다섯 배나 많이 배치된 이유도 알겠다.
 성오존자가 방문한다고 하니 그만한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그런 날 들어갔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러고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사약란을 납치해서 데리고 나왔다. 치밀한 공격에 반쯤 넋이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유자적(悠悠自適) 그들의 코앞에서 불을 피우고 잤단다.
 도대체 어떤 놈들을 쓴 건가?
 “제약이 또 하나 있습니다.”
 “뭔가?”
 “천리향을 뒤집어썼습니다.”
 “뭐······ 야?”
 “사약란을 데리고 오면 저희가 발각됩니다.”
 “생각 좀 해보자. 생각 좀······”
 노인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천리향은 인위적으로 씻어낼 수 없다. 앞으로 보름 동안은 도주조차 하지 못한다.
 사약란은 더더욱 데려오지 못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안선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추진한 일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안선만은 보존해야 한다.
 “십삼주는······ 괜찮나?”
 “확실히 끝났습니다.”
 “자넨 지금 바로 십일주에게 가야겠어.”
 “십일주까지!”
 “시간이 남으면 복여위에도 들렀다 와.”
 “도사도 제거합니까?”
 “안선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자들은 모두.”
 “이번 건은 폐기(廢棄)되는 겁니까?”
 “아니, 지켜보자고. 당장은 데려올 수 없으니 지켜보는 수밖에. 십일주나 도사를 제거하라는 건 그놈이 찾아갈 우려가 있어서야. 놈이라면 십일주가 어디쯤 사는지 짐작해낼 거야. 얼굴을 마주친 곳이 뻔한데, 그걸 못 찼겠나.”
 “위지패문은······ 아까운 자입니다. 재고를······”
 “나가봐. 머리 아파.”
 재고는 없다. 결정이 내려지면 실행만 뒤따른다.
 “휴우!”
 그는 한숨만 내쉬었다.
 ‘성오존자가 따라붙었다. 성오존자가······’
 노인은 좀처럼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사실 천리향은 별로 대수로운 게 아니다. 그쯤은 지금 당장이라도 씻어낼 수 있다.
 원리만 알면 간단하다.
 천리향은 독특한 향이 천 리까지 전달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일, 이 장도 아니고 십 장이나 백 장도 아니고 천 리다.
 이 세상에 그런 향이 존재할까? 어떤 인간이 천 리 밖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을 수 있나.
 인간은 천리향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아니, 천리향 자체가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천리향의 냄새를 맡는 건 따로 있다.
 천리사(千里蛇)라는 뱀이다.
 천리사는 천리초(千里草) 밑에서 태어나 천리초의 열매를 먹으며 자란다. 천리사에게는 천리초가 어머니의 젖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천리사는 뱀이면서도 쥐나 개구리를 잡아먹지 않는다. 오직 천리초만 먹는다. 그렇기에 천리사 혓바닥에 존재하는 감각은 오직 천리초의 냄새만 쫓도록 만들어졌다.
 천리향은 그런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천리향을 씻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천리사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를 묻히면 된다.
 바로 규전의(糾纏蟻)가 꽁무니로 내뿜는 분비물이다.
 규전 개미는 천리초 밑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천리사가 다가오면 우르르 달려들어 잡아먹는다.
 천리사에게는 상극으로 분비물 냄새만 맡아도 멀찌감치 달아난다.
 천리향을 완전히 씻어낼 수는 없지만 추적을 안 당하게 할 방도는 있는 셈이다.
 노인이 고민하는 것은 성오존자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불법(佛法)만 보지만 무인은 무공까지도 함께 봐야 한다.
 성오존자는 걸어 다니는 불문 무학의 정화다.
 그가 알지 못하는 불문 무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련도 상당히 깊게 해서 과연 그의 일장을 맞받을 자가 당금 무림에 몇 명이나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런 성오존자의 무공이 비교적 낮게 평가되는 이유는 그가 무공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성오존자라면 계야부에게서 사약란을 뺏어오는 일 정도는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쉽다.
 그는 협박에 밀려서 길을 비켜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러서준 것이다.
 왜?
 성오존자의 마음만 읽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성오존자까지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대어(大魚)다. 언젠가는 꼭 잡아야 할 고기다. 다만 덩치가 너무 커서 뒤로 미루고 있던 것뿐인데, 어쩌면 계야부란 놈이 성오존자까지 잡아줄지도 모른다.
 그는 한 시진 이상을 골몰히 생각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내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군.”
 
 
 2
 
 
 “소저,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부시영이라 하고 저놈은 계야부란 놈이오. 소저는?”
 “사약란(謝若蘭). 사약란이에요. 쿨룩! 쿨룩쿨룩!”
 사약란이 갑자기 거센 기침을 쏟아냈다.
 폐가 좋지 않아서 추운 곳에 있으면 안 된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부사영이 급히 그녀를 부축해서 불가로 데려왔다.
 그때, 폐허 속에서 무인이 나타났다. 그는 술 담을 때 쓰는 호로병을 들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호로병을 내밀었다.
 “내 약이에요. 가져다주세요.”
 부사영이 두 말 않고 일어서서 무인에게 호로병을 받아왔다.
 무인은 다시 돌아갔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증오의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무심······ 그렇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태연자약(泰然自若)했다.
 계야부는 소름이 쭉 끼쳤다.
 그는 이런 눈빛을 안다. 자신이 바로 그런 눈빛을 지녔다.
 생사여일(生死如一).
 삶과 죽음은 하나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수을 쉬면 산 것이요, 쉬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일호흡(一呼吸)에 불과하다.
 그는 이런 이치를 안다.
 죽음을 망각하고 공격할 수 있는 자다.
 ‘점점 어려워지는군.’
 그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사약란을 데리고 위지패문에게 가야 한다. 가서 담판이란 걸 지어야 한다. 안선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싫다. 그냥 군에만 있게 해주면 된다.
 일차로 말해보고 기미가 수상하면 여인을 방패삼아 물러난다.
 사약란은 이쪽저쪽에 모두 방패가 된다.
 위지패문이 사약란을 죽이기 위해 납치시켰다고는 보지 않는다. 죽이는 것 외에 다른 용도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돈을 쏟아 부은 것이다.
 죽일 요량이었으면 자신들에게 보냈던 살수를 썼을 게다.
 그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나았다. 여인은 무공을 모르니 죽이기도 쉬웠을 게다.
 죽이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걸 알아내면 담판을 짓는데 큰 도움이 될 텐데.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헌데 이렇게 노림을 받아서야 어찌 한 걸음인들 움직이겠나.
 계야부는 또 한 번 모험을 시도했다.
 “부사영, 이번에는 네 차례다.”
 “뭐? 아이구! 이 미친놈이!”
 계야부는 사약란 앞으로 가서 등을 내밀었다.
 “업히시오.”
 “싫어요!”
 사약란은 다시 떨기 시작했다. 부사영과 대화를 나눌 때는 편안해 보였는데 다시 겁을 집어 먹었다.
 “한 번 조른 목, 두 번인들 못 조르겠소. 정히 원한다면 그리 해줄 수 있소.”
 “저, 저분에게 업힐게요.”
 그녀가 부사영을 가리켰다.
 부사영은 어깨를 움찔거려 어쩔 수 없다는 뜻을 표시했다.
 여인은 기가 막히게 예쁘다. 말을 할 때면 보조개가 옴폭 패는 게 너무 귀엽다. 하지만 계야부와 함께 해온 세월이 일 년이다. 군 생활 십 년을 통틀어도 그 일 년에 비교하지 못한다. 그만큼 계야부의 판단과 추진력을 믿는다.
 여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계야부의 등에 업혔다.
 계야부는 장원에 오던 과정을 되새겼다.
 장원 주인이 자신들을 강가에서 인계받았다. 그리고 장원으로 왔다. 그때 걸린 시간이 불과 반각이다.
 마차를 빨리 몰지도 않았다. 위지패문이 지켜볼 때는 힘차게 달렸지만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달리는 속도를 팍 줄였다.
 걸어서도 반각 정도밖에 안 걸린다.
 계야부는 반각을 걸었고, 예상했던 대로 강가에 도착했다.
 “어장검(魚腸劍).”
 “뭐, 뭣! 이 한겨울에! 미쳤냐!”
 부사영이 펄쩍 뛰었다.
 어장검이란 검명(劍名)이나 말똥구리들은 은어로 쓴다.
 도강(渡江), 방법은 장비 없이 수중침투(水中浸透).
 “목숨이 붙어 있으면 보자!”
 계야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이런 미친!”
 부사영은 황당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다. 그는 재빨리 검을 뽑으며 뒤돌아섰다.
 계야부가 충분히 잠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그러다 목숨을 잃어도 어쩔 수 없다. 지난 밤, 계야부는 목숨을 걸었다. 임무도 완수했다.
 이제는 자신 차례다.
 쒜에엑!
 어김없이 검이 날아왔다.
 여인이 없는 지금, 매복자들의 눈에 비친 부사영은 난도분시(亂刀分屍)해야 할 인간이다.
 까앙! 까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말똥구리의 검이라고 얕보다가는 곤란하다.
 팔부군 장수들 중에는 정통무공을 수련한 무인도 꽤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무공을 수련한다.
 그들과 맞싸워서도 한 치도 밀리지 않던 그다.
 “와 봐!”
 그는 쩌렁 일갈을 내지르며 감각에 의존하는 검, 사검을 떨쳐냈다.
 풍덩! 풍덩!
 등 뒤로 입수(入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야부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워낙 달려드는 작자들이 많아서 모두 막아낸다는 것 불가능하다.
 쒜엑! 쒜에엑!
 견빙검이 한 놈을 노리고 후려쳤다. 헌데 그자의 허리가 뒤로 완전히 꺾어졌다. 뒤로 넘어간 머리가 발뒤꿈치에 닿았다. 둥근 원이다. 사람이 허리를 꺾어 원을 그렸다.
 “뭐 이런!”
 무인은 두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땅을 탁 쳤다.
 땅을 밟고 있던 두 발이 공중제비를 그리며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그의 신형이 견빙검이 지나간 틈을 노리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부사영은 검을 거꾸로 잡아 끌어당기면서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옆으로 흐를 줄 알았던 검날이 무인의 옆구리를 노리며 그어갔다.
 헌데 무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수가 또 한 번 터트렸다.
 쉬익! 타앙!
 무인이 견빙검을 향해 검을 던져버렸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무인은 턱 밑까지 파고들었다.
 “헛!”
 부사영이 깜짝 놀라 물러서려고 할 때, 무인의 양손이 그의 가슴을 연달아 격타했다.
 퍼엉! 펑! 퍼엉!
 피가 거꾸로 솟는다. 눈이 뒤집히고,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아미타불!”
 어디선가 불호 소리가 들려왔다.
 무인의 가격은 그제야 멈췄다.
 “하하! 제······ 법······ 한 수······ 커억!”
 부사영은 호기를 부리려고 했지만 뱃속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는 핏물을 참지 못하고 토해냈다. 그리고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털썩 주저앉았다.
 ‘제길! 생포되다니.’
 그가 의식을 잃기 전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계야부는 물속으로 뛰어들자마자 하류를 향해 몸을 맡겼다.
 천리향이 아무리 지독하다고 해도 물속에서만큼은 냄새를 풍기지 못한다.
 물속으로 사, 오 백장을 이동한다.
 물론 물 밖으로 나가는 순간, 천리향이 다시 간자 노릇을 할 터이지만 그때는 서로 간의 거리가 상당히 벌어진 후다.
 그에게는 놀랄 만큼 빠른 사전투광신보다 있다.
 해보는 거다. 무인들이 빠른지, 자신이 빠른지.
 어차피 산에 올라갈 때 시간 다툼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 싸움을 하게 생겼다.
 입수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천리향을 믿고 있으니 물속에서 낚아채려는 수작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여인에게 있다. 혹여 물속에서 잘못되지나 않을까 싶어 뛰어든 것이다.
 계야부는 그들이 다가오거나 말거나 유유히 흘러갔다.
 손발이 얼어온다. 몸도 차가워진다. 이대로 계속 있으면 체온 저하로 심장이 마비될 게 뻔하다.
 그래도 참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저들을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인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자유를 달라고 협상하는 게 낫다.
 “꾸룩! 꾸루룩!”
 여인이 등 뒤에서 발버둥을 쳤다.
 주먹으로 그를 때리기도 하고 머리칼을 쥐어뜯기도 한다. 어떻게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당연하다. 숨이 막히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잠시, 여인은 축 늘어졌다.
 쓔우우욱!
 무인들이 황급히 헤엄쳐왔다.
 잠수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매복자들 중에서 유영이 뛰어난 자를 선발한 모양이다.
 계야부는 검으로 여인을 겨눴다. 다른 손으로는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저었다.
 그들이 손을 들어 위를 가리킨다. 또 한 손으로는 등도 가리킨다.
 여인이 혼절했으니 물 위로 올라가라는 소리다.
 계야부는 손가락을 까닥거려 거절의 뜻을 전했다.
 그는 숨을 오래 참는다. 상당히 오래 참는다. 적진을 넘나들며 숨 참는 것 하나는 확실히 배웠다.
 결국 두 무인이 견디지 못하고 물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
 무인들이 움직이자마자 힘껏 유영을 하기 시작했다.
 무인들은 그가 움직이는 것을 봤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그냥 가는 것을 구경만 해야 한다. 물 위로 올라가서 숨 한 모금을 들이켜고 다시 내려올 즈음에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으리라.
 무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수면 위에서 공기를 마시는 중이다.
 계야부는 그 순간을 노려 왼쪽 강가를 향해 힘차게 유영했다.
 쓔우우우욱!
 그의 신형이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빠르게 물살을 헤쳐 나간다. 사전투광신보 덕분이다.
 ‘하나, 둘, 셋, 넷······’
 그는 마음속으로 일곱을 헤아렸다.
 유영에 능숙한 자가 숨을 한 번 교환한 후, 다시 내려오는 시간이 딱 그쯤 된다.
 수가 여섯에 이르렀을 때, 그는 수면 위로 올라갔다.
 하류로 내려가려던 것이 아니다. 도강(渡江)이다.
 처음부터 도강을 시도했다면 워낙 눈치가 빠른 사람들인지라 벌써 배를 구해놨을 것이다. 어쩌면 배를 타고 건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의 비틀림이 그들을 떨궈놨다.
 “후우!”
 그는 큰 숨을 들이켠 후, 여인의 심장을 살폈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물도 상당히 먹은 것 같다.
 그는 여인의 가슴에 두 손을 얹고 힘껏 누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허허허! 상당히 재미있는 자 아닌가.”
 성오존자가 강 건너의 모습을 지켜보며 빙긋 웃었다.
 계야부는 가슴만 주무르는 게 아니다. 입까지 맞추고 있다. 가슴을 눌렀다가 입을 맞췄다가······ 같은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저자, 아무래도 제 손으로 죽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어떤가? 이자는?”
 “죽여야지요.”
 “허허! 불문에 몸담은 사람 앞에서 죽인다는 말을 어찌 그리 쉽게 쓰노.”
 “죄송합니다. 허나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자네가 보기엔 저자가 어디서 온 것 같은가? 또 이자는?”
 “······”
 “처음 보는 무공이라 당황했나 본데······ 모든 게 생각 한 번 바꾸면 쉬운 거라네.”
 “가르침을 주십시오.”
 “뭐 가르침이라고 할 것까지야······ 군이네. 군에서 왔어.”
 “예? 이들이 군인이란 말입니까?”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군인이었어. 저자가 이궁을 어떻게 습격했는지 노선을 그어봤나?”
 “아직······”
 “쯧! 한 번 그어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침투와 탈출을 치밀하게 계산해놨어. 헌데 변수가 생겼지. 내가 나타난 거야. 그래서 자네들이 더 많이 고생했고. 그렇지만 않았다면······ 조금 쉽게 갔을 걸세.”
 “저희가 뚫렸단 말이군요.”
 “자넨 이자를 요리해봐. 난 저자를 쫓아야겠어. 약란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늙은이한테 맞아죽을 거야. 그렇지 않나?”
 “그분께 그런 말씀을······ 아무리 존자이시더라도 무례하십니다.”
 “에끼! 이놈! 허허허!”
 성오존자는 기분 좋게 웃으며 강을 따라 걸어갔다.
 엽위상은 그와 강 건너에 있는 계야부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명을 내렸다.
 “끌고 가자!”
 “쿨룩! 쿨룩!”
 여인이 심한 기침과 함께 물을 한 바가지나 토해냈다.
 “휴우!”
 계야부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쉬었다.
 자칫했으면 애꿎은 여자를 물귀신으로 만들 뻔했지 않은가.
 하지만 이 길이 아니면 저들을 따돌릴 수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 끌려가는 부사영을 봤다.
 부사영이 누구에게 잡혀가는 것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토록 적진을 넘나들면서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잘 빠져나와라.’
 도주에 성공한 말똥구리가 사로잡힌 말똥구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다.
 죽는 것도, 다치는 것도, 사로잡히는 것도 모두 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함께 움직일 때는 이 세상 무엇과도 비겨할 수 없을 만큼 결속력이 강하지만 일단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면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
 그는 여인을 다시 업으려고 했다. 헌데,
 “저리 가! 이 짐승! 저리 가지 못해!”
 여인이 잔뜩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그를 밀쳐냈다.
 또 다시 심리적인 공황상태다. 죽음에 직면했었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밀어 넣은 사람이 죽이도록 미울 뿐이다.
 그는 여인을 때리는 대신 꼭 껴안았다.
 “비켜! 놔! 놓으란 말이야!”
 “괜찮아. 가만······ 가만······ 이제 끝났어. 모두 다······ 끝났어.”
 그는 여인의 등을 다독였다.
 “흑! 흑흑! 흑! 날 보내줘. 보내달란 말이야! 흑흑!”
 여인이 기어이 눈물을 쏟아냈다.
 죽음에 이른 사람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안전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안전했던 곳도 떠올린다. 납치된 사람의 경우에는 풀려나는 것이다.
 이런 여인을 납치하는 것이 잘하는 짓인가. 이 여인의 원의 잔당과 무슨 상관이 있겠나. 원의 잔당이면 또 어떤가. 국경만 단단히 틀어막으면 되는데. 군사를 일으킬 만한 힘조차 없는데.
 더군다나 안선은 연락조차 취해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여인이 안정을 되찾았다.
 “추워요. 불 좀 피워줘요.”
 계야부는 죽을힘을 다해 신법을 펼쳤다.
 비급을 받은 이후로 하루 한 시도 빼놓지 않고 시전한 탓인지 날이 갈수록 빨라졌다.
 쒜에에엑!
 그의 신형은 한 줄기 바람이 되어 흘러갔다.
 “여긴?”
 “산서요.”
 “날 납치하라는 사람이 있는 곳인가요?”
 “그렇소.”
 “그 사람이 누구예요?”
 “그 사람들 말이 웬만하면 모르는 게 낫다고 합디다.”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군.”
 사약란은 한결 안정되었다. 계야부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다.
 “이거 안 갈아줘요?”
 그녀가 머리에 둘둘 말린 붕대를 가리켰다.
 “이따가 저녁에 갈아도······.”
 “가려워요. 갈아줘요.”
 그녀는 너무 예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탱글탱글하다. 탄력있게 통통 튄다.
 듣기 싫은 말투는 아니다.
 단지 조금 불편한 점이 있다면 요구사항이 꽤 까다롭다는 것이다. 계야부를 알게 되고, 조금 편해졌다 싶으니까 이것저것 원하는 것을 말해왔다.
 음식은 바로 만든 것이 아니면 입에도 대지 않는다. 잠자리가 조금만 배겨도 잠을 못 잔다. 하루에 세 번 세면을 해야 하고, 그 중 한 번은 꼭 머리를 감는다.
 이틀에 한 번은 목욕도 한다.
 이 모든 걸 계야부가 구해줘야 한다.
 일부러 하는 행동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몸에 베여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모든 사람이 떠받들어 주는 세상에서 살았던 여인이 틀림없다.
 이 여자, 뭐하는 여자인가?
 계야부는 그녀를 앉혀놓고 붕대를 갈았다.
 “여자 죽여 봤어요?”
 그녀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물었다.
 “그때 제 목 조르는 것 보니까 죽여 본 것 같은데, 아녜요?”
 죽여 봤다. 한두 명이 아니다. 상당히 많이 죽여 봤다. 팔부군에도 여자가 있다. 그녀들을 죽였다. 군에서 쫓겨난 후에 백묘파라 불리는 여인들을 죽였다.
 죽음 앞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없다.
 남자를 죽이면 마음이 편하고 여자를 죽이면 괴롭고······ 그런 것 없다.
 “대답 안 할 거예요?”
 “죽여 봤소.”
 “그래요?”
 그녀의 말에 힘이 빠졌다.
 “안 죽였을 줄 알았거든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요. 마지막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거든요. 아! 죽이지는 않겠다 싶어서 시킨 대로 저항하지 않았죠.”
 “갑시다. 오늘 저녁쯤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날 넘길 거예요?”
 “그럴 거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허나 이 순간, 그는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여자······ 납치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실 그에게 이런 생각은 사치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동료도 죽음 앞에 던지는 것이 말똥구리다. 여인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거짓 약속도 빈번히 한다. 그래서 말똥구리가 하는 말은 칠 할쯤 깎아 들어야 한다.
 사약란을 무엇 때문에 납치했나.
 살기 위해서다. 엄청난 거력을 감지한 순간,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약란을 넘겨주던가, 자신이 죽던가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혈육도 아니고······ 책임질 어떤 일도 없는데 그녀를 위해 대신 죽을 수는 없다.
 헌데 모순되게도 놓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와 같이 지내는 동안 그녀를 연모하게 되었다거나, 보호해주고 싶다거나······ 그런 감정이 든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납치된 여자일 뿐이다.
 사약란이 원의 잔당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엄청난 세력 대 세력의 다툼일 뿐이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이다. 자신은 거기에 말려들어 새우등처럼 터지는 중이다.
 남에게 이런 식으로 조정당하고 싶지 않다. 아무 이유 없이, 명령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아 움직이는 건 배알이 뒤틀린다.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놓아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
 이쪽, 아니면 저쪽에 죽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언젠가는 반드시 팔부군에게 붙잡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사약란을 업고 다시 질주했다.
 
 
 3
 
 
 위지패문은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았다.
 탁자 한켠에는 붉은 배첩이 접혀져 있었다.
 그는 이미 배첩을 봤다. 그래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
 “제 선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무슨 일로?”
 “장원을 수색하러 왔소이다.”
 그는 정중했다.
 “추검(秋檢)은 받았소이다만.”
 “계야부 일이 있지 않소이까. 그래서 특별 수색하라는 명을 받았소이다.”
 그가 서신 한 통을 내밀었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안선은 점조직이다. 한 점이 지워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이상을 파고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명령은 받아야 한다. 어느 때는 지금과 같이 사람이 방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신을 이용한다.
 사람은 꼬리를 잡힐 수 있다. 허나 서신은 단지 서신일 뿐이다. 서신의 발신지를 추적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수기(手記) 역시 약정된 수기이기 때문에 누가 보냈다는 것은 서신을 받은 당사자만 안다.
 반면에 서신은 증거가 남을 수 있다. 한두 통은 서신에 그칠 뿐이지만 수십 통이 쌓이면 많은 말을 한다. 필체, 종이의 질, 먹의 성질, 글의 내용, 서로간의 연관성······
 그래서 안선은 봄가을로 불시에 수색을 하여 남아 있는 서신이 있는지 살핀다.
 그때는 집안 곳곳이 발칵 뒤집어진다.
 사람 손이 닿을 만한 곳부터 도저히 가능성 없는 곳, 설마 저런 곳에 숨겨놓을까 싶은 곳까지 샅샅이 뒤진다.
 멀쩡한 장원을 봄가을에 새로 단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신에는 수색에 협조하라는 내용밖에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위지패문이 눈길을 준 곳은 수기다.
 “육교사(六絞絲)······”
 “그렇소. 육교사님의 직명(直命)이오.”
 “음······!”
 위지패문은 신음을 토해냈다.
 사태의 심각함이 비로소 느껴진다.
 안선주(眼線紬)들은 모두 십교사(十絞絲)의 명을 받는다. 중원 분타의 총분타주가 십교사인 셈이다. 그런 관계로 안선주들은 모두 지위가 동일하다. 일주나 십일주나 대등한 관계다.
 교사(絞絲)는 다르다. 그들은 수직 상하관계다. 십교사는 구교사의 명을 죽음까지도 받들어야 한다. 이유나 변명은 없다. 무조건, 절대적인 복종만 있다.
 교사 위에 또 하나의 계급이 있다.
 그들은 모두 네 명이며 수평적인 관계다. 상호 숙의하고 협조하는 관계다.
 그들을 뭐라고 부르며,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는 알지 못하다. 자신에게 명을 내리는 십교사는 물론이고, 지금 서신을 보내온 육교사도 모를 것이다.
 그는 서신을 황촛불에 태우며 말했다.
 “이삼 일이면 준비될 겁니다. 공식적으로 문건을 접수했으니 전 오늘부터 객사(客舍)에 가서 생활하겠소이다.”
 “가솔들과도 일체 연락을 취하시면 안 됩니다.”
 “하하하! 어디 한두 번 해본 일입니까.”
 “호위는 몇 명이나 대동하십니까?”
 “한 명입니다. 한 명이지만 꽤 뛰어난 친구죠. 얼마 전에 계야부에게 자극을 받아서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무공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크게 될 친구라고 믿습니다.”
 “좋은 사람을 옆에 두셨군요. 그럼.”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서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놈이 무슨 일을 했을까요?”
 “하하! 낸들 알겠느냐.”
 “그곳 지형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곳저곳 안 가본 데 없이 많이 다녀봤는데, 처음 보는 곳이더군요. 금역(禁域) 아닙니까?”
 “내 곁에 있으려면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아! 죄송합니다.”
 “이번에 수색을 받았으니 춘검은 받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하! 올 봄에는 봄나들이나 갈까? 어디 좋은데······”
 위지패문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뭐냐?”
 “죄송합니다.”
 “죄······ 송? 후후후! 그랬군. 수색이 아니었어. 넌 언제 알았느냐?”
 “방금 말씀하셨죠. 어른 곁에 있으려면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믿었던 부하가 칠채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겨눴다.
 “장원에서는 거행하기 어렵더냐?”
 “어르신을 따르는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친구들까지 베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하하! 미련한 위인······ 지금쯤 장원은 도살장이 되고 있을 터이거늘.”
 완전말소(完全抹消) 명령이다.
 계야부가 사건을 저질렀다. 그와 관계된 모든 자는 제거대상이다. 허면 지금 검을 겨누고 있는 불쌍한 위인조차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만큼 곁에 있었으면 이런 간단한 이치 정도는 꿰뚫어봐야 하거늘.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런 날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다.
 안선을 위해서 죽으리라. 기꺼이 죽는다. 그리 결심했다.
 헌데 쉽지 않다. 식솔들의 비명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인, 하녀들이 한밤중에 날벼락을 맞고 있다.
 안선을 위해 죽음을 택하기까지는 약간의 고민과 결단이 필요하다.
 육교사의 직명은 가져온 자는 자신을 낮게 보았다.
 죽으라는 명이 떨어졌을 때, 반항할 위인으로 봤다. 그렇기에 이런 수를 쓴 것이다. 자신이 발버둥 쳐봤자 죽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일을 끝내고 싶은 것이다.
 역시 안선에서 온 사람답다.
 “검을 써라.”
 그는 눈을 감았다.
 휘르르륵······!
 검풍이 분다. 검에 실린 예기가 피부를 저민다.
 파라라락!
 꽃비가 떨어진다. 우박인가?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진다. 우박? 한겨울에?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처참하게 짓이겨진 수하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향해 겨눴던 칠채검은 이제 그의 육신을 부축해주는 지팡이로 전락했다.
 “대나무······ 도(刀)!”
 손가락 두 개 길이의 죽도들이 수하의 육신을 난자했다.
 얼핏 봐도 이삼십 개는 박힌 것 같다.
 음성도 들렸다.
 “내 앞에서 검을 뽑지 말라고 했잖아.”
 계아부, 그의 음성이다.
 위지패문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장원은 이미 초토화되었다. 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처자식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이 죽었다.
 안선 덕분에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지냈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그동안 자신이 애써서 일궈왔다고 생각했던 게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몸 편하게 살아온 과거밖에 없다.
 “죽은 사람밖에 없던가?”
 “모두들 편안하게 갔소.”
 위지패문이 물은 건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을 확실하게 처리한다. 목적한 바를 끝내지 않고는 돌아서지 않는다.
 장원 사람들은 다 죽였을지 몰라도 자신이 살아 있다. 설마 이들을 믿고 돌아간 건 아닐 것이다.
 수하가 죽어 있다. 남의 집 기와 위에도 시신이 여섯 구 있다.
 이들 일곱이면 자신을 죽일 만하다. 십중팔구 죽인다. 그렇다고 결과도 보지 않고 돌아갔단 말인가.
 ‘다른 일이 있어!’
 그들은 또 다른 자를 죽이러 간 것이다.
 누굴까? 누굴 죽이러 갔나? 계야부와 관계된 자들은 모두 죽일 것이니······ 도사!
 그들은 말똥구리 부대로 갔다. 윗선에서 명을 받았다는 도사를 죽이러 갔다.
 계야부에게 말해줘야 하나? 아서라. 이미 늦었다. 가슴만 미어질 뿐이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안선의 금기사항 아니오?”
 “그렇군. 저 여자는?”
 “내가 한 일이 이거요. 이 여자를 납치해 오는 것. 헌데 기껏 납치해 왔더니 장원이 불타버리고 없습디다. 여자를 인계받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소. 받으시오.”
 계야부는 사약란의 등을 떠밀어 위지패문에게 넘겼다.
 위지패문이 얼떨결에 떠밀려오는 여인을 받았다.
 “이제 어쩔 거요?”
 “뭐, 뭐가 말인가?”
 “나에 대한 것만 말하시오. 계속 이런 일을 시킬 거요? 아니면 이제 그만 놔줄 거요?”
 “허허허! 안선을 빠져나가는 길이 뭔지 말해주지 않았나 보군. 날 보면 알지 않은가. 죽음이네. 그 전에는 빠져나갈 수 없네.”
 “빌어먹을! 군에 있는 나를 주목했다 했소! 다른 놈도 많은데 하필이면 날 건드린 이유가 뭐야!”
 “자네는 신화를 이뤄냈지 않은가. 첨각 정탐 이백사십칠 회 생존.”
 군이나 세간이나 똑같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군에서는 저과 아군이 분명한데, 이 빌어먹을 곳은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날 쫓아낸 도사가 그럽디다. 자기는 입도 벙긋하지 못할 윗선에서 떨어진 명이라고. 누구에게 손을 쓴 거요?”
 “군부의 일은 내 소관이 아니네.”
 “뭐요?”
 “정확히 말해주지. 내가 받은 명은 자네를 주목하라는 거였어. 정칠품 파총 계야부를 주목하라. 무공, 성격, 독심(毒心)······ 모든 면을 판단해서 종합된 의견을 제출하라. 두 번째 받은 명은 자네가 군에서 전역할 것이니 일을 시킬 수 있는 상태로 만들라는 것이었네.”
 “안선은 뭐하는 곳이오?”
 “원의 잔당을······”
 계야부가 사약란을 쳐다보며 물었다.
 “원나라 사람이오?”
 “아니오.”
 그녀의 대답은 또렷했다.
 오면서 계야부에게 수차 물었던 그가 누구이며 왜 자신을 납치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아주 간단하게 풀려버렸다. 이제는 계야부가 누군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납치했는지 알게 되었다.
 안선이라는 곳, 대단한 곳이다.
 군에 있는 사람까지 강제로 전역시켜서 일을 부릴 정도라면 군부에서도 상당히 높은 사람이 관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그런 사람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반드시 무림과 선이 닿아 있고, 상계(商界)에도 막강한 지원자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주역이 아니라 지원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고.
 불쌍하게도 계야부는 자신이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수레바퀴 앞에 선 당랑(螳螂)이다.
 바퀴가 한 바퀴만 구르면 찍소리도 못하고 압사당한다.
 계야부가 다시 물어왔다.
 “원의 잔당이오? 원의 간세요?”
 “아뇨.”
 계야부는 위지패문을 쳐다봤다.
 “아니라잖소. 다시 물읍시다. 안선, 뭐하는 곳이오?”
 “원의 잔당······”
 순간이다. 계야부의 신형이 잠깐 주저앉는다 싶더니 펄쩍 솟구쳤다.
 퍼억!
 강력한 주먹이 위지패문의 턱을 강타했다.
 그의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손으로는 위지패문의 오른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목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를 밀쳐 담벼락에 갖다 붙였다.
 “안선이 뭐하는 곳이라고?”
 “꺼어억!”
 “목뼈 부러진다. 말해!”
 “꺼억! 꺼어억!”
 “무림 비밀조직이에요.”
 대답은 엉뚱하게도 사약란의 입에서 나왔다.
 계야부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안선을 누가 이끄는지는 모르지만 무총(武總)을 건드리기로 작정한 것 같네요.”
 “안선에 대해서 잘 아오?”
 “잘 몰라요. 좀처럼 꼬리가 잡히지 않아서. 그 사람, 놔줄래요? 아주 중요할 것 같아요.”
 “내가 소저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계야부가 위지패문의 목을 풀어주며 말했다.
 “들어야 해요. 나만이 당신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소저, 소저 방명(芳名)이 어찌 되시는지.”
 위지패문이 물었다.
 “사약란이에요.”
 “무총 서군사(西軍師)! 당신이!”
 위지패문은 깜짝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
 기가 막힌 것은 계야부다.
 “무총이 뭐요? 서군사는 또 뭐고?”
 위지패문은 너무 기가 막혀서 입을 쩍 벌렸다.
 무총은 당금 무림을 좌지우지하는 최고 문파다. 중원 전역에 분타만 삼백여 개를 가지고 있다.
 무총은 중원을 사분(四分)하여 관리하고 있다.
 총단이 있고, 동서남북(東西南北)에 지단(支壇)이 있으며, 지단주 옆게 군사를 배치했다.
 사약란은 서지단의 군사로 무총 군사들 중에서도 가장 지략이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다.
 위지패문 정도가 상대할 수 없는 거물인 것이다.
 사약란은 계야부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생긋 웃었다.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 바 있다. 헌데 그때도 이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성오존자까지 만났다. 성오존자가 직접 자신의 법명까지 밝혔다.
 그런데도 무례한 언사를 써가며 길을 비키라고 했다. 일초지적(一招之敵)도 안 되는 사람이 겁 모르고 날뛰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이들은 단순하다. 아주 단순하다. 머릿속에는 오직 군대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소저, 가시오. 미안했소. 이 사람도 데려가시오. 어차피 놔둬봐야 제거대상이니.”
 계야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위지패문의 혈(穴)을 찍은 후, 사약란에게 넘겨주었다.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안선, 죽어야만 빠져나올 수 있다는 곳.
 일 한 번 해주면 놔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단순했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이라면 이쪽도 알아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낫다.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은 어쩔 거예요?”
 그는 부사영을 떠올렸다.
 그놈······ 죽으라고 내버려둘 수 없다.
 무총이 뭐하는 곳인지 모르지만 가서 구해 와야 한다. 그때로부터 십여 일이 지났으니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제 목숨은 제가 챙겨야 한다는 말똥구리지만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주는 것이 벗의 도리 아니겠는가.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 합시다. 보아하니 소저께서 무총에 큰 힘이 있는 것 같은데, 부사영이란 친구······ 목숨만 건져주시오.”
 “걱정 마세요.”
 그녀는 너무도 쉽게 대답했다.
 “혈을 이따위로 찍다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무식하다 무식하다 내 저리 무식한 자는 처음이다. 자네 사람 잘 만난 줄 알아. 조금만 늦었어도 내공이 완전히 바닥났어.”
 성오존자가 위지패문의 혈을 풀어주었다.
 위지패문은 도주할 생각도 못했다. 성오존자 앞에서 그는 고양이 앞에 쥐였다.
 “저 사람 나이가 몇이에요?”
 사약란이 위지패문에게 물었다.
 “스물넷으로 알고 있소.”
 “말똥구리로 전출된 게 이 년 전이라고요?”
 “그렇소.”
 “그럼 스물두 살에 파총이 되었다는 건데, 그만하면 꽤 승승장구한 편 아닌가요?”
 “그렇지. 가만 놔뒀으면 선위장군(宣威將軍)까지 될 자였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선무장군 정 장군 휘하에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말해주었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자인 것만은 틀림없네요.”
 그녀가 생긋 웃으며 성오존자를 쳐다봤다.
 “저 사람에게 관심 있으신 거죠?”
 “관심은 네가 더 있어 보인다만······”
 “뒤를 좀 봐주세요. 안선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네요.”
 “너도 조심······ 어! 저자가 다시 돌아오는데? 허허허! 아무래도 네가 저자를 돌봐야 될 것 같다. 자네, 나에 대한 말은 입도 벙긋하지 말게. 치도곤 치를 것이야!”
 그는 위지패문을 노려본 후,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잠시 후, 계야부가 왔다.
 “갑시다.”
 “어디로요?”
 “내가 데려왔으니 데려다 줘야겠소. 가는 길에 부사영을 데려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오.”
 “왜 생각을 바꾸신 거예요? 제가 무공을 몰라서요?”
 “······”
 계야부는 대답 없이 앞서 나갔다.
 
 
 제6장 이상한 기연(奇緣)
 
 
 1
 
 
 “일은 성공했으나······ 날을 잘못 택했군. 성오존자가 하필 그 시간에 거기를······”
 “일은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성오존자까지 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성오존자를 치려면 여기 있는 분들 중에 네 분 정도는 나서야 합니다. 성공하면 다행이나 실패하면 네 분은 모든 걸 잃을 겁니다. 그래도 하시겠소?”
 “······”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사안이다.
 성오존자의 무위는 경천동지(驚天動地)다. 그를 상대로 싸운다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너무 강하다. 너무 강한 자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누가 나설 것인가.
 “십 일이면 사약란이 서지단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때는 이런 기회마저 사라집니다. 그녀가 밖에 있을 때 처리를 해야지요. 다행히 서지단에서는 성오존자를 믿고 사람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몇 분이 도와주신다면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나섰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여러분, 목적을 분명히 하셔야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사약란뿐입니다. 성오존자는 애초부터 칠 생각이 없었어요. 그를 지금 와서 왜 치겠다는 겁니까? 생각을 바꿉시다. 계야부에게서 성오존자만 떼어놓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약란 곁에는 성오존자밖에 없어요. 성오존자도 그 사실을 압니다. 서지단에 돌아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을 겁니다. 그를 제거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어요.”
 “후후후! 전혀 그렇지는 않지요. 그들은 지금 대동부(大同府)에 있소이다. 대동부에는 백등산(白登山)이 있지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시오.”
 “백등산 운강석굴(雲崗石窟)은 불교계(佛敎界)의 보물입니다. 그걸 무너트린다면 제아무리 성오존자라 해도 발길을 옮기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운강······ 석굴을 무너트린다?”
 “동굴이 마흔다섯 개. 동굴감실이 이백오십여 개. 불상이 오만여 개. 이걸 무너트린다······”
 “그게 가당키나 하겠소이까. 아무리 그래도 운강석굴을 무너트린다는 것은 너무 무모해 보이는군요.”
 “누가 무너트리자고 했나. 시도만 하자는 거지. 성오존자는 시도만으로도 달려올 걸세.”
 “믿게끔은 만들어야지요.”
 “그래야지. 사이비(似而非) 종교를 한두 개쯤 등장시키는 것도 좋겠군. 부처와 척을 져야 하고······ 아예 부처는 사기꾼이다 하고 성토하면 더욱 좋겠어.”
 “그 정도면 석굴을 붕괴시킬 명분은 선 셈이지요.”
 “문제는 운강석굴 관리를 대동부에서 하고 있다는 건데.”
 “대동부의 동지(同知)가 안선주입니다. 그가 지부(知府)만 설득한다면 대동부는 간여하지 않을 겁니다.”
 “잘 됐군. 일이 수월해졌어. 그가 지부를 설득하지 못할 경우도 대비해야지?”
 “염려 놓으십시오.”
 “그럼 그 방향으로 하지. 성오존자를 떼어놓는 방향으로 해. 그를 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커. 맹수를 잡을 때는 몸통을 칠 필요가 없어. 발목만 자르면 돼. 허면 가만 놔둬도 굶어죽어. 쉽게 가자고.”
 그들은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십교사, 내가 십일주를 정리하라고 시켰네. 월권이었나?”
 “아닙니다. 당연히 정리할 수순이었습니다.”
 “십삼주 일도 안 됐어. 사람이 참 유능했는데. 대접도 넉넉히 잘 받았고.”
 “일이 한 번에 풀렸으면 좋았을 텐데, 정보수집이 미숙했던 탓입니다. 여러 번에 걸쳐서 확인했는데 그래도 챙기지 못한 부분이 많았나 봅니다.”
 “그것 때문에 하는 말이네만 서지단에 있는 친구······ 엉망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좀 유능한 친구로 바꾸지 그러나? 뒤통수 맞기 딱 알맞지 않겠어.”
 “하하하! 벌써 정리했습니다.”
 “그런가? 발 한 번 빠르군. 자네는 언제나 빨랐지. 허허허! 내가 괜히 말했나 보군. 미안허이.”
 “그런 말씀 마십시오. 모두 제 불찰이 크다보니 벌어진 일이지요.”
 “아! 그 계야부라는 친구 말이야. 어쩔 셈인가?”
 “그자의 수명은 사약란을 빼내오는 것으로 끝났지요. 용도가 다했으니 폐기처분 아닙니까.”
 “후후후!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워. 내가 거둬도 될까?”
 “그자를요? 그 정도 되는 친구는 많지 않습니까?”
 “그 친구보다 무공이 뛰어난 자는 많지. 허나 그 친구만큼 일을 똑 부러지게 하는 친구는 흔치 않네. 욕심나는 친구야.”
 “반심(叛心)을 제거하지 않으면 화(禍)가 될 자이지요.”
 “세공단(洗功丹)을 쓸 생각이네.”
 “세······ 공단까지!”
 “세공단을 쓰게 되면······ 놈을 장악하는 건 쉽지만 그리 되면······ 성오존자가 빠져도 사약란을 데려오기가 쉽지 않을 걸세. 자네 정도는 되어야 데려올 수 있을 거야.”
 “저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놈에게 세공단을 먹이려면 누군가 놈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고, 안선이 표면에 드러나게 됩니다. 육교사, 안선을 숨기기 위해서 군에 있는 놈까지 데려왔습니다. 수만 냥을 쓰고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헌데 이제 놈을 거두겠다고 안선을 드러낸다면······”
 “허허허!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네.”
 “······!”
 십교사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나야 어디를 어떻게 다녀도 흔적 하나 남지 않는 사람 아닌가. 놈 앞에서 안선이라고 인정해도, 아니 성오존자에게 눈도장이 찍혀도 날 찾지는 못할 걸세. 나를 통해 안선을 찾는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생각지 않나?”
 “아닙니다. 육교사께서 직접 나서신다면 안선이 드러날 염려는 없지요. 좋습니다. 사약란을 데려올 때, 놈은 살려두겠습니다. 허나 저는 육교사 같지 않으니······”
 “허허허! 다른 자들이 있으면 죽이시게. 허허허! 그럼 우리 모든 양해가 끝났나?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나눴구먼.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세. 허허허”
 그들에게 어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2
 
 
 올 때는 둘이었으나 갈 때는 셋이 되었다.
 달라진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사약란이 계야부를 보는 눈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부사영이 풀려나면 뭘 할 거예요?”
 “군에 갈 생각이오.”
 “또요?”
 “내가 배운 거라고는 사람 죽이는 것밖에 없소.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정해져 있는 법이지.”
 “그럼 무인도 군대가 제자리겠네요?”
 “무인과 군인은 다르오. 무인은 바른 성품을 먼저 함양한 후, 검을 잡소. 군인은 검을 잡자마자 적진에 뛰어들어야 하오. 검도(劍道)를 추구하는 자와 살귀(殺鬼)로 양성된 자는 다른 법이오.”
 “군인의 검은 사람을 죽이는 검. 맞죠?”
 “······”
 “무인의 검은요?”
 ‘사람을 죽이는 검.’
 계야부의 대답은 하나였다.
 진정으로 검도를 추구하는 자는 수련장에서만 검을 써야 한다. 수련장을 벗어나서까지 패검(佩劍)을 해서는 안 된다.
 허리에 검을 찬다는 것, 그것은 사람을 죽이고자 함이다.
 물론 당사자는 아니라고 해도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검을 뽑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다. 그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은 아무것도 없다.
 무인들은 활검(活劍)이란 말을 종종 쓴다.
 사람을 살리는 검이란다. 사람을 죽이는 검을 막으면 그게 사람을 살리는 것이란다.
 웃기는 소리다.
 검과 검의 대결에서는 사검과 활검의 경계가 없다.
 실력차가 월등하게 벌어져서 상대를 가지고 놀 정도여야만 활검이란 말을 쓸 수 있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끼리 만나면 오직 사검밖에 없다.
 권각술도 마찬가지다.
 주먹과 발을 무엇 때문에 수련하는가.
 사람을 치기 위해서다. 자신이 먼저 공격하는 경우도 있고, 걸어오는 공격에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치기 위해 수련했다는 점에서는 모두 똑같다.
 진정으로 정신을 수양하기 위해 무공을 수련했다면 범인(凡人)이 때리는 뭇매를 맞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무인이 있던가?
 계야부는 사약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저기서 뭐 좀 먹고 가요.”
 사약란이 반장(飯庄: 식당)을 발견하고 계야부의 옷소매를 끌었다.
 그녀는 계야부의 표정에서 물음에 대한 답을 읽었다. 눈으로 읽은 이상 굳이 귀로 들을 필요는 없었다.
 탁자가 여섯 개인 조그만 반장에는 손님이 꽉 차 있어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어멋! 기다려야 되나봐.”
 그녀의 등장은 조그만 반장은 순식간에 침묵 속으로 함몰시켰다.
 사람들이 먹는 소리도 죽이며 그녀를 쳐다봤다. 이 순간만큼은 어떠한 잡음도 용납되지 않았다.
 “저 손님 죄송하지만 자리가······ 괜찮으시다면 합석이라도.”
 “어멋! 그럼요. 합석하면 어때요.”
 그녀가 스스럼없이 방긋 웃었다.
 허나 두 사람은 움직이지 못했다. 계야부가 위지패문과 사약란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움직이지 마.”
 장난이 아니다. 원래 장난 같은 거, 모르는 사람이다. 지금 그의 음성은 어느 때보다도 낮게 가라앉았다. 마치 맹수가 싸움 직전에 으르렁거리는 것 같다.
 계야부는 두 사람을 제자리에 있게 한 후, 반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탁자 사이를 지나쳤다.
 한 탁자에 여섯 명씩 다섯 탁자 삼십 명.
 식당 주인이 합석시키려 했던 마지막 한 탁자에는 칠순에 가까운 노인 한 명.
 계야부는 노인 앞으로 걸어가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허허! 그렇지? 한 보름 됐나?”
 사약란은 노인을 유심히 살폈다. 보지 않는 척 하면서 꼼꼼히 봤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짐작해냈다.
 한 마디로 호랑이 굴로 기어들어왔다.
 반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안선 사람으로 추측된다. 계야부가 마주하고 앉은 노인이 자신을 납치하라고 시킨 주역이다.
 만난 지 보름.
 그녀가 계야부를 만난 것도 보름 전이다.
 “장원이 불탔더군요.”
 “허허허! 미련한 위인이 꼬리를 밟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네. 흠! 이리들 오지 그러나. 이게 모두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먹어야지.”
 노인이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가요.”
 사약란이 위지패문의 손을 잡아끌었다.
 사실 위지패문은 딱딱하게 굳어버려서 발을 떼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도 계야부의 말을 들었다. 그가 마주한 노인이 교사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는 교사라고는 안선에 들어오면서 십교사를 딱 한 번 봤다. 다른 교사는 일절 보지 못했다.
 허름한 반장에서 십교사보다 윗길에 있는 교사를 만났으니 굳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그는 제거대상으로 낙인찍히지 않았던가.
 위지패문은 사약란이 이끄는 대로 엉거주춤 따라갔다.
 그때다! 계야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움직이지 마!”
 사약란은 듣지 않았다.
 노인은 신비의 조직, 안선이다. 위지태문조차도 딱딱하게 굳어버릴 정도로 거물이다.
 이런 사람에게서 얻어 듣는 정보는 간자 수십 명이 목숨을 걸어가며 거둬 들인 정보와 맞먹는다.
 그녀는 위지태문을 이끌고 노인 앞에 앉았다.
 “사약란이라고 해요.”
 그녀가 포권지례를 취했다.
 “허허허! 합석 좀 하는 것 가지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소. 어서 앉으시오. 이곳 산서는 음식이 발달하지 못했다오. 하지만 면조(面條: 국수)는 먹을 만하지.”
 “면조 세 그릇 주세요.”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노인만 노려보는 계야부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위지패문 것까지 함께 주문했다.
 “안선이시죠? 교사시고요?”
 그녀의 물음은 당돌함을 넘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다.
 비밀을 절대 수칙으로 여기는 안선 사람들 앞에서 신분을 공개적으로 물으면 어쩌란 말인가.
 “허허허! 맞네.”
 뜻밖에도 그는 순순히 시인했다.
 “절 납치하라고 하셨고요?”
 “맞네.”
 “왜요?”
 “왜일까? 죽이기 위해서?”
 “아닐 것 같아요. 그거였으면 벌써 죽였겠죠.”
 반장 주인이 면조를 가지고 왔다.
 흰 면에 국물뿐인 면조지만 냄새가 진득하니 좋았다.
 “식초 여기 있네. 아! 자넨 하남이지.”
 “산서 사람들이 식초를 많이 먹는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얼마나 먹기에 그러는지 궁금했는데, 잘 됐네요.”
 그녀가 식초를 받아 위지패문에게 건네주었다.
 위지패문은 흘깃 노인을 쳐다보더니 식초를 받아 거의 반사발이나 부었다.
 “어멋!”
 사약란이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기가 막힌 것은 위지패문이 식초물이나 다름없는 면조를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계야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면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노인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먹어요. 먹어야 살죠.”
 그녀가 억지로 젓가락을 쥐어주었지만 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을 뿐, 음식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까 이야기 마저 해주세요. 왜 납치하려고 했는지 궁금하거든요.”
 그녀가 면조를 푹 떠서 먹으며 말했다.
 “자네만 잡으면 서지단이 무너지기 때문이지.”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면조를 먹었다.
 “무총과 원한이 깊은가 봐요?”
 “아니야, 아니야. 생각해 보니 그게 아냐. 서지단 같은 것 무너진들 어떻고 안 무너지면 또 어떤가. 에구! 벌써 노망이 났나.”
 노인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호호호! 아까 말을 취소하시면 다른 이유를 말씀해 주셔야 되는데 생각나는 게 있으세요?”
 “있지. 자네와 연관된 이야기가 어디 한둘인가.”
 “하나만 말씀해 보시면요?”
 “자네가 총주의 손녀라는 가정은 어떨까? 그러면 납치할 명분이 서나? 서지단 정도 무너지는 것보다 훨씬 충격이 클 텐데.”
 순간, 사약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국물을 마시려고 그릇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절 데려가실 자신이 있나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오존자가 있어서 안 되겠지?”
 “그것까지!”
 “아이야. 넌 지금 내가 널 죽일 수 있다는 걸 아니? 성오존자가 왜 이 반장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는지 아니? 자신과 교만은 다른 거란다. 네 교만이 널 난처하게 만들었구나.”
 그녀의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녀는 또 다른 소리도 들었다.
 ―위험하다는 걸 알았으면 바로 빠져나와야지 이 무슨 짓이냐! 그 늙은이가 바로 만변천자(萬變天子)다. 신속히 빠져나오거라. 정히 어렵거든 싸움을 걸어라. 계야부에게 싸움을 맡겨. 계야부가 삼초만 받아내면 널 구할 수 있다. 휴우! 천방지축 날뛰는 그 성격 좀 버리라 했거늘······
 성오존자의 전음이다.
 그녀는 성오존자가 이토록 다급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만변천자는 그야말로 만 개의 얼굴을 가진 마두(魔頭)다.
 그의 변장술은 너무나 뛰어나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나이불문, 성별 불문이다. 여인이나 아이로도 변장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로 변장할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와 적이 되면 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노인이 자신의 신분을 당당히 밝힌 것도 이 반장을 벗어나는 즉시 다른 사람으로 변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각 후에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한다.
 만변천자는 변장술만 능한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각대문파의 절공들을 섭렵했다. 중원에서 이름나다는 비급들은 모두 들춰봤다.
 그의 무공은 초일류다.
 성오존자조차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마두 중에 마두다.
 “우리 용건부터 마무리 지읍시다.”
 계야부가 말했다.
 “서소저를 납치해 왔지만 장원에는 아무도 없었소. 난 약속을 지켰고, 안선은 지키지 않았소. 안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거래는 끝난 것이오.”
 “거래라······ 누가 거래를 했노?”
 “······”
 “우린 자네 목숨을 빌려준 것인데, 그걸 자네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나?”
 “뭐요?”
 “자네 목숨은 우리 것이네. 우리가 언제든 거둘 수 있지.”
 “후후후! 거래뿐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끝났군. 더 보지 맙시다.”
 계야부가 몸을 일으켰다.
 노인은 계야부를 쳐다보지 않고 사약란에게 물었다.
 “아이야, 사전투광신보가 누구 절학인고?”
 “······”
 사약란은 대답하지 못했다. 계야부를 힐끔 쳐다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앉지. 무당파(武當派)의 공적이 되기 싫으면. 아무리 남이 준 절기를 혼자 수련했다고 해도 무당파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계야부의 두 눈에 불이 붙었다.
 노인은 품속에서 목함(木函)을 꺼내 계야부 앞에 내밀었다.
 “열어봐.”
 “······”
 “열어보래도.”
 계야부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며 목함을 열었다.
 안에는 청록빛 단환 한 알이 들어 있었다.
 일순, 청아한 향기가 반장 안을 가득 메웠다. 봄에 피는 꽃향기를 미리 맡는다고 할까?
 “세공단(洗功丹)이라는 것일세. 복용하지.”
 “안 돼요!”
 세공단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약란이 벌떡 일어섰다.
 계야부가 눈으로 물어왔다.
 ‘뭐야?’
 “그건 말이 세공단이지 마단(魔丹)이에요. 매달 보름, 음기가 충만할 때 세공단을 복용하지 않으면 정혈이 고갈되어 죽어요. 그건······ 그건 한 번 복용하면 영원히 복용해야 해요.”
 “허허! 나쁜 점만 말해주면 어쩌누. 좋은 점도 말해줘야지. 그걸 복용하면 자네의 내공은 일약 이갑자(二甲子)에 이를 걸세. 백이십 년 동안 정진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이지. 허허허! 그야말로 무적 아닌가. 단환이 떨어지는 건 걱정 말게. 매달 사람을 시켜서라도 전달해줌세. 자넨 내 심부름 하나씩만 해주면 되는 거야. 그 외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겠네.”
 계야부는 세공단을 꺼내 꽉 움켜잡았다.
 “그러지 않는 게 좋아. 자네가 그걸 으스러트리면 난 사 소저를 죽일 걸세. 내 눈을 보게. 진심이 보이지 않나?”
 “안 돼요. 그걸 복용하면 꼭두각시가 되는 거예요!”
 사약란의 얼굴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사람 마음을 읽는다.
 계야부는 산서로 오는 동안 심하게 번뇌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이상 사이의 갈등이다.
 그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를 편하게 대했다.
 성오존자가 뒤따르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전음을 보내왔지만 그 때문에 안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악인이 아니다. 불의를 저지를 위인도 못 된다. 조금만 가다듬으면 훌륭한 재목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성오존자나 할아버지께 부탁드리면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또 하나 읽은 게 있다.
 그는 이런 식의 협박을 받아본 적이 없다.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행동을 요구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이며, 여인이며, 자신이 제자리로 돌려놓고자 하는 사람의 목숨이다.
 그는 견디지 못한다.
 “안 돼요. 우리······”
 그녀가 말을 이어갈 때, 계야부는 손에 쥐고 있던 세공단을 덜컥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얼음 깨물듯 으드득 씹어 삼켰다.
 “후후후! 됐네. 오늘 밤이 정월 대보름일세. 이번 심부름은 없는 것으로 하지. 벌써 하나를 해줬으니까. 다음 보름 때 사람을 보내주겠네. 그때까지 자유를 누리게나.”
 노인은 활짝 웃으며 일어섰다.
 “우리는 조만간 만나게 되겠지. 그때 남은 이야기를 즐기세. 자넨······ 허허! 죽은 사람이 왜 돌아다니는지 모르겠어. 허허허!”
 그가 사약란과 위지태문에게 한 마디씩 하고 걸어 나갔다.
 반장에서 음식을 먹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의 뒤를 쫓았다.
 “가만히 있으랬잖아!”
 “미안해요.”
 사약란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울먹였다.
 “성오존자가 누구야!”
 “빈승일세.”
 산을 내려오며 만났던 노승이 반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탁자에 앉기 무섭게 계야부의 손목부터 잡았다.
 계야부는 반사적으로 손목을 비틀었다. 헌데 성오존자의 손은 더욱 기묘하게 움직였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각도에서 솟구쳐 완맥(腕脈)을 낚아챘다.
 “미륵삼천해(彌勒三天解)!”
 위지패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계야부는 저항을 포기했다. 간단한 일수였지만 자신이 따르지 못할 변화요 속도였다.
 그는 이제야 성오존자의 무공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그놈의 마단······ 놀라울 만큼 흡수가 빠르군.”
 “벌써 다 녹은 거예요?”
 “녹다뿐이냐. 단전에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내일 아침쯤이면 노부와도 일전을 겨룰 수 있겠어.”
 “어떻게 방법이 없겠어요?”
 “아미타불!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은 부처님께서 길을 알려주신단다. 너무 걱정말거라.”
 허나 정작 그 말을 하는 성오존자의 표정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감돌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야부가 일어섰다.
 “보호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같이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짓궂군요. 부사영에게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 이만.”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장을 나가 버렸다.
 
 
 3
 
 
 ―금강(金剛)이란 연진화정(煉津化精), 연정화기(煉精化氣)를 이루는 과정이다. 반야(般若)란 수련을 통해 기경팔맥(奇經八脈)과 십이경락(十二經絡)을 여는 것을 말한다.
 계야부는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나? 갈 길을 가게.”
 “뭐하자는 겁니까?”
 “무슨 말인가?”
 “무림에 관심 없습니다.”
 “알고 있네.”
 “더 이상 인연 맺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군. 자넨 이미 인연을 맺었어. 무림이란 곳은 정말 이상한 곳이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수많은 인연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네. 후회할 틈조차 주지 않지.”
 “돌아가십시오.”
 “난 내 길을 가는 것뿐이네.”
 “그럼 먼저 가시죠.”
 “그럴까? 아냐, 지금은 쉬고 싶어.”
 계야부는 성오존자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거머리로 보였다.
 ―수련도일정화후시(修煉到一定火候時: 수련이 일정 화후에 도달하면) 뇌후취명(腦後鷲鳴: 머리 뒤에서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리니)······
 “존자, 듣고 싶지 않습니다.”
 “뭘? 내가 뭘 했다고 자꾸 시비인가?”
 “전음, 그만 하시지요.”
 “뭔 전음을 보냈다고 그래?”
 “좋습니다. 이 공부(功夫) 이름이 뭡니까?”
 “무슨 공부?”
 계야부는 사약란에게 말했다.
 “이 길이 아니잖소?”
 “이 길 맞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무림에······”
 “관심 없다는 것 알아요.”
 파아앙!
 계야부가 느닷없이 신법을 펼쳤다.
 사전투광신보다.
 “갈수록 빨라지는군. 오늘 자정이 지나서 선공단이 다 쌓이면 빈승도 따라잡기 힘들 거야. 하지만 오늘은 아니란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성오존자는 위지패문과 사약란을 양손에 움켜쥐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허나 몸은 앞으로 나아갔다. 곧 깨알만 한 점이 보이더니, 찹쌀떡만 해지고, 밥그릇처럼 커졌다.
 ―백일축기(百日築基: 백일은 축기 단계이니) 조식(調息), 섭심(攝心)에 힘을 쏟을 것이며······
 계야부가 신법을 멈췄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공부 이름이 뭡니까?”
 “금강반야선공(金剛般若禪功)이라고 절학 중의 절학이지.”
 “싫다는 사람에게 굳이 권하는 이유가 뭡니까?”
 “묻기 전에 생각하는 법이 없군. 세공단을 복용했기 때문 아닌가.”
 “이게 도움이 됩니까?”
 “전혀 안 되지. 다음 달 보름이면 정혈이 고갈되어 죽든가 만변천자의 수족 노릇을 해야겠지.”
 “그럼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요!”
 “자네에게는 약란이를 서지단까지 데려다 줄 의무가 있지 않은가. 자네가 데려왔으니 자네가 데려다 줘야지.”
 “그거야 존자께서······”
 “난 다른데 가볼 데가 있네.”
 “후후후!”
 “농 같은가? 어떤 자들이 백등산에 있는 운강석굴을 부순다는군. 아미타불! 아무래도 날 떼어놓기 위해서 안선인가 뭔가 하는 데서 수작을 부렸다는 생각이 드네.”
 “······”
 계야부는 할 말이 없었다.
 무림이란 정말 수렁이다. 한 번 발을 디디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인가 보다.
 “진작 용건을 말씀하셨으면······”
 “자네 무공으로는 어림없네.”
 “후후! 잊으셨습니까? 오늘 밤만 지나면 이갑자 내공을 얻습니다.”
 “만변천자가 그걸 모르고 줬을까? 좌우지간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법이 없다니까. 내공이 아무리 강하면 뭐하나. 움직임이 다 읽히는데. 고수가 괜히 고수인 줄 아는가? 눈빛만 봐도 움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고수인 걸세.”
 그런 게 고수라면 계야부도 ‘고수’라는 말을 사양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그처럼 사람을 많이 죽여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매번 침투할 때마다 두 명 이상을 죽였다. 군 생활 이 년 동안 오백 명 이상을 죽인 것이다.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다.
 헌데 움직임이 읽힌다고?
 성오존자는 계야부의 생각을 읽은 듯 말을 이었다.
 “자네의 싸움 방법은 독특하지. 어떠한 조식이 없어. 빠른 몸놀림과 반사신경, 그리고 병기에 의존한 살법(殺法)이야. 그것도 어느 정도 무림에서 통하네만 진짜 고수를 만나면 어림없네. 자네의 솜씨, 나한테 시험해 볼 텐가?”
 계야부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법이면 신법, 수공이면 수공······ 어느 것 하나 이겨내는 게 없다.
 계야부는 그것을 내공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네에게 초식을 일러줄 시간은 없네. 초식이란 수십, 수백 번 고련을 거쳐서 몸에 붙여야만 효용이 나오는 거지, 비급 한 번 보고 됐다 하는 게 아니라네.”
 성오존자가 길 옆 바위에 앉았다.
 “금강반야선공을 알려줄 테니 그것으로 사전투광신보를 펼쳐보게. 가히 신의 빠름이 나올 걸세. 이런 건 무당 말코 도사들도 몰라. 그런 빠름에 자네의 사검을 보태고, 세공단의 효험을 빌리면 좀 쓸 만해지겠지.”
 “구결을 알려주시죠.”
 “고맙다는 말은 안 하나?”
 “······”
 “쯧! 버르장머리하고는. 이거야 원 천하의 절기를 사정사정해서 알려주는 꼴이니.”
 그는 말을 멈추고 입술을 오물거렸다.
 계야부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소림(少林) 절학(絶學) 중에 하나인 금강반야선공이 계야부에게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만변천자가 큰 실수했네요.”
 사약란이 떠오르는 달을 보며 말했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되니까. 오늘이 지나면 다음 보름달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저게 그때까지 가만있겠어? 발광을 해도 수십 번은 하겠지. 그러면 죽일 수밖에 없을 테고.”
 “안선이 저 사람을 거둘 생각이란 건가요?”
 “그런 것 같구나.”
 “금강반야선공에 사전투광신보면 만변천자를 막을 수 있어요?”
 “이갑자 내공은 왜 빼먹어?”
 “정말 방법이 없나요?”
 성오존자가 입을 다물었다.
 ―서지단에 도착하면 계야부를 가둬라. 무공으로 상대할 생각 말고 머리를 써.
 사약란이 성오존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럴 수 없어요.’
 ―네 마음이 아픈 건 안다만 계야부는 악마의 열매를 먹었다. 너를 안전하게 호위해야 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금강반야선공을 알려줬지만, 그로 인해 계야부는 절정고수 반열에 올라버렸다. 달콤한 꿀맛을 봤는데, 그걸 놓치려 하겠느냐?
 사약란은 다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휴우! 아미타불! 아미타불!”
 성오존자가 길게 한숨을 쉬며 불호를 외웠다.
 계야부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코가 꽉 막혔다가 뻥 뚫렸을 때처럼 백회혈(百會穴)에 큰 구멍이 생기며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끼리리릭! 끼익!
 뒷머리에서 섬뜩한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두 귀가 활짝 열리며 세상의 모든 소리가 두 배 이상 커졌다.
 서지단에 도착하면 계야부를 가둬라. 무공으로 상대할 생각 말고 머리를 써.
 성오존자의 음성도 또렷하게 들렸다.
 네 마음이 아픈 건 안다만······
 계야부는 금강반야선공을 풀고 하늘을 쳐다봤다.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다. 정확히 자시(子時)다. 세공단이 완전히 녹아서 단전에 축적되었다.
 만변천자는 그를 부리기 위해 세공단을 먹였다. 성오존자는 사약란을 호위하게 하려고 소림의 절학의 내줬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위해서 내준 건 아무것도 없다.
 무림은 이런 곳인가.
 차라리 목숨 걸고 적진에 들어갔다가 생환하여 화주 한 잔 먹는 말똥구리들이 훨씬 낫지 않은가.
 “어떤가?”
 성오존자가 물어왔다.
 “좋습니다.”
 계야부는 내색하지 않았다.
 “한 번 시험해 보겠는가?”
 “피곤하군요. 잠을 자야겠습니다.”
 계야부는 등을 돌리고 돌아누웠다.
 
 
 제7장 선택(選擇)
 
 
 1
 
 
 탕탕! 탕탕탕!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세 사람은 대장간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병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따 해질녘에나 만들어진데도 되게 말 안 듣네. 거기 그러고 있으니까 신경 쓰이잖아요!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면 어때서 그러고 있소! 에구!”
 철장(鐵匠: 대장장이)은 빨갛게 달궈진 쇠를 연신 두들기면서 싫은 소리를 했다.
 화롯불에 비친 근육이 몹시 우람하다.
 탕탕탕! 치이익! 땅땅! 치익!
 불에 달구고, 두들기고, 냉각시키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드디어 두 자루의 병기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길이는 한 자, 하나는 검이며 다른 하나는 자모도다.
 그도 토노번인들과 전투를 치를 때는 삼척장검을 사용했었다. 허나 팔부군과 싸우는 동안 삼척장검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맞는 병기가 최고다.
 그는 한 자 길이의 단검과 자모도를 찾기 위해 수십 번에 걸친 시행착오를 거쳤다.
 일반적인 단검과 자모도는 길이가 너무 짧아서 병기끼리의 부딪침에 취약했다. 삼척장검은 두 자루를 동시에 쓰기가 용이하지 않았고, 쌍검은 휴대하기가 불편했다.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 그는 자신에게 맞는 병기를 직접 제작했다.
 부사영의 검처럼 뛰어난 보검은 아니지만 전투에서는 최고의 친구였다.
 “소저, 내가 따라가야겠소?”
 위지패문이 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같이 가는 게 좋아요.”
 그가 해줄 말이 없다는 걸 알았다. 십일주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를 데려가 봐야 더 얻을 건 없다. 그러나 데려간다. 데려가지 않으면 죽는다. 다른 의도는 없다. 순전히 그의 안위를 위해서 데려가려는 거다.
 “괜히 짐만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하구려.”
 “안선주들의 활동상황이나 상세히 말해주세요.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해요? 안선주로 선정되는 사람들의 기준은 뭐고요?”
 두 사람은 안선주에 대한 말을 주고받았다.
 계야부는 관심 없었다.
 그는 빨갛게 타오르는 병기를 쳐다봤다.
 쳐다보는 정도가 아니다. 눈길을 꽂았다. 죽음에서 깨어나 새 생명을 얻으라고 간절히 외쳤다.
 그는 늘 병기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다. 그러려면 탄생할 때부터 간절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굳이 대장간을 떠나지 않고 제련과정을 지켜보는 이유다.
 헌데 문득 그의 귀가 열렸다.
 스스스스슷!
 십여 명에 이르는 무인이 다가온다.
 신법으로 미루어 상당히 강한 자들이다.
 “철장, 만들다 버린 검 있소?”
 “저쪽에서 찾아보슈.”
 그가 대장간 한 구석에 잔뜩 쌓여 있는 쇠붙이들을 가리켰다.
 찾아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는 날이 서지 않은 뭉툭한 검 두 자루를 집었다. 그리고 검병이 없이 날만 만들어진 그야말로 쇠붙이다.
 “나갈까?”
 사약란과 위지패문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파아앙! 꽈악!
 금강반야선공과 사전투광신보, 거기에 이갑자의 내공이 보태졌다.
 그의 신형은 화살보다 빨랐다. 이갑자의 공력이 실린 쇠붙이는 천근 암석이 되어 육신을 짓이겼다. 활짝 열려진 오감과 그의 타고난 반사신경은 상대가 병기를 쳐오자 마자 허점을 찾아냈다.
 병기의 어울림이 있을 수 없다.
 일검일사(一劍一死)다. 초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손짓 한 번에 한 사람의 목숨이 끊어진다.
 열 명의 목숨이 스러지기까지 딱 다섯 호흡이 소요되었다.
 “대단하군.”
 뒷짐을 진 사람이 걸어왔다.
 그는 열 명의 무인과 함께 왔으나 계야부가 손을 쓰는 동안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십교사······”
 위지패문이 그를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어찌 그를 못 알아보랴.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얼굴이다. 이삼 일 전까지는 그에게 신으로 군림한 사람이었잖은가.
 그는 승려처럼 삭발했다.
 윗머리가 동그랗게 탈모가 된 탓에 아예 주변머리를 밀어버렸다.
 이마가 넓고 광택이 나며, 눈코입······ 오관이 대체로 크다. 몸도 단단하며, 태산처럼 굳건한 기도를 뿜어낸다.
 그가 말했다.
 “상당히 괜찮은 솜씨인데 병기가 어울리지 않는군.”
 “내 병기가 아니라서 그렇소.”
 “사약란을 데려가러 왔네.”
 “만변천자에게 말 못 들었소?”
 “무슨 말 말인가?”
 “우리 거래는 끝났소.”
 “그런가?”
 “돌아가시오.”
 “그럴 수는 없지.”
 스릉! 파아앗!
 십교사가 검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불이 번쩍 터졌다.
 “사귀원형(四鬼原形)이에요! 조심······”
 사약란이 경고를 해줬으나 한 발 늦었다.
 쓰으윽!
 검날이 계야부의 가슴을 저미며 지나갔다.
 계야부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십교사의 검이 가슴을 벨 때, 뭉툭한 검은 그의 다리를 후려쳤다. 그곳이 텅 비어 있어서 쑤셔 넣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헌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
 파앗! 쓰으윽!
 다리가 어느새 없어졌다. 방금까지 있었는데,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검이 다시 옆구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크윽!”
 계야부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절정 고수와 싸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비무조차도 해보지 않았다.
 “전음 할 줄 아세요?”
 사약란이 위지패문에게 말했다.
 “할 줄 아오.”
 “전하세요.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봐라. 빨리요!”
 위지패문은 그녀가 말한 대로 전음을 날렸다.
 계야부가 움찔했다.
 “들은 것 같소.”
 “사귀원형은 형체가 없는 검으로 일명 몽살(夢殺)이라고도 불린다.”
 위지패문의 입술이 꼬물거렸다.
 “근원은 두 발과 허리. 손의 변화에 주목하지 말고 발을 봐라.”
 사약란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사귀원형은 수련해낸 사람이 극히 없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꿈속의 살인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환상적인 살인을 한다.
 그녀는 발을 보라고 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사귀원형은 근본은 단련일초(斷煉一招)다.
 일초에 쇠를 끊는 속도를 심는다. 힘으로 끊는 게 아니다. 속도다. 속도는 다리와 허리에서 나온다.
 이것이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었다.
 파앗! 파아앗!
 검이 두 번이나 스쳐갔다.
 사약란의 조언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금강반야선공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근거리 접전 중에 사전투광신보를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하수(下手)들과 싸울 때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제들이 속속 드러났다.
 파악!
 검이 허벅지를 찍었다.
 계야부는 다리를 쩔룩거리며 물러섰다.
 왼쪽 다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검에 찍힌 자국이 멀리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컸다.
 “만변천자에게 생각이 있는 것 같아서 목숨만은 보존시켜 준다. 나서지 마라.”
 그가 사약란에게 다가갔다.
 “넌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습니다.”
 “우리 안선에도 무인은 많다. 그 많은 무인을 제쳐두고 저런 자를 고용한 이유, 모르겠는가?”
 “······”
 “무총에 우리 안선이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었지. 서군사를 납치한 것이 우리 안선이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걸 네 놈이 망가트린 거야. 그러고도 어떻게 낯을 들고 걸어 다니나? 이 뻔뻔한 것아.”
 “죄송합니다.”
 “아직 죄송할 것까지는 없다. 안선을 아는 사람은 서군사와 너, 그리고 저놈과 성오존자. 이 네 명뿐이야. 저놈은 끝났고, 서군사는 내가 데려가고, 성오존자는 당분간 무천에 들리지 못할 것이다. 그럼 너만 남았군.”
 위지패문을 눈을 찔끔 감았다.
 푸욱!
 십교사의 검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삐져나왔다.
 그 순간, 위지패문은 있는 힘을 다해 검을 움켜잡았다.
 “자네에게 말을 건 죄, 이것으로 용서해 주겠나?”
 계야부에게 한 말이다.
 쒜에에엑!
 계야부의 쇠붙이가 십교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는 예전의 빠름을 되찾았다. 시구각보에 금강반야선공을 가미했다. 사전투광신보는 장거리, 달리기 용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근접 전투용으로는 쓰기에는 어색한 점이 많았다.
 그보다는 몸에 익을 대로 익은 시구각보다 낫다.
 그는 이것으로 위지패문을 노리던 안선 무인 여섯 명을 지붕 위에서 죽일 수 있었다.
 파앗! 스읏!
 날렵하다 뛰어올라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찌이익!
 십교사의 옷이 길게 찢어졌다.
 그는 발길로 위지패문을 걷어찼다. 헌데도 위지패문은 검을 놓지 않았다. 그러자 십교사는 두 손으로 검병을 잡고 힘껏 비틀었다.
 우두둑!
 위지패문의 손가락이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손바닥도 절반씩 잘려버렸다.
 그는 더 이상 검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퍼억!
 그의 육신은 두 번째 발길질에 삼 장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파앗! 스읏! 파아앙! 까깡! 까가강!
 검과 검이 부딪쳤다.
 십교사의 사귀원형과 계야부의 시구각보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다만 사귀원형은 움직이는 반경이 좁은 반면, 시구각보는 펄쩍펄쩍 뛰어야 하기 때문에 반경 폭이 컸다.
 “정말 귀찮은 놈이군.”
 쒜에에엑!
 십교사의 검세가 돌변했다.
 지금까지보다 배는 빨라졌다. 검이 올라가는 것을 봤는데 어느새 머리 위에서 번뜩였다.
 까아앙!
 검과 쇠붙이가 부딪쳤다.
 순간, 계야부의 쇠붙이가 싹둑 잘려나갔다. 단련일초의 속도가 제대로 나온 것이다.
 쒜에엑! 까앙!
 오른 손에 든 쇠붙이도 반 토막이 되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병기와 길이가 비슷해졌다. 아니, 꼭 단검과 자모도를 들고 있는 기분이다.
 쒜에엑!
 세 번째 검이 내리쳐질 때, 계야부는 맞받지 않았다. 대신 시구각보를 펼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아니, 십교사의 가슴을 노리며 냅다 뛰어들었다.
 십교사가 검의 방향만 돌려도 몸이 절단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악!”
 지켜보던 사약란마저 비명을 내지를 정도로 위급했다.
 헌데 십교사가 훌쩍 물러섰다.
 계야부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는데, 검을 틀지 않고 몸까지 빼낸 것이다.
 쉬이익!
 계야부는 바싹 따라붙었다.
 이번에 전개한 신법은 사전투광신보다.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응용력이 생겼다. 이제 그는 두 가지 신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쒜엑! 파파팟!
 십교사와 계야부가 한테 어울렸다.
 결과는 계야부의 손해다. 십교사는 왼쪽 어께에 피를 약간 보인 정도였는데, 계야부는 몸의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가 들고 있던 반 토막 쇠붙이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십교사는 검을 들어올렸다.
 계야부는 그를 보지도 못했다. 그에게 등을 내준 채 휘청이는 몸을 바로 잡으려고 애썼다.
 십교사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검을 한 치쯤 뻗어내기까지 했다.
 그의 내심은 계야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라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만변천자······ 당신······ 후회할 것 같소.”
 그는 계야부를 찌르지 못하고 검을 거뒀다.
 “끌고 가야 하나?”
 “아뇨. 따라갈 게요. 잠시만 시간을 주실래요? 철장들에게 부탁할 말이 있어서요.”
 “그럴 시간이라면 줄 필요가 없겠군. 가지.”
 십교사가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때, 대장간에서 낯선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위지패문을 비롯하여 죽은 무인들의 육신에 소훼산(燒燬散)을 뿌렸다.
 치이익!
 뼈와 살로 만들어진 육신이 한 줌 핏물로 녹아내렸다.
 죽은 사람은 없다. 황토보다 훨씬 붉은 핏빛 땅만 존재한다.
 대장간에는 들어가 볼 필요도 없다. 방금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망치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들 역시 이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땅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계야부에게 다가갔다.
 “발라요. 금창약도 없잖아요.”
 “꼭 구해낸다.”
 “알아요. 구해주실 거예요.”
 “가.”
 “가서 기다릴게요.”
 계야부는 머리를 푹 숙인채 고개만 끄덕였다.
 “가는 모습 봐줘요. 안 보일 때까지.”
 계야부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봤다.
 “오늘 참 여러 가지로 비참해지는군.”
 계야부가 피식 웃었다.
 사약란도 웃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십교사를 따라갔다.
 탕탕탕! 따앙!
 대장간에서 망치 소리가 울려나왔다.
 계야부는 철장들이 만들다 만 병기, 단검과 자모도를 손수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여러 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가장 큰 상처는 역시 허벅지다. 살이 절반이나 베여나가 뼈가 환히 들여다보인다.
 그는 그런 중상을 입고도 여전히 움직였다. 사약란이 준 금창약을 바르고 헝겊으로 질끈 묶었다. 아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신음도 토하지 않았다.
 그의 비명은 망치가 대신 질러줬다.
 타앙! 타아앙!
 칠 주야가 지날 무렵, 뱀 한 마리가 대장간으로 기어들어왔다.
 뱀은 계야부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
 길이는 한 자 정도 되며, 색깔은 녹색이다. 머리 모양이 삼각형이니 맹독사로 추측된다.
 쉬익! 쉭! 쉬이익!
 뱀은 잔뜩 경계심을 품고 계야부를 노려봤다.
 “후후! 그러잖아도 배고픈 판인데······”
 그는 단검을 들어 뱀을 찍으려다 말고 문 쪽을 쳐다봤다.
 그곳에 사람이 서 있다.
 안면이 있는 자다. 두 번이나 본 자다. 이궁 망루에서 봤고, 강가에서 봤다.
 “서군사는 어디 있나?”
 “안선.”
 “뭐야! 이 새끼가!”
 그가 한달음에 달려와 계야부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행동하지 못했다. 멱살을 잡은 채 얼굴만 붉혔다. 계야부의 단검이 그의 명치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야부의 단검쯤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계야부는 분명히 자신보다 약했다. 그의 검이 사검이라지만 자신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헌데 피하지 못했다. 검을 쓰는 것도 보지 못했다. 검을 쓴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완벽하게 당한 것이다.
 그가 살기를 품었다면 멱살 한 번 잡으려다가 목숨을 내주는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다.
 계야부가 담담히 말했다.
 “서군사는 내가 찾아온다. 이 손 치워.”
 그는 손을 치우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한참 동안 계야부를 노려보다가 손을 들어 뺨을 갈겼다.
 쫘악!
 “이건······ 서군사를 납치한 죄다. 성오존자의 전갈이 있으니 당분간 적으로 삼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네 죄가 사라진 건 아니다. 군사를 납치한 대가는 목숨으로 치러햐 할 게다.”
 “아프군.”
 계야부는 단검을 치웠다.
 더 이상 남에게 조정당하지 않는다. 칼에 맞지도, 주먹에 얻어터지지도 않는다. 내 살과 뼈, 피를 내주지 않는다.
 단검과 자모도를 만들면서 수백 번이나 다짐했다.
 그런데 이자의 손바닥은 맞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쫘악!
 두 번째 따귀가 터졌다.
 “군사를 지키지 못하고 내준 죄다.”
 “됐나? 됐으면 좀 비키지. 보다시피 다리가 아파서.”
 이자, 사약란을 흠모하고 있다. 수하로써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연모의 마음으로 쳐다본다.
 그의 눈빛이 말해준다.
 지금 그는 너무 절박해서 사약란을 찾기 위해서라면 악마하고도 거래할 사람으로 보인다.
 “자식, 네 꼴도 참 더럽구나.”
 반가운 음성도 들렸다.
 “후후! 어서 와.”
 “나만 놔두고 가서 찾으면 한 방 먹이려고 했는데, 나보다 심하잖아. 어쩌다 이 꼴이 됐냐?”
 부사영이 견빙검을 어깨에 걸머메고 들어섰다.
 그의 몰골도 심란하기는 계야부와 비슷했다.
 얼굴은 멍투성이고, 두 다리는 질질 끌며 간신히 움직였다.
 고문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귀신과 한바탕 놀았더니 이 꼴이 되더라. 육포(肉脯) 같은 것 없냐? 배고프네.”
 계야부는 팔베개를 하고 드러누웠다.
 
 
 2
 
 
 엽위상의 마음은 한시가 급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약란을 찾아가야 한다. 그녀의 몸에 천리향이 묻어 있으니 지금이라도 천리사를 움직여야 한다. 허나 그러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천리사가 움직이지 않는다.
 놈은 대장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야부만 노려보며 씩씩거린다.
 계야부의 몸에 천리향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먹이가 눈앞에 있다.
 가까이에 있는 먹이를 놔두고 멀리 있는 먹이를 찾아 나설 동물은 없다.
 계야부의 천리향을 처리하지 못하는 한, 천리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천리사가 계야부의 몸에서 천리향을 말끔히 빨아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엽위상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계야부, 옷 벗고 누워라.”
 “······!”
 “이놈이 네 천리향을 핥아먹을 게다.”
 다급함을 안으로 삼키는 음성,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는 눈빛.
 그는 몇 마디만 했을 뿐이지만 지금 그의 심중이 어떤지는 익히 짐작되었다.
 “남세스럽군.”
 계야부가 옷을 벗고 누웠다. 그러자 천리사가 날듯이 달려들어 혀를 내밀었다.
 “저게 언제 내 몸을 핥았지?”
 부사영이 혀를 날름거리며 온몸 구석구석을 핥아대는 초록 뱀을 보며 말했다.
 초록 뱀은 벌써 칠 일 째 그의 몸을 핥아댔다.
 천리초는 귀하다. 산에 들에 흔히 피는 잡초가 아니다. 중원 전역을 뒤져도 몇 뿌리밖에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천리사는 천리초를 아껴먹는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죽지 않을 정도만 빨아먹는다. 천리초 한 뿌리만 있으면 평생 먹고 산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다행히도 계야부의 몸에 뿌려진 것은 천리초가 아니고 천리향이다.
 천리초만큼 포식감을 줄 수 없기에 많이 먹는다. 끊임없이 핥아댄다. 아껴서, 아껴서······
 “천리향을 핥아먹는 줄도 몰랐나? 다행인 줄 알아.”
 “그건 그래. 너도 나처럼 몇 대 맞고 기절하지 그래. 깨어나면 저놈이 저 짓거리 끝냈을 텐데.”
 “많이 당했냐?”
 “저 자식, 더럽게 지독한 것 알아? 언제 너도 한 번 당해봐라.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니까. 때릴 줄 아는 놈이더라. 솔직히 며칠만 더 맞았으면 이거 돌아갔을 거야.”
 부사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후후!”
 “근데 너 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뭐가?”
 “네 상처 말이야. 나보다 훨씬 심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있다.”
 계야부는 세공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확실히 세공단 효과는 놀라웠다. 보통 사람 같으면 거의 삼사 개월은 꿈쩍도 하지 못할 중상을 입었건만 겨우 보름 만에 툴툴 털고 일어섰다.
 물론 금강반야선공의 효험도 컸다.
 이갑자 내공이 강력한 불길이라면, 금강반야선공은 불길이 온몸을 휘돌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었다.
 툭!
 드디어 천리사가 떨어져 나갔다. 그의 몸에 묻은 천리향을 모두 빨아먹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든다.
 주위를 돌아보며 혀를 날름거린다.
 새로운 천리초나 천리향을 찾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난 가야겠다. 넌?”
 “빌어먹을! 말해 뭐해. 여기서 뭐하라고? 또 주어터지라고?”
 부사영이 검을 챙겼다.
 천리사는 상당히 느리게 갔다. 닷새를 따라갔지만 나아간 거리는 이틀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십교사가 십 일을 갔다면 그들은 이십여 일을 쫓아가야 한다.
 너무 느리다. 이것이 천리사의 한계인가? 그렇다면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있을 뿐, 생각했던 것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
 이론적으로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매일 이동할 경우, 천리향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결론이 된다.
 그나마 천리사라도 있으니 길을 나서는 것이지 이마저도 없으면 무슨 방도로 안선을 찾겠는가.
 “이것만 따라갈 게 아니라 뭐 어디서 정보 좀 주워들을 데 없을까? 개방(丐幫)이나 하오문(下午門)은 정보통이라며? 그런 데하고 연결할 수 없소?”
 부사영이 엽위상에게 물었다.
 엽위상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턱을 괴며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계야부와 부위상이 나누는 잡담 같은 것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안선은 어디에나 깔려 있어. 그게 가장 무서운 점이야. 개방이나 하오문에도 안선은 있어. 그것도 제법 높은 위치에 있어서 밑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추려내지. 혹여 누가 안선에 대한 정보라도 건네는 날이면, 그는 그날 부로 죽어. 허니 무림은 안선이란 것이 있는 줄은 알아도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있는 건 모르는 거지.”
 “넌 어떻게 그리 잘 아냐?”
 “서군사가 말해줘서.”
 “그 정도까지 친한 거야?”
 부사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엽위상이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규전의(糾纏蟻)! 규전의가 틀림없어! 그래서 이놈이 가다 말다 하는 거야!”
 그가 천천히 기어가는 천리사를 꽉 움켜잡았다.
 “규전의?”
 부사영이 계야부를 쳐다보았다.
 허나 계야부도 모르는 건 그와 마찬가지였다. 규전 개미 때문에 천리사가 가다 말다 한다니 무슨 뜻이지?
 그날 밤, 잠을 청하기 위해 객잔에 들렸을 때, 객잔주인은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어느 분이 계야부이신지?”
 “나요.”
 계야부가 나섰다.
 “어느 분이 이걸 전해주시라고······”
 객잔 주인은 밀봉된 서신을 내놨다.
 서신 겉면에는 딱 두 자만 적혀 있었다.
 이월(二月).
 ―엽위상(葉煒翔) 부사영(傅思瑛) 이인(二人) 살(殺).
 회응소식(回應消息) 단환제공(丹丸提供).
 ‘엽위상과 부사영을 죽이라고? 소식에 응하면 단환을 제공한다. 벌써 한 달이 지났나.’
 정원 대보름으로부터 어느 덧 한 달 가까이 흘러있었다.
 아직 며칠의 여유는 남았다. 정확히 말하면 삼 일 남았다. 그때까지 세공단을 복용하지 않으면 정혈이 고갈되어 죽는다.
 한 달이란 기간이 이토록 빠를 줄이야.
 만변천자라는 자는 자신 곁에 있는 두 사람을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 자신은 부탁이라는 말을 사용 했지만 이쯤 되면 절대 명령이나 다름없다.
 그에게 엽위상이나 부사영이 어떤 가치가 있기에 그들을 죽이라는 것일까?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번 명령은 계야부가 자신의 말을 듣는지 듣지 않는지 알아보는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안선은 어떻게 자신들의 이동경로를 빤히 들여다볼까?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으니 아는 게 아니겠는가.
 계야부는 지난 며칠 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떠올렸다.
 너무 많다. 지나가는 행인이 대부분이지만 그들 중 안선이 없다는 보장은 못한다. 어쩌면 만변천자가 직접 지켜보았을지도 모른다.
 드르릉! 드릉!
 옆방에서 부사영이 코를 곤다. 엽위상도 다른 방에서 깊은 잡에 빠져 있을 게다.
 그는 잠들지 못했다.
 ‘가서 기다릴게요.’
 사약란의 음성이 귓전에 맴돈다.
 세공단을 복용하지 않으면 하루의 여유도 없는 것일까? 보름달이 뜨는 즉시 즉사하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성오존자에게 상세히 물어보는 건데.
 오랜 장고(長考)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 목숨을 구하자고 친구를 죽이는 놈도 있던가.’
 “먼저 가라. 인주(印朱) 좀 만들어야겠다.”
 부사영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인주?”
 “쓸 일이 생겼어.”
 “그러지 뭐. 갑시다.”
 부사영은 아무 소리도 않고 먼저 가는 엽위상을 뒤따라갔다.
 중원에서도 말똥구리들의 은어를 사용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지금부터 부사영은 매 삼십 보마다 흔적을 남겨놓을 것이다. 말똥구리가 아니면 찾을 수 없는 비밀 표식이 그가 가는 길마다 뿌려질 게다.
 계야부는 방으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었다.
 정확히 삼일 후, 보름달이 창문을 비출 무렵 누군가가 방문 앞에 와서 문을 두들겼다.
 똑! 똑! 똑!
 “들어오시오.”
 객잔 주인이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어떤 분이 이걸 드리라고 해서.”
 그가 작은 목함을 내밀었다.
 “이걸 준 사람의 인상착의가 어떻소?”
 “글쎄요? 방갓을 깊이 눌러써서 얼굴은 못 봤는뎁쇼.”
 계야부는 피식 웃었다.
 안선이 어떤 곳인가. 이제는 뼈저리게 절감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들.’
 그렇다. 그들을 눈으로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부사영이나 엽위상도 마찬가지다. 천리사를 앞세워 뒤쫓고 있지만 이대로는 영원히 그녀를 찾지 못한다.
 그들을 앞설 수 있는 방책이 없다면 찾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는 목함을 열었다. 안에는 작은 종이 한 장과 세공단 한 알이 들어 있었다.
 ―방과일차(放過一次) 하차백의백순(下次百依百顺).
 ‘이번만 용서한다. 차후 무조건 복종하라. 후후!’
 그는 세공단을 삼켰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 그가 자신에게 세공단을 먹일 때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였다. 십교사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세공단을 주지 않을 리 없다.
 허나 말을 안 들었으니 듣게 만들 방도는 마련할 것이다.
 뱃속으로 흘러들어간 세공단이 빠른 속도로 흡수되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다. 처음 먹었을 때는 백회혈에 구멍도 뚫리고 귀도 열렸는데, 지금은 아무런 증상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곧 사약란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들······
 어디선가 많이 들은 소리다 싶었다.
 바로 사약란이 한 소리다. 십교사와 싸울 때 그녀는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고 조언했다.
 눈으로 볼 수 없으면 마음으로 봐야 한다.
 마음으로······ 마음으로······ 그녀는 어디 있는가?
 계야부는 마음으로 그녀를 찾지 못했다.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은 모조리 생각했다. 오악(五嶽)을 비롯하여 호광(湖廣), 사천(四川), 복건(福建)······ 중원 전역을 두루 살폈다.
 모두가 그녀가 있을 곳이다. 또 어디에도 없다.
 그는 객잔을 나섰다.
 부사영이 만들어 놓은 인주는 쉽게 발견되었다. 삼십 보마다 발끝으로 땅을 찍어놓고 그 옆에 견빙검으로 꾹 눌러놓았기 때문에 여타의 발자국과 쉽게 구별되었다.
 그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자신이 객잔에 머문 시간은 삼 일이었지만 부사영과 엽위상은 겨우 하루 반 거리를 앞서 있을 뿐이다.
 이래서는 도저히 못 찾는다.
 그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툭 부딪쳐왔다.
 그의 손이 빠르게 품속을 더듬었다.
 다른 때라면 몰랐을 게다. 눈치 채기에는 손이 너무 빠르다. 허나 그에게 이갑자의 공력이 생긴 후부터 그의 감각은 예전보다 훨씬 민감해졌다.
 그는 품속에서 빠져나가는 손을 꼭 붙잡았다.
 “엇!”
 그가 예상치 못했다는 듯 깜짝 놀라 경악성을 토해냈다.
 계야부는 이 음성을 안다.
 “오······ 목?”
 “하하하! 야! 형님, 그동안 대단해졌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이거 알아보는 사람, 거의 없는데.”
 “어쩐 일이냐, 여긴.”
 계야부는 반갑게 맞았다.
 “형님, 찾아왔죠. 형님, 무총 서지단 서군사 찾는 것 아녜요?”
 계야부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네가 그걸 어떻게?”
 오목의 눈가에 기묘한 웃음이 번졌다.
 오목은 계야부에게 단검을 맞은 이후, 곧장 하남으로 왔다.
 안선.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하남에는 그의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환수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또 한 명은 소장인(銷贓人: 장물아비) 노릇을 하고 있다. 친구가 훔쳐온 물건을 팔아주는 역할이다.
 다른 놈도 있다.
 은퇴한 환수로 집에다 목각 인형을 갖춰놓고 손재주 있는 놈들을 골라 배수로 만든다.
 그는 그들을 찾았다.
 “나 죽다 살았다. 안선. 우리는 쥐새끼고 안선은 황제다. 어쩌면 황제보다 더해. 내게 은자 백오십 냥이 있다. 이거 떨어질 때까지만 나 좀 도와다오.”
 친구들은 웃었다.
 “짜식! 은자 백오십 냥이 언제 떨어지냐? 새끼 쳐서 불어나지나 않게 조심해라.”
 친구들은 돈에 관심 없었다.
 이게 진짜 배수다. 가짜 배수는 늘 돈에 쪼들린다. 훔치고 훔쳐도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술술 빠져나간다. 자신이 그랬다. 환수라는 소리는 들었어도 늘 쪼들렸다. 훔치는 것도 많았지만 쓰는 것은 더욱 많았다.
 자신이 그렇게 사는 동안 친구들은 작심하고 배수 노릇을 했다.
 한 판 잘 벌어서 평생 넉넉하게 쓰는 거지.
 그들은 넉넉했다. 그래서 목표를 바꿨다.
 그들은 전낭을 훔치지 않았다. 품속에 든 서신들을 훔쳐냈다. 수상하다 싶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무인의 품도 털었다.
 오목은 하남에서만 거둬들인 서신으로도 안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안선이 연락망이 주로 서신에 의존한다는 점이 역으로 많은 정보를 안겨 준 것이다.
 물론 발신자와 수신자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서신의 내용만 읽었다.
 계야부는 하루 밤낮을 꼬박 서신과 씨름했다.
 짤막한 서신도 있고 장문도 있다.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일치고는 서신의 양이 너무 많다. 안선이란 조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방대하다는 뜻이다.
 그 속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주로 누구와 어디로 간다거나, 어느 객잔에 투숙했다 또는 누구와 싸웠다는 내용이다.
 오목이 자신을 쉽게 찾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이런 서신들 덕분에 그는 가만히 앉아서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읽을 수 있었다.
 안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
 계야부가 모든 서신을 읽고 났을 때, 오목이 따로 한 통의 서신을 내놨다.
 “뭐야?”
 “용건이죠. 형님이 학수고대하는. 이걸 먼저 드릴까 하다가 안선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싶어서······”
 계야부는 서신을 받아 읽었다.
 ―사(謝) 자(磁) 삼(三) 착(着)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서신이다.
 계야부는 한눈에 알아봤다.
 오목이 내민 서신은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해서 특별한 해독법이 필요했다.
 사(謝)는 이름이다. 여기서는 사약란(謝若蘭)이다. 안선은 사약란을 사로 부른다. 자(磁) 삼(三)은 자산(磁山)을 말한다. 산(山)을 삼으로 변경해서 의미를 모르게 만들었다. 착(着)은 말뜻 그대로 도착했다는 뜻이다.
 자산이다!
 “자산이 어디 있지?”
 “자산도 몰라요? 무안(武安) 밑에 있죠.”
 “너한테 고마워서 어떡하니.”
 “제가 고마워해야 합니다. 형님.”
 계야부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가 약자이기에 도와줬을 뿐이다. 그에게서 이런 보답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은자를 남겨주면서도 어디 가서 한평생 편히 지냈으면 싶었다. 헌데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이야.
 그는 잠시 망설였다.
 부사영과 엽위상을 어떻게 할까? 그들과 같이 자산으로 갈까, 아니면 혼자 갈까. 안선은 눈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도 지켜보지만 자신도 지켜볼 것이다.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선은 이것부터.’
 계야부는 서둘지 않았다. 사약란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디에 있는 지도 안다. 허면 구해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사건이 눈에 밟힌다.
 그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따로 추려놓은 서신을 펼쳤다.
 ―사일(謝一) 사(死).
 사(死)는 물론 죽음이다.
 서신은 누구의 죽음을 알리고 있다. 허면 사일(謝一)이 누구인가.
 아무래도 사약란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사씨 성에 일(一), 첫 번째라면 무총 총주라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아닐까?
 그는 서신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3
 
 
 계야부가 자산이 바라보이는 감수(甘水)에 도착하자 오목이 반갑게 마중 나왔다.
 오목은 계야부보다 한 발 앞서서 자산에 도착했다. 주변을 은밀히 탐문했으며, 계야부가 살펴보라고 당부한 것들을 낱낱이 조사했다.
 “이게 바로 자산입니다.”
 그가 펼친 지도에는 자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산의 높낮이, 암자의 위치, 움막, 사냥꾼들의 임시 거처······ 각종 특이한 바위나 폭포의 위치, 동굴들의 형태까지 산에 있는 모든 것이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완벽한 전략지도다.
 계야부는 지도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저······ 그 사람들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됩니까? 그 사람들, 여기까지 오려면 닷새는 더 걸릴 텐데.”
 오목이 말했다.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아.”
 계야부는 지도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엽위상과 부사영은 천리사에 의존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
 예정 도착시간은 앞으로 닷새.
 사약란이 오늘에라도 옮겨질 수 있으니 참으로 의미 없는 행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
 안선은 그들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닷새 후에나 이곳 자산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할 게다. 그것처럼 좋은 미끼가 또 어디 있을까?
 그동안 자신은 사약란을 구해낸다.
 물론 한 가지 단서조건이 붙는다. 안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지 않을 때에나 가능한 계획이다.
 엽위상과 부사영을 지켜보듯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빤히 꿰뚫고 있다면 자신의 행보 또한 의미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아니 어제가 그제쯤 사약란을 옮겼으리라.
 “산을 빠져나간 사람은 없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봤는데, 없습디다.”
 오목이 자신있게 말했다.
 들키지 않았다.
 오목을 만났을 때부터 이 순간까지 그 먼 길을 오는 동안에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보여도 숨었고, 눈 먼 봉사가 지나가도 숨을 죽였다.
 철저히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숨기며 왔다.
 안선은 자신을 놓쳤다고 확신하다.
 그가 이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중요한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오목과 그의 친구들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다.
 그들은 안선의 눈 밖에 있다.
 안선은 그들을 전혀 주시하지 않는다. 아니, 주시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숨겨진 사람들이다.
 계야부는 다시 지도에 몰입했다.
 사약란을 왜 이곳으로 데려왔을까? 이 산의 특징은 뭔가? 그녀를 어디쯤 숨겨놨을까? 경계를 서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 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등산로(登山路)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곳은?
 그는 근 한 시진에 걸쳐 지도를 분석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길을 짚어가기 시작했다.
 ‘이쪽 바위 능선으로 해서······’
 무안(武安)에는 유명한 산이 두 개 있다. 무화산(武華山)과 고무당산(古武當山)이다. 그에 반해 자산은 두 산 만큼 유명하지 않다. 암벽이 있어서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기는 하지만 범인(凡人)들은 잘 찾지 않는다.
 자산을 생활 근거지로 삼는 사람도 있다.
 자산에는 영초가 많이 자생한다. 구릉이 완만해서 동물들을 사냥하기도 좋다. 그런 연유로 약초꾼이나 사냥꾼들은 다른 두 산보다 자산을 더 많이 찾는다.
 한 마디로 사람을 숨겨놓을 만한 산은 아니다.
 계야부는 승룡사(乘龍寺)를 주목했다.
 설마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절에 사람을 숨겨놨겠나 싶지만 그곳밖에는 달리 숨길 데가 없다.
 그가 승룡사를 주목한 결정적인 이유는 사약란의 건강이다.
 그녀는 폐가 좋지 않다. 동굴이나 지하 같이 음습한 곳에는 숨길 수가 없다.
 결국 바람이 잘 통하는 곳, 공기가 맑은 곳에 놓을 수밖에 없다.
 계야부는 단숨에 산길을 올랐다.
 승룡사까지는 보통 사람도 한식경이면 도착한다. 그는 그보다 빠른 일다경 만에 도착했다.
 그 다음 행동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스스스슷! 사악!
 허공에 박쥐 한 마리가 날았다.
 도약은 힘찼다. 늑대의 발돋움처럼 강렬했다. 허나 신형이 허공에 띄워지는 순간부터는 부드러움의 극을 향해 치달렸다. 날개를 쫙 펴고 공기의 흐름만을 이용하여 비행하는 박쥐가 되었다.
 금강반야선공과 세공단으로 인해 그의 시구각보는 토노번인들이 사용하는 거친 신법이 아니라 절정무공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는 지붕에 올라 사찰을 뒤져나갔다.
 미륵전(彌勒殿), 지장전(地藏殿), 관음전(觀音殿)), 극락전(極樂殿), 선방(禪房)······
 그 어느 곳에도 사약란은 없었다.
 그녀를 지키고 있어야 할 무인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짚었나?’
 그는 한 순간 자신의 판단을 의심했다.
 승룡사에 사약란이 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직감과 추측에 의존한 판단이다. 생각이 맞을 가능성도 십에 일, 이밖에 안 된다.
 승룡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을 뒤질 것인가, 아니면 계속 밀어붙일 것인가.
 어떤 판단이든 빨리 내려야 한다.
 “휴우!”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말똥구리들에게 주어지는 임무 중에는 인질 구출도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일 년에 두세 번은 그런 임무가 떨어진다.
 그야말로 펄펄 끓는 기름 솥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동전을 주워오라는 말과 똑같다.
 어디에 잡혀 있는지 모르니 막막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적이니 움직일 수도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하곤 했다.
 그는 공양간 천장에 자리를 잡았다.
 승룡사는 큰 절이 아니다. 스님이라고 해봐야 대여섯에 불과한 보통 사찰이다.
 이런 절에서는 형편에 따라 공양 의식을 편리하게 조절한다.
 음식을 발우에 담아 먹지 않고, 일반인들처럼 상에다 받아먹는다. 밥과 반찬을 함께 올려놓고 모두 모여 식사를 즐긴다.
 계야부는 공양주를 주목했다.
 나이가 마흔은 훌쩍 넘었을 여인이 일인용 소반에 밥과 반찬을 담아 나갔다.
 그는 뒤따르지 않았다.
 상이 너무 정갈했다. 그릇도 깔끔했다. 그릇에 밥을 담는 공양주의 손길에도 정성이 묻어났다.
 인질에게 주는 밥상이 아니다.
 공양주는 다시 돌아와 밥을 펐다.
 이번에는 큰 그릇에 잔뜩 담았다. 반찬들도 여러 사람이 먹을 것처럼 넉넉했다.
 그녀는 절에서 거두고 있는 듯한 어린 아이를 부르더니 함께 상을 들고 나갔다.
 잠시 후, 공양주는 다시 돌아왔다.
 그녀가 큼지막한 그릇에 밥을 푸더니 반찬을 탁 털어넣고 싹싹 비벼 먹기 시작했다.
 ‘없다!’
 계야부는 곤혹스러웠다.
 절에서 밥이 있는 곳은 두 군데다.
 공양간과 대웅전(大雄殿)이다.
 그는 공양간에서 벗어나 대웅전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불기(佛器)가 있다. 불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매가 담겨 있다.
 이윽고 점심때가 되자 스님이 조그만 상을 들고 들어섰다.
 뜨거운 김이 솟는 밥과 채소가 작은 종지에 두어 점 얹혀 있는 초라한 밥상이다.
 스님은 밥상을 들고 불상 뒤로 돌아갔다.
 그는 주위에 누가 있는지 살피지도 않았다. 침입자나 방해자가 없다는 걸 확신하는 듯 거리낌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여기였군!’
 계야부의 눈가에 안도의 빛이 스쳐갔다.
 불상 뒤로 돌아가자 작은 문이 보였다.
 불상에 구멍을 뚫어 문을 냈으니 불자의 행태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
 문에는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자물쇠는 허술했다. 안에서 열고 나오지만 못하게 하려고 했는지, 기다란 쇠막대로 찔러 넣는 수준이었다.
 “이런 곳에······”
 계야부는 자물쇠에서 쇠막대를 뽑아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쒜에엑!
 무엇인가가 지극히 은밀히, 그리고 지극히 빠르게 그의 등을 노리고 스며들었다. 그렇다. 스며들었다. 지쳐들었다거나 날아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빠르기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 등짝에 내리꽂혔다.
 
 
 <1권 끝>
 비분가(悲憤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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