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악마학자

1화

2017.06.05 조회 12,279 추천 202


 프롤로그 - 사명
 
 
 
 불길한 흑연이 저주처럼 일렁였다.
 지독한 절망이 대기를 타고 찌르르 번져 간다.
 무너지는 건물들, 거세게 솟구치는 연기.
 처절하게 울부짖는 사람, 사람, 사람들.
 “뭐 하고 있어! 빨리 날려 버려!”
 홀로 우뚝 선 첨탑 위.
 지옥 같은 풍경을 등진 채, 칼릭스는 참혹한 결단을 부르짖었다.
 “놓치면 끝장이야! 여기서 처치해야 돼!”
 “하, 하지만······.”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야!”
 험악하게 윽박지르자 소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녀가 망설이는 까닭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생산적인 감정 때문에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두뇌 역할’인 자신의 임무.
 그 역할은 때때로 더할 나위 없는 잔혹함을 강요하기도 한다.
 “잘 들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너는 내 명령에 따른 것뿐이야. 이럴 때 쓰라고 내가 있는 거라고.”
 소녀가 문득 칼릭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흑요석빛 눈동자에는 한 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위저드는 악마를 처치하면 것만 신경 쓰면 돼.”
 콰아앙!
 또다시 거대한 불꽃이 솟구쳤다.
 땅이 쩍 갈라지고, 도시의 한쪽 귀퉁이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첨탑에까지 격렬한 진동이 덮쳐 왔다.
 “칭얼댈 시간 없어! 어차피 저기 있는 사람들 전부 다는 못 살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한 명이라도 많이 살려야 할 거 아냐!”
 투박한 손이 조그만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 절절한 기백이 전염된 것일까.
 소녀의 떨림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해 볼게요.”
 쥐어짜듯 대답한 소녀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저 아래, 지옥도 같은 풍경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찬란한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콰아아아앙???!
 손끝에서 뻗어 나간 섬광이 도시를 집어삼켰다.
 
 * * *
 
 공식 집계된 사상자 8,988명.
 재산 피해 추정 80억 페라.
 그날의 피해는 인류가 악마의 습격을 받기 시작한 이래 여덟 번째 규모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악마에게 살해당한 사람’보다 ‘악마를 없애기 위해 쓴 마법에 휩쓸려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이유로 그 순위를 부정하기도 했다.
 
 * * *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내 아들을 살려 내라!”
 “쓰레기 같은 자식! 당장 죽여 버려!”
 악에 받친 절규가 고막을 두드린다. 새파랗게 날 선 광기가 살점을 서걱서걱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이군.’
 교수대에 올라서자, 평소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이 새삼스럽게 피부에 와 닿았다.
 군중이 뿜어내는 저 증오는 맹독이나 마찬가지다.
 저런 독을 인류의 구세주들이 마시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위저드들에게 ‘명령받았을 뿐’이라는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자신 같은 존재가.
 “죄인 칼릭스 길리언은 인류 수호의 책임을 진 위저드 통제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안위를 우선한 사실이 인정된다! 그 본분에 어긋난 판단의 결과가 막대한 인명 피해로 이어진 바, 그 죄를 물어 교수형을 집행하는 바이다!”
 포고가 끝나자 곧바로 목에 밧줄이 감겼다.
 집행관이 밧줄의 매듭을 꽉 조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흥, 지금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냐?”
 칼릭스는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자신의 판단이고 결정이었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인류를 위해 희생한다는 자긍심이 남는 것도 아니었다.
 “선심 쓰는 척하지 말고 후딱 끝내시지?”
 “······.”
 삐딱한 대꾸에 집행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잠시 무덤덤하게 노려보던 집행관이 신호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잠깐······! 기다려······!”
 비명처럼 찢어지는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돌아본 곳에는 에메랄드빛 머리칼의 소녀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사람 잘못이 아니야!”
 격렬한 호흡에 어깨가 들썩였다. 그 가녀린 몸집에서 마치 발악 같은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마법을 쓴 건 나잖아! 내가 했단 말이야!”
 수만에 이르는 군중이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조용해졌다.
 다만 한 사람.
 밧줄이 목에 감기는 순간조차 심드렁하던 칼릭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저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어! 사람들을 죽인 건 나야! 그러니까 꼭 책임을 져야 한다면······.”
 “입 닥쳐, 세레스!”
 벼락같은 포효가 군중의 시선을 되돌렸다.
 핏대 선 칼릭스의 목에서 잡아 찢듯 난폭한 노성이 끓어올랐다.
 “거기서 악마를 놓쳤으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많이 죽었어! 그런데도 저 애송이는 사람들까지 휩쓸린다느니 하면서 질질 짜기만 했다고!”
 부릅뜬 칼릭스의 눈에 시뻘건 핏줄이 불거졌다.
 그 처절한 발악에 소녀는 물론이고 군중마저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단을 내린 건 나다! 명령한 건 나야! 내가 없었으면 저 멍청한 애새끼는 혼자서 우물쭈물하다가 악마를 놓쳤을 거라고! 그러면 여기 있는 네놈들도 다 죽었어!”
 “······!”
 “잘 들어! 네놈들이 지금 숨 쉬는 것도! 먹고 싸는 것도! 앞으로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 덕분이야! 저 코찔찔이 따위가 아니라 내가! 바로 내가 과감한 결단을 내린 덕분에 너희가 살아 있는 거라고!”
 피를 토하는 듯한 음색이 사방에 터져 나간다.
 악에 받쳐 부르짖는 그 모습은 마치 사슬에 묶인 맹수의 몸부림 같았다.
 “이건 전부 내 공로다! 그러니까! 닥치고 날 찬양해!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아!”
 무참하기까지 한 기백에 사람들이 침묵에 덮였다.
 역병 같은 오한이 온 광장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가 쏟아 낸 흉포한 광기는 이내 지독한 증오와 한으로 뒤바뀌어 해일처럼 역류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살인마! 죽여 버려!”
 “저놈이야말로 악마다!”
 “저 악마를 당장 죽여 버려!”
 흥분한 군중의 고성에 집행관이 움찔했다.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 험악한 분위기에 그가 황급히 팔을 내렸다.
 “집행!”
 발판이 넘어지자 굵은 밧줄이 목을 꽉 죄었다.
 숨이 턱 막혀서 고통스러운 것은 잠시였다.
 칼릭스는 육신이 강제로 떠밀려 나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주로 가득한 군중의 고성도 순식간에 확 멀어져 갔다.
 늪에 잠기듯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칼릭스는 생각했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 * *
 
 악마(Demon).
 언제부턴가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불사의 마물 앞에서 인간들은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악마에 의한 습격이 거듭될 때마다 인류의 멸망은 점차 기정사실이 되어 갔다.
 불가피한 종말을 향해 하루하루 치닫던 어느 날.
 도시국가 테이탄이 역사적인 발표를 했다.
 
 “우리는 악마의 천적을 손에 넣었다.”
 
 테이탄의 지원 아래 악마가 하나둘씩 퇴치되었다.
 그러자 ‘악마를 죽일 수 있는 힘’에 욕심이 난 한 강대국이 테이탄을 침공했다.
 테이탄 왕족들은 강대국과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잠적했다.
 테이탄 왕족들이 잠적해 있는 동안, 전 세계는 악마에 대처할 수단을 잃었다.
 세계는 다시금 멸망의 위협을 느꼈다.
 분노한 수십 개 국가의 연합군이 강대국을 멸망시켰다. 연합군은 강대국의 모든 황족과 귀족들을 처참하게 도륙하여 전시했다.
 그러자 잠적했던 테이탄 왕족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다시금 악마를 사냥해 주었다.
 어떤 나라도 테이탄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도시국가 테이탄이 대륙 최강의 제국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 칼릭스 길리언
 
 
 
 “으으······.”
 아교로 된 늪에 푹 잠겨 있는 기분이었다.
 뜨겁게 달군 모래알갱이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죽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메스꺼움이 치밀어 올랐다.
 “어머? 정신이 드셨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선생님을 모셔 올게요.”
 나긋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울리다가 멀어진다.
 여자가 돌아오기도 전에 의식이 끊어졌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누군가가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고 있었다.
 “상태가 어떤가?”
 “큰 이상은 없습니다. 슬슬 약효가 떨어지면서 몸에 감각이 돌아오는 중입니다.”
 “후유증은 없겠나?”
 “글쎄요. 깨어나기 전에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한 번 끊어졌던 숨을 붙여 놓은 셈이라서요.”
 “······.”
 칼릭스는 붕 뜬 기분으로 말소리를 흘려들었다. 마치 잠이 덜 깬 것처럼,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데도 말뜻이 뇌리에 와 닿지 않고 겉돌았다.
 ‘아니, 잠깐.’
 그러다가 문득 흐리멍덩하던 의식이 확 개었다.
 목구멍이 말라붙은 듯한 통증을 참으며 칼릭스가 불쑥 내뱉었다.
 “싱커피 허브를 쓴 건가······.”
 “······.”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두 남자가 흠칫 놀랐다.
 붉은 머리칼을 말끔하게 빗어 넘긴 중년 남자가 뜻밖이라는 기색으로 물었다.
 “그 약을 아는가?”
 “대충, 어떤 건지, 정도는······.”
 싱커피 허브는 사람을 가사상태에 빠트리는 약초다. 쓰기에 따라서는 숨이 멎은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 본 듯했다.
 “그렇다면 설명하는 수고는 줄겠군.”
 남자의 담담한 긍정에 칼릭스는 말문이 막혔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교수형 당한 자신을 시체로 위장해서 빼돌렸다는 게 아니면 대체 뭐라는 말인가.
 “당신들, 어디서 나왔지?”
 “아르곤 왕국일세. 여기는 아르곤 수도 펠렌이지.”
 “아르곤 왕국?”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에 칼릭스는 무심코 눈살을 찌푸렸다.
 아르곤이란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니다. 명색이 대륙의 10대 강국이었으니까. 제국이 우뚝 군림하고 있는 현 시대에 10대 강국이 무슨 의미냐 싶기는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건가······.’
 자신이 사형당한 것은 악마를 막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낸 책임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악마를 놓쳤으면 인명 피해는 수만 단위로 불어났을 터였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수천 명을 희생해서 수만 명의 인명 피해를 예방한 셈이었다.
 문제는 군중으로부터 불가피한 전술적 판단이라는 이해를 얻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대중의 눈에 보이는 것은 죽을 뻔한 수만 명이 아니라 실제로 죽은 수천 명뿐이었으니까.
 실무진은 나름대로 최선의 판단이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들끓는 민심을 내버려 둘 수만도 없어서 자신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이제 와서 무슨 헛물을 켠 거지.’
 칼릭스는 씁쓸하게 피식 웃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어쩌면 자신의 교수형이 보여 주기 위한 ‘쇼’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가 아르곤 왕국이라면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서 그친 셈이다.

댓글(11)

요르젠    
뭘까 댓글이 없어. 그럼 내가 1빠
2017.06.12 17:50
발아아재    
역시 중세군중새끼들은 미개하고 멍청해
2017.06.12 23:16
신드로이아    
중세군중을 욕하는 현대군중 역시 미개하고 멍청해
2017.06.13 19:09
파스테라    
3~4년쯤 전에 1~2권 정말 재밋게 봤었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찾지를 못 하다가 이렇게 문피아에서 만나게 되서 반갑네요!
2017.06.13 20:29
말해뭐해    
내용및 전개는 재밌으나 후반부 페이지 3장만에 모든걸 완결 내버리네요. 하, 어이가 없네? 정도
2017.06.14 19:12
jy****    
주인공이 좀 그런듯?
2017.06.15 08:46
파란ㅎㅏ늘    
흥미롭네요
2017.06.15 13:45
갈색바구니    
와표지개간지난다
2017.06.16 02:21
바질리스크    
처음에 재미있으나 중간에 쩌증과 발암 무한반복 결말까지 용두사미
2017.06.18 02:22
n6***************    
참신한 소재 작가역량부족 중박정도는 됩니다 기대 안하고 보시면 잼남 껨판X 던전X 라는 점에서 이미 중박
2017.06.1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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