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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 (1화)

2017.06.14 조회 374 추천 0


 모래술사 1권 (1화)
 prologue
 
 
 타듯이 뜨거운 태양 빛이 작렬하는 사막 위.
 오로지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아 모든 사람들을 좌절케 했다. 이런 사막에 반갑지 않은 불청객들이, 한두 명도 아닌 무려 5만에 이르는 대군이 찾아왔다.
 사막정벌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아래 첫 출진한 대륙 선봉군들이었다.
 이번 사막원정에 동참한 A급 용병, 다이칸.
 그는 양손 검을 주 무기로 하는 탱커형 전사였다.
 전사답게 강인한 육체와 힘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한 그도 사막에서는 도저히 버틸 여력이 없는지 기진맥진했다.
 “허억······ 허억.”
 뜨거운 숨결을 목구멍에서 토해 내던 그. 이내 욕지기와 함께 아침에 먹었던 것이 불쑥 올라와 인상을 찌푸렸다.
 “우엑······. 망할······.”
 헛구역질을 하던 그는 욕설을 지껄이며 주위를 살폈다. 참전한 용병들은 모두 자신과 별다를 바 없었다. 다들 하나같이 죽을상이었다. 그건 꼭 용병들뿐만 아니라 강함의 상징,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사막.
 언제부턴가 이스탄 왕국이 있는 모게네 사막은 죽음의 사막이라 불러왔다.
 도대체 언제부터였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꽤나 오래전이었던 것 같았다. 직접 이곳에 와 보니 죽음의 사막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쉬이이······.
 “응?”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행진하던 도중.
 다이칸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건 비단 그뿐만 아니라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잠시 행군을 멈추고 주위 경계를 강화시켰다.
 쉬이이이이······.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정적이 흘렀다.
 그런 정적 속에서 기묘한 마찰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마치 모래가 서로 마찰되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찰음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으아악! 살려 줘!”
 그때, 누군가의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졌다.
 “모두들 자리에서 멈춰 서라! 유사다! 유사!”
 스으으으으!
 사막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었던 지휘관이 급히 외쳤다.
 유사라는 소리에 병사들은 허둥지둥했다. 그건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들어 본 적도 없고, 기껏해야 책에서 보았던 유사가 두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으아악! 살려 줘!”
 “악!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군사의 주위만을 흐르던 유사는 이내 점점 거대해지더니 마치 소용돌이 같은 모양으로 흘렀다. 그 아래로 병사들은 개미지옥의 개미들같이 빠져들어 갔다. 손쓸 도리도 없었다.
 “모두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난다! 빠지는 동료를 구하지 마라!”
 동료를 버리라는 잔혹한 명령이었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대자연의 힘!
 괜히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동료를 구하려다, 사이좋게 저승으로 같이 갈 수도 있는 노릇. 고급 인력인 마법사들은 플라이 마법으로 일시에 날아올랐다. 기사들은 최대한 마나를 운용하여 그곳을 빠져나갔다.
 다만 맨몸에 무기와 병장기를 착용하고 있는 병사들만이 우왕좌왕하다가 그대로 유사에 걸려들 뿐이었다. 용병들의 피해도 극심했다. 마법사들은 플라이로 날아올랐다지만, 용병 중에는 기사들처럼 마나를 쉽게 운용하는 전사들이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이 발악을 하다가 유사에 빠져들었다.
 다이칸은 운 좋게도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하여 재빨리 몸을 뺐다. 다행히 안전할 수 있었다.
 “제, 젠장!”
 제대로 된 전쟁이 벌어지지도 않았건만 병력의 상당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사막의 공포라는 유사.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인지 다이칸의 이빨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래도 자신은 유사에서 빠져나왔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나마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휘이이잉!
 파파팍!
 그때였다.
 순간 거대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바람은 소용돌이로 변하여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콰콰쾅!
 바닥은 유사, 그 위로 몰아치는 모래 폭풍은 지옥을 선보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야기로도 이런 광경을 듣도 보도 못한 다이칸은 자신이 폭풍의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으아아!”
 비명이 난무했다. 적도 아닌 모래 폭풍과 유사라는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검과 창, 그리고 화살로 어찌 폭풍을 막을 수 있으랴? 다만 마법사들이 재빨리 마법을 이용해 대응하고 있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모래 폭풍과 유사에 희생되는 군사는 이미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 번의 전투도 없이 이런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촤차차착!
 “크아악!”
 60도에 육박하는 태양 빛을 받아 달구어진 모래가 얼굴을 때리자,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아픔이 없었다. 모래에 의해 피부 표면이 벗겨져 갔고, 그 안으로 뜨거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다이칸은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법사들은 뭐 해!”
 “당황하지 마라! 마법사는 최대한 소용돌이를 막고, 기사들과 병사들은 대열을 정비하라!”
 “개소리!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열을 정비해?!”
 다이칸은 지휘관의 명령에 욕설을 지껄이며 달려 나갔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화끈거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마법사들의 눈물겨운 노력 때문인지 소용돌이는 사라져다. 유사 역시 멀어져 갔다.
 유사와 소용돌이.
 그 둘이 잠잠해지자 군사들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우!”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됐을 때. 다시 한 번 절망이 찾아왔다.
 “우아아아아아아!”
 “대륙 놈들을 죽여라!”
 순간 모래가 가득한 허공에서 홀연히 나타난 사막의 전사들이 미친 듯이 들이닥쳤다. 기사와 전사들이 재빨리 앞을 막아섰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에다가, 절반 가까이의 군사를 잃은 그들로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썅!!”
 거대한 투 핸드 소드를 휘두르며 다이칸은 욕설을 지껄였다.
 재물에 눈이 멀어 사막원정에 동참한 게 실수였다. 아니 오히려 사막의 전사들이 얼마나 강하겠냐고 방심한 자체가 문제였다.
 “죽음의 사막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구나!”
 다이칸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래도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용병들과 기사들이 모였기 때문일까, 금세 사막 전사들과 비등하게 겨루기 시작했다. 이젠 결과를 알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우우우우웅!
 “뭐, 뭐야?!”
 한참을 치열하게 싸우던 도중. 갑자기 거대한 공명음과 동시에 모래가 하나의 큰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어······어어······.”
 “저게 뭐야?”
 “맙소사······.”
 다들 하나같이 경악 어린 목소리였다.
 모래는 거대한 산이 되는가 싶더니, 사람의 형체로 자리 잡아 갔다. 무려 30m나 되는 거대한 모래로 이루어진 사람, 아니 괴물의 모습에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거대한 포효가 사막을 진동시켰다.
 전설의 모래괴물 같은 모습.
 사막의 왕이라도 되는 걸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넘쳤다. 단지 모래로만 이루어진 괴물인데 말이다.
 “막, 막아!”
 뒤에서 기사와 용병들의 보호 아래 마나를 보충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쏘아 보냈다.
 콰콰쾅!
 크아아아!
 그러나 오히려 그런 공격이 모래괴물을 더욱 화나게 했는지, 괴물은 거대한 포효와 함께 덮쳐 왔다. 오로지 모래로 이루어진 괴물을 처치할 방법은 도저히 없어 보였다.
 크으으으아아아!
 파아아앙!
 괴물의 포효와 동시에 주위의 모든 모래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주위를 덮쳤다.
 
 “······.”
 시끄러웠던 전장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정적.
 괜히 식은땀만이 흐르는 정적에 다이칸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억지로 떴다.
 꿀꺽······.
 아무도 없었다. 허공은 모래로 가득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설마 5만이나 되었던 대군이 전멸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냐! 그럴 수 없어······.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인데······.”
 애써 부정해 보지만 너무나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모래가 가라앉자, 앞이 보였다. 거대한 포효를 내지르던 모래괴물이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허, 헉!”
 다이칸은 두 다리가 후들거려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청난 위압감! 5만의 대군을 몰살시킨 대악마!
 스스스스스!
 바람이 불더니 그 바람으로 모래괴물은 모래가 되어 사라져 갔다. 이윽고 형체가 점점 작아지더니 나타난······.
 사람이었다.
 씨익.
 남자는 웃고 있었다.
 중절모 아래 보이는 하얀 이빨은 다이칸에게 그 무엇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훗.”
 남자는 조소를 보이더니 천천히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헉······헉······.”
 이제야 알겠다.
 이곳을 왜 죽음의 사막이라 부르는지를.
 살인적인 더위? 수많은 몬스터들? 아니면 사막의 전사들? 또는 모래 폭풍과 유사 같은 사막만의 자연재해?
 아니다.
 이스탄 왕국이 위치한 사막이 왜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지는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다.
 “사막왕······ 사막의 귀신······ 모래술사.”
 어느 순간 나타난.
 단 한 사람 때문에······.
 
 
 
 Chapter 1 생존 본능
 
 
 2010년.
 ‘중동 녹색도시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자, 그 프로젝트를 대한민국 녹색산업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자 한국 제일의 건설 회사 중 하나인 ‘MI.우리’에서는 바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녹색도시 건설!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대적인 감각과 창조적인 발상.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최첨단 기술들은 녹색도시의 건설을 가능케 만들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삭막했던 사막에는 ‘미래도시’를 지향하는 녹색도시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4개의 녹색도시를 건설하자던 프로젝트는 무제한으로 늘어났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황량한 사막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겠다는 의지였기도 했다.
 2024년.
 새로운 녹색도시 ‘미래도시 케니베르아 타운’ 계획 건설 현장.
 사막의 밤은 몹시 추웠지만, ‘MI.우리’에서 파견한 사람들은 외투를 껴입은 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가만히 모여 앉아 있지는 않았다. 다들 웃으면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내일 돌아간다고?”
 “예. 한국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욱은 털보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이는, 이욱의 눈빛에는 아련한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사막에서 생활한 지 어연 4년.
 4년 동안 이욱은 많이 바뀌었다. 아니, 악랄했던 사막이 이욱을 바꾸어 놓았다. 사막은 가히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수 없는 대자연이었다.
 한국에서 20년이 넘도록 살아왔다. 그런 인물이 사막에서 4년을 지낸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일. 그렇지만 이욱은 참아 냈다. 버텨 냈다.
 어느새 사막이 더없이 친근해질 정도로. 한국 기후보다는 이제 사막 기후가 더욱 친근했다. 좀 더, 편했다.
 “하지만 이제 안녕이구나.”
 사막을 떠날 때가 왔다.
 광활한 중동의 모래사막. 직장 때문에 이곳에 왔고, 이젠 사막을 떠나야만 했다. 본사에서 소환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면 자신은 월급쟁이, 그뿐이다. 고향에 부모님이라도 살아 계시면, 돌아가고 싶겠지만. 애석하게도 두 분 다 돌아가셨다.
 평범하고 무료한, 순한 양들처럼 상관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광활한 이 사막이 더 좋았다.
 악랄하고! 지독한!
 이 사막은 이욱에게서 승부적인 근성을 이끌어 냈다. 사람을 좌절케 하는 사막을 이겨 내고 싶다!
 그 승부 근성이 이욱을 4년간 사막에서 버텨 낸 원동력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뻔한 일상과. 상관의 면박에 굽실대야만 하는 월급쟁이가 될 것이라. 그게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이 그러니까.
 “자자. 더 마시라고. 사막의 술을 한국에 돌아가면 못 마실 수도 있으니까.”
 털보는 우울해하는 이욱의 술잔에 술을 채워 넣으며 격려했다. 4년 동안, 같이 일해 온 직장 선배였다. 물론 위치는 비슷하기야 했지만, 어쨌든 서로 큰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다.
 이제 이 사람하고는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욱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쉽고, 텅 빈 느낌이었다.
 한 잔, 두 잔. 세 잔.
 이욱은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욱의 얼굴이 붉어졌다. 술에 강한 그였지만 하도 부어 댄지라 취하고 말았다.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래. 많이 취한 것 같으니. 들어가서 푹 쉬어.”
 이욱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이욱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털보. 털보는 한숨을 내쉬며 술잔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욱은 비틀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밤하늘이 빙빙 돌고 있었다. 별도 돌고, 달도 돌고. 이욱도 돌았다.
 이욱은 숙소로 들어가지 않았다. 좀 더, 사막의 기운을 만끽하고 싶었다. 내일 가면, 어쩌면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기운이 아닌가.
 “우아아!”
 이욱은 밤하늘을 향해 힘껏 소리 질렀다. 술기운에 몸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소리를 질러 내니 뭔가 후련한 느낌이었다.
 스윽!
 “후우.”
 심호흡을 하는 이욱. 그런 이욱의 귓가로 아련하게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윽, 스윽!
 모래의 미묘한 마찰음.
 모래 입자가 서로 미묘하게 마찰하고 있었다. 그런 아주 작은 소리는 일반인이라면 절대 느끼지도 못할 소리였다.
 스스스스슥!
 마찰음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귓가에 확연히 들릴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후우우웅!
 “컥!”
 순간 강한 바람이 이욱의 몸을 강타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이욱은 일어나려고 했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바람은 그런 이욱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했다.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대자연의 힘이었다.
 휘우우웅!
 강한 바람에 모래가 휩쓸려 나갔다.
 쿠쿠쿵!
 이욱의 눈에 모든 게 돌았다. 달도 돌고, 별도 돈다고 했던가. 하늘도 돌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하늘이 도는 게 아니었다.
 이욱, 그 자신이 돌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모래 폭풍!
 갑작스런 돌풍과 함께 폭풍이 발생했다. 폭풍의 위력은 가히 상상 초월이었다. 주위의 오아시스 농작물들을 완전히 휩쓸었다. 거대한 모래바위들도 처참하게 부서지고 흩날렸다.
 그런 모래 폭풍에, 한낱 사람에 불과한 이욱이 어찌 버티랴!
 “으아아아아!”
 이욱의 비명마저 폭풍에 휩쓸려 하늘 높이 올라갔다. 아찔하다! 뜨겁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때리는 모래!
 촤차착!
 얼굴이 찢겨져 나갈 것만 같다. 얼굴 가죽이 화끈해서 눈조차 띄어지지 않는다.
 쾅!
 그때, 폭풍에 휩쓸린 나무의 몸체가 이욱의 뒤통수에 직격했다.
 “악!”
 단발마의 비명.
 이욱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국의 텔레비전에선 한 가지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4월 21일 현지 시간 저녁 9시경. 사우디아라비아 네푸드 사막 전역에 강력한 모래 폭풍이 덮쳐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모래 폭풍은 생성된 지 10분 만에 소멸되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MI.우리기업의 직원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급히 수색 작업에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무방하다고 보고 있어······.
 
 ***
 
 쨍쨍!
 “으음······음.”
 뜨거운 태양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이글거리면서 작렬하는 태양 빛. 이욱은 그 뜨거움을 못 이기고 깨어났다.
 “쿨럭. 쿨럭, 우웩!”
 정신을 차린 이욱은 헛구역질을 하며 연신 기침을 터뜨렸다. 담배도 핀 적 없는 신체였건만, 폐는 쪼그라들 정도로 기침을 토해 냈다. 마치 드라마 속 불치병에 걸린 환자처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욱은 간신히 기침이 멎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아. 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모래 위에서 피어오른다. 그런 모래들이 하나의 형체를 이룬 사구들이 주위에 가득하다. 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뜨거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막.
 악랄한 사막이 맞았다.
 “하아. 여기가 어디지.”
 사막인 건 여전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모래 폭풍에 휩싸여서 눈 뜬 곳이, 인적 하나 없는 사막이라는 건 참으로 허탈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 이욱이 있던 사막은, 도시계획 건설현장이었다. 이미 충분히 문명의 혜택을 받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장소는.
 정말 황량한 사막,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욱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허탈하다고 해서 멍 때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일단 이곳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고, 최대한 가까운 마을로 움직여야만 했다. 이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
 최소 방향이라도 알아야 움직이기라도 한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오른 이 시각. 방향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아시스의 흔적을······.”
 가장 중요한 오아시스의 흔적을 찾아야만 했다. 당연한 소리였다. 모든 마을과 도시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되니까.
 이욱은 생각에 빠졌다.
 모래 폭풍에 휩쓸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휑한, 인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그럼, 원래 위치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에 떨어진 곳일까?
 “알 수 없군.”
 알 수 없다.
 모래 폭풍의 규모도 가늠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어느 거리만큼 떨어진 곳이라고 하더라도 방향을 모르니 소용없었다.
 “움직이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일단 움직여야 했다. 어쩌면 이 근처에 오아시스 마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욱은 자신의 단단한 두 다리를 믿고 움직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후웁! 후!”
 이욱은 입으로 가쁜 숨을 뱉어 냈다.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땀으로 목욕을 한다는 말이 이때에 쓰는 게 아닐까. 그만큼 이욱은 땀을 많이 흘렸다.
 거의 60도에 육박하는 온도!
 엄청난 무더위. 사계절 기후가 뚜렷한 일반인들이라면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쓰러졌으리라. 삭막하고, 황량한 건조 기후는 뭐든지 말라 버리게 하니까.
 그러나 이욱은 달랐다.
 20년 평생 한국에서 지내 놓고도, 갑작스러운 사막 생활을 4년 동안 끈질기게 버텨 온 인물이다. 이제는 이런 기후도 익숙했다. 오히려 더없이 친근하기까지 했다.
 기후 따위는 충분히 참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수분 섭취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인체에 가장 중요한 수분이 없으면 어찌 버티랴! 땀으로 빠져나가는 수분도 엄청났다. 수분이 보충이 되지 않자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몰랐다.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한시도 쉬지 못했다. 쉴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늘진 곳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면 뜨거운 태양 빛에 달아오른 모래 때문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하아. 학!”
 숨이 턱 끝까지 치달았다. 하늘이 노랬다. 구역질이 울컥울컥 치솟는다. 빙빙 돈다는 느낌이 또 든다. 이대로는······.
 ‘죽는다!’
 이욱의 머릿속에 새겨지는 선명한 단어.
 죽음!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게 하는 단어다. 이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정말 끝장이다. 인적조차 없는 이곳에 쓰러지면, 그건 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욱은 현재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
 이욱의 몸은 생존 본능으로 가득 찼다. 본능이었다. 살고자 하는 가장 기초적인 본능!
 이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에서 붉고 선명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꿀꺽꿀꺽.
 이욱은 흘러나오는 피를 남김없이 그대로 삼켰다. 뜨뜻한 피를 마시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욱은 놀라운 정신력을 보이며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러 입술을 이빨로 찢어, 피를 낸다.
 그리고 마신다.
 그것을 무한 반복했다. 얼굴빛이 점점 창백해졌지만, 이욱이 아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
 끊임없이 길을 걷던 이욱의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막은 오로지 황색이다. 정말 삭막하기 짝이 없는 황색.
 그런 황색 중에 유난히 녹색이 눈에 띄었다.
 “선인장!”
 선인장. 선인장이다.
 수분을 채울 수 있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날카로운 가시가 슝슝 나 있는 녹색의 선인장. 선인장을 본 이욱의 표정이 밝아졌다. 선인장이 사막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바로 수분을 오랫동안 저장해 놓기 때문이다. 뿌리를 깊은 지하 속까지 내려서 수분을 얻고, 그것을 저장한다.
 그럼 선인장에는 지금 수분이 가득 저장되어 있다는 소리!
 이욱은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로 선인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다리가 저려 왔지만 극한의 정신력으로 이욱은 버텨 냈다.
 선인장 가까이 온 이욱은 눈을 빛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 이욱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도 상관없었다. 오로지,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칼도 없었다. 그저 맨손으로.
 마치 야인처럼 이욱은 맨손으로 껍질을 벗겨 냈다.
 가시가 피부를 파고들어 상처를 내도 이욱은 신경 쓰지 않았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선인장을 붉게 물들였다. 그럼에도 이욱은 멈추지 않았다.
 지지직!
 선인장의 껍질이 벗겨지자 여린 속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피를 내뿜는 여린 속살. 흰색에 옅은 초록색이 서려 있는, 속살은 정말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아그작! 지익!
 이욱은 속살을 뜯어 입속으로 닥치는 대로 집어넣었다. 미친 듯이 씹어 삼키는 이욱은 흡사 야인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
 이욱의 의지였다. 배가 고프면 설령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씹어 삼키면서라도 살기를 원했다. 그만큼 이욱은 삶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컸다.
 “하악! 이제야 살겠군!”
 이욱은 신음 이외에 처음으로 말을 했다. 수분을 힘껏 섭취하니 정신이 순간 맑아졌다. 노란 하늘이 푸르른 하늘로 다시 되돌아와 있었다.
 단 조금의 수분 섭취만으로도. 모든 환경이 달라보였다.
 이욱은 그제야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살아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이욱은 살아남았다.
 “후!”
 이욱은 한숨 돌렸다. 그러고는 피가 줄줄 흐르는 양손을 바라보았다. 딱히 붕대로 사용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욱은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지직! 직직!
 이욱은 바지의 밑단을 찢기 시작했다. 괜히 치렁치렁해서 걷는 것이 불편한 점보다는 나았다. 문제는 모래가 상당히 묻어 있다는 점. 상처로 모래에 묻어 있던 세균이 침투하면 심각한 병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피로 수분이 더 빠져나가면 수분을 섭취하지 못한 것이지.”
 피로써 나가는 수분이 많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히려 더 손해일 수도 있다. 일단 오염에 대해서는 도시를 찾아 치료를 하면 됐다.
 우선은 살고 봐야만 했다.
 이욱, 그는 생존 본능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흐음?”
 길을 걸으면서 이욱은 배가 슬슬 아파 옴을 느꼈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서 아직은 괜찮았지만, 갑작스러운 복통은 뜻밖이었다.
 이욱은 생각에 잠겼다.
 복통이 갑작스럽게 오지 않을 터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걸으면서 생각하던 이욱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독인가!”
 간혹 선인장 중에는 독소를 가지고 있는 선인장이 있다. 어쩌면 자신이 먹은 선인장이 독소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수군.”
 이욱은 자신을 자책했다. 명백한 실수였다. 중동에서 4년을 지낸 자신이 독이 있는 선인장인지, 그렇지 않은 선인장인지 구분하지 못하겠는가.
 너무도 혼미했던 상황이었다. 당장이라도 혼절할 듯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했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해 보고 말이다. 그렇지만 다행인 점은.
 “참을 만하다.”
 충분히 참을 만하다는 점이다. 선인장이 가지고 있는 독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기껏해야 복통 정도가 다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참을 만했다. 이욱은 호흡법을 달리해서 독을 다스렸다.
 요가호흡법.
 이욱은 한때 요가를 배웠었다. 중동 사막에 오기 전. 학창 시절,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요가를 배우자, 같은 학원을 끊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욱은 요가를 조금이나마 익혔던 터였다.
 요가호흡 중 이욱이 하는 호흡법은 풀무호흡이었다. 요가에서 이 호흡만큼 더 강렬하게 기를 돌리는 방법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 호흡은 기를 순환시키는 데에 그 효과가 탁월했다.
 특히 기가 막힌 곳을 뚫어 주는 데에는 이처럼 좋은 호흡법이 없다. 기가 바르게 돌면 모든 질병이 깔끔히 사라진다. 그래서 이 호흡법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데 아주 좋다. 요가 경전에서도 이 호흡을 세 번만 해도 모든 질병이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좋은 호흡인데, 고작 독을 다스리지 못할까? 활발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순환하는 기는 몸에 축적된 독을 다스리고, 밖으로 배출하고 있었다.
 이욱은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익숙하지 않은 호흡을 하면서 움직이는 것은 어설펐다. 그렇지만 충분히 독을 다스릴 수 있었으니 그 효과는 대단했다.
 지익! 아그작!
 이욱은 수분이 부족해질 때마다, 선인장을 찾아 수분을 섭취했다. 물론 그중에는 독소를 가지고 있는 선인장이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잠그랴?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은 뻔한데, 어떡하겠는가?
 다행인 점은 호흡으로 독을 충분히 다스린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이욱의 신체는 점점 독에 민감해졌고, 자연히 내성이 길러졌다.
 아무리 약한 선인장 독이라 하더라도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독에 대한 내성이 길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욱, 자신도 모르게 독에 대한 내성이 점점 길러지고 있었다.
 
 이욱은 걷고 또 걸었다.
 목에 갈증이 심하면 선인장을 맨손으로 벗겨 내 찢어 삼켰다. 독에 중독되면 참았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때, 이욱의 눈동자에 무언가 어렸다.
 그걸 본 이욱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야자수······?”
 야자수! 선인장인 아닌 야자수!
 야자수였다. 오아시스에서만 자라는 야자수.
 “오아시스······.”
 이욱은 저 멀리 보이는 야자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모래 위에 야자수가 어찌 자랄 수 있겠나. 그럼 저 야자수는 곧 ‘오아시스’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욱의 발걸음이 무척 빨라졌다.
 오아시스가 있다면, 작은 마을이라도 형성됐을 터!
 타탁!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뜨거움에 발을 데일 듯했지만 이욱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참아야 했다.
 참고 또 달려야만 했다.
 오아시스에만 갈 수 있으면.
 다리 쭉 뻗고, 푹 쉴 수 있었다.
 절대로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욱은 달리고 또 달렸다. 눈에 어렴풋이 보이는 오아시스를 향해서.
 “헉! 헉!”
 이욱은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젠 살았다는 기쁨에. 하지만 달리던 이욱은 이상한 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오아시스로 무작정 달리던 이욱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지금까지 달려온 뒤를 바라보았다.
 상당했다.
 엄청난 거리를 뛰어왔다. 그런데 오아시스는 여전한 거리 밖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리 가까이 가도,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것은.
 “신기루.”
 신기루였다.
 오아시스의 신기루였다. 공중이나 땅 위에 무언가 있어 보이지만, 막상 제대로 살피면 허상과는 다름없는.
 중동에서 4년 동안 지냈지만 신기루를 본 건 처음이었다. 도시화된 곳에서만 지냈기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신기루에 낚이니 허탈함이 무척 컸다.
 그리고 그 허탈감은 동시에 답답함과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젠장.”
 문득 신기루를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신기루를 어떻게 죽일 수는 없겠지만, 정말 이가 갈리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욱은 한 가지 희망을 보았다.
 신기루가 보였다면, 멀지 않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소리기도 했기 때문.
 이욱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스으으.
 그때, 모래가 마찰을 하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뒷골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소리!
 분명 위험한 소리였긴 했지만 애석하게도 정신이 가물가물한 이욱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주 조용하면서도 은밀했다. 그러면서도 위험하다는 걸 느낄 만한 섬뜩한 소리였다.
 스스슥.
 그때였다.
 이욱이 발을 내딛는 순간, 모래가 소용돌이쳤다.
 “억!”
 단발마의 비명이었다.
 이욱은 모래에서 무언가 자신을 끌어들인다는 착각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모래는 이욱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유사流砂!
 사막의 늪, 유사!
 이욱이 그 유사에 걸려들고야 말았다.
 “크윽!”
 이욱의 두 눈동자가 붉게 충혈됐다. 안간힘을 내며 버티려 했다. 그러나 유사를 어찌 버티겠는가. 안 그래도 몸에 기운이 별로 없는 이욱이!
 허우적댈수록 더욱 빠져드는 게 유사다.
 이욱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유사는 진공청소기처럼 이욱을 빨아들였다.
 “으아악!”
 이욱은 목 끝까지 잠기는 뜨거운 모래에, 정신을 잃었다.
 
 번쩍!
 “컥!”
 등에서 부서질 듯한 고통이 전해져 온다. 짜릿한 고통에 온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비명을 내지르는 이욱!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욱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딱딱하면서도, 차갑고, 까끌까끌한 모래의 느낌이 등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유사에 빠졌다면 당연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 순리일 터, 하지만 이욱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하······하아······.”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금세 밤이라도 된 걸까.
 이욱은 좀 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다. 등에서는 허리를 삐끗했는지 계속 고통이 스며들어 왔다.
 주위 환경에 익숙해진 이욱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흠, 춥지 않다.”
 원래 사막의 밤은 무시무시하게 추운 것이 정상이다. 과연 사막인가 하는 의문마저 생길 정도로 무척이나 춥다.
 하지만 이욱은 전혀 추위를 못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 밤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럼 이욱 주위를 감싸는 이 칠흑 같은 어둠은 무어란 말인가. 이욱은 내심 이곳이 사막의 아래라고 추측했다. 즉, 지하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분명 유사에 빠졌는데,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이 있는 곳이라면 사막의 내부가 아닐까.
 그러나 이욱은 이내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사막에 지하라니?
 사막에는 내부가 존재할 수 없으리라. 어떤 힘으로든 모래를 지탱할 수 없으니, 모래는 후두둑 떨어지지 않겠는가?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시력은 어둠에 익숙해져 갔다. 마치 적외선 카메라로 보는 것같이, 이욱은 어느 정도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
 이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정했던 그 생각을 다시 가져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커다란 방과 같은 공간.
 그 공간에 이욱은 서 있었다.
 “무슨 장소지?”
 이욱은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여기는 어디인가? 어떤 장소인가?
 이욱은 벽으로 손을 뻗었다.
 후두둑······둑······.
 꺼끌꺼끌한 모래의 느낌.
 건드리자마자 모래는 후드득하면서 힘없이 떨어졌다. 이욱은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모래로 이루어진 벽. 그런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무척 컸다.
 무언가 모태를 지탱하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인위적인 힘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지하터널이라도 된다면 따른 기계적인 장치가 보일 법도 했지만, 순수하게 모래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벽에 수많은 굴들이 있었다.
 추춥! 춥!
 그때, 귓가로 생소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마치 빨대로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소리. 그런 느낌의 소리였다.
 이욱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흡?”
 무언가 날아오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징그러운 소음을 내며. 그것은 언뜻 보면 곤충이었다.
 투명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드는 생소한 곤충! 그러나 곤충이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무척 컸다. 거의 주먹만 한 크기.
 특히 빨대처럼 길게 삐져나온 입과 그 위에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두 눈은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생물체!
 춥춥!
 그렇지만 결코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곤충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저건 해충이었다. 이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해충의 입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그다음 오른손으로 해충의 날개를 찢었다.
 푸악!
 파아악!
 “키에에엑!”
 “이놈!”
 주먹만 한 놈이, 힘은 무척 쌨다. 날개가 찢겨져 나가자 귀청을 찌르는 날카로운 소음이 무척 시끄러웠다.
 푸악!
 해충의 다리가 찢겨져 나갔다.
 푸욱!
 빨대 같은 긴 대롱의 입도 처참하게 찢겨졌다.
 “더럽군!”
 지지직!
 이욱의 왼손과 오른손이 몸통의 양옆을 잡았다. 그리고 해충의 몸을 절반으로 처참하게 찢어 놓았다.
 이욱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아니, 해충에게 어떤 인정을 주겠는가. 이 같은 징그러운, 어쩌면 돌연변이일지도 모르는 해충!
 당연 죽어 마땅했다.
 이욱은 잔인했다. 정말로 잔인하게.
 해충을 짓이겼다.
 “후우.”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역한 냄새는 다름 아닌 자신의 손에서 나고 있었다.
 주루룩.
 끈적끈적한 녹색 액체가 손에 잔뜩 묻어 있었다. 이욱은 표정을 찡그렸다.
 “제길.”
 더럽다. 역겹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끈적끈적한 녹색의 액체는 정말 역겨웠다.
 “대체.”
 이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손에서 느껴졌던 그 찢을 때의 아찔한 쾌감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맨손으로 생명체를 찢어 죽였다.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는 태도로. 아니 당연한 짓이다. 이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공격하려 한, 생소한 생물체. 어쩌면 돌연변이일지도 모르는 생물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욱은 그 생명체를 죽였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나를 공격해 오는, 위협해 오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리라고. 부수리라고. 찢으리라고.
 푸욱!
 “흡!”
 갑자기 발목에서 느껴져 오는 싸한 고통에 이욱은 표정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렸다.
 자신의 발목을 공격한 건 전갈이었다.
 약 15∼20cm로 징그럽게 커 보이는 놈이었다. 무슨 전갈이 이리도 크단 말인가. 이욱은 발로 전갈을 밟았다.
 투투툭!
 전갈의 몸통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느낌이 발을 타고 전해져 왔다. 전갈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가 더 있었다.
 이욱은 손을 뻗었다.
 오른손에 전갈 한 마리를 잡았다.
 콰지직!
 이욱은 거리낌 없이 꼬리를 찢었다. 꼬리를 찢자 덩달아 꼬리 부근의 살덩어리도 움큼 찢겨졌다. 다리를 찢어 버리고 몸통을 부숴 버렸다.
 콰직!
 주룩!
 “크윽?”
 순간 손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아픔이 느껴졌다. 이욱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독임을. 피에도 독이 들어 있음을.
 독을 품고 있는 전갈.
 독을 품고 있는 독충.
 그런 놈들이.
 “몰려오는군.”
 몰려오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가.
 이욱은 손아귀를 몇 번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복통은 여전했다. 팔에서도 바늘로 찌르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충들이 몰려온다.
 이것은.
 “생존 게임.”
 생존 게임의 시작이었다.
 
 
 
 Chapter 2 생존 게임
 
 
 이욱은 거침없었다.
 아니, 필사적이기 때문이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살고자 하기 때문에, 살고자 원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웠다.
 주먹만 한 독충들이 날아와 독을 넣고 피를 빨아 가면. 손으로 붙잡아 완전히 절반으로 찢었다.
 전갈이 발목을 타고 올라와 살을 물어뜯으면, 이욱 그도 전갈을 잡아 이빨로 전갈을 뜯고, 씹어 삼켰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갈이 물어뜯으면, 그도 전갈을 씹어 삼켰다.
 독충이 피를 빨아들이면 그도 독충을 짓이겨 그 피를 마셨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음을 이욱은 깨달았다. 아니, 느꼈다. 온몸의 피부로 파르르, 전해져 온다. 살기 위한 투쟁임을.
 이런 상황에 빠지면.
 대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미치거나.
 미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거나.
 이욱은 후자였다. 후자 중에서도, 생존에 대한 의지는 그 누구보다 강한.
 이 순간.
 이욱은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살기 위해서, 모든 짓을 다 하는.
 짐승이기를 원했다.
 이욱, 그는 지금 짐승이었다. 한 마리의 야수!
 포효하는 야수였다.
 
 “후. 후우.”
 문득 눈을 뜨니, 이욱의 주위에는 징그러운 전갈의 시체와 독충들이 가득했다.
 그것들도 다 정상이 아니었다. 전갈들은 사체 중 일부분만 너덜너덜하게 널려 있었고, 그건 독충들도 마찬가지였다. 날개만 따로 있는 독충. 절반의 몸통만 너저분하게 있고, 그 안에 있던 내장물이 주룩 흘러나오고 있는 독충. 머리가 박살 나 몸통이, 그것도 완전히 부서진 몸통만이 남겨진 전갈.
 “큭?”
 거기에 녹색 액체가 흥건히 바닥을 흐르고 있었다. 동시에 정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위가 약한, 아니 비위가 강한 일반인들이 봤으면 당장 구토부터 했으리라.
 그러나 이욱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담담한 건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뛴 건 처음이었으니까. 살고자, 너무나 필사적이었다. 독에 중독되고, 독충들에게 덮이고.
 자신이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봤단 말인가.
 이욱은 몸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는 듯했다.
 독, 엄청난 독이다.
 심지어 전갈을 뜯어 삼키고, 독충의 피를 마셨는데 멀쩡하겠는가. 그러나 놀라운 건, 이욱이 중독돼서 죽을 위기라는 건 아니었다.
 분명 죽음에 이르게 할 만한 독이었지만.
 선인장의 독으로 차곡차곡 강해진 내성은 강했다.
 어느 정도의 독성은 충분히 버텨 냈다. 물론 다 버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독이라는 것이, 똑같은 독만 계속 주입되면 내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전갈의 독이나. 독충의 독이나.
 서로 비슷한 종류였다.
 그것들에게만 계속 당하니, 독에 대한 내성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지금 중독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힘들다.
 진짜 움직이기도 힘들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분명 놀랄 일이리라.
 “도대체 여긴.”
 이욱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풀 수 없는 호기심. 그런 호기심은 계속해서 증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욱은 한 가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쩌면. 여기가 중동이 아닐지도.’
 중동에서 모래 폭풍에 휩쓸리면, 기껏해야 중동에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중동 사막은 그만큼 넓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여기에서 느낀 점은.
 어쩌면 여기가 중동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막 아래 이런 공간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처음 보는 거대 독충들도. 전갈들도.
 어쩌면.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이욱에게는 살아남느냐와, 그렇지 못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설사 이곳이 중동 사막이 아닐지라도. 이욱에겐 그다지 신경 쓸 점이 아니었다.
 이욱에겐 중요한 건.
 “살자!”
 살아남는 것.
 그것이었다.
 
 콰직!
 이욱은 달려드는 전갈 한 마리를 손으로 부숴뜨려 죽었다. 놀라운 악력이었다. 전갈이 힘없이 터져 나가고, 독성이 강한 녹색 피가 손아귀에서 흐른다.
 그러나 이욱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미 여기까지 굴을 타고 오면서, 수많은 독에 당했다. 독충, 독전갈······. 하도 당하면서 이욱은 정신력으로 버텨 왔다.
 살아남고자 하는 정신력.
 그런 정신력 속에, 독에 대한 내성은 정말로 강해졌고, 이제는 거의 ‘독인’에 가까운 경지에 올랐다. 어떤 독이더라도 충분히 버텨 낼 수 있는!
 그 때문일까. 이욱은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즐겁지는 않았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사실이 무엇이 즐겁겠는가. 그렇지만 뭔가 색달랐다. 이욱, 그는 스스로의 본성을 늘 억누르고 왔다.
 학벌중심사회인 대한민국.
 그런 대한민국에서 이욱도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몸속에서 들끓는 야수의 본성을 억누르며.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상관에게 허리를 굽실거리고, 선배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이욱은 참아 왔다.
 아니, 그것이 당연했다. 당연히 야수 같은, 파괴적인 본성은 억눌러야만 했다. 민주주의 사회란 그랬다. 그러나 여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는, 이런 본성이 필요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억눌러 왔던.
 잠재된, 야수의 본성이 깨어나고 있었다.
 이욱, 그는 순한 양들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호랑이였다.
 광폭한 호랑이 말이다.
 본성을 억누르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본성대로 행동하는 점이 이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에 더 적절했다.
 이욱은 느꼈다.
 여기서 진정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자유롭게.
 가식과 굴욕에 억눌렸던 본성대로.
 이것이 진정 살아가는 이유라는 사실을!
 “후. 후우.”
 이욱은 달려드는 전갈들을 부수며 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또, 요 근래 이욱은 수분을 섭취하지 못했다. 더욱이 식량 또한 섭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이유는 전갈과 독충을 식량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는 부위는 기꺼이 먹었다.
 살기 위해서는. 지독한 냄새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또, 녹색의 피로써 수분을 보충했다.
 살기 위해서는. 지독한 독쯤이야 버틸 수 있었다.
 이욱은 누구보다 빠르게, 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굴이, 이쪽으로 한 개가 들어 있는데, 그 사이로 연결된 굴이 두 개가 더 있다. 또 그 사이로 한 개가······.”
 이욱은 바지의 종아리 부분을 잘라서 지도로 활용했다. 개미굴같이 얽히고설킨 모래굴들을 다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그려져 있는 개미굴만 해도 무려 200여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탐사하지 못한 굴들은 대략 100여 개가 남아 있었다.
 그것들의 얽힌 관계를 보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였다. 그런 모래굴들을 다 지도로 그린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욱은 그렇지 않았다.
 다름 아닌 건설회사의 직원이다. 특히 건축학에서는 실력이 뛰어나 중동으로 파견되기까지 한 인물이다. 조금 고심하여 머리만 굴리면, 충분히 그려 낼 수 있었다.
 복잡한 도식을 최대한 간략화시켰다. 다른 사람이 볼 지도가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필요했다. 그럼 복잡한 계산이 들어간 지도보다, 자신의 눈에 쉽게 그린 그림이 훨씬 나았다.
 다른 이가 보았다면 그림으로 보일 법한 지도였으니까.
 지도를 유심히 살피던 이욱.
 그런 이욱의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모든 굴들의 가장 끝을 보면, 그 끝은 없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굴로 연결되니까.
 언뜻 보면 돌고 도는 물레방아와 같았다.
 그러나 돌고 돌지는 않았다.
 더 자세히 살피니, 결국 하나의 굴로 모든 굴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허!”
 놀라운 사실이었다. 아니, 놀라운 발견이었다. 모든 굴들이 얽히고설켜서 돌고 도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굴들이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다.
 아직 탐사해 보지 않은 굴들만 해도 100여 개가 넘어간다. 속단하기에는 이르긴 했지만.
 이욱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100여 개의 굴을 다시 탐사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같으리라.
 결국에는 하나의 굴로 모두 연결되리라고 이욱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야수의 직감이었다. 아직 완전히 깨어난 야수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포효를 내지를 수 있는 야수의 직감.
 이욱은 그 직감을 믿었다.
 저벅저벅.
 이욱은 굴에서 빠져나와, 모든 굴들이 연결되는 굴 앞에 섰다. 외관상 달라 보이는 건 없었다. 똑같았다. 모래로, 마치 개미굴처럼 이루어져 있는 외관.
 지름은 약 3m 남짓 한 정도.
 ‘가자.’
 이욱은 눈을 빛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씩씩한 걸음걸이였다.
 
 굴의 중간 부분까지는 똑같았다.
 독충과 전갈들. 나오는 족족 이욱의 손아귀에 모두 박살이 났다. 찢겨지고, 부서지고. 피가 파팍 튀어 오른다.
 중간 지점을 지나, 더 걸어감에도 전갈과 독충만이 나오는 건 여전했다. 그럴수록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여, 초조해하는 반응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이욱은 달랐다.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 굴 끝에 무언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즉, 자기의 직감을 절대 신뢰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이욱은 믿었다. 자기의 직감을.
 얼마쯤 걸었을까.
 “음?”
 호흡을 약하게 하며 조심히 길을 걷던 이욱은 무언가 발견한 듯 숨을 죽이며 몸을 낮췄다. 전방에 거대한 형체가 눈에 띄었던 탓이었다.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함부로 다가갈 수는 없는 노릇.
 지금까지 전갈만을 지겹게 보고 와서 그런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증폭되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뭐지······?’
 직립 보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사람일 가능성은 아주 없었다.
 대충 눈어림으로 보는데 신장은 약 3m쯤 되는 듯싶었고 덩치가 상당했다.
 ‘도대체······.’
 언뜻 비치는 그림자로는 대단한 덩치다. 3m의 덩치라면 절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곧 그 말은.
 ‘괴물인가.’
 괴물.
 이미 생소한 생김새의 독충들을 보아 왔다고 해서, 저런 3m의 괴물을 보고 놀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이욱도 그랬다.
 어찌 저런 산만 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 코앞에 있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어떤 생김새를 갖고 있는지 자세히 보고 싶었다. 이욱은 조심스럽게, 가까이, 가까이 다가갔다.
 후두둑!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그때, 벽의 모래가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그러자 괴물, 아니 골렘은 즉시 몸을 돌려 이욱을 향해 달려왔다.
 쿵! 쿵! 쿵!
 육중한 소리가 땅을 울렸다.
 골렘은 기계 목소리를 내며 육중한 몸을 이끌고 이욱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였지만 그 위압감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골렘의 생김새는 이랬다.
 온몸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각 바위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황색의 모래가 있었다. 즉 무릎 연골 같은 부위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목 부분도 거의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왼손과 오른손에는, 원뿔형의 바위 검이 달려 있었다. 매끄러워 보이고, 투박한 암석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 암석도 뚫을 수 있어 보이는 바위 검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그 짧은 시간.
 이욱은 골렘의 생김새를 거의 다 파악했다.
 쿵쿵!
 [죽인다!]
 “이크.”
 일단 어쩔 수 없다. 이욱은 우선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싸움?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선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생존, 살아남아야 하는 사실!
 끝까지 생존해야만 했다. 괜한 호승심에 부딪쳐 보는 멍청한 일 따위는 이욱은 하지 않았다. 특히 바위로 이루어진 골렘. 맨손으로 어찌 해 볼 수 없었다.
 쿵! 쿵!
 “흡, 흡.”
 일반 호흡이라면 벌써 가빠 와야 할 호흡이, 호흡을 달리하니 아직도 안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이욱도 사람이다.
 지칠 수밖에 없는 사람. 호흡도 점점 흐트러졌다. 그러나 골렘은 달랐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까.
 전혀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일정한 속도로 이욱을 쫓아오고 있었다. 이욱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뛴 다 해도 점점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하지 않는 이상 계속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합!”
 이욱은 중간에 옆 굴로 빠졌다.
 단번에 몸을 날리며. 하지만 그렇게까지 골렘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욱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끝까지 쫓아왔다.
 쿵! 쿵!
 “으랏찻!”
 이욱은 좀 더 속력을 냈다. 그리고 중간에서 또 다른 굴로 꺾어 들어갔다. 잠시 골렘의 시야에서 벗어난 지금.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파파팟!
 이욱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투박한 상처만이 가득한 맨손, 그런 맨손이 엄청난 속도로 모래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미친 듯이. 빠르게!
 손이 얼얼해질 정도다. 하지만 이욱은 멈추지 않았다. 몸을 웅크릴 정도의 굴은 파야만 했다. 지금 이욱의 위치가 딱, 꺾고 들어온 굴에서, 또 오른쪽으로 꺾는 굴의 그 사이 부분에 있었다.
 한마디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부분.
 그때, 골렘이 굴 안으로 들어왔다.
 쿵! 쿵!
 이욱은 다급해졌다. 구덩이를 제대로 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골렘은 더욱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커질수록. 이욱의 손놀림도 급해졌다. 빨리! 조금 더 빨리!
 쿵! 쿵!
 골렘이 더욱 가까워진다. 15m······ 10m······ 5m.
 그리고, 코앞!
 ‘젠······장!’
 
 ***
 
 [······.]
 골렘은 육중한 몸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에 잡혀 있던 이욱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시각,
 이욱은 골렘의 바로 뒤에 있었다. 반쯤 파 놓은 모래 구덩이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쑤셔 넣은 채. 그렇지만 언제든지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바로 했다.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호흡도 멈췄다. 약간의 움직임도 멈췄다. 마치 그대로 동상이 된 듯, 이욱은 그렇게 기척을 숨겼다.
 쿵. 쿵.
 골렘은 더 이상 이욱이 근처에 없다고 판단했는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이욱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시야에서 골렘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척을 숨길 요량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때때로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후두둑!
 [······.]
 모래 구덩이의 모래가 순간 한 움큼 떨어졌다. 워낙 급하게 만들었던 모래 구덩이인지라 견고하지 않았던 탓이다.
 ‘젠장!’
 이욱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쿵. 쿵.
 골렘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이욱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이욱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도망칠까?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어차피 결국에는 잡힐 터였다. 인간이 아닌 저 골렘은, 끝끝내 자신을 쫓아오리라. 그러면. 죽여야 했다.
 어떻게?
 저 암석으로 이루어진 골렘을 어떻게?
 이욱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일단.’
 기다리자.
 이욱은 침착하게 골렘을 기다렸다. 도망치려면 진작 했어야 했다. 고민하는 사이, 도망칠 타이밍도 놓친 상태였다.
 골렘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순간, 이욱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빈틈을 보았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골렘의 빈틈! 이욱은 다리를 조금 움직여, 반동을 이용해 당장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점프력을 상당히 업 시켜 주는 자세였다. 그때, 골렘이 바로 앞에 왔다.
 쿵. 쿵.
 [죽인다!]
 “하압!”
 골렘이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욱의 신형이 쏜살같이 쏘아졌다. 이욱의 신형은 골렘의 등 뒤로, 목을 양팔로 부여잡은 채 매달렸다.
 팔에서 까슬까슬한 모래가 느껴진다.
 [우우우!]
 쿵! 쿠웅!
 골렘의 신체 구조상,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이욱이 매달리자, 골렘은 성난 소리를 내며 방방 뛰어다녔다.
 쿠쿵!
 모래가 무너진다. 3m가 약간 넘던 굴이 골렘의 난동에 거침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난동 속에도 이욱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꽉 껴안았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매달렸다.
 아니,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목 부위를 껴안고 있었다.
 “으아아아!”
 [우우우우!]
 쑤우욱!
 목을 두른 이욱의 양팔이, 엄청난 괴력으로 목 안으로 파고들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목 부위. 하지만 연결 부위기에 제법 단단하다. 그런데 이욱은 그런 부분을 거침없이 파고들고 있었다.
 대단한 괴력, 그 이상이었다.
 “으아아!”
 끊어 낸다!
 이욱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됐다. 운동으로 잘 단련된 매끄러운 근육들이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올랐다. 붉고 푸른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이대로 맨손으로 목을 끊어 내리라! 힘줄이 끊어져 나가더라도, 근육이 부서지더라도!
 이욱, 그는 자기가 한다면. 해야 했다.
 아니, 살기 위해선 해야만 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지금 이때, 완전히 끝내 놔야만 했다.
 그리고 끝내.
 “으아아아!”
 쿠우웅!
 성공했다. 목을 빙 두른 양팔이, 모래로 이루어진 목을 완전히 절단해 냈다. 골렘의 거대한 머리통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쿠쿵쿠쿠쿵!
 머리가 절단되자, 골렘의 몸뚱이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허름한 건물을 철거하듯,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하. 하아.”
 이욱은 벽에 기대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온몸이 축 처졌다. 물 먹은 휴지처럼. 근육이 늘어나는 바람에 엄청난 고통이 신체에 전해져 온다.
 하지만.
 “하, 하하핫! 핫!”
 이욱은 불현듯 대소를 터뜨렸다.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근육과, 인대가 늘어난 두 팔이 축 처짐에도, 그럼에도 이욱은 웃었다. 아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한 번.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 다시 살아남고야 말았다. 기쁜 일이지 않은가. 당연히 즐겁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살아남는다.’라는 말은 흔히, 직장에서 ‘먹고살기 위한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는 말로 사용됐다.
 그런데 지금 여기선.
 정말로 살아남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손길 아래. 살아남고 있었다. 그것이 이욱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야수를 깨우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싸움에서, 이 지독한 생존 싸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라고.
 그 포효를 지르라고.
 그 이빨을 보이라고.
 이욱, 그는 야수가 되기를 본성이 원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라도. 이곳에서만큼은. 살아남기 위해, 야수, 짐승이 되고 싶었다.
 “하. 하하.”
 한참을 웃던 이욱은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호흡으로 최대한 심신을 안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이욱은 축 처진 팔을 애써 움직이며 골렘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정말로 특이한 구조다. 온몸이 바위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으나, 시체는 바위밖에 남지 않았다. 각 부위를 연결하던 모래는 완전히 흩어져 있었다.
 몸통을 이루는 암석 두 개. 머리를 이루는 암석 하나. 팔을 이루는 암석 두 개씩, 양팔이니까 네 개. 그다음 다리를 이루는 암석 총 네 개. 그리고, 원뿔형의 바위 검 두 개.
 총 13개의 암석만이 남았다.
 “흐으음.”
 이욱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매끄럽군.”
 암석의 표면을 매만지던 이욱은 살짝 놀랐다. 암석의 표면이 마치 깎아 내린 듯, 아주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투박한 암석이 아닌, 정교한 작업을 거친 암석.
 즉 인위적인 힘이 들어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럼 이 골렘, 괴물도 어떤 인물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생산물’이란 결과가 나온다.
 “한둘이 아니겠군.”
 이런 골렘이 하나만 있을 리는 없었다.
 “이거 위험하군.”
 위험하다.
 이런 골렘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 있다면. 도대체 마지막 굴의 끝에는 무엇이 있기에 이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이욱은 인상을 구기며 조용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Chapter 3 이기적인 야수가 되리라
 
 
 이욱이 굴에서 발견한 괴수는 골렘뿐만이 아니었다. 약 2m가 넘는 신장에 팔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괴물도 발견했다.
 얼굴의 모양은 길쭉했고, 온몸에 털이 가득했다. 한번 부딪친 적이 있었는데, 긴팔을 이용해 공격해 오는 놈은 무척 위협적이었다. 또한 손톱 역시 무지 날카로워서 걸리는 대로 모조리 송송 구멍이 뚫릴 정도였다.
 이욱도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 한동안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놈들이 다수 포진.”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점은 이런 괴물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 굴의 끝 부분에 말이다.
 콰직.
 아그작. 아그작.
 이욱은 전갈의 먹을 수 있는 부위를 씹어 삼키면서 배고픔을 해결했다.
 이젠 장기전에 돌입해야 할 때다.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일단 저 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괴물들을 처리해야 한다. 이건 전갈이나 독충을 잡는 것처럼 단시간 안에 끝낼 수 없다.
 장기전이다. 오랫동안.
 천천히, 하나씩 없애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독충보다는 전갈이 먹을 부위가 많았다. 그래서 전과 달리 잡히는 전갈은 우선 껍데기를 벗겨 내고 먹을 수 있는 가슴 부분만 떼어 내서 따로 저장하고 있었다.
 수분은 딱히 어쩔 수는 없었다.
 독충이나 전갈의 피를 마시는 방법 외에는.
 문제는 ‘독성’이겠지만, 이미 거의 독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욱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식량을 조금씩 저장하면서.
 이욱은 천천히 준비를 해 나갔다.
 “맨손으론 저들을 잡을 수 없다.”
 사실이다. 운 좋게 골렘 한 마리를 쓰러뜨렸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행운이었다. 맨손으로는 이길 수 없는 사실. 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만 했다.
 “흠.”
 한참 고뇌하던 이욱.
 문득 이욱의 시선이 한쪽에 놓아 놓은 골렘의 암석들에게 멈추었다. 매끄럽게 잘 깎인 암석. 그리고 바위 검.
 순간, 이욱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생각함과 동시에 이욱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흠. 바위만으로도 충분하다.”
 투박한 암석이 아니다. 정교한 작업을 거친 암석들. 이런 암석들은 서로 움직이기에 아주 유용하게 잘 되어 있었다.
 이욱의 눈이, 밝게 반짝였다.
 
 타탓, 탓!
 “궤에에!”
 “그어어어!”
 2m가 넘는 털북숭이들이 기괴한 울음을 뱉어 내며 이욱을 쫓았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팔을 빙빙 돌리는 행동이 사뭇 위험했다.
 “오케이. 잘 되고 있다.”
 이욱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지만, 이욱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계획했던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었다. 총 여섯 마리의 괴물들. 단번에 없앨 수 있는 방법!
 이욱은 장소에 가까워지자 오히려 속력을 높였다.
 그리고,
 팟!
 “궤엑?”
 “그어억?”
 또 다른 굴로 꺾는 순간 이욱이 사라져 버렸다. 털북숭이 몬스터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좁은 굴 통로. 이 굴 통로에서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그때.
 쿠우웅!
 거대한 암석이 굴러 들어와 입구를 막아 버렸다. 암석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입구를 꽉 메울 정도의 암석이 틈을 완전히 막아 버리지 않는가? 털북숭이들은 순간 당황했다.
 동시에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지만, 완전히 메워진 입구를 뚫을 수는 없었다. 정밀하게, 치밀하게 서로 단단히 틈을 메우고 있었다. 그때, 저 위에서부터 빠른 속력으로 무언가 내려오고 있었다.
 쿠쿠쿠쿵!
 “궤에엑?”
 “그어어어!”
 몬스터들은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암석, 엄청난 크기의 암석이 무서운 속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궤엑! 그억!”
 콰직, 파지직!
 퍼억!
 처참하게 부서진다. 사방으로 튀는 피. 바위에 눌려 뭉개지고, 터져 버리는 신체. 그런 모습을, 이욱은 지켜보고 있었다. 저번과 달리 깊게 파 놓은, 구덩이 안에 숨어서.
 “그어어억!”
 6마리에 달했던 몬스터들이 어느새 전멸당했다. 바위에 깔려 죽은 몬스터들의 사체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억, 억억!”
 그러나 한 마리, 단 한 마리가 깔린 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놈이다.
 “흠. 그냥 깔끔하게 죽을 것이지.”
 이욱은 인상을 찌푸렸다. 끝까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 조금 안돼 보이기도 했다. 자신도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함정을 만들었고. 이 몬스터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자신과 같았다.
 하지만.
 “죽어야지.”
 푸악!
 이욱은 두 손으로 힘겹게 바위 검을 들어 놈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즉사했다.
 “방해되는 장애물은······ 부숴야지.”
 이욱은 자신의 앞길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뛰어넘지 않았다. 오로지, 부쉈다. 귀찮게 뛰어넘을 이유가 없었다. 처참히 부수면, 그만이었다.
 “괜찮군.”
 주위를 둘러본 이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성공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던 함정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거대 함정.
 이 모든 함정은 다 골렘의 시체로 만들어졌다. 골렘의 몸을 이루었던 암석만큼 좋은 재료는 없었으니까. 사실 모래굴 속에 함정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예 생각조차 못하리라. 그러나 이욱은 달랐다. 건축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그 능력이 뛰어나 현장에 파견된 사람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의 노력과 머리가 아플 정도의 생각만 있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10일.
 이 거대 함정을 만드는 데 투자한 시간이었다.
 골렘의 사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죽여 온 전갈, 독충들의 사체도 사용되었다. 치밀한 계산 아래 준비된 함정이었다.
 “후우.”
 이욱은 완전히 짓이겨진 시체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시체들을 살피던 이욱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다 쓸모없군.”
 다 쓸모가 없었다. 어디 쓸모 있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전갈은 그래도 식량 대용으로 쓰인다. 독충도 그 피가 식수 대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놈은 뭐란 말인가?
 써먹을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욱의 시선이 놈의 손에서 멈추었다.
 약 20cm까지 자란 긴 손톱.
 날카롭기 그지없는. 저번에 저 손톱에 당했던 적이 있던 이욱은 흥미가 동했다. 다른 신체는 바위에 완전히 뭉개진 것에 비해, 손톱은 멀쩡했다.
 “호?”
 그만큼 단단하다는 얘기다. 이욱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손톱을 살폈다.
 퉁!
 살짝 눌렀다가 손을 떼니, 다시 원래대로 쫙 펴졌다. 탄력성이 뛰어나다.
 단단함, 탄력성······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흥미가 동하는 점은 뭐든지 꿰뚫어 버릴 기세의 날카로움이라는 점이다.
 이욱은 혹시 모르니 챙기기로 결정했다. 이런 물건이 후에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는 일. 일단 챙기면 후에 유용하게 쓰일지도 몰랐다.
 “일단 복구를 해야겠군.”
 일회용 함정이 아니었다. 아니, 고작 일회용에 그친다면 이런 거대 함정을 무슨 수고로 만든단 말인가? 다만, 거대 함정인 만큼 원래대로 복구하는 데 하루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루.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욱은 인내할 줄 알았다. 하루에 한 번씩, 대여섯 마리씩 처리한다고 하면 아무리 못해도 한 달 내에 웬만한 몬스터들은 제거하리라.
 그 시간을 여기서 버틴다는 점은 무척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욱은 버틸 수 있었다.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다.
 인간은 죽기 싫어한다. 심지어는 하찮은 짐승들마저. 이욱도 죽기 싫었다. 살고자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인내하리라.
 어둠 속, 이욱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쿠에에엑!”
 어두운 굴 안.
 그런 굴 안으로 엄청난 속도로 거대한 짐승이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그러나 쫓기는 인영 역시 무척 빨랐다. 마치 굴 안이 제 집인 양, 구조를 완벽히 파악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흡! 흡! 흡!”
 이욱은 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온몸에 힘이 다시 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이욱은 몰라보게 변하고 있었다. 헬스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은, 전투에 좀 더 알맞게 변했다.
 주먹을 휘두르기에 좋게 근육이 발달했다. 발을 쓰기에 더 좋게, 몸을 날리기에 더 좋게, 달리기에 더 좋게.
 전투에 알맞게 신체가 변하고 있었다.
 더욱이 거기다 아무렇게나 풀어진 머리카락과,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과 구레나룻. 그리고 곳곳이 찢어진 남루한 옷차림은 흡사 야인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 누가 21세기의 현대인으로 볼까.
 “쿠엑! 엑!”
 마치 멧돼지를 연상하게끔 하는 모습의 짐승이 이욱의 뒤를 쫓았다. 멧돼지만큼 저돌적이었으며, 파괴적이었다. 무조건 돌진이었다. 걸리는 방해 요소들은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짓밟았다.
 그런 점에서 얼핏 이욱과 닮은 부분도 있었다.
 이욱도 자신의 앞길을 막는 건 부수고 보는 야수였으니까.
 팟!
 순간 이욱의 신형이 짐승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쿠우욱!”
 쾅! 쾅!
 이욱이 사라지자, 짐승은 괴성을 질러 대며 벽을 향해 돌진했다.
 한 번 부딪칠 때마다 모래가 후드득하고 떨어졌다.
 벽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흔들렸다.
 스윽.
 그때, 짐승의 뒤에서 이욱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 이욱의 눈은 매의 눈처럼 빛나고 있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매의 눈빛!
 이욱의 손이 높이 올려졌다.
 그리고.
 푸우우욱!
 “꾸어어억!”
 데구르르.
 짐승은 괴성을 토해 냈다. 마지막 괴성이었다. 괴성을 지른 후, 짐승의 머리는 바닥에 굴렀다.
 주루룩!
 선명한 붉은 피가 바닥에 흘렀다. 피는 모래를 붉게 물들였다.
 단 한 방이었다.
 한 방에 짐승의 머리가 매끈하게 잘려 버렸다. 단검 같은 무기도 없는 이욱. 그런 이욱이 어떻게 짐승의 머리를 잘라 냈을까? 답은 이욱의 양손에 있었다.
 “좋군.”
 이욱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약 20cm까지 자란 손톱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혹자가 봤으면 경악했으리라.
 흉기와도 같은 긴 손톱에서 붉은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모습은 정말로 섬뜩했으니까.
 손톱이 저렇게 빨리 자라기라도 했을까?
 아니었다. 이 손톱은 다름 아닌, 털북숭이 몬스터의 손톱이었다. 혹시 몰라 챙겼던 손톱. 그 손톱을 몬스터들의 가죽으로 손에 단단히 동여맨 것이다.
 손등부터. 손가락 관절까지.
 최대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단단히 묶어 놓았다. 마치 제 손톱처럼. 이욱은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아주 좋은 무기였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단 한 방에 끝장낼 수 있었으니까.
 잠시 손톱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던 이욱은 허리를 숙여 짐승의 가죽을 벗겨 내렸다. 전갈을 식량으로 삼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래도 멧돼지를 닮은 형상.
 거부감이 덜할 수밖에.
 짐승의 가죽을 순식간에 벗겨 내고, 먹을 수 있는 부위만 도려냈다. 전갈의 껍데기로 만든 통 안에 꾸역꾸역 눌러 담았다.
 이욱은 다시 거대 함정이 설치된 장소로 움직였다. 방금 전에, 이 짐승을 피하면서 동시에 다른 몬스터들을 그쪽으로 가게끔 유인했다.
 그럼 함정에 걸린 몬스터들의 수가 많으리라.
 쿠우우웅.
 장소에 도착한 이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석이 비켜지고 보이는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말라비틀어져 버린 시체가 곳곳에 널렸고, 방금 죽은 듯,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오는 시체들도 많았다. 털북숭이 괴물부터, 수많은 거대 독충들. 멧돼지와 늑대를 닮은 몬스터들.
 함정에 걸려 죽은 몬스터들의 시체가 굴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지옥, 완전히 지옥이었다.
 그런 지옥을 보며 이욱은 덤덤했다. 무심. 그 자체였다.
 “하나, 둘······ 열넷, 열다섯.”
 죽은 몬스터들의 수를 세던 이욱이, 문득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 죽였군.”
 다 죽였다. 자신이 파악한 굴 안의 몬스터의 수. 약 삼백 마리가, 마지막 굴 끝 쪽에 서식하고 있음을 이욱은 파악했었다. 그런데 오늘 죽인 몬스터들의 수를 합치자, 이미 삼백 마리는 넘고 있었다.
 “보이는 건 다 죽였다.”
 자신의 눈에 보였던 몬스터들은 다 제거했다. 이젠 좀 더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한 달인가.”
 어연 한 달을 이 함정 근처에서 살아왔다. 몬스터들의 위협 속에 잠을 못 이룬 시간이 절반이었다. 살기 위해 다른 생물체를 살육하고. 거기서 식량을 얻고. 이욱은 그렇게 버텨 왔다.
 이젠, 더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더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예측되는 무언가도 없다.
 그리고 더 위험하리라.
 하지만.
 자신을 위협해 오는 놈들이 있다면. 먼저 죽이면 된다. 앞길을 막는다면, 죽이면 된다. 무언가 방해가 된다면, 죽이면 된다.
 놈들을 죽이고, 내가 산다.
 스스로 이기적인 야수가 되리라.
 
 “흡. 흡.”
 흥분과 동시에 빠르게 뛰어오르는 맥박. 이욱은 호흡을 내쉬며 몸을 차갑게 식혔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점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두려움. 그로 인해 이욱의 몸은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몸을 차갑게 식힐 필요가 있었다.
 한 달 동안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 오며, 이욱이 절실하게 느낀 점이 있었다.
 ‘싸움은 흥분하면 되지 않는 것이다.’
 흥분한 채로 하는 싸움은 필패였다. 아니, 싸움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의 흥분과는 달랐다. 호기심과 두려움에 흥분하는 싸움이 문제였다.
 늘 냉철해야만 했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했다.
 어떤 적이던간에.
 적이 약하건, 강하건. 냉철해야 했고,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이욱에겐 승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싸움의 결과는 승리와 패배가 아니라, 살아남과 죽음이었다.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죽으리라.
 그도 그런 것이, 이욱이 지금까지 해 온 싸움은 모두 생존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싸움에서 지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기면 적이 죽는다. 싸움을 한다는 얘기는 이미 누군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적어도, 이욱에게 있어서 싸움이란 그랬다.
 저벅저벅.
 몸을 차갑게 식힌 이욱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휑했다. 이미 눈에 보였던 몬스터들은 다 자신의 손에 죽었다. 적어도 더 깊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휑하리라.
 얼마나 걸었을까.
 이욱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지막이다.”
 굴의 끝을 발견했다. 저 눈앞에 보이는 둥그런 통로. 저기를 벗어나면 이 굴을 벗어나게 되리라. 그 생각에 이욱은 속 시원한 감정이 생겼다.
 물론 아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젠 길이 보인다는 생각에, 답답했던 가슴에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저곳을 벗어나면 또 어떤 위협이 도사릴지 모른다. 절대로 긴장을 놓아선 안 됐다.
 타탓, 탓!
 이욱은 달렸다.
 그리고 입구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 순간,
 푸우욱!
 대기를 찢어발기며 무언가가 이욱을 향해 맹렬히 쇄도해 들어왔다. 이욱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재빨리 손톱을 X 자로 하여 그 무언가를 막았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이욱은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분명 손톱으로 막았음에도 내장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컥, 커억!”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이욱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헛구역질과 동시에 토사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취륵. 취르륵.”
 소름 끼치는 소음이 들려왔다. 그 소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거대한 괴물이었다. 바로 이욱을 공격했던 괴물! 괴물의 모습은 거미 같기도 했으면서 동시에 개미귀신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검은색의 털이 무성하게 자리 잡은 다리가 수개, 수십 개가 넘었다. 입에서는 녹색인 침, 아니 침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줄줄 흘렀다.
 그 크기는 거의 7m에 달하고 있었다.
 이욱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놈을 살폈다.
 “끔찍하군.”
 끔찍했다.
 정말 괴물의 형상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굴에서 보아 온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 끔찍했다.
 “후.”
 이욱의 인상이 사납게 구겨졌다.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차마 숨쉬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호흡법을 달리한 점이 이때 유용했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시켜 주니까.
 “대체.”
 이욱은 괴물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이런 거대한 생물체가 있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나 보던, 거대 괴수가 아닌가. 소름이 끼침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욱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두려우면, 지는 거다.
 지는 거는, 살아남지 못하는 거다. 이욱은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단 한 방. 저 거대한 놈을 어찌 한 방에 보낼지 미지수였지만.
 모든 생명체의 약점은 머리였다.
 일단 머리를 노려 볼 생각이었다. 이욱은 침을 줄줄 흘리는 놈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 질렀다.
 “포효하라. 죽음의 안식을 앞두기 전에. 마음껏 포효하라!”
 
 격돌.
 이욱은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괴물의 지척에 이른 순간 놀라운 점프력으로 뛰어올랐다.
 쾅!
 “큭!”
 그러나 괴물은 긴 발을 놀려 이욱의 몸을 그대로 쳐 냈다. 이욱이 급히 손톱을 내려 막아 보지만 어쩔 수 없다.
 힘의 차이. 그 차이를 이욱은 절실하게 느꼈다.
 한 번의 격돌에도, 아니 단지 다리로 쳐 낸 공격에도 충격이 심했다. 내장이 모두 뒤흔들리고 피가 울컥 솟았다. 단 두 번의 부딪침으로. 이욱은 처절하게 망가졌다.
 “하악 흡, 흡.”
 이욱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 냈다. 정말 절실한 힘의 차이였다. 이 굴 안에서, 처음으로 ‘죽음’이란 단어가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전갈과 독충의 무차별 공격을 당할 때도.
 골렘과 전투를 벌일 때도.
 털북숭이 놈들에게 쫓길 때도.
 이리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아니, 이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저놈에게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죽음의 향기가 솔솔 풍겨 오고 있었다.
 “젠장.”
 머릿속에 반짝하고 떠오르는 묘안이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묘안이!
 지형지물을 이용한다?
 절대 불가능했다. 이곳은 완전히 모래로만 이루어진 사막의 던전이고, 괴물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몬스터였다. 이욱이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함정을 설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충분히 제압했을지도 몰랐다.
 이미 설치한 거대 함정까지의 거리는 여기서 멀었다. 또 보아하니, 놈은 이곳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공격해 온 점으로 미루어 보아 여기를 지키는 격인 몬스터였다.
 거대 함정으로 유인하지는 못하리라.
 그렇다고 도망을 친다? 불가했다. 놈은 철저히 입구를 막아섰다. 여기에 들어온 이상 죽이겠다는 얘기였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딱히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때.
 퍼어억!
 이욱의 복부에서 찌릿한 충격이 밀려왔다.
 울컥!
 “우웩!”
 이욱은 충격에 결국 토사물들을 모두 게워 내고 말았다.
 “쿨럭. 쿨럭. 캬악, 퉤엣!”
 피에 섞인 내장 조각이 눈에 띈다. 내부가 완전히 망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내장이 부서지고 찢어지고, 흔들리고. 이욱은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한 달간의 생존을 위한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싸워서 살아남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했다. 놈과 싸워서 이겨 내야만 했다.
 퍼억!
 “컥!”
 괴물은 긴 다리를 휘둘러 이욱의 복부를 가격했다. 순간 장이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이욱은 볼썽사납게 모래 위를 뒹굴었다.
 “끼에엑!”
 괴물은 마치 웃음을 내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날카로운 다리를 이용해 단 한 번에 이욱에게 죽음을 선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괴물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이 찌르지 않고 때렸다.
 “크윽!”
 분한 심정이 가득했다. 미개한 생물체임이 분명한데, 이런 굴욕을 당한다는 점이 치욕스러웠다. 죽음의 문턱에 선 먹잇감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때, 이욱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빈틈!’
 놈이 공격을 위해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이욱은 빈틈을 보았다. 그리고 빈틈에서, 생존의 빛을 보았다.
 “하압!”
 촤악!
 이욱의 기합과 동시에 몸을 일으켜 비틀었다.
 푸악!
 놈의 다리가 베어졌다. 이욱은 몸을 힘껏 돌린 반동을 이용해 앞으로 뛰쳐나갔다.
 슬라이딩!
 바닥으로 쭉 미끄러지면서 손톱으로 다리들을 잘라 냈다.
 “으아압!”
 촤촤촤착!
 푸악! 푸아악!
 수십 개의 다리가 순식간에 잘려 나간다. 단 한 번의 슬라이딩으로, 그 수많은 다리가 몸체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놈은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에 몸서리치고 방방 뛰어다녔다.
 쿵쿵! 후드득!
 굴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이욱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그의 신체는 놈의 푸르죽죽한 피로 뒤덮여 있었다.
 “큭, 크크크큭.”
 이욱의 입가가 기괴하게 뒤틀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왼쪽의 다리를 모두 잃고 허우적거리는 놈의 모습이 볼만했던 터였다.
 이욱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아예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이욱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시원하게, 놈의 살을 도려냈다.
 푸악, 푸아악!
 사방으로 푸르죽죽한 피가 튄다. 그 피를 온몸으로 다 뒤집어쓰며 이욱은 멈추지 않았다. 놈의 살덩어리가 뭉텅뭉텅 잘라졌다. 이욱의 손톱에 의해서.
 “끼에에에에엑!”
 “포효하라. 마지막 포효다!”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놈!
 그 비명을 들을 때마다 이욱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네가 죽는 대신, 난 산다. 난 살아남고, 넌 죽는다!”
 이욱은 철저하게 이기적이었다.
 생존 앞에서는 모든 이가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인다.
 그는, 이기적인 야수가 되었다.
 
 
 
 Chapter 4 왕의 권능
 
 
 “······.”
 “헉······헉헉.”
 정적.
 이욱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놈은 쓰러져 있었다. 엄청난 피를 흘린 채. 영락없이 죽은 사체의 모습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이욱의 가쁜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승리의 미소.
 그리고 살아남음을 확인하는 미소였다.
 “하. 살았다.”
 이욱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온몸이 비명을 내질렀다. 어디 정상인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뇌도 진탕이었고, 내장 기관들은 모두 곤죽이 되어 있었다. 구역질이 계속 밀려오고 움직이기도 힘겹다.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사실이 이욱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투를 끝낸 이욱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젠장.”
 이욱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어디 빠져나가는 통로가 없었다. 다시 완전히 막혀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욱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여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아니었단 말인가.
 모든 굴들이 이곳으로 연결됨을 알고, 이쪽이라 확신하고 한 달 동안의 노력 끝에 여기로 왔다. 그런데 여기가 아니라면?
 이욱은 잠시 현기증이 오는 듯했다.
 도대체 어디로 빠져나가야 되는가.
 자신의 직감이 틀렸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욱은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 공간에는 누구의 물건일지 모를 각종 병기와 책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몬스터가 아닌, 어떤 물건들이 쌓여 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이 굴에서 본 물건들은 기껏해야 골렘의 암석과 몬스터들의 시체, 그리고 모래뿐이었다.
 이욱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놈이 저것들을 지키려 한 건가?”
 저놈이 머문 이유가 물건들을 지키기 위함일까.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공격해 오는 점부터. 무언가를 지키려는 행위로 보였다.
 이욱은 천천히 물건들로 다가갔다.
 얼마나 오래 있었던 물건들일까.
 검과 창들은 모두 녹슬어 있었다. 하지만 뿌연 먼지를 잘 치워 보니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무언가 사정이 있는 물건들이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반짝.
 그때 이욱의 시야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오색찬란의 빛깔을 머금고 있는 펜던트. 당연히 시선을 끌었다. 다른 물건들은 다 빛바랬는데, 오로지 펜던트만 빛을 내고 있다.
 시선이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스윽.
 “······?”
 신비한 빛의 펜던트를 들어 올리는 순간. 이욱은 불현듯 뒷골이 서늘해졌다.
 위험하다!
 펜던트가 위험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 등 뒤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직감이었다.
 야수의 직감! 이욱은 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몸을 틀었을 땐 이미 늦었다.
 푸우욱!
 “커, 허억!”
 이욱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뜨거움! 뜨겁다, 뜨겁다 못해 타들어 갈 듯한 고통이 뒤따랐다.
 “허, 헉.”
 놈이 죽지 않고, 비적비적 일어나 다리로 이욱의 몸을 꿰뚫었다. 이욱의 눈이 허공을 향했다.
 복부가 관통된 이상.
 살아남지 못하리라. 허무하다. 허탈하다. 그러나 이욱은 죽지 않았다. 몸이 관통되었다고 해서, 바로 즉사할 허접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필사적으로 버텼다.
 “이노오옴!”
 놈을 노려보면서.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이욱은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죽인다! 죽인다!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너만큼은 죽이고 죽는다!
 이욱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엄청난 살기가 이욱의 몸에서 뿜어졌다.
 그때,
 이욱의 손아귀에 있던 펜던트가 부르르 진동했다. 엄청난 살기에 반응하고 있었다. 살기에 즐거워하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죽······인······다!”
 살기가 절정에 치달은 순간!
 파아아앗!
 이욱의 손에 쥐어져 있던 펜던트가 강한 섬광을 뿜어냈다. 오색찬란한 빛과 함께. 세상이 순간 밝아졌다.
 콰콰콰쾅!
 거대한 압력이 굴 안에 가득했다.
 
 왕의 권능 중,
 제1의 권능.
 지옥의 눈, 지옥안(地獄眼)이 열렸다.
 
 “으아아아아아!”
 이욱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 눈동자에서, 하얀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레이저가 쏘아지는 듯이, 섬광이 쏘아 올려졌다. 이욱은 고개를 하늘로 쳐들었다.
 쿠쿵! 쿵!
 빛에 의해 모든 게 무너진다. 새하얀 섬광 속에 진득한 살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섬광이 세상을 뒤덮은 순간!
 파팟!
 “······.”
 빛이 사라졌다. 세상을 밝게 비추던 섬광은 사라졌고, 이욱의 눈에서 쏘아지던 섬광도 사라졌다.
 정적.
 정적만이 맴돌았다. 동시에 그 누구도 버틸 수 없는 압력이 모든 것들을 억누르고 있었다.
 엄청난 위압감!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누구도 버틸 수 없는. 그런 위압감이 이욱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강렬했던 야수가 아닌, 지도자의 절대적인 위엄과 위압감!
 스으윽.
 이욱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순간, 놈은 머리를 숙이고, 몸을 움츠렸다.
 지옥안(地獄眼).
 사막왕의 권능 중 그 첫 번째.
 그 지옥안이 열렸다.
 지옥안을 보는 모든 생명체들은 무조건 굴복한다. 지옥안의 주인에게 절대복종해야만 했다.
 사막왕의 사라진 악마의 권능 중 하나가 지금 이 시각,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욱의 눈은 완전히 검었다. 칠흑의 어두움, 아니 어두운 게 아니라 그냥 검었다. 마치 먹물을 부은 듯.
 그 검은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조종되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느낌이 아니라, 그것은 사실이었다.
 절대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힘!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엄청난 위압감!
 이욱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죽어라.”
 쿵!
 “키······ 키에엑.”
 명령.
 절대적인 명령. 무조건 따라야 하는 왕의 명령. 따라야만 했다.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했다. 명령에 반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찮은 몬스터인 놈에게도, 따라야 했다. 따라야만 하는 사막왕의 명령이었다.
 “당장······ 죽어라.”
 놈은 몸을 떨면서 굴복했다. 엄청난 위압감에 몸서리치며.
 “키, 에에엑!”
 푸욱!
 자살.
 놈은 지옥안에 굴복해 스스로 자살했다. 죽으라는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왕의 권능으로.
 얼마나 지났을까. 무심한 표정으로 놈이 명령을 이행하는 장면을 본 이욱.
 “아?”
 문득, 이욱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동시에 주위를 억누르던 압박감도 모조리 사라졌다. 순간, 이욱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아, 아아악!”
 마치 뇌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뇌로 집중한다. 이욱은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털썩.
 이욱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파앗!
 지옥안이 열린 순간.
 사막의 어딘가, 그 지옥안을 느낀 이가 있었다.
 “모래술사의 권능이다!”
 풍채 좋은 수염을 기른 한 노인. 그 노인은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내포하고 있는 두 눈빛으로 하늘을 쏘아보았다. 어디선가, 지옥의 눈이 열렸다.
 “왕의 귀환.”
 사막왕, 모래술사.
 그의 힘이 깨어났다.
 모래술사가 사용했던 그 권능이, 400년이 지난 이 시점. 다시 열렸다.
 노인의 심장이 빠르게 박동했다.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멀지 않은 곳.
 거기서 권능의 힘이 발휘되고 있었다.
 
 이욱이 눈을 뜬 시각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흡.”
 이욱은 찌뿌듯한 몸을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이욱은 바로 앞에 놓인 놈의 시체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급히 자신의 아래를 내려 보았다.
 “허?”
 이욱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죽은 줄로만 알았던 놈이 다시 일어나 자신을 찌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히려 지금 자신은 멀쩡했고, 놈은 죽어 있었다.
 “기분이 나쁘군.”
 뭔지 모르겠으나 기분이 나빴다. 마치 기억의 일부분이 사라진 느낌. 뭔가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
 좋지 않았다. 아니, 정말로 싫었다.
 이욱의 표정이 완전히 구겨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몸도 멀쩡했다. 분명 내상도 심한데, 지금은 오히려 멀쩡했다.
 흠칫!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던 이욱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목에 어느 순간 펜던트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이욱의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
 이건 목에 걸지 않았었다.
 그저 손에 쥐기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 불길한 느낌이 물씬 풍겨져 온다. 신비한 빛깔의 펜던트. 펜던트의 모양도 바뀌어 있었다.
 그저 보석 모양의 펜던트가, 지금은 마치.
 “용.”
 용의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불길함을 느낀 이욱은 당장 펜던트를 벗으려고 했다. 그러나.
 “벗겨지지 않는다?”
 벗겨지지 않았다. 펜던트는 마치 이욱의 몸과 연결이라도 된 양, 벗겨지지 않았다. 이욱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몸에 붙어 버린 펜던트. 기분이 여간 좋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한숨을 내쉰 이욱은 일단 몸을 진정시켰다.
 무슨 연유로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으나. 일단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복부에 놈의 다리가 관통됐을 땐 정말 죽는 줄 알았으니까.
 찌릿.
 그때, 이욱의 머릿속에 짜릿한 전류가 흘러 들어왔다. 그 전류는 이욱의 뇌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흘렀다.
 “큭!”
 이욱은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온몸이 순간 새롭게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전류는 다시 뇌로 돌아와 그 정점을 찍었다.
 팟!
 “하! 하아. 하아······.”
 정점을 찍는 순간. 이욱은 가쁜 호흡을 몰아쉬었다. 전류가 혈관을 타고 몸을 순환할 때, 단 한 번의 호흡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욱의 머릿속엔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떠올랐다.
 “······?!”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전율과 함께 이 굴을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다니? 마치 본래 알고 있었던 것마냥 머릿속에 속속 방법이 나열되고 있었다.
 도무지 말로 풀어낼 수 없는 괴현상.
 이욱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생각에 잠겼다. 펜던트를 손에 쥔 후부터, 설명되지 않는 괴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상, 외상 모조리 사라지질 않나, 쓰러지기 전 기억이 지워지질 않나, 그리고 알지도 못했던 빠져나갈 방법을 떠오르다니?
 한참 고민하던 이욱은 이내 그 방법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퍼뜩 떠올린 이 방법이 맞는다면, 이 펜던트가 가지고 있는 어떤 ‘힘’이 있다는 사실.
 이욱은 천천히 움직였다.
 각종 병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동안 작업을 계속했다.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했는지 몰랐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이욱의 손이 움직여질 뿐.
 그리고 이내.
 쿠쿠쿠쿵!
 천장이 열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천장은 커다란 굉음을 내며 태양을 맞이했다.
 
 태양!
 한 달 넘게 어둠 속에 익숙해진 이욱에게 있어서 태양은 고통스러웠다. 뜨거운 자외선에 살이 익어 가는 듯한 고통. 그리고 눈조차 쉽게 떠지지 않았다.
 환경이란 요소가 이래서 무서운 거다.
 4년 동안 사막이란 환경에서 지내 와 놓고도, 고작 한 달. 한 달 동안 어둠 속에서 지냈다고 사막이란 환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욱은 곧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본래 적응력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던 이욱. 금세 사막의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어렵지도 않았다.
 태양 아래 드러난 이욱의 모습은 야인이었다.
 이미 바지는 무릎까지밖에 남지 않았고, 윗도리는 거의 완전히 헤진 상태였다. 한 달 동안 살아남기 위한 전투로 단련된 매끄러운 근육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든, 아주 조잡한 배낭. 그 배낭 속에 몬스터들로부터 얻은 식량과 피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욱은 배낭을 단단히 동여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됐다.
 사막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을도, 도시도 찾지를 못했다. 사막이란 악랄한 자연환경. 언제 어느 순간 생명에 위협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이욱은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생존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생존 게임은, 끝나지 않은 셈이었다.
 
 얼마나 걸었는지를 모른다.
 이미 이욱이 달을 본 횟수만 해도 손가락으로 다 셀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굴 안에서 저장했던 식량들도 다 떨어졌다.
 콰직!
 이욱은 바닥을 기어가는 전갈을 잡아 그대로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콰지직! 파직!
 입안에서 전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껍데기를 부수고, 머리를 부수며, 독을 그대로 씹어 삼켰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아침에 먹은 음식들이 불쑥 솟아오를 정도의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이욱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살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 있으랴!
 전갈을 씹어 삼키니 자연히 수분도 보충됐다. 녹색의 체액을 함께 삼키게 되니까.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지 며칠. 이욱은 문득 느낄 수 있었다.
 “중력이 약해.”
 중력이 약하다는 점. 모래 폭풍에 휩쓸리기 전에 비해 몸이 지나치게 가벼워졌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굴 안에서, 몬스터들을 피해 빠른 속도로 도망친다거나 상당한 높이까지 점프한다던가.
 정말 생각할수록 힘든 일이 아닌가?
 물론 생존을 위한 투쟁의 결과로 신체가 단련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했다. 중력은 확실히 약해졌다.
 전의 중력이 10이라면, 여기는 7 정도.
 이욱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여긴 중동이 아니다. 어디 미스터리 프로그램에나 나오는 그런 장소였다. 처음 보는 괴물들이 날뛰며, 사막 아래에 커다란 공간이 있고.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터벅터벅.
 발이 푹 빠지는 모래 위를 걷기를 얼마.
 이욱의 표정이 별안간 딱딱해졌다. 그리고 급히 몸을 낮추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언덕 위, 한 무리의 그림자들이 빠른 속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
 사람인가?
 인영들은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는데 모양이 사람과 유사했다. 굴속에서 몬스터들만 조우한 이욱으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아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곧 이곳에 마을이 있다는 소리!
 그럼 최소한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단 소리가 아닌가! 전갈을 먹지 않아도 됐고, 체액을 마시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이욱의 기쁨은 이내 사라졌다. 대신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점점 가까워져 오면서 이욱은 알 수 있었다.
 약 2m가 넘어가는 큰 신장.
 더불어 양옆으로 떡 벌어진 어깨.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우락부락한 근육.
 그리고 멧돼지의 형상을 닮은 얼굴.
 이욱의 몸이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몸이 말해 주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전율했다.
 흉악한 생김새의 몬스터들.
 돼지 얼굴의 형상을 띤 이놈들은 사막인들이 입는 듯한 전통 복장까지 둘렀다. 피부색은 옅은 갈색에서 짙은 검은색까지 아주 진한 색의 몬스터였다.
 바로 오크들이었다.
 일반 오크와는 다른 종족이었다.
 사막에만 서식하는, 오히려 ‘이종족’으로까지 분류하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능적인.
 사막오크들이었다.
 물론 이욱은 몰랐다. 저들을 오크라 부르는지도, 몬스터라는 사실도.
 그에게 있어선 생존에 방해되는 모든 놈들은 부숴야만 했다. 저 오크들도 자신의 생존에 방해될 놈들이라는 짐작쯤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싸우게 될 것!’
 어차피 싸우게 되리라. 저 몬스터들은 자신을 발견하면 곧바로 공격해 오리라.
 ‘그러면. 먼저 친다.’
 선즉제인(先則制人).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 그 말을 이욱은 믿고 따르기로 했다.
 스윽!
 이욱의 몸이 한껏 웅크려들었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철저하게 기척을 숨겼다.
 “취익― 취이익.”
 오크의 수는 일곱 마리. 다들 손에 번쩍번쩍 빛나는 글레이브와 도끼를 쥐고 있었다. 딱 봐도 섬뜩한 예기가 흘렀다. 이욱은 긴장이 폭발 직전에 놓였다.
 오크들이 가까워질수록 이욱의 몸은 낮춰졌고, 눈은 매섭게 변했다.
 ‘선두!’
 이욱은 선두에 있는 오크부터 제거할 생각이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순서로 처리할지, 또 어떤 부분을 공격할지. 어떻게 공격해야 효과적일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치밀한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욱은 무조건 부수고 보는 저돌적인 야수가 아니었다. 치밀한 계산과 동시에 전투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지능적인 야수였다.
 ‘지금이다!’
 이욱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쾅!
 단단한 다리가 땅을 박찼다. 이욱은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푸악!
 이욱의 손톱은 선두에 있던 오크의 가슴팍을 베어 냈다. 가슴 가죽이 갈라졌다. 허공에 붉고 선명한 피가 튀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한바탕 전투가 벌여졌다.
 “취이익!”
 슈욱!
 “헙!”
 글레이브 세 개가 이욱을 노렸다. 맹렬한 파공음을 내며 쇄도해 들어오는 글레이브의 끝!
 이욱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순간 허리를 숙여 글레이브를 피해 냈으나, 한 개는 어깨에 박혔다.
 “크윽!”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욱은 참아 냈다. 그리고 양팔을 크게 휘둘렀다. 이욱이 노리는 건 오크의 다리!
 푸아악! 푸악!
 “취에엑!”
 무릎 밑이 매끈하게 잘려 나갔다. 그만큼 이욱의 손에 묶인 손톱은 너무나 날카로워 모든 것들을 베어 낼 수 있었다.
 쨍! 째앵!
 일합, 두합, 세합.
 이욱은 오크와 계속 부딪쳤다. 벌써 해치운 오크는 두 마리! 물론 완전히 죽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마리는 가슴을 거의 베어 내고, 다른 한 마리는 무릎 밑을 잘라 냈다.
 전투 능력은 상실! 곧 죽음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남은 다섯 마리의 오크는 동료의 죽음에 분노했다. 엄청난 괴력으로 이욱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오크들은 지능적이었다. 이미 여러 번 손발을 맞춘 듯, 협동하며 반격해 오는 게 아닌가?
 “큭!”
 손목을 끊어질 듯한 고통이 찌르르 전해져 왔다. 이욱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기세 좋게 뛰어들던 이욱은 오크들의 치밀한 대응에 점점 밀렸다.
 쾅!
 주르륵!
 순간 격돌로 인해 이욱은 뒤로 밀려났다. 힘이 빠진 이욱은 중심을 잃어 흔들렸고, 오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쨍!
 파악!
 “컥!”
 오크가 글레이브의 막대기 부분으로 이욱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순간 머리에 전해지는 아찔한 충격에 이욱은 단발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귀가 맹맹하다.
 하늘이 빙빙 돈다.
 털썩!
 이욱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늦은 밤.
 시리도록 차가운 달이 하늘의 정기를 삼키는 밤. 푸른 달빛 아래. 풍채 좋은 노인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노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굉장했다.
 주위에 있는 오크들을 모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할 정도였으니까.
 당연 이스마엘은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다.
 사막의 수호부족 중 하나, 모래부족의 전대 원로장이었던 인물이다. 강력한 주술을 부리는 사막의 명실상부 최고의 술사.
 그런 노인의 곁으로 다가서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스마엘 님. 도대체 오크부족에는 왜 온 겁니까?”
 “······.”
 이스마엘은 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아름다운 달과, 달빛에 비치는 모래를 안주삼아.
 주위에는 사막오크들이 쫙 깔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주위에 오크들이 있다는 사실에 오줌이라도 질릴 법했지만, 이스마엘은 담담했다. 이스마엘이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사막오크 부족의 본거지였다.
 몬스터들의 본거지.
 그 안에서 여유자적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막오크는 몬스터라는 기준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는, 특이한 종족이었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을 식량으로 삼는 오크들.
 그 사이에서 여유롭게 술을 마시다니.
 남자는 질린 표정이었다. 뛰어난 주술사인 자신도 이 안에 있기 두려웠다. 언제 오크들의 밥이 될지 몰라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묵묵히 술만 마시는 이스마엘에게 다시 말했다.
 “이스마엘 님. 도대체 왜 오크부족에 오신 것입니까? 어떤 연유입니까?”
 “꿀꺽, 꿀꺽······. 캬아! 술맛 좋군.”
 “······.”
 남자는 침중한 시선으로 이스마엘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이스마엘은 말이 없어졌다. 어쩌면 점점 더 암울해지는 모래부족의 미래가 이렇게 변하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오크들이 빚은 술. 나쁘지 않군.”
 “이제 대답해 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남자의 질문에 이스마엘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곳곳이 오크들이었다. 부족 경비도, 이스마엘 일행에 대한 감시도. 온통 오크들이었다. 그들을 둘러보며 이스마엘이 말했다.
 “400년 전만 해도, 아니, 그래도 300년 전만 해도 사막의 수호부족은 다섯 곳이었지.”
 “예? 사막의 수후부족은 네 곳이 아닙니까?”
 그 말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기로는, 사막의 수호부족은 네 곳이었다.
 오아시스 부족.
 모래부족.
 전갈부족.
 여우부족.
 이 네 부족이 사막의 수호부족들이었다. 이스마엘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렇지. 검과 활의 오아시스. 주술의 모래부족. 독과 암살의 전갈. 정보와 중립의 길을 걷는 여우. 그리고 300년 전만 해도, 전사들의 부족, 사막오크들도 수호부족으로 일컬었다네.”
 “오크들을요?”
 “그렇지.”
 남자는 벙찐 표정이 되었다. 물론 사막오크가 대륙에 서식하는 오크하고 많이 다르긴 했다. 언어적인 면에서도 인간에 필적했고, 간혹 오크들 중에서 주술사가 제법 나올 정도로 지능적이기도 했다. 그들만의 제련기술이 내려오고 있어 대장장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들과 늘 적대적이라는 건 변함없다. 자신들이 모래부족의 사신으로 오지 않았으면, 당장 싸움이 벌어졌으리라.
 그런 부족이 사막의 수호부족이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아니, 사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이스마엘의 말이다.
 전대 원로장이자, 사막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사!
 그런 그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이스마엘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400년 전.”
 “사막왕, 모래술사가 존재했을 때 아닙니까?”
 “그렇지. 그때. 모래술사는 신의 자손, 그 자체였네. 스스로가 광폭한 지배자이길, 스스로가 모든 걸 씹어 삼키는 야수이길 바랐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모래술사라는 이름! 그 이름만 들어도 절로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는 그 이름!
 모래부족에서 배출한 천재, 광폭한 사막의 지배자!
 처음으로 주술의 끝을 본 주술사! 자기 스스로가 모래였던 괴물. 그리고 대륙을 향해 포효하던 야수! 그가 지배했을 때의 사막이 최고의 전성기였다.
 “잘 알고 있군. 그때, 오크부족에도 아주 희대의 천재가 있었지. 사막의 모든 오크들을 하나로 통합한, 오크 대족장. 인간보다 훨씬 지혜롭고, 바실리스크보다 강했던 그는 모래술사의 절친한 친우였기도 했지. 어쨌든 대족장이 죽은 이후 오크부족은 쇠퇴해 왔네. 결국에는 다시 몬스터로 격하되는,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지.”
 새삼 새롭게 안 역사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의 표정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문득 이스마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우리 모래부족도 오크부족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예?”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막왕국 이스탄.
 이스탄 왕국은 사막 4개의 수호부족이 지탱하고 있었다. 각 부족의 족장이 국왕 후보로서, 언제든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즉, 아직 중앙집권이 된 국가는 아니었다.
 모래술사가 모래부족의 족장으로서 사막의 지배자가 됐을 땐, 모래부족의 위세가 가장 강했다.
 그러나 모래술사 사후.
 후계자가 없던 모래부족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그때, 치고 나온 부족이 오아시스 부족이다. 모래술사 사후, 부족들의 권력 싸움에서 권력을 부여잡은 오아시스 부족은 400년이 지난 이 시점.
 지금까지 권력을 이어 오고 있었다.
 사막왕국 이스탄은.
 오아시스 부족의 손에 쥐락펴락 당하고 있었다.
 왕족들도 모두 그 근본이 오아시스 부족이다. 오아시스 부족장을 국왕으로서 등극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수아비 왕을 세우고, 맘대로 휘두르는 게 명목상, 더 좋아 보였고 더 편했으니까.
 권력을 가진 오아시스는 다른 모든 부족들을 억압했다. 특히 모래부족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심했다. 모래술사가 남긴 유언 때문에 그랬다.
 ‘나, 다시 돌아오는 날. 사막에 전설이 재림하리라.’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모래술사의 유언!
 사막의 광폭한 지배자였던 모래술사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것은 분명 큰일이었다. 그래서 오아시스 부족은 모래부족에 대한 압박을 무척 강하게 했다. 그때부터 모래부족은 흔들렸다. 무엇보다, 차기 모래술사가 아니라면 족장에 오르지 못한다는 법도 아래, 400년 동안 비워져 온 족장 자리는 치명적이었다.
 국정에서 발언권도 약해졌다. 심지어 원로장이었던 이스마엘을 강제로 그 자리에서 해임까지 함으로 사실상 모래부족의 숨통도 오아시스의 손아귀에 쥐어지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남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스마엘이 왜 저리 슬픈 표정을 짓는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래부족은, 점점 쇠퇴해지고 있었다. 오크부족이 걸어갔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슬픈 표정을 짓는 남자. 그런 남자의 귓가에 이스마엘의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난 며칠 전 느꼈네.”
 “무얼 말입니까?”
 “왕의 권능······.”
 “······?!”
 이스마엘의 넋두리 같은 말에 남자는 눈동자가 화등잔만 해졌다.
 왕의 권능!
 사막왕 모래술사의 권능을 일컫는 것이리라.
 곧 그 말은.
 모래술사의 유언이······.
 “400년이 지난 시점,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네.”
 “······.”
 남자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 넋 나간 시선으로 이스마엘만을 바라보았다.
 왕의 권능이 다시 나타났다.
 이 한 가지 사실이 퍼진다면.
 사막이 격동하리라.
 사막이 두려움에 몸서리치리라.
 
 철컹! 철컹!
 “당장 열지 못해!”
 “취익, 취이익······.”
 쇠창살 안, 이욱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문을 부수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쇠창살이 사람의 힘에 부러질 수는 없는 노릇. 이욱은 으르렁거리며, 쇠창살 건너의 괴물을 노려보았다.
 살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취익, 취이익. 살다 살다, 이런 놈은 처음 본다.”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살리안이 잡아 온 인간만 해도 그 수가 상당한데, 이런 놈은 처음이다. 몇 번 두들겨 맞으면 그새 두려움에 떠는 게 기본. 허나 이 인간은 끝까지 발악하고 있었다.
 손에 달았던 기괴한 무기마저 제거된 그는, 맨손밖에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슨 자신인지, 쇠창살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달려들고 봤다.
 창대에 후려 맞아도.
 몽둥이에 흠씬 두들겨 맞아도.
 벌떡 일어서서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취익! 정말······.”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한 마리의 야수였다.
 “먹기도 그렇고, 취익.”
 오크가 인간들을 잡아 오는 이유가 뭐겠는가? 먹이로 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발악하는 놈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 괜한 골칫거리를 잡아 왔나 싶다.
 “노오옴! 넌, 내가 죽인다!”
 이욱은 소리를 지르며 쇠창살을 부여잡고 흔들었다.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났고,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런 이욱을 본 살리안은 흠칫했다.
 모든 걸 부숴 버리겠다는 이욱의 눈빛!
 살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뒷골이 서늘해졌다. 알아듣지 못할 언어였지만, 전해져 오는 의미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죽인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
 “취익! 조용히 해!”
 퍽!
 “큭!”
 알 수 없는 섬뜩함에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살리안. 살리안은 욕설을 지껄이며 창대를 거꾸로 쇠창살 사이로 밀어 넣어 이욱의 이마를 강타했다.
 두개골이 흔들리는 강한 충격에 이욱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크으윽.”
 이욱은 사납게 인상을 구겼다. 무너지면서도 이욱은 똑바로 살리안을 노려보았다. 싸늘한 시선. 그 시선을 맞받은 살리안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쇠창살에서 벗어났다.
 “후우!”
 이욱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려 보았다.
 자신의 손에 단단히 묶여서, 훌륭한 무기가 되어 왔던 털북숭이의 손톱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괴물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제거했으리라.
 왠지 허전했다.
 자신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해 줬던 손톱. 굴속에서 마지막 몬스터를 상대할 때, 손톱이 아니었으면 거기서 죽었으리라.
 “일단······.”
 이욱은 일단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로 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괴물들은 굴속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뭉쳐 다니는 모습은 굴속의 털북숭이들이랑 같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뭉쳐 다닐 뿐만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고, 같이 지낸다는 점!
 이런 거대한 마을까지 형성하면서 말이다.
 음식을 하고, 술을 빚어 마시고, 축제를 열고.
 영락없이 인간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만만히 봐선 안 된다!’
 인간과 너무나 닮은 괴물들!
 그러면서도 인간보다 훨씬 월등한 괴력을 소유!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찢어 죽이고 싶다. 아니, 실제로 그러리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당장 실행할 수 없다. 우선 이 쇠창살조차 벗어나지 못하는데 무얼 할 수 있으랴?
 쇠창살을 벗어난다고 해도 문제였다.
 이렇게 군집 생활을 하는 괴물들. 고작 일곱 마리를 상대하는 싸움도 처절하게 패배했다.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약하다!’
 그랬다.
 자신은 약했다.
 혼자서 광분하고 날뛸 수야 있다. 그러나 약했다. 치밀하게 반격해 오는 괴물들에게 별다른 수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욱은 이가 갈렸다.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좀 더 치밀하지 못했을까. 좀 더, 빠르게 공격할 순 없었을까. 만약 그때,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했다면 어땠을까.
 이욱은 그렇게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자신의 실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반성하고, 더 좋은 방안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이미지를 그려 냈다. 거기서 이욱은 싸우고 또 싸웠다. 새로운 방식으로,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이욱은 그렇게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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