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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권 (1화)

2017.06.15 조회 248 추천 2


 네메시스 1권 (1화)
 Prologue
 
 
 “아버지! 이런 종이 쪼가리만 남겨 놓고, 하나뿐인 자식을 남겨 두고 떠나도 됩니까?”
 한 청년이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손에 든 채 소리를 질렀다.
 “젠장, 젠장! 아버지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아들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청년의 목소리는 서서히 갈라져 갔다. 편지를 읽은 그의 마음은 이미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쏴아아.
 잠잠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그 비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울고 있던 청년의 눈물과 섞여서 무엇이 눈물인지, 무엇이 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신에게······ 이것을 보여 드리려고 열심히 노력했었는데!”
 청년의 손에는 하나의 메달이 쥐어져 있었다. 그 메달의 이름은 필즈 메달. 40세 이전의 수학자들 중 최고의 수학자에게만 수여된다는, 수학계의 노벨상이었다.
 그런 필즈 메달이 어찌하여 청년의 손에 쥐어져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청년은 2022년 필즈 메달 수상자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강천우. 대한민국이 낳은 희대의 천재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다. 21살이라는 나이에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에 하나를 해결한 그는, 그야말로 인류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천재임이 분명했다.
 통상적으로 세계 7대 수학 난제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천우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학적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단 한 존재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했다. 그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해 준 이유.
 그 존재는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세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과학자, 강수혁이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혼자서 가상현실을 창조해 낸 것!
 그 가상현실은 바로 전 세계에 몰아닥친 돌풍, 언리미티드 월드. 덕분에 강수혁은 단번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가 되었고, 엄청난 명예와 재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천우의 정체는 강수혁의 사생아다.
 강수혁은 천우의 어머니에게 꽤 많은 돈을 주며 외국으로 도피시켰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죽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도피 과정에서 천우가 태어났다.
 하지만 미국 생활 도중에 병을 앓고 있던 천우의 어머니가 죽었고, 그때 천우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처음으로 만난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오열하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로 1주일간, 그들 부자는 함께 지내며 서로에 익숙해져 갔다.
 ‘······멋지게 컸구나.’
 그것이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했던 첫 번째 말.
 딱 1주일 뒤 아버지는 돌아갔고, 결국 천우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이 아마 그가 8살 때였을 것이다.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얼마 안 가 유명한 수학자의 눈에 들어 엄청난 성장을 보이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나갔고, 결국 21살에 세계 7대 난제를 풀어 버리는 최고의 천재로 성장했다.
 그것이 그의 짧은 인생 이야기.
 그는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수학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이다.
 “아버지, 아들이 잘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하늘나라로 가신 겁니까? 예?”
 그에게 인정을 받고, 아들로서의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고자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요, 아버지. 당신의 유언이 이것이라면 그 유언을 받들겠습니다. 이것이 먼저 가신 아버지에게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아들로서의 도리겠지요.”
 천우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결코 밉지 않았다. 자신을 버린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분명 죽은 목숨이었으리라.
 천우는 빗물 속에서 서서히 젖어 가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내 아들, 천우에게.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 다오. 어렸을 때 너를 버린 이 아비는 천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네가 혼자서 훌륭하게 커 준 것에 하늘에 감사드린다.
 지금 나는 유언장을 쓰고 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신세라서 말이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구나.
 그때의 1주일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에라도 당장 너와 함께 지내고 싶지만, 이 빌어먹을 명예라는 것이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구나.
 염치 불구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만든 언리미티드 월드를 지켜 달라는 것이다.
 이미 언리미티드 월드에는 네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그 시스템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설명하기가 힘들구나.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처럼 훌륭한 수학자로서의 삶을 이어 나가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비로서 부탁한다.
 나에게 있어서 너만큼 중요했었던 언리미티드 월드를 부디 지켜 다오. 그 세계를 위협하는 자들의 정체를 밝혀서 그곳을 지켜 다오.
 네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못난 아비의 부탁이라서 거부할지도 모르겠지. 하나 나는 네가 그곳을 지켜 주었으면 하고 바라 본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너에게 알려 줘야겠구나.
 널 사랑했다. 진심으로.
 
 “······.”
 이것이 그의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 세상에 남은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 흔적을 손에 움켜쥔 천우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부탁하신 마지막 소원, 반드시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천우는 아버지가 만든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하고자 마음먹었다. 존경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부탁을 반드시 들어 드리고 싶었다.
 천우는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당신이 애정을 쏟아부었던 그것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편하게 쉬시지요.”
 어쩌면 그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약간의 위안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남긴 거대한 흔적.
 지금, 그 아버지의 아들이 그 흔적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였다.
 
 
 
 1. 힘찬 날갯짓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지만, 접속기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매우 비쌌다.
 물론 게임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면 구매하지도 않겠지만,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색다른 매력은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끌어들였다.
 언리미티드 월드가 세계를 중독시킨 이유는 바로 싱크로율!
 가상현실 게임이 등장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는 예측을 뛰어넘고 2021년에 오픈된 언리미티드 월드는 불세출의 귀재인 강수혁의 등장 덕분에 가상현실은 보다 빠르게 인간 사회에 출현했다.
 “이제······ 시작해 볼까?”
 현재 천우는 외국인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는 상태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수학자 최고의 명예인 필즈 메달을 수상한 지금, 그는 수학에 손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설사 있다고 해도 아버지가 그에게 당부한 유언을 수행한 뒤에나 수학자로서의 삶으로 돌아가리라.
 아버지가 보낸 유언장에는 언리미티드 월드에 대한 각종 정보가 들어 있는 웹하드의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강수혁은 웹하드에 자동정보저장 시스템을 연동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정보가 저장될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천우가 앞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접속기가 도착하는 동안에 천우는 웹하드에서 간단한 정보를 열람했다. 어디서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성장하는 것이 좋은지.
 아버지가 남겨 주신 웹하드에는 요긴한 정보가 많았다.
 아직 공개가 안 된 던전, 왕국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들 같은 정보들.
 쉴 새 없이 정보를 열람한 끝에 얻은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아버지가 남겨 준 모든 것에는 일정한 자격 조건이 필요했다.
 즉, 힌트는 그가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비밀 던전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면 그 비밀 던전을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를 직접 받아야 한다.
 단편적인 정보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이 아버지가 남겨 주신 웹하드의 유일한 단점이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허탈하기도 했던 천우. 게임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아버지가 이렇게 단편적인 정보만 기록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고 아쉬웠지만, 곧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게임의 밸런스를 생각하신 것이다.
 “후우.”
 한 번 심호흡을 해 본 그는 곧바로 접속기에 접속한다. 접속기의 모양은 캡슐. 캡슐 뚜껑을 열고 들어가서, 뇌파를 접속시켜 주는 해드셋을 쓰면 접속이 이루어진다.
 그는 곧바로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했고, 곧 접속이 이루어졌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무한의 세상,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원 확인 결과, 아직 등록되어 있는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캡슐에 장착되어 있는 1년 정액권으로 신규 계정을 생성하시겠습니까?
 언리미티드 월드는 접속기 값을 제외하고도 계정비를 내야 한다.
 1계정 1캐릭터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신규 계정을 생성합니다. 신원은 1년 정액권을 통해 파악이 되었으므로 곧바로 캐릭터 생성 과정에 들어갑니다.
 잠시 눈앞의 모든 빛이 사라졌다가,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변하는 공간을 보며 천우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현존하는 과학을 무시하는 기술력이야. 이것이 아버지 필생의 역작이란 말인가?’
 내심 그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졌다.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캐릭터를 생성합니다. 종족은 인간 이외의 총 4종류의 종족이 존재하며,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족 이름을 말씀하시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나열됩니다.
 “인간을 선택하겠습니다.”
 ―인간은 평균적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종족인 만큼 언리미티드 월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 이종족의 특수 직업은 얻을 수 없으니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무난하게 인간을 선택한 천우. 이종족의 특수 직업이란 간단하다. 언리미티드 월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종족은 4종류. 엘프, 다크엘프, 드워프, 오크. 판타지 세계관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종족들을 기본 선택할 수 있다.
 언리미티드 월드가 한국에 널리 퍼진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을 따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천우는 그들 중에서 가장 평범한 인간을 택했다. 다른 종족에 비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정보로 할 수 있는 일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의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름이라······ 스칼.”
 그는 어렴풋이 자신이 다른 게임에서 사용했던 아이디를 떠올렸다. 유명한 수학자인 파스칼의 이름 중 뒤의 두 음절을 그대로 가져다 쓴 스칼. 꽤 부르기 편한 이름이라서 자주 애용했던 이름이다.
 ―캐릭터의 이름은 스칼입니다. 한 번 정하신 이름은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도 스칼로 이름을 정하시겠습니까?
 “예.”
 ―성공적으로 캐릭터가 생성되었습니다. 유저님의 캐릭터 명은 스칼이며, 인간입니다. 초기 캐릭터 생성지는 랜덤으로 정해집니다.
 뚜루룩.
 갑자기 그의 앞에 주사위가 돌려졌다. 그 주사위에는 초보자들의 마을이 적혀져 있었고, 곧 주사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주사위에 적힌 이름은 트라톤 왕국의 페일 마을.
 ‘초보자들이 가장 활동하기 어렵다는 마을이라고 하던가?’
 초보자 마을 중에서 가장 조건이 열악하다는 페일 마을이 걸리자 속으로 입술을 깨무는 천우. 이제부터는 스칼로 불러야 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어쨌든 스칼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운이 안 좋아.”
 ―초기 접속 시 초보자를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캐릭터 생성 2주일 동안은 초보자 지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레벨 유저가 도와주려고 해 봤자 초보자 지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고레벨 유저들도 초보자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초보자 마을에서 벗어나는 레벨 20까지는 유저 사이의 교환도 불가능하다. 조직적으로 초보자 마을에 돈을 유통해서 초반부터 현질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뭐, 레벨이 많이 차이 나면 파티 경험치를 배분하지 못하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기도 해서 언리미티드 월드에서는 편법이 먹히지 않는다.
 ―튜토리얼을 거치시고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곧바로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곧바로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스칼이 짧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트라톤 왕국의 페일 마을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아앗.
 다시 한 번 빛이 그를 감싼다.
 ‘시작이다.’
 드디어 시작이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부탁을 시작하는 것이.
 스칼의 입에는 꽤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가 자리 잡았다.
 ‘아버지가 걱정했던 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은 들어 드리겠어.’
 결연한 의지가 그의 얼굴에 감돌았다.
 
 ***
 
 스칼의 시야를 괴롭혔던 빛이 사라지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한 마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력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트라톤 왕국의 페일 마을입니다.
 메시지가 그의 귓가에 울리면서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려 준다.
 “드디어 게임이 시작된 건가? 과정이 꽤 짧군.”
 캐릭터 생성 과정에는 신체의 일부를 성형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는 귀찮은 것들을 모두 스킵해 버려서 성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캐릭터를 생성시켰다.
 어차피 그에게는 성형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현실 세계의 천우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평균 이상. 윤기가 넘치는 흑발과 빛나는 눈동자, 뚜렷한 이목구비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돈을 모으라고 했지?”
 인터넷에 널려 있는 정보들은 레벨 5까지 마을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돈을 모으라고 말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무기를 지급해 주지 않는 언리미티드 월드 때문에 초반에 열심히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기본적인 장비를 구할 수 있었다.
 스칼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본다.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완벽한 감각들. 최고의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언리미티드 월드답게 움직임이 아주 부드러웠다. 마치 현실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움직임에 그는 작게 감탄했다. 이런 게임이 구현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였기에.
 “자! 퀘스트를 수행하러 가 볼까?”
 약 20여 분 동안 여러 가지 시스템을 체크해 본 결과, 그는 대부분의 인터페이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캐릭터 이름:스칼 ―성향:중(中)
 ―레벨:0 ―직업:무직 ―종족:인간
 ―능력치
 힘:10, 민첩:10, 지능:10, 지혜:10, 체질:10, 매력:10
 ―특수 능력치:정보 없음
 ―체력/마력:100/100
 ―장착하고 있는 장비:정보 없음
 
 이것이 현재 스칼의 기본 능력치. 아직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은 그의 능력치는, 보잘것없는 초보자의 능력치 그대로였다.
 스칼은 비록 수학에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게임에 문외한은 아니다. 그 덕분에 그는 빠른 속도로 언리미티드 월드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기초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했다. 아버지가 남겨 둔 지식을 직접 몸으로 익히기만 하면 되니, 꽤 간단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초보자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은 간단하다.
 퀘스트를 받아서 NPC들의 심부름을 한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빠르게 돈을 벌던가. 몇몇 퀘스트들은 경험치와 돈을 한꺼번에 주기도 하지만, 초보자들의 퀘스트들은 대부분 경험치만 준다. 즉, 레벨을 올리려면 퀘스트, 돈을 벌려면 아르바이트인 것.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미량의 경험치를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아르바이트로 5레벨까지 버틴다.
 그것이 정형화되어 있는 언리미티드 월드의 공략법이었지만, 스칼은 좀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돈과 경험치 모두를 주는 퀘스트를 받는 거야.”
 아버지가 남겨 준 정보에는 초보자 마을에서 할 수 있는 퀘스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단편적인 정보들뿐이었지만, 그것들의 제목에서 누가 퀘스트를 주는지 대강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정보에는 아직까지 유저들이 발견하지 못한 특별 퀘스트들이 몇 개 숨어 있어서, 그의 성장을 돕기에는 충분하리라.
 스칼이 선택한 퀘스트는 바로 ‘촌장의 궁금증’이라는 퀘스트.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보상으로 상당한 양의 경험치와 함께 연계 퀘스트로 이어진다고 한다.
 연계 퀘스트의 보상이 거대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스칼은 곧바로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 내에서는 지도 시스템이 지원되기 때문에 촌장의 집에는 쉽게 갈 수 있었다.
 뚜벅.
 “실감 나는 감각이라서 정말 좋아.”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듣던 스칼이 살짝 웃는다. 이렇게 생생한 감각이라니? 현실과 별다를 바 없는 이 감각은 그를 만족시킨다. 항상 수학 문제만을 풀어 왔던 그에게 이런 달콤한 휴식은 상당한 만족감을 준다.
 비록 이곳에 접속한 것은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였지만, 첫 접속한 느낌은 아주 달콤했다.
 촌장의 집을 가면서 마을 곳곳을 둘러보자 유저들 간의 실랑이도 들려왔다.
 “이 자식아! 이 퀘스트는 내가 먼저 받은 거야!”
 “퀘스트에 순서가 어디 있어? 해결한 사람이 먼저인 거지.”
 페일 마을이 가장 열약한 환경으로 뽑히는 이유. 그것은 마을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퀘스트의 양이 한정이 되어 있고, 자칫하다가는 다른 유저에게 퀘스트를 뺏길 수도 있다는 것!
 매일같이 한정 퀘스트가 생성되면, 그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 많은 유저들이 빠른 속도로 그것을 수행한다.
 한정 퀘스트인 만큼 보상도 한정이 되어 있어서 정해진 숫자의 유저들이 퀘스트를 완료하게 되면, 그 퀘스트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퀘스트를 가지고 싸우는 유저들이 꽤 많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스칼은 촌장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누구시오?”
 안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문이 열렸고,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 위에 ‘촌장’이라는 글이 떠오른 것을 보니 촌장임이 틀림없었다.
 스칼은 곧바로 정중하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행자, 스칼이라고 합니다.”
 “끄응. 여행자? 자네도 이방인이로군. 이방인에게 할 부탁 따위는 없으니 이만 돌아가게.”
 아마 촌장은 매일같이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이방인. 즉, 유저들이 싫은 모양이었다.
 스칼이 자신을 소개하자마자 축객령을 내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렇지만 스칼은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고, 곧바로 다음 대사를 이어 갔다.
 “혹시 촌장님께서는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의 말을 듣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촌장.
 “으응? 자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자네, 어디서 날 보았었나?”
 “하하! 초면입니다. 저는 다만 촌장님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한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혹시, 그 궁금증을 제가 풀어 드릴 수 있을지요.”
 “아마 안 될 것이네. 여태껏 많은 이방인들이 내 호기심을 풀어 주려고 했지만, 하나같이 질린 표정으로 내 부탁을 거절했었지.”
 아마도 촌장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준 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 모두가 실패했다는 소리!
 과연 어떤 난이도를 가지고 있기에 유저들이 모두 실패했을까?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보상이 커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비례의 법칙이다.
 그렇기에 스칼의 눈은 더욱 빛났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일단 우리 집에 들어오시게나. 허어, 내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었나? 처음 보는 이방인이 내 속을 다 알아차리다니······ 그것참, 신기한 일이로군.”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으로 들어간 촌장은 모를 것이다. 스칼의 얼굴에 떠오른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를 집 안으로 안내한 촌장은 곧바로 스칼을 의자에 앉혔다.
 “스칼이라고 했었지?”
 “예.”
 “그래, 자네의 말대로 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바로 한 책에 대한 궁금증이지.”
 촌장은 벽과 붙어 있는 서재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왔다. 명색이 촌장이라서 그런지 그의 서재에는 꽤 많은 수의 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가 꺼내 온 책은 표지가 온통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가득했다.
 “이것은 1서클 마법서라네. 나는 이 마법서로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자네가 도와줄 수 있겠는가?”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촌장의 궁금증
 등급:D
 내용: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페일 마을의 촌장은 누군가로부터 1서클 마법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책의 내용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서, 그는 마법서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이방인을 필요로 합니다. 자! 당신의 능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힌트는 마법서 안에 존재합니다.
 단, 제한 시간 2분 안에 궁금증을 해결해야 합니다. 2분을 초과하면 촌장은 당신이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보상:미량의 경험치, ‘촌장의 궁금증2’ 퀘스트 부여.
 
 “얼마든지요.”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스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이 퀘스트를 수락하자 촌장은 일말의 기대감을 품으며 책을 스칼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촌장으로부터 책을 건네받은 스칼은 곧바로 책을 펼친다.
 “······.”
 잠시 흐르는 침묵. 그의 반응에 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도 힘들겠지? 휴우······ 마법서가 그렇게 어려운가? 이방인들이 아무 말 없이 포기할 정도라면······.”
 아니, 아니다. 지금 스칼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도 당황스러워서 그러는 것이다.
 그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 책의 내용, 그것은······.
 “수학 문제?”
 그렇다! 1서클 마법서 안에 있던 것은 수학 문제! 그것도 고등 수학에서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차방정식 문제였다.
 다만 일반적인 이차방정식과는 달리, 상당히 복합적으로 꼬여 있는 문제. 즉, 심화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제야 스칼은 어째서 유저들이 이 퀘스트를 포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게임 안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싶겠냐?’
 즐기기 위한 게임인데, 수학 문제를 풀고 싶을 유저 따위는 없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공부하고 싶은 녀석들 나오라고 하면 아마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를 2분 안에 풀라고 한다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겠지.
 솔직히 말해서 스칼 또한 문제를 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게임 안에서는 최대한 수학을 숨겨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마법서를 잡고 있던 스칼의 귀에 메시지가 울렸다.
 ―마법서의 특수 옵션을 발견하셨습니다. 마법서에 적혀 있는 문제를 푸실 경우, 그 마법서에 저장되어 있는 마법에 한정해서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단, 마법사가 아니시기 때문에 사용되는 마력의 양은 2배가 됩니다. 그리고 마법서의 풀이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시에 풀이를 본 사람도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공략 방법이었구나. 으응? 그런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호오! 수학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스칼은 꽤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법서에 나온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마법의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문제를 풀어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는가? 그야말로 밸런스 파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그의 앞에 적혀 있는 문제는 1서클 마법서이며, 총 9서클까지 존재하는 마법서들 중에서 가장 하위에 속해 있는 마법서다.
 2서클 마법서는 1서클 마법서보다 훨씬 어려운 수학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게임에서 그런 문제를 풀 별종은 그리 많지 않다.
 있다 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
 그리고 마법사가 아닌 다른 직업이 마법을 배울 경우에 받는 패널티는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서의 수학 문제를 풀어서 마법을 사용하려는 유저는 없었다. 있다고 쳐도 필즈 메달 수상자인 스칼을 따라올 사람은 없으리라.
 촌장이 묻는다.
 “풀어 주겠지?”
 “풀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혹시 펜 있으십니까?”
 “여기 깃펜이 있네.”
 
 <깃펜>
 내용:아무런 특징이 없는 평범한 깃펜이다.
 
 촌장으로부터 깃펜을 건네받자 간단한 아이템 설명이 나온다. 그냥 평범한 깃펜. 깃펜을 든 스칼은 아주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어 갔다.
 그에게 있어서 이런 이차방정식 문제는 누워서 떡 먹기.
 암산으로 풀어도 금방 답이 나왔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풀이 과정을 써야 하는 듯싶었다.
 다른 사람이 그의 암산을 이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꼬여 있는 이차방정식을 2분 안에 풀라니? 유저들이 기겁할 만하겠어. 초보자 마을의 유저들은 모두 다 돈을 벌려고 이를 갈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풀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겠지.’
 그들은 그들이고, 스칼은 스칼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풀리는 하급 문제에 벌벌 떨 필요가 없었다. 다만 문제 푸는 과정을 일일이 표시해야 하는 것이 귀찮을 뿐이다.
 스스슥.
 그의 손이 빠른 속도로 마법서의 여백에다가 문제의 풀이 과정을 써넣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촌장은 감탄한다.
 “자네 마법산가?”
 “아닙니다. 그저 여행자일 뿐입니다. 아직 제게는 직업이 없지요. 오늘부터 여행을 시작했거든요.”
 마법사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레벨 10을 만든 다음, 마탑에 가서 마법사로 전직하면 끝! 처음 전직하면 기본적으로 1서클 마법사가 되고, 꾸준히 레벨을 올리면 2서클 마법사가 될 수 있다.
 아직 전직을 하지 못한 스칼이 마법사라고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허어. 이 마법서는 일반 1서클 마법서랑 다른 거라서, 1서클 마법사들조차 풀기 힘들어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법사도 아닌 이방인이 푼다고? 이방인들은 마법서 푸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들었네만, 잘못되었던 것이군.”
 촌장의 말을 들으면서 스칼은 마법서에 나온 문제의 풀이 과정을 모조리 써넣었다.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자, 끝났습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최대한 친절한 미소로 촌장에게 말했고, 촌장은 밝은 얼굴로 책을 받아들더니 깊게 감탄했다. 그러자 요란하게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퀘스트 ‘촌장의 궁금증’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굉장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204명의 유저가 실패했던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업적 보너스로 경험치 100이 지급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벌써 레벨 1업?’
 접속한 지 1시간도 안 돼서 1업이다. 그렇게 해서 그의 레벨은 0에서 1이 되었다. 퀘스트를 잘 만난 덕분이랄까? 어차피 그의 수학 실력이 아니었다면 퀘스트 완료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
 “이렇게나 빨리 답을 도출해 내다니······ 그래, 이것이 바로 1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해결된 수식이로군.”
 그와 함께 스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1서클 마법 ‘프리즈’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프리즈는 1서클 마법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으로서, 상대방을 순식간에 얼려 버리는 마법입니다. 마력 소모는 75이지만 유저님은 정식 마법사가 아니시기에 150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자세한 정보는 마법 정보창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스텟, ‘연산력’을 획득하셨습니다!
 
 연산력: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증가하는 스텟. 문제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능력치 상승의 폭이 증가한다. 연산력은 마법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스텟인데, 연산력이 높을수록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대폭 증가한다.
 
 ―심화 문제를 해결하셨으므로 연산력이 1 증가합니다.
 아쉽게도 프리즈 마법은 마력이 부족하기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연산력!
 이런 스텟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게다가 연산력이 높을수록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상승한다니?
 마법사들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마법을 날리는 속도다.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다른 직업들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연산력 스텟이 높아질수록 캐스팅 속도가 상승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법사의 문제점인 캐스팅 속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스텟이라면 유저들도 알고 있을 만한 스텟인데······ 설마 수학 문제를 푼 유저가 한 명도 없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왜 이 스텟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공유되지 않은 걸까?’
 그는 모른다. 연산력 스텟의 생성 조건이 무엇인지.
 연산력 스텟의 생성 조건은 아주 까다롭다. 마법서에 적혀 있는 문제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풀어서 시스템에 저장되어 있는 풀이 조건에 합당해야 하며, 그 풀이를 1분 안에 도출해 내야만 연산력 스텟이 생성된다.
 그야말로 극악의 생성 조건!
 연산력은 천재가 아니고서는 획득할 수 없는 스텟임이 분명하다. 마법서에 나오는 문제는 각각 달라서 해답을 미리 알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순수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문제를 1분 안에 풀어야 획득 가능한 스텟이다.
 물론 세상에 천재가 그뿐일 리 없다.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유저가 스칼 하나뿐일 리 없으니, 이 스텟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워야 한다.
 ‘어쨌든 좋아. 이 스텟이라면 마법사가 되는 것이 좋겠지?’
 마법의 캐스팅 속도를 증가시켜 주는 스텟을 가졌다면, 그가 선택해야 할 직업은 마법사였다. 속으로 씨익 웃은 스칼은 촌장의 말을 기다렸다.
 “마법을 시전하는 데에 필요한 수식이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워. 내가 늙어서 그런 것인가? 어찌 되었든, 자네가 문제를 풀어 줘서 참 다행이야. 지금까지 한 200명 정도에게 부탁했던 것 같은데······.”
 ‘200명에게 부탁했으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하지.’
 “미안한데, 부탁을 하나 더 들어줘야겠어. 보상은 넉넉히 주도록 하지!”
 이제 연계 퀘스트를 줄 모양이다. 퀘스트 하나를 완료함으로써 레벨을 1을 올렸는데, 그다음의 연계 퀘스트의 보상은 어느 정도일까? 꽤 대단할 것 같았다.
 촌장은 밝은 얼굴로 스칼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해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마법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니 자네가 이 마을에 있는 마탑 지부로 가서 프라임이라는 녀석한테 자세한 해설을 써 달라고 하게. 아마 그 녀석이라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이야.”
 “아니, 그러면 애초에 그 프라임이라는 분에게 가서 마법서를 풀어 달라고 하셨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스칼의 말대로 이방인에게 문제를 풀게 하는 것보다는 프라임이라는 마법사한테 직접 가서 문제를 풀어 달라고 했으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였을 것이다.
 그에 대한 촌장의 해명은 어이가 없었다.
 “크흠! 프라임과 내기를 했어. 문제를 반드시 풀어 가겠다고! 그 늙은이가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 줄 아는가? 마법을 평생 사용하지 못할 돌머리라고 놀린다네! 나도 공부를 했으면 분명 훌륭한 마법사가 됐을 거야! 끙! 난 그 녀석의 얼굴을 보기 싫으니, 자네가 대신 다녀와 주게. 녀석이 마법을 종이에다 해설해 줄 것이야.”
 고작 노인들의 자존심 싸움이었던 것 같다. 촌장의 외침과 함께 그의 앞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연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촌장의 궁금증2
 등급:D
 내용:당신은 마법서에 적혀 있던 문제를 훌륭하게 풀었습니다. 덕분에 촌장은 마법사와의 내기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내기의 조건이었던 마법 해설을 프라임이라는 마법사로부터 받아 오십시오.
 보상:소량의 경험치, ‘촌장의 궁금증3’ 퀘스트 부여
 
 이번 퀘스트를 완료하면 또 다른 연계 퀘스트가 있다는 말에 스칼의 얼굴에 기쁨이 감돌았다. 한 번에 퀘스트 3개가 연계되다니! 이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이던가?
 연계가 거듭되어 갈수록 보상은 증가할 것이니, 그야말로 대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스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퀘스트 수락을 표시했다.
 “알겠습니다. 마법 해설을 받아 가지고 오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마법 해설을 가지고 오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오히려 퀘스트를 날로 먹는 것만 같아 약간은 마음이 찔린다.
 고작 배달 퀘스트인 것 같은데 연계 퀘스트가 계속 이어지니······.
 그러나 아무리 날로 먹는 것 같다고 해도 이 퀘스트는 그가 받아 낸 것이다. 남들이 다 포기해 버린 퀘스트를 완료함으로써 얻어 낸 퀘스트이니, 합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는 스칼이었다.
 촌장으로부터 마법서를 건네받은 스칼은 곧바로 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를 향해 걸어갔다.
 
 ***
 
 마탑 지부. 그곳은 어디인가? 대륙의 3대 세력 중 하나인 마탑이 대륙 곳곳에 설치해 놓은 지부다.
 마탑이란 일종의 마법사 단체인데,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들은 마탑으로부터 심사를 받아야만 마법사가 될 수 있다. 물론 유저들이라면 10레벨만 돌파하더라도 마법사로 전직할 수는 있지만······.
 스칼은 마탑 지부 앞에 서서 혼잣말을 한다.
 “오! 페일 마을의 랜드 마크인가? 무려 4층이나 되네?”
 다른 시설과는 달리 무려 4층에 달하는 마탑 지부는 페일 마을의 랜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한 스칼은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실내가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나타난 한 안내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마탑 지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 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성의를 다해서 고객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상업적인 느낌이 팍팍 묻어나는 멘트에 잠시 당황한 스칼이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그가 이곳에 온 이유를 물어봤다.
 “혹시 이곳에 프라임이라는 마법사님이 계십니까?”
 “프라임 지부장님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지부장 식이나 되는 사람이 촌장이랑 자존심 대결이나 하고 있어? 쯔쯔.’
 지부장 식이나 되는 마법사가 촌장이랑 내기를 한 것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스칼. 그는 안내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촌장님의 부탁으로 왔다고 말씀드리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원은 곧장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낸 다음, 그 수정구에 대고 말한다. 아마도 프라임에게 연락을 취하는 듯싶었다.
 그것도 잠시, 엄청난 속도로 연락을 끝낸 안내원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부장님께서 고객님을 모시라고 하십니다. 프라임 지부장님께서는 2층 사무실에 계시니 그곳으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안내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스칼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내심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논스톱으로 지부장의 방으로 갈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그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
 촌구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의 마법 지부라서 그런 것일까? 고급화된 시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 뿐.
 2층으로 올라가서, ‘지부장 사무실’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손님이면 들어오시고, 구경하러 왔으면 물러가시오.”
 안에서 괴팍한 대사가 들려온다. 손님이면 들어오고, 구경꾼이면 나가라는 짤막한 대사. 그 대사에 스칼은 풋 하고 웃어 버렸다.
 저렇게 무뚝뚝한 말투로 그런 대사를 읊으니 상당히 웃겼다.
 “촌장님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손님이로군. 그럼 빨리 들어오시오.”
 역시나 무뚝뚝한 말투. 헌데 목소리가 꽤 늙은 듯했다. 하긴, 촌장과 비슷한 나이라고 했으니. 촌장이 노인이었기에 그와 내기를 하는 프라임이라는 마법사 또한 노인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부장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 연로한 사람일 것이라고 스칼이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보았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스칼의 예상대로 한 노인이 마법사들의 전유물인 로브를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가 말한다.
 “당신이 찾는 프라임이라는 마법사가 바로 날세. 아마 당신은 그 멍청한 촌장의 부탁을 받고 왔을 테지? 클클. 그래, 그 멍청한 촌장이 뭐라고 하던가? 분명히 못 풀겠다고 하지?”
 초면부터 반말을 쓰는 프라임의 태도가 꽤 거슬리는 스칼이었지만, 곧 그의 신분을 생각하고는 납득한다.
 시골 마을의 마법 지부장이라고 할지라도 귀족에 준하는 신분. 따라서 아직 평민인 자신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충분했다.
 스칼은 프라임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촌장님께서는 프라임 님께 마법을 해설해 주실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미 마법서에 적혀 있는 문제를 풂으로써 수식을 얻으셨거든요.”
 “뭐,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보게.”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겁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마법의 마 자도 모르는 그 촌장이 문제를 풀었을 리가 없어!”
 처음 내기를 걸었을 때, 그는 촌장이 문제를 못 풀 것이라고 확신하며 1서클 마법서를 줬었다! 전문교육을 받지 못한 촌장이 문제를 풀 가능성은 제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라임은 더더욱 스칼의 말을 믿지 못했다.
 “저기, 프라임 님. 프라임 님께서는 촌장님께 문제를 풀어 오라고 말씀하셨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그렇다면 혹시 그 녀석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풀었다는 건가? 그 문제를 풀 이방인은 거의 없을 텐데?”
 프라임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초보 마을에 불과한 페일 마을에 1서클 마법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사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유저 마법사들은 마법서의 문제를 풀지는 않는다. 마법서를 습득한 다음, 마법서를 사용하기만 하면 그 마법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문제를 풀지 않아도 마법을 습득할 수 있는 유저들이 문제를 풀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믿지 못하는 프라임에게 스칼은 묵묵히 마법서를 건네줬고, 프라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법서를 살펴본다. 그러고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럴 수가······ 이렇게 완벽한 풀이라니? 이 정도의 풀이를 도출해 낼 정도라면 상당히 강한 마법사일 텐데. 혹시 자네는 이 풀이를 누가 썼는지 알고 있는가?”
 “으음. 그 풀이는 제가 했습니다만.”
 “······뭐라고?”
 스칼이 환하게 웃으며 프라임에게 말했다.
 “그 문제 풀이, 제가 한 것이란 말입니다.”
 “······.”
 프라임은 스칼의 말을 듣자마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딱 보니 힘도 미약한 이방인임이 분명한데, 그가 이 문제를 풀었을 리가 없었다.
 “거짓말하지 말게.”
 “거짓말이 아닙니다. 뭐, 믿기 싫으시다면 안 믿으셔도 되지요. 마법 해설만 주시면 됩니다.”
 스칼의 말에서는 여유로움이 넘쳐 났다.
 
 
 
 2. 연산의 대가
 
 
 “자네가 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어찌 믿어!”
 “아니, 안 믿으셔도 되니까 해설이나 해 주십시오.”
 “안 되네! 내가 촌장, 이 녀석이 어떤 사악한 술수를 부렸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패배를 시인할 수는 없어! 자네가 한 것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푼 사람이 누구인지를 데리고 와 보게!
 스칼은 꽤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촌장과의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믿지 못한 프라임이 문제를 푼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하나의 퀘스트창이 떠오른다.
 ―부가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증명
 등급:없음
 내용:마탑 지부장 프라임은 페일 마을의 촌장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그가 인정할 수 있게 증명해야 합니다. 만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는 마법 해설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귀찮게 하는 프라임의 행동에 짜증이 솟구치고 있던 스칼이 천천히 분노를 삼키며 프라임에게 말했다.
 “그렇게 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시험을 해 보시지요.”
 상대방에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빠르고 효과가 좋은 것이 바로 시험이다.
 그렇기에 스칼은 머뭇거리지 않고 프라임에게 시험을 요구했고, 프라임은 그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만약 자네가 풀지 못한다면 촌장과의 내기는 내가 승리한 것으로 하겠네.”
 “그러시든지요.”
 “자신감이 넘치는군. 어디, 자네의 말이 허풍인지 아닌지 알아볼까?”
 프라임은 얼굴에 사악함을 잔뜩 띠운 채로 서재로 다가가서 책 한 권을 뽑아냈는데, 그 책의 표지에는 ‘연산의 기술’이라는 제목이 써져 있었다.
 아무래도 연산력을 기르기 위한 책인 것 같은데, 스칼에게는 오히려 저런 종류의 책이 더 쉬웠다. 머리를 복잡하게 쓰지 않고 단순히 연산 능력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한 종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프라임은 스칼이 문제를 못 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촌장과의 내기에서 지다니? 그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라임은 해설을 받으러 온 젊은이가 마법서를 풀었다는 것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더욱 큰 충격으로 빠트릴 것이다.
 프라임으로부터 책을 건네받은 스칼은 곧장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첫 장부터 시작되는 방정식의 향연. 문제를 풀 수 있는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모두 다 암산으로 풀라는 것 같았다.
 연산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암산의 기술이 더욱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하고 스칼은 생각해 보았다.
 ‘여기 와서도 수학 문제를 풀다니? 내가 수학 복은 타고났어.’
 아마도 수학은 그에게 있어서 인연이 깊은 학문인 것 같다.
 스스슥.
 빠르게 책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스칼은 엄청난 속도로 문제를 풀어 갔다. 이까짓 문제로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하루 한정 접속 시간은 총 16시간. 현실과의 시간 비율은 1:3이라서, 현실의 하루는 언리미티드 월드의 이틀이다. 그런 만큼 이런 허접한 문제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이럴 수가······.”
 기계적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스칼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린 프라임. 그렇게 그는 한동안 스칼의 경이로운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연산
 종류:성장형 패시브 스킬(초급 3/100)
 내용:연산책에 나와 있는 문제들을 풀면 풀수록 좋아지는 머리는 당신의 마법을 강하게 만든다. 연산 스킬을 올리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니, 이 점 유의하자.
 효과:스킬 레벨에 따라 마법 공격력이 상승한다.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독서
 종류:성장형 패시브 스킬(초급 3/100)
 내용:마법사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스킬이다. 마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줌으로써 마법 숙련도를 상승시킨다. 마법을 획득 시, 독서를 습득하지 않은 마법사들보다 더욱 높은 숙련도를 가지게 된다. 마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숙련도가 올라간다.
 효과:마법 숙련도가 증가한다.
 
 ―연산력이 1 상승했습니다.
 “다 풀었습니다.”
 연산의 기술에 나온 모든 문제를 끝내 버린 스칼이 활짝 웃으며 프라임에게 말했고, 프라임은 혼이 빠진 것만 같은 얼굴로 말까지 더듬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정도면 그 마법책에 써져 있는 문제를 제가 풀었다는 것을 믿으시겠지요? 그렇다면 어서 빨리 마법 해설을······.”
 덥석!
 프라임이 갑자기 스칼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접근에 놀란 스칼은 손을 내빼려고 했지만, 프라임의 손은 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자네, 정말로 이방인이 맞는가?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미약한데, 이런 연산 능력이라니? 도대체 자네 정체가 무엇인가! 이 연산책을 3분 만에 다 풀어 버리는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평범한 이방인일 뿐입니다.”
 “평범한 이방인이 연산책을 3분 만에 다 풀어?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빨리 말하게! 자네의 정체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스칼을 궁지에 몰아넣는 프라임. 아마도 그가 많이 놀란 듯싶었다. 고작 레벨 1밖에 안 되는 초보자가 연산책을 3분 만에 풀어 버렸으니, 안 놀라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그래! 자네의 정체는 필요 없네. 자네, 직업이 없다고 했지? 그렇다면 마법사가 되게!”
 “예에? 전 아직 레벨 10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언리미티드 월드에서는 레벨 10에 전직하는 것이 당연했다. 레벨 10이 되기도 전에 전직을 시켜 달라고 하더라도 교관들은 전직을 시켜 주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전직을 해 주는 사람이 레벨 1인 그에게 전직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스칼의 말에 프라임은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으며 부정을 표시했다.
 “레벨 10을 돌파한 사람만 전직을 시켜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왜냐하면 레벨 10을 돌파했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검증되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자네는 다르네. 지금 내 눈앞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 그러면 됐어!”
 ―마법사 전직 관련 NPC, 프라임이 당신에게 ‘마법사’로의 전직을 권유했습니다. 권유를 받아들일 시 유저님은 곧바로 마법사가 되며, 마법사만의 특수 능력치를 부여 받습니다. 단, 전직을 한 번 하면 다른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되니 유의 바랍니다.
 그야말로 복이 굴러 들어왔다. 남들은 레벨 10에나 하는 전직을 레벨 1일 때 하게 된다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스칼은 아쉬움을 느꼈다. 저쪽에서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인데, 그 이유를 말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마법사가 되라고 권유를 하다니? 이쯤에서 한 번 튕겨 주면 더 좋은 조건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한 스칼은 한 번 튕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부탁부터 완료해 주시지요? 마법사가 되는 것은 그다음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그래. 자네가 원한다면야.”
 ―퀘스트 ‘촌장의 궁금증2’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굉장한 속도로 퀘스트를 완료시키는 스칼. 그는 문제 몇 개를 풀었을 뿐인데, 무려 2개에 달하는 퀘스트를 깼다.
 남들은 힘들게 퀘스트를 깨는데, 자신은 가만히 앉아 문제를 풂으로써 퀘스트를 깨는 것.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이미 주도권이 넘어온 대화를 이끌어 갔다.
 “일단은 촌장님께 드릴 마법서에 대한 해설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마법사 전직에 관한 내용은 그다음에 언급하도록 하지요.”
 “자네의 능력은 마법사에 최적화되어 있네! 그러니 빨리 마법사가 되어야······.”
 “어째서 그리 제게 집착하시는지요? 만난 지 1시간도 안 지났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스칼이 마법사가 되기에 딱 좋은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달라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칼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탑 지부장 식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달라붙을 이유가 없었다.
 이유는 천천히 묻도록 하자. 촌장의 퀘스트부터 완료해야겠지.
 스칼의 말에 프라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법서 해설을 작성한다. 숙련된 마법사답게 아주 빠른 속도로 마법서에 대한 해설을 적어 나갔다.
 그는 빈 종이에다가 마법의 시전 방법과 수식 사용 방법에 대해서 정리했다. 초보자들이라도 쉽게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프라임은 순식간에 프리즈 마법에 대한 해설서를 만들어 냈다.
 “촌장 녀석에게 축하한다고 전해 주게. 쳇, 촌장 따위에게 지다니······ 아! 이것을 촌장에게 전해 준 다음, 꼭 마탑 지부에 들리게. 꼭이야!”
 “프라임 님께서 그렇게 원하신다면 한 번 들리는 것이 예의겠지요. 알겠습니다.”
 
 <마법 해설서>
 내용:1서클 마법인 프리즈에 대한 해설이 들어 있는 책이다. 프라임이 특별히 촌장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것이다. 몰래 훔쳐봐도 티가 안 날 것 같다.
 
 상당히 이상해 보이는 아이템 정보였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스칼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지부 밖으로 나왔다.
 퀘스트가 정말 쉽다. 그냥 문제 풀어 주고 퀘스트 아이템 받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스킬을 무려 2개씩이나 습득했다. 그것도 연산과 독서!
 인터넷 공략법에 나와 있는데, 연산 스킬과 독서 스킬은 마법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스킬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연산 스킬이 가장 습득하기 힘든 스킬.
 마법 숙련도를 높여 주는 ‘독서’ 스킬은 숙련도에 의해 마법 데미지가 바뀌는 마법사에게 필수적인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스킬 레벨을 올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독서 스킬을 올리기 위해 도서관에 자주 방문한다.
 하지만 연산 스킬은 그렇지 않다.
 빠른 시간 안에 연산책을 풀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어서 실제로 연산 스킬을 습득하는 자들의 수가 매우 소수다.
 마탑 지부 바깥으로 나와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스칼은 새롭게 얻은 포인트들을 분배하기 위해서 스텟창을 소환해 냈다.
 
 ―캐릭터 이름:스칼 ―성향:중(中)
 ―레벨:2 ―직업:무직 ―종족:인간
 ―능력치
 힘:10, 민첩:10, 지능:10, 지혜:10, 체질:10, 매력:10
 ―특수 능력치
 연산:2
 ―보너스 포인트:10
 ―체력/마력:125/125
 ―장착하고 있는 장비:정보 없음
 
 이전과는 달리 특수 능력치에 연산이 생성되어 있고, 보너스 포인트 10이 지급되어 있다. 레벨 1이 올라갈 때마다 보너스 포인트가 5씩 주어지므로,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10이 맞았다.
 ‘마법사로 키워야겠어. 아버지가 말한 시스템이 바로 마법서 시스템인 것 같으니.’
 수학 문제를 풀어서 마법을 배우거나 숙련도를 높이는 시스템이 바로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만들어 둔 시스템인 것 같다.
 기왕 만들어진 시스템을 잘 이용하려면, 그 시스템의 이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마법사가 되는 것이 좋으리라.
 어차피 프라임에게 능력을 보여 줬으니, 마법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싶었다.
 마법사가 될 요량으로 지능에 보너스 포인트 10을 몰아준 스칼. 지능이 올라감에 따라 마법 공격력도 증가했다. 지혜에 적당히 배분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스칼은 지혜엔 단 1의 포인트도 주지 않았다.
 스텟창 확인 작업을 끝낸 스칼이 곧바로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프라임으로부터 받은 해설서를 가져다주기만 하면 퀘스트가 완료될 것이다.
 인벤토리에서 마법 해설서를 꺼내면서 촌장의 집 앞에 도착했다. 지부로부터 촌장의 집까지는 겨우 10분 거리!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촌장의 집과 마탑 지부는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다.
 그런데 이런 거리를 심부름을 보내는 것을 보니, 프라임 지부장이나 촌장이나 둘 다 만사를 귀찮아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 생활 방식일수록 유저들이 얻어먹을 것이 많기는 하다. 잡 심부름조차도 퀘스트로 인정받아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
 촌장의 집 앞에 서서 해설서를 한 번 펴 봤다. 어차피 종이니 몰래 본 흔적이 남지 않으리라.
 “에이, 이게 뭐야? 그냥 내가 한 풀이 방법에다가 설명을 덧붙인 것뿐이잖아? 이런 게 마법 해설서······.”
 ―6서클 마법사가 기록한 1서클 마법, 프리즈에 대한 설명서를 보셨습니다. 따라서 프리즈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60%로 상승합니다. 보다 강화된 프리즈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역시 해설서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도가 60%씩이나 상승했다. 많이 반복함으로써 이해도를 올리는 일반 유저와는 달리 해설서 한 번 봤을 뿐인데 60%나 올랐다.
 앞으로 이런 정보들은 요긴하게 사용되리라. 반복 사용보다는 이렇게 해설서를 보는 것이 더욱 빠르게 먹힌다는 정보는 모아 두면 모아 둘수록 좋았다.
 마법의 이해도가 상승했다는 소리를 듣자 왠지 모르게 스칼의 기분이 좋아진다.
 “촌장님, 돌아왔습니다.”
 “그래! 자네 돌아왔는가? 끌끌. 프라임 녀석의 얼굴이 어떻게 구겨지던가? 아주 미쳐 날뛸 것만 같은 얼굴이었지?”
 “예. 제가 문제를 풀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경악을 하시더군요. 내기에서 이기신 것을 축하드리겠습니다. 여기, 마법 해설서입니다.”
 손에 들고 있던 마법서를 촌장에게 건네주자, 다시 한 번 퀘스트가 완료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레벨이 올라갔다.
 이제 스칼의 레벨은 3! 다른 이들은 돈을 벌면서 천천히 올리고 있는 마당에 그는 무려 3업이나 했다. 상당히 빠른 레벨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촌장은 스칼로부터 건네받은 마법 해설서를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내가 자네 덕분에 그 녀석과의 내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 이 모든 것이 자네 덕분이네. 사례금으로 30실버밖에 주지 못하네만, 정말 고마워. 스칼이라고 했었지? 자네가 보여 준 연산 실력은 정말 대단해! 프라임 녀석이 해설서에다가 자네에 대한 극찬을 썼더군? 연산책을 3분 만에 다 풀어 버렸다면서?”
 “아, 예. 그분께서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 내가 자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도록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또 자신의 서재로 걸어갔다. 서재에서 뭘 꺼내려고 하는 것일까?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던 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으니, 대기로 먼지가 날아다닌다.
 “콜록!”
 촌장이 기침을 하면서 꺼낸 책은 무려 6권! 어디에 쓰는 책인지 당최 예측이 가지는 않았지만, 6권 모두 꽤 두꺼웠다.
 약한 신음 소리를 내며 그것들을 탁자 위로 옮긴 촌장이 웃으면서 스칼에게 말했다.
 “이것들은 내가 옛날에 사 놓았던 연산책들이야. 마법 공부를 하려고 구입했던 것이었지만, 마법사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어. 자네가 연산을 아주 잘한다고 하니 이 책들을 공부해서 더욱 뛰어난 연산 실력을 가졌으면 하는군. 으하하! 프라임, 고 녀석! 건방진 행동을 하더니, 꼴좋구나!”
 도대체 이 책은 언제 인쇄된 것일까? 표지에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는 오랜 시간 동안 손을 대지 않았음을 뜻했다.
 책이 가장 아까운 순간. 그것은 돈 주고 샀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때다. 공부하겠다고 산 책을 시간이 지난 후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그때가 가장 책 산 것을 후회할 때다.
 아마 이 연산책들 또한 그와 같은 종류일 것 같았다.
 촌장이 책들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아마 30년 전이네. 마법을 공부하겠다고 이 책들을 샀었을 때가. 후후! 아주 오래전 책이라서 새로운 문제들이 많이 보일 거야.”
 ‘30, 30년 전 문제들이었던 것인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니, 30년 동안 이 상태로 책이 유지되었다는 것도 말이 안 돼!’
 3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 낸 책을 보니 사뭇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엄청난 자원 소비를 한 촌장에게 어이없음을 표시했다.
 세상에나 30년 동안 책을 한 번도 건드리지 않다니? 그야말로 작심삼일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을 30년 동안 보관할 수 있던 노하우라도 있으십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스칼. 그런 스칼의 물음에 30년 동안 책을 멀쩡하게 보관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는지, 촌장은 가슴을 쭉 피며 말했다.
 “손 한 번도 안 대면 된다네.”
 “······.”
 정말로······ 순수한 의미의 정적이 실내에 감돌았다.
 촌장의 말에 스칼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읽지도 않는 책, 왜 사 뒀는지.”
 “응? 자네 뭐라고 했나?”
 “아닙니다.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퀘스트 추가 보상, ‘연산의 대가’를 받으셨습니다.
 
 <연산의 대가>
 분류:일반 책
 내용:총 6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를 다 풀 경우, 연산력 스텟이 상당히 올라간다. 그리고 일정 시간 내에 6권 모두를 풀게 되면 특정 칭호를 얻게 되니, 이 점 유의하기를.
 효과:6권 모두 풀 경우, ‘연산의 대가’ 칭호 습득.
 
 ‘칭호!’
 칭호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아이템처럼 팔고 살 수도 없는 것이라서, 퀘스트를 깨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푸는 것을 통해 칭호를 얻을 수 있다니?
 아버지의 정보에도 나와 있지 않은 것이었는데 운 좋게 알 수가 있었다.
 스칼은 미소를 띠우며 책들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고, 그러자 다시 한 번 퀘스트 알림창이 떠올랐다.
 “프라임이 자네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해서, 한 번 가 줬으면 좋겠어. 왜 자네를 부르는 것이지? 끄응. 일단 가 보게.”
 ‘마법사 전직 관련 퀘스트이려나? 후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촌장의 궁금증3
 등급:F
 내용:프라임이 부른다. 속히 가도록 하자. 촌장이 준 ‘연산의 대가’를 꼭 챙겨서 가야 한다.
 보상:새로운 퀘스트로의 연계―‘진정한 마법사1’
 
 등급은 F등급. 그저 프라임에게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 퀘스트라서 그런지 최하 등급 F다. 하지만 보상에 있는 새로운 퀘스트로의 연계라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의 예상대로 마법사 전직 퀘스트인 듯했기 때문이다.
 게임 시작 1일 만에 전직 퀘스트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운이 아주 좋아서 히든 클래스를 얻게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선 그가 유일할 것이다.
 조기 전직 퀘스트는 드물다. 레벨 10이 되기 전에 궁수나 전사로 전직한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전직 교관과 극도의 친밀감을 쌓아야 가능한 것이었고.
 “문제 몇 개 풀었을 뿐인데.”
 ······그의 말대로 문제 몇 개 풀었을 뿐이지만, 그 능력이 다른 사람과 비교가 불가능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자네가 보여 준 능력은 고작 문제 몇 개 풀었는데, 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네. 솔직히 말해서 그 누가 이런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 버리겠는가? 내가 이 방면으로는 약간 무지한데, 그렇다고 해도 자네의 능력은 엄청난 것이야. 여태껏 이방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런가요?”
 촌장의 말대로 스칼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각이 느리다. 분명 자신의 재능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너무 문제를 쉽게 풀어 버려서 남들도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것. 그런 무의식적인 습관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촌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인사를 끝낸 스칼은 다시 마탑 지부로 향했다.
 
 ***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연산의 대가]
 내용:아! 당신의 능력은 이미 하늘에 닿았다! 연산의 대가 시리즈 6권을 1일 만에 해결하다니? 그대가 진정 인간인가? 사람들은 이제부터 당신을 연산의 대가라고 부르리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대의 재능에 감탄할 것이다.
 효과:스텟 ‘연산력’ +10%
 
 스칼이 언리미티드 월드를 시작한 지 게임 시간으로 9일이 흘렀다. 그동안 스칼은 레벨 7이 되었고, 마탑 지부장 프라임과의 엄청난 친밀도를 쌓을 수 있었다.
 위에 나와 있는 칭호는 ‘진정한 마법사2’의 퀘스트 내용이었던 ‘연산의 대가’ 시리즈 6권 모두를 풀고 얻은 칭호.
 연산력 스텟을 10%만 올려 준다는 것이 가소로울지는 모르겠지만, 연산력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능력치도 높다. 초반에는 스텟 10을 올려 주는 것보다 못하더라도 스텟이 100 단위를 넘겼을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장형 칭호! 열심히 키우면 키울수록 강해지는 맛이 있는 칭호다.
 스칼은 1주일 동안 프라임의 퀘스트를 계속 완수하면서 연산력 스텟을 30까지 올릴 수 있었다. 프라임이 내준 퀘스트가 죄다 문제를 푸는 것이어서, 그 덕분에 30까지 올린 것이다.
 이제 1주일 만 흐르면 초보자 마을에서 나갈 수 있게 된다.
 그전에 전직을 해야 하리라.
 현재 스칼이 받은 퀘스트는 마법사 전직 퀘스트. 전직 조건을 간단했다. 초보자 사냥터에서 토끼 5마리를 사냥하고 돌아오라는 것.
 프라임과의 엄청난 친밀도 덕분에 무기 하나도 지급 받을 수 있었다.
 
 <초보 마법사의 지팡이>
 내용:마탑에서 초보 마법사를 위해 제작한 지팡이다.
 레벨 제한:5
 마법 공격력:3∼5
 
 상점에서 사려면 꽤 높은 가격을 줘야 할 지팡이. 적어도 90실버는 나갈 지팡이다. 90실버라면 한화 9천 원이랑 비슷한 가격인데, 초보자들에게 있어서 90실버는 힘겹게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벌 수 있는 돈이다.
 저소득 아르바이트로는 쉬지 않고 일해야만 구매할 수 있는 지팡이다.
 그런데 그것을 고작 친밀도만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란 말인가? 물론 지팡이를 준 것이 아니라 대여해 줬을 뿐이지만, 프라임과 친밀도를 계속 쌓으면 얼마 안 가 완전한 그의 소유가 될 듯싶었다.
 현재 스칼의 능력치는 아주 간단하다. 모든 포인트를 지능에 올인했다.
 연산력 스텟에 능력치를 투자할 수 있었다면 균형 있게 투자했겠지만, 연산력은 오로지 책을 풀어야만 올라가는 스텟.
 때문에 마음먹으면 언제라도 올릴 수 있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마법사들은 체력과 마력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체질, 지혜에 포인트를 투자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칼은 극 공격력 마법사가 되기로 한 것인지 오로지 지능에만 투자했다.
 레벨업을 할수록 체력, 마력이 늘어나기는 한다. 다만 증가의 폭이 매우 적을 뿐이지.
 극 공격력 마법사를 택하는 유저도 적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한 자금이 존재해서 체력과 마력을 커버해 줄 아이템을 구매한다. 그렇지만 스칼에게는 그런 아이템을 살 만한 돈이 당장에는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현질’을 한다면 그럴 만한 돈이 충분히 생기겠지만······.
 ‘이렇게 키워 보자. 정 캐릭터 키우는 것이 힘들면 그때 아이템을 구매하면 되니까.’
 7대 수학 난제를 해결한데다가 필즈 메달까지 수상한 스칼이 금전적 어려움을 걱정할 리는 없다. 난제를 풀기만 해도 일반인이 평생을 구경 못할 돈이 생긴다.
 게다가 필즈 메달까지 수상했으니까, 그가 마음만 먹으면 최고급 아이템으로 온몸을 도배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법이다.
 아버지가 만든 게임 속에서 돈지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순수한 자신의 실력으로만 캐릭터를 키우고 싶었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세계는 노력한 만큼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 노력을 돈으로 메꾸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 언리미티드 월드가 주는 재미를 느끼지 않았던가? 현실에서는 아버지 앞에 당당히 나서기 위해서 수학 공부를 했었다. 그 덕분에 수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고. 그런데 언리미티드 월드에서 수학 문제를 풀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강해진다는 재미.
 연산력이 상승할수록 마법 공격력이 상승한다. 후에 그가 마법사가 된다면 요긴하게 사용되어질 수 있단 말이다.
 21세기 초반, 전 세계 사람들이 RPG게임에 중독되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장한다는 재미 때문이었다. 게임 캐릭터에 쏟는 열정만큼, 캐릭터는 성장했다. 새로운 아이템을 끼고 더더욱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한다.
 그 쏠쏠한 재미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RPG게임에 중독된 이유다.
 그리고 언리미티드 월드는 그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인류를 매혹시켰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현질로써 강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강함이 아니다.
 합당한 노력을 해서 캐릭터를 키운 이들에게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스칼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현질은 한계가 있고, 노력은 한계가 없다는 것을. 그 때문에 그는 순수한 노력으로만 강해지고자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토끼 5마리를 사냥하러 가 볼까!”
 비록 방어구는 없을지라도 토끼를 사냥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안 맞으면 되니까. 게다가 지금 그에게는 마법이 무려 2가지나 존재한다. 촌장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프리즈, 프라임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버닝.
 이 둘 모두는 파괴력이 상당한 기본 마법이라서 사냥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리라.
 지팡이를 꽉 쥔 채로 마을 앞에 있는 초보자 사냥 필드로 나섰다.
 “토끼, 한번 빠르네!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젠장! 몽둥이로 잡으려면 평생이 걸리겠네!”
 사냥 필드 안에는 퀘스트 때문인지 토끼를 잡으려는 유저가 꽤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무식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었는데, 상당한 속도를 보여 주는 토끼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이 꽤 웃겨서 스칼은 속으로 웃는다.
 자신은 저런 모습으로 사냥을 하지 않을 것이니까.
 “후웁.”
 사냥에 나서기 전, 숨을 한 번 내쉬면서 사냥감을 탐색한다. 처음 쓸 마법은 프리즈.
 
 마법명:프리즈―1서클 마법
 효과:상대방을 순식간에 얼려 버리며 데미지와 함께 구속 상태에 빠트린다. 지속 시간은 마법 숙련도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지속 시간은 5초(몬스터의 레벨에 따라 달라진다.)
 소모 마력:65(마법사가 아닐 경우 130)
 캐스팅 소요 시간:14초
 숙련도(22/100―하급)
 
 이것이 프리즈에 대한 간략한 정보. 대부분의 1서클 마법사들은 마법의 숙련도가 10 이하다. 왜냐하면 마법을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 유저들에게 숙련도를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무조건 반복하는 방법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스칼은 문제를 풂으로써 숙련도를 상승시켰다. 그러니 다른 유저와 다를 수밖에.
 ‘연산’ 스킬의 도움으로 실질적인 데미지가 더욱 상승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마법사로 전직하지 않은 까닭에 소모 마력이 150. 원래는 75이지만 1서클 마법인 경우엔 숙련도가 10 높아질 때마다 소모 마력은 5씩 줄어든다.
 때문에 스칼은 무리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마법을 점검한 스칼은 곧장 눈앞에 보이는 토끼를 포착했고, 그것을 타겟으로 설정하면서 프리즈를 사용했다.
 아직까지 연산력 스텟과 연산 스킬의 레벨이 낮았기에 캐스팅 시간이 눈에 띄게 단축되지는 않았다.
 스텟과 스킬 레벨이 높아져야 효과가 나타날 것 같았다.
 “프리즈!”
 캐스팅 시간 14초가 지나고, 지팡이에서 프리즈가 시전되었다.
 순식간에 목표로 삼은 토끼를 감싸는 차가운 대기. 빈 공간에 얼음덩어리가 생성되어 토끼의 몸에 달라붙은 것 같다.
 토끼 주위의 수증기를 극한으로 얼린 것뿐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얼음이 토끼를 감쌌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쩌저적.
 토끼의 몸에 달라붙은 얼음 조각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나고, 마법에 당한 토끼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며 몸을 떨어 댄다.
 ―토끼에게 21의 데미지를 주셨습니다. 남은 HP:13.
 “한 방에 죽지는 않아? 내 계산은 정확했는데!”
 지능 수치와 토끼의 체력, 지팡이의 마법 공격력을 계산한 결과, 토끼를 한 방에 죽일 수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그랬기에 그가 편하게 마법을 날렸던 것이다.
 그가 놓친 것. 그것은 바로 토끼의 항마력이다. 토끼 같은 하급 몬스터라도 항마력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데미지가 줄어들었다.
 ‘침착함을 되찾자. 후우.’
 프리즈의 지속 시간은 5초. 캐스팅 시간이 14초니까 다시 한 번 마법을 시전할 사이, 토끼는 그에게 공격을 시도해 오리라.
 ‘저렇게 작은 토끼가 공격해도 별다른 이상은 없을 거야. 그냥 무시하고 캐스팅하자.’
 토끼의 몸집을 보며 그것의 공격력을 무시한 스칼이 다시 한 번 프리즈를 캐스팅했다.
 쨍!
 끼이익!
 “뭐, 뭐야!”
 그는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 실수는 토끼를 한 방에 보내지 못한 것,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토끼를 무시한 것.
 프리즈 마법에서 벗어난 토끼는 눈이 충혈됨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스칼을 향해 달려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순식간에 스칼에게 접근한 토끼는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날린다.
 “으악!”
 토끼의 몸통 박치기에 적중당하자마자 캐스팅이 취소되며 체력이 빠져나갔다. 그의 예상대로 그리 많은 체력이 빠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캐스팅이 취소되었다는 것이 가장 위험했다.
 어느새 그의 몸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토끼의 몸통 박치기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저리도 작은 몸집에서 인간을 넘어트릴 정도로 강한 힘이 나오다니? 이대로라면 캐스팅을 못할 것이 뻔했고, 결국은 자신의 패배로 끝날지도 모른다.
 끼이익!
 쓰러진 그를 향해 달려오는 토끼를 보자마자 몸을 움직인다. 이렇게 또다시 토끼에게 몸통 박치기를 허용할 수 없다.
 인간의 체면이 있지, 고작 토끼 따위에게 죽을 수는 없다!
 “에라이, 마법을 못 쓸 바에야 차라리 지팡이로 때려야지!”
 ······그의 생각은 거기까지가 한계. 첫 전투에다가 토끼 같은 하찮은 미물에게 공격을 허용한 스칼의 정신은 매우 혼란스러워져서 합당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중이다.
 아니, 지팡이가 얼마나 강하다고 토끼를 때려잡는단 말인가? 물리 공격력이라곤 제로에 가까운데다가 모든 포인트를 지능에다 투자한 그가 지팡이로 때려 봤자 토끼 가죽에 흠집도 안 나리라.
 그저 지팡이의 리치만 보고 분명 타격이 있으리라고 판단한 스칼이었다.
 부우웅.
 달려오는 토끼를 향해 휘둘러지는 지팡이! 그래도 리치가 길었기에 토끼가 그의 몸에 도달하기 전에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끼익?!
 “······뭐냐.”
 ―타격 무기가 아닌 것으로 적을 공격했습니다. 이에 적은 명백한 도발 행위로 생각하여 더욱 흥분합니다. 데미지가 4가 들어갔습니다만, 다시 한 번 이런 공격을 한다면 지팡이가 부서질 것입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그랬다. 지팡이는 타격 무기가 아니다. 오로지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무기일 뿐이지. 지팡이도 엄연히 나무로 만들어진 일종의 무기인데 어째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느냐,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운영자들은 ‘게임이니까’라는 단어로 일축시킬 것이다.
 현재 스칼의 힘 스텟은 10. 즉, 보잘것없는 상태다.
 지팡이를 강하게 휘둘러도 게임 내의 스텟은 10이니, 힘 스텟 10일 때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게다가 지팡이의 물리 공격력은 제로나 다름없다. 아무리 휘둘러 봤자 데미지는 없다.
 스칼의 ‘명백한!’ 도발 행위에 더더욱 흥분한 토끼는 안 그래도 붉은 눈을 더더욱 붉히면서 전력을 다해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고,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스칼의 눈앞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 일격으로 어느새 스칼의 체력은 절반뿐.
 고작 토끼 따위에게 절반의 체력을 빼앗기다니? 그것도 레벨 7짜리가!
 사실을 말하자면 올 지능 마법사들은 반드시 파티가 필요하다. 체력이 부실해서 캐스팅이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곧바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즉시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 있어야 하지만, 즉시 시전을 위해서는 연산력 스텟을 극도로 올리든지, 아니면 3서클 아래의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1서클 마법을 즉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4서클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면 연산력 스텟을 노가다 작업을 해서 많이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 지금은 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토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불상사만은 피하자!
 “토끼 5마리 죽이는 건 결코 쉬운 퀘스트가 아니었다!”
 볼썽사납게 소리를 지르는 스칼. 수학자로서의 품위 따위는 저 멀리로 던져 버리고 그가 선택한 길은······.
 도망이었다.
 끼익. 끼이익!
 뒤에서 계속 ‘끼익’거리며 쫓아오는 토끼를 피해 무작정 마을 안으로 달려가는 스칼! 마을 안에는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니, 일단 마을 안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파티를 맺어서 다시 돌아와야겠어. 탱커 역할을 할 수 있는 파티원이 있으면 되니까.’
 아무래도 혼자서 토끼를 잡으려고 했던 생각은 무모했던 것 같았다. 이렇게 토끼가 빠르고 위력적일 줄은 몰랐다.
 아까 유저들이 토끼를 상대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가 그를 살려 줄 리가 없다. 열심히 자책을 하면서 마을 쪽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가는 스칼.
 그는 속으로 다짐한다.
 반드시 토끼를 사냥하겠다고.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파티를 맺어서 토끼에게 받은 수모를 갚아주겠다고.
 한 청년은 이를 부드득 갈며 마을로 뛰어갔다.
 과연, 그는 알까? 고작 토끼를 못 죽여 도망가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는지. 그것은 아마 그의 사냥을 지켜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스칼의 첫 사냥은 뼈아픈 경험만을 남긴 채로 종료되었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다.
 
 
 
 3. 시작
 
 
 “좋아요! 프레이 님! 계속 버텨 주세요!”
 “알겠습니다, 스칼 님.”
 아쉽게도 토끼에 의해 굴욕을 당한 뒤, 게임 사용 제한 시간이 다해서 곧바로 복수를 하지 못한 스칼. 그렇지만 그는 다음 날 접속하자마자 파티원 한 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름은 프레이, 레벨은 6이며 스칼과는 다르게 모든 포인트를 힘으로 투자한 전사 지망생이다.
 무기가 없어서 맨손으로 토끼를 때려잡으려 했지만 솔로 플레이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고, 그 역시 데미지 딜러를 구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칼의 등장이란 그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곧바로 파티를 결성한 그들은 각자 토끼에게 쌓인 원한을 풀기 위해서 사냥 필드로 나섰다.
 현재 그들은 힘을 합쳐 토끼를 사냥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제공격으로 프리즈를 날리고, 스칼을 향해 달려오는 토끼를 가로막는 프레이.
 모든 스텟을 힘으로 투자한 덕분에 방어력이 상당했기에 토끼의 공격을 무리 없이 막을 수 있다.
 “프리즈!”
 쩌저적.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프리즈가 다시 한 번 토끼를 공격함과 함께 퀘스트로 인해 쌓여 있던 경험치가 오르면서 그를 8레벨로 만들어 줬다. 초보자 마을에서 올 지능 마법사의 프리즈 마법은 꽤 강력한 공격에 속했고, 그 위력을 본 프레이가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아니, 어떻게 그 레벨에 마법을 배우셨습니까? 프리즈 마법은 레벨이 10이 되어야만 배울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던가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랍니다.”
 “신기하네요. 10레벨 이전에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거든요.”
 프레이에게 성심성의를 다해서 대답해 준 스칼은 곧바로 스텟창을 소환해서 포인트를 분배했다.
 
 ―캐릭터 이름:스칼 ―성향:중(中)
 ―레벨:8 ―직업:무직 ―종족:인간
 ―칭호:연산의 대가
 ―능력치
 힘:10, 민첩:10, 지능:50, 지혜:10, 체질:10, 매력:10
 ―특수 능력치
 연산:33(30+3)
 ―보너스 포인트:0
 ―체력/마력:300/300
 ―장착하고 있는 장비
 초보 마법사의 지팡이(마법 공격력 3∼5)
 
 이번에도 역시나 지능에 올인을 주었다. 앞으로 사냥할 때마다 탱커를 구해서 사냥하면 되니까, 체력 걱정은 안 하는 스칼. 물론 파티 사냥을 하면 번거롭기야 하겠지만 솔로 플레이보다 빠르게 사냥할 수 있다.
 탱커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스칼이 파티 없이 사냥할 수는 없을 터였다.
 “바로 다음 녀석을 잡아 보도록 할까요?”
 “그러죠! 저도 푸줏간 퀘스트 때문에 토끼 5마리의 시체를 도축해야 해서.”
 다행스럽게도 프레이 또한 5마리의 토끼를 사냥해야 하는 것 같다.
 스텟 분배를 끝내고 곧바로 다음 사냥감을 탐색했다.
 무난한 사냥이 계속되었다.
 
 ***
 
 ―마법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전직 퀘스트 발생!
 
 마법사의 길
 내용:당신은 이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마법사, 그들은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는 진정한 학자들입니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세계에서 마법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큽니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실용 마법, 원소를 탐구하는 원소 마법 등의 마법이 존재합니다.
 마법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사람을 살릴 수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요. 과연 당신은 마법사가 될 자격이 있을까요? 지금부터 그에 대한 본격적인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보상:전직 ‘마법사’
 
 토끼 5마리를 잡고 프라임에게 돌아가자, 프라임은 밝은 얼굴로 그에게 퀘스트를 줬다. 바로 전직 퀘스트! 아무래도 토끼 5마리는 강함에 대한 증명이었던 듯하다. 본격적인 시험은 지금부터고.
 프라임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스칼은 신성한 마법사의 길에 합당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시험을 받게 된다. 당신이 아는 마법 하나를 시전하라!”
 ‘일반 유저였으면 피를 쏟아 내며 전직을 했겠군? 마법 하나를 배우려면 약 1골드나 들 테니까.’
 가장 간단한 초급 1서클 마법일지라도 1골드가 든다. 이 시험은 아마도 마법을 사용해야 통과하는 시험 같은데, 일반 유저들은 1서클 마법을 배우기가 힘들었다.
 가장 기초적인 1서클 마법은 바로 클린!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마법이자 수식이 간단하고 소모 마력이 적은 마법이다.
 하지만 이 마법은 마탑 지부에서 1골드를 내야만 구매할 수 있다.
 ‘마탑의 상술인 것이지. 마법책을 구매해야만 전직을 할 수 있게.’
 그렇다! 마법사의 전직 비용은 바로 1골드인 것이다! 초반에 마법사가 되려는 유저들이 피땀을 흘리며 일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오로지 아르바이트와 퀘스트로만 10레벨을 만들어서 스킬북과 지팡이를 구매해야 한다.
 마법사는 다른 직업들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근성을 요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 근성의 대가는 아주 달콤하다. 타 직업들보다 강력한 데미지! 환상적인 데미지 딜러가 바로 마법사.
 게다가 이펙트도 화려하다.
 폼생폼사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으며, 강력한 데미지 딜러를 원하는 이에게도 매력적인 직업. 그것이 마법사!
 그렇기에 매우 많은 유저들이 마법사에 도전한다. 초반의 하드 플레이에 굴하지 않고 마법사 직업을 가지려 하는 유저들이 꽤 많다. 그들 중에서 절반 정도만 성공하지만, 그래도 마법사는 언리미티드 월드 내에서 중요 직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유저들은 모른다. 마법을 퀘스트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퀘스트를 통해서 마법책의 문제를 풀게 되면 자동으로 마법을 습득할 수 있는 사실을 모르니, 초반부터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불행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마법책을 푸는 퀘스트가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을 막는 것은 마법책 문제의 난이도다.
 설사 마법책의 비밀을 알더라도 그것을 풀 수 있는 실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스칼에게는 그럴 만한 실력이 있었고, 운도 따라 줬다. 그랬기에 그가 수월하게 마법사로 전직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스칼은 프리즈를 시전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숙련도가 높은 마법인 프리즈.
 “프리즈!”
 방 안에 있던 의자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그 모습을 프라임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힘이 미약한 이방인이 이리도 완벽한 마법을 시전하다니? 얼마나 훌륭한 인재란 말인가! 마법사로 전직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마법사로 전직하게 되면 더더욱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스칼의 모습을 상상한 프라임이 크게 웃으며 전직을 허가했다.
 “스칼에게는 마법사가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존재한다! 따라서 나, 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장 프라임은 전직 교관의 자격으로서 이방인 스칼의 전직을 허가한다.”
 언제 꺼낸 것인지 프라임이 스칼의 머리에 지팡이를 올리면서 마력을 불어넣었고, 그것과 함께 스칼의 몸을 찬란한 빛이 감쌌다.
 스칼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찬란한 빛이 가지고 온 즐거운 메시지를 감상했다.
 ―축하드립니다! 마법사로 전직하셨습니다!
 
 마법사:대륙의 빛이 될 수도, 어둠이 될 수도 있는 직업. 그들의 위력은 자타가 공인한다. 하지만 마법사에도 종류가 있으니,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서도 있고, 원소 마법에 능한 엘리멘탈 마스터도 존재한다. 자! 이제부터 당신은 어떤 방향으로 마법사를 키워 갈지 생각하라! 그것이 마법사의 사명이니!
 
 전직 과정은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지나간다. 애초에 프라임은 스칼을 마법사로 전직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고, 스칼은 무난하게 마법사가 되었다.
 “축하하네, 스칼 군!”
 “이 모든 것이 프라임 지부장님 덕분입니다. 앞으로 뛰어난 마법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암! 자네는 분명 뛰어난 마법사가 될 것이야!”
 전직 성공! 남들이 힘들게 통과한다는 전직 시험을 너무나 쉽게 통과한 스칼의 얼굴에는 약간의 허탈함이 감돌았지만, 그것은 어느새 떠오른 기쁨의 감정에 의해 사라졌다.
 마법사로서의 전직이 완료되었다.
 ‘본격적으로 연산력 스텟과 연산 스킬이 힘을 발휘할 때야.’
 속으로 연산력과 연산 스킬을 올리겠다고 다짐하는 스칼. 드디어 마법사로 전직했다. 남들보다는 수월히, 그리고 빠르게.
 마법사로 전직하면서 그는 2가지의 스킬을 추가로 얻었다.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마법학
 종류:성장형 패시브 스킬(초급 1/100)
 내용:당신은 마법에 입문하였다. 마법학 스킬은 마법에 대한 책을 연구할수록, 마법을 많이 사용할수록 증가한다. 마법학에 대한 지식은 마법의 위력을 대폭 강화시켜 준다.
 효과:마법의 공격력을 상승시킨다.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패스트 캐스팅
 종류:성장형 액티브 스킬(초급 1/100)
 소모 마력:100
 내용:마법사에게 중요한 것은 빠른 캐스팅! 마법사들은 캐스팅 속도가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고, 캐스팅 속도를 단축시킬 수 있는 비법을 개발했다.
 효과:캐스팅 시간 10% 단축
 
 본격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스킬들이다. 첫 번째 스킬은 마법 데미지를 상승시켜 주고, 두 번째 스킬은 캐스팅 속도를 단축시켜 주고.
 하나같이 마법사들에게 중요한 스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흠흠. 스칼 군, 이제 자네는 어엿한 마법사가 되었어.”
 “이 모든 것이 지부장님 덕분입니다. 지부장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마법사가 되는 것이 이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 사실, 내가 자네를 마법사로 만든 이유가 있네.”
 그 정도야 다 눈치를 채고 있었다. 스칼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면, 프라임이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그에게 마법사가 되라고 권유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퀘스트의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었기에 스칼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잇는다.
 “이유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후우. 자네도 알다시피 페일 마을의 마법 지부는 이 주변에 있는 마법 지부들 중에서 가장 미약한 힘을 가지고 있네. 최근에는 지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어. 만약에 지부가 사라진다면, 이 마을의 마법사 지망생들은 더 이상 마법사가 될 수 없을 것이야.”
 마법사 지망생들이 마법사가 될 수 없다? 그 말인즉슨, 페일 마을에서는 더 이상 마법사 전직이 힘들어진다는 것인데······.
 하지만 그것은 스칼과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 방금 전에 마법사로 전직했으니 남들이 전직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프라임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가득한지라 스칼은 묵묵히 그의 말을 경청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훌륭한 마법사가 배출이 되어야만 페일 마을의 마법 지부가 계속 유지될 수 있어.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자네의 뛰어난 재능이라면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닐세. 진심이야. 사실은 말이지, 3개월 뒤에 마탑 본부에서 이곳에 감찰을 나오네. 그때, 최소한 4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있어야만 마탑 지부를 유지할 수 있어. 자, 이것이 내 부탁이네. 3개월 안에 4서클이 되어 돌아와 줄 수 있나? 만약 자네가 3개월 안에 4서클을 만들어서 돌아온다면 지금 내 자리를 자네에게 줍세.”
 ―시나리오 퀘스트 ‘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의 운명’이 발생했습니다.
 
 지부 유지를 위한 증명
 등급:B
 내용:프라임이 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에 가지는 정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그의 마탑 지부에서 배출되는 마법사의 수가 극히 적어져서 마탑의 구조 조정 대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마탑 지부의 유지를 위해서 당신에게 성장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3개월 안에 4서클의 벽을 넘게 된다면, 그는 당신에게 합당한 대가를 줄 것입니다.
 보상:새로운 퀘스트로의 연계 ‘마탑 지부’
 시나리오 퀘스트 완료시 보상:직위―‘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장’
 조건:3개월 안에 4서클을 돌파하라!
 
 ‘대, 대박이다!’
 퀘스트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시나리오 퀘스트일 줄은 몰랐다.
 시나리오 퀘스트란 게임 제작자가 미리 안배를 해 둔 퀘스트를 뜻하는데, 일반 연계 퀘스트와는 달리 언리미티드 월드 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퀘스트다.
 게임 내의 역사를 움직이는 에픽 퀘스트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현재 스칼의 레벨로는 받아 내기 힘든 퀘스트임이 분명하다.
 이 모든 것이 그가 프라임과 친밀도를 대폭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3개월 안에 4서클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3개월의 시간 동안 마법사 유저들은 평균 2서클을 돌파한다. 그런데 4서클이라니? 다른 이보다 몇 배나 노력해야 가능한 경지였다.
 분명 어려운 퀘스트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이 어마어마했다.
 마탑 지부장이라니! 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의 장이 된다는 말 아닌가? 언리미티드 월드 내에서 조직이나 영지를 얻었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거대한 신뢰와 재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운영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시나리오 퀘스트 완료만으로 획득할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 했다.
 이런 퀘스트를 놓친다면 평생을 후회할지도 몰랐기에 스칼은 덥석 퀘스트를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프라임 지부장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4서클 마법사가 되어서 돌아오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나는 자네를 믿어!”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최근 들어 아주 빠르게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느낀 스칼. 이번에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니다. 3개월 동안 꾸준히 수행을 해야 하는 퀘스트인 것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이 퀘스트를 깨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리라. 남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요하는 길이지만 보상이 달콤했다.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 드리려면 기본적으로 힘과 세력이 필요하다. 언리미티드 월드를 위협할 정도라면, 분명 거대한 세력이겠지? 그들을 단신으로 맞서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고 위험한 일. 당분간은 성장에 주력하자.’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니 당분간은 힘을 기르며 위협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힘이 있어야 뭘 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그에게는 갈고닦을수록 강해지는 ‘연산’ 스킬과 ‘연산력’이 존재하고 있다. 이 스킬과 스텟은 노가다 작업만 거치게 되면,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 줄 것이다.
 게임의 시작이 아주 깔끔했다. 남들은 얻기 힘들다는 스킬들을 손쉽게 획득했고, 또 특수 능력치도 얻었다.
 전직도 빠르게 했으니 무척이나 좋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칼이 천천히 전체적인 상황을 분석하면서 미소를 지었고, 곧 앞에 있던 프라임에게 몇 가지를 물어본다.
 “혹시 지부장님? 이곳에 연산책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프라임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연산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상시 판매할 수 있네. 다만 이방인들은 연산이 왜 존재하는지 몰라. 연산이 마법을 강하게 해 주는 것도 모르면서······.”
 “연산책은 얼마입니까? 난이도는 상급 정도로.”
 초반에 연산력과 연산 스킬을 높일 생각인지, 스칼은 프라임에게 연산책의 가격을 묻는다. 아마도 대량으로 구매해서 열심히 풀려는 듯하다.
 스칼의 말에 프라임은 기다리라고 말한 뒤, 서재를 뒤적인다. 프라임 정도의 고위 마법사 서재에 있는 연산책이라면 난이도가 상당할 터. 설마 그에게 무료로 줄 생각일까? 그렇게 된다면 돈이 굳을 텐데!
 일말의 기대감을 품으며 프라임을 쳐다보는 스칼이었다.
 “자네 같은 사람들이 풀 만한 연산책이라면 꽤 있어. 나도 풀기 힘들어하는 책들이지만 자네라면 족히 풀 수 있겠지.”
 ‘6서클 마법사라면 수학을 잘해야 정상이 아닐까?’
 명색이 6서클 마법사라면서 수학을 힘들어하다니! 그것이야말로 마법사 실격이다. 그렇지만 괜히 말을 꺼내서 친밀도를 떨어트릴 이유는 없다. 그저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한참 동안 서재를 뒤적거리던 프라임은 책상 위에 13권의 책들을 쌓아 올렸다.
 “이것이네. 최상급 연산책들이.”
 “허어! 13권씩이나 되는 것들을 제게 주시다니······.”
 “응? 내가 언제 준다고 했나. 이것들은 구하기 힘든 것들이라서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하네. 아무리 자네가 우리 마탑 지부의 운명을 안고 있더라도 이것들을 무료로 줄 수 없어! 권당 10골드란 말일세.”
 “컥!”
 10골드씩 13권이라면 130골드. 초보들은 꿈에도 꿀 수 없는 가격이었다. 무료로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격을 들어보니 친밀도가 아무리 높아도 무료로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네요. 후우······ 130골드를 벌기에는 아직 제 힘이 미약합니다.”
 “후후. 낙심하지 말게나. 13권 모두를 줄 수는 없어도 2권을 주겠네. 나머지 11권은 차차 돈을 모아서 구매하게.”
 20골드라는 떡이 알아서 굴러 들어오자 함박웃음이 얼굴 만면에 가득 퍼졌다! 130골드의 벽에 가로막혀서 절망하고 있었던 스칼에게 20골드라는 돈이 생겨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프라임이 연산책 시리즈 13권 중에서 1, 2권을 뽑아서 스칼에게 건네주었다.
 책 표지에는 이런 제목이 써져 있었다.
 
 연산의 달인.
 연산의 대가에 이어서 연산의 달인이냐?
 
 센스 없는 작명에 스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당장 풀 연산책이 아니어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본다. 시나리오 퀘스트를 받았으니 이곳에서 할 일은 끝.
 이제부터는 초보자 마을에서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하니까, 최대한 레벨을 올려야 할 듯싶었다. 4서클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4서클 마법 2가지를 습득하고 있어야 하는데, 4서클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레벨 100에 도달해야 한다.
 석 달이라는 시간 안에 레벨 100을 돌파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 괜히 퀘스트 등급이 B가 아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에 B등급이다.
 과연 이 촉박한 시간 안에 100레벨이라는 벽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으나, 잘만 하면 가능할 것 같았기에 일단 희망을 가져 보기로 했다.
 스칼은 사냥을 나가기 전에 마법 몇 가지를 더 배우기 위해서 인벤토리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을 해 보았다.
 ‘14골드라······.’
 촌장과 프라임의 퀘스트를 꾸준히 클리어하니 어느덧 14골드라는 거금이 생겨났다. 본 퀘스트 안에 숨겨진 여러 잡 퀘스트들을 수행하면서 얻은 돈인데, 만약 그가 촌장이나 프라임과 사이가 안 좋았다면 14골드를 벌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1서클 마법 중에서 사냥에 유용한 마법들을 고르기 위해서 프라임에게 1서클 마법 목록을 요구해 본다.
 “1서클 마법책을 구매하고 싶은데, 혹시 마법 목록이 있습니까?”
 “물론이지.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 있어. 자, 여기.”
 어디서 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프라임은 로브 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손님들을 위해서 상시 준비 중인 것일까? 약간의 의문이 들었지만 두루마리를 건네받았다. 그러자 눈앞에 떠오르는 정보창.
 
 1서클 마법 목록(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
 클린―물건들을 깨끗이 정리해 주는 생활형 마법. 청소 아르바이트에 제격이다.
 버닝―말 그대로 태워 버린다. 사냥에도 유용하지만 고기 굽는 데 제격일 것 같다.
 매직 애로우―마법의 화살을 소환해 적을 공격한다. 후에 ‘매직 발리스타’라는 상위 마법을 배우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마법이다.
 슬로우―상대방의 움직임을 느려지게 만든다.
 인탱글―식물들의 뿌리로 상대방을 묶는 마법. 단, 주변에 식물들이 없을 때 사용이 불가능하다.
 프리즈―대기에 존재하는 수증기를 얼려서 상대방을 공격한다. ‘속박’ 효과가 있다.
 
 “1서클 마법은 이것 말고도 더욱 다양하지만 자주 쓰이는 마법만 가지고 있네. 우리 마탑 지부의 규모가 상당히 작아서 말일세.”
 “그렇군요.”
 가장 많이 쓰이는 마법만 있으면 될 것이다. 가장 위력이 약한 1서클 마법을 많이 배워 봤자 쓸 곳도 없다. 간단한 공격 마법과 공격 보조 마법을 배우면 되니까.
 스칼은 천천히 마법 목록을 확인해 본다. 이것들 중에서 필요한 마법을 골라내는 작업은 아주 간단하다.
 클린은 쓸 곳도 없기에 패스. 버닝과 프리즈 마법은 이미 습득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슬로우, 인탱글, 매직 애로우. 이 3가지 마법들은 후에도 유용하게 쓰인다고 들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간단하게 배울 마법을 정한 스칼이 프라임에게 말했다.
 “슬로우, 인탱글, 매직 애로우. 이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좋은 선택일세. 한 권당 1골드 50실버씩 해서 총 4골드 50실버지만, 자네는 이곳의 희망이니 4골드만 받도록 하지.”
 ‘1서클 마법은 무료로 줘도 될 텐데······ 그래도 50실버는 절약했어.’
 아쉬움이 남지만 50실버를 아낄 수 있었으니 만족해야만 한다. 여기서 더욱 많은 것을 요구했다가 친밀도만 떨어질 뿐이다.
 앞으로 자주 거래할지도 모르는데 친밀도가 깎인다는 것은 꽤나 치명적인 일이니, 욕심을 부리는 것은 그만하는 것이 났다.
 “여기, 마법서 3권.”
 “4골드입니다. 50실버나 깎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서 ‘슬로우’, ‘인탱글’, ‘매직 애로우’를 습득하셨습니다.
 남은 돈은 10골드이니까 그 돈으로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생각한 스칼은 곧바로 마법 용품들을 구매한다.
 “초보 마법사가 입을 수 있는 로브와 모자가 있을까요?”
 “아! 그렇지. 마법사로 전직했으니 기본적인 방어구들을 지급해야겠군!”
 스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지팡이를 꺼내서 작은 마법진을 그린 프라임. 그가 그린 마법진에서는 한 상자가 나타났다.
 스칼은 프라임이 건네주는 상자를 받아서 열어 보았다. 그러자 나타나는 3개의 방어구.
 
 <견습 마법사의 방어구 세트― 로브, 모자, 신발>
 
 아무런 장비도 걸치고 있지 않았던 스칼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꿀맛 같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방어구를 받자마자 몸에 착용한 스칼! 다행스럽게도 레벨 제한이 5라서 8레벨밖에 되지 않은 그도 착용할 수 있었다.
 장비를 착용한 그는 곧바로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착용으로 인해 바뀌었을 정보창을 기대하면서.
 “호오.”
 마법사로 전직하면서 보유 마력량이 무려 2배가 증가했고, 견습 마법사 세트를 착용하면서 지능이 5가 증가했다.
 스칼은 올 지능 마법사이기 때문에 마력량은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조루한 상황. 올 지능 마법사의 무서운 점은 올 지능을 통해 부족했던 마력량이, 마법사의 특성인 마력량 2배 증가로 인해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 부족한 마력은 공격력으로 전환되어 마법 한 방, 한 방이 무섭게 되었다.
 다만 지혜도 같이 올리는 마법사들에 비해서 마력량이 부족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유저들을 올 지능 마법사의 길로 이끄는 매력이다.
 연산 스텟은 이후로 수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33에서 정지한 상태. 앞으로 올리면 될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레벨을 올려서 더더욱 강한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상자는 마법사로 전직하면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건가요?”
 “그렇지.”
 “으음. 전직 선물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잘 받겠습니다.”
 친밀도로 인한 선물이 아니라 기본적인 선물인 것 같다. 그래도 방어구가 생겼다는 것은 퍽이나 기쁜 일! 더 이상 토끼에게 맞아 죽을 일은 없다.
 지난번에 토끼에게 죽을 뻔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파티원을 구해서 복수를 했긴 했지만, 단독으로 나서서 쓸어버려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후우. 지금은 마법을 습득하고 사냥을 해야 할 때지.’
 전직을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잡는 유닛은 늑대다. 늑대의 레벨은 10∼13. 전직을 끝낸 사람들이 잡기에 편한 레벨이다.
 운이 좋다면 올 체질 전사를 만나 마음껏 사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체력량이 빵빵한 탱커인 올 체질 전사라면 올 지능 마법사인 스칼과 궁합이 잘 맞을 테니.
 “저기 프라임 님? 잠시 방 하나를 빌려도 되겠습니까? 마법을 익히려고 합니다. 마법책 속에 있는 문제를 풀어야 할 것 같군요.”
 “역시 자네야! 이방인들은 대부분 그들만의 방식으로 마법을 습득하는데, 자네는 우리들의 방식으로 마법을 습득하려고 하는군! 이 방 옆에 있는 방이 비었으니 그곳에서 문제를 풀도록 하게나.”
 그가 말하는 이방인의 방식은 아마도 자동 습득인 것 같다. 마법책을 ‘사용’하면 마법이 자동으로 배워지는 방법. 대부분의 유저들이 취하는 방법이다.
 그것보다는 문제를 풀어서 습득하는 쪽이 마법의 숙련도를 높여 주니, 스칼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리라.
 1서클 문제 정도야 가볍게 풀어 주는 그에게는 별것 아닌 작업이니까 말이다.
 프라임에게 방을 배정 받은 스칼은 고개를 숙임으로써 인사를 한 뒤, 빠른 걸음으로 옆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사냥을 할 생각만이 가득했다.
 강해지는 재미를 한참 알아 가고 있는 스칼에게는 사냥이란 가슴 뛰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빨리 사냥터로 가고 싶네.’
 속으로 혼잣말을 뇌까린 그는 묵묵히 옆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곤 방 안에 배치되어 있던 책상에 앉아서 마법책을 풀기 시작했다.
 
 ***
 
 “파티원을 구합니다! 공격 마법을 배우신 마법사님들이라면 대환영합니다! 올 지능 마법사라면 아이템 배분할 때 더욱 많은 아이템을 배분해 드립니다!”
 “늑대를 사냥하실 데미지 딜러 구해요. 마법사를 최우선적으로 뽑고, 궁수도 뽑습니다. 탱커는 충분하니 탱커는 사절입니다.”
 마법책에 있는 문제들을 깡그리 다 푼 스칼은 곧장 사냥터의 입구로 향했다. 그러자 눈앞에 많은 수의 유저들이 파티를 구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데미지 딜러 역할을 하는 마법사는 그만큼 컨트롤이 어렵고, 전직을 위한 자금 마련이 어려운 바람에 페일 마을 같은 비교적 작은 마을에는 적게 분포하고 있다.
 때문에 사냥터에 들어가려는 파티들은 대부분이 마법사를 원한다. 마법사만큼 확실한 데미지 딜러는 없기 때문이다. 동 레벨 타 직업에 비해 월등한 데미지를 자랑하는 마법사가 파티에 합류하면 사냥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라지게 되니, 최우선적으로 마법사를 모집할 수밖에.
 스칼은 저런 사람들의 파티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직접 파티를 만들어서 탱커를 구하기만 해도 사냥을 진행할 수도 있으니까, 굳이 많은 파티원이 필요가 없다.
 그는 파티를 개설한 다음, 파티원으로 쓸 만한 유저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체력통이 높은 유저들로!
 마법 데미지야 숙련도가 상당히 높은 덕분에 다른 마법사들과 비교할 수 없으니, 탱커를 구해서 곧바로 사냥터에 들어갈 속셈이다.
 “누가 좋을까?”
 이곳에 모이는 유저들은 모두가 레벨 10을 돌파하고 전직을 끝마친 유저들이니까, 대충 구해서 들어가도 될 듯하다.
 그때! 그의 눈에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라? 프레이 님!”
 그 사람은 바로 토끼를 함께 사냥했었던 전사 지망생, 프레이! 올 힘 전사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현재 스칼이 원하는 조건에 적합한 유저다.
 스칼의 목소리를 들은 프레이가 화색을 띠면서 그에게 다가왔다.
 “스칼 님, 마법사로 전직을 하신 것 같군요? 벌써 레벨 10이 되신 겁니까? 이야! 정말 빠르네요!”
 “에에, 아니에요. 레벨은 8입니다. 그런데 프레이 님도 전직을 하셨어요? 차림새가 전사 차림샌데요.”
 견습 전사의 방어구 세트를 착용하고 있는 프레이의 모습을 본 스칼이 작게 감탄하며 묻자, 프레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저도 레벨 8이 되자마자 전직을 했습니다. 전사 교관과 친분을 많이 쌓았거든요.”
 “허! 조기 전직이로군요. 이것 참, 인연이네요. 저도 조기 전직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렇군요? 스칼 님은 어떤 방법으로 레벨 8에 전직을 하셨습니까?”
 “저도 마탑 지부장과 친분을 많이 쌓았어요.”
 둘의 전직 과정은 상당히 비슷했고, 그것을 깨달은 스칼은 프레이에게도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전사 교관은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속성의 NPC인데, 그런 그와 친분을 쌓아서 조기 전직을 했다면 프레이에게도 숨겨진 재능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마치 그가 수학 천재인 것처럼, 프레이는 무술 계열의 천재일지도.
 한참을 잡담을 나누던 스칼이 조심스럽게 프레이에게 권유했다.
 “혹시 파티가 필요하신가요? 전 지금 탱커를 구하고 있었는데······.”
 “끼어 주신다면 감사하죠! 스칼 님처럼 막강한 데미지 딜러와 파티를 하면 오히려 제가 고마울 뿐이지요.”
 토끼 사냥을 하면서 스칼의 마법 공격력을 실감했던 프레이었기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서로의 이해 조건이 아주 잘 들어맞았기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대화였다.
 프레이 또한 파티를 구하고 있던 참이라 스칼의 권유에 대찬성을 하며 파티에 가입했고, 결국 토끼를 잡았던 파티가 재현되었다.
 “올 힘 전사셨죠? 올 체질 전사는 아니시지만······ 전직하시면서 체력량이 2배로 느셨을 테니. 쉽게는 안 죽으시겠어요.”
 “끄윽. 그래도 맞으면 아픕니다. 듣자 하니 늑대에게 공격을 당하면 상당히 쓰라리다고 하더군요.”
 “걱정 마세요. 최대한 빨리 늑대를 사냥할 겁니다.”
 게임 내에서의 고통 수치는 게임과의 동화율을 뜻하는 싱크로율과 비례한다. 평균 싱크로율은 10%라서 받는 고통의 10%만 느끼게 된다. 물론, 죽을 때의 고통은 없다.
 죽는 고통까지 구현시킨다면 이 게임은 상당히 위험한 게임이 되어 버리니까, 죽음의 고통은 구현하지 않았다.
 그래도 10%의 고통을 느끼니 프레이의 투덜거림에도 이유가 있다. 그런 그를 빠르게 사냥을 끝낸다는 말로 다독인 스칼은 그를 이끌고 사냥 필드로 나갔다.
 곧 눈앞에 나타난 ‘늑대의 영역’이라는 메시지. 그것은 그가 사냥터 내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전투 준비.”
 프레이에게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지팡이를 꺼낸 스칼이 곧바로 캐스팅할 마법을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프리즈 마법으로 빙결 데미지를 입힌 다음, 캐스팅 시간이 비교적 짧다고 할 수 있는 인탱글 마법으로 늑대의 접근을 저지한다. 그리고 버닝 마법을 준비하면 끝.
 버닝 마법의 딜레이 시간 동안은 프레이가 그를 지켜 줄 것이니 안심하고 캐스팅하면 된다.
 위급 상황에는 늑대에게 슬로우와 인탱글을 걸고 도망쳐도 되니까 선택의 길은 아주 많았다.
 “늑대 한 마리를 몰아와 주세요.”
 “예.”
 어느새 프레이의 손에는 검이 하나가 생겼는데, 그 검의 모양은 꽤 특이했다. 다른 유저들은 검신이 넓고 긴 바스타드 소드를 사용한다. 초보 때는 그 쪽이 데미지가 더 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레이의 검은 그런 모양이 아니라 검신이 얇은, 동양의 검이다.
 ‘결코 일반적인 유저는 아니야.’
 저런 모양의 검을 사용한다면 모종의 검술을 익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보다 저 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전사 교관이 준 검일까?
 여러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났지만, 그것들은 프레이가 몰고 온 늑대가 등장하자마자 사라졌다.
 올 힘 전사면서 빠른 속도를 보이는 프레이의 움직임에 작게 감탄한 스칼이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날렸다.
 “프리즈!”
 마법사로 전직하면서 한층 강화된 마법은 치명적인 데미지로 변한다. 프레이가 몰고 온 늑대를 향해 쏘아지는 자비 없는 마법!
 그것은 곧장 늑대의 전신을 얼린다.
 쩌저적.
 푸른 초원 위를 광견병에 걸린 듯 날뛰면서 달려오던 늑대가 투명한 얼음에 의해 동작을 멈췄다. 그것은 스스로 멈췄다기보다는 온몸을 감싼 얼음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지 모른다.
 “프레이 님, 뒤로 빠지세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인탱글을 캐스팅한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시전했다.
 초원에 뿌리박고 있던 풀들의 뿌리가 길어지면서 늑대의 발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 공격을 통해서 체력이 절반 가까이 빠져 버린 늑대는 속수무책으로 인탱글에 걸려들었다.
 마법이 시전됨과 동시에 스칼의 앞에서 늑대의 돌진을 저지할 모션을 취하는 프레이! 이전에 토끼를 사냥했을 때의 패턴 그대로라서 그런지 익숙한 모습이다.
 크어엉!
 인탱글의 속박에서 벗어난 늑대가 달려왔지만, 스칼은 여유롭게 버닝을 시전하고, 프레이 또한 여유롭게 방어를 준비했다.
 “하압!”
 늑대가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짧고 굵은 기합성을 내면서 검을 휘두르는 프레이! 프레이의 검은 물어뜯기 위해 뛰어오른 늑대의 배를 갈랐다.
 부드럽게 늑대의 배를 벤 프레이의 검은 피를 머금은 채 돌아왔고, 공격을 받은 늑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바스타드 소드였더라면 결코 보여 줄 수 없었던 공격 속도는 늑대로 하여금 강력한 일격에 노출되게 만들었다.
 단박에 피가 사분지 일밖에 안 남은 늑대에게 스칼의 결정타가 날아갔다.
 “버닝!”
 화르륵.
 아까와는 반대로 허공에서 불의 기운이 모여들더니 삽시간에 늑대를 태웠다. 위력이 강화된 프리즈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게 된 버닝은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린 늑대의 숨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빈사 상태의 적에게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히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대폭 오르는 경험치. 자신의 레벨보다 2레벨이 높은 늑대를 죽이니 상승하는 경험치의 폭이 컸다.
 스칼은 삽시간에 재가 되어 버린 늑대의 시체를 보고 떨어진 돈을 줍는다. 그렇게 해서 습득한 돈은 정확히 이등분이 되어 각자의 인벤토리로 들어간다.
 “정말 빠른데요! 스칼 님! 누구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늑대를 사냥할 수 없을 겁니다.”
 프레이의 칭찬. 스칼은 그런 그의 칭찬에 화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프레이 님.”
 “예?”
 “······일반인이라면 뛰어오르는 늑대의 배에 정확한 일격을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프레이 님의 공격은 마치 숙련된 검사의 가까운, 그러한 공격이었어요. 초보가 보여 줄 검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현실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움직이는 늑대의 배를 정확하게 가르는 장면을 보았던 스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프레이가 일반 유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 특별한 능력이 숨겨져 있음이 틀림없었다.
 “하하······.”
 스칼의 물음에 멋쩍은 웃음을 지은 프레이가 습관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 직업 말인가요? 그냥 사냥하시면 좋겠는데······ 쩝. 원하신다면 알려드리지요, 뭐. 까짓것!”
 헛기침을 한 프레이가 스칼의 물음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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