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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반란 1권 (1화)

2017.06.14 조회 154 추천 0


 신의 반란 1권 (1화)
 1막 1장
 
 
 ······시간이 흐른 뒤 찬란했던 영광은 흩날리는 모래바람처럼 스러지고 충성스러운 군인들은 자괴감이라는 바다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수많은 지식과 드높은 지혜로 만인에게 존경받던 현자들은 어리석은 바보마냥 입을 열지 못했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전쟁의 잔혹함은 거기에 있었다.
 패자에 속했던 군인과 현자들은 결국 폐인이 되었으며, 오로지 백성들만이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결국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질긴 사람들은 백성이라는 인간 이상의 종족임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작자 출처 미상 수필 中
 
 
 고르고는 잠시 자신에게 일어난 이 불유쾌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 좀 해 보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겠지만, 체력으로 가야 할 밥의 이동로를 머리로 꺾지 않아도 작금의 상황은, 상식만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즉, 어깨 위에 달린 동글동글한 인지의 창고를 열성적으로 엿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고르고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고르고의 심정 또한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들이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크르릉.
 나지막이 목울대를 울리는 무자비한 짐승을 보며 사십 년 동안 꼬장꼬장한 학자로서의 삶을 향유하던 고르고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공포를 느꼈다.
 학자로서 이 희귀한 맹수를, 그것도 수풀이 우거진 이곳에서 볼 수 있음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자 자랑거리였고, 특히나 그것이 멸종하여 백 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던 종이라면 박수를 쳐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고르고는 눈앞에 다가온 위험 때문에 침착하고도 현실적인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깨까지의 높이가 거의 사람 키에 달할 정도로 크며 대가리를 쳐드니 몸통의 길이가 아닌 높이만 2미터를 훌쩍 넘기는 일생일대의 대괴수를 정면으로 마주친다면 어느 누구라도 동공이 풀릴 정도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저 거대한 대가리 주위에는 태양처럼 찬란한, 그러나 태양과는 달리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갈기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뻗어 나간 갈기는 맹수의 덩치를 실제보다 두어 배는 더 크도록 만드는 놀라운 작용을 했다.
 ‘이름이 뭐였지?’
 공포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던 와중에도 고르고는 엉뚱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분명 기억이 나야 할 대명사였고, 괴수와 마주치기 일 분 전까지만 해도 머리 한구석 어딘가에서 잠자코 엎드려 있던 단어 하나가 지금은 영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디 보자, 저 멀리 남부에 서식하는 사자와 엄청 닮았는데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 게다가 알록달록한 색깔이라니? 이런 맹수가 있었나?’
 있던 것 같다.
 아니, 확실히 있었다.
 다만 목숨이 위험하다는 이 무시무시한 상황에 손가락과 발가락만 오므라진 게 아니라 사고마저도 오므라들고 말았다는 게 문제였다.
 노을처럼 붉은 맹수의 눈동자가 고르고의 온몸을 훑어 내려가자 마침내 그는 이 위압적인 맹수의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 무지개 사자!’
 잊고 있던 기억을 되찾자 고르고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공포에 다시 사로잡혔다.
 사자 앞에 붙은 무지개라는 명칭은 상당히 귀엽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지만, 이 웃기지도 않는 대명사로 불리는 괴생물체는 지극히 순수한 육체적 투쟁력으로 따지자면 세상의 무수한 역사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천재지변과 비슷한 뜻으로 써도 될 정도의 괴물이었다.
 역사상 무지개 사자를 잡았다는 사냥꾼이 한 명 있기는 한데, 워낙 경이적인 위업인지라 그 사냥꾼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냥 ‘전설’로 불려진다.
 그 사람조차 무지개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서 두 달 동안 함정을 설치했고, 수년간 학문적 자료를 머리에 쑤셔 넣어 녀석의 생태를 파악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날카로운 사냥꾼의 무기인 강철 쇠뇌를 백여든 자루나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무지개 사자 한 마리를 잡는 데에 무려 삼 년이라는 시간을 쏟았단다.
 설령 이제는 찾아보는 것이 불가능한 용이라 해도 서너 마리는 저승으로 보내 버릴 것 같은 무지막지한 함정이 전염병에 걸린 것 같은 변종 거대 사자 한 마리의 영리하고도 과감한 힘 앞에서 초토화가 되었단다.
 결국 무지개 사자를 산 채로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지만, ‘전설’의 사냥꾼도 극심한 상처를 입어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백 년 전에 사라졌다는 산신 호랑이와 함께 세계제일의 맹수라 불리던 무지개 사자.
 사람의 감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난폭한 왕 앞에서 가녀린 학자는 진동에 가까운 떨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무지개 사자는 거대한 덩치답지 않게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이며 고르고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 순간, 고르고는 다시금 엉뚱하게 감탄했다.
 앞발을 한 번 휘두르면 바위도 깨 버릴 것 같은 거대한 무지개 사자일진대 걷는 건 너무나도 산뜻하고 우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다가온 현실은 결코 우아하지 못했다.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마흔 살의 앙상한 학자 따위 무지개 사자가 장난처럼 꼬리만 휘둘러도 족히 오 미터는 날아가리라.
 물론 아름답게 착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피해를 생각해도 사지 골절, 내장 파열이다.
 고르고는 난생처음으로 죽음을 느꼈다.
 평범한 학자의 범위에서 벗어날 정도로 제법 험한 삶을 살아온 고르고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 특별한 경험 앞에서는 어떠한 지혜도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으으······.’
 윗니와 아랫니가 딱딱 부딪쳤다.
 거기서 손가락까지 튕기면 미적 감각이 상식적이지 않은 어떤 사람은 합창이라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고르고는 물론이거니와, 무지개 사자 역시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합창 따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르고 입장에선 일 초가 일 년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무지개 사자는 몇 번 고르고의 냄새를 맡더니 돌연 몸을 휙 돌리며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무지개 사자의 거대한 덩치는 우거진 수풀에 휩싸이며 새벽의 안개처럼 사라졌다.
 사자가 사라졌음에도 고르고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몸을 떨었다.
 ‘뭐야? 간 건가? 떠난 거야? 내가 살아 있는 건가?’
 그는 평생 동안 보고 익히고 깨달았던 여러 가지 학문적 위업들이 지금 이 단순한 대답마저 해 주지 못함을 깨닫고 회의를 느꼈다.
 거의 반 시간이 지나서야 고르고는 막혔던 숨을 풀어내며 주저앉았다.
 ‘헉헉, 죽을 뻔했다.’
 사람들은 죽을 뻔했다는 단어를 흔히 사용한다.
 고작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물에 십 초 정도 허우적대는 걸로, 계단에서 한 번 굴러 떨어진 걸로, 추위에 떨며 손을 귀에 붙이고 떠는 걸로 죽을 뻔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작 정말로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고르고는 진귀하다면 나름 진귀한 경험을 한 셈이었다.
 그는 왜 자기가 이런 곳에 와서 전설에나 나올 법한 무지개 사자―비록 그것이 역사학적 관점으로 볼 때 놀라운 발견이라 해도―를 두 눈으로 목격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기억의 파도를 탐사하던 고르고는 일단 자기가 왜 이곳에 있는지부터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분명 댕갈송이를 찾으러······.’
 세상에는 수많은 학자가 있고, 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따라서 고상한 이름을 짓길 원했다.
 생물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법의학자 등등 세상에 얼마나 많은 학자가 있는가.
 고르고는 그런 학자들 중에서도 제법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학자였는데, 어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앎’을 추구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세계 자체의 역사를 탐구하는 자였고, 생물은 어찌하여 물을 마셔야만 살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찰하는,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을 보다 세밀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이였다.
 신이 있다면 왜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왜 동물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이리 절묘한 자연의 생태를 만들었는지를 궁금히 여기는 변종 신학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르고는 스스로를 ‘세상학자’라고 칭했다.
 어디에도 없는 명칭이었지만, 결국 생물학자든 역사학자든 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의 고찰을 거듭하여 만들어 낸 명칭임을 생각한다면 제법 참신하고 도발적인 단어라 아니 말할 수 없겠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진 않지만 호기심이 많던 고르고는 마흔의 나이가 되어서도 비할 데 없는 호기심의 홍수를 짓누르지 못한 채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누구도 찾지 못한 지식을 얻어 정신적 고양감을 함양하기 원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관심을 돌린 것은 신비의 풀, 댕갈송이였다.
 죽편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아직까지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는 고대의 지식을 살펴본 결과, 고르고는 댕갈송이라는 풀이 역사적으로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몇 번씩이나 언급되었다는 걸 알았다.
 대다수의 학자들이 전설로만 치부한 신비의 풀, 약초인 댕갈송이를 천 년 전 어떤 미친 인간들의 우두머리가 평생에 걸쳐 찾아 헤맸다는 것도 깨달았다.
 모든 인간들이 원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꿈’이라 불릴 영역 안에 존재하는 미지의 단어, 사람의 상상력을 지극히 자극하는 단어.
 불로불사(不老不死).
 그 비밀이 댕갈송이에 있다고 죽편과 여러 문서에는 나와 있었다.
 환상을 좇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이성적이지 못하면 스스로의 붕괴를 막지 못하는 특수한 직업, 학자가 고르고의 직업임을 생각한다면 전설의 댕갈송이를 위해 무작정 이 거대한 숲으로 돌아온 그의 행태는 확실히 유별난 데가 있었다.
 
 댕갈송이는 육십 년 동안 땅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다가 가을의 낙엽 속에서 생생하게 피어난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식물은 노을빛에 물들 무렵 일어나 해가 뜨기 전에 스러지는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더라.
 
 이것이 고르고가 읽은 책, <신비라 이름 붙여진 생물들의 전집>에 쓰여 있던 내용이다.
 세상의 식물들은 봄에 기지개를 켜 여름에 스스로를 뽐내고 가을에 수의(壽衣)를 준비하며 겨울에 완전한 죽음을 이룬다.
 그렇게 본다면 식물로서 죽음을 준비해야 할 가을에, 수많은 시체들로 이루어진 땅에서 피어나는 댕갈송이의 유별남은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환상, 그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학자는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사실을 단정하는 우매한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고르고는 못 말릴 적극성으로 댕갈송이를 찾고자 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돈 지 일 년.
 그는 마침내 세계의 동쪽, 많은 사람들―대부분 학자들―이 들어가길 원했지만 비할 데 없는 험난함으로 짓밟힘을 거부한 광한수림(廣限樹林)에 도달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수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가 질릴 위용을 한껏 내뿜었다.
 고르고 역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이 미지의 숲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지만, 근거 없는 긍정으로 무장한 채 호기심이라는 무기를 들고 발을 디뎠다.
 광한수림은 생각보다 그렇게 위험한 동네가 아니었다.
 물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높이만 무려 백여 미터에 달하는, 말도 안 되는 초월적 크기로 사람의 기를 질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이외에 어떤 위협을 주는 건 없었다.
 웅덩이는 깨끗했고 주렁주렁 열린 이름 모를 과실들은 산해진미라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의 맛을 내었다.
 적어도 식량 걱정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숲에 들어선 지 열흘째 되던 날.
 고르고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거대한 수림은 열흘간 단 한 마리의 동물도 보여 주지 않았던 것이다.
 끝 모를 생동감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이 수림에 동물이 한 마리도 없다는 건 퍽 흥미로운 사색거리였다.
 하지만 사색거리는 고르고의 머리로 찾아오기도 전에 등골이 오싹할 공포를 내어 주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하늘 밑에 두 발 딛고 서 있지만 어디에도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당혹할 만한 주제의 사색거리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공포를 부채질할 전설적인 맹수가 느닷없이 튀어나왔으니 동물을 봤다는 반가움을 느껴야 할지 목숨을 잃어야 할 상황에 절망해야 할지 고르고는 판단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렇듯, 체력적인 면에서 결코 좋다고 말하기 힘든 고르고는 비현실적인 거대 괴수와 마주친 이후 일어서기도 힘든 무력감에 치를 떨었다.
 “정말 죽을 뻔했네.”
 그는 백 년 전 실재했던 동물들의 그림을 그린 <멸종했기에 더욱 아름다운 동물들>의 저자를 한껏 욕했다.
 그가 봤던 무지개 사자의 그림은 현실과 비교하자 상당히 축소되고 귀엽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눈은 피처럼 붉었어. 송곳니의 크기가 거의 내 팔뚝만 했지. 아닌가? 어쨌든 엄청 크고 길었어. 이건 기억할 만한 사실이야. 나중에 무지개 사자의 대한 책이라도 내야겠군.”
 고르고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앎’을 얻어 보편타당한 진리를 보다 확실하게 인지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위배하는 법칙, 종족 번식의 의무를 저버린 모순적 존재였다.
 이성으로 본능을 억제하는 데에 상당한 뛰어남을 보여 주었지만 결국 호기심이라는 본능을 위해 다른 본능을 저버린, 지극히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대신 피와 살로 이루어진 분신을 토해 내는 것보다 종이와 글로 이루어진 책을 분신으로 대체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끝없이 알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건망증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방해꾼 때문에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든 길을 걸어야만 했다.
 또한 사십 년 가까이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데에 노력했으나 아직까지도 책을 내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남들이 한 번 보고 기억할 것을 최소 열 번 이상은 봐야만 겨우 기억할 만큼 저주받을 머리는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안타까운 병이었다.
 물론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천재도 노력하는 이에게 이길 수 없다는 해묵은 말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자이기도 했기에 언제나 부딪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지개 사자와 눈싸움을 벌이기 전이라면 스스로의 확신에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붉은 과일을 힘없이 깨문 고르고는 달달한 과즙을 겨우 삼켰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살아야 뭘 해도 하는 거 아니야? 여기 며칠 더 있으면 무지개 사자가 화를 낼까? 화를 내면 당연히 날 죽이려 들겠지?”
 당연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앞에 두고 그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만약 그가 생각이 조금이라도 더 깊었다면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나 확정되지 못한 생존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노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미지의 공포와 마주친 그는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그리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르고는 꺼져 가는 야심의 불꽃을 다시 불태웠다.
 ‘아니야. 아직은 아니지. 이제 겨우 숲에 들어온 지 열흘이야. 남들 모를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지.’
 위험 없는 삶은 재미가 없다고 누군가가 분명 말했다.
 하나 그 말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통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고르고 역시 위험한 경험은 제법 겪었지만, 눈앞에서 마른 학자 정도야 식후 입가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무지개 사자가 어슬렁대는 숲에서의 경험은 전무했다.
 그래서 성공 시에 돌아올 희열은 더욱 값진 것이 되리라.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들어온 순간 도저히 나갈 수 없다는, 달갑지 않은 신비로 무장한 광한수림이었기에 입구를 두 눈으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무의식적 공포가 깔린 결정이었다는 걸 그는 깨닫지 못했다.
 ‘가 보자. 이제 겨우 숲의 외곽만 둘러봤을 뿐이야. 안쪽에 댕갈송이가 없으리란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할 거다.’
 있으리란 보장 역시 누구도 하진 못할 것이다.
 그는 호신용으로 품에 고이 숨겨 둔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열정을 고양시켰다.
 ‘무지개 사자라도 단검을 무서워할지 누가 알아?’
 이미 호기심과 야망으로 불타오르는 그에게 더 이상 상식을 넘어서는 거대 사자는 위협거리가 될 수 없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고르고는 숲의 내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 쌀쌀한 바람만이 고르고의 앞날에 불을 지폈다.
 
 * * *
 
 이미 외양만 보고도 누구나 판단이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숲은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정상적 범주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한계 이상으로 뻗어 나간 나무의 높이, 그리고 크기.
 이토록 생생한 청량함을 내뿜음에도 한 마리의 동물도 뛰어다니는 꼴을 볼 수 없는 괴리감.
 그럼에도 이 고요한 위협 속으로 뛰어든, 금치산 판정을 받아도 딱히 부당함을 느끼지 않을 학자 한 명까지.
 열흘이 더 지나고 나서 세상과 단절된 한계 이상의 숲에 지쳐 갈 무렵, 고르고는 다시 한 번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목격하고야 말았다.
 고양이과 최대의 맹수라는 호랑이와 사자.
 어떤 동물학자는 호랑이를 ‘지나친 오만의 소유자이지만 딱히 오만해 보이지 않는 고독한 사냥꾼’이라 말했고, 사자를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만인이 엎드릴 극강의 위엄 간직자’라고 평했다.
 누가 그러했든 두 맹수야말로 최강의 육식동물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들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갯과 동물이 덩치가 뛰어나다 한들 호랑이나 사자를 죽일 수는 없다.
 물론 마냥 상식적으로 흐르지 않는 세상의 불규칙성을 생각하자면 아예 없다고 단정 짓기에 무리가 있지만, 역시나 상식적으로 볼 때 개는 호랑이나 사자를 이길 수 없다.
 더군다나 백여 년 전에 멸종했다는 산신 호랑이와 함께 신비의 절대괴수라 불리는 무지개 사자의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겠다.
 용하고도 일전이 가능하다는 그런 괴수들 앞이라면 용맹스러운 맹견도 으르렁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거대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숲은 여러모로 사람의 상식을 파괴하는 장이라고 고르고는 생각했다.
 이름 모를 과일을 잔뜩 씹어 대던 중년의 학자는 숲의 청량함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비릿한 냄새에 주체하지 못한 호기심을 동반하고 슬금슬금 바위 뒤에 몸을 숨기며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붉은 눈을 가진, 주황빛 꼬리털을 가진, 황색의 갈기를 가진, 초록빛 혓바닥을 가진, 파란색 발톱을 가진, 남색의 코를 가진, 보랏빛 굵은 수염을 가진 거대한 고양이를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늑대 한 마리를.
 그랬다.
 그건 개가 아니라 늑대였다.
 어느 부분을 떼어다 봐도 부정하기 어려운, 일반론적에 입각하여 지극히 늑대답게 생긴 늑대였다.
 하지만 전설로 칭해지는 거대한 무지개 사자 앞에서라면 늑대도 갓 태어난 강아지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불에 타고 난 잿더미처럼 회색의 털로 몸을 치장한 늑대는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무지개 사자의 뒷다리를 난폭한 미식가처럼 뜯어 먹었다.
 사람과 동물의 미적 감각이 엄연히 다르다지만 워낙 맛있게 먹다 보니 고르고도 침이 넘어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무지개 사자를 뜯어 먹을 용기가 없었다.
 주둥이에 피를 묻히며 한창 식사를 하던 늑대가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었는지 귀를 쫑긋하며 고개를 들었다.
 고르고는 왜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오는지, 여러 가지 학문적 자료들을 기억에서 되뇌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늑대의 눈은 정확하게 고르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지개 사자의 눈이 화염처럼 정명한 핏빛이었다면 늑대의 눈은 한겨울 북극의 가장 깊은 곳에 고이 잠들고 있던 빙원의 숙명을 담고 있었다.
 푸르고도 푸르다.
 아름답기까지 한 색깔이었다.
 푸른 동공 한가운데에는 점처럼 까만 것이 쏙 박혀 있었다.
 전혀 난폭해 보이지 않았다.
 마력적인 눈동자였다.
 마치 죽기 직전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노인 같은 눈이었다.
 고르고는 늑대의 눈에서 자신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성은 고개를 돌리고 무조건 도망치라고 외쳤지만, 가슴은 저 따스함과 차가움, 신비로움과 공포를 일으키는 눈빛을 계속 보라고 말했다.
 늑대는 혀로 입 주변을 깔끔하게 닦아 내고는 다시 무지개 사자의 사체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고르고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허, 뭐에 홀린 것 같구나.’
 일단 감성이 스러지고 이성이 명백하게 육체를 차지하자, 그는 학자 특유의 호기심이 생기는 걸 느꼈다.
 그것은 저 신비로운 늑대가 자신을 결코 해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바닥에 깔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믿을 수 없게도.
 ‘늑대가 무지개 사자를 사냥한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눈빛이 조금 특별한 것 빼고는 평범한 늑대와 썩 다를 것도 없는 늑대가 용과 비견되는 무지개 사자를 사냥해서 뜯어 먹었다는 건 상식 수준을 서너 배 넓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고르고는 늑대들이 사냥할 때 무리를 지어 합동 공격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다.
 동물학을 공부했던 학자와 곡차를 한잔하면서 들었던 지식이다.
 홀로 다니는 늑대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없다.
 어찌나 후각이 좋은지 산등성이 너머에서 흐른 먹이 냄새도 분별할 늑대가 무리의 냄새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외로이 혼자 떨어진 늑대는 나이를 먹었든 권력 싸움에서 패배했든, 무리에서 도태된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저 늑대도 혼자였다.
 거기서 고르고는 또 하나의 의문이 드는 걸 느꼈다.
 다른 걸 떠나서라도 어떻게 무지개 사자의 살점을 뜯어먹을 생각을 했을까?
 덩치를 보아하니 그렇게 굶은 것 같지도 않은 녀석인데 육식 맹수라 할 수 있는 사자 고기를 먹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식성이 일반 늑대보다 꽤 폭 넓은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열심히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빌어먹을 건망증 때문에 지금 본 광경을 잊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천하의 바보 멍청이라도 이런 압도적인 광경을 잊긴 힘들 게 분명했다.
 ‘무지개 사자라 피 색깔도 알록달록할 줄 알았더니, 피는 똑같이 붉은색이로군. 이것도 책에 적어야지.’
 누구도 믿어 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책으로 엮어 나 스스로의 완성을 추구하는 자였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책을 쓰는 자가 아니었기에 편안하게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같은 종의 늑대보다 상당히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애석하게도 무지개 사자 앞이기에 강아지 이상이 될 수 없던 비운의 늑대가 제 덩치의 열 배 정도 되는 무지개 사자를 열심히 뜯어 먹고 있는 광경을 정신없이 쳐다봤던 고르고는 늑대가 이윽고 고개를 휙 돌리는 걸 보았다.
 아무래도 식사가 끝난 것 같았다.
 무지개 사자의 사체 중 뒷다리 하나가 사라졌다.
 비록 뒷다리 하나라지만 그 크기가 늑대의 몸집에 비해 그리 부족하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늑대의 먹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자기 몸집보다 조금 작은 뒷다리를 죄다 위장 안으로 넣어야 한다 함은 심장과 간, 대장 등의 모든 장기를 포기하고 위장만을 늘려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한다.
 그리고 고르고는 동시에 무지개 사자의 시체에서 어떠한 부분을 발견했다.
 늑대가 어찌나 무지개 사자를 맛있게 먹던지 그 광경에 압도되어 정신을 놓았던 고르고의 눈에 이제야 보이는 흔적이었다.
 그것은 작았지만 놀라우리만치 확실한 흔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위치는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하는 놀라움이 클 정도로 명확한 곳이었다.
 바로 무지개 사자의 이마.
 너무나도 찬란한 몸체인지라 피가 흘러도 흐른 것 같지가 않았다.
 실제로도 뱀처럼 굵었지만 한 길로만 흐르는 피는 사람의 눈으로 파악하기에 그리 쉽지만은 않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날카로운 흔적이었다.
 큼직하기도 했고, 자그맣기도 했다.
 하나의 흔적에서 그와 같이 상반된 반응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역사를 헤아리기 어려운 대지의 주글주글한 주름처럼 스스로의 형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흔적이기도 했다.
 학자로서의 삶은 살았지만 전사로서의 삶은 살아 보지 못한 고르고는 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연히 무기라고는 제대로 휘두를 줄도 모르는 자기 방어용 단검 한 자루밖에 없었고, 지금껏 그걸 사용해 본 적도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중 대부분이 고기를 자른다든지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나무에 상처를 내는 종류의 것들, 즉 경험 없는 여행자가 취할 수 있는 실용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저 무지개 사자 이마에 난 흔적은 늑대의 이빨, 발톱, 꼬리 등등 어떠한 육체적인 부분으로도 내기 어려운 흔적임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지극히 인위적인 흔적이며 흉터였다.
 철컥.
 그리고 고르고는 무지개 사자의 이마에 난 상처가 늑대가 한 일이 아님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놀랍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그는 사람이 만들어 낸 날카로운 쇠붙이가 무지개 사자의 이마를 관통한 것과 늑대의 발톱이 무지개 사자의 이마를 관통한 것 중 어떤 것이 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수준일까 고찰했다.
 그 순간, 고르고의 눈앞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느새 무지개 사자의 사체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고르고는 말하기 어려운 공포를 느꼈다.
 
 남자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모호한 회색이었고 밤하늘보다도 어두운 흑색이었다.
 사람의 발길을 거부한 채 이름마저 부여받지 못하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어떤 야산에 쌓인 눈보다도 명확한 백색이었지만, 그것은 차가움 이외의 느낌을 주진 못했다.
 남자를 보면서도 고르고는 자신이 남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남자는 지독하게 모호한 형태의 인간이었다.
 외관은 사람이었으나 귀신보다 기괴하고 용보다 신비로웠다.
 도무지 사람이라 느껴지기 힘든 남자였지만 누구보다도 사람처럼 생긴 남자는 자신의 무릎 위에 괴이한 무늬로 장식된 소검(小劍)을 곱게 올려놓았다.
 비록 무너져 버린 명성을 이겨 내지 못하고 다리 하나를 잃은 채 쓰러진 무지개 사자였으나 죽었음에도 위엄과 준엄함을 오만하게 유지한 전설의 동물 위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은 악한 괴수를 쓰러트린 영웅보다는 신성함을 모욕하는 악신(惡神)에 가까웠다.
 악신치고는 지나치게 사람다운, 그러나 도저히 사람이란 인상을 받지 못할 모순적 존재 앞에서 고르고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광한수림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자신 이외의 사람을 봤다는 놀라움보다 저 사람 같지 않은 남자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는 자체에 더욱 큰 놀라움을 느꼈다.
 두 감정은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달랐다.
 늑대는 가만히 남자의 다리 맡에 엎드려 오싹한 순수함을 담은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정리되지 않은 잔 수염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 행동 하나가 이상할 정도로 위엄이 있었다.
 “당신도 무지개 사자를 원하는 겁니까?”
 고르고는 무의식적으로 귀를 후볐다.
 설마 그 목소리가 저 사람 같지 않은 남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고르고는 더욱 큰 당황을 느껴야만 했다.
 명확한 사람의 언어였지만 느닷없이 고막에 스며든 소리였기에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고르고는 남자가 자신에게 질문했다는 걸 깨달았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알고 있었구나!’
 잠시 머뭇거린 그는 결국 바위 뒤에서 일어났다.
 어떤 특정한 목적이 없었지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사람이 말을 걸었으니 응당 그에 해당하는 언행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보편적 예의에 입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뿐이다.
 다만, 행동은 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바위 주변에서 서성이다가 겨우 한 마디를 던졌다.
 “좋은 날씨지요?”
 ‘앎’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그다지 말주변은 필요치 않으리라 생각한 고르고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상황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말을 하는 자신의 입을 저주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로서는 썩 나쁘지 않았지만, 무지개 사자의 시체 위에 앉은 남자와의 대화 포문으로 어울린다고 보긴 어려웠다.
 다행히 남자는 답을 해 주었다.
 “화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날씨라 할 수는 있겠습니다.”
 나름 성의가 있는 답변이었다.
 고르고는 왠지 묵직했던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그는 왜 인간의 발길을 허용치 아니하는 광한수림에 이런 남자가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사십 먹은 학자도 들어섰는데 신체 건강한 남자가 들어오지 못할 건 없었다.
 대신 가벼워진 마음을 믿고 지금 그 자신이 가장 궁금해했던 호기심을 풀기로 작정했다.
 “무지개 사자를 죽이신 겁니까?”
 남자는 자신의 방석이 되어 버린 괴수의 사체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죽이는 데에 일조는 했지만, 온전히 내가 죽였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고르고는 문득 현기증이 나는 걸 느꼈다.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죽였든 죽이는 데에 일조를 했든, 어쨌든 무지개 사자의 죽음에는 저 남자가 깊게 엮여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일대 사건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고르고는 한 인간의 무용(武勇)에 대한 의문보다는 학자였기에 진한 안타까움을 느낄 만한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 할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면 그 누군가는 주저 없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학자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백 년 전에 멸종했다는 무지개 사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입니다. 모든 학계에 주목을 받을 만한 사건임과 동시에 멸종했다 알려진 다른 동물들에 대한 어떤 사실을 제시할 근거도 될 수 있겠지요. 한데 어찌하여······.”
 “백 년 전?”
 남자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얼굴로, 하지만 의문이 담긴 것이라 추측이 가능한 어투로 의문을 표했다.
 “백 년 전에 무지개 사자가 멸종했다 하였습니까?”
 “어? 모르셨나요?”
 이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사고할 줄 알고 말할 줄 아는 이들 중 백 년 전에 무지개 사자가 멸종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더군다나 나이가 스물이 넘어간 사람들 중 상식에 가까운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겠다.
 하지만 남자는 그 상식을 파괴한 말을 내뱉은 것이다.
 아무리 의식의 한계를 넓혀서 적게 보려 해도 남자는 족히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의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미청년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눈매도 강인했고 코도 오뚝했다.
 지극히 모호한 인상이었으나 누구에게 지적받을 만한 외모는 아니었고, 거기에는 세월이 할퀸 흔적이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나이만 보면 고르고가 몇 년 더 살았겠지만, 남자에게 함부로 할 수 없던 이유도 그 묘한 박력과 모호함에 있었다.
 게다가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인데, 남자에게는 범용한 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신비한 예의범절이 있었다.
 “역사학적으로 볼 때도 대사건이라 할 수 있겠죠. 왜 멸종했는지는 아직까지 생태계 최대의 의문점으로 남았지만, 용과의 일전을 두려워하지 않던 산신 호랑이와 무지개 사자가 의문의 사건으로 모두 멸종했다고 알려졌고 학계에서는 확정을 짓고 있는 상황입니다.”
 “산신 호랑이? 산신 호랑이도 멸종했다고?”
 “예? 그럼요. 왜 그런 의문을 가지시는지 되레 제가 당황스럽습니다. 그래서 많이 놀랐습니다. 멸종했다 알려진 무지개 사자가 여기에 떡하니 있으니까요.”
 남자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혹스러운 표정―표시도 나지 않았지만 굳이 분류한다면―을 지었다.
 “당신에게 큰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이 판주아 왕력(王歷) 몇 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판주아 왕력이요?”
 고르고는 자신의 건망증이 다시 도졌나, 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아도 답은 금세 나왔다.
 저주받을 건망증이었지만 역사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는 그였기에 판주아라는 나라를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상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판주아 왕력이라니요? 나라가 사라진 지 올해로 정확히 구십오 년째입니다. 혹 당신이 물어보는 판주아 왕력이 그때의 나라라면······ 예, 거의 그 정도의 세월이 흘렀지요. 산신 호랑이와 무지개 사자가 멸종한 그 시기입니다. 그 외에 판주아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나라는 제 상식으로 볼 때 없었으니까요.”
 이번에는 남자도 제법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범인에 비한다면야 눈썹 한 번 까딱이는 정도였으나 지금까지 보아 온 모습으로 유추하건대, 상당한 충격을 받은 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십오 년이 흘렀다? 판주아 왕국이 멸망을 했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의아한 건 고르고였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이리도 심각하게 물어보시니 뭐라 대답하기가 난해하네요.”
 “그렇군.”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그러나 한결 무거워졌다는 게 확실한 분위기를 품고서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죽어서 쓰러진 무지개 사자를 깔고 앉아 무표정한 얼굴에 심각함을 담은 남자의 모습은 세상과 완전한 단절을 공표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압도적인 이 상황에서 고르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는 것뿐이었다.
 딱히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는 자신이 지금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설의 괴수라 칭해지는 무지개 사자의 사체가 앞에 있고, 그런 무지개 사자를 죽이는 데에 일조한 사람이 있으며, 무지개 사자의 사체를 뜯어 먹은 늑대까지 있다.
 이 정도 조합이면 설령 역사상 최고의 무용을 자랑한다는 전사라 할지라도 지극히 긴장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무지개 사자를 죽이는 데에 일조한 사람의 경우, 상식이라 알려진 사건들을 마치 모르는 것마냥 물어보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만약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진중한 예의가 아니었다면 누가 봐도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위험하네?’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꽤나 위험한 상황이라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과 감성의 차이는 컸다.
 고르고가 자신의 이성과 감성의 차이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 마침내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굳이 거절하고 싶지 않을 의사가 있다면 무지개 사자의 남은 사체를 당신에게 드림으로써 감사의 인사를 대신하고 싶습니다.”
 딱히 상식을 벗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상식의 범주 안에도 들기 어려운 말이라고 고르고는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기뻐해야 하는지, 당혹스러워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도 정할 수 없었다.
 간신히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을 생각해 낸 고르고가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저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한 것뿐입니다. 멸종한 무지개 사자를 발견했다는 것 자체에 대한 경이감은 있었지만 이미 죽어 버렸다면 그 앞에서 안타까워하는 것밖에 제가 할 일은 따로 없을 듯합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남자를 보며 고르고는 서둘러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저지른 일에 불쾌함이 있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렇죠. 누구라도 천하의 무지개 사자가 다가온다면 아무짝에 쓸모없더라도 일단 단검을 꺼내 들었을 테니까요.”
 남자는 자신에게 덤볐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무지개 사자를 사냥할 용의가 있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변명이라 하기에도 어려웠지만, 구구절절한 사연 엇비슷한 걸 말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벌림으로써 시간을 낭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대신 주위를 환기시킬 만한 말을 꺼냈다.
 “무지개 사자를 굳이 가지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녀석의 처분은 자연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살상한 쪽은 당신이니 결국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중년의 학자는 하지 않았다.
 “그러시지요.”
 무지개 사자의 시체 위에서 일어선 남자는 전설에나 나올 법한 시커멓고 자루가 짧은 소검을 바닥에 꽂고 망토처럼 머리 아래를 전부 가릴 만한 거대한 바람막이를 휘둘러 몸을 감쌌다.
 고르고는 남자의 그 행동이 마치 검은색 바람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망토와 분간이 안 가는 바람막이 덕택에 남자의 몸은 대부분 가려졌다.
 고르고는 충격을 받았다.
 의자 용도로 변경해 버린 무지개 사자에서 내려온 남자는 이전과 또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일조하는 데에는 남자의 큰 키와 넓은 어깨, 철탑처럼 대지를 딛고 선 두 다리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큰 도움은 바로 남자 자체의 모습이었다.
 모호함에도 종류가 있다면 남자는 더할 나위 없이 가장 큰 모호함일 것이고, 절망을 두를 수 있다면 남자가 걸친 바람막이 역시 절망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
 밤하늘보다 광활한 어둠이 있다면 바로 남자의 두 눈일 것이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과 전혀 다른 이질감을 풍기는 이 묘한 사내에게도 시종이 있다면 바로 회색의 늑대일 것이다.
 남자는 사막의 모래바람이었고, 밤하늘의 어둠이었으며, 태양보다 강렬하지만 똑바로 볼 수 있는 모순, 그 자체였다.
 저주하고 싶은 절망감이 고르고의 몸을 둘러쌌다.
 남자에게 겁을 집어먹어서도 아니었고, 늑대의 식후 간식거리가 자신이 될 거라는 공포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건망증 때문이었다.
 저 모습.
 세상에 또 없을 것 같은 이런 분위기의 사람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지만, 떠오르지 않는 기억 때문에 그는 절망했다.
 신이 있다면 왜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고강도 건망증을 선물했냐며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저와 같은 남자를 실제로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남자의 분위기는 모호함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잊어버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책! 책이다! 책에서 저 남자의 그림을 본 걸 거야!’
 어떤 화가가 낸 어떤 화집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남자와 비슷하게 생긴 선조의 그림이 그려진 책일까?
 그렇다면 저 남자의 선조는 대중에게 보일 책에서 소개가 될 정도로 혁혁한 명성을 쌓은 이일까?
 고르고가 기억 저편에 꽁꽁 숨어 있는 책의 저자와 제목을 기억해 내려 애쓰고 있을 때, 남자와 늑대는 어느새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한순간 그걸 깨달은 고르고는 헐레벌떡 남자에게 뛰어갔다.
 “어, 어딜 가시는 겁니까?”
 남자의 눈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나에게 혹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아,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대화를 할 어떠한 사정도 있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말은 냉정하리만치 무뚝뚝했다.
 비수보다도 날카롭고 명확한 답안지였다.
 그랬기에 거짓과 포장이 전혀 되질 않은 말이기도 했다.
 고르고는 괜히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헤어짐의 인사 한마디 정도는 나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조금 전 당신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기에 더 이상 방해하는 건 부도덕한 짓이라 판단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런 젠장!’
 속으로 약간의 절규를 내뱉은 고르고였다.
 그는 심각한 건망증 환자였지만 집중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서 한 번 상념에 빠지면 도통 남의 얘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이만한 집중력을 가지지 않은 많은 학자들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줄 수 있었다.
 대화를 하던 도중 말도 안 하고 멍하니 몇 시간 있다 보면 참을성으로 무장한 대다수의 학자들도 지치게 마련이다.
 “죄송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번 생각에 빠지면 주위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아니지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서로 이름도 모르고 지냈군요. 소개하지요. 저는 현자성(賢者城) 소속 제2부교장(副敎長) 고르고라 합니다.”
 남자는 한참이나 고르고를 바라보았다.
 어떠한 감정도 갖지 않은, 놀라우리만치 흑백이 명확한 눈동자는 아름다움과 비릿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고르고는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어떤 불쾌감을 유발토록 했는지 고심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남자는 고르고를 만난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도 불쾌함이라는 감정을 가진 적이 없었다.
 다만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약 십여 분이 흐른 뒤, 고르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 사람도 상상력이 뛰어난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혔을 때 남자는 가까스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고르고는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았다.
 마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을 이야기하듯,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씹어뱉었다.
 “바한. 바한이라고 합니다.”
 
 * * *
 
 생명의 존엄성은 문명을 알게 된 인간이 얻은 가장 훌륭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존엄성만을 강조하는 행태를 생각한다면 인간들이 깨달음의 실천을 그리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벗어나기 어려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어려운 상식을 탈피하고 희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통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러한 성인 역시 남을 도우면서 얻게 되는 나 자신의 평화와 욕심에 입각하여 베풂과 희생을 실천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다른 이들은 어떠한 얼굴로 성인을 대할 수 있을까?
 성인은 성인 나름대로 자기 스스로의 만족적 존엄성을 가장 중요히 여기며 남들을 존중하는 척,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척 연극을 한다.
 설혹 정말로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긴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라 정신 나간 변태의 자기 붕괴라 할 수 있겠다.
 세상에 성인은 없다.
 다만 성인이 되고 싶은 자와 성인을 괴롭히고 싶은 자, 성인을 필요로 하는 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지독한 모순 속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밝음을 좋아하지만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고 어둠을 싫어하지만 되레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눈을 저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생 완전한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도발성으로 생각한다면 이만한 내용의 책이 또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르는 책을 덮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지나치게 벅찬 책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자기 사유가 글 곳곳에 보이고 상당한 논리력 또한 보유한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더불어서 설득력 역시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르는 이 엄청난 내용의 글을 쓴 작자에게 압도되는 자신을 느꼈다.
 ‘아마도 이 책을 쓴 저자는 성인이라 추앙받는 사기꾼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을 거야.’
 세상에 이유 없는 증오는 없다고 생각하는 아무르였다.
 그냥 싫다, 어쩐지 재수 없다 등등의 놀라우리만치 무감각하기에 되레 감각적으로 들리는 말들은 기실 쌍둥이처럼 똑같은 얼굴의 타인이 수치스러운 행태를 보이는 것처럼, 타인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추함을 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악행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으니.
 물론 아는 것과 깨닫는 것, 실천하는 것은 달랐다.
 아무르는 알았고, 일부 깨달았으며,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자신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오만한 자신감인지 다시 한 번 깨닫고 절망했다.
 내용이 어찌 되었든 간만에 파격적인 글을 봤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당장 총교장(總敎長)이 부르지만 않았더라도 날을 새서 읽었을 책이다.
 그녀는 학자였고, 대개의 학자들처럼 밥 먹는 것보다 책 보는 걸 더 좋아했다.
 더불어 십 분 뒤, 아무르는 책 보는 것이 사람 대하는 것보다 더 좋았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책은 그녀에게 있어서 타인보다도 우선시되었던 나른한 침상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 하셨죠?”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해하기는 싫었기에 아무르는 다시 물었다.
 총교장 배도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친절하게 재차 말해 주었다.
 “광한수림으로 가라 하였다.”
 아무르는 드디어 늙으신 우리 총교장님에게도 치매가 온 건지 의심했다.
 그리고 그런 부도덕한 생각을 한 자신에게 놀랐다.
 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도록 냉정하리만치 평안하게 말한 배도도 총교장에게 다시 한 번 놀라 버렸다.
 “광한수림이요? 제가 제대로 들은 것 맞나요?”
 “정확하게 들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알기로 세상에서 광한수림이라 불릴 만한 곳은 단 한 곳입니다만, 설혹 이 며칠 사이에 다른 지역에도 광한수림이라는 저주받을 동명을 붙인 곳이 있었나요? 제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신경을 잘 안 써서.”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어떤 재치 있는 작명 감각의 소유자가 자기 집 앞마당을 광한수림이라 말했을지 누가 알겠느냐?”
 “그렇다면 총교장님께서는 지극히 보편적으로 불리던 광한수림으로 저를 보내시겠다는 거로군요?”
 “훌륭한 이해력이다.”
 이해력은 훌륭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기분은 전혀 훌륭하지 못했다.
 이해와 기쁨은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 법이니까.
 아무르는 어처구니없음 반, 공포 반의 말투로 반문했다.
 “아니, 도대체 왜?”
 심지어 문장을 끝내지도 못했다.
 적어도 대륙에 사는 사람들 중 광한수림의 공포를 듣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다시없을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들도 광한수림에 가길 꺼려했다.
 아무르가 알기로, 지금껏 광한수림에 들어선 사람은 일 년 전에 홀연히 ‘댕갈송이’를 찾으러 간, 미친놈들도 ‘저거, 미친놈일세’라고 말할 학자 한 명밖에 없었다.
 그 나이라면 부교장이 아니라 부총교장이 되어도 썩 모자라지 않을 테지만 어떠한 업적도 쌓지 않고 스스로의 의문을 해소하는 데에만 열성적이었기에 부교장에 머물 수밖에 없던 중년의 학자.
 게다가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몇 달 전에는 광한수림에 직접 찾아가겠다며 서신 한 장을 보내왔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가히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중년 학자를 생각한다면 서신을 보냈다는 것 자체만 해도 심히 놀랄 일이었는데, 더불어 광한수림에 들어가겠다며 쾌활함을 한껏 표했다.
 현자성 대부분의 학자들은 드디어 고르고가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벗어날 정도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설령 뛰어난 용맹을 가진 전사가 자신의 무용을 뽐내려 해도 광한수림에 들어가겠다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사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만약 모험도 하고 싶고 자살도 하고 싶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광한수림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명승지라 불리어도 딱히 무리는 아니겠다.
 애석한 사실은 아무르가 모험은 하고 싶을지언정 자살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다.
 ―들어간 짐승은 있어도 나온 짐승은 없다.
 
 차라리 전설상의 대괴수가 있다고 하면 모르겠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살아서 멀쩡히 나온 생물체는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은 생각할 수 있는 자들에게 무한의 공포를 선사했다.
 어떤 위협이 있는지 모르기에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다.
 사람은 명백히 드러난 사실을 인지해야 그에 맞는 대처, 준비라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사람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지만 그런 사람을 만든 세상의 오묘한 법칙이 잔뜩 적용된 광한수림은, 그렇지 않아도 드넓은 사람의 상상력을 더욱 넓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상상력 증대를 공포에 집중했다.
 스물의 나이로 현자성 제2교장이 된 천재 학자 아무르에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식을 얻음으로써 스스로 상상력에 제한을 걸어 버린다는 학자들 사이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한다면 가장 놀랍고 발칙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섯 권의 책을 저술한 아무르였다.
 아무르는 그 기막힌 상상력을 이용하여 광한수림의 끔찍한 공포를 마구 만들어 내었다.
 ‘대괴수가 있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미로처럼 길을 엇갈리게 하는 괴악한 법칙이 적용되는 숲일지도 몰라. 아니면 나무들이 움직이는 생물체를 양분 삼아 커졌다든가. 하지만 양분을 얻는 방법은?’
 대체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세상은 종종 말도 안 되는 일을 끔찍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공포에 질려 버린 불쌍한 여학자를 보며 배도도 총교장은 조금도 미안한 기색을 보여 주지 않았다.
 “광한수림에 가서 네가 찾을 것이 있다.”
 아무르의 얼굴은 곧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붉어졌다.
 젊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불신, 공포, 분노 등의 감정이 무지개처럼 섞이지 못한 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설마 나이는 저보다 두 배 많으면서 아직까지 부교장 위치에 있는 한 중년 학자가 추구하던 길을 총교장님께서도 걸으시려 하는 겁니까? 그리고 총교장님의 의지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저라고 착각하신 거고?”
 “그 반의반 정도의 용기만 내게 있었다면 지금쯤 나라 하나를 건설했을 게다.”
 “제가 잘못 알고 있었군요. 만날 하릴없이 낚시만 하면서도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분께서 그토록 웅대한 야심을 갖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야심을 이루는 과정에서 끔찍하게 죽느니 편하게 앉아 낚시하는 게 백배는 더 매력적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만용에 가까운 용기의 결여였지.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 있다.”
 “제가 보기에 짧지 않은 총교장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판단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고맙구나. 이제는 일 이야기를 해 볼까?”
 “총교장님!”
 아무르의 목소리는 상급자에게 말할 수 있는 한도를 충분히 넘어설 만큼 크고 위압적이었다.
 “젠장,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광한수림으로 가라니요? 제가요? 저를요? 물론 저에게도 용기라는 게 있지만, 만용과 용기는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 판단력도 있다는 걸 깨달아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거기 들어갔던 생물체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어 나갔다고요! 그걸 모르신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말을 정정해야겠다. 나오지 않았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들어갔단 이유로 죽었을지 누가 아느냐?”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명도 못 나왔다면 결국 다 죽었을 게 분명하니까요! 세상 그 어떤 생물체도 천 년은 살지 못해요! 혹시 모르죠. 용이나 산신 호랑이나 무지개 사자라면 삼백 년 정도는 살 수 있을까요? 그래요. 백번 양보해서 천 년을 살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아무리 광한수림이 넓다 해도 그 전설적인 존재들이 한 번쯤은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가정은 왜 못하시는 건데요?!”
 “그런 가정이나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번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흥분한 아무르에 비해서 배도도 총교장의 말은 지나치게 담백했다.
 아무르는 배도도 총교장이 자신의 기분을 이해했기에 차마 화를 내지 않는지, 그도 아니면 화를 낼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당황했다.
 배도도 총교장은 여전히 담백한 말을 흔들림 없이 풀어내었다.
 “다른 누가 본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에 목숨을 건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이번 사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우매한 자들의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
 왠지 그 우매한 자들 중에 자신이 포함된 것 같아서 아무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총교장은 광한수림에서 행할 정확한 목적을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르는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우매한 자라 할 수는 있어도 무턱대고 자기 논리만이 진리인 양 피력하는 멍청이들보다 한결 낫지 않겠는가.
 “많이 살아야 백 년, 그마저도 늙음 앞에 거동조차 불편해하는 우리 인간들은 얘기한다. 젊음을 되찾고 싶다, 더 살고 싶다고. 또한 그것은 마냥 나 같은 늙은이들만의 푸념은 아닐 테지. 대지를 걸어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로불사(不老不死)라는 단어에 매혹당한다. 젊음을 잃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 무수한 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의 역사와 함께 어느새 전설이 되어 버린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것이 얼마나 어이없고 우둔한 생각인지 명석한 너라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는, 가혹하지만 아름다운 불합리 속에서 유지된다. 인간이 불로불사를 손에 얻게 되는 즉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단적 존재가 되어 버린다. 실제 내가 불로불사의 존재는 아니지만 상상력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크게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지.”
 아무르는 불퉁하게 대답했다.
 “총교장님의 말씀은 짐작하겠지만, 그 의도까지 짐작하기엔 지금까지 들려주신 정보의 양이 지나치게 적답니다.”
 “하지만 문제는 불로불사라는 점 자체다. 하물며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 왔던 바위도 깎이고 깎여 나중에는 돌멩이, 자갈로 변해 생을 마감한다. 그것이 바위의 생이라면······ 그렇다, 생의 마감이라 할 수 있지. 거대한 자연이 하나의 목숨이라 생각한다면 자연은 영원과도 같은 생을 사는 셈이지만, 그 안에서도 무수한 죽음이 있기에 영원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 자체는 영원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 죽음이 있기에 영원하니까. 세상에 죽음이라는 변화 없이 영원한 것은 없다. 위대한 자연조차도 그러하다. 그러나 변화를 포함하면 ‘영원’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질 않는다. 그 모순이 무척이나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재미는 없지만 흥미롭긴 하네요.”
 “영원할 수 없기에 영원한 것. 영원함을 바라지만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것. 진화와 퇴화가 반복되는 것. 그것이 인간이고 자연이며 세상이다.”
 놀라우리만치 많은 말을 했기에 살짝 지친 배도도 총교장은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보다 뚜렷하고 명확한 눈빛과 함께.
 “다른 누군가가 신을 존경하며 신께서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경이를 표한다면, 나는 정말 오묘하게 만드셨다고 투덜댈 것이다. 내가 세상에 속해 있기에 할 수 있는 의견 피력의 권리이다. 이러한 세상에 만약 불로불사의 존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글쎄요? 아직 여물지 못한 제 알량한 머리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만?”
 아무르는 끝까지 삐딱했지만 배도도는 그녀의 말에 조금의 기분도 상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스물의 나이에 결혼조차 하지 못했고 더불어 아직 알고 싶은 것이 무수히 많던 젊은 시절에 이런 명령 같은 제안을 받았다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기 전만 해도 성격의 불같음은 어지간한 전사들도 ‘어마, 뜨거라’ 할 정도로 거침이 없던 그의 과거를 생각하자면 아무르는 오히려 얌전한 수준이었다.
 배도도는 그녀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는 것보다 무수한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여학자의 머리를 깨우쳐 줄 만한 내용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방법의 좋고 나쁨을 따지긴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지옥이 될 거다.”
 “네?”
 “말 그대로, 지옥이 될 거다.”
 아무르는 지옥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감동하게 들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지만 흘려들을 만한 단어는 아니었기에 집중했다.
 “지옥이 된다고요? 불로불사의 존재가 있다면?”
 “그렇다. 진지하게 이유를 생각해 보겠느냐?”
 비록 기분을 상하게는 했지만 상대는 존경할 만한 늙은 학자였고, 실제 자신의 상관이기도 했다.
 학자에게 상관의 개념이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자유로웠으나 그렇다고 단어의 본질적 의미마저 변질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학자이며 상관이기도 한 노인의 질문에 살짝 고민해 보았다.
 ‘자연, 영원, 신, 모순, 진화, 퇴화, 불로불사······.’
 몇 분이 지난 이후, 아무르는 다소 떨떠름한 안색을 감추지 못한 채 더듬더듬 말했다.
 “설마 그 지옥이라는 게 사람 얼굴을 한 강아지나 소 얼굴을 한 사람, 날개가 달려 있는 악어 등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상당히 외관적인 부분만을 놓고 말했지만, 반의반 정도는 얼추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순간, 아무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네 말이 뜻하는 대로, 세상은 항시 변화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상식이 자연의 상식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굳이 말한다면 변화는 항상 자연의 상식 속에서, 그러나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 일어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당황하지만 자연은 모든 걸 수용하지. 상식 안에서 일어난 변화니까. 그래서 난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소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진화설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불로불사는 자연의 상식 안에 있는 변화가 아니야. 변해야만 자연의 일부이니까. 불로불사는, 즉 불변불멸(不變不滅)이다. 그러한 존재가 나타났다는 ‘변화’는 세상을 구성하는 법칙을 깨트려 버린다. 불변불멸의 존재는 자연 변화의 법칙에 일관성과 고정성을 부여해 세상을 근본부터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단순히 사람들만 당황하는 변화가 아니라 자연마저 당황해 버릴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자연의 역사가 그러했듯, 이미 극한 변화의 종결이라 할 수 있는 불로불사의 존재가 나타난다면 세상은 극단적인 형태로 그 변화물에 맞서서 일그러질 테고, 결국 무너져 내릴 거다.”
 “무너져 내려요?”
 “자연은 친절하다. 친절하기에 무섭지. 동식물에 맞추고 사람에게 맞춰 주었다. 폭풍우와 눈사태를 사람들은 인간에게 실망한 신의 분노, 자연의 분노라고 말한다만, 내가 생각할 때는 그 역시 긴 시간을 살아가는 자연에게 있어 퇴화와 진화 사이의 지극히 사소한 일 중 하나라고 본다. 그렇다면 사람이길 거부하고 동물이기도 거부한, 심지어 죽음과 시간의 경과마저도 거부한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난다면 자연은 그 존재에게 어떤 친절을 베풀어 줄 것인가? 그 무엇보다도 완벽한 존재이기에 자연이 만들어 낼 변화는 되레 불변할 수 없고 불멸하지 않는 우리에게 지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그렇게 변화되기 전 불로불사의 존재가 자살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로불사이기에 자살이 허용되지 않아. 자기 법칙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난다. 나는 그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어떤 재앙보다도 심한 재앙이 이 땅에 강림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판단했으며, 명성이 부족하다 여길 정도로 지혜 있는 자들과 몇 차례나 의견을 나누어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가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내용에 아무르는 어느 때보다도 압도되는 자신을 느꼈다.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은 확신 아닌 확신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결국 먼지처럼 변해 버릴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불로불사? 자연? 변화? 그게 다 무슨 말이야! 세상이 지옥이 된다고?!’
 그 정신적 비명 안에서 아무르는 주춤했다.
 뭔가 한 가지가 결여된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약간 잠긴 목을 콩콩, 때리며 물었다.
 “총교장님. 당신의 방대한 지식과 지혜, 발칙하리만치 놀라운 상상력에 경의를 표합니다만, 역시나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이유를 듣지 못했는데요? 세상에 불로불사의 존재가 나타난다는 게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지옥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자연이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를 용납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입니다만, 어쨌든 그래서 총교장님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또 왜 저를 광한수림으로 보내시는 건데요?”
 배도도 총교장은 명쾌한 어조로, 하지만 씁쓸함이 묻어 나오는 어조로 말했다.
 “너는 불로불사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매력을 느끼느냐?”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해 버린 노인네를 한 대 때려 줄까 생각하던 아무르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주먹을 풀었다.
 예나 지금이나 육체적으로 쇠약한 노인네에게 주먹질을 하는 젊은이는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대신 그 격했던 감정을 말로 대신했고, 덕분에 그녀의 음성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불로불사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지만, 설령 되라 해도 전 싫어요.”
 “왜지?”
 “한 삼백 년? 그 정도면 또 모르겠는데, 영원히 살아야 된다는 건 지루하잖아요? 사람은 수명이 있기에 치열해질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미쳤어요? 전 고대 죽편의 지혜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단어를 배웠어요. 그에 따른 고전 이야기가 있었지만 다른 걸 제치고서라도 매력적인 내용을 포함한 단어더군요. 과한 건 부족함만 못하다든가? 정확히 해독은 못했지만, 그 비슷한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전적으로 동의하구요. 단명(短命)하는 대신 세상 모든 재미와 지혜를 준다면 덥석 물겠죠. 그렇지만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대신에 내 치열함과 재미를 뺏어 가는 건 절대로 싫어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깔끔하게 말을 마친 아무르를 보며 배도도 총교장은 역시나 이 독특하고도 파격적인 젊은 교장이 이 일에 적격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또한 씁쓸했다.
 자신도 유별날 것 없는, 범인에 비해 그저 아는 것만 조금 많은 늙은이에 불과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불로불사의 존재가 나타나는 걸 방지하고 싶다. 그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망은 물론, 다른 모든 동식물들을 파괴할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라면 그러한 존재가 됨을 막아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앞에 불로불사의 비법이 있다면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마땅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아무르는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웩, 그런 저주받아도 모자라지 않을 비법에 왜 매력을 느끼시죠? 불로불사라는 건 학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식의 성취감, 그 이상을 바라보기 힘든 것이에요. 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거하고 비슷한 거라고요.”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한계겠지.”
 배도도 총교장은 한숨을 쉬었다.
 “너의 지식과 결단력, 용기를 인정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독특한 사상을 짊어진 채 결코 버거움 없이 걸어가는 괴력에 나는 경이를 느낀다. 그래서 이 일에 너를 추천한 것이다.”
 대화가 살짝 논점을 벗어났음을 아무르는 깨달았다.
 깨달았기에 다시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불로불사가 될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불행한 사건이 끼어들지 않은 이상 자기 수명대로는 살다가 죽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불행한 사건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왜 제가 광한수림으로 가야 하냐구요?!”
 “거기에 불로불사의 비법이 있기 때문이고, 그걸 노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로불사의 비법.
 글자 몇 개의 조합에 불과했지만 그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아무르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불로불사? 광한수림? 뭐 어째?
 “불로불사의 비법이라고요? 설마 고르고 부교장의 정신 나간 ‘댕갈송이 찾기 대작전’에 흥미를 느끼신 건 아니죠?”
 “아까 말했듯, 이미 많은 지혜 있는 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론을 도출했다.”
 “도대체 왜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거죠?”
 배도도 총교장은 의문이 지나치게 많은 아무르 제2교장에게 어떤 기분을 가져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광한수림으로 달려가야 할 스무 살짜리 젊은 여학자의 심정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노여움이나 지겨움 같은 감정은 배제해도 좋을 듯싶었다.
 “불로불사와 반대되는 개념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무르는 한 번도 자신을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유일무이한 천재라고도 생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남보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결코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을 질문의 형태로 대답하고, 심지어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버리는 듯한 대답 앞에서 인간이 가진 한계를 느꼈다.
 “그게 또 뭔데요?”
 “말 그대로다. 불로불사의 반대 개념이 무엇이겠느냐?”
 썩 유쾌하지 못한 얼굴로 아무르는 대답했다.
 “영원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니 죽음이겠죠. 탄생은 불사의 반대는 될 수도 있지만, 불로의 반대라 보기에는 어려우니까요.”
 “이번 역시 일부만 맞추었다. 죽음은 불사의 반대이고 굳이 널리 본다면 불로의 반대라 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은 고정이며 불로 역시 고정이기에 만족스러운 대답이라 하긴 어렵다. 그러니 자연스레 결과는 도출된다. 불로불사의 반대는 부활이다.”
 어리둥절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부활이라고요? 다시 살아나는 거? 그거 말하는 거죠?”
 “정확하다.”
 “어째서 부활이 불로불사의 반대되는 개념이죠? 오히려 엇비슷한 개념 아닌가요? 다시 태어났으니까 죽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한 번 죽었으니 불사가 아니고, 다시 늙어야 하니 불로가 아니다. 그래서 불로불사의 반대 개념은 부활이다. 부활을 몇 번이나 해도 어쨌든 시간의 경과는 지나쳐야 할 일이니까. 다시 죽어야 부활할 테니 끊임없이 늙고 끊임없이 죽는다. 하지만 불로불사의 존재는 시간의 엄격함을 받지 않는 이다.”
 아무르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공포에 질려야 했다.
 그녀는 부활이 주는 신비로움보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 대한 공포를 더욱 심각하게 느꼈다.
 “부활한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 시간이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 잡히고 말았지. 애처로운 일이지만 재차 그물을 뚫고 시간의 경과에서 벗어나 고정의 형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 번 부활했던 자가 그물을 빠져나갔다 한들 다시 잡힐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되는구나.”
 “도, 도대체 누가······?”
 “그것은 차후에 알려 주겠다. 문제는 불로불사의 반대되는 개념이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다. 불로불사의 반대되는 개념, 부활의 경험을 한 이가 나타났으니 불로불사의 존재라 한들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나중에 결과야 어찌 된다 한들 자연은 결코 짝이 아닌 것을 세상에 보내지 않는다. 암수가 그러하듯. 그리고 믿기 싫은 이야기지만, 불로불사의 비법이 실제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아무르는 최근의 영양 섭취가 지나치게 부족했음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그동안 지식과 정보를 얻으면서 즐거워했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연달아 어지러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밥 좀 많이 먹어야겠다.’
 그녀는 쪼그라진 위장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 신비하고도 끔찍한 대화가 모두 종결된 이후의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광한수림에 나타났다는 거로군요?”
 “그렇다.”
 “어떻게 광한수림에 나타났다는 걸 믿으시죠? 확신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의문을 제시하면서 아무르는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깨달았다.
 그래서 졸도할 뻔했다.
 이십 년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놀란 적은 어머니의 따스한 뱃속에서 나온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배도도 총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한 그 존재가 광한수림에서 나온 유일한 자이기 때문이다.”
 
 
 
 1막 2장 (1)
 
 
 ······의 농간인지 자연의 포기인지 그들은 사라졌으나 과거라 불리기도 힘든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기괴한 존재들이 세상이라는 놀이터를 뛰놀았다.
 
 우리는 현재에 이르러 이미 신화로 자리매김한 수많은······.
 전설적인 존재들을 그저 전설로만 확정 지은 채······.
 
 ―판주아 왕국 학사회장 태랑의 수필 일부
 
 
 무표정한 얼굴로 무생물처럼 소름 끼치는 예의범절을 구사하는 바한을 보며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고르고는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는 현자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건망증이라는 신의 저주를 받은 그는 아무래도 떠듬떠듬 추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 상대로서는 그다지 좋은 상대라 할 수 없는 고르고였지만, 사실상 그건 바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성인지 스스로 그걸 알고 있는지 바한의 표정에는 어떠한 짜증과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고르고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더없는 확신을 가졌다.
 호기심을 얻었지만 답은 명백하게 나왔으니 굳이 그걸로 머리를 꽁꽁 싸매는 건 지극히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고르고가 끙끙 앓는 것은 단순히 정의 내린 답 이외에 무수한 답이 존재할 것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 무지개 사자의 사체를 보고 나서, 그리고 허리춤에 걸린 상당히 고풍스러운 소검 한 자루를 보고 나서 남자에 대해 고르고는 이렇게 판단했다.
 ‘이 남자는 전사일 거야.’
 혼자서 무지개 사자를 잡았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죽이는 데에 일조를 했다고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뛰어난 전사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사라진 지 백여 년, 사회 지도자층 인물들이 ‘더 이상 나라를 만드는 건 사람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일이며 지독한 오만에 빠지도록 하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저 신비의 성인(聖人) 신수마부(神獸馬夫)가 말했던 것처럼 더욱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나라가 생기는 건 이후의 일이여야만 한다’라고 공표한 이후 더 이상 국가라는 개념은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니 나라에 충성하는 군인들은 없어지고 쓸 만한 지혜로 무장한 현자들은 옹색한 변명과 함께 산으로 돌아갔다.
 덕택에 국소적인 형태의 집단이 뭉쳤고, 개중 무력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군인이 아닌 전사라고 불렀다.
 남자는 실로 그러한 ‘전사’라는 형태에 부합하고 있었다.
 특히나 큰 신장과 슬쩍 보이는 팔뚝을 보자면 무지개 사자는 무리일지라도 평범한 사자 정도는 팔씨름을 해도 딱히 패배를 예상하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칼집이 그대로 달린 칼로 백 미터에 달하는 나무를 톡톡, 치자 주변에 있는 서너 그루의 나무들이 몸을 터는 광경은 그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놀라움을 선사했다.
 몸을 턴 나무들은 사람 머리통만 한 괴상한 과일들을 툴툴 토해 내기에 이르렀다.
 이 정도 양이라면 거의 열흘은 먹어 치울 수 있을 것이다.
 고르고는 자신이 학자임에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문을 가지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누구라도 이 정도 의문은 가질 거라고도 생각했다.
 “당신, 혹시 요술사(妖術師)이십니까?”
 바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술사가 뭡니까?”
 왜인지는 모르지만 현대의 역사와 사상에 상당 부분 거리를 가진 바한임을 고르고는 깨달았다.
 하기야 강병(强兵)이 미덕이었던 판주아 왕국 때와는 달리 현재는 문화적으로 여러 가지가 발달된 상태였다.
 이상할 정도로 과거에 익숙한 바한이었기에 고르고는 설명이 필요함을 재차 느꼈다.
 “이거야 원. 그러니까, 에······ 보통은 마술사라고 불립니다만, 그들만의 비법이 있어서 존재하는 물건을 사라지게도 하고 없어졌던 물건을 나타나게도 하는 존재들 말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상자를 만들어 내서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분리시킨 후에 다시 붙이기도 한다죠? 그들의 힘은 워낙 신비해서 대대로 가문의 비전으로 내려오고 있다고들 하는데, 그런 놀라운 능력을 길거리 광대짓으로나 사용하니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죠.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네요. 저 서북쪽 땅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는 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당신을 보니, 충분히 그런 직업이 있을 수 있다고 보입니다.”
 바한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다만 입은 움직였다.
 “실로 놀라운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는 걸 부인하진 않겠습니다만, 나는 없던 열매를 나타나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쳐서 열매를 떨어트리는 건 보편적으로 흔히들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돌멩이를 구르게 할 만한 완력으로 나무 한 그루를 툭, 쳐서 주변 모두의 열매를 떨어트리는 기술은 세상 누구도 보유하지 못했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손으로 쳐서 지진을 일으키게 했다면 모를까, 마치 물기를 터는 강아지마냥 제 스스로 몸을 털어 열매들을 바쳤다면 이것이야말로 요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고르고가 이 광한수림에 대해 무지하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한 역시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금했다는 걸 깨달았다.
 외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광한수림도 공간 내에 나름의 상식과 법칙이라는 걸 가지고 있는 엄연한 또 하나의 세상이다.
 평생 광한수림에 안 들어왔다 하니, 이 공간의 상식이 새로워 보이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설명해 주었다.
 “이 나무는 치아목(恥我木)이라 합니다. 부끄럼나무라고도 불리지요. 크기와는 다르게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이름이지만, 보이는 대로 설득력은 없습니다. 다만 자기 동료들의 일에는 발 벗고 나서는 용맹을 보여 줍니다. 하나 주먹이 없어 때릴 수 없고, 뿌리가 박혀 발도 못 움직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열매를 던져 적을 물리치는 방법뿐입니다만, 적 입장에서는 차라리 환영을 해도 모자랄 행태겠지요. 반면, 자기 일은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아니, 당한다기보다는 지나친 부끄러움 때문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적당하겠군요.”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라고 고르고는 생각했다.
 나무를 의인화하여 말한다는 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현실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진정성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고르고의 얼굴에는 짙은 의혹만이 남았다.
 “에?”
 “하나의 나무를 건드려 열매를 따려고 하면 주위의 나무들이 자기 살을 깎듯 열매를 텁니다. 하지만 정작 당하는 나무는 두려움에 손 하나 까딱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치아목이라 불립니다.”
 세상에······ 그런 나무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고르고는 생각했다.
 경험이 깊어 현실적 문제를 알고 있으나 상상력 또한 깊어서 환상을 좇았다.
 그러나 정작 눈앞에 보이는 환상이란 머릿속으로 꿈꾸었던 것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동료가 다치는 꼴을 못 보는 나무들이 있어?
 심지어 열매를 털고 공격을 한단 말이지?
 그 공격이라는 건 결국 열매가 제멋대로 툭툭, 떨어지는 수준이고?
 공격이라 ‘인식’한 나무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고?
 당신 미쳤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바한의 얼굴이 워낙 무표정했고 별 감흥조차 없었기에 고르고는 주춤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딱히 남을 놀릴 만한 재주는 없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어째 정상이라 보기에도 어려운 언행을 보여서 갈피를 잡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는 현자성의 여러 학자들이 자신을 보며 이런 느낌을 가졌을까, 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는 한껏 믿기 어려운 표정을 보이며 떨떠름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것참, 재미있는 나무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정작 용기를 부르짖어도 문제에 부딪치면 도망치기 바쁜 사람들과 달리 이 덩치 크고 소심한 친구들은 지극히 내성적이지만 서로를 돕고 삽니다.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협동심이며 용기라 할 수 있습니다.”
 고르고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에 감정이라고는 일체 배제한 말투를 구사하는 바한이 이 나무에 제법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고상한 양반이 도대체 왜 나무를 괴롭혀서 열매를 따먹는 걸까?
 설마 변심한 치아목을 보는 걸 원하는, 어떤 가학적인 취미가 있는 것일까?
 하기야 멸종된 무지개 사자의 사체를 한낱 방석으로 이용해 버린 대담성을 생각한다면 그런 취미를 가졌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굉장히 신비한 나무로군.’
 썩 논리적이진 않지만 고르고는 그냥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더 의문을 가져 봤자 바한이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손가락으로 나무의 표면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주변 서너 그루의 나무들이 하나씩 열매를 톡톡, 떨어트렸다.
 세상은 마냥 논리적인 이치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고르고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왜 진즉에 몰랐을까?’
 먹어 본 적이 있다는 걸 넘어 거의 주식이던 열매였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구해 본 적은 절대로 없다.
 굳이 구하려 하지 않아도 바닥에 돌멩이처럼 깔린 열매들인데 뭐하러 나무를 오르니 마니 한단 말인가.
 어찌나 열매들이 많이 떨어졌는지 고르고는 광한수림 자체가 자신을 위한 거대한 연회장이 아닌가 착각했을 정도였다.
 바한은 떨어진 열매를 손으로 퍽! 쳐서 깨트린 후 썩 유쾌하지 않은 질퍽임으로 무장한 시뻘건 즙을 꿀떡대며 마셨다.
 그것이 마치 사람 머리통을 쪼개고 피와 뇌수를 마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 중년 학자는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이미 자기는 몇 개씩이나 맛나게 먹었던 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뒤였다.
 “마, 맛있습니까?”
 “치아목 열매는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종류의 영양분을 고루 함양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하나씩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섭취는 비만 이외에 여러 가지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적정량의 섭취를 권장합니다.”
 나무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열매에 대한 것만큼은 지식적인 충만함으로 가득 찼기에 고르고는 기겁했다.
 배가 고파 하루에 네댓 개씩 씹어 삼켰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중년의 학자가 공포에 질려 늙은 학자로 변모하기 전에 불안감을 눈치챈 바한은 설명을 보충했다.
 “고르고, 당신의 몸을 보아하건대 삼 년 동안 무분별하게 섭취하지만 않았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가요?”
 안도한 고르고는 약간 묘한 눈으로 바한을 보았다.
 “이곳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신 모양입니다.”
 열매를 먹던 바한의 손이 멈추었다.
 입가에 묽고 붉은 액체를 묻힌 채 무표정한 얼굴로 땅을 쏘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지, 고르고는 깨달았다.
 흉신악살의 무시무시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분위기 형성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식인 살인마 못지않았다.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이 바짝 오그라드는 걸 느낀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회색 늑대가 슬쩍 으르렁댔다.
 이 늑대 좀 진정시켜 보라며 말을 하려던 고르고는 어쩐지 이전보다 괴로워진 바한의 얼굴―그래 봤자 쇠기둥이 돌기둥으로 변한 정도였지만―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예? 아니, 왜······ 아, 알겠습니다.”
 자기가 이곳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대략적으로나마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 왜 분위기를 최악으로 치닫게 하는 문제로 변모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던 고르고는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할 순 없는 우리의 회색 친구분께서 쓸데없는 소리 한 번 더 지껄이면 사람 혓바닥 고기를 먹으려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혓바닥 고기는 자신의 것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만약 바한이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면 고르고는 자신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걸 보면서 그는 새로운 의문이 일어나는 걸 느꼈고, 호기심과 행동력은 마땅히 일치되어야 한다고 믿는 고르고였기에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입을 열었다.
 “어, 그러면 바한 당신은 저 늑대를······.”
 으르릉.
 “날씨 좋죠?”
 절대로 늑대의 시선이 무섭다거나 해서 개보다 조금 큰 녀석을 외면하는 건 아니라고 중년 학자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바한이 무지개 사자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건 그를 도와줄 모종의 뭔가가 있었다는 건데, 지금까지 고르고가 봐 왔던 모종의 뭔가는 늑대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상식을 가볍게 파괴하며 돌연변이라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을 변종 거대 괴수에게 덤벼든 주제에 그 뒷다리까지 씹어 먹은 늑대와 대결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바한은 호기심이 충만하지만 현실적 문제에 부딪쳐 우물쭈물하는 중년 학자의 고민을 알아챘다.
 지금의 고르고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대화 상대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 건방진 늑대가 있었기에 성립될 수 있는 문제였다.
 “내 친구입니다. 오랜 시간 서로를 지켜 주었습니다.”
 늑대와 사람이 서로 지킨다는, 이 생태계 지식의 파괴라 할 수 있는 발언에도 고르고는 놀라지 않았다.
 자기가 맞으면 눈웃음치면서 맞는 주제에 남이 맞으면 선물을 던지며 그게 피해를 입힐 거라 생각하는 덜떨어진 나무를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르고는 아직까지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한 번 경험한 건 익숙해지진 않더라도 이전보다 당황하지 않을 손톱만큼의 자신감 정도는 건네주기 마련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어쩐지 비범하다고 생각했지요. 회색 털이 이렇게 아름다운 건 처음이었거든요. 저 눈빛도 보십시오. 야생의 강인함과 신비로움이 가득합니다. 눈에도 별빛을 담을 수 있다면 저 늑대의 눈에는 북극 빙해(氷海)에 비친 별빛이 스며든 것 같아요. 신이 아니라면 이런 눈빛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늑대에게 하는 평가치고는 제법 후했다.
 그러나 바한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고, 고르고는 늑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젠 바한 당신이 지내는 집에 가까이 온 건가요?”
 사람 두 명과 늑대 한 마리의 묘한 동행은 전적으로 사람 한 명의 억척스러운 고집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걸 딱히 거부하지 않았고, 늑대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털만 빳빳이 세웠다.
 고르고는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 없다는 악마의 숲에서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썩 반가운 일이며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판단했기에 작금의 상황이 그리 고달프진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고달프지 않으리라 자신했는데, 그것은 무뚝뚝한 얼굴로 무뚝뚝하지 않은 말투를 구사하는 남자가 집이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였다.
 호기심이고 나발이고 일단 사람이 사는 집에서 한동안의 휴식을 취하고 싶던 고르고는 당신 집에서 며칠 머물 수 있을까 물었고, 이번에도 바한은 거부감을 비치지 않았다.
 그걸 보면 바한은 거부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멀지 않습니다. 앞으로 사흘만 더 가면 됩니다.”
 “사흘이요?”
 사흘이 멀지 않다고 말하는 그 오묘한 언어 능력에 고르고는 재차 놀랐다.
 “예.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겁니다. 멀지 않지만 곳곳에 위험 요소가 충만합니다. 지금부터는 내림(內林)의 영역이라 상당한 주의가 요망됩니다.”
 “내림이요?”
 “광한수림의 바깥을 둘러친 테두리는 지극히 얇습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군체를 이루고 있는 그곳은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는 경우가 배고픔 말고는 없겠지만, 그마저도 치아목 덕택에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림은 다릅니다.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제법 많으니 나와 이 친구 옆에 머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어떠한 감흥도 없이 무감각하게 말하는 위협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공포를 자극한다.
 고르고가 딱 그랬다.
 오 분 뒤에 무한한 상상력으로 광한수림의 온갖 악평을 떠올린 그는 공포에 젖어 바한에게 물었다.
 “그 내림이라는 곳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괜찮다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마냥 당신의 옆에서 위험을 피하기보다는 약간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 게 피차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바한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
 “당신과 내가 속해 있던 공간과 시간이 달라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소 어리둥절한 의문을 가진다 해도 최대한 받아들이는 게 당신의 이해를 도울 것입니다.”
 “예에.”
 “이전에 당신은 세상에서 산신 호랑이와 무지개 사자가 멸종했다고 말했습니다. 틀린 판단입니다. 광한수림도 세상의 일부분임을 감안한다면 옳은 판단이 아닙니다. 아직도 광한수림 내림에는 상당수의 산신 호랑이가 자신의 영역을 과시하고 무지개 사자들은 군집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나무를 먹고 나무를 만듭니다. 창조와 파멸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용맹과 위엄이 뛰어나도 사람에게 큰 해가 되진 않습니다. 오만하기에 위험하지 않은 관찰자입니다. 되레 인간에게는 칼표범이나 복수신(復讐神)이 훨씬 위험합니다. 그들은 나무는 물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 모두를 위협합니다. 유일하게 타 존재와 소통이 가능한 광신자(狂信者)자들은 위협의 절정입니다. 그들은 숲의 신을 광신하며 자신들만이 숲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깁니다. 최고이기에 고독한 사냥꾼, 넓은 영토를 홀로 사용하는 산신 호랑이보다 개체수가 부족하지만 그들의 지혜는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것보다 적의 주살에 사용됩니다. 뛰어난 광신자는 가끔씩 경험 없는 성체 산신 호랑이조차 사냥할 정도입니다. 숲의 신을 모시지만 용의 후손들이라고도 믿는 그들은 과거 영광의 시대였던 용이 출몰하던 시기, 그때를 바라며 숲의 신이 자신들에게 날개와 화염을 전해 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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